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28 to 29-256: 하늘과 현실

하늘과 현실
1970.03.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29-228
하늘과 현실
[기 도]

아버지, 2천년 전 예수님이 유대교인과 인연을 맺어 가지고 세워야 했던 것을 오늘날 저희들이 종결 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은 3월 들어 두 번째 맞는 안식일이오니,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당신이 사랑의 마음으로 저희와 같이 하시어서 당신께서 저희들의 생애노정을 친히 지켜 주신다는 것과, 저희들 또한 당신께서 소망하는 세계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저희 자신들과 가정, 국가, 세계, 그리고 천주가 어떠한 것인가를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관념적으로만 알아 가지고는 아버지와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저희 자신들은 가정 국가 세계를 중심삼고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떠한 인연 가운데서 횡적인 무대를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 저희들이 동기가 되든가 당신이 동기가 되든가 둘 중의 하나의 인연을 갖추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당신이 바라시는 좋은 결과의 세계까지 갈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 자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될 때,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불리워 세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당신의 마음에 일치될 수 있고, 당신의 심정에 영원히 동반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추구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추구하게 될 때, 저희들은 악에서 출발한 자신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흔적을 제거해 주시어서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몸과, 당신의 생활과, 당신의 이상에 일치할 수 있는 내용을 이 시간 저희 자신 가운데서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속된 세상의 마음이 변하여 그와 같은 내용에 일치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필요로 하는 선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실체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를 맞이하여 저희들은 `승리적 통일전선’이란 표제를 내걸고 각자 걸어가고 있습니다. 70일에 가까운 기간을 지내 온 지금 저희들이 어떤 곳을 향하여 출발했고, 어떤 걸음을 걸어 왔는가를 다시 한번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옮겨 놓는 발걸음과 저희가 하는 일들이 아버지께서 목표하신 방향과 기준에 일치되는가를 스스로 반문하고 분별하게 하시어서 자신이 그렇지 못한 자리에 있게 될 때는 당신께서 저희들을 쳐몰아서라도 반드시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방향과 기준에 일치될 수 있고 직행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나간 360일이란 기간을 통하여 저희들이 어떤 결과의 길을 거치고 왔는가를 돌아보며 낙심하는 마음보다도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만천하에 당신께서 소원하시던 그 기준을 갖추었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자리는 수고로운 자리가 아니라 기쁜 자리요, 영광의 자리가 되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자리는 자기의 생각 없이 우연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목적하는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으로 다짐하고, 생활로 다짐하고, 환경으로 다짐해야 하겠으며, 원수와 투쟁하여 승리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서야 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목적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존엄하신 아버지께서 그 능력과 권한으로 저희와 같이하고자 하더라도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과 일치가 되지 않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 새로운 자극을 일으킬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지 않고는 아버지와 함께할 수 없사오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세계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고 당신과 얼마나 동반했고 얼마나 동행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악한 자체로 태어난 자신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시간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하늘이 저희에게 `언제 나와 관계를 맺었으며, 언제 나를 모셨고, 언제 내가 섭리 해 나가는 데 동행하고 봉사했느냐’ 를 묻게 될 때, 저희들은 회개하는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다시 한번 용납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부족한 각자의 모습임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 역사과정을 통하여 오늘 이 모임에 찾아오신 당신이라 할진대 당신께서는 진정 불쌍하신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또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당신께서 저희에게 모든 전체를 의탁할 수 없는 자신들이요, 당신께서 저희에게 바라시는 소망의 기점을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되기 위한 아무런 무엇도 갖지 못한 자신들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앞에 민망한 모습들인 것을 다시 한번 직고해야만 되겠습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부족하였던 선조들을 대해 참아 나오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 또한 한 시간을 기쁨과 영광으로 맞을 수 없고, 하루 한날도 기쁨의 자세를 갖추고 아버지 앞에 승리적인 자극을 일으킬 수 없는 자신이 된 것을 무한히 통탄할 줄 아는 자신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고 체면이 없고 위신을 세울 수 없는 모습들임을 느끼게 될 때, 체면과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수고해 나오신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한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자신을 붙들고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새로이 결의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겠고, 통곡이라도 하면서 저희들을 버리지 마시고 동행해 달라고 간구해야 되겠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은 그러한 입장에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속에 찾아오시옵소서. 저희들, 아버지를 흠모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의 터를 갖추고 있지 않사옵니까? 이제 저희들은 마음에 아버지를 모시고도 돌아서는 슬픈 자세를 갖게 될까 봐 두려워해야 되겠습니다.

