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7 to 30-35: 귀향길

귀향길
1970.03.14 (토),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30-07
귀 향 길
우리 타락한 모든 인간들은 창조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그 본연의 기준을 다시 복귀해야 된다는 것, 즉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 종족, 민족,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까지 전부다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30-07
복귀의 운명길
복귀라는 명사를 놓고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보다 큰 것을 중심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복귀되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를 넘어서 가정을 복귀하고, 가정을 넘어서 종족을 복귀하고, 종족을 넘어서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복귀해야 되는 엄청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본향 땅을 향해 돌아가야 할 운명을 짊어지고 가는 우리 자신이 내 개인을 중심삼고 돌아갔다 하더라도 돌아간 그 고향에 정착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조들이 가야 할 본연의 세계를 찾기 위해서 희생해 갔지만 그들은 복귀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다시 복귀의 길을 되풀이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 원리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희생의 제물이 되어 재차 복귀의 운명 길을 가야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한 개체가 본향으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다시 가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본향 땅에 돌아가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이 땅에서 가정을 찾아 가지고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가 가르쳐 주는 근본 뜻입니다.

예를 들어 야곱 같은 사람도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자기 부모와 친척이 있는 그 환경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상대적인 인연이 갖추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야곱이나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복귀의 운명길을 앞에 놓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복귀의 담당자는 그 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기 고향 땅에서는 가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향 땅을 떠나 사탄 세계에 가서 가정을 찾아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복귀될 수 없는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지금까지 복귀의 도상에서 책임을 지고 왔다 갔던 사람들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런 길을 가지 못하면 마음적으로라도 그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오늘 타락권내에서, 여기에서 본향 땅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본향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돌아가는 데는 혼자 못 돌아갑니다. 혼자 돌아 갔다 하더라도 다시 가정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되고, 가정이 돌아갔다 하더라도 다시 종족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족이 돌아갔다 하더라도 다시 민족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민족도 고향 땅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사탄세계에 가서 민족을 찾기 위한 싸움을 하여 승리하지 않고는 민족이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 민족이 아무리 본향 땅에 돌아갔다 하더라도 그 민족이 국가의 주권을 세워 사탄세계의 주권을 대하여 승리적인 기반을 닦지 않고는, 또다시 사탄편 국가와 대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한 국가를 세웠다 하더라도 그 국가만으로 복귀의 길, 돌아가는 모든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있기 때문에 또다시 세계를 구해 가지고 돌아가야 할 운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서 30여 년의 생애를 살다가 죽음길을 감으로써 아버지 앞에 갔지만 그것으로 그의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운명하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남긴 것은, 자신이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다 이루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신이 거쳐야 할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남기고 갔지만, 예수님은 다시 이 땅 위에 부활한 40일 기간을 통해서 지상에서 이루어야 했던 외적인 기반은 두고라도 내적인 기반, 영적인 기반을 찾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찾아 놓고야 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 돌아갔지만, 그 입장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 안식할 수 있는 기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지상에 와 가지고 기독교면 기독교를 중심삼아서 가정적인 형태, 종족적인 형태, 국가적인 형태, 세계적인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싸움의 선봉에 서서 다시 본향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책임을 지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돌아가야 할 본향으로 가는 길에 선 우리자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선지들이 그렇게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길도 그러한 길입니다.

30-09
통일교회의 사명
그러면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이상세계, 즉 유토피아입니다. 우리 인류가 그러한 세계를 추구해 나왔지만 그 세계는 우리앞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면 갈수록 우리들에게 행복의 여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절망의 여건을 제시하고 있는 결과의 세계에 처해 있는 것이 오늘의 인류입니다. 담벽에 부딪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돌아가야 됩니다. 앞으로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던 인생길을 돌이켜 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정세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그리고 세계 인류가 돌아가야 할 그 본향길을 제시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우리만 돌아가 가지고 될 것이냐? 아닙니다. 돌아가더라도 우리만 돌아가서는 또다시 와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작전을 하시느냐 하면,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 본향의 사람을 보내시는 작전을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수많은 선지선열, 이 땅 위에서 복귀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본향을 버려두고 타향살이를 하러 온 사람과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탕자가 아닙니다. 그 집안에서 효도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효도하는 아들딸을 보내가지고 이 땅 위에 탕자와 같이 불효하는 사람들을 구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 효자를 중심삼고 하나의 형제를 모집하고, 하나의 종족을 모집하고, 하나의 민족을 모집하고, 하나의 국가를 모집하기 위한 운동이 지금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해온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지상에 보내어 절대적인 하나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일을 진행시켜 나왔지만, 현시점에서 하나의 국가를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하늘의 사람을 보내 그 일을 경영시키고, 추진시키고, 성사시키기 위해 애써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오늘날 이 땅 위에 통일교회를 세우셨는데 어떠한 입장에다 세우신 것이냐? 천국의 기반 위에 세우신 것이 아니라 사탄세계에 세우신 것입니다. 탕자들이 우글거리는 자리에 세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향에서 사랑받으며 편하게 사는 효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기 부모와 친척들을 남겨 놓고 탕자들이 사는 곳에 가서 형제들을 구하고, 종족을 구해 가지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종교라는 종교는 다 타향살이를 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본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타향살이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곤궁하면 곤궁할수록 본향으로 돌아갈 날을 그리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데는 나 스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가 이 땅에 보내지게 된 것은 내 개체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기필코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거느리고 가야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본향으로 가는 길 자체가 슬픔의 길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30여 년의 생애를 보내면서 싸운 목적은 무엇이냐?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본향으로 가기 위한, 귀향길에 들어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민족을 거느리고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싸웠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그 실패의 서러운 길이 십자가의 말로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서러움의 터 위에 나타난 기독교 교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그 길을 다시 거쳐 가지고 국가 형태를 갖춘 기반 위에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아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소원이요, 예수님 자신이 2천년 동안 성신과 연결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지상을 중심삼고 해온 싸움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이 사탄세계에서 하늘의 개인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가정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종족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민족을 찾아 세우고, 하늘의 국가를 찾아 세워 본향으로 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의 한 개체는 어떻게 해서든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정 종족 민족을 규합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짊어지고 있는 사명인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0-11
