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00 to 28-147: 하늘편

하늘편
1970.01.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28-100
하늘편
마태복음 15:10-18

[기 도(Ⅰ)]

오늘은 1970년을 맞이하여 처음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시간, 당신의 거룩하심과 당신의 은혜와 당신의 사랑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0년대를 지내고 새로운 1970년대를 맞는 이 순간, 아버님과 더욱 가까운 자리에서 아버님과 더불어 모든 사정과 사연을 나눌 수 있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말씀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과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은혜의 자리를 동경하는 소수의 무리가 이렇게 모였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같이하시지 않는 모임과 아버지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개체는 저 나라에서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 모임 위에 같이 하시어서 직접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와 동거하기를 바라는 이 마음만은 희생시킬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의 남기신 뜻을 위해서 저희 들이 부름받았기에,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러서 아버지의 그 뜻을 기필코 세워 드려야 할 책임과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는 이 새해 새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곳을 동경하면서 당신 앞에 부복할 줄 알고 있사오니, 그 곳곳마다에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당신의 뜻과 일치되고 그들의 생활 전체가 당신의 뜻과 일치되어 금년부터 시작된 이 1970년대를 당신의 뜻과 일치되도록 엮어 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복귀의 노정이 한 많은 노정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나이다. 이 뜻을 책임지고 완전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지금까지 당신 홀로 이 뜻을 책임지고, 이 뜻과 더불어 죽을 고비를 겪어 나오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앞으로도 이 뜻을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분은 저희의 영원하신 아버님이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옵나이다. 이러한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어떻게 아버님 앞에 효성을 다하는 자녀의 모습을 갖추느냐 하는 것이 현재의 저희들에게 중대한 문제인 것을 느끼게 되옵나이다.

타락의 피를 받고 난 저희들은 아버님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입장이오나,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수고의 정성을 통하여 저희들을 불러 주셨고 경책하시면서 이끌어 주셨기에, 오늘 저희가 이렇게 뜻 앞에 세워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오늘날 뜻 앞에 세워진 저희들이 아버지와 의논할 수 있는 것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요, 하나에서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감사히 대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의 뜻 앞에 세움을 받았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으니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바쳐 아버지로 말미암은 결과를 가져와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사옵나이다. 그리하여 1970년을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이 뜻을 중심삼고 1970년대를 향해서 가야 할 목적점을 결정하였사옵나이다. ‘승리적 통일전선’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중심삼고 내 개체에서는 마음과 몸을 통일시키고, 그 한 개체를 중심삼고 가정을 통일시키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통일시키고,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통일시키고,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 세계에까지 연결시켜 전체를 통일시켜야 되겠사옵니다. 그렇게 내 한 개체로 말미암아 세계 인류가 당신의 아들딸의 권위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내적으로는 이러한 통일전선을 펴야 할 것이 저희의 책임인 것을 알았사옵고, 외적으로는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형제들과 규합해서 새로운 역사시대에 새로운 기치를 높이 들고 아버님이 원하 시는 최후의 전선을 향하여 진격해야 할 것을 알았사오니, 그럴 수 있는 개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아무리 큰 시련이 닥치더라도 이것을 밀어젖힐 수 있는 외적인 신념의 기반을 굳건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각자가 체득하고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아침에 모인 자녀들, 또한 모이지 못한 자녀들, 개개인을 부르시어서 직접 훈시하시고 명령하시사 아들딸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이 ’70년대를 힘차게 전진할 수 있게끔 언제나 붙들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내용으로 통일교단은 이제 하나의 이념을 갖추어서 이 민족 앞에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사오니, 각자 각자가 스스로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노정에서 민족 앞에 제시하여 민족과 더불어 나가야 하는 것이 스스로의 갈 길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런 마음으로 하늘을 그리워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1970년대를 중심삼고 기필코 이루어야 할 저희들의 사명인 것을 절감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방에서 왔던 지구장들이 오늘 돌아갔사오니 가는 발걸음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새해를 맞이하여 각자가 무거운 짐을 졌사오니, 아버지시여, 그 짐을 감당할 수 있게 힘을 더하여 주시옵고,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최후의 전선에서 낙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로서 안팎으로 모든 장비를 갖추어서 적진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힘차게 진군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산지사방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동절기에도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외로운 제단을 쌓고 이 시간,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어린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소원은 아버지의 소원이 아닐 수 없고, 그들이 가는 길은 아버지께서 가야 할 길이 아닐 수 없고, 또한 그들이 처하여 있는 입장은 아버지께서 처한 입장이 아닐 수 없음을 아오니, 아버지께서 친히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각 지구본부의 당신의 자녀들이 이 내적 심정과 외적 사정을 통하여 뭇 인간들을 하나로 규합하기 위한 싸움의 노정에서 허덕이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저희는 횡적인 입장에서 아버지를 대하고 아버지를 위로하고 아버지로부터 위로받기 위해서 나선 모습이 아니오라, 종적인 입장에서 아버지의 아들과 딸의 입장을 대신하여 나선 모습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직접 거느리시사 지시하여 주시옵고, 명령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환경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끔 하늘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하시어서 협조의 기반을 넓혀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1970년대의 출발점인 이 시대에 어서 속히 당신의 소원을 이땅 위에 펴시옵고, 이 민족을 선의 민족으로 복귀하시옵고, 통일제단을 승리의 제단으로 이끄시어서 아버지 앞에 선의 제단으로 세움받아 만국에 자랑할 수 있는 한때를 이 과정에서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불초한 모습들이 이 제단 앞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이 누구의 부름을 받고 누구때문에 여기에 왔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를 살리기 위하여, 저희를 부활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희생하시고 수고하신 아버지로 말미암아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각자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여, 사망선을 앞에 놓고 가야 할 어떠한 책임자가 있다고 할진대, 그에게는 그 사망선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생애 최대의 문제가 아니겠사옵니까? 이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할 때, 오늘날의 저희들은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악의 종자요 악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나이다. 이러한 저희들이 악의 후예의 탈을 벗고 생명선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사망의 골짜기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오니, 그 사망의 골짜기를 넘는 데 있어서 홀로 넘을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스스로 장비를 갖추고 스스로 결의하지 않고서는 그 골짜기를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 고갯길에서는 수많은 원수들이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협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이 길이오니, 사망의 골짜기를 넘기 위해 이 길에 들어선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힘에 이끌려, 아버지의 직접적인 감동을 받고, 아버지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하여 이 골짜기를 무난히 돌파할 수 있는 승리의 자녀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1970년대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사옵니다. 이 1970년대를 맞고 있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이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만 민족과 삼천리 반도는 물론이요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갈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이 땅 위의 자기 후손들과 더불어 해방의 한날을 맞기 위하여 저희들에게 책임을 해 달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만이 저희와 더불어 같이하시길 바라옵고, 저희들의 뜻이 아버님의 뜻과 하나되기를 바라오며, 저희들의 일이 아버님의 일과 일체가 되기를 바라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온 인류가 바라고 수많은 국가가 바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지 않으면 안 될 숙명적인 이 과정을 넘고자 하오니, 아버지, 이 땅과 이 세계 위에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고, 부활의 횃불을 드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광명의 은혜의 깃발을 이 땅 위에 내리시어서 어두운 세상의 인간들을 광명권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중보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 책임을 지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리에서 한 나라를 책임지기 위해 제단을 쌓고 있는 자녀들이 그 책임을 감당하기에 지쳐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

금후에도 아버님이 저희들과 같이하여 주시옵고, 전후좌우로 방향을 모색하는 저희 앞에 갈 길을 나타내시어서, 그 땅과 그 환경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하늘적인 결과만을 가져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전국 각지에서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그 자리에 친히 나타나시어서 훈시하여 주시옵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가야 할 방향을 갖추어 하늘의 동조자가 되고 동참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후의 전체를 아버지께 맡기오니 당신께서 바라시는 뜻대로 저희를 지도하시어서 당신의 심정이 저희의 심정에 어리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정이 저희의 몸에 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길에서 탈선할래야 탈선할 수 없는 모습이 될 때까지 저희들은 노력하고 싸워야 되겠사옵나이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다시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시간도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 거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8-106
기 도(Ⅱ)
사랑하는 아버님, 이 순간은 저희가 1970년대를 맞이하여 아버지의 집에서 생활하는 하나의 모임을 갖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간이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 앞에 현현하시옵소서. 당신을 대신하고자 하는 저희들의 마음에 당신의 모든 사정이 어리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표준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그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거동하실 때에, 당신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저희들이 당신을 따라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는 것은 저희들이 당신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거룩한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옵니다.

아버님, 당신의 후덕하신 사랑의 그 마음, 당신의 높고 귀하신 그 품격, 당신의 넓고 깊으신 그 심정에 무한히 무한히 취하여 체험할 수 있는 용기를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제단을 세우시기 위하여 오늘 이 아침까지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친히 저희를 지도하고 이끄시면서 온갖 수욕의 길과 역경의 길을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지난 날들의 억울했던 모든 사연들이 저희의 뼛골에 사무쳐 있었사오나 그것을 잊고 넘어야 할 1960년대를 지냈사옵나이다. 이제까지 저희들은 악에 받쳐 1960년대를 싸워 나왔사옵나이다.

