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20 to 30-155: 새로 출발하자

새로 출발하자
1970.03.21 (토),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30-120
새로 출발하자
이번 수련 기간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늘로써 마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련받는 가운데 환경이 여의치 않아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겠지만,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의 자기 입장과 미래의 자기 거취 문제를 중심삼고 재차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30-120
새출발을 하려면
우리 통일교회의 현재의 입장을 보면, 지금까지 간부들이 해 왔던 그 활동방법 가지고는 앞으로 혁신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옛날의 사고방식과 옛날의 생활태도, 혹은 옛날의 전도방법이나 신앙자세까지 그런 식으로 걸어나왔지만 오늘날 기대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 있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공인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과거와 같은 신앙자세, 생활태도, 전도방법에서 벗어나 새롭게 달라진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신앙자세, 새로운 생활태도, 새로운 행동을 제시하지 않고는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기 어렵다고 봅니다.

1970년도는 우리 통일교회가 제2차 7년노정중의 한 고개를 넘는 중요한 시대입니다. 또한 우리는 복귀섭리를 담당한 주역으로서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은 이 기간에 국가 복귀라는 커다란 과제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연결시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시기가 바로 우리들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신앙자세, 지금까지의 생활태도, 지금까지의 전도 방법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혁신적인 그 무엇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운 하나의 방향을 요구하느니만큼, 여러분 각자가 새로운 자세로 대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크나큰 기대를 가질 수 없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본 수련회를 통해서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번 수련회를 베풀게 된 동기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새로 출발하자, 새로 출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원리를 알았다면, 그 아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리를 아는 신앙의 기준을 넘어서서 새로운 그 무엇을 발견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해왔던 방법을 초월하여 새로운 각도의 심적 태도를 갖춘다든가, 생활자세에 새로운 무엇을 가담시켜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이 각자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 자신이 은혜를 다시 받기 위해서는 옛날의 모든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 방식대로는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책임자들이 해 왔던 방식을 갖고 있어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1970년대를 맞이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이 전체에 미쳐질 수 있도록 여러분 자신들이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갖추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성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을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만약 그 성지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배 이상의 사람을 증가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열 사람이 있으면, 그 열 사람 이상의 사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그 무엇을 제시하여 영향을 주지 않고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목표 없는 기도생활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목표를 세워 놓고 생활하라는 겁니다. 하나의 목표를 세워 놓고 3년이면 3년, 혹은 10년이면 10년 동안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담판짓는 생활태도로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지금까지의 신앙생활과는 무엇인가 달라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실체적으로 새로워진 자기 자신을 여기에 세워 놓지 않고는 새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30-122
새로운 목적 추구와 상대 결정의 필요성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하루의 생활을 쭉 분석해 보면서 그렇게 해 나왔는지를 생각하고 기도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습관적인 권내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습관화되고 상습화된 사회생활권내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고지대(至高至大)하신 분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는 곳에만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정성의 자리에만 하나님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 `다한다’는 기준에 있어서 어제 대하던 기준과 오늘 대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으면 안 됩니다. 거기에 새로운 영적인 내용이 가중되고, 더 보탤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자기의 전공분야를 연구해 나가는 사람들이 취미를 갖고 연구에 몰두하는 것은, 자기가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데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을 찾는 데에서 힘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복귀섭리도상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해 나왔던 그러한 방식, 그러한 입장, 또한 우리가 과거에 활동했던 그런 방식과는 달리 이제부터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새로운 신념으로 하나님을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숫것과 새것을 대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숫것 아니면 안 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어떻게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려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합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시간이 어느때인가 하면, 새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시간이 하루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간대입니다. 이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깊은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자기가 지금까지 전혀 느껴 보지 않은 그 어떤 분야를 느껴 보기 위해서는 자기를 중심삼은 기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라는 큰 목적을 중심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상대기준을 맺고 있는 요건으로써 국가와 세계가 있겠지만, 생활 환경에서 상대기준을 세우는 데에는 반드시 자기 심정문제를 놓고 화동할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루를 통해서 보다 새롭게 느낄 수 있고 새롭게 화동할 수 있는 상대적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면을 중심삼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는 막연히 정성을 드리는 기도보다도, 실천을 하면서 같이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보다 깊은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체험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제한을 받는 것이므로, 개인적인 환경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체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체험한 모든 사실을 상대에게 알려야 합니다. 즉,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같이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어떠한 자극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결정하려면 상대에게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단순한 개인을 중심삼은 사람들 가지고는 아무리 기도하고 정성들여도 새로운 맛이 안 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이미 할 만한 기도 다했고, 회개 다했고, 체험 다했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 자체, 그 환경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자리를 넓혀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있어서는 자기가 반드시 주동이 되어 가지고 남을 전도해야 합니다. 남이 전도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이 주동이 되어 끌려가다가는 반드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동이 되어서 상대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교육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갑이면 갑, 을이면 을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중에는 반드시 특별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척 대하면, 그는 반드시 내 뜻을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점에서 주목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 필요한 사람인지 대번에 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때는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을 초월하여 거기에 모든 정성과 사랑을 흠뻑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간접적으로 성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30-124
발전하는 신앙이란
여러분이 환경적인 면에서 이런 선의 실적을 쌓아 새로운 감동의 열매를 상실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자리를 가꿔 나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무한한 발전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남자나 여자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만일에 찾는 사람이 없다면 어린애들이라도 모아 가지고 동화를 들려주고, 동요를 부르면서 자기가 그 환경에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느껴야 합니다. 그걸 느끼면 그 자리에도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자극을 갖기 위해 여러분은 생활속에서 계속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1970년도에 있어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내가 구하는 입장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줘야 되겠다는 마음을 언제나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받는 입장에 서게 되면 책임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무엇이든 줘야 되겠습니다. 주어야 할 `나’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어떠한 사람이 찾아오시면, 그 사람에게 반드시 흡족한 그 무엇을 안겨 보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사람 이상에게 그러한 일을 하게 되면, 그는 그 하루를 완전히 뜻 앞에 세워 중심적인 책임을 수행했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역자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문제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습관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습관은 제일 고질인 나쁜 버릇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결혼 후 아이들을 기르면서 습관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그것이 몸에 굳어 버립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는 특별한 정성이나 기도를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아이들이 곁에서 떠들어대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혁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곳이라든가, 아니면 성지를 찾아가서 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내적 분야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 자극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자리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생활 환경에 그대로 있어서는 자신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여건을 개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어떤 한계선을 보이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 남편은 이러한 사람이구나’ 하게 되어,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지’ 하고 부인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이렇게 금을 그어 가지고 부인이 계획한 대로 맞아떨어지는 그런 남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부인이 자기를 대할 때 무엇인가 항상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부인은 날이 가면 갈수록 남편을 존중하게 되고, 남편한테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해도 더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남편을 위하지 말라고 해도 더 위한다는 것입니다.

