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10 to 30-350: 70년대를 맞은 우리의 결의

70년대를 맞은 우리의 결의
1970.04.06 (월), 한국 전본부교회

30-310
70년대를 맞은 우리의 결의
[기 도]

아버님, 이날을 찾아오시기까지의 아버지의 수고를 생각해 볼 때, 이 땅 위의 만민들이나 이 뜻을 아는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무어라 아뢸 말씀이 없나이다.

아버님이여,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날을 맞을 때까지 참으시면서 섭리역사를 계승시켜 나오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이 희생당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숱한 핍박의 노정을 통하여 피 뿌리는 역사의 인연을 연결시켜 나오신 아버지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기독교가 세계의 인류를 복귀해야 할 내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오늘날 저희들이 감당하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런 각오와 결의를 가지고, 역사과정에 나타난 부모의 날을 찬양하기 위해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곳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들 위에 사랑의 손길을 펴시사, 당신의 깊고 높고 거룩하심을 나타내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운명은 물론이요, 세계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들로 하여금 최후의 싸움터를 담당하게 하여 아버지 앞에 승리의 개가를 돌려드리는 뭇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동안 역사과정에 슬픈 일들이 많았사오나 오늘 이와 같은 한날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희망에 찬 새해, 이 70년도에는 천적인 운세를 맞이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고, 준비를 다하여 갖추어진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께서 저희들을 내세워 칭찬하고 자랑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부모의 날을 설정하시기 전에 수많은 자녀들을 이끌어 축복하시어 하늘의 종족을 편성할 인연을 세계적으로 맺어 놓으신 아버님의 그 은공에 감사드립니다. 이들이 완전히 하나되어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를 창건하게 허락해 주시옵고, 이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옵소서. 저희로 하여금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도 남음이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과 몸을 거룩히 성별하시옵고, 이들이 아버지 앞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이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을 위시하여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사, 이날에 당신의 특별한 긍휼의 손길과 은사를 아울러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부족한 저희들이 부족한 정성을 모아 부복하였사오니 거룩히 여겨 주시어서 당신 앞에 축하드리는 합당한 조건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광과 소망으로서 품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더욱이 가정들로 규합된 오늘 이 모임이 아버지 앞에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70년대에는 60년대와는 다른 가정의 모습들이 되어서 축하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당신이 친히 주장하시옵소서. 경륜하시는 뜻만이 여기에 나타나 움직이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30-312
말 씀
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 11회 부모의 날입니다. 그간 여러 차례 이러한 기념식을 해 나왔습니다. 이러한 부모의 날을 60년도에는 우리가 그냥 축하하는 날로 흘려 보냈지만, 새로운 이 70년도를 출발한 이 마당에서는 새로이 맞는 부모의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0-312
복귀섭리역사는 한 분을 세우기 위한 역사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섭리도상에서 하나님은 부모의 날을 소원하며 나오셨지만, 그날이 찾아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나타나서 비로소 이 부모의 날을 설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 부모의 날이 설정됨으로 말미암아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도 설정되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60년 이 부모의 날을 설정하기까지만 해도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만물세계가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 슬픔의 역사를 더듬어 온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의 타락 이후 노아 시대를 거치고, 아브라함, 모세 시대를 거쳐 예수님 때까지 4천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심정을 가지고, 이 부모의 날을 복귀하기 위해서 싸워 나오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보내서 그 시대시대를 따라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에 이르는 선민권을 이루어 나오시면서, 그 선민권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의 4천년 역사를 엮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그 4천년 역사는 예수님 한 분을 세우시기 위한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 시대의 만민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과 본연의 부모가 연결되는 데 있어서 그냥 연결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반드시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서 예수님이 원하는 국가, 예수님이 원하는 민족, 예수님이 원하는 종족, 예수님이 원하는 가정, 예수님이 원하는 참다운 개인으로서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통해서 준비한 기반 위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개인이 서기 위해서는 가정이 옹호해 주어야 되고,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종족이 옹호해 주어야 되고,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이 옹호해 주어야 되며, 민족이 서기 위해서는 국가가 옹호해 주어야 되고, 국가가 서기 위해서는 세계가 옹호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찾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런 가중된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할 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서기 위해서는 요셉 가정이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요셉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요셉 종족이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것이요, 요셉의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이 서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국가 전체가 하나되어 울타리가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즉, 이 모든 전체가 단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내적으로 외적으로 통합된 기반 위에서 예수님이 새로운 복음의 역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울타리를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슬픈 3년 공생애 노정을 걸어야 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30-313
기독교가 해야 할 사명
그러면 하나님의 슬픔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예수님 한분을 보내시기 위해 4천년 동안 수고하셔서 하나의 가정을 세우셨는데, 그 세워진 가정이 예수님을 옹호할 울타리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가정을 세워 놓으신 것은 단 한분 예수님을 보호하게 하기 위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이 예수님과 분열된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홀로 고난길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4천년 동안 소망을 품고 나오신 하나님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연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러한 소망의 입장 가운데 세워진 요셉 가정이었으나 그 가정은 책임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은 이스라엘 민족의 4천년 역사의 터 위에 준비되어 그 민족을 대신하는 입장에 세워진 가정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친척을 하늘편으로 연결시켜야 했습니다. 그 친척들을 연결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을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를 통해 예수님, 즉 메시아가 올 것을 미리 알려 주고 준비시킨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중심삼고 요셉 가정은 종족을 흡수하여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하지 못함으로 그 종족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민족적인 환난과 국가적인 환난을 당하게 되었고, 가정도 잃어버리고, 종족도 잃어버리고, 민족도 잃어버리고, 국가도 잃어버린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와서 해야 했던 목적을 전부다 뒤로 미루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사정을 우리들은 이 시간에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던가? 부모의 날을 책정하고, 자녀의 날을 책정하고, 만물의 날을 책정하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러한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임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부받은 사명과 책임을 어떻게 완수하느냐 하는 고심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갈보리 산상까지 나아가는 그 행로는 더할 수 없이 비참하고 절망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을 남겨 주기 위해 `내가 다시 올것이니 너희들은 그날을 기다리라’ 하셨으며 또한 `다시 올 때는 신랑의 자격을 갖추어 올 것이니, 너희는 그날을 맞기 위해 신부 단장을 하고 그때를 기다리라’ 는 약속을 남기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가시면서 남긴 최후의 유언인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유언을 따라 나온 기독교는 비참한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제 1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 앞에 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제 2이스라엘의 입장에 선 기독교가 세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세계를 책임져 나왔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축복으로 이어져야 할 기독교의 역사는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기독교는 가는 곳곳마다 순교의 피를 연결시켜 가지고 세계적인 발전을 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지니고 있는 내적인 사명, 즉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독교가 갖추어야 할 단 하나의 문제가 무엇이냐? 신부 단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세계가 신부 단장을 해야 되지만, 어떤 특정한 국가와 특정한 민족과 특정한 가정과 특정한 개인이 오시는 신랑 앞에 신부 단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해 기독교가 해야 할 사명이요, 땅위에서 갖추어야 할 준비인 것입니다.