아버지, 이제 1970년대는 우리를 다리놓아 우리를 보라고 자랑할 수 있는 하늘의 은혜가 찾아와 주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이 시간을 통하여 각자의 몸과 마음에 당신의 자비하심과 당신의 긍휼하심과 당신의 거룩하심을 체휼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축복의 은사를 고대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바람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에 마음을 연결시키고 사정에 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슬펐던 사연을 중심삼고 단단히 묶으시옵고, 영원히 하나가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과 국가를 이루게 하시옵소서. 전체가 하나되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외로울 때나 슬플 때 아버지께서 친히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낙망할 때는 친히 저희들을 인도하시어서 그 자리에 서 있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자녀들로 말미암아 삼천만 민족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장래를 당신께서 맡아 주시옵고, 세계 인류의 운명을 당신께서 거느려 주시옵소서. 만민 위에 당신의 축복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중간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엄청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충성하고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저희들의 몸과 마음에 간절히 솟구쳐 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심정이 저희가 처하여 있는 환경이나 대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물론이요, 원수와 싸우는 자리에서까지 변함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아침을 거룩히 보아 주시옵소서. 저 나라에 있는 수많은 선한 영들이 지금까지 땅을 대하여 희생한 모든 요건을 재차 부활성사시켜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은 저희 개체의 사명뿐만 아니라, 위로 하늘에 있는 수많은 선지 선열들의 책임까지 대행해야 할 이중의 사명을 지닌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사옵나이다. 저희들에게는 또 세계의 30억 인류를 대하여 제사장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 지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찾아올 선한 세계에 선한 조상으로서의 전통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책임이 가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사옵나이다. 이렇듯 이중 삼중의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저희들은 기필코 승리해야 되겠사오니,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친히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이 1970년대에는 개인의 모든 생활을 직접 간섭하여 주시옵고, 그 가정에도 일일이 간섭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그리하여 그 가정이 아버지께서 보호하시는 안식의 터전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생활이 아버님과 동행하는 생활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고 당신이 내세우실 수 있는 가정의 그늘에 사는 아들딸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그 누구보다도 하늘을 중심삼고 살아야 하고, 하늘의 의를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러한 마음의 자세를 갖출 수 있도록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고, 직접 인도하여 주시옵고, 직접 품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원수의 화살과 권력을 친히 막으시사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감사한 하루로부터 1970년대의 수많은 날들을 거룩하게 연결시켜 그 승리의 결과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림으로써 아버지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방에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진정으로 이 한국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무리들이오니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는 수많은 나라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늘 이 한국 땅을 그리워하면서 아버님을 추앙하게 된 것은 그토록 수고하신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임을 생각하게 될 때 그들은 아버지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 할지라도 저희들은 감사해야 할 입장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본부에서 무릎을 꿇을 적마다 이 자리는 눈물어린 자리로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리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사옵나이다. 이 자리는 기나긴 6천년 역사에 맺힌 원한을 판가리짓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직접 싸우신 최대의 결판지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이 거룩한 곳이 아버지의 마음과 더불어 아버지의 이름과 더불어 아버지의 일과 더불어 아버지의 목적과 더불어 현현시키기 위한 책임을 짊어진 아들딸들이 무릎을 꿇고 아버지 앞에 축수(祝手)하는 자리인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가 부족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다짐하면서 아버지께 같이하여 주시기를 호소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만이 참석하여, 이 자리가 아버지를 추앙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이 이러한 자리를 허락하여 주셨기에,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이 자리에서 욕을 먹고, 이 자리에서 매를 맞고, 이 자리에서 수난을 당했사옵나이다.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어떠한 민족 앞에도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하늘의 자랑의 표준임을 생각하오니, 슬픈 사연을 품고 개척의 노정에서 남아진 당신의 아들딸 위에 무한한 축복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 자리에까지 나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거쳐갔사옵니다. 그 가운데 아버님께 원한을 품게 하고, 아버님의 슬픔의 담을 높인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그들 중에는 아버지께서 잊을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버님으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다 지나갔사옵니다.

앞으로 올 사람들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왔었사오나 오히려 그 길을 막아 놓고 간 사람이 많사옵니다. 또한 수많은 씨족과 종족과 백성들이 이곳을 대하여 아버지 앞에 섭섭함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오늘도 역시 그러하옵니다. 지나가고 만나게 하였던 슬픈 사연을 놓고 이 시간 고투하는 수많은 백성들 위에 다시 한번 긍휼의 손길을 펴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멀리하는 이들을 위해서 저희들이 손길을 가해야 하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오나, 그러지 못하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발걸음이 돌아서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것을 염려하시사, 재차 축복의 손길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한국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셔야 되겠사옵나이다. 고아와 같은 신세인 이 나라 이 민족을 누가 책임지겠사옵나이까? 아버지여, 책임져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사옵고, 저희들은 변함없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선두에서 달리겠사옵니다. 저희가 받아야 할 원수의 모든 화살을 아버님께서 홀로 받으실 수밖에 없는 입장에 계신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래야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무리를 붙들고 참고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신 외로우신 아버지를 동정하옵니다. 그렇듯 슬프고 억울하신 아버지 앞에 저희들은 진정한 심정으로나마 효성을 다하여 위로해 드리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나이다. 아버지 앞에 그리운 아들딸의 모습이 되고, 사랑스러운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내세워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새로이 결심하고 맹세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부터의 1970년대를 당신이 거룩히 맡으시어서 승리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 제단의 책임자는 당신 외에는 그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제단을 저희에게 맡겨 주셨사오니, 아버지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게 이끌어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지 선열들이 하늘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어서 그 후손이 과거와 현재의 기준에 일체화할 수 있는 기점을 마련하는 거룩한 이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리하여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넓히고 이제 희망의 1970년대에는 부끄러운 모습을 가릴 수 있는 용기있는 통일교인이 되고, 통일교단이 되고, 본부는 세계 정상의 본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수많은 민족이 바라보는 그 뜻 앞에 있어서 부끄러움을 남기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나이다. 그러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나이다. 그러한 통일의 자녀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나이다. 부디부디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으시어서 1970년대에는 아버지의 은사권내에서 만국 앞에, 만민 앞에, 만성도 앞에, 수많은 자녀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그것을 증거할 수 있는 모임이 되고 이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뜻을 위하여 왔다 간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한 선조들이 이 땅을 중심삼고 재차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허락하시고, 사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활동이 저희들의 움직임에 상대적인 보조를 맞춤으로써 섭리의 뜻이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8-111
말 씀
오늘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1970년을 맞이해서 첫번째 맞는 안식일입니다. 즉, 1970년대를 중심삼고 새로이 출발하는 성일이 되겠습니다. 이날부터 1980년을 바라볼 수 있는 1970년대의 마지막까지는 우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시기입니다.

28-111
나는 하늘편의 사람인가
이 1970년도에는 과연 어떤 것이 하늘편이겠느냐, 즉 어떠한 사람이 하늘편의 사람이며, 어떠한 나라가 하늘편의 나라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내가 진정한 하늘편이냐?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 가정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하늘편의 가정이냐? 통일교회를 중심하고 볼 때에 통일교회가 과연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소망하였던 하늘편의 교회냐? 또한 이 대한민국이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연 앞으로 틀림없이 하늘편의 나라가 될 것이냐? 1970년의 새 아침에 이러한 문제를 놓고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은 의미심장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늘편의 사람을 그리워해 나오셨습니다. 하늘편의 가정을 모색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길을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하늘편의 씨족과 민족을 찾기 위해서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돌고 도는 역사의 고비 가운데서 슬픔을 안고 또 안으면서 지금까지 참아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 위에 그러한 민족과 그러한 국가가 있었느냐 하면 없었습니다. 그러한 민족도 없었고, 그러한 국가도 없었으며, 또한 그러한 씨족도 없었고, 그러한 가정도 없었고, 그러한 개인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정을 앞에 놓고 볼 때에, 이 자리에서 과연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한 하늘편의 사람으로 남아질 수 있는 개인이 있느냐, 하나님이 고대해 나오신 가정으로 남아질 수 있는 가정이 있느냐, 그럴 수 있는 씨족과 민족으로서의 이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나 하나님으로부터 ‘그렇다’는 공인을 받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1960년대를 넘어서서 1970년대를 새로이 출발하는 이 순간에 지나간 1960년대를 회고해 볼 때에 1960년대의 나는 과연 하늘편의 사람이었던가? 냉정한 입장에서 비판해 볼 때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느냐? 과연 내가 지금까지 하늘편의 아들로서 남아졌느냐? 어느누구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하늘의 아들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느냐? 만일에 스스로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고, 동시에 하늘이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소망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지난날이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고통스러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 위안과 기쁨의 조건으로 남길 수 있는 아들과 딸이 이 통일교단 가운데 없다 할진대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고한 1960년대의 공은 또다시 슬픔으로, 한으로 남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1970년대를 맞아 새로이 다짐하는 이 아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 오늘 이 아침,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실 수 있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께서 심은 나무는 뽑을 자가 없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그 사람과 하나님이 결정지은 그 자리는 부정할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긍정하신 자리는 아무리 극악한 악으로 둘러 싸여 있는 사탄세계라 하더라도 긍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차피 그곳에 심어졌으니 거기에서 자랄 것이요, 역사과정을 거쳐 결실을 향하여 나갈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늘이 긍정하실 수 있는, 하늘편에 선 아들딸이 있느냐? ‘나 아무개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왔고, 이러한 투쟁의 행로를 거쳐왔으니, 나는 틀림없이 됐습니다. 내가 바로 당신이 찾고 있는 아들딸입니다. 이 사망의 세계에 생명의 실체로 심어지기에 하자가 없는 자신이오니 아버지여 받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있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에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러한 입장에서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하늘이여, 나는 이렇게 해 왔습니다’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 할 때, 그럴 자신이 없는 우리들인 것을 생각하면, 1970년대의 앞길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슬픔을 배가 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여 이런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8-113
자신이 하늘편이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 자신이 하늘편의 사람이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일의 소망을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 역사상의 한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하늘편을 그리워하는 모습이라도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편을 향해서 달음질치고 하늘편을 위해 애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설사 하늘편에 서지 못하였더라도 하늘편을 향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육신의 피곤함도 개의치 않고 죽을 각오를 하고 움직이는 자가 되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1970년대의 새로운 아침을 대하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나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60년대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 앞에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역사의 배후에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습니다. ’60년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끌고 나오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도 있었고, 외로운 장면도 있었습니다. 숱한 시련을 홀로 당해야만 되는 처절한 자리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아무리 그런 자리에 홀로 섰다 하더라도 소망의 문이 열리는 1970년대에 있어서 소망의 기수가 될 수 있고, 하늘편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1970년대를 맞기에 너무 부족하고 하늘의 뜻 앞에 서기에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과거에 아무리 크고, 추억될 만한 사건이 많고 그 누구라도 감동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이 있었다 하더라도, 1970년 대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제 2차 소망의 기준으로 세움을 받을 수 있는 하늘편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할 때는 상하 전체가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선생님이 뜻을 위하여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던 날이 있었으나, 그날은 하나님이 같이하신 날이라는 것을 알고, 뜻을 위하여 매질을 당하고 고문을 받던 그러한 시간이 있었으나 그 시간은 하나님이 같이해 주셨던 시간인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이 아침 이런 환경에서 뜻을 위하여 어려운 자리에 나갔던 그날 그 시간들이 그리워집니다.

