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76 to 28-301: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
1970.02.11 (수), 한국 전본부교회

28-276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
[기 도]

높고 귀하신 보좌에 계시는 아버님,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시면서 낮고 천한 이 땅을 복귀하시기 위하여 한없는 싸움의 역로(逆路)를 거쳐오신 아버님이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아버님께서 생각하신 본의가 아니라 인간시조의 타락의 결과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실패의 책임이 얼마나 엄청나고 엄중한가 하는 사실을 이 시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아담 해와의 한 날의 실수만 없었다면 당신이 소원하시던 귀중한 역사 노정이 핏자국과 눈물자국으로 남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 시조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한 많은 당신의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억울하고 분한 사정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으시지 못하고 홀로 이 세상을 복귀해 오신 아버지의 슬픔과 억울함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고, 그 동안 아버지를 섬기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아버님께서 소원하시는 그 목적과 일치되지 못하고, 시대 시대에 따라 섭리하시는 그 섭리의 뜻 앞에 도리어 배반 하기 일쑤였던 선조들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를 한 때, 한 시기가 아니라 수천년 역사 동안 거듭해 왔습니다. 한 번뿐만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을 가(加)하여도 그칠 줄 모르는 역사였습니다. 오늘날 인간 가운데 아버님의 분하고 원통한 사정을 아는 아들도 딸도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땅 위에 살고 있는 만민들이 손을 모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회개의 통곡을 연속적인 역사와 더불어 같이한다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죄인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버님 앞에 배반의 역로를 더하여 왔던 사실을 그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사오리까? 다만 아버지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과 동정만이 크고 높으신 그 심중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려,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면서 마음과 몸을 다하여 당신과 같은 사랑을 갖고 구원의 손길을 펼 줄 아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 옵소서 .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세계에 남아지는 민족이 되겠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가도 역시 그러하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더불어 이 땅 위에 남아지고, 세계와 더불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없고 그러한 민족도 나라도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이 땅 위에 있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바라볼 적마다 슬픔을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세상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는 아버지의 두 어깨에 짊어진 십자가가 얼마나 과중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벗어 버리고 쉬고 싶으시나 벗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께서 6천년 역사의 고빗길을 거쳐 찾아 나온 것은 잃어버린 아담 하나를 복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아벨을 통하여, 노아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세를 통하여, 예수님까지 연결한 것은 땅 위의 인간들을 종의 입장에서 양자의 입장으로, 양자의 입장에서 자녀의 입장까지 끌어올려서 본연의 아들딸의 모습을 찾기 위한 역사적인 싸움의 노정이었던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한 아들이 이 땅 위에 나타났던 그날은 온 천지가 환희에 벅찬 날이요, 온 우주는 영광 가운데에서 기쁨으로 찬양했어야 할 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홀로 계시는 아버지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 나타났었지만, 나라를 위하여 보내신 아들이었지만 나라가 없었기에 그 아들은 불쌍한 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는 민족을 위해 보내셨고, 가정을 위해 보내셨지만, 민족이 없고 상대가 없었기에 불쌍한 예수님이었던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께서 동정하실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탄이 접하여 화살을 퍼부었으며, 몰고 몰아 십자가의 길로 내몰았던 그 역사적인 원한을 저희들은 알아야겠사옵니다.

그날의 한스러움은 아버지에게 슬픔을 가했사옵고, 이 땅 위에 원한의 담벽을 높였사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슬픔을 헐기 위한 싸움의 역사는 또다시 시작되었고, 땅 위에 사망의 장벽을 헐기 위한 싸움도 우리를 통하여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님과 이 땅 위의 사람들이 하나되어서, 하늘에 맺혀 있고 땅에 맺혀 있는 모든 싸움의 여건을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주체적인 입장에 계셨지만 땅 위의 사람들이 그 상대적인 입장에 서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싸움은 어느 한 때도 하늘편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역사가 연장되어 2천년이 흘렀사옵니다. 수많은 국가와 대운을 더듬어 오시면서 어떤 민족, 어떤 국가를 중심삼고 머무르실 한 날을 고대하던 그 발걸음이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중 위에 머무신 것을 아는 저희들, 당신의 내적인 동정의 마음을 길이길이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옵니다. 한민족은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경배해야 하고, 이것을 아는 저희들은 생축의 제물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제물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국 땅 한 곳에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펴신 그 날이 바로 50년 전 이날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불쌍한 모습의 아들을 이 땅 위에 보내주셔서 저에게 개척자로서의 사명을 분부하신 아버지의 그 명령에 따라, 철이 들던 시절부터 이십여 성상을 지낸 지금까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남겨진 사탄권세를 무너뜨리는 싸움의 역로를 거슬러 올라오기 위해, 아버님,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사옵니까? 아버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얼마나 분하셨습니까? 얼마나 억울하셨습니까?

