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7 to 28-46: 하나님의 날과 통일교회의 사명

하나님의 날과 통일교회의 사명
1970.01.01 (목), 한국 전본부교회

28-07
하나님의 날과 통일교회의 사명
[기 도]

오늘 새로운 이 아침을 맞이하여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나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백성들과 저희들의 가정 위에, 아버지, 사랑의 손길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영광의 세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무한하신 은사로써 오늘 하루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오늘은 하나님의 날을 선포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옵니다. 이 땅 위에서 이러한 날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진 것은 저희들 뿐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이 거룩한 축절을 저희들로 하여금 맞이하게 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은사를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부족하나마 있는 정성을 다 모아 이날을 기념하고, 이날을 아버지 앞에 영광의 날로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날에 참석한 이 영광을 마음과 몸으로 체휼하고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자랑의 조건으로 남길 수 있도록,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우리를 위하여 수고한 그 기준 위에도,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 하나의 가족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아버님이 자주적 권한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는 세계의 만상과 온 인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부족한 마음들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날 하루에도 복을 주시옵고, 이 한해에도 같이하시어서 저희가 계획한 만사가 일취월장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승리에 승리를 다짐하고 통일에 통일을 다짐할 수 있는 최후의 전선이 저희 자체로부터 가정을 거쳐 민족 국가 세계로 진출하여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것을 거룩하신 아버지의 은사로 받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8-08
말 씀
여러분이 알다시피 하나님의 날은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만 기념하는 날로 지켜 왔습니다. 그러나 이날이 통일교회의 기념일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인류가 공히 이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는 그때까지 온갖 수고를 다해 책임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28-08
잃어버린 날을 찾아 나온 복귀역사
만일 인류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었다면, 그 가정을 이루는 날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날이요, 하나님의 기쁨의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로소 이 지상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날은 우리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가 참된 부모로서 출발을 하는 날이요, 인간만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만물까지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 인류의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고대하시던 이상적인 그날을 잃어버리고, 인류가 고대하던 참된 날을 잃어버리고, 만물이 고대하던 참된 날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잃어버린 날들을 다시 찾기 위한 것이 구원섭리요. 복귀섭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복귀해 나가야 되느냐? 만물을 조건삼아 가지고 거꾸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조건은 사람이 아니라 만물이었던 것입니다. 만물을 제물로 드려 왔던 거예요. 거기에서 한 단계 끌어올려 가지고 제물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오는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약시대로부터 기독교를 중심삼은 신약시대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제물과 일체될 수 있는, 제물 대신될 수 있는 세계적인 하나의 실체로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제물의 실체로 오셨기 때문에 전체의 제물을 주관할 수 있는 제물의 중심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물질적인 제물을 직접 장악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중간 역할을 하기 위하여 오셨던 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돌아 가셨던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려면 반드시 백성이 있어야 되고, 나라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나라와 백성이 합한 가운데서 예수님이 인류를 대표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죽은 제물이 아닌 승리적인 제물, 즉 부활된 실체로서 제물을 몽땅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제물의 실체되는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조건을 벗어나야 했던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잘못 드리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중간에 세워 놓고 분립시키기 위한 조건물이 제물이기 때문에 제물은 잘못 드리면 사탄 앞에 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요, 잘 드리면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이전까지는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친 역사가 되지 못했더라도 예수님을 중심삼고는 그런 역사시대를 넘어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묶어 바쳐 가지고 완전히 승리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그 사회, 즉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고, 사탄은 참소하거나 간섭할 수 없는 승리적인 환경을 마련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가 예수님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기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것을 재편성해서 세계적인 발전을 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제 1이스라엘의 기반을 닦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특정한 국가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민족과 국가를 지도하는 특정한 종교로서 기독교가 발전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상의 기반을 완전히 멸하고 영적인 세계에 이루어질 나라를 바라보면서 발전해 나온 것도 아닙니다. 소망의 나라, 천국을 그리워하고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영적인 발전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적 발전이란 민족 편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민족 편성을 이루기 위한 개인 개인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인 것입니다. 이리하여 개인 개인의 구원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제2이스라엘권을 이루어서, 다시 이 지상에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백성을 편성해 놓고 하나님 앞에 승리적인 제물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이러한 탕감의 노정을 거쳐온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8-10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냐? 만물의 제물 시대를 거치고 아들딸의 제물시대를 거쳐 가지고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권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위에 승리적인 제물, 즉 부활실체의 제물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이 언제나 마음대로 취할 수 있고, 언제나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실체를 복귀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아들딸을 반드시 지상에 현현시켜야 됩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인 동시에 참부모의 사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하기 위해서는 그 제물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시대는 만물적인 제물과정을 거치고, 신약시대는 자녀의 제물과정을 거치고, 성약시대는 부모의 제물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릴 때에는 반드시 부모로서 참소조건을 넘어 하나님이 온전히 취하실 수 있도록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평면 세상을 마음대로 주관하고 마음대로 명령하고 마음대로 이끌 수 있는 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입니다. 그 가정은 하나의 국가가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이요, 민족이 출발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천국의 이념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완성할 수 있는 인류의 참부모의 인연을 땅 위에 성립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참부모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하는 것이며, 만물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에게는 하늘이 집중될 수 있는 것이요, 만물이 집중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늘과 땅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천사세계는 물론 영계도 협조하게 되어 있지 반대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제물실체는 하늘에서도 상충이 벌어졌고 땅에서도 상충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늘을 땅에 연결시켜서 땅 위에 있는 사람을 중심삼고 일치화되고, 또 이 사람을 중심삼고 만물과 일치화될 수 있는 일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물을 통해 만물과 일치화될 수 있는 일을 지금까지 해 나왔으나 결국 만물과 일치화할 수 있는 것은 만물 그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입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고는 하늘과 연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연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재현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와 성신입니다. 그러나 예수와 성신이 영적으로만 그 기준을 이루었지 영육 아우른 실체로서 연결될 수 있는 중심은 못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육 아울러 그 기준을 완결짓기 위해 소망의 한때를 바라보면서 재림이라는 사상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떠한 사명을 짊어졌느냐? 기독교가 바라는 그러한 소망의 때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소망을 이룬 실체 기준을 중심삼고 나가는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냐? 참부모입니다. 그 참부모는 하나님과 연결되고, 땅과 연결되고, 영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연결되고 땅 위의 만인과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요, 천사세계까지도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우주가 참부모를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여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실 수 있는 권위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목적과 창조위업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28-12
역사적인 1960년대
그러면 이러한 것이 어느 때에 이루어지느냐? 아담 해와가 축복을 받음으로써, 즉 성혼식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 역사해 나오는 복귀과정을 생각해 볼 때, 인류의 조상이 타락한 것은 장성기 완성급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는 이것을 다시 찾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생기는 종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장성기는 양자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며, 완성기는 적자(嬌子)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야곱의 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이며, 소생기에 해당하는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인 것입니다. 따라서 종의 시대인 이 구약시대를 거쳐서 예수님의 복음이 이 땅 위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양자의 시대권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류 시조가 양자권인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 아들의 외적인 형태와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다시 만들어서 장성기 완성급의 위치 까지 올려 놓아야 비로소 친자권을 상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인류 시조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이 장성기 완성급에 가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은 가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 가정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서는 그 기준에 올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1960년대에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기준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그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7년노정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7년노정은 무엇하는 기간이냐? 지금까지 사탄으로부터 침범당하였던 모든 안팎의 내용을 전부다 절단해 버리고 사탄을 완전 방위 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방위하는 데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방위해야 합니다. 이 권내를 목표로 이스라엘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은 유대교가 발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의 목적도 유대교의 목적도 이 권내에서 완결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어간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목적도 유대교의 목적도 이 권내에서 해결지을 수 있는 기점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권내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시 지상으로 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는 데는 장성급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소생급으로 와야 합니다. 소생급으로 와서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의 조상 아담이 장성급에서 해와의 말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주관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을 갖춘,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인간으로 와 가지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통하여 해와를 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의 순서를 거쳐 가지고 해와, 즉 신부를 세워 새로운 가정을 성립시켜야만 비로소 완성세계를 향하여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타락한 시대의 끝날이요, 새로운 시대가 출발하는 때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말하면 1960년도입니다.