30-315
내적인 기독교의 전통을 세우시기 위한 섭리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그 누구도 모르는 슬픔의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끝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주가 오시는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기독교를 믿는 어떤 특정한 나라와 특정한 단체를 세워 신부 단장의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한국이 제 3이스라엘권을 차지하기 위해 무엇을 상속받아야 하느냐? 외적인 기독교의 전통을 상속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기독교의 전통을 상속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인 기독교의 전통이란 어떤 것이냐?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추방당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내면의 심정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없으면 한국은 제 3이스라엘권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국 기독교를 중심삼고 구원섭리의 손길을 펴신 그날부터 이 민족으로 하여금 기독교의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외적인 전통을 발전시켜 나오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내적인 전통을 이어받게 하기 위하여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단체를 세워서 내적인 준비를 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김성도 여인을 중심으로 한 철산 새주파, 허호빈 여인을 중심으로 한 복중교회파와 이용도 목사 등을 세우셨습니다. 해방을 맞이한 1945년도를 중심으로 하여 주님의 재림의 한 때를 맞기 위하여 예비해 왔던 것입니다. 그날을 위하여 준비한 단체나 개인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들은 역사를 지내고 난 지금에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 누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최종적인 사명을 책임질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는 역사적인 환경이었습니다. 그런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수많은 신령한 사람들은 오로지 기독교의 내적 책임을 지기 위해 만민으로부터 핍박과 반박을 받아가면서 싸움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회상해 볼 때, 그때 그렇게 싸웠던 장본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은 특정한 목사 계급에서 장로 계급을 통하여 평신도 계급에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때에 책임을 짊어진 특정한 목사들은 외적인 기독교와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신령한 역사와 외적인 기독교가 하나되었더라면 거기서부터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천적인 노정이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외적인 기독교나 내적으로 책임을 짊어지고 있던 중심 목사들이 전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깨닫지 못하고, 그 시대에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시대의 환경으로부터 오해와 질시를 받게 되자 자기의 사명을 의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책임을 수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들 대신 장로급, 혹은 집사급으로 그 책임이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런 역사의 서러움을 회상해 볼 때, 지금은 평신도들이 하나님을 모셔야 할 시대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를 중심삼은 한 중심이 전체를 통합하여 전체를 통솔할 수 있을 시대상에서 점차적으로 평면적인 형태를 갖춘 입장으로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외적인 세계를 중심삼고 보면 전체주의 국가 형태에서부터 민주주의 국가 형태로 이어진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개개인을 위주한 신앙을 강조하는 시대권내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외적인 세계의 개인 중심삼은 세계관과 기독교에서의 개인 중심삼은 천국관을 서로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개인을 수습하고, 가정을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하고,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를 수습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전체의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재림주님이요, 그것이 재림주님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현시대를 보면, 내적인 것이나 외적인 것이나 모든 국가나 모든 민족이나 모든 종족이나 모든 가정을 전부다 분산시키는, 개인을 위주로 한 시대입니다. 또한 외적인 생활이나 내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자기 개인을 위주로 해 가지고 자기 생명의 명맥을 유지해 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민주주의나 기성교회는 이러한 시대를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신앙관을 중심삼고 후대에 남아질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또 그런 무리는 어떤 무리냐? 개인의 입장에서 새로운 가정관을 가진 사람이요, 새로운 종족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또한 그런 입장에서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를 세우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반해서 외적인 세계에는 개인을 중심삼은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종족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를 대표해서 그런 내용을 가지고 왔던 사람들은 전부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이 내적인 책임을 짊어진 기독교권내에 선 개개인 가운데에서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종족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천국관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며, 그런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이 지상에 벌어져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0-318
통일교회의 출현과 지나온 길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지금은 어떤 때이냐? 우리 통일교회의 개인적인 신앙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완성기준에 선 개인을 대하시는 때인 것입니다. 그런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완성하고, 종족을 완성하고, 민족을 완성하고, 국가를 완성하고,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 오늘날 여러분이 따르고 있는 통일교회의 진리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통일교회의 진리는 약 20년의 통일교회 역사 가운데서, 1960년에서 1970년까지의 싸움의 노정으로 말미암아 밝혀진 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창세전부터,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창건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창조이상 가운데 있던 진리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이상까지도 내포한 역사적인 인연을 지니고 있는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가 발족은 됐지만, 그 이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첫 깃발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날이 있었느냐? 있었다면 그날이 어떤 날이냐? 어떤 날이었느냐 하면 `부모의 날’ 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날이 이 땅 위에 나타났지만, 이날은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한 단계를 넘어야 할 간접주관권내에 있는 부모의 날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정성기 완성급에서 타락을 했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설정하는 데도 장성권을 넘어선 완성권내에서 설정한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그 자리, 장성기 완성급의 자리에서 설정한 것입니다. 그날이 1960년에 설정한 부모의 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7년노정을 거쳐왔습니다. 그 7년노정 기간 중에 자녀의 날을 설정했고, 만물의 날을 설정하였습니다. 또한 그 7년노정이 끝나고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하여 알다시피,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축복을 받아 부모가 되는 그날에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 자녀의 날이 결정되어 출발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 모든 날들이 그 한날로 귀결되었을 것인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7년노정이라는 기간을 두고 이것을 복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 자체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의 슬픔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968년, 하나님의 날을 설정한 그날부터 우리 통일교회는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 2차 7년노정이 출발된 것입니다. 이 1970년도는 제 2차 7년노정에 접어들어 3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제는 부모가 책임해야 할 시대가 지난 것입니다. 이 3년 기간을 중심삼고 자녀들이 책임해야 할 횡적인 터전을 공고히 해 가지고 제 3차 3년노정을 통하여 완전한 결정권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 1차 3년노정 기간에는 참부모를 중심삼고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설정하여 세계적인 횡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제 2차 3년노정을 출발하는 가정들에게는 이 민족을 대신하여 완전한 횡적 기반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 책임과 사명을 완결짓는 데까지는 거리를 남기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한없이 슬픈 사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로서 세운 부모의 날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로서 세운 부모의 날, 즉 자기의 종족을 중심삼은 부모의 날을 가져야 합니다. 또 자기 종족을 중심삼은 자녀의 날을 가져야 되고, 자기 종족을 중심삼은 만물의 날, 자기 종족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축복가정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 1차 7년노정은 어떤 길이었느냐 하면,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에서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을 청산짓는 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생급, 장성급, 완성급을 거쳐 나가는 복귀섭리의 과정에서 그 기간 동안에는 완성급을 거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사탄이 주관하는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완전히 사탄권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권내에서 부모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 복귀된 자녀의 명분을 세운 후에 다시 개척의 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과거를 대신하여 참소받아야 할 조건들이 심어져 있는 것이요, 현재를 대표해서 참소받아야 할 조건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들을 탕감하더라도 투쟁의 역사를 거쳐 전진해 나가지 않으면 완성의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은 선생님을 위주로 하여 선생님의 가정이 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 도상은 누구의 협조를 받아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누구든 협조해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인류의 부모인 아담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으로 오시는 분만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30-320
유대교와 같은 사명을 해야 할 통일교회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어떤 입장에 있어야 하느냐? 이스라엘 나라 앞의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대외적으로 충돌하여 들어오는 모든 사탄세력을 방비하는 대비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은 그런 책임을 다했느냐?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기는 커녕 가중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역사노정을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축복받은 가정들은 맡고 있는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제 2차 7년노정을 맞이하여 3년노정을 거쳐 가면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나라를 대신하여 유대교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책임을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 당시의 유대교는 이스라엘 나라의 내적 종교였습니다. 이 내적 종교인 유대교는 오시는 메시아 앞에 이스라엘 나라를 일체화시키는 데 중보적인 역할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한 유대교의 사명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그와 같은 입장에서 책임해야 할 종교가 통일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은 요셉 가정의 일족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는 요셉 가정의 일파를 중심삼고 이루어진 유대교와 같은 입장입니다. 요셉 가정과 그 일족과 유대교가 일치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제 1이스라엘권으로 세워 그 나라를 메시아가 통치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로 결정지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중간에서 책임지고 완수해야 하는 것이 유대교의 사명이 아니었느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요셉 족속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되는 것이요, 이스라엘 권을 대표해야 할 유대교 대신 책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로부터 시련과 고통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도 대한민국과 기성교회로부터 시련과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되어서 제 2차 7년노정을 넘어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출발부터 하나되지 못한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되지 못한 입장에 섰던 것을 반성하고 이제 그런 시대를 끝내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 2차 7년노정 가운데 제 3차 년도인 70년도의 부모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부모의 날을 맞이한 이 좌석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여 예수님 앞에 중보적인 책임을 해야 했던 유대교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 통일교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실을 다시 한번 회개하고 이제 70년대를 맞이해서는 가정적인 십자가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런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322
70년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책임과 사명
1960년대는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자리를 잡기 위해 싸워 나오는 기간이었습니다. 이제 1970년대를 맞이했습니다. 이때는 어떤 때냐? 이때는 가정들이 종족을 복귀하여 사람을 복귀하기 위한 하나의 완전한 기반을 닦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2차 7년노정의 3년째를 맞이한 이 70년대에는 우리가 그동안 책임을 다 했든 못 했든간에 하나님 앞에 국가와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늘의 운세가 우리 앞에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이 70년대를 맞이한 우리들의 책임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과 통일교인들이 하나되어서 세계를 천운과 연결시킬 것인가? 이런 새로운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명을 고취시키고, 그 사명 앞에 가일층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입장에서 오늘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할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입장에서 부모의 날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탕감의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탄이 이날에 대해 핍박하고 조롱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 2차 7년노정의 3년째를 맞이하였기 때문에, 축복가정들이 하늘의 운세를 중심삼고 철석같이 뭉쳐서 민족 복귀와 세계 복귀를 위하여 행군을 개시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가 이 70년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70년대를 앞에 놓고 볼 때, 이 70년도는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이 해는 제 2차 7년노정 중에서 3년노정을 넘어가는 해요, 7년노정에서 사람을 찾는 해, 즉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노정을 걸어 나왔던 자기 조상들과 자기의 혈족을 찾아 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가정을 중심삼고는 조상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이 되어지고,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혈족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이 닦여지는 시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될 수 있고, 또한 안팎이 갖추어진 환경의 터전을 맞을 수 있는 때가 70년도라는 것입니다.

