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04 to 29-225: 완전한 탕감

완전한 탕감
1970.02,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29-204
완전한 탕감
우리 타락한 인간을 자신이 선과 악의 중간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은 반드시 이런 중간 입장을 통하지 않고는 경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중간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을 통해야 되고 사탄도 하늘편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중간 입장에 있는 우리 인간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가 모두 이와 같은 중간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섭리사에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29-204
선악의 중간 입장에 처해 있는 타락한 인간
여러분 개인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에게는 마음과 몸이 있는데, 마음이 선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면 하나님편의 경계선에 접하게 되지만, 그와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면 반드시 사탄편의 경계선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선악의 중간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어야 됩니다.

상하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합니다. 즉, 하늘과 땅의 관계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도 하늘권내에 있는 선한 인간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땅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인간과 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권내에 있는 인간을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자리에서만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요, 사탄과 인간이 하나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떠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좌우관계에서 살펴보면, 부모를 중심삼은 형제의 관계가 좌우관계인데 형제 가운데에서도 참다운 효자는 어떤 형제나 하면 부모님과 하나되어 자기 형제를 대할 줄 아는 형제입니다. 불효자는 어떤 형제냐 하면 부모와 반대되는 자리에 서서 가정을 파탄에 빠지게 하는 형제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충신이 되려면 주권자면 주권자, 군주면 군주와 하나되어 민족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간신은 어떤 자리에서 생기느냐? 군주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입장에서 하나되는 자리에서 역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악은 어떻게 결정되느냐? 선악은 내 자신이 우향 혹은 좌향함으로써 결정되는 것이지, 선악 자체가 우리를 선하게 또는 악하게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선의 방향으로 가느냐, 악의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은 선악의 중간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은 누구에 의해서 결정되느냐 하면 하나님도 아니요, 사탄도 아니요, 바로 `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안식해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내 자신이 하늘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 자신이 악한 입장에 그냥 그대로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악한 현재의 입장을 고수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29-205
어떻게 타락권을 벗어날 것인가
그러면 오늘날 이 타락한 기반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이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지금까지 중간 위치에 서 있는, 선을 추구하고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 타락한 인간이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선과 더불어 일체화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 자신은 이 몸을 지니고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즉 과거에서부터 현재의 이르기까지 악한 사탄과 동반해 왔고, 또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도 동반하기 쉬운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백까지 모든 것이 사탄과, 악과 결탁되어진 입장이지, 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악한 터전을 부정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악한 터전보다도 더 강력히 선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 혹은 방편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신앙자들이 지금까지 생활해 나오는 데 있어서의 문제점임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막연하게 알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아는 입장에서는 이것을 풀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앙, 절대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부정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자기가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 하나의 국민이요, 가정이면 가정의 한 일원이요, 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한 부부를 이루는 일원이 되어 가지고 여기에서 하늘편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신앙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절대적인 신앙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그 국가가 절대적으로 반대하더라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이면 가정에서 누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그 반대 앞에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부부 사이에 있어서도 상대가 반대하는 입장에 서더라도 절대적인 신앙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세우고, 또 이러한 태도를 세워 신앙생활을 하려는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단 하나 악한 환경을 탈피하여 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백방(白方)으로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간증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내가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느냐?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맹목적으로 믿어 나온 그러한 신앙 기준이냐? 맹목적으로 추구해 나오던 신앙의 기준보다 강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과거의 신앙 이상의 자리에 나갈 수 없습니다. 