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16 to 31-139: 봄철과 인간

봄철과 인간
1970.05.03 (일), 한국 통일동산(구리시 교문동)

31-116
봄철과 인간
[기 도]

온 천지 만민과 온 피조세계 위에 영원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서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한 장소에 집합하였사옵니다. 아버지, 이곳을 거룩한 지역으로 성별하시옵소서. 이곳이 남아진 복귀의 뜻 앞에 당신의 섭리의 터전이 되고 초소가 되는 영원하고 거룩한 땅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이 당신의 새로운 경륜의 빛발과 섭리의 손길에 의해 만민에게 접촉할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터전이 되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이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어느 한사람도 당신의 인연을 벗어난 가운데서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그런 인연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인연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연의 세계에 살고 있으므로 당신의 영광과 존귀를 찬양하여야 할 자체인 것을 느끼오니, 이 거룩한 날을 맞이하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거룩하다고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의 존전에서 자랑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그리며 여기에 모였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옵기를,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도를 맞이하여 3분의 1을 보내고 3분의 2를 출발하는 첫달의 첫번째 성일을 맞이하였사오니, 당신께서 이들을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에 널려 있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이날을 그리워하면서 이 서울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하여 축수하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남아진 동정의 은사도 가하시어서 최후의 날까지 남아지게끔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 있거든 그들에게 천만배의 은사를 가하시어서 아버지의 거룩한 은사권내에 세워 주시옵소서. 또한 이 종족 앞에, 민족 앞에, 인류 앞에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서 세워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미 아버지 앞에 바쳐 제물되기를 각오한 몸들이오니, 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자신이 먹고 살고, 오고 가고, 자고 깨는 모든 일체를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은 원리에서 시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결과를 위해 내 전체를 바칠 수 있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의 마음 가운데 찾아오시어서 오직 당신의 소원, 즉 당신이 바라는 세계와 당신이 바라는 인류와 더불어 당신이 찾고 있는 이상세계인 통일의 세계를 위하여 갈 수 있는 아들딸로서 세워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당신의 무한하신 은사를 고루 내려 주시옵고, 최후의 한날까지 동행하시어서 아버지의 뜻 앞에 기억되는 무리들로 세워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오늘 이 자연스러운 환경을 중심삼고 나타나는 일체가 당신의 경륜에 보탬이 되고, 섭리의 뜻 앞에 즐거움의 상징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이날이 되고, 자녀들도 생애에 잊을 수 없는 기록을 남겨 그리워할 수 있는 한날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일체를 아버지께 맡겼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1-118
말 씀
여러분들이 봄날에 자연을 찾아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1970년을 맞이하여 처음입니다. 이 장소를 중심삼고 우리들의 모임과 더불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줄 믿으면서 오늘을 즐겁게 지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잠깐 말씀할 제목은 `봄철과 인간’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해 보려고 합니다.

31-118
절기와 인생
`봄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꽃을 연상하게 됩니다. 또 나비와 벌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새로운 것이 소생되는 계절을 연상하는 것입니다. 또 봄철은 일년 중에 영광을 상징한다는 것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봄을 즐거워하지 않는 만물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한때를 위해서 준비했던 것을 드러내 보이는 잔치의 계절이라고 볼 수 있는 때도 봄인 것입니다.