1960년도에 들어와서 역사가 세계적인 전환시대로 들어간 것을 나타난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통일교회에서만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인 이 세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섭리를 추진시켜 나오는 통일교회의 움직임이 그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7년노정을 거치고 다시 3년노정을 지냄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세계의 정세는 우리가 전후 좌우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는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은 어디에서 받아야 하느냐? 장성기 완성급에서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참부모를 중심삼은 인연이 현현하였다는 것은 천주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참부모의 날이 생기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거짓된 부모를 어떻게 참부모의 자리로 복귀하느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28-14
하나님의 날이 선포되기까지
이 참부모를 복귀하기 전에는 , 즉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가정을 찾기 전에는 타락하지 않은 후손도 가질 수 없는 것이요, 타락하지 않은 만물세계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세계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서는 하나님도 하나님으로서 행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1960년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의 날을 책정하고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부모가 있어야 자녀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자녀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을 주관하려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 가지고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아담 해와 둘만이 주관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횡적인 기반이요, 부모는 종적인 기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땅 위에 있어서 하나님 대신입니다. 이러한 종적인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만물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을 세운 후에 자녀의 날을 세우고, 자녀의 날을 세운 후에 만물의 날을 세웠습니다. 이 부모의 날과 만물의 날, 그리고 자녀의 날 자체는 타락권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권 내에 있습니다. 즉,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장성기 완성단계에서 완성기 소생단계로 넘어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관권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에덴을 복귀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을 중심삼고 7년노정을 가야 하는데 이것이 제2차 7년노정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1차 7년노정을 끝낸 1967년이 지난 후 1968년 정월 초하루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날은 선생님의 1차 7년노정이 끝난 날이요, 영계와 육계가 갈라지고 인류 역사의 내정적인 심정의 인연이 갈라진 날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갈라진 것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전체의 대표적 기준을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래 놓고 나서 나라를 위하든가 세계를 위하든가 해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일체의 조건을 밟고 넘어서서 자유스런 해방권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탕감의 환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러한 가정적 기준을 갖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을 설정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날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던 날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부모의 날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그 부모의 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녀의 날이 없으면 부모의 날은 부모의 날로서의 노릇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자녀의 날을 세웠다 하더라도 만물의 날을 세우지 않고는 자녀의 날이 자녀의 날로서의 책임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주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한 것이 탄식의 요인인 것입니다.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 세운 것이 1968년 정월 초하루에 세계적으로 선포한 하나님의 날입니다.

그로부터 3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 3년 기간은 자녀들이 책임해야 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지상에서 하늘 가정을 중심삼고 종적 기준을 횡적 기준으로 연결시켜야 될 때이기 때문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로 번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였으니 오늘날 통일종족을 중심삼고 삼천리 반도의 기반 위에 삼천만의 번식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동서남북으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의 조건을 탕감시켜서 재차 부활한 실체적인 입장에 세워 가지고 승리권을 마련한 것이 축복가정의 기반입니다. 이것이 왈 통일종족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통일종족은 아브라함이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하고, 아담 이후 수많은 선지자들이 뜻을 따라 나오다 실패하였던 여건들을 전부 탕감복귀하여,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연결해 가지고 참부모의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단체가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지금까지 축복가정들이 책임 못 한 분야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년에 새로이 제2차 운동을 제시하는 것은 그 가정들이 책임 못 한 것을 전부다 용서해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대책입니다. 금번 동계전도에 전체가 참여할 것을 명령한 원인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28-16
하나님의 날과 통일교회의 사명
이러한 하나님의 날이 선포됨으로 말미암아 1968년 1월부터 세계정세는 급변해 갈 것입니다. 앞으로 국내 정세나 아시아 정세도 한때에는 혼란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 혼란이 이 땅, 이 아시아에 오기 전에 우리는 내적 준비를 하여 그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내적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현재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날은 역사과정을 중심삼고 제일 심한 수고 끝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이 땅에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피조물도 안식의 터전이 벌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이 자리를 못 잡아 가지고는 피조물의 안식의 터전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아 가지고는 부모를 중심삼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로 천주의 대주재로 계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 마음과 몸에 스스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고,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주장할 수 있는 권한이 갖추어지지 않고는 이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를 누가 움직이느냐? 인간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배후에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자주장할 수 있는 권을 이루어 놓고야 움직이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날을 세우지 않고는 이 세계를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어떠한 단체나 어떠한 사람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날을 세계에 선포한 사실은 통일교회의 위대한 공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참석해서 이러한 내용을 듣고 식전을 갖추어 축하하며 여러분의 명절로 기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상의 어떤 선지선열은 물론이요, 예수님도 갖지 못하였던 영광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의 날을 기념함과 동시에 참부모를 직접 대할 수 있고 참자녀의 명분을 가질 수 있는 자리, 참다운 세계를 내 것으로 공인받고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 살아생전 이 눈과 이 감각을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은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고, 보지 못한 엄청난 은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얼마나 축하해야 하느냐? 역사상의 어떠한 축하의 날보다도 크게, 온갖 정성을 다 바쳐 가지고 거국적이요, 세계적으로 축하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와야만 됩니다. 그런 날을 오게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제3회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였는데 여기에서 3년노정, 즉 제 1회 하나님의 날과 제2회 하나님의 날, 그리고 제3회 하나님의 날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느냐? 제1회보다도 제2회를, 제2회보다도 제3회를 더 거국적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수가 더해질수록 이 세계는 이날을 더 크게 축하할 수 있는 권내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세계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아무리 개인천국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가정에 적용하지 못하면 개인이 안식할 수 있는 안정된 자리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가정천국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종족적인 환경의 기반을 승리적으로 세워 놓지 않고서는 안정된 가정천국의 기반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종족이 안정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민족을 중심삼은 기반을 결정지어야 하고, 민족이 안식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국가를 중심삼은 기반을 닦아야 하며, 국가가 안식할 수 있는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세계를 중심삼은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느 정도까지 왔느냐? 민족과 국가를 향해서 넘어갈 수 있는 시대권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중심이 정상이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가 정상적이면 가지도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몸뚱이를 잘라 버린다 해도 그 뿌리가 살아 있으면 새로운 가지가 나와서 수년 동안 자라 큰 몸뚱이를 가진 나무 이상 새로운 나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8-18
지혜로운 사람
그러면 금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이 발전하고 하늘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중심과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존재해도 여러분 자체의 존재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가치의 내용을 표면화시키는 것이 통일교회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표면화시켜야 하느냐?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표면화 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에 들어가서는 세계적인 선교 기반을 닦고, 전체 환경이 같은 기준이 되게끔 우리가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수행의 노정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하나님의 날을 어떠한 환경에서 축하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깨달아서 그 환경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사람보다도 가정적인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가정보다도 종족적 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요, 그런 가정이 어느 가정보다 지혜로운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기념할 수 있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며, 민족보다도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축하할 수 있는 날을 가지는 민족이 지혜로운 민족인 것입니다. 그러하여 각 국가를 중심삼은 세계 전체가 그 자리에 참석하여 옹위하고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환경이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하늘나라의 주권이 이 땅에 성립되어 멀지 않은 장래에 이 땅은 복귀될 수 있는 운명권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28-19
적지(敵地)에서 생존하려면
우리가 소원하는 국가복귀라는 엄청난 문제를 앞에 놓고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지구라는 것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자리, 즉 사탄이 역사하는 권내에 있는 하늘편 입장은 풍랑 속을 표류하다가 파손된 배를 몰고 육지에 상륙한 어부와 같습니다. 이러한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나타난 것은 예수가 이 땅 위에 복음을 들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으로 이 땅 위에 왔으니 사탄세계에서 보면 원수나라의 왕자인 것입니다. 즉, 하늘의 왕자로서 원수나라인 사탄세계에 와서 표류하다가 상륙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그 실정을 알면 그냥 두지 않는 것입니다. 알기 전까지는 그냥 있을는지 모르지만 알고 난 후에는 그냥 있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를 때려잡는 운동을 안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주먹 가지고는 안 됩니다. 힘 가지고는 안 돼요. 힘 가지고 하다가 점령당하게 되면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 나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의 대가를 치르고 남아진 후에는 그 나라의 종이라는 과정을 밟지 않고서는 다시 회생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종이 되지 않겠다면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 새로운 섭리의 뜻을 받들고 나오던 수많은 선열들도, 4천년 역사의 결실체로 선을 대표해 왔던 예수도 이와 같은 운명에 처했던 것입니다. 원수의 땅에 왔기 때문에 원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하여 지하운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하고 또한 앞으로 오실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할 때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물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에도 선전하지 않고 절대 비밀에 붙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는 지하 운동시대, 지하 게릴라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지하 게릴라 조직의 대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종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들보다도 더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나라에 필요하고 그 환경에 필요하다고 증거해 줄 수 있고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존속할 수 있는 발판을 남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의 뜻을 갖고 온 우리의 선지선열들은 반드시 종의 신세로 이 땅 위에 발붙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28-20
기적 중의 기적
이제 통일교회는 10년 여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국가적인 기반을 닦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대한민국의 60만 대군이 동원된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통일교회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2천년 전 예수님 당시와 지금 시대가 무엇이 어떻게 다릅니까? 물론 하나님이 역사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라는 권을 만들어 가지고 언론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라는 공적의 터전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과 같은 실적을 올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2천년 전, 예수님 당시에 이러한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새로운 운동을 하였다면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여러분들은 전부다 죽음의 고개를 넘었을 것입니다. 순교의 제물이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10여 년의 세월을 거쳐 나오면서 수고했다고 하지만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뜻을 위해 개척지에 나가서 싸우다가 맞아 죽은 사람이 몇 명입니까? 또한 굶어 죽은 사람은 몇 명입니까? 세상에는 맞아 죽는 사건도 많고, 굶어 죽는 사건도 많습니다. 그런데 맞아 죽을 수 있는 자리에서 맞아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호가 컸다는 것입니다. 또, 굶어 죽을 수 있는 입장에서 굶어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먹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는데도 맞아 죽지 않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는데도 굶어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구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원수의 족속들 가운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반대하는 환경에서 우리가 한 생명도 피해를 입지 않고, 한 사람도 희생 되지 않고 이러한 기반을 닦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컸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로마제국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4백년 동안 피의 대가를 치른 것은 얼마나 엄청나고 비참한 역사였습니까? 그런 역사와 지금을 비교하면 그 시대에 예수님이 전한 복음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날이니, 부모의 날이니, 자녀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몰랐다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도 이러한 내용의 행사나 행동도 할 수 없는 사회환경 속에 왔다 간 예수님은 정말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이 하나님의 날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축하할 수 있는,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환경 가운데 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이것은 천주사적인 사건이요, 이 세상에 아무리 큰 기적이 있다 하더라도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날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고대한 날이요, 예수와 성신이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중심삼고 피 흘리는 자리를 넘나들면서 찾아 나온 날입니다. 이 한날을 맞이하여 우리들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면목을 세우지 못한 전체 역사의 탈을 벗고 해방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하여 아버지라고 하며 모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참된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또한 그런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예수와 성신이 수고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과 성인현철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인들 역시 그러한 세계의 발판이 되기 위하여 동서남북 사방의 문을 열어 소망의 이념을 세계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왔던 것입니다.