그러나 분해도 분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되는 아버지였사옵고, 억울해도 억울한 표정을 할 수 없는 아버지였사옵고, 비통한 사정을 통고할 수 없으셨던 아버지였음을 저희들은 정말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민족이 알아 모셔야 할 때에 민족은 배반하였사옵고, 교단은 갈수록 그 영광을 찬양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늘편을 원수로 몰아쳤던 과거지사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분함이 가중될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오늘 반세기의 고개를 넘는 이날을 맞이하여 제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 영광의 손길로써 같이하여 주시옵고, 해방의 첫발을 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천주의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의 모습들이 되고, 아버지의 무한한 슬픔을 풀어 드리는 아들딸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기쁜 날이 되어서 이들에게 쌍수를 들어 축복 하여 주옵소서.

남한 각지에서 이날을 축하하기 위하여 마음을 모으는 자녀들 위에 아버님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세계 만방에 널려서 이날을 축하하고 이곳을 그리워하며 기도하는 당신의 외로운 무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는 눈물의 길을 걸어왔사오나, 이제부터는 눈물의 길을 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이 살아 계신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시어서 그들에게 아버지께서 같이하신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권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고, 아버님의 전권과 전능, 전체의 역사가 그들과 더불어 동반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영계의 수많은 애혼(哀魂)들의 해원성사를 저희들이 할 수 있게 하시고, 후손에 미쳐질 죄의 뿌리도 저희들로 말미암아 뽑아버리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참부모의 인연을 통하여서 연결되어 있는 혈족이 여기 있사옵고, 참부모의 가정을 통하여 세상에 세운 당신의 족속이 여기 있사옵니다. 이들을 통하여 민족을 해원하시옵고, 아버지 앞에 제물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이들 위에 아버지께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지난날의 역사를 전부다 청산짓고 새로운 역사를 맞게 하시옵소서. 환희와 영광의 새 아침과 더불어 금후의 1970년대를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이날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사랑하는 딸을 이 땅 위에 보내신 지 만27주년이 되는 날도 되옵니다. 참부모라는 이름을 세우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안팎으로 준비하셔서, 이 자리에 승리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녀들에게 축복의 은사를 베풀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을 갖추어 주신 이 놀라운 은사 앞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그 사연이야 어떻든 내용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승리의 결과를 가져 온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님, 이제는 걱정 마시옵소서. 아버님, 이제는 기뻐하시옵소서. 다시는 패망의 흔적이 이 땅 위에 없을 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승리의 천국은 기필코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의 통일교단이 그럴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되어서, 이것을 중심삼고 횡적인 세계로 뻗어나가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에 당신이 승리하고, 자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참부모의 인연으로부터 자녀의 인연과 축복받은 종족과 민족의 인연이 온 세계에 뻗쳐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들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내적으로는 수많은 종교를 대표하여 통일의 제단이 들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이 여기에 일치된 가운데서 안팎을 하나로 통일시킴으로써, 당신의 권위와 존엄을 찬양할 수 있는 거국적인 터전을 갖추어 만방을 해방할 수 있는 제 3승리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날이 있기까지 수고하신 아버지의 은사를 감사하오며, 지금까지 피의 제단을 통하여 모든 역사과정에 의의 터전을 연결시켜 놓아준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을 찬양하옵나이다. 아버지, 그들을 이 아침에 특권적인 은사로 품어 주시옵고, 그들에게 땅을 대신하여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이 시간 부여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아버지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고, 그 다음은 열두 제자를 중심삼은 열두 교파와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저 나라의 영인들, 그리고 땅 위에 결속되어 있는 수많은 교도들과 기독교를 중심삼고 방계적인 입장에 있는 4대 종교 위에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내릴 수 있는 특권의 은사를 가하시옵소서. 그들도 평면적 기준을 통하여 땅 위의 자기 후손들과 자기와 인연되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천국을 향하여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동역자가 되고, 민족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땅이 아버지의 뜻 앞에 절대 굴복하는 가운데 당신은 참부모와 더불어 절대 중심이 되시어, 온 천주의 영광을 홀로 장악하시고 주관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제 3해방을 성취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도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날을 중심삼고 전후좌우의 날들 위에 아버지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번 기회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축복할 수 있는 터전이 높이 들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1970년도 이후에 찾아올 통일의 운세, 천주의 운세가 하나되어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가 빛나서 태양과 같은 생명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온 천주의 권한을 세우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이 아침에 행해지는 모든 전체를 기쁨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부탁하옵나니,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원한을 맺히게 했던 수많은 원수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수십 성상 뜻을 따라 나오는 노정에 있어서 반대했던 역적의 조상들도, 아버지, 용납하시옵소서. 하늘 앞에 반기를 들지 않고, 순응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찬양하면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기의 사명과 본분으로 알게끔 그 마음과 몸을 주관하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들도 그러하옵기를 부탁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전부를 맡기오면서 나머지 여생도 당신 앞에 완전히 제물될 것을 맹세하옵니다. 자녀들이 완전히 하나되기를 다시 한번 원하면서, 참부모의 성호를 받들어서 이 아침에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8-282
말 씀
오늘은 양력으로는 1970년 2월 11일, 음력으로는 1월 6일입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이 태어난 지 만 50년을 맞는 날입니다.

