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24 to 29-145: 화동의 중심체

화동의 중심체
1970.02.26 (목), 한국 통일산업(구리시 수택리)

29-124
화동의 중심체
모든 작용은 혼자 시작되는 법이 없습니다. 작용을 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상대적 관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 주체와 대상은 서로 관계를 맺기 위한 어떠한 결정적인 요인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상대적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29-124
모든 작용은 상대적 관계가 있어야
태양계를 보더라도 태양 자체가 주체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유성들이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유의 존재물도 역시 그러한 주체와 대상의 기준을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질서나 조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체가 확정되고 상대가 확정되어야 모든 질서와 조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상계나 만물세계도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연은 모두가 그와 같은 원칙에 의해 되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몸도 심장을 중심으로 모든 지체가 움직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놓고 볼 때 마음에도 중심이 있습니다. 그 중심은 인간 상호관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그 인격을 중심삼아 인간은 지금까지 생활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하는가? 어떤 사회의 제도 가운데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설 수 있는 사람을 인격자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동네에 존경을 받는 인격자가 있다고 하면 그는 그 동네 안팎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중심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그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역시 국가의 대표자, 즉 하나의 인격자를 중심으로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인격자를 중심으로 국민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실체적인 조직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범위가 넓은 세계에도 역시 하나의 중심적인 인격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자라고 해도 외적으로, 즉 육체적으로 보면 보통 사람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적으로 보면 사상적인 면이라든가 정신적인 면이 보통 사람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격자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적 분야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격을 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정신적인 분야를 넓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마음은 무한대로 접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사람이 갖고 있는 욕망은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끝없이 작용하면서 무한한 욕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인격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인격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나 국가나 세계의 한계권에 한정지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절대적인 최고의 기준을 바라보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절대적인 자리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내심의 작용을 볼 때, 마음의 세계는 무한과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정신적인 세계에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마음이 그런 자리를 잡았다 할 때는 인간이 주인될 수 있는 기점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 기점이 어떠한 자리일 것이냐? 인간이 요구하는 최고의 행복의 요건과 절대적 가치의 요건이 결정될 수 있는 중심적인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에 선다고 하더라도 또 그 자리에서 보이는 최고의 존재가 있을 것이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도 있을 것이고, 최고의 보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리에서 최고의 상대적인 요건을 갖추어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인격이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절대적인 요건을 세워 놓지 않고는 사리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절대적 기준을 세웠다면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하여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29-126
절대적 중심이 될 수 있는 인격기준
그러면 절대적 중심이 될 수 있는 인격의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 개체만을 중심삼은 인격 가지고는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나 절대자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자와 나는 어떠한 관계가 되어야 하느냐? 인간은 상대적인 자리에서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고는 주체적인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되는데 있어서는 외적인 면보다 내적인 면에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대자와 하나되려고 할 때에는 내적인 면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즉, 상대적 관계에서 외적으로 하나되기를 원하지 말고 내적으로 하나되고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절대적인 최고의 기준을 찾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적 분야에서 하나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기준의 최고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과 하나되려고 할 때에도 생활에서 하나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 즉 사랑의 세계에서 하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절대자와 하나되고 싶어하는 것은 그 자체가 중심적 입장에 서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원리에 의하면 주체 가운데는 내성과 외형이 있고, 성상과 형상이 있고, 상하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의 근본인 주체자가 통일의 이념과 하나의 목적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 속에 상하관계가 있어야 하고 전후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미루어 볼 때 그러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주체를 중심삼고 상대적인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360도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체가 운동하는 방향과 처해 있는 환경이 변하는 자리에서는 고정적이고 무한한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디냐? 주체적인 기준 위에서 주체와 일체적인 내용을 가진 절대권내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모든 것을 통솔하고 주관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게 될 때 비로소 행복의 요건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중심이 되어 그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기가 동기가 되어 만물이 상대적 요건을 갖추게 될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의 중심되는 절대자와 안팎의 관계, 상하의 관계를 총동원한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 중심의 자리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최고의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되느냐? 부자관계의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의 관계는 종적인 관계요, 부부의 관계는 횡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내보다 자식을 더 믿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하관계를 중시한 말입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절대자의 자리에 들어가 그 자리에서 주체와 일체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상하관계가 형성됩니다. 여기서 상대관계가 형성되면 횡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즉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가 벌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에게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중심, 즉 절대자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절대와 상대라는 명사를 추구해 가는 데 있어서 인간은 상대적 기준을 넘어 절대자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하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상하관계의 자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의 기원인 절대자와 더불어 하나되어 절대적인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절대자와 하나되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고, 그의 이상이 나의 이상이 될 수 있고, 그의 사정이 나의 사정이 될 수 있고, 그의 모든 관계와 인연이 나의 관계와 인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한 부자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29-128