이 70년도에는 사실상 이것을 연결하는 때입니다. 부모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가정이 하나되어야 하고, 또 여러분의 자녀들과 부모님 가정의 자녀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로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70년도에 해야 할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7년노정이 연장되게 됩니다. 이 7년노정이 연장될 때 여러분은 7년에 3곱을 해서 21년 동안 가야 된다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우리 앞에 있어서 7년노정이 연장되게 된다면,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 이 국가, 이 세계 앞에 금후에 나타나게 될 그 비참상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같은 사명을 가진 우리 교단이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이 민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70년도에 맞는 부모의 날에는 안팎으로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갖추지 못한 과거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각자가 갖추어진 새로운 부부의 모습으로서, 갖추어진 새로운 가정의 모습으로서 이스라엘권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개인적인 권이 아닌 가정적인 권을 중심삼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스스로 가정권을 갖추었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권을 갖추겠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인으로서 승리권을 추구하는 그 노정에서는 사탄이 얼마든지 참소할 수 있습니다. 타락의 결과적 존재인 인간이 개인적인 복귀과정에 있을 때에는 아직까지 가정적인 기준이 결정되지 않은 자리이기 때문에, 사탄은 만우주를 걸어 놓고 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잘못하면 개인이 참소받게 되고, 개인이 잘못한 것으로 말미암아 가정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 민족, 국가도 그렇게 걸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개인을 중심삼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개인을 세우기 위한 가정, 개인을 세우기 위한 종족, 개인을 세우기 위한 민족, 개인을 세우기 위한 국가, 개인을 세우기 위한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70년대에는 개인을 넘어서 가정을 세우기 위한 때인 것입니다. 내적 가정이 외적 가정을 세워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지어야 할 때가 70년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0-324
7년노정을 중심삼고 탕감해 나온 것
가정이 성립된 때는 개인을 중심한 시대가 아닙니다. 해와가 타락하게 된 것은 아담이 아닌 아담을 대신한 다른 상대자를 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정을 타락시키게 된 동기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오늘 우리들은 개인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은 하나의 내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외적 가정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외적 가정은 내적 가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완전히 결속시켜야 할 때가 제 2차 7년노정 중의 3년노정을 가는 지금 70년도입니다.

그러면 지나온 제 1차 7년노정의 3년 기간에는 무엇을 하였느냐? 36가정을 축복하였고 72가정과 124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36가정과 72가정을 축복한 것은 탕감복귀의 역사노정에서 종적인 입장을 중심삼고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또 124가정은 세계의 국가를 대신하여 찾은 것과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내적으로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외적으로 세계와 연결시킬 수 있는 발판이 안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이 발판을 닦아야 합니다. 축복가정들이 발판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적인 기준이 결정되더라도 외적인 기준이 내적인 기준과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어 주고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 2차 7년노정의 3년 기간을 맞는 이 시대는 어떤 때냐? 여러분 자체들이 조상이 될 수 있는 기간이요, 여러분이 종족을 이룰 수 있는 기간입니다. 이미 축복받은 여러분의 일파를 중심삼고 천명을 따라 사탄권을 넘어설 수 있는 기간입니다. 70년도가 이렇게 중요한 시대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는 꿈도 못 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개인적인 시련노정을 거쳐온 역사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은 내적인 문제는 책임지고 나왔지만 외적 환경에 있어서의 중심적 입장으로서는 서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혼자서는 안팎을 갖춘 기준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의 약속을 남기고 가신 것입니다.