반세기 동안 하나님께서 수고하여 주신 연고로, 오늘날 우리의 뜻은 세계적인 기반을 닦게 되었고, 이제는 뜻이 가는 길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승리의 결과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터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터전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분이 나를 따라오면서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다하여 이만한 기반을 닦을 때까지 순응해 준 그 노고에 치하를 드립니다. 또한 역사과정의 수많은 우리의 선한 선조들과 이날의 승리를 바라면서 죽어갔던 모든 순교 선열들이 이 땅에 승리할 수 있는 한 터전이 닦여진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배후에서 영적으로 협조해 준 공로 앞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이와 같은 감사의 터전 위에 우리들에게 한 가지 소원이 남아 있는 것은, 우리들의 후손이 되고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의 후손이 될 수 있는 세계 30억 인류를 승리의 족속으로 세워 아버님께 몽땅 바쳐 드리는 것입니다. 아버님 앞에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현재 인류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 1대나 3대 안에 이 세계 복귀노정을 완결지어야 할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기해 여러분 앞에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28-282
본래 인간에게 맡겨진 사명
이 땅의 모든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존재할 수 있는 원인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 나라,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계도 결과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환경의 인연이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그 환경이 갖추어질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의 사회 형성, 하나의 국가형성, 하나의 세계 형성을 두고 볼 때에, 그것을 이어오는 것은 물론 우리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그 인간이 형성될 수 있는 근본 원인은 인간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 존재의 입장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형성될 수 있는 그 동기와 내용이 있어야 되고, 원인이 필히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개체 가운데는 무한한 소망이 있고, 무한한 욕망이 있고, 무한한 이상이 있습니다. 결과의 실체인 우리 인간이 이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럴 수 있는 원인의 실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 원인의 실체는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神)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전체적인 동기이며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원인인 하나님께서 그런 내용을 지니셨기 때문에, 결과되는 인간도 그와 같은 내용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인된 하나님과 결과적인 우리 인간이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귀결점이 인간세계를 중심삼고 나타나야 됩니다. 이것이 인간을 찾아온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철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그 씨를 통해서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함이듯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세운 것도 그 목적이 아담 해와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를 통하여 거두어야 할 세계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세계인은 본래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전체적인 상징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전체적인 상징체에게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 동산을 온 세계를 중심삼고 완성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상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완성시켜야 하는 양세계에 대한 사명이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 개체가 지니고 있는 사명은 우리가 칠, 팔십년 혹은 일세기 미만의 생애를 지내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개체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천주사적인 전체 이념세계를 완성하고 완결시키기 위하여 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태어난 목적 이요, 살아가는 목적임을 다시 한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엄청난 것이 인류 시조에게 생을 지니게 하신 하나님의 창조 위업이었음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은 인간이 생을 지니고 그 생의 과정에서 세계화를 이루는 그날을 얼마나 바라셨겠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소원과는 정반대로 비통한 슬픔의 출발을 보았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 인류와 만우주에 있어서, 또 이 우주와 인연되어 계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이요, 견딜 수 없는 비통한 사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슬픔과 이 비통함이 역사의 어떠한 슬픔과 비통함보다 컸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서 이 비통함과 슬픔이 제거되는 날을 맞이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행복의 요인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이 품고 있는 꿈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꿈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이 필연적 결과인 것입니다.

