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06 to 27-262: 추수의 주인

추수의 주인
1969.12.14 (일), 한국 전본부교회

27-206
추수의 주인
마태복음 19:28-30

[기 도(Ⅰ)]

아버님, 오늘은 1969년 12월 14일, 이달 들어 두번째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아버님이여, 이 땅 위에 통일의 말씀이 나타나 통일의 길이 시작된 지도 20여 성상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복귀의 뜻을 홀로 지니시고, 수많은 민족의 배후에서 당신의 슬픈 사정을 통할 수 있는 한 개인을 찾아 헤매시던 그 시절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하고 난 그날부터 슬픔이 천지에 가득한 가운데 복귀의 길을 더듬어 나오시기에 초라해진 아버지를 저희들이 무엇으로 위로해 드릴 수 있겠사옵니까? 아담 이후 10대 1,600년 동안 수고하여 노아를 이 땅에 보내놓고 간곡히 부탁하시며 노아를 대하시던 아버지, 120년이라는 그 지루한 세월 동안, 그 기한이 차기까지 얼마나 마음 졸이셨사옵니까? 또한 노아를 대하여 부탁하시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셨습니까? 어느 한날 마음 놓으시고 부탁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사정, 얼마나 불쌍하고 얼마나 딱하셨습니까?

노아 가정은 하늘의 소원 중의 소원이요, 하늘의 수고의 결실로서 거두려 하던 가정이었는데,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생각지도 않았던 함의 노정을 연장시키어, 아버님께서는 다시 아브라함 때까지 바라보셔야만 하셨사오니, 과연 아버지의 그 노정은 불쌍한 노정이었사옵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 있는 데라의 가정에서 불러낼 때 아버지는 더없이 불상한 자리에 처해 있었사옵니다. 원수가 지극히 사랑하는 가정에서 그 아들을 빼내셔야 했던 아버지의 비참한 사정과 내용이 어떠했던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 인간 시조의 타락의 보응이 역사의 고빗길을 거쳐오면서 이렇게도 아버지를 애달프게 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회고하게 되옵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이 알고 싶사옵고, 아브라함을 대하시던 아버지의 정성어린 심정에 저희들이 어리고 싶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들 이 시간 찾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그 아브라함 대신 부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되고, 딸의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사정이 얼마나 비참했기에 아브라함에게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사랑하는 고향과 친척을 버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겠사옵니까? 여기에서 저희는 사랑하는 자녀를 비참한 자리로 몰아내지 않고는 아버지의 사정이 풀릴 수 없고, 사랑하는 자녀를 비참한 길을 거치게 하지 않고는 아버지의 사정과 인연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늘을 따라 나선 그의 길은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슬픈 길이었습니다. 집시의 행로였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가야 했으며, 하늘을 모시려 해도 나그네의 신세이니 마음으로밖에 모실 수 없었던 아브라함의 행로를 저희들이 회고하여 볼 때에, 신앙자의 가는 걸음이 그렇게 비참하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리하여 야곱이 하늘의 승리의 터전을 세울 때까지 얼마나 마음 졸이신 아버지이신가를 저희가 느끼게 되옵니다. 그 전까지는 아버지의 소원을 중심삼고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땅을 바라보아도 흑암의 땅뿐이요, 수많은 인류를 바라보아도 원수의 자식뿐이요, 이 세계를 바라보아도 하늘과는 인연맺을래야 맺을 수 없는 아득한 흑암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족속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서 이 땅 위에 하늘의 뜻이 기반을 닦은 그날부터 그의 후손들은 야곱의 가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창건하기 위해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나그네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행로가 또 얼마나 비참하였습니까? 가는 곳곳마다 물렸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그 불쌍한 사정을 하늘만을 중심삼고 내통해야 할 외로운 길을, 이 땅 위의 그 누구의 충고도 그 누구의 사정도 들어줄 수 없는 외로운 길을 그들은 개척해야만 되었습니다.

야곱이 70가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애급으로 간 그날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의 기나긴 세월을 도탄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 민족은 원수의 수중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원수의 채찍질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아버지께서는 하늘을 그리워하는 마음, 하늘을 사랑하는 마음, 이스라엘 복지를 추구하는 마음, 불타는 애국심을 가진 모세를 세우셨사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권고하고 지도하라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난 모세도 역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만을 붙들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게 모세 노정을 거쳐서 예수님 때까지의 4천년 역사를 더듬어 오신 아버지여, 얼마나 슬프셨사옵니까? 원수들 앞에 조롱받고 쫓김당하고 죽임을 당하던 그 길 가운데서 살아 남은 무리들은 이스라엘의 제단을 다시 수습하여 아버지의 슬펐던 사연을 풀어 드릴 수 있는 행로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런 책임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주저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런 책임을 지기에 앞서 하늘의 영광을 바랐습니다. 져야 할 십자가의 관문은 통과하지 않고, 받아야 할 영광만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오신 예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슬픈 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지금까지 2천년의 행로에서 죽음의 고비가 앞놓아진 가운데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발전되어 나왔으니, 아버지께서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의 대가를 치렀으며, 얼마나 많은 슬픔과 외로움과 원통함의 대가를 치렀습니까? 그 대가를 치렀던 기독교의 결실이 과연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이 절망하지 않을 수 없고 하늘이 낙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시점에 기독교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남다른 길을 이미 밟고 나섰습니다. 외로운 길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하늘의 슬펐던 사정을 안다 하고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희들이 하늘을 바로 알았습니까? 과연 아버지의 사정을 바로 알았습니까? 알았다면 그것은 안 자의 모습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각성해야만 되겠습니다.

아버님,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과연 누구를 찾아오신 아버지의 발걸음인가를 다시 묻게 될 때, 나 자신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발걸음이었다는 것을 절감하는 당신의 아들이 있어야 되겠고 딸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 이러한 것을 자각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60년대는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17일을 남긴 1960년대는 서러움의 해였사옵고, 원한의 해였사옵고, 슬픔의 해였사옵고, 고통의 해였사옵고, 비참한 해였사옵고, 억울한 해였사옵니다. 이렇게 10년을 보낸 저희 자체가 과연 10년 수고의 결실로 거두어진 하늘의 열매가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자체들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여기에서 저희가 하늘 앞에 다시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될 자신들임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 살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는 누구와 더불어 태어났으며, 누구와 더불어 살아가며, 누구와 더불어 죽을 것입니까? 아버지와 더불어 나지 못한 인간들이었으며, 아버지와 더불어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오며, 아버지와 더불어 죽지 못할 인간들이옵니다. 그런, 그런 저희들에게 아버지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사오니, 그 아버지의 은사에 저희는 천만번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이 몸을 생축의 제물로 몽땅 바쳐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옵고, 아버지 앞에 내놓기에 더러운 저희의 모습들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이 몸을 아버지 앞에 바치기에 부끄러워 가리고 덮으며, 이 모습을 어떻게 감출 것인가를 염려하여 마음 졸이며 나타나야 할 인간 개체 개체들이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너무나 도도했습니다. 아버지 앞에 너무나 교만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오니, 이 모습을 받아 달라고 직접 통고할 수 있는 담대한 모습을 갖고 나타난 저희들이었사옵니다.