안팎을 갖추어야 할 그 책임을 완결하기 위하여 신랑으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신랑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가정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메시아가 가정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준비해 나오던 민족이 가담해야 하며, 종족이 가담해야 하며, 가정들이 가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수많은 국민이 그런 자리에 가담해야 할 입장이었던 것과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그런 역사가 출발했다면, 메시아의 사명을 책임진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앞에 이스라엘 국가와 같은 형태를 만들어 놓았느냐? 안 만들어 놓았습니다. 유대교와 같은 교단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습니다. 요셉 가정과 같은 가정이 되어 있느냐? 안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핍박을 받을 도리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시대에는 2차적인 수난의 길이 철옹성같이 앞을 가로막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국가적으로 배척을 받았고, 교단적으로 배척을 받았고, 가정적으로 배척을 받았고, 친척으로부터 배척을 받았기 때문에 재림주님도 이 땅에 와서 그런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운명길을 거쳐온 것이 통일교회의 원통한 역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면서 외적인 세계로부터 핍박받는 도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가서 잃어버렸던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 가정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개인을 복귀완성하려면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복귀완성하려면 종족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종족을 복귀완성하려면 민족이 없어서는 안 되며, 민족을 복귀완성하려면 국가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과 개인을 평면적인 도상에 하나로 연결시켜서 그와 일치시키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하기 위해 점차적인 단계를 거쳐 가지고 7년노정이라는 과정를 걸어 놓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60년대에 치열한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0-326
땅 위에 하늘의 터전을 세워야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 개인을 찾기 전에 가정을 찾아야 되고, 가정을 찾기 전에 종족을 찾아야 되고, 종족을 찾기 전에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을 찾기 전에 국가, 즉 나라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 가정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책임이 끝나게 되면 세계를 위한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며 닦아 놓은 터전은 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거치며 섭리를 이끌어 나오셔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를 중심삼고 2천년 역사를 이끌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땅 위에 어떠한 주권을 가진 이스라엘권을 형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없는 무리로서 떠도는 구름같이 발붙일 땅을 한치도 갖지 못한 채 눈물어린 역사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서럽고 억울한 나그네 신세와 같은 피치 못할 운명길을 거쳐오면서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개척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의 한이 무엇이냐? 땅 위에 자리를 못 잡은 것이 한입니다. 하나님의 한이 무엇이냐? 땅 위에 자리 못 잡은 것이 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내 한 개체가 이 땅에 자리를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개체가 땅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가정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종족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민족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국가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워서 4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오신 예수님은 무엇을 바라보았느냐? 요셉 가정을 넘어서서 이스라엘 나라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가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시련과 고통은 즉각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시련과 고통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의 기쁨은 즉각적으로 이스라엘의 기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개인의 기쁨과 그 가정에서의 기쁨은 이스라엘 나라의 기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가 그를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라의 기쁨도 민족의 기쁨도 전부다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만민의 서러운 운명을 수습하여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시 찾기 위한 제 2차 전선을 향하여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승하여 제 3차 전선을 향하여 나아가며 이 세계를 수습하여 복귀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연두에 여러분에게 `승리적 통일전선’ 이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 개체를 놓고 세계성을 길러 주기 위해 한 말씀이었습니다. 즉, 광범위한 의미의 승리적 통일전선을 갖추어야 된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무엇이 승리적 통일전선이 되어야 하느냐?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종족, 종족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민족, 민족이 자리잡을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지도이념은 나라가 안식하기 전에 가정이 안식할 수 없고, 나라가 안식하기 전에 통일 종족이 안식할 수 없으며, 나라가 안식하기 전에 통일민족이 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서러움은 나라의 서러움과 직결됩니다. 우리 가정의 슬픔은 나라의 슬픔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이냐? 대한민국은 외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의 부흥을 위해서 투쟁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한계점에 이르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 내적인 정신문제를 들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작년부터 제 2차 경제개발계획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분야가 결핍되게 되면 새로운 민족 정기를 이어받을 수 없고, 새로운 전통을 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사명을 다하는 민족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사상을 중요시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안팎을 둘 다 중요시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주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외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면, 우리는 내적인 문제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대에 우리가 뜻을 향하여 결의했던 그 이상의 결의를 해야 합니다. 그때는 개인을 중심삼고 탕감노정을 향하여 나가던 때였습니다.

선생님이 요전에도 여러분에게 말씀했지만 선생님은 여러분들 보다 한 단계 앞서서 나갑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때 선생님은 가정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은 아직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완성부활권을 갖추지 못한 기준, 예수님과 성신이 재림의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한 기준과 맞먹는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재림역사의 기준을 땅 위에 완전히 세우기 위한 때가 70년도부터입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종족을 찾아 세우고, 과거의 조상들이 책임해야 할 것과 현시대의 우리들이 책임해야 할 모든 것을 탕감시킬 수 있는 때가 제 2차 7년노정의 3년째를 맞이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3년의 기반 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30-329
왜 7년노정을 가야 하는가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강력히 결합된 단체가 되어야 됩니다. 세계의 그 어떤 단체보다도 강해야 됩니다. 우리의 사상은 개인주의적인 사상이 아닙니다. 우리들 개인이 주장하는 사상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사상이며, 우리 가정이 주장하는 것은 세계를 대표해서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중심삼은 민족이 주장하는 것은 금후의 시대에 어떤 민족도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주장 자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써 완전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연결시켜야 할 것이 제2차 7년노정의 3년을 맞이한 70년도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맞이했던 것과 같이 습관적인 입장에서 `부모의 날’ 을 맞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가정이 자리를 잡기 위한 과정에서 맞이했던 `부모의 날’ 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역사상의 모든 일을 탕감시키는 과정에서 맞이했던 `부모의 날’ 이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탕감되어서 안팎이 하나될 수 있는 시대권내에서 `부모의 날’ 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70년도에 우리가 맞이한 이 `부모의 날’ 은 역사적인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에게 7년노정이 언제 있었느냐? 선생님이 7년노정을 세운 때서부터 가정적인 7년노정을 다 갈 때까지의 기간이 선생님에게 있어서 21년노정입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장성기 완성급의 자리까지는 가정이 가는 노정이 아니고 개인이 가야 되는 노정인 것입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개인으로서 가야 할 제 1차 7년노정과 제 2차 7년노정을 이미 거쳤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완성기를 향하여 제 3차 7년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7년노정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통일교회의 신도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60년도에 출발한 제 1차 7년노정은 선생님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는 제 3차 7년노정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여러분 자신의 7년노정기간은 언제냐? 인간은 누구나 이 7년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공식입니다. 이 7년노정은 누가 가야 하느냐? 가정이 가야 합니다. 이 7년노정을 거쳐 장성기 완성급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직접주관권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장성기 완성급에서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갈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기준을 넘어서 부모와 자녀와 만물이 하나로 규합된 조건을 세워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속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런 기반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은 망하더라도 선생님 가정은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완성권내에 선 선생님의 가정은 완전히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기준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완성권내에 들어선 그날이 누구나 평면적으로 맞을 수 있는 부모의 날이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자녀의 날이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만물의 말이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러니 개개인이 맞이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가정적 7년노정이 있기 전에 여러분 개체의 7년노정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과정에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장성기 완성급까지의 성장과정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준비된 기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런 기간을 중심삼고 엮어져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6천년 역사는 7천년 역사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시대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7천년의 역사를 거쳐서 하나의 완전한 남성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7년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들은 7년만으로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하는 7년 기간이 있어야 하고, 성사시키는 7년 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타락하기 전의 기준까지 찾아 올라가는 7년 기간이 있고, 거기에서부터 싸워서 완성의 자리까지 가야 하는 7년 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탕감하기 위한 7년 기간과 성사하기 위한 7년 기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한 단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제 2차 7년노정이 여러분에게는 탕감하기 위한 제 1차 7년노정에 해당하는 것이요, 선생님에게는 성사시키기 위한 노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2차 7년노정에는 국가를 중심삼고 단판을 지어서 이겨야 됩니다.

