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0 to 29-120: 전문가

전문가
1970.02.25 (수),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29-80
전문가
학문이면 학문을 중심삼고 볼 때, 어느 분야의 권위 있는 자리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과정을 이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업도 역시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큰 성공을 거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전문요원들이 지식을 통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국가의 정책수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복귀섭리라는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도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바라시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우리가 가는 길에는 반드시 전문가가 있어야 됩니다.

29-80
전문가가 가져야 할 정신
그러면 우리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정신을 가져야 되느냐? 자기가 소속한 부서, 혹은 자기가 목적하는 분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의 모든 생명력을 투입하고, 온갖 정성을 쏟아 부어야 됩니다. 성경에도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전심전력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심정의 일치가 되지 않고는 사랑의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 복귀섭리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인간이 타락한 후에 재창조 역사를 해 나오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목적했던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 수고해 나온 존재 중의 존재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기의 전문분야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자가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 남쪽이면 남쪽, 그리고 북쪽이면 북쪽, 이렇게 사방에서 360도를 중심삼고 자기 분야의 한 방향을 설정하여, 그것을 자기가 맡은 바의 전문적인 분야로 생각하고, 온 생애를 바쳐 그 분야에서 책임을 수행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연결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섭리를 발전시켜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거쳐 나오신 역사적인 터전과, 현재 움직여 나가시는 방향을 아는 전문가가 있었느냐? 그리고 미래의 목적에 대한 일치점을 찾아 그것을 해결짓기 위해 전문가의 입장에서 백방으로 노력한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없었습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자기 시대의 책임을 짊어지고 왔다 갔던 사람들도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신 전반적인 문제를 하나님 대신 전문적인 입장에서 책임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이후 4천년의 역사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 나오시는 전체적인 분야를 대표한 하나의 전문적인 상속자요, 맡겨진 그 사명을 지상에서 완전히 실천할 수 있는 한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맡은 전문분야인 만민을 구원하는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입장에 서야 하느냐? 그분도 역시 전심전력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일구월심, 자기의 모든 것을 여기에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어떠한 명령을 받는 입장이나, 혹은 강요당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것을 통하여 자기의 희망이 싹트는 것이요, 행복의 여건이 제시되는 것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전 생애를 투입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책임을 수행해야 할 입장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하는 자리, 혹은 만민을 대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예수는 하나님의 후계자로서 군림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후손들에 대해서는 자기의 전문 분야를 상속해 주어야 할 입장, 즉 후계자를 세워야 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29-82
하나님의 전문 분야를 상속받으려면
참되신 하나님의 전문적인 분야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참된 자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여 상대적 기준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속받을 수 있는 합당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문가로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나님께서 이는 나의 대신자라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알고 계시는 만큼, 우리도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앞으로 해야 할 책임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의하고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결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그 목적 관념이 철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목적 관념이 철저해야 됩니다. 비록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환경은 다른 입장에 있지만, 그 뜻을 중심삼고 역사와 더불어 동반하고, 시대를 대표해서 그 시대의 중심적인 자리에 서야만, 하나님이 그를 대하여 기쁜 마음으로 전체를 상속해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어떻게 다르냐 하면, 하나님은 내적인 입장이요, 예수님은 외적인 입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주체적인 입장이요, 예수님은 대상의 입장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종적인 입장에 서 있고, 예수님은 횡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전문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하나될 수 있는 동기와 모든 여건을 갖추어서 일체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적인 아버지라면, 예수님은 외적인 아버지인 것입니다. 이 내적 외적 아버지의 인연이 하나될 때에, 비로소 분립되었던 하늘과 땅이 통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통합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은 내적인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 하시지만, 외적인 입장에서 결정짓는 일은 예수님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귀섭리의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전문가 예수님에게는 반드시 자기의 제자나 아들과 같은 상속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29-83
후계자를 찾지 못하신 예수님
전문분야를 놓고 따져 볼 때, 예수님은 개인 중에서도 세계적인 개인입니다. 가정 중에서도 예수님이 태어난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입니다. 종족도 수많은 종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종족은 역사적인 종족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섭리노정을 통해서 추구해 나가는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다른 어떤 시대의 국가보다도 가치있는 입장에서 있는 국가입니다. 그분이 모색하는 세계도 역시 최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복귀섭리라는 전문분야를 두고 볼 때, 어느 시대의 그 누가 섭리의 뜻을 세워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그 사람보다 더 전문적인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는 예수님이 바라는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제자가 되려면 제자 중에서도 최고의 제자가 되어야 하고, 아들이 되려면 아들 중에서도 최고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내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전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의 관계된 일체의 사연을 대할 수 있는 상대자, 즉 수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상속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적인 심정문제를 두고 보나, 외적인 가정문제를 놓고 보나, 혹은 복귀노정에서의 하나의 소망을 놓고 보나, 이것을 전폭적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전문분야의 후계자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해서 온 세계를 대하고 나설 때에 이 복귀도상에서의 최고의 권위자로 나타났지만, 그 자신의 위치를 상속해 줄 수 있는 후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 가운데 그런 입장에 설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예수님 자신이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는 모든 생활에서 실천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이런 대표적인 기준에 설 수 있는 후계자가 없을 때에는 전국을 돌면서 합당한 사람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년의 역사를 엮어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후계자가 없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슬픔이요, 역사적인 슬픔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슬픔이요, 세계적인 슬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역사를 통해 수난의 역로를 거듭 걸으시면서도 앞으로 예수님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세계적인 터전이 되기를 바라시면서 이스라엘 선민을 키워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스라엘 선민은 전문가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입장에 서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가진 입장에 서기는 했지만, 그러한 자신을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지상에서 새로이 모색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무어냐 하면, 예수님이 가야 할 공생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을 통해서 후계자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맨 처음부터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서 가르쳐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직접 그럴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과업을 빠른 시일 내에 어떻게 상속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있어서나 자기의 분야가 아닌 문제까지도 상속해 주기 위해서 제일 빠른 길을 갖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입장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금년에 못 하면 내년에 하고, 혹은 20대에 못 하면 30대에, 30대에 못 하면 40대에까지라도 연장시켜 가면서 일생 동안 해도 된다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이것을 어느 한정된 기간내에 계승시켜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님의 심정은 얼마나 초조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리를 통해서 배운 바와 같이, 여기에는 반드시 조건물과 기간이 필요하고, 아담을 대신할 중심존재가 필요합니다. 복귀섭리도상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3대요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님 앞에 조건적인 존재가 되느냐? 그 조건적인 기간을 해결한 터전 위해서 조건적인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느냐? 이 조건적인 존재와 아담적인 존재인 예수님이 어떻게 합하느냐? 이러한 복귀섭리의 문제는 탕감내용을 중심삼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대니, 실체 기대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29-85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
그러면 아벨적인 존재와, 그 아벨적인 존재 앞에 나타난 조건을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그것이 일치되기 위해서는 안팎의 관계인 주체와 대상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일치되지 않고서는 상속이니 탕감이니 하는 구원섭리는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적인 책임을 짊어진 예수님 앞에 과연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적인 존재가 누구냐? 없었습니다. 없었기 때문에 길러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야 할 길은 멀고, 바라는 소망은 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무지몽매한 어부들을 상대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처량한 신세가 얼마나 외롭고 슬펐겠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을 통하여 가르쳐 주어야 할 사명은 어떠한 것이었느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상속받았기 때문에, 그 전통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자기를 가르쳐 주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떤 존재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르쳐 줄 수 있었느냐? 또한 자기 자신을 가르쳐 줄 수 있었느냐?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노정을 거쳐오는 동안 그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전체를 가르쳐 주지 못했고, 예수님 자신의 전체도 가르쳐 주지 못하였으며, 그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등 12제자에 대해서도 다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섭리적인 책임을 진 하나의 전문가로서 가야 할 때를 확실히 아는 입장에서, 그러한 것을 상속해야 할 대상이 되는 존재를 갖지 못한 예수님의 고독이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 하는 성서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님은 권위 있는 전문가로서 기필코 땅과 하늘에 인연을 맺고 가야 할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상대적 요건과 상대적인 후계자가 없었으니 얼마나 비참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전문 분야에서 세계적인 발명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것은 천적인 인연과 천명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이기에 이것을 어차피 세상에 밝혀 놓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밝혀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을 기록으로만 남겨 놓아 가지고는 그것을 전수받아 대행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되, 실체로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부딪히는 자리에서 실체로 해결지어야 하는 것이 복귀노정이기 때문에, 기록으로만 남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대에 이것을 해결지으려고 몸부림치면서 공생애노정을 거쳐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원 성취의 한 날을 맞지 못하고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2천년 전에 복귀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책임을 지고 왔던 예수님이 이 땅에서 책임을 다 이루지 못한 채,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고 가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늘날 그 분야에 있어서는 다시금 전문적인 존재가 이 지상에서 나타나든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런 존재를 보내 주시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 누구냐 하면, 재림주님입니다.

