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3 to 30-117: 개척자

개척자
1970.03.17 (화),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30-93
개 척 자
역사과정을 두고 보면 역사의 흐름이 암담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역사를 창조해 가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시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시대에 있어서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내자가 될 때까지는 반드시 개척자의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30-93
역사와 개척자
개척자는 어떤 목적을 향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찾아가는 데에는 고역 속에서 신앙과 목숨까지 걸어야 할 투쟁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개척자가 가는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반드시 거기에 비례해서 모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목적지를 향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타개해 가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개척자의 명분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척자를 원하는 것은 학생이 선생과 같은 안내자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국가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도 반드시 안내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역사상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추진해 나갔던 모든 일을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새로운 목적을 추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려운 사명을 짊어진 개척자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환경적인 여건들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류를 구원하는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안내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6천년의 기나긴 역사노정을 두고 볼 때, 뜻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섭리시대로 발전되어 나왔습니다.

개인적 섭리시대에서 가정적 섭리시대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섭리시대를 타개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정적 섭리시대로부터 민족, 국가, 세계적 섭리시대로 그 단계가 한 단계씩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는 개척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요, 안내자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도 아벨이 그 시대의 가정을 복귀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난 후에야 안내자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입장이 아닌 비정상적인 입장에 서더라도 불리하게 밀어닥치는 환경 앞에서 밀려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타개하며 자기가 주도적인 입장에 서서 새로운 행로를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치 시켜야겠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개척자의 사명을 할 수 없습니다.

30-94
개척자의 길
이런 관점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성취하게 될 때에 비로소 안내자의 사명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내하는 사람은 반드시 추종자에 대해서 방향을 설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 방향이 빗나가거나 목적관이 그릇될 때는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중간에서 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추종자들이 이것을 부정하고 나가려 할 때는 가야 할 목적지조차 제대로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환경적으로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여건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다각적인 면으로 극복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척자가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의 사명을 완수한 입장에서 안내자의 길을 가야만 올바른 안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 노정을 보게 되면 노아도 그가 살던 시대를 대표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거친 후에 하늘의 안내역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개척자의 사명을 거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상대적인 권한을 갖추어 개인이면 개인, 사회면 사회에 대해서 하늘의 안내역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개척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내자의 책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가는 데에는 반드시 스스로가 탐험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척적인 내용을 실지로 겪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늘과 땅으로 분립된 두 세계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의 세계로 귀결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동반할 수 있는 모험적 과정을 거쳐서 모든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상대적 권한을 갖추지 않고는, 두 세계를 통합해서 하나의 기반을 마련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결정권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적이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안내역을 맡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내자의 자리를 완전히 갖추어 가지고 전체를 대표하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올바른 인생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지도자의 일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라는 것은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중심삼고 전체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역사적인 사정을 풀어가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지도자로서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적인 지도자들은 시대를 대표하여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체험적 과정을 탐험해 나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역사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그렇고, 아시아면 아시아가 그렇고, 세계면 세계 자체가 앞으로 가야 할 목적도 방향도 모르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향도 알 수 없는 숨가쁜 현실 속에서 금후의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비단 국가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온 세계 인류가 감당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현시점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개척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30-96
이 시대의 개척자가 될 사람
그러면 누가 이 세계의 개척자가 될 것이냐?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과 성인현철들이 있었지만 그 결과의 세계를 바라볼 때, 그들과 같이 인간세계를 대표하는 입장의 사람이나 또는 인간을 위주로 한 사람을 믿고 새로운 세계의 목적을 지향하여 개척의 일로를 타개해 나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시 때문에 역사의 여건을 타개하고 인류에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개척운동이 반드시 이 지구상에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개척자의 사명을 갖고 올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을 위주로 하는 내용이 아닌, 새로운 이상을 위주로 한 세계적인 내용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내용을 갖고 올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천주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현실 역사세계의 평면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세계의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오늘날의 인간세계에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견해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현재와 같은 결과의 세계에서 암중모색하는 낙망의 세계를 원치 않는 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목적을 추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려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역사시대의 종점에 이르러서 반드시 이 세계를 이끌 수 있는 인격자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지구 위에 마련하는 일을 벌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떤 종교든지 재림사상을 남겨 놓고 끝날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세계가 그런 결과적인 요건을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여기에는 반드시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류가 추구하는 행복과 이상세계의 한 기점을 연결시키기 위해 내적 준비과정을 마련해 나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인 것입니다.