통일교인은 어떤 입장에 있느냐
지금까지 인간들은 타락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고난이나 고통같은 것은 없는 가운데 계시는 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수많은 종교도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그렇게 알고 신앙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알고 보면, 하나님은 어떤 입장에 계시느냐? 하나님은 자신의 가정, 자신의 자녀, 자신의 모든 재산, 자신의 나라와 세계를 잃어버린 입장에 계십니다. 그런 입장에 계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만나면 자기의 모든 한이 해원되고 지금까지 고대하던 것 전부가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길을 찾아 나와 가지고 부모를 상봉하고 보니, 그 부모가 갖고 있는 재산은 물론이요, 세계와 부모의 모든 것이 원수의 수중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난 우리에게는 그 부모를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지워졌습니다. 또한 부모가 잃어버린 인류의 조상과 부모가 가져야 할 본연의 국가를 찾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재결의를 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것을 고향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사탄세계가 빼앗아 간 그곳을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복귀의 길을 더듬어 가는 우리의 입장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종교를 세워서 본향길을 찾아나왔는 데, 그곳을 찾아가 아버지를 만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자리에서 환영을 받고 기쁨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아버지의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그 나라를 찾아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전체적인 책임이 우리 앞에 남아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당신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곳을 오지 못하게 방파제를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막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사정을 만인간 앞에 전개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입장이 그러하기에 따르고 있는 자녀들, 고생과 수난의 길을 다 극복하고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한번도 인류 앞에 당신의 사정을 통고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도리어 인간을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뜻을 위해 출발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 사람도 그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가 그런 아버지의 입장을 통고하여 가르쳐 주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버지의 전체의 사명과 전체의 희망과 통일교회의 생사문제를 걸고 한 입장인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됩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 인류를 복귀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내정을 가르쳐 줬다 할진대 우리에게는 이중 삼중의 책임이 가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를 알고 보니 아버지는 불쌍하신 분입니다. 아버지는 제일 사랑하는 아들딸을 빼앗겨 버렸고, 거느려야 할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전부다 잃어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이런 입장에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아버지가 이렇게 되었느냐? 원수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원수가 어디 있느냐? 원수를 찾아가 싸워서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 원수를 전멸시키고 지금까지 부모가 품고 나온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의 길이 좋다고 해서 왔을 테지만 좋은 것이 아니라 이중 삼중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것임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옛날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고향을 떠났지만, 오늘날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난 우리들은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더라도 떠나겠다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오늘의 통일교회 교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역사적인 선지자, 혹은 역사적인 우리 조상들이 가지 못한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에 우리가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선조들이 희망을 갖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2의 기대를 갖고 하나의 소망의 기준으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이제 우리가 사탄세계를 향하여 아니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출발한 그 걸음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첫번째 걸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소망의 한 존재로 모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찾아 나왔지만, 그와 같은 입장에서 출발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싸움터로 달려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런 책임을 진 입장에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이제 우리는 부모의 존재를 알았고, 지금까지의 민족의 참사를 알았습니다. 그 민족이 멸망하게 된 것도 알았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느냐? 이것은 부모가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형제가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거느릴 수 있는 그 나라, 그 민족이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이 잘못은 온통 원수가 저끄러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에게 효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알고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알았으면 이 원수를 갚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형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족과 민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싸움의 길을 책임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는 길에 어떠한 수난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시 않고 돌파해야 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30-14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복귀의 한을 풀 수 없다
오늘날 여러분은 자기 하나만 복귀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기 혼자 복귀된 입장에서 아버지 앞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아버지는 `너 혼자 왔느냐, 네 가정은 어떻게 했느냐, 네 종족은 어떻게 했느냐, 네 민족은 어떻게 했느냐, 네 나라는 어떻게 했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필코 이 땅에 다시 보내질 것입니다. 기쁨의 한날을 맞기 위해서 고향을 찾아간 그 모습은 아버지 앞에 체면과 위신을 세우지 못하면 다시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으니 이왕지사 환본향길에 오르기 전에 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고 가야 되겠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찾으려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민족 복귀의 뜻을 중심삼고 이 땅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유대교단을 향해 나서기 전에 종족을 복귀할 수 있는 가정의 터전이 문제였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개인이 설 수 있는 하나의 상대적 여건을 찾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개인이 찾아올 수 있는 기준이 되어 개인이 복귀되면 가정을 찾아야 하고, 가정이 복귀되면 종족을 찾아야 됩니다. 또 종족이 복귀되면 민족을 찾아야 되고, 민족이 복귀되면 국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국가라는 하나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는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표준하여 30여년의 생애 동안에 있는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수고의 노정을 걸었지만 모든 갈 길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영계를 중심삼고 나라를 복귀할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십자가의 길을 허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생하고 수난을 당한 것이 오늘날 복귀의 길 가운데 맺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심정을 갖지 않고는 복귀의 도상에서 환고향하는 데 있어 하나의 책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심정이 없이는 자기를 중심삼고 가정을 복귀할 수 없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복귀할 수 없으며,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복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것은 영계에 감으로써 모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고향에 가기 전에 영계에 가는 날이 올까봐 두려워하며 지내야 됩니다. 일생을 중심삼고 어떻게 이런 문제를 감당하느냐 하는 문제를 앞에 놓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생애를 걸고 한 시간, 일분, 일초를 아껴 그런 생활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에 가서 지금까지 그 나라를 찾기 위해 수고해 오신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으며, 또한 세계를 찾고자 하시는 아버지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인인 것입니다.

