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84 to 30-308: 가야 할 길

가야 할 길
1970.04.05 (일), 한국 전본부교회

30-284
가야 할 길
[기 도]

아버님, 현재의 시점에 있는 저희들은 가야 할 노정을 앞에 놓고, 또한 세계 선교를 앞에 놓고, 몸부림치며 가야 할 이 운명길을 피할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연약한 모습이옵고, 외로운 모습이옵니다. 저희들은 이 땅 위의 슬픈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사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필요하옵고, 또 아버지로 말미암은 최후의 승리의 한날을 바라지 않을 수 없사오며, 당신이 소원하시는 행복의 나라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저희와 함께하시어서 그리던 그 마음을 저희에게 전달하옵시고, 당신이 소원하시고 간구하고 찾고 싶었던 간곡한 내용을 저희로 하여금 당신과 더불어 인연맺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 이 자리에 저희들이 모인 것은 그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님의 인연을 따라 모였사오며, 아버님이 저희에게 부여해 주시는 사명과 책임을 받기 위해 모였사옵니다. 아버지의 높고 귀하신 거룩함이 저희들을 옹위하시옵고, 이 환경을 완전히 아버님의 분부권 내로 품으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하심에 저희들이 반사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자체라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님을 불렀사옵고, 수많은 자녀들이 한서린 복귀의 도상을 간다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아버님께서 바라셨던 승리의 결과를 거두지 못했사옵고, 복귀의 도상에 있어서 감사할 수 있는 노정을 남기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되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를 부르며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이 복귀도상에 섰사옵니다. 하오니 아버님만을 위해 수고하고, 아버님만 의지하고 아버님과 더불어 전후 좌우의 관계를 맺고 종횡의 인연을 복귀해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필연적인 노정이 저희들이 가야 할 운명길인 것을 알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는 외로움이 가중될 때마다 슬픔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자리에서 탄식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불러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와 인연맺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와 더욱 두터운 인연을 맺어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저희의 노정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 더더욱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흠모하면서 이 자리에 나온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을 다하여 자기 자신이 몰입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를 흠모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들 앞에 찾아오셔서 분부하시고 위로하실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자신의 모든 부족한 모습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합당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있거든 다시 한번 스스로 비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거룩하심에 일치되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미래의 싸움터를 향하여 달려갈 줄 알고, 아버지께서 소망을 갖고 분부하실 수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사옵니까? 이곳을 그리워하고 아버님의 은사를 바라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들 위에 천배 만배 복을 베푸시어서 최후의 한날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을 조국이라고, 소망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는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을 중심 삼고 이제 아시아에 있어서 중차대한 사명과 책임을 하여야 할 시점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또한 4월을 중심삼고 생사의 결판을 짓는 싸움이 지금 일본 식구들을 통하여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친히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무리들이옵니다.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한국을 위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그들은 발벗고 나섰사옵니다. 벌거숭이의 몸을 가지고 원수의 진영을 향하여 진군하는 그 무리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이 소원함은 그들만의 소원이 아니옵니다. 아버님께서 인류와 더불어 남긴 소원의 그 뜻을 품고 가는 불쌍한 무리들이기에, 그 자리에는 아버님이 기필코 같이하실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그 자리를 통하여 세계적인 새로운 형태의 한 깃발을 들고 나서기를 간절히 바라오니, 아버지의 뜻하신 소원이 그들이 움직이는 환경의 배후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한국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맡기신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이 민족이 되어서 각자의 책임을 담당할 수 있고, 참부모의 인연을 이어 받을수 있는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 나아가 수많은 민족 앞에 그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고, 아버님께서 소원하시는 그 자세를 갖추어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버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내일은 부모의 날이옵니다. 일본에 있는 몇몇 식구가 오늘 여기에 올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고 가는 모든 사연을 통하여 저희들이 아버님을 자랑하고 아버님과의 인연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4월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당신의 보호하심과 당신의 뜻 가운데서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기간 동안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결과만을 남기게 하여 주옵고, 저희들이 이 짧은 기간을 통하여 아버님 앞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친히 지켜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30-287
말 씀
우리 인간들의 생활 가운데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를 위해서 가는 길이 있고, 혹은 가정을 위해서 가는 길, 나라를 위해서 가는 길, 세계를 위해서 가는 길 등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가기를 바라고, 자기편을 위해서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30-287
예수님이 가야 했던 길