이 세계를 대신하여 그런 사명을 할 분이 오게 되면 그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바라는 목적세계를 이루기 위한 개척자, 역사상에 없었던 최고의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영계를 중심한 개척자와 육계를 중심삼은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 세계의 내용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모험적 생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개척자의 사명을 완결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타개하고 넘어야 할 배후의 환경이 얼마나 복잡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의 생활을 처리해 나갈 때 그 내용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가 완전히 도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척자는 엄청나고 엄청난 문제를 내적으로 수습해서 섭리적인 자리를 결속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완전한 개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대응될 수 있는 모험적 생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와 인연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을 찾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위주로 할 것이냐?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영계가 있으면 영계를 위한 행로를 감당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갈 길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인간이 모색하고 있는 길과 영계가 모색하는 길을 넘어서서 사방으로 모든 안팎의 내용을 갖추어 책임지고 결말지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비로소 안내자의 책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내자로서의 책임을 하지 않고는 영계가 있어도 그 세계의 지도자로서 역사성을 지닌 하나의 중심인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귀결점이 어디냐? 대한민국에서 지나가는 역사권내에 표류하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리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지니고 국가 앞에 설 수 있는 통일교회, 혹은 아시아면 아시아가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모든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고 타개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역사시대를 열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 국가 앞에 있어서나, 아시아 전체에서나 혹은 세계를 대해서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고서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새로운 가정, 새로운 종족,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라는 엄청난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도 엄정한 자리에서 통일교회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98
개척자의 사명을 완수하려면
그러면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어떠한 어려움이 따르는가? 오늘날의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막강한 힘이 소모될 것입니다. 전쟁을 해결하는 데도 그 이상의 힘이 필요한 것같이 온 우주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힘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투입된 힘을 그 시점에서 단체에, 혹은 역사시대에 그대로 남겨 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험을 하며 투쟁하고 개척하며 이루어 나온 모든 결과는 소모시킨 힘에 비례하여 나타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비례하여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백을 소모시켰으면 반드시 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열을, 혹은 하나를, 혹은 하나의 소득도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척자의 생활은 소모전과 같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소모전으로써 개척자의 길이 타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의 한 기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모되는 시간의 연속이요, 소모되는 생활의 연속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소모시킨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는 사람은 개척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나서는 새로운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새로운 종교나 새로운 시대를 표준으로 삼아서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삼은 구원을 표준으로 삼고 나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 법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담 해와가 가정을 중심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는 개인을 위주로 해서 개인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나왔습니다.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구원함으로써 그들을 합하여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권을 이루어 나온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의 종교는 하나의 남성을 중심삼고 하나의 여성을 찾아 나왔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가정을 중심하여 새로운 해방의 기치를 들고 나선 것이 바로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역사상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것은 1960년대입니다. 이 6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새로운 역사시대에 다가섰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가정이 극복해야 할 시련과 환난이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것이겠느냐?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구원문제를 두고 신앙노정에서 싸워 나온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6천년의 복귀노정에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시대시대를 책임지고 왔다가 맡은바 책임을 감당치 못하고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이 하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도 승리의 결정적 기반을 이루기 위한 승패가 반복되는 역사적인 내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에, 개인 하나를 구원하기도 이렇게 힘들거늘, 오늘날 가정이라는 짐을 끌고 가야할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과중한 것인가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입각한 행복한 가정, 평화의 가정기반을 닦을 때까지는 수난의 길이 겹쳐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수난의 길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소모전을 치러야 합니다. 이러한 노정이 오늘날 우리 개인은 물론이요, 통일교단이 가야할 운명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은 역사시대에 하나님께서 필요로 했던 어떤 특정한 개인보다도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늘의 가정이요, 예수님이 찾아 나오던 가정이요, 수많은 선조들이 소망하던 가정입니다. 모두가 이 하나의 기반을 닦기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축복가정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이 가야 할 노정의 차원이 높으면 높을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시련과 모험이 따르게 되는 것이요, 개척자와 같은 사명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고차원적인 가치를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30-100
이 민족에 대한 축복가정의 책임