30-331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는 가정이 되어야
이제 세계의 정세도 안팎으로 섭리적 이념에 들어맞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2차 7년노정 기간에 최후의 결정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성사할 수 있는 7년노정이요,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뜻앞에 기여할 수 있는 7년노정입니다. 그리하여 안팎으로 하나될 수 있는 7년노정은 제 3차 7년노정이기 때문에 그때는 우리가 세계적인 발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으로 본 견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렇게 되는 기간을 선생님은 21년으로 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는 앞으로 14년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14년 기간을 맞기 위해서는 먼저 7년이라는 기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제 3차 7년노정을 넘어서게 되면 이 세계는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일 수 있는 시대권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제 1차 7년노정을 지냈기 때문에, 이 제 2차 7년노정은 가정적인 탕감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가정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가정적으로 어려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십자가를 지는 때가 아닙니다. 가정적인 십자가를 져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이 기간에 여러분은 역사적인 탕감을 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탕감하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이 탕감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책임자만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노정은 가르쳐 줘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가운데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복종하면서 가야 하는 것이 탕감복귀노정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있는 힘을 다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1968년부터 새로운 소망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때부터는 가정을 중심삼고 수습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430가정들에게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라’ 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그런 사명을 해야 할 때가 기필코 오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또 자기 아들딸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복귀한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외적 아들과 내적 아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뭐가 되느냐? 심정일치를 이룬 가정이 한 가정이라도 있으면 탕감복귀역사는 이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스승이 이룬 승리의 터전을 찾아가야 됩니다. 이제 제일선에서의 싸움은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게릴라전과 같은 국지전입니다. 우리 후방에 남은 적의 패잔병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을 방비해야 될 때가 제 2차 7년노정입니다.

제 1전선인 제 1차 7년노정에서는 사탄 전체가 전면적으로 통일교회를 공격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등, 가까운 사람 모두가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면적인 전쟁의 시대는 지나가고 부분적인 전쟁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승리적인 권내에 들어섰다는 신념을 갖고 틀어진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원칙적인 이념을 가지고 나서야겠습니다. 그러면 종족도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3년 이상 종살이를 하라는 것입니다.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 3년 이상 피땀을 흘려 온갖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족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에서 여러분의 가정들이 그런 책임을 다했더라면 여러분이 지금 집을 나와서 생활하는 형편이라도 각자가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뜻을 대하고 그 뜻을 펴는 개척자의 사명을 하면 그 종족이 옹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친족들이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자기의 아들이나 자기의 손자 혹은 자기의 형님이나 조카에게 동정은 못할망정 지금까지 핍박하였구나 하는 것을 자인하게 되면 모든 동포가 협조하는 길이 열릴 것이 아닌가? 여러분이 이러한 운동을 해야겠기에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분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그러한 책임을 감당한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임하지 못했으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완전히 하나되면 이 뜻을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시간문제라는 거예요.

전세는 이미 우리에게로 기울어져서 승리권이 결정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최후로 그것을 정비하는 문제만이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야 할 노정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30-333
1960년도부터 1968년도까지의 내적 수난노정
1968년도부터는 가정적인 십자가를 지고 가는 때입니다. 6천년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가정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할 기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적 십자가를 누가 지겠는가? 지금까지 그 십자가를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민족과 국가를 대신한 십자가를 지고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재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이 남아지게 되었고,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이 남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6천년 역사가 돌고비길을 거쳐왔기 때문에, 양면적인 탕감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60년대까지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 14년노정은 야곱이 걸었던 14년노정과 같은 기간입니다. 그 기간을 넘어서야만 가정을 이루어서 그 가정의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땅 위에 자리를 잡아 가지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그 누가 자신을 동정해 주더라도 그 동정을 받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동정할 수 없거니와 동정받을 수 없는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끝내고 가정으로서 생활의 터전을 갖춘 60년대부터는 가정적 십자가의 길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직접 지도하는 일을 중단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1964년 여름까지 이 자리에서 주일 낮예배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그만 두었는가? 그것은 외적인 문제보다 내적인 문제가 더욱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6천년의 역사를 탕감시켜야 할 사명을 지고 있는 연고로, 여러분과 교회보다 가정적 십자가를 어떻게 탕감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부모의 날’ 을 책정하고, `자녀의 날’ 을 책정하고, `만물의 날’ 을 책정하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1960년부터 시작해서 1968년도 정월 초하루를 기하여 하나님의 날을 선포할 때까지의 내적인 수난의 노정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이 길을 나오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탄과 대결하여 가정적 단계로 넘어설 수 있는 한 기반을 닦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사적인 승리입니다. 이제야말로 천하를 내 휘하에 두고 하나님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제 2차 7년노정을 가야 할 여러분에게는 가정적 십자가를 져야 할 기준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과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믿고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3년 기간만 절대 복종하고 지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복종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가정적 수난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고생을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수난의 길을 넘어서 가지고 가정적인 수난의 길을 맞게 되었으니 이것이 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30-335
종족을 찾기 위해 환고향하라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축복을 받고 제 2차 7년노정권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가정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마음대로 살던 때와는 다릅니다. 혼자 살 때에는 먹을 것이 없으면 굶거나 며칠씩 금식을 하면 그만이지만 가정을 이루었을 때에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드시 환경적인 조건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안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뜻을 위해 간다고 하더라도 뜻만을 위주로 해서 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입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생활이 문제인 것입니다.

가정이 발전하면 민족이 되는 것이요, 민족이 발전하면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축복가정은 무엇이냐? 지팡이와 같습니다. 무슨 지팡이냐? 세계적인 사망의 세계를 건너갈 수 있는 다리요, 그런 길로 인도하는 지팡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전도하러 나가야 할 곳은 어디냐?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가라, 환고향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복된 입장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고향에 못 갑니다. 선생님의 고향은 이북이기 때문에 국가가 통일이 되기 전에는 고향에 갈 수 없습니다. 다리를 건널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고향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은 환고향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처자, 형제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수 있지 않느냐? 영원히 망할 수밖에 없는 민족을 염려하는 자리에서 내 부모 형제를 붙들고 통곡의 눈물을 흘려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그런 환경이 없습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이북 땅이 되어 있기에…….