화동의 중심체인 인간이 절대자와 하나되면
인간은 화동의 중심체입니다. 그런데 화동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중심기준이 결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박자를 맞추려면 지휘자를 중심으로 상하관계가 잘 연결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우주의 화동의 중심체가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이러한 인간은 절대적 기준과 일치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인간이 머무는 곳에 우주가 머무는 것이요, 존재세계가 그를 중심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용으로 말미암아 존재세계에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탄식했던 내용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영적이며 마음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몸과 같은 존재와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몸과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과 같은 존재인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지금까지 탄식하고 계시는 이유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날에는 우주는 자동적으로 하나될 것입니다. 왜 자동적으로 하나되느냐?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우주는 인간을 주체로 삼아 가지고 그 대상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인간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창조권내에서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되면 만유의 존재물도 하나님과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관계는 서로 반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으로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의 범위는 초우주적입니다. 이처럼 절대자를 중심삼은 상대적 관계는 절대권내에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권내를 벗어난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대자와 만물을 연결할 수 있는 존재, 즉 인간이 절대자와 하나되면 우주는 자연히 통일되는 것입니다.

역사 시대에 인간들이 바라는 인격적인 중심체가 결정되었더라면 반드시 화동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중심체가 결정되면 반드시 화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원리에서 말하듯이 완전한 중심은 완전한 상대를 창조합니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상대적인 요인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하는 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서 완전한 주체가 있으면 상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고 우주 가운데에 존재하기 때문에, 창조의 원칙에 의해 상대적으로 존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6천년 역사 과정을 통해 하나의 중심된 인격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가 수고의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시대를 거치면서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과 그 인격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상대와 더불어 주고받아야만 하나의 온전체가 됩니다. 인격자는 상대를 지배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상대는 국민이 될 수 있고, 국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적인 인격자라면 세계적인 국민을 가져야 되고, 세계적인 국토를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 자신도 우주적인 백성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땅을 합한 것을 통일교회에서는 천주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천민입니다. 그리고 이 천민이 설 수 있는 기반은 천국 국토입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절대적 자리에 들어가 주체적 입장에 서게 되면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적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제 2의 욕망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적인 자리로 접근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절대적 주체를 중심삼고 상대적인 것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범위가 크면 클수록 절대권내에 가까워 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라를 치리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그 나라를 중심삼고 절대권내에 가까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를 초월하여 국가 앞에 대표적인 지도자가 되면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 권내에 틀림없이 들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권내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절대권을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권을 만들려는 욕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절대기준 그 자체로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요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상대적인 인격의 기준을 결정짓고, 그 인격을 중심삼은 상대적인 세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에게 행복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29-130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자리
지금까지 6천년 역사 과정에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한 절대적인 목적과 절대적인 존재와 절대적인 사랑을 소망하고 추구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목적과 존재와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인 거리를 지냈지만 이 시대에 그러한 존재가 되려면 절대적인 존재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 고 하신 말씀 이상 절대적 존재와 자신과의 관계를 나타낸 분명한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대적 관계를 칭하는 말 가운데 `나는 주체요, 너희들은 대상이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다’라고 하신 것보다 더 나은 말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계가 실제로 온 인류에게 연결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연결하는 데 있어서는 물질적 가치를 중심삼고 연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육적인 인간을 중심삼고 연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연결해야 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연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대적인 존재를 확정하고, 아무리 절대적인 목적을 확립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기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살고 생활하는 것이 기뻐야 합니다. 생활하는 것은 목적 성취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성취했다 할 때 거기에는 존재 그 자체 이상의 새로운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이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행복의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목적을 아무리 잘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주관할 주체적인 사랑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게 될 때에는 또다시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야 됩니다. 목적의 한계점이 사랑보다 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절대자에 대한 확인, 절대자의 사랑에 대한 확인을 했다는 사람이 있었느냐? 그런 기준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절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확정지었느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확정지었습니다.