28-22
하나님의 날을 보기 위해서
이와 같이 각 시대에 따라서 책임적 사명의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사명 단계가 끝나게 되면 후세에 남을 수 있는 다음 단계의 책임자에게 그 사명을 인계시켜서 하나의 통일된 사상세계로 수습해 나오는 것이 ‘섭리’라는 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의 모든 핵심적인 내용을 인계받아 세상에 밝히 알려 주는 단체가 통일교회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얘기를 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도 믿을 수 있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삼천만 민중이 해방을 맞아 기뻐 날뛰던 그때, 하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어 우리 민족이 자주권을 가질 수 있는 민족이 되어 핍박받던 입장에서 해방되었다고 기뻐하던 그때에 우리 민족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민족의 주권만을 찾기 위해서 야단했습니다. 대한민국을 하늘나라의 터전으로 하늘의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싸운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종교를 믿고 나가는 추종자들마저도 그런 준비와 내용을 중심삼은 터전에서 자기들이 하늘의 명령하에 그 일을 실시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 버린 채 해방의 나팔 소리에 전부 휩쓸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 통일교회는 근 이십 년의 역사를 통하여 홀로 남아 이제는 신령한 단체로서. 신흥종교로서 왕자의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권내에 들어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지탱해 나온 것은 하나님의 날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일생 전체를 투입시킨 것도 하나님의 날을 설정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말은 간단하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복잡합니다. 뜻을 알고 예수님 시대의 내용을 보게 되면 예수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안 죽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분야, 환경적인 분야, 역사적인 분야, 시대적인 분야 등 미래에서 보아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된 것을 전부 꿰매어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탄과 겨룰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날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날을 책정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얼마나 공헌했습니까? 부모의 날을 세우는 데는 얼마나 공헌했습니까?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세우는 데는 얼마나 공헌을 했습니까? 조금도 공헌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헌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잃어버린 4천년 역사의 기반을 재차 수습했다는 조건을 세우는 사명을 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을 연결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의 협조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전부다 연결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인류의 참된조상이 되었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날을 잃어버리고,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 그리고 만물의 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가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이것을 수습할 책임을 짊어지신 분, 즉 인류가 바라는 참된 부모의 사명을 짊어지신 분이 와서 그것을 연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도 그분이 설정해 주어야 하고, 참된 부모의 날과 참된 자녀의 날, 그리고 참된 만물의 날도 그분이 설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권을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지고 십년 세월을 두고 그 한의 고개를 해결지어 가지고 넘었다는 조건을 세운 것은 위대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 가운데 여러분이 직접 동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땅 위의 스승을 참부모로 바라보며 이와 같은 날들을 축하할 수 있는 이 자리는 예수 당시의 불행했던 자리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28-24
여러분은 통일교회의 가치를 다 모르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받들어 모셔야 하는 가정적 환경을 잃어버린 예수, 세례 요한 일당이 받들어야 하는 그런 자리에서 배척받던 예수, 유대교가 환영해야 할 그런 환경이 전부 무너져 버림으로 인하여 절망 가운데 빠졌던 예수, 원수의 팻말을 든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입장에 처한 예수, 그러한 예수의 입장과 여러분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저 밑창의 천한 백성의 아들로 태어나 봐야 왕자의 권위가 어떻고 왕자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통일교회 속에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가치가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계에 있는 영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천상천국의 맨 말단에 있는 영인들도 잘 알고 있어요. 물론 중앙에 있는 영인들은 누구보다도 더더욱 잘 알고 있고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영적인 세계의 인연을 알고 도의 세계에서 정성을 들이고 있는 사람들, 즉 하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교인은 아니더라도 통일교회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는 허드재비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개인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서 교회를 팔아먹고, 자기의 죽음길을 모면하기 위해서 이 길을 저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한날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죽음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예수와 성신 또한 이 한날을 위해 피눈물을 흘려 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역사의 고빗길에서 막힌 것을 타개하기 위해 수많은 선조들이 피의 대가를 치르고 죽음의 고개를 넘고 넘어 이날을 찾아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날은 역사적인 모든 한이 집약된 날입니다. 우리는 이 한날을 세우기 위해 제시되는 조건에 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을 합하여 진심으로 ‘하나님의 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나는 하늘편이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사탄편에 서서 간첩행동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사회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장에서 사탄을 대하여 ‘네가 대결하면 나도 대결한다’고 하는 자신을 갖고 하나님을 모시고 행군할 수 있는 하나의 권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이것을 위해 종교를 중심삼고 싸움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종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패자가 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종 노릇을 하려니 지하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하운동을 공개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투쟁을 해야 합니다. 무한한 대가를 치러 탕감시켜야 합니다. 기독교는 지하운동을 통하여 국가의 기준을 타고 넘어가기 위해서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피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거기에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 승리한 용사들이 남아졌기 때문에 그 남아진 무리들의 권위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지하운동을 세계적으로 표면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28-25
기도는 몸과 마음을 완전히 드리는 것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그렇게 활동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과연 무슨 대가를 치렀습니까? 기독교가 치른 그 엄청난 대가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여러분도 그러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실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들이 제사 지낼 때 도시 복판에서 지냅니까, 산에 가서 지냅니까? 산에서 지내지요? 정성을 들이기 위해서 산으로 갑니다. 기도라는 것은 마음과 몸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드리기 위한 정성의 시간이 기도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몸을 드리는 데는 어디에서 드려야 할 것이가? 도회지에서 살림을 살면서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는 가운데에서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환경에서 드려서는 안 됩니다. 분별된 환경에서 드려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드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모셔야 되고, 몸으로는 자신에게 붙어 다니는 사탄을 때려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원하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마음이 원하는 세계로 깊이깊이 찾아 들어가는 시간이 기도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몸이 마음에 완전히 점령되어 화하는 자리가 바로 세상에서 말하는 도통하는 경지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을 받는 경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성을 들이는 것은 살아 생전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는 인연을 맺고 넘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러한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늘을 저버리지 말고 사탄과 싸워서 승리의 기반을 맺어 놓아야 사후의 세계에 가서 자기의 위치를 세워 면목을 세울 수 있는 것이지 그냥은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전에 승리의 기반을 결정지어 놓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굶어 죽을까봐 걱정할 때는 다 지나갔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든지 우리 교회가 있기 때문에 한두 끼쯤은 얻어먹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굶을 때도 지나갔고, 욕먹을 때도 지나갔고, 죽을 때도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28-26
종의 종살이를 해야
그러면 1960년도에 있어서 우리의 선각자들은 이 통일의 복음 운동을 어디서부터 해야 했느냐? 감옥에서부터 해야 했습니다. 감옥에서 지하운동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갔으면 됐지 거기서 또 무슨 지하 운동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베드로·요한·야고보 중심의 초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도 전부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협조하는 놀음이 벌어졌습니다.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고 나서 그 다음엔 사회라는 감옥에서 핍박받고 시련을 당하며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간첩 생활과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늘 앞에 플러스가 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까지도 걸고 나서지 않고는 동지들을 규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들딸을 사랑하는 정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아들딸은 뭐 사랑하지 않아도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지만 적대관계에 있는 원수와 서로 신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우상 장수 데라의 맏아들 아브라함을 빼앗아 올 때 얼마나 마음 졸이셨겠느냐 하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이것이 심정세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종살이를 하는 데도 고관집의 종살이가 아니라 머슴의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종의 종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구약시대 이전부터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혈통이 다르고, 내용은 다르지만 종으로서의 충성과 정성을 다해 가지고 주인 앞에 권위를 주장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양자권까지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주인이 자기 아들 딸보다도 더 믿게 될 때에 비로소 양자의 권한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양자권의 신앙입니다. 그런 양자의 입장을 상속받기 위해서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양자의 입장을 상속받으려면 우선 그 주인이 책임지고 있는 일을 점령해야 합니다. 주인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기반, 주인이 자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않고는 절대로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볼 때, ‘저 녀석은 도적 같아서 주기만 하면 다 팔아먹을 거야’ ‘저 녀석은 구두쇠로구나. 나보다 더 구두쇠로구나’ 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 녀석에게 맡겨 놓으면 틀림없겠구나’ 할 수 있어야 상속해 주려 하고 양자라도 삼아 주는 것이지 겉으로만 아무리 멀끔하게 잘생겼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난시에 있어서는 주인 없는 큰 황소보다도 어려운 피난길을 인도해 줄 수 있고, 혹은 원수들이 찾아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는 절름발이 강아지가 더 필요한 것입니다. 강아지가 짖는 것을 보면 원수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병신 자식이 효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학벌이 좋고 인물이 잘났으면 뭘 합니까? 문장이 훌륭하면 뭘 합니까? 그때는 오직 양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 그 주인이 믿어 주느냐 안 믿어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그저 ‘죽어도 예수, 망해도 예수, 살아도 예수’ 하는 데 그것이 뭐예요? 예수와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가 죽을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대신 죽을 수 있고, 예수가 좋은 자리에 있을 때 그와 더불어 나도 좋아하기 위해서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망해도 예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 들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고, 망해도 좋다고 하면서 믿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천당 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욕심바가지들만 득실거린다는 것입니다.