이러한 봄날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봄은 봄 자체로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봄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봄이 있기 전에 반드시 겨울이 있어야 되고, 겨울이 있기 전에 가을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가을이 있기 전에 여름이 있어야 되고, 여름이 있기 전에 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서 생각해 볼 때, 봄은 언제나 순환해서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단 한번밖에 없는 잊을 수 없는 봄절기는 언제냐? 여기에서 말하는 봄절기는 오늘 우리가 맞는 계절적인 봄절기가 아니라 인생 자체를 중심삼고 보는 봄절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중심삼고 볼 때 봄절기는 사춘기 시대를 지나가는 과정에 있는 청년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행로는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도 봄절기와 같은 청년시기가 있고, 여름 절기와 같은 장년시기, 가을절기와 같은 노년시기, 겨울절기와 같은 침울한 죽음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인간의 일생 자체가 춘하추동과 같은 행로라는 것을 우리들은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좀더 범위를 넓혀서 인류역사를 중심삼고 본다면, 오늘 우리 인류가 살아나오는 생활에서 과연 봄절기는 어떠한 때냐? 우리 인간은 그 범위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 봄절기가 있었으면 여름절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여름절기가 언제냐고 할 때 그 여름절기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을절기가 언제냐고 할 때에도 가을절기를 예상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어느 때가 가을절기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면 반드시 겨울이 올 것입니다. 또 겨울이라는 고개를 넘어서야만 다시 봄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 인생 행로나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봄이라는 기쁨의 환경을 맞으려면 그것을 맞이하기까지의 노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봄이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겨울절기를 지내야 되고, 겨울절기를 지내기 위해서는 가을 절기를 지내야 됩니다. 또한 가을절기를 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거쳐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길을 타개한 권위를 갖지 않고는 봄절기를 맞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과연 우리 인생의 봄절기가 어느때일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생활에서나 혹은 인류 역사상에 인간의 봄을 노래한 때가 있었느냐? 또 여름을 찬양하는 때가 있었으냐? 그러한 때가 없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엔 봄으로부터 소생해서 장성해 가지고 결실을 자랑하면서 가을을 찬양할 때가 있었느냐 할 때, 우리는 그런 때가 있었는지조차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역사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면서 운명길을 더듬어 왔기에 이제는 최후의 공포의 때를 맞이하는 시점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봄절기에서부터 인간을 출발하게 하셨을 텐데 그 봄절기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찾지도 못할뿐더러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또 여름 절기는 어디에 있으며, 가을절기는 어디 있느냐? 또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춘 하나의 인생으로서 결실된 그 자체는 어디에 있느냐? 이러한 문제를 반문해 볼 때, 인류역사 노정에서 그것을 찾았다거나, 또는 그것을 알았다는 입장에 서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인간에게 필히 주어야 할 봄절기는 어느때일 것이냐? 아니면 이런 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년 변함없이 찾아오는 봄절기를 맞을 수는 있으되, 우리의 인생의 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자신이 있다고 할 사람이 있느냐? 이런 문제를 놓고 볼 때에 자신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땅 위에 있겠느냐? 이것을 종교적인 입장에서 우리 인류가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규정짓고 살펴보면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31-120
봄절기의 문명을 맞으려면
그러면 어떤 것을 가지고 타락이라고 하느냐? 우리 인간을 창조한 주인이 피조물과 더불어 최고의 행복을 노래하고, 최고 은사의 시기라고 찬양할 수 있는 봄절기를 주기 위해 지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봄절기를 맞지 못한 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봄절기를 맞은 기쁨에 더하여 그 기쁨과 함께 무한히 발전하고, 무한히 무성할 수 있는 여름절기를 가져야 했던 인간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여름절기마저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성한 여름절기를 통해서는 무엇을 요구하시느냐? 하나의 결실을 요구합니다. 그 결실은 다시 봄절기를 맞을 수 있는 하나의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는 결실인 것입니다. 그 결실이 앞으로 다가올 겨울절기를 넘을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만 또다시 봄절기를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인간도 반드시 하나님과 더불어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을 맞이하여 무한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생명 앞에 반대되는 그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압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결실체가 되지 않고는 또다시 봄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이 봄날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부터 인간이 가져야 했던 봄날은 어떠한 곳에서 이루어졌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교적 관점에서 타락 사건을 중심해서 볼 때, 타락 전의 시대가 아닐 것이냐? 만일 그것이 인간 타락 전의 시대라면 어떠했겠느냐?

그 시대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영광의 때였을 것입니다. 말할수 없는 소생의 힘이 온 천주에 충만하여 드높이 뻗어나갈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새로운 인연이 맺어질 것입니다. 나비와 벌과 같은 천사세계의 인연이 우리 인간과 더불어 화동하는 계절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늘과 땅이 화동할 수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만물이 인간과 하나님을 중심삼고 화동할 수 있는 계절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계절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타락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러한 계절을 맞이하였다면 하나님의 기쁜 은사의 터전을 중심삼고, 인간 세계에서도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여름절기와 같은 문화세계가 창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세계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두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 즉 통일을 표상하는 세계인 것입니다.

봄을 맞이하게 되면, 봄은 통일된 환경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초목이 봄을 맞이해서 전부 다 푸른 빛으로 통일된 환경을 제시하는 것을 우리는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날 인류의 문화세계에 있어서 이런 절기와 같은 통일된 문화의 세계를 이루었다면 그 문화는 인류역사에 남아졌을 것이고, 그 남아진 인류역사는 변천과 후퇴와 멸망의 운명을 지니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이런 인연 가운데에서 남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인류역사과정에서 이것은 번번이 생겼다가는 망하고 망했다가는 또 발생하면서 지금까지 역사는 발전돼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20세기의 문명은 어떠한 시점에 처해 있느냐? 이 시대는 문화역사노정에 있어서나, 혹은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가을절기와 같은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 가을은 무엇을 예고하느냐? 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든지 인류역사의 종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기독교뿐만이 아닙니다. 고차적인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수많은 종교들도 인간의 종말시대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을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한계선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가을절기를 맞이한 20세기의 문명권내에 살고 있는 인류들에게 있어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 결핍을 느끼고, 환경적인 면에 있어서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가을절기가 지나고 종말적인 겨울절기가 타락한 우리 인류 앞에 필시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 겨울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결실이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합니다.