아버지, 이런 저희를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죄악세계에서 태어난 죄인으로서 쓰러질 수밖에 없는 무리였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동거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를 펴 주신 연고로, 아버지와 동거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고 이 시간 아버지의 거룩한 성전에 모였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아버님이 가셔야 할 길은 개인과 가정, 민족과 국가, 또 세계를 통하여 가야 되는 나그네의 길이옵니다. 아버지의 그 길을 지킬 수 있고, 그 길을 걸으시는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가 될 수 있는 참다운 자식이 여기에 있어야 되겠사오니, 아버님이여, 굽어살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 가시는 가정의 십자가의 길을 저희들이 따라가야 되겠고, 종족의 십자가의 길을 저희들이 따라가야 되겠고, 민족의 십자가의 길을 저희들이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국가를 거쳐 세계, 나아가서는 천주복귀의 엄청난 과제를 짊어진 그 십자가의 노정을 저희들이 따라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길을 가는 데에 있어 아버님을 앞세우고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앞에 서서 아버님 앞에 놓인 십자가를 제가 대신 지고 가겠다고 할 수 있는 하늘의 효자와 충신의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야만 되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사오니 저희들로 하여금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여! 대한민국을 당신이 사랑하시옵니까? 이 나라를 품에 품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이 아직까지 이 나라에 남아 있사옵니까?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한 그 길을 또다시 당신 홀로 가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입장은 너무나 비참한 입장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와 동역하고 동반하는 자가 되어서 그 길을 가려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가시밭길을 가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이 길을 나가야 한다는 책임을 느낄 수 있는 하늘의 딸이 되고,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960년대를 보내면서 새로운 1970년대를 향하여 나가는 이때이옵니다. 이때는 제2차 7년노정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할 때이오니, 1960년대를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저희들 자신을 다시 명시하여 하늘땅 앞에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아버지 앞에 스스로를 회개하여 정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여 새로운 1970년대를 맞을 수 있게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슬픔으로 엮어져 온 역사를 기쁨으로 맞을 수 없는 저희 자신임을 알았사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 이번 이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을 위하여 다시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저희들의 이러한 책임자적인 행로를 가고자 하는 마음과 뜻을 위하여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거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뜻을 위하여 염려하면서 마음을 졸이는 자들이 있사옵고, 하늘을 중심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자들이 있사오니, 그들 위에 천 배 만 배의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 누구에게도 통고하실 수 없는 아버지의 불쌍한 처지를 알아 가지고 통곡하는 자녀들이 있으면, 아버지, 그들을 기억하시어서 당신의 뼈살과 연결될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벌거숭이로 아버지 앞에 나왔사옵니다. 저희들은 과거에 원하였던 모든 것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세상에서 흘러가는 것임을 알았사오며, 이 뜻을 안 저희들은 그것들로는 살 수 없음을 또한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에게 가장 귀한 것은 아버지 가시는 그 길을 아버지와 더불어 가는 것이요, 아버지 사시는 생활무대에서 사는 것이요, 아버지 가시는 그 길에서 죽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저희 일생의 목적이요, 인간으로서의 최대의 행복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의 마음은 완전히 공(空)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공으로 아버지 앞에 완전히 바쳐 드려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체의 주관, 저희 자체의 일념 전체를 일소해 버리고, 아버지의 관념과 사상만 저희의 마음 가운데 주입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로 말미암아 빚어진 마음이 되어서 그 마음이 몸을 주관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서 다시 한번 출발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이 나라를 찾아오신 아버지를 이날 저희들이 어떻게 모실까 생각하니 부끄럽사옵니다. 이제 아버지를 모시고 세계를 향하여 가야 할 길을 저희들이 개척해야 됨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지금 이때 추수할 하늘의 곡식은 많은데 추수할 하늘의 역군이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오니, 아버지여, 부족한 저희들을 다시 모으시어 그 역군의 사명을 대행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부족한 저희들에게 능력을 가하시옵고, 당신의 사랑의 심정을 가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민족을 사랑하지 않고는, 민족을 위해서 싸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전국에서 이날을 아버지 앞에 경배하는 거룩한 날로 맞기 위해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이날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 도처에 널려서 이 한국을 바라보며, 이 청파동교회를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길을 가는 개척자의 행로는 과연 비참한 것이옵니다.

이방의 땅에 가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환경에 몰리면서 눈물짓는 제단이 있으면 거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환경이 있으면, 그 옛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들이 외로운 자리에 있을 때 그들을 위로하시던 아버지의 그 은사를 거기에 재현시켜 진정 당신이 같이하심을 증거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보람 있는 생애의 가치를 그 자리에서 찾게 하시어 아버지 앞에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그들이 사망세계의 새로운 등대가 되고, 이 흑암세계의 광명한 빛이 되게 하시옵소서. 통일의 깃발을 드높이어 그 민족 앞에,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마음 앞에 그 깃발을 꽂아 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고대하고 바라는 싸움터에서 승리, 또 승리만이 가중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여, 저희들 이해에 있어서 최후의 결정을 짓고 가야 할 길을 앞에 놓고 여기에 모였사오니, 저희들 앞에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귀한 것이 무엇이옵니까? 그것은 내 아들과 딸이 아니옵니다. 아들과 딸은 두고 가야 되겠사옵니다. 갈 때는 아버지 앞에 저희 자신만이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분이 아버지요,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뜻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내 개체, 뜻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내 가정, 뜻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내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망의 모든 세력이 저희를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옛날 에덴 동산에서 가인을 대하여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앞에 엎드린다고 하신 아버지의 경계의 그 말씀이 새로운 출발을 앞둔 저희 앞에 다시 한번 놓여진다는 사실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사랑의 품에서 축복을 받고, 보호를 받고, 강하고 담대하라는 분부를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온전히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의 사정을, 아버지의 소원을, 아버지의 행로를 저희들이 가려 가지고 그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고 하늘의 특별한 분부를 받고 새로이 다짐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해의 남은 날들 위에 축복하여 주옵고, 새로운 역사의 인연을 지켜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새로이 임하는 70년대에는 기쁨으로 아버지 앞에 더더욱 지극한 정성의 효자 효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 시간도 온전히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27-214
기 도(Ⅱ)
아버님,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편성한 뜻을 수많은 민족들은 알았지만, 인연된 그 아들이 찾아오는 길은 그 누구도 몰랐나이다. 이렇듯 인간들이 역사과정에 있어서 번번이 지내 놓고야 눈물을 흘리고,지내 놓고야 회개하고, 지내 놓고야 통탄하면서 다시 그 길을 더듬어 가는 슬픈 역도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가를 생각할 때에, 그것은 인간들이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난 연고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되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땅 위에 오셔서 30여년 동안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심정을 갖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 교단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마음과 그 예수님의 마음을 더듬으시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가? 생각해 보니 과연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이 땅 위의 그 누구한테도 그의 깊은 사정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가야 할 십자가의 길, 그 탕감복귀의 노정을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알고 있으되,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그 불이 이미 붙었으면 좋을 뻔하였다고 탄식하신 예수님의 깊은 사연을 그 누가 알았습니까? 수많은 종파를 가진 기독교에도 그의 깊은 마음을 헤아린 자 없었습니다.