진정한 의미로 아버지를 모시고 온갖 충성을 다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습니까? 무한한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용서로써 그들을 축복의 은사권내에 품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높고 귀하신 사랑과 마음을 무한히 느낄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면서 남기신 그 뜻을 위해 싸움터를 향하여 달려가는 용사, 자기의 모든 전체를 무한히 투입해서 싸움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용사가 있사옵니까? 아버지, 그들을 지켜 주시사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로서 축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거룩한 제단에서 뭇 생명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직책을 짊어진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습니까? 또한 남이 자는 시간에 정성을 들이고, 남이 즐기는 시간에 고난의 노정을 가고 수난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 길을 자기가 가야 할 길로 알고 민족과 인류의 배후에서 제단의 터전을 넓혀 나오기 위해 남이 모르는 가운데서 수많은 수난에 부딪혀 나온 당신의 아들딸이 있습니까? 아버지,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세상의 뿌리이며 그 뿌리의 영향을 받아 세계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오히려 누가 알아주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시옵소서. 당신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는 이와 같은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남이 모르는 가운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당신의 제단을 지키고 있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 누구를 믿기 위해 나온 무리들이 아니옵니다. 그 어떤 사람을 따라가는 무리들도 아니옵니다. 오직 아버지와의 인연과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무리이옵고,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 바쳐지기를 각오한 무리이오니 이런 저희의 몸 마음들을 받아 주시옵소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대로 적진을 향하여 진군할 수 있는 결의가 저희 각자의 마음에 솟구치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을 격려하시어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주체가 완전하게 될 때는 대상도 반드시 완전한 기준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 아니었습니까? 아버지께서 주체가 되시고 저희는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아무리 사탄의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강한 주체적 권한으로 저희의 심정을 아버지와 일체화시키시옵소서. 그리하여 남한 각지의 모든 식구들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삼천만 민족의 해원성사를 이루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보잘것없는 소수의 통일교인들이 이미 수십개 국가에 파견되어 당신의 뜻을 위해 몸부림치고 개척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제물된 노정을 걸으면서 밤낮으로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사오니, 아버지여, 부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옵고, 권고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자비의 은사가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사람을 흠모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를 흠모하는 자요, 이 고을을 흠모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를 흠모하는 자라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이 민족을 위하여 충성할 때에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승리적인 아들딸들을 위하여 충성하는 모습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이런 아들딸들이 외로울 때 흘리는 눈물을 씻어 주시는 위로의 주인이 되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무한히 외로운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남모르는 가운데에 있는 적적한 그들과 언제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에게 내일의 소망을 다짐하면서 어려운 하루하루의 생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시어 부디 그들이 아버지 앞에 찬양받을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혹 그들이 아버지의 뜻 앞에 협조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슬프게 하여 그 나라와 그 민족 앞에 남길 수 있는 무리가 못 된다고 생각될 때에도 그들과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은사와 아버지의 역사, 그리고 아버지의 은혜로 그들의 생활환경을 지켜 주시옵고,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은 지금까지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를 돕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이들이 가는 길이 세계 인류를 해방하기 위한 길이기에 오늘 여기에서 끝낼 수 없는 당신의 처지와 입장이 있는 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당신은 언제나 가야만 할 당신이요, 싸움해 나와야 할 당신이요, 개척해야 할 당신이요, 싸움해 나와야 할 당신이요, 개척해야 할 당신이기에 언제나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또한 불쌍한 스승을 따르는, 처처에 널려 있는 외로운 무리들을 지키시옵고, 권고하시옵고, 그들의 몸 마음에 천 배 만 배 당신의 심정이 넘쳐 흐르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무한한 은사에 잠기고 말씀에 동화되어 당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하시옵소서. 본연의 심장이 폭발될 수 있는 당신의 적극적인 주관의 역사가 같이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앞으로 세계 처처에 보내시어서 소망의 한날을 이루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의 해방과 더불어 시대의 해방을 이루어 제3이스라엘의 특권적인 승리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는 그 나라가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질 그때를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천국이 되기를 바라기 전에 천국이 이루어질 그때를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천국이 되기를 바라기 전에 천국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각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대하여 호소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충성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후대에 남길 수 있는 복귀의 터전을 아버지 앞에 자랑하며 그것을 유럽으로 남겨 주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사오니 이것을 염려하고 사는 길에서 그들이 빚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도 먼 거리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곳을 찾아 왔사옵니다. 수많은 나라의 국경을 넘으면서 그리운 고국을 찾아왔으니, 부디 그들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하여 오늘의 보람과 내일의 소망을 갖출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돌아가더라도 다시 올 수 있는 그날을 친히 당겨 주시옵소서. 또 물심양면으로 수고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 배 만 배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도 복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한 달, 이 한 해가 복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70년대가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통일의 깃발을 들고 가는 행렬에서 행군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함성을 천지에 드높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당시께서 찾고 싶은 민족이 있사오면 저희들을 보내 주시옵고, 부르고 싶은 아들딸이 있사오면 저희들을 보내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소원을 어서 속히 성취하시어서 천세 만세 영광 받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품으시어 자녀의 나라를 따로 세워 주셨음을 감사드리옵니다. 거기에 축복의 자녀는 축복 자녀로서 기쁨을 느껴야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축복의 주인으로 군림하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때와 남아진 시간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고 수많은 인간의 영혼들이 저희들을 찾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저희의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거룩하게 바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이 아침과 하루를 지켜 주시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간곡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29-234
말 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물론 그 명사는 알고 있겠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 현실이라고 하면 우리가 이 가운데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부딪히는 모든 인연과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자신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자극은 누구나 다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인간들이 계획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중요시해야 할 것이 현실입니다. 승패의 경정도 현실에서 되어지는 것이요, 새로운 결의나 희망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뜻도 현실을 무시하고는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9-235
뜻과 현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 자체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면 그 뜻은 오늘날 우리 인간과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뜻은 현실적인 인간들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이루어야 할 뜻이기에 하나님은 현실 무대에 살고 있는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연이어져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날이 되고, 날이 지남에 따라 달이 되고, 달이 지남에 따라 해가 되고, 해가 지남에 따라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과거를 두고 보더라도 그 과거는 어느 한때의 현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직선상에서 볼 때 미래도 앞으로 올 수 있는 현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과거나 현재, 또한 미래에 있어서도 역시 현실적인 기준을 연결시켜야만 모든 인연이나 관계가 결정되고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아무리 절대자이시며 권한이 많으신 분이라 하더라도 이 땅과 더불어 관계가 있고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 인연은 반드시 현실적인 시간 과정과 관계 맺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생활과 하나님의 뜻, 수습해야 할 세계 정세, 대한만국이 바라는 정책, 혹은 수많은 국가의 위정자들이 해야 할 세계적인 정책 등, 이 모든 것이 현실의 과정을 중심삼고 결정되지 않고는 새로운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흠모를 받은 위인이나 종교의 지도자, 혹은 사상적인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어는 한 때 소망을 중심삼고 현실의 과정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그들이 소망하거나 추구하던 목적을 성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지도자가 현실과 더불어 인연을 갖출 수 있는 내용을 얼마나 잘 맺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 내용이 결정되고 그 관계와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9-236