31-122
생명력을 지닌 결실체가 돼야 할 인간
오늘날 종교가 인류역사와 더불어 지금까지 싸워 나온 하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끝날에 종말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개인,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단체,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문화적 세계권을 형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종교가 수고하며 찾아나온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권내에 있는 개인이라는 그 자체는 앞으로 다가올 겨울절기와 같은 공포의 시대에 생사의 결판을 지을 수 있고, 이런 운명권을 넘어설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결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을의 모든 것을 흡수한 요소를 지니고, 여름의 모든 진액을 흡수한 내용을 갖추고, 봄의 소생의 힘을 완전히 흡수해서 종합이 된 하나의 결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총합된 결실체가 바로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결실체가 된 하나의 단체, 그런 결실체가 된 하나의 민족, 그런 국가, 세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세계 국가 민족 가정 개인이 없다 할진대는, 앞으로 다가올 공포와 위기의 세계에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소망의 터전이 끊어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오늘날 자연의 봄을 맞고 있는 우리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인류역사나 자기의 지난날을 두고 볼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을을 지내고 겨울의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실체가 춘하추동의 모든 요소의 집결체로서 남아져야만이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봄절기와 여름절기와 가을절기의 모든 힘을 가해야만 겨울절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역사에 있어서 봄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여름절기의 문명권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가을절기의 문명권을 대신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한 사람을 중심한 하나의 이념, 하나의 국가관,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인생관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을 철두철미하게 갖추는 결정적인 결실체가 되지 않고는 앞으로 인간에게 찾아올 공포와 사망의 경계선이 되는 겨울 절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여러분의 마음 깊은 가운데에 봄절기의 내용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여름절기가 상징하는 내용, 즉 무한히 발전할 수 있고 무한히 무성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을절기와 같이 자기의 모든 가치를 종합하여 개성이 뚜렷한 자체의 생명력을 직결시키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간이 열매를 중심삼고 경과해야 되는 것처럼, 여러분은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나는 나로서 완전히 결실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 인격의 가치는 하나의 결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이나 어떠한 세계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부끄러움이 없이 드러내어 새로운 봄날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체가 되어야만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사계절을 주관해야 합니다. 우리는 봄절기를 주관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용을 가져 가지고 여름절기를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름절기의 무성함 이상으로 무성하여 가을의 소망을 향하여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세계의 한 거점까지 밀치고 넘어갈 수 있는 폭발적인 소망에 벅찬 자신을 여러분이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 자체의 결실을 중심삼고서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즉 무한한 가치 평가를 할 수 있는 이런 생명의 진가를 지닌 자아를 가져야만 춘하추동 사계절을 주관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시대에서 봄절기와 여름절기 그리고 가을절기를 정상적으로 갖지 못한 인간들이 새로이 찾아오는 본연의 춘하추동 사계절을 순리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1-124
하나님이 주신 봄절기를 맞았더라면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환경이 정상적으로 갖추어진 봄날의 이 한 자리가 얼마나 중차대하고 절박한 자리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셨던 것은 우리 인간이 본연의 봄절기를 맞이하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상기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봄절기를 맞이할 때 자연 가운데 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 자체는 온 천하만상에 있어서 하나의 꽃과 같은 존재들이 아니었겠느냐? 그런 꽃과 같이 되었어야 할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꽃이 있다면 그 꽃은 아름다워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아름다움 가운데는 짙은 향기가 깃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도 꽃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아름다운 미를 갖춤과 동시에 무한한 향기를 내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발산하는 향기를 맡고 나비와 벌들이 자연히 날아들 수 있는 하나의 주체적인 기반을 가진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피조세계의 봄동산 가운데에 하나의 꽃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꽃의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나비와 벌의 활동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세계를 지음과 동시에 천사세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천사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인간이 하나의 결실을 위해서 꽃과 같은 존재로서의 미를 갖추고 향기를 풍기며 나타나게 될 때에, 비로소 사랑의 보금자리가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력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하게 되고, 모든 생명의 인연을 가진 존재들이 거기에서부터 화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화동할 수 있게 되는 기원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을 중심삼고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들이 나비와 벌같이 인간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화동의 주체권을 이루게 되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간이 기뻐하고 천사가 기뻐하며 온 피조만물이 사랑에 잠긴 화동의 꽃동산이 되었을 것이고 봄잔치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갔는가? 만일 그러한 인간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영광스러울 것이며,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기 자신을 얼마나 존중시할 것인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린 우리 인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탄식과 절망과 자포자기의 역사노정을 지금까지 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도 인간은 미래의 실낱 같은 소망의 한 점을 바라보면서 선이라는 거룩한 푯대를 세워 가지고 싸워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석양길을 향하는 만추의 계절을 맞이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처한 인간들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사랑의 품에 안기어서 어머니의 젖을 흠뻑 먹고, 어머니의 마음속 깊이에 있는 심정을 뼛골에까지 느끼며 영원한 생명력을 일생 동안 지니고 살아야 할 내 모습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 인간은 그처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애정적인 터전을 갖지 못한 불쌍한 인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형제끼리는 부모의 혈육과 인연맺고 태어나서 한 종족이 되어야 했는데 그 반대의 결과를 이루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천년 역사과정에서 서로 서로가 골육상쟁으로부터 민족 국가를 넘으면서 전쟁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망해 갔던 것입니다. 피를 흘리게 하며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우리 인간은 이런 역사의 배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충을 드릴 수 없는 인연을 거친 비참한 인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내일의 소망을 품고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무한한 내적인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합니다. 현실의 입장은 스스로 믿을 수 없는 시점에 놓여 있고, 내일의 소망을 가질 수 없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있어서도 두려움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자체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만일 이러한 자리에서 인간이 스스로 탄식하고 자포자기해 가지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 이상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도 없는 것이요, 이 자연은 왜 생겨났으며, 또한 이 우주는 무엇 때문에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귀찮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슬픔의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모든 환경, 보여지는 세계의 모든 정경은 반박의 대상이요, 혹은 규탄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무한한 탄식의 조건으로 우주가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목적이나 하나의 결실을 향하여 움직이는 이 계절의 형태를 바라보게 될 때에 그러한 결론을 가져 가지고는 이 자연과 환경을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인간들의 모습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126
봄절기를 찾아 나온 종교의 길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무한한 정의 줄을 다시 찾아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류 앞에 소개하기 위한 것이 종교의 길인 것입니다. 먼저 부모의 정의 줄을 찾아 들어가야 되고, 그 다음에는 신랑 신부의 정의 줄을 찾아 들어가야 되고, 다음은 형제의 정의 줄을 찾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갖추어야만 부모에게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장성해서 신랑 신부로 등장했다면, 즉 자기의 가치를 가진 정상적인 입장에서 출발을 했다면 오늘날 인류는 이러한 결과의 세계에 부딪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런 절망 가운데에 있는 우리 자체에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본연의 심정 기준을 어떻게 찾아 들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봄절기와 같은 인연을 맞이해 가지고 출발하는 것을 보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보시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탄식이 되어야 할 것이고, 인간의 탄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름절기같이 무한히 뻗고 무한히 신록을 찬양할 수 있는 권내로 인간이 가기를 바라셨던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인간이 무한히 번성하고 무한히 발전해서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가치 있는 하나의 결실체가 되어 인류역사를 이루고 문화의 세계를 이루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와 세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실정을 볼 때에,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은 본연의 세계를 결실할 수 있는 관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절망과 탄식과 사망으로만 종결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 앞에 하나의 소망의 줄로 미래를 연결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 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소개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또한 이 길을 제시하기 위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왔다 갔던 종교 내지 도(道)의 책임자들입니다. 우리들은 그들이 세운 공적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1-127
겨울절기의 참된 의미
오늘날 우리 앞에 다가오는 세계는 공포심을 갖게 하는 세계일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등장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가을이 점점 짙어가면 짙어갈 수록 그 앞에 무엇이 찾아오느냐? 겨울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의 절박한 내용이 위협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권내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볼 때에, 우리 앞에 겨울절기가 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겨울절기를 맞는 데 있어서 이 공포의 환경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대결하여 결단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을을 극복하고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불변의 생명체, 불변의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새로운 소망으로 찾아 오는, 천지가 준비한 봄절기를 맞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 앞에 한번도 갖추어지지 못하였던 봄날을 우리는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의 결실된 씨앗을 보면, 그것은 지극히 연약하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설한풍이 몰아치는 동삼삭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용납하지 못하는 기간과 자기의 환경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시련의 기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기간이 겨울절기인 것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최후의 경계선에 접하는 때가 겨울절기라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잣씨에게는 겨울이 자기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그 씨앗의 생명을 파괴시키는 시기가 아닙니다. 잣 그 자체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기 위해서 잣껍질을 까는 시기인 것입니다. 이것을 볼때, 계절이 상충되는 것은 다른 계절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계절의 출발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잣 자체에 생명력이 없다면 잣 자체가 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포와 위협이 부딪쳐 오는 겨울이라 해도 그 잣 가운데 생명력이 없다면 껍질을 깰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력이 버티고 있으므로 말미암아 내일의 봄을 맞이할 수 있는 힘, 즉 사방으로 밀어내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딪치는 힘과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새로운 힘과 더불어 새출발할 수 있는 동기가 새로운 방향을 갖추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우리가 모순적인 것이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보다 가치있는 생명력을 출발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겨울절기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나쁜 계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봄절기도 좋고, 여름절기도 좋고, 가을절기도 좋지만, 겨울절기는 보다 좋습니다. 내 자신이 지닐 수 있는 생명의 대가, 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생명의 가치가 내일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더욱 좋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겨울은 전체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최후의 결단을 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겨울절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역사는 그렇게 돌아가면서 발전한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역사시대를 다시 한번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20세기의 세계 문명이 절박한 환경에서 신음하는 겨울을 맞이할 수 있는 운명권내에 있다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권내에 있는 사회환경에서 한 가지 문제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 봄절기와 여름절기와 가을절기를 정상적으로 흡수하여 거기에 생명력을 투입하고 집약시켜서 하나의 본연의 생명체의 결실을 어떻게 갖추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갖추어졌다 하면 모든 사회악이나 사회 환경의 반대적인 여건과 부딪쳐서 그것의 외각을 타파시켜 가지고 새로이 출발하는 개문(開門)이 벌어진다면 그때부터 인류의 새로운 봄적인 역사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식구들이 지녀야 할 긍지와 우리 식구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최후의 단말마적인 입장에 있는 인류의 운명을 판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네 힘이냐? 내 힘이냐? 자신의 생명력을 내포한 힘의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요, 어머니도 간섭할 수없는 것이요, 그 어떠한 형제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만이 생명력을 지니고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 복중에 있을 때에 근본적인 생명력을 잘 받고 태어났느냐? 형제들이 받지 못한 것을 잘 받았느냐? 계절따라 받을 수 있는 진액을 원만히 흡수했느냐? 봄·여름·가을의 3계절을 거쳐오면서 인연되어 있는 생명력을 얼마나 원만하게 흡수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사의 결판을 지을 수 있는 역사적인 시점이 우리 인류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숙명적인 노정을 미루어 볼 때에 그런 절기를 거쳐갈 자신을 가진 내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31-129
인류에게 봄절기를 가져다 줄 메시아는 누구인가
인류가 지나온 과거 역사가 이러이러했기 때문에 인류가 가져온 봄절기의 그 과거 역사시대를 비판하고, 인간들이 거쳐 나온 여름절기의 시대를 비판하고, 가을절기의 시대를 비판해야 합니다. 비판하는 데는 생명력을 내포한 권위를 지닌 입장에서 비판해야 합니다. 또한 앞으로 올 수 있는 겨울절기의 위협을 내 자체가 갖춘 영향력으로 대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의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바라며 백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생명의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하여 이루고 싶으셨던 소원이 있다면, 필시 그러한 사람을 통하여 이룰 것이 아니겠는가? 그 사람은 새로운 인류의 봄절기와, 새로운 인류의 여름절기와, 새로운 인류의 보다 나은 가을절기를 그 사람에게 소개하실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이럴 수 있는 내용을 갖춘 하나의 실체가 없다면 이 세상은 죽은 열매같이 썩어지고 말 것입니다. 가을에는 죽은 열매의 모양이나 생명력을 지닌 열매의 모양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릅니다. 타인은 모르는 것입니다. 제삼자는 모르지만 그 자체는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죽어 있느냐 살아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놓고 볼 때에 적도 이북에 봄날이 찾아 오면 적도 이남 23도 이상 되는 곳에는 가을날이 찾아옵니다. 이 지구상에는 춘하추동의 형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 역사에 있어서 세계적인 무한한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봄과 여름과 가을을 연속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봄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끝날 이후에 다시 찾아올 역사적인 봄절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여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가을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생명력, 겨울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생명력을 가진 자체는 춘하추동의 인연을 다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갖춘 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일시에 봄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30억 인류에게 오랜 역사과정의 배후를 중심삼고 어떠한 개인이면 개인을 통하여 봄절기의 은사의 역사를 하셨던 시대가 있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라도 거기에 생명력을 연결시켜 가지고 그 내심에서 여름절기의 인연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과 더불어 인연 맺고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여름절기와 인연된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가을절기와 인연을 맺어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새로운 생명력을 갖추어서 지상에 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현해야 할 그 자체가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력을 지닌 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생명의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류 앞에 메시아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떠한 분인가? 인간이 가졌어야 할 봄절기의 문화세계의 내용을 갖고 오시는 분이 아니겠느냐. 무한히 발전하고 무한히 번창할 수 있는 여름절기의 문명의 내용과 그러한 세계관을 가지고 오는 세계적인 인물이 아니겠느냐. 또 가을절기의 결실의 내용을 알려 줄 수 있고, 개인적이 아닌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겠느냐.

