31-177 to 31-218: 생사의 분기점  

생사의 분기점
1970.05.31 (일), 한국 전본부교회

31-177
생사의 분기점
[기 도]

아버지, 5월의 마지막 날이자 5월 들어 다섯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의 이 아침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수많은 수난의 과정을 거쳐오면서도 언제나 맞는 안식일이오니 이 시간 당신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5월 31일을 마지막으로 하여 새로이 6월을 맞게 되는 내일부터는 이 나라와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인연을 작정해야 할 중대한 시점이 저희 앞에 놓여 있사옵니다. 이제 역사를 가름하여 새로운 시대의 관문을 넘어서야 하는 최후의 달을 맞이하려는 이날을 당신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의 세월을 더듬어 볼 때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외로우셨으며 얼마나 억울하셨으며 얼마나 분통하셨겠느냐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하오나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마음을 억제하시면서 한날을 소원하고 찾아 나오셨기에 이제 그 소망의 기점이, 오늘 이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이 민족과 더불어 담판지어야 할 최후의 순간이 분기선상에 찾아오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모든 것이 당신께서 경륜하신대로 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극히 어리석고 부족한 자를 세워 지혜롭고 풍부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한다’는 말씀과 같이 아버지께서는 이 땅 위에 통일교단을 세우시어 아무것도 아닌 저희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몰아내시어 삼천만 민족을 지도하게 하셨사옵니다. 지혜롭다고 하는 수많은 무리 앞에 한줌의 흙밖에 안 되는 저희들을 세우시어 당신의 뜻을 증거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걸어 나오신 자초지종을 증거할 수 있게 하여 주신 놀라운 당신의 은사 앞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당신께서는 천년 만년을 갚는다 하더라도 다 갚을 수 없는 은사를 저희에게 주셨사옵니다. 만우주의 모든 역사의 인연을 총합하더라도 그 가치와는 바꿀 수 없는 귀한 은사이기에 몸 마음 아울러 감사드려야 할 저희들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불쌍하였던 이 민족이 내일이 없는 절망 가운데서 소망의 민족으로 세계에 드러나게 된 것도 당신의 생명이 저희에게 깃들어 있었던 연고이옵니다. 또한 새로운 시대로 연결시키려는 당신의 천적인 수고가 있었기에 불쌍하였던 이 민족은 내일의 소망을 품고 일어섰사옵니다.

이러한 내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이제 저희들은 국가의 부흥을 위하여 나가는 입장에 있사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내적인 부흥을 전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점이 외적 기반 위에 연결되지 않고는 이 나라의 금후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은 뼈중의 뼈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골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모든 전체에의 근원을 찬양하고 천주의 가치를 스스로 갖추어야 할 골수의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까지 저희들은 누가 알아주나 몰라주나 이 나라의 뼈가 되고 이 나라의 골수가 되려고 그늘 속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짓밟히는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당신이 바라는 소망의 한 점을 향하여 나왔사옵니다. 당신의 뜻에 어긋나는 조건을 남길까봐 슬픔과 외로움의 곡절을 가지고 나온 저희의 발걸음을 아버지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하늘에 영광된 날이 있다 할진대는 거기에 만민을 세워 만민의 영광된 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아옵니다. 또 지나간 수난의 노정에서 죽어진 자들까지 부활시켜서 자랑하고 싶으신 당신의 마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부활된 개체만을 가지고는 자랑할 수 없다는 당신의 창조원칙이 있었기에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부활시키려고 또다시 수고하시는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리며, 개인의 부활권을 가정의 부활권, 종족의 부활권, 민족의 부활권, 국가의 부활권으로 확대하여 찾아나오신 아버지의 노고에 진정 무엇으로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당신을 슬프게 하였던가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사죄드리고 용서를 바라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지금까지는 6천년 역사의 큰 담벽이 저희를 가로막고 있었으나 이제는 다 무너졌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내일의 새로운 소망의 물결을 타고 망망한 대로를 향해 힘차게 포구를 떠난 배와 같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본향의 포구를 향하여 새롭게 항해를 해야 할 때가 저희 앞에 다가온 것을 바라보게 될 때, 70년도는 수난의 한때인 동시에 소망의 한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은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기동을 해야 할 출발의 시점이기에 모든 일이 어렵사오나, 이 시점에서 결의하고 나서야 할 때가 또한 70년도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통일교회가 갖추어야 할 자세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 이 교회를 세우시고 바라시는 소망의 기준이 어떻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기성교회를 두고 통일교회를 통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 품에 품고자 하시는 당신의 거룩한 소원 앞에 제물될 수 있는 아벨을 부르고 계신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벨적인 개인을 찾는 역사적인 흐름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벨적인 가정은 어디에 있느냐고 찾으시는 당신은 얼마나 초조한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싸워 나왔는지를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정을 통하여서 아벨적인 종족과 아벨적인 민족과 아벨적인 국가를 찾고, 그 찾은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고 아벨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즉 동양과 서양을 연결시키어 최후의 결판으로 연결해야 하는 수고의 노정에서 아버님이 저희들을 부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개인이 수고해야 하는 이러한 노정에서 절망하는 통일의 무리가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절망에 빠진 개인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아벨적인 개인들을 세워 그들에게 아벨적인 가정을 찾아오라고 부르시는 것이요, 가정에 있어서는 아벨적인 탕감의 노정을 걸어온 그들을 통하여서 종족을 찾아오라고 권고하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또 종족적인 십자가의 노정에서 책임을 다하려고 몸부림치는 아들을 향하여 민족을 찾아오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며, 나아가 아벨적인 민족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전체를 책임지고 싸우는 노정에서 우왕좌왕하며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아버님은 또 다시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국가를 찾아오라고 권고하시는 것을 아옵니다.

이와 같이 저희들에게는 국가를 넘고 세계와 천주를 거쳐 아버지의 사랑의 세계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여기에 모인 저희들이 아벨적인 개인이 되기 위한 싸움의 노정에 있어서 승리적 가치를 지닌 무리가 되어 있사옵니까?

개인의 주체적인 권한과 주체성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가인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이요, 개인적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는 필연적인 운명에 처해 있는 저희들임을 알았사옵니다. 개인적인 이 한의 고개를 넘어야 아벨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요, 아벨적인 가정의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가인적인 가정을 굴복시켜야 되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적인 종족으로서의 환경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아벨적인 종족의 인연을 갖춘 통일의 축복가정들이 민족을 대신하여 제물을 드려 속죄의 사명을 하지 않고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축복가정들이 속죄의 사명을 다하여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민족 전체가 머리를 숙이게 되어 하늘을 향하여 아벨적인 국가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한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사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의 기점이 되어 있사옵니다. 하오니 대한민국이 필연적으로 가야 할 운명의 길을 당신이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의 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할 수난 길에 들어섰사옵니다. 먼저 맞는 자리에 서서 슬픔과 외로움을 품고 몸부림치면서도 내일의 승리를 앞에 놓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이 민족에게 강함과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낙망과 절망 같은 것은 한순간도 허용치 않는 긴장된 시점이 70년도부터 3년 동안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외적으로 전국적인 정세가 그러하거와, 내적으로 교회의 뜻을 중심삼고도 그러한 시점이 저희 눈앞에 보이고 있사옵니다. 저희가 가인 국가를 굴복시키고 아벨 국가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사오니, 이러한 운명길을 가는 저희들을 아버지여, 지켜 주시옵소서.

나라 없는 백성처럼 불쌍한 것은 없습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 이상으로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연을 넘어 나온 통일의 무리들에게 있어서는 이제 고아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부모를 가질 수 있는 시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 또한 지나가고 이제는 종족의 인연, 민족의 인연, 국가의 인연을 가져서 내일의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기 위하여 염려하고 애국애족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사옵니다.

민족적 정기가 타락한 세계를 벗어나 당신의 심중에 묻혀 있던 애국애족의 심정을 가지고 드러나야 할 때가 저희에게 가까이 왔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마음을 이어받아 애국애족하는 아들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묻게 될 때, 저는 아버지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해야 함을 느껴야 하옵니다. 아버지여, 용서하시옵소서.

