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0 to 28-65: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
1970.01.03 (토), 한국 전본부교회

28-50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
[기 도]

아버님, 한국에 섭리의 뜻을 펼치시기 위하여 아버님께서 수십 년 전부터 수고하여 오신 것을 이 민족은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의 무리가 그 뜻을 받들어 역사적인 비참한 역경과 더불어 싸워 온 것을 생각하올 때 이 땅 위에서 책임을 짊어진 자들이 아버님을 위하여 충성은 하였지만 그 뜻을 받들어 최후의 종점까지 가기는 참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역사를 통하여 알게 되옵니다.

오늘 이 아침에 모인 저희들에게 이제부터 가야 할 행로를 아버지께서 맡아 가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슬픔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이어 나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한국 땅에 아버지의 뜻을 세우기 위한 역사적인 수고의 터전을 저희에게 상속해 주셨사오니, 이제 저희들은 금후에 가야 할 전체의 뜻이 아버지의 영광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제물이 되어 저희에게 맡겨진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자리에는 전국에서 수고하던 당신의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여기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한몸 한뜻이 되어서 1970년을 장식하여 아버지 앞에 참된 제물로서 고이 바쳐질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던 그 뜻이 오늘 저희들로 말미암아 결실되지 않으면 안 되고, 예수가 바라던 그 뜻이 오늘 저희들로 말미암아 결실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적인 사명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수많은 피의 대가를 치러서 저희들에게 상속되어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서부터 새로운 광명의 천국을 개문하여 입성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바라시며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참아 오셨고, 예수와 성신도 참아 오셨고, 또 죽음길을 갔으며,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포악한 원수들의 손에 순교의 피를 흘리면서 이날을 고대하고 참아 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역사적인 초점상에 처해 있는 저희 개체의 사명이 얼마나 중차대 한가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들레헴의 한 고을에서 외롭게 태어났던 예수도 아버지로부터 인연되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뜻을 오늘날 한국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 횡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음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가 얼마나 긴장되고 심각한 자리인가를 저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의 실수로 인해 잃어버렸던 그 모든 것을 예수로 하여금 탕감복귀하게 하시어 당신의 뜻을 결실시키려 했던 6천년의 아버지의 거룩하신 복귀섭리역사를 저희들이 회상하면서, 오늘 저희 자신들의 마음과 몸을 새로이 갖추어 온전히 아버지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자녀들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에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에 모였사오니 2천년 전 예수의 슬펐던 사연을 동정하며 그가 원했던 모든 목적을 저희의 실체를 통하여 거두어 들일 것을 새로이 맹세하고 다짐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예수의 탄신을 축하하고, 예수의 소원을 성취해 드릴 수 있는 저희 자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기억하는 수많은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8-52
말 씀
하나님의 섭리는 복귀섭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복귀섭리의 한계점은 본연의 기준을 완성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8-52
복귀섭리의 한계점
그 본연의 기준은 어떠한 물질을 중심삼고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삼고 완성하는 것입니다. 즉, 본연의 아담 해와가 완성의 기준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가정의 형태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복귀섭리의 한계선인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참된 가정으로서의 하나의 씨가 될 수 있고 모델이 될 수 있기에, 그 가정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한계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짓 부모가 생겨났으니 그 거짓 부모의 모든 사연을 제거시키고 새로이 참부모의 인연을 이 땅 위에 성립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의 인연을 성립시키는 기준이 가정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참부모로부터 참다운 자녀가 나오고, 참다운 자녀로부터 참다운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복귀섭리의 한계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서러워하신 것은 결국 무엇 때문인가? 복귀섭리의 한계점이 되는 창조이상, 즉 아담을 중심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세웠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서러움이 여기에 개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뜻과 더불어 일치되지 못한 인간들에게도 역시 그 뜻을 완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슬픔이 개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한과 인류의 한은 어느 때에 풀릴 것이냐? 본연의 이상적인 가정이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이 풀리는 것이요, 인간의 한도 풀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소원이 성취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펼치시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타락권내에서 죄악의 혈통을 받고 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죄악권을 탈피한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 해와와 같은 창조이상의 사람입니다. 그러한 이상의 사람을 어떻게 재현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신앙을 중심삼고 바라는 인격은 타락 전의 아담을 중심삼은 것이요, 그 소원의 중심은 죄 없는 환경에서 본연의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28-53
예수 탄생의 목적