29-87
정성을 다하여 일하라
그러면, 다시 오시는 그 주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이 복귀섭리의 도상에 있어서 전문적인 내용을 수습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내용과 시대적인 내용, 그리고 미래적인 내용을 감정할 수 있는 감정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환경에 있어서 주체가 되어야 했으며, 또 주체적인 입장에서 상대적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상속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상속해 주시려던 그 사연은 어떤 것이냐? 예수님은 종적인 계승자입니다. 그러나 횡적인 입장에서 그 사명을 계승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이 그것을 재차 재현시켜야 할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가르쳐 주고, 예수님 자신을 가르쳐 주고, 또한 제자의 도리를 가르쳐 주어야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복귀도상에 전문적인 책임을 지고 다시 오시는 주님도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연결된 내용을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재림주를 믿어야 되고, 예수님을 믿어야 되고,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내용을 결속시켜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국가적인 환경, 세계적인 환경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이것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 6천년 복귀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수난의 노정을 통해 가지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기독교도 이것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세계를 대표하여, 예수님으로부터 그분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전문가, 즉 그럴 수 있는 후계자의 입장으로 나타나야 됩니다. 많은 사람이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나와야 됩니다. 그러한 기준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국가와 더불어 하나되고, 민족과 더불어 하나되고, 그 다음에는 국가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그런 준비를 하기 위해서 요셉의 가정을 택했는데, 요셉의 가정이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습니다. 제자 중에서도 전폭적으로 예수님의 전문적인 사명을 인계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을 연구해 가지고, 그것을 내가 책임지고 수행하겠다고 나타난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셉 가정에도 없었고, 그 시대의 유대교인 중에도 없었으며, 또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지상에 와서 상속해 주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글로만 남겨 놓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명은 글만 가지고서는 상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이라는 것은 글만 가지고서는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떡이 맛있다든가, 혹은 꿀이 달다고 하는 것을 글로는 실감나게 표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친구라는 요건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근본문제는 실체끼리 부딪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써 가르쳐 주는 것은 외적인 표현과 외적인 기준은 될는지 모르지만, 그 전통적인 사상을 안팎으로 전부다 갖추어 `하나 됐다’고 하는 기준을 연결시키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통일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복귀도상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고 싶은 내면적인 분야, 즉 심정적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에 원수들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뒤넘이치던 입장을 토대로 그 문제를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전문적인 섭리의 대행자로서 당시의 미완결 부분, 혹은 미완성 부분을 보충시킬 수 있는 전문가의 수준에 올라서 있느냐, 또 예수님 앞에 염려의 대상이 되었던 제자들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계승자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환경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계승자를 길러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길러야 하느냐? 전문가가 대하는 태도, 전문가의 연구라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대하여 그렇게 했느냐? 하나님을 대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했느냐? 그리고 그 나라와 세계에 대하여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적인 존재가 없을 때에는 길러야 됩니다. 기를 때에는 어느 기간을 중심삼고 단시일내에 길러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한 전문가로서의 후계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마음과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기간은 장기적인 기간이 아닙니다. 제한된 기간내에 이것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과거 현재 미래의 집약체와 같은 입장에 세워 주기 위해 모든 정성과 심정을 통한 최고의 자리에서 정성을 주입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걸어 오던 분야, 즉 학문적인 분야라든가 사업 분야에서 그들이 자기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인 것 이상의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날 복귀섭리의 도상에서 그 책임을 다 할 수 없습니다.

29-89
분야별 전문가
앞으로 계승해 주어야 할 후계자를 보게 될 때는 냉정하게 비판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자기와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전체의 책임을 완전히 상속해 줄 수 있는 적격자가 못 되면, 몇 사람을 세워서라도 이 전체를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가르쳐 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갑이 가야 할 길, 을이 가야 할 길, 병이 가야 할 길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 해당되는 분야를 중심삼고 교육을 해야 됩니다. 교육을 해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전체적인 분야를 상속시킬 수 있는 대상자가 있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런 대상자가 없게 될 때는 이것을 부서별로 연결시켜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목적을 한 사람이 계승했다고 하는 기준을 거쳐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그 많은 사람 각자가, 한 사람이 전체를 계승해야 할 것을 대신 계승했다는 조건적인 방편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이 복귀도상에서 전문적 책임을 수행하는 사람 앞에 전제되는 상대적인 임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스승을 알아 가지고 그 앞에 있는 여러분 자신을 알아야 됩니다.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조로부터 이런 인연을 맺어 왔기 때문에 내가 오늘날 이런 입장에 서게 되었고, 내가 오늘 이런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이런 목적을 수행하고 이를 계승시켜야 한다` 이렇게 여러분은 제 2차적인 전문가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복귀섭리의 도상에 있어서 지방이면 지방, 혹은 지역이면 지역을 책임진 입장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문제에도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인격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로만 소개해서는 안 됩니다. 실체로서 어떠한 환경에도 일치시킬 수 있는 주체력을 가져야 됩니다.

또, 예수님의 대신자로서의 인격을 갖추어 가지고 어버이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대신해 가지고 `이 지방에서는 그밖에 없다. 그를 통하지 않고는 갈 길이 없다`고 그 지방 사람들이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맡은 분야의 범위는 다르지만 그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가야 됩니다. 생활하는 데에도 철저해야 됩니다.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계승해 줄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합니다. 내가 전체를 계승해 줄 수 있는 내용만 갖추게 되면, 이 전문 분야에 해당하는 과거 현재 미래를 계승해 줄 때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에는 그 모든 것을 한 사람에게만 계승해 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이것을 순차적으로 방향을 달리하면서 계승해 줄 수 있는 여러 사람을 길러 나가야 됩니다.