자다가도 눈을 뜨면 원수의 적진에서 포위된 것을 여러분은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자고 있는 그 자리가 안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요, 마음놓고 밥을 먹고 쉴 자리가 아닙니다. 원수에게 포위된 이 환경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는 그 자리에 싸움의 방어선을 쳐놓고 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행동하는 그 환경에 방어선을 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홀로 감당할 수 없으니 동지의 규합이라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북한 괴뢰집단이 남한에 침투시킨 간첩들은 이 땅에 와서 심각하게 활동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들과 같은 정도의 마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이상의 마음을 갖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주권을 찾기 위해서도 생명을 걸고 넘고 넘어야 되거늘, 오늘날 이 세계를 복귀하고 천주의 운명을 책임지고 가야 할 도상에 있어서 생명을 내놓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의 도상에서 품은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명을 내놓고 복귀의 도상에서 품게 된 한을 풀겠다고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30-16
하나님과 선생님 앞에 면목을 세우려면
지금까지 여러분은 이 정도만 하면 모든 것이 되리라 생각하고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났지만 선생님과 여러분 사이에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만나면 거기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 역시 지상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거지꼴로 돌아오는 탕자와 같은 입장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탕자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라시는 효자의 입장에서 원수를 찾아가서 자기의 자녀를 복귀하고, 자기의 재산을 복귀해 가지고 돌아간 야곱과 같은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향에 돌아가서도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고, 축복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선생님을 믿고 나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면 만사가 형통되고 만사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실상 영계에 가 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지상에 재림부활하여 협조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민족적 기반이라든가, 국가적 기반이라든가, 세계적 기반을 닦아야 할 사명을 중심삼고 다시 지상에 와 가지고 투쟁하는 역사를 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지상에서 부모님을 만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됩니다.

부모님을 만나고 보니, 그 부모님은 이 땅 위에서 행복을 노래하면서 평화롭게 사시는 분이 아니라 국가와 세계를 찾아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행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 대해서 가르쳐야 할 입장에 있는 부모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님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 안위하고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찾겠다는 개인이 있다면 불효 중의 불효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중의 불효가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부모님에게는 찾아야 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으며,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찾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찾아 드려야 할 가정이요, 국가요,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여러분은 6천년 역사를 수고해 오신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음과 동시에, 생애를 걸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선생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뜻을 알고 난 그날부터 우리의 갈 길은 비참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 이상을 가르쳐 주고, 앞으로 이 세계에 대한 행복을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가르쳐 주었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르쳐 준다 해도 여러분들이 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실체적인 기반을 찾아 가지고 돌아가지 않으면 그 행복의 여건은 여러분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이 현재 처한 곳이 어떤 곳이냐 하면, 보좌에 앉아 가지고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가운데 사탄과 대치해 싸우는 일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적진을 대하고 있는 일선에서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선에서, 개인을 찾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되고, 가정을 찾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되며, 종족을 찾는 싸움에서 승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귀의 판도가 점점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국가 기준을 대신한 사탄은 최후의 발악을 할 것입니다. 발악할 수 있는 국가 기반이 없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세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계도 역시 한번은 부딪쳐야 합니다.

30-18
국가 복귀를 해야 할 통일교인
앞으로 있게 될 큰 싸움에 우리들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종족과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 복귀라는 이 엄청난 과제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개인 복귀를 위한 싸움에서 그 치열한 전투에 참전한 때가 있었습니까? 또한 가정을 복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에 참전한 때가 있었으며, 종족을 복귀하기 위한 싸움터에 참전한 때가 있었습니까? 민족과 국가를 복귀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일선에 나선 때가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국가 복귀라는 것을 놓고 전반적인 승리를 결정지어야 할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70년대를 맞았습니다. 이때는 민족과 국가라는 한계선을 중심삼고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들이 생명을 걸고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가지고, 하나님을 억울한 입장에 서게 한 원수를 갚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분노심에 사무쳐 원수의 진지를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모습,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라도 이 하나의 목적을 성사시키는 것을 생의 보람으로 여길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하나님 앞에, 주체 되신 부모 앞에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영계에 돌아가서 아버지가 비참하신 분임을 알게 된다면 다시 지상에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가야 할 세계적인 노정을 지상에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전부다 지쳤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거지와 같은 신세가 되어 가지고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 가지고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안식할 수 있게 될 줄 알고, 여력이 남아 있는데도 이제는 행복을 노래하고, 콧노래를 불러 가면서 `내일의 희망을 여기서 닦자’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진맥진한 몸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서 원수를 갚고, 원수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찾아 돌아오지 않고는 자기 위신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 선 나, 그런 입장에 선 가정, 더더욱이나 축복가정 여러분들은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분부하셨고, 내가 찾아야 할 가정을 대신 찾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찾아 주신 가정에서 안식의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을 거느리고 종족을 복귀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내 생명과 잃어버린 내 가정을 찾을 수 있는 이 한날을 가진 것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가정을 통하여, 찾아야 할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런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게 되면 국가는 자동적으로 복귀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은 가정이 된 것은 하늘이 수고하신 공적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허락된 복입니다. 