또,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새로운 세계로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아는 것만큼 실천하고 그것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현실적인 모든 악의 기반을 타파해 버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악의 기반을 제거할 수 있는 주체적인 자아를 확립해야만 선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탄을 중심삼은 악은 환경적으로 볼 때 95퍼센트에 해당하는 환경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은 5퍼센트에 해당하는 환경만 지니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기반은 사탄세계에 배해 5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양심을 자극시키며 양심의 방향을 촉구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결심하는 때를 중심삼고, 그 사람이 완전히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시점을 표준하고서야, 그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야 역사를 해 오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한다 해도 24시간 항시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요, 신앙생활도 24시간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기적인 한때를 중심삼고 뜻과 연결될 수 있는 통일적인 궤도를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장성하여 스스로 자주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까지는 하나님과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하나님이 절대적이니 나도 절대적이어야 되겠다. 지금까지 선을 위해서 투쟁해 나온 하나님을 내가 모시는 입장이니 나 자신도 현실적으로 주체적인 입장에 서서 현실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투쟁해야 되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투쟁하겠다는 신념이 절대적이 되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때를 바라보고 우리 개체를 이끌어 나간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기점에 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자신이 서기 위해서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29-208
탕감의 과정을 거쳐 나오신 선생님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또 지금까지 선생님의 가정이 생활해 나온 것을 쭉 되돌아보게 되면 하나님은 모질고 무자비하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때에는 축복을 해주시지만…. 선생님의 가정은 증조부 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때에 와서 탕감을 받았습니다. 축복 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받게 된다는 거예요. 반드시 탕감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축복 받은 후에는 반드시 탕감을 받았습니다. 열만한 축복을 받았으면 반드시 그만한 탕감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지탱시키고, 그 씨를 남기기 위해서는 탕감을 받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가정을 위한 씨가 아니라 종족을 위한 씨를 남기려면 그 가정에 축복한 이상의 시련을 사탄이 퍼붓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열만한 축복을 주기 위해서는 스물, 혹은 백만한 시련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탕감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하나님의 불리움을 받기까지 선생님의 가정에 상당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가산이 탕진되었고, 인명 피해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사자로부터 전부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축복을 받으면 절망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이 그 가정을 사탄세계에 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세계에서 들이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선생님이 이 뜻을 찾아 나올 때까지 그 배후에는 삼대에 해당되는 탕감의 인연이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대에서도 탕감을 받았고, 아버지 대에서도 탕감을 받았고, 내 대에서 형님까지 탕감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대에 있어서도 슬픈 일이 벌어져야 했고, 아버지 대에 있어서도 슬픈 일들이 일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는 탕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대를 보게 되면, 3형제 분이 계셨는데 막내 할아버지 되시는 분은 목사였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3·1 독립운동 평안북도 총책임자로 전국의 책임자들과 내적인 계획을 해오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오산학교 직원과 생도 및 교회신도, 오산 주민들을 이끌고 만세 시위운동을 벌이셨습니다. 이때 주모자로 일헌에 체포 당함으로써 옥고의 생활을 2년동안 하셨습니다. 옥고에서 풀려나오셨어도 편안하게 고향에서 살지 못하시고 일생 동안 타향살이를 하셨습니다. 일경의 박해로 피신 다니시다 강원도 정선에서 생애를 마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대에 있어서 삼촌도 행방불명이 되셨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객사하셨을 것인데, 무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탕감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비운의 생애를 거쳐야 됩니다. 이렇게 3대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상적인 투쟁의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즉, 복귀의 터전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형님은 동생인 나에 대해서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가인의 입장에서 완전히 탕감할 수 있는 기대가 자연히 조성된 것입니다. 형님의 신앙은 철저했습니다. 형님은 6.25사변이 일어날 것도 미리 아셨으며, 우리 민족이 해방될 것도 미리 아셨습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를 영계의 지시를 통해 해결하는 신앙의 태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형님에게는 신병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님은 약을 써서 고치겠다는 마음은 꿈에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도로, 신앙으로 병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런 신앙기준에서 그 병을 고쳤던 것입니다.

우리 형님은 동생인 나에 대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역사상에 수많은 형이 있었고 수많은 동생이 있었지만 내 동생은 역사적인 동생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뭐라고 하면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내가 평양에 가 있을 때, 그때는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 크나큰 역사가 있을 때였는데 내가 부탁하는 것은 보통 생각으로는 믿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형님은 이런저런 내용을 갖추어 동생을 위하여 도왔습니다. 그 부탁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그 일을 행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형님이었습니다.