우리가 역사과정을 회고해 볼 때, 남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개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하나님편에 남아진 이도 있을 것이며, 또 원수편에 남아진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자기편을 위해 가기보다는 먼저 원수편을 위해 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종착점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원수가 영원한 원수로 남아지는 한 그 종교는 종교로서 가야할 최후의 길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길보다 민족이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이요, 국가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역사과정을 통하여 세계와 인류가 가려 했던 길을 먼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서 예수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다 끝난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지고 원수들이 가야 할 길까지도 다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야 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원수를 위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눅 23:34)” 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상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가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야곱을 통해서 얻어진 이름입니다.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챔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싸움 노정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붙여진 명사인 것입니다. 승리를 못 했으면 하나님은 슬픈 것이요, 서러운 것입니다. 왜냐?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지니고 있는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야곱 자신이 승리한 것은 물론이요, 예수님도 승리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진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처음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개인이 그런 입장을 거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가정도 그러한 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서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국가도 그러한 길을 거쳐야 되는 것이요, 이스라엘 국가를 지도하여야 할 통치자도 그런 운명길을 거쳐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하여 오신 대표적인 책임자이므로 이스라엘 개인으로부터 종족 민족 국가가 가야 할 운명길을 대신해서 가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권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국가라는 한정된 이스라엘만을 치리할 수 있는 권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국가외의 권까지도 이스라엘권 입장에 세워야 했던 것이 예수가 가야 할 길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복귀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섭리를 추진시켜야 하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복귀의 도상을 걸어오는 데 하나님편의 사랑만을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의 사람이 어느 기준까지 형성되었을 때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원수세계에 있어서 그 기준에 해당하는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편을 중심삼은 승리의 기반을 닦은 후에는 원수의 세계까지도 승리의 권을 적용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종교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복귀의 도상을 걸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는 하늘편을 위해서 뜻을 펴 나오시지만, 그 목적한 결과는 하늘편만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원수편을 굴복시키고 그 원수편을 중심삼아서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을 갖지 못하고서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30-289
가인 아벨의 섭리로 본 복귀의 길
이것은 아담 가정의 아벨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벨을 불러 세우셨지만 아벨만을 중심삼고 가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아벨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의 가야 할 길을 앞서 가서 가인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아벨 스스로가 가인 앞에 있어서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아벨이 주체적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떤 한계적인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책임을 완수한 입장에 서 있어야만 주체적인 중심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갈 길의 어느 한계점 즉, 개인이면 개인의 한계선까지 와서는 가정을 중심삼고 다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 세계에 상충적인 입장에 있는 가인을 자기와 같은 입장에 끌어 올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과 하나되지 않으면 아벨이 가는 길이 막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는 것이요, 그 부모를 중심한 형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행복한 가정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아벨 혼자만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아벨이 제아무리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가정의 기준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가인을 대하지 않고는 부모 앞에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된 자리에서만이 부모를 맞을 수 있고, 부모가 복귀될 수 있는 것이며, 부모가 비로소 종착점을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운명은 비단 아벨뿐만이 아니라, 노아에게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노아를 중심삼고 볼 때, 노아는 백성을 중심삼고 노아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있었으며, 이 개인노정을 거쳐가기 위해서 120년 동안 수고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노아에게는 이 수고의 기반 위에 자기 가정을 끌어올려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내외가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적인 입장에서 노아가 갔으면 외적인 입장에서는 그 가정이 가서, 개인과 가정이 하나되어 갔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만 가정 자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자신만이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아브라함에 속한 자녀나 만물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애급으로 가든가 다른 어떠한 곳으로 가더라도 안팎이 하나되는 입장을 거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해야 할 운명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필연적인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즉 필연적인 운명으로 남아 있는 그 길은 어떠한 길이냐?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하늘편만을 향하여 가는 길이라면 간단히 끝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길을 다 갔다 해서 그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처음 출발했던 그 기점으로 되돌아와서 우리와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인도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복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원리에 나와 있는 대로 먼저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합니다. 믿음의 기대는 자기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 목적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되돌아와서 실체기대를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기대는 무엇이냐? 아벨 앞에 가인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가인은 누구냐? 원수의 자식입니다. 이 가인을 통하여서 역사적인 투쟁이 벌어져 나온 것이요, 가인을 통해서 악의 모체가 뿌리를 박은 것이요, 가인을 통하여서 지금까지 사망의 물결이 역사시대를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모든 악의 요건과 악의 편을 여기서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벨적인 입장, 즉 하늘편에 선 사람이 반드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30-291
