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2 to 30-89: 사랑의 귀결점

사랑의 귀결점
1970.03.17 (화),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30-72
사랑의 귀결점
‘나’를 두고 볼 때 이 ‘나’는 역사적인 산물입니다. 또, 과거의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의 인연을 통해서 태어난 `나’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나’가 태어나게 된 본연의 바탕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의 바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길을 가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30-72
인간의 욕망의 표준
사람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좋았던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상속받으려고 합니다. 과거에 위대한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공적이 있으면,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 그 자체로만 남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자기와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속성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나를 주체로 세우게 되면 역사적인 상대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또 역사의 주체를 세우면 나는 그의 상대적 존재가 되어 그 역사의 주체와 하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는 데에는, 역사적인 어떤 중심존재보다, 또 현재의 어떤 중심보다 내가 응할 수 있는 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주체와 현실적인 내가 하나되면 어떻게 되느냐? 역사를 지배하시고 현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과 상대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인간의 욕망은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느냐? 사랑의 목적이 성사되는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 가는 방향을 두고 볼 때 역사를 통해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생활이라든가 현실에서 세계와 인연맺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온 세계 만물 앞에 절대적인 주체로서 절대적인 권을 세워 가지고 만물을 상대적 존재로 세워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사랑권입니다.

현시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자기 스스로 세계적인 욕망의 권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위해 싸워 나왔고 지금 현재에도 그런 것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을 두고 봐도 그런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이 연결되는 것은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순리적인 내적 활동을 통해서 절대적인 주체와 대상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주체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되느냐? 오늘날 현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절대적인 기준을 서로가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국가가 선진국이 되고 더 발전하게 되는 것도 그런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 국가의 국민 전체보다 그런 주체적인 한 사람이 전국민의 사상권을 설정하면 그 나라는 부흥과 발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미루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나 세계 앞에 절대적인 사상을 중심한 하나의 주체적인 존재가 나오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그런 상대적인 세계 형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고차적인 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닌 주체자가 나올 때 고차적인 문화세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두고 보더라도, 우리 개체 개체는 출세를 바라고 승리를 바라고 있는데, 그것도 세계적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데 시간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초월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주체의 자리를 바라보고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에 가까이 나가려는 것이 오늘날 존재하는 만민의 욕구의 표준이라는 것입니다.

30-74
사랑권과 욕망 충족의 문제
그러면 세계가 하나되는 데 있어서 중심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권이 아니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관념은 막연합니다. 그 사랑권은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주체보다도, 대상보다도 더 높을 수 있는 가치의 권이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찾아 들어가야만 거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현실적인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체의 생명을 영원히 영원히 연장시키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욕망이기에 사람들은 영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생의 한계점을 넘어 어떻게 영생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종교계에서나 양심세계를 추구하는 선한 사람들이 문제삼고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중심삼고 우리의 욕망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인간에게는 현실만이 아니라 과거까지 지배하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 하는 추론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주체권을 바라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피조세계면 피조세계, 만물이면 만물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만물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은 한계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욕망에 한계선이 없는 한 행복의 기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앞서서 자기를 끌고 가는 자리에서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욕망이 다 이루어져서 만족상태에 도달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욕망의 한계선을 소화하지 못하고는 영원한 이상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의 욕망도 한계선이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 한계를 지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냐? 그것은 우리 자체가 요구하는 것이나 상대 자체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어야 합니다. 그 둘이 하나로서 서로 융화될 수 있고, 중화될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현재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할 때, 사랑권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자체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 진정한 사랑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진정한 내 소유를 바랍니다. 또 그 다음에 무엇을 바라느냐 하면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는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원인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철학과 종교는 그런 것을 모색하고 추구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만물을 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근원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사람과 진정한 만물과 진정한 근원자, 혹은 절대자면 절대자를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것이냐? 나 자신이 확실히 그와 관계맺을 수 있는 자신이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있다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은 나로 말미암은 사랑이 아닙니다. 근원적인 분으로 말미암은 사랑입니다. 그 주체와 내가 상대적 입장에서 하나되는 데 있어서 주체는 상대보다, 상대는 주체보다 더 존중시할 수 있는 그 무엇, 둘이 합한 가치 이상의 그 무엇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랑권입니다. 둘이 서로 중요시하는 사랑권인 것입니다. 이것을 개체를 중심삼고 보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실제로 그 기원에 어떻게 연결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전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느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아닌 입장에서 자기를 결정짓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성장과정을 통한 완성기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0-76