백주에 드러난 것처럼, 자체의 모든 것이 안팎으로 보여지게 되어 딱 금을 긋고 있으니 그 이상의 것이 없는 포화상태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하면 그 기준에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가정불화가 생기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인을 대하려면 신중한 작전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아직 철들지 않았을 때는 부모를 잘 따르니 괜찮다는 거예요. 그러나 점점 자라 철이 들어 안팎을 헤아릴 수 있게 될 때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새로운 것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것이 그가 인격 형성에 필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것을 기반으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가치를 더욱 깊이 느낄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자기 가정을 희망적이며 고차원적인 자리에로 발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30-126
자극이 되는 생활을 하라
일반 교역자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지역이나 지구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식구들이 `오! 지역장이 원리강의 하는 구만, 그 말 끝난 다음에는 이 말이 나오지’ 하고 전부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3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강의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그러한 방법으로 강의를 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가지를 달아 새로운 해설과 내용을 첨가해서 강의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면에서는 심령적 발전을 하는 데 필요한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분위기에 맞추어 필요한 강의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3년 동안 목회를 했으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해주어야 식구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감을 느끼지 못한 식구는 주일날 예배에 참석을 잘 안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 분들이 지금까지 강의를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라도 보충해야 돼요. 그래도 안 되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길을 가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간다 하더라도 그냥 가지 말라는 거예요. 교회에 갈 때에도 항상 새로운 입장과 환경에 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는 데도 직선 코스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가야 하지만 북쪽으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런 실감이 안 나거든 집안 살림살이를 전부다 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수개월이 되어도 그냥 그대로 놔두지 말라는 겁니다. 거꾸로 뒤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단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와 맨 뒤편에서 기도를 하는 경우 그 느낌이 각각 다릅니다. 청중들 가운데에서 기도를 할 경우에 또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적인 변화를 어떻게 모색하느냐?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비스러운 기도를 해보면 보통 기도와 백방으로 다르다는 거예요. 동쪽과 서쪽, 남쪽, 북쪽, 중앙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감정을 체휼하려면 생활환경을 변경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생활 속에서 심정을 변화시키려면 환경 여건을 개조해 나가는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있다면, 남편이 출퇴근할 때마다 항상 같은 식으로 무의미하게 대해서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극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웃고 우는 것입니다. 극은 웃기고 울리는 것인데, 왜 그것을 좋아하며 돈까지 주고 가서 보느냐? 그것을 보고 웃긴 웃지만 각도가 다른 입장에서 웃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는 것도 다른 각도에서 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색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돈을 주면서 보러 가느냐?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고, 새로운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극을 받고 소득을 얻기 때문에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에 서서 대중을 지도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문화적인 기도도 해야 되고, 지적인 기도도 해야 됩니다. 어떤 때는 엄숙한 기도를 하다가도 청산유수와 같은 기도를 해야 되고, 또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처럼 어떤 골짜기에 들어가 더듬거리며 한걸음 한걸음 찾아 나가는 그러한 입장에서도 기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여러가지 사정에 접해 가면서 새로운 심정적인 내용을 확정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역자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습관화되면 한 제목만 가지고도 사방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쪽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그 풍경이 다르게 보입니다. 햇빛이 비칠 때 그 광선의 차이에 따라 또는 명암의 정도에 따라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감정을 느끼며 그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난 사람만 대해 가지고 얘기하는 그 시간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지극히 못난 사람을 대하면서도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못난 사람을 대하더라도 같이 뚝배기에다 설렁탕을 넣어 먹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옆에 똥통이 있더라도 냄새를 맡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최고의 경지요 신비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평면적인 내용이 아닌 입체적인 내용을 가하게 되면 폭발적인 충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언제나 알아야 할 것은 새것이 아니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할 때, 그 제목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알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원리강의를 할 때도 옛날식으로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기분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데도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 햇살도 밝고 상쾌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갑자기 이것을 변동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없거든 더 우울한 자리로 찾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적일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든가, 혹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서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결 방안을 세워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조절해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뭇 인간들의 심령을 지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30-129
새로운 출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
여러분이 사람을 대할 때에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볼 때에는 배후의 조상을 보고, 과거와 현재를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보는 입장에 있어서 무엇을 새로이 발견할 것이냐? 이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만 보고서도 그 생활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잘못한 일이 있다든가 양심에 가책받는 일을 했을 때, 그 사람의 눈동자 움직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두 표정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면 벌써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면, 상대가 누구이든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만 새로운 방법이 나오는 거예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자기 자신이 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원리강의를 할 때, 전에 보고 들은 몇 가지 내용을 필기한 것만 쫑알쫑알 외워 가지고 성경귀절이 어떻고 뭐는 어떻고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어떠한 골자를 말하기 전에 먼저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자신이 거기에 심취해 가지고 새로운 맛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원리책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 원리책을 붙들고 밤을 새워 읽으면서 시간이 가는 것을 아까와하고, 페이지 마다에서 신비로움을 체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걸 느낀 후 원리에 취해 가지고 설교를 해보세요. 청중에게 감동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 그러면 틀림없이 새로운 감동의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것, 곧 생명력을 잃은 것은 퇴화하고, 산 것은 반드시 발전하는 것입니다. 발전하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금년을 중심삼고 1970년대를 향한 마당에 있어서, 이 1970년대를 이끌어 나가는 책임을 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 새로운 출발입니다. `새로 출발하자’ 새출발을 하는 데는 옛날의 사고방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름을 박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이 기분 나쁘면 거꾸로 부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입는 옷이 옷장 안에 들어 있으면, 그 옷을 전부 새롭게 다듬으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가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불교에서 입산 수도하기 위해서 머리를 삭발하는 스님같이, 새로운 충성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기간에 원리를 재차 공부했고, 사회 인사들도 많이 만나 보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를 못해서 한이요, 실력이 부족하다 해서 한이라고 하겠지만, 여러분은 절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세 시간 이야기할 것을 선생님은 한 시간에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제반 요건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제시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학자가 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에서 연구를 많이 한 사람만이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들이 일상적인 생활 감정에서 벗어나 매일같이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 나가고, 그 기반 위에서 하나님이 협조해 주신다는 것을 실지로 체험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사람은 무한한 발전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여러분이 기도를 하는 때는 엄숙한 기도시간이 될 것입니다. 또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라면, 엄숙한 말씀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 반드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30-131
결심과 실천
재창조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에서 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둘이 되겠습니까? 새로움을 줄 수 있는 모체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복귀역사는 재창조역사이기 때문에 여기에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주체적인 사명을 누가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해야 됩니다. 인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생활하는 가운데 보고 듣는 모든 일체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나를 교육시킬 수 있는 교육의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동네를 지나갈 때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기도 노방에서 싸움을 하는 데 소질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를 반성해 봐야 하는 겁니다.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기의 아들딸이나 손자 때에 그러한 사람이 안 나온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한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루를 중심삼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어진 환경과 관계를 잘 맺어 가자고,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은 것을 하나님과 더불어 인연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 인연맺은 것을 여러 사람 앞에 어떻게 심어 놓느냐 하는 것이 교역자로서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한 것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떠한 사람에게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주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새로운 것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한꺼번에 큰 그릇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 가지고 외로운 수고의 경험을 하고 나서야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겁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의 위치를 결정해야만 사람을 헤아리는 데 있어서 새로운 주체적 실체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당에 있어서 올라올 때보다 더욱 착잡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지방에 내려가면 지역본부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의 생활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어이쿠 나 죽는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표준과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방향을 가지고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어려운 입장에서 울어야 했던 내 모습이었지만, 이제 새로이 출발해야 할 나 자신에 있어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새롭게 처리해 나가야 하겠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결의를 하고서 활동해 나가야 합니다.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모험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여러분이 가는 길에 있어서 후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수련회 기간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얻어지는 것도 많이 있겠지만, 얻어진 그것이 반대로 여러분을 꺾을 수도 있는 반작용적 결과가 될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1970년대를 맞이하여 우리 자신을 새로이 발전시켜야 할 천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불가피한 과제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 정신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가지고 새로운 감동의 요인을 하루의 생활권내에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실질적인 체험을 통한 생활의 기반을 넓혀 나가는데서만이 새로운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야 할 곳이 아직 멀리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었으면, 세 시간을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목이 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맡은 자로서 말씀을 전해야 할 텐데, 목이 쉬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겠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눈짓 발짓 등 벙어리 시늉을 해서라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정상적으로 하루에 밥 세끼 먹고 나서 여유 있는 시간에 생명을 기른다는 생각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잘못된 것은 잘라 내야 합니다. 한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성들이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쓰고 남은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것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과감히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30-133
목회자가 지녀야 할 본질적인 태도
여러분의 생활 습관을 그렇게 해 나가야 돼요. 맨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숫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숫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새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물도 남이 남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러움을 타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곳에는 못 가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만을 위주로 하여 자신이 새로운 것을 자극할 수 있는 생활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을 느끼면서 활동을 하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번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에는 새싹이 나오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생명력이 약동하는 거예요. 반면 뿌리 없는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감정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생사를 걸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철야기도를 해서라도 정성을 쌓아 나가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일부러 그 시간을 빼앗아 가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망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깜깜한 궁지에 들어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따라다니는 사탄까지도 내 편으로 굴복시켜서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더욱 강하게 싸울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 영향이 며칠, 몇 주일까지는 가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면 몇 달까지도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 보지 못했는지 몰라도 여러분이 그럴 때 하늘은 여러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염려를 하고 있는 지를 느껴야 돼요. 그러니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남의 생명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 본질적인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문제를 절실히 통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애국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애국심을 가지고 애국자로서의 활동을 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현실적 무대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뜻길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과 같은 기준으로 엄벙덤벙하면서 세월을 보냈다면 그 세월은 아무런 보람도 없이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나 자신이 생활의 맨 밑창까지 파고 들어가서 현실의 모든 것들을 관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어느 한 때 지녀 보았느냐? 우리가 하루 24시간 동안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얼마나 뜻을 중심삼고 일해 나왔으며, 나 자신이 뜻을 대하면서 얼마나 그 가치를 느끼면서 추진하여 나왔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이 과연 몇 시간이나 될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 모든 이목구비 등 감각기관을 통해 가지고 느껴지는 감각, 즉 직관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믿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개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잘 못 느끼지만, 은혜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늘 보는 만물이 옛날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보아도 새롭고, 저녁에 보아도 새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서서히 물결쳐 올 때는 신비스러움을 입체적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무한한 가치를 느끼면서 자기의 고귀성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뜻을 따라 나오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다 보면 과거가 자신을 끌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가 좋았다며 그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입교가 오래된 사람은 1960년대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갖추어야 할 본질적인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그 무엇을 촉감으로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많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30-135
하나님을 자극시킬 수 있는 모체가 되라
이제 여러분이 수련을 마치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게 되면, 여러분의 부인이나 자녀들을 마주 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식에게 `너는 내가 어떠한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어보십시오. 어떻게 대답할 것 같습니까? 이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 대한민국에 있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자식이나 어머니가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느냐? 그러면 우선은 자녀인 자기들의 눈에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로 나타나 주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내심적인 소원은 세계가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가족이 아니겠는가! 또한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상세계의 모든 축복의 인연을 후대 앞에 남길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자녀들을 곱다고 했을 때, 그 곱다는 기준이 무엇을 중심삼고 했느냐? 생리적인 감정을 가진 육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곱다고 했느냐? 아니면 천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곱다고 했느냐?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내 아내고 나는 당신의 남편이니까 당신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천지의 인연이 엉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부부들이 대하던 습관적인 생활태도를 혁신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나 후손을 대할 때나,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원히 자극 시킬 수 있고, 하나님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동기의 모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내용을 가진 부부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결론은, 남편이 아내를 대할 때나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는 최고의 명작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부부의 인연으로 생각하고 대해야 되고, 또 그렇게 서로가 하늘땅 앞에 맹세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 때가 언제일 것이냐 하는 것을 연구할 필요도 있고 찾을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심정적인 부부에게는 한계점이 없을 만큼 영계를 중심삼고 무한히 발전하므로 다른 사람을 자극시킬 수 있는 내용이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발굴하라는 겁니다. 그게 필요합니다.