29-131
예수님의 목적과 그가 제시한 인격관
그러면 예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선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원하는 새로운 선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아버지와 아들이 절대적으로 연결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상대적인 세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절대적인 인연이 관계되어 있지 않으면 그 세계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 아들의 자리가 어떤 자리냐?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상대적 존재로 확정지으신,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둘이 절대적인 모체가 되고 이 모체와 절대적인 관계가 맺어져 서로 통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 외에는 다 가짜 세계입니다. 그러한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는 수단과 방법 가지고는 안 됩니다. 돈 가지고도 안됩니다.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조직도 서야 되고, 질서도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공동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인류애를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조국애를 갖고 있다면 애국사상을 중심삼고 하나될 것입니다. 애국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가를 이루기 위해 애국사상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하나될 것입니다. 애국운동을 혼자서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알면 횡적인 인연을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동지규합이라는 것입니다.

동지를 규합하여 3·1운동을 한 것도 나라를 찾아서 온 국민이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나라를 찾지 못한 우리 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전체가 하나되어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가정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가정을 찾아야 하는 것이요, 세계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세계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설파한 내용이 무엇이냐? 세계를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영원한 소망의 모체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희망도 없고, 목적도 없고, 행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인격관, 즉 우리 인간이 절대자의 대신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절대자의 대신자로서 절대적인 사랑과 영원한 주체성을 가져야 됩니다.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이러한 주체성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메시아의 사상입니다. 예수님이 바라신 세계는 절대적인 세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세계도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됩니다. 어떠한 사랑을 해야 합니까?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에는 온 우주가 안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시대를 대표하여 그런 사랑을 해야 할 입장에 섰던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인류는 이러한 권내로 들어가기 위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대든 중심을 결정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화동의 중심체가 될 수 있는 주체자가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하나님 자신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위해 지은 것입니다. 인간을 존재세계의 중심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존재세계의 모든 요소와 성품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이 완전한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할 때는 천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우주의 화동의 중심체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권내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만우주와 주고받는 자신을 발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인간으로서 도의 세계의 인격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도의 세계에서 인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심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석가모니도 이런 자리에 들어가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29-133
화동의 중심체 자리를 복귀하려면
그러면 상대적인 피조세계는 누구 때문에 생겨난 것이냐? 그것은 나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있는 것이냐? 우리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스스로 동기가 되어 가지고 얻은 결과를 놓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고차적인 사랑의 이념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은 인간에게 미를 돌리는 경지에 들어갈 때, 인간은 화동의 중심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인연된 인간은 그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 여러분이 지향하는 생활, 소망하는 생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현재 생활에서 그 중심을 찾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법을 통하여 그 중심을 찾을 수 있느냐? 화동의 중심체 자리를 잃어버린 타락한 나 자신이 그 자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현실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든 존재물과 비교해 가지고 그보다 커야만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감, 다시 말하면 너보다 나아야 된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봄을 맞아 동산에 만물이 소생할 때 꽃이 핀 것을 보고 여러분은 `아! 꽃좋다` 라고 감탄하면서 그것들보다 나아야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희망에 벅찬 모습을 보면서도 그 이상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날아가는 새가 노래 부르며 자연과 더불어 화동하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그 새보다 나아야 한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대해를 바라볼 때도 넓고 큰 바다보다도 나아야 하며, 산에 혼자 있더라도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에 기뻐하셨던 내적인 심정을 어떻게 하면 내가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주체는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온 우주가 절대적인 주체와 더불어 하나되어 화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 즉 만물을 통합시킬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한 권내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작용하는 그 동기가 반드시 개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을 때 얼마나 재미있게 지었을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지어 주셨구나` 하면서 우주에 대하여 지금까지 느꼈던 것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감동을 느껴야 됩니다. 길가의 씀바귀 하나를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지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를 지으실 때 아버지께서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지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삼고 그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일치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요구요 소원이기에, 인간이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느끼셨던 본연의 모든 미와 창조의 기쁨을 충만하게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에 기뻐하셨던 그 심정을 어떻게 느껴야 되느냐? 