이렇게 볼 때에 예수는 무엇 때문에 탄생했느냐? 예수가 탄생하게 된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4천년의 역사적인 기반을 닦은 것은 타락한 환경권을 수습하여 거기에 하나님이 인연맺을 수 있는 환경을 상속해 주고 하나님이 본시 찾고자 원하던 하나의 남성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남성을 세워 가지고 거기에 상대적인 이념을 갖추어, 그 환경에서 비로소 창조이상의 기준을 실현 시키기 위해 예수를 보냈다는 것은 우리가 원리를 아는 사람으로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가 출발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가 생활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가 절대적으로 사명을 감당하여 나갔더라면 오늘날 기독교의 역사는 절대로 그런 비참한 역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소원인 창조이상의 한계점이 될 수 있는 그 기준에서 예수를 중심삼은 환경이 갖추어졌더라면 사탄의 참소니 핍박이니 싸움이니 하는 비참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러한 자리에서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첫째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타락한 인간 세상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역사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역사적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죄악을 청산지어야 할 사명이 배후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요셉과 마리아를 중심삼은 가정과 유대교단이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만일 요셉 가정과 유대교단이 하나가 되고 예수와 환경권이 일치되었더라면, 예수의 배후에 남아진 역사적인 탕감내용을 그들과 일치시켜 사탄에 대한 하늘의 결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이 평면적으로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생전에 다 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적인 배후의 인연을 살아서 청산짓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8-54
예수의 사명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단순히 그 시대 사람들이 책임을 못해서라기보다 청산해야 할 역사적인 배후의 내용을 해결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걸려서 죽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배후의 사연을 탕감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처한 환경이 승리적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교가 이루고 있던 그 환경이 그냥 그대로 예수 앞에 상속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속되기 위해서는 배후의 엉크러진 모든 사연을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러한 입장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하신 예수님은 탄식의 생활을 거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내적인 고충과 외적인 시련을 극복하여 기어이 그 목적을 달성하려 했지만, 끝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역사적인 배후의 인연을 청산지어야 할 것이 그냥 그대로 그 시대에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나님을 배반하여 나온 원인이 무엇이냐? 시대 시대마다 사람들이 배반해 나온 그 근본 동기가 어디에서부터 연결되느냐? 시대 시대에까지 남아 있는 , 역사적으로 탕감되어야 할 배후의 모든 요건들을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환경을 중심 삼고 계속해서 배반의 조건이 제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경이 예수님 앞에 부딪쳐 올 때 예수님은 이것을 홀로 해결지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자신이 이런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지은 다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인 문제만 해결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지음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기준을 그 환경권내에 실체로 거두어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교단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한 종교였으니 그 역사적인 종교에 남아져 있는 모든 탕감조건을 해결지음과 동시에 그 탕감해야 할 유대교권이 예수님 앞에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과정은 언제나 복귀섭리노정에 남아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먼저 역사적 배후에 남아진 탕감조건을 제시하여 이것을 승리로 매듭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리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승리는 그 시대의 승리로 수습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결국 무엇이냐 하면 부활섭리로 볼 때 역사과정에서 실패했던 모든 사실들을 재현시켜 가지고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재현된 그 환경은 예수님과 상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과 완전히 일치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예수를 중심삼고 인연된 환경이 하나님의 섭리와 더불어 새로이 출발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인연이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감돌면서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28-55
우리의 책임
여기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을 두고 볼 때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나서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어떠한 책임을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닦아 나온 기독교 역사,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2천년의 역사, 전체의 섭리로 보면 6천년의 역사, 이 역사적인 배후에 제시된 모든 탕감조건을 청산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청산짓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청산지은 것을 실체로 재현시켜 부활의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영광된 아들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영적 복귀를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제 2이스라엘은 배후에 영적 복귀섭리의 인연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연을 상속받아 탕감의 조건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는 기독교의 소망을 완전히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실체적 환경, 다시 말하면 환경에 있어서 실체적으로 부활시킬 수 있는 환경의 일체권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영적 승리의 기반을 실체 승리의 기반으로 만들 수 있는 부활역사를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역사를 제시하기 위해 움직여 나온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인연은 여러분 개인에게도 있는 것이요. 가정에도 있는 것이요, 종족 민족 국가에도 있는 것입니다.

