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46 to 31-173: 남은 때

남은 때
1970.05.24 (일), 한국 전본부교회

31-146
남은 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5월 24일 안식일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당신의 존전에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충만하신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남기신 복귀의 노정을 온갖 충성을 다하며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생의 인연과 더불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기준과 전체적인 사명을 짊어진 외로운 무리들을 친히 권하여 주시옵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험한 세파와 더불어 당신이 최후에 남기신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일보 전진하는 자녀들 되게 하시옵소서.

뜻을 받드는 일에 충성을 다할 수 있게끔 저희들의 마음에, 혹은 몸에 당신이 친히 감동감화를 허락하시사 최후의 판결을 지을 때까지 참고 싸워서 당신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들로 남아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과정의 수많은 인간들은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믿음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목적을 향하여 세상을 더듬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의 목적은 너무나 뚜렷하고 저희들이 개척해야 할 미래의 노정은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과거에 선조들이 걸었던 신앙노정 앞에 부끄러운 자신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생활은 아버지를 대신한 생활이 되어야겠고, 저희들의 행동은 아버지를 입증할 수 있는 행동이 되어야겠고, 저희들의 마음은 아버지와 일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생명을 감화감동시킬 수 있는 아버지의 아들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딸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아버지, 저희들의 마음과 몸이 온전히 당신에게 사로잡혀 당신의 감화를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싸워 온 행로가 아무리 험하다 할지라도 남아진 싸움의 터전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연습과 같이 생각하고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향하여 힘차게 다시 출전할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어야되겠습니다.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참다운 아버지의 아들딸이 없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저희들이 이 민족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아들딸의 사명이 얼마나 엄청난 역사성을 띠고 있고, 얼마나 엄청난 시대성과 미래성을 띠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각자가 명심하면서 내일의 총화를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들이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마음속에 잊혀질 수 없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아버지를 향하여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이 극하여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애원하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 자리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을 나타내시어, 아버지의 이 땅에 대한 섭리의 내용이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폭발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한 사람을 연결시키기고, 한 환경을 연결시키시어서 천국의 건설을 위해 온전히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 효자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내세우기에 부족함이 없고 자랑하기에 흠이 없는 자녀들로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소수의 무리가 당신의 존전에 모일 적마다 얼마나 정성된 모습으로 나타났는 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아버지께서 여기에 감동하시어 함께하고 싶으신 마음이 서로 교류되어서 저희가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고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보고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저희들이 영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떠한 형식에 따라 모이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인연된 생활을 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생활환경을 개척하는 데 아버지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벨된 저희들 입장에 얼마나 엄중한 책임이 있는가를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가인을 이끌고 가야 되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는 자리가 승리를 결정짓는 자리인 것을 저희들이 아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그 승리의 권을 넘어서서 저희들의 목적을 위해서 또 하나의 주체성을 이룬 가인적인 자리에서 범위를 넓혀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사명이 가중되어 있는 것을 느끼면서 부족한 자신임을 탄식하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아버지, 그 마음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내일의 희망 앞에 스스로 비굴함을 느끼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그들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누구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강하고 담대한 용사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게끔 그들을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체가 아버지를 중심삼고 나타나고 아버지를 증거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 길에는 아버지의 가호의 손길이 같이할 것이거늘 그러한 생활권내에 사로잡혀 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 저희들이 특별수련기간을 통하여 배운 것이 무엇이며, 아버지께서 이때에 저희에게 요구하시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저희들은 느끼고있사옵니다.

아버님, 오늘이 이번 수련기간의 마지막 날이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좀더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가 어떤 것이며, 나와 아버지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가를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아버지와 저희들이 합동공작을 해서 성취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나를 위한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한 내가 되고 역사적인 승리의 왕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당신의 성호를 찬양하는 곳곳마다 친히 군림하시옵소서. 이들을 당신의 휘하에 두시고 지도하시어서 최후의 승리를 하는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저희들에게는 수많은 형제들을 당신의 품에 품기게 해야 할 책임이 있사옵니다. 또, 그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모진 투쟁의 행로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은 총칼을 들고 하는 투쟁이 아니라 사랑의 혈투전이므로 눈물로써 그들을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런 엄청난 복귀의 책임이 저희들 앞에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로 말미암은 감동의 인연을 저희 자신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과 접속시킬 수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그 목적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통일의 무리는 진군의 행보를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여기에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불쌍히 보시옵고, 남북한을 당신의 품에 품으시옵소서. 한국의 삼천리 반도가 당신이 기억하시는 땅, 당신이 찾아오시어서 승리를 다짐하는 땅,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여 온 세계에 새로운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땅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1-149
말 씀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시간성을 못 벗어납니다. 어떠한 사건도 반드시 시간내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건에도 반드시 전후 관계가 있습니다. 그 사건이 나기까지의 과거가 있고 그 사건이 일어난 현재가 있습니다. 또, 그 사건이면 사건이 일어난 자리가 있고 그 이후의 자리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그와 같은 시간권내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31-149
목적 성사에 필요한 조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중심삼고 10년, 20년, 30년, 70년, 일생 동안 가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크면 클수록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다짐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그 목적을 능가할 수 있는 내적인 결의를 계속하지 않는 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천태만상의 인연이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목적성사를 위하여 일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자기가 가는 길을 환영하는 환경도 있겠지만, 도리어 그 목적 앞에 반대되고 지장이 되는 요건이 몇 배 몇십 배로 나타나는 환경이 더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활에서 느끼게 되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부딪치는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견디다 못해 쓰러지게 될 때에는 좌절과 더불어 실패라는 서러운 결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생활 가운데에서나 이 사회 가운데서, 이 세계 가운데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생활 가운데에서 자기가 가는 길을 환영하는 여건보다도 반대하는 여건이 비례적으로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있어 가지고 그가 어떤 큰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려 한다면, 그 목적이 크면 클수록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거기에는 국가를 내포하고 세계를 내포한 사건들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이라는 것은 그 위대한 인물이 가는 도상에 환영의 조건이 아니라 상충과 반대의 조건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 나타나는 반대의 요인이 크면 클수록 낙망의 요인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실패의 요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건들이 나타나게 될 때, 사건을 맡는 사람은 그 사건보다 큰 결의와 강력한 내용이 결집된 힘의 핵심체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려운 환경과 부딪치지 않고는 그 사건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환경에 처하여 결의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은 지극히 심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목적을 대하여 보다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외적으로 다가오는 시련 조건을 능가할 수 있는 내적 충동을 어떻게 발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짓는 중요한 열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인생노정에서 이러한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 생활의 상례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재차 결의와 다짐을 해 나가는 것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앞으로 반드시 시련의 고비가 다가올 것이거늘, 우리는 그 시련의 고비에 대비하기 위해 재차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외적인 환경과 부딪쳐서 승리하여 하나의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시련보다 강한 힘과 자극을 도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염려하시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부딪치게 될 때, 사람들은 보다 강한 힘을 필요로 합니다. 보다 강한 자극적인 요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 3의 힘을 요구하게 됩니다. 위대한 인물이면 인물일수록 평범한 사회 환경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시련의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보강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들이라면 제3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을 통하여서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보다 강한 힘과 현재 자기가 느끼는 이상의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위인전을 통하여 많이 보게 됩니다.