이제 여러분들은 70년대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 60년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과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소망하시는 기준에 입각한 주체적인 가정으로서의 입장을 수행했는지 반성해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개척자로서 가정적 입장에서 책임을 완수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 대다수가 책임을 완수하지 못 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세계적인 책임을 져야 되고, 민족 국가를 대신해서 반드시 종족을 편성해야 합니다. 김씨 박씨 이씨 조씨 등, 각 씨족을 중심삼고 종족을 편성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중심삼고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을 하라고 권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종족적 메시아로서 책임을 다하는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예수와 성신이 삼위일체로서 하나의 가정을 모색해 나오는 데 수천년의 역사가 흘러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영계에 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계에 가 있는 그들은 자기들의 해원성사를 바라기 전에 먼저자기를 중심삼고 해원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역사가 바라는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 내 남편, 내 부인 등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이 될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내용을 감당할 책임을 짊어진 중심적 가정으로서 자세를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나 지나간 역사시대의 모든 선조들이 요구하는 소원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은 습관적인 생활환경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 자족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책임적인 입장에서 나 자신을 비판하면서, 승자와 패자의 자리를 결정지어야 할 양자택일의 운명길에 서 있는 여러분 자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나름대로의 개척노정이 있습니다. 김해 김씨면 김해 김씨로서 하늘을 대표한 축복가정이 여러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여러 가정을 대표한 하나의 가정 즉, 개척의 사명을 지닌 가정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가정은 김해 김씨를 대표해서 대한민국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타개해 가지고 자기의 종족을 국가 기준에까지 연결시켜 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종족들을 민족적 대열에 동참 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민족 앞에 새로운 복음을 주입하고 새로운 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요구하는 종족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환영할 수 있는 종족이 되어야만, 그 김씨 종족을 대표하여 축복받은 가정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척자가 되기 위해서는 김씨든, 박씨든 자기 전체 종족을 이끄는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개인이 있을 것이며, 수많은 가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과 가정이 하나님과 더불어 정상적인 환경에서 너와 나라는 인연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 합니다.

개척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거기에 탕감의 원칙이 개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탕감의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느냐? 탕감의 내용을 아무나 제시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모험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서 결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가진 축복받은 가정만이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가정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탕감내용을 제시시킬 수 있는 안내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안내역을 해야 하고,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안내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수들이 총칼을 치켜 들고 바라보는 이 환경에 있어서, 개척자의 입장에서 기습을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과정을 하루하루 닦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올 수많은 가정들과 개인들 앞에 그들이 거쳐야 할 탕감의 내용을 제시하고, 미지의 탕감노정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내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가정을 하나님이 바라는 완전한 가정으로 복귀시켰을 때, 참된 가정으로서의 안내역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을 하나님이 바라는 개인으로 복귀시켰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대신한 참된 개인으로서 안내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안내역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목적하셨던 새로운 민족으로서 출발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30-102
가인과 아벨이 가야 할 신앙길
오늘날 타락한 세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정의 세계입니다. 여기에는 개척만이 있는 것이요, 투쟁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안일한 기반이라는 것은 그 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문화의 기반이 크면 클수록 원수들이 공격할 수 있는 도수를 강하게 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요, 언제든지 침략받는 도성으로 남아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은 빠른 시일 내에 지나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자리잡고자 하는 자는 낙오자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기에서 안일을 꿈꾸는 자는 망할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것이 축복가정 된 여러분의 길인 것입니다. 이 길을 여러분만으로 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 길은 여러분만이 가서는 안 되는 길이요, 또한 여러분만을 필요로 하는 길도 아닌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은 어떠한 존재인가? 가인을 돕지 않고는 부모를 맞을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에 형과 동생이 하나되어서 부모를 대신하여 ‘하나님이여, 저희가 한마음 한뜻으로 저희 부모의 실수를 용서하여 주실 것을 부탁하오니, 저희 부모를 대신하여 모든 것에 같이하시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섰더라면 형제의 희망이 되는 부모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이 이루어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가인이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형으로서 부모를 대신하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될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비록 수난이 연결되어 들어오고 천리가 엇갈려지더라도, 순리가 아닌 역리적인 환경에서도 원칙적인 입장에 서서 이 일을 추진해야 되는 것이니 그 생활 자체는 비록 모순적인 생활이요, 파괴적인 생활이요, 구속적인 생활이더라도 그것을 타개하고 넘어가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되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공세를 받을 수 있는 상대자는 맞고 나가야 합니다. 그 상대자가 누구냐? 가인입니다. 가인의 욕구와 아벨의 욕구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욕구 자체가 어디로 귀결되어야 되느냐? 