사춘기 시절이 일생 중에 왜 좋은 때냐? 그때는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때입니다. 그때는 천하도 내 손으로 들었다 놨다 할 것 같다는 거예요. 세계를 잡아 주면 손 안에 들어올 것 같다는 거예요. 대하는 모든 것이 새롭게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봄이 되어 계곡에 쌓인 눈이 녹아 산사태가 나는 것을 보고도 크게 감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멋지게 보이거든요. 또, 놀라 도망가는 노루새끼를 보고도 멋지다고 한다는 겁니다. 뭐든지 자유롭게 느끼고, 무한한 가치로써 자극을 받고, 또한 그것을 흡수 해서 자기와 관계를 맺는 그런 여력을 지닌 때가 바로 사춘기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의 정열과 새로운 세계를 놓고 촉각을 세우며 발전하는 기간이 사춘기 시절이기 때문에, 그때에는 사방으로 무성하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는 봄철과 같은 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성한 그 잎 가운데서 한 줄기 종대가 나와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대가 어디에서 나올지 모릅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입장이 사춘기 시절이라는 것입니다. 그 잎이 줄기를 대신하여 사방 어디든지 뻗어나갈 수 있고, 무한한 창조적인 세계를 간직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있는 존재를 자극하는 때가 바로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사춘기 시대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을 대하더라도 무엇인지 모르게 그러한 기분이 감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머니면 할머니를 부를 때 부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할머니를 부르는 이상의 감정으로 할머니를 만나야 누구보다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져야 심정적 분야에 있어서, 지금까지 사탄세계의 고질화된 심정의 터전을 능가시켜 가지고 새로운 봄의 자극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춘기적 조건을 재현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나타나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역량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자랑하기 위해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이 새로운 체험을 하나님과 더불어 주고받았다고 해서 당장 번식이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체험과 더불어 새로운 위치에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 놓아야 그 기반을 중심삼고 새로 적응할 수 있는 번식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30-137
통일교인다운 통일교인
여러분은 이러한 원리를 중심삼고 여기에 적응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생활 태도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생각해 보세요. 다 좋다는 것입니다. 원리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느냐? 영계가 있고 없다는 사실은 그만 두고라도, 통일교회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친 녀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증거를 통해서도 익히 알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실체를 알게 하는 원리를 가졌으면 됐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통일교회는 원리도 좋고 다 좋은데, 돈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 돈이 있으면 뭘 할 거예요? 하나님을 돈과 바꿀 수 있어요? 원리를 돈으로 바꿀 수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저울 위에 올려 놓고 무게를 달수 있습니까? 천하를 올려 놓아도 달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미쳤다는 거예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요.

