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62 to 29-285: 우리의 사명

우리의 사명
1970.03.11 (수),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29-262
우리의 사명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있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자체도 아시아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입장이요, 아시아면 아시아도 세계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에, 이 세계 역시 천주,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게 됩니다.

29-262
복귀역사의 출발 기준
개인을 놓고 볼 때, 개인 앞에 가정, 가정 앞에 종족, 종족 앞에 민족과 같이 더 큰 것이 앞에 놓여 있을 때에 그 큰 것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것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도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이상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주관이나 통일의 역사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루의 생활에서도 여러분이 아침에 어떠한 하나의 일을 계획하고 나서게 될 때, 계획한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계획한 그 일보다 더 큰 내적인 결의를 해야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적인 결의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환경적으로 타개해야 할 상대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루의 일과를 성공리에 마쳤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승리자로서의 영광을 만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의 일도 그러하듯이, 국가나 세계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주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큰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복귀섭리역사는 본래 국가를 표준하고 출발할 것이 아닙니다. 국가에서부터 세계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에서부터 출발하여 가정,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의 형태를 거쳐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세계, 혹은 천주로까지 발전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개인을 마음대로 주관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 개인 앞에는 보다 큰 종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개인보다 더 큰 희생의 대가를 처러야 개인을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인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 두말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복귀역사과정이 이러하였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29-263
복귀섭리의 완성 기준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개인보다 큰 기반을 갖고 있는 사탄의 세력이 개인과 접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개인보다 더 큰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을 찾기 위해서도 두 배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했고, 노아를 세우기 위해서도 국가권 앞에서 그 모든 환경을 타개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위의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닦기 위해서 120년의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개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개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과 연결되어 있는 환경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야곱 때나, 모세 때나, 예수님 때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개인을 구한다는 입장을 두고 볼 때, 반드시 사탄권을 타개하고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보다도 더 큰 시련의 대가, 탕감의 대가,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사명의 기준은 어디에 있느냐? 개인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는 개인보다 큰 탕감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사명이 있고,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나아가 천주복귀란 이 엄청난 타이틀을 내걸고도 그 이상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할 수 있는 주체적인 능동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검(劍)으로 어떤 물건을 자르려면 그 검이 물건보다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물건을 자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섭리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나타나는 모든 상대적인 여건을 타개할 수 있는 주체적인 능동성을 지녀야 됩니다. 즉, 강한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자체를 상대가 치게 될 때, 그 자체가 부서지지 않고 여기에서 상대적 존재를 부숴 버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섭리의 완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개인의 문제를 타개하는 데에도 역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요, 가정이나 종족과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러한 것입니다. 또한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서도 그와 같은 싸움의 환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그 싸움은 오늘날 인간세계의 싸움과는 다릅니다. 먼저 무형세계의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유형세계의 사탄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탄을 굴복시키고서야 실체적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전선에서 싸움을 치르고 나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우리의 입장이 일방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입장에서 입체적인 입장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먼저 어떻게 되는지 영계와 육계를 중심삼은 그 양면세계의 길을 타개하여 그 목적을 향해서 직선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계에서 주체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이 지상의 여러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영계에서 승리적 기준을 가진 주체로 서 있다 하더라도 육계를 대표한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육계의 문제를 타개하는 행로를 가리지 않으면 지상에서 승리의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섭리 과정이 어떻다는 것을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타락한 인간으로서 이 양면의 세계를 어떻게 타개해 나가느냐? 하나님도 실체적인 육계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6천년 역사를 거쳐오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주체적인 입장에 선 것도 아니고 타락권내에 포위되어 있는데, 우리 자체로서 어떻게 이 양면의 싸움을 완결시키느냐? 이것은 지극히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29-265
우리는 승리적 기준을 결정지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먼저 승리적 기준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명을 할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승리적 기준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상대적 존재에 속해 있어서는 안 되며, 자기가 주체적 입장에서 승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목적하는 바를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그러면 승리적 기준을 어디에 세우느냐? 그것은 내 자신에 세워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전체의 사명을 대신 짊어지고 천주에서 벌어진 이 싸움을 완결시키기 위한 책임자로 섰을 때 언제나 문제시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주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자신은 실체의 중심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나갔습니다. 만약 여기에서 간격이 벌어지고, 하나의 목적 기준을 중심삼고 상충이 벌어지게 될 때는 승리의 방향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언제나 심중으로 깊이 생각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은 언제나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승리적 주체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가 땅에 있어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승리적 기반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야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일러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한 말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승리적 기준이라는 것은 땅에서 하나님의 실체되는 예수님을 중심삼아 성전과 같은 입장에서 일체가 되는 기반입니다. 즉, 승리적 기준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표준하지 않고는 복귀의 완결이라든가, 혹은 그 당시의 예수님의 사명을 종결지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영계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네 마음속에 있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네 마음속에 승리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원천을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천국에는 하나님도 계실 것이고,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종족, 하나님의 국가, 하나님의 세계가 있을 것이거늘, 천국 또한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승리적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서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인간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고 했는데 천국이 어디에 가까왔느냐? 땅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네 마음에 가까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먼저 그 기준을 결정지어 놓지 않고는 천국이 땅에 아무리 가깝더라도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요, 자기 부모에 가깝더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요, 자기 아들딸한테 가깝더라도 관계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 먼저 그 기준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앙기준을 세워 출발하지 않고는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고, 아무리 어려운 노정을 경과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승리의 기준을 갖춘 입장에 섰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큰 문제는 승리의 기준을 자기 자체내에서 먼저 결정지을 수 있는 한 때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29-267
승리적 기준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오늘날 복귀도상에 서 있는 우리들은 과거에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복귀도상에서 생명을 걸고 싸웠지만 실패하여 비운 속에 역사와 더불어 흘러간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들이 간 길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소망의 기준은 그들이 바라보던 그런 민족적 기준이라든가 국가적 기준이 아닙니다. 그런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세계적 기준 앞에 선 우리인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하게 될 때, `나는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뜻 앞에 있어서 일차적 승리를 갖지 못하고 패자로서 서러움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들의 추앙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항시 하나님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승리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 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승리적 기준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아는 것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늠름해야 되고,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공격하여 타파할 수 있는 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지금까지 지식을 갖기 위해서나 실천을 하기 위해서 수고한 모든 기준이 상대적으로 엇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나아가는 방향에 방해되는 것이 있을 때, 내가 갖춰 온 실력과 세운 실적으로 일시에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세우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사명과 우리의 책임이 완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선조들은 왜 실패했느냐? 그들은 복귀의 도상에 서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뜻을 중심삼고 완성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지식 기반이 없었습니다. 알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알고 있는 것도 실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천을 먼저 해 가지고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니라 실천함과 동시에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니 실천하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는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실천이 없으면 그 아는 것이 나에게 보탬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가 맺어집니다. 관계라는 것은 상대의 여건을 통해서 맺어지는 것이니, 독자적인 입장에서는 관계라든가 인연이란 명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알고 나서는 실천을 해야 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번 실천해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래 가지고는 실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달려야 할 코스가 어떻게 되어 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며,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또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하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발할 때는 선수들이 전부다 스타트 라인에 서 가지고 뛸 것인데, 어떤 때는 갑이라는 사람이 앞서서 달릴 것이고, 어떤 때는 을이라는 사람이 앞서서 달릴 것이라는 것을 다 아는 것입니다. 또한 전환점이 있으면 전환점을 돌아와야 할 것이며, 결승점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누구든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승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기가 훈련을 해 가지고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달려서 목적지에 이르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가 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에 실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가 원리 자체를 몰라서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알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어떤 것이 더 어려우냐? 아는 것은 쉽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조금만 노력하면 이 원리책 한 권은 다 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실천은 생명을 걸고 해야 됩니다. 아는 것은 어느 기간을 통해서 준비할 수 있지만 실천하는 것은 반드시 생명을 투입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요만하니까 한두 번 그저 손만 움직이면 되지, 발만 움직이면 되지, 내가 그저 왔다갔다하면 되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복귀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 복귀섭리의 인연은 자기의 어떠한 부분을 움직여 가지고 완성되게 안 되어 있습니다. 조그마한 개인의 승리의 기반 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승리한, 개인이 사명을 완수한 그 기반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지,그 이하에서는 출발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이 승리할 수 있는 입장까지는 생명을 바쳐서라도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적당히 `며칠 몇 해 동안 하면 되겠지’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복귀를 완수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의 한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한계선을 넘어가는 데 있어서는 나 홀로 넘어가는 것이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국가를 복귀하더라도 그 국가 자체로서 넘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거쳐 나가야 됩니다.