가인의 욕구는 가인에게 직접 귀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에게 귀결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벨은 그것을 가인에게 옮겨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세계에 있어서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형의 입장에서 동생에게 굴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탕감노정을 거쳐 가는 데에는 하나의 개인으로서 갈 것이 아니라, 반드시 탕감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는 원리원칙에 입각한 가정을 찾아 가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합해져야만 하늘 가정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가정들은 아벨적 입장의 가정이지만 그 한 가정으로는 탕감노정을 갈 수 없습니다. 가인을 찾아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적인 가정을 한 가정뿐만이 아니라 세 가정 이상을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3시대의 한을 해결짓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제시하고 있는 믿음의 세 아들딸을 찾아 세우는 것도 우리가 운명적으로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환경에 순응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권을 형성할 때까지는 반드시 투쟁과 수난이 중첩된 개척자의 과정을 거쳐야만 안내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 부모를 모시고 영광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족속이라는 하나의 족속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동반할 수 있는 가인적 입장에 선 어떠한 형태의 족속을 갖추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30-104
아벨의 입장에 선 사람들이 져야 할 십자가
이러한 가인적 입장에 선 족속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겠느냐? 오늘날 통일교회와 가까울 수 있는 형님과 같은 입장에 있는 무리는 과연 누구겠느냐? 그들은 다름 아닌 기성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투쟁의 사명을 지고 희생적인 제사장의 책임을 감당해 온, 흑은 피를 뿌리며 희생의 제물이 되어 온 기독교가 가인적인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적 입장에 있는 우리들은 우리 자체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단체, 혹은 교단으로 갖추어 가기 위해서는 가인적인 교단을 아벨적인 입장에 귀결시키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넘어가야 할 탕감 내용을 제시하고, 그 조건을 세우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책임이 통일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아벨적 입장에 선 우리들은 그들을 상대적 입장에 세우고 가인적 교단을 아벨적 입장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를 지속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벨적 교단을 몰라보는 가인적 교단에 대해서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 주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이 일을 하지 않고서는 가인적인 교단을 어느 하나도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곧 복귀역사를 담당한 아벨적 입장에 선 사람들의 비참함이요, 서글픔이요, 고독이요, 서러움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를 앞에 놓고, 그 가인적인 국가와 가인적인 세계를 아벨적인 국가와 세계로 찾아 세우는 길을 모색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벨적 개인에서 아벨적 가정을 가져야 하고, 아벨적 가정에서 아벨적 종족을 가져야 하고, 아벨적 종족에서 아벨적 국가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가인적인 국가와 세계를 바라보아야 했던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가인적 세계가 필요함을 확실히 실감했던 예수님이 원수에 의해 십자가에 비참하게 못 박히면서도 원하셨던 것이 무엇이었겠느냐? 이스라엘 민족을 아벨적 입장으로 하나님 앞에 연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 :34)”이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염려하는 아벨의 입장에 선 사람들이 짊어진 십자가의 노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시점에서 통일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통일교회가 하나의 교단으로서 아벨적인 교단의 입장에 섰으니 가인적인 교단을 수습하여 하나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이제 우리 두 형제가 고대하던 소원을 성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임재하시옵고, 만민에게 해방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선을 이루시어 행복의 한날을 보시옵고, 지상에 천국을 이루시옵소서’ 이렇게 고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기독교에 뜻을 두고 섭리해 나오신 아버지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 소원은 기독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아벨적인 개인, 아벨적인 가정, 아벨적인 단체, 아벨적인 교단, 아벨적인 국가를 거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아벨의 사명을 짊어지고 올 분을 맞이해야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이 메시아로 말미암아 가인적인 세계는 아벨적인 새로운 세계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민족이 메시아를 고대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벨적인 세계에게는 뒤에 있는 가인적인 세계를 뒤넘이치게 해서 해방 시켜주어야 할 큰 책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 탕감해주지 않으면 본래의 길로 복귀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입장에서 자신이 스스로 탕감복귀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올가미가 씌워 있는 동시에 쇠사슬에 엉켜져 있어서 스스로 헤어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아벨적 교단이나 아벨적인 국가가 가인적인 교단과 국가에 대해 해방운동을 제시해 주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국가권을 넘어서서 벌어지지 않고서는 억천만세를 가더라도 복귀역사에 있어서 승리의 한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30-106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가정이 되려면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이러한 사명 앞에 하늘의 부름을 받은 축복가정이 있다 하면, 이 가정이 무대로 삼아야 할 곳은 어디일 것이냐?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이나 혹은 전국의 어느 지구의 지구장의 가정이 아닙니다. 그 지구를 인수한 가정으로서 끝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으로 서야 하는 것이 아벨적인 가정이 넘어가야 할 최소 한도의 고빗길인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국가적인 기반 위에 설 수 있는 가정의 기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세계적인 가인 국가들을 복귀할 수 없는 천적인 비운이 깃들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내외적인 비참상을 바라보고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밤이나 낮이나 우리의 비참상과 몰리고 쫓기는 수난길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적인 결의를 다짐하며 때를 맞추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기대를 하실 수 있는 것이요, 소망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놓고 60년대부터 오늘 이 자리까지 찾아 나온 자신을 반성하면서 자기 가장의 위치를 회고해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서로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육천년 동안 고대하시던 소망의 가정으로서 뜻에 입각하여 가정의 책임을 추구하는 입장에 섰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 할 때는 스스로가 냉정히 비판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정의 기틀을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지녀야 할 본연의 가정의 기틀을 수습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받은 가정이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70년도를 맞이하여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새로이 세워 나가야 할 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역사시대에 표창해야 할 것은 개인이 아닌 가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수많은 종족과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 앞에 내세우더라도 하나님이 응당 사랑할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가정이어야 합니다. 