여러분이 2차 7년노정을 가게 된 사실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승리의 터전, 즉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갈 수 있는 기반이 닦여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 1차 7년노정이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통적 기반에 여러분이 접붙으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접붙여야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조들이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김씨면 김씨 문중에서 잘못한 것을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제 2차 7년노정 기간에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이 기간은 예수님의 종족을 찾을 수 있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종족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환영하는 권내의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중심과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30-336
섭리적 관점에서 본 70년대의 운세
여러분이 중심과 하나되어 제 2차 7년노정을 감사히 가야 합니다. 이 노정은 가정을 이끌고 넘어가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축복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조건으로 3가정을 세워서 그들을 중심하고 나왔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종족 복귀를 하면 거기에는 3가정이 자연히 있는 것이요, 12가정도 자연히 있는 것이요, 36가정과 72가정도 자연히 있는 것이요, 124가정도 자연히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 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명이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족복귀를 하는 길이 하늘로 가는 길이요, 종족복귀를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그것을 위해 노력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요, 자기를 영광으로 모실 수 있는 나라가 있게 되는 것이요, 지금까지의 자기의 수고를 찬양할 수 있는 나라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자나깨나 먹으나 가정이 넘어야 할 시련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과업을 어떻게 완수하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3년노정을 지나 선생님을 중심삼고 횡적인 출발을 하게 되면 선생님이 세계 도상을 출발하던 때와 마찬가지가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때를 맞이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천운이 우리 앞에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70년도 이후에는 무한히 발전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집을 나와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전도했습니다만 그때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기의 자리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자기 부모를 대해서 혹은 친족을 대해서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지금까지는 가정적으로 반대받는 십자가의 기준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그들을 복귀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시련에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거국적으로 종족을 찾아가서 전도할 때입니다.

선생님이 36가정을 축복할 때는 나의 혈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밤잠 못자며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 민족에게 말한다는 것은 슬픈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기 혈족과 더불어 이런 축복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일입니까?

여러분들은 종족 전체를 복귀해야 할 엄청난 사명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종족 전체를 복귀하면 민족은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70년도는 선생님의 가정이 핍박도상을 뚫고 지나와서 3년째 맞이하는 해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횡적인 기반을 탕감시킬 수 있는 3년노정 기간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는 완전히 하나로 단결하여 국가와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방향을 갖추어 나가게 되면 세계의 운세는 통일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천운은 통일교회를 향하여 다가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적 관점에서 본 70년도 현재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들이 맞이하는 부모의 날은 옛날에 맞이한 날과 다릅니다. 아무 생각없이 맞이했던 고립된 입장의 부모의 날이 아닙니다. 가정이 쌍수를 합장하고 지성공대하여 가정적 부모의 날로 맞이하여야 할 70년도의 부모의 날인 것을 여러분은 알고, 지금부터 규합해 나가야겠습니다. 가정적인 인연으로써 전세계에 횡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제 2차 7년노정의 기간 중인 작년에 세계를 순회하면서 430가정을 축소시킨 43가정을 축복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세계의 나라들과 430가정과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를 연결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축복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통일가의 가정적 전통을 세우기 위한 새로운 축복의 잔치가 있게 될 것이며, 그 가정은 7백가정쯤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국경을 넘나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의 전통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인간들이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전통이 세워졌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70년대에는 세계적인 가정의 운세를 몰아 규합시켜야 할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개국을 토대로 해서 7백쌍의 가정을 축복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338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이러한 시점에 선 여러분은 오늘날 이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 열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 자체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두고 보면 가인 혼자서도 하나님 앞에 못 가고, 아벨 혼자서도 하나님 앞에 못 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어서 부모의 양손을 붙들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나라를 대신한 아버지의 교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찾기 위한 예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되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통하였을 것이지만,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된 모습으로 가인과 아벨의 형태를 갖추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그런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제 주일에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탄이 가는 길, 즉 자기만을 위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부도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요, 출세도 자기 가정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갈 길은 두 길입니다. 그것이 무슨 길이냐? 가인과 자기를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원수를 위한 길까지 거쳐가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가인을 수습해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체기대란 무엇이냐? 아벨이 자신의 길을 닦았다 하더라도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원수와 싸우며 가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이끌고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즉,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을 무엇을 보고 아느냐? 원수가 전부다 망할 운세권내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수가 소망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환경적인 여건이 조성되면 이 땅에 아벨의 시대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세계를 보면, 이 세계는 국가관념도 간데없고, 민족관념도 다 사라져 버렸고, 가정관념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개인주의에 결속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타락 직전의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는 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민족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가들이 절망적인 상태에 부딪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헤쳐 나올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남자로서 하나의 가정의 형태를 가지고 오는 사람, 즉 아벨적인 개인의 입장에서 아벨적인 가정의 사상을 가지고 오시는 그분을 만나는 길입니다.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지상에 없었던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새로운 종교를 세우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복귀를 할 수 있는 가능한 권을 이루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교회도 그랬고, 가정도 그랬고, 세계도 그랬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아벨 앞에 가인이 완전히 굴복하여 역사의 열매가 맺힐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한분이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대신 할 수 있는, 즉 참을 대신할 수 있는 세계적인 내용을 가지고 이 땅 위에 나타나는 날에는 외적인 세계는 그 분 앞에 자동적으로 굴복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가인과 아벨이 복귀되어 하나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은 나라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즉, 부모님을 위주로 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나 아벨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가인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도 기성교회를 데리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와 원수가 만나서 하나되어야 하는 거예요. 요셉이 그의 열한 형제와 만나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끝날에 이루어야 할 재림사상을 그대로 보여 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야곱 가정의 요셉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그를 팔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에 가서 종살이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한 요셉에게 그 나라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세우셔서 그 나라의 주권을 맡기는 섭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셉이 애급의 총리대신이 된 후에 열 한 형제가 복귀되었고, 그런 터전 위에서 비로소 부모를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시대의 전체적인 사정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던 사실이 아니었던가!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요셉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파들은 전부다 통일교회를 팔아먹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팔아먹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물 없는 사막에 파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죽기를 바랐고 이리와 늑대에게 먹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고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를 몰아내던 그들이 자기 부모 일가 전체가 멸망하는 비운을 맞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소생의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지금의 민주세계와 기성교회가 아닌가?