책임의 크기와 탕감조건
그러면 이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는 누구냐? 현실에 살고 있는 인간입니다.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에 자신이 아무리 못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자신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현실적인 기점입니다. 자신이 하나의 기점이 되어 역사가 연결되고 섭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두고 볼 때, 이것이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섭리의 뜻은 반드시 어떤 초점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무대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적인 무대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점점 발전해 나가느냐? 발전해 나가려면 수많은 현실적인 조건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사람이 되고, 이 하나의 사람이 초점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맺은 전부가 현실에서 관계를 맺게 되어 역사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이와 같은 입장에 선 여러분들은 하나의 현실적인 존재로서 뜻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하며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 관계는 높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으로 보면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라는 엄청난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귀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생활무대에서 관계를 맺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탕감복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대가의 비중이 얼마나 크고 작으냐에 따라 현실의 자기를 중심삼고 뜻의 비중이 얼마나 크게 관계 맺어지느냐 작게 관계 맺어지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어떤 개인을 보더라도 자신이 중요하게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위대하고 큰 사람이 되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에서 얼마만한 내용을 연결시키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 사람이 얼마만큼 큰 역사적인 인물이 되고 섭리도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그 개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국가에 관계를 맺고 있느냐 세계에 관계를 맺고 있느냐의 차이에 따라 그 개체의 존재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 관계가 넓으면 넓을수록 그에 비례하는 탕감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인물은 국가가 탕감조건을 제시하기 이전에 그 국가를 대신하여 탕감조건을 들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가정이면 가정 전체가 탕감조건을 제시하기 전에 그 가정을 대표하여 탕감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그 가정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의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세계 자체가 탕감조건을 제시하기 전에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탕감조건을 제시하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세계가 탕감복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오시는 주님이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다시 말해서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현실무대에서 세계를 구하기 전에 그분이 행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현실과정에서 세계 이상을 대표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이 현실세계와 인연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크나큰 세계적인 내용을 갖고 있고, 책임을 수행할 사명을 갖고 왔다 하더라도 그 사명의 출발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탕감시키기 위하여 오시는 그분에게는 세계 자체를 탕감시키기 전에 자기 자신이 세계적 탕감의 내용을 홀로 짊어지고 탕감을 시켜줄 수 있는 주체성을 어떻게 확대하느냐 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29-238
뜻을 이루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가 이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고 세계의 해방을 부르짖기 전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이 민족 자체에 대한 탕감의 내용을 통일교회 자체가 짊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회의 한 교인으로서 통일교회를 끌고 나가고 통일교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국가면 국가가 탕감조건을 제시하기 전에, 교회면 교회가 탕감조건을 제시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그 탕감조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뜻과 더불어 하나되어 앞으로 세계를 구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구하려는 자리는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정상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니 현재의 비정상적인 자리에서 정상적인 자리를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모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부흥회를 부르짖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중진국가나 선진국가의 수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막대한 경제적인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수준에 올라가려면 그에 비례하여 탕감의 조건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입장에서 불가피한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자체가 세계를 위해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문제냐? 삼천만 민중 개개인이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세계로 갈 수 있는 탕감조건을 어떻게 제시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크나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탕감복귀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탕감복귀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전체를 위하여 탕감시킬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니고 계신 분이기에 주체적인 입장에서 땅 위에 상대적인 탕감역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국가와 민족을 해방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할진대는 국가와 민족이 탕감조건을 제시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들이 국가와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느냐? 이것이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 앞에서 축복을 받고 싶고, 사랑을 받고 싶고, 훗날 후손들로부터 영광의 한날을 맞이했던 선조라고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이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고 있는 현실적 환경을 그냥 그대로 탕감의 내용으로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냉철히 비판하지 않을 수 없고, 분석하지 않을 수 없고, 결단 짓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운명을 짊어지고 가야 할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현실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심각한 자리에 들어가야 되느냐? 하나님 대신 오늘날 이 죄악의 세상을 탕감복귀해야 하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비록 하나님과 우리가 주체와 대상으로 입장은 서로 다를는지 모르지만 그 감정에 있어서는 동반할 수 있는 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의 뜻을 추진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간곡한 사정과 뜻과 하나되어 최일선에 서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된 때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순간순간을 거쳐서 만천하에 들고 나와 자랑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할진대는 이념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입장에서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현실 문제를 중심삼고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주류된 입장에 서서 이것을 해결짓기 위해서 시대에 따라 사람을 투입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투입된 사람들이 현실무대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해결기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을 두고 보면 그는 에서에게서 축복을 빼앗고 하란 광야에서 21년 동안을 생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거기에 머무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발전했느냐?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21년 동안 현실무대를 돌고 돌다가 가야 할 방향을 찾고 에서를 굴복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점을 갖추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비로소 승리한 이스라엘 민족의 권한이 출발된 것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29-240
현실적인 가치를 지녀야 할 나