28-28
하나님의 날의 가치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하나님의 날은 모든 것이 집중된 소망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을 맞이한 오늘 이 자리는 예수님 때의 사도들의 자리와 비교도 안 됩니다. 이러한 엄청난 내용과 결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이날을 마음으로 축하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의 마음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아담과 해와 때의 가인과 아벨을 두고 볼 때 아벨이 이날을 축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노아 할아버지가 ‘그대들의 놀라우신 성상을 찬양할지어다’ 하고 축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3대 믿음의 조상권을 가진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부터 ‘내가 수고하고 내가 어려움을 당한 것은 오늘 이 한 날을 맞기 위함이었거늘 그대들의 놀라운 성사를 찬양한다’고 하는 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도 ‘우리가 나라를 찾아 세우기 위해 모세를 중심삼고 사막을 횡단하며 그 모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갖추지 못하고 거두지 못하였던 이스라엘권을 이렇듯 마련해 주니 감사하다’고 하는 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지금까지 소망의 실체로 고대하였던 실체기준을 이루지 못한 것, 즉 실체 자녀를 낳아 그들을 세계적으로 지도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한의 구렁텅이를 메울 수 있는 승리권을 중심삼고 예수와 성신의 입장에서 실체의 자녀를 품고 하나님의 날을 맞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런 저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나는 이날을 위하여 얼마나 충성을 하고, 이날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였으며, 이날을 위해 얼마나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 가치 있는 날을 맞아 축하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자리에는 통일교회의 ‘통’자도 모르고 교회의 ‘교’자도 모르는 녀석들이 바람 쐬러 왔다가 걸려들어 가지고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어 앉아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렇게 데데하고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선생님은 그렇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 길을 나설 때에는 생명을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천만 갈래의 시련과 수난의 길이 있을 것을 알았고, 수많은 화살과 총탄이 겨누고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오십 평생 동안 어느 때든지 일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일선이 되었고, 사랑하는 가정도 일선이 되었습니다. 통일교회를 따르고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오겠다던 사람이 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언제든지 그 누구한테라도 배척받고 반박받고 공격받는 입장을 감수하면서 이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날’의 가치와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날’의 가치는 다릅니다. 말을 들어 보면 알 듯한데 내용에 들어가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런 내용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설사 양자권을 상속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워서 그 주인 앞에 알랑거려 가지고 양자가 되는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는 그 양자의 이름으로 심판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자라는 거룩한 이름을 앞세워 가지고 주인을 사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그러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제 3회 하나님의 날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1970년대를 시작하는 이 벽두에 있어서 지극히 의의있는 시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날이요,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그리던 날입니다. 이러한 날을 선생님이 50평생을 거쳐서 세운 것입니다.