그런 내용뿐만 아니라 겨울절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미흡한 것을 극복하여 세계적인 봄날을 맞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것을 모르고 암중모색하는 타락권내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만일에 메시아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 이상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야 할 귀빈이 어디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인류가 위기에 처한 이 세계정세 가운데에서, 새로운 세계적인 지도자를 모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바로 인류가 간접적이나마 메시아 사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1-131
인간이 타고난 절기의 공평성
봄에는 여러 가지 꽃이 있고,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고, 수많은 종류의 초목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보는 거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봄절기가 돌아오면 봄을 맞이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고, 생명을 지니지 않은 그 무엇이 어디 있습니까? 미물인 곤충에서부터 작은 풀 한 포기, 큰 나무, 날고 있는 모든 조류,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음받은 피조만물 전부가 생명의 인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피조만물들은 이 봄절기의 인연 가운데서 하나의 인연을 가지고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 세계 가운데 그런 봄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봄날을 맞이하여 나 자신이 그 봄 동산에서 어떠한 나무가 될것인가? 여러분은 개성을 지니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풀 한 포기, 어떤 사람은 어떠한 나무 한 그루의 입장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종류가 각각 다른 분야에 있어서 생명체를 가진 개인·종족·민족이 될 것입니다. 절개를 상징하는 송죽과 같은 개인과 민족도 있을 것이고, 꽃과 같이 그 품에 모든 인연을 총합시킬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 민족 국가도 있을 것입니다.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엇갈리는 것과 같은 인연이 역사시대에 있어서 시발점에서부터 연결되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일생의 운명도 그렇듯 뒤바뀌며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잘 살고 어떤 사람은 못사는가 하는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잘사는 것은 그 사람의 선조들이 이미 겨울절기를 지냈기 때문입니다.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기 때문에 잘산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왜 무성하냐? 여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봄절기의 기반을 닦아 나왔기 때문에 여름절기같이 무성한 것입니다. 무성하게 되면 반드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모든 것은 차게 되면 반드시 기울어지기 때문에 가을절기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절기를 맞이했다고 낙망하거나 절망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을절기를 맞이했다고 거기서 절망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절기에서부터 출발하는 사람들은 생활해 가면 갈수록 시들어 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아이고 우리는 벌받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하며 탄식하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가을절기를 맞이하였다면 내일에 다가오는 겨울절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됩니다. 아무리 험난한 시련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간다’ 할 수 있는 신념을 갖고 그 겨울절기를 개척해 나가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 겨울절기를 극복하는 민족이 있다면 또다시 찾아오는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 자신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춘하추동절기의 연속적인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길에 있습니다. 여러분 자체의 생명체도 그러한 인연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은 운명의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는 봄날부터 태어난 사람도 있고 재수없이 겨울날부터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호의 아들이요, 군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모든 영광이 드높이 들리우는 여름절기에 태어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을절기에 태어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고 보면 이 우주 역사는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겨울절기에 태어났다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겨울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거기에 조금도 침해를 받지 않고 더욱 힘차게 전진하여 봄날을 맞이하게 될 때에는 누구보다도 빨리 생명의 출발을 볼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힘차게 성장할 것입니다.