오늘날 불쌍한 이 한국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100년도 못 되는 기독교의 역사를 지닌 이 한국에 하늘의 심정과 내정이 어떠하다는 사실을 세계를 대신하여 알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저희가 꿈에도 상상치 못할 때에 핍박의 길을 더듬어 오셨습니다. 외로운 발걸음으로 삼천리 반도를 더듬어 오신 아버지의 숨은 역사가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께서는 이 민족이 새로운 중흥의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게 미리미리 준비된 역사의 인연을 갖추어 나오셨던 것을 알게 될 때에, 불쌍한 아버지인 것을 다시 한번 저희들이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때에 아버님은 생각하셨고, 그 누구도 알지 못 할 때에 아버님은 아셨사옵니다. 알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셨사옵니다. 이 민족이 한때를 맞을 수 있는 첨단에 세우기 위해서 수난의 노정에 세우시면서도 버리지 않으신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을 저희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싸움에 지쳐 이 땅 위에서 낙망과 절망 가운데로 사라져야 할 이 민족을 하늘이 거두어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하늘의 새로운 중흥의 기회가 이 강토 위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숨은 역사가 이 민족 위에 같이한 인연을 알게 될 때에, 저희들은 이 민족이 불쌍한 민족이 아니라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도 귀한 민족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 민족의 모습이 보기에는 상처투성이요, 이 강토가 보기에는 황폐한 삼천리 강토로되, 이 강토와 이 민족 가운데 하늘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저희들은 이 민족을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이 삼천리 강토를 붙들고 아버지의 거룩한 제단으로 몽땅 바쳐 드리겠다고 피눈물을 뿌려 거룩히 성별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들딸이 현재의 기독교의 신자 가운데에는 없습니다. 다른 어떠한 종교를 갖고 있는 신앙자 가운데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책임져야 할 무리가 있어야 되겠기에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수난의 노정으로 몰아내셨습니다. 저희들을 피눈물 뿌리는 그 길로 몰아내셔야 할 아버지의 사정이 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하늘의 축복이요, 하늘의 거룩한 은사임을 알아 몸 굽혀 천번 만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저희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붙들고 얼마나 사정하셨습니가? 불쌍한 저희들을 세우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감히 말로써 되풀이할 수 없고, 더듬어 가지고 반성할 수도 없는 저희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아버지께서는 홀로 책임져 나오셨사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저희를 죽은 자리에서 구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다는 사실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중에는 체험한 사람도 있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체험과 아는 것을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얼마나 감사를 드렸습니까? 몸과 마음이 땅에 붙도록, 온 전신이 땅에 녹아지도록 아버지 앞에 감사드린 아들딸이 몇 명이나 되옵니까? 감사할 줄 모르는 저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고마운 것을 알지 못한 저희였으나 이젠 정말 고마와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이 땅 위에 태어나기 전부터 저희의 선조와 인연을 맺고 찾아오신 하늘의 그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고마우신 하늘, 거룩하신 하늘, 귀하신 하늘, 자랑스러운 하늘이옵니다. 하오니 저희가 갖추어 나가야 할 모든 것을 갖추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활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찬양할 수 있고, 대공(大空)을 향하여 감사하며 몸부림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자리, 또는 자신이 쓰러지는 자리에 봉착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님께 감사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나라 이 민족을 저희들은 지켜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파수꾼이 되어 이 나라 이 백성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현재 이 나라 이 민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저희들이 피눈물 흘릴 것을 각오하고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몸부림쳐 왔고, 이 민족을 세계적인 민족으로 만들겠다고 선두에 서서 외쳐 왔습니다. 그러니 이 일이 거짓으로 낙인 찍혀서는 안 되겠습니다. 거룩한 하늘의 일이 선으로 출발했지만 결과가 악으로 맺어지게 될 때에 하늘 가는 길은 다 그렇다고 사탄이 참소했던 사실이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그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 통일의 자녀들이 걸어온 길도 한낱 지나가는 사적인 사건으로 남겨져서는 안 될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는 하늘을 부응시켜야 되겠습니다. 하늘을 제기시켜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되겠사오니 저희들로 하여금 그럴 수 있는 아들딸로서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아버지의 거룩한 승리의 동산을 향하여 달려갈 줄 아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이 민족을 사랑하고, 이 삼천리 반도를 방어해야 되겠습니다. 내 몸이 포탄이 되고 내 몸이 토성이 되어, 이것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책임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고, 그런 통일교회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민족을 잃어버린 통일교회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잃어버린 통일교회가 아버지의 뜻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저희들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겨울이면 추운 줄을 압니다. 여름이면 더운 줄을 압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추워서는 안 될 것이고, 아버지의 뜻이 더워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그 추위와 더위를 가로막는 평화의 벽이 되고 하늘 앞에 놓여진 모든 고통과 시련 곡절을 막아낼 수 있는 하늘의 방어진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 벌거숭이로 아버지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하오니 더듬어 찾아오신 아버지의 마음 앞에 긍휼의 자식으로서 품길 수 있고, 아버지께서 진정 사랑하는 나의 아들과 딸이라고 품어 주실 있는 그런 아들딸의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서 사적인 일체를 제거시켜 버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는 어린아이로 돌아가야만 되겠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을 대해서 반가와하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심정, 생명력을 보급받을 수 있는 그 어머니의 품을 찾으려 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와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심정의 인연을 이 시간 다시 한번 체휼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탄에게서 물려받은 죄악의 허물이, 혹은 죄악의 쓴 뿌리가 저희의 일신에 남아 있으면, 이것을 정복할 수 있고 이것을 제거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주관의 역사가, 아버지, 이 자리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잠깐 동안 말씀을 전하겠사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전하는 데는 무엇을 전하오리까 당신의 슬펐던 사정을 전하오리까? 당신의 외로운 사정을 전하오리까? 당신이 기뻐하고자 했던 것을 전하오리까? 무엇을 전하든 그것을 전하기 전에 이들이 체휼하게 하시고, 마음에 감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사명을 앞에 놓고 있는 저희들이옵니다. 새로운 제단을 꾸며 놓고 먼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를 것이 아니라 가까운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의 옷깃을 부여잡고 사정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목을 안고 서로 비비면서 아버지의 슬펐던 피살의 사정을 놓고 통곡할 수 있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이 시간 모였사오니, 아버지 앞에 승락받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남아진 시간 위에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조의 애혼들이 저희들을 통하여 탕감, 해원성사하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그들이 복귀해 나갈 수 있도록 저희들이 선의 실적을 쌓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의 통일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이 세운 통일의 종교를 통하여 아버지의 기쁨의 뜻이 이 땅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7-218
말 씀
오늘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추수의 주인’입니다.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27-218
동기와 결과로 본 절대자와 나
여기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 있는데, 어떤 존재든지 반드시 생겨난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의 내용을 벗어난 현실의 존재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과의 존재인 우리는 반드시 동기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도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그 부모의 모습이 어떨 것이며, 여러분의 체격을 보고 그 부모의 체격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역력히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이 그러하듯이 이 결과 세계가 비참한 결과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 원인되는 세계 역시 비참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지금 이 세계가 우리가 그리는 평화의 곳이 못 되고 행복의 기지가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과의 세계임을 인정할 때 여기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동기와 출발의 기점을 벗어난 결과는 있을 수 없기에 반드시 그 동기도 그런 비참한 내용을 지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상식으로도 생각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자체를 두고 보나, 가정을 두고 보나, 세계를 두고 보나 이 결과가 그릇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시조의 출발이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출발이 아니요, 이상에 잠겨 모든 만물 앞에 영광의 자세를 그리게 할 수 있는 중심적인 존재로서의 출발이 못 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교에서 말하는 타락한 인류의 시조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의 근본이 될 수 있는 동기를 추구해 올라가면 인류의 시조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중심삼고 말하면 아담과 해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아담과 해와도 결과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모든 주관권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작용이라든가, 여러분의 의식기관을 두고 보더라도 인간은 미묘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관찰하는 능력을 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면 세상 끝까지도 관찰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권내에 미쳐 질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어떠한 기준도 세울 수 없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추구해 가면 절대자라는 관념은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도 우리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창조주 또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시조가 오늘날과 같은 이런 결과를 빚어 낼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할진대, 그 인류 시조의 기원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 것이냐? 오늘날과 같이 불완전하고, 개척해야 하고, 시정해야 할 요건들을 가진 이 세계를 지으신 분이 과연 절대자가 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몸의 구조를 두고 보면 이것은 신비의 왕국입니다. 어떠한 존재보다도 `신비’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신비의 요소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인간이라는 하나의 생명체를 지으신 절대자가 있다면 그는 무한한 능력의 주인공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모든 존재의 원천인데도 불구하고 그릇될 수 있겠느냐? 만약 그분이 그릇될 수 있다면, 인간 세상에는 이상이니 행복이니 희망이니 평화니 하는 것들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갖 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릇될 수 있는 것으로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결과가 되어 그것으로서 끝나게 된다면 하늘이 없다는 결론은 자동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의 동향은 불완전한 기원을 넘어 완전한 기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환경을 넘어서고, 시대의 억센 물결을 넘어서 가지고 지금까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서 약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힘의 자극과 힘의 원천이 남아 있는 사실을 볼 때에, 그 힘의 주체 될 수 있는 본연의 근거지, 혹은 본체, 혹은 원인적인 그 존재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마음의 방향을 통해서 언제나 새로운 것, 언제나 이상적인 것, 언제나 평화스럽고 행복스러운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또 다른 결과의 내용을 추구하게 되는 일은 어떻게 해서 있게 되었느냐? 그러한 동기의 기원이 오늘 우리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를 못맺고, 우리의 생활 환경이라든가 세계적 환경에서는 관계를 못 맺었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골짜기에서는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극을 일으켜서 새로운 역사의 시대,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발전시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27-220
인간의 마음을 충동시키는 힘의 모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세계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와 인류는 현세계 이상의 세계, 현인류 이상의 인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민족은 이제까지 있었던 수많은 민족이 규합해 가지고 이룬 하나의 민족 이상의 민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니 수많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권,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수많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주권이 나와야 합니다. 수많은 국민이 자기의 국가를 사랑했던 그 이상의 사랑의 마음으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국민이 나와야 합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것들을 추구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럴 수 있는 동기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 바탕에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내일을 향하게 하는 자극적인 동기로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은 어디에서 근거가 된 것이냐? 그럴 수 있게 하는 모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는 데서 나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모든 자극적인 감각도 여러분 혼자서 느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대상의 요건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대상의 힘의 작용에 의해서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용은 곧 힘인데, 힘이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생길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의 작용, 즉 내일의 희망을 위하여 촉구하고 내일을 희망의 무대로 삼고 더더욱 가치 있는 인격을 추구하게 되는 그러한 모든 힘의 작용은 어디서 나오느냐?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인연이 있는 곳에서 나옵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힘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화학작용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요소가 각각 갖추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손해나는 데서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 손해나는 작용은 안 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이 자리를 찾아올 때도 손해를 보기 위해서 왔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자신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물리나 화학의 작용을 보더라도 손해나기 위해서 작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모든 존재는 반드시 자기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더더욱 귀한 가치를 갖는, 더더욱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추구하는 작용을 하게 되어 있지, 자기 자체가 손해를 보기 위한 작용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명동에 간다 할 때, `나는 오늘 몇십 원 손해보러 명동으로 간다’ 할 사람 있어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추구하는 그 목적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마음 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이세계의 실상이 그러하거늘, 인간의 마음 세계에서 작용하는 그 자체도 반드시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있다는 겁니다. 그 힘이 작용을 하는 데는 혼자서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한 개체에 있어서도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게 되면 거기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또 행복이 오게 되고, 사랑이 싹트고, 희망이 싹틉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마음 작용을 추구해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마음의 본체가 되는 존재가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인 내 자신은 근원적인 존재를 초월해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플러스적 형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그 존재의 이름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절대적인 주체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최고의 존재요, 상대적 요건을 불허하는 중심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27-222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
여러분의 마음은 오늘보다도 내일이 더 선하고, 더 행복하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더욱 귀한 결과를 추구한다는 것이요, 더더욱 귀한 가치의 내용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추구하는 끝은 무엇이냐? 싸우는 세상일 것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천지를 창조한 절대자, 절대적인 그 주인공이 요구하는 이 세계의 종말은 어떠한 것이냐? 하나의 주권국가, 하나의 국민성을 지닐 수 있는 세계 인류, 하나의 정원, 하나의 주권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그런 세계, 그런 지구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국가를 중심삼고 서로 분립되어 가지고 싸워 왔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발전하는 데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새로운 이상 세계를 전개하는 것도 인간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대상적인 존재 자체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체의 동기의 인연을 여기에 가미해 가지고서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자신들은 모르지만 지금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거기에는 주체의 힘이 부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 부가되어 있는 주체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 대상의 가치가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수확된 결실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인간의 가치는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가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에 슬픈 마음으로 창조했겠느냐?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창조되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기뻐했을 것이냐? 얼마나 좋아했을 것이냐? 그리고 얼마만한 가치로서 모든 것을 만들었겠느냐? 하나님이 용인하신 그런 가치의 내용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가치를 규명하고, 그 가치의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진정한 기쁨으로 지었다면, 그 인간을 대해서 얼마만한 가치의 내용을 부여했으며 얼마만한 기쁨의 대상으로 지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어떤 존재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냐? 우리 인간의 마음 작용을 중심삼고 보면, 어느 누구의 마음이나 다 최고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전부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여자들이라도 전부 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아내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전부 가짜입니다. 남자들도 그렇습니다. 자기 모양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마음만은 전부 다 세계에서 제일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 거짓말이냐?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근거는 우리 인간을 기만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인간이 수확의 결실로 나타난 때 그 모습은 어떤 모습일 것이냐? 이것을 단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할 수 있는 본연의 모습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로 말하면, 창조이상세계로 복귀된 모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려고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는데, 그들을 어떠한 위치에 두고 기뻐하시려고 했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물건같이 가지고 놀기 위해서 지었겠느냐? 우리 인간의 마음은 최고를 바랍니다. 이렇게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두고 볼 때에, 과연 어떤 자리에 갖다 놓아야 인간이 만족하겠느냐? 절대자가 계신다면 그 절대자의 제일 귀한 자리에 갖다 놓아야 됩니다. 그 이상의 자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동시에 사람도 원하는 자리입니다. 거기에는 둘이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그 자리에서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돈이 있는 자리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돈보다 귀하다는 사실은 대체로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종교에서는 막연하나마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시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오늘날 세계주의를 부르짖고, 박애사상을 부르짖고 있는데, `아! 그것도 사랑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런 것은 너무나 데데한 사랑입니다.