31-151
시련을 극복하려면
여러분은 그러한 환경, 그러한 생활, 그러한 한때를 대비하여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다가오는 시련의 여건이 큰 것을 알고 온갖 지성을 다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련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고 그런 시련이 언제 올지 모를 때에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여 다가오는 시련의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힘을 보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앙생활하는 사람의 목적은 개인이 승리하는데 있기보다 세계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 크나큰 목적을 바라보고 가는 길에서 그 세계의 한계점까지 가기 위한 신앙인의 행로는 고달픈 수난의 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각자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길은 수많은 인간들의 결심이 실패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가로놓인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필사적으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이 길은 어려운 시련의 노정이요, 비참한 노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을 무엇이냐? 다가오는 시련에 비해 내적인 결의를 할 수 있는 자체의 능력이 크면 됩니다. 즉, 외적인 시련의 고비에 대처할 힘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힘을 보강할 수 없는 입장에서 신앙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그는 언제나 하나님과 일치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내가 가는 이 시련의 노정은 나만 가야 할 노정이 아니라 하나님도 필히 가야 할 노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연고로, `나’라는 사람을 세워서 가야 하는 것이요,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구를 통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정성을 들이고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라고 하며 있는 정성을 다들여 호소하는 그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자기 환경에 없었던 새로운 힘을 보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역사를 책임지고, 세계사적인 사명을 책임진 위대한 사람일수록, 시대적인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기 위한 내심의 결의보다는 자기가 목표하는 이상의 시련, 그것이 세계적인 것이면 세계적인 차원의 시련을 넘을 수 있는 결의가 필요합니다. 그 결의를 연속시키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내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인간을 통하여 의논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의논하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개인과 자기의 사정을 털어놓고 의논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더불어 그 사정을 토로하고 의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치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 체험이 없어 가지고는 어려운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역사를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뜻길에 선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가야 할 길 앞에는 개인적인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인 탕감노정이 어느 한때에 가서 종말을 보아야만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터전을 중심삼고 공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탕감시킬 수 있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공적인 탕감의 노정을 책임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공적인 탕감노정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체의 탕감노정을 거쳐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체의 탕감노정을 분석해 보면 모두가 역사성을 띠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의 수많은 선조들이 선한 조상이면 모르지만, 선하지 못한 조상일수록 자신에게 부가되어 있는 탕감의 조건은 비례적으로 큰 것입니다.