만일 이것을 한 사람에게 한꺼번에 계승해 주었다가 그 사람이 꺾여 나가게 될 때는, 내 자체의 갈 길마저 완전히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섭리역사를 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귀섭리노정에서 전체를 가르쳐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시대를 따라 그 입장을 봐 가면서, 진전되는 그 내용을 분석해 가면서 그것이 보다 가치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입장이 될 때에, 그 분야에 해당하는 내용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분야가 아닌 일방적인 방향을 맞추어 가지고 360도 방향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이것을 세계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하는데, 한 분야가 책임수행을 못 하면 다른 분야를 보충하면서 한 곳으로 나가되, 횡적인 면을 조정하면서 지금까지 발전시켜 나온 것이 바로 복귀섭리역사라는 것입니다.

29-91
종족적인 기대를 형성하려면
여러분도 그러한 활동을 해야 됩니다. 만일 내 대신자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 책임을 수행해야 할 분야가 종족적인 차원이라면, 그 종족적인 차원에서 사명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종족적인 대표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대표자가 없을 때는, 가정적인 조직을 많이 만들어 끌고 나가서 그들로 하여금 전부 종족적인 기반을 거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승리적 터전을 나와 더불어 결정한 후에, 비로소 종족적인 대표자로 세워 나가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복귀섭리노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복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십자가를 대신 지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적인 안식처를 찾기 위해서는 종족적인 십자가를 대신 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가정적인 목적을 절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절대적인 대상자들이 있다면, 종족적인 십자가는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종족적인 십자가를 맡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락한 인간 중에는 그런 대상자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노정이란 것은 먼 거리를 두고 내려왔기 때문에, 아무리 수고했다고 해도 그 수고한 대가가 당장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천년 후에, 혹은 수천년 후에 재림주님이 오신 그 세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투입한 공적과 실적이 당대에 평면적인 도상에서 나타나기를 바라며 섭리노정을 거쳐 나왔기 때문에, 번번이 시작은 잘했지만 종말에는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섭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족적인 사명까지 한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다했다고 하는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승리의 결과가 얼마나 가치 있는 내용이 되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자기 것으로 영원히 갖고 싶다는 입장을 인식시켜 가지고 계승시켜 나와야 합니다. 그러한 놀음을 하지 않고서는 완전복귀의 터전을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승리적 기준을 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의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수고하시며 이중적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싸워 나오신 작전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족적인 승리의 기대 위에 민족적인 노정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개척하는 자신과 상속받을 사람이 합해서 민족적인 개척자의 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 승리의 터전을 만들었다면 그 민족적인 승리의 터전이 얼마만큼 가치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 결과를 스스로 확인시켜서 알게 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하나될 수 있는 요건이 성립되면, 비로소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세워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복귀섭리노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학문적인 분야라든가, 혹은 어떤 전문 분야도 인계되고 상속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책임진 사람이 어떻게 목적을 수행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 종족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을 기반으로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한 가정만 구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열 가정이면 열 가정, 백 가정이면 백 가정 모두에게 사방으로 영향을 미쳐야 됩니다. 복귀도상에 있어서 이러한 것을 상속받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상속받을 후계자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전문적으로 책임질 사람에게 후계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그 터를 닦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역사적인 노정을 걸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개인이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정복귀노정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할 때, 개인이 타락한 이후에 가정을 통해서 타락이 완결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완성하는 데도 개인만 완성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완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29-93
하늘의 전문가와 세상의 전문가의 다른 점
그러면 가정은 어떻게 해야 완성되느냐? 가인적인 가정과 아벨적인 가정 사이에서 문제가 벌어지는데 여기에서 하늘을 중심삼고 승리해야 되고, 그렇게 승리하여 두 가정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되어 움직일 때 여기에는 반드시 아벨적인 종족과 가인적인 종족의 문제가 결부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도상에서 책임을 짊어진 전문가로서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언제나 안팎으로 작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느 때에 하나님이 후계자가 되고,어느 때에 예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계승해 줘야 될 것이고, 예수님을 대신한 입장에서는 계승받아야 할 입장입니다. 따라서 계승해 주는 사람은 계승받는 사람에게 이익을 가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세상의 전문분야의 권위 있는 사람들이 처해 있는 입장과, 하늘의 섭리를 책임진 전문가의 입장과의 다른 점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떠한 분야에 권위자가 되어 그 분야에 있어서 전문적인 권위를 갖고 나타나게 될 때에는, 그 권위를 중심삼고 환경이 수습됩니다. 그렇지만, 복귀섭리역사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수습되는 것이 아니라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소받지 않는 완전한 터전 위에서 상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소받는 입장에서는 상속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솔선수범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십자가를 자기가 짊어지고 책임을 수행하겠다는 결의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의를 하지 않고서는, 복귀도상에서 전문적인 책임을 수행하는 실체적인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종적인 문제를 두고 보더라도, 여러분은 이중적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은 아담이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탕감복귀해 가지고 이번에는 실체적으로 가야 할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그 책임은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축복가정이 종적인 면에서 하늘 앞에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미완성 분야를 오늘날 내 자신이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에, 종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역사적인 선조들보다도 우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보다 전문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시대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내 자신이 보다 앞서야 됩니다. 과거의 선조들보다도 앞서야 되고, 현재의 입장에서도 앞서야 됩니다. 이렇게 내 자신이 앞선 입장에 서지 않고서는 하늘이 요구하는 전문가의 위치에서 탕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뒤를 돌아볼 때에는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지금까지 지나온 복귀섭리의 도상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바라는 소원을 중심삼고 일치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바라는 후계자로 결정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내가 할 말이 많지만 못했다는 입장이 아니라 다 했다는 입장에 서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29-94
전문가가 가야 할 공식 노정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보면, 예수님은 부모의 입장에 있고 제자들은 아들의 입장에 있습니다. 따라서 아들이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부모는 그 아들 자체의 기준까지도 세울 수 있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상속받는 데 있어서는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환경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아들들이 가는 길을 책임져야 할 그 자리는 오늘날까지 복귀섭리의 노정을 걸어온 하나님의 입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도, 여러분과 앞으로 여러분에게 지도받을 사람과 하나가 되면, 여기에는 하나의 새로운 역사가 전문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언제나 자기 1대의 사명만을 할 것이 아니라 2대의 사명까지도 해야 됩니다. 평면적인 입장에서 볼 때, 1대의 사명뿐만 아니라 2대의 사명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입체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3대의 사명까지도 해야 됩니다. 그리고 종적인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은 아버지의 입장이기에 아들의 사명까지 완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는 내가 아들이 되는 것이니, 아들이 되어 가지고 아버지를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한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세우게 된다면, 아들의 승리적 터전 위에 아버지가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로서 승리하고 아버지로서 승리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예수님 자신이 비로소 하나의 중심이 되어 가지고, 천적 유업을 상속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초가 세워지면, 예수님 혼자만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로 결정되면 하나님도 아버지 입장에서 상속해 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로 결정되기까지, 즉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키워 주고 보호해 주는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 아버지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섭리의 뜻을 책임지고, 생사의 문제를 취급하는 전문가가 가야 할 공식적인 길은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맡은 분야의 책임을 다 했다고 해서 가게 되는 길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목표의 책임까지도 완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너와 나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요, 또한 상속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섭리의 노정에 있어서 상속받을 수 있는 대신자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세상에서는 자기가 어떤 분야에서 권위자가 되면 제자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자기가 할 일을 제자들에게 시켜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 길에서는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의 전반적인 책임을 제자들이 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책임을 진 자가 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 자신이 식구들에게 존경받고 대접을 받는 입장에 서고, `나를 위하라’고 할 수 있는 부모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자식을 잘 길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울 때에는 자기 이상 사랑해야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고 자기 이상 자식을 더 사랑하며 기르는 것은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자기 이상 사랑했기 때문에 자식이 그 사랑을 인계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자기 이상 사랑의 인연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자식은 크는 것이요, 발전하는 것입니다.