가정 자체를 두고 보면, 하나의 가정이 나오기까지에는 하나의 가정이 나타나기 위한 역사적 배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가정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 남아진 참소조건을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참소의 조건을 끊어야 합니다. 끊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체로 부활시켜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빌어 말하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지금까지 하나님이 섭리해 나온 노정에 있어서 제시했던 모든 탕감조건들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것들을 횡적으로 재현하여 탕감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그 가정이 나타날 때까지의 모든 탕감조건과 그 가정 자체가 앞으로의 환경에서 세워야 할 탕감조건, 이 두 분야에서의 사명을 완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롭게 해방된 나로서, 역사적으로 승리하고 시대적으로 승리한 나로서 출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섭리의 내용인 것입니다.

28-57
예수에 대한 요셉 가정의 책임
이와 같은 입장에 있던 예수는 그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알고 책임을 지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예수 자신에 있어서 제일가는 소원이 무엇이었겠느냐? 그것은 가정을 갖는 것입니다. 그 발판이 되어야 할 가정이 어떤 가정이냐? 바로 요셉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그때까지 4천년에 걸쳐 찾아 나온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 역시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그 본연의 가정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정부터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찾아 세운 것이 요셉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 가정에서의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어떤 뜻이 있느냐? 그들은 역사적인 우리의 조상을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종적인 조건을 제시함에 있어서 그 탕감조건을 막아낼 수 있는 승리한 하나의 가정형태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 단계, 즉 완성 기준을 남긴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여 떨어져 내려온 가정이 아니라 거기서 새로이 올라갈 수 있는 가정의 기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의 기반을 예수님이 상속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상속받는 그 자리는 4천년 역사과정의 승리적 실체를 상속받는 자리입니다. 그 상속된 기반 위에 서서 예수님은 현실적인 환경을 이루어 그 환경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연후에 현실분야에 있어서의 탕감조건이 제시되어야 됩니다. 이 기준이 비로소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 해와의 본연의 기준입니다. 이러한 본연의 기준을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지상에 평면적으로 성립시켜 나가야 했는데, 이러한 환경적인 기반을 상속시켜 주는 터전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과 정면충돌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만약 요셉 가정이 하나되기만 했다면 거기서부터 역사적인 해원성사의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요셉 가정은 복귀섭리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가정이기 때문에 그 가정이 예수와 완전히 일체가 되었다면 그 종족을 중심삼고 12사도를 택하고 그 종족을 민족으로 확대시켜서 내적인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당시의 유대교가 받들지 않더라도 유대교와 대치시킬 수 있는 환경을 결정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 가정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이 모든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벗기 위한 제 2차적 싸움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쓰러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8-58
통일교회가 걸어온 길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도 그와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하나님은 이 한국 강토에서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신령한 역사를 해 나오셨습니다. 해방이 되기 전 1930년대와 1940년대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이를 준비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기성교회는 그런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내적인 사연을 받들고 내적인 뜻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가정들을 통해서, 혹은 수많은 개척자를 통해서 이런 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엊그제, 여러분이 말씀을 들어서 알겠지만 그 철산의 움직임이라든가, 평양의 움직임이라든가, 혹은 원산의 움직임과 같은 이런 모든 움직임은 그 시대적 환경을 대치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받들지 못하면 안 되겠기에 그것을 가일보 전진된 환경에서 하나님은 준비시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교를 중심삼고 역사하신 내용과 요셉 가정을 중심삼고 역사하신 내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신 것과 한국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신령역사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 가정과 요셉 종족이 이루어야 할 그 환경의 내용을 재현시켜서 싸우는 통일교회의 역사는 기독교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영향을 받고 따라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반기를 들고 이와 같은 움직임을 끊어 버리고 막아 버리는 일에 앞장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세워야 할 여러 신령한 단체들로 하여금 요셉 가정과 같은 사명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모든 탕감의 조건을 맡고 나설 수 있는 가정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백 퍼센트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들은 나타나는 결과는 알았지만 그 내용을 알아 가지고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숱한 역사노정을 통해서 이 시대권내에 나타난 그 집단들의 역사는 십여 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역사의 배후에는 6천년의 기나긴 섭리의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새로이 오시는 주님과 완전히 연결되어 모든 사회와 환경을 여기에 일치시켜 하나의 방패가 되고 완전한 축이 되어 그 주위를 완전히 지켜 줄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더라면, 그러한 터전 위에서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되기만 하면 기독교가 믿건 안 믿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걸어온 걸음에서도 예수님이 걸어가던 때와 마찬가지의 환경에 다시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대교가 반대하고 요셉 가정이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 한국 강토에서도 기독교가 반대하고 신령집단들이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가정적 기반을 중심삼아 승리를 결정하여 역사적인 모든 실패했던 기준을 다시 수습할 수 있는 제1기준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는 수난의 길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직접 부딪치게 되면 이것은 내적으로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요, 외적인 입장에서도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즉, 양면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핍박과 육적인 핍박이 일시에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가 개척해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요셉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기틀입니다. 지금까지의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그것은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거치는 조건을 연결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외적으로 보면 세 아들의 가정과 마찬 가지의 기준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조건을 제시하여 내적인 기준을 결정지음으로써 그것이 하나되어 가지고 대 사회적인 싸움을 전개할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28-60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세운 섭리적인 뜻
그러면 앞으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축복가정입니다. 세 아들은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야곱 가정을 대신한 가정입니다. 36가정이란 어떠한 가정이냐? 역사적으로 제시된 모든 탕감조건을 탕감해야 할 대표적인 가정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결국 36가정이 무엇이냐 하면 역사상의 각 시대에 있어서 모든 가정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정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내려온 모든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이 시대에 지상에서 방패막이를 하기 위한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으로 내려온 탕감조건을 막아낼 수 있는 대표적인 가정이 36가정입니다.