30-341
우리가 해야 할 일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새로운 사상을 가진 어떤 국가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나 미국 교회를 부러워하거나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미국에 가서 살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미국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물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유주의적인 사상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본이나 그 어떤 국가에도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물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때가 그렇다는 거예요. 세계가 그런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계 앞에 아벨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를 갖추게 되면 이 세계에 종말의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외적인 세계에 기독교권을 만들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교회도 외적인 활동을 통하여 국가와 결속할 수 있는 기준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먼저는 기독교와 세계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이고,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와 기독교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국가 내에서는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요, 세계에 있어서는 통일교회와 세계의 기독교가 하나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안팎으로 딱 갈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안팎이 가정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완전히 하나로 규합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성교회가 협조해야 됩니다. 이것이 그들이 갈 길인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두철미한 인격으로 나라를 사랑하라, 통일교회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70년도부터는 행사 때에 반드시 세 나라 사람 이상을 가담시켜 행사를 할 것입니다. 자연히 그렇게 될 거예요. 그럴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우연히 세 나라 대표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국까지 네 나라예요. 앞으로는 이런 날을 세계적으로 축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섭리의 뜻이 이 세계 앞에 나타날 시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단결해야 하겠습니다. 패배가 아닌 승리를 위한 단결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승리적 통일전선’ 이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그 중심이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들이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430가정을 세웠던 것입니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이 책임을 못 했으니 그들이 책임 못한 것을 430가정이 하라 이겁니다. 그래서 430가정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선배 가정들에게 자극을 주라는 것입니다. 이들을 보고 124가정, 72가정, 36가정이 자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430가정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닮을 거예요? 안 닮을 거예요? 「닮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고생시켜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가정의 통합이 얼마나 중요하며, 지금 시대가 얼마나 바쁜 시대인가를 말씀하였습니다. 이제 가정들이 합해서 앞으로 제 3차 7년노정을 넘으면 세계는 우리 앞에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의 3년노정은 어떻게 넘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여러분은 선생님의 가정과 하나된 그 기준만을 중심삼고 72년도까지 3년전도를 나가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할는지 모르지만 그때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안팎의 가정이 하나되어서 3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개인적인 승리를 위한 탕감조건으로 제물노정 3년 기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적으로 그러한 3년노정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선생님의 가정이 일체가 되어서 안팎으로 한몸과 같은 입장에서 1972년도까지 3년 기간을 견디어내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세계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 말이 틀림없이 맞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권내에 우리가 들어왔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것은 꿈 같은 얘기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생각에는 꿈 같은 얘기지만 사실이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안팎의 가정이 하나되고 우리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면 대한민국은 쉽게 복귀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우리나라의 제 2차 경제성장 기간인데, 사상적으로 완전히 결합하면 경제성장도 문제없습니다. 또한 60만 국군과 250만 향토예비군이 통일사상으로 무장하면 김일성이는 문제없습니다. 문제도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아벨적인 입장인 통일교회와 가인적 입장인 기성교회가 하나되어 내적인 기반을 이루어서 외적인 입장에 있는 국가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내적 국가의 입장이 되고 북한이 외적 국가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제 1차적인 통일은 기성교회와 우리가 하나되는 것이요, 제 2차적인 통일은 통일된 기독교권과 대한민국이 하나되는 것이요, 제 3차적인 통일은 남한과 북한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것만 이루어지면 세계는 우리에게 말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길이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 가정 앞에 남겨진 가야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민족을 대해 나왔지만 이제는 세계를 대하여 나갈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작전만 잘하면 되는 거예요. 거기에 대비해서 선생님이 안팎으로 작전을 전개해서 몰아쳐 나왔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세상이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30-344
끝까지 가인을 위하는 길로 가라
여러분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느냐?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고요? 「가인요」 가인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던 그 사람들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원수의 세계에서 누구를 위했습니까? 자기를 죽이려 했던 열 한 형제를 위했습니다. 이 원수의 세계에 형제를 잃어버린 것이 인류의 뜻도 하나님의 뜻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기성교회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1968년부터 기독교에는 새로운 운세가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신흥교파가 종교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나타날 것이며, 거기에는 은혜의 손길이 가득찰 것입니다. 현재 그렇다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해서 기성기독교에 급진적으로 연결시키느냐? 이것을 위해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모르는 가운데 작전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을 뜻 앞에 세우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들은 불행하지 않습니다. 만일 가인과 아벨의 교단이 기독교와 불교가 되었더라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만일 기독교와 불교가 가인 아벨의 입장에서 복귀 문제에 결부되었더라면 얼마나 원통하겠으며,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것이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어렵습니다」 이러한 것을 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는 한 형제라는 겁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통일교회가 수난의 길을 걸어왔던 사실은 억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가 복귀과정에서 하나님 앞에 반기를 들게 됨으로써 비록 사탄을 동조해 주는 입장에 섰지만, 사탄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협조하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일을 앞으로는 기성교회가 완결시켜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통일교회는 경제적인 부흥을 이루어야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래야 됩니다. 지금은 가망 없어 보이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3년 고비만 넘어가 보라는 거예요. 모든 가정들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하면서 3년 고비만 넘어가 보라 이겁니다. 3년만 넘어가 보면 선생님의 말이 맞나 안 맞나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거짓말을 했는지, 또는 우리 원리가 틀리나 맞나 그때 가서 보라는 겁니다.

자, 여러분이 하나되는 데 있어서 몸뚱이 위만 하나될 겁니까, 아래만 하나 될 겁니까? 몽땅 하나되겠어요, 남겨 놓고 하나되겠어요? 「몽땅 하나되겠습니다」 그러려면 험난한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가 교차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중심이 쓰러지거든 같이 쓰러지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같은 입장에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과 몸이 다 쓰러져서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그 순간에도 새로운 자극을 받아 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날이 무슨 날이냐? 안팎으로 모든 희망이 생겨나는 날입니다.

요전에 어떤 지역장한테서 지역장생활을 하면서 열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열 일곱 번씩이나 이사를 다니다 보니 이제는 이사를 가게 되면 또 가나 보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옷에는 구멍이 뚫릴대로 뚫려서 얼굴 들고 나설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거 잘 됐어요, 안 됐어요? 그래도 죽지 말라 이겁니다. 쓰러지더라도 죽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그만입니다. 쓰러지더라도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고이 잠들게 하소서’ 하고 쓰러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죽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야곱이 이처럼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을 때 하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것이지, 기세가 당당하고 희망이 넘치는 자리에 있을 때 하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을 것 같아요?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갈 곳 없어 돌베개를 베고 자는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축복이고 뭣이고 내가 왜 그랬던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통일교회 영신 되려고 그러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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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구들이 같은 마음으로 축하하는 부모의 날을 만들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다 쓰러지는 자리, 그런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우리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통일교회에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을 따르면 좋겠는데, 아이구! 사기성이 농후하구만’ 그럴 것입니다. (웃음) 그런 사람은 감정을 잘못 했어요.