이러한 형님과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북이 갈라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사정이 확대되어 국가의 사정이 되었습니다. 형님과 동생이 한자리에 모여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과 같이 지금 남.북한이 똑같은 사정이 되었습니다. 틀림없이 형님은 북괴의 손에 피살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남한 땅에 나와 이런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땅에 남아 있는 우리 일가 친척은 말할 수 없는 수난과 역경 가운데 살다 돌아가셨거나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 과정을 중심삼고 볼 때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에 있어서도 제일 가깝던 친구들, 하늘에서 축복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친구들은 다 데려갔습니다. 다 제거시켜 버렸습니다.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다 잘라 버렸습니다. 그들 중에는 평안북도 사람도 있었고 황해도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제일 가깝던 친구들을 다 데려가 버렸습니다.

또, 형제를 두고 보더라도 내가 제일 사랑하던 동생을 데려가 버렸습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무슨 죄인지는 모르지만 데려갔습니다. 그는 내 바로 손아래 여동생입니다. 우리 가정에는 딸이 많았지만 이모댁에는 딸이 없었기에 이모의 간청에 의해 그 동생은 이모댁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언제나 그 동생을 위해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 동생은 오빠에 대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빠로서 동생이 좋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어떠한 일이라도 다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대까지도 다 잘라 버렸습니다. 여동생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동생도 데려갔습니다. 또, 선생님 자녀 중에서도 성진이의 동생인 희진이도 데려갔습니다. 아들로 보면 둘째를 데려간 셈입니다. 딸도 둘째를 데려갔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탕감은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29-210
탕감의 자리
또, 내가 이 뜻길을 나서 가지고 제일 수난을 당한 것은 언제였느냐? 제2차, 둘째번 길이었습니다. 물론 첫째번 길도 그랬지만 둘째번 길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섭리의 배후를 더듬어 볼 때 하나님은 땅과 인연될 수 있는, 심정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일체를 끊어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나 자신을 망하게 하려는 섭리냐? 아닙니다. 이것은 완전한 승리의 기점을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타락한 혈통을 받고 태어난 역사적인 섭리를 두고 볼 때에도, 이것은 불가피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 사탄이 그 조상들을 통해서, 가정을 통해서, 형제들을 통해서, 자신을 통해서 들어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청산지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하늘편을 대신해서 나설 수 있는 배후를 갖지 않고는 탕감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그 당사자는 알든지 모르든지간에 탕감의 인연은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뜻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 이것을 슬픔으로 맞이하지 않고 어떻게 감사함으로 맞이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슬픔으로 맞이하는 것은 열번 천번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충분한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정이면 가정에 있어서 절망된 사연이나 그 누구 앞에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사연이라도 슬픔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와 같은 입장을 통해서 결속되고 하나의 공고한 터전이 되시옵소서’ 하고 소망 가운데 이것을 맞지 않고는 뜻을 발전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물 그 자체에게는 절망이 되지만, 제물을 드리는 그 자리는 소망이 출발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절망이 연결되는 자리인 동시에 소망이 출발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이면 통일교회 교인이니 여러분이 제물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한 면은 절망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요 또 한 면은 소망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양면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넘겨 주는 것도 아니요, 사탄이 넘겨 주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넘어서야 되느냐? 자기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끊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완전히 사탄을 끊고 나서게 되면, 그것은 사탄세계로 보면 절망인 것입니다. 완전히 절망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세계는 완전한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출발은 한꺼번에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길은 개인으로부터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길이 열렸다고 해서 그 누구를 믿고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자주적인 입장에서 개척해야 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시간을 투입해야 되고 노력과 정성을 투입해야 됩니다. 투입하는 시간과 정성도 보통 사람의 몇 배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에게 성장기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시간을 투입하고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성장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사탄이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찾아와 가지고는 `네가 책임을 졌으면 너의 선조보다 나아야 된다’ 고 하며 들이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될 때 그것을 절망의 요건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절망적인 입장에 섰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절망적인 환경에서 새로운 나, 새로운 자아, 새로운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는 개인, 가정, 국가, 세계가 개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29-212