29-96
하나님이 바라셨던 아담 해와의 모습
나무가 크기 위해서는 점점 더 주고받는 작용이 잘 벌어져야만 됩니다. 그래야 더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을 기를 때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상의 사랑과 심정을 가지고 키워야 됩니다. 그렇게 부모의 책임을 다하게 되면, 그 자식이 부모의 사정을 알고 그가 또 자기 자식을 가지게 되면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그는 부모의 슬픔이 자기의 슬픔이요, 부모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요, 부모의 할 일이 자기가 할 일이요, 부모의 책임수행이 자기의 책임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명령하지 않더라도, 그 부모의 원수를 자기의 원수로 대하고, 부모의 일을 자기의 일로, 부모의 책임을 자기의 책임으로, 부모의 사정을 자기의 사정으로서 감당해 나가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식을 세우는 것이 창조의 원칙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리의 주관권을 정해 놓으시고 바라셨던 것은 `이렇게 해라’ 하고 명령을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알아 가지고 자동적으로 나설 수 있는 아담 해와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원칙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원리결과주관권에서 벗어난 아담 해와와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하라고 명령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하고, 부모의 마음을 알고서 그 이상까지도 책임을 다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식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온 인류의 아버지로서 복귀섭리 전체를 책임진 하나님의 비밀을 상속시킬 수 있는 기반이 땅 위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속시킬 수 있는 동기는 누가 마련해야 되느냐? 상속의 터전을 닦을 때 까지는 부모가 하는 것이지만, 상속받는 순간에는 자기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5%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고 승리하는 것은 하늘이 전부다 마련해 주더라도, 승리는 자기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책임을 대신하여 짊어지고 나를 길러 주신 부모의 심정을 깨달아 가지고, 그 심정적 인연과 일치된 가운데 그분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요, 그분의 싸움은 나의 싸움이요, 그분의 원수는 나의 원수라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둘도 없는 아버지께서 뜻과 더불어 수고한 인연을 가지고 찾아 온 것을 감사하면서 그 이상의 자리를 내가 이룩하고 죽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먼저 죽어야겠다고 작심하고 나설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비로소 상속의 인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9-97
상속의 인연이 벌어지는 자리
예수님은 생애 노정에서 이러한 기준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을 통하여 소망하고 나왔지만, 그들은 다 깨어져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지 못했고, 예수님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으로 체휼하지 못했으며, 예수님의 외로움을 자기의 외로움으로 알고 같이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외로웠고 슬펐으며, 또한 그 누구보다도 원수 앞에 몰리는 초조한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상황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 누구도 예수님이 고독하고 비참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리에 있을 때 보호자가 돼 드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서러워하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외로워하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슬퍼하며, 예수님 대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갖추었더라면, 그러한 영적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평면적인 기반이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이 끊어져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횡적인 기반을 갖지 못하고, 종적 관계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평면적인 기반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도상에서 얼마나 많은 지장을 받았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평면적인 기반이 세워졌더라면, 그 기반 위에 수많은 종적 기준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역사는 종적인 길만을 통해서 지금까지 수천 수만대의 수난의 길을 거치면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는 하나의 전문가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그 일을 알고 수행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복귀섭리해 오신 사정을 알아 가지고 체휼하는 단계에서 그 뜻을 수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가정의 모든 전통과 유업을 나 자신이 후손에게 고이 상속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할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 있느냐? 그런 입장에 있어야 되는 것은 예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범위와 때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볼 때 상속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느냐? 여러분이 잘 믿어서 영계에 가자마자 모심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면, 거기에서부터 상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준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개인적인 복귀의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는 가인적인 울타리가 될 수 있는 사명을 기독교면 기독교, 기성 종교면 기성 종교가 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면 개인적인 복귀의 터전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둘이 협조해야만 가정이 상속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이 종족을 거쳐 나가기 위해서는 두 가정, 즉 아벨 가정과 가인 가정이 협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는 길 앞에 있어서 철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그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가인적인 존재가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천사와 협조해서 아담을 창조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온갖 정성을 다해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를 지을 때, 하나님도 기뻐하고 천사장도 기뻐하는 가운데 밤과 낮의 모든 시간과 모든 정성을 투입시켜 가지고 창조의 인연을 쌓아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업고 하나님 대신 천사장을 부리는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실체와 연결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재창조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복귀역사란 무엇이냐? 재창조 역사입니다. 그러면 재창조 역사는 무엇이냐? 제 2의 창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 2의 창조를하려면 가인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벨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지향하는 모든 문제를 자기의 생명 이상 중요시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 어느 때라도 명령만 있으면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심정을 갖추어 가지고, 자기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후계자를 창조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를 닮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하면, 그 전도된 사람은 자기를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한 사람이 뜻을 다 알게 되면, 제자된 입장에서 자기를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눈물 흘릴 일이 있으면 대신 눈물 흘릴 수 있고, 내가 죽을 입장에 있으면 대신 죽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이 타락인 것입니다.하나님의 슬픔을 자신이 대신하여 당하더라도, 타락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고수해야 할 것이 아담의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앞으로 그러한 입장에서 가야 하니 그 길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효도하라고 가르쳐 주어 가지고 효자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효도하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을 두고 영향을 미쳐야 되는 것입니다.

29-100
제물된 자리에 서라
여기에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가 하는 대로 자식이 따라올 수 있도록 생활로써 자식에게 본을 보여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실천하는 뜻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식이면 자식, 전도된 사람이면 전도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울타리를 만들어서 그 울타리권내에서는 어떠한 비밀도 자유자재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어도 우리를 사탄세계로 옮길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이 이루어져야만 하나님은 여기에서부터 절대적인 뜻을 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전문가로서 책임을 지고 실천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잘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개인적인 시대와 가정적인 시대와 종족적인 시대를 거쳐 민족적인 시대로 넘어가는 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먼저 종족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전체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되어 가지고 외적인 종족과 대결을 해야 됩니다.

누가 가인이고 누가 아벨이냐 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제물을 드리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성을 드려 아벨이라는 권위를 세우는 일을 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민족을 복귀해야 할 종족적인 책임자는 민족적인 십자가를 지고 민족이 복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하여 정성을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드리는 데는 얼마나 드려야 되느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지금까지 사탄세계에서 받은 은혜와 행복보다도 더욱 은혜롭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드려야 합니다. 그러한 정성으로 말미암아 봄절기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까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느끼지 못하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봄날과 같은 환경이 이루어지면, 모든 것은 여기에 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왠지 모르게 떠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인연의 동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창조 본연의 터전을 중심해 가지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만인이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우리의 움직임과 말과 행동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생명력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서 자기를 알고 자기와 하나될 수 있는 기준까지 끌고 나가야 됩니다.