그렇지만,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가 맞부딪쳐 가지고 전기불이 오듯이, 번개불이 번쩍이듯이 사랑이 폭발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하나님도 기뻐하시기 위해서는 최고의 자리를 찾아 올라가는데, 우리 인간들은 어떤 자리를 찾아가야 되겠느냐? 천국 백성의 자리냐?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천국 백성으로 사는 것은 시시하다는 겁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관을 보면, 그것은 천국 가면 제일이니 예수 믿고 천국 가자고 하는 간단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국 가는 데는 별의별 것이 다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사정을 두고 보더라도 별의별 것이 다 있지 않습니까?

하늘이 찾아가는 사랑의 실체, 최고의 동기가 되고 최고의 결과가 될 수 있는 이것이 어디에서 일치가 되겠느냐? 합해지기는 합해져야 할 것인데, 어느 자리에서 합해지겠느냐? 바로 주체와 대상의 자리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의 두 목적이 일치되어야만 합니다. 여기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으면, 이 두 목적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27-225
부자의 인연을 되찾는 자리
그러면 두 목적이 영원히 일치될 수 있는, 사랑의 꽃으로 필 수 있는 그 자리가 무엇이냐? 하나님도 인간을 통해서 그것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무에 비교하면 열매에 해당하기 때문에 잎이니 가지니 줄기니 하는 것은 다 필요없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열매, 그 하나의 결실은 무엇을 통해서 완전히 거둘 수 있겠느냐? 그것이 무엇이냐? 통일교인들은 잘 알 겁니다. 그게 뭐예요?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의 눈을 놓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은 고통을 느끼지 않지요? 초점이 맞았으니까 그런 거예요. 그러나 이 초점이 어긋나면 어때요? 고통을 느끼게 되지요? 또, 여러분 코도 한 쪽이 막히면 어때요? 감기 시초 때 어때요? 고통이 오는 겁니다. 한 쪽만 막혀도 씩씩거리는 겁니다. 그러다 주체와 대상의 두 관계에서도 공동 목적의 일치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거기에는 질식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인간에게 공동의 동기와 결과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이며 그런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이런 것을 추구하여 최고의 명사를 찾아보니 부자관계(父子關係)라는 말 이외에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부자관계 이외의 말이 없어요. 그 이상의 말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너는 집안식구 중에서 누가 제일 좋으니?’ 하면, `우리 엄마와 아빠예요’ 그럽니다. 그것밖에 더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 하는 것이며, 그렇게 종교를 가지고 하늘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은 기필코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었는데, 짓는 데에는 사랑을 중심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중심삼고 지은 그 결합점, 일치점이 어디냐? 동기와 결과는 반드시 하나의 맥박에 의해 움직여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심장에서 맥박을 규칙적으로 뛰게 해야지. 그렇지 않고 맥박이 고르지 못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아픈 징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몸도 그래요. 마음이 몸을 중심삼고 `뚝’ 하면 몸은 어떻습니까? 마음에게 `이놈아!’ 하면서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니까 개조해야 된다는 겁니다. 마음이 `뚝’ 하게 되면 몸도 `뚝’ 하고, 마음이 `딱’ 하게 되면 몸도 `딱’ 하고, 마음이 `이리 가자’ 하면 몸이 `응’ 하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해야 할 몸과 마음이 지금 두 패가 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못된 거예요. 망할 징조입니다. 타락의 보응이예요, 이렇게 마음과 몸의 관계가 틀어짐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틀어지게 된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타락한 이 인류세계에서 지금까지 찾고 계신 것이 무엇이냐?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찾고 싶어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예요? 「자식입니다」 자식인데, 자식이라는 말에도 여러가지가 있지요? 친자식, 의붓자식, 남의 자식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붓아버지, 남의 아버지, 친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세상의 부모가 참된 이름을 가진 부모가 되었느냐? 자식이 참된 이름을 가진 녀석이 되었느냐?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아들딸이 되었으면 하나님이 참 좋아하셨을 것입니다. 참아들딸이 되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 몸이 붕 떠 올라가는 것과 같은 체험들을 했을 것입니다. 체험들 했지요? 괜히 좋아요. 까닭 없이 좋다는 겁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여러분의 마음과 몸이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원리로 보면,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거기에 더 큰 주체되신 하나님이 상대로 삼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차적인 힘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전에 느끼지 못하던 감정적, 감각적 작용이 강력히 오는 것입니다. 그 강력한 작용의 힘이 이상적인 힘이기 때문에 기쁨의 감정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전부 다 원리적인 것입니다. 원리적인 거예요.

27-227
창조이상을 복귀하자
이렇게 볼 때, 여러분 자신에게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 할 수 있는 간판이 있어요? 그렇다는 신념을 가지고 동기의 내용을 완전히 입증할 수 있는 그 결과 자체로서 되어 있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못 되어 있으니까 남의 자식입니다. 사탄의 자식이예요. 못 되어 있으니까 핏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잘못 태어났다는 겁니다. 잘못 태어났어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체입니다.

이러한 개체를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슬픔을 느끼는 자체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원상 복귀해야 되는데, 복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아 가지고 세우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기 때문에, 임자네들은 통일교회에 걸려 들어온 것입니다.알고 난 다음에는 갈 데가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느냐? 장난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놀이의 대상으로? 아닙니다. 수확할 수 있는 하나의 결실을 바라보고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바라시는 최고의 결과, 최고의 결실체로 인간 시조 아담 해와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담 해와가 과연 하나님의 본연의 마음 앞에 일치될 수 있는 결실체가 되었느냐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타락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이 그런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 있다 하게 될 때 여러분은 희망의 아들딸이 될 수 있지만, 없다 하게 될 때는 절망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 인간 세상에 기쁨을 심지 못하셨느냐? 수확의 결실을 추구하셨으면서 왜 완전하고 불변한 실체로 거둘 수 있는 완전한 열매를 심지 못했느냐?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아담 해와가 완전한 결실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에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이상을 백 퍼센트 전개시켜 가지고 최후의 결실로 나타날 수 있는, 생명의 모체로 등장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이 땅을 대신하고,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온 천지여 내 행복함을 본받고, 내 기쁨을 따르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푯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주장하는 행복의 요건으로 역사적인 주의 사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인류 시조를 중심삼고 완전한 결실체로 나타난 것이 없습니다. 행복 중의 행복이요, 모든 가치 중의 가치라고 자랑할 수 있는 아담 해와가 되었더라면 그 세계는 행복으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 세계는 희망의 고개를 넘지 않아도 될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계에 하나님의 사랑, 이상, 소망이 어디 있으며, 행복의 기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들을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잃어버린 그것을 재현하여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즉, 창조이상을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대과업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완전한 열매로 맺혀진 아담을 따 가지고 다시 심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담을 하나님의 사랑의 원동력을 주입시킨 결실로서 거두려 했는데 거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열매를 심었더라면 그와 같은 아들딸이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겁니다. 나지 말래도 나는 것입니다. 역사적 방향이 아무리 치켜 올라 가더라도 이 본질과 본성을 점령하여 헤쳐 놓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혁명을 불허하는 그런 기반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27-228
잘못된 사랑은 사랑으로 바로잡아야
오늘날 혁명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본연의 세계를 다시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는 더 좋을 수 있는 어떤 조건만 제시되면 옛것은 물러가고 새것이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발전 현상의 단계를 거쳐오는 것과 같이 보이는 겁니다. 이것은 복귀섭리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열매를 잘못 심은 것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심은 사람이 잘못 심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인데 왜 그랬느냐? 그런 하나님을 인간이 추앙할 것이 뭐 있어?’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누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누가 잘못 심게 만들었느냐? 그렇게 만든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이런 얘기는 그만두고 아무튼 인간은 그릇되게 심어졌다는 겁니다. 원인과 결과가 일치될 수 있는 이상적인 실존체로서 심어지지 못하고, 원인은 거룩하되 결과는 탄식과 비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결실로 심어졌습니다. 탄식의 결실입니다, 탄식의 결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기에서 우주적인 혁명을 일으켜 재창조를 해야 됩니다. 인간은 흙덩이만도 못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지으실 때의 흙과 물과 공기, 그 본체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지어야 합니다. 무자비하게 해부하고, 무자비하게 불살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적 변화로부터 몸적 변화를 일으키고, 생활적인 변혁이 일어나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혁명의 주체세력을 갖고 나옵니다. 그 사회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와 대결해 가지고 혁명할 수 있는 주체 세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다시 오마’ 하시고 가셨습니다. 그것은 다시 와서 심판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심판이 어떤 심판이냐 하면, 그릇된 것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 주체적인 권한을 갖고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거 가능한 말입니다.