여기 이 한 곳을 바라보며 내일의 희망에 넘쳐서 나가는 것보다도, 외로운 심정으로 하늘 뜻에 동참하여 하늘의 권고를 받던 그 시간이, 하늘 편이었던 그 순간이 부정할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진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에게 그러한 순간이 다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제 1970년대를 맞이하여 노력해야 할 우리 앞에 1970년도 초에서부터 그러한 길이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또한 우리가 이 슬픔의 1970년대를 어떻게 기쁨의 1970년대로 바꿀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런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이 민족은 슬픔의 자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 민족이 져야 하는 십자가의 짐을 오늘날 우리 교회의 식구들이 대신 짊어지고 하늘을 향하여 몸부림치며 나아가 슬펐던 사연을 청산짓고 하늘 동족으로서의 터전을 넓혀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대한민국과 삼천만 민족을 위하여 새로이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 앞에 부름을 받은 자로서 하늘의 길을 가야 할 우리의 정상적인 자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의 과거를 다시 한번 회고해 보면서 여러분의 과거 가운데서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였는가를 생각해 보고, 그러한 시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시간은 하나님이 같이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들도 하나님이 같이하셨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모진 핍박 가운데서도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갈 길은 한 길밖에 없다고 하며 자신을 갖고 그 환경을 타개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때의 역사는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그때의 역사는 여러분들의 환경을 지켜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모든 어려움을 타개해 나온 지난날의 역사를 지난날의 역사로만 남겨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것을 밑거름삼아서 그 이상의 것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런 수고의 공적을 터전으로 이러한 결실을 거두었다고 하나님 앞에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서 ‘이러이러한 나이오니 받아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습이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 혹은 천에서 만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는 달라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며 서슴지 않고 내편이라고 품어 안을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입니다.

28-115
하늘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이제 출발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문제를 놓고 새롭게 결의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은 사탄세계의 연장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출발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편에 일치된 자아의 기준을 결정지어 가지고 1970년대를 출발해야 합니다. 1970년대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출발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결말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1970년대는 여러분이 생각지 아니한 사탄세계의 결과를 맺는 기준으로 떨어지는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침을 맞는 여러분 자신들이 하늘편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심어 준 자체로서 1970년대의 역사적인 모든 여건과 환경을 타개해 버리고 이것을 통합시켜서 나의 영양으로 음미하고, 환경에서 영양을 듬뿍 흡수하여 목적점에 달할 수 있는 승리의 표준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여러분 자체가 하늘이 심어 준 자체로서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너 아무개는 하늘편의 얼굴이 되어 있느냐? 네 이목구비가 그러하냐? 네 손길이 그러하고, 네 발걸음이 그러하고, 네 사지백체가 그러하냐?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는 , 하나님이 칭찬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가져 가지고 하늘편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 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볼 때에,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못 되었다 할진대는 , 아무리 갖춘 것이 많고 세상에 자랑할 것이 많다 하더라도 불쌍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의 소굴이 되고 사탄의 발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벌거숭이로 몰리고 쫓기는 운명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이목구비와 사지백체가 하늘편이라고 공인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쏟아 가지고 위로해 주실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망하지 않아요.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하나님의 두터운 사랑의 인연이 그의 발판이 되고 하나님의 권위가 그 환경에서 방패가 될 것입니다.

이 시간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을 우리는 흠모해야 되겠습니다. 또 여기에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으로 새로이 심어져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지루한 역사과정에서 우리를 신음하게 했던 사탄의 철망, 사탄의 핏줄을 어떻게 끊어 버리고 거기에서 탈피하느냐? 이 치열한 싸움의 역사과정을 통해 나오던 우리 자체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반겨 주실 수 있는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는 응당 그래야 할 것이요, 하늘의 딸이라는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는 응당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하늘편에 서 가지고 그 집을 단장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 있고 딸이 되어 있느냐, 그러한 가정에서 신임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 있느냐. 또한 그러한 아버지가 되어 있고 어머니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종족으로부터 추앙받을 수 있고, 그 종족 앞에 자랑을 남길 수 있는 하나의 가주(家主)가 되어 있느냐, 혹은 그 씨족으로부터 추앙받을 수 있는 족장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 민족 앞에 있어서 애국정신을 하나의 전통으로 남겨 후손들이 이어받게 할 수 있는 충신, 혹은 애국자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 어떤 군왕도 염려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자리에서, 나라를 대신하여 그 나라와 민족을 염려하고 눈물과 피살을 뿌리는 것을 개의치 않고 희생의 길을 자처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방어선이 되기 위해 싸워 나가는 최고의 공신이 될 수 있느냐 할 때, 그럴 수 있다는 자신을 갖지 않고서는 1970년대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1970년대의 주인은 엄청난 기준의 주인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주인은 어떠한 가정만의 주인이 아니고, 또한 어떠한 씨족만의 주인도 아닙니다. 우리 한민족이면 한민족, 5천년이라는 반만년 역사를 장식해 나오면서 면면이 그 운명을 이미 나왔던 이 민족 앞에 하나의 결실된 개체로 나타나야 할 주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그 어떠한 군왕도 그를 존경해야 하고 그 시대의 백성도 그 앞에는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이 민족 위에 허락하실 수 있는 1970년대가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통일교회를 위주한 한국백성을 세우시어서 만국에 자랑한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백성이 되고, 그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서 하늘편에 심어질 수 있고, 기억될 수 있고, 남아질 수 있는 민족과 국가가 되었다 할진대는, 그 민족과 국가를 만국에 내세워 자랑하고 만민 앞에 씨로서, 혹은 본으로서 남겨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의당한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28-117
하늘이 바라는 자녀와 가정과 씨족이 되지 못하면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이 남겨 주고 싶은 세계에 심어질 수 있는 아들딸, 하늘이 남겨 주고 싶은 나라에 심어질 수 있는 아들딸, 하늘편의 씨족이면 씨족권내에 남겨질 수 있는 아들딸, 하나밖에 없는 하늘가정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의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즉 하늘 족보에 오를 수 있고 하늘편 그 자체로 남아질 수 있는 아들과 딸이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정되기 전에는 아무리 통일교회라고 해도 그 자체로서는 하늘편에 설 수 없습니다. 하늘이 바라는 자녀가 되고, 가정이 되고, 씨족이 되지 못하면, 통일교회의 역사는 하늘편의 역사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에 들어서 첫번째 안식일을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에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 수난의 고빗길에서 하나님이 염려해 주시던 그때는 슬픔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대하고 있는 이 시대상보다도 수난을 당하던 그 시대상이 하나님과는 더 가까왔습니다. 그때는 내가 눈물을 흘렸더라도 그 눈물은 나혼자만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나보다 하나님이 먼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은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먼저 눈물을 흘림으로써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따라오면서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러한 때가 된다면 그때는 아주 무서운 때입니다. 지금의 때는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눈물지으시며 내 자체를 중심삼고 권고해야 하는 때입니다. 1960년대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워서 그렇게 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그 자리는 지극히 무서운 자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나오신 참다운 아들딸, 하나님 대신자로서 영원히 남겨질 수 있는 참다운 씨로서 이 땅에 뿌려질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누구일 것이냐? 36가정의 그 누구냐? 72가정의 그 누구냐? 아니면 120가정이나 430가정의 그 누구냐? 이것은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자유로운 환경을 맞이하여 우리의 때가 눈 앞에 전개될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1970년대에는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발전을 해야 할 천적인 의의를 지닌 때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떤 국가나 민족의 흥하고 망하였던 역사를 더듬어 보아 흥했던 나라가 망하게 되는 때는 어떤 때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국권이 절정에 달하고 그 국민의 생활이 풍부해졌는데 더 큰 무대를 바라보지 못했을 때는 반드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 그러한 국권을 자랑하지 않고 제2의 상대국을 찾아서 더 큰 무대를 바라보며 싸워야 겠다는 신념을 갖고, 또 그러한 민족의 행로를 남겼다 할진대는 그 민족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1차 승리의 기준이 자기의 일신을 중심삼고, 혹은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은 부흥의 터전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부흥의 터전이 내일의 부흥을 위한 터전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그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는 더 크고 더 높은 사상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보다 가정, 가정보다는 종족, 종족보다는 민족, 민족보다는 국가, 국가보다는 세계를 위한 사상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사상을 목적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민족이요, 하늘편에 남겨질 것이라고 자처한 개인과 민족과 국가는 많았지만, 그것은 모두 인간의 욕망을 중심삼고 제정된 기준이었기 때문에 하늘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가 1970년대를 중심삼고 외적인 환경도 갖추게 되고 핍박의 손길도 사그라지게 되어 우리의 앞길에는 소망만이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방심하거나 후회하는 무리는 하늘편이 못 되는 것입니다. 혹 하늘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사탄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28-119
천국의 기원을 마련하려면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민국을 뜻 앞에 복귀하고 세계를 뜻 앞에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복귀하는 것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서이고, 세계를 복귀하는 것은 하늘땅을 복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땅을 복귀하면 하나님을 우리가 직접 모시고 일생 동안 이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가 제시한 천주적인 사상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우리의 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품에서 나지 못하고, 하나님 품에서 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품에서 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품에서 살지 못한 한이라도 풀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품에서 나지 못한 한은 품었을망정 하나님 품에서 살 수 없는 한까지 품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입장에서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마음대로, 그리고 자유로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천국의 기원을 이 종말 세계에 마련해야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를 맺도록 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기준을 기필코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 오늘날 통일교도들의 걸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계적인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적인 아들딸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아들딸이다. 대한민국의 백성이야. 그러니 죽어도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죽는 거야’라고 하는 사람 들은 하늘편에 심어질 수 없는 것이요, 심어졌다 하더라도 중간에 가다가 끊어집니다. 심어졌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복귀할 때까지는 남아질 수 있으나 때가 달라져 세계를 찾는 때가 되면 그것은 끝을 맺게 됩니다.