자기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를 사랑하느냐?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사랑이 막연했습니다. 그러면 왜 자기를 사랑하느냐? 절대적인 사랑권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로부터 연결되지 않고는 전체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중심삼고 절대시할 수 있는 사랑의 내용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만 어떻게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상대적 관계를 전부다 부정해 버리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세워 놓고 자기를 사랑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랑은 하면 할수록 실패의 동기가 됩니다. 횡적으로는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고, 종족으로는 모든 역사를 파탄시키는 동기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원칙에 따라서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는 절대적인 주체가 될래야 될 수 없습니다. 자기는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주체적 존재가 아니라, 주체 앞에 절대적인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적 존재가 가야 할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자기를 사랑하더라도 자기를 표준할 것이 아니라 주체를 표준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주체 앞에 상대가 되어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우리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몸을 사랑한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말을 하는데,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어떤 때 가능한가? 상대적 이상 세계에 있어서 사랑권을 중심삼고 요구하는 그 본체 앞에 상대적 존재로 설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한 채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파탄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동의 일체가 주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내용으로 결실되는 것이 아니라 파탄적인 내용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런 사회나 그런 국가는 망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세계를 두고 보면 이 세계는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문화세계를 창건하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세계는 개인주의적 입장에 있습니다. 원인적인 자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원인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한적인 경계선을 절대로 넘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의 그 `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의 입장에서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영원불변한 주체 앞에 완전무결한 상대적인 나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나를 사랑했다는 입장에 설 때에 여러분은 생각지 않은 결과를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절대적 주체가 고대하는 인류를 품기 위한 사랑, 모든 사랑을 대표한 첫 출발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인류를 대표한 한 분자입니다. 또한 나는 인류와의 횡적 관계를 중심삼고 본다면 지엽적인 실체입니다. 절대적인 주체 앞에 상대적 관념권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나는 인류를 대표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기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데에는 반드시 소유관념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원하느냐? 사랑은 자기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받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오늘날 우리 개체들의 입장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은 근원적인 사랑의 주체와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또 받고 싶은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자식은 부모의 사랑권내에 들어가서 서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 자기 것을 사랑하는 것을 확대하게 되면 결국 근원적인 사랑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요, 또한 모든 인류를 통합하기 위한 것이요, 만물을 주관하기 위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리고 자기가 절대적인 입장에 가까이 있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 한계선을 넘기 어려운데 그것은 왜 그러냐? 상대적인 자기 사랑을 먼저 완성하지 않고는 절대적인 주체의 사랑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이런 운명이 창조할 때부터 부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파탄이 오는 것입니다.

30-78
가정적인 사랑권을 형성하려면
우리는 절대적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권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욕망은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하여 상대적 관계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가까운 상대는 누구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서 자기를 중심삼고 제일 가까운 대상 사랑권은 무엇이냐?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 여자에게 있어서는 남자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무엇이냐? 우주의 근본 주체 앞에는 개체완성보다도 가정완성이 창조적인 것이고, 그것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본연의 사랑이 필요한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가정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이 각기 자신에게서 개인적인 사랑을 완결시킨 다음에는 상대적 사랑권을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 세계는 결과로 보면 남자 여자입니다. 이 남자와 여자를 묶어 주는 것이 상대적 사랑입니다. 부부가 생겨난 것도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자기 부모로부터 인연되어 나온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는 표준적 전통기준을 상속받고 나오는 것이 가정입니다. 이 가정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데, 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전부다 걸려 듭니다. 상대적인 남성과 여성의 권내에서 이 세계는 규합되는 것입니다. 세계 사람을 전부다 규합한 것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근원적인 주체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부모를 완전히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통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떤 존재냐? 자기와 최단거리에 있는 존재요, 절대 이상의 사랑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절대자의 결과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나와 확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존재냐? 그 부모 앞에 온 인류를 규합할 현실적인 결과적 존재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하느냐?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리 상대적 관계를 맺었다 해도 자녀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부모로서 자식을 갖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함과 동시에 상대를 갖고 싶어하고, 부모를 갖고 싶어하고,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인 하나님, 즉 주체 앞에 있어서 가정적인 사랑권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것, 그 가정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그 가정도 남을 것이요, 그 후손도 남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저 나라에 갈 때 참사랑을 지니고 가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역사를 대신하듯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흠뻑 받은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소질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소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가 인연을 맺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이상의 절대적인 사랑권을 추구하게 되면 입체적 세계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 그로 말미암아 후손들에 대하여서 그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규합시켜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야 됩니다.