지금까지 수많은 피어린 도상에서 민족의 한을 풀겠다고 선두에 서 가지고 나가는 그 걸음을 따라 나오는 무리들을 바라볼 때, 아버지의 염려의 대상이 되는 수는 많사오나 아버지의 염려를 책임질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이들을 바라 볼 때에, 내가 가야 할 앞날에 십자가의 길이 또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내가 안주하고 영위하여야 할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기에, 금후의 노정에서 힘찬 걸음으로써 민족을 대신하여 싸움길을 개척해야 되겠사옵고, 이들이 가야 할 운명길을 개척해야 되겠사옵니다.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어 민족 분열과 더불어 슬픈 심정의 인연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이 있사오니, 이 한을 풀어 남과 북을 규합해야 할 책임이 뜻을 아는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삼팔선 이북은 가인이요, 삼팔선 이남은 아벨의 입장이기 때문에 남한 국민이 먼저 당신께 충효의 도리를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먼저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이 이 나라 이 민족의 사명이기 때문에, 이 민족은 민족을 사랑하는 것보다 먼저 하늘을 사랑하여야 되겠사옵니다. 청산지어야 할 세계적인 인연이 연결되어 있기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민족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것이 이 나라 이 민족의 생사를 판결짓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민족을 대표한 불쌍한 통일교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선두에 서야 되겠사옵니다. 원수의 명령에 억지로 굴복하고 따라가는 이북의 그 누구보다도, 백배 천배로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누가 하지말라고 해도 스스로가 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여 그들을 능가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을 능가하고, 애국애족하는 충신 열녀의 도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나라가 하늘편에 복귀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저희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교단을 중심삼고 필연적인 운명길을 결판지어야 할 한 시점이 저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거쳐 나온 모든 인연과 당신의 수고의 공적과 최고의 위정자들 앞에 하늘의 은사를 허락하는 기쁨의 날들이 6월에 벌어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당신은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이러한 때를 준비하기 위하여 움직여 오신 아버지의 노고에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옵니다. 그 누가 뭐라 하거든 당신께서 수고한 것을 자랑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 누가 비난하거든 당신의 피어린 투쟁사를 듣게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사사건건을 당신의 품 가운데 간직하시사 만민의 심정 위에 옮겨 줄 수 있는 위업으로 삼으시고 애국애족할 수 있는 만민 평등의 심정으로 만민을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곳을 향하여 축도를 드리는 무리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쌍수 합장하여 분향의 실체로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아들딸이 있거든 그들의 후손에게까지도 천만 배의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또 자기 자신을 잊고 자기 가정을 제물로 삼아 민족을 위하여 해원성사의 뜻을 고대하는 가정이 있거든 뜻을 품고 가시는 당신의 발걸음을 멈추시어서 그들에게 만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저희들을 지도하는 것이 사랑의 마음인 것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당신께서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또한 세계 도처에 널려서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스승의 길을 따르느라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자들 위에도 아버지의 축복의 손길을 펴시옵소서.

그들은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나라는 있으되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사옵니다. 수많은 친척이 있으되 친척이 없는 무리가 되었사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자리에서 하늘편의 나라를 건설하여야 할 건국의 용사들이옵니다. 외로운 족속이지만 승리의 이스라엘 민족이 되어야 할 무리이옵니다. 하오니 흐르는 세계 역사의 가운데를 가로막고 승리의 방패를 세워 새로이 이스라엘권을 창건하여야 할 하늘의 용사들인 것을 기억하시사, 시대와 더불어 매장되고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는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히려 당신께서 흘러가는 역사를 역행하시어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만민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보람을 가지는 선각자들이 되고 개척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 자랑한 모든 것에 있어서 나를 중심삼고 자랑한 것은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나이다. 처음도 당신이요, 과정도 당신이요, 끝도 당신이거늘 저희들이 그러해야 할 책임을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당신을 슬픔의 마음으로 염려시켰던 사연 사연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의 해방을 위하고, 세계 만민의 해방을 위한 당신의 거룩한 노정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해방의 자리까지 가지 못하였사오니, 저희들 앞에 쉴수 있는 일순간도 허락지 마시옵소서.

과중한 책임의 십자가를 이제 아버지의 분부를 받아 온 국민에게 연결시켜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을 느끼는 이 때, 저희들은 쉴래야 쉴 수 없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안식의 한날을 바라보며 수고의 노정을 개척해야 할 발걸음을 진심으로 흠모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누구를 위하여 모였사옵니까? 당신이 남기신 뜻을 위하고, 당신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모였사옵니다. 그러나 당신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그 승리의 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정녕 수고의 노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했사옵니다. 아멘.