29-269
개인적인 한계선을 넘어야 할 인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복귀섭리에 인연된 개인은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가정이 딸려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 타락은 가정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타락의 동기는 개인인 아담 해와가 됐지만 이들이 그것을 가정으로 끌고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종족을 끌고 들어간 결과가 되었고, 국가를 끌고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종족을 끌고 들어간 결과가 되었고, 국가를 끌고 들어간 결과가 되었으며, 세계를 끌고 들어간 결과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뭐냐 하면 개인을 중심삼은 한계선입니다. 자기 개인을 중심삼은 한계선은 안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초월한 입장에 선 한계선이어야 합니다. 그 인연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백성이나 한국 백성이나 백성은 마찬가지입니다. 선진국가와 후진국가를 볼 때, 후진국가에 가 보면 선진국가보다 더 우수한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에도 문맹자가 있고 거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도 교수가 있고 거지가 있습니다. 한국의 교수가 미국의 거지 보다는 낫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민 전체를 두고 볼 때 한국은 후진국민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거지는 선진 국민이라는 레테르가 붙어 있습니다. 그건 왜? 갖추어진 범위의 차이에 따라 가지고 개체의 인격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복귀섭리의 역사에 나타날 수 있는 인격 기준은 무엇에 의해서 결정되느냐? 여러분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갖추어진 복귀섭리의 승리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승리적 기준은 세계를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섬으로써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으로 태어난 한을 탕감복귀해 가지고 그 이상의 가치적 존재로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한계선을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아담 해와의 승리적인 기준이 나오면 그 아담 해와로부터 가정이 나와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아담 해와는 초월적인 존재로서 만우주의 조상, 만민의 조상이며 만인간의 부모, 만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아담 해와는 부모도 되는 것이요, 족장도 되는 것이요, 군왕도 되는 것이요, 세계적인 주권자도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실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한계선을 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이 일하는 데 있어서는 통일사상이 필요합니다. 통일사상은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는 초월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은 것으로 우리가 개인적으로 보유할 수 있는 그러한 사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입장에 섰다 할 때는 어떻게 되느냐? 타락권내가 아니라 타락권 본연의 인간을 표준해 가지고 서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공인하게 될 때는, 거기에 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내용과 동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과 동기는 있지만 이것으로 하여금 결과를 어떻게 가져 오게 하느냐 하는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생각은 다른 데 두고 적당히 움직이면 안 됩니다. 결단, 결단을 해야 됩니다.