아벨적인 종교가 가야 할 길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굴복하는 데에는 가인이 스스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벨적인 입장에 선 사람이 굴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아벨이 몇십 배, 몇백 배의 완전히 굴복당할 수 있는 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탕자의 비유를 알 것입니다. 탕자가 자기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비로소 부모를 회상하며 고향길을 찾아 나서게 될 때의 그 자리는, 부모 앞에 일체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따르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탕자를 대하는 장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원수와 같은 입장에 선 동생이요, 믿을 수 없는 동생이요, 가문의 명망을 손상시킨 동생이지만 부모 앞에 완전한 아들로서 효자의 이름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탕자인 동생을 맞을 수 있는 아량을 가진 형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부모는 천년만년 자기의 위업을 기쁘게 상속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탕자의 비유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추앙하며 나가는 신앙길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안팎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마음의 기준을 중심삼고 몸을 거쳐가야 됩니다. 마음만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선한 편이지만 그 선한 편만으로는 자신의 목적을 결실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몸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면서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만 몸이라는 것은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닦아 놓은 터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목적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자기가 목적하는 것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참을 대신해 나타난 통일교회가 아무리 아벨편이라 하더라도 아벨편만으로서 갈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가인편을 수습하고 가인편을 대신해서 갈 길을 개척해 주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 아벨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우리 앞에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우리 편이 될 수 있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도 있겠지만,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개인, 가정 또는 국가까지도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야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길을 가는 사람들은 이중의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중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원수를 대해 싸워 나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생명을 걸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원수는 불의의 습격, 혹은 계획적인 습격을 위해 언제나 준비된 장비를 갖추어 놓고 어느 시대에나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 있는 그들을 위하여 도리어 구해줄 수 있는 하늘의 마음을 갖고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을 구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싸움에서 쫓기고, 몰리고, 밟히고, 희생당하는 대가를 치러야만 반드시 거기에서 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을 적진이나 적국에 다시 보내 가지고 거기에서 그 편의 사람을 통해서 공작을 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기반을 하늘편으로 돌이킬 수 있는 역사를 하나님이 지금까지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소모가 있게 됩니다.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기가 지니고 나온 모든 것을 손해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가야 할 길은 손해보며 가는 길입니다.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하고 가는 길입니다. 악이 가야 할 길도 역시 자기의 모든 것을 탕진하고 가야 합니다. 끝내는 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악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한다는 것입니다. 선의 세계에서도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탕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이 지배하는 세계에 있어서도 자기의 모든 것을 스스로 탕진하는 것이요, 선이 극한점에 도달한, 이 선의 기준을 이루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모든 것을 지상에서 탕진해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악은 그러한 기점에서 끝을 보는 것이요, 선은 탕진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악은 스스로의 모든 것을 탕진하는 자리에서 끝을 보지만, 선은 자기의 모든 것을 탕진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0-293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
기독교 역사도 이런 방법을 통해서 발전해 나왔습니다. 어떠한 나라든지 새로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탕진하는 과정을 거쳐 나와야 됩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는 개체의 모든 소유는 물론이고 자기의 생명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이란 것은 반드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자리를 거쳐 가지고 전진된 자리를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해 나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개인이 가정을 향하여 출발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위해서 개인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고, 가정이 종족을 위해 출발하기 위해서는 종족을 위해서 그 가정이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종족이 민족을 위해, 민족이 국가를 위해, 국가가 세계를 위해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선의 나라로 가는 길이 막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갈 길은 일방적인 길이 아니라, 갔다가 되돌아와서 지금까지 내가 가는 도상에서 싸워 승리한 모든 여건을 적진에 들어가 재현시켜 가지고 승리의 실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 즉 참된 종교가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처해 있는 현시점을 두고 볼 때, 우리 앞에는 기성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데 