28-284
통일교단의 사명
그러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생애를 바쳐 살아가는 하나의 목적은 무엇이냐? 이상세계의 실현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제일 동기되시는 하나님에게 맺혀져 있는 슬픔과 비통함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 생애의 목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인생행로에 있기 때문에 자고로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남아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회고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슬픈 인생이라는 것은 슬프신 하나님이 동기의 인연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들이 갈 길이 어디냐? 우리는 행복의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없는 타락의 후예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락으로 인한 원한의 근거를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고, 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해결지을 때까지 몸부림치며 찾고 또 찾아 넘어가야 할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나고, 그러한 자리에서 살고, 그러한 자리에서 죽어간 역사적 사실을 바라볼 때에, 이 땅 위에서 이러한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느냐? 이러한 원한의 근거를 파탄시켜야 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성현이 있었느냐? 또 그러한 책임을 진 구세주가 있었느냐?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인류의 슬픔이요, 땅의 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인들이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길을 출발하였으되 그 목적을 성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계에 널려 있는 종교는 석양길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의 비통함과 슬픔을 제거하기 위해 출발하였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기에 동역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종교가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수많은 종교도 그 사명적인 책임이 이 원한의 근거지를 폭파시키는 데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이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정을 바라보며 오늘날 우리 통일교단이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이상세계의 실현이 아니라, 이 원한의 근거지를 폭파시켜야 할 것이 우리의 제일 사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50년을 넘기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회개해 나온 그날 그날들이 하나님이 원하셨던 기쁨의 날들이 아니었으나, 역사적 흐름 가운데서 맺혀진 사연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 역사과정에서 남아진 원한의 근거 지를 폭파시킬 수 있는 해원성사의 날들이 되기를 바라 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우리 앞에는 기쁨의 날을 맞이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이 가는 길이 평탄하지 못하다는 것을 현대의 세계 정세를 통해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가 가야 할 운명이 평탄하지 못한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인류가 가야 할 금후의 역사가 암담하기에 하나의 등불이나 횃불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어둠가운데서 허덕이고, 사망권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의 무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가일층 결의하여 이 어둠의 행적을 타개하고, 원한의 구덩이를 메워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개척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신 결과적인 승리의 터전을 계승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그 어떠한 것을 추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승리의 결과로 남아질 수 없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여러분 앞에 말하고 싶은 우리의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남아진 하나님의 슬픔을 제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단은 이러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우리들은 민족의 한스러운 것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민족이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을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세우시어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한 섭리의 뜻이 있는 것을 알고 이 민족 앞에 한이 되는 요건이 있으면, 그것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것을 민족이 책임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효도를 다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겠다고 부르짖는 통일의 역군들을 통하여서만이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민족의 슬픔을 도맡아 책임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드릴 수 있는 민족적 해원의 기반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민족 해원성사를 위하여 1970년대를 맞겠다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8-28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최후의 통첩
나 자신도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1970년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50여 년의 생애를 지내면서 나머지 여생을 앞에 놓고, 어려운 민족의 해원을 다시 맡아서 이 민족의 한을 폭파시킴으로써 우리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승리의 기점을 쟁취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게 될 때 하나님이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인연과 하나님의 재출발의 분부가 그 자리에서부터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죽든지 살든지 이 민족의 어려움을 책임져야만 되겠습니다. 세계를 거쳐가야 할 원한이 아직까지 하나님 앞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민족의 원한을 책임짐과 동시에 세계에 남아진 원한을 책임질 수 있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나라는 많더라도 그 중에 책임질 수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더라도 그 가운데 어떤 종교도 책임질 수 없는 시대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무리는 오늘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죽는 것은 당연한 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죽는 것도 당연한 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여러분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참된 제물이 되는 것을 당연지사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무리가 되었다 할진대는, 세계를 구하기 위하여 고스란히 바쳐 드릴 수 있는 하나의 제물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크면 클수록 이 원한을 끊고 해결시켜 나가고야 말 사랑의 시기가 속히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원한의 조건들을 탕감해 주고 싶어하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들이라고 축복을 해주셨으나 사랑하는 혈족이라고 축복하신 이 무리들을 또다시 죽음의 자리에 내세워야 하는 비통한 입장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난 그날부터 행복을 추구하고, 이상세계의 모든 영광을 그들 앞에 상속해 주고 싶은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은 컸지만, 그럴 수 없는 아버지의 비참하고 비통한 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의 고개를 넘어 원수의 적진을 전부다 소탕하고, 원수의 후예들이 자연굴복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굴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히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수고한 아들딸들을 내세워 자랑하고, 또 천상에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들을 세워 축하하는 기념일을 책정하자고 하는 날을 맞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야 할 행로가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과정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나온 과정을 생각하여 볼 때, 개인으로 싸울 수 있는 한의 구덩이는 메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중심삼은 한스러운 고빗길을 이미 넘은 기준 위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럴 수 있는 권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중심삼은 기준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앞에 분부하는 특권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이 비참함과 원한이 남아 있는 구덩이를 메우고, 막힌 담을 헐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는 최후의 통첩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8-288
우리가 다시 한번 명심해야 될 것
1970년대에는 이 민족 앞에 가로놓인 원한의 구덩이를 어떻게 타파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생애를 바쳐 싸워 나온 그 경험에 온갖 정성을 가일층하여서, 승리적인 결정을 다짐해야 할 것이 선생님에게 남아진 생애의 사명이요,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그대들의 사명인 것을 명심해야만 되겠습니다.