복귀의 길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류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가 속해 있는 동네의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위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가 처해 있는 그 환경에서 이 세계의 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는 무엇이냐?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의 눈물과 땀을 전부다 투입시켜도 안 되었을 때, 내가 피를 뿌려서 하나의 제물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29-101
천국인의 기준
자기 자식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세계를 대신하여 죽게 된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에 갈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냐?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듯이 뜻을 위하여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희생하듯이 보다 더 큰 세계를 위하여 그렇게 희생할 수 있는 사람만 된다면 천국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지금까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여 살 줄 모르는 사람이 세계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 수 있어야 사탄세계에서 뽑아온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천국을 이루는 하나의 본이 되고, 표본이 될 수 있는 그 기준을 결정하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기준이 무엇이냐?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이룰 수 있는 표본은 무엇이냐? 그것도 역시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중심삼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고, 온갖 대가를 치르면서도 보수를 원치 않는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오히려 계속 주지 못하는 것을 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될 때, 그 자식들이 그것을 본받아 부모가 그렇게 해주었던 것에 감사하고, 자기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입장에 서고, 부모의 어려운 길을 자신이 대신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였던 그 한의 기준을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이 이제부터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말로는 세계를 위해서는 무엇을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그 세계는 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가정에서부터 사방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가정에서부터 사방으로 확대된다는 거예요. 즉 단 한 자리의 기준이라도 사방성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세계가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하늘의 실무를 책임진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고 자식들의 수난의 길을 막아 줄 수 있는 부모의 책임을 해야 하고, 그것을 사탄의 참소에서 벗어난 자리에서 자식에게 상속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식 앞에 모든 위업을 기쁨 가운데 상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며, 또한 원칙적인 순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29-102
전문 분야와 책임의 한계
그러면 한 가정을 중심삼고 그 부락과 인연을 맺는 일은 누가 해야 되느냐? 그것은 여러분이 해야 됩니다. 또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시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너도 이러이러한 길을 가야 된다는 시범을 보여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의 승리적 기반이 닦여집니다. 그래서 종족적인 승리를 책임져야 됩니다. 그러면 민족적인 책임은 어떻게 지느냐? 민족적인 책임을 하려면 하나의 중심존재가 세워져야 됩니다. 중심존재가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책임도 역시 중심존재가 결정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분이어야 되느냐? 그분의 인류 역사 과정의 그 누구보다도 수난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탕감노정에 있어서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분이 아니면 안 됩니다. 개인적인 십자가는 물론이요, 가정적인 십자가, 국가적인 십자가, 세계적인 십자가를 지고 천주복귀라는 사명을 완료할 때까지 책임을 다 하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러한 전체적인 책임을 한 몸에 지녔기 때문에, 맨 밑에서부터 맨 위까지 복귀섭리에 있어서 최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사명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 되었기 때문에 각 분야마다 각자 다른 책임을 결속시켜 가지고 자기의 목적을 끌고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복귀섭리를 이끌고 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로서의 책임을 지겠습니까? 그 한계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어느 분야에서 책임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책임의 한계를 정해야 합니다. 개인이냐 가정이냐, 아니면 씨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의 어디까지 책임을 질 것인가? 여러분이 천주를 책임지겠다고 하더라도,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못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하더라도, 이 길을 거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9-103
축복가정들의 책임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의 전공분야에서 일생 동안 어느 분야까지 책임을 지겠다 하는 기준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갖추지 않으면 목적지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는 늘 연구해야 됩니다.

원리적인 견해로 보자면, 개인이 복귀되어 안식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3대이상을 거쳐야 됩니다. 3대 이상을 거치기 위해서는 자녀를 낳아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합니다. 이 사위기대는 아들딸만 낳았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딸이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그 가정이 아벨적인 가정이 되어서 가인적인 3가정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 3가정은 믿음의 아들딸로서 번식되어야 합니다. 그 3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12수, 12방향을 갖춘 12가정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시 이 12가정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 120가정이 무엇이냐 하면, 세계의 터전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씨족적인 기반인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을 통해서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에 120가정이 있습니다. 이 120가정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의 씨족의 대표입니다. 이들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젊은 시절에 지방으로 내쫓아 민족을 위해 희생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3년 전도 기간은 예수님이 걸었던 공생애노정으로 알고 가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임지에서 어떠한 핍박을 당하더라도 보따리 싸가지고 도망을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3년 동안 나가서 전도를 많이 하든 적게 하든 그것은 상관 없습니다. 하다못해 땅굴을 파더라도 뜻 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해 주면, 여러분이 전도 나갔던 그곳은 반드시 우리의 초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민족적인 탕감기준을 세워 가지고 민족과 하나를 이루어서 민족이 여러분을 스승처럼 모셔 주고, 또 여러분이 명할 수 있는 복음의 자리를 위해 그 부락이 전체를 동원해 여러분과 관계를 맺었더라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반 위에 선 430가정은 무엇이냐? 이 430가정은 전체의 평면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를 중심삼고 그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3수를 세워 선생님의 40년 생애를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조건을 세워야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지금 통일교회 시대권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문제가 뭐냐 하면, 씨족이 일치단결해 가지고 민족복귀를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민족이 복귀되는 날에는 국가는 자연 굴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지금까지 지상권에서는 땅을 중심삼고, 또는 주권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백성을 중심삼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삼은 실체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믿음의 기대는 이미 세워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인 실체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29-105
이중의 십자가를 져라
그러면 결국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나가야 되느냐? 돈을 바라고 나가야 되느냐, 아니면 다른 무엇을 바라고 나가야 되느냐? 무엇 바라고 나가야 됩니까? 백성을 바라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바라고 나왔습니까? 돈을 바라고 나왔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반대로 해야 됩니다. 백성을 바라고 나가야지, 돈을 바라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돈을 다 대주어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도 돈을 대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돈을 그들이 대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이중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책임자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며, 그들을 대신해 경제적 복귀 무대의 선두에 서서 나가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금후에 있어서는 이런 요건을 절대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진 전문가가 그런 환경적 터전을 전부다 갖추어 가지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입장에서 상속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외적 분야에서 경제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밤낮없이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번의 제 1차 수련회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여러분을 어떻게 본 궤도에 올려 가지고 남한 전체를 복귀시키느냐? 그럴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것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신하면 되는 것입니다. 잠을 자지 않고,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자기의 일체를 잊어버리고, 오직 뜻 하나만을 위해서 일심으로 전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뜻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뜻을 위해서 나는 났고, 뜻을 위하여 나는 죽는다고 할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러한 신념을 어떻게 가지느냐? 그런 신념을 가지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여러분 사이에 얼마만큼의 간격이 있어야 되느냐? 절대로 간격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를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이 누가 복귀하여야 하느냐?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세계 복귀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냐? 하늘의 선민으로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의 가정으로서 살아가는 원리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자기가 속한 씨족을 위해서 고달픈 생활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기 주위에 있는 가정들이 잘 때 같이 자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무엇을 먹는다고 같이 먹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가정은 그 씨족 내의 가정을 키워야 됩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와 마찬가지 입장에서, 그 가정들이 어려우면 자기의 어려움 이상의 어려움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동네에 아무개가 밥을 굶고 산다 하면 차라리 내가 굶는 것이 낫지 그 사람을 굶길 수 없다, 도저히 나만 먹을 수 없다는 심정을 갖고 그 사람에게 갖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9-106
전문가와 자료 수집
오늘날 통일교인들 중에서는 나만 잘 살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부다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그래야 될게 아닙니까? 그러면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에 대한 십자가, 씨족에 대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적인 경계선, 즉 도 경계선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면 민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민족복귀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를 중심삼고 도민들을 어떻게 포섭해야 할 것이냐? 도지사는 도민들을 포섭한 뒤에 필요한 것입니다. 주권국가에 있어서 각료라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각료는 국민이 선발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선발하지 않으면 각료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국민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각 도가 모여서 국가가 되기 때문에, 각 도의 부인들은 각 도면 도 전체를 통합하기 위해서 조직적인 활동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작전은 점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원도에서 반공강의 한 것이 전체 도에 인연맺어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언제 어디에 투입되더라도 선생님을 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걸 만들어 놓기 위해 전도 나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민족복귀의 사명을 책임져야 할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알겠어요? 통일가라는 씨족에게는 민족복귀라는 목적을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책임져야 할 시대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진 책임을 상속받느냐? 선생님이 책임을 지고 가는 외로움과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서글픈 사연을 여러분이 어떻게 감지해야 되느냐? 어떻게 하면 이것을 비밀리에 상속받을 수 있느냐? 이러한 것이 앞으로 여러분들이 구해야 하는 길이요, 동시에 여러분들이 복받을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지역장이면 지역장, 지구장이면 지구장 가운데 전국을 대표해 가지고 이 제단 앞에서 보다 더 전문적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그러한 사람이 150명이면 150명, 170명이면 170명이 있으면 그 요원들이 매일같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분야를 제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제시된 새로운 재료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가지고 이 시대 이후의 전문적인 상속자로서 책임을 져야 됩니다.