그러면 72가정과 120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나? 36가정은 역사적인 대표의 가정이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엮어져 나온 것을 대신한 가정입니다. 이 가정을 중심삼고 현실적인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 72가정과 120가정입니다. 과거로부터 바라며 나오던 가정적인 탕감조건을 막을 수 있는 가정이 36가정이라면, 그것을 현실적인 가정의 기반으로서 막을 수 있는 가정이 72가정과 120가정이라는 거예요. 72가정은 종족을 대표한 가정이요, 120가정은 세계를 대표한 가정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기반에 있어서 요셉 가정과 유대교가 그 당시에 예수를 받들지 못했던 것을 가정적 기준에서 막을 수 있는 과거의 조건과 현실의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36가정의 책임이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모든 탕감 조건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을 완전히 제거시킬 수 있는 하나의 완벽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정의 모든 전통과 사상은 사탄과는 완전히 격리된 전통을 세워야 됩니다. 이 전통을 중심삼고 횡적인 전통의 인연을 72가정과 120가정이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36가정의 책임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8-61
축복가정의 책임
그러면 1970년대를 출발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축복해 준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실수한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빨리 청산짓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개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가정의 자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완전한 세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요셉 가정이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체가 되어 민족적 기준을 탕감시킴으로써 새로운 이스라엘을 편성해야 되는 것과 같이 국가라는 형태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시되어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 현실에 당도한 시점이라 할진대, 내적 정비를 다시 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에 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6가정은 이와 같은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36가정에 구성된 한 가정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오시는 주님의 가정에 방파제가 되어야 합니다. 36가정의 36이라는 숫자는 사방, 즉 360곳을 대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로도 볼 수 있습니다. 1년에 12달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위에 제1, 제2, 제3 가정으로 나뉘어 이 가정들이 종횡으로 하나되고 상하로 하나되어 철옹성 같은 완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선생님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면 여러분이 그 어려움을 중단시키고, 선생님 가정이 져야 할 십자가가 있으면 여러분 가정에서 그 십자가를 책임져서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부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해야 되느냐? 방파제가 되기 위해서 존재해야 됩니다. 이러한 사명을 완결하는 데에는 그들이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외적인 자체로서는 이 방파제를 뚫고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모든 조건을 방비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들은 오직 오시는 주님의 가정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생명과 재산 그 모든 것은 주님의 가정과 주님의 생명이 발전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러한 것들을 비료로 삼아 흡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발전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발전하려면 반드시 다른 분야에서 보급해 주어야 됩니다. 보급해 주지 않고는 발전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보급을 받지 않고는 발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보급이 영적 보급이라 하더라도 어디를 통해서 해줄 것이냐? 직접 해주자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36가정이 잘하지 않으면 보급로가 막혀 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36가정이 책임을 못한다고 참소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왜 가정이 그렇게 문제가 되느냐? 36가정의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발전하고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누구에게 달렸느냐? 36가정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36가정이 잘한다 할 때에는 그 36가정이 주님 앞에 완전한 대상이 되기 때문에, 주체로 오시는 주님의 가정은 더 잘해야 됩니다. 그 대상의 모든 것을 흡수해 가지고 일체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가정들이 문제요, 선생님의 가정이 문제가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기반을 어떻게 닦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싸움을 전개해 나온 것이 지난 10년 기간이었던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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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축복가정을 대표하여 책임해야 할 36가정
이제는 어느 한계의 단계를 선생님이 잡았습니다. 선생님 자체가 중심으로서 외적인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왔기 때문에 비로소 36가정을 통솔하고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시대로 넘어가는 때가 바로 1970년대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36가정을 재정비해야 됩니다. ‘예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 라는 말씀의 제목과 같이 이것이 지금 축복가정들에게 있어서 당면한 과제요,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당면 과제를 놓고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면 예수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고 맙니다. 예수의 탄생도 헛된 것이요, 2천년 동안 수고해 나온 것도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기준을 자체적으로 탕감해야 됩니다.