사랑의 가정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부모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요, 부부는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며, 자녀는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 시대에서 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대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와 부부와 자녀가 일치하여 천주를 대표해서 우리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할 수 있고, 후손들에 대해서 우리를 따르라고 할 수 있고, 내심으로나 외심으로 주장할 수 있는 마음의 본향, 천정이 통하는 그곳은 천지에 기억될 것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결정되면 완전한 대상은 자연히 생겨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30-80
지금까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것
지금까지 하나님이 무엇을 찾아오셨느냐? 주체를 찾아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대상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았고, 당신이 지은 세계의 안팎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결과적인 하나의 기점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가정보다 우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와 하나되는 것은 역사와 현실이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나 하나를 중심삼고 부모를 사랑하므로 과거를 사랑할 수 있고, 상대를 사랑하므로 현실을 사랑할 수 있고, 자녀를 사랑하므로 미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3시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가지 사랑이 결집된 핵심체가 바로 가정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이 되었고 나는 그 후손입니다. 이런 타락한 세상의 인간을 구하러 오시는 분이 메시아인데 그가 찾아오시는 제일 근원적인 기점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가정을 붙안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정적으로 완전히 해원되면 메시아가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주관하시는 사랑권이 자리를 잡아 닻을 내릴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가정의 사랑이 떠난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개인적으로 하늘을 대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은 제 2차적인 것입니다. 사회에서 역사적인 사명을 하기 위해서 생활하는 것이 행복이냐? 그것도 제 2차적입니다. 인간이 영육을 합하여 살고 있는 이 지상생활에서 제일 가치있는 것이 뭐냐? 제 1차적인 것이 뭐냐? 어떻게 해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어떻게 상대와 연결되고, 어떻게 미래의 심정과 연결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것이 이루어진 세계는 사랑의 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정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뜻을 합해야 합니다. 가정과 가정이 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 가운데에는 반드시 주체적 가정이 있습니다. 종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횡적인 입장에서 보면 주체적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가정들은 그 가정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체적 가정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역사노정에서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에는 어느 개인이면 개인을 본받으려고 했고, 사회가 바뀌면 발전한 사회를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 많았고 또 그러한 국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본받으려고 하는 가정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세계 사조 앞에 그런 가정이 나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개 가정을 본받아라 하는 주의가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를 본받아라, 아무개를 본받아라 하는 주장들은 많았지만 어떤 가정을 본받아라 하는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에 남아진 문제는 무엇이냐? 우리가 숭배할 수 있는 어떤 개인이나 어떤 나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 만민이 추앙할 수 있는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후의 역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잘난 국가도 아닙니다. 이 천주를 통합할 수 있는 사랑권에 선 하나의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만이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만이 새로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가정만이 이 우주에 영원한 행복이 깃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우리가 안식하게 되면 행복의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30-82
천국의 기점은 가정
가면 갈수록 이것을 옹호하고, 가면 갈수록 이것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하려고 합니다.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자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자체가 반드시 가야 할 권은 어디냐? 우주의 주관권입니다. 우주 주관권의 중심이 되는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디냐? 가정입니다.