용서가 없는 탕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누가 책임을 해야 되느냐? 물론 선생님이 해야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느냐? 제 1차 7년노정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가운데 끝났습니다. 끝났으면 제 2차 7년노정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넘어가려면 반드시 탕감을 치러야 됩니다. 반드시 3년 기간을 중심삼고 넘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이 기간에 임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런 때가 올 것을 마리 알고, 그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되어 넘을 수 있겠는가 하는 그 길을 목표로 세워 가지고 지금까지 기도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여러분이 하나되어 있느냐? 못 되어 있습니다.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입장에서 다시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희진이가 간 것입니다. 선생님은 희진이의 그런 비보를 들었을 때 `아! 올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 자식보다도 나라와 뜻을 더 받들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그럴 때 슬퍼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면 전체가 허물어집니다. 탕감은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 들어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제 2차 전도를 시키는 것입니다. 60년대 여러분이 개척하던 그 자리로 다시 보내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선생님이 알고 싶은 것은 그 당시 우리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를 반대하던 그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맞지 않았다면 탕감이라는 것은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전에 전도 갔다 온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 당시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사람들은 전부 탕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탕감을 받게 한 것이냐? 통일교회를 위해서냐? 아니면 통일교회 선생님을 위해서냐?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들이친 것은 그들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반대했던 것을 탕감시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탕감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희생된 사람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역사의 내용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29-213
복귀의 길
이제 70년대를 향하는 경계선에서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모자 혹은 모녀를 수난의 길에 내몰았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법칙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혹은 여러분의 아들딸이 추운 방에서 떨면서 자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축복을 받았다는 거룩한 이름을 가진 모습이지만 밥을 얻어먹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 자기 아들딸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이 민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희생되더라도 이 나라는 구원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하는 모자가 있다면 여기에 복귀의 조건이 세워질 수 있는 것이요, 그 모자로 말미암아 세계 복귀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바라보고 금번에 이런 대책을 세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께서 완전한 탕감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들은 어떠한 비참한 노정이라도 가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런 길을 간 사람입니다. 우리 가정도 그런 길을 갔습니다. 가는 데에는 세상의 어느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움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원망에 앞서 이 나라, 이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과 뜻이 가는 길을 염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의 책임자로서 취해야 할 응분의 태도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심적 기준을 하늘 앞에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자라는 것을 절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7년노정을 걷는 데 있어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왜 그러냐? 지금까지 역사과정이 그러했고, 선생님이 스스로 그런 탕감노정을 거쳐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복귀하는 방법이 뭐냐?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해 준 것은 여러분의 가정만을 위해서 축복해 준 것이 아닙니다. 종족을 위하고 민족을 위해서 축복해 준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축복을 해주었지만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종족 복귀의 책임자로 내세워 완전히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여러분들을 축복해 준 것입니다. 축복은 여러분의 가정만을 위해서 해준 것이 아니라 종족을 위해 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족이 편성될 때까지 그래야 되는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종족복귀시대로 넘겨야 되느냐? 여러분이 넘겨 놓아야 합니다. 축복 받은 여러분들은 종족과 민족을 중심삼고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족을 넘어서서 민족을 위해 축복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세게 순회 도중에 세계의 여러 민족을 축복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민족을 위하여 또 국가를 위하여 축복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종족을 축복하던 그 기준이 민족을 착복할 수 있는 기준과 국가를 축복할 수 있는 기준까지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수난의 코스와 같은 길을 가면서 선생님이 가시는 길은 내가 대신 가야 할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축복가정이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몸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일심단결하여 그 뜻을 받들고 헌신하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을 통해 민족적인 축복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 앞에 탕감조건을 제시하여 넘어설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지금까지 뜻을 발전시켜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9-215
지금까지의 탕감복귀역사의 내용
그러면 선생님이 지금 누구를 사랑하느냐? 이 민족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탕감하지 않고는 절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역사를 돌이켜 보나 선생님 일대를 보나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만을 사랑하다가는 국가를 사탄 앞에 내놓게 되고, 민족만을 사랑하다가는 민족을 사탄 앞에 내놓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가야 합니다. 민족을 사랑하기 전에 세계를 사랑해야 합니다. 한 단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기준을 세웠을 때는 민족을 사랑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이 뭐냐? 개인을 세우기 위해서는 가정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종족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고, 종족을 세우기 위해서는 민족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고, 민족을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하며,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세계적 탕감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원칙입니다.