하늘이 그런 복을 주는 것은 그 복을 그냥 그대로 계승해서 그 자리에서 행복을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을 찾는 책임을 짊어지우기 위해서 축복해 주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전체 민중을 통일교회 앞에 찾아 세울 수 있는 마을이 있으면 그 마을을 중심삼고 면이면 면, 군이면 군, 도면 도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자기 마을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 하나님이 수고한 것이 있으면 그 이상의 수고를 하지 않고는 면과 군과 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현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통일교회의 배후에서 협조하고 있는 도수가 얼마나 강하냐? 이때에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얼마만큼 협조하시느냐? 그 협조의 도수를 중심삼고 그 이상의 수고를 우리가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그런 환경에서 수고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민족과 국가를 복귀할 기반을 닦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영계에 갔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 다시 지상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명은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고 수많은 원수 국가를 굴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라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만 되었으면 세계의 국가는 반드시 굴복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복귀하느냐? 이 나라 이 민족을 어떻게 복귀할 것이냐? 이남 땅을 복귀했다고 해도 이북을 어떻게 복귀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는 민족적인 입장에서 제물을 드려서 국가를 복귀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입니다. 지금 국가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가인의 입장이요,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찾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 아닙니까? 실체기대라는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아벨 자체로만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벨 개인 자체로만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벨 가정 자체만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가인적인 개인을 찾아야 되고, 가인적인 가정을 찾아야 되며, 가인적인 종족을 찾아야 되고, 가인적인 민족을 찾아야 되고, 가인적인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요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우리 나라 아닌 다른 나라가 갈라졌으면 그 나라를 어떻게 찾겠느냐? 여러분이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삼팔선이 갈라진 것을 섭리사로 살펴봅시다. 삼팔선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어서 속히 남한 땅이 당신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통일되어서 대한민국의 아벨 입장이 되어 가지고 가인의 입장인 북한을 굴복시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남한 땅이 사상무장, 모든 실체무장을 갖춰 가지고 완전히 하나만 되는 날에는 가인 땅을 복귀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에 있어서 중심적 국가는 자동적으로 결정되지않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통일교회가 짊어진 모든 수난들을 감사히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이 민족과 이 세계가 가야 할 운명길을 대신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 각자가 알고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응당히 받아야 할 수난을 감사히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규합해 가지고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두 사람을 규합해서 네사람으로…. 이렇게 배가시켜서 이들 각자가 자기의 종족을 복귀함과 동시에, 그 종족을 민족적 전선으로 넓혀서 민족을 하나 만들고 국가를 복귀해야 합니다. 이런 운명길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느냐?

우리 통일교회는 현재 민족을 앞에 놓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복귀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선생님 가정과 여러분 가정이 하나되어서 통일 종족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 민족을 형성해야 됩니다. 통일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세 종족 이상을 책임져야 됩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이씨면 이씨 해 가지고 세 종족을 어떻게 복귀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430쌍을 축복해 주면서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30-21
통일교회가 가야 할 본향길
이제 여러분들은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안팎으로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는 데 있어서 자기가 개재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의 가정이 목표하는 곳과 방향을 같이하여 나가야 됩니다. 이제 사령관이 최후의 진격 명령을 내리게 될 때, 사령관이 앞장서서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 군사들이 사령관 앞에 나섰다가 먼저 전사하게 되면 그 군대는 갈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 가정이 철옹성같이 뭉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신자들이 철옹성같이 뭉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로 뭉쳐진 무리가 그냥 그대로 일선을 향하여 진군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벨적인 입장에서 민족 복귀라는 엄숙한 과제를 역사시대 앞에 맡아 가지고 나섰습니다. 이것은 복귀섭리 전선에서 단 한번밖에 없는 일입니다. 어느 때에도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런 일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시대적인 환경을 갖춰 가지고 국가 복귀를 위해 이 땅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인연을 우리가 맨 처음 가졌다는 사실이 오늘날 복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내용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나깨나 이 민족, 대한민국을 어떻게 복귀하느냐, 어떻게 남한을 복귀하고 또 어떻게 북한을 복귀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외적인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된다 하더라도 해방 이후 북한 땅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느냐? 그들은 완전히 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어떻게 전도할 것이냐? 그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서 우리편에 서서 우리 대신 일선에 나가, 중국 공산당 혹은 소련 공산당을 대해서 싸울 수 있도록 만들 것이냐?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아벨 앞에 굴복된 가인 입장에서 책임지고 나가 싸울 수 있도록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아야만 한국 강산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북한은 비로소 통일되고, 배달민족은 비로소 역사적인 한을 풀고 하늘 앞에 하나의 주권국가로 설 수 있고, 또다시 세계 앞에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향의 현실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보니 고향은 불행한 곳이었습니다. 내가 부모님을 떠나 올 때 원수를 갚고 돌아오겠다고 결의하고 나섰으니, 원수를 갚고 원수의 세계에서 반드시 무엇이라도 탈환해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님 앞에 바쳐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떠날 때 결의한 것과는 달리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다시 부모님을 눈물 흘리게 하고, 동정을 받는 패자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죽더라도 싸워야 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어디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가면 못 따라가겠습니까? 