내가 축복을 해주면서 처녀 총각들을 많이 다루어 보았는데, 불과 몇 분전까지 기분 나쁜 것이 있고, 좋으니 나쁘니 하다가도 결정만 하게 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혁명중에도 그런 혁명이 없습니다. (웃음) `사랑!’하면 천지가 뒤넘이치거든요. 지금까지 좋으니 어쩌니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다가도 일단 결정을 한 다음에는 가지 말라고 해도 자기들끼리 계속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때 만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형성한 사랑권은 역사과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동포애가 아닙니다. 뭐라고 할까요? 동고애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요? 새로운 말이 나와야 될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말을 하나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미국에 가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늙은 노친들만 살고 있어요. 그들에게 `당신들 행복하오? ‘하고 물으면 `아들네 집에 가고 싶소’ 합니다. 그것은 아들네 집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또 `손자가 보고 싶소? ‘하고 물어보면, 안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에서 세계적인 운동을 벌이면 그런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 없이 전부다 몰려들어올 것입니다. 몇 명만 데리고 나가서 세계적으로 순회하고, 생활적으로 모범이 되는 몇 가정만 갖추면 세계는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되고,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절대적인 자리에 섰다 할 때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주체와 완전한 상대가 주고받으면 절대적인 가정이 됩니다. 그 권내에 태풍이 불고, 굴복될 수 있는 존재는 전부다 굴복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사랑에 굴복하고 사랑에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생활은 어디서부터냐? 가정입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가정을 입체적으로 확대시킨 것 뿐이지, 가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자기의 아내나 남편을 품을 때에는 이것은 세계의 남성과 여성이 하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계 인류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 가정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인 존재와 시대적인 나를 연결시키는 것, 즉 과거와 현재를 하나 만드는 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를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현실과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천년 만년 찬양하게 하려는 사상이 통일사상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며, 이 길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천국의 기점은 개인이 아니요, 국가가 아닙니다. 가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신랑 신부의 인연을 찾아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개인이 천국의 기점입니까? 가정이 천국의 기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아내면 아내, 남편이면 남편, 부모면 부모, 자식이면 자식들이 서로 사랑하면 사랑권이 갖추어질 것인데, 그러한 사랑권이 그 종족 앞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절대적 주체인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을 동기로 하여 상대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종족 앞에 중심이 될 수 있는 동기의 힘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사랑의 인연과 관계맺은 가정은 자동적으로 종족의 중심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 앞에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절대적 주체의 사랑권만 형성하면 자동적으로 민족 앞에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더 큰 사랑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좀더 아름답고, 좀더 원만하고, 좀더 내용을 갖춘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이 추구하는 주체적 사랑권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만 되면 환경적인 요건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반드시 그 민족사에 남아지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국가를 찾아 나오는 주체, 즉 하나님과 상대적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일치화 할 수 있는 기점을 만들게 되면 그 가정은 국가의 중심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까지 찾으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운세에 따라 점진적 단계에 앞설 수 있는 형태를 표준하고 그것을 추구의 대상으로 삼아서 현실의 자기와 관계를 맺으면 상대적 세계는 그러한 가정을 주체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 추구하는 본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을 보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개인을 위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요즘 통일교회 젊은이들을 보면 어디 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은 무엇이냐? 사랑을 느끼며 살자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서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서 일할 때, 아내는 집안에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은 서로 다르지만 마음은 같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절대적 주체 앞에 선을 돌리고 마음이 하나되면 상대적인 몸은 자연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순회 간다는데 `갔다 오소. 나는 피곤하니 잠이나 자겠소’ 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순회 갔다올 때까지 아내도 같이 정성들여야 합니다. 자식들도 그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으로 부모의 행복을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누구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깨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지운세요, 우주가 표준하는 사랑을 중심삼은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이것이 깨지는 날에는 절망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를 잃어버리면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껴야 효자입니다. 부모도 자식을 잃어버리면 비통함을 느낍니다. 부부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천년 만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를 중심삼고 가정이라는 하나의 모체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 본래의 창조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의 관계가 파탄되는 종말시대가 올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는 시대가 올 거예요. 부부끼리 서로를 원수시하고 미워하는 입장에 부딪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평면적으로 이 사회에 백일하에 나타나거든 종말시대가 온 줄 아십시오.

30-85
자기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되라
이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개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참된 가정입니다. 사탄도 무엇을 치고 나오느냐? 가정을 칩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었다가 하나되지 못하면 파탄되는 것입니다. 부자간에 부부간에 가정 전체에 파탄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었다가 파탄된 사람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을 위로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프냐?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것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초인적인 우주의 힘의 작용으로 인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이 힘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하나님과의 종적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적인 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 힘이 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떠난 결과를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통한 사실입니다. 내가 완전한 합격품이 되어야 하는데, 그로 말미암아 불합격품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완성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되는 불합격 요소를 갖게 될 때는 거기에 비례하는 요건을 우주의 힘이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가정에 있습니다. 역사를 품고, 시대를 품고, 미래를 품을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년을 거쳐오면서 찾아온 최후의 기점은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사랑이 연결된, 사랑으로 전부다 결속된 가정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다 여기에 주관을 받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정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에 아담 해와에게 준 본래의 사명이 아니었던가.