이런 것을 미루어 볼 때, 하늘의 뜻을 대하는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도 불가피하게 현실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결정지어야 할 각자의 운명이 지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시간과 순간을 중심삼고 연결됩니다. 그러니 똑딱하는 순간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체험했겠지만 은혜는 똑딱하는 순간에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전등을 두고 말하게 된다면 이것은 청평의 발전소에서 인연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연되기 위해서는 물의 낙차로 터어빈을 돌려 발전기가 돌아감으로써 발생한 전기가 송전소를 통해 여기까지 들어오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여기까지 들어와서 접촉되는 것은 현실입니다. 스위치를 켜는 순간 불이 반짝하는데 이 순간이 전기로서의 최종의 결과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기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과정이 없다면 우리 인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인데, 스위치를 누르는 그 순간 비로소 현실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인간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발전소와 같다면, 중간과정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직접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중간 과정이 필요한 것 같이 영계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협조를 해야 여러분의 마음과 몸에 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직접 접선시키느냐? 누군가가 뜻과 더불어 접선시켜 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현실적 입장에서 연결되게 될 때에는 뜻과 더불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염려해야 합니다. 은혜는 자기를 염려할 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뜻에 일치되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해 나온 기준과 뜻에 일체가 되어 강한 힘으로 현실에 부딪히게 되면 여기에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이 걸어 나온 생애노정을 전부 다 청산 짓더라도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믿고 나온 기간만은 잊을 수 없어야 합니다. 영원히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한 때는 자기를 중심삼은 기간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수년 동안 뜻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엄벙덤벙한다면 세월을 따라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미 가 버린 세월은 다시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심각하게 뜻을 파고 들어가 흘러간 세월을 도로 가지고 와야 되겠다고 하는 입장에 서 보았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에서 시간적으로 얼마나 뜻을 중심삼은 생활을 해보았으며, 얼마나 뜻을 현실화시켜 생활해 나갔으며, 얼마나 뜻의 필요성을 느끼며 이것을 추진해 나갔느냐를 생각해 볼 때, 과연 내가 그런 시간을 몇 시간이나 가져 보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생명과 더불어 뒤넘어치는 한때가 필요한데, 자기의 오관이나 이목구비를 통해 느껴지는 모든 감각이나 직관, 혹은 관념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이 순간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얼마나 가져 보았습니까?

여러분들 중 은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보이는 모든 만물이 옛날과는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같은 것인데도 아침에 보아도 새로운 것이요, 저녁에 보아도 새로운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거기에 하늘의 은사가 물결쳐서 접선되게 될 때에는 입체적인 신비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자아를 자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한 석가모니의 말처럼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기의 고귀성을 찬양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순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뜻을 따라 나온 여러분들 가운데 과거의 생활을 회고해 보며 그때가 좋았다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과거가 좋아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통일교회에서 오래된 사람들 중에는 60년대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무엇이 좋았습니까?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환경을 중심삼고는 좋지 못했던 것입니다. 좋다는 것은 개인의 특정한 한계권내에서 좋은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입장에서 전체가 하나된 관계를 지닌 자리에서 좋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만 좋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영원한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지 않은 환경이 온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하여 학박사의 학위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학위 자체가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입장에서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어떻게 지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과거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어느 한때 그럴 수 있는 순간을 가졌습니까? 그럴 수 있는 순간이 연결 되지 않고는 현실에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루는 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루의 기쁨이라는 것은 순간의 어떤 인연에 부딪혀서 그 인연과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오는 것입니다. 혼자 있는데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대기준을 중심삼고 맞부딪쳐서 안팎과 상하가 서로 바꾸어질 수 있고, 서로가 도울 수 있는 자리에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어느 한 때에 현실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그 현실적 내용 가운데에는 개인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요, 가정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요, 국가, 세계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 위에 서야 하나님께서 개재하시는 것입니다.

29-243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오늘날까지 이 지상에 왜 천국이 이루어지지 못했느냐? 여기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현실무대를 영원히 이끌고 갈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없었기 때문이며, 그럴 수 있는 하나의 민족과 국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이룰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대한민국이 영원히 서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사람이 있어야 하며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자체내에 역량이 있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역량을 자체내에 보유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 처해 있는 여러분 자체를 중심삼고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있는 여러분 개개인과 함께할 수 없느냐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순간을 통하여 역사적인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순간만 없어지면 모든 것은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세상만사가 그렇습니다. 만났다 헤어지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원통해지는 것입니다. 슬픔을 자아내는 자극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의 기준이 바라는 것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우리는 영원을 중심삼고 사랑을 추구하고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한 행복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주체이십니다. 그러면 대상으로서의 여러분들은 이 땅위에서 영원한 존재와 더불어 현실을 넘어갈 수 있는 개체가 되어 있습니까? 그럴 수 있는 개인, 그럴 수 있는 가정이 있게 되면 그 개인과 그 가정은 영원한 역사를 거쳐서 그런 관념을 가진 민족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요, 그 민족은 그런 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그러한 관념과 사상으로 일치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정통일, 말씀통일, 행동통일, 이념통일의 문제는 천년 전의 통일교회 사람이나 천년 후의 통일교회 사람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지닌 바의 내용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성을 초월하여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의가 주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현실을 언제나 리드해 나가면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바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실 것이냐? 여러분 자신이 현실에 있어서 영원토록 유지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은 생활권내에서 그 관계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개재할 수 있는 환경을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어진 그 가치는 소모가 되어 보급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뿌린 씨가 싹이 나와 열매를 맺어 가지고 번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핵심적인 기쁨의 자극을 통해 환경권내의 모든 여건을 흡수하여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보고 떠나라고 해도 떠나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발전적인 요인을 거쳐 가지고 시간과 현실적 무대를 타개해 나간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품에 들어옵니다. 또, 들어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현이 가는 길은 따로 있습니다. 충신이 가는 길이나 효자, 열녀들이 가는 길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닙니다. 수단과 방법만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성현의 길은 하나님을 일심일체로써 모시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또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이나 어느 환경이라도, 아무리 현실적 내용을 지닌 순간이라도 일체된 마음을 가지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려면 국가의 주권을 중심삼고 국민이 문의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런 주체성을 가진 국민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주체성을 가진 국민은 그 나라를 퇴보시키는 국민밖에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먼저 세움 받은 아담은 성인(聖人)이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성인(成人)이 아니라 성인(聖人)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는 하나님을 군왕으로 모셔야 하며, 가까이로 볼 때는 어버이로 모셔야 합니다. 또한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는 신부의 입장에서 신랑으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29-245
성현지도(聖賢之道)를 가야 할 인간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하늘을 중심삼고, 충신은 군왕을 중심삼고, 효자는 부모를 중심삼고 일체의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충, 효, 열이란 이름도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동반하기 위해서는 의(義)를 통과해야 합니다.