하나의 남편과 아내가 함께 자녀를 올바른 입장으로 지도할 수 있는 가정, 그런 가정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아벨적인 가정이라고 스스로가 자인하더라도 가인적인 자녀를 거느리지 않고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부모를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이 가인을 복귀함으로써 두 형제가 같은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고, 그 부모를 중심삼아 충효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아담 해와를 복귀할 수 없는 것이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누구 누구를 잃어버렸느냐? 아담을 잃어 버렸고, 예수를 잃어 버렸고, 예수 시대에 있어서 육적 환경을 침범받았듯이 외적인 분야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역사적인 가인형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이들을 다시 만나서 개인적인 입장이 아니라 가정적인 입장에서 축복을 받게 해 주겠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개인이 되어야 개인으로서의 아벨이 결정되는 것이요, 그런 가정이 되어야 아벨적 가정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여러분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기점이요, 중대한 내용인 것을 생각하고 다시 한번 심각하게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말로만 따라왔던 길, 생각으로만 받아들인 진리는 하나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30-108
지금 남은 것은 오직 행동뿐
영계는 어떤 세계와 같으냐 하면 마음의 세계와 같습니다. 마음의 사실이 그냥 그대로 옮겨진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이기 때문에 마음에 가책을 받으면 영계에 딱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풀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상대적 요건이 우리를 통하여 맺어져 있고, 그 원인의 기점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풀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으로는 뜻을 대하여 충성하면서도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충성하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뜻을 위하여는 그렇게 고민하지만 말고 길거리에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자기의 행동으로 옮겨 보는 것이 오히려 사는 길이요, 해방 받을 수 있는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를 따라오던 무리들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은 통일교회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교인이라 할지라도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마음으로만 신앙하는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왜냐? 마음적인 세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세계입니다. 마음에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미 하나님이 중심으로 계십니다. 지금까지 마음적인 중심이 없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실체적인 내용이 결과 되어질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어 온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역사노정 가운데 온갖 비운의 대가를 치러 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탕감제물을 통한 복귀섭리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마음에 앞서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역사를 담당한 하나님께서는 성서를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선조들에게 가르쳐 주는 데 있어서 왜 결과적인 사실을 못 가르쳐 주었느냐?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천만번 생각하고 천만번 알았지만 인간에게 그럴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르쳐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면 결정된 것을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 복귀섭리를 성사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서는 이것을 미지의 사실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행동만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아 있는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행동이 지지해 나갈 수 있는 기점이 어디냐? 개인이나 가정이 안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민족의 정착점을 만들어 놓는 자리요, 민족의 안착점을 만들어 나오는 자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최대의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하나의 가정이 희생되더라도 세계권내에 안착할 수 있는 하나의 아벨적 민족 국가를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0-109
지난날을 반성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다하자
주권 있는 국가의 백성이 되면 타국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없는 민족은 보호받을 수도 없는 불쌍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연의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바라 볼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본연의 나라로 돌아가야 할 한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본연의 나라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되는 것이요, 본연의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본연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본향 땅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본향 땅을 찾기 전에는 본향의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본향을 찾아갈 입장이 되려면 본향에 있는 부모를 그리워해야 되고,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지간에 화목하는 사람이 부모 앞에 효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가운데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본향 땅에는 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설사 홀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성경의 탕자를 맞이하는 형님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돌아오는 동생에게 형님 이상의 가치로서 모든 축복을 돌려줄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부모의 마음 앞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부모와 같이 살았던 형님이 진정한 의미에서 아벨의 책임을 다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입니다.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한 백성인 것입니다. 서쪽이 어두워 오면 훤히 밝아오는 동쪽을 향해 가고, 동쪽이 어두워 오면 서쪽을 향해 가는 집시의 무리입니다. 환경에 따라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이런 비운의 행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집시의 무리가 바로 통일교회의 무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시 같던 통일교회 무리들이 오늘날 삼천리 반도에 닻을 내리고 하나의 가정을 갖게 된 것은 영광의 날을 맞이하기 위한 출발인 것입니다. 이 가정의 기틀을 넓혀 하나의 종족을 편성하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고대하셨겠습니까? 