31-153
탕감조건을 청산하려면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될 때, 공적인 탕감노정을 출발하기 전에 나 자체의 탕감의 한계선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체적인 탕감노정을 생각할 때, 자기 개체가 넘어야 할 탕감의 양이 얼마나 될 것이냐? 혹자는 열, 혹자는 백, 혹자는 천, 혹자는 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천태만상의 인간상을 보면 그 배후에 각자에게 지워진 탕감의 모양도 천태만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느누구를 표준하여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가 행복하다고 할 때의 그 행복은 개인으로부터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즉, 그 선조들의 선한 공적을 통하여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의 선한 선조들은 선한 공적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못 했습니다. 그의 조상들 중에는 일생의 노정에서 자기 개인을 중심하고 행복한 생애를 거쳐간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입장에 서서 불행한 생애노정을 간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불행한 길을 가면서 남긴 공적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미래의 소망을 위해 자신의 현실을 소모시키고 생을 소모시킨 공적의 터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조들의 공적의 터전 위에 세움을 받은 사람들, 다시 말하면 미래의 희생의 대가를 선조들이 이미 치러 놓은 터전 위에 태어난 후손들은 미래의 어느 한계점까지 가서야 있게 되는 탕감의 기간이 찾아올 때까지 어떠한 사회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복받을 수 있는 생활권내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탕감요인을 자기 선조가 탕감지은 입장에서 태어난 사람일수록 현시점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보고 아직 탕감의 내용이 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도 저와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란다 해도 그들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바란다 하더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면 바랄수록 그 소망 앞에는 가중된 시련과 가중된 탕감의 내용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행복이 빠른 기간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바랄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가중된 탕감요인이 자기 앞에 부딪쳐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적인 자리에 나가기 전에 자신이 청산지어야 할 탕감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탕감이 얼마가 남아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1년에 탕감하느냐 혹은 한달에 탕감하느냐 할 때, 아마 그것을 1년 동안에 탕감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마음으로는 한달에 그것을 모두 탕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달에 탕감하려고 하면 10배로 가중된 시련이 닥칠 것이기 때문에 그 시련을 감수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탕감조건을 한달에 청산지으려면 그냥 그대로의 입장에서는 안됩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맹세를 하여야 하는데 맹세를 하는 데는 반드시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속된 사람들도 맹세를 할 때는 칼을 꽂고 하든지, 혹은 다른 무엇을 걸고 맹세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가야 할 길 앞에 있는 탕감의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 해당하는 내적인 맹세와 결의를 하여야 하는데 거기에는 탕감조건에 대비될 수 있는 조건을 걸어야 합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새로운 약속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물을 드릴 때는 무엇을 위해 드리느냐? 여기에는 목적관이 뚜렷해야 됩니다. 목적이 없는 맹세가 없듯이 목적이 없는 제물도 없는 것입니다.

탕감의 길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소모되어야 합니다. 또한 단지 시간의 소모뿐이 아니라 자기 자체의 소모가 벌어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체의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서 조건물로 제시하는 것이 제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31-155
사적 탕감노정과 공적 탕감노정
여러분들에게는 이러한 신앙길을 개척해 가야 할 각자의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에 얼마나 시간을 소모했으며, 얼마나 자기 자신을 소모했느냐? 이것이 탕감의 요인을 제거시키느냐, 못 시키느냐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신앙길은 무슨 길이냐? 여러분이 알기로도 희생의 길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희생은 무슨 희생이냐? 자기 생애의 희생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요인을 투입하는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육신도 여기에 말려 들어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를 중심삼은 희생과 자기 자체를 중심삼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이 길고 자기 자체의 희생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기 일대에 대한 탕감의 양을 비례적으로 청산지을 수 있는 것은 정당한 이치입니다.

여러분이 탕감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탕감이 사적인 것인지 공적인 것인지 확실히 구별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 앞에도 엄연히 그와 같은 탕감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평범한 인간들은 자기의 탕감의 길을 모릅니다. 자기가 치러야 할 탕감의 노정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도 막연하게나마 탕감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 `너 개인을 위하여 희생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하여, 혹은 가정을 위하여 희생하라’고 하십니다. `가정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자기 개인의 탕감조건을 청산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자리에서 탕감조건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즉, 그가 가는 길에서 오늘의 갈 길을 위하여 탕감하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하여 탕감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위한 탕감을 치른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을 위하여 탕감하는 사람은 내일에 남아질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하여 탕감하는 사람은 오늘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미래를 위하여 탕감하는 자리를 책임진 사람은 오늘의 탕감과정까지 넘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흐름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 주류적인 사상이 무엇이냐? 희생입니다. 오늘날 인륜도덕은 희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희생 봉사, 나라에 대한 희생 봉사는 어떠한 개인이나 민족이 가는 보편적인 행로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효하고 나라에 충이 되는 길을 가라고 합니다. 그것은 나 자체가 짊어진 탕감의 내용을 미래에까지 연장시켜 가지고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수많은 군중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성들이는 그 정성은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정성을 들이기는 한 사람이 들이지만 그 정성의 영향은 그 나라 전체에까지 미쳐집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백성이 만 명이면 만 명 다 나에게 보답해야 됩니다.

그 만 명 가운데는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사람들이 상대적인 입장에서 나를 위하여 축수(祝手)해 주고, 나를 우러러보고, 나에게 복 받으라고 권고해 주는 자리에 가인 아벨의 조건을 큰 무대로 연결시킬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개인의 정성은 나 자체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되어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쳐집니다. 그 군상 가운데에는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상의 탕감노정을 거쳐간 선한 선조의 후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머리를 숙이고 칭송하는 자리에 서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기억하는 사람을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지니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 주고 그들을 탕감시키기 위하여 수고한 나에게 그들이 도리어 복을 빌어 주게 된다면, 나 개체의 탕감조건은 그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들의 위함으로 말미암아 자동적으로 청산되는 것입니다.