여러분이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이 세계 인류 가운데에서 영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목사들도 몇 사람이나 그 사실을 알고 있겠습니까?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외적으로 가진 것이 없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틀림없이 알고 있기에 우리가 가는 길에 있어서 백 퍼센트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목사들보다 나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세계의 학박사들보다도 나은 것을 알아야 돼요.

이러한 가치를 생각하면,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고 높은 자리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두고 똥통과 같은 곳으로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를 완전히 죽이라는 것입니다. 원리에 맞추어 새롭게 개발해서 활짝 꽃피울 수 있게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원리가 제시한 그 조건 밑에서 나타날 수 있게 만들라는 거예요. 영계도 활짝 나타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지, 돈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돈은 그냥 따라오는 거예요.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편이 있는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서 일년 이상 떼를 써서라도 그 아주머니를 빼앗아 오라는 거예요. 뭐 나쁜 의미에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 아니예요. 심정이라든가, 모든 면에 있어서 감동시키면 그 아주머니는 틀림없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통일교인들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앞으로의 크나큰 싸움을 제어할 수 없어요. 사탄세계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체험도 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면도 불구하고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지간에 자신을 가지고 정좌하여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권위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권위와 힘을 중심삼고 나갈 때 그들은 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천하를 녹여 낼 수 있는 장정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뭐예요! 장기의 졸만도 못하니 시시하게, 그것이 통일교인입니까? 여러분은 그런 나태한 위치에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세계적인 활동을 하며 영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렇게 활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엄청난 배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시시하다는 거예요. 자식으로 태어난 관계만 보더라도 참부모의 자식인데, 그 자체만을 가지고도 좋다고 흥얼거려도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본래의 감흥일 겁니다. 비록 거지도 먹지 않는 좋지 못한 음식을 먹더라도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을 사수하라는 거예요. 멀지 않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30-139
흥하는 자와 망하는 자의 차이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여기서 더 이상 뭘 바랄 거예요, 지금과 같은 작전시대에는, 속에는 비단 옷을 입고 겉에는 누더기 옷을 입어야 합니다. 작전상 그렇게 하고 나서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팔자가 그런 것이 아니라, 작전상 그렇게 하라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우리가 이걸 중심하고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무런 죄도 없이 쇠고랑을 차고 몰리는 것도 다 그런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환경에서 벗어나 가지고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고 보자! 네가 아무리 나를 치더라도 언젠가 너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을 내가 취할 것이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뭐 누더기 옷을 벗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는 비단 옷까지 벗어 버리고, 알몸뚱이만 가지고 외치고 다니니 누가 동정해요? 그런 사람은 욕을 먹어도 싸다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발길에 차이고, 몰리면서 쫓김받으라는 것입니다. 탕감을 받아야 돼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못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밥을 굶고 다니며 고생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피난 나와 가지고 배고플 때가 있었습니다. 한두 달 동안은 밥을 얻어먹으러 다녔어요. 선생님은 피난을 갈 때도 사람들이 피난을 가고 난 후 맨 나중에 떠났습니다. 그것은 어느 집에 가든지 쌀이 있기 때문에, 그 쌀을 꺼내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남이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니 도둑 같겠지만, 피난길에 주인이 없으면 동네 사람것 되는 것이니 몽땅 가져가도 죄가 되지 않아요. 그것을 가져가면 도리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밥을 얻어먹을 때 그 집안의 문턱에 가서 얻어먹었습니다. 그렇게 얻어먹는 밥이 소화가 더 잘 되거든요. 먹을수록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경험을 했을 거예요. 며칠씩 굶다가 밥 한 끼를 먹게되면 순식간에 먹지요? 제사밥을 먹어도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1월 하순으로 기억됩니다. 난리통에는 이불 보따리가 필요없었어요. 부산까지 가려면 이불 보따리가 짐이 되기 때문에 전부 팔아 가지고 벼 한 가마니 하고 바꿨어요. 그때는 쌀이 어디 있어요? 쌀이 없으니까 벼와 바꾸어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발로 밟아 찧었던 것입니다. 그때 함께 내려온 사람들과 실컷 한번 먹어 보자 했지요. 그때는 먹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불이 없다고 해서 얼어 죽지는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해 가지고 4일동안 떡을 만들었어요. 그것이 소두 세말이니까 대두로 한 말 반 정도 될 것입니다. 그걸 모두 떡을 해 가지고 셋이 앉아서 다 먹었어요. (웃음) 한 그릇 정도 남겨서 주인 아주머니에게도 주었어요. 하도 먹질 못했기에 그렇게 해서 실컷 먹은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 어렵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먹을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낯모르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나오더니 귀한 손님이라며 인사를 하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물어보면, 꿈에 귀한 손님이 오니까 모시라고 했다는 거예요. 벌써 영계에서 그 사람을 통해서 협조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일들이 참 많아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지금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빚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져 가지고 나가 떨어져 보면 기분이 어떨까요? (웃음) 그것을 못 해봤거든요. 내가 빚을 갚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많은 빚을 져 가지고 내가 빚쟁이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그걸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떨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이 또 멋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든 모든 것이 다 자기의 타고난 팔자 소관이라는 거예요. 다르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30-141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
여러분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은 다 수작이예요. 선생님한테는 수작으로 들린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어렵다는 생활 기준을 누가 세워 놓았어요? 하루에 세 끼의 밥을 먹어야 된다는 그 기준을 누가 세워 놓았습니까? 하나님이 세워 놓았어요, 요령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세워 놓았어요? 누가 세워 놓았습니까? 이 기준을 따라 하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어렵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루에 한 끼가 생활 기준이에요. 그 한 끼도 꽁보리밥에 된장찌개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것이 내 팔자고, 내 생활 기준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이 내가 절대적으로 희망하던 생활 기준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래야 될 것 아니겠어요?

옛날 채집경제시대에 과일만 따먹고 살던 사람들이 꽁보리밥을 먹으면 그거 영광이 아니예요?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꽁보리밥이라도 해먹을 수 있으니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하냐 이겁니다. 그들은 그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을 것입니다. 꽁보리밥을 대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그런 원시적인 입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꽁보리밥도 내가 처음으로 농사해서 지어 먹으면 기분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얼마나 맛있게 먹겠습니까?

여러분의 생활 기준을 누가 세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하루 세 끼 밥을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넘어가기 때문에 탈이라는 거예요. 없으면 굶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굶는 것이 내 생활이라고 하면 됩니다. 어쩌다 하루에 한 끼를 실컷 먹게 되었다면, 또 그것을 내 생활 기준으로 세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뭘 걱정해요? 탕감복귀를 하는데 세상에서처럼 할 것 다 하고, 볼 것 다 보고, 느낄 것 다 느끼면서 될 것 같아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이 목사가 무슨 일을 놓고, 야단났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당장 집어치우라고 했습니다. 그 고통을 선생님이 모르는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도 그러한 일을 다 경험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 하고 불러 봐요. 그러면 부르는 그 소리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이르면 심각해져야 됩니다. 심각하지 않고서 기적은 안 나오는 겁니다.