복귀섭리 도상에 왔다 갔던 사람들이 그냥 적당히 간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저 적당히 따라가며 된다고 하며 가서는 안 됩니다. 전부 뜻과 인연 맺어 가지고 결사적이어야 합니다. 결사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내 개인의 한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여러분이 생각해야 됩니다.

29-271
6천년 역사는 아담 해와를 재창조하기 위한 역사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는 아담 하나를 찾아 나온 역사입니다. 아담 하나를 재창조하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나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해와는 아담이 나오지 않고는 창조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아담, 단 하나의 남자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찾기 위해서는, 창조하기 위해서는 복귀섭리 도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살이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억천만 영인들의 원한이 여기에 뭉쳐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실체가 등장하는 날에 비로소 극심한 박해 가운데서도 피를 뿌리며 죽어간 순교자들은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영계에 있지만 지상에 있는 실체와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도 해방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적으로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자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할 때 사탄이 `네가 배가 고프면 돌로 떡이 되게 하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며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사탄은 예수님에 대해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워 놓고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뛰어 내려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세계에 대한 시험을 하기 위해 사탄은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온 천하를 네게 주리라’ 했는데, 이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사탄으로부터 말씀에 대한 시험, 실체에 대한 시험, 세계에 대한 시험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원리 가운데 선 예수님을 상대해서 시험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말씀에 대한 시험, 실체에 대한 시험, 세계에 대한 시험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시험인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 있느냐? 사탄이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라’고 한 것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타락권을 넘어서야 될 것 아니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내 시험에서 승리해야 될 것이 아니냐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왔다면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가시는 과정에 있었던 수난의 모든 요건들이 예수님 안에는 하나도 없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아담을 다시 복귀하기 위해 훈련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입니다. 그러면 아담을 복귀한 후에는 무엇을 하느냐? 해와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와 같이 내버려 두어선 안 됩니다. 관리를 잘해야 되고, 주관을 잘해야 됩니다. 그들이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면 서로 가서 언제든지 곁에서 관리를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렇습니다. 현재 축복 받은 가정들이 아담 해와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세계의 모든 인간들은 전부다 천사장들입니다. 타락한 천사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 세계의 여자는 아담을 꼬였던 해와의 입장이며, 사탄세계의 남자는 반대로 해와를 꼬였던 천사장과 같은 입장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해와와 타락한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서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 섰다 하게 될 때, 이들의 관리를 어떻게 잘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역시 그렇다는 겁니다. 넓고 넓은 천주에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세계에는 인류가 30억이 있지만 그들은 전부다 우리의 원수들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모의 자녀로 사위기대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계나 육계에서 타락의 요소들을 전부다 뽑아 버려야 됩니다. 이곳을 향해 사탄이 총공격을 하는데, 그 공격을 우리가 막아 내려면 그 이상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아담이 타락한 것을 복귀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자기를 자각했을 때, 복귀된 해와의 입장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해방된 부부로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천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천도를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종족의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앞으로 자라나는 아들딸에게 부모의 사상을 어떻게 전통적으로 심어주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복귀섭리를 위해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시면서, 사탄세계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빼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는 사탄세계에서 어떻게 아들딸들을 교육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이중의 십자가를 여러분들은 감수해야 됩니다.

29-273
가인을 복귀하기 위한 전법
여러분들은 지금 엄벙덤벙하면서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 해서는 안됩니다. 내적으로 딱 단결해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가정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서게 될 때, 자기 가정은 하나의 성전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즉, 제단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아버지여, 나를 사랑하시는 것보다도 가정과 나를 사랑해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버지여,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재치 있는 사람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가까운 사람을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걸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라도 걸려들기 때문에 그 사람과 같이 있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예수님이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우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원했을 테니까 예수님을 위하여 해주십시오. 왜 안 해주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식의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나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하는 것은 예수를 팔아먹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걸고 들어가야 됩니다. 그것이 타락한 천사장의 입장에 있는 가인을 복귀하기 위한 전법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것은 하나님이 환영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싫다고 한다면 그런 복귀역사는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따라 예수님을 팔아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아들이 이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아들이 이 나라를, 이 세계를 원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당신의 아들딸의 소원이며 당신의 소원이 아닙니까? 이제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저를 죽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 세계를 위해서, 당신의 아들의 뜻을 위해서 나는 거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딴 종교와 다른 것은 성부 성자 성신이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멋진 것입니다. 아버지한테 쫓겨나면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한테 쫓겨나면 사랑하는 효자가 있으니 얼마나 멋지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도상에 서 있는 우리 자신들이 스스로 거기에 다리를 놓고 가야만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자신에 있어서 승리적 기준을 어떻게 찾으며, 한계선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모셔 드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승리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모셔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과 하나되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기준에 계시지만, 나는 내가 타락한 만큼 그 기준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거리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 여기에 필요한 것은 복귀섭리 도상에 왔다 갔던 선지자들입니다. 왜 그러냐? 아벨이면 아벨을 다리로 놓고, 노아면 노아를 다리로 놓고, 아브라함이면 아브라함을, 모세면 모세를, 세례 요한이면 세례 요한을, 예수님이면 예수님을 다리 놓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그들과 하나되는 길로 가야 합니다. 그 길로 가기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민족을 위해서 싸우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세계와 우주를 위해 사랑을 가지고 생명을 바쳐 싸우겠다고 했을 때, 누가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을 것인가? 세계와 우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겠다고 하는 사랑이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싸우신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의 죽음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그를 위해서 세계를 찾겠다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그와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가다가 죽으면 역적이 되는 것입니다.