또 인간을 위해 만물을 지으신 수고가 얼마나 컸느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을 알면 인간이 좋아할 것이라는 심정으로 지으신 그 심정을 어떻게 느껴야 되느냐? 여러분은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체득해야 합니다. 싫은 물건이든 좋은 물건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체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체휼하려면 동산에 앉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가 지도록 사색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권내에 빠져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숨을 길게 들이쉬면 이 우주의 공기가 생명력을 가지고 쑥 몰려올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의 생명력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나 자신이 숨을 내쉬면 모든 존재가 새롭게 각성하고, 깊이 잠들면 만물이 상대적으로 화동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가 만유를 통치할 수 있는 절대자의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만물과 상대적인 관계를 갖추어야 여러분이 숨을 내쉬면 만물이 받아들이고, 들이쉬면 만물은 내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중심삼고서 만물과 주고받는 관계를 맺으면 이 우주가 서로 주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관계에서 멈추지 말고 화동의 중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하여 아름다운 자연의 형태와도 같고 우주 자체와도 같을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에 거기에서 비로소 우주의 화동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29-135
세상적인 욕망을 완전히 빼어 버려라
이렇게 상대와 주체가 하나된 자리에 만물도 하나되어야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지금까지 이러한 세계와 관계를 갖지 못하고 동떨어진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자신의 생각만을 중심삼고 생활하면서 그것을 추구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여러분이 화동의 중심체가 되면 새가 날아가는 것도 복귀섭리를 위해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그러한 전도체가 있어야 합니다. 전기가 통하려면 반드시 전도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전도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우주를 중심삼은 화동의 중심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동시에 자기를 중심하고 살려는 욕망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후자를 뿌리까지 빼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거기에 새로운 무엇이 채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저기압이 형성되면 고기압 세력이 저기압쪽으로 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치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관념을 전부 빼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빼 버린 힘에 비례되는 그 무엇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전달해 주는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전달해 주는 존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채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기압권을 만들어 놓으면 고기압권에서 바람이 불어오듯이 인간도 자기의 관념을 뽑아 버려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선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기압권내에 그 기반만 벌어지면 고기압권에서 폭풍우 같은 것이 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 이 세상과 하나님은 상반된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적인 욕망을 완전히 빼내야 됩니다.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빼는 데는 천천히 빼면 안 됩니다. 갑자기 확 빼 버려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한꺼번에 확 빼 버려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제 마흔이 훨씬 넘었지만 몇 천 년이 지나갔다는 입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힘과 더불어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우주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목적이 있으면 그런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화동의 중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락권내에 있는 자신들의 세상적인 욕망이나 모든 사욕을 빼어버려야 합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생리적인 작용, 즉 번식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있는데 그것이 자기를 중심한 것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자기 울타리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잘못된 내 존재를 어떻게 부정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은 남을 희생시키고 내가 잘 되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자기 밑에다가 두고 그들의 보호를 받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부정할 것인가? 잘못된 생활권내에 있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문제는 먹고 입고 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부정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자기의 생활이 잘못되었다면, 이에 비해 참이 있다면 그릇된 것을 완전히 제거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지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심장의 고동소리가 기적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심장소리가 기적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정도의 경지까지 들어가야 화동의 중심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결국 주체의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29-137
화동의 중심체가 되는 경계선을 넘으려면
그러면,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한 화동의 중심체가 되는 경계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이냐? 존재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격을 형성해야 합니다. 결국은 심정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말씀과 하나되어야 하나님과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과 하나되면 그 경계선에 연결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기적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창조를 누구 때문에 하였느냐?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중심이 되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기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기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느냐?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없이는 기쁨이 없습니다. 목적을 중심삼고 환경을 이 목적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만 이 환경에는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지키면서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말은 사된 말이 아닙니까? 전부다 타락권내의 사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하는 말을 하나님이 싫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화동의 중심체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절대자가 계시다면 `그 절대자가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그 절대자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봤어요? 절대자 앞에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돈 얘기를 하겠어요? 내가 남자니 색시를 구해 달라고 하겠어요? 어떤 말을 하겠어요?