한국은 불쌍한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불쌍한 나라입니다. 사방이 원수들에게 포위당해 있습니다. 우(右)로도 갈 수 없고, 좌(左)로도 갈 수 없고, 앞으로도 갈 수 없으며, 뒤로도 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단 하나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기에서 비상천(飛上天)하든가 날아 옮겨가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죽음의 고비고비가 우리를 놓고 울타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과 더불어 깨지고 망할 수 있는 각오를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더불어 망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깨지는 자리에 섰을 때 부활의 역사가 있었듯이, 이 민족의 운명도 그와 같은 운명을 띠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한국이 제 2이스라엘권의 역사를 상속받은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예수님이 민족적인 십자가의 고개를 개인으로 넘은 것을 대신하여 국가적인 십자가의 형틀을 지고 넘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때에도 한국을 위하여 먹어야 됩니다. 한국을 위함은 세계를 위함이요, 세계를 위함은 하나님을 위함입니다. 이처럼 전체가 하나로 결속된 자리에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 식사를 대하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의 호흡을 통하여 울려 나오는 고동소리를 이 민족을 통하여 해원성사하게 해 달라고 분부하시는 하나님의 절규로 듣고, 내 피를 퍼부어 이 민족의 한을 해결짓겠다고 제물의 자리를 솔선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이날을 축하해야만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기쁨의 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설사 이날이 우리 자체의 기쁨의 날이 되지 못할지라도 미래의 기쁨을 대신할 수 있고, 또 상속받을 수 있는 날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회상하여 마음속에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내가 아무리 비참하여도 우리의 비참한 동기의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억울하여도 우리의 주체되시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이 땅 위에서 죽음길을 간다 하더라도 일생의 죽음은 한번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영생의 노정을 바라보며 나오시는 길 앞에 있는 타락한 후손들을 사망권내에서 부활시키기 위해 수고해 오셨습니다. 사망의 고빗길을 거치지 않고는 부활의 옥동자를 볼 수 없는 것이 천적인 원리이기 때문에, 죽은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숱한 죽을 고비와 죽음을 체험하게 하지 않고는 부활시킬 수 없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몇천만 번 죽음의 수난을 당한 아버지의 내적 심정의 상처를 헤아려 볼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한 번 죽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상심하시고, 아버지 앞에 피해의 결과가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음길을 맞이해도 한을 가지고 갈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며 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죽어 민족을 살릴 수 있다면 그 민족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실 것이고, 내가 죽어 세계를 살릴 수 있다면 그 세계는 하나님과 함께 남아질 것입니다.

나는 갈지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남아지는 일은 영원한 승리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남을 수 있는 민족을 바라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고개를 결단지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그 내심의 애절한 사연은 천정의 사연과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은 혼자요 하나님은 무한인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죽음의 고통은 한번이요, 하나님의 죽음의 고통은 무한인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마음과 세포와 뼈에 같이 느껴지는 체휼적인 자리에 들어간 예수님은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하여 책임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충(忠)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이요, 또 세계적인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를 원하는 사람도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그 반열에 동참할 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성현이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행적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되고, 하나님 혈족의 왕자 왕녀의 인연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 걸음 가운데 천만보의 죽음길이 가로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가치기준으로 봐도 응당 비례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28-290
내가 여러분에게 유업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것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나라를 위하여 죽을 것을 몇 번이나 결심해 보았습니까? 여러분들이 뜻길 앞에 이 세계를 위한 제물이 되겠다고 얼마나 결의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어떠한 기반을 닦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높은 명망을 남겼다고 해도 그것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못 됩니다. 단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원한의 터전 위에서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르어 그 원한의 분량을 감소시켰느냐 하는 그 양이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동기요 재료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절대적인 자랑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민족해방을 위하여 승리적 충의 전선을 결정해야 합니다. 1970년의 연두에 이날을 맞아 우리들이 모여 마음을 아버지 앞에 향하고, 하나님 앞에 자세를 갖추고 옷깃을 여미면서 내 자신은 아버지 앞에 바쳐진 몸인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불행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한을 감소시키기 위한 탕감의 제물로서 바쳐진 몸인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이 걸어온 길이 그러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단지 이 민족 앞에 남아진 해원의 날을 고대할 뿐이었고, 세계에 남아진 해원의 날을 고대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전체의 목적인 것을 이날을 기하여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유업으로 남겨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복도 아니요, 하나님의 위업도 아닙니다. 아직까지 원한의 근거로 남아 있는 세계적인 한입니다. 그것을 유업으로 남겨 주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축하하는 이날을 맞이하여 나는 무한히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서러움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우리들로서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인 것을 알고, 감수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의 한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상대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하나의 친구를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의 제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의 아들딸을 찾아 나왔습니다.

이 아침을 맞이하면서 심정의 절대적인 자리에 있는 그 하나를 찾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 서러움보다도 6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그럴 수 있는 아들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앞에 나도 미급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서러움이 더욱 큽니다.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한을 남기고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남기고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남기면서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가든지 하나님의 한을 취하면서 죽고, 살고, 가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소원하시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임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명심하면서, 여기에 서있는 스승을 생각하는 것이 이날을 축하하는 자로서의 가치를 자각하고 그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 가정을 뒤돌아보면, 사탄권세의 울타리 속에, 사탄의 철망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낳아 주고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키우기 위하여 밤낮으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에 대한 수고의 대가를 원치 않으면서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을 돌아보게 될 때에도, 이들은 우리와 같이 동반해 있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본을 갖추어서 전진하는 명령의 방향을 갖추지 못한 자리에 선 것을 볼 때에 이것이 또한 비참한 것입니다.