36가정은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밟고 올라선 가정으로서, 현실적인 기준에서 하늘 가정을 앞에 세우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의 대표자와 현실의 대표자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36가정은 과거의 대표자요 오시는 주님은 현실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실이 비로소 여기에서 완전히 승리한 입장을 갖게 될 때, 이것은 원리적으로 보아서 세계적인 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36가정이 지닌 책임이요, 선생님이 지닌 책임입니다. 알겠지요?

36가정은 역사적인 탕감조건을 막아낼 수 있는 결실의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탕감조건권을 부활해 가지고 탄생한 가정입니다. 그것이 역사적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그 역사와 시대적 기반 위에서 승리한 가정, 현실적 입장에서 승리적 권한을 갖고 나타난 가정입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의 가정과 36가정이 완전히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과거와 현재를 수습해 가지고 그 당시의 환경에서 출발할 수 없었던 그 기준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선생님의 가정이 없으면 이 현실에 있어서 갈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들은 선생님의 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현실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로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여러분들이 앞장 서서 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 가정이 현실적 기준을 중심삼고 앞장서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뒤에서 울타리가 되고, 거름이 되어서 선생님 가정이 발전할 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가정이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안 되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끌고 오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가정을 밀어 주어야 하는 데 반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끌어 오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탕감 기간만 넘어가게 되면 계속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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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동원시키는 이유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로 넘어서면서 가정을 재차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36가정부터 나서라는 것입니다. 72가정, 120가정도 이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1969년도 마지막 12월에 들어서서 특히 가정집회를 강화하면서 이러한 때를 마련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애써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내적인 뜻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특별히 모임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전체를 출동시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모시고 나온 가정으로서 책임 못한 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책임 못 한 것을 그냥 그대로 봐주는 게 아닙니다. 책임을 못하면 현실적인 환경에서 재차 탕감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러한 환경을 다 제거시키고 일선에 나서서 활동하는 것이 거기에 대한 탕감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금번 동계 방학 동안에 여자들을 앞에 내세우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되어진 일들에 대해 여러분들은 감사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입장이요,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뜻이 바라고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 앞에 일체화시킴으로써 예수님이 탄생해서 생애의 목적을 달성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갖는 것입니다. 이 결실을 우리가 새로이 다짐하면서 내일의 여러분 자신을 예수님이 소원하던 이상의 실체로서 나타내 주기를 바라며, 오늘 예수님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데에 더욱 큰 의의를 두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알겠지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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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인간이 타락한 이후 철없는 저희들을 찾아 나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가 많았사옵니까? 면목이 없사옵니다.