여러분은 부모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태어나서 말할 수 있는 대상이 누구겠습니까? 부모입니다. 부모. 그렇지 않아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뭐냐? 아빠 엄마입니다. 그 이상 뭐가 있겠어요? 내가 부르는 아빠 엄마는 옛날 인간이 본연의 자리에서 부르던 아빠 엄마입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아빠 엄마를 천번 만번 불러 보십시오. 아빠 엄마의 맛이 어떤가를 알아보십시오. 그 맛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아빠 엄마를 부르는데 그 아빠 엄마가 대답하지 안겠습니까? 부르면 대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체와 대상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대상이 있으면 완전한 주체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면 아빠 엄마를 부르면 반드시 대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없이 불러도 대답이 없는데 좋아하게 됩니까?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빠 엄마와 지내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엄마의 품에서 젖을 먹고 무릎에서 똥을 싸면서 자라지만 부모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이 참된 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참된 말이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는 `형님’ `누나’입니다. 이런 단계를 지난 다음에는 대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태어났기에 사랑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완성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를 품고 사랑해야 합니다. 만물을 주관해야 합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러한 세계는 반드시 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길이 두 길입니까?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6천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사랑은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어요, 없어요? 옛날 2천년 전의 부모의 사랑과 지금 부모의 사랑이 다른 게 있습니까? 다른 게 없습니다. 이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에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자체가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부자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동족에 대한 사랑은 차원은 다르지만 절대적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어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타락한 세상을 버리고 본연의 세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더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전에 있던 것을 버리게 됩니다. 더 좋아하는 것을 갖지 않고 버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생명을 버린다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9-139
보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더 귀한 것을 위해서 무엇을 버릴 것이냐?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 동생을 버리고, 형을 버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버려야 할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버리는 데는 보다 귀한 것을 갖고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가질 것이냐? 동생보다 어머니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터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지금 타락한 인간들은 그러한 터전을 갖지 못하고 보다 못한 것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사랑을 중심삼고 전체를 위할 수 있는 보다 완전한 세계를 위해 잘못된 환경을 박차고 나가야 합니다. 그 길이 더디더라도 생명을 걸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믿고 있는데, 통일교회에 나와서 집을 버렸어요? 버렸어요, 안 버렸어요? 진짜 버렸어요? 무엇을 위해 버렸어요? 인류를 위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버린 사람이 변하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가정을 버리고 부모를 버린 사람이 변하겠어요? 어차피 우리들은 버려야 합니다. 보다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버려야 합니다.

이제 이 민족을 찾지 않으면 심정세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려면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부정하라는 말은 맹목적으로 부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버렸으면, 그 나라를 버렸으면 그것보다도 위대한 그 무엇을 발견해야 합니다. 가정을 버렸으면 그 이상 귀한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생명을 걸고 모든 것을 버렸으면 그 이상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발견했으면 후회없이 가야 합니다. 당당코 가야 합니다.

29-140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다
여러분 가운데 통일교회 때문에 쫓겨 나온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들어 보세요. 있긴 있을 것입니다. 귀한 가치를 발견한 경지에 들어가서 앞으로 나아가면 내일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일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아직까지 주체의 입장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뜻에 절대복종하며 주체가 되는 길로 가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걸어 나온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기독교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이제까지 무엇을 했느냐? 이러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주체가 되지 못하게 반대했습니다. 사탄인 자기를 주체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저 남들처럼 먹고 자고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 얼마나 살려고 그러느냐? 고작해야 7,80년 사는 짧은 인생인데 뭘 그러느냐? 하나님을 봤느냐? 이 세상에서 그냥 사는 것이 제일이다` 하는 식으로 반대해 나왔습니다.