그러면 그 열매는 언제 거두어질 것이냐? 세계를 위하는 데서 거두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고 나섰던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필요로 한 것은 세계 만민 만국을 구하기 위해서였지 이스라엘 민족만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결심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복귀요, 세계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상 전체의 흐름은 세계복귀를 중심삼은 것이었지 민족복귀를 중심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족복귀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민족적으로 행세하고 있던 당시의 체제를 부수고 나섰던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아’ 하고 신랄하게 퍼부었던 것입니다. 민족의 형태를 그냥 그대로 상속하게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계로 가는 데에 있어서 그것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그 모든 요소를 전부 파괴해 버리고자 한 것이 예수님의 소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런 방식으로 피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서 하늘편이 되고 싶습니까? 하늘편이란 편안한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사람들간에 이루어지는, 잊을 수 없는 친구의 우애 같은 것도 평상시의 보통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고 사는 마당에서, 생명을 엇바꿀 수 있는 환경에서 친구가 자기 생명의 방패가 되고 생명의 은인이 되어 줄 때에, 그 친구는 일생 동안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죽을 때 자기 아들딸 에게 유언을 해서라도 그 친구의 은덕을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은덕을 입은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리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사연으로 인연맺어진 깊은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자리는 만민의 추앙을 받는 잔치석상에서 술잔을 나누고 진수성찬을 즐기는 자리와 다릅니다. 그런 자리와는 달라요.

28-121
마지막까지 하늘편으로 남아질 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교시해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정은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보내심을 받는 기쁨의 그 순간, 그 자리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근본사상을 어디에 뿌리를 박았느냐? 십자가에 뿌리를 박았습니다. 피흘리는 자리, 죽음이 가로놓이는 그 자리, 하나님의 뜻을 고수한 그 자리, 백번 죽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심정이 불타오르는 그 자리, 피를 토하며 쓰러져간 그 자리에서 역사적인 새로운 뿌리는 생겨났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세계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은 피를 뿌리고 죽어간 예수님의 피의 대가로 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죽음의 정상을 본받아 기독교는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를 추구하는 그 목적이 지금까지 남아졌기 때문에, 2천년의 역사과정이 아무리 험난한 노정이라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바꿔졌던 그 희망의 기준을 점령하지 못하고 도리어 죽음으로 싸워 남기신 희망의 기준이 그 험난한 환경을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기쁨의 고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래 못 가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서 ‘이 뜻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한이다. 내가 남과 같이 3년 전에만 들어왔으면, 혹은 10년 전에만 들어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음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누구나 칭찬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3년 전, 10년 전에 들어왔으면 뭘 합니까? ‘그때에 들어왔으면 내가 뜻 앞에 이렇게 되었을 텐데…’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10년 전에 뜻 앞에 섰다면 지금은 이렇게 되었을 텐데…. 3년 전에 들어왔으면 이렇게 되었을 텐데…. 이제야 들어와서 이 모양이 꼴이야’ 하면서 지금 들어온 것을 탓하는 사람은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10년 전에 못 들어와서 대한민국과 더불어 투쟁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구나’ 하며 역사적인 가치를 접하지 못한 것을 한탄해야 합니다. 내가 들어오기 전의 3년 도상에서 벌어진 하늘의 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한이고, 그것을 보지도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소망해 나온 그 소망의 결실이 맺어지는 그 순간, 그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한이요, 그것을 보지도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혈족이면 혈족, 씨족이면 씨족을 찾아 나오시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어오신 그 마음을 가지고 3년사를 한탄하고 10년 사를 한탄하는 사람은 앞으로 소망의 길에 오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고 ‘내가 이렇게 했으면 이렇게 되었을 것인데…’ 하는 사람들은 뜻 앞에서 멀어집니다. 두고 보십시오. ‘뜻’이 3년이 되면 이루어지고 10년이 되면 이루어질까 하는 사람은 뜻 앞에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류사상을 책임질 수 있는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종새끼입니다. 종새끼. 종새끼가 아니면 양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피의 쓴 잔을 이어받은 아들딸이라 할진대는 아버지의 슬픔은 바로 그 아들딸의 슬픔입니다. 아버지가 염려하는 것은 곧 아들딸의 염려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말하기에 부끄러운 자신이라고 깨달을 수 있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무섭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3년, 혹은 10년 이상이 지나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은 다 흘러가 버립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28-123
하늘편을 사수하기 위한 하늘의 수고
그러면 내 자신은 어느때까지 하늘편으로 남아질 것이냐? 하늘편은 복귀의 노정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복귀하려면 개인을 중심삼은 싸움의 복귀노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복귀노정의 터 위에서 가정을 하늘가정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중심삼은 치열한 싸움의 탕감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요, 씨족이면 씨족, 민족이면 민족 등 단계를 거쳐 나갈 때마다 그에 비례하는 싸움의 탕감노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 자신은 하나님이 찾는 가정, 하늘편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있겠느냐? 또 민족을 대표하고 그 민족이 하늘편에 설 수 있게끔 민족을 대신한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있겠느냐? 이렇게 물을 때 ‘나야 뭐 따라만 가면 되겠지’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복귀섭리를 시작한 그날부터 언제나 하늘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타락한 인류를 대하는 그 시간부터 지금의 인류를 대하는 것이 끝날 때까지, 만국이 해방되고 만인류가 해원성사할 수 있는 그날까지, 지옥에 있는 모든 애혼들까지도 해방시킬 수 있는 그날까지, 그것들을 수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반만년을 지내온 한민족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그 역사는 지루한 역사가 아니었습니까?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과정이 엮어져 온 것을 보면, 돌이켜 보기도 싫은 역사가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못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피비린내나는 곡절이 엮어져 있는 데, 하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하늘편의 나라를 편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피비린내나는 대가가 치러져야 하겠는가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한 나라에 있어서도 간신이 흥했다면, 충신이 흥할 수 있는 역사적 시기가 있고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가 있지만 하나님은 간신편이 아닙니다. 충신편이에요. 충신편인데도 간신으로부터 수천년을 몰리시고 한번도 당신의 권위를 자랑해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사람, 당신의 집, 당신의 씨족, 당신의 민족, 당신의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가운데 지루한 싸움을 해 나올 수밖에 없는 하늘편의 비참한 사연이 역사의 배후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하늘편의 나라를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 내 자신이 하늘편이 되어 있느냐, 그 나라의 선두에 서서 제물이 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늘편을 생각할 때, 하늘이 지금까지 하늘편을 사수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얼마나 큰 수고의 대가를 치렀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 수고는 아직까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민족을 넘어 세계의 수많은 어려운 환경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희생의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탄이 원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슬픔의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라도 가야 할 운명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 이 새로운 아침에 여러분은 하늘편이 되기를 바라느냐, 아니 하늘편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로 삼고 복귀되지 못한 자기를 제거시키기 위하여 일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여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1970년의 새아침을 맞는 여러분의 결의 내용은 그런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8-124
승리한 사람
그러면, 내가 통일교회의 일선을 지키는 데 있어서 몇 년 동안이나 수고해야 할 것이냐? 여러분은 ‘7년노정만 가면 되겠지’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7년노정이 끝났는데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배짱있게 말할 수 있겠지만, 세계로 갈 수 있는 민족적 제단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늘의 역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7년노정에 또 7년, 그 7년이 변하여 70년이 되고, 내 일대가 7대로 넘어가고, 그 7대가 70대, 7백대, 7천대로 넘어 갈지라도 나는 하늘편으로 살겠다고 하면서 하늘편으로 살아 하늘편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나의 정기를 어떻게 남길 것이냐, 또 그럴 수 있는 후예를 어떻게 이 지상에 남기고 갈 것이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의 기쁨의 환경을 버리고 미래의 세계에서 기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도 기도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승리적인 1970년대를 자랑하는 것보다도, 미래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도리어 미래의 행복을 위해, 미래의 성공을 위해, 역사적인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무리가 되어 있느냐, 또는 자기의 후예가 그럴 수 있는 하늘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무리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광의 상금을 받아 가지고 뭇 백성의 칭찬을 받는 것보다도 도리어 외로운 자리에서 풍상에 시달리면서, 초초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십대 혹은 수십대의 후손을 중심삼고라도 이런 결실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사는 것은 현실의 사회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세계를 위해 사는 것이요, 대한민국이 하늘편에 세워지는 단계를 넘어서 온 세계가 하늘편에 세워질 그 시대를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죽더라도 그의 소망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날이 가면 갈수록 성사의 때를 맞이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혹은 대한민국의 목적을 위하여 정성들인 사람은 자기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세계의 목적을 위해선 또다시 정성들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자기의 몸이 영계에 가 있다 할 때는 자기의 후손을 통해서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교차점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앞에 주실 수 있는 축복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그 축복을 현실적인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되겠습니다. 그 축복을 십년 후에, 백년 후에, 천년 후에 한민족이 하늘편을 이탈하지 않도록 경계선 저 너머에 심어 놓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민족은 망하지 않는 민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심어진 씨는 수십년, 수천년이 되어도 썩지 않고 기필코 싹을 틔울 것입니다. 그 싹이 날때까지 그 민족은 망하지 않고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저 너머의 소원의 세계에서 해방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천상 천하의 온 만민이 하늘을 앙모하고 찬양하는 노래와 더불어 살 수 있는 하늘왕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죽어갔던 예수님이기 때문에, 만국의 사람들과 영계의 수많은 애혼들까지도 자기들의 소원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소원을 자기들의 소원으로 대치해서 그것을 상속받기 위하여 노력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자동적으로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8-126
천운과 더불어 가라
오늘날 여러분 중에는 자기가 통일교회에서 수고한 것을 알아주지 않는 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하늘편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늘편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시대적인 하늘편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역사적인 하늘편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현실의 행복의 터전을 잊어버리고 본연의 행복의 요건을 민족 앞에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뜻 길을 추구해 가야 됩니다. 우리는 세계만민과 더불어 하늘 앞에 충성하여 하늘이 기뻐할 수 있고 해방의 나팔 소리와 더불어 대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 한 날을 맞을 때까지 하늘편에 서서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리 핍박을 받고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후손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에 우리 통일교회가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자랑하지 말고 현시대를 넘어서 하늘편에 심어 놓을 수 있는 자랑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1970년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심어놓은 하나의 중심을 중심삼고 그 한 가지가 되고 한 잎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흘러가는 물에도 반드시 주류가 있습니다. 아무리 넓고 큰 바다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흐름이 있고, 그 흐름 가운데에는 반드시 주류가 있는 것입니다. 선두의 흐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선두의 흐름에 따라 방향을 갖추어서 흐르는 것은 영원히 흐를 수 있으나, 자의에 의하여 흐르는 것은 영원히 흐를 수 없는 것입니다. 천운을 중심삼고 움직일 때에 영원한 운세를 탈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운세는 천운과 다른 것입니다. 한 국가와 민족을 통치하는 지도자가 국가의 방향을 천운의 방향과 일치시키고, 또 천운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사상적인 체계를 갖추어서 그것을 하나의 세계적인 지도이념으로 삼고 그 국민을 지도한다면, 그 국가와 민족은 세계역사에 제일 가는 국가와 민족으로 남아질 것입니다. 왜? 국가의 운세가 천운의 방향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천운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것은 천운과 더불어 가는 것입니다. 국가와 같은 그런 외적인 형태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28-127
심정이 교차되는 자리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심정이라는 것을 놓고 논위합니다.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을 알고 심정의 친구가 되어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가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사람은 생활환경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외롭지 않아요. 오히려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외로우신 것은 그러한 내정적인 사정과 심정을 누구와도 논할 수 없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리 외로우시더라도 그런 아들을 만나게 되면 그 외로운 환경을 잊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아들과 심정적인 유대를 맺게 된다면, 하나님께는 창조의 능력이 있는 연고로 이 환경을 창조의 결과의 세계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천지창조는 불안과 공포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쁨과 희열과 만족의 터전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심정적인 유대를 맺게 되면, 그곳이 아무리 사탄의 소굴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해서 기뻐하시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재창조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대해서 은혜를 받는 시간이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마음에 솟구쳐 오르는 기쁨을 억제할 수 없는 사람, 세포를 통해 은혜의 흥취를 느끼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혹은 사탄의 총칼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평화를 느끼는 것입니다.