나를 낳아 준 부모도 그렇지만 한 부모의 혈육을 받고 나온 형제도 아직까지 사탄의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또한 형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친척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하며 세계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28-292
하나님의 전체 유업을 상속받는 길
이 세계의 죄악의 구덩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인간 개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해방을 추구해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의 해방을 가져와서 자기 형제, 자기 가정, 자기 종족, 자기 민족, 자기 국가를 찾아 나와야 할 사명을 짊어진 것이 국민이 되고, 아들이 되고, 형제가 된 의리요 또한 그 책임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가정에 대한 원한의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요, 종족에 대한 원한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요, 민족이 대한 원한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이요, 국가에 대한 원한의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제 중에 기억될 수 있는 형제가 되는 길이요, 친족 중에 기억될 수 있는 족장이 되는 길이요, 민족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책임자가 되는 길이요, 국가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선군(善君)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전체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수고의 대가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영광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돈을 투자해서 제2의 수입으로 이익을 추구하듯이, 오늘 우리의 생애를 바쳐서 그 대가를 치르라는 것은 비참한 것이 아니요, 망하는 길이 아닙니다. 미래에 영광의 대가로써 갚아 줄 수 있는 하나의 준비된 유업이 있기 때문에 영원히 흥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지금까지 당신의 혈족, 당신의 친족, 당신의 선민을 무정하게 죽음의 길로 내몰아 오셨던 것입니다. 미래에는 선민보다도 더 큰 상급이 있기 때문에 선민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국가보다도 더 큰 상급이 있기 때문에 국가를 희생시켰고, 세계보다도 더 큰 상급이 미래에 남아져 있기 때문에 세계라도 희생시켜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앞에 이러한 것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완전히 알았다면, 그 대가를 치르는 데 있어서 서슴지 않고 몽땅 치를 수 있는 결의를 이 아침에 하기 바랍니다. 이러한 대가를 책임지고 치르겠다고 나서는 길이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노정이요, 그 책임을 감당하는 자리가 통일신도들이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해야 할 책임, 승리를 결정지어야 할 책임을 완수하지 않고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제3 해방의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왜정치하에서 제1의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2의 경제적 해방을 표준으로 하여 나가고 있지만, 제3의 정신적 해방을 갖추어야 할 문제가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제3의 해방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니 그것을 책임진 우리들은 제3의 해방을 맞이하는 그때까지 남아질 수 있어야 하고, 그때까지 책임진 싸움노정에서 언제든지 주체성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3의 해방을 성취할 수 있는 주인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는 민족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이제는 세계적인 운세를 맞을 수 있는 경계선에 도달하여 있습니다. 국운으로 보나, 사회적인 모든 민심으로 보나, 개인적인 마음으로 보나, 이 모든 것이 막다른 골목에 다 달았습니다. 끝을 맺어야 할 접경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넘는 시간은 삼팔선을 중심하고 이북에서 이남으로 넘어오는 그런 시간과 같이 절박한 시간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닦았다는 사람은 그 책임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계선을 넘는 사람치고 자기의 생명과 재산 전체를 가지고 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경계선이 험하면 험할수록 내 생명을 어떻게 지니고 넘느냐 하는 것이 제일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경계선을 넘으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가 되지 않고는 넘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돌파하는 한 순간을 갖지 않고는 평면적인 환경에서 소원의 무대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8-294
1970년대에 넘어야 할 경계선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역사적인 섭리도 그야말로 접경에 다달아 있습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온 지금은 삼팔선과 같은 경계선을 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넘어야 할 경계선은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한 개인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가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한 민족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국가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1970년대를 통일의 시대, 또는 통일의 연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듣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섭리로 볼 때에도 통일의 연대인 것입니다.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이 경계선을 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을 해원성사하는 해방의 기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하여 가야 되겠습니다. 이 경계선에 원수의 보초가 있고, 원수의 복병이 있으면 이것을 무자비하게 폭파하고, 밀어버리고 넘어가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나 혼자의 몸으로는 약하여 그들을 무찌르기에 부족하다면 우리의 편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 경계선을 넘어야 할 엄숙한 사명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누가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가 하나의 교파를 세우고 싶어서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번 만번 용납하면서라도 기성교단과 합하고 싶고, 그들을 하늘같이 모시면서 뜻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들은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로운 길로 쳐 몰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길로 쳐 몰았던 것입니다.