새로운 세계사적인 발명은 전쟁과정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세계의 비상시기에 되어지는 거예요. 왜냐?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전쟁은 인류역사에서 지혜를 창조하는 데 크게 공헌해 나왔다는 거예요. 이것은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밥숟가락을 들고 내 아들딸이냐, 민족이냐, 국가냐, 어느 것이냐? 결단을 내리는 순간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가느냐 안 가느냐? 이런 문제를 놓고 내가 지금까지 정성들인 모든 수고를 중심삼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룰 수 없는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어떻게 밀어내느냐? 그러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기어이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당하는 그 모든 환경에 있어서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 나갈 것이냐? 그 기준이 없으면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감사할 것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 한 그릇을 마시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선생님은 밥상을 받으면 손가락으로 밥을 퍼먹어야 했던 감옥에서의 생활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느 가정을 방문하더라도 그 가정에서 선생님이 왔다고 진수성찬을 준비해 가지고 대접해 주는 것, 나 그거 좋아하지 않아요. 차라리 입은 옷은 남루하고, 먹는 것은 비록 꽁보리밥 일지라도 전체가 하나되어 전부다 동정할 수 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선생님은 요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느냐?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준비한 기준도 없이 다 됐다고 자만하면 내일은 막혀 버리는 것이요, 희망도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그 사람보다도 희망을 품고 내일을 꿈꾸며 준비하는 사나이가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걱정은 무슨 걱정입니까? 여러분도 선생님이 겪은 그 이상의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꽁보리밥 먹지요? 먹어 봐라 이겁니다. 순 꽁보리밥을. 지금까지 이 밥을 먹었으면 꽁보리밥도 먹어 보라는 것입니다.

남편을 만나면 좋을 줄 알았더니, 나쁠 때도 있다는 겁니다. 좋은 것만 바라면 안 되는 겁니다. 24시간 계속 햇빛만 쬐면 되겠어요? 밤이 있어야지. 그렇지요? 높으면 낮아지는 것이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30-143
개척자의 생활 기준
우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세상 사람에게 밟혀 나왔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나는 못 먹더라도 남을 위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생활 기준을 중심삼고 새로운 무엇을 많이 느끼려면 제일 낮은 자리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엊그저께 선생님이 일찍 교회로 나오는데, 분뇨차가 교회의 화장실에서 호스를 들이대고 똥을 퍼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똥을 퍼내고 있는 그 호스 끝에 그만 걸레조각이 막혔나 봅니다. 그래서 한 15분 정도 기다렸는 데, 냄새가 나고 지루해서인지 옆에서 뭐 어쩌고 하길래 `이 녀석아 가만히 있어, 그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하고 얘기도 했지만,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도 좋게 생각하면 거기에는 새로운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여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을 먹더라도 소화시킬 수 있는 자체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살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골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여러분은 이제 새로운 인간이 됨과 동시에 새출발을 하라는 겁니다. 보는 것도 새롭게 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동네를 봤으면, 그 동네를 새롭게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아쉬움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라는 거예요. 큰 못을 볼 때에는, 여름이 오면 내가 한번 실컷 목욕을 할 것이다! 아주 높고 넓은 데가 있으면 맘껏 뒹굴 것이다! 이런식으로 보통 사람과 달리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봄절기이지요? 여러분 중에는 남도로 내려갈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곳에 내려가면 오리 떼, 기러기 떼들이 철을 지나 북쪽으로 날아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곳에는 벌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데서 맘껏 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개척자는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개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가지고 식구가 오나 안 오나 보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식구가 오면 `아이쿠! 쌀독에 쌀이 채워지나, 안 채워지나’ 그렇게 생각하지요? (웃음) 거지새끼처럼 주면 뭐든지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주지 않으면 굶어 죽으려고 그래요? 멧돼지도 혼자서 잘만 먹고 사는데….

여러분, 칡뿌리가 얼마나 영양이 많은지 알아요? 정 배가 고프면 곡괭이를 메고 산에 올라가서 칡뿌리라도 캐어 먹으라구요. 한 일주일만 가서 캐어 놓으면, 못 먹어도 족히 한 달은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야단입니까? 또 걱정은 무슨 걱정이냐 말이에요. 산에만 올라가면 칡뿌리도 먹을 수 있고 풀 뿌리도 먹을 수 있는데…. 그러니 그것만 잘 알아서 캐 두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죽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여름이 되면 쌀 한 줌 없어도 절대 굶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바늘 한 개하고, 실 두 뼘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낚시질을 하는 거예요. (웃음) 그러면 죽기는 왜 죽어요? 또 굶기는 왜 굶어요? 절대 굶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을에는 어디를 가든지 먹을 것이 많습니다. 하다못해, 고구마를 캐 간 밭에서 이삭이라도 주우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넌 그런 짓을 하기 때문에 족보에서 빼버린다고 하겠어요? 그런 하나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도 좋아하고 축복해 줄 수 있으시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도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일을 해보았어요.

그러한 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고구마를 캘 때 반드시 몇 뿌리를 가만히 남겨 놓았습니다. 그 일을 옛날에 다 해봤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남겨 둔 고구마를 캐 보면, 새빨간 고구마가 그 모습을 드러낼 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 기분은 투전판에서 돈 딸 때 보다 더 좋습니다. 비할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좀 했다고 해서 나쁠 것 뭐가 있겠어요? 나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 끼를 먹고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누가 세웠어요? 누가 세웠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그러한 관을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30-145
노력과 성취
선생님은 지금 형무소에 들어간다고 해도 겁나지 않습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거기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 꽁보리밥을 준다고 해도 좋다는 거예요. 썩어 냄새나는 된장국도 가져 오라는 겁니다. 그걸 맡아 먹으며, 천년사를 읊으면서‘참 맛있구만. 아무개 선조는 이런 밥을 먹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나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 순간은 진지하지요.