하나님은 남자 아담, 여자 해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한 새로운 가정을 꿈꾸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남녀를 세우신 제 일차적인 출발의 기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찾아 가정권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세상에서 충족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서 살아야만 천국도 무사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세계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서 싸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운동이 새로운 역사시대에 나타나야 할 것이요, 그런 운동을 제시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체의 입장에 서 가지고 횡적으로도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축복가정들이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개인 생활에 있어서는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가정생활에 있어서는 가정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통일가 전체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한번 하자’ 하면 두메 산골 오막살이에서도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앙에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일시에 미쳐지는 관계권, 그것이 하나의 세계를 대신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기뻐하면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이요, 아내가 기뻐하면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이요, 자식이 기뻐해도 가정 전체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일시에 우주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과 그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되면 천지의 어떠한 가치라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거룩한 자리, 높고 귀한 자리를 찬양할지어다! 따를 지어다! 백방으로 받아들일지어다!’ 하면 `옳소!’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백방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모순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혁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로 찾아가서 확정지어야 할 자리가 하나님을 중심삼는 세계애를 집약시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끼리 사랑해야 하고, 가정끼리 사랑해야 합니다. 김씨 종족이면 김씨 종족이 하나되어야 되고, 또한 종족과 종족이 서로 하나되어 자기 형제를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30-87
통일가의 갈 길
형제는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좋아하지 않느냐? 어머니 대신 딸이요, 아버지 대신 아들이니,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랑의 전통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탄세계에 그러한 부모가 없었으니, 참부모를 중심삼고 효하는 도리를 본받으라고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통일교회에서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 선생님과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을 대한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아들딸도 그렇게 배울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우리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한다. 시간을 초월해 있다. 또 환경을 초월해 있다. 빈곤을 초월해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식들이 부모의 명령이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가정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식들이 `이 길은 부모가 간 길이기 때문에 가야 된다. 모든 여건으로 볼 때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라고 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부부가 부모를 위하는 것을 그 자식들로 하여금 본받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후세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정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가정은 종족을 통해서 하나되는 것이요, 그 종족은 민족을 통해서 하나되는 것이요, 민족은 국가를 통해서 하나되는 것이요, 국가는 세계를 통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는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딱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갈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개체를 위해서보다 가정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개체를 위해서 싸우면 큰일납니다. 가정은 가정을 위해서 싸울 것이 아니라 종족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가는 이 민족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민족을 위한 주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소중한 것이 뭐냐? 세계와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는 그곳이 한계점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기준에서 실제적인 행동을 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없어질 때까지 남아질 것입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주권이 무너질 때 보면, 그렇게 당당하던 나라가 일시에 몰락되었습니다. 무엇으로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땅에 떨어졌습니다. 주권이 있어야 국가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형성되려면, 국토가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주권은 무엇이냐? 근원적인 하나님과 인연맺는 것입니다. 나라를 처리하는 사람들은 백성이 깊이 잠든 다음에 하나님과 인연맺어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권자는 백성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백성과 하나되어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번영하는 것입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이러한 것을 대표한 사랑의 가정과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주관권을 형성해야 할 것이 통일가, 통일교회, 통일세계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확실히 기억해 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30-89
기 도
아버지! 저희 개인이 세계를 향하여 활개를 치며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수많은 사연을 남겼지만, 가정을 망각한 자리에서 허덕이다가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 이 땅 위에 수많은 국가가 있다 할진대 국가가 어디에 기반을 두었는가 생각할 때 개인도 아니요, 가정도 아니요, 종족도 아니요, 역사도 아니옵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흘러가 버린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통일가가 아버지께서 내리시는 새로운 천명을 받아, 이 엄청난 세계사적인 책임을 감당하고자 하옵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제 1기반이 이 땅에 있어서는 나라와 나와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인연된 부부와 거기에 부모와 자녀가 아버지의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을 중심삼은 주관권을 계승해야 되겠사옵니다. 이런 입체적인 권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이런 인연을 추구해 나오셨사옵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자기를 주장해 나왔지만, 아직도 자기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자기의 한계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의 한계선을 넘어 새로운 가정 기반을 추구할 수 없었던 것이옵니다. 이것은 인류의 슬픔이요, 역사의 슬픔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우리 인류가 현시점에서 찾아야 될 하나의 형태가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내에서도 오늘 여기에 모인 저희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진정 몰랐던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한 것이 천상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정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최고의 미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실증적인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인간의 최후의 요구인데 그것이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희들이 진정 몰랐사옵니다. 이제 오늘 통일가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사명은 가정을 위주로 한 세계이옵니다. 그 가정은 세계를 위하여 있는 것이요, 나라를 위하여 있는 것이요, 민족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종족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불타 그 가족 전체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움직이게 될 때 전세계는 불원한 장래에 당신이 사랑하실 수 있는 주관권내에 완전히 품긴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신해야만 되겠사옵니다.