28-295
선생님과 통일교단이 싸워 나온 길
그렇지만 나는 외로워해서는 안 될 운명이었습니다. 죽어서는 안 될 운명이었습니다. 외로워했다가는 기성교회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외로워도 외로운 마음을 갖지 못하는 입장에 서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만나게 될 때에 복수라든가 탕감이라는 조건을 남기고 만나면 하늘에 한이 남아지기 때문에, 원수를 위하여 뒤를 바라보면서 복을 빌어야 할 입장에 선 것이 하나님이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

이런 쫓김의 길, 몰림의 길, 추방의 길을 피해서 이제 해안선에 다달았습니다. 그리고 해안선의 맨 끝에 머물러 섰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서 새로운 한 아들의 모습을 세워 새로운 장비를 주어서 민족대결이라는 운명을 걸어놓고 지금까지 나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원수의 무리를 헤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했습니다. 종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그런 기반을 닦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십년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그러한 길을 걸어 나온 것입니다.

종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그늘에서 산 사나이였습니다. 나에게 원수가 많더라도 그 원수를 갚아서는 안 되고,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책임을 느끼며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오늘 이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을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협조를 받아서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나이가 홀로 모든 정열과 열의와 성의를 바쳐서 갖추어진 기반인 것입니다. 그 기반 밑에는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터전이 천길 만길, 천년 만년 깃들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그 수고의 결실에 한 꺼풀 씌울까 하는 문제를 일생의 책임으로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나긴 역사의 그늘 아래서 소생(蘇生)의 한 날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온 것입니다. 원수들이 버티고 있는 바위 밑에서 생명을 가진 하나의 씨의 모습을 갖추어, 가느다란 새싹으로 그 바위를 뚫고 햇빛이 스며드는 길을 찾아 나오듯이 통일의 교단을 그렇게 찾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단이 이루어진 거기에는 바위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모습, 혹은 구부러진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우리의 가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해방 이후에 민족의 서러운 역사를 대표적으로 책임지고, 민족이 소망하는 터전을 바라고 나온 길이 있다면 그것은 통일의 길이요, 그러한 모임이 있다면 통일교단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하나님 앞에 당당히 증거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온 통일교회이기 때문에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지방에 전도나갔을 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몰림을 받았습니다. 조롱받는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이슬같이 맺혀 떨어지는 서글픔을 품고 나왔습니다. 아침 햇빛을 보면서 내일은 광명한 햇빛을 맞을 수 있는 자기의 모습을 소망삼고 오늘은 슬픔의 날, 오늘 이 하루는 인내의 날, 오늘에 찾아오는 밤은 십자가의 시간으로 삼아 이것을 극복하 기를 수 십여 생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몰림을 받던 통일의 무리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애국애족하는 무리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싸우고 나라를 위해서 모두 노력한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한국에서 어떤 종교단체를 말한다면 통일교회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배척하던 무리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로써 환영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때로는 내 자신도 앞이 캄캄한 장벽에 부딪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적마다 하나님은 죽지 않았다고 하시던 그 음성이 나의 뼛골에 아직까지 잠겨져 있는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나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서글픈 사정을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나만을 알고 있어야 하고, 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분부하시던 말씀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여러분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스승에 대해서도 평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살아 왔습니다. 책임자들을 대신하여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자격과 비판할 지성을 갖지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내가 그런 입장에서 자신이 불쌍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보다도 더 불쌍한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이날 우리는 역사의 분함과 더불어 지금까지 참아오신 아버지의 심정을 무한히도 가슴 아프게 체휼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역사상의 그 어떤 아들보다도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효자 중의 효자가 되고, 효녀 중의 효녀가 되지 않았느냐? ‘ 고 하며 당당히 나서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그것을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28-297
스승이 지닌 전통적인 사상을 인계받으라
이러던 통일교회가 이제 세계적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종교단체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에 대해서 어떤 모략 중상을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총칼로 습격을 하고,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누른다 하더라도 우리의 이 터전을 정복하지 못 할 것입니다. 정복의 칼이 도리어 우리의 세계적인 기반 앞에 흡수될 수 있는 날이 불원간 올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딪쳐 오면 올수록 그런 날들의 끝이 가까운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총단결해야 됩니다. 주체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삼천만을 휘어잡고 끌려가느냐, 끌어오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총칼을 들고 무력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정성을 들이는 데에 자신을 몽땅 바칠 수 있는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싸움을 위하여 이 아침과 더불어 다짐하고 출발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승공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 지방에 있는 순경들까지 비웃었습니다. 어떤 지서 주임이 우리 식구의 멱살을 잡은 일도 있었습니다. 의붓자식 취급을 받고,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억울한 자리에서 매를 맞은 역사가 있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라가 하지 않는 일을 우리들이 한다고 해서 거지나 의붓자식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또한 서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원통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원통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불쌍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