31-157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는 정성의 기대
하나님께서 역사노정에 이런 환경을 표준하고 수많은 인간들을 이끌고 나오신 것은 인간들에게 화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권내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각자에게 넘겨 주기 위한 사랑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한 작전이 바로 공적인 입장에서 희생하도록 하는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고, 정성들여 주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많이 있을수록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 한사람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사람을 많이 갖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가진 모든 복을 많은 사람 앞에 넘겨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복받으라고 축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열 사람이 정성들이면 그 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환경을 수습하여 `서로가 서로를 새로운 단계로 자극시킬 수 있는 환경의 터를 넓히자’ 해 가지고 하나의 단체를 구성한 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책임자는 자기를 위하여 정성들여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무리를 위하여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그 수많은 무리가 가야 할 곳은 자기 가정뿐만 아니라, 그 나라와 세계까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의 시선이 자기 가정과 자기 교회의 교인들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교인을 통하여 나라와 세계로 향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제가 들인 정성과 교인들이 들인 정성을 합하여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아 주시옵소서’ 해야 됩니다. 이렇게 교역자와 교인이 하나되어 주고받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되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때는 자기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부흥을 위해서 하나될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나라가 하나되기 전에는 망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세계가 하나되게 하기 위해 정성들이는 교회가 있다 할진대 그 교회는 세계가 하나되기 전에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사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냐?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어가는 그 운명길에서도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 그 아버지의 뜻의 한계선이 어디인가?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계를 위하여 사선을 넘고, 피흘리는 모든 수난의 길을 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중심된 그리스도를 따라 나오는 신앙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나도 세계를 위해서 죽어간 그리스도의 목적을 위하여 가겠다. 그리스도가 죽음의 길을 간 것처럼 내가 그렇게 죽어갈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가겠다’고 결의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충신의 피땀을 대신 흘리고, 효자의 피땀을 대신 흘리겠다고 결의하는 무리가 세계적이면 세계적일수록 세계는 혁신되어 하나의 발전적인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한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희생의 피가 흘려진 곳곳마다 그 희생의 한계점은 어디냐? 자기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호소해 나왔다면 그 교회는 한계점, 즉 세기말 시대에 가 가지고는 끝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류와 세계를 위해 역사적인 순교의 제단이 된 교회는 역사를 지배하고 끝날을 청산짓고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기독교가 정성들여 나온 것을 보면, 그들 가운데에 세계적인 기독교권이 승리할 수 있는 한날을 표방하고 기도하는 무리가 많을는지는 모르지만 끝날에 심판받을 원수들까지도 구원하기 위해 정성을 들이고 죽음의 길을 간 기독교 신자들이 얼마나 있느냐? 그 수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날 기독교의 종말 현상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1-159
천주주의를 주장하는 통일교회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떠해야 되느냐? 통일교회를 위한 통일교인은 필요없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하는 입장에 서야만 나라가 발전할 때까지 남아질 것이요, 세계를 위해 정성들이게 될 때에는 세계가 남아질 때까지 남아질 것입니다. 세계 이상의 곳을 향하여 정성을 들이면 세계를 소화시키고 그 이상의 자리에 남아질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세계주의가 아닌 천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런 내용을 오늘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에서 탕감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저울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이것을 실감나게 느끼면 느낄수록 그 사람은 위대한 인물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가 위대한 인물이냐? 세계 앞에, 천주 앞에 다가올 시련과 부딪쳐 투쟁하겠다고 맹세한 입장에 섰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의 소망하는 때가 천년, 혹은 2천년 후가 될는지도 모르고 그가 오늘날 순교하여 희생의 제물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그는 시간성을 초월해서 세계를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역사시대의 승리의 기점을 닦아 놓고 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개인의 탕감만을 위해서 수난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차피 개인의 탕감노정은 가야 됩니다. 청산지어야 해요. 그러나 개인 가운데에는 그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죄로 말미암아 탕감의 양이 많아서 일대를 통해서는 청산지을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개인을 위해 정성을 들인다면 그 정성은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자기 개인을 넘어 가지고 희생을 각오하고 `나는 제물입니다 내 생애 자체가 제물입니다. 내 생애 자체가 역사를 대신한 맹세의 조건입니다’ 하고 나서게 되면 비록 그 자체는 부족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는 역사의 한계를 넘어 미래의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맹세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는 곳에는 맹세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나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생명을 걸고 나서서 세계를 중심삼고 피의 호소를 하게 되면 그건 세계를 향하여 호소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내 생애를 인류를 위해, 세계를 위해, 우주를 위해 제물로 바칩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생명을 온전히 목적을 위하여 투입하겠다고 맹세하면서 제물로 등장하는 사람은 아무리 비참하고 악한 조상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탕감의 요인을 일대에 청산하는 것은 물론이요, 선조를 포함한 일족의 탕감의 요인까지도 자동적으로 청산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그들의 피의 대가로, 그들의 순교로 인하여 맑아져 왔고 오늘의 시대권내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이 가는 길 앞에 탕감의 길이 없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의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그 개인의 탕감노정을 거치고 나서야 공적인 탕감노정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라는 거룩한 곳을 중심삼고 보는 정당한 관이 아니겠는가?