축복이라는 이 거룩한 명사 앞에서 저희들은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의 과거의 생활은 개인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천주사적인 인격을 중심삼은 생활이 아니라, 몰락해 버린 개인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을 타파해 버릴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와 같은 모임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70년대를 향하는 저희들은 한 개인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가정의 행복의 터전을 개척하고, 이것을 동기로 하여 민족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정과 그런 사랑권을 이루기 위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책임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70년대를 맞은 저희들, 통일 종족을 찾고 민족을 대표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만세의 뜻인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나서야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거느린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이 창조이상의 실현인 것을 아옵니다. 사위기대 완성이라는 말은 천번 만번 들었지만, 실제로 그 결정적인 내용을 사랑하지 못한 자신들이었음을 탄식하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사랑의 자극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사명을 완결시키어 민족과 세계를 끌고 가서 아버지와 연결시켜야 되겠사옵니다. 절대적인 주체와 절대적인 상대가 하나되는 그 힘의 요건을 이어 가지고 이것을 사랑의 주관권으로 삼아 세계 앞에서 행사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아름답고 원만한 자체로서 당당코 나설 수 있는 하나의 가정권이 이루어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번 수련 기간을 통해서 저희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려 하시옵니까? 저희들은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가야 되겠습니다. 전체의 행복이라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을 걸어오기 위해서 아버님은 비참한 역사를 거치셨습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더듬어 오셨습니다. 사망의 경계선을 넘나드셨습니다. 이런 가정을 찾으러 온 예수는 찾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저희들은 이 원통한 사실을 무너뜨려야 되겠습니다. 타파해야 되겠습니다. 원수의 화살, 원수의 비웃음, 원수의 비수가 이곳을 왕래하면서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을 농락하였사옵니다.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하나의 방파제는 가정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를 사랑하는 전통을 저희의 아들딸에게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형제애로 연결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영원한 효자 효녀는 당신이 소원하신 가정을 이루고 `당신이 주관하고 싶으신 인간을 백방으로 사랑하시옵소서’라고 하는 아들이고 딸임을 알게 되옵니다. 이들이 그러한 가정을 이루는 부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대표하는 가정이 되고, 세계 어디를 가든지 이 땅을 대신하여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절대적 위치에 설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고, 남아진 세계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고, 남아진 아버지의 사랑은 저희들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매 저희들은 총진군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핍박이 몰려오는 가운데도 세계를 책임지고 가야 할 사명이 저희 각자에게 남아져 있사옵니다. 이 길은 스승만이 갈 길이 아니옵니다. 세상에서도 스승이 이 땅 위에 살다 죽게 되면 제자들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전통적인 사실이 아니옵니까? 이들도 그와 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일시키기 위해서 가야 할 각자의 사명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만민 공통의 평등권이요, 아버님의 사랑에 접할 수 있는 주관권을 성립시키는 절대적 가치의 기반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사명을 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총진군하는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리옵니다.

이 70년대에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통일가의 사명이 지금 결정되었습니다.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할 길이 남아 있사오니, 축복받은 가정들에게는 책임이 가중되어 있는 사실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사회에 나를 자랑하기 전에 가정을 자랑하고 싶어해야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하늘 세계에서는 자기 가정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사회의 통례요, 자랑할 수 있는 그 내용을 많이 가진 가정을 백성들이 찬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한 사회가 저희들이 가야 할 이상사회이며, 그것을 표준으로 삼고 나아갈 수 있는 모체가 가정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0년대에는 가정이 기틀을 잡고, 가는 길을 올바로 잡아야 되겠습니다. 1970년대는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하면서 갈 수 있는 때이오니 여기에 속하여 가는 가정들은 영원한 하늘의 가정으로서 지상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니 부디 사랑의 주관권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 기원을 저희들의 가정에서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기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