있어서는 좀 덜한 원수가 아니라 원수 중의 원수를 중심삼고 이것을 타개해 갈 수 있는 승리의 방안을 모색하지 않고는 종교로서 가야 할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섭리적인 관점에서 본, 인간들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인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 자체만을 위해서 간다거나 혹은 국가가 그 국가만을 위해서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령 통일교회 자체로서 그런 식으로 세계의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되돌아와서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를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목전에 다가오는 세계정세를 볼 때, 이것이 우리 뜻 앞에 말할 수 없이 접근되어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것으로써 우리가 행복해 할 것이 아니라, 이 정세가 우리 앞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여기에 가중된 책임이 우리에게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기성교회를 떼어버리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길입니다. 반드시 가인을 거느리고 가야 하는 것이 아벨이 가야 할 운명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이 가인을 거느리는 데 있어서 가인을 부른다고 해서 가인이 그냥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아벨에게 갈수 있는 길을 모르기 때문에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벨은 가인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제시해 주기 위해서는 재차 시련 과정을 거쳐야 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벨은 자기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서 희생적인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는 동시에 반대하는 가인의 책임까지 수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행하지 않고는 아벨로서 가야 할 운명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현재의 시점에서 국가가 영접할 수 있는 경지에 섰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가야 할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을 가기 전에 필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아벨교단 입장인 통일교가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기성교단을 반드시 수습해 가지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교회가 가야 할 길을 우리가 선두에 서서 제시하면서 하늘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하늘을 대신하여 희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제 2차적인 복귀도상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책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둘이 원수의 입장을 넘어서서 하나되고 서로 같은 방향으로 나서게 될 때 비로소 그 앞에 하나의 나라가 찾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요구하는 하나의 나라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나라가 완전히 형성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편을 중심삼은 아벨적 국가의 입장에서, 나라가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서 그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세계가 가야 할 본연의 나라를 다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이 뜻을 통하여 가는 운명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기 때문에 이들은 두 세계의 슬픔을 맛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두 세계의 시련과 고통 그리고 두 세계의 죽음길을 왕래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러한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30-295
가야 할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아벨도 아들이요, 가인도 아들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인도 아들이요, 아벨도 아들이지만 아흔 아홉 마리의 양과 같이 하나님의 품에 안긴 아벨보다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은 가인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목자와 같은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심정을 통하여 볼 때 아벨도 아들이요 가인도 아들이기 때문에, 그 어버이는 아벨의 죽음길도 대신 가주어야 되는 것이요, 가인의 죽음길도 대신해 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벨 대신 가 줄래야 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이요, 가인 대신 가 줄래야 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인간이 탕감의 내용을 제시해 놓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따라오는 수많은 아벨들은 가인을 대신해서 가지 않고는 부모를 만날 수 없는 것이요, 부모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제 1인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길뿐만 아니라 악한 세계 사람들의 길도 닦아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요, 또한 역사가 그러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방향을 전환시켜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60년대를 보내고 1970년대를 맞이한 우리는 우리의 생활 태도를 새로이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고, 또는 아시아면 아시아에서 소망의 중심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기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세계를 대하여 자랑할 수 있는 깃발을 드높이고, 너희들은 우리를 반대한 원수라고 하면서 이 원수를 갚을 좋은 때가 왔다고 주장하며 종교의 길을 가는 사람은 가야 할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자기가 가야 할 한 분야에 있어서 참된 길을 다 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가신 분입니다.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오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통하여 맡겨진 책임을 완수함과 동시에 그러한 죽음길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양면적인 노정을 마련한 자리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고 하신 최후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이 가는 길이 자기만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 아니라 원수도 가야할 노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도 역시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래를 놓고 스스로 내심적으로 탕감조건을 제시한 자리에서 `다 이루었다’ 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벨이 가야 할 길이 제물을 드리는 믿음의 기대가 세워졌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굴복시키는 데에는 힘을 가지고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벨을 찾아 나오던 부모의 그 심정을 아벨이 지녀 가지고 가인 앞에 통과시키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아벨을 길러 왔듯이 아벨은 가인 앞에 하나님의 대신 존재로서, 전적으로 가인을 위하는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가인을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30-297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처한 입장