심어져야 할 것이 잘못 심어졌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간섭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잘못 심어졌느냐? 사탄으로 말미암아 잘못 심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옥토에 가라지와 피가 심어졌습니다. 알곡을 거둘 수 있는 벼가 심어져야 할 것인데, 가라지와 피가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뽑아 버려야 됩니다. 이 거짓 것이 지금 세계에 터를 잡고 요동하고 있으니 이것은 다 뽑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세계에 있어서 혁명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의 부름을 다시 받아 가지고, 하늘의 본연의 기준 앞에서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의 대주재 되는 군왕이시라면 그때의 여러분은 그분의 왕자 왕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거 아니예요? 그분의 천지의 주인이라면 왕 중의 왕이잖아요? 그러니 그분의 아들딸이 되면 왕자요, 공주가 되는 겁니다. 생기기는 이렇게 생겼어도 왕자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얼굴이 잘 생겼구만. 잘만 골인 하면 공주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길을 암중모색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은 더더욱 빛날 수 있는 그 곳으로, 더더욱 가치 있는 세계적인 존재로 등장하라고 재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잘못 심어진 그대로 흘러갈 것 같애요? 그냥 그대로 흘러가게될 것 같애요? 뜯어 고쳐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아느냐? 그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사람이 그 아비와 어미와 딸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세계의 정서적인 면을 전부 다 밟고 올라서서 혁명을 하려니까 제일 가까운 데서부터 대결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제일 가까운 것이 문제가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처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을 때에 무엇을 중심삼고 심었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출발했느냐? 사랑을 중심으로 심지 않고 사랑을 부정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총각이 그 동네의 아가씨를 짝사랑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다른 총각이 나타나서 그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면 짝사랑하던 총각은 부정당하지요? 꼼짝없이 부정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음란으로 인해서 타락했다는 통일교회의 원리를 들고 나오지 않더라도, 이런 사실들을 추구해 보면 그 문제의 답은 자동적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주체의 사랑의 인연을 파탄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 무엇이냐? 사랑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27-230
지금은 6천년 역사의 수확기간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출발이 아니고, 사탄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출발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랑의 출발이 아니라 종새끼가 좋아하는 사랑의 출발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 말을 고이고이 키워 가지고 그 나라의 왕후로 삼으려고 했는데, 다 자라기도 전에 머슴하고 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돼요? 미래의 왕후가 머슴한테 끌려가요? 안 끌려가요? 여기 여자들 대답해 봐요. 「끌려갑니다」 틀림없이 끌려갑니다. 머슴을 완전히 잡고 있었다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끌려간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어디를 통하여 생겨났느냐? 핏줄을 통하여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6천년이 지나갔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조들도 오늘날 우리와 다름없이 이런 비탄의 운명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사라져 갔습니다. 그런 열매를 심고 거두고, 또 심고 거두어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국가가 되었고, 수많은 인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인류 세계에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위주로 하여 이런 운명길을 개척하는 것이 오늘의 나의 인생입니다. 여기서의 `나’는 바로 몸뚱이입니다. 인간에게는 마음과 몸의 두 세계가 있습니다. 마음은 그래도 영원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연고로, 하나님의 본성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연고로 선한 세계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석에 쇠붙이가 끌려가듯이 마음은 절대적 주체자이신 하나님에게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원수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그와 혈통의 관계를 맺은 이 몸뚱이는 자꾸만 딴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 둘 사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 골짜기를 어떻게 거쳐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인생의 문제입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성인현철들도 이 고개를 타개하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몸은 세상이 잡아 끌고 마음은 또 딴 세계가 잡아 끄는 그 싸움 가운데서 이 싸움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이 싸움터에서 태어나 먹고 자며 살다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싸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여기에서 오른쪽은 하늘편이요, 왼쪽은 사탄편입니다. 또 몸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사망의 길을 가는 것이니 사탄과 짝하는 사람이요, 마음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생명의 길을 가는 것이니 하늘과 짝하는 사람입니다. 두 갈래로 갈라지려는 이 싸움의 요소를 가지고 태어난 인류이기 때문에, 끝날이 가까워 오면 이 둘이 격돌하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지금 민주와 공산, 이 두 세계의 싸움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 심어 놓은 결과가 세계적인 밭에서 열매맺은 것이니 그 이상 될 수 있겠어요? 다시 말하면 지금은 타락 인간 6천년 역사의 수확 기간입니다. 그때에 죄를 그렇게 심었으니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디로 갈 것이냐? 갈래야 갈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젊은 사람들이 이러고 앉아 있습니다. 우리네 같은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똑딱하는 순간도 바쁘게 여기는데, 아침에 나갈 때에 이러고 앉아 있더니 오후 3시가 되어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그대로 버티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갈 데가 있어야지, 가 보아야 더 나쁘고 더 복잡하니, 차라리 단순한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불원한 장래에 그런 운명에 부딪치게 될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들, 소위 지식층에 있다 하는 사람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일본 같은 나라만 해도 대학 교수가 자살한 사건이 있잖아요? 지금 공산당이 난동을 부려 가지고 도저히 그 나라와 민족을 수습할 길이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그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기말적인 현상을 어떻게 타개하고 넘어갈 것이냐? 타고 넘어갈 수 있는 발판이 없습니다. 그런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바라는 이상주의, 그것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 혹은 지팡이의 역할을 하는 것이 무슨 주의니 사상이니 하는 것이지 주의 사상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닙니다. 주의나 사상 같은 것은 진리를 소개하기 위한 지팡이요, 다리입니다. 그 다리를 건너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리를 건너가서는 무엇을 하느냐?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자아를 찾아 가지고 나라를 주고도, 세계를 주고도, 이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핵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행복을 노래하며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인간으로서 최고의 행복의 제단을 쌓은 최고의 결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역사를 수확하는데 있어 최고의 결실체라는 것입니다.

27-233
이 세계의 주인은 누구냐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도 민주주의를 중심삼고 세계가 나아갈 길을 막아 놓고 있습니다. 소련도 공산주의를 중심삼고 세계가 나아갈 길을 막아 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무엇이 문제냐? 세계가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문제입니다.

이 세계가 이렇게 된 것은 동기가 모순되었기 때문이므로 이 문제의 해결점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시조의 출발의 기점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디로 출발했느냐?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늘의 통일교회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잘못 심어져 맺어진 결실이 지금 이 땅 위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세계의 주인은 과연 누구냐? 하나님이예요? 이 세계의 주인이 하나님이예요? 누구예요? 여러분이예요?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람들인데, 지금 사람들은 주인이 못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주인이 되어 있어요? 세계의 주인입니까? 대한민국의 주인이예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종도 못 되었으니 주인은 더더구나 못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내 세계다’ 하며 주장하는 사람 보았어요? 주장할 수 있는 아무 건더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그 세계와 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며 나서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언제나 세계의 대표자가 되려고 합니다. 마음은 `내 세계다’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번 해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이 세계의 주인이 누구냐? 인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고 해서 진정한 주인이냐? 알고 보니 인간은 종도 못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타락한 인간을 종의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인 노릇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면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근본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본을 가지려면, 하나님과 더불어 태어나야만 됩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의 혈통적인 핏줄의 인연을 통해서 사랑의 결실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은 종도 못 된 것입니다. 종은 자기가 섬길 수 있는 주인을 갖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런 주인도 못 가졌으니 종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 원리가 참 타당합니다. 인간은 종의 종이니 종의 종에서부터 복귀해야 합니다. 아직은 사람의 자식이 아닙니다. 하늘의 족속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핏줄을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종의 종이라는 겁니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그런 패들입니다.

인간은 이 세계에 살면서도 주인이 못 되어 있습니다. 사탄세계 뿌려진 씨앗의 결실로 태어난 입장에서 이 사탄세계마저도 마음대로 주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권자가 있지 않느냐구요? 천만예요. 그 주권이 영원히 자기 것입니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이 세계의 주인 될 수 있는 분은 누구일 것이냐? 세상의 어떤 정치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종 놀음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것을 겁탈해서 자기 것으로 쌓아 놓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남의 것을 잘못 건드렸기 때문에 저 나라에 가서 그 대가에 해당하는 만큼의 벌을 받게 될 때들입니다.