심정이 교차되는 자리는 죽음을 넘어 희열이 창조되는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자리는 사망권을 넘어 승리와 행복의 터전이 시작됨으로 말미암아 창조이상세계를 이루시기 위해 기쁨을 중심삼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기쁨을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면 그는 전권적인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요, 그의 권한은 반드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내정적 깊은 심정의 인연을 느꼈기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하나의 심정적 기반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 소망의 역사가 출발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대에는, ‘나는 과연 하늘편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말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에는 생활이 달라져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갈 것이냐? 사탄적인 것을 완전히 부정하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우왕좌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결심한 것이 천년을 갑니까? 여러분의 몸뚱이로 결심한 것이 천년을 갑니까? 못 갑니다. 우왕좌왕합니다. 언제나 왔다갔다합니다. 인간 조상이 왔다갔다하면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 후손된 우리도 왔다갔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왔다갔다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하늘입니다. 하늘밖에 없어요. 하늘은 영원한 것이고 불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왔다갔다하지 않으려면 시종이 여일하게 하늘과 더불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인생이 가야 할 원래의 길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신앙인 것입니다.

희생하는 자리에서 인격을 완성하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종족을 이루고, 희생하는 자리에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이루는 데는 역사를 중심삼은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온 사람은 개인적으로 승리한 자요, 가정적으로 승리한 자요, 씨족적으로 승리한 자요, 민족적으로 승리한 자요, 국가적으로 승리한 자요, 세계적으로 승리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만국 앞에 승리의 푯대를 세우고 나섰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권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선생님을 대해 여러분을 하늘편의 아들딸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심정이라도 갖추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생명을 걸어 놓고 다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쉬워요? ‘내 온 정성을 기울이고, 내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가겠습니다. 명령만 해주십시오’ 해야 됩니다. 천년사가 허물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다는 결심을 했으니 가야겠다고 해야 합니다.

28-129
자신을 하늘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분, 하늘편이 되기를 원하지요?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까? 「원합니다」 그러면 생각해 봅시다. 자신을 하늘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쇠붙이로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데 쇠붙이 그대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불에 달구어서 망치로 두드려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미 하늘편이 되어 있다면 간단하지만 여러분은 제멋대로 되어먹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 뜯어고쳐야 됩니다. 풀무 도가니에 집어 넣어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은 풀무 도가니에 집어넣어지기를 원합니까?

‘아이구, 한번밖에 없는 꽃다운 청춘시대의 아름다운 용모가 이렇게 거칠어질 줄 누가 알았나? 통일교회! 이놈의 통일교회에서 청춘시대를 다 보냈으니 통일교회 선생님이 책임을 지시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풀무 도가니와 같습니다. 풀무 도가니는 그 안의 내용물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책임은 자기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풀무 도가니를 거쳐서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바로 도가니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한번 들어온 사람들은 통일교회를 떠나서는 어디에 가도 살지 못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먹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자기 마음대로 잠자고 놀고 했지만, 통일교회에 들어온 후에는 먹고 마시고 자는 모든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지지리 못난 자리에 서야 되고, 남보다 더 고생을 해야 되고, 밥을 먹더라도 찌꺼기를 먹어야 되고, 입는 것도 남보다 못입고 살아야 마음이 편합니다. 선생님은 그걸 느낍니다. 좀 잘먹고 나서 트림이라도 하게 되면 금방 사탄이 참소하기 때문에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이 통일주의는 뒤집어박는 주의입니다. 뒤집는 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체면이나 위신도 뒤집어박는 것입니다. 뒤집어박아야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찌그러지고 구멍이 뚫려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을 새것으로 만들려면 몇천 도가 되는 도가니에 집어넣어 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 속에서의 물빛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도가니에 들어가게 되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는 죽지 않고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금이든 철이든 무슨 보석이든 도가니에 들어가면 다 통일입니다. 똑 같다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편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여러분은 통일편이 됐어요, 안 됐어요? 또 하늘편이 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된 것 같기도 하고 안된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가 하나님 아들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워하고 고대하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머니, 저 왔습니다’ 하면 ‘오냐, 너 왔구나’ 할 것입니다. 유학시절에 하나님을 고대하고 그리워하듯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편지 몇만 통에 해당하는 사연을 가지고 어머니를 찾아가 만난 적이 있는 데, 그때는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고 이마를 맞대고 목을 붙들고 눈물부터 흘렸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달라졌는지 늙었는지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이고, 울지 마라’ 하는 어머니의 말에 눈물을 씻고 보니 그 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늙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가 미인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늙어 버렸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28-131
하늘이 심은 나무는 뽑을 자가 없다
그래 하늘편이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되고 싶습니다」 정말 되고 싶어요? 「예」 선생님도 하늘편이 되고 싶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도 하늘편이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하늘편이 되고, 여러분도 하늘 편이 된다고 할 때 여러분과 선생님은 같겠습니까, 좀 다르겠습니까?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앞에 서고 뒤에 서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니 옆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옆에 서면 사탄이 노리는 것입니다. 험한 준령을 넘어갈 때에도 무섭다고 해서 아버지 어머니 옆에 서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갈 때에는 반드시 여러분이 앞에 서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생소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은 나그네 신세와 같습니다.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의 앞길에 그 얼마나 천태만상의 상황이 전개될 것이냐? 때로는 외길도 가야 될 것이고, 때로는 길을 막는 원수의 창끝을 쳐 버리고 가야 될 것입니다. 이 길은 지금까지 자기 혼자서 뭣도 모르고 마음대로 가듯이 그렇게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렇게는 못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이 여러분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1970년도에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지금 얘기한 것은 그냥 적당히 해본 얘기가 아닙니다. 결판을 지은 기반 위에서 대가를 치러 가지고 결론을 얻어서 하는 얘기입니다. 여기에서는 어디까지나 선생님이 기준이 되어 있습니다.