이 일이 하나님과 인연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져 나간다는 사실은 엄청나고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리는 예수님이 죽어갔던 십자가의 비운보다도, 예수의 부활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기쁨보다도 더 큰 비장함과 환희가 교차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기 자신인 것을 얼마나 망각한 채 살아왔습니까? 하나님의 소망의 기틀이 되고, 역사의 표본이 되고, 부활의 표준이 되고, 시대의 선각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자기 자신인 것을 얼마나 많이 망각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활을 해온 데 대한 후회에 사무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망각한 사실에 대해 의분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부딪칠 수 있는 폭발력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내일을 향한 긍정적인 자아를 세우는 데 정성을 다함으로써 국가를 대하여 충을 다하고 부모님을 대하여 효를 다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삼천만 민족과 혼란된 세계를 향하여 부활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노라고 외치면서 세계를 자극시켜야 할 역사적인 책임을 우리가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국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만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촉구해야 할 결론적인 말이 무엇이냐? 선각자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또다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사명에 따라 수난이 비례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과 신념이 없으면 이 길을 감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일대를 전도하러 다닐 때 죽음이 동반하는 많은 문제들이 부딪쳐 왔습니다. 자기의 종족이 위협하고, 이방인이 위협하고, 원수들이 위협했지만, 사도 바울은 그 위험을 자기가 응당 받아야 할 선각자의 책임과 개척자의 사명으로 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자기의 짧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역사적인 모든 수난의 행로를 맞이하여, 이것을 규합하고 탕감시켜 나가겠다는 일념 아래서 개척노정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수립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사도 바울에 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축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늘의 혈족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을 아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단 하나 자기 개인 구원을 위하여 그렇게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사랑하는 자식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안식할 수 있는 복귀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무궁한 행복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입장에 여러분은 이미 세움받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에 세움받았고, 그 가는 길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여러분이 책임 못하게 되면 어느 누구에게 변명할 것이며, 또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지역장이나 또는 지구장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지역장이나 지구장 한 개인으로서 책임할 것이 아니라 가정으로서 책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책임시대는 60년대를 마감으로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가정적인 책임시대로서 아벨적 가정을 중심으로 가인적 가정을 찾아 세우는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가정이 복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의 가정과 더불어 여러분의 가정이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느냐? 이런 문제가 이제부터 수습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30-112
선생님 가정과 하나되어 전통을 세워야
오늘날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냐? 7백쌍 축복이라는 문제를 놓고 선생님이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이 잘못한 것을 청산하는 문제입니다. 가정으로서 가야 할 통일의 길 앞에 있어서 36가정이면 36가정이 오점을 남긴 것을 청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비운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아버지 앞에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72가정, 124가정으로서 하늘의 축복의 인연을 파탄시켜 버리고 역사상에 오점을 남긴 사람이나 선생님의 정성과 하늘의 운세를 불러 모아서 천지 앞에 선포해 준 거룩한 축복의 이름을 더럽힌 이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거쳐간 사람, 떨어져 나간 사람, 또는 실수한 사람이 많더라도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자면 이런 모습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70년대를 맞이하여 우리들이 영원한 가정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법도를 세워 그 형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우기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은 종적인 인연을 감당해야 할 가정들로서 많은 가정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될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자기 가정만을 중심삼고 선생님을 망각한 입장에서 살아왔습니다. 선생님 가정과는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모든 과거지사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이 70년대를 앞서 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만일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되었더라면 선생님이 추구하는 것이 강제적이 아닌 자동적인 입장에서 아벨적인 가정을 갖추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를 갖춘 아벨적인 가정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세워 놓고 가정적으로 희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 가운데 그러한 가정이 세 가정 이상만 남아지게 되면 탕감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목적을 두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여러분이 선생님의 가정을 아벨적인 가정으로 모시고 하나 되는 동시에, 여러분의 아들딸이 선생님의 자녀와 하나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의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가르쳐 주는 데는 여러분이 먼저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늘의 법도에 따라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어야만, 거기에서부터 하늘의 전통적인 효의 인연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위하여 뜻 앞에 충신이 될 수 있는 도리를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위하여 아들딸이 울 때면 너희는 나라 없는 백성이라고,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은 너희의 진정한 나라가 아니라고, 다시 모셔야 할 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손을 붙들고 눈물을 머금으며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품에 품은 애기의 숨소리를 느끼듯 하늘의 염려를 같이 느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리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을 남긴 부모로서 교육의 폭이 더해질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효하듯이 너도 효해야 되고, 아버지가 그 나라를 위해서 몰리면서도 투쟁의 역사를 엮어온 것과 같이 너도 충신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됩니다. 나는 이것을 여러분 앞에 어떻게 남겨줄 것인가 하는 것을 지금까지 필생의 목표로 삼아 나왔습니다.