의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군신이 군왕에게 미래의 계획을 세워 가지고 와서 이렇게 하겠다고 할 때, 군왕은 그것이 자기의 마음에 맞더라도 `오냐 그렇게 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 동기는 주체인 군왕이 되어야 합니다. 공산 국가에 있어서, 특히 북괴를 보더라도 그 측근자를 전부 숙청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자기보다 앞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인 권한을 새로운 각도에서 가지고 나오기 전에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천리 원칙을 두고 볼 때도 반드시 주체적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관계를 맺어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발전시키는 데는 주체를 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주체가 악당일 때에는 그 세상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입장에서 모순이 발생하면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져 가지고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절대적인 중심이 있다 할진대는 이분과 하나되면 선의 주체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은 보호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통일된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양심이 바르다는 것은 가다가 꼬부라지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관철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은 목적이 둘로 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하나라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앞에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뚫고 넘어갑니다. 환경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의 반열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롭고 어려운 환경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명으로 알고 타개해야 합니다. 운명으로 알고 타개하는 사람보다는 사명으로 알고 타개하는 사람이 그 시대의 개척자가 되고 역사적인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팔자가 이렇게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수행할 책임을 사명으로 알고 소화시킬 수 있는 자만이 그 시대의 개척자가 되고 역사적인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왜 우리와 같이하시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현실적인 나를 부러워하시는지, 또 나를 떠나서는 앞으로 찾고자 하시는 가정, 국가, 세계와 관계 맺지 못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 내 자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순간을 기준삼고 하늘과 인연 맺었다 하더라도 그 순간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시간을 가해 가지고 날을, 날을 가해 가지고 달을, 달을 가해 가지고 해를 거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국가를 거쳐 세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성현이 가는 길이 그러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성현지도(聖賢之道)를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국가 자체가 탕감조건을 세워 제시하기 전에 개인으로서 국가를 대신하여 탕감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체성을 지니고 민족 국가를 영원히 이끌고 갈 수 있는 조건을 현실적으로 제시하고 증거해 가지고 그것이 만민의 행복이 될 수 있고, 만민의 기원이 될 수 있고, 승리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보여 주는 데는 막연하게 미래에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탕감, 탕감을 해야 합니다. 탕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하여 탕감조건을 세우려거든 국가를 대신해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탕감조건을 세우려거든 교회의 모든 수난을 책임져야 합니다. 제물되는 자리는 수난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사람이 제물이 되면 소나 양이 제물되는 것은 비교도 안 됩니다. 사람이 최고의 수난의 대가로 생명을 걸고 피를 흘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역사의 과정에 남아질 수 있는 발전의 요인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29-247
받고자 하는 자와 주고자 하는 자
지금까지 이 세계의 역사는 전생사로 엮어져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민족과 민족이 전쟁을 함으로 말미암아 과연 퇴보만 했느냐?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망하는 것 같지만 전쟁으로 말미암아 한편으로는 새로운 각도에서 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통일교회는 사상계나 종교계의 새로운 분야에서 투쟁의 조건을 제시한 것입니다. 인간은 보다 귀할 수 있는 현세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데 그 현세가 우리로 말미암아 증거되었다 할진대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문제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수가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한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정책을 좌우하고 있는 사람은 30여명 이내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역사를 움직여 온 사람은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어요? 예수 믿고 천당 가자구요? 천만예요. 그래 가지고는 천당 못 갑니다. 기독교인들은 `나는 어려운 것을 다 그만두겠으니 당신이 어려운 것을 책임져 주시오’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좋아하신다면 천리가 틀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지요? 기독교인들은 `복은 내가 받고 화는 당신이 받으시오’ 한다는 거예요.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의 인격자라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거나 무엇을 한다고 할 때 서로가 협력하면 이익을 보는 겁니다. 그런데 물건을 나누는 데에 있어서 하나가 남았다고 할 때 서로가 가져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은 것의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 물건을 가지려는 사람의 인격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것을 서로 갖겠다고 싸움을 하게 될 때는 제 3자에게 부탁하여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한 사람이 `나는 양보하겠소’ 하게 될 때 갖는 사람은 지는 것이요, 갖지 않는 사람은 이기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이 보다 인격자냐? 양보하는 쪽이 인격자입니다. 둘 다 인격자라면 서로 갖지 않겠다고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도리가 민족 앞에서 벌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 합동적인 공사를 한다면 `나는 복을 갖겠으니 당신은 수고하시오’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수고를 덜 수 있다면 비록 수고롭더라도 기꺼이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기성신앙은 끝날에는 다 망해야 합니다. 그들은 열매 없는 수확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남아 있다가도 기분 나빠 나갈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에 비해 너무 이익을 크게 보려 하면 다시는 그곳에 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시 본연의 자리를 회상하고 인간을 만나고 싶다 한다면 그 자리는 중요한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지 신(神)들이 붙었는지 항상 `주시옵소서’ 합니다. 주긴 뭘 줘요? 지금까지 죽이지 않고 남겨 놓은 것만 해도 죄송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원수의 자식이 아닙니까? 원수의 자식이 드리겠다니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원수의 자식인 인간이 천하의 대성인이 된다고 하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원수를 갚아야 할 입장에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수십 년이 지나면, 다시 말해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기간이 일 배, 이 배, 삼 배 지나가게 되면 복수심에 더 불탈 겁니다. 그 원수가 고통을 주던 그 이하로는 맺힌 것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원수의 입장에 있는 우리는 그를 위해 몇 배의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원수가 치려다가도 자기 상속분까지 넘겨 주는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이 세상에도 있지 않아요?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에서도 그런 얘기 가끔 나오지요? 여러분은 원수가 여러분을 당장 죽이려고 하다가도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넘겨 줄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야 합니다. 복귀역사가 바로 이렇게 흘려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납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전부다 원수의 자식들로 비겁하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나는 한번 죽고 싶으니 당신이 죽일 수 있으면 얼마든지 죽여 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나는 원수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당신의 한을 풀기위해 살겠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자고 사는 모든 것은 당신의 한을 풀기 위해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두 번 세 번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끔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길이요,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만 합니다. 복을 빼앗겠다는 것입니까? 복이 그렇게 좋고 그립다면 하나님의 복단지가 있는 비밀창고를 도끼로 부수고 가져 가라는 것입니다.