29-275
세계를 바라보고 나가라
그를 위해서 그가 찾고 있는 민족을 찾고,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민족을 찾는 게 당연하며 그렇게 되면 그 민족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민족을 찾고 세계를 찾기 위해 정성을 들여 온 사람을 별수 없이 따라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1대에 안 되면 2대에서 복귀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복귀시킬 수 있는 것은 누구냐? 아담의 아들입니다. 또,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누구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한 단계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누구냐? 주체가 아니고 대상입니다. 대상이 한 단계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매를 맞게 될 때, 뼈가 아니라 살이 먼저 맞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민족을 찾고 세계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세계를 찾아가는 길을 모색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는 왜 이러고 있느냐?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은 승리적 기준을 세워야 되고, 하늘과 땅을 중심삼고 주체적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나왔다 해도 그 한 사람만으로는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 사람만 있게 되면 그 사람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와 싸움을 해야 할 것입니다. 1세기만 하면 세계가 따를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싸워야 합니다. 1세기에 세계가 복귀 안 되면 2세기에라도 해야 될 것이고, 2세기에도 안 되면 3세기에라도 해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세기인 이 때에 있어서 뜻을 품고 그런 운동을 하던 종교 지도자라든가 민족 지도자가 죽었다 하더라도,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더라도 가인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해서 싸웠지만 내가 찾고 싶은 것은 나라요, 세계다’ 하며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됩니다. 전자는 양자의 모습이지만, 후자가 이상세계를 위해서 싸우고 하늘땅을 위해서 싸우는 실전노정에 있어서 이 땅에서도 대표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세계적인 인물로서 책임을 다하고, 또 영계에서도 그 중심으로서의 책임을 다한다면 지금까지 이 땅에 왔다 영계에 간 어떤 종교 지도자도 반드시 그 사람을 따르고, 그를 내세워 가지고 복귀운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내세우느냐? 개인복귀도상에 있어서 개인복귀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보다, 개인의 복귀 도상에서 가정까지 구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승리라는 것은 안식할 수 없는 승리인 것입니다. 개인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야 됩니다. 가정 안에 있는 개인은 안식할 수 있지만 가정이 없는 개인은 안식할 수 없습니다. 또, 가정이 안식하려면 종족의 기준을 닦아 가지고 종족의 보호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런 말을 드렸지만 실천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앞으로 할 일에 있어서 내 능력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라가 비상시에 처해 있을 때, 국가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나라의 국법을 어긴 사형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형수가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고 적진에 들어가서 적장의 목을 잘라 왔다고 하게 되면 적의 나라는 망할 수 있는 동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형수는 지금까지 지은 죄보다 더 큰 공헌을 한 기준이 있게 되니, 죄는 다 없어지고 그에게 영광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이 현재 일하는 데 있어서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냐 하는 것을 모색하여야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오늘날 민족복귀를 해 나가는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자신이 충성을 다하여 일하면서 오늘날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만 싸운다는 관념을 가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주시하는, 응시하는 그 시선 끝은 세계이고, 그 세계를 위해 내가 싸운다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중된 목적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려운 실전에 임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라가 망하면 세계를 위한 싸움의 무대가 또 있지 않느냐 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보다 큰 목적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섭리를 놓고 믿고 못 믿는다는 시시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못하겠으니 시시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즉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요인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터전이 바로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인데, 여기에서 지쳐 있는 사람들이나 복귀섭리 과정에 서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내일에 남아지지 못합니다. 남아지더라도 내일의 세계에 도움이 못 됩니다.