31-133
겨울절기를 극복하려면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자체 내에 지니고 있는 역량을 무엇으로 비교할 것인가? 여러분들은 타락의 한의 고빗길도 느꼈을 것이요, 슬펐던 문화의 세계, 교만했던 탄식권의 세계도 느꼈을 것이요, 시들어 가는 문화가 절망적인 환경에 부딪침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어떠한 절기라 하더라도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이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생명력으로 계절을 연결시켜서 가을까지 생명의 결실체가 되어 겨울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역사가 망하고, 그 시대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자처해 나왔습니다. 민족이 우리에게 핍박을 가하는 도상에 있어서나, 종족이 반대하는 처참한 환경에 있어서나, 혹은 이민족이 총칼을 들고 우리를 극난의 절정으로 몰아넣는 환경에서도 우리는 이제까지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외로움이 부딪치고 탄색의 권(圈)이 나를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 권을 도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끝날이 다가왔다는 것을 절감하면 절감할수록 정면으로 맞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격파하자는 것입니다. 네가 깨어지느냐, 내가 깨어지느냐 결판을 내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꺼풀 벗고 재생하여 내일의 희망을 가져다 주는 하나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한 생명력을 지닌 결실적인 자아의 모습을 찬양할 수 있는 신념, 그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 자체를 세워서 `나는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늠름한 자신이다’라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봄을 맞이하여서 그것을 자기의 터전으로 삼아 가지고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스스로의 권한을 가져야만 만민을 하나로 결실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의 소득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나를 이 땅 위에 뿌리고 갔을 때, 그 결과는 1,000만분의 1이라도 결실이 맺어져야 합니다. 인류가 그것을 보고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선두에서 당당히 수난의 겨울절기를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무리의 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세계는 부활의 새 봄날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힘차게 바라보고 힘차게 행군하는 대인이 있다 할진대는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되돌아선다는 것입니다. 또한 겨울절기로 영원히 흘러가서 사망권내로 굴러 떨어질 운명길이 변하여 새로운 봄절기로 전환될 수 있는 순간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흔히 말하기를, 우리들은 역사적인 열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우리는 육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 라고 자처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육천년 역사과정에 있어서 종합된 시련이 한꺼번에 부딪쳐 오는 그 겨울절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자신이 되었는가? 이것이 문제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승패를 가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끝날에 찾아드는 봄절기와 같은 새로운 세계문화사 앞에 내 가슴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됩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품을 벌려 놓은 그 동산 가운데에 세계 인류가 무한히 피어날 수 있고, 무한히 지배할 수 있는 특권적인 자아의 인격을 찬양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본래의 인간이 바라던 최고의 인간으로서 성공한 자리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신다면 그러한 가치의 존재로 지으셨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탄식과 절망 가운데서 최후의 운명의 경각에 놓여 신음하도록 지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내일을 위하여, 그럴 수 있는 자체를 발견하기 위하여, 그럴 수 있는 미지의 자체를 개발하기 위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이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자신이 가는 길에 있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한꺼번에 내 앞에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는 내일이 와라 하면서 그것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럴 수 있는 한때를 맞기 위해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많은 것을 결실할 수 있었지만 또한 많은 무리들이 떨어져 갔습니다.