본향으로 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신 예수님은 죽음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 뜻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또한 그것이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그러한 전통적 사상이 이어져 나왔기 때문에 오늘에 우리들도 그러한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을 일선에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가정들이 피해를 입으면 입을수록, 가정들이 맞으면 맞을수록 가정들이 침범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빨리 복귀될 것입니다. 한 가정이 희생을 당했다 할진대는 그로 말미암아 그 동네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 희생한 것보다도 가정이 희생하면 하늘편으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축복받은 가정을 수난의 길로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민족을 살리는 첩경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그 수난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본향세계에 가 가지고 무슨 면목을 세울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현재 한국 백성에게 부과되어 있는 책임이 무엇이냐? 남북한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의 노래를 부를 적마다 이것을 상기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교회는 남한 땅에서 아벨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아벨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치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맞고 빼앗아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수난의 길을 나오면서 그것을 선전해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적을 가지고 복귀하는 것입니다. 대중의 양심을 분발시킬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제시해야 복귀가 됩니다. 선한 사람이 억울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 분발할 수 있게 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복귀해서 지금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지금 이 70년대를 볼 때에 지금까지 우리를 사탄시해 나오던, 원수시해 나오던 그 원수의 입장이 변해 가지고 이제는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 섰기에 우리편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살 수 있고, 이 민족에게 새로운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시대가 출발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경계선을 넘은 그 시간서부터 우리는 국가라는 표준을 걸어 놓고 치열한 전투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적지를 향해 우리가 진격하는데도 불구하고 적지에서 반항하지 않는 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반항하지 않을수록 배가의 진격 명령을 가해야 하는 것이 70년대를 맞은 우리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0-24
대한민국을 어떻게 빠른 시일내에 복귀하느냐가 문제
대한민국을 하늘편으로 복귀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원수가 모두 하나되어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삼천만 민중을 규합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관성을 복귀해야 합니다. 남한이 아벨적인 국가의 입장에서 가인적인 국가를 찾아야 합니다.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졌던 것을 하나로 통합시켜야 할 운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복귀의 도상에서 책임을 짊어진 대한민국이 이와 같이 남북이 양분된 것은 섭리적인 귀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혈투전에서 피를 흘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든가, 아니면 망하든가 세 가지 중의 하나는 해야 됩니다. 망하더라도 나 하나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나 하나가 망하면 억천만대의 우리의 후손이 살 수 있는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또 그 나라가 망하면 세계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망하게 할 수 없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족이 망해서는 안 되겠고, 통일교회가 망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망하는 날에는 공산당 앞에 통일교회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꿈꾸고 바라던 복귀의 모든 일들을 대한민국에서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를 택하여 가지고, 그 나라의 주권을 다시 갈라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어떤 나라를 통해서 이만한 기반을 다시 닦고 올라올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삼천만 민족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장은 그 누구도 참소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국가와 민족을 책임져야 할 운명의 길이 복귀의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역사시대에서 최후로 남겨진 한때를 바라보시고 지금까지 되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 최후에 남아진 일선, 이 대한민국의 고비를 어떻게 극복하고 넘어가느냐? 이 나라의 부패상을 바라볼 때 밤잠을 못자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낍니다. 환경의 비참상을 보고 의분심에 불타 폐가 되는 것은 모두 정리해 가지고 내일의 싸움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일선의 경계선을 넘게 될 때 공산당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김일성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귀향길을 찾아가는 선생님의 입장은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고향을 버리고 남한 땅에 내려와 가지고 지금까지 여러분을 찾아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가 있어도 그 형제 앞에 나의 사연을 말해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복귀역사노정을 걸어오시면서 말하지 못하시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선생님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척, 사랑하는 부모 앞에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지금까지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대신해서 원수의 세계에 가서 좋은 것을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부모 처자 앞에 하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을 위하여 정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인을 찾아 돌아오지 않고는 아벨의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가정은 부모가 있어야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가운데 가정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부모를 모시고 행복한 가정을 가지려면 종족을 가져야 됩니다. 종족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만 갖추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은 부모님을 모시고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종족은 가정을 대신해 싸우는 책임을 져야만 됩니다. 일선을 누가 사수하느냐? 일선을 사수할 자가 누구냐? 오늘 대한민국에는 일선을 사수할 아벨적인 존재들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인적인 존재가 있어 가지고 그 일선을 책임질 수 있는 민족적인 기반과 국가적인 기반을 닦았느냐 할 때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싸움을 책임지고 넘어가야 합니다. 만일 이 싸움에 지는 날에는 통일교회와 여러분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북에 김일성이가 70년대를 맞이하여 적화통일이라는 표어를 걸고 안팎으로 요새화해 놓고는 남한을 엿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책임 못하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생각해 봅시다.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으로서는 한국을 구할 도리가 없습니다. 구할 도리가 어디 있어요? 아시아 정세로 볼 때 한국은 포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이 우리를 자극하는 경우가 벌어질 것입니다. 지금 일본이 중공과 정치회담까지 할 수 있는 입장에서 막후교섭을 하고 있지 않느냐 이겁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갈 길이 막연합니다.