29-277
우리의 사명 완수의 표준
선생님은 여러분들보다 한 시대를 앞서 간다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이 무엇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또, 세상 끝날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계가 어떤 세계일 것이며, 또 그때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하는 것을 염려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세상이 다 흘러가고 망한다 할지라도 부활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예수님 같은 분은 그런 세계, 말세 이후의 세계를 중심삼고 죽었기 때문에 말세권의 그 세계가 그분을 지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새로운 역사적인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나간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시대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사상은 그때까지의 역사시대의 사상이 아니라, 역사시대를 초월한 사상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상하는 그 시대는 필히 올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보다 큰 것을 위하는 사상입니다. 오늘날의 인간들은 그 역사적인 인연을 끊고는 갈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중심사상 앞에 반드시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자’하고 여러분들은 `예’ 하고 대답을 하는데,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이 지구(地區)면 지구를 책임지고, 그 책임진 지구를 위해 충성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맡은 지구에만 잘하고 나라에는 충성하지 말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내가 지구에 대해 잘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해 잘하기 위한 과정이요, 지구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 충성하기 위한 것이요,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첩첩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지구에서 하는 일이지만 지금 하는 것은 하나의 훈련입니다. 훈련한다는 것은 실전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 훈련이 무엇을 하기 위한 훈련인가 하면 대한 민국에 충성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싸워 나가는 데 있어서 우리의 사명 완수의 표준은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훈련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러한 훈련을 하는 때입니다. 그래도 여러분, 할 수 없어요?

여러분 중에는 `원리를 몰랐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원리를 알았으니 할 수 없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기도할 때에는 아버지를 부릅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여러분만 일대 일로 대하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세계를 품고 있는 아버지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 아버지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이 되려면 그 아버지가 품은 그 세계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곳은 세상의 30억 인류가 다 들어가는 곳이냐? 아닙니다. 한 사람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곳도 한 곳이고, 하루의 시간권내에 일하는 터전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제한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세계와 연결시키느냐?

(판서한 것을 가리키시며) 그러기에 요것은 하나의 제물입니다. 제단입니다. 사탄이 하나님과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결판짓는 제단입니다. 그러니 어디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간에 그것은 제단입니다. 뜻을 위해서 밥을 빌어먹더라도 그것은 제단입니다. 단을 쌓는 제단입니다. 전부다 그런 입장을 체험해 가지고 특별히 자기를 옹호해야 합니다.

29-279
영계와 통일교회
여러분, 지금까지의 수련생들은 어떠했습니까? 선생님에게 지금까지 폐만 끼쳤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서 지금 받고 있는 이 수련이라는 것은 통일교회에서 처음 있는 것입니다.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만큼 여러분은 최소한 말세에 있어서 이 뜻을 이루는 일에 참가해야지 그러지 않는 사람은 낙제하는 것입니다. 상부의 조직권내에 있으면 상하관계의 인연을 갖추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상하관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인연이 맺어지려 할 때 불응하면 그 인연과 관계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수련회에 온 것을 저 영계에 간 여러분의 선조들이 안다면 자기 후손들이 수련회 명단에 올랐다고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좋아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좋아하겠습니다.」

`전무후무한 역사시대인 1970년대의 봄절기에 첫출발을 보는 이때에 내 몇수십 대의 후손 되는 아무개가 등록했구만!’ 이렇게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생각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한다면 얼마나 생각하겠습니까? 쌍수를 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를 것입니다.

자기 종족이 수련을 잘 받게 하기 위해서 도와 주고 자기 자체를 놓고 별의별 일을 다 할 것입니다. 또, 수련회에 와 가지고 제 1전선에서 수련을 잘 받음으로써 제 2전선에서 승리의 용장이 되기를 얼마나 바라겠습니까?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의 조상들 수백 명이 와 여러분을 선정했는데 출석 시간에 불참했다고 한다면 그 조상들의 정성이 뭐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의 생활은 평면적인 생활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영계가 있다는 것을 다 알지요? 「예」 알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곳이 나와 더불어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수많은 조상들이 죽어가면서 전부 다 정성을 드렸고, 하늘땅이 전부다 정성을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 세계에까지 알려지고 있습니다. 외국에 있는 통일교회 교인들 중 `본부에서 이렇게 하는데 한번 가고 싶다. 거기에 한번 참석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그 사람들을 수련회에 참석시키려고 합니다. 일주일 동안 참석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따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을 보고 모든 영인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 영계에서 `야, 사람들아 자꾸만 와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상에서 통일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영계의 영인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 이렇게 우리의 수많은 조상들이 정성을 들이고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가만 보면 어떤 사람들은 졸고 있어요. 영계에서는 뜻이 바쁜데, 졸면서 `내 뜻이 하늘 뜻보다 바쁘다’ 하는 거예요. (웃음) 잘 조는구만. 이렇게 창피한 일이 있습니까? 우리 통일교회를 알았으면 기절하여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창피하다고 안 뛰면 너무 늦습니다. 넘어져도 일어나 뛰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옆으로 뺑소니치게 되면 출발을 못 합니다. 그러니 뛸 수 있을 때 더 뛰어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복귀도상에 있어서 마라톤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마라톤 선수들은 각 종족 가운데에서 뽑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목표점까지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조 가운데에는 선을 추구하다 죽어간 조상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조상들 이상이 되기를 원하면서 뛰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오늘날 우리는 한 시간권 내의, 동일한 시간권내의 입장에서 제물인 것입니다.