자, 이와 같은 현시점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결실입니다. 열매예요. 어떤 열매인지는 모르지만 열매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래요? 여기 여자들, 시집도 안 가고 혼자 살다 늙어 죽을 거예요? 또 남자들도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다가 늙어 죽을 거예요? 그렇게 살다 죽으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면 이 처량한 것을 또 심어야 됩니다. 누더기 보따리를 또 심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콩 심으면 콩나고, 팥 심으면 팥 나고, 보리 심으면 보리가 나지요? 여러분같이 타락한 인간을 심으면 무엇이 나올 것 같애요? 무엇이 나올 것 같느냐 말이예요? 「타락인간이 나옵니다」 타락인간 나오지 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접붙이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인간은 돌감람나무이니 하늘의 아들이 참감람나무로 와서 접붙이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접붙임을 받지 않고는 살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돌감람나무요, 나는 참감람나무’라 했습니다. 돌감람나무밭에 참감람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그 밭의 돌감람나무를 전부다 참감람나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접붙임만 받으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접붙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기의 혈통을 부정해야 됩니다. 혈통을 부정하는 것이 타고난 사랑의 인연을 부정하는 것이요, 그 사랑의 인연을 부정하는 것이니 타락한 세상의 모든 인륜도덕의 기준까지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27-235
종교의 최대 목적
그래서 참된 종교는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해 나왔습니다. 참 기가 막히지요? 참된 종교는 뭐라구요? 「완전부정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부정했어요? 했어요, 못했어요? 이 보따리가 아까워서 등에 지고, 옆에 차고 가슴에 안고 다니면서 부정이 돼요? 자, 그러면 여기 접붙임을 받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건 뭐 다 들거니까 그만 내리라고. 할머니가 제일 먼저 들려고 하는구만.

그러면 접붙임을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접붙임을 받으려면 목을 짤라야 되느냐?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감정이나 생각, 일체를 새로운 사상,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우주관을 체인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은 가정관입니다. 가정관이라는 것입니다. 딴 거 아닙니다.

이런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딴 것은 못했어도, 또 아무리 비판을 받아도 그것 하나는 잘했다고 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천주의 해결점을 발견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천주주의입니다. 이것을 갖지 못한 사람은 하늘 가정을 이룰 수 없고, 하늘 족속을 이룰 수 없고, 하늘 나라를 이룰 수 없고, 하늘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의 관계를 맺어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래 심고 싶었던 아담은 어떤 모습일 것이냐? 이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아담은 하나님이 심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심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탄식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심고 싶었던 아담은 어떤 모습이었느냐? 그것은 하나님과 일체인 부자관계의 아담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 일체될 수 있는, 경계선이 없는 인연을 맺은 아담이었습니다.

그러한 인연을 오늘날 이 인간세상에, 이 사탄세계의 생활권에 어떻게 다시 전개시키느냐? 이 문제가 바로 종교의 최대의 목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을 제시하는 날에는 하나님의 한도 해원되는 것이요, 인간의 소원도 성취되는 것이며, 역사의 모든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점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해결점이 결과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원의 세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년 전의 사람의 마음이나, 오늘날의 사람의 마음이나 다 마찬가지로 무엇을 그리워하느냐? 마음의 행복의 세계를 추구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행복의 세계를 추구하는 동시에 마음의 이상의 상대를, 마음의 이상의 가정을, 마음의 이상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무엇을 해야 통일이 되느냐? 마음이 그리는 이상의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만 제시하면 됩니다. 통일교회의 통일이 아니라 세계의 통일입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내가 심는 데 무엇을 심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다시 심을 수 있는 완전한 결실이 되어 있어야 하고 내 자신이 심는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분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은 참된 씨인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할 사람이 누구냐? 인간 조상입니다. 인간 조상은 인류의 부모입니다. 그 부모를 평면적으로 상속한 것이 오늘날 수많은 가정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의 주인은 누구냐? 아담 해와가 되는 동시에 평면적인 상속을 받은 우리 인간도 되는 것입니다. 주인은 혼자서 될 수 없습니다. 부부라야 됩니다. 주인은 부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도 신랑 신부를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없어요. 신랑 신부를 찾아와야 되는 거예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이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것을 알았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27-237
타락인간을 아들딸로 찾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이 어떤 입장에 계셨겠느냐? 기뻤던 하나님일까요? 슬펐던 하나님일까요? 슬펐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아들딸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사탄의 아들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복귀해 온 것이 6천년이나 걸렸습니다. 말할 수 없이 슬픈 하나님이십니다. 창조 당시의 이상의 높이에 비례해 가지고 인간 타락에 의한 타격을 느끼신 것입니다. 그것의 상충은 언제나 고통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처럼 무거운 고통과 슬픔 가운데 처한 하나님의 사정을 어떻게 해소시켜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 앞에 불효했고 배반했던 그 모든 내용을 다시 풀어 줄 수 있는 사연을 지니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가인, 아벨, 셋을 중심삼은 복귀된 아담 가정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아들딸, 신앙의 아들딸은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여러분은 따라올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부모를 위해 죽고 자기 형제를 위해 죽은 사람은 많지만 오늘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 앞에 자기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그런 아들딸이 있느냐는 겁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사지(死地)에서는 도망 갔습니다. 타락한 세상의 부자의 인연을 놓고 볼 때도 부모가 죽을 자리에 처하면 자식이 대신 죽으려고 합니다. 이 망할 세상에서도 그러는데 영원히 남을 수 있는 하늘의 부자의 관계를 맺고자 온 예수 앞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어땠습니까? 예수님 죽기 전에 먼저 죽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갔습니까? 못 나갔다는 것입니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오늘 통일교회의 문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슬퍼할 수 있는 장면이 있으면 싹 후퇴하고, 내가 이익될 수 있는 자리에서는 딱 등장하고 그랬으면 오늘날의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미욱해야 됩니다. 사리(私利)가 없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그 일 자체만 생각하면 견뎌 내지 못합니다. 그것 할 수 있어요?

통일교회를 따라 나온 여러분이 참부모의 인연이니, 새로운 하늘 가정이니, 축복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그 축복이라는 것은 사망선 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은 탕감권내에서, 사망선 이하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범위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면 언제 여러분이 사망선을 넘었습니까?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할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면케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자리에서 옛날의 자기는 죽이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인연을 통하여 부활할 수 있는 자아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천지에 있어서 주도적 권한을 갖고 희망의 출발을 보게 될 때, 거기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결실의 주인, 수확의 주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뿌려 왔습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뿌려 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뿌려 가지고 그 수확의 결실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결실의 주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주체의식을 중심삼은 완전한 하나의 씨가 있었느냐? 하나님이 재차 선별해 가지고 이것만은 완전한 씨이기 때문에 이것을 중심삼고 인류의 새로운 혈통을 세우고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겠다고 할 수 있는 씨가 있었느냐? 그런 씨가 된 사람이 누구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럴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었어요?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땅을 찾아오는 데 있어서, 그런 씨를 마련하여 이 땅에 보낼 것이 틀림없습니다. 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씨앗을 심을수 있는 밭을 마련해야 되니 그것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하고 4천년이 지난 후에 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심으려 했습니다. 이것이 옥토예요. 하나의 완전한 기대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운 인격관,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사회관,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세계관을 가져 새로운 이상세계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27-239
옥토에 심어질 수 있는 완전한 씨가 되라
이와 같은 씨를 심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예수를 보냈습니다. 이 밭이 역사적인 예수가 자랄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예수가 자라는 데에 필요한 생명의 요소로서 흡수되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밭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옥토, 땅이 없는 씨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땅 위에 발판이 없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괄시와 몰림을 받으며 전부 피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옥토에 심어진 씨가 아니고 공중에 심어진 씨와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구원이라는 것이 인간입니다. 내용으로만 살지 실체로서는 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 땅 위에 재림의 때가 옵니다. 다시 그 밭을, 옥토를 찾아 가지고 여기에 심어질 수 있는 씨가 이 땅 위에 새로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옥토가 되었어요?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가 그러한 옥토가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가 이만큼 발전하기까지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핍박을 했습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교가 예수님을 핍박하던 그 이상의 핍박을 했습니다. 지지리도 핍박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강토를 옥토로 삼아 여기에 씨를 심으려는 섭리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 민족이 그 씨가 심어질 수 있는 터를 닦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6천년간 하나님의 수고의 그 터전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은 수고해 가지고 이 땅을 거룩한 옥토로 삼아 여기에 씨를 심어 백배, 천배 거룩한 수확의 결실을 거두려 하십니다. 부모나 형제의 전답을 나를 위해 버린 사람은 백배로 갚아 줄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갚아 준다는 것은 완전한 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완전한 씨가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완전한 씨만 되면 갖추어진 옥토에 심어져 천배, 만배의 결실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옥토에 심어질 수 있는 씨가 되었어요? 되었어요, 못되었어요? 못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우는 결실한 씨보다도 더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씨가 못 되었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심은 씨가 다시 씨로서 결실되지 못하면 또 다시 심을 수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러니 재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7년노정, 하나님의 복귀노정으로 내세운 이 7년 기간에 싸워 가지고 남아질 수 있는 완전한 씨로서 결실된 사람이 누구냐? 자기의 주체의식을 가져 가지고 통일교회가 없어질지라도 자기가 이 땅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통일교회가 없어지면 여기 남아질 사람이 몇 사람이나 돼요? 몇 사람이나 돼요? 여기 자신 있어요? 자신 있어요, 없어요? 「자신 있습니다」 자신 있긴 뭐가 자신 있어요? 선생님도 없어지는데. 그래요, 자신 있어요?