이런 절박한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이 절박한 정세를 앞에 놓고 오늘 대한민국을 어떻게 빠른 시일내에 복귀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서 부모를 모시고 나서는 날에는 사위기대가 복귀되기 때문에 공산당은 문제 없습니다. 우리 이념을 중심삼고 대한민국이 규합될 수 있는 기반이 닦아지면 북한 땅을 통일하는 것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강력한 통일전선이 펴질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 우리가 승리적 통일전선을 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 남한이 하나되어 북한을 복귀하지 않고는 가인 국가를 굴복시켰다는 조건이 성립 안 됨으로 세계적인 진출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천적인 복귀의 운세를 세계적으로 전개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30-26
귀향길을 찾아가야 할 우리의 운명
우리가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을 규합하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산당과 싸우는 데 있어서 대한민국 1개국만이 아니라 3개국을 동원해야 합니다. 대한민국과 일본과 중국을 동원해 가지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중국에 승공연합을 빨리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몇 차례 중국에 갔고 근간에 또 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에는 빠른 시일내로 반공노선이 펴질 것입니다. 그 입장을 빨리 갖추어야 됩니다. 외적인 분야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비할 수 있는 전선을 펴나가면서 횡적인 입장에서 세계가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복귀해 가지고 국가 전체가 하나되어 북한을 대하여 공표할 수 있는 주체성을 확보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는 입장을 빠른 시일내에 갖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일을 성취하는 것이 환고향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선 우리의 사명임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의 고향인 정주를 가 봐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향땅을 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갈 수 있게끔, 누구도 막지 않고 환영하는 가운데 가 보게끔 되지 않고는 여러분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고향을 떠나올 때 한을 품고 왔습니다. 지금 고향에 가게 되면, 선생님 육신의 부모와 친척들이 원수들 앞에 학살을 당해 그 무덤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남한 땅에서 여러분을 찾은 대가로 그런 일이 반드시 생겼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때에 가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의 한을 해원성사해 주지 않고는 자식으로서 부모 앞에 효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의 인연을 이 땅 위에서 맺지 못하고 가면 천상세계에 가서도 한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두고 볼 때 어차피 남북한을 통일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운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명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나깨나 대한민국 삼천만 민중을 어떻게 규합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아벨적인 책임을 진 통일교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됩니다. 내 개인과 내 가정과 내 친척은 물론이고, 오늘 통일가 전체가 희생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가정이기 때문에 희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희생하는 자리에 나가면 반드시 어떠한 문제든 풀려 나갈 것입니다. 이런 신념 밑에서 70년대에 여러분을 다시 내몰고자 하는 것이 자식된 여러분을 지도하고 있는 부모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나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야말로 내가 다시 싸워야 할 때입니다. 한번 찾아오는 한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갖추어야 할 한때를 잃어버린 원한을 풀 수 있는 때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에 어떻게 청춘시절 이상의 결의와 신념을 가지고 나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밤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단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야 됩니다. 싸워야 됩니다. 이것이 귀향길을 찾아가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이렇게 해서 남한을 하나 만들고, 북한 땅에서 괴뢰도당을 추방해 버리고 대한민국을 자유스런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 섭리로 말하면 여러분의 본향입니다. 성스러운 곳이요, 본향이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가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한날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삼천리 반도를 찾으려면 반드시 북한 땅에 가서 하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그날을 맞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삼천리 반도를 복귀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가인과 아벨, 즉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져 맺힌 국가의 원한을 찾아 하나로 묶어 가지고 승리적 이스라엘의 깃발을 통일된 권내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지 않고는 세계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30-28
대한민국을 복귀하기 위해 최일선에 나가야 할 우리
전세계로 발전한 통일교회의 모든 힘을 규합해서 한국을 복귀하기 위하여 주력하여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원조받고, 협조받을 수 있는 주체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실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쓰러질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야만이 앞으로 민족과 국가를 복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일선에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 더욱이 축복받은 가정들은 장자의 기업을 빼앗아 가지고 수난길을 가던 야곱의 마음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장자의 기업을 찾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서는 하나님이 승리의 기반을 닦고 계시기 때문에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당하는 수난을 가정적으로 감사히 넘겨야 됩니다. 수난을 당하더라도 감사히 여기며 나가야 됩니다. 수난을 당하더라도 낙망하지 말고 대한민국을 복귀하기 위한 최일선, 최전방에 우리는 나가야 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전방에 나가야 되고, 가정적으로도 전방에 나가야 됩니다. 최전선에 나가야 됩니다. 최전선에서는 뼈저리게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먹는 것의 보급도 정상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체내에서 보급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복귀의 운명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체적으로 보급이 안되거든요. 생명을 걸고라도 뜻을 이루고 돌아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낼 때는 뜻을 이루고 돌아오길 기대하고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내진 처소에서 억천만년 믿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 죽든 살든 승패를 결정해야 합니다. 피를 흘려서라도 하나님을 위한 조건을 세우는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몇 백 배, 몇 천 배의 승리적 터전을 마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희생할 것을 알면서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70년대를 맞이하여 우리들이 이와 같이 모여서 수련을 받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냐? 제2전선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제1전선에서 싸웠습니다.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은 수난의 길을 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체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소모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등한 입장에서 가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시대적인 여건이 우리 앞에 다가온 이 70년대에는 다릅니다. 이제는 제1전선이 아닙니다. 제2전선을 맞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60년대는 제1전선이었습니다. 싸워 가지고 탕감하는 전선이었어요. 하지만 이제야말로 우리가 제2전선을 맞이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 전선을 가로놓아 가지고 남한 땅을 넘어서 북한 땅을 향하여 가야 합니다. 이것이 환고향하는 우리의 길이요, 귀향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아버지 앞에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삼팔선을 다시 넘을 때에는 대한민국이 넘어와야 되겠습니다’ 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그때에 결의했던 내용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 땅을 그리면서 삼팔선을 넘어갔지만 평양까지 가서도 고향에는 안 갔습니다. 갈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다짐했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죽더라도 고향에 갈 수 없는 것이 선생님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부터 혹은 비참한 운명길에서 배반당하고, 민족이 원수시하는 그런 길을 거쳐서 오늘날 이만한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30-30