개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즉, 개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중심삼고 전부 탕감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요셉 가정을 세웠고,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은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예수님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탕감시킨 것은 요셉 가정을 세우기 위한 것이요, 요셉 가정을 탕감시킨 것은 예수님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는 큰 것을 세우기 위해 작은 것을 탕감시킨 역사가 아니라 작은 것을 세우기 위해 큰 것을 탕감시켜 내려온 역사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섭리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개인이 가정적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기준에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전상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피해받을 수 있는 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러한 작전을 잘 연결시켜 나가게 될 때 여러분은 사탄세계의 탕감을 받지 않고 무난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대신 피를 흘려야 하고, 핍박을 받아야 하며, 외로움을 당해야 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29-216
완전한 탕감기준을 세우려면
완전한 탕감이라는 이념을 두고 볼 때, 혹은 섭리의 입장에서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은 선악의 중간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이냐? 탕감당해야 할 입장이냐, 탕감을 벗어날 수 있는 입장이냐?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가지와 같은 입장에 서 있습니다. 자, 그러면 나무의 줄기와 가지와 잎을 두고 볼 때 바람이 불면 어느 것이 먼저 바람을 맞느냐? 줄기나 가지가 바람을 맞기 전에 먼저 잎이 맞습니다. 그리고 가지가 맞은 다음에 줄기가 맞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완전한 탕감이 무엇인지 모르고 나왔습니다. 그저 선생님만 바라보고 하라는 일만 해 나왔습니다. 하라는 일만 해 나온 후에 완전한 탕감기준을 세우려면 여러분 자신이 결정권을 가져야 됩니다. 선악의 중간 입장에서 반드시 악권을 초월하여 하늘 앞에 귀일될 수 있는 자신이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여기 참석한 사람 가운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자가 있느냐? 그것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들이 다시 탕감을 받아야 됩니다. 완전히 탕감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만일 선생님이 여러분을 후원해 주면 전부 잘려 넘어가게 됩니다. 다 망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나라를 사랑할 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사랑하면 여러분이 망하게 됩니다. 세계를 사랑할 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후원하면 여러분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탕감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완전히 탕감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가서 완전한 하나의 주체가 되고, 하나님과 완전한 일심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뜻 앞에 귀일될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자신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탕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여러분의 가정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종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가정보다 종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정이 살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종족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종족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냐? 민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사랑하지 않고는 살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 받은 가정들은 먼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해야 됩니다. 자기 가정이나 통일 종족을 위하여 희생해선 안 됩니다. 국가를 위해 제물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물은 먼저 누구를 위해서 드려야 하느냐? 먼저 민족을 위해, 그 다음에 형제와 부모를 위해,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위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 가정을 놓고 볼 때, 먼저 우리는 누구를 위해 탕감해야 하느냐? 먼저 하나님을 위해 탕감하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제물 되는 것은 형제를 용서해 주기 위해 되는 것이요, 또한 자기 민족을 용서해 주기 위해 되는 것이요, 가인 세계를 용서해 주기 위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가인 아벨이 복귀되지 않고는 부모가 해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물적인 입장에 있는 아벨은 누구를 위해 제물을 드리는 것이냐? 가인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요, 부모를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29-218
아벨이 해야 할 책임
오늘날 통일교회는 아벨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면 제물을 누구를 위하여 드리느냐? 형제와 부모를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입장에 있는 것은 나라의 주권자요, 가인적인 형제의 입장에 있는 것은 삼천만 민족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국가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의 형제들은 가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여러분의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을 받은 것은 무한한 영광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무런 내용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의지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민족적 승리의 터전과 세계를 위한 승리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종족적인 메시아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기반도 닦지 않은 황무지 같은 벌판에 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섭리시대에는 하나님이 사지(死地)와 같은 황무지에 몰아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되어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길 수 있는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과 하나되어야 하느냐? 세상의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으면 아벨이 되는 것이요, 세상의 부모를 중심삼으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벨은 타락하지 않은 복귀된 아들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의 가정과 가정은 하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한 가정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참부모를 중심삼고 아벨적인 입장에 서서 반드시 가인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믿음의 아들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아들딸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아벨이 해야 할 책임은 뭐냐? 