29-281
내 자신의 승리적 터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여러분이 잡지 같은 것을 볼 때에 많은 양을 봐도 괜찮지만, 원리강론을 볼 때는 많은 양을 보는 것보다도 적게 읽더라도 반드시 감동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책을 놓지 않겠다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훈련하는 데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받게 되면 그것이 우리가 가는 길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훈련을 받는다면 받으나 마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 말씀은 내 생사 문제를 결정하고 승패를 결정하는 칼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리강론을 읽게 될 때는 감동을 받고 나서는 실체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알았으면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지구장 자체를 보게 되면 이 기준에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결심을 했다면 끝난 후에는 제 2의 결심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정성들이며 달려 나가게 되면 앞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여기에는 기도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내가 얼마나 정성들이느냐가 문제입니다. 밥 못 먹고, 잠 못 자고, 자나깨나 정성들이며, `나는 죽어 가지고도 그 일을 해내겠다’ 하면 자기 갈 길을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계에 가서도 그런 사상을 갖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그 십자가의 사상은 지금까지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자신의 승리적 터전을 마련하여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를 종합하는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의 승리적 터전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나님을 모심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원수의 세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타개해 나가야 됩니다. 안팎으로 이러한 신념과 이러한 기준을 갖지 않고는 승리적 터전도 갖지 못하며 그 사명도 완수할 수 없습니다.

공장에 가면 쇠를 깎는데, 쇠보다 무른 것 가지고 쇠를 깎을 수 있습니까? 기계 가지고 쇠에다 구멍을 뚫는 데 그 기계가 쇠보다 물러 가지고 구멍을 뚫을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쇠보다 몇 배 강해야 뚫을 수 있습니다. 몇 배나 강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원수보다 몇 배나 강합니까? 몇 배나 강하냐 말이예요? 강하냐, 무르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자리에 처넣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쇠가 얼마나 강하냐 하는 것은 용광로에 처넣어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여기에 지지리 고생하는 지구장이 있는데 어디 얼마나 가나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고생으로 출발했으면 고생으로 거두어야 됩니다. 그것은 이 고생을 중심삼고 탕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었으면 심은 대로 거두어야 합니다. 십자가로 뿌렸으면 십자가로 거두어야 되고, 영광으로 뿌렸으면 영광으로 거두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세계적 기준까지 고생으로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강한 힘을 가져야 됩니다.

이 세계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여는 반드시 사탄과 부딪혀야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누가 세계를 다 정복하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은 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 모두가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서 사탄세계의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만이면 만 전부를 정복해야 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9-282
전후·좌우·상하관계를 잘 맺으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지구장들한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지구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 사람 정도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를 봐도 전후.좌우.상하 이렇게 언제든지 셋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계만 이루어지면 죽든지 살든지 해야 할 입장이 우리 앞에 벌어져도 좋은 것입니다. 내려가도 좋고, 올라가도 좋고, 도망다녀도 좋고, 고생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게 완전히 하나만 되면 전후.좌우.상하관계를 전부다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하 관계를 놓고도 이렇게 세 사람이지요? (판서) 그렇지요? 그 다음에 전후관계도 세 사람이고, 좌우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붙들고 싸웠습니다. 여러분들도 세 사람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형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일어서서 나아가는 데는 상하관계의 하늘과 아들이 있어야 하며, 이 셋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좌우관계에 있어서 하나되어야 되는데, 좌우는 뭐냐? 부부입니다. 또 전후관계는 형제를 말하기 때문에 자기 형제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좌우·상하관계가 되어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이 하나가 되면 입체세계가 전부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기쁨은 가정의 기쁨이요, 남편의 기쁨도 가정의 기쁨이요, 자녀의 기쁨도 가정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시고, 실체를 중심삼고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패를 했지만, 우리는 알았으니 승리를 해야 합니다. 실체라는 것이 일시적인 실체가 아니라 영원히 보장될 수 있는 실체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영원은 어디서부터냐? 국가 기준을 넘어서는 데에서부터 영원입니다. 사탄세계가 국가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우리는 국가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모시고 내가 그런 입장에 서서 국가를 대신하겠다고, 국가의 어려운 일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그렇게만 나가게 되면, 이 국가는 우리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수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중적 책임, 다시 말하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염려하며 여러분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이 일에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승리적 기반도 닦여지고, 우리의 사명도 완결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제부터 여러분은 지방에 가게 되면 결의와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가기 바랍니다. 고생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한한 재산입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잖아요?

외국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이 선생님을 몇 해만에 한번씩 만나는데, 그들은 선생님에 대해 착실히 배우면서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이 말씀에 대한 고마움보다도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 위에서 고생했던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천도상에 있어서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고생해 나왔다는 사실을 제일 실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실감하는 그 자리는 거기에 동참하는 자리입니다. 그것을 실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할 때, `당신의 아들이 이러이러한 뜻을 위해서 이렇게 수고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까? 하오니 제가 당할 수 있는 고생 위에 십 배 백 배의 고통을 더한다고 해도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민족을 복귀하라고 할 때, 민족과 세계까지 복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후대에 그 기준을 연결시킬 수 있는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이 기준을 여러분이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승리적 기준을 중심삼아 영계와 육계를 일치시켜야 되겠습니다.