현재의 입장을 버리고 더 나쁜 데로 가면 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더 좋은 데로 가면 선입니다. 버리기는 마찬가지지만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중심삼고 보면 자격자가 될는지 모르지만 하늘을 중심삼고 보면 부자격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장을 버리고 참선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무아지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얻어지는 게 뭐냐? 인격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이 여러분에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통일교회가 원하는 인격을 갖추었느냐? 말씀을 통하여 인격을 갖추었느냐? 통일교회가 원하는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까지 갖고 있는 인격관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3대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3대심판을 통과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느냐? 일시에 부정할 수 있느냐? 무엇으로 부정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 부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앎으로써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화동의 중심체의 자리에 서야 하는데, 무엇으로 그런 자리에 들어선 것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이제는 신앙세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에 올라와 있다. 이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지옥에 안 간다. 이제는 어느 기준을 넘어섰다. 경계선을 넘어섰다` 하는 사실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 것이냐?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쓸 수 있고, 강물을 보고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꽃을 보면서도 그 꽃을 애인같이 대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문학작품을 쓸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그냥 그대로의 마음을 갖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말씀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에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접하면 접할수록 제 2의 절대적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의 토대 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을 보게 되면 왠지 모르지만 좋아 보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걸 느꼈을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본성의 인연이 그 사람에게 투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옆 모습이나 앞 모습을 본성의 인연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적 세계에서 실재적인 요인을 중심삼고 내가 주체의 자리에 섰든가 그가 상대적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용을 지녔기에 본심의 작용을 통해서 좋아 보이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9-142
오시는 주님은 인간세계의 화동의 중심체
그렇다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어떻겠습니까? 본심의 작용을 통해서 본다면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해야 하지만, 타락세계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는 역사적으로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인 존재도 있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적인 존재도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성인들을 들춰 보면 공자도 있고, 예수도 있고, 석가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공자보다도 낫고, 예수보다도 낫고, 석가보다도 낫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내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좋게 되어 있습니다. 왜 좋으냐? 절대적인 가치의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돌산에서 금맥을 발견하여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면 기쁜 것이요, 멀어지면 슬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서 역사적인 결실, 시대적인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왔다 갔던 선한 사람들이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있는 양심적인 사람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사탄세계의 자기 아버지보다도 낫고, 형보다도 낫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받지 않고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년을 가도 후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년을 가도 후회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을 그렇게 살면 영원히 보장 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됩니다. 이러한 인격을 갖고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분은 인간세계의 화동의 중심체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주체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격의 주체성, 심정의 주체성, 말씀의 주체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맨 처음엔 말씀의 주체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인격의 주체성을 갖추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심정의 주체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통일교회의 말씀을 중심삼고 이루어진다면,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그 말씀을 절대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축복가정들, 부부끼리 서로 얼마나 절대시했습니까? 말씀으로 인해 인연 맺어졌기에 부부는 서로 절대시해야 합니다. 서로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하나님의 소원이 여러분 개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담 해와가 세우지 못한 기준을 세워야 할 축복가정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서로 얼마나 절대시했습니까? 서로 절대시하여 절대적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화동의 중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29-142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하고 하나 되라
부부끼리는 앞산을 바라보면서도 저 산이 생겨난 것이 누구때문인가를 물어 보고, 온 우주를 생각하면서도 이 우주가 생겨난 것이 누구 때문인가를 물어 봅니다. 그러면 나 때문인 동시에 너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우주가 생겨난 목적을 성사시키는 것이, 주체적인 목적을 중요시하는 것이 부부가 하나되는 길입니다. 부부는 마음을 중심삼고, 인격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같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시골뜨기 아가씨라도 장관하고 결혼하면 어떻게 됩니까? 같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같은 길로 가요, 안 가요? 그 시골뜨기 여자가 국민학교도 못나왔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장관 사모님이라고 하면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숙여요, 안 숙여요? 숙입니다. 이렇게 부부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부부에게 그대 사랑이 따로 있고 내 사랑이 따로 있습니까? 그대 사랑이자 내 사랑인 것입니다. 네 사랑이자 내 사랑인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어 볼 때 요만큼 사랑한다면 기분이 좋아요? 제일 많이 사랑한다고 해야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서로서로 권고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절대적인 인격, 절대적인 심정, 절대적인 사랑이 어디서부터 벌어지느냐? 가정입니다. 가정의 부부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부부가 자식을 낳아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이 절대적인 인격과 심정과 사랑으로 하나되면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모든 것의 화동의 중심체가 됩니다. 만민을 대표하고 만가정을 대표한 화동의 중심체요, 종족의 화동의 중심체요, 수많은 민족이 화동의 중심체요, 수많은 국가의 화동의 중심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 기준까지 복귀되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29-144
하나님을 중심삼고 현실을 새롭게 긍정하라