어떤 나라의 군왕이 나라가 망하여 도망가다가 원수의 총칼 앞에 쓰러졌다면 그 군왕의 아들로 태어난 왕자는 원수 앞에 얼마나 불쌍한 존재입니까? 우리는 그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제 2의 죽음을 당하지 않은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를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철부지한 우리들이 지방에 가서 몸부림쳤습니다. 우리 소년소녀들이 나가서 활동할 때에 한편에서는 반대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들이 보고 싶어서 밤에도 찾아왔습니다. 부모들이 반대해도 그 2세들은 수리들이 배고프고 굶주리는 것을 염려하여 손수건에 먹을 것을 싸다가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안타까와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여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전권을 지니신 아버지가 그런 비참한 자리에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할 때, 그 위신이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에 느낀 체휼의 마음이나 그때에 이루어진 환경의 인연을 자랑하면서도 그 환경의 배후에서 비참하셨던 아버지의 사정은 우리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과거, 혹은 몇 년 전의 1960년대가 좋았다고, 선생님과 더불어 피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우면서 기도하던 그때가 좋았다고 추억의 한 날을 그리워하는 여러분이 되어 있습니까? 물론 그것은 추억할 날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비참하셨고 억울하셨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 그날을 기념하고, 그날을 회상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리하여 승공활동은 4년이 채 못 되어서 이 민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하는 일은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민족을 위하여, 천대를 받으면서도 민족을 위하여, 빚을 지면서도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우리는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과거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래야 되겠습니다.

나는 돈이 있다고 해도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 것입니다. 스승을 기억하고 스승이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것보다 스승이 지닌 전통적인 사상을 인계받는 것이 더 귀한 것입니다. 그러한 부활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스승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여러분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28-299
하늘을 위해 있는 정성을 다하라
이제 우리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 되겠습니다. 1960년대에 가졌던 자세를 그대로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1970년대는 민족의 엄숙한 사명을 위하여 옛날에 충신열사들이 갔던 그 기준을 넘어야 되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가던 모습, 유관순 열사가 가던 모습 이상의 모습을 지니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 시대에는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원수가 없다고 해서 안일의 터전을 닦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없어야 할 후손을 위하여 빚을 청산짓는 책임을 다하겠다고 선두에 서서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민족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늘을 위해서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온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하나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에 널려 있는 하나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기도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축전을 통하여 ‘참부모님 만수무강하옵소서’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축하는 무서운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은 역사의 수많은 고빗길을 넘어 이곳까지 왔습니다. 그 인연을 생각해 보면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연이요, 그 인연을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로 지닐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고요한 새벽에 홀로 다짐했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더라도 나는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이 길을 저버리더라도 나는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민족을 원망하더라도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민족이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면 자기가 수치스러운 옷을 입은 것과 같이 느낄 수 있는 애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보면 자기 일신을 투입해서 민족의 수치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싸우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이것이 나라를 앞에 두고 가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세계를 앞에 두고 가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요,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비통함과 서러움을 탕감시켜 드려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거치고 나면 최후의 해방의 종소리가 이 땅에 울려퍼질 것이요, 영원한 승리의 깃발이 그곳에서부터 나부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깃발은 우리의 문화와 더불어, 우리의 민족과 더불어, 우리의 혈족과 더불어, 이 세계에 영원히 영원히 새겨야 할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세계에 남아질 후손들 앞에 선한 조상이라고 추앙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 시대의 공신들이 되기 위하여 오늘날 있는 정성을 다할 것을 이 시간에 결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날 여기에 모여서 추구하는 의의 중의 의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을 다짐하는 일이요, 책임을 완성시키는 동기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러한 결심을 하는 의미에서 쌍수를 들어 아버지 앞에 맹세합시다.

28-301
기 도
아버지, 주신 손길을 기억하면서 저희는 아직까지 심장으로부터 울려나오는 고동소리를 통해 저희의 세포가 살아 있는 것을 자각하옵니다.

살아있는 자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는 후대에 계승하는 것입니다. 원한의 세계에 고비가 생길 때에는 둘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상대적 세계가 원한의 세계일지라도 살아 있는 저희 자체는 하나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둘로 갈라진 원한의 세계를 하나되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터뜨려 내는 일을 저희들은 계승하겠다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기 위하여 쌍수를 들었사오니, 저희들, 당신의 마음을 닮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을 닮아 용자의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소원 하시는 천국을 이루기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진 수난길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당신의 후계자가 되고, 모진 싸움 중에도 기량을 가지고 이 싸움을 치러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날 대한민국에 올 수 있는 새로운 운세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세계의 운세가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같이하게 하시옵고, 이날 천운이 이 나라 이 민족 위에 같이하도록 통일교단과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저희들을 기쁨의 한 날을 바라고 탕감하며 극복해야 할 고비의 과정을 힘차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하늘의 용장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국과 일본과 미국을 중심한 40개 국가와 120개의 성지가 연결되어 천운을 모셔들이는 그 인연이 승리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 영광을 당신 홀로 거두시옵소서. 이 모든 전체를 기쁨으로 받아 주시옵기를 바라오면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