하늘편이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길이 쉽지 않으니 늙은 사람들은 떨어질 것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늙은 사람들도 의관을 준비해 가지고 젊은 사람들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후방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죽어서 돌아온 젊은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보다도 더욱 비통한 마음으로 하늘 전선에 인연을 맺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들을 전쟁에 내보낸 부모가 슬퍼하는 마음 이상의 슬픈 마음을 가지고 일선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탕감복귀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고 있는 데 편안히 잠자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가지 못합니다. 뜻을 위하여 전체가 동원될 때에는, 눈물이 떨어지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상의 마음, 할아버지 할머니 이상의 심정을 갖추어야 됩니다. 아버지를 위해 싸움은 못 하더라도 아버지의 마음편에 선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내 자신이 하늘편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늘이 심어 준 나무는 뽑을 자가 없고 하늘이 심지 않은 나무는 뽑히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늘이 심은 나무는 뽑을 자가 없는 동시에 하늘이 심지 않은 나무는 뽑히지 않을 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28-132
하나님도 사탄도 관계할 수 없는 , 오직 홀로 넘어야 할 고비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이 길을 하나님이 막는 날에는 무자비한 것입니다. 내가 잘 압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나를 중심삼고 나오는 데 있어서 내 가슴에 화살을 꽂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분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분합니다. 자다가도 ‘아, 그놈의 자식’ 하는 말이 입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상이 남아 있으니 일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을 잡쳤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나는 그런 것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하늘을 향해 가는 길에 있어서 잘못하게 되면 책임자는 몇 배 이상의 짐을 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가정이 아무리 참사를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은 죽어도 갖지 못합니다. 다년간의 체험을 통해서 안 것이지만 원리를 벗어날 때 하나님은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가정이면 가정을 이끌고 나가는 데 있어서 뒤에 따르는 사람이 책임을 못 하게 될 때에는 가정도 책임져야 하고, 교회에서 책임을 못하면 교회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이렇듯 기도하는 자리에서 피뿌린 옷을 입고 제사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면서 나가야 하는 제사장의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이런 생활을 해 나가야 됩니다. 그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도 체험을 했을지 모르지만, 감옥 같은 데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은 모른 척하십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그때는 사탄과 하나님이 대결하는 중간지점, 즉 함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함정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도 안 꺼내 주고, 사탄도 안 꺼내 줍니다. 그러지 않을 때는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확실히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집에 두고 어디 갔을 때에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분명히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에 갈 수 없으므로 어머니는 어쩔 수 없고 자식이 혼자서 그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것은 스스로가 넘어야 할 담입니다. 그 고개를 넘어야 그 이상 안 떨어지겠기에 하나님은 약속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대나무가 마디 마디를 맺고 성장하듯이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떨어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개인승리에서 가정승리로 넘어갈 때는 하나님은 절대 관계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싸우느냐? 홀로 싸워야 됩니다.

개인기준에서 가정기준으로 넘어갈 때에는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가 생명의 원천이 되지 않고서는 가정의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은혜의 생활을 하던 그 심정적 기준을 잃지 않기 위해 피땀 흘려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맘 하나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떨어져 나갑니다. 다 끊어지는 것입니다.

한 고개를 넘으려면 그에 비례되는 시련을 거쳐야 됩니다. 거기에 비례 되는 흑암의 과정을 거쳐야 돼요. 그럴 때는 , 피가 흐르는 곳을 꾹 누르면 그 곳이 하얘지면서 피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시련을 참고 흑암의 세계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관문을 거쳐야 돼요. 그럴 때는 아무리 감옥이라 하더라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심정적 기준을 어떻게 유발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10시간, 혹은 20시간, 아니면 몇 주일씩 걸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심정이 퍼져 나갈 때의 기쁨은 세상의 억만장 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클 것입니다. 그러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여러분이 모르는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이 길을 어떻게 직선상으로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것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70년대에는 어떻게 될 거라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28-134
하늘이 붙잡아 줄 수 있는 ‘나’가 되어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과연 하늘편입니까? 하늘편인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하늘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하늘편에 속한 사람이 라고 하니 내가 하나 물어 볼까요? 하늘편이라고 손을 들면 벌써 하늘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선생님 사정이 어떤 줄 알아요? 알긴 뭘 알아요? 말을 듣고 보니 알 것 같은 것이지 정말 아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어제 아침에도 ‘예수의 탄생과 우리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하면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놓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기 나름대로 살면서 선생님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여러분을 끌고 나가야겠습니다. 가정들도 마찬가지예요. 가정들도 내가 가르치면서 끌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달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내게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가지고 내게 맡겨진 십자가는 내가 감당하겠다고 하며 이 땅을 수습해 나갈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염려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을 이룰 것인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단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늘이 풀어 줄 수 있는 ‘나’ 내가 쓰러지려 할 때 쓰러지지 않도록 하늘이 붙잡아 줄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나오는 데 있어서는 죽을 고비도 많았고, 하늘의 배척을 받는 때도 많았습니다. 아마도 통일교회가 망할 길을 갔다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일대를 돌아보면 50년에 가까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지금까지 남아졌다는 것은 지극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의 사명을 해야 할 역사는 언제나 연결되는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에도 그러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과 가정을 어떻게 연길시킬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큰 싸움을 거쳐야 됩니다. 가정과 종족을 연결시키는 데도 그렇고, 종족과 민족을 연결시키는 데도 그렇고, 민족과 국가를 연결시키는 데도 그렇습니다. 어디에나 그런 고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가인과 아벨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지금까지는 항상 외적인 사탄편이 이겼습니다. 이 세상과 선생님을 두고 볼 때, 외적인 입장은 이 세상 전체요, 내적인 입장은 선생님을 중심삼은 이 길 하나밖에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개인적인 싸움과 가정적인 싸움과 종족적인 싸움과 민족적인 싸움을 대신하여 국가라는 이름으로 갈래야 갈 길이 없는 입장에 딱 부딪쳤습니다. 이제는 갈 길이 없어요. 그러므로 승공전선을 만들어서 공산주의 사상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사상을 가지고 주체적인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국가의 권위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갈 길이 생기지, 지금과 같이 민주주의를 따라가는 데 있어서의 한국의 갈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따라간다고 해도 한국의 갈 길은 없습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최접경지대까지 몰아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하늘편의 위신과 권위를 세워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금년의 표어가 ‘승리적 통일전선’인 것입니다.

여러분중에 금년도 표어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금년도의 표어는 ‘승리적 통일전선’입니다. 승리적 통일전선! 이거 말은 간단합니다. 승리적 통일전선이란 다시 말하면, 하늘편에 서서 하나님과 일치되는 심정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편의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움직여 나가고,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을,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을,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를,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 개인과 가정이 여기에 완전히 일치가 되면, 주체가 되어 가지고 민족기준과 국가기준을 움직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이 국가로 나갈 때는 국가의 위정자가 되고 최고의 지도자가 되며, 세계로 나갈 때는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섭리의 대표자가 됩니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 서야 합니다.

28-136
통일족속이 가야 할 길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의 사명을 하는 데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종족의 사명을 하는 것으로만 끝나서도 안 됩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세계로 계속 연결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갖추어야만 통일전선에 있어서 하늘의 용사로서의 사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이 삼천만 민중의 가슴 가슴과 연결될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이 문제는 국가 기준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의 움직임이 내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그러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권을 만들어서 국가를 중심삼고 외적으로 아시아와 세계에 연결시키면 통일교회는 안팎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편을 중심으로 해서 싸움을 할 것입니다. 하늘편 입장의 개인을 중심삼고 개인의 승리를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하늘편 가정이 결정되기 전에는 가정을 중심삼고 하늘편 가정의 승리를 위한 싸움을 시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편 종족이 편성되지 않고는 하늘의 민족을 찾기 위한 싸움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하늘을 중심삼은 하나의 족속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하나의 통일족속이에요.

그러면 이 통일족속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냐? 통일 민족을 이루는 길입니다. 통일 민족을 이루어서 통일 족속의 주체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민족적 씨족적 기준을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통일민족을 중심삼고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서 하늘편에 심어질 수 있는 씨가 되어야 합니다. 심어지는 데는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 심어져야 됩니다. 그러면 그 더러운 것들이 그 씨에게 비료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말끔한 모래밭보다도 시궁창 같은 곳에 심어지게 되면 더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궁창에 있는 것들이 오히려 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영양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뿌리는 데는 어디에다가 뿌리려고 하느냐? 죽음길에다 뿌리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가야 한다는 거예요. 하늘편에서 추락한 녀석은 사탄편에서도 추락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늘편에서 일등하는 사람들은 사탄편에서도 자기 국가나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정병인 것입니다. 하늘편에서도 하늘편을 대표할 수 있는 정병이고요.