31-184
말 씀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은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5월이 오늘로써 마감되고 내일부터는 6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절기도 봄절기는 지나가고 여름절기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여름절기가 지나면 가을절기가 우리의 앞에 찾아오게 될 것이고, 가을절기가 지나면 겨울절기, 그 다음에 다시 봄절기가 찾아오며 일년이 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 세월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1-184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인류 역사
우리가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이 뜻과 흘러가는 시간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되겠습니까? 한 사건을 두고 볼 때,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는 동기가 있고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나야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출발 당시에 세워 놓은 목적의 달성여부가 나타난 결과로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100이라는 결과를 바라던 사람이 100이상의 결과를 얻었다면, 그 결과를 얻기 위하여 지낸 모든 날들, 즉 동기로부터 과정으로 흘러간 모든 시간이면 시간, 세월이면 세월은 비로소 절대적인 가치를 갖게 되고 그 사람은 거기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100이라는 결과를 목적하였는데 이것이 100이 되지 못하거나 혹은 실패의 결과를 가져 오게 되면, 그 동기부터 과정의 모든 시간은 원한의 시간이요, 슬픔의 시간이요, 회상하기조차 싫은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역사시대를 뜻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역사가 남겨놓은 결과가 뜻과 더불어 어떤 내용으로 결정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뜻이 크면 그 큰 것에 비례되는 시간의 소모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뜻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더불어 인간의 노고가 거기에 투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투입된 것은 물론이요, 인간의 많은 노력이 투입된 그것이 오히려 소모의 결과를 가져왔느냐, 아니면 거기에 투입된 내용을 총수습하고 보답까지 할 수 있는 만큼의 결과를 가져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흘러간 그 기간에 투입된 시간과 인간의 수고가 슬픔이 되었느냐, 아니면 기쁨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승패는 몇십 년의 기간을 두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여러분이 태어나는 그 순간은 긴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태어나기 전까지의 복중의 시기가 있지만 그 복중의 10개월이라는 기간은 출생하는 한 순간을 위한 준비기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10개월 동안 아무리 잘 준비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한 순간을 잘 넘기지 못하면 태어나는 그 아기는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10개월의 기간을 안전한 생명체로서 꾸준히 길러 나온 것은 탄생하는 그 한 순간을 장식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출생을 바라보는 목적의 한순간을 위해서 복중시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중시대가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태어나는 한 순간에 잘못하게 되면 비운의 결과가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산하는 여인은 고통을 겪습니다. 해산하는 순간은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중의 수난의 고비입니다.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수난의 극치에서 신음하던 산모도 태어난 아기를 바라보며 기쁨의 얼굴로 새로운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출발이 벌어지는 것처럼 인류 역사도 해산의 한때를 다짐하고 그것을 계승하면서 발전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삼고 인류 역사는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리적인 가르침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31-186
우리가 가야 할 뜻의 행로
개인의 목적을 완성하면 완성한 그 결과가 가정의 목적을 위한 동기가 되고, 가정의 목적을 이루게 되면 그것은 또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새로운 종족적인 목적의 동기가 됩니다. 거기서 종족적인 목적을 이루면 그것을 새로이 민족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동기로 삼고, 민족적인 목적을 이룬 다음 새로이 하나의 목표를 지향해서 국가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국가의 인연을 거쳐서 세계에 하나의 승리권을 마련해야 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뜻의 행로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인 하나의 목적권을 중심삼고 볼 때에, 자기 일대에 세계적으로 승리한 하나의 목적권을 성취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먼저 개인적인 승리의 목적권을 갖추어야 되고, 가정적인 승리의 목적권을 갖추어야 되고, 그것을 다시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승리의 목적권으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다 갖추지 못하면 세계적인 목적의 시대에 동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이 있다면 그 개인의 역사는 세계사적인 내용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라는 것은 민족사를 초월하는 승리적인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뜻 앞에 승리의 결과를 상속받아 나아간 역사적인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종적으로 세워 놓은 그 공(功)을 끝날에는 횡적으로 탕감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적인 역사과정에서 수천 수만의 선조들이 다 이 일을 했다 할진대, 그것을 오늘날의 수많은 사람들이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척의 행로를 거쳐왔지만, 목적이라는 것은 전체를 집약시키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열매라는 것이 춘하추동의 사계절을 두고 나무와 씨에 보유되어 있던 생명력을 집약한 실체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주의 목적, 역사의 목적 혹은 인류의 목적을 두고 볼 때도 그 목적 자체에는 역사노정의 모든 내용을 집약시킬 수 있는 삶이 개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능동적인 주체권을 가진 존재는 어떤 시대권내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대의 권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즉, 자체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들한테 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지자들이 쌓아 올린 것들을 흡수하여 집약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열매, 즉 목적은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적인 역사노정에 왔다간 수많은 선지 선열들, 또는 공신들이 추구해 나왔던 것들을 결실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수많은 사람을 중심삼고 종적인 역사시대를 횡적으로 탕감할 수 있느냐 할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의 결실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결실은 역사노정의 선지선열들을 집약시킬 수 있는 생명적인 주체성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성을 지닌 존재가 나타나면 중심이 결정됩니다. 그 중심은 춘하추동의 모든 시련의 요건을 초월한 것이며, 부딪치는 모든 수난의 여건을 흡수하고 극복할 수 있는 자신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새로운 결실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결실이 되어야 할 하나의 목적에 있어서도 그 목적을 이루어야 할 실체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 주체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사적인 결실을 대신 할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쳐온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심고 이것을 가꾸어온 공적이 있다 해도, 그들이 이룩한 전체의 공적을 집약시켜서 하나의 결실로서 규합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목적의 실체가 나타나면, 그 누구도 그 실체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 실체는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세워졌던 어떠한 개인이나 가정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그 어떠한 종족이나 민족이나 국가도 흡수할수 있어야 하며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1-188
한 순간을 맞기 위한 인류역사
그럴 수 있는 시대는 흘러가는 역사과정에 있어서의 한때이며, 이것은 지극히 짧은 기간인 것입니다. 그런 한때를 맞이할 사람이 있을 것이되, 그 사람은 평생을 그 한때에 저울질하여 맞춰야 됩니다. 이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수억 수천만 년의 역사를 거쳐온 인류사를 논의하는 이 시점에서 70평생의 짧은 생애를 가지고 완전히 기준을 갖추어 그 때에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나만이 그 때를 맞추기 위해 바라나온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 사색할 수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그 때를 생각한 것입니다. 막연하나마 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기준 앞에 자기 생애를 절충시키고 그 기준에 조정을 당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며 정성들여 나온 것이요, 혹은 싸우며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역사는 간단히 투쟁사요 전쟁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인류역사가 전쟁사가 되어 나왔느냐? 어떤 독재자나 위인, 혹은 어떠한 혁명가가 제시한 역사적인 이념이나 투쟁의 역사노정은 모두가 그 한때를 자기 수중에 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전쟁사는 그 한때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비운의 전쟁 가운데 사라진 수많은 애혼들도 결국은 이러한 목적의 기점을 세우려고 싸웠던 것이요, 그런 승리를 얻기 위하여 싸웠던 것이며, 어떻게라도 자기를 절충시켜 한때의 인연을 결정짓겠다고 싸웠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각 개인을 중심삼고 우주가 동원되어 한때를 맞이하기 위하여 투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그러한 때를 찾는다고 해서 전부다 그 때를 맞을 수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한 사람만이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출발은 최고의 출발이 될 것이요, 그 사람이 남긴 결과는 최후의 결과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사람이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연을 맞이할 수 있는 그 한 사람도 생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70년이면 70년이라는 생애가 전부다 인연지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애 가운데 어느 한 순간이 역사적인 순간과 인연지어지는 것이요, 그 한 순간에 해결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과 하나님이 제시한 때가 연결되는 때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그 때의 일치는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짧은 생에에서도 짧은 하루, 그 짧은 하루에서도 전체가 아니라 24분의 1도 못되는 짧은 순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사적인 승패를 결정할 하나의 정상이 있을 것이되, 그 승패의 결정은 며칠도 아니고 몇 시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똑딱하는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국제적인 위정자나 정치가들 몇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면 미국, 소련이면 소련을 중심삼고 불과 몇 사람 안 되는 세계적인 위정자들이 인류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회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 회담이라는 것은 오랜 기간을 두고 역사적인 인연을 중심삼은 것이지만, 그 결정은 순간에 되는 것입니다. 만남도 결별도 똑딱하는 순간에 이루어지고, 승리도 똑딱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일순간에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31-189
지혜로운 자들이 가는 길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지보다 평지를 좋아하지만 뜻있는 사람들은 고지를 찾아 올라갑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갔던 사람들은 평지를 중심삼고 정성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높은 산을 중심삼고 정성들인 사람들입니다. 고지를 찾아 올라간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의 침범도 받지 않고,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독자적인 길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기억하고, 인류 전체도 기억하며, 온 우주도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사건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에게 제시한 문제가 생사의 분기점입니다. 그것은 흥망의 분기점이요, 선악의 분기점인 동시에,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생애의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의 분기점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순간을 통하여 희비(喜悲)가 교차되는 한때가 있을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에도 이와 같은 분기점이 있는 것이요, 세계의 운명에도 이와 같은 분기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를 찾아 가느냐? 여기에서 지혜로운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지를 향하여, 모험을 무릅쓰고 정상을 바라보며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시대를 지배할 것이요, 역사를 지배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모든 것을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한 순간을 위하여 생명과 재산을 전부다 투입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의 모든 인연을 종합해서 폭발시킬 수 있는 자체력을 가진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지배하는 사람은 용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권을 갖지 못한 사람은 국가를 지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지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세에는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가려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러한 순간, 결정적인 한 초점, 그 정상을 향하여 얼마만큼 도약할 수 있느냐? 만약 개인적인 세계사적 기준을 통과하여 가정적인 세계사적 결정권을 넘어선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금까지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31-190
왜 가정 구원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의 해결을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모든 종교가 하나의 완전한 사람을 모체로 하여 개인적인 구원을 표준삼아 나왔지, 가정의 구원을 중심삼아 나온 종교는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개인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가정적인 구원을 모색해 나왔습니다. 모든 가정이 완전구원되어 일체화될 때 종족적인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것이 형태를 갖추어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인연권이 성립되어 넓어지게될 때, 민족편성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민족이 책임을 다하게 되면 국가 형성의 과정을 거쳐 세계가 자연히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회의 구성에 있어 기본적인 것은 참다운 가정, 즉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가정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종교관입니다. 왜 가정을 강조하느냐?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다운 가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종교는 개인적인 구원을 중심삼은 섭리시대권내에서 가정적인 구원을 중심삼은 섭리권내로 도약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도 가정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크게 둘로 나누어 보면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됩니다. 이들이 하나될 수 있는 비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목적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러한 하나의 결실적인 가정의 기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모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원이 나타나 씨를 뿌리면 새로운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축복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개인적인 정상에서 가정적인 정상을 어떻게 뛰어넘느냐를 생각합니다. 또한 가정적 정상에서 종족적 정상을 어떻게 뛰어넘느냐를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가는 사람이 있어야 가정이 구원되고, 그런 가정이 있어야 그 종족이 구원되는 것입니다. 또 그 종족은 민족의 정상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요, 민족은 국가적 정상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 국가가 세계적인 정상을 타고 넘으면 세계복귀는 간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의 7단계를 넘어가야 합니다. 이 7단계를 넘어 8단계에 올라서면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8수는 재출발수입니다. 그러므로 탕감복귀노정에 있어서 점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에서 가정적인 승리로 연결시키는 목적은 무엇이냐? 그 연결시키는 목적은 내 가정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 가정이 잘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을 받는 것은 자기의 가정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남자 여자가 서로 좋아하기 위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관성이 없는 가정은 망합니다. 축복 가정을 세우는 것은 에덴을 향하여 발판을 일시에 연결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개인적인 존재에서부터 가정적인 존재, 종족적인 존재, 민족적인 존재, 국가적인 존재를 거쳐 세계적인 존재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일생을 한 점에 연결시켜서 일치되었다 하는 날에는 이 천지는 그 권내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주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1-192
통일교회 식구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
참다운 개인이 있을 때에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세계에서 새로운 인생관을 갖고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갖추어 새로운 국가를 형성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형성되는 국가는 개인의 어떠한 목적이나 욕망을 중심삼고 형성되는 국가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개인적인 욕망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가정이나 나라는 좋아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는 길은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충족시키고, 그 내용과 일치되어야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소망의 터전과 새 역사의 내용과 일치된다는 것을 인식할 때, 그 가는 길이 어렵더라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길을 거쳐가지 않으면 참다운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인연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개인적인 구원 완성, 가정적인 구원 완성, 종족적인 구원 완성, 민족적인 구원 완성, 국가적인 구원 완성, 세계적인 구원 완성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어차피 우리가 가야 할 필연적인 길입니다.