옛날에는 개인이 뜻을 따랐지만 이제부터는 가정이 하나되어서 따라가야 됩니다. 만일에 선생님 가정이 굶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은 굶더라도 선생님의 가정을 벌어먹여야 됩니다.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벌어 오겠어요, 안 벌어 오겠어요? 「벌어 오겠습니다」 그럼 됐구만. (웃음) 여러분의 가정이 굶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가정을 벌어먹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을 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죽게 되면 선생님의 가정이 굶어 죽는데…. (웃음)

그렇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 죽는 거야 괜찮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죽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라 내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요, 내 세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3년 동안 선생님과 하나되어 나가자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 3년 동안 가정을 못살게 해야 된다는 거에요. 가정을 못살게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3년간에는 `부모의 날’ 을 최고의 날로 맞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70년도의 부모의 날을 최고로 지내고 있어요, 최하로 지내고 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최고예요, 최하예요? 「최고입니다」 최고로 지내고 있다고요? 여러분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최고야, 최하야? 「최하입니다」 그렇다 이겁니다. 이제 이것을 알았으니, 다음 2차년도의 부모의 날에는 소를 한 일곱마리쯤 잡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8도에서 한 마리씩 잡자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각 지구에서 여기까지 올라올 때 식구들이 `지구장이 부모의 날을 축하하러 가는구만. 나도 한번 구경하고 싶지만, 지구장들만 갔다 오니 부모의 날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어!’ 하면서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불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각 지구마다 소를 한 마리씩 잡아 가지고 이날을 축하하는 잔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 할 만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명년 부모의 날에는 소 한 마리씩 잡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앞 뒷다리 하나씩은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면 팔도니까 소가 네 마리는 됩니다. 그렇지요? 그 네 마리 소를 놓고 잔치를 한번 벌이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 생각에 부모의 날 같은 날에는 선생님이 아주 편하게 지낼 것 같지만 아직까지 아침도 안 먹었어요. 아침도 안 먹고 이러고 있으니 부모의 날이 고역의 날이라 이겁니다. (웃음) 지금까지는 고역을 했으니 이제는 편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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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가정을 찾기 위해 임지로 나가라
이런 관점에서 3년노정이 중요합니다. 3년간은 가정을 고생시켜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죽자고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 죽자는 것입니까? 개인을 위해 죽자는 거예요? 「아닙니다」 개인을 위하는 것보다는 교회를 위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는 `선생님이 36가정을 중심삼고 무엇을 하고 그러는 것보다도 우리 지구에 교회가 없으니 교회를 세워 주면 좋을 텐데, 선생님이 뜻을 위한다는 것은 헛소리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하려는 사람입니다. 자기 개인보다 가정을 위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 종족이 나오지 않습니다. 가정이 하나되지 않으면 종족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교회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하겠어요? 「예」

그러면 아파트를 짓기 위해 내가 시멘트와 자갈과 모래를 실어다 줄테니까 여러분이 벽돌을 찍어서 전부 지으라는 것입니다. 지을 수 있겠어요? 「예」 430가정을 전부다 노동판에 데려다가 강제노동을 시키듯이 부려먹어도 좋다는 말이지? 「예」 (웃음)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면 7백가정이 여러분들의 집을 지어 줘야지 별 수 있어요. 그렇게 하게 되면 그 후에 축복받게 되는 몇천 가정도 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사람이 살 집은 다른 나라 사람이 지어 주어야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우리의 살 길입니다. (웃음) (박수)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다시피 해 가지고 이제 막 가정이 자리를 잡고 살려고 하지만 또 부려먹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의 방식이자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데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지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십자가는 종족을 위해서 지는 것이요, 민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십자가를 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것은 나라를 위해서 진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위해서 졌던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늘의 가정이 없었고, 하늘의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가 진 것은 개인을 위한 십자가였지만, 여러분은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종족을 위한 승리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이요, 민족을 위한 승리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이요, 혹은 국가와 세계를 위한 승리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기반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명이 여러분에게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이냐? 수난의 길과 피의 자리를 각오하고 이 길을 걷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런 때가 오기 때문에 1969년을 거쳐 70년도를 넘어오면서 가정들을 동원시켜 가지고 가정을 뛰어 넘어서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거예요. 선생님이 무슨 재간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알고 보니 이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이 잘 움직였어요, 못 움직였어요? 「잘 움직였습니다」 잘 움직인 사람은 역사가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때를 맞아서 우리 통일가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아무도 원치 않는 죽음길을 각오하고 나섬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다시 살 수 있는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40일간 지방에 나가서 개척한 데에는 이런 내적인 내용이 있음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와 아들딸들이 나가서 모자 협조하여 기반을 닦았으니 나머지는 따라가야 합니다. 알겠지요? 「예」

선생님이 60년대에 가정을 내 보내서 이 땅, 이 나라, 이 민족을 개척하여 왔습니다. 이제 이것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때 정성을 들인 그 땅에 다시 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정성을 들인 터전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예수님의 재림역사도 정성들인 터전 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전통입니다. 우리 통일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60년대에 여러분이 나가서 정성을 들인 곳에 다시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가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구역, 그 동네를 위하여 흘렸던 그 눈물이 헛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슬픔의 눈물로 뿌린 것을 기쁨의 눈물로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고통과 수난의 길을 거쳐 개인적인 탕감노정을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탕감노정을 거쳐 새로운 가정을 찾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마을, 그 동네에 새로운 메시아의 가정을 맞을 수 있는 환희의 터전이 닦여지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 마을은 복귀될 것입니다.

이래서 선생님이 3년노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을 내모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그런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오늘 이 부모의 날을 기하여 3년노정을 감수하고 나갈 것을 결의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부모의 날을 기쁘고 감사한 날로 맞지 못하고 하늘땅이 자랑스럽게 지켜보는 이 자리가 되지 못하였지만, 여러분이 이런 결의를 함으로써 이 자리를 빛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새롭게 결심을 해주기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쌍수를 들어 맹세합시다.

30-350
기 도
아버님, 역사는 슬프고 원통한 역사였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날들을 거쳐서 오늘 이때를 맞이하게 될 때까지의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동원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인들 전체가 동원된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를 반대하기 위해 이 나라 이 민족도 전체가 동원되었습니다. 이것은 한국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 도상으로 연결되어졌습니다.

이것이 어느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옵고,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은 당신의 섭리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님, 오늘은 70년대에 처음 맞이하는 부모의 날이오니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들이 지금까지 미지한 입장에서 아버지를 따라 나온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하여 지금이 어떤 때인가를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의 자세를 가다듬고 내일을 빛낼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하여 아버지 앞에 가일층 접근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원수의 나라를 향하여 가야 할 운명길에 서 있사옵고, 공산세계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한국에 있어서의 승공전선을 넘어 아시아 대륙을 향하여 나가야 할 저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평면적인 시대권을 갖추어서 안팎으로 다지고 분별시켜서 탕감의 역사를 엮어 나가야 하겠사옵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저희들이 갈 길이 역사적인 발전의 도상인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류를 위하여 빛이 되겠다고 나선 하늘 용사의 모습들이오니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자세로 나타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용사답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가정들을 규합하시옵소서. 저희들이 거쳐가야 할 노정에서 남아지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힘차게 행진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남겨진 사명을 다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맹세하였사오니 당신의 마음속에 두시옵소서.

이날 지방이나 세계 각 지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뜻을 흠모하면서 추앙하는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보호와 동정의 마음이 그 환경을 지배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1970년 4월입니다. 이달에 인류의 전체를 아버지께 맡겼사옵고, 이달에 저희들이 새로이 출발할 것을 맹세하였사오니 뜻 가운데서 일취월장하게 하시옵고, 만사형통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후의 모든 시간과 절차를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모든 것을 감사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