또, 내가 똥통 옆에서 잠을 잔다 해도 `참 잘 됐구나. 내 신세를 빛낼 수 있는, 앞으로 인류역사를 감아쥘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지금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나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에 공장을 방문했을 때 생산부장이 사내 상황을 보고했는데, 그것이 선생님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몇 달 동안 걸린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생님이 23일까지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니, 약속한 대로 해 놓지 못하면 크게 당해야 하겠거든요. 그렇다고 한마디 하게 되면, 자기 체면이고 뭐고 말이 아니겠고…. 그러니 경거망동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며칠을 가만히 두고 보았어요. 어느 날 저녁 때가 되니, 꽁무니를 빼고 어정어정하다가 선생님에게 와 가지고, 오늘 저녁에는 일을 못 했다고 하는 겁니다. 이 녀석들이 날 잘못 만났지. 이제부터 다시 출발이니 전부 집합하라고 했어요. 이것은 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열두시 전까지 다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데 그들이 하는 식으로라면 열두 시가 아니라 밤을 새워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때 작업에 들어간 시간이 저녁 아홉 시쯤 되었는데 열 시, 열한 시가 지나고 열두 시가 될 때까지 가만히 두어도 할 일을 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명령했기 때문에, 열두 시가 아니라 밤을 새워서라도 하게 되어 있거든요. 눈치가 달라졌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을 불과 세 시간만에 다 했습니다. 열두 시 `땡’ 할 때까지 해서 전부 끝마쳤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준을 세우는 데는 그렇다는 겁니다. 남과 같이 먹고, 남과 같이 입고, 남과 같이 시간 맞추어 일해 가지고 언제 남을 앞설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도 밤 열두 시 넘어서 집에 들어갔는데, 열두 시 삼십 분쯤 잠자리에 들어가서 새벽 두시 십오 분경에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뭐 하자는 걸까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네 시까지 기도하다가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 그때 어머님 방을 노크합니다. 그 이전에 노크하면 실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네 시 십오 분쯤 방에 들어가서 공장에 나갈 준비를 서둘러 가지고 다섯시 삼십 분까지 공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이 출근할 때까지 세 시간 가량을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는 그 맛이 어떻겠어요? 참으로 재미있었다는 거예요. 남들은 다 자고 있는 이 시간에 일찍 일어나서 새로운 마음을 가지면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어제 이렇게 일했으니, 오늘도 이렇게 못할 때는 기합이다’고 하면 직원들이 신이 나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피곤한 것도 사정에 따라 피곤한 거예요. 기분이 워낙 좋으면 피곤이 다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그래 보라구요.

선생님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졸음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을 일 시켜 놓고 혼자 편하게 조는 것은 양심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걸 못 합니다. 절대로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할 때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잠깐 눈을 붙일 때도 있습니다만, 내 마음대로 잠을 자지 않습니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냥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을 반드시 달성해 놓고 쓰러지면 쓰러졌지, 그 이전에는 안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처소에서의 경험이나 생활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것을 발견하라…. 새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은 피곤하겠지만, 지금까지 관례적인 것에 대해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면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하시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30-147
영계에 가서 자랑할 수 있는 것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뜻길을 가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육신이 노쇠하면 생리작용에 있어서도 제약을 많이 받게 될 것인데, 이것을 무엇으로 보강해야 되느냐? 선생님이 이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을 중심삼고 활동해야 할 시대에 있어서, 자꾸 약화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이 그것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때요, 그것을 가르쳐 줄까요?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됩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려면, 매일같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절대로 낙오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절대로 낙심을 안 한다는 거예요. 도리어 재미가 나는 겁니다.

조금 전에도 한인수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승공연합에서 사무실에 앉아 사무보는 것이 무미건조한데 지구장들을 보니까, 옛날에 교회를 책임지고 생명을 걸고 일했던 때가 생각난다는 거예요. 교회가 그리워서 찾아 왔던 그런 식구들과 주고받던 사연들을 생각하니, 그때가 그립다나요? 알기는 잘 알았습니다. 이제야 철들었습니다.

영계에 가면 자랑할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는 돈 많이 가졌다는 것은 자랑할 거리가 절대 안 돼요. 또 세상에서 권력을 가졌다고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을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이것이 자랑입니다. 갑이면 갑, 을이면 을, 혹은 종족을 초월하여 수많은 민족을 새로운 생명과 관련시켜 가지고 얼마만큼 살려 주었느냐? 그것이 재산입니다. 재산은 그것밖에 없어요.

영계에는 없는 것이 없어서 그리울 것이 없지만, 가장 그리운 것이 있다면 참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을 양육하기 위해 공을 들인 그 공신은 천상세계에서 당연히 영광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구장이면 지구장 생활을 십년 이상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십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엊그제는 지역장으로 17차까지 인계받았다는 사람이 몇 사람 있다고 보고를 들었습니다만, 17차가 아니고 108차를 받았으면 무얼 합니까? 그것보다도 거기에서 사람을 중심삼고 취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 보지 못한 사람은 안 돼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밤을 새워 가며 미래를 이야기하고, 또한 해를 바라보면서 시로 읊고, 혹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는 등 어떠한 문학작품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을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통해서 느껴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면서 살아야 사람으로서 사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30-148
사람을 그리워하라
생명 문제를 놓고 인연된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에,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이 사람을 세 시간 동안에 완전히 굴복시키겠다고 계획을 세워 놓고 말해 보라구요. 10분, 20분, 한시간…. 조여 들어가는 그 맛은 투전판에서 자기한테 있는 밑천을 몽땅 털어 가지고 맨 마지막 카드를 뽑는 그 기분보다 더 큰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투전판 놀음은 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꾸자꾸 발전합니다. 거기에서 가지가 자꾸 뻗어난다는 거예요. 잘 키워 놓으면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느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서 가장 귀하고 중요한 자리가 지구장입니다. 지구장을 하게 되면, 한 지구가 그래도 도내에서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니, 3분의 1정도 되는 무대에서는 할 만한 일이거든요.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출마하기 위해서는 한 군을 중심삼고 하는데, 지구장은 3개 군을 중심삼고 명령을 해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니 국회의원이 문제에요? 할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뭣이든 다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중앙의 각 분야에도 채용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대를 앞에 놓고 돈이 없어서 일을 못 해요? 또 몸뚱이가 살아 있는 한 흠집이 문제겠어요? 몸이 늙어지는 것이 문제지, 돈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이 진심으로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절대 나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교역자는 항상 일찍 일어나서 문 열어 놓고 네 시가 넘도록 사람을 기다리다가, 첫 닭이 우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닭이 먼저 울면 `나보다 닭이 먼저 일어나서 우는 구나, 이놈의 닭아’ 하며 푸념도 해봐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식구들이 새벽에 일어나지도 않고, 여러분을 선생님으로 또는 자기의 지도자로 그리워하지 않으며, 기도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동기가 없는 데 결과가 나타나는 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그렇다는 거예요.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들도 틈만 나면 `선생님, 선생님!’ 하며 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 달라고 하며 매달리기만 하지, 이런 생각들은 안 한다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안 하면 벌을 받으니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면에서 선생님에게 빚을 졌다는 거예요. 빚을 졌으니 갚아야 됩니다. 자기의 밥이라도 그곳 아들딸한테 갖다 줘야 돼요. 갖다 줘야 할 입장이니, 줄바에는 기분 좋게 주는 것이 자기에게 영광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사람을 얼마나 그리워했느냐? 그것은 설명해도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그리워했어요? 하나님의 아들딸을 얼마나 그리워했나요? 소망의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했으며, 소망의 민족을 얼마나 그리워했어요? 소망의 국가, 소망의 세계를 얼마나 그리워했습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걸인의 행세를 하더라도 사람을 그리워하면 그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화를 잊고 하늘의 길을 닦으려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것은 멋진 일입니다.