그런데 그런 운명길을 가는데 있어서 모든 것을 종합해 가지고 하나의 씨로서 심을 수 있는 그 주체가 누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책임관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가정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이 잘 가느냐 못가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올 수많은 가정들이 망하느냐 흥하느냐가 결정되며,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을 거쳐온 가정들과 현재의 가정들이 부활하느냐 사망하느냐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도 잘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가정은 하나의 씨와 같은 것입니다. 그 씨는 땅에 심어져서 봄 여름 가을 겨울절기를 거친 다음에 봄을 맞아 다시 뿌려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31-193
우주사의 정상에 설 수 있는 사람
그러면 우주사적인 하나의 정상은 어떠한 사람이 먼저 만나게 되느냐? 지금까지 말한 중심적인 책임자가 먼저 만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자리에서 만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행복스러운 자리에서 만날 것이냐 비참한 자리에서 만날 것이냐?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은 행복보다는 비운을 중심삼고 흘렀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자리에서 인연될 것입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무엇을 중심삼고 인연될 것이냐? 기쁨을 중심삼고 인연될 것이냐? 아닙니다. 비장한 결의와 맹세를 중심삼고 인연될 것이요, 시련과 사건이 교차되는 자리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그것을 위하여 서두를 일이 있다면 최고로 서둘러야 합니다. 또한 최고로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생사가 결정되는 최고의 경각 중의 경각에서 여러분들은 걸어야 할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순간, 맥박이 끊어지려고 하는 순간이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도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인연된 하나를 잡아당길 때, 거기에 전체가 끌려오고 하나님까지도 끌려올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통일교회는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살아간다면, 어떤 세력이 여러분의 꽁무니를 잡아당기겠습니까? 만약 어느 누가 잡아당기더라도 여러분은 `나는 떨어질 수 없다’고 하며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끌려가면 전체가 끌려간다 할 수 있는 결탁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끄는 존재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세력 앞에 굴복당할 것입니다.

사탄은 반드시 이런 놀음을 하여서 여러분을 잡아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어느 순간을 중심삼고 한번 결정적으로 판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뜻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31-194
우주를 부활시키려면
여러분은 탕감원리를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의 원리에서 배운대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여러분을 잡아떼려고 할 것입니다. 그 힘은 여러분의 힘보다 강합니다. 여러분이 원리에 결탁되었다 하면 마구칠 것입니다. 여자들도 사정없이 칠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자신의 손이 빠지고 허리가 끊어져도 놓지 말고 달라붙어야 합니다. 다리가 부러져도 달라붙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놀음을 하려면 배후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든가, 다른 곳에서 빌려 오든가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됩니다. 이처럼 통일교회의 뜻을 따라가는 길에 있어서는 겨울절기의 얼음처럼 꽝꽝 달라붙어야 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달라붙을 수 없는 환경이지만 붙어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 나오려면 수난의 길을 가야하고, 겨울절기와 같은 핍박시대를 거쳐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기에 달라붙어 있는데 사탄이 끌고 가서 죽인다면 그때는 하나님과 더불어 죽는 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죽이려 하면 하나님이 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맞는 것입니까? 누가 먼저 맞는 거예요?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여러분의 양다리를 붙잡고, 형제들이 양팔을 붙잡고 잡아당길 것입니다. 사탄세계도 사탄을 중심한 사위기대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하려니 여러분의 양다리와 양팔을 사탄세계의 부모형제들이 붙잡고 힘을 합하여 한꺼번에 잡아당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성경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또 있어요? 이것은 성경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자신의 집안 식구가 원수이니, 부모도 원수요, 자식도 원수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성경은 위대한 섭리의 핵을 갈파한 경서라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입니까? 여기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있지만 나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 생명과 재산 전부를 걸고, 세계의 모든 소망을 걸고 나섰는데 떨어져 나가겠습니까? 남자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세계적인 내용을 이루기 위하여 욕도 할 것이고, 별의별 작전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그저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날름거리며 끌려가겠습니까? 죽음의 교차로가 천지에 가로놓여 있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있는 그곳으로 갈 거예요? 못간다고 하다가는 다 말아먹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내 목이 끊어지든지 네 목이 끊어지든지 당겨보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구도 못 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더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죽었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편을 치는 자는 망합니다.

하나님이 동참하실 수 있는 환경적 유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은 우주를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우주를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누가 나를 잡아채더라도 끝까지 남아져야 합니다. 남아지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작전법 이상의 작전법을 써야 되고, 사탄세계 이상의 생명력을 길러야 합니다. 사탄세계 이상의 죽음길도 갈 수 있어야 됩니다.

역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노력을 통해 내려 주신 삶의 원천과, 승리의 조건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방패의 기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31-196
통일교인이 가는 길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의 노정에 있어서 분기점은 어디냐? 여러분, 그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것은 어느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설명을 해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확증적인 신념과 더불어 확증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느냐, 또 그것이 세계사의 흐름을 역행시킬 수 있느냐, 그것이 깨지느냐 전체가 깨지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나 전체를 깨뜨릴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세계에도 분기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을 중심삼고 볼때 하나님이 찾아온 최후의 분기점, 그 한 순간의 초가 언제냐, 그 초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은 어느때 어떤 심정을 갖고 오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때는 똑딱하는 한 순간이요, 호흡까지 멈춰지는 절박한 심정의 순간입니다.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을 세계와 역사와 더불어 주시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천륜의 맥박과 역사의 맥박, 그리고 세계의 맥박이 하나로 합쳐져 동맥이나 호흡으로 연결되어 내쉬느냐 들이쉬느냐 하는 것을 주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똑딱하는 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부터, 즉 생의 원천, 생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돛을 달고 출발하여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이 다시 침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깊은 골짜기의 근거가 어디냐 하는 것이 금후의 통일신도들이 알아야 할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대해서 잘 압니다. 또한 개척해 나온 탕감역사의 내용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내용을 알아서 그 내용을 뒷바라지 하고, 그 내용의 방패가 되고, 그 내용의 기틀이 되어서 악을 소탕하고 나갈 수 있는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모체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알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해결하는 데에서부터 통일교회는 발전합니다.

그 길이 눈물의 길이냐, 기쁨의 길이냐? 통일교회의 역사에 기쁨의 길은 없었습니다. 항상 내몰리고 쫓기는 비참한 가운데서 가는 수난의 길만이 있었습니다. 한 고개를 넘어 한숨을 쉬면 또 한 고개를 넘어야 하는 슬픔의 길, 수난의 길이었습니다. 내 일생에 아직까지 들어서지 못한 기쁨의 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을 중심삼고 넘어야 할 고개, 가정을 중심삼고 넘어야할 고개,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고 넘어야 할 고개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 때에 왔습니다. 여기에는 누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라를 누가 더 사랑하느냐? 어떠한 사람이 나라를 더 사랑하는 애국자냐. 현재의 위정자가 나라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는 그들 앞에 머리를 숙이며 애국애족하는 당신의 정열을 본받겠다하는 입장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인은 지금까지 말없이 별의별 수난길을 다 겪어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통일교회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뭐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기반도 닦았고, 지금은 어떻게 되어 간다는 등의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상부에서는 통일교회를 상당히 문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 보니 꿈같은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31-197
인간의 가치와 사명
그러면 지금까지 수난을 인내로 극복하는 생활을 연속시킨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내일의 국가라는 하나의 총아를 해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기어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누가 낳느냐? 이 민족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진군하고 행진할 수 있는 국가를 누가 낳느냐? 사람이 낳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박대통령이면 박대통령 자신이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과 하나님이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하나님이 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되는 데는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물질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물질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온 만물이 굴복합니다. 그러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문제되는 것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어떻게 완수하고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어떻게 완수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완수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망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주관하고도 남을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 즉 사람 중에 참다운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가르치는 국민교육헌장이 외적인 모든 윤리 형태는 갖추었는지 모르지만, 심정세계에 있어서의 인격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슬픔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사람은 사람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뒷받침 내에 서있는 것입니다. 물건이나 물질 보다는 사람이 귀한 것이요, 그런 사람보다는 하나님이 귀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오는 길에서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사람을 위하여는 물질이 희생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하여는 사람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의를 가진 종교는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피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런 종교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물질세계와 세계 인류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하여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냥 흘러가는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식물의 표피와 같이 퇴화해 버리는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뿌리와 직선으로 연결된 열매 같은 기독교가 되지 않고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 우주에서 새로운 봄을 맞아 새로운 잎과 꽃을 피워서 결실맺을 수 있는 기독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사람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피조세계는 물질을 위주한 세계가 아닌 사람을 위주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수많은 제물이 희생됐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수많은 인류가 제물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제물되는 과정을 거쳐 가기 싫어하는 무리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하는 무리입니다. 그것은 결정적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성의 혼란되고 세속적인 환경, 이 소용돌이치는 사조권내(思潮圈內)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제물이 되겠다는 무리가 있느냐 할 때, 이것이 문제입니다.