즉 아벨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가인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담인 부모를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벨이 제물을 드리는 것은 부모 대신 드리는 것입니다. 아벨은 먼저 가인을 복귀해야 되고, 그 다음 부모를 복귀해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제물을 잘 드린다 하더라도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부모가 복귀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연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도 이런 입장이었고 예수님도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도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부모를 복귀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해방해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에게는 이중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종족적 메시아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반대하던 그런 입장이 아닌 환영받는 이스라엘권내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을 반대하는 부모가 아닌 참부모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권내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원칙을 두고 볼 때에 국가가 반대할 수 있는 권이 끊어져 나가고 참부모와 하나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민족이 환영할 수 있는 환경권내에 들어오면 반드시 새로운 나라의 운세가 닥쳐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 견해입니다. 국가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원리적인 탕감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가지 그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력적인 투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더 세계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는 나라, 그 나라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세계가 이스라엘권내로 밀려 들어오게 됩니다.

선생님은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한국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때가 가까와짐에 따라 한국을 사랑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탄이 세계를 대신해서 반대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공산당입니다. 그들은 국가를 형성해 가지고 있고, 서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29-220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사탄은 이 세계를 완전히 점령하기 전에는 대한민국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기도한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세계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시간으로 말하면 한국을 위해 기도한 시간은 극히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세계를 사랑하니까 세계 앞에 사탄이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공산주의 사상입니다.

이제는 세계를 하나의 나라, 하나의 주권 밑에, 한 사람의 통치자 앞에 굴복시켜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러분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헤아려 보고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느냐? 완전한 하나의 기반을 만들어 사탄의 조건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주체적인 입장에 섰느냐? 못섰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선생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선생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을 업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내 말씀과 마찬가지이다. 선생님의 표준은 내 표준과 마찬가지이다’ 해야 합니다. 여기에 차이가 생기게 되면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걸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관에 일치되지 않는 사람, 혹은 자체적으로 일치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이냐? 끊기게 됩니다. 그 목적에 일치되지 못했다가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탕감기준을 여러분이 제시 못 하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은 끊길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을 다시 고립된 입장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70년대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야 할 섭리적인 입장이요, 완전한 탕감을 요구하는 현시점에서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해야 할 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60년대까지는 여러분을 대해 왔습니다.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바라는 스승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의의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민족 국가 세계를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는 완전한 주체적인 이장에 서지 못하게 될 때는 여러분은 끊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비장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부모 앞에 효자라면 자식을 낳아 그 손자를 부모 앞에 안겨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아들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하느냐? 자기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중요시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 안겨 드려야 합니다. 자기보다 더 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 앞에 더 가까울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섭리가 발전되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못한 아들딸이 태어나면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나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가질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에 멸망이 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딸을 보내 주시려거든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아들딸을 보내 주시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관이 서 있어야 됩니다. 그 아들딸은 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났으니, 세계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이 그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버이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이요, 신앙의 표준입니다. 사랑하더라도 그런 철학을 가지고 사랑해야지, 그렇지 않고 흐늘거리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도피구가 없는 것입니다.