그러면 타락한 아담가정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누구를 중심삼고 복귀해야 하느냐? 여기에는 아벨밖에 없습니다. 아담은 타락의 장본인이요, 가인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자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아벨을 통해서 복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벨이 부모를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아벨 자신만의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타락한 부모를 복귀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을 대신하여 천사장을 굴복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이가 아벨이요, 그 천사장 입장에 있는 이가 가인이기 때문에,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 사랑은 사탄세계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야만 새로운 생명의 기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의 출발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사망의 입장에 있는 인간들이 새로운 천적인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을 통해야만 비로소 인간의 사랑 이상의 하나님의 사랑을 재현시킬 수 있는 기반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두 사람 사이에 거하게 되고, 여기에서 비로소 원리적인 입장의 주체와 대상의 인연이 결정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수수작용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만이 새로운 것을 재창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기뻐하고 전적으로 지지할 수 있어야만, 타락의 장본인인 해와가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복귀해 나오는 섭리관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꼭 그와 같은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안식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아벨적인 교단으로서 가인적인 교단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강제가 아닌 순리로서, 어떤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천적인 사랑으로 굴복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사랑하듯이, 가인 앞에 선 아벨도 하나님 대신 사랑을 가지고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야만 가인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가인 아벨과 같은 형제의 입장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아들을 중심삼고 볼 때, 요셉과 열 한 형제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운명이라는 것은, 아벨은 필시 흥하고 가인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섭리적인 내용을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가인을 궁지에 몰아넣느냐? 그것은 가인이 궁지에 빠지지 않고는 자기를 구해 줄 수 있는 제 1인자, 또는 상대세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이 망하는 입장으로 몰리지 않고는 구함받고자 하는 소망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가인을 궁지에 몰아넣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혜를 가졌던 교회가 있다면 반드시 그 은혜를 완전히 상실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또 교역자를 중심삼고 단결했으나 아벨이 나타날 수 있는 때가 되면, 반드시 거기에 새로운 중심을 중심삼고 이탈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기성교회가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교회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정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섭리역사과정에서 생명시해 왔던 사탄세계의 모든 것이 전부 끊어져 나가고 해이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를 지탱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탄세계의 가정제도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와 부부, 그리고 자녀라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는 어떤 역사도 인륜과 도덕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이것을 옹호해 나왔지만 끝날이 되면 이것이 전부다 깨지고 말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사조가 오늘의 이 세계를 한 번 공격해 온다는 것입니다. 가인적인 세계에 그러한 실상이 벌어질 때, 아벨적인 새로운 세계가 찾아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원수까지도 구해 주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이 세계를 두고 `이놈의 세상 망해 버려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망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아벨을 맞이할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섭리라는 것입니다.

30-299
원리의 길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전부다 가난뱅이입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라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고, 가정도 부모도 친척도 다 버리고 혈혈단신 외로운 신세로 여기에 나타나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자기식으로 요구하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움직이던 것과 같은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체를 그 앞에 위탁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작전인 것입니다.

오늘날 섭리의 내용을 볼 때, 한국은 지금까지 비참하게 나왔습니다. 역사과정을 통해서 그런 비참한 길을 걸어나왔지만 그 비참한 과정이 후에 기쁜 것으로써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비참한 역사과정을 지내오면서도 우리나라에 반드시 소망의 한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소망을 갖고 역사과정을 지탱해 나온 민족이 남아 있을 때 그 민족은 필연적으로 세계적인 새로운 운세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민족에게 아벨적인 세계를 상속받을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와 기성교회, 종교와 한국, 또는 한국과 세계, 종교와 세계를 놓고 볼 때 이때가 필시 끝날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벨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기운이 기진맥진한 상태요, 가인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기진맥진한 상태에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지도하는 입장에 있고, 민주세계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미국을 볼 때, 미국이 그 사회나 세계의 국가에게 앞날의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느냐? 세계적인 희망은 커녕 자기 일개국에도 희망을 줄 수 없는 시점에 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담벽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개인으로서도 안 되는 것이요, 어떠한 사회, 어떠한 국가의 힘을 가지고도 막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운명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냐? 