29-284
원칙을 중심삼아 자기 책임을 수행하라
그 기준을 결정하고 그 다음 여러분은 수난의 길을 감수하면서 세계적인 뜻, 세계적인 관념, 세계적인 신념, 세계적인 자각을 가지고 하루의 생활을 메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메워 나가느냐? 하루의 생활이라는 것은 제한된 영역입니다. 또 거기에는 제한된 지구(地區)가 있을 것이고 그 지구의 지역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구, 그 지역이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거기서 대한민국을 연결시키고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다고 해야 됩니다.

성지라면 성지를 중심삼고 볼 때, 자기가 선 땅은 40개국을 중심삼은 120개 성지를 대표하는 것이요, 그 단에 서게 되면 그 단은 세계를 대표한 단이므로 세계를 대표하여 선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 엎드려 기도하게 될 때는 제물적인 제사장이 만민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제사장은 이 민족을 구해 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들을 구해 가지고는 만민을 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자에게는 만민을 위하여 길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만민의 속죄를 위해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 앞에 호소를 하는 그런 신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같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터전을 갖추지 않으면 우리의 사명을 완결할 수 있는 기점이 상실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명 완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수님은 영계와 육계를 연결시키고 민족을 위해서 세계적인 도상에서 수난의 길,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한 날을 꿈꾸었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여러분은 민족을 대신해서 민족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보다도 세계를 대신해서, 수많은 세계 인류를 위할 수 있는 그 길을 가다가 몰려서 죽을 수 있는 그 날을 맞이하겠다고, 그런 길을 가겠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모아서 죽지 않고 망하지 않는 기반을, 세계권내에서 평면적으로 섭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하나님은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아 가지고 책임수행을 하는 자리에서만 여러분이 앞으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영계와 육계를 연결시키는 데는 먼저 세계적인 신념의 자각, 통일적인 이념의 자각을 하고 난 다음 이것을 세계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수난의 길을 감수해 나가야 됩니다. 이렇게 하게 되면 영계와 육계가 자동적으로 하나되고 여기서부터 통일이 벌어집니다. 통일의 길을 가는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해서 여러분은 앞으로 책임자로서 일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여러분은 자신의 사명을 완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9-285
기 도
아버님, 땅에 있는 인간으로서 아버지의 사정을 알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스스로 체휼하기 위해 그 내용을 추구하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없사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자기가 구원받기 위하여 속죄할 수 있는 한 날을 위하여 몸부림쳤사오나, 아버지를 믿겠다고 몸부림친 사람이 없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죄인같이 불쌍하더라도,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보다도 천륜의 소원을 위하여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시련 도상에 서서 아버지 앞에 회개하게 될 때, 그를 따라갈 자가 없는 것이요, 그를 제거할 수 있는 악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추구하여야 할 자리는 이 세계 도상을 넘을 수 있는 자리이며, 그 자리가 바로 이 자리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1970년대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운세 시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제물을 쪼개야 할 결정적 시점인 1970년대를 향하여 지금 출발하였습니다. 제물을 쪼개야 하는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오늘 통일교회에는 남북한에 맺혀진 모든 원한을 다시 쪼개야 할 제사장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아시아를 쪼개야 할 책임이, 아시아 전체를 세계 전체와 연결시켜야 할`책임이 우리 통일교단에 있음을 절감하옵니다. 그리하여 일본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이것을 예상하여 말한 것이 그대로 지금 흘러가고 있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한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동맹국이 되어서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하기 위해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서지 않으면 안 될 줄 아오며, 그렇게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적 기준의 한 시점에서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내세울 수 있어야겠사옵니다. 또한 이제는 그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하오니 아버님이여, 이제 4월부터는 저희들에게 그럴 수 있는 고개를 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해가 가기 전에 그럴 수 있는 때가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섭리역사에서의 아버지의 수고를 안 자로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실전도상에서 어떻게 되도 좋다 할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 호소한 사정을 당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원하였던 당신과 하나될 수 있는 그 자리가 이제 마련될 수 있는 환경에 접어들었사옵니다.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했기 때문에 천국을 모시기 전에 아버지를 모셔야 할 것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아버지요, 아버지는 나이십니다’ 할 수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렇게만 되면 내가 맞는 것은 아버지가 맞는 것이요, 내가 서러운 것은 아버지가 서러운 것이요, 내가 분하고 원통한 것은 아버지가 분하고 원통한 것임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님의 소원을 걸고 몸부림칠 때, 저희들이 불쌍한 자리에 들어선 것은 형님을 구하기 위한 입장에 선 것이며, 저희들이 여기에서 아버지 앞에 애걸하는 것은 가인이 아벨을 때려 죽인 것을 사탄세계에서 탕감복귀할 수 있는 일인 것을 아옵니다. 그러면서 원수를 갚기 위하여는 총칼로써 복수해야 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당신의 아들을 보게 될 때, 사탄세계는 굴복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이 길을 가려고 합니다.