공장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공장에 가보면 피곤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이 공장(수택리의 통일산업)은 통일교회를 위한 공장이 아닙니다. 이 나라, 이 세계를 위한 공장입니다. 그러므로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이 공장은 앞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나의 이 신념에 어긋나지 않고 일치되게 될 때는 발전할 것입니다. 내가 쓰러지는 입장에 서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여러분은 체험해야 합니다.

이 공장은 개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일하고 싶은 마음, 밤을 새워서라도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나라와 이 세계의 복귀역사가 얼마나 초조하고 시급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밥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고생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다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공장은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29-222
탕감의 원칙
여러분이 두려워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어떤 사람을 보게 되면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는 선생님한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는데 좋다 이겁니다. 이름을 지어 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냐? 선생님이 여러분을 정성껏 대해 주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제물된 입장에서 동네방네 선전을 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원수에게 지탄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가까와 올수록 마음 깊이 그 터전을 넓혀 결의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완전히 사탄세계와 손을 끊고 하나님 앞에 돌아가서 접수시킨 후에 발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탕감복귀역사는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하는 역사가 아닙니다. 말없이 다 만들어 놓고 발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돼먹지 않게 자랑을 합니다. 그렇게 자랑하다가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들고 나와 꼬리를 치다가는 전부 망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탕감원칙입니다. 그 경계선까지는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계선에서 딱 사탄과의 인연을 끊어 놓고, 돌이켜 놓고, 일시에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이름이 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뭇사람으로부터 높임받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자기를 가까이 해주고 축복해 주고 은사를 베풀어줄 수록 거기에는 반드시 핍박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밤이나 낮이나 맞고 넘어갈 것이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전부 뜻 맞게 되면 기도는 안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때가 올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어요? 기도를 하고는 왜 내 기도는 안 들어 주나 하지만 그것이 복이예요. 십년 동안 정성들이고 일생 동안 정성들였는데도 기도를 안 들어주셨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거예요. 맞지 않을 수 있는 하늘의 보호권내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탕감시대를 넘어가고, 종족적인 탕감시대를 넘어가고, 민족적인 탕감시대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자리까지 내가 어떻게 지탱하여 남아질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1년, 2년 가다가 ‘아이구,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구나’ 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 도망가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문이라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다 떠난다고 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혼자 걸어가더라도 탕감역사를 제시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반대하면 대한민국에 혼란이 일어나 대한민국은 망하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을 것이요, 대한민국 이상인 세계가 나를 따를 것이라는 철석 같은 신념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세계를 추구하고 그 세계를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지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고생되더라도 자기의 터전이 넓어지고 축복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망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앞으로 자라나는 자식들 앞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나는 민족을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산 것 밖에 남겨 줄 것이 없다’ 할 때 이것이 가장 위대한 유업입니다. 물질이나 학박사의 간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를 위하여 살아라’ 그런 유언을 자식에게 남겨야 합니다. ‘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너는 세계 사람이니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천주주의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이념을 갖고 있고, 또 듣고 알았다는 사람이 시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29-224
통일의 역사가 벌어지기 위해선 세계를 위해 살아야