우리 인간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타락의 후예로 거룩한 자리에 서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섭리의 뜻을 추진해 나오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죽음길로 내모는 것은 잔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비법이기 때문에 그런 길로 내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입장에서 가는데도 불구하고 시련이 부딪쳐 오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시련을 피해 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자기가 맹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기 단체면 단체의 책임자가 맹세했을 때는 그 단체의 책임자가 제시한 시련의 조건에 걸려 들어서 탕감에 말려드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그 단체의 장이 망하게 되면 자기도 망할 수 있는 운에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조건을 세운 사람은 책임자인데 왜 생각지도 않은 내가 탕감의 영향을 받느냐? 그것은 한 나라의 주권자가 그 나라의 운명에 탕감조건을 세워 탕감하고 간다고 할진대는 그 나라의 백성도 주권자와 더불어 그 탕감에 해당하는 고난길을 가야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중심삼고 발전도상에 있는데, 정부가 계획한 대로 국민은 거기에 가담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정부가 어려움을 당하면 국민도 반드시 어려움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민은 생활권내에서 정부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탕감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시아를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이 아시아를 중심삼고 탕감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면 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시아권 탕감시대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그 나라의 주권자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또, 세계가 탕감시대로 들어가게 된다면 인류 전체는 세계의 탕감시대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탕감되어 넘어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1-161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역사시대의 승리적인 인연을 상속받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상속받는 사람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생활 가운데에서 보다 큰 탕감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길은 우리들이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생활하고 있는 모든 식구들은 선생님이 제시하는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해결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정을 거쳐 나가야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외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이 지시한 그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내적으로라도 탕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이 지향하는 곳을 향하여 보조를 맞추게 될 때는 반드시 내적으로도 소모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소모전이 벌어짐과 동시에 내적으로도 소모전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의 승리는 안팎이 하나되어야 결정되는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내적인 것을 소모했을 때는 외적인 소모를 겸하여 가지고 하나의 인연을 맺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탕감노정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여러분 앞에 행동을 강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강요하는 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참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도리어 극복하게 되면 오늘의 자기 자체의 탕감노정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공적인 탕감노정 앞에 맹세했던 제물의 노정을 갔다 하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간이 3년을 넘게 될 때에는 거기에 남아질 수 있습니다.

3년 이상 넘어가게 되면 이것이 4수권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3수 권내를 넘어서게 되면 사각형 권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수를 넘어서야 됩니다. 3수는 4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수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경계선이 벌어집니다.

반드시 4수에서부터 하나님이 간섭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을 그리면 이 원에는 반드시 한 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가 하나님의 자리요. 이것을 최대로 벌여 놓은 것이 아담 해와요, 땅 위에 중심으로 결정한 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소망은 자녀에게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소망도 자녀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담의 타락보다도 그 아들딸의 타락이 역사를 결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삼각권을 넘어서야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수를 넘어야 하는 것은 탕감에 있어 절대적 요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리에서 알게 됩니다.

이 3수를 내세우는 데 있어서는 나를 중심삼고 3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3일에 실패하게 되면 3년이 되는 것이요, 3년에 실패하면 30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3년노정을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3년노정은 여러분 개개인을 위한 노정이 아니라 역사적인 뜻을 가진 3년노정인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맺어진 탕감의 인연을 중심삼고 우주사적인 결판장을 넘는 데 있어서 제시할 수 있는 탕감기간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간이 아닐 수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이 기간에 심혈을 다 기울여서 세계와 인연맺을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서 그 노정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지녔다는 것은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위대한 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1-163
영원히 선하고 흥하고 복받는 자리
공적인 탕감노정이 천년 만년 계속되어 그 목적을 향하여 가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기의 사적인 생활권내에서 탕감해 가지고 자기 일대에 공적인 목적의 세계를 맞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적인 위인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위인의 자격과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또, 그 메시아와 동반할 수 있고 그를 대신할 수 있는 무리는 인류 앞에 세계사적인 소망의 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탕감기간, 그 탕감기간에 제시해야 하는 탕감조건, 그 탕감조건과 하나되는 `나’, 그 중의 `나’라는 것은 지극히 위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러한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탕감노정의 한계점에서 남아진 때입니다. 그러면 이 남은 때에 어떻게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냐? 그 정성은 자기 일신을 위해 들이는 정성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사에 미쳐질 수 있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거기에는 말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바라보는 세계가 여러분의 눈 앞에 다가와 부딪칠 것입니다. 그 순간을 휘어잡아 가지고 밀려오는 큰 파도를 타고 도리어 거꾸로 전부를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6천년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나는 찬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찬스를 부각시켜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은 위대한 사랑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받을 수 있는 시기를 상실하는 자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도 3년이란 기간을 걸으신 것입니다. 이 3년 기간에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니 3일 기간이라도 세워야겠기에 목숨을 걸어 놓고 3일간 담판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사적인 기간, 공적인 3년의 탕감노정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사적인 3일 기간을 어떻게 하여 세계적 인연과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몸부림치면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기도도 한 것이요, 원수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했으며, 그러고 나서 다 이루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예수님 일대의 탕감은 물론이요, 역사적인 탕감의 인연에 그것을 연결시켜 놓기 위한 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사적인 탕감을 위해서 자기 일생을 투입하겠습니까? 아니면 공적인 탕감을 위해서 자기 일생을 투입하겠습니까? 일생을 투입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어때요? 공적인 탕감을 위하여 공적인 환경에 일생을 투입하겠다고 생명을 걸고 나서는 사람은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무리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는 창건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순간을 앞에 놓고 있는 우리는 남아진 때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 이것이 이제부터 여러분이 가야 할 시련노정입니다. 그래서 자체의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개인적인 생활을 하느냐, 공적인 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생활에서 내가 무엇을 먹고 입고 사고 팔고 하는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를 위한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것이냐? 또,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공적인 생활이냐 사적인 생활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감정이 사적인 감정이냐 공적인 감정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길을 가기 위해 맹세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역사를 탕감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면 누구나 소원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그런고로 생활 속에서 사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공적인 감정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자가 중요시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죄라는 것은 무엇이냐? 죄는 사적인 곳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도 사적인 기준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것이 도수를 넘게 되면 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적인 것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를 넘으면 악하게 되고, 망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선할 수 있고, 영원히 흥할 수 있고, 영원히 복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망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 죄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 악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그것은 바로 공적인 자리입니다. 밥을 먹어도 공적인 자리에서 먹어야 합니다. 일을 해도 공적인 일로, 말을 해도 공적인 말로 소화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체를 공적인 것과 연관지어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31-165
천국 가는 비결
그러면 여러분은 얼마나 공적이냐? 여러분이 공적인 무대에 서도록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측근자가 누구냐? 그것은 형제입니다. 복귀섭리의 길은 공적인 길을 개척하는 길이기 때문에 공적인 입장에 선 아들딸이 갈 길은 형제를 수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공적인 길을 가기 위해서는 형제가 서로를 위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은 형제를 위하는 데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도록 해서 그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형제가 모두 공적인 입장에 서기 때문에 선하게 되고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전부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보다 공적인 존재가 아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먼저 들어왔어도 공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가인도 자기가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아벨보다 공적인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벨을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도 먼저 들어왔다고 떡 버티고 앉아서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들어온 사람보다 공적인 자리에 서지 못하면 무엇이라고요? 「가인입니다」 가인이에요. 아벨이라고 하는 사람은 도적이에요. 아벨적인 존재는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입니다.