29-249
탕감법
우리는 신앙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 원수의 자식들입니다. 우리는 용납 받을 수 없는 원수의 자식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아야 합니다. 역사를 위해서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고 하늘땅을 대신하여 맞아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 안에 원수 사탄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일 복받는 길이 무엇이냐? 국가 세계는 그만 두더라도 앞으로 역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이냐? 원수가 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이 원수를 갚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원수가 미워하는 사람은 하늘편에 남기고 원수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탄편에 남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사탄이 하나님을 미워하니 하나님 대신 맞아야지요. 그래서 사탄이 옛날부터 쳐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가까운 사람이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말로 때립니다. 말로 때리는 매도 있지요? 말로 때리는 매로 때리고 난 후에도 안 통하면 그 다음에는 생명을 때립니다. 이것이 탕감법입니다. 매로 계속해서 때릴 때 `아이쿠’ 하며 넘어지는 날에는 부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안을 탕감시키기 위해 계획을 하여 그 가정의 대표적인 한 사람을 죽였다고 할 때, 너무 지나치게 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 서는 사람은 잘려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어디로 보내느냐? 사탄세계로 보냅니다. 적의 진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핍박을 받고 매를 맞으면 사탄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조건을 세우는 것이 되며, 또한 하늘편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천대받고 몰림받는 자리입니다. 억울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사랑해 주세요’ 하면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기 때문에 적진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아들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만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땅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상에서도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 부활하는 예수 앞에 사탄이 총칼을 들도 다시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못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사탄이 그런 도리에 걸려 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새로운 세계의 기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은 스스로 고생의 자리, 핍박의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원칙으로 세상을 대하여 인간에게 그 모두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지금 당장 이것을 소화하겠습니까?

원수를 치는 데 있어서 선생님과 여러분은 공동의 입장에 있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국가면 국가의 수많은 원수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혹은 기독교면 기독교의 수많은 구원하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고 그들에게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을 맺고 나오는 기간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좋은 기간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반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맞는 길을 가면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탕감시키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까지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마음 자세가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어떠한 사림이 되어야 하느냐? 하늘편에 서서 천주에 영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선생님처럼 원수에게 이익될 수 있는 작전을 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야만 둘 다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러한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29-251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
통일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기도할 때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 원수와 대결하는 최고의 자리와 우리의 현실적 기점은 어디냐? 이러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체험을 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제일 기본적인 자리, 최고로 현실적인 자리가 어디냐? 바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통치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이때에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늘의 노정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늘의 공식 법도를 달갑게 받아 소화시켜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것을 자체에서 완전히 소화시킨다면 절대자 앞에 가까운 자리에 설 것입니다. 그것을 얼마만큼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요인, 절대적인 요인을 갖데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선생님에게는 여러분을 세계로 내보내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늘의 전권대사가 되어 무엇이든지 똑똑히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밀사는 숨어서 속닥속닥하지만 전권대사는 꼭대기까지 몰리더라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배포가 있어야 합니다. 전권대사는 `너는 싫다’ 하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형편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 무슨 전권대사예요? 그런 전권대사는 목을 잘라도 별수없습니다. 천하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의 법도를 완전히 소화하는 전권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전권대사로서 어려운 환경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팔려 가더라도 하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진실한 전권대사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세계적으로 탕감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세계를 대표해서 탕감복귀를 해야 되겠습니다. 나라가 하기 전에 통일교회가 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이 나라를 살리기 전에 이 나라 역사를 탕감하고도 남을 수 있는 탕감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탕감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가 통일교회를 박대하더라도 여러분이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전권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를 부여안고 `여기가 참 좋구나. 내 아들아, 그러면 그렇지’라고 하실 수 있는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그러한 개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한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이 필요하고, 그런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이 필요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바로 그러한 환경에 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면 그러한 가정을 이루어 전통적인 종족과 국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눈물과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전부다 투입하여 종착역에서 생사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종족의 승패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지요?

60년대를 중심삼고 선생님은 민족을 대신해서 하나의 책임의식을 갖고 민족을 일체화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감정을 융화시키고 선악의 판가리를 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세계적 복귀가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하겠습니까? 문제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탄을 이 민족 앞에 머리숙이게 하여 감사히 여기게 하면 됩니다. 사탄이 머리를 숙여야 들이칠 수 있는 것입니다.