28-30
뼈에 사무치는 시련 뒤에 찬란한 영광이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에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 앞에 있어서 이 날을 빛나는 날로 개척하기에는 아직까지 민족적인 고개와 국가적인 고개, 그리고 세계적인 고개가 남아 있으므로 여기에서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통일전선’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실들을 확실히 알고 내일의 희망을 위하여 오늘의 희생을 달게 받을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승리를 위한 현실의 치열한 투쟁을 도피하려는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도피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패잔병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승리를 위하여 찾아오는 격전은 나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거늘 그 격전에서 적을 격침시킬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을 어떻게 갖출 것이며, 또한 그럴 수 있는 내 자리가 어디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고 그 누구도 행하지 못하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대전과를 거두어 가지고 이 하나님의 날에 추억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이 당한 시련 중에 뼈에 사무치는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자신의 영광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역사시대에 뿌리를 깊이 박고 온 세계에 드러낼 수 있는 찬란한 영광의 기준을 만드는 자원이 되고, 기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시련과 고통의 파도가 아무리 거세더라도 그것은 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역사 위에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높은 파도를 넘고 난 후 그 이상의 파도가 없으면 나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더 이상의 시련 고통은 없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한 사람은 그러한 시련과 고통이 없는 역사시대에 이르게 되면 그 시대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의 행복을 이루는 데 있어서 절대 불가결의 요인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고통의 길을 가지 않고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고통을 치르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투입하고, 영원한 사랑을 투입하고, 영원한 사상을 투입하여 획득한 승리의 결과는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는 이러한 가치의 내용을 알고 탕감복귀시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면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하나님을 중심삼고 머슴살이 신세를 거쳐 보았습니까? 그런 것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편의 권한을 복귀하기 위해서 머슴살이를 자청했습니다. 종 노릇을 자청했습니다. 양자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라도 양자로 책정받을 수 있고, 나아가 아들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아들의 영광과 더불어 부모의 모든 전체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러한 상속권을 위임할 수 있는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가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인류 시조에게 상속하시던 그 특권을, 오늘날 그 후손인 우리들이 직접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를 갖는 다면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섭리사의 소원이요, 지금까지의 온 인류가 바라는 소원인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리에서 싸우고 이 자리에서 살고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보람 있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이룬 기독교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정통적인 사상으로 지탱시켜 온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서 죽고 사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지 슬프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고개를 앞에 놓고 도피한 것이 아니라 직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돌아가지 말고 직행해서 그러한 역사를 상속받으라는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반공전선의 선두에 서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계에 청소년들의 윤리 문제가 대두될 것이니 우리는 그 선두에 서서 팻말을 들고 세계적인 운동을 전개시켜야 되겠습니다. 이 운동의 선두에 자기의 자녀를 세우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얼굴을 못 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새로운 역사를 해 나오시면서 아들을 죽이고 종들을 죽이고 양자의 이름을 가진 자들까지 죽여 나왔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종족, 민족, 국가까지 전부 투입시켜 가지고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면모를 나타내시면 여러분은 뭐라고 부르겠습니까? ‘하나님’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버지라고 하겠습니까? 어느 것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까? 아버지가 더 가깝고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라는 이름도 좋기는 좋지만 아버지보다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나 죽소. 용서해 주소서’ 하는 것하고 ‘아이고 아버지, 나 왔소. 나 좀 보소’ 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좋아요? ‘아버지, 나 왔소. 나 좀 보소’ 하는 것이 좋다고요 ? 알긴 아는구만요.

28-32
선생님의 처지
만일 선생님이 여러분처럼 대학물이나 먹었다고 꺼떡거리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까지 일생을 투입해서 이런 놀음을 했을까요? 어느 누가 뒷골목 생활하기 좋아서 하겠습니까? 그늘에 살고 싶어서 그늘에 살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지 않으면 전체가 문제되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누가 하든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수천 수만의 사람이 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타고난 팔자 소관으로 알고 오늘날까지 정면 직행해 나온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탕감복귀 역사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누구도 믿질 않습니다. 여러분의 협조도 바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외로운 사람입니다. 혼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아무도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전부다 설명해 주고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놓고 설명해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미리 설명해 주고 복귀할 수 있다면 이미 6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창조목적은 이런 것인데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요렇게 되었으니 요렇게 하지 말고 요렇게 해서 복귀하라고 가르쳐 주기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로서의 권위를 찾으려면 부모가 탕감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 천리의 원칙입니다. 자기의 잘못된 것을 자식한테 넘겨 주지 않으려는 것이 부모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부모는 자기의 잘못을 후손에게 송두리째 넘겨 줬습니다. 넘겨줬습니까, 안 넘겨줬습니까? 송두리째 넘겨 줬습니다. 이것을 송두리째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협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이 가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마음으로 고대하며 찾던 그 나라는 무한한 외로움에 잠겨 있는 나라 였습니다. 그가 찾는 가정도 무한한 고독의 장벽을 헤치고 나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허우적 거리다가 10년도 싸워 보지 못하고 3년노정 끝에 십자가에 죽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보다 더 불쌍해요, 더 불쌍하지 않아요? 「더 불쌍하지 않습니다」 불쌍한 패하고 불쌍하지 않은 패 중에 어느 쪽을 동정해야 되겠어요? 불쌍한 패를 동정해야 되겠지요? 불쌍한 사람을 동정해야 돼요.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동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영계를 동정하면 동정했지 통일교회패들인 여러분을 동정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고생을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나가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 남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지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예」

그런데 그렇게 일을 시켜 놓고 대가를 줄 수 있는 준비를 못 해 놓으면 몰매 맞아 죽지요? 공장이나 회사에서 종업원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그러는 데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일을 시키고 나서 삯을 안 주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장이 몰매를 맞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런 입장이 되면 몰매를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안 맞습니다」 여러분이 안 때리겠어요? 「예」 그거 무엇으로 입증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게끔 이 시간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웃음)

사람은 손해를 보면 손이 올라가고 발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먼저 이야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자리에 손해보기 위해 앉아 있습니까? 이익보기 위해 앉아 있습니까? 「이익 보기 위해서요」 그러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이익본 것이 무엇입니까? 거지 이방 사촌밖에 더 됐어요? 무슨 이익을 봤어요? 선조들이 가던 역사적인 거룩한 자리에 동참하게 된 이익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오늘 하루 총을 팔지 못하고 공쳤다고 해도 ‘세상에 나 같은 사람 없구만. 수천 수억되는 영인들아, 날 좀 봐라’ 이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생각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아무리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올림픽경기에서 마라톤 선수들이 출발선을 힘차게 박차고 나가듯이 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공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몰리고 쫓기다가 쇠사슬에 끌려가더라도 나는 힘차게 출발한다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은 역사의 맥박이 뛰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의 주름살을 제거시켜 버리고 깊은 역사의 흐름 가운데로 들어가 그 주류가 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맥박의 고동을 파동시키는 순간을 맞아야 되겠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옛날에 고문받던 시간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쳐라, 이 자식아!’ 의식이 있는 한 나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의식을 잃어 버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한 말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조건에 걸리지 않습니다. 죽어 넘어져 가지고는 대답했을는지 모르지만 살아서는 대답 못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하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여기에 하나님을 배반할 후계자나 상속자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단단히 정신차려야 합니다.

28-35
낙제생에게는 몽둥이가 제격
이러한 엄청난 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생애에 있어서 언제 이 고개를 넘을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계획을 전부 짜가지고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이러저러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들이 영원히 남아지지 않더라도 나만은 뜻을 얽어 매 가지고 다리를 건너가면 된다고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난시에 적진에 들어가서 공작을 하다가 본부의 명령이 떨어져서 모든 서류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뜰 비행장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산이면 어떻고 벌판이면 어떻습니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뜨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러한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돌아가는 날에는 사람들이 조롱하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멋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장이란 그 나라의 국민이 원수를 대하기 전에 먼저 원수를 대하는 사람입니다. 그 나라의 왕보다도 먼저 원수를 대해서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명장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용사다운 용사입니까? 「예」 적지에 들어가서도 자기의 소관을 중심삼고 책임을 수행하여 목적을 완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어때요? 나가면 떼지어 가지고 돌아다니고 말예요. 그래 가지고 무슨 적을 무찌르겠어요?