그런 정병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싸워서 굴복시키면 최대의 성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것이요, 그 권내에서 국가적 승리와 세계적 승리의 기준을 차례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가는 길은 일생이 고달프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공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면 망할 운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을 물리치기 위하여 반공의 표제 아래 민족의 기수가 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자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따라서 통일교회의 젊은 남녀들은 물론 늙은 사람들까지도 전부 다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김일성이 공산당원이 전멸되는 한이 있더라도 남침하겠다고 한다면, 이것을 방위하여 한국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젊은 사람들을 전부 불러서 일선에 세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김일성이 자기 당원들에게 부과하는 이상의 책임을 지우더라도 하늘의 뜻을 위하여 그 책임을 수행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때요? 그럴 수 있겠어요? 이런 말을 들으니까 섬뜩하지요?

28-138
충신이 필요하다
여러분도 일본 승공연합의 기록영화를 보았지만, 지금 일본 승공연합은 공산당하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대낮에도 싸우다가 피를 흘리고 죽어갑니다. 한국에서는 간첩 하면 도둑 중에 제일 무서운 도둑쯤으로 알고 있지만, 거기에는 간첩이고 뭐고 없습니다. 형제끼리도 서로 이념이 다르면 싸움질을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얼마 안 됩니다. 수로 말하면 호랑이와 벼룩이 싸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통일교인은 벼룩은 벼룩인데 다이나마이트 같은 폭탄을 지니고 있는 벼룩입니다. 이 벼룩이 깨물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입니다. 이런 싸움을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편 한 사람이 그들 백 사람 천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지금 이런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조선대학 앞에서 강의를 하겠으니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라는 식으로 조총련이 있는 데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여자를 내세워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기록 영화를 보면 그들이 나와서 방해를 하느라 잡아 끌고 당기고 하는데, 그것을 보고 남들은 웃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제입니다. 또 어떤 때는 한꺼번에 몰려와 가지고 한 사람을 타고 앉아서 목을 누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주일 정도만 하게 되면 우리를 동정하는 사람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동정하는 사람이 몇 사람만 나오게 되면 그들의 내부에 분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니 틀림없거든요. 말에 틀림이 없고 행동에 틀림이 없고, 모든 도의적인 면에서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자기들의 말과 행동이 틀린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반드시 양심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스스로가 공산당에게 희생되었다는 불신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 자체가 폭발되게 할 수 있는 간접적인 전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이 민족이 가야 할 최고의 일선입니다. 알겠어요? 「예」

한국에서도 우리 통일교회는 종교계에서 제일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계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을 우리 통일교회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계에 통일전선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종교계를 통일전선화하자!’ 해 가지고 초교파운동을 하는 것인데, 전부 타령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이제 기성교회가 견딜 수 있는 다리가 무너져 가니 머무적거리는 곳이 많아지고, 그래서 그들이 우리 활동에 참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종교적으로 비난을 받게 된 것이고 배척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지금 국제적인 종교 형식을 갖추어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산에서 일어난 데모도, 김주열이 죽은 뒤 마산 시민들이 일어서자고 공모해서 일으킨 것입니까? 공모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면 한마디에 다 돌아가는 것입니다. 민족의 심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폭파구가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화산맥이라고 했을 때, 그것만 찾아서 터뜨려 놓으면 화산 전체가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맥이, 그 근원이 크면 클수록 큰 화산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시한 녀석들은 전부 묻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이라도 충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해 가지고 삼천만 민중으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고 이를 위해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사람, 삼천만 민중의 격분한 마음을 폭발시킬 수 있는 사람, 그런 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늘날 삼천만 민중을 책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얼굴이 예쁘장한 우리 아가씨들, 알겠지요?

내가 아가씨들에게 예쁘장하다고 했는데 그 예쁘장한 얼굴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헤쭉헤쭉 웃고 시집이나 갈 그런 얼굴이 아닙니다. 그 얼굴과 그 눈동자와 그 모습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사탄편이 되지 말고 하늘편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사탄편의 길이라면, 하늘편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28-140
복을 잘못 받았다가는 큰일난다
여러분은 ‘아! 어려운데…’ 하지만 선생님은 별의별 곳에서 다 살다 보았습니다. 자기가 비참한 자리에 가면 갈수록 하늘이 같이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때는 눈을 척 뜨면 하늘에서 빛이 나고 있습니다. 하늘이 같이하면 그런 현상도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 전경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세상에 미남 미녀도 많지만 그런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 아름다움은 꿈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백 퍼센트 표현될 수 있는 곳이 우리가 바라는 이상세계, 즉 천국입니다. 만약 여기 박공서 같은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보게 되면 감격하여 아주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쉬어 놓고 내쉬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가 아무리 외롭고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도 하늘이 같이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견뎌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억울함을 많이 당했습니다. 내가 죽기를 바라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그 사람이 나타나서 ‘당신은 아직도 그 놀음을 하느냐, 뜻이 도대체 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 일은 뜻을 위해서 하는 일이요, 또 하늘의 뜻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대해 참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뜻길을 가는 사나이의 마음이 변하랴. 언젠가는 그가 나에게 큰절을 할 때가 올 것이다’ 하며 묵묵히 나왔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내게 같이해 주시거든, 그 아버지의 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복귀도상에서 사심없이 아버지의 사정을 위로해 드리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 사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번 만나 보고 싶기까지 합니다. 언젠가 한번 다시 만나 보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외로운 인생길이기에 선생님에게는 친구도 없습니다. 단 한 분, 아버지 밖에는 없습니다. 밤에도 그렇고 낮에도 그렇고 어느때나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의 요건을 찾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요건을 찾아서 주는 사람들뿐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운명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길이로되 하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사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집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난해에 우리 현진이를 낳아 가지고, 이 녀석을 더운 방에 있게 해야 하는 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따뜻한 방에 있게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자는 방을 내주고 나는 2층 서재의 마루바닥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편했습니다. 우선 자고 일어나서 기도하기가 편해요. 침대는 삐걱 삐걱하고 요란해서 참 곤란해요. 침대에서 무릎을 꿇어 보세요. 푹 푹 들어가고 안 좋아요. 마룻바닥은 그냥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 되거든요. 협동을 해야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감옥에 가서 인생을 끝내야 한다고 하더라도 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도 한하지 않기로 결의한 사람입니다. 내 인생이 감옥에서 시작되어서 감옥에서 끝난다 하더라도 한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도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행복이 있다면, 그 행복을 여러분에게 전부 나누어주려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것을 잘못 받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이것이 가짜가 아닐진대 잘못 받았다가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가짜로 취급하여 가짜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까지 자신이 진짜를 가짜로 취급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테스트해 보아야 합니다.