통일교인들이 해야 할 일들
그렇기 때문에 이제야말로 우리가 총궐기해야 하겠습니다. 민족 해방을 위하여 나서야 되겠습니다. 남한의 전국토를 민족 해방을 준비하기 위한 훈련 무대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때가 삼팔선을 사수하기 위한 훈련의 시기인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우리의 모든 전체를 투입하여 훈련해야 되겠습니다. 이 70년대에 있어서 한 3년 동안 우리가 자체적으로 북한 땅을 향하여 공세를 취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기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가에서 해야 할 책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공산당을 대하기 위해서는 국가 기준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 아시아를 우리 편으로 세우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밤에 자다가 새벽녘에 일어나더라도 그냥 잘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저는 가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최일선을 향하여 가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일선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후방을 튼튼히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는데 최고의 문제가 무엇이냐? 그것은 북한 땅을 어떻게 해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땅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을 대해 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과 중국을 우리편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우리들이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천년 만년 수난의 길을 걸어야 됩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는 거에요. 제3이스라엘의 싸움의 고빗길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길 수 있는 좋은 기회, 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한때를 놓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용장이라면 죽을 자리에 가서 죽을 줄 알아야 됩니다. 이순신 장군과 같이 죽을 자리에서 죽을 줄 알아야 됩니다. 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 있는 한때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때를 기해서 승리하여 귀향길에 올라야 할 것이 우리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 돌아가면 그 마을을 바라보고 대한민국을 복귀할 수 있는 자극의 요인으로 소화시켜야 됩니다. 읍, 면을 바라볼 때에 비참하거든 `이 민족이 왜 이리 비참합니까? 하지만 복귀할 때는 미련없이 복귀할 수 있으니 도리어 낫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몽땅 복귀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비참한 자리에서 복귀시킬 수 있는 상대적인 인연을 만들어 가지고 군이면 군, 면이면 면의 모든 것을 몽땅 아버지 앞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외적인 물건이 많은 것보다 작은 것이 간단합니다. 몽땅 드림으로 말미암아 몽땅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몽땅 바쳐질 수 있는 사연이 복귀의 터전인 것을 생각하고 비참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최후의 첩경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바라보는 부락, 면, 군을 보고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나에게 기대를 거시고 이 민족을 복귀하라는 엄청난 책임을 맡겨주셨을진대 그 책임을 감당하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애국자들이 걸어온 이상의 수고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복귀도상에 있어서 수많은 선조들이 피를 흘리던 그 이상의 수난의 길을 감수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 나라를 찾기까지의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루하루 한걸음 한걸음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동시에 여기에 어떻게 그 수를 배가시켜 가느냐 하는 문제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을 짊어진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60년대를 회고해 보면 철모르고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행복을 바라고 나왔지만 영계에 가 보니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시 지상에 와야 할 운명의 입장임을 모르고 그것을 흠모만 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복귀도상에서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좋은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기 위해서는 뜻 일선에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편안히 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더라도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자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뜻을 위해서 무엇을 하게 되어 그것이 뜻 앞에 플러스된 것을 보고서는 자기의 수고를 잊어버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하나님께 찬양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싸워 나온 생애의 기점이 어디냐 하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제2차 수련생인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을 가만히 보게 되면 이 집을 짓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으로 `우리가 다하지 못하면 제3차 수련생들아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벌 받는 겁니다. 이런 환경에 있는 우리 제2차 수련생들이 70년대에 들어와서 이일을 2차로 하고 있습니다. 1월에는 아시아 승공대회를 했고 2월에는 건축대회, 즉 건설대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의 터전을 마련해야 됩니다. 이 일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단결된 힘을 영계의 영인들과 하나님, 그리고 땅 앞에, 앞으로 역사적인 시대 앞에 보일 수 있는 70년대가 되었습니다. 이 70년대에 들어와서 제2차 수련생들이 여기에 피땀을 흘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우리는 6개월 이상 걸려야 지을 수 있는 집을 28일 이내에 지으려고 합니다. 딱 날짜를 정해 놓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바람이 불고 몹시 추웠기 때문에 땅이 꽁꽁 얼어붙어 수련생들이 몽땅 달아났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작업을 추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여기가 전부 논바닥이었는데 다 메우지 않았습니까? 처음엔 보름만에 기와를 올려야 한다니까 눈만 멍해 있었습니다. 굳은 땅을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지도 못했지요. 그런데 보름이 지난 지금, 보십시오,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0-33
쉬지 말고 달려라
하늘이 찾아 주시는 이때에 있는 정성을 다 투입시켜 복귀해야 합니다. 전부는 못하더라도 동정받을 수 있는 터전 정도는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싸움터가 벌어진 거예요. 이 싸움터에서 피땀을 흘리는 것은 영광입니다. 밤잠을 안 자고 일어나서 어둠속을 벌렁벌렁 기어다니면서 시계를 보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몇 시간 더 잤거든 회개해야 합니다. 엄청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피곤한 몸이지만 돌아와 보니 여기에서 남아질 수 없는 사연이 하늘의 사연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사경을 헤매다가 있는 힘을 다해 고향 땅을 찾아가 보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다시 죽음의 길을 각오하고 결의해야 합니다. 불쌍하게도 힘이 부족합니다. 당연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다시 수고의 길을 나서라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있는 적진을 복귀하지 않고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안 돌아오겠다는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적진에 무덤을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복귀하지 않고는 안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안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돌아올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각오를 하고 삼천리 반도를 복귀하기 위해 나서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때 선생님은 제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에 대한 원망은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여, 저는 이제까지 할 일을 다했습니다. 