일생을 걸고 돌파해야 됩니다. 일생을 걸고 돌파해야 돼요. 그래야 거기에서 맛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국경선을 넘어 보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나는 국경선을 넘어 보았는데 말예요. 보초 선 사람들 옆을 지나게 되면 아주 신이 납니다. 영화를 봐도 밍밍하니 물에 물 탄 듯, 돌에 자갈 섞은 듯한 영화가 좋아요, 아찔아찔한 영화가 좋아요? 죽이고 살리고 때로는 눈알도 빠지고 코도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도 깨져 나가고 피를 쏟고 죽어 자빠지기도 하는 영화가 드릴 있고 자극적이지요?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여러분은 자기가 맡은 책임을 완수했습니까, 못했습니까? 「못 했습니다」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수난의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사람은 낙제생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수난길에 있어서 책임을 수행하지 못하면 낙제생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2학년으로 올라갔는데 낙제하여 신입생들과 같이 앉아서 공부하면 그거 기분이 좋겠어요? 그러나 낙제도 한번쯤 해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 맛을 알기 위해서 일부러 해보는 것은 괜찮아요. 시험 볼 때 백점 맞을 수 있는데 답을 하나도 안 쓰면 낙제하는 것입니다. 그 맛도 괜찮을 거예요. 여러분은 낙재생이에요? 아니예요? 학교에서도 낙제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수습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번번이 낙제를 하는 사람한테 ‘너한테 큰 기대를 갖고 있으니 백점 맞아라’ 한다고 해서 그것이 통합니까?

그러면 낙제를 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턱이 왔다갔다해야 합니다. 빳따가 제격이라는 겁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빳따를 쳐야 하는데 영감이 맞으면 ‘아이구 사람 몰라보네! 넌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나?’ 대번에 그럴 것 아니겠어요? 「선생님이 때리면 안 그럽니다」 내가 왜 때리나요? 삼척동자를 시켜서 때리면 때렸지요. 내가 때리겠다면 좋아서 서로 맞겠다고 하는 것을 많이 구경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젊은 사람들에게 본이 못 되는 사람은 삼척동자를 시켜서 그 배에 탄약, 즉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해 가지고 그 도화선에 불을 당기겠다는 것입니다. 도화선에 불이 붙어 피지직피지직하면 그때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 놈을 잡아서 목을 잘라 죽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요. 폭발해 버리는데…. 여러분 삼척동자가 여러분에게 그래도 괜찮아요 ?

나라가 망하게 되면 누가 먼저 비웃느냐 하면 어린이들이 비웃습니다. 어린이들 입에서 ‘우리 나라 상감마마는 잠꾸러기 상감마마…’라는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그 나라의 동요를 들어 보면 그 나라가 부흥하겠는지 부흥하지 못하겠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시대상을 제일 순수하게 비평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들밖에 없습니다.

낙제생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어디를 가든지 조롱을 받습니다. 천덕꾸러기예요. 그러니 어디 가든지 부끄럽습니다. 하늘을 보기도 부끄럽고 땅을 보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빳따가 적격입니다. 빳따를 쳐서라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빳따로 후려쳐서라도 낙제과에서 벗어 나게 해주면 고맙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빳따 장사를 좀 해야 되겠구만요.

축복 가정들도 남편이 잘못했을 때에는 아내가 들이쳐야 되고, 아내가 잘못했을 때는 남편이 들이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매를 맞는 것은 후세를 교훈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빳따가 없었으면 이렇게 잘못되었을 것인데 빳따의 은덕으로 잘되었다 할 때는 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던 그 환경이 결국은 후세를 교육할 수 있는 교본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본을 남기고 죽은 사람은 잘난 사람입니다.

28-37
모험을 무릅쓰는 선발대가 되어야
오늘날 통일교회 선생님이 여러분한테 큰소리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보다 고생을 조금 더 했다는 것 때문입니다. 혹자는 나라를 위해 나보다 더 고생을 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고생과 아득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개인을 위해 고생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 고생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점입니다. 대통령과 노동자가 똑같이 하루 8시간 일을 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같습니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남자나 여자나 이 60년대를 중심삼고 자기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엄청난 뜻을 정면으로 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힘차게 적진을 향하여 정면으로 나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여 그 실적을 남기고 돌아오는 사나이, 그런 용사가 되어 그 나라 앞에 나타나면 그 나라의 백성이 치하하고, 그 나라의 국왕이 반겨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날이 선포되어 이 지상의 사령본부를 중심삼고 여러분을 직접 불러다가 명령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 여러분들은 그 명령에 순응하는 자세를 갖추어서 시대적이요, 역사적인 여러분, 앞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엄청난 시점에서 여러분의 권위와 체면과 위신을 세우는 선발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선발대가 되겠습니까, 후발대가 되겠습니까? 선발대가 좋아요, 후발대가 좋아요? 「선발대가 좋습니다」 왜 선발대가 좋습니까? 선발대에게는 많은 모험이 요구됩니다. 선발대의 가치는 그 모험에 의해 결정됩니다. 선발대에게는 백방으로 모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한번 갔다 오면 절반 이상이 죽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선발대는 안팎의 모든 모험을 걸고 최초로 나서는 아폴로 11호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폴로 11호를 좋아하는 것은 가장 먼저 가장 많은 모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역사의 찬란한 문화가 시작된다면 그들은 개국공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갔다 오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역사의 그늘에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모험을 하여 갔다 온 사람은 아무리 못난 철부지라도 찬란한 역사의 문화권을 움직일 수 있는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순교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첫 조상이 누구입니까? 스데반이지요. 여러분, 스데반이 미욱한 사람입니까? 사태가 불리할 때는 변소라도 살짝 갔다 올 수 있지만 스데반은 그러지 않았지요. 그게 미욱해서 그런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스데반은 미욱하지 않았어요. 스데반은 사나이로서 한번 외치고 나섰다면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이 녀석들아 돌멩이를 던질 테면 던져라’ 하며 후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나이입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그런 상황에서 후퇴하겠습니까, 그냥 거기서 직사하겠습니까? 「직사하겠습니다」 만약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착륙해서 한 발만 내딛고 죽었다면 달나라의 정복은 누가 한 것입니까? 발끝만 달 표면의 먼지에 살짝 대다 죽어도 그가 달나라 정복의 일대조로 꼽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 시대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스파크가 일어나는 순간이 있는 데 그런 곳에 어떻게 불을 켜고 돌아오는 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폭파해야 할 대상이 있는 곳에는 안팎으로 그 이상의 위험이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여 거기에 첫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그 권위와 영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섭리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세계적으로 이런 미지의 세계에 제일 먼저 발을 들여 놓은 사나이가 누구입니까? 싫든 좋든, 잘났든 못났든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이거 인정해요? 「예」 인정한다면 환영잔치라도 해줘야 되지 않겠어요? 달에 갔다 온 암스트롱이 한국에 왔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보지도 못한 사람까지도, 자던 사람까지도,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까지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선생님을 그렇게 환영합니까? 환영해요? 「예, 환영하고 말고요」 그 환영 잔치를 적진내에서 해야 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도 환영할 수 있겠어요? 「예」 모두가 좋다고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장소가 아니라 적진의 굴속에서 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환영식에 제1차로 참석하겠어요, 제 2차로 참석하겠어요? 「제1차 환영식에 참석하겠습니다」 알긴 아는구만요. 욕심들은 많아 가지고…. 그런데 제1차 환영식에 참석하려면 죽음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길이 싫다면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2차 환영식에도 못 갑니다. 제 2차 환영식은 제 1차 환영식에 참석한 사람을 끼어 가지고 준비시켜서 가야 하기 때문에 죽음길을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제 2차 환영식에도 참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세계의 복귀섭리 노정을 중심삼고 이런 환영 파티가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28-39
하나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취해야 할 마음의 자세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중심삼고 이러한 환영 파티를 몇 번째 맞이했습니까? 「세 번째 맞이했습니다」 여기 세 번 다 참석한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도 있긴 있구만요, 이 환영 파티에 참석하는 데 있어서 남들은 떡도 해오고 갈비도 구워 오고 예복도 입고 오는데, 어떤 사람은 거지 보따리를 끼고 와서는 ‘나 좀 도와 주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참석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것도 참석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거지가 되어서 ‘오늘이 하나님 날이니 떡을 했을 텐데 신세 좀 지자,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떡이나 얻어먹으러 가자’ 하고 온 사람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없는 것 같지만 있단 말에요. 난 아닌데 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얻어먹으러 왔어도 참석한 것입니까? 자기는 참석했다고 생각해도 주인은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날까봐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 여러분은 어떤 패입니까? 마음을 졸이며 한 발짝 두 발짝 떼어 놓으면서 ‘이 시간만 넘어라. 그러면 제1차에 참석한다’고 하며 심각하고 절박한 마음을 갖고 참석하는 아들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며 참석하는 사람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서 참석하겠습니까? 그저 얻어먹기 위해서 참석하겠습니까, 마음을 졸이면서 밤잠을 못 자고 몸부림치는 아들딸의 입장에서 참석하겠습니까? 참된 아들딸의 입장에서 참석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입니다. 그 잔치를 치르는 주인은 누구보다도 고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 잔칫날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을 투입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맞이하기 위해서 십년, 이십년을 그렇게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이라는 잔칫날을 맞기 위하여 얼마나 준비했습니까? 자기 외아들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 이상의 준비를 했습니까? 어이 아줌마들, 시집 갈 때 신랑이 있는 신방에 들어가기에 앞서 때라는 때는 다 빠지라고 닦고 또 닦고 정성을 다해 단장한 것 이상으로 준비해 봤어요? 또 남자들, 당신 아니면 나는 죽고 만다고 야단하며 가망 없는 어려운 입장에서 수많은 장벽을 헤치고, 비로소 소원을 성취하여 사나이로서 기쁜 마음으로 신부를 맞이할 때의 마음 이상으로 참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껄렁껄렁한 여러분을 보면 앞으로 훈련을 많이 시켜야 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날에 참석하려면 360일 목욕 재계해라. 하루에 한 끼씩 얻어먹으며 종노릇해라’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제 여러분들은 이 나라와 세계의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무대에 섰습니다. 영화 촬영을 위해 무대에 선 배우들과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장면을 책임지고 그것을 완수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장편영화를 촬영할 때 다 잘되었는데 배우들 가운데 한 사람만 실수하면 그로 인해 그 영화는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 배우가 차라리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작일수록 명배우를 동원하는 것이며, 보면 볼수록 깊고 오묘하고 흥미진진한 내용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영화에 담겨 있어야 명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6천년 동안 고대해 온 하나밖에 없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날 행사를 위한 준비는 얼마나 엄청나게 해야 되느냐 말입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볼 때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의 성심성의가 미급(未及)하다는 것을 자인해야 되겠습니다. 제1차에 참석하여 기념할 수 있는 사람은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제1차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고, 제2차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고, 제 3차에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제4차 때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며 제10차까지도 계속 동참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석하는 데 있어서도 그냥 참석하지 않고 통일교인 중의 그 누구보다도 더 정성을 들여 가지고 남모르는 가운데 정성의 도수를 채워서 하나님 앞에 중간도 아닌 제일 가까운 자리에 참석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이 ‘잘 왔다’ 하실 것이고, 안 오면 ‘와라. 누구 데리고 와라’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부름받아 가지고 참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청객이 되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청첩장을 보냈는데 받았어요? 「청첩장은 못 받고 누구한테 전해 들었습니다」 사탄을 통해 들었으면 벌써 사탄이 다 가져 갔겠구만. (웃음) 나이 많은 사람은 저렇게 변명도 많아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탄이 하나님의 날을 압니까?」 왜 몰라요? 예수를 보고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사탄이 먼저 증거했잖아요. 여러분은 청객입니까, 불청객입니까? 불청객인 여러분을 청객으로 만들려고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명령한 그 보따리가 제 1호, 제10호, 제100호, 제1,000호…. 이렇게 그 수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통일교회는 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의 말에 순응하면 통일교회의 중요 운세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의 전통을 상속받게 되며 자기의 아들딸도 이 상속권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상속자는 하나님이 지명하셔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결국 후손들이 복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이런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0년대에는 보따리를 싸라고 하면 싸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선생님도 보따리를 쌀 것입니다. 이 70년대에는 선생님이 지방에 많이 갈 거예요.