31-199
종말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종말시대가 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종말시대를 사방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시점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을 앞에 놓은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새로운 빛이 필요합니다. 이 암담한 시대에서 새로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의 모든 것과 부딪쳐야 합니다.

부딪치는 데는 강한 것하고 강한 것이 부딪쳐야 하는 것입니다. 차돌을 바위에다가 부딪치게 되면 거기에서 불이 튀기는 것입니다. 차돌끼리는 더 불이 잘 나지만 그것도 어영부영하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주말적인 시대권내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사탄과 결투하여 승리권을 가질 수 있는 무리가 있어야 되고, 또한 그러한 나라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소용돌이치더라도 그 가운데가 홀로 버텨 가지고 난 안 죽는다고 할 수 있는 개인과 단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러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놓고 최후의 결말을 맺습니다.

그러한 나라는 자기를 중심삼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한 자들의 나라는 흘러가 버리게 됩니다. 그 나라가 소용돌이 속에 섰으면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국민 전부가 인연되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혼자 따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그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 때에는 일대 위기가 옵니다. 즉,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뚫고 나가야 할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단단히 붙잡아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옆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 힘을 제거해 버리고 자기의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혁명의 노선을 꽃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옆에서 여러분을 잡아채려 할 때, 그대로 잡혀 갈 것이 아니라 아무리 힘들더라도 나아가는 그 방향을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사탄이 여러분의 양 다리를 묶어 놓고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더 그 방향을 따라가야 합니다.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이 부지되는 한 놓지 말고 따라가야 합니다. 죽어서 떨어지는 것이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에도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 17:33)”고 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는 것은 금방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3일만의 부활이 아니라 죽자마자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죽은 사람은 죽자마자 천국을 마음대로 드나들수 있는 것입니다.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만 살겠다고 눈을 번뜩이다가는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떨어지겠어요, 달라붙겠어요? 달라붙어 있는 여러분을 사탄이 잡아떼려 할 때 여러분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다시 오무라들 수 있어야 합니다. 늘어난 채로 그냥 있으면 망하게 됩니다. 늘어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탄력적인 주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상으로 멀리 나갔다가도 휙 다시 달려 들어올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의 몸은 가더라도 마음만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골수 분야의 길이 있습니다. 또 선생님이 가는 골수의 길도 있습니다.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으로 최고의 길을 가려 하는 자는 개인적인 정상의 시대를 가정적인 정상의 시대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점을 몸을 바쳐서라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모험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기준에서 가정적인 기준으로 점핑할 때는 세계적인 개인의 한을 탕감해야 합니다. 죽을 고비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31-201
죽음을 걸어놓고 달려가는 무리가 되라
축복가정들 중에도 소위 건달가정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을 가만히 보게 되면 그렇습니다. 밤송이에도 숫밤송이와 암밤송이가 있습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숫밤송이가 덩치가 큽니다. 그놈은 놀고 먹는 것입니다. 결실이라는 것은 수난의 집약체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즉, 결실이란 수난을 극복한 내용의 집약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숫밤송이는 수난의 깊은 내용, 생명력을 중심삼고 집약된 실체를 갖지 못하고 비어 있습니다. 모양은 암밤송이와 비슷하지만 속은 밤송이가 아닙니다.

여러분 밤송이 알지요? 보기에는 가시가 돋아 쌀쌀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시 돋힌 껍질을 헤집고 들어가서 떡 벗기고 나면 알밤이 나옵니다. 밤은 세 겹의 껍데기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겉껍질을 벗기게 되면 속껍질이 있고 두번째 껍질을 벗기고 나면 세번째에는 떫은 맛이 나는 막이 나옵니다. 그것을 벗기고 난 다음에야 진짜 알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알밤이나 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밤송이 같이 여러겹의 천막을 두르고 있습니다. 그래야 누구든지 대번에 못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밤송이를 살랑살랑 밟아서 벗길 줄 모르는 사람은 알밤을 먹을 수 없듯이, 그 천막을 벗길 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밤송이를 벗길 때도 밤송이의 눈을 찾아서 요령껏 해야 대번에 벗겨지지 요령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뜻을 알기에 때가 오면 통일교인들을 모두 몇 천 길 되는 철창 속에 다 집어 넣어 놓고 쳐닫아…. 뭐, 뜻을 위해 죽어요? 뜻을 위해 죽겠다고 생각해 본 사람 손들어 봐요. 생각이야 다 해봤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뜻을 위해 죽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없잖아요. 지금 용광로에 구멍을 뚫어 놓고 `차렷! 앞으로 가!’ 한다면 그 속으로 들어 가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뜻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통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마르지 않은 나무처럼 시시하게 연기나 피우며 탈 것이 아니라 화약이 폭발하듯 타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폭파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영광로를 터뜨려 버릴 수 있는 화약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용광로에 불이 달기 전에 다 폭파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탄에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도피노선을 취할 것이 아니라 정면노선을 취해 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면 국가 앞에 있어서 최고의 수난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이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정상적인 노정입니다. 그 길에는 수많은 낙오병, 즉 수많은 참패의 무리들이 보따리를 지고 돌아다니고 있으며 시체도 널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너저분한 길을 넘어가야만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그런 길을 왔는데 또다시 그런 길을 가자 하면 가겠어요? 선생님이 보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자기 자신이 구원을 받고 축복받기 위해서 싸워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한번이라도 나라를 위하여 싸워 보았습니까? 우리가 이 길을 나선 것은 나라를 세워서 세계를 찾자는 목적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을 향하여 서행해야 하겠습니까, 급행해야 하겠습니까? 천천히 가야 되요, 빨리 가야 되요? 「빨리 가야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빨리 가야 합니까? 죽기 위해서 빨리 가는 것입니까? 살기 위해서 빨리 가는 것입니까? 죽기 위해서 빨리 가는 무리가 있으면 이 세상에서는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수십만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단 열 명만이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서로 빨리 가겠다고 다투며 나선다면, 적들은 그 싸움을 보고 다 도망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이 책상만한 것이 있다면 그 다이아몬드를 구경한 사람들은 모두가 그것을 갖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라고 했을 때에 서로 갖겠다고 싸우면 서로 망하는 것입니다. 서로 갖지 않겠다고 싸움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녀석아 이것을 네가 가져가라’ 하고 싸워 보라는 것입니다. 망하나 안 망하나. 그러한 싸움을 본다면 어떤 나라의 어떠한 원수라도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싸우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 싸움을 하는 무리만 나타나면 세계는 순식간에 녹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모든 십자가는 내가 짊어지게 하고,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에게 복을 주소서’라는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 죽겠다고 싸우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악한 세상이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31-203
악을 제거하기 위한 각오
그러면 통일교회가 민족의 수난길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냐? 넘지 못하면 최고의 승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수난의 길은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미국이 세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백안관 앞에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이 사나이가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한번 부딪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나라의 정세와 아시아의 정세, 나아가 세계 정세에 관심이 많습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떤 수난길이라도 돌파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을 구덩이로 몰아넣기도 하고 산정으로 몰아 올리기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지 않겠다면 때리고 발로 차서라도 몰아 넣을 것입니다.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잘라서라도 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못간다면 다른 사람들이라도 가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하는데 죄인입니까? 그게 죄를 짓는 일이에요, 선한 일이에요? 여러분은 이런 일을 위해서는 전부다 망해도 좋다는 배포를 가졌습니까? 통일교인은 그런 배포를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강원도에 가서 절벽 사이를 뛰어넘으면서 사냥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노루도 잡고 새도 잡았습니다. 그 총으로 악당들을 잡아서 세계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 이상 잔혹하게 몽땅 잡아 죽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악당을 잡아서 세계를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 다리를 잘라서 아버지 앞에 제물로 드려서라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이렇게 악착같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직 지치지 않았습니다. 내일의 새로운 힘을 배양하기 위한 재료를 다 써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그늘에서 살며, 그늘에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의의 판단은 그늘에서 되는 것입니다. 내놓고 선전하는 것은 전부다 이중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깊은 골짝의 그늘에서 정의를 판단하지 않고서는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은 선생님을 알아보기가 힘들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러한 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서면 실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한국 식구들도 두루마기도 입지 않고 조끼만 입고 쫓아옵니다. 그러니 조끼만 입고 있다면 통일교회의 식구다 이겁니다. (웃음) 그렇지만 나름대로의 예를 갖추는 것입니다.