새로운 아벨적인 세계관입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가정,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입장에 있는 세계 역사는 필연적으로 아벨적인 중심을 찾아서 하나되어야 할 운명길, 즉 경계선에 도달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러한 역사를 해 나오셨기에 자연적으로 굴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경계선에 접근해 들어가는 현재의 시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우리들은 이때야말로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우리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개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다 갔다 하더라도 그 개인은 다시 아벨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리고 가인의 길을 개척해 주어야 합니다. 아벨적인 가정의 입장에서 그 가정만으로 가야할 길을 다 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반드시 가인적인 가정을 수습해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가르치는 원리의 길입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전통적인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홀로 가는 길, 그 길은 개인만을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야 할 길은 개인을 위해 가는 길인 동시에 가정을 위해 가는 길이요,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판도와 그 국가의 형태를 중심삼고 국가권내의 하나의 민족, 민족권내의 하나의 종족, 종족권내의 하나의 가정을 세운 후 이것을 평면적으로 펼쳐서 개인, 가정, 종족, 더 나아가 천주에까지 연결시켜야 됩니다. 개인의 목적도 이것이요, 가정의 목적도 이것이요, 민족 국가 전체의 목적도 이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서로 보조를 맞출 수 있는 환경권만 갖추었다면 예수님은 죽지 않고 세계사적인 승리의 국가, 승리의 세계를 창건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주체가 잘났다고 하더라도 그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30-301
아벨이 대해야 할 제 1상대
오늘날 아벨이 대해야 할 제 1상대는 누구냐? 부모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인가? 부모가 아니라 가인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선생님이 부모의 입장이라면, 통일교회 식구들이 대해야 할 제 1상대가 누구냐? 선생님이 아닙니다. 먼저 형제끼리 하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원리는 믿음의 자녀를 세워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녀가 무엇이냐? 원수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우상장사 데라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아 온 것과 같이, 우리도 원수의 아들을 빼앗아 와서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강제가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감동시켜서 빼앗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길이 이 이상 없습니다. 원수의 아들을 자기의 종으로 만드는 것 이상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박대통령이 경제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경제만 가지고는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지을 수 없습니다. 밀려오는 세계적인 정세 앞에 물질적인 문제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는 세계를 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이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물질을 통합한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 또는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문예부흥을 기점으로 인본주의가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추방하는 역사가 지금까지 엮어져 내려 왔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이 죽었다는 결론을 지어 하나님을 추방하였으니, 이제는 하나님을 재발굴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가 하지 않더라도 세계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올 때에 아벨의 세계, 아벨의 국가 시대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가지 한국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싸워 나왔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성교회의 비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아벨적인 교단으로서 가인적인 기성교회를 어떻게 포섭하느냐 하는 문제만이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와 기성교회가 하나되는 날에는 이 민족이 가야 할 방안을 제시하여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한 국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는 날에는 남한 자체가 아벨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벨 국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인 국가를 구해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북이 갈라진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가인적인 국가가 일본이나 소련이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되었다면 가인 복귀는 불가능합니다.

같은 동족으로서 같은 역사의 뿌리를 가진 민족 기반 위에서 남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가인을 복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가인을 복귀하는 데에는 지금 이 나라가 처해 있는 상태가 가장 좋은 여건입니다. 이렇게 해서 남북한이 하나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아벨적인 국가형태를 갖추어 세계사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온 세계 국가를 대표한 주체적 국가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벨적인 국가는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가인 국가를 포섭하는 길을 가야됩니다. 가인 국가를 포섭하는 데에 있어서는 한 나라만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세 나라를 포섭해야 됩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렇게 세 나라를 포섭하는 날에는 세계의 모든 국가는 자동적으로 굴복해 들어오게 됩니다. 이 길은 우리 통일교회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지만 통일교회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우리 통일교회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에 문제가 있느냐? 원수가 문제입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 넘겼던 열 한 형제가 7년 동안 흉년을 당해서 곡식을 사러 애급에 왔을 때, 열 한 형제를 맞은 요셉이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이제 원한을 갚을 때가 왔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부모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내가 객지에서 아무리 출세를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부모를 모시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내 형제들이 아니겠느냐’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30-303
통일교회가 가야 할 필연적인 길