그러면 공적인 길을 가려면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되느냐? 형제의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공적인 길을 가기 위해 협조를 구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 이것 합시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형님, 이것 합시다 아우님 이것 합시다’ 하는 것은 되는 것입니다. 공적인 길을 가는 데는 횡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가는 데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비결은 공적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공적인 길을 가는 데에는 형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형제와 손을 잡고 가지 않고는 보다 공적인 환경을 넓힐 수 없기 때문에 형이나 아우가 죄인이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공적인 길은 절대적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그 앞에 죄인밖에 없고 원수밖에 없어도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공적인 길을 갈수 없습니다. 공적인 길을 가는 데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원칙을 알고 원칙대로 생활해야 합니다. 원리는 원리대로 알고 생활은 생활대로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리는 남아지더라도 여러분 자체는 남아지지 못합니다. 원리와 함께 나도 남아져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원리적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심정과 몸이 하나되어 원리적으로 움직여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움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인류 앞에 남아져야 되고, 역사시대에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까? 그렇다면 공적인 입장에 서십시오. 사적인 입장에서 잘되기를 바라면 망합니다. 자기 동네에서 자기 욕망을 중심삼고 일하면 그 동네에서 들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미워하지 말라고 해도 미워합니다. `저놈의 영감 언제 자빠지겠나. 저놈의 할머니 언제 쓰러지겠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러면 그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길은 내가 복을 받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그것을 가르쳐 주었고, 인륜도덕도 그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역사를 망하게 하고, 인간들을 망하게 하기 위해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 원리의 길이라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끝날에 심판을 통해 세계 인류를 망하게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대해서는 부모의 입장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불심판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불심판이 아닌 것입니다.

31-167
자식도 공적인 입장에서 사랑하라
오늘날 세계는 여러 국가와 손을 잡고 가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일본이면 일본 등의 아시아 국가와도 손을 잡고 가야 합니다. 이것을 최고로 강조할 때가 되거든 세계사적인 공적 시대가 우리 눈 앞에 온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의 국가의 사연이 그 나라의 시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시련이 되어 소용돌이치는 날이 오면 공적인 평화의 나라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세계 인류가 하나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전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서로를 위하기만 하면 세계는 흥하게 됩니다.

여러분, 물이 빙글빙글 돌면서 소용돌이칠 때는 하나의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세계가 휘휘 돌아가며 소용돌이칠 때 하나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서 하나의 갈 길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결하라,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천주의 공법을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주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아무 생각없이 그냥 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지는 탕감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알고 난 여러분이 아무것도 안 하면 편안할 줄 알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보면 미안하지요? 옛날에는 자기 멋대로 살고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는 데 뜻을 알고 보니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무슨 지시를 내리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부터 한국 사람들은 어른 앞에 갈 때에는 반드시 두 손을 단정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상례였습니다. 원리 원칙에 따를 때 편안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내 아들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이 지구성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만 이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애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장에는 안 되더라도 1대 2대를 거쳐 나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물이 탄생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복을 받겠다고요? 복이 내 치마 안에 들어와서 놀아나고 그 바람에 하나님이 내 치마 안에 들어오고 그러겠습니까? 그게 그렇게 되겠어요? 우리들이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지, 하나님이 우리들 품에 안기시겠어요?

탕감길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한 마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없으니까 마리라고 해도 됩니다. 누구나 다 탕감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왕지사 탕감길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 것이냐? 개인적인 탕감길을 가겠다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공적인 탕감길을 가겠다는 사람은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은 공적인 길을 가면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생활과정에서 확실히 느껴 보십시오. 공적인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 탕감하고 난 후의 후련함이란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술을 먹고 춤을 추는 것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 맛, 거기에서 느끼게 되는 그 자극이라는 것은 그 무엇을 가지고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경지는 우주와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고 하나님 앞에 내일을 위하여 맹세하고 나서는 걸음에는 언제나 강한 힘의 자극이 복원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 앞에 닥치는 시련은 하나의 연단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재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인들이 가는 노정입니다.