전문가가 되려면 역사적인 자료를 수집해야 되고, 현실적인 자료를 수집해야 됩니다. 또 현실적인 자료보다는 미래적인 자료를 수집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래적인 자료란 무엇이냐? 탕감복귀의 원칙에서 볼 때 미래적인 자료란 무엇이냐? 그 원칙은 마찬가지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가라고 해서 뭔가 색다른 모양이 있습니까? 가정의 모양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통일가에 있는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뭘 해야 하느냐? 전문가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를 해서 믿음의 아들딸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한 아들딸에게 나쁜 것부터 주겠다고 하는 부모는 가짜입니다. 부모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먼저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주지 못하는 것은 관리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주면, 그것을 받은 자가 해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썩 잘 드는 칼을 주고 싶더라도 잘못 주었다가는 그 자체가 망하고, 집안이 망하고, 전체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의 이런 입장을 알아 가지고 본을 받아서 부모가 전도 나가라고 하기 전에 본인이 알아서 나가고 싶어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29-108
하나님은 정성들이는 자의 편이다
1957년도에 120개 지역에 전도를 나갔을 때 선생님이 근 4년 동안 가만히 두었습니다. 왜 그런지 알겠어요? 한번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말씀을 알았으니 말씀을 전했으면 좋겠는데, 전도를 한번 나갔으면 좋겠는데` 합니까? 그렇다면 한번 나가서 이 나라를 휘둘러 보고 부딪혀 보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이룰 수 있는 한 때를 바라보고 부딪혀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한국에서 여러분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여러분이 고생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식구들에게 공문을 보내서 `본부교인들이 이렇게 움직이고 고생하니, 너희들도 우리처럼 이렇게 해야 한다` 고 지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소문은 듣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빙 돌아 다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외국 식구들, 너희들 한번 들어와 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하자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가 보리밥을 먹거나, 또는 굶어가면서 맨발로 전도하는 것과 심지어 낭하에서 자는 것까지 시범을 보여 주어서, 그들도 돌아가서 그렇게 출발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선생님 만날 수 있는 때를 위하여 본부에 있는 식구들 이상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전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때를 염두에 두고 이 시대를 맞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겠다는 느낌이 스스로 일어나야 거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정성을 안 들인 제물과 하나되어 가지고 탕감의 역사가 벌어지겠어요? 안 벌어지지요?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정성을 좀 드려라. 제물을 드려라` 그러시겠습니까? `검정 소면 검정 소, 누런 소면 누런 소의 뱃속에서 이러이러한 송아지가 나올 것이니, 그거 전부 다 제물 드릴 준비해라` 그러시겠습니까? 제물을 들리 때에는, 이것은 모두 주님 것이니 다 드리겠다고 내심으로 결심하고 성전에 가서 `제물을 뜻맞게 드리려면 어떻게 드려야 되겠습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제물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명령을 해 가지고는 세계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늘의 섭리가 이러한 역사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머니를 맞이하는데 있어서도 절대 선생님이 동기가 되어서 맞이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타락은 주체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동기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천사장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누가 동기가 되느냐? 천사장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로 보자면, 여러분이 잘못된 동기를 가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를 부자의 관계로 보며, 여러분은 선생님보다 한 단계 떨어지는 것입니다.

개척의 동기는 내가 되더라도 결정적 동기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결정적 동기는 누가 되느냐? 상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해 나오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선생님이 필요로 하는 상대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짜가 아니라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만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제1후보, 제 2후보, 제 3후보까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보들을 몽땅 다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3분의 1씩 상대적 책임을 하도록 해 놓고, 얼마만큼 기간이 지나면 시기를 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그렇게 해야 원리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떠나서는 하나되지 않는 것입니다.

29-110
하늘에 대한 충효의 도리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무슨 사명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애국자가 되겠어요, 효자가 되겠어요? 충신이 되겠어요, 효자가 되겠어요? 어떤 것이 되겠어요? 「충신이 되겠습니다」 효자가 안되고? 「효자도 되겠습니다」 충신은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칠 것을 각오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현재 식구들 중에서 충신이 나올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똑똑히 대답해 봐요. 나올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습니다」 왜? 나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신은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은 효자가 아니라, 충신인 것입니다. 물론 효자의 공인서를 받아낸 다음, 충신의 공인서를 받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충신의 도리를 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원통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길을 가기 위해 통일교회의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고, 희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인간들이 어버이 앞에서 효도를 했느냐? 그 어버이는 어떠한 어버이냐? 그 어버이는 나라의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늘의 왕자요, 하늘의 군주였습니다. 또한, 땅의 왕자요 군주였습니다. 그러나 그 군주가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위치를 복귀하려니 내가 그 어버이의 아들로서, 그 족속으로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효도 좋지만, 충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 앞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효도하는 것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보다도 충성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아들딸들이 이 땅 위에 충의 역사를 남길 수 있는 온전한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국민이 되려면 충을 가르치는 하나의 가정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가정을 중심한 사랑을 하나님께 영원히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 앞에 충신이라는 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순신이나 유관순 같은 사람이 애국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 나라의 애국자라 할진대, 그들 이상으로 충성을 하겠다고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으되 지금까지 그럴 수 있는 실질적인 기준을 갖지 못하였으니 이제부터 여러분은 충성의 길을 걸어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찾기 위한 해방의 선봉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당파적으로 몰리고, 쫓기고 혹은 투옥당한다 하더라도 투쟁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 투쟁에서 대적할 적수가 누구냐 하는 것을 결정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자기가 아버지 앞에 효를 했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효는 충의 도리를 다하기 위한 하나의 터전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충의 도리를 다할 수 있고, 한 가정의 부모를 중심삼고 사랑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중심삼고 영원한 사랑을 축복해 주시려는 아버지의 소원 앞에, 그 기준을 내가 어떻게 돌파해 가지고 성취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필생의 사업으로 알고, 국민된 도리로써 그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됩니다.