우리 통일교회와 기성교회가 바로 그런 입장입니다. 통일교회가 요셉처럼 외지에 나와서 기반을 닦았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열 한 형제와 같은 입장에서 그래도 지금까지 세계의 국가를 대하여 책임지고 있는 것은 기성교회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이 기성교회가 반드시 우리 앞에 머리 숙일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기성교회에는 흉년이 닥쳐 올 것이며, 그들은 점점 벌거벗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은혜가 한계에 달하여 모든 것이 분열되고, 서로의 의견이 구구한 그런 환경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보고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창고 문을 열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넘겨 줄 수 있는 아량을 지니지 않고는 아벨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없고, 요셉으로서의 하늘 가는 길을 갈 수 없으며, 소망의 나라 이스라엘을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운명길이 필시 통일교회가 가는 길 앞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70년대 이후에는 우리 통일교회가 안팎으로 모든 면에서 부흥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물질이 풍요해졌다고 해서 그 물질을 통일교회를 위해서 쓰는 지도자는 참지도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 식구라 할지라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통일교회 식구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이 갖고 있는 모든 소유물을 통일교회 발전을 위해 쓰기보다는 기성교회 발전을 위해 써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게 쓸 때에는 우리 것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쓰지 않으면 우리가 갖고 있는 것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자기 자체의 종교도 잃어버리는 것이요, 자기 자체의 국가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선생님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는 여러분을 위해서 수고해 왔습니다. 이제는 어느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내가 책임을 안 지더라도 여러분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적진을 향하여 나오는 때였습니다. 싸우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휴전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때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들이 스스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은 선생님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해야 할 사명이므로 그 사명을 여러분이 인계받아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들이 아벨로 등장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기반을 닦기 위하여 내가 아벨적인 입장에서 탕감해 나오는 소모전을 해 나왔습니다. 이 소모전에서 내가 비로소 아벨적인 입장에서 승리적 기반 위에 섰다고 할진대,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아벨 입장의 계대를 이어받아 기성교회를 굴복시키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의 한을 가인 아벨이 풀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의 한을 풀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할 필연적인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갖게 될 때, 그것을 우리를 위해 써 가지고는 세계를 빨리 복귀할 수 없습니다. 우리만을 위하는 입장에서 일했을 때는 돌아와서 다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가인을 위해서 일한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하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우리 앞에 있어서 제 2의 가인 입장입니다. 제 1의 가인은 기성교회입니다.

예수님 당시를 두고 보면, 예수님은 새로운 기독교를 책임지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유대교는 가인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굴복시켜서 하나로 만들어 끌고 가야 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되면 새로운 것을 가지고 인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세계, 즉 새로운 기독교가 출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를 놓고 볼 때, 기성교회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와 같은 입장이며,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세우려 했던 새로운 종교와 같은 입장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 홀로 고립되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만으로 고립되었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30-305
이중의 십자가를 지고 가라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교단을 아벨적인 교단으로 올려 놓은 이 입장에서는 기성교단을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내외 안팎의 관계에 있습니다. 외적인 입장에 있는 기성교인들이 목적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을 중심삼고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의식주와 같은 외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조금만 잘하면 됩니다. 좋은 것이 있을 때 자기가 가지겠다고 하는 자리에서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수의 세계에 들어가서 종의 자리에 처하게 되더라도 주인으로부터 신용을 얻고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먹을 것이 있을 때 자기는 먹지 않더라도 원수를 위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겉으로는 싫어하고 책망할지라도 내심으로는 감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은 내가 믿을 수 있는 녀석이다’ 라고 하면서 신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이 생기면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서 주어야 하고, 좋은 옷이 있으면 가인을 먼저 입혀야 합니다. 또 좋은 곳을 갈 수 있을 때도 가인을 위해서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작전을 하면 가인을 굴복시키는 문제는 간단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굴복시킨 작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야곱은 먹고 입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에서 앞에 바치면서 `이 모든 것은 형님 것입니다. 내가 수십년 동안 수난의 역경 가운데에서 투쟁하여 얻은 모든 재산은 형님을 위한 것입니다. 종이든, 양떼든, 혹은 자녀든, 무엇이든 다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원수 입장의 관계를 청산해 버리고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동생으로 맞아 주십시오’ 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형님 뿐만 아니라 누나까지라도 찾아지는 것입니다. 형님을 찾게 되니 형님의 가정도 찾는 것이요, 형님이 갖고 있는 모든 재산도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이삭을 중심삼은 이삭 가정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작전을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래도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수난과 역경의 길을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 세계적인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인들은 역사적인 공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독교가 한때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그것을 탕감짓기 위해 채찍을 가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이를 품어 가지고 하나님이 소망하고 기대 하셨던 그 기준을 재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기성교회와 하나되어야 하고, 다음에는 대한민국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이 기독교권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사상으로 무장하고 단결하는 날에는 북한은 문제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안팎으로 정비한 후에는 북한 김일성과 말로써 싸워야 됩니다. 