우리 통일교인들은 심정일치, 이념일치, 생활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절대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를 위해 가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국가가 필요합니다. 국가와 결합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하냐? 민족이 필요합니다. 민족이 필요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하냐? 종족이 필요합니다. 종족이 필요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하냐? 가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가정이 필요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하냐? 개인이 필요합니다. 결국은 내 개인이 문제입니다. 개인이 문제라는 겁니다. 가정을 품을 수 있는 나, 종족을 품을 수 있는 나, 민족 국가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내가 되지 않고는 세계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권내에 있는 세계와 상관없는 내 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절대적인 인격관을 모색하고 절대적인 가치관을 인류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루어진다면 이 우주의 통일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게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국가와 세계를 이루려면 가정보다도 국가를,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대한민국을 제물로 삼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국가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광명의 세계로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한 세계로 돌진해야 합니다. 그런 세계로 돌진하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지 않고는 그 이상의 권한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작전을 펴는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화동의 중심체가 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고, 가정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고, 종족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고, 국가적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는 종적인 중심국가로 결정될 때까지 그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필생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저리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정도 절대적인 자리에 서게 되고, 선생님도 절대적인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도 절대적인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종적관계가 횡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종적인 사람이 국가에 나타나면 그 자리가 국가를 대표한 자리가 되고, 종족에 나타나면 그 자리가 모든 종족을 대표한 자리가 되고, 가정에 나타나면 그 자리가 수많은 가정을 대표한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중심이 나타나야 평화의 천국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화동의 중심체가 되느냐? 현실의 모든 것을 부정한 후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롭게 다시 긍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잘못된 현실을 수습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나가지 않고는 통일교회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29-145
기 도
아버님, 정말로 원하옵니다. 저희들을 당신 앞에 세워 주시옵소서. 저희가 태어나서 먼저 무슨 말을 하오리까? 영원히 아버지의 품에서 살면서 아버지를 불러야겠습니다. 이러한 본성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저희 인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인연을 저희의 몸 마음에 맺을 줄 아는 자신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수고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인류가 지금까지 남아진 것을 알고 있사오니, 맺어야 할 인연이 있거든 아버지께서 연결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날 이 땅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기에 목적성사에 있어서 혼란을 가져오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절대적인 것이 있어야겠습니다. 절대적인 것이 있는 자리가 행복이 깃드는 자리요, 세상의 모든 문제점이 풀려지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과 해와는 절대적인 아버지와 하나된 자리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갖추어 선한 인류의 조상이 되어야 했사오나,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타락한 조상이 되어 타락한 후손을 남겼사옵니다. 그러기에 7년이라는 기간을 정하여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복귀의 길을 모색해 나오고 있사오니, 저희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아야 하겠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절대적인 말씀과 더불어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중심삼은 인격의 실체가 되는 것이옵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운세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세계를 갈라 놓지 못하면 그만큼 슬픔이 깃든다는 것을 세상 생활을 통해서도 알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그리하여 슬픈 역사를 지내온 아버지를 느낄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해 나왔지만 그런 과거지사를 자랑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과정이 비참하더라도 밤이 지나가면 반드시 아침에 온다는 것을 알고 참고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이념이 필연적으로 이 땅 위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따라 나온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시어서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가치 있는 것을 갖추어 나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이것을 잃어버리면 저희 개체의 모든 것은 다 파탄되오니 이것만은 저희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당신의 귀한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이러한 인연이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가슴 가슴에 싹트게 될 때에 통일의 방안은 여기서 모색될 것이요, 1970년대가 전체의 운세를 연결시킬 수 있는 시점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체를 부정하고 아버지로 말미암은 생명과 인격과 심정의 절대적인 가치를 알아 그것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한마디로 감사하는 신앙을 할 줄 아는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옵소서. 그러한 자리에서 자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면 버릴수록 당신의 권한이 투입되는 것이요, 당신의 무한한 가치가 접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이와 같은 뜻, 이와 같은 사정과 목적을 위하여 발을 들여놓은 것을 후회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저희가 인생으로 태어난 목적이요, 이것이 저희가 생애를 통하여 가야 할 운명길이라고 생각하고 그 운명길에서 진실한 삶의 목적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삶을 통해 아버지의 가치와 아버지의 목적을 드러낼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화동의 중심체인 개인으로서 절대적인 인격을 갖추어 세계를 대신하고, 가정으로서 역사를 대신하고, 종족으로서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추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하고 국가를 편성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 국가는 이 세계의 그 어떤 나라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는 하나의 중심적인 영원한 국가가 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런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저희들은 출발하였사옵니다. 우리에게는 나라와 백성과 땅도 없지만, 저희 자체가 백성 대신이요, 저희 자체가 나라 대신이요, 저희 자체가 그 나라의 중심인 주권자 대신이요, 저희 자신이 전체를 대신한 실체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자리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것과 같은 입장에 있는 창조의 역군으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이 이번 수련기간을 통하여 무엇을 가슴에 안고 가야 되겠사옵니까? 오늘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과는 그 기준을 달리해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기준과 오늘의 기준이 달라져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뜻을 대하는 방향이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히 깨닫고 가야 되겠사옵니다.