31-169
남은 때를 어떻게 극복하여 빛나게 할 것인가
이런 관점으로 볼 때, `때’라는 것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잠깐입니다. 남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현재의 세계정세를 바라보면 세계는 지금 회오리 바람이 불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마당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세계 인류를 붙들고 탕감해야 됩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를 붙들고 탕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소수의 통일교인에 불을 붙여 가지고 국경을 넘어 아시아를 거쳐서 나아가는 데 첨단에 서서 역사의 흐름과 미래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중간 입장에서 세계를 위한 탕감의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하나님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이 그런 것이며, 선생님이 가는 길도 그런 길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이 남은 때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남은 때를 어떻게 극복하여 빛나게 하느냐? 이 문제의 해결점은 막연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이 처해 있는 오늘 이 시점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시점에서 탕감의 운명길을 가는 데 있어서 보다 공적인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가 공적이면 공적일수록 반드시 거기에 비례하는 시련과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서서 시련당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시련에 비례하는 힘을 가지고 대해 주실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내일에 찾아오는 불행의 여건, 파탄의 여건, 비참의 여건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공적으로 모든 생활을 체휼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 비례하는 힘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미리 준비를 하셔야지요. 하나님은 앞으로 올 것을 예상하시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압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보다 공적인 한때를 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이럴 때는 언제나 정성을 다 들여야 됩니다. 그 정성은 자기 자식을 위해서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가정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들일 때는 남편도 피하고 자식도 피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부잡스럽고 더러움 탈 수 있는 것들을 피하라는 겁니다. 깨끗한 곳에서 깨끗한 것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깨끗한 마음 자세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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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노정을 가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결론을 짓자면 크나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되는 힘이 언제나 보강되어야 되는데 그 힘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절대로 보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적인 자리에는 절대 관계를 안 맺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닥칠 시련 고비를 타개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보강하느냐? 다가오는 시련 이상의 공적인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정성들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백만한, 혹은 천만한 혹은 세계만한 목적을 향해서 가는 데는 반드시 거기에 비례되는 시련이 다가옵니다. 10개월의 탕감기간을 요구했는데 1개월에 탕감하겠다 하면 10배 이상의 시련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시에 탕감하려면 세계적인, 공적인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만 갖추게 되는 날에는 세계에 아무리 큰 시련 고비가 다가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방어선으로 이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위대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고비가 앞에 놓여 있을 때 그곳을 도피하려는 약자가 되지 말아야 됩니다. 역사적인 죽음과 결투하여 한 생명의 죽음을 넘어 역사적인 죽음을 살리겠다고 한다면 그는 죽더라도 역사적인 부활을 하는 때에 다시 소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고비가 앞에 놓여 있을 때에도 생명을 걸고 덤벼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목을 내놓고 덤벼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기 개인의 목을 내걸고 탕감길을 가고, 가정의 목을 내걸고 탕감길을 간다 할진대, 그 가정은 세계의 왕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제물시대를 거쳐왔습니다. 그러니 뜻을 위해서 허락한 그 길 위에 서서 `하나님 앞에 저희들의 피와 살을 고이 뿌리고 고이 바쳐 드린다면 한이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며 손에 손을 잡고 보조를 맞추어 행보하는 부부가 있다 할진대, 그 부부는 천주적인 가치를 지닌 부부인 것입니다. 이 놀음을 하기 위해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정성을 능가할 수 있는 가정적인 정성을 들이면 개인적인 역사 가운데 지금까지 거듭된 탕감기간을 일시에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가 생명을 내걸고 제물되겠다고 나서게 되면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생각할 때, 그러한 기반을 갖출 수 있는 현시점에 놓여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엄청나고,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아내를 생각하는 것도, 남편을 생각하는 것도, 자식을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여야 합니다. 또 옷을 입고 먹고 자는 것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입고 먹고 자야 합니다. 사랑을 하더라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있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세계에는 그런 가정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가정이 나타난다면 하나님의 복이 그런 가정으로 들어가겠어요, 안들어가겠어요? 하나님을 오시지 말라고 해도,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사 내게 오소서’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가정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완결짓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천도를 받들고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그런 부부의 인연을 갖추어서 이와 같은 탕감의 한때를 거치는 길을 가야 됩니다. 그래야만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구속했던 것을 탕감복귀의 원칙대로 한 부부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해방시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을 탕감하여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부부를 중심삼은 가정,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가 되면 세계는 그 국가를 통해서 하나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건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금후에도 통일가의 여러분을 이 민족을 향하여, 이 세계를 향하여 내몰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혼자 고생하는 것보다 가슴에 멍이 더 드는 일입니다. 옛날에 혼자 고생할 때는 횡적인 멍이 들었는데 이제는 종적인 아픔을 느껴야 할 입장입니다. 자식을 사랑해야 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있어야 하니,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나 역시 아픔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며 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역사시대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오늘날에 세워야 됩니다.

사적인 가정은 망해도 공적인 가정은 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공식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가는 길에 있어서는 아무리 험난한 고난의 길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넘을 수 있는 반대되는 힘으로 그 가정과 같이하시기 때문에 그 가정이 가는 길에는 승리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시는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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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운명을 상속받는 자가 되자
이 남아진 때에 선생님 가정은 물론이지만 여러분 가정도 복귀를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국가와 세계를 복귀한 후 천국을 창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970년도부터 1972년도까지의 3년 기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기간에 책임을 다하는 날에는 세계가 돌아갈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남편과 아내와 자식이 손에 손을 잡고, 가정을 통하여 이런 거룩한 천명으로 받은 과업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먹고 입는 것도, 오고 가는 것도 공적이어야 합니다. 장사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돈이 한푼이라도 생기거든 보다 공적인 곳에 써야 됩니다.