세계를 복귀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아들딸 하나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일가를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평화의 세계를 이룰 것 같아요? 세계를 위한 여러분이 될 때 통일의 역사가 벌어지는 겁니다. 이러한 작전을 왜 촉구하느냐? 여러분이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완전한 탕감조건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나라를 위하여 가는 길, 세계를 위하여 가는 길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내 개체로부터, 내 가정으로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국가적인 가정이 되고, 세계적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내 가정에 부딪히는 모든 서러움은 내 한 가정의 서러움으로 느껴서는 안 됩니다. 민족, 국가, 세계와 더불어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뜻을 사랑할 것이냐? 내 한 개체를 사랑할 것이냐? 가정을 사랑할 것이냐? 뜻 가운데서 나라와 세계를 사랑해야지, 내 개체를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답은 간단하지만 그 내용의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생활에 있어서 남이 10년을 가면 나는 20년을 가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년을 간 사람보다는 20년을 간 사람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오랫동안 그 국가의 수난의 역사를 거친 사람은 충신의 반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1년 동안 고생한 사람보다 2년 고생한 사람이, 10년 고생한 사람보다 20년 고생한 사람이, 20년 고생한 사람보다 생애를 바쳐 고생한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이렇게 그 수난에 관록이 붙으면 붙을수록 그는 그 국가에 있어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천주복귀라는 이 엄청난 복귀섭리의 노정에 있어서 어떠한 분야에 머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시시하게 김 아무개의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팔려 다니는 그 따위 시시한 녀석들이 되기 위해서 여기 모인 것입니까? 그런 사람들이라면 며칠을 가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일찍 다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뭐 여러분 보다 못해서 이런 일을 하는 줄 압니까? 선생님은 이 일을 위해서 아들딸을 버렸습니다. 부모를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을 버린 이상의 자리, 내 아들딸을 사랑하는 것의 몇 배의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를 찾기 위해서 아들딸을 버린 것입니다. 한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몇 배 이상의 사랑을 이 세계 앞에 나누어 주기 위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린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29-225
탕감복귀의 원칙대로 살라
탕감복귀역사를 위해 하나님이 나를 세웠다 할진대, 내가 잘못하는 날에는 망하는 겁니다. 들이맞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잘못하게 되면 반드시 병신 자식을 볼 것입니다. 앞으로 두고 보면 알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가 무섭다면 무서운 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무섭다면 무서운 사람입니다. 세계에 없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문선생은 하나님의 심정세계로 가는 원리원칙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협회장 자식도 모른 척했습니다. 안아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세계가 사랑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들딸들을 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협회장은 선생님이 왜 그렇게 자기의 자식들에게 무관심했는지 모를 거예요. 또한 원필이에게도 딸이 있지만 아직까지 위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축복가정의 아들딸을 하늘나라를 이루어 놓고 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연의 목적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와 하늘 앞에 충성을 한 아들이라고 내가 하늘 앞에 소개해 놓고 그 아들딸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내 책임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까지 그럴 수 있는 자리에 못 나갔습니다.

생애노정에서 축복을 받아 행복의 콧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억천만년의 청사 앞에 승리를 다짐할 수 있고, 그 행복을 자랑할 수 있는 후손을 남기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통일교회에 왔다면 보따리 싸 가지고 가라는 거예요. 그러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망하는 겁니다. 자식을 걱정하고 아내를 염려해 가지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망한다는 겁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남아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원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망했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부모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겠습니까? 내가 평양에 가 있을 때, 이틀만 걸어가면 형님을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형님 이상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못 모셔 오는 것입니다. 나라를 부모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부모를 모셔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탕감입니다. 완전한 탕감복귀라는 것입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 참부모를 모시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세계의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나온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할머니들을 삼위기대로 묶고, 모자 협조할 수 있는 사탄세계의 세 아들딸을 세워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원칙대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일본 구보끼 협회장도 세 할머니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부들도 이들 할머니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 기반에 서지 않고는 발전되지 않습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냐? 가인은 사탄편이 복귀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아벨의 사명은 부모를 복귀하는 것이요, 가인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평면적 도상에서 승리적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해 나왔습니다. 이 할머니들이 질이 좋은 줄 알아요?

그러나 선생님 가는 길에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할머니들은 전부 다 선생님이 부른 것이 아니예요. 영계에서 만나게 해준 사람들입니다.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만나게 해주어도 책임을 감당 못할 때는 절대 안 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하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