내가 대상을 미칠 듯 사랑하고 나서도 또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몇번이라도 미칠 수 있는 사랑의 동기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정적인 사랑의 권한을 가질 수 없는 자신이라는 것을 자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밤을 새우고 날을 이어가면서 하늘을 흠모한 그 한날을 갖지 못했던 자신을 개탄하며, 그러한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나를 붙들어 달라고 호소하며 달려가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가정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세상의 가정을 바라보고 세상의 나라를 바라보고 세상에 있는 부모와 처자를 바라보면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녀서 그들을 기쁨으로 축복해 주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더 높은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자녀들이 될 때 만사가 형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대신한 부모의 입장으로 나타나는 자리에는 영계가 동원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주체적 권한을 가지고 상대적인 환경을 움직여 내는 사명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라 부를 때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라 부르는 것보다 몇십 배 더 간절한 마음으로 천만번이라도 아버지를 부르고 싶사오니, 전보다도 지금이 더 간절하고 지금보다도 이후가 더 간절하게 하시어서 아버지의 내정을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이라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탕자도 아들이요, 충신도 아들이지만 여기에 있는 저희들은 아버지의 위업을 계승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으로부터 모든 위업을 고스란히 상속받을 수 있는 효자라고 모두가 공인하는 아들이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으로부터 `네가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관점에서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맡은 책임이 지중하다는 것을 느끼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어서 지구장이면 지구장으로서, 지역장이면 지역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이름을 갖춘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것임을 알았사옵고, 전체를 한 곳에 귀결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지 아니하면 전체의 장이 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권위를 지녀야 이들이 나가 있는 군 전체의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책임자가 되어야 아버님이 공인하는 책임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처럼 저희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하도록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심정과 인격과 말씀을 가져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 이 사회에 큰 파동을 일으키셨습니다. 수많은 가정 가정을 파탄시키는 섭리도 하셨고, 저희로 하여금 동네를 버리고 나오게도 하셨고, 혹은 자기의 군과 도를 버리고 나오게도 하셨사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나라보다도, 어떤 도보다도, 어떤 군보다도, 자기의 부락이나 부모보다도 더 귀한 당신의 뜻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들이 그 가치를 알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섰사오니 뜻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 상대적인 자리에 설 수 있는 책임자의 인연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을 규합해서 취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겠사오니,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절대적인 내용을 나누어 줄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의 희망의 세계가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일의 이 나라는 어떤 선진 국가도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나라요, 역사를 통틀어 자랑할 수 있는 나라로 저희 앞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또한 이 나라의 국민은 세계적인 해방의 기치를 들고 만국, 만민 앞에 승리를 다짐하는 국민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해방의 그날을 흠모하면서 그날을 촉구하고 제시하려는 무리들이 바로 통일교인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그 가운데서도 책임자인 것을 느끼게 될 때에, 전인류역사에 한번밖에 없을 그러한 책임을 갖고 태어난 것을 만우주 앞에 감사해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부모의 인연을 가진 것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갈 길을 모르던 무리였지만 새로운 가치의 기준을 남길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눈물로써 모든 가치를 결정지어야 할 역사적이요 우주사적인 사명이 저희의 어깨에 짊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힘차게 행군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갖추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격체가 되고 화동의 중심체가 되어야 할 이 엄청난 사명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인격자가 되고, 그럴 수 있는 사랑의 실체가 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아버지의 뜻이 내 뜻이요, 내 뜻이 아버지의 뜻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저희가 일치되어 안팎으로 인연을 갖추는 날에는 온 우주에 해방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이루어진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알아야 하겠사옵니다.

저희를 중심삼고 천지를 지으셨고 저희를 잘살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만물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 만물을 사랑하고 그 만물을 보면서 기뻐하는 참된 인연을 갖춘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0년대에는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운세를 맡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명을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에는 1960년대보다 더욱더 새로운 우주사적인 계획을 세워서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활보하는 당신의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저희가 화동의 중심체가 되어 당신 앞에 효의 도리를 다하고 충의 도리를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