개척시대에 있는 우리들에게 두루마기는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팬티만 입고 예배드릴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전쟁터에서는 팬티만 입어도 그만이다 이거예요.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한창 싸우는데 군복을 다 챙겨 입고 말고를 따질 수 있어요? 그것도 최후의 격전지, 마지막 판인데 말이에요. 이래저래 죽을 바에야 너저분하게 걸쳐 입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저 시원하게 팬티만 입고 격전지에서 싸우면 좀 어때요. (웃음) 그렇다고 죄가 돼요? 군기에 어긋난다, 전법상 그러면 안 된다고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연구해야 됩니다. 대관절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일본의 구보끼를 모(某) 기관에 보내 어떤 이야기를 하라고 코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30분이내에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일약 유명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선생님 말을 잘 듣습니다. 선생님이 종교적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선생님에게는 비상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재치도 있지만 재치뿐만이 아니고 선생님이 논증을 세워 가르쳐 준 것은 어디에 적용해도 적중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갖고 바쁜 중에서도 어려운 일만 있으면 선생님에게 물어 보려고 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본을 어떻게 요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하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그 누구도 그렇게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늘에 있던 사나이가 일본으로부터 미국 서독까지 요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래서 방선을 긋는 것입니다.

31-205
왜 고생을 해야 하는가
이제는 선생님의 작전에 모두 나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탄을 녹여 먹던 역사를 가졌고, 또 그만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못나서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고생시켜야 되겠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여러분이 세상에서 힘들게 아기를 낳았는데 낳고 보니 팔방병신이라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아마 생각만해도 끔직하리만큼 나쁠 것입니다. 그 아이를 볼 적마다 끔찍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십년이상 죽도록 고생한 끝에 낳고 보니 천하의 명장이요, 천하의 미인이라면 어떻겠어요? 여러분이 그러한 옥동자를 낳았다고 하면 지난날의 힘들었던 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힘이 들었기에 그런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으니 그 힘들었던 것이 오히려 자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었기 때문에 그 아들이 아무리 위대해지더라도 부모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줏어 온 자식이라면 그렇게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힘들여 낳았더라도 그 자녀가 잘났으면 잘났을수록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커서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힘들게 낳았기에 눈을 뜨나 감으나 그 자식을 잊을 수 없고, 어디를 가나 오나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인연을 맺기 위해서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 없었던 부자의 관계로 인연을 맺으려니 누구보다도 고생스럽게 자녀를 낳으려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이 아니겠느냐,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선생님이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가정을 하나 찾기 위해서 그만큼 고생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선생님만큼 고생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떠한 소설의 주인공이라도 선생님만큼 고생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공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선생님을 그렇게 고생시키셨느냐? 선생님에게 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가정의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역사 이상의 것을 알게 하시려고 역사 이전의 고생까지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콧노래를 부르며 천상세계나 지상세계에서 자랑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남성세계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총아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배후에 숨겨진 내용을 생각하면 천신 만고하여 닦은 기반 위에 세워진 영원한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기반이 닦여진 가정에게는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애국자나 충신은 평시에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애국가와 충신은 비상시대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비상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싸운 사람들이 나중에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요, 세계를 위해 생명을 걸어놓고 싸운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31-206
인류에게 그늘을 제공할 수 있는 나무가 되자
통일교회에서는 이 나라를 위한 주의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천주주의를 들고 나왔으므로 천주주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책임자가 누구냐 하면 통일교회의 미스터 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에 없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운의 역경을 거쳐야 합니다. 모진 풍상, 모진 억울함, 모진 슬픔의 사연을 다 끌고 다닐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통의 보자기를 벗어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봄날이 찾아올 때까지, 동삼삭을 지낼 동안 그 보자기는 나를 덮어 주는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다시 말해서 통일교회를 반대한 사탄의 모략 중상이 통일교회가 피난할 수 있는 보자기가 되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신문, 무슨 신문하여 7대 신문을 전부 동원해 가지고 아무리 두들겨도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까딱없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아무리 두들겨도 맞지 않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맞아준 것은 그것이 누더기이지만 겨울시대에 우리들을 덮어 주는 보자기 노릇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그러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우리들의 일을 도와준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욕을 먹어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욕을 하려면 하라는 것입니다. 욕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욕을 먹고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고 그것을 뚫고 올라가 사막과 같은 광야에서 새싹을 내고 자라 나무가 되었을 때, 그래서 이 민족이 쉴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그늘이 되었다 할 때, 그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세금이라도 내면서 오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말라 죽겠으니 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럴 수 있는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 자체가 염천하에 그늘을 가질 수 있는 나무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현재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별의별 요지경, 별의별 사기꾼, 별의별 장면, 별의별 인간상을 다 보았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 중에도 `앞으로 통일교회가 전망이 있을까? 통일교회를 통해서 출세나 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문이라는 사람은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은 역사시대의 한 순간에 그 한 중심과 연결될 수 있는 심정적 내용, 인격적 내용, 투쟁적 내용을 지녀 하나의 대승리의 기점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기회를 어떻게 포착하느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이냐? 아닙니다. 선생님도 지칩니다. 단지 회복되는 시간이 여러분보다 빠를 뿐입니다. 아무리 지치더라도 정신을 집중하여 회복하는 시간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 회복하는 방법이 여러분과 다를 뿐이지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또 외롭고 슬픈 일을 당해도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31-208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부자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달렸다
이제 국가 복귀라는 거대한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이 나라에 어떻게 영향력을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그 국가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충신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충신이 많았지만 앞으로 통일시대에 있어서의 충신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충신 가정이 나와야 합니다. 충신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충신 종족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표창을 받을 수 있는 이스라엘 민족, 하나님의 표창을 받을 만한 이스라엘 국가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론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문제의 해결점은 어디에 있느냐? 즉, 승패의 분기점을 어디에 두느냐, 생사의 기점을 어디에 두느냐, 흥망의 분기점을 어디에 두느냐, 우주적인 존재로서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 나에게 두느냐, 아니면 다른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해주겠지 하면 망합니다. `나라에서 다 해주겠지’ 하는 민족을 가진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승리할 수 있는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관계를 맺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문제가 벌어집니다.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위해 있는 것이요, 피지배자는 지배자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로 결속되었다는 내용을 갖지 않고는 금후의 세계관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통일이념에 있어서의 세계관은 부자의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즉, 주권자는 아버지요, 국민은 자식과 같은 입장이기에 주권자가 고생하는 것은 자식과 같은 입장인 국민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착취하는 부모는 추방당해야 하는 것처럼 국민을 착취하는 주권자는 지옥으로 추방당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선군이니 악군이니 하는 역사가 벌어졌던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나라를 이용하겠다는 무리는 망합니다. 그런 군주는 망하는 것입니다. 제거되는 것입니다.

정치철학에서 최고로 문제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가간의 융화 문제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최후의 관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제를 볼 때, 백성을 위해서 주권자가 있는 것이요, 주권자를 위해서 백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의 관계와 같은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승패의 기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 선생님에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승패의 기점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과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는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말씀을 받고서 그냥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누룩은 새로운 누룩을 만들어 전체가 누룩이 되게 합니다. 여러분들도 어디에나 떼어 놓아도 거기에서 누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세계관을 가져서 어디를 가든지 그러한 결실 작용을 할 수 있는 개인이 되고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세계는 통일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없더라도 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아 부부가 되면, 부모의 가정에 소속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을 중심삼고, 혹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결실적인 인연을 가져 보았느냐, 내 생명을 기울여 다 퍼붓더라도 그 인연 속에 파고들겠다는 나 자신을 가져 보았느냐,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됩니다. 결국 내가 죽을 때는 그 속에 묻혀서 죽을 것이며, 그런 나 한 개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소생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실감해 보았습니까?