31-135
시련 극복과 결실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역사의 봄절기보다도 여름절기보다도 가을절기보다도 지금이 좋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이 발발될 수 있습니다. 그 겨울절기의 깊은 절정과 경계선에서부터 환희의 새로운 출발이 벌어져야만 봄날이 정상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놓고 봐도 은사가 오기 전에는 반드시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봄을 은사의 시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봄이 온 것을 반기기 전에 지금까지 봄이 다가올 수 있었던 과거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봄날의 역사적인 생명의 인연을 동경하면서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또한 봄은 내일 맞이해야 할 여름절기와 가을절기에 우주적인 인연을 결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가치있는 생명의 씨를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봄의 출발인 것입니다.

봄의 출발을 맞는 수많은 종류의 꽃을 바라볼 때에, 여름 이후에 오는 가을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결실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렇게 판결지을 수 있는 여러분 자체로 남아지지 않고는 앞으로 인류가 공히 추구하는 희망의 봄절기를 여러분은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과연 이 은사의 시대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그 입장에서 봄날을 가졌느냐, 또한 여름을 가졌느냐, 가을날을 가졌느냐, 겨울날을 가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봄과 같은 은혜가 임하게 될 때는 전부 주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전부다 화동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무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봄절기가 보리 잎이 무성해지는 시기라면 여름절기는 줄기가 자라는 시기입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목적은 하나의 줄기를 세우기 위한 것인데, 여름절기에 그 줄기가 생겨나지 않는 보리는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줄기 가운데에서 새로운 변화가 벌어져야 됩니다. 꽃과 같이 자체의 미를 대신하여 만상 앞에 찬양받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체를 느낌과 동시에 하나의 결실의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터전 위에서 여름절기를 거쳐 가을절기를 중심삼고 과정적인 시대의 인연 가운데 끊임없는 생명의 진액을 흡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거쳐가고 부딪치는 모든 것에서 손해를 볼 것이 아니라 생명의 진액을 플러스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교회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되는 사람도 은혜 받으면 홀로 외롭게 지방으로 개척을 내보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개척을 나가라, 잎이 무성하게 자랐으면 한 줄기로서 자라날 수 있도록 나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자체의 개성을 중심삼고 천지의 무한한 결실의 가치를 특권적인 인연 가운데서 독특한 내용을 지니고 결실시키라는 것입니다.