몇천 년 전의 그 씨를 대대손손 물려받아 지금까지 내려왔으니, 지금 그 씨를 심으면 틀림없이 그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나의 씨라고 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심어 가지고 여러분이 문선생 같은 열매들이 되었어요? 뜻을 대해서 그렇게 되었나, 안 되었나?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못 되었습니다」 못 되었으니 죽기나 해요. (웃음) 그러면 언제 돼요? 죽을 때까지 안 되면 망하는 거지.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자, 그렇다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통일교회의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 식구라고 하면 장래에 통일교회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다시 말하면 수확될 수 있는 결실체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역사 가운데, 사탄세계, 타락한 이 땅 위에서 창고에 거두어들인 그 열매는, 주인이 없더라도 누구든지 갖다 심어만 놓으면 그 자체의 열매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와 같이 불변의 열매, 하늘 앞에 결실을 가져 올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7-241
흥하는 길
그래서 지금까지 선생님이 주장한 것이 뭐냐 하면, 전통적 사상을 이어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기와 결과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동기가 누구예요? 동기가 누구예요? 그냥 문선생이라면 기분 나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선생님이 동기인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에서는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있지만 평면적인 기준, 즉 횡적인 기준에서는, 이 땅 위의 인간을 중심삼고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동기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이 되어야 됩니까? 무엇이 돼야 돼요?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동기와 일치되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까 여러분이 사탄세계의 동기를 가지고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을 주인으로 하여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계의 주인이 못 되었다고 그랬지요? 주인이 되면 남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도 못되었으니 망해야 됩니다. 평면적인 입장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동기가 되어 있으면 여러분은 평면적인 입장에서 뭐가 되어야 합니까?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과가 되지 못하는 날에는 어떻게 돼요? 「망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망할래요, 흥할래요? 「흥하겠습니다」

흥하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이 교회의 골수를 따라야 됩니다. 하늘을 업고 넘어가야 되며 선생님을 업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을 상속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동기의 기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동기가 출발하던 당시의 모든 곡절을 내 곡절로 상속받아야 됩니다. 그 비통한 사실을 내 뼛골에 사무치는 사실로 체휼해야 합니다. 역사적 모든 서러운 조건들을 대해서 투쟁해야 됩니다. 그 투쟁이 끝날 때까지는 결과의 자리에 못 나갑니다. 그런 자리를 거처지 않고 통일교회의 수확, 통일교회의 결실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기에 통일교회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들어왔어요? 아니면, 여러분 자신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들어왔어요? 물어 봅시다. 자신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왔다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열매를 닮아 가지고 그것을 수확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죠? 「예」 통일교회 교인들이, 남의 흉이나 보고 못난 사람들이 나가 전도를 하고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한다고 훈계나 하는 그런 사람 닮기 위해 여기 들어온 것입니까?

여러분은 비판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비판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비판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비판받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지요? 그렇게 비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선두에 서서 달려야 합니다. 밤잠을 안 자고 못 살게 굴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런 놀음하고 있습니다. 못 살게 구는 겁니다. 모임이 있다 하면 열두 시가 넘고 점심 때가 지났는데도 말씀이 그칠 줄 모르거든요. 쥐어박고 문드러 뜨리고 그냥 두지 않을 눈치거든요. 그래도 괜찮아요? 「예」

보십시오. 여러분, 곡식이 자라려면 무엇을 줘야 됩니까? 사람에게는 꿀바가지를 다 부어 주고, 좋은 고기국물도 주고 밥상도 가져다 주면 되지만 곡식에게는 뭘 갖다 퍼부어 줍니까? 「비료요」 비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비료를 퍼붓게 되면 곡식이 좋아하겠어요, 나빠하겠어요? 「좋아합니다」 좋아하긴 뭘 좋아해요. 그 이파리는 얼마나 지긋지긋 하겠어요. 비료가 잎에는 닿으면 안 됩니다. 뿌리는 비료를 좋아해도 잎은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내가 거름을 주겠다고 하면 마음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 거름은 몸뚱이가 받아야 됩니다. 몸뚱이가 거름을 필요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몸뚱이가 거름을 잘 흡수하면 그 사람은 잘 자랍니다. 그러나 몸뚱이가 거름을 잘 흡수하지 않는 사람은 빼빼 마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뚱이가 거름을 뒤집어쓰는 놀음을 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냐? 여기에 꿀바가지를, 달콤한 것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뭐냐?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뚱이에다 똥바가지 씌워야 되겠어요, 안 씌워야 되겠어요? 「씌워야 됩니다」 (웃음)

통일교회 문선생이 똥바가지 썼어요, 안 썼어요? 썼으면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씀으로 말미암아 흥할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의 신문이 한면이 지난 8면 전면에 대서특필해도 나는 눈도 깜짝 안 합니다. 뭐 장관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은 신문을 제일 무서워하지요. 그러나 신문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왜? 똥바가지 쓸 대로 다 썼거든. 더 이상 쓸 게 없다는 것입니다. 미리 잘 써 가지고 떡 자리 잡고난 후에는 만사가 형통이더라. (웃음)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내가 잘못되더라도 사람들이 `옛날에 그렇게 욕먹더니 결국 그렇군’ 하고 생각하게 되니 결국 그것도 벗어날 수 있는 도피구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똥바가지 쓴다고 화내지 말라는 겁니다. (웃음)

몸뚱이로는 썼더라도 마음은 다릅니다. 다가오는 물결이 거세였어도 이것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결의는 강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똥바가지를 써 가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잘했어요, 못 했어요? 「잘했습니다」 그 식 본받을래요, 본받지 않을래요? 「본받겠습니다」 말씀은 좋은데 본받겠느냐 본받지 않겠느냐 하니까 왜그래요? (표정 지으심) 이런 사람들은 망할 종자요, 흥할 종자요? 「망할 종자입니다」 망할 종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얼마나 소화시키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27-243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주의와 민족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여기서 말하는 수확의 주인공, 결실의 주인공이 될 것이냐? 인간 역사는 그 수확기에 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수확기에 누가 주인이 될 것이냐? 인간세계의 어느 누구?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닉슨? 소련의 코시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수확기에 있어서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그 세계에 있어서 하늘의 뜻과 더불어 수확하기 위해 책임을 지고 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민족주의를 중심한 국가관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특정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워 놓은 세계관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민이 평등한 이상적인 기점에서 형제의 인연 이상의 인연을 자랑할 수 있는 가정주의적 이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자관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을 고취할 수 있는 그런 주의와 사상 아니고는 세계를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못난 자식을 더 동정하듯이, 이 세계를 바라보시는 하나님도 불쌍한 민족일수록 더 동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민족부터 사랑할 수 있는 주의와 사상이 가져야 합니다. 그런 주의라면 앞으로의 세계를 수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주의는 사탄세계의 국가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를 전부 부정해야 됩니다. 새로운 세계를 위주로 하여 그 세계의 이상을 중심삼은 주의가 지상에 현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의를 추구해 나가는 집단은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이 세계에 딴 집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 말고 또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 봐도 한 곳밖에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진리가 가르쳐 주는 이상의 방향을 제시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이 세계 앞에, 수확된 결실의 주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한 주인이 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완전한 결실이 되어서 옥토에 심어지면 백발백중 싹이 나야 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무리 자갈밭에 심더라도 틀림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수가 적더라도 거두어진 결실은 틀림없이 통일교회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문선생이 주장하던 것이어야 됩니다.

그리고 문선생 역시 하나님이 주장하는 결과의 실체라 한다면 하나님이 주장하는 그 모습을 닮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동기로 삼은 제1결과가 있으면 이 결과를 다시 동기로 삼아 하나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1동기에서 빚어진 하나의 동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인 여러분이 결과되어 이 동기와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뜻을 대해 가는 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이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어야 됩니다. 지금 여러분은 생명이 일치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뜻과 일치된 여러분의 생명을 가졌어요? 여러분은 그런 마음 하나뿐이예요? 만약 둘이 되었을 때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가라지가 되는 겁니다. 조와 비슷하지만 가라지가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고대하는 결실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벼와 비슷하다고 해서 벼가 아닙니다. 그것은 피예요, 피. 여러분, 피알지요? 이것을 모판에 벼와 같이 심어 놓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전문가가 아니고는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이랑 사이를 더듬어 벼밑 부분의 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그런 거 잘 골라 냅니다 벼는 대가 움푹 들어가고 피는 두드러져 나옵니다.