28-42
멋진 잔치를 한번 해보자
이제 몇 해가 지나면 선생님은 한국에서 살지 않습니다. 지금 외국에 가서 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은 안 했지만 일본에서도 지금 기금을 마련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내가 가면 살도록 한다고 집을 짓겠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제 어디를 가도 밥을 굶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밥을 굶으면 여러분이 벌어서 먹여 줄래요? 어디 벌어서 먹여 주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야! 이거 기분 좋구만요. 내리세요. 지금은 누가 밥 벌어 먹이는 거예요? 선생님이 벌어 먹이는 거지요.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도 클 만큼 컸으니 여러분이 벌어다가 먹여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 혼자 벌어들이는 것과 많은 사람이 벌어들이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어요? 「많은 사람이 벌어들이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서로 벌어먹이려고 하는 한국식이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선생님 혼자 많은 사람을 벌어먹이느라 고생했기 때문에 힘이 들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벌어먹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한 것을 갚기 위해 여러분이 서로 벌어들이려고 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벌어먹이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세를 안 지고도 살 수 있다 이겁니다. 선생님은 가진 것이 없어도 부러워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집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대한민국 대통령은 재임시에는 대통령이라는 명패를 갖지만 재임시대가 끝나면 그의 이름을 대면서 아무 개라고 하면 ‘그 녀석’ 하고 욕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 권위가 위축되지만 통일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우려먹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러운게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러운 것이 있어요? 선생님은 부러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욕을 안 먹는 것입니다. 욕 안 먹으려면 그것은 간단합니다. 선생님 모가지만 내놓으면 됩니다. 5분 이내에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가 이르렀는 줄 알거든 뜻을 위해 나가 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만일 여러분과 같은 입장이라면 이왕지사 통일교회의 운동이 뻗어 나갈 텐데 통일교회를 위한 순교의 선조는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스데반이 미욱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가 역사를 빛내고 세계를 수습해 나갔던 순교자의 왕이 되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은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남이 행하지 못하는 일을 행해야 되겠습니다. 그때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하지 않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하면 민족과 국가는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면 세계가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는 어려움을 참고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 날을 세우기 위해서 오늘과 같은 날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내용들을 알고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날을 맞이함에 있어서 몸과 마음의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앞으로 본부에서는 떡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잔치를 하고 전부다 떡을 해 가지고 오는 겁니다. 보리개떡까지 해 와야 돼요. 오색떡도 해 오고, 여러 가지 곡식으로 갖가지 떡을 장만해 와야 된다는 거예요. 떡 종합회사를 만들어 가지고 잔치를 할까 합니다. 그래 가지고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추고 하면서 하나님의 날을 축하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려면 일년에 몇 명씩 정성들여 가지고 돈을 모아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잔치를 하지요. 그렇게 되면 본부에서는 소도 잡고 돼지도 잡아서 크게 한번 잔치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잔치를 하여 소갈비와 돼지갈비를 전부 등에 지고 시가행진을 한번 해봅시다. 딴따따 행렬을 맞추어 다니면서 ‘이거 먹고 물렀거라’ 하며 소다리를 한 짝씩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돼지갈비도 주고 소갈비도 준다는 소문이 나면 서울 시내 사람들이 전부다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웃음) 그럴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전부 모이면 번호를 정해서 떡보따리를 들고 행렬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백 보, 혹은 오십 보를 가다가 만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애기도 좋고 아주머니도 좋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 주는 거예요. 각자가 전부 오십 보, 백보 씩이니까 굉장히 큰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렇게 해 가지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복귀시켜야 되겠습니다.