31-210
상대적인 가치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거대한 하나님이지만 인간은 소우주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그 거대한 하나님이 내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느낌을 받아야만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무한히 크신 하나님이지만 인간이 그 속에 흠뻑 들어 가야만 하나님도 작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힘의 작용은 상대적인 극이 있어 그 자리에서부터 돌아가고 돌아오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엇바꾸어지며 나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하는 일을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고 아내가 간섭을 안 하면 됩니까? 아내도 남편과 대등한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을 때는 아내라도 그 자리에 나설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승패의 기점을 어디에 둘 것이냐? 교회에 두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선생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여러분이 가야 할 길과는 다릅니다. 선생님이 국가적 기준에서 나가면 여러분은 민족적인 기준으로 나가야 합니다. 한 단계 떨어져서 극복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를 향하여 진군하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진군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대적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가치란 어떻게 만들어 지느냐? 그것은 주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주체 앞에는 자연히 그 상대가 생겨나고 그 가치도 자연히 생기지만 스스로가 대상의 기준까지 올라가서 찾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정상적인 마음 바탕을 지니고 하나님과 선생님이 정성들인 그 기준을 따라가야만 아무것도 없는 여러분 자신이라 하더라도 재창조의 원칙에 의해서 완전한 주체로 서게되며, 그런 여러분 앞에 완전한 대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정성들이는 길을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 연결되어 하나의 횡적인 발판을 넓혀 나가는 것이고 그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또한 이것이 원리에서 나오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의 원칙이요, 법도입니다. 승패의 기점은 선생님에게도 있지만 여러분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는 선생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전체를 대신하여 민주적 기반을 이룰 수 있는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각자는 반드시 선생님을 중심삼고 생사의 결투를 해야 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해야 되는 여러분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이 지금 뭘하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여 가고 있으며 어떤 곳에 갈 것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알고 그것을 본받아 거기에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서야 할 세계적인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기뻐하면 여러분도 같이 공감하여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선생님의 심정에 얼마만큼이나 공감하고 있습니까?

하나된 부부가 서로 좋다는 것도 같은 동기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과 하나되었다는 심정적인 체휼감이 여러분이 생활권내에서 하루를 지배하고, 일년을 지배하고, 일생을 지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하의 충신이 되느냐 못 되느냐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31-211
통일교회가 만들고 있는 중화문화
하루 24시간에는 아침 낮 저녁 밤이 있습니다. 이것에 일년을 대비해 보면 아침에 해당하는 절기가 봄이고, 낮에 해당하는 절기가 여름이고, 저녁에 해당하는 절기가 가을이요, 밤에 해당하는 절기가 겨울입니다. 하루의 운세와 기운을 연장시켜 해(年)를 지었기 때문에 해도 창조원칙에 의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절대 위치와 같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루에는 4계절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지요? 역사는 이러한 일년을 닮아야 됩니다. 역사에도 봄절기의 시대, 여름절기의 시대, 가을절기의 시대, 겨울절기의 시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봄절기의 문화시기가 있어야 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봄절기 문화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봄절기의 문화시대에서 여름절기의 문화시대인 열대권 문화가 되었고, 그 다음에 가을절기의 문화시대인 온대권 문화가 되었다가 지금은 겨울절기의 문화시대가 되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한대권 문화가 세계를 통제할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거 어지간하게 맞지요?

역사는 사탄세계의 봄절기 문화시대에서부터 남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문명이 열대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가을절기의 문명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 하면 어린아이를 찾아 나가는 주의입니다. 백성을 찾아 나가는 주의라는 것입니다. 백성을 찾아서 하나의 개체적 자유를 중심삼은 기준을 찾는 것입니다. 자유 중에 최초의 자유는 어린아이의 자유입니다. 지금 인류는 어린아이의 자유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세계가 된 것입니다. 누가 먹든 말든, 누가 죽든 말든, 어디가 뒤집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트위스트는 어린아이들의 춤입니다. 성인들의 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구르고 울면서 추는 춤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고안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기만 하면 됩니다. 어린아이가 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지금까지의 기성제도와 기성 윤리도덕이 간섭할 수 없는 끝날의 주의가 있느냐? 그 주의는 춘하추동의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고루 모든 문화의 내용을 뽑아 요리한 하나의 결실을 들고 나올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겨울절기의 문화인 공산세계를 뚫고 넘어가서 새로운 봄절기의 총아로서 등장할 수 있는 문화가 있느냐? 그러한 새로운 우주사적인 봄절기의 문화를 지금 통일교회가 만들고 있는데 이것을 중화문화(中和文化)라고 합니다. 이 문화는 모든 문화를 다 포함하고 있기에 봄절기도 환영하고, 여름절기도 환영하고, 가을절기도 환영하고, 겨울절기도 환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화문화라고 합니다.

그 한 문화권을 가진 통일교인들은 지옥까지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의 이념은 거대한 것입니다. 현대신학을 하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학장도 통일사상은 아주 거창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거창하지요. 새로운 봄절기와 같은 문화권을 가진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31-213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역사는 사람에 의하여 창조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서 사춘기 때까지가 봄절기에 해당하는 것이요, 40대까지가 여름절기요, 60대까지가 가을절기이고 그 이후는 겨울절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내일의 봄날을 위하여 남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남겨야 할 것이 뭐냐? 그것은 하루하루의 생활권이 전체 생애가 집약된 하나의 결실체가 될 수 있도록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를 지내고 새로운 봄동산으로 등장하는 영계로 가는 것입니다. 7, 80여년의 생애에 영원한 봄을 어떻게 잘 맞이하느냐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생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루를 잃어버린 사람은 열흘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하루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열흘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요, 열흘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한 달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요, 한 달을 소홀히 지내는 사람은 일년을 소홀히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하루를 잃어버리면 열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요, 열흘을 잃어버리면 한 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요, 한 달을 잃어버리면 일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일년을 잃어버리면 십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십년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곧 생명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일생을 중심삼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하루에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한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사람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은 일생을 두고 봐야 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선생님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랬지만 이제는 안 그럴 것입니다 하며 용서를 비는 경우에도 선생님은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두고 보는 거지,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사고방식이 그렇다는 거예요.

이 순간에도 선생님은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이 자는 시간에도 일어나서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보급하여야 할 책임이 있기에 피곤을 무릅쓰고 가야 할 생사의 경계선에서도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목적을 향하여 직시하고 직행할 수 있는 자체의 힘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보강하느냐? 시간 시간을 투쟁해야 합니다. 어느 한 시간 쉴 사이없이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느 한 순간도 마음 놓고 다리를 펴고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때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전체를 파탄시킬 수 있는 요인이 내 주변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보지 않아도 때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대번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순간들을 연결시켜 생사의 분기점에서 흥은 세우고 망은 버리고, 선은 세우고 악은 제거할 수 있는 가치적인 내 인격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시간권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력을 흡수하는 시간이 촌시(寸時)라도 끊어지는 날이면 사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순간의 분기점을 망각하여 패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31-214
사계절과 같은 기질을 갖고 있는 인간과 민족
그러한 순간 순간을 중심삼고 생명을 투입하여 미래의 봄절기를 향하여 나갈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늘의 왕자 왕녀가 되기 위해서는 이땅 위에 있는 모든 분야의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한 것까지도 소화시켜서 내 생명력으로 만들 수 있는 자체의 힘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한 세계는 물론이고, 악한 세계에서도 시련을 극복하며 나갈 수 있습니다.

악한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통일교회를 반대합니다. 기성교회에서도 통일교회에 가지 말라고 반대합니다. 동료들도 반대하고, 부모들도 반대합니다. 통일교회 갔다 오자마자 `또 거기 갔었소?’ 하며 여러분에게 창피를 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그런 것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욕을 먹더라도 그것을 소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는 지금 어느 절기에 해당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기질을 생각해 보면 자기가 봄절기에 해당되는지, 여름절기에 해당되는지, 가을절기에 해당되는지, 겨울절기에 해당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참 아름답고 정적인 면에서 아주 포근하여 무엇이든 잘 흡수하는 사람은 봄절기에 해당합니다. 또 아주 정이 많고 눈물이 많은 사람은 여름절기에 해당하고, 쌀쌀하고 깨끗이 생기고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은 가을절기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꽝꽝 달라붙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어느 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상대적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즉, 봄절기의 사람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름절기의 사람은 겨울절기의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너무 뜨거워 걱정이 되는 사람은 차가운 사람을 만나서 식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눈을 보면 알 수 있고 또 그 생김새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1-215
우주사적인 종자들을 규합할 수 있는 통일교인이 되라
이것을 민족적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중에도 봄절기에 해당되는 민족이 있으며, 여름절기에 해당되는 민족이 있으며, 가을절기에 해당되는 민족이 있으며, 겨울절기에 해당되는 민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봄도 좋고, 여름도 좋고, 가을도 좋고, 겨울도 다 좋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미래에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인것입니다.