29-253
용서하고 축복하는 아벨의 신앙
여기서 주관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일념을 가진 실체가 국가와 세계의 주인이 되어 가지고 전체를 위해 그런 길을 간다고 할 때 세계복귀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주관권은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체가 어디에 있느냐?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70년대를 초현실적 기준에서 나아갈 때 1978년 8월 고비를 넘어가야 합니다. 현재 공산주의 국가를 물리칠 곳은 세계에서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는 이런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대해 `나는 이러하지만 당신들을 됐다’ 할 수 있게 감화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일일이 그들과 싸움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모든 문제점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통일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실에서 통일교회의 책임자가 되어 선생님을 팔아먹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 세상의 누구로부터 하라고 하는 권유를 받고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세상 사람들이 욕을 하고 선생님과 가까운 사람들을 전부다 끌고가 별의별 짓을 다 하더라도 `나는 하겠습니다. 내가 갈 길은 바쁩니다. 내가 해야 할 충효가 남아 있고, 내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천도의 인연으로 해결지어야 할 현실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역사의 시점이니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을 배반하는 수가 많다고 선생님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가는 노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상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라를 끌고 가는데,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데 이 나라 이 민족이 배반하게 되면 이 민족은 제일 불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나라가 반대하는 과정을 거쳐야 되기 때문에 내 개체 앞에 `대한민국의 백성과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세계의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의 민족을 대표하고, 세계의 가정을 대표하고, 세계의 만민을 대표한다’는 신념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탕감의 내용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죄를 벗을 수 없는 원수들이 하늘길 가는 내 앞에는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국가적인 원수가 나오기 전에 국가적인 메시아를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원수들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원수를 대할 때 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기성교인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우리들은 그들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수많은 가정들이 우리 통일교회의 가정들을 반대하더라도 우리의 가정들을 지키려면 그 가정들을 용서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반대를 해도 용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들을 축복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벨적인 존재로서 가인적인 그들을 축복해 주어야 됩니다. 야곱이 자기의 모든 것을 예물로 에서에게 바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들에게 모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질보다 생명이 귀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한민족을 중심삼고 나아가는데 원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잃으면 모든 것이 소용없는 것입니다.

일본을 복귀하기 전에 대한민국이 나를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여서 대한의 종족 혹은 민족을 연결하여 나라를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가정이 반대를 하고 종족과 민족이, 국가와 세계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반대하던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세계 앞에 우리의 뜻을 전파할 수 있는 때가 왔으니 통일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어떤 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통일교회의 운세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교회가 소원하고 나아가는 것은 좋은 내용이지요, 여러분이 사방에 있는 원수를 쓰러뜨리면서 나갈 수 있는 것은 전부다 하나님이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전체 앞에 나가야 합니다.

29-255
뜻을 이룰 때까지 현실에서 사명을 다하라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짐을 져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기에 대해 시상을 한다 할 때, 뜻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명을 바치지 않은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자리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던 자들은 나라를 잃었고 우리는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생사의 가름길에서 그럴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아담이 가인과 아벨 자체에서 갖지 못한 것을 국가와 민족을 통해서 가질 것입니다. 아담이 그 씨를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과 국가를 통해 뿌렸기 때문에 그것을 거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거둘 때가 온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70년대는 통일교회의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 즉 여러분이 준비하고 정성들이고 엮어 온 모든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시니 후대에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협조해서 쉬어갈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제는 사탄도 우리를 밀어 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은 새로운 목적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인간이 탕감고개를 넘지 못하도록 하여 인류역사를 끌고 나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은 인류가 탕감권을 넘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목적은 새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새로 맞을 수 있는 목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천국 이론이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적인 생활무대에서 이러한 것을 준비해야 하니 여러분은 그러기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반대했던 무리들 가운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 교회에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궁중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의 1세는 망했지만 2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문제는 후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현실적인 사명을 지니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는 누구든지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나무로 보게 되면, 겨울이 되어 잎이 다 떨어져도 재봉춘하게 될 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 남포 사람들이 선생님을 따라 나오다 한 고비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면 그들은 탕감복귀란 말에 질렸는가 봅니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뒤돌아보지 않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그 사람들보다 부모의 심정을 가진 여러분이 나으면 나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보다 더 나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원한 하나님이 세우신 현실적인 부모를 중심삼고 영원한 인연을 남길 수 있는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영원한 세계가 나왔으니 그 개인이 나타날 때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모든 것을 수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가족 가운데 영원히 하나님과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 가족을 도와 줄 것입니다. 그러면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고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여기에 있을진대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왔던 모르고 왔던 현실적인 이 세계의 기반 위에 지상 천국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9-256
기 도
아버지, 저희들이 가는 길이 험하다 하더라도 그 길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가 가는 길 앞에서 몰아치던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불쌍한 아버지였음을 저희들은 이제 와서 알았습니다. 저희들을 사랑하시기에 그리하셨던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버지, 통일교단이 이 제단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연이 많았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실들이 많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옵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저희들이 이 생활권내에서 아버지를 어떻게 모시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남아질 수 있고, 또한 출세의 요건이 어떻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여기 서 있는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라는 자는 이 땅에 왔다가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아 불효의 흔적을 남기고 가게 되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 일신이 고통받는 자리에서도, 모욕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상처를 각오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당신이 알고 계신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전부는 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오라 당신께서 가야 할 길을 위함이요, 당신의 마음의 안위를 위함이었습니다. 아들된 도리를 다하고 신하된 도리를 다하는 하늘의 이상적인 아들, 거룩한 아들을 아버지께서는 찾아 나오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이런 원칙 아래 변함없는 터전을 바라보고 나오시는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은 누구를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위해서 온 사람도 아니요, 통일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온 사람들도 아닙니다. 하나의 아들을 얻기 위해서, 혹은 하나의 인연을 따라온 무리도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와 현실적인 문제를 결정짓기 위해 모인 무리들이옵니다.