29-111
생명을 책임진 전문가의 길
여러분, 나라가 없는데 효자가 될 수 있어요? 나라가 없으면 효자가 되고 싶어도 못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라를 위해서 밤잠을 못 자고 신음하고 있으면, 자식도 그 나라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뛰쳐나갈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어버이와 더불어 그 나라의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효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하늘의 효자가 되고 나라의 충신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까? 여기에 해당하는 정신이 곧 하나도 효와 충이요, 둘도 효와 충이요, 열도 백도 천도 만도 효와 충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죽더라도 어떻게 이러한 자리에 올라와 죽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섭리의 뜻을 짊어지고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충의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책임을 해야 하고, 종족까지 책임을 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그 책임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 되느냐? 문제가 거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효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충이라는 것은 국가적인 단계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를 위한 공적인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붙들고 나가게 될 때, 나는 비록 환경의 지배를 받았지만 효를 하였고 충을 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눈을 감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원칙을 통하여 이루어진 국가는 그 원칙에 따라 간 사람을 효자로 또는 충신으로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유관순이 나라가 있는 상황에서 싸웠습니까? 또 주권이 있는 상황에서 싸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하여 어떤 충신보다도 더 큰 충성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녀의 가정에서 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 이겁니다.

그 충으로 인하여 종족적인 승리가 이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가정을 다시 찾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다 잃어버렸더라도, 산지사방에 있더라도 종족이 승리하는 날에는 그 씨족이 감명을 받아 가지고 가정을 수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잃어버렸던 가정이 다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떠한 책임자든지 자기를 희생해 가지고 안팎의 모든 것이 자기로 인하여 수습될 수 있는 터전을 닦아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승리가 결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씨족을 위해 살아야 되겠습니까, 민족을 위해 살아야 되겠습니까? 「민족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김씨면 김씨의 씨족적인 메시아가 되었다면, 그 메시아 된 책임은 민족을 필요로 하고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은 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국가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은 세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위해서 충성하면 거기에서 세계와 국가와 민족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면이면 면, 군이면 군, 도면 도를 중심삼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책임진 전문가로서 가야 할 길이란 바로 효할 수 있는 길이요, 충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이론적인 입장에서나, 실제적인 모든 면에 있어서 책임을 짊어진 중심적인 기둥이기에, 결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절대로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 뒤넘이치는 험난한 환경을 넘어서 축복을 받았으니, 여러분은 정녕 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인이 아벨에게 자동적으로 굴복해야 된다고 그랬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한테 자동적으로 굴복합니까? 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자동적입니까, 권고적입니까? 자동적인지 권고적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29-113
아벨적인 계승자가 되려면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뜻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난날은 이런 것을 요구했지만, 오늘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미래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요구하는 기준이 곧 자기의 주체의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모두가 자기를 위주로 해 가지고 `아이구, 나만 잘 살면 됐지`라고 하는 이기주의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이기주의를 버리고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가정도 그래야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남편이 나갔다 들어오면 밖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아내와 더불어 상의하고 새롭게 개척할 수 있는 요인을 발견해야 합니다. 서로가 힘을 합하여 연구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되면 자식들도 거기에 힘을 보태며, 우리도 이러한 가정을 만들자고 동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길을 가려니 서로가 협조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3년 동안 활동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려면 고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고생해서 망할 것 같으면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절대로 고생해서 손해보지는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밀가루와 같은 세상이라면 여러분은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누룩은 밀가루보다 부풀리는 요소가 더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누룩은 밀가루에다 무엇인가 플러스(+) 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동네 사람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밀가루와 같은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들은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만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중심삼고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나를 위해 있어야 되지만, 나도 그 나라를 위해서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라는 개인을 중심삼고 나라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연결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인 중에 국회의원이 돼 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10년 이상은 나서서 자기 선전을 하지 말아요. 통일교회 식으로, 밤이나 낮이나 남을 위하여 살고, 그들에게서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뭇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게 될 때는 국회의원이 되지 않겠다고 도망다녀도 그들이 끌어다가 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연굴복` 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절대 `강제굴복’이나 `수단굴복’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식들이나 믿음의 아들딸들도 강제로 굴복시켜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은 선생님에게 자연굴복합니까? 아니면 가르침을 받아서 굴복합니까?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이 자연굴복하지 않으면 가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아벨적인 입장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연굴복하여 인정받지 않는 사람은 아벨적인 계승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먼저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탄편이 가인이기 때문에, 가인은 아벨편에 굴복해야 됩니다. 가인이 굴복하지 않으면 아벨적인 책임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이 확실하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권내에 들게 되면, 세계는 틀림없이 일시에 통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29-115
언제나 상대를 위해 기도해 주라
여러분이 국가를 책임지려고 할 때에도 역시 아벨 앞에 자연적으로 굴복해야 됩니다. 이 말은 아까 말한 거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사탄편 가인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아벨이 되어야 됩니다.

자기가 굴복하는 것이 부모의 위업을 상속받는 길이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믿음의 생활을 실천하고 아벨적 생활을 전면적으로 실천하게 되면, 그 노력의 대가로 하늘의 뜻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다시 말하면 여러분은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이 식량이 없어서 밥을 굶게 되면, 식구들은 어디 가서 쌀을 좀 구해 주라는 것입니다. 쌀이 있는 사람의 손을 붙들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울기는 하늘을 위해서 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러한 고생의 길을 걸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길을 얼마나 많이 걸어왔겠습니까? `불초한 저희 부부가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당하는 이 자리가 아버지께서 염려하시는 자리요, 아버지께서 직접 이와 같은 수난의 길을 걸어 나오신 것을 알 수 있는 자리이니, 이러한 자리에 서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내가 배가 고파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쌀이 있는 이들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아버지여, 나 대신 이들을 축복하소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고 동정할 그 무엇이 있으면 나 대신 이들을 동정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매를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매를 맞은 사람이 오히려 맞지 않았다고 변명하면 때린 사람이 굴복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이 원수를 대해서 흘린 눈물은 그런 의미에서 구원하기 위한 전법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 믿겠으면 믿고 말겠으면 말아요. (웃음) 사실은 그래서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간 것입니다. 이렇듯, 내가 가정을 구원하는 것은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니 이중의 십자가를 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 가정이 이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한 길을 가더라도 나를 알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려거든 이 나라,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라고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탕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공적 분야에서 하나님과 똑같은 슬픔을 느껴야 됩니다. 돈을 버는 데 있어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벌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아나니아 부부가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지요? 선생님은 돈을 벌어서 혼자 쓰지 않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고, 번 돈을 전부다 그들에게 보태 주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새것이 있으면 이것을 누구에게 줄까 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주위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굴복은 명령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숨겨진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통일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지구면 지구, 지역이면 지역을 책임진 자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바라던 천국이 세워질 수 있는 자리에 서서, 그 전문적인 권위를 영원히 그 환경에 남기는 것이 하나님 소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29-117
물질에 끌려가지 말라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살겠어요? 공장에 가서 가정을 위하여 돈을 벌면서 살겠어요, 선생님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욕을 먹으면서라도 국가를 위해 살겠어요? 여러분 중에는 `우리 통일교회도 돈이 있으면 월급을 주면서 시켜야지 왜 월급도 주지 않고 시켜 먹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월급을 주면서 일을 시키면, 여러분은 선생님한테 미안해 할 것입니다. 미안하겠어요, 미안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수고는 물질과 더불어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떠한 고생도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기준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의 뜻이 다 이루어지면, 여러분에게 나라를 주고 세계까지 몽땅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슨 밭이 필요하고 논이 필요하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물질이 필요하면 공장에 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체제를 보게 되면, 공장보다는 교회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장이 있는 사람들의 월급은 올려 주면서 여러분에게는 아무것도 안 주니, 그것이 무슨 모순이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줄 더욱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기준이 아니라, 생명적인 기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질적인 축복을 받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적인 축복을 받겠습니까? 어떤 것을 받고 싶어요? 여러분은 월급 받아 가지고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 뜻이 이루어지거든 너희들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한다고 해서, 지역장들 중에 지금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당장 인사조치해 줄께 손들어 봐요. 없어요? 「예」 항상 때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금을 딱 그어서 기준을 세워 놓고 자기의 말은 분야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복귀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내가 참다운 가정을 이루고, 참다운 씨족을 이루었다 할 때에는 참다운 민족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면 도를 중심삼고 돌파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책임자, 즉 지구장이면 지구장이 언제 그 기준을 돌파할 것이냐?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흩어진 식구를 모을 수 있으면, 국가적인 책임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통일교회가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더 나라를 사랑하겠습니까? 그것은 민족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 판단하는 기간은 몇 십 년이고 오래 동안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날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큰 집을 지을 때, 지혜로운 사람은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땅을 깊이 파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빌딩을 짓고 싶어요, 모래 바닥 위에 하꼬방(판자집) 같은 것을 짓고 싶어요? 판자집 지을 돈이 있으면, 땅을 파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미쳤다고 욕을 하더라도 파라는 것입니다. 땅을 파는 사람이 미쳤습니까, 그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 미쳤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욕하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볼 때는 욕을 하는 사람이 미친 사람입니다. 그 집이 아직 지어지지 않아서 저런 욕을 하지, 집을 짓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되나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집을 지으려 할 때에는 욕하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위치가 바뀔 것입니다. 우리를 반대하던 3천만을 그 구덩이 속에다 몰아 넣고는 콘크리트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전부 묻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만 남는 것입니다. 그 몰아넣는 데 있어서도 강제로 끌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거기에 들어가겠다고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을 지경이겠지요.