아버지, 이제는 저희가 철부지한 어린 시절을 넘어서야 할 때이옵니다. 자기의 있는 재산과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당신이 원하는 예법이 우리 앞에 같이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저희의 지난날을 깊이깊이 뉘우치옵니다.

변치 않는 당신의 깊으신 사랑에 고이 잠길 수 있는 자리를 더듬어 나갈 줄 아는 여기에 모인 전국의 지구장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마음대로 살아 왔사옵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것이 되지 않을 때는 불평도 하였고, 식구들을 못살게 하였고, 본부에 대한 비판도 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1970년도의 새아침을 맞이하여 많은 말 많은 생각에 흐려 있는 마음을 다시 결단하고 다짐하는 자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오늘은 3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할 수 있는 영광의 날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재차 탄생할 수 있는 소망의 실체를 우리로 말미암아 이룰 수 있게 된 것을 증거하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한이 저희에게 맺혀 있기 때문에 저희들은 당신의 한을 거두어 드릴 수 있는 실체가 되어, 오시는 주님과 일체가 되고, 예수의 사명을 분부받은 당신의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찾으시기에 얼마나 수고를 하셨사옵니까? 아버님이 지금까지 세우신 가정이 아무리 못났고, 아무리 부족하고, 아무리 소원에 일치되지 않더라도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사연을 현실적인 가정의 부활체로 이끌어 세우신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천만 번 감사드려도 부족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 가정이 앞으로 오시는 아버지께서 소원하는 가정의 울타리가 되고, 모든 발전의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이 역사를 거쳐 현실로 연결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존중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앞에서 귀한 책임을 짊어진 것은 자기 스스로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역사적인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시대적인 부활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나아가 미래의 소망적인 부활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터전을 닦기 위해서 아버님께서 가정을 세워 주신 것을, 진실로 진실로 감사할 줄 아는 아들들이 되고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러한 감사의 마음으로 모두가 하나되어 가지고 몸부림치면서 내일의 소망의 실체인 하늘 가정을 현실적 가정으로 모심과 동시에, 그 모심의 실체 아들딸로서 사탄이 참소하지 않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전통적 역사와 현실적 역사를 그 아들딸 앞에 남겨 줘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남겨 주어 상속받은 아들딸은 역사를 승리하고 시대를 승리한 터전에 서게 됨으로써 미래의 대표자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날 36가정과 오시는 주님의 가정이 일체됨으로써, 지금까지 흘러온 역사적인 모든 복잡한 인연이 탕감되어 앞으로 소망의 자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천국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72가정은 36가정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 지를 모르고 살아왔사옵니다. 120가정은 72가정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왔사옵고, 430가정은 120가정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사옵니다.

이제는 가정적 전통을 새로이 정하고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1970년대를 향하는 새아침, 예수 탄생의 거룩한 성탄일을 단장하고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 시간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기뻐하시고, 오늘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희 자신을 자각하고 내일을 맞이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는 내적 외적 승리의 터전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