오늘이 결정을 지을 수 있는 최선의 날이 되지 않고는 앞으로 최후의 운명이 온다 하더라도 관계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이 한 시간이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로 하여금 혁명을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미래의 소망을 향해 힘찬 출발을 할 수 있는 마음이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침에 솟아오르는 해를 보면서 변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철따라 달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빛을 발하며 살고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혹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 별들을 나의 교육자로, 나의 친구로 삼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부르며 눈물짓는 그 모습이 달빛에 비치고, 햇빛에 비치고, 별빛에 비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물이 저희들의 엄숙한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리가 천지만상이 머리숙이고 찬양할 수 있는 실체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난날의 슬펐던 자리들은 외로운 자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충효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버지의 넓은 품이 있어 저희들이 눈물지으며 품길 수 있고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된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복잡한 현실의 환경이 도리어 외롭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당신께서 얼마나 저희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게 될 때, 저희들이 갈 길은 사방에 막혀 있습니다. 북으로는 중공과 소련, 그리고 북한이 진을 치고 있사옵고 남으로는 일본이 있사옵니다. 일본은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제 2의 터전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평화의 이념에 공헌하기 위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는 민족이 올 것을 저는 짐작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러한 한때에 저희들을 내세운 것은 저희들을 망하게 하기 위한 심정에서가 아니라 저희들을 내세우기 위한 절박한 심정 때문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그리하여 아시아의 정세를 몰아 저희들 앞에 접근 시키신 것을 아오니, 이런 아버지의 사랑 앞에 저희들은 감사드려야 되겠습니다.

최후의 제단을 결정하기 위한 자리는 제물을 필요로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민족의 악과 선을 판결해야 할 섭리의 뜻을 중심삼고 선악의 분기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국가의 운명을 중심삼고 이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이미 남북이 갈라진 것을 어떻게 차후에 일치시키느냐 하는 장벽이 남아 있사옵기에, 저희 삼천만 민족의 마음 깊이 자리한 하늘을 위하는 민족정신을 중심삼고 새로운 국민운동으로서 거국적인 사상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 이 민족이 살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먼저 통일사상으로 사상무장을 해야 하고 힘의 무장을 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악은 힘의 대결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권한을 갖추기 전에는 의논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악은 역사를 통해서 항상 그런 결과로 나타났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힘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로 상대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환경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이 악이 역사적으로 걸어온 걸음인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를 위해 내적으로 심정일체를 이루고 외적으로 힘의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들은 아시아를 중심삼고 결속시켜야 할 사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일신의 고달픔을 초월해야 되겠으며, 갖고 있는 물질도 전부 투입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도화선이 되어야 하겠고 그럴 수 있는 동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원수의 나라를 아버지에게 돌려드릴 수 있고, 그 나라를 좋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 나라를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일본의 통일전선에서 수고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계가 있는 것이요, 통일교회가 있는 것이요, 승공연합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중심삼고 거국적인 활동을 개시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적인 국제승공연합이 출발한 터전을 통하여 일본의 통일의 무리들이 세계반공대회(世界反共大會)의 깃발을 들고 세계를 향하여 이미 진군하였사오니 당신이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그들은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하나되지 않고는 이 싸움 앞에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을 뚫을 수 없다는 것과, 뜻을 중심삼지 않고는 이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옵니다. 여기의 모체 되는 사연을 가려내고 주체적인 사명과 책임을 해야 할 곳이 통일교회요, 한국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통일교회 교인들도 잘 모르고 있고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알고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이 길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옵니다. 이들을 보호해 주시고 염려해 주시는 당신의 가중된 은사 앞에 저희들은 천번 만번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시아권을 중심삼고 일본을 내세워 세계에 하늘의 깃발을 드높이 들고자 하시는 당신의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세계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을 마련해야 되겠습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은 아버지를 중심삼은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로서의 이상적인 출발을 헤야 되겠습니다. 사위기대의 복귀가 천리 원칙의 이상이며 그렇게 되는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인 것을 저희들은 아는 입장이기에, 아시아 전체가 하늘 뜻앞에 품길 수 있는 그 한 시점을 결정지어야 하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수고하시는 줄 아옵니다. 초현실적인 이 기점 위에서 오늘 통일교회가 하는 일은 모험적인 일이기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옵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저희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생명을 바쳐서라도 역사적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현실적인 하나의 기점에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현현하실 수 있으며, 그 현현이 기쁨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적인 창조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은 3월 8일이옵니다. 오늘 이 안식일을 통하여 하늘과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했사오니 승패의 결정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이들이 가히 알았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망한 가정을 위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망해 버린 나라를 위한다는 것도 너무나 비참한 것이요, 망해 버린 세계를 위한다는 것도 너무나 비참합니다. 그러나 절대 망하지 않을 수 있는 아버지를 위하여 사는 것이 개인이 사는 것이요, 가정이 사는 것이요, 국가가 사는 것이요, 세계가 사는 것이기에 영원한 삶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이 그러하듯이 이제 이 나라와 통일의 세계가 가는 길이 고달프지 않으면 오늘의 현실이 미래의 현실로 연장될 수 없으니 수십 억 인류 속에서 저희들이 각각 거울에 비친 나 하나를 갖추어 가는 데에 있어 하나님과 90도 선상에 설 때까지 저희들이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날이 가면 갈수록 세계 만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통일의 세계가 기필코 온다는 것을 알면서 나아가는 저희들의 노정 위에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과 세계 앞에서 저희들은 맡겨진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데 있어 옹졸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수행하여 아버지께서 보람을 갖고 바라보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자녀들에게도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