식물은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열매는 생명력을 지닌 채 벼락이 치더라도 깨지지 않게 단단한 껍질로 추운 겨울 동안 보호를 받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껍질을 벗고 새로운 싹으로 트는 것입니다. 잣같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모든 생명체에는 생명을 보호하려는 악착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은 천상천하의 참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의 입장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까, 죽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살아 있어요, 죽어 있어요? 여러분은 지금 살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딱딱하게 여물지 않은 것은 종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밤을 보더라도 여물어서 탱탱하게 터질 정도가 되어야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덜 여문 것은 종자가 될 수 없습니다. 벼도 눌러보아서 단단히 여문 것을 종자로 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은 우주사적인 종자로 규합될 수 있는 단단하게 여문 통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러한 종자가 될 자신이 있어요? 대답해 봐요.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한 사람도 없어요? 「있습니다」 자신 있다고 얘기한 사람은 뭐가 자신 있어요?

어디를 가더라도 조건만 갖추어 있으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프리카에 가서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입을 벌리지도 않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도 말하지 않고 전도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들의 선조들이 해주었습니다. 선조들이 망하지 않기 위해 밤잠 안 자고 한 것입니다. 사탄 이상으로 열심히 해 주었습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봄날이 왔으니 주인이 못 하면 종을 시켜서라도 씨를 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할래야 망할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어느 시대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겨울절기입니까, 봄절기입니까? 통일교회는 지금 역사적인 겨울절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생명력으로 외적인 힘, 역사적인 방해 여건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명력을 가진 나무는 돌이나 바위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님이나 통일교회는 생명력을 발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겨울절기에 뿌리를 길러서 세계적인 기반을 닦는 것입니다. 이제 겨울이 지나면 뭐가 오는 거냐? 봄이 올 것입니다.

31-217
순간을 빛낼 수 있는 무한한 가치의 사람이 되라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의 봄절기는 예수가 왔다 갔던 시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7세기를 지나면서 봉건주의적인 여름절기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14세기까지 그 봉건주의 문화는 말할 수 없이 부흥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절기에 해당하는 시대에 진입해 20세기 말에서부터는 공산주의에 의한 겨울절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얼어 붙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인계받아야 하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수난의 고비를 겪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수난의 한때를 기독교가 맞아야 했는데 기독교가 그 수난의 겨울절기를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금 그 겨울절기를 맞아 가지고 봄절기를 향하여 넘어가는 것입니다.

금년 70년도부터 우리는 봄절기를 맞이했습니다. 지나간 60년대는 겨울절기로 탕감시대였으나 이제부터는 봄절기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춘풍이 불어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전부다 그런 봄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러한 이치를 중심삼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과정에서 남아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생명체가 되고 열매가 되고 씨앗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 자신이 기독교를 중심삼은 예수의 봄절기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수많은 기독교 신자와 충신 열녀들이 찾아 나오던 뜻을 이어받아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생명의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결실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겨울절기를 넘어가야 합니다.

겨울절기가 나쁜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빛이 날 수 있는 때입니다. 즉, 새로운 봄, 활짝 꽃 피울 내일을 약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결실된 씨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 그러한 가정, 그러한 종족을 만들기 위해서 선생님이 축복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이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됐어요?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다시 수습해야 될 것입니다. 금년에 해야 할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봄절기에 살고 있기에 `나는 이런 절기에 살고 있으니 너희들은 나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때인 것입니다. 또 겨울절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는 당신들의 생명력과의 관계에서 먼 것이 아니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기에 나는 당신들과 관계 맺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생애가 그럴 수 있는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활 전체가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고는 생명체를 완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의 분기점은 어떠한 긴 기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간을 무시하는 사람은 왕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대성할 수도 없고, 위대한 사람도 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의 왕조와 왕관을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빛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주시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됩니다. 자기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용이 세계와 관계되는 현상으로 남는 다는 신념을 가지고 해결짓는 데에서만이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승리권, 천주적인 승리권도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순간을 빛낼 수 있는 무한한 가치를 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성인도 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사의 분기점은 순간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31-218
기 도
아버님, 맹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성경에 나와 있사옵니다. 생사가 결정되지 못한 역사시대를 살아오면서 응당히 아버지를 따르겠다고 맹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신께 절대 순응하지 못한 역사를 인간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사연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생사의 분기점은 긴 시간이 아니라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호흡을 할 때 들이쉰 숨을 내쉬지 못하면 죽는 다는 것을 아옵니다. 들이쉬고 내쉴 수 있는 자체력을 가졌기 때문에 생명이 지속되는 것이니 생명은 결국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한 순간에 달려 있는 것을 아옵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이 똑딱하는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처럼 생명 자체도 한 순간에 끊겨지는 것이 아니옵니까?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연속적인 과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중요한 기점에서 결정되는 것인데 이것을 인간들은 쉽게 망각하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오늘날 저희들이 저희 자신을 다시 한번 주시하게 될 때, 미래에 부풀어 오를 수 있는 개체의 인격을 주시하는 것보다 흘러가는 현실의 이 시간을 중심삼고 이 시간권내에서 승리하여 우주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순간을 빛내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자체의 인격이 얼마나 고귀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시간을 승리의 기점으로 하지 못하면 하루를 승리할 수 없는 것이요, 하루를 승리의 기점으로 하지 못하면 일년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를 패하면 일년 이상을 패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가져오게 되어 생명 자체에까지 파탄이 벌어진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활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가 순간의 싸움에서 양보할 것이 아니라 거두어 들일수 있는 흡수력과 주체력을 가진 입장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정짓고 사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을 자랑하지 못하게 되면 내일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이요, 오늘의 귀한 가치를 찬양하지 않고는 내일의 희망을 찬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인류가 순간적인 싸움의 과정에서 패자의 서러운 자리나 낙망의 자리에 설 것이 아니라, 희망찬 내일을 개척하는 용자의 모습으로서 `아버지여, 저를 믿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하늘 땅에 믿을 수 있는 권을 만들어 자아를 순간 순간 거기에 연결시키는 인격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저희들은 새로운 각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천주적인 한때가 저희들을 향하여 다가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뜻이 저희에게 한때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뜻이 바라는 것이 저희의 한 순간과 연결되어 가지고, 크고 먼 역사시대가 교회와 인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위하여 저희들 각자가 순간을 중심삼고 스스로를 생활권내에서 하늘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자기의 자리를 사수하는 것은 자기의 인격적 기반을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아버님과 나와의 인연된 기준을 가지고 흑암세계에 뿌리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방위권을 만들기 위해서도 생활을 제어시킬 수 있는 자리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이 수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결코 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총아로서 당신의 아들딸이 되기 위한 것임을 아옵니다. 허물을 벗고 새로이 탄생하기 위해 이 길은 없어서는 안 될 필연적인 운명길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감사한 마음으로 소화시키어 넘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역사를 붙들고 내일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책임을 지고 나서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당신이 보호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옵니다. 생활 전체를 하늘화하는 운동에 있어서 이 시간 이후에는 순간 순간을 모심으로 기뻐하는 권내에서 생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생활권내의 한 순간을 중심삼고 무한히 정성들이는 당신의 아들딸이 될 때, 천국은 그 생활권내에서 자동적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가 열만큼의 수난의 길을 순간 순간 승리의 기준으로 닦아 나가는 데에는 아홉만큼의 천지의 내용이 깃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서, 저희 모두가 생활의 승리권을 갖추어 가지고 선한 결실체로서 아버지께 몽땅 바쳐져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생애가 아버지의 자랑이 되어 아버지께서 잊을 수 없는 아들딸이 되게 될 때는, 천상세계의 왕자 왕녀가 되는 특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여 주시옵고 각자의 생애노정을 소홀히 생각하는 어리석은 아들딸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 한 순간에 모든 정력을 다 기울이고, 내일을 점령할 수 있는 핵을 만들기 위해 무한히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