30-150
영적 감각의 발전 방법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을 대하지 못하게 담을 막아 놓더라도 그 담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영계에서 그 간격을 메워 줍니다. 내가 흥남감옥에 있을 때도 말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전도했습니다. 영계가 동원되어 협조해 주었습니다. 안 해주면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더라도 이와 같이 해야 됩니다. 지방이 어떻습니까? 선생님은 1960년대에 이름난 곳은 다 가봤습니다. 나는 지금 과거에 맨발 벗고 삼천리 강산을 횡단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이 고을 저 고을 전부다…. 이제 그러려면 할 일을 못 하니까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내가 군수쯤 되어 부락 집집마다 다니면서 물 한 그릇씩 얻어먹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부락에 가면 어떤 집이 있을까, 저 마을에 가면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도자가 못 되는 거예요.

오늘 내가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생각해 보고, 첫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세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며 `아버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데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기도한 그 기준과 딱 맞아떨어진다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적 촉감이 발달되는 것입니다.

길을 나서면 벌써 오늘은 이런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무한정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을 만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런 사람을 대하게 되면 `아이쿠!’ 하고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과 영계에서 가르쳐 준 영감이 실제의 사실로 딱 들어맞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체험을 쌓아 올라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런 직감과 예감으로 체험을 통해서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고, 국가면 국가의 운세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체험으로 영적인 촉감을 발전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1970년도에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도 떠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걸어가면서도 그것을 생각할 수 있고, 공허한 자리나 엄숙한 자리에 있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30-151
고생의 참된 의미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러는 귀찮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 길을 행차하신다면 어떻게 행차하실 것이냐?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며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좋은 경험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반드시 일기로라도 한 장 기록해 놓고 싶은 마음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록은 여러분의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생의 신앙노정에 있어서 말 할 수 없는 값진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못 해보는 것이 한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오기 위해 차표도 없이 도둑 기차를 탔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맨 구석 끝에 앉아 가지고 차장이 나타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지요? 차장이 나타났다 하면 쥐새끼처럼 어디든지 기어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차장이 지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던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의 기분은 다른 세계에서 느낄래야 느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면서 따라오다 보니까 그러한 일도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은 돈을 주고 차표를 구입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요. 대신 이 다음에 이 나라를 위해서 보다 더 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내적으로 그 이상의 것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 개인으로는 법의 처벌도 받아야 되겠지요. 그러나 법의 처벌을 받게 되어도 공적인 기준에서 일을 할 때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런 조건에도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생은 되었지만 그때가 좋았다는 겁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인상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강도와 함께 쇠고랑을 차고 흥남감옥으로 이송되어 갈 때, 산골짜기에 접어들어 개울길을 따라 걷던 그때가 참으로 새롭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굽이굽이 산골짜기의 길을 걸어가던 그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상적입니다. 그 걸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하던 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날마다 가야 할 나의 길은 어디일 것이냐? 형을 마치고 나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주 궁금하다는 거예요. 감옥 생활을 어떻게 해나가느냐? 어렵지만 나는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새로운 자아를 각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남아진 것은 그러한 것밖에 없습니다.

한때는 함흥에서 굴을 뚫는 일을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픈 가운데 일을 하니 곡괭이를 움켜쥔 손이 올라가지 않고 정신마저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그때의 밥! 그 밥을 먹기 위해 곡괭이를 땅에 박고 돌아서는 그 순간의 기분, 선생님에게 그와 같은 산 역사의 재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생도 그러한 것에 비길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비참했던 사연들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사에 길이 빛낼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직한 보화를 끌어모을 수 있는 그날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난의 사실을 세계 만민 앞에 털어 놓고 이야기하면, 다른 내용으로 한 시간을 설교하는 것보다 이 내용으로 10분만 이야기하면 통곡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좋은 설교 내용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걱정하지 말고 30세 전까지는 고생을 하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33세까지 고생하다가 죽음 길을 갔어요. 선생님이 말하는 통일교회의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빌려서 가진 복입니다.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것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깨닫는 데서만이 새로운 날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거에요. 여기에 어머님이 같이 앉아 있지만, 선생님이 여러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어머님이 제일 진지하게 말씀을 듣다보니 결국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가를 안다는 거예요. 결론은 자신을 두고 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을 많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신을 많이 교육해야 됩니다.

30-153
뜻 앞에 공로자
실천적인 생활에 있어서 선생님은 엄격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모셔 본 사람들은 잘 압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길러 나가야 됩니다. 새로운 자극을 자신에게 줘야 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면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무미건조하게 됩니다. 여러분, 무미건조한 것이 좋아요? 희극이나 비극을 보면 극적 장면이 나오지요? 그 극적 장면은 무엇이냐? 그것은 입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사람을 울릴 수 있는 희비극의 기준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주제로 한 좋은 영화는 초만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배우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설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강의에 들어가면 분위기를 봐 가지고, 저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하고, 이 사람은 어떻게 이끌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핵심을 맞추어서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해야지, 하나님이 죽어 있다고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전도하지 말래도 반드시 전도하게 됩니다. 전도하는 일이 제일 충격적이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열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놓고 진지하게 대화하면 열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교회에 와서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들이 발전할 때, 반드시 나 자신도 발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올라가는 겁니다.

잔디 같은 것을 발로 밟으면 다시 일어나지요? 마찬가지로, 그들이 뛰면 나 자신도 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기에 하늘을 위해 사는 길은 마이너스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하면 발전하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열매가 맺지 않으면, 나에게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여러분이 생각하고, 각자 교회로 내려가게 될 때는 올라올 때 경부선을 타고 올라왔던 그 감정, 호남선을 타고 올라왔던 그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가져야 됩니다. 올라올 때 서울을 보고 왔으면, 내려갈 때도 서울을 보고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차 안에 들어설 때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찾았을 때는 목적지에 갈 때까지 관찰해 보는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저 사람은 성격이 급하겠구나. 저 사람은 성격이 좋겠구나. 그러니 저 사람의 팔을 치면 틀림없이 이렇게 나올 것이다’를 생각하면서 한번 테스트해 보라는 겁니다. 생각했던 대로 맞으면 통쾌하다는 거예요.