많은 시련이 부딪쳐 올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력과 반대되는 요소와 진액이 안팎으로 흘러나와 자체의 생명 앞에 반역할 것입니다. 그 반역하는 환경을 흡수해서 겉은 죽은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무한한 주체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면, 그 환경에서 자기 자체는 자라는 것입니다.

봄의 인연, 여름의 인연, 가을의 인연을 통해 가을이 깊어가면 갈수록 나무의 잎은 종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나무 빛이 달라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길을 가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저 사람은 저런 면에서는 어느누구도 따를 수 없는 원숙한 하나의 결실을 갖추고 있구만’ 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을절기에 있어서는 자기의 결실된 모습을 봐 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탄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그 가치의 내용을 전부다 완결할 수 있는 때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만상은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위해서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의 존재가 들어나는 가을절기가 되면, 스스로가 앞날에 새출발할 수 있는 소망의 자체로 하나님께 보관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31-137
끝까지 전진하여 모든 절기의 주인이 되라
이와 같은 은혜의 시대는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교회에 들어왔을 때를 봄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홀로 가는 때입니다. 홀로 생명의 진액을 가해서 결실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믿음의 자녀니, 무엇이니 하는 복잡한 내용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다가올 환경에 있어서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합니다. 하나의 결집된 자체를 중심삼고 봄의 총합, 여름의 총합, 가을의 총합된 생명력을 가진 실체가 되어 가지고 가을절기를 넘어설 수 있도록 통일되어야 됩니다. 갑이나, 을이나, 병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전부다 하나의 생명력에 집결해야 합니다. 이래가지고 가을절기를 극복하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말이 귀결적인 의미에서, 역사시대의 변천과정을 중심삼고 가을절기에서 겨울절기로 넘어서는 경각도상에 있어서 필요한 명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근본인 씨와 더불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서 미래에 다가올 공포의 겨울절기를 극복해 내고 내일의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봄동산의 주인이 애호할 수 있는 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꽃같이 영광의 극상에 오를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필요한 것이요, 하나의 가정이 필요한 것이요, 하나의 종족이 필요한 것이요, 하나의 민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민족이 제3 이스라엘이라는 특권적인 민족인 것을 알고, 그럴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우리는 단결하자! 하나되자! 하나되자는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종말의 미명이 찾아오는 찰나에 칠흑같은 어둠의 한때가 거쳐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박차고 광명의 새 아침의 햇빛을 향하여 동으로 동으로 전진할 수 있는 사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새 아침과 같은 통일문화의 봄절기인 중화문명(中和文明)을 요구하고 나가는 통일교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문제, 세계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문제를 피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과 직접 대결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시대에 있어서 봄절기시대를 그냥 지나갔던 사람들, 여름절기시대에 망해갔던 사람들, 가을절기시대에 타락했던 사람들을 다 제쳐 놓고 전체가 통합된 승리의 권한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바라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의 통일된 세계를 향하여, 하나의 심정을 이어받고 승리의 왕자로 등장할 수 있는 그 나라를 위하여 택한 개인, 택한 가정, 택한 종족, 택한 민족에 택한 주권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생무궁토록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봄절기의 주인이 되고, 여름절기의 주인이 되고, 가을절기의 추수꾼이 되어서 겨울절기에 잔치하며 안식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을 위해 출발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최후까지 단결하여 그 고개를 극복하는데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31-139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들은 하나님이라는 그 거룩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습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또 인간 세상에서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상대적인 인연,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화동의 인연을 벗어나서 살아왔기 때문에 통일의 인연이 없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니 역사시대에 슬펐던 모든 인연을 져버려야겠습니다. 인연의 본체되시는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역사와 더불어 화동하고 싶었던 주체적인 근본으로 남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주체적인 근본으로 계시온데 상대적 권인 이 인류의 문화세계는 그 주체 앞에 상극되고 상반된 입장에 서서 지금까지 운명을 거듭해 왔사옵니다.