28-141
자기를 중심삼으면 망한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괴로운 시련과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인격을 갖추고, 승리를 결정짓는 데 가장 가까운 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이 가지 못하는 길을 자청해서 앞장서 가겠다는 뜻을 품은 사람은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뜻을 품고 세계를 향해 가는 사람은 성인이 되고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하늘 편에 서서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편한 것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편안한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의 국사를 책임진 사람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유럽의 국가라든가 혹은 동남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대통령이 구경하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경하러 다닌다면 그 위정자는 오래 못 갑니다. 나라를 위해서, 나라에 기여하겠다는 목적하에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구경을 하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외국에 나가서 외교적으로 승리한 어떤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 일가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 국가 전체의 행복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앞으로 하늘로부터 어떤 복을 받는 다면 그 복은 여러분 개인만의 복이 아닙니다. 세계의 복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슴지 않고 개인의 것으로 챙겨 넣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 복을 세계의 복으로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 그 복을 세계에 나누어 줌으로써 그것을 천 사람이 받게 되면 천 사람은 한꺼번에 복덩이를 열매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열매적인 복을 필요로 합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복을 필요로 합니까? 보통, 사람들은 개인적인 복을 받겠다고 합니다. 통일교인들은 들어서 알겠지만, 그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으로 세워져 있기 때문에 지금 사회 체제가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자기나 자기 가족을 중심삼은 사람은 아무 말을 안 해도 벌써 압니다. 냄새가 나는 거예요. 선생님은 일생 기도해 나온 사람입니다. 기도하게 되면 벌써 사탄이 어디에 오고 있다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냄새를 맡고도 안다는 것입니다. 벌써 영적 파장이 다릅니다. 전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어떻게 해도 거기에 안 말려듭니다. 절대로 말려들어가지 않는 다는 거예요. 사탄을 대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인사조치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지구장(地區長)을 시켜주면 이렇게 이렇게 잘할 텐데’ 하면서 ‘나는 지역장(地域長)이 맞지 않고 지구장이 맞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라고 했습니까? 지구장을 시켜 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원할 겁니까? 그 다음에는 지구장이 맞지 않으니 협회장을 시켜 달라고 할 것 아닙니까? 욕심을 가지고 자기를 주장하게 되면 한계가 없습니다. 나라를 전부다 자기의 수중에 넣고도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28-143
심정적인 면에서 하늘편이 되어야 한다
하늘을 중심삼고 가는 길은 자기에게 행복의 여건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남에게 몽땅 주려고 하는 길입니다. 부모가 되어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좋은 것을 자기가 갖고 죽겠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왜 발전을 못 하는 줄 알아요? 예를 들어 고려 청자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오늘날 사람들이 그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옛날의 기술자들이 그 방법을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죽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이루어 온 것을 자기의 아들딸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집안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자기가 천년 고생을 다해 가지고 얻은 귀한 복이 있으면 그 복을 서슴지 않고 자기의 아들딸들을 위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후손에게 그런 것을 남겨주기 위해 준비하는 부모만이 역사에 남아지는 것이고 역사에 자료를 남길 수 있는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자기 일대에 모든 것을 수습해 버리고 후손들에게는 안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야 후진국으로서 경제를 부흥시키려니 야단이 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리를 넓혀 나가려는 사람, 자기부터 생각하는 사람 등 욕심꾸러기들은 앞으로 정리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제일 싫습니다. 솔직이 터놓고 얘기하는 거예요.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에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인격을 갖추고 내 자신의 권위를 갖추어야 하는 데 그럴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선생님은 투쟁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세워질 때까지는 눈물이 마르지 않더라도, 눈물이 그치지 않더라도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하늘편 입장에 기쁘게 화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늘편에 있어서도 기쁘고 좋은 것은 내 것이라는 사람은 악한 편의 사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 반대의 자리에서 하늘과 심정적 유대를 맺어 가지고 내일은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희망에 벅찬 가슴을 안고 새로운 시대의 씨가 되기 위해서 무한히 속죄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편의 사람이요, 그러한 요소를 갖춘 가정이 하늘편의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요소를 갖추어 가지고 씨족으로 세움을 받을 때 그 씨족은 하늘편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씨족을 통해서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을 통해서 국가를 이루면 그 국가는 세계 만민 앞에 남아지는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부터 통일해야 할 전체적인 기준이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명절 같은 때에 예물을 가져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예물이 어떻게 왔느냐? 얼마만큼이나 정성을 들인 예물이냐 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무서운 겁니다. 일년 동안 정성을 들여 가지고 온 예물인데도 불구하고 일년 동안 정성들인 것을 알아 주지 못하고 마음대로 사용했다 가는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은 내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신중히 대하려고 합니다.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살고 있는데,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지방에서 누가 무엇을 가지고 오면 당신이 어쩐 일이냐고 하며 좋아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본부는 전세계의 통일 신도들이 정성들이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하나의 물건이라도 무서운 것입니다. 잘못하면 독약과 마찬가지입니다. 옛날부터 그러지 않아요? 지성소에 들어가서 행동을 잘못하면 급살을 맞아 죽는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옷을 해 오면 안 입습니다. 실례 같지만 안 입어요. 심정적인 면에서 하늘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은 여러분이 받을 복이 아닙니다. 그 복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살리고 국가를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28-145
하늘편에 심어지는 자가 되라
기도를 할 때도 ‘나는 1970년도에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인류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세계에서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러이러하고 이러이러한 길을 가는 사람이 당신께서 바라시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는 식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 있어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세계를 대표하는 하늘편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어요? 나는 압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요. 기도를 해보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우리 통일교인 가운데 있느냐 하면 없습니다. 통일교인 가운데에서 그러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아들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앞으로 축복가정의 아들딸들 가운데 그러한 아들딸이 태어날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한다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 비료가 되고 거름이 되고 그를 위해 천년 동안 기도를 하고 천년 동안 종살이를 해야 한다고 해도 하겠다는 마음, 만일 내가 세계를 대신하여 그런 영광된 자리에 선다면 기꺼이 종의 종이라도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중심삼고 뜻을 이루려고 하실 것이요, 그 사람을 중심삼고 이루지 못하면 그 사람의 후손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하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사람을 보내실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전부다 ‘1970년도에 통일교회를 지켜 주소’ 하고 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아요.

통일교회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면 공석에서 일하는 선생님은 저절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사람들 복받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에 있어서는 가만히 있어도 그 뿌리를 통해 가지고 열매가 맺게 되어 있는 것처럼, 가만히 두면 자연히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는 데 부산스럽게 열매가 잘 맺혀야 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맺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대로 나가면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으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심어 놓은 벼가 논에서 잘 자라고 있는 데, 벌레가 먹으면 어떻게 하나, 누가 베어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걱정 말고 일단 선생님에게 모두 맡기고 가라는 거예요.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의 때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왜 망하느냐?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고, 자기 사돈의 팔촌을 위해 기도하고, 그 다음에 가서 잊어질 만하면 나라와 세계를 위해 복을 빌어 줍니다. 전부 반대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 망할 수밖에요.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는 하늘땅을 위해서 가는 것이 정상적인 코스입니다.

더 큰 것을 바라는 뜻이 우리 앞에 바라는 아버지의 요구이기 때문에 그 요구에 적합한 우리 자신들의 정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에게만 복을 주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을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세계를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나중에 가서는 ‘나는 하나님을 모르겠소. 내 세상인데 알 게 뭐요’라고 할 가망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이제부터 여러분은 사회적으로 혁신을 하고 정신을 차려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1969년도 마지막 안식일에 ‘하늘편에 심겨진 존재가 되라’고 말씀했는데, 1970년대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가서 볼 때 진정으로 자신이 하늘편에 선 사람이 되었다면, ‘내가 하나님의 은사를 잊지 않았구나’ 하면서 과연 고마우신 말씀이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은혜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1980년대에는 새로운 세계를 세울 수 있는 종족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하늘편에 서서 하늘편에 심어지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런 여러분을 중심삼고 통일 교단은 선의 뜻을 갖춘 교단으로서 민족해방의 길과 세계에 부응할 수 있는 길을 동시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1970년대에는 좀 다른 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알겠지요? 「예」

28-147
기 도
아버님, 지난날 저희들에게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추억할 수 있고, 하늘편으로 남아질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도리어 그것에 감사하옵나이다.

저희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옵나이다. 저희들은 남이 갖지 못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이 갖지 못한 현실에 대한 투지를 갖고 있사옵나이다.

생명의 인연을 갖추게 되면, 환경이 아무리 반석같이 굳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제거하고 자랄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무한히 뻗어 나갈 수 있는 자력을 지닌 아들딸이 되어야만 변하지 않는 하늘편의 모습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저희들 스스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언제나 하늘편이냐 사탄편이냐 하는 것을 가려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금년의 표어인 승리적 통일전선을 앞에 놓고 힘차게 달려가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내가 칼을 뽑아 들고 싸우는 격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자기의 핏자국을 남긴 그곳을 행복의 기점으로 삼고 거기에 하늘적인 가치만을 심어 놓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하늘의 동조자를 남길 수 있어야겠습니다. 혹시 자신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사정에 처하게 되면 그 자리에 하늘편의 사람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승리적인 전통의 기준이라도 세워 놓고 죽겠다고 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 50여 평생 뜻을 위한다고 걸어 나온 저의 걸음이 아버지 앞에 얼마나 불효하였사옵나이까? 아버지 앞에 때와 시간을 맞추지 못하여 민족이, 혹은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서 벗어나 한을 남기고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사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하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또다시 저 자신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사오니 이러한 저의 입장을 아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지금까지 처참한 역사과정에서 몸부림치는 입장이었음에도 오늘날 통일제단이 정성들여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이 민족을 다시 한번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갈 길을 찾다가 낙망한 사람이 있거든 당신의 후한 사랑의 손길을 다시 펼치시어서, 새로운 아침을 향하여 당신 앞에 더더욱 충성하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하며 나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통일의 아들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960년도에 인연맺은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과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지방 순회를 떠나는 자녀들 위에 아버지의 두터운 마음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사랑하고 용서해 줌으로써 용서법을 주관하는 천륜이 얼마나 고귀한가 하는 것을 깨닫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과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하늘편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하늘편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하늘편의 자체가 되어야 하겠사옵나이다. 하늘편으로 태어났다가 하늘편으로 죽을 때까지의 천만사를 하늘 것으로 시작하여 하늘 것으로 종결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승리한 그 누구보다도 승리한 사람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일은 오늘날의 역사적 한계를 넘고 세계적인 한계선까지 넘어서 아버지의 평화의 왕국을 건설할 때에야 결실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죽은 자들이 아니요, 망한 자들이 아니라 부활의 권내로 뻗어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새로운 힘을 가지고 희망의 동산으로 뻗어 나가게 될 때는 , 급격히 자라서 천지를 뒤덮게 될 때는 그 승리적 권한을 자유본향에 있어서, 자유세계에 있어서 행사할 수 있을 것임을 알고 그러한 소망가운데서 살고, 그러한 소망을 바라보며 하늘편에 서서 싸우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에 저희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을 명심하게 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늘의 사정, 하늘의 심정을 지니고 결판을 짓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말하고 생활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새로이 출발하는 1970년대의 이 상황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아버지 안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렇다고 저희들이 편한 길을 원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남들은 배척하고, 남들은 버리고, 남들은 저주하는 자리라 하더라도 저희들은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를 아버지의 심정권내로 찾아드릴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자로서 하늘의 무한한 축복의 상속권을 가지고 재출발할 수 있는 때가 기필코 그 앞 길에 현현할 것을 믿사오니, 천년사를 단장하고 만년사에 승리의 팻말을 꽂는 주인된 모습들로 하늘편에 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를 고대하고 부르고 있는 세계 앞에 남아진 저희가 졸장부의 모습이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하늘의 왕자의 모습과 공주의 모습을 지니고 그 권위와 체면을 세우는 데 있어서 부끄럽지 않도록 늠름하고, 씩씩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하늘편의 중심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하늘편만이 승리하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겼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

남한 각지와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 나라와 세계의 소망의 한날을 바라보며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품어 주시옵소서.

악이 진동하는 이 세계의 모든 권한을 꺾으시어서 당신께서 품에 품을 수 있고, 승리의 깃발을 들어 당신의 영광을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어서 속히 도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세계에서 아버지께 품길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 위해 재삼 결의하는 이 아침이 되게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