즉, 여러분들 가운데서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평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뜻을 위해 사는 선생님을 하나님께서도 효자라고 인정하실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느낀 그것을 고스란히 전통적인 사상으로 정립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를 위해서 충신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30-114
우리의 갈 길은 유일한 길
그런데 그 사상을 흠모하면서도 자기 가정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나라 앞에 충신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하늘 앞에 효의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복귀역사는 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따라나오는 스승은 개인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효를 중심삼아 하늘 앞에 담판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입장을 책임지고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된 여러분은 마땅히 하나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요, 어느 한편이 아프면 같이 아파하고, 서러우면 같이 서러워하고, 기쁘면 같이 기뻐해야 할 운명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내가 과연 어떤 환경이나 시대를 초월해서 심정적인 입장에서 동반자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대한민국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우리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먼저 가인을 수습하여 가인적인 가정을 수습해야 되고, 가인적인 교단, 가인적인 국가, 가인적인 세계를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치 미지의 행로로 남아져 있습니다. 이것을 개척해야 할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음을 알고, 여러분은 생명을 걸고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생애를 바쳐서라도 싸워 나가야 합니다. 혹 이것이 자기 일대에 안 되겠거든 유업으로 남겨서라도 해결짓게 하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해원성사를 했다는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오로지 이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슬픈 일이겠습니까? 아내가 죽었다고 해서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쓰러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아내를 죽음의 자리에 내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남편과 자기 자식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봉사하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노정에 있어서 뜻을 세워 나왔던 선각자들이 그렇게 봉사했다는 것입니다.

‘개인 구원’ 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그들은 이렇듯 솔선하여 나왔습니다. 그러니 ‘가정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는 십자가를 몇십 번 지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의 개성체인 여러분에게 맡겨진 책임을 하는데 있어서는 민족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지만, 먼저 가정에 대한 책임을 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정을 대표하는 확고한 기틀을 마련하고 특권적인 권을 이룬 것을 볼 때에, 이 가정을 터로 하여 민족해방을 이루어 가려는 신념은 선 중의 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의 승리는 어떻게 이룰 것이냐? 아벨적인 가정으로서 가인적인 가정에게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인적인 가정이 자기들을 사지(死地)로부터 살려 준 사실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가인적인 가정들은 아벨적인 가정 앞에 영원히 결속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통해 해방된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섭리적인 원칙에 따라 하나님께서 복귀의 민족, 복귀의 국가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통일 족속으로부터 통일 민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인적인 교단을 복귀하고,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종교 형태를 이루는 일을 내외적으로 이루어 가야 합니다. 아벨적 교단의 입장에서, 혹은 아벨적 형제의 입장에서 국가적인 가인인 삼천만 민족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끝나는 날에 세계적으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세계를 지도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길이 아직까지 갖추어지질 않았기 때문에 가정으로서 완결지어야 할 사명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것이요, 종족으로서 완결지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적인 책임을 못 했다 하더라도 종족적 책임권내에 동참이 되면 종족해방과 더불어 가정복귀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종족의 책임을 못했다 하더라도 민족해방을 위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하게 될 때에 종족권은 복귀될 수 있는 터전이 성립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루 빨리 이 민족을 이끌고 세계 해방을 이루기 위해 세계 무대로 나서야 합니다.