동네에서도 마찬가지고 해보세요. `아! 저 아주머니는 성격이 이렇겠구나. 내가 이렇게 나오면 저 아주머니는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뛰어나가 모른 척하고 한번 부딪혀 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모르고 부딪힌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때리겠어요? 그럴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사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자료를 수집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전부 새로 출발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새로운 것을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맨 처음 것, 즉 숫것이 아니면 취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서 원리말씀을 대하는 데 있어서, 혹은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전도하는 데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관념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서 새것을 창조하는 창조주의 심정을 대신하는 입장에 서서, 무한한 가치를 드높이는 새로운 기준을 모색해 나가는 데 자신이 공로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늘이 같이하기 때문에 늘 발전할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30-155
기 도
아버님, 수택리 이곳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기억하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과 통일의 제단에 인연되어 있는 자녀들이 수택리 이곳을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터전 위에서 통일교회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위해 출발하였사옵니다. 이렇게 새로운 기반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저희들을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이 의미 깊은 수택리에서 저희들이 수련회를 할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리옵니다. 또한 여기에서 수련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영인들을 동원해 주심도 감사합니다. 이 땅 위에 통일의 이념을 세워야 할 저희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원리원칙에 가까운 결과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 앞에 다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들을 사랑하옵소서. 이들은 지구장 지역장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생명을 책임지는 무거운 길에 있사옵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잘못하게 될 때는 수많은 생명을 죽일 수 있는 자리에 있사오니,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곧 우주를 완성시킨다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그 가치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 가치의 진가를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런 사람은 아버님께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하루보다도 귀한 한 사람이 더 귀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년보다도 귀한 한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생애보다도 더 귀한 한 사람을 세우고자 하시는 것이 복귀의 뜻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과거 역사가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한 입장에 있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앞에 수고하는 지구장과 지역장은 공적인 입장에 선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 자신이 아버지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는, 자기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 대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손에 칼을 들어 양을 잡아 번제를 드려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지구장이요, 지역장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음과 도탄 중에 살고 있는 삼천만 이 겨레 앞에 아버지께서 찾아오시어서 같이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역사적인 수난의 역경을 무사히 넘기게 된것을 이 민족 스스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이념을 전하기 위하여 이 민족 앞에 저희들을 내세워 주신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 민족을 중심삼고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이 이념을 꽃피울 수 있는 결실체로서 천적 가치를 펼쳐 놓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행치 못한 일이 많았음을 사죄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저희 자신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길,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 마음은 아버지 앞에 서기 위해 흠모의 정을 가지고 불타야 되겠습니다. 사모의 정성을 모아 나 자체를 불태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기울여야 되겠사옵고, 아버지 앞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몸은 가다 죽을지라도 아버지가 그리워서 아버지의 본향 집, 아버지께서 임재하시는 그곳을 향해야 하겠사오며, 내 일대에서 가지 못하면 후손들을 몰아서라도 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저희가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마음은 저희들이 그러한 모습이 되어 주기를 바라던 때가 몇 번이었사옵니까? 당신의 억울한 심정 가운데 귀기울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자극시켰던 때가 몇 번이었사옵니까? 당신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실체로서 남아질 수 있는 그러한 때가 몇 번이었사옵니까? 이러한 입장에 서 있어야 할 저희 자신이, 그렇지 못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을 다시 명시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잊을 수 없는 자리에 저희들이 서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섭리적 책임을 졌을 때 저희는 자신있게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모습이 될 것이며, 아버님은 저희들을 참으로 고맙게 여긴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처럼 아버지가 저희들을 반겨 주시는 모습을 대할 때, 저희가 기쁨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앞에 감사할 줄 모름을 탓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아직도 이들이 가는 길 앞에 수난의 길이 남아 있사옵니까? 아버지여! 수난의 물결이 이들 앞에 가로 놓여졌거든 최후의 승리자가 될 때까지 그 거친 물결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영웅심을 이들에게 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낙오자의 심정을 가지는 졸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백절불굴의 심정으로 아버지의 중보자가 되어 아버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가 가시는 그 행보에 맞추어 가야 되겠사오며, 쉬라고 권하는 이들이 있으면 그것을 뿌리치고 가야 하겠습니다. 내 갈 길은 아버지 대신 오직 세계 복귀를 위하여 나선 걸음이기에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설령 아버지가 막는 것을 뿌리치고 나선다 할지라도 이것은 불효가 아니요, 불충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불충은 불충될 수 있는 입장에서 불충되지 않는 자리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는 것이 불충이요, 하라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불충인 것을 알게 하시옵소서. 충은 이제는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을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 충이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것이 충인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상적인 자리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 있는 입장에서 충효의 길을 엮어가야 할 아들이 되지 않고서는 천상의 아버지의 권위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지존하신 아버지 앞에서는 역시 지존함을 추구하는 아들이 되지 않고서는 아버지의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오늘도 그러한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자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당신의 소중한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충의 본체가 되기 위해 저끄러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아야 되겠사옵니다.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 앞에 충성할 수 있고 영광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아들이 된다면, 이 땅 위에서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 그만큼 숭고한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저희들은 아버지의 모든 외적인 기준은 물론이요, 내적인 심정의 세계를 독차지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절대가치를 지니고 간다는 사실 또한 절감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되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가지고 자랑한다 해도 그러한 자리가 일찌기 없었습니다. 누구든 마음속에 아버지와 인연된 사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저희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아버님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영원한 세계에 자랑해 나오셨고, 또한 수많은 선조 앞에 자랑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제 앞에 나타난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권고를 받게 될 때, 아직은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못 된다고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한 이 아들을 아버지께서는 더욱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아들이 참으로 자비로운 아버님이라 부르면서 옷깃을 여미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이 자리의 철모르는 아들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돌아가야 될 시간이옵니다. 이들이 돌아가서 누구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시옵고, 아무개의 남편이나 아무개의 아버지로만 사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시옵소서. 대한의 사람, 대한의 아들딸, 대한의 어버이로 모든 이들을 품음으로써 이 나라와 이 세계의 어버이가 되고 아버지가 기억할 수 있는 아들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자기의 생애를 잘 간수하면서, 당신을 경외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될 수 있게,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저희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시기 위하여 불러 모아 주셨사옵니까? 아버지, 저희 마음속에 절대로 절망감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1970년도의 이 달을 당신이 요구하는 환희의 한 달로 맞이해야 되겠사옵니다. 이는 오직 승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오신 당신의 숨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 어려움을 넘어오셨기 때문이옵니다. 그걸 본받아 가는 저희들의 길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만나는 그 날, 아버지를 맞아 쌍수를 들어 찬양함으로써 아버지께서 즐거워하시고, 또 하늘땅 전체가 축복받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날을 맞이하기 위한 이번 기간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하는 일은 저희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하여 책임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면 민족과 세계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저희들은 충효의 도리를 다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백 번, 천 번 죽을지라도 저희를 위한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의 은덕을 다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사랑의 조그마한 조건도 갖추지 못한 부족한 모습을 복귀의 노정에 세워 주신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될 때, 천 번 만 번 아버지를 찬양해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다시 만나더라도 뜻을 놓고 말씀을 나눌 수 있어야 되겠사오며, 상봉했던 날을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이번 기간을 70년대를 장악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서, 아버지의 칭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러한 아들딸이 되려는 저희들 앞에 수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굶주림의 길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어떠한 난관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스스로가 적응력을 키워서 그것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에 놓여 있사옵니다. 내가 불쌍한 것을 보면,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더욱 불쌍한 입장에 계시다는 것을 절감하며 내 심정보다는 아버지의 심정을 먼저 생각하여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줄 아는 참모습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효자는 잘 입어서 효자가 아니요, 잘 먹고 잘 살아서 효자가 아닙니다. 비록 벌거숭이 몸으로 나타난 아들일지라도 탕자가 아닌 이상 부모 앞에 효자가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아버지가 남기신 뜻 앞에 진정한 심정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들의 가정 위에 축복하시어서 빠른 시일내로 당신의 뜻에 부응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오늘의 이 세계 앞에 하늘의 권위를 자랑함으로써 자유 해방을 찬양할 수 있는 기쁜 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쌍수를 들어 개선가를 부를 수 있게 하시옵소서. 저희는 오로지 그 한 시간을 향하여 가야할 운명을 띠고 있사오니, 그 운명을 감사히 여기며 갈 줄 아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을 새로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정초석을 바로 놓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체 위에 당신의 긍휼과 자비가 같이하시옵길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