28-44
위대한 사람
이러한 행사는 미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도 할 것인데 선생님이 ‘대표들은 한국 본부에 참석하라’고 하면 또 올 것입니다. 오는 데 그냥 오겠어 요? 떡이라도 한 보따리씩 배에 싣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싣고 부산 부두에서 청파동까지 오려면 너무 멀지요? 그래서 내가 땅을 사려고 합니다. 무엇으로 땅을 사느냐? 여러분을 팔아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찬성해요? 「예」 찬성해야지요. (웃음)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래 놓고 우리 한번 멋지게 살아 봅시다. 이렇게 사는 것이 흥미없는 사람은 지금부터 물러갈지어다! 귀찮게 따라다니지 말아요.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멋지게 싸워야 되고, 멋지게 일해야 되고, 멋지게 훈련받아 가지고 멋지게 행동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자리에서 하늘의 상속권을 스스로 인계받을 수 있는 거룩한 모습을 하나님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여러분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니까 여러분이 이 소원에 일치되어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에 동참자가 된다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죽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이제는 땅에 와서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단계까지 해 놓았습니다. 사람은 천년 만년 살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 여러분은 선생님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내가 만약 심장병이 나서 30분 후에 죽는 다고 할 때 수백명의 사람들이 와서 ‘선생님은 죽으면 안 되니까 내 심장을 떼어가라’ 고 하는 싸움판을 벌이면 통일교회는 망하겠어요. 흥하겠어요? 「흥합니다」 그 싸움에 가담할 자신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 녀석들, 미적미적하고 있는 것 보게. (웃음) 또 선생님이 위가 아파서 이식을 해야 한다고 할 때 의사들이 싫다고 할까봐 자기 배를 미리 째 놓고 ‘내 위를 옮겨 주시오’ 할 사람이 있을까요? 있다면 여자 가운데 있을까요, 남자 가운데 있을까요? 어때요, 남자들? 「남자들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여자들은 어때요? 「여자들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가 여자일 때는 천상 세계에 가서 첫째 왕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해 보겠다는 여자들 손들어 보세요.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큰소리치고 청파동의 왕자로 산다고 하지만 나도 사람이니까 죽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예요.

사람이 세상에서 오래 산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전성시대에 있어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그 시대에 영광을 누리고 가는 사람보다도 그 영광을 자기의 후대에게 넘겨 주어 그 백성과 세계의 것으로 남겨 놓는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같은 양반은 그러한 찬스를 놓치지 않고 죽음으로써 그것을 상속시킬 수 있는 전통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점령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러한 것을 생각하고, 뜻이 겨냥하는 목표를 중심삼고 이 엄청난 시대에 태어난 긍지를 손상시키지 않고 빛내어서 하나님의 영광된 자리에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28-46
기 도
아버님, 바라시던 소원의 날은 역사적인 슬픔과 더불어 밀리고 쫓겨 나왔사옵니다. 그토록 찾고 고대하시던 그날이 오늘 저희들이 맞이한 이날인 줄을 몰랐사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이날을 얼마나 고대했으며, 한 많은 역사시대를 엮어오면서 후손들을 바라보며 해원성사할 수 있는 소생의 한 날을 얼마나 고대했는가를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재림부활의 혜택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저희들이 구해 줘야 되겠사옵니다.

땅 위에서 살아 생전에 피땀을 흘리면서라도 목이 터지도록 저 30억 인류 앞에 새 복음의 내용을 선포하고 가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앞으로의 갈 길을 가기 위해 힘차게 출발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피곤함을 느끼고 모든 싸움의 터전을 피해 가려 하는 것이 인간적인 생리이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런 자리에서도 하늘로 직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절개와 충절을 변치 않는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수십 성상을 지내고 제 3회 하나님의 날을 축하하는 이 시간을 맞게 된 것은 진정 감개무량한 일이옵니다. 아버님, 그동안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누구도 모르는 그 사연을 엮어 오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셨습니까? 마음 졸이시던 사연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땅 위에서 단 한 사람을 중심삼고 인연을 맺고 나오시던 아버지의 불쌍하고 처절한 모습을 이제는 알았사옵니다. 목을 부여안고 위로해 드려도 풀 수 없는 사연을 지니신 아버지이심을 알았사옵니다.

누구보다도 외롭고, 누구보다도 분통하고, 누구보다도 비참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야 할 저희들이 오히려 아버지의 등에 저희의 슬픔을 짊어지우려고 울부짖었다는 것을 깨달았사옵니다. 저희의 슬픔을 아버지께 맡기려고 호소하던 저희 자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수고하시는 것이 응당하고 저희는 수고스러운 길을 피하는 것이 응당한 줄 알았지만, 이것이 천리 원칙의 순리가 아니라 역리인 것을 깨달았사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아버지시여, 긍휼히 보시옵소서.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자기의 아들딸을 귀하게 여기듯이 아버지의 뜻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아들딸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목구비 오관의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전체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로되 먼저 이 오관 전체가 아버지를 위하고, 아버지를 보호할 수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직까지도 눈물을 흘려야 할 길이 저희 앞에 남아 있사옵니다. 삼천만 민중의 내일의 생명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때, 그야말로 하늘을 대표할 우국지사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옵니다만 오늘날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뜻 앞에 있어서 배척받고, 밟히고, 상처입은 무리들이라도 다시 수습하여 내세우지 않고서는 민족의 최후의 한 고비를 넘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래서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딸들을 섭리의 일선에 세우오니, 아버지. 당신 앞에 있을 슬픔의 길을 메우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시옵소서. 그리하여 1960년도와 1970년 도를 연결하기 위한 이번 동계계몽전도기간에 임지에서 눈물을 뿌리고 돌아올 줄 아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이와 같은 날을 맞이하여 축하하고 있지만, 천지사방의 외로운 자리에서 오늘과 같은 명절을 맞이하고도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조롱받고 비난받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환경에서 눈물 흘리며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들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결코 그 자리를 싫다고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몇천만배 수고의 길을 넘기고 온 그 아들의 전통을 상속받기 위한 입장에 있고, 또 그래야 될 운명선에 서 있기 때문에 응당히 그래야 된다는 것을 알고 감사히 소화시키고 맞이하는 정월 초하루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축하받는 하나님의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서울 청파동, 이곳의 스승을 향하여 만복을 받으라고 축복하는 사람들이 있사옵니까? 저는 그들의 축복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의 축복을 돌이켜 민족을 축복하시옵고 세계를 축복하시어서 그들의 기도가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여, 세계에 널려 있는 색다른 수많은 민족들도 오늘 이 아시아의 일각에 있는 한반도의 서울 청파동을 중심삼고 눈물지으며 보고 싶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스승이 걸은 원한의 길로 말미암아 그들이 해방의 조건을 상속받기를 원하오니, 그들이 저로 인하여 눈물의 짐을 갖고 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대신 무한한 행복과 무한한 희망과 자주권을 갖고 하늘의 권위를 자랑하고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아들로서 이곳을 앙모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금년에는 그럴 수 있는 아들이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헤어지면 또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만나 줘야 할 책임이 많은 것을 생각할수록 몸은 하나요 사정은 천만사였기에, 그들 모두를 대할 수 없는 사정을 당신은 아시오니 당신이 직접 대하시어서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직접적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루한 1960년대의 마지막 해 1969년도는 지나갔사옵니다. 이제 1970년대에는 7수를 맞이하여 영광의 새로운 소식이 온 세계에 뻗어 나가게 해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아침에 저희들이 비록 흰옷을 못 입었을망정 흰옷을 대신하여 청결한 몸과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생애의 분립조건을 청산짓고 새소망의 조건을 세우고 양팔을 벌려 마음놓고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원하는 자유의 천지, 자유의 동산, 그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는 아들딸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수고하신 노정 위에 가꾸어진 수확의 결실이라고 칭찬하실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아버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길은 쉬운 길이 아니옵니다.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 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들에게 이 자리를 권고하면서도 초조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피흘린 역사적인 곡절의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도 그러해야 되겠사옵고, 일년 365일 전부가 그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1970년도를 중심삼고 기를 펴고 아버지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시대로 출발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의 힘이 부족하면 힘을 모아야 되겠고, 정성이 부족하면 정성을 모아야 되겠습니다. 이 하나의 목적을 승리의 결과로 거두기 위하여 저희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축하하고, 이날을 기념하는 우리 통일교회 식구뿐만 아니라 영계와 관계맺은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라도 이날을 축하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위에도 복을 베푸시어서 통일의 혈족이 되고, 통일의 족속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만국에 해방의 깃발을 들고 나서 제 2의 해방을 성취시킬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비록 부족한 모임, 부족한 자세, 그리고 부족한 환경이 되었더라도, 아버지. 용납하시옵소서. 이제 제 4주년을 맞을 수 있는 1970년도를 당신께서 맡으시어 저희들을 승리의 권으로 이끌어 품어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