이제 영원한 주체 되시는 아버지 앞에 춘하추동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실체를 갖추어, 봄절기의 문화세계를 그 가슴에 흠뻑 추구하면서 내일의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는 승리의 왕자 왕녀를 아버지께서 찾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거룩한 숙명 앞에 부름받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거룩한가를 자각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람은 한번 왔다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 생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청춘시기에 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가 장년이 되면 짐을 짊어지게 되고, 장년시기에 싸워서 지탱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결실된 후손이 비참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년시대를 힘차게 지내고 노년시대를 거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새로운 여름절기를 볼 수 있는 후손을 자기 품안에 가진 가정이어야만, 그 후에 다가오는 겨울절기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인생 세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상징적인 현상인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버지의 뜻앞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타락으로 인한 절망의 구렁텅이 앞에 30억 인류가 이제 최후의 운명을 저울질 하는 선상에 서 있는 것을 알면 알수록, 여기에는 내일의 봄을 대신 하고 내일의 여름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가 있어야만 이 인간 세상에서 겨울절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하나님의 섭리는 여기서부터 인연에 인연을 연결시키어 사망권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원을 이룬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되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 자체가 오랜 역사노정에 슬픔을 남기고 간 선조들의 한을 박차고, 타락으로 말미암은 운명 가운데서 신음하는 인류의 원한 맺힌 이 원수의 근거지를 박차고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봄절기와 여름절기를 거쳐 가을절기의 결실적인 실체이오니 미래의 소망세계를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겨울절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아버지의 승리의 좌표로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보잘것없는 무리들이 그러한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에 나타날 민족의 운명을 바라보면 절망이 감돌고 있습니다. 내일의 아시아의 운명 가운데에 최종의 사명을 결단지어야 할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오늘 한국의 운명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의 운명이 세계 인류가운데 최고로 비참하더라도, 여기에 찾아온 역사적인 가을절기의 한계선을 넘어 내일의 희망에 벅차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고 새로이 살아갈 수 있는 역사적인 생명력을 지닌 하나의 결실체가 이 땅 위에 나타났다 할진대는, 저희들에게 절망이 있는 것이 아니요, 내일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희망에 벅찬 거보의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과 기쁨, 죽음과 생명이 교차되면서 타락세계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엮어져 내려온 것을 미루어 볼 때, 이 민족이 처한 비참한 운명을 비참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 아니라, 기쁨의 역사로 연결시킬 수 있는 내일의 총아의 모습을 그려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몰리고 쫓김받는 가운데서도 참아 나온 무리, 싸움 노정에서 남아진 무리가 이 한국에 모여든 당신의 자녀들이요, 통일의 용사들인 것을 생각하옵니다.

저희들에게는 민족을 위하여 흘렸던 눈물이 있사옵고, 세계를 위하여 흘렸던 눈물이 있사옵고, 미래의 세계를 위하여 염려하는 눈물이 있사옵니다. 아버지가 그러하셨기 때문에 주체이신 아버지 앞에 대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자기 모습임을 자부할 수 있는 실체의 권한을 가지고,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자아의 신념을 자각하고 재천명할 수 있는 이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역사를 회고해 보면 슬픔의 역사가 아닌 아버지의 보호의 역사였사옵니다. 저희들의 슬픔 이상으로 아버지의 슬픔이 남아진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내일의 희망 앞에 자신하고 나서기 위해 아버지를 모시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의 입장이옵니다. 그 입장은 원수의 화살을 맞는 입장이요, 슬픔의 싸움이 감도는 자리이기에 아버지를 영광 가운데에 맞지 못하고 탄식하고 있사옵나이다.

그러나 아버지 참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위하여 겨울절기를 극복하고 넘어야 할 운명길에 섰사오니, 저희 자체가 결합하여 생명의 대가를 손상시키지 않고 고이 단장하고 고이 결집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저희들이 봄절기의 한계선을 넘어설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하여 생명력을 집결하여 가지고 외적인 실력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의 생명을 결합하여 그 경계선을 넘어야 하늘과 땅이 보장할 수 있는 주체적 기반이 되듯이, 그런 기준을 갖추어 새로운 봄날의 기원을 소원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모습이 되어 봄맞이를 가게 된다면 아버지께서 나비와 벌과 제비, 그리고 기어다니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집약시키시어서 하나의 통일된 봄절기의 문화세계를 창건하게 하시옵소서. 이 엄숙한 과제를 무성한 계절이 찾아오는 5월의 봄날을 맞이하여 결의하고 다시 결합할 수 있는 거룩한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시작되는 5월, 이제부터 정성을 모아 6개월 동안 아버지 앞에 기도하고자 하오니, 이 기간 동안 정성을 다 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를 넘어 민족과 세계의 가을절기를 지나 겨울절기의 고개를 넘기고, 1971년도부터는 봄절기 문화를 맞이할 수 있는 거룩한 날을 저희들이 준비하기 위해 생명력을 집결하여 이 타락한 세상에 대항하고 투쟁하는 거룩한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의 시간과 이번 달과 금년의 일년 계획이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일취월장(日就月將)하게 하시옵소서.

70년대를 개문하는 승리의 터전이 1970년 봄을 중심삼고 공고한 기반이 마련되어 거룩한 이 한 해가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사의 은사로 저희들을 보살펴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내일의 싸움터를 향해 걸어가는 저희의 생활 배후에 오셔서, 당신의 무한한 심정을 가일층 저희들에게 인연맺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인연 가운데 살고, 그 인연 가운데 자라고, 그 인연 가운데서 죽을 때에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길에서도 흥할 수 있는 결속된 자체로 남아진다는 것을 아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남한 각지에서 이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에 널리어 외로운 노정에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아들들을 거룩되게 지켜 주시옵시고, 거룩한 통일의 기치를 들기 위해, 당신의 숨은 터전의 눈물의 대가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을절기의 생명체로 결실된 이 무리들이 썩어져 가는 암흑 세계의 생명 전체를 휘몰아 파국에 직면해 있는 인류 앞에 생명의 기치가 되고, 생명 도상에 있어서 계명성이 되고, 암흑 행로에 있어서 하나의 등대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가 되게 복빌어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고, 격려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당신이 경륜하시는 전체의 뜻이 일취월장하기를 다짐하는 이 시간으로 맞아 주시옵고,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