터놓고 결판지을 문제가 마지막 판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손을 안 잡을래야 안 잡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세계정세가 그렇게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공산당들은 그때까지 이 세계에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국가가 비로소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주체적인 국가의 형태를 갖춘 아벨 국가 즉,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가야할 길을 확실히 알고 이중의 십자가를 져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싸워 나오고, 개척생활을 해 나왔지만 그 길이 또한 앞으로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가서 모든 것을 갖추고 닦아 놓아야 합니다. 야곱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를 위해서 했다고 할 수 있는 그 결과를 어떻게 남겨 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세계와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관점에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30-307
주체적이며 능동적인 권한을 갖고 움직여라
그렇기 때문에 한국 내에 있는 기독교가 우리를 반대하는 것을 감사해야 하고, 이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동족을 중심삼고 탕감복귀할 수 있는 권내에 있기 때문에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1970년도에 있어서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특별정성을 들여야 되겠습니다. 특별기도를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하늘 앞에 굴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성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렇게 기성교회, 남한 북한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이며 능동적인 권한을 통일교회가 갖고 움직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포위작전을 해야 합니다. 삼국을 연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을 보면 남북이 맞서 있는데 내적으로 보면, 통일교회가 중심삼고 나가는 기준과 북한이 지금 들고 나오는 것이 딱 맞서 있다는 것입니다. 소련, 중공, 북한을 놓고 볼 때, 한국은 혼자 고립되어 있습니다. 복귀는 아담 혼자서는 안 됩니다. 아담에서 해와, 해와에서 천사장 이렇게 연결시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아담 국가이고, 일본은 해와 국가이고, 중국은 천사장 국가입니다. 이것을 볼 때, 아시아인끼리 복귀의 형태를 갖출 수 있는 것이 서구인을 가담시키는 것보다 복귀하는 데에 있어서는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인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참부모를 부르고 있듯이 사탄세계인 북한에서도 역시 김일성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상대적인 관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편은 소련이 근거가 되어 가지고 중공을 거쳐서 북한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늘편은 한국을 근거로 해서 일본과 자유중국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아시아의 연결점을 만들게 되면 공산주의는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원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주권자가 세 번만 바꿔지는 날에는 우리 뜻앞에 좋은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비단 한국만을 위하는 길이 아닙니다. 북한을 거쳐 가지고 세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책임을 담당해야 할 우리 일신이기 때문에 고달프지 않을 수 없고, 바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중의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을 알고,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모든 고난과 역경을 달갑게 받아들여 민족과 세계 인류를 위하여 책임지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생활노정에서 자기의 역량을 키워 나가며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서 이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1970년대를 맞이하여 공고한 기반을 닦기 위해 정성을 다하여 이 고통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낙오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30-308
기 도
아버지, 저희는 아버지의 아들이면 좋은 줄만 알았지 가기에 해당하는 만큼 십자가가 지워진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잊어버리며 살아 왔습니다.

아버지, 하오나 이제 저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이래서 다른 것이요, 아버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며, 역사를 짊어질 수 있는 것도 이렇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사탄세계가 극한점에 도달한 것을 바라볼 때, 제 2의 출발을 모색하기 위한 아버님의 사랑이 역사과정과 더불어 지금 이때에 깊이 등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이것을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은 1970년대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맞이하는 부모의 날입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부모의 날을 축하하는 이 식전에 세 나라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아버지 앞에 행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번 행사가 이 시대에 있어서 큰 의의가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 이번 행사가 세계의 사탄들도 축하하는 이 날이 됨으로 말미암아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온세계 앞에 자리를 잡는 데 있어서 공고한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을 앞에 놓고 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아벨의 길을 가야 되겠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아벨의 노정을 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길을 다 갈 때까지는 바쁘고 또 바쁘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먹을래야 먹을 시간이 없고, 잘래야 잘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저희들의 행로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뿐만이 아니라 가인 세계까지 구해 가지고 아버님 앞에 돌아가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비로소 저희를 보고 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는 저희들이 되고, 아버지의 분함을 탕감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끔 노력하고 정성을 다 들이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모든 것에 당신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