어제까지 저희들은 몰리는 자리에서 체휼하고, 몰리는 자리에서 의붓 자식의 취급을 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 열 한 형제 앞에 배척 받아 팔려가던 요셉의 심정을 물려받지 못하였던 저희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을 가산을 탕진한 탕자가 아니라 가산을 보호한 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히려 탕자를 대신하여 탕자의 서러움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몰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고향을 흠모하면서 형제들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희생하는 자들의 신변을 위해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될 때, 그 앞에 하늘 전부가 엉클어지고 통일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야곱은 21년 동안 홀로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의 신세가 되었어도 고향에 있는 자기 아버지와 자기 형제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기도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가 되었던 것을 아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였지만 하늘의 소망의 가정이 그와 같이하였고, 소망의 민족이 같이하였기에 소망의 기쁨과 소망의 결의 또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복귀섭리라는 거룩한 뜻을 받들 수 있는 기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 통일의 무리들이 여기 모였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가겠습니다. 이제 영계를 중심삼은 아버지를 모셔 드리겠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참부모님의 인연을 알았으니 저희들은 마음속에 꼭 모셔들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한 모습으로서, 원칙적인 당신의 아들로서, 어떠한 제물보다도 더 귀한 제물을 가진 권내에 서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피해 가며 위로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할진대, 내 몸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기더라도 다시 갈 수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럴 수 있는 개체가 되지 않고는 영계와 육계, 땅과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에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더 나아가서 보다 큰 환경의 싸움터를 거쳐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혹은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정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더 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마음이 있지 않고는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6천년 동안 아버지가 아담 해와라는 한 개체를 찾아 나온 것은 그것으로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연고가 아니었습니까? 천상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의 애혼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무리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당신의 거룩한 사명이요 소망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계를 넘어선 승리의 한 터전을 세계권내의 모든 사람이 같이 취할 수 있는 날이 와야만 천상세계의 복귀와 지상세계의 복귀는 물론이요, 원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철두철미하게 세계를 사랑할 수 있고, 세계의 어디에도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을 붙들고 싸워 오던 통일교회의 무리지만 능히 세계를 붙들고 세계를 위해 싸우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저희가 눈물을 흘려도 세계 인류를 위하여 흘리게 허락하여 주옵고, 저희가 대한민국의 한 아들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심정을 가지고 설 수 있는 내 개체도 되고 후손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들을 고생시키고 저희들이 걸어 나왔다면 이것은 천륜이 아닌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벨은 형님을 구해야 할 입장이온데, 이런 역사적인 형님의 입장에 있는 가인의 무리가 오늘날 세계의 수십 억 인류가 아닙니까? 이들을 앞에 놓고 저희들은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승리한 그날에 있어서 세계 수십억 인류의 생명의 가치를 내일대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취급하실 것이오니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많은 것들을 위하여 한 개체를 희생시키는 것이 복귀의 제물이 되는 조건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가 당하는 고통은 세계를 위해 당하는 고통으로써, 이렇게 인류와 더불어 아버지 앞에 감사할 내용을 남겨야만 만민이 저희 앞에 천년 만년 머리 숙이고 감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도상에 있어서 역로의 한 날을 맞게 되는 배은망덕한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한 내가 되지 않겠다고 몸부림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입장에 서는 자가 되어 서는 안 되겠다고 몸부림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을 모시고 두 세계를 품고 이념적 통일세계를 찾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굶주린 자에게는 응당히 먹어야 할 것이요, 헐벗은 자에게는 응당히 입혀야 할 것이요, 처마 끝에서 잠자는 자에게는 응당히 편안히 잘 곳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한스러운 사연을 당하는 것도 응당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잃어버린 세계와, 잃어버린 국가와, 잃어버린 가정과, 잃어버린 개인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 혼자서는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마음만은 살아 남을 수 있는 인연을 붙들고 죽음을 각오 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쓰러지더라도 세계는 쓰러져서는 안 되는 것이요, 나는 망하더라도 세계는 망해서는 안 된다는 통일사관을 지닐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것이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을 망하게 해 가지고 자기 일가를 지탱하기 위한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 아닌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나라를 망하게 해 가지고 개인을 살리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사상이 아닌 것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까지 팔아서라도 세계를 찾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세계를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이들이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바라시는 입장에 서서 세계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서러운 민족을 두고 볼 때, 끝에서 끝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오니, 그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무리들이 많아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세계의 인종을 초월해서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야 할 소원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여기에 저희들 마음과 몸을 바쳐 충효의 도리를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수련기간을 통하여서 저희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와 더불어 살고, 세계와 더불어 죽고, 세계와 더불어 말하고, 세계와 더불어 일하고, 세계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엄청난 책임이옵니까? 세계 전체의 적에게 제 몸을 갈래갈래 찢어 놓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환경권내에서 저희들이 해야 되겠고, 그것이 세계를 대신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일이 세계역사가 전환되는 이때에 개인으로서는 지탱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오나, 이러한 개인이 되어 남긴 실적이 세계의 역사를 빛낼 수 있는 하나의 빛의 조건을 남기는 줄 아오니, 그것을 위하여 가는 저희들의 걸음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날을 위하여, 그 걸음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게 하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리면서 남아진 이 기간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정성을 다들임으로써 영계와 육계와 저희들을 보내 놓고 염려하는 식구들 앞에, 이 기간을 보람 있는 한 기간으로 남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돌아가서는 옛날의 이 그 지구장, 그 지역장이 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다시 옛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지 말고 새로운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새로운 남편이 되어서 하늘 가정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이번에 복귀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 세계를 향해 저희들이 가야 되겠사옵니다. 30억 인류가 저희를 부르고 있는 소리를 들으면서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