옛날 뜻을 모르던 시절의 그런 부부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길에 있어서는 내 재산을 다 소모시키더라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나가야 됩니다. 재산을 한쪽에 감추어 두었다가는 당장에 벌을 받습니다. 그것은 제물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알겠어요? 제물을 도둑질한 도둑놈은 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무서운 겁니다. 범죄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인들은 자기에게 무엇이 있으면 보다 공적인 것으로 어떻게 남기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보다 공적인 것을 어떻게 남겨야 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우리 통일교회를 보고 돈이 많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 빚을 진 통일교회입니다. 오늘이 문제가 아니라, 내일의 수난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돈과 사람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모전이지만 공적인 일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남은 때를 잘 다스려서 이 현실에서 역사적 운명을 상속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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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이제 저희들이 갈 길은 막연한 길이 아니옵니다. 보다 공적인 길을 찾아가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 땅 위에서 주권을 지배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영원한 역사를 두고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엄숙한 시간 시간들이 저희의 생활무대에서 결정지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오늘 저희들이 서 있는 자리가 무섭고 떨리는 자리요, 저희들의 일생 또한 무섭고 떨리는 행로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저희들은 공적인 탕감노정을 가야 하겠습니다. 개체를 던져 버리고 공적인 탕감노정을 가야 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저희들로 하여금 최대의 승리를 할 수 있는 길만을 남기게 하기 위해서 공적인 길을 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공적인 길을 가기 위해서는 환경을 초월해야 되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봉사하고 위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저희들이 성경을 볼 때, 그것이 과연 들춰 보면 들춰 볼수록 위대한 아버지의 말씀인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가 가야 할 남아진 때가 멀지 않은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찾으시는 가정의 모습은 영광 중의 영광의 모습이오나 그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축복가정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가는 가정들은 망할 것이요, 이것을 알고 가는 가정들은 남아질 것임을 아옵니다.

역사를 빛내고, 역사를 움직일 수 있고, 역사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가정들을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신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 수많은 가정들을 축복해 주신 것은 그런 가정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아옵니다. 하오니 그렇게 되지 못하는 가정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가정의 주인이 되고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가정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내용을 확실히 알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에 저희들이 이와 같은 말씀을 놓고 목적을 향하여 가는 필연적인 과정에서 핍박과 수난의 길을 만난다 할지라도, 저희들이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보다 강한 힘을 주시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에게는 그런 영원한 후방이 있고 영원한 일선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죽더라도 천배 만배 영광의 가치로 묻어 주시고 품어 주실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게 저희들의 미래에는 승리할 수 있는 길만이 있다는 것을 알 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통일가 전체가 규합하여서 남아진 이 민족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대신하여 최후에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가는 저희가 날이 갈수록 힘이 쇠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 앞에 가중된 힘을 갖는 무리가 되어야 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시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돌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혹자는 통일교회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또, 통일교회를 따라 나오는 사람중에도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하오나 아버지여, 저는 비판받는 자가 되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며 나왔습니다. 따라 나오는 사람들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 선생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선생은 망하더라도 아버지께서는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때문에 아버지께서 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보다 공적인 길을 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투쟁하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현실을 거쳐 나가는데 소홀히 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 나가는 길이 여기에 있다면 통일교회는 어느 한때 이 세계 앞에 드러나서 득세할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저는 이런 원칙을 거쳐 실험한 결과 승리하여 감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인들도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선생의 생활과 하나되고, 선생의 가정과 하나되기를 아버지께서는 요구하고 계신 줄을 아옵니다. 세계를 망칠 수 있는 것도 통일교회 교인이 아니라, 통일교회 선생과 선생의 가정인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입고 기도드리는 것이 자기의 안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민의 해방을 위하여 보다 공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몸부림치는 생활이 오늘날 통일교회 스승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하루의 편안함이 오히려 고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고, 내 하루 하루의 안식이 천륜을 저끄러뜨린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가다듬고 가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저희로 하여금 지금까지 남아지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금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와 더불어 탄탄히 남아질 수 있는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이 그 길을 사수하겠나이다. 여기에 모인 아들딸들이 민족을 대신하여 이 길을 사수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이 길을 사수하겠다는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스스로 맹세하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아버지의 힘에 통제받을 수 있는 거룩한 길이 저희 앞에 있는 것을 압니다. 저희가 재산이 없고 명예가 없다 하더라도 이 이상 가치 있는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숙명적인 과제 앞에 엄숙한 모습으로서 봉헌할 수 있는 가정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것이 금후에 축복가정들이 몸부림치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인 것을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이 마음 깊이 명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성공도 여기에서부터, 희망도 여기에서부터, 행복도 여기에서부터, 천국도 여기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때가 남아 있음을 감사드리옵니다. 이때가 남아지지 않았다 할진대 저희들은 갈 곳이 없게 되었을 것이옵니다. 때를 바라보고 가는 무리는 희망에 벅찬 무리인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중된 핍박이나 시련도상이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저희들 그런 길로 또다시 내모시는 아버지의 채찍이 있음을 감사하고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이 아침에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체를 맡겼사오니 맡아 주시옵시고, 저희들이 내일의 총아가 되고 내일의 희망을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아 인류 앞에 나눠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제물된 생활, 보다 제물된 생애의 노정을 가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을 걸고 행동하는 무리만이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