내적 외적으로 빚지지 않을 인연을 맺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아들딸을 잘못 두어서…. 저를 동정하시는 하나님이여, 저를 보시고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기도라도 할 수 있어야 체면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자신도 이런 체면을 못 세운 입장에서 통일교인인 여러분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온 민족을 전부다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 어려운 책임을 맡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도들이 이어받아야 할 전통사상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가정을 전도할 수 있고, 종족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충성하기 전에 종족을 위해서 충성을 하고, 자신의 부모를 살려 줘야 할 책임이 있고, 형제를 살려 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도 못하겠습니까? 이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이 일을 했을 때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나은 것입니다. 이런 각오 아래 올바른 귀향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 다닐 때 하나님께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것도 당신의 뜻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이 민족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해방이 되었다고 만세를 불렀지만 선생님은 만세 한번 못 불러 봤습니다. 또다시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의 원수가 물러나니 더 큰 원수가 우리 앞에 남았구나! 이것을 밟고 올라서는 날에야 비로소 우리가 바라던 때가 올 것이다. 그 싸움의 터에 어떻게 나갈 것인가? 이 길은 비참한 길이다. 죽음의 길이다. 감옥이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릴 것이요, 민족이 이리저리 갈라져 원수시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야 된다. 꾹 참고 가자. 맞고 가자. 극복하자’이러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이제 바라던 그 한때가 우리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천년 원한의 역사를 탕감할 수 있는 한때가 여러분 앞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복될 수 있는 날, 그 영광스러울 수 있는 날, 그 이상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가야 할 귀향길을 감당하여 민족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땅까지 나아가서 아시아와 세계의 갈 길을 마련해야 됩니다. 남북한만 하나 만들면 세계는 간단합니다. 그러므로 3차 7년노정까지, 80년대를 맞이할 때까지 우리의 사명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명을 앞에 놓고 잘 수 있어요? 쉴 수가 있어요? 잠이 올 적마다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찾고 계시는 그 한 나라, 제3이스라엘 민족인 이 삼천만 민중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이 사명을 통하여 무엇을 남길 것이냐? 내가 사명을 대신한 기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하여, 민족 해방을 위하여, 제3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하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남북한을 통일한 후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게 될 때 비로소 주체적인 국가가 지상에 생겨나게 됩니다. 거기서부터 자유가 정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어디를 가도 다시 갈 곳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디서 정착할 것이냐 하는 것을 늘 생각하고 그런 각오 아래 나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갔다가 이북까지 갈 수 있느냐? 여러분이 살아생전 이북까지 간다면 여러분은 통일가의 근원이요, 통일 나라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찬양의 한 시간을 맞이할 기쁨을 갖고 대한민국에는 꽃이 핀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명을 위해 일어서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쉬지 말고 달려가라. 쉬지 말고 강행하라. 쉬지 말고 삼천만 민족을 무장시키라는 겁니다. 이 인연을 중심삼고 민족을 끌고 최일선을 향하여 나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복귀의 길을 빛내기 위한 싸움을 해주기 바랍니다.

30-35
기 도
아버님, 저희가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야가 `나만 홀로 남았나이다’할 때에 바알에게 굴하지 않은 7천인의 무리가 있다고 격려하시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염려하시기 전에 외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헤아려 보고 이 세계의 흐름 가운데 처해 있는 저희들의 입장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 운명길을 저희들이 다시 다짐하고 안 가면 인 될 입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못 가면 자식들이 가야 되고, 자식들이 못 가면 손자들이 가야 할 것이요, 손자들이 못 가면 그 후손들이 가야 할 것을 알았사옵니다. 선조가 책임을 못 하게 되면 천추만대에 한을 남긴다는 사실을 아담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날 실제의 역사과정에 불리움을 받은 저희들, 이 엄숙한 사명 앞에 감히 나타나기에 부족한 모습들이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불러 주셨사오나 이 길에 가담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저희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거룩한 뜻 앞에 동참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을 역사를 대신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조상을 대신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6 천년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선지선열을 대신해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 갖추지 못한 것을 저희가 갖추겠다고 당신 앞에 다짐하옵니다. 아들을 더럽힌 사무친 원한을 해원할 수 있는 때가 왔사오니, 아버지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하소서’하시던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오늘 내 한 자체가 듣고 섭리도상에서 아버지의 뜻이자 내 뜻으로 기도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와 같은 모임을 통하여 내일의 싸움을 위해 준비해야 되겠사옵니다. 아시아의 정세도 문제이지만 남북한에 가로놓인 삼팔선을 앞에 놓고 가야 할 운명길이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의 3분의 2를 점령하고 있는 공산당을 앞에 놓고 그들과 싸워야 할 저희들이 현실 세계에서 불쏘시개가 되겠사옵니다. 제물이 되겠사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저희들을 보고 삼천만 민족이 의분심을 갖고 재차 봉기할 수 있는 한날을 마련해야 되겠사옵니다. 기필코 그날이 올 것을 알기에 저희는 비참해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효자의 모습을 갖고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부름받고 나서는 용장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이 되면 하늘을 움직이고도 남을 수 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승리가 결정되고 그 자리가 천국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들이 그런 일을 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귀향길을 바라보고 가야 할 운명의 한 맺힌 눈물이 남아 있는 현실을 중심삼고 아직까지 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몸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이 모든 전체를 투입해 가지고 이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하늘이여, 몰아치시옵소서. 무자비하게 몰아치시옵소서. 이것을 본분으로 알고 민족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사오니, 그럴 수 있는 한날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무엇을 남기고자 하셨사옵니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귀향길을 향하여 나서는 걸음인 것만은 영원히 잊지 말고 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바쁜 일과를 보내는 이 생활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게 하여 주시옵고, 이번 기간을 통하여 기쁨의 터전을 남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모든 전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결심한 몸들이오니 분부하시옵소서. 약할 때는 위로하시옵고, 쓰러질 때는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최후의 전선에 용맹을 갖추어 출전하는 그날까지 남아지는 용맹스런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승리를 거두고 아버지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될 때까지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