죽으러 가자니 끄는 사람도 죽을 지경이고, 뒤에서 끌려가는 사람도 죽을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죽지는 않아야 합니다. 죽으면 큰일납니다. (웃음)

29-119
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 일을 몇 살까지 하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마음이 해이해지거나 방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모험을 해 왔지만, 앞으로 더욱더 많은 모험을 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여러분을 방패로 세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는 뜻을 위하여 분신 자살할 수 있는 기준이 서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100명 가운데 90명쯤은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자신 있어요? 남들은 나라를 위해서 분신자살을 하는데, 여러분도 뜻을 위해서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이 이것을 끝까지 지켜 봐 가지고, 여러분이 그러한 행동을 취하게 되면 구원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100명 가운데 90명만 된다면 선생님이 신경 쓰겠습니까? 죽을 때까지도 신경 안 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아이구, 처자식을 두고 어떻게 죽을꼬` 하는 사람은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충신은 죽음길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은 외롭더라도 지역적인 대표자가 되어 민족을 대표하고, 통일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가인보다 어떤 면에서도 못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도 너만 못하겠느냐` 는 악착스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실질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영통하는 사람들은 선생님에게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레테르가 붙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통일은 문제없는 거라구요.

세상의 모든 것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자꾸 변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여러분들은 이중작전을 해야 합니다. 이중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가정의 십자가와 공적인 십자가가 있다면, 그 두 십자가를 한꺼번에 질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공적인 십자가를 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하 기도의 앞부분까지 녹음이 끊겼음)

29-120
기 도
아버님, 예수께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을 때, 아버지 뜻과 내 뜻이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했사온데 그 순간처럼 슬픈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옵나이다.

이제는 `아버지 뜻대로 태어났으니,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식이 어떻게든 나와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뜻과 내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아버지보다 더 큰 이중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가정을 찾으시고 종족을 개척해 나오실 때에, 나는 가정을 대신하여 협조하고 종족을 대신하여 협조할 줄 알고 민족을 위하여 가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과거 현재 미래의 결실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 오늘날 통일교회의 지방에 있는 책임자들은 이 선생보다도 더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어버이로부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 저희는 미래까지 연결된 역사적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소망의 실체이시듯 저희는 미래의 열매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저희들은 뜻적으로 미완성한 입장에 있는 서기관의 실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여기에 모여든 이들은 통일신도들을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러한 원칙적인 기준에서 볼 때, 저희들은 뜻과 멀리 있었고, 뜻과 일치될 수 없었던 자들이옵니다. 저희들이 이러한 불효막심한 사실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몰리는 자리에 있을 때에, 아버지께서 저희를 용서하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이 세상의 악한 것을 없애기 위하여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얼마나 몸부림치셨는가 하는 사실을 저희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진정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눈물 없이는 아버지를 대할 수 없고, 눈물 없이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으며, 눈물이 아니고서는 자식들을 키울 수 없는 자신들임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사랑의 실체가 되어서, 아버지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사랑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기보다는 그 사랑의 주체가 되어서, 저희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저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자신이 되겠다고 몸부림쳐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시킬 수 있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아버지가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대신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탕감복귀노정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승리하여서 아버지의 사랑만을 받는 아들인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렇게 공적인 노정을 염려해 가지고 오늘날 횡적인 제 1기반을 연결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초점에 머물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되고, 씨족이 되고, 종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내정적인 인연을 헤아려 볼 때, 저희들이 얼마나 민망스러운 자신들인가를 재차 발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뜻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 오히려 뜻을 팔아먹고 살았습니다. 뜻을 따라간다고 하면서 뜻을 밟고 다녔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선 저희들은 목을 놓아 울어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알기에, 죽여달라고 호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복귀섭리의 도상에 있어서 사탄을 산 채로 때려잡을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하겠고, 사탄세계의 아들들을 산 채로 끌어당길 수 있는 하늘의 왕자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하늘의 권위를 가진 늠름한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씨족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의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할 통일교단인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 당신께서 천만리 길을 행차하신다 해도 걱정되지 않을 공고한 콘크리트 바닥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앞으로 달려가는 데 있어서 고속도로같이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통일제단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전부다 자기 자체를 낮추어야 되겠사옵니다. 자기 자신을 낮은 자리에서 결속시키지 않으면 이 길이 닦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이 세상의 밑창에 들어가서 공고하게 다져 가지고 평면적인 반석과 같은 구조를 갖춤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그 길을 왕래하시게 될 때에, 이 길이 아니고는 왕래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닦아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길은 과거에도 따라와야 했고, 현재는 물론이요, 미래에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길이니, 오늘 여기에 있는 이들은 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길을 연결시킬 수있는 모체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님, 이제부터 저희들은 뜻을 책임지고 모든 것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책임자로서 이중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되겠고, 아버지께 효와 충의 도리를 다하여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여기에 참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충을 다하고 효를 다할 수 있는 내정적인 십자가를 짊어져야 되겠기에, 외적으로는 맞고 몰리는 십자가를 책임져야만 되겠사옵나이다. 이 상징적인 십자가를 딛고 아버님을 위로해 드림으로써 기뻐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자식도 기뻐하고, 그 자식의 자식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환경이 되도록 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무쪼록 아버님이 기뻐하시고 인류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천국의 인연을 땅 위에 펼쳐서 천년 행복을 노래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조건을 남겨야 할 것이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의 사명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님 대신 전문가가 되어서 모든 문제를 원리 원칙을 중심삼고 해결할 수 있는 주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칭찬받고, 승리의 실체로서 추앙받을 수 있는 무리들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