30-116
나라와 세계의 해방을 위해 그 사명을 다하라
오늘날 우리들은 이와 같은 사명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까지 연결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이 시대권내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탕감해야 할 노정이 있다 할진대 그 개인이 가정을 위해서 탕감노정을 간다면 가정이 망하더라도 그 개인은 남아지는 것이요, 그 가정이 세계적인 형극의 노정을 나서게 된다면 나라가 망하더라도 가정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관점에서 고차적인 문제를 책임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걷는 것도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걷는다는 입장에 서야 되고, 사는 것도, 자는 것도, 가정을 투입하는 것도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각오로 나가는 날에는 천주 해방은 시간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서 가야 됩니다. 나라가 여러분을 찾아올 때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10년, 흑은 일생이 걸리고, 수십 대를 거치더라도 나라를 위해 가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가게 되면 그 나라는 역사시대에 부활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희생하여 선각자의 사명을 하면 기필코 새나라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가정을 이끌고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 국가적인 시대를 통해 나와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세계의 민족과 국가 앞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안내역을 맡아야 합니다. 안내역을 다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야만 영계와 육계는 통일된 평화의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안내자는 비로소 역사시대의 영원한 지도자로서 자리를 잡게 되고, 하늘세계의 영광스런 표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개척자의 사명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모험을 해서라도 안내역을 해 가지고 안내받은 사람과 하나되어 하늘의 가정, 하늘의 국가 형성의 표준을 세우는 데 지도자의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의 애국공신으로서 등장하는 자리에 서야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의 역사가 발전되어 간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0-117
기 도
아버님! 감사합니다. 1970년을 맞으면서 저희가 가야 할 길은 보다 힘든 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희 앞에는 개인을 움직여 나가야 할 책임노정보다도 가정을 움직여 나가야 할 책임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뜻은 개인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정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버님의 거룩한 축복의 손길과 아버님을 영원히 찬양할 수 있는 가정을 그리워하고,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아들도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스스로 당신 앞에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겠노라 다짐하고, 지금까지 젊음을 희생해 가며 책임을 하여 나왔습니다. 민족 앞에 밟히고 수많은 인간들 앞에 몰림받는 자리에 있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생활을 해오며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진 것은 아버지가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아버지의 희생의 대가로 말미암아 얻어진 결실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대신 저희들을 내세워 수난의 길을 가게 한 것도 70년대를 맞이하여 개체의 해방을 확대시키고, 개체의 책임을 감당시키기 위한 사랑의 역사인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발걸음을 같이하지 못하고 뜻 앞에 허물을 남긴 사람들도 다시 60년대 이상의 가치를 들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아들 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는 ‘나 아무개요’하는 입장을 내세우는 것보다도 하늘의 사정을 들고 나와 아버지 뜻 앞에 열심을 다할 수 있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민족의 한 기틀이 되고 세계 건설의 표준이 되어 전체적인 기점을 마련할 수 있는 내외 양면의 책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의 입장에서 가정을 대신하고, 혹은 단체에 있어서는 그 단체의 가정들을 대표하고, 나라면 나라의 가정을 대표하고, 세계의 섭리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평화의 가정을 모색하면서, 세계를 품고 하늘땅을 품고 나가는 저희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그 자리에 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제 개척자의 가정으로 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개인인 노아에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라 하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아벨을 통하여 제물 드리기를 고대했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던 것과 같은 개인을 통한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모세를 개인적으로 불러내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예수를 개인적으로 보내 가지고 공적인 노정을 세우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개인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가의 가정을 부르셨사오니 가정으로 나설 수 있는 때가 온 줄 아옵니다. 반드시 부부가 아버지를 대하여 효의 도리, 충의 도리를 다하는 것만이 가정이 해야 할 궁극적인 책임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생활에 절대적인 기원을 남길 수 있고, 영원한 하나의 역사성을 천적(天的)으로 마련할 수 있는 사상적인 기틀을 세울 수 있는 길은 가정이 효하는 길이요, 충하는 길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것이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해야 할 가정적인 소원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정이 가는 데 있어서 세계 무대를 극복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부부가 손에 손을 잡고 뜻을 생각하며 날로날로 하늘의 사랑을 찬양함과 동시에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아버지 앞에 몽땅 제물로 내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가정을 제물로 드려야 자식으로서 탕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알고 1970년을 맞이하여 가정을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싸워 나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통일가의 중심 책임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앞날을 길이 같이하여,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고 아버지의 세계를 찾아 힘차게 달려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