여러분, 통일교인이라고 해서 모두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는 피와 같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라지가 조 모양으로, 피와 같은 사람이 벼 모양으로 행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앞으로 전부 망할 것입니다. 끝에 가면 본색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과와 원인이 일치되지 않으면 그 본색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동기를 순수한 내용을 중심삼고 출발시켰는데 그 결과가 불손한 것으로 맺어졌다거나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출발시켰는데 결과가 사적인 것이 되었다면 그것은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분입니다. 공적이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가정을, 가정보다는 종족을 더 존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족을 희생시켜 민족을 찾아라, 민족을 희생시켜서 국가를 찾아라, 국가를 희생시켜 세계를 찾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 끝날에 있어서 세계를 찾기 위한 하늘의 역사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복귀섭리 과정에 고대하고 있는, 자기 나라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찾으려는 국가나 민족이 있느냐? 만약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민족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의입니다.

27-245
1970년대에 이 민족을 대한 하나님의 소원
다시 말하면, 자기가 망해 가지고, 자기가 없어져 가지고, 백배 천배의 수확의 결실을 추구해 가는 것이 하나님주의입니다. 하나님 사상이예요. 이것이 지금까지 남아져 온 하늘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맞고 고통당하여 완전한 결실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가지고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도 소화시킬 수 있는 결실의 자체를 찾아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하나님의 복귀섭리입니다.

그러면 그 복귀섭리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 오늘의 통일교회라면 이 가운데에서 그러한 결실을 대신할 수 있는 개체가 있느냐? 그런 열매가 있느냐?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갖다 심어 놓아도 틀림없이 결실될 수 있고, 틀림없이 자리를 잡고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에는 `저렇게 살게 되어 있어’ 하는 간판이 붙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공적인 일입니다. 공적이예요. 그런 자는 공적인 것 외에는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기를 들고 나오면 망합니다.

대한민국이 왜 부패하느냐? 그것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팔아 가지고 자기 가정을 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한 나라가 망하면 누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느냐? 가정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런 자들이 먼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통일사상은 무엇이냐? 내가 망하고, 내 가정이 고생하고, 내 친척이 고생하더라도 나를 살리는 길에 있어서 거름이 되고, 이 민족 앞에 있어서 생명의 싹을 틔워 완전한 결실을 맺게 하는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자 여러분, 그런 길 가겠습니까, 안가겠습니까? 「가겠습니다」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어디 봅시다. 왜손 들구 얼굴을 숙이나. 내리십시오.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됩니다. 1960년에 제1차 7년노정이 시작되어 지금은 제2차 7년노정을 걷고 있습니다. 10년 세월이 흘러가려고 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통일교회 망하게 할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국군을 동원해서 어떻게 한다 해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이제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교회의 기반을 닦기 위해 투쟁하면, 염려하던 그 기간이 완전히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통일사상은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를 중심삼고 염려하든 때는 지나 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라를 위해 염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무엇을 할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교육을 해야 되겠습니다. 사상적인 교육을 해야 되겠고, 생활적인 교육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1970년대에는 삼천만 민족을 재교육시키는 운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원임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27-247
복귀의 승리자가 되려면
옛날에 우리가 교육받기 위해서 많은 반대와 핍박을 받으면서 쫓기어 나왔으니 이것을 다시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을 하는데, 제2차적으로 반대하던 사람들을 중심삼고 교육해야 됩니다. 그 사람들을 원수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를 반대한 그 사람들은 무엇이 되었느냐? 가인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되었다구요? 「가인요」 가인이 되었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반대를 받은 사람은 뭐가 된다구요? 아벨입니다. 이렇게 가인과 아벨의 자리가 결정되어 싸움을 지금까지 계속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벨적인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가인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옛날에 전도할 때 반목 질시하던, 혹은 반대하고 추방하던 그 가인적인 사람들을,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으로 남아진 그 사람들을 그냥 버려 두게 되면 대한민국이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찾아가서 그들을 자연굴복시켜 통일교회를 환영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역사의 운세가 도래할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제는 환경적으로 그럴 수 있는 때가 왔고, 삼천만 민중 앞에 이러한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재료가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인할 수 있는 실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민족을 원수시했던 가인적인 담벽을 무너뜨려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봅니까? 가인은 못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은 못 합니다.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던 아벨이 죽지 않고 부활해 가지고 다시 가인을 찾아와 용서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아벨적인 기준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배반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가인적인 대표가 되었지만, 부활한 예수는 그들을 찾아가 화해하였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새로운 기독교의 섭리가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상이 아닙니까? 우리 원리가 가르쳐 준 근본 내용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가 이제 갖출 바의 자세를 갖추었다고 한다면 원수를 원수로 갚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갈 길을 못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원수로 맺혀진 모든 것을 풀고 가야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동참할 수 있는 축복의 인연을 갖추어 주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말없이 옛날에 핍박한 것을 무릎을 꿇고 회개 할 것입니다. 회개하는 그런 모습이 보이거든 여러분은 삼천리 반도에 복귀의 천국이 시작된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렇게 되면 아시아 있어서 새로운 주도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의 깃발을 들고 세계로 출정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될 때, 이제 과거에 여러분에게 맺혀진 가인적인 모든 기대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이냐? 이것이 1969년대를 보내고 1970년대를 맞는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와 같이 사탄세계의 기반, 가인적 기반 위에서 하나님편의 결실된 열매를 심지 못한 것을 다시 재보충하여 심을 수 있는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뜻을 출발하던 1960년도의 마음을, 성심성의를 다하던 그때의 그 마음에 뜻을 위한 사무친 마음을 더해 가지고 이제야 말로 그 터를 옥토로 삼아 새로운 씨를 심어야 되겠습니다. 정성을 모아 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가라지로서의 모든 원수들이 변하여 새로운 씨를 위한 비료가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반대하던 사람들이 여러분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후회한 것이 조건이 되어 여러분이 발전하는데 자극적인 동기가 될 것입니다. 거기에 새로운 싹이 터 가지고 체제를 갖춘 통일교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때는, 지금까지 선생님이 50평생 싸워 나오던 그 핍박세계, 가인적인 그 세계를 넘어서서 아벨적인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진군할 수 있는 때가 가까워 질 것입니다.

27-249
아벨로서의 우리가 할 일
그래서 선생님은 `1969년도야, 가거라. 빨리 가거라. 통일 역군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빨리 가거라’ 했던 것입니다. 1969년도 이제 17일을 남기고 있습니다. 음력으로는 한 두어 달 남았습니다. 약 50일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나가는 날 원한의 역사를 대신하여 민족적인 탕감의 터전을 닦을 수 있는 소망의 때가 오거늘, 이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 아들이 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아들 중에서도 누가 해야 되느냐? 아벨이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이 해야 됩니다. 그럼 통일교회 사람 가운데 아벨이 누구냐? 선생님과 가까운 사람이 누구냐? 못난 가정, 처량한 가정의 무리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들에게 엄청난 일을 시켜야 되겠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내세워서 채찍을 들고 희생의 길고 몰아야 했던 이 무정한 사람, 하나님에게 가려진 비운의 역사를 빚지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다시 채찍을 들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은 불쌍한 것입니다. 아벨을 통해서 복귀해야 하는 아담의 입장이 불쌍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민족에 있어서 기성교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 가인과 아벨적인 입장을 가려 가지고, 민족을 대신하여 제2차적으로 싸울 수 있는 싸움터를 마련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갈 길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절박하다는 것을 선생님은 미리 알고 벌써부터 기도해 나온 것입니다.

1969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렇게 우리는 심각한 입장에 섰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희진이가 죽어갔지만 잘 갔습니다. 잘 갔습니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의 날을 찾기 위해서 예수를 죽음의 자리에 내세우는 아버지와 똑같은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꼭 들어맞았습니다. 뜻을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가야 되겠습니다.

지난 여름 방학에 가정들을 전체 동원하라고 명령했지만 누가 동원되었습니까? 누가 동원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희진이가 나섰습니다. `아버님의 말씀대로 아무도 따르지 않으니 나라도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을 했을 때 나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희진이가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백리 이상 먼 길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역사적이 노정을 탕감하면서 풀고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눈물 흘렸느냐?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 난 사람은 불쌍합니다. 희진이도 예수님과 같이 거리에서 났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0대에 민족으로부터 몰림받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기반이 없는 자리에서 갔지만, 희진이는 몰림 받는 자리가 아니라 기반을 가진 부모를 중심삼은 자리에서 갔습니다. 세례요한과 더불어 요셉 가정의 반대를 받던 서글픈 자리의 예수, 몰리던 예수의 입장이 아니라 환영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갔기 때문에 잘 갔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예수의 청소년 시대의 한을 풀어 주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계를 중심삼고 전체가 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젊은 사람은 물론, 전체가 동원할 수 있는 영적인 기반을 땅 위에 공고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절박한 시대적 양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해서 오늘 이 가인적인 담을 누가 헐겠느냐 했을 때 아벨이 와서 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에 예수는 아담으로 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성경에서는 제2아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3아담으로 오시는 분이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재림주가 무슨 뭐, 구름 타고 온다구요? 허파 썩을 사람들 꿈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와요? 아닙니다. 아담으로부터 심으려다 못 심었기 때문에 아담을 통해서 다시 심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이름을 가지고 와야 됩니다. 그 내용도 같은 내용을 가지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하던 한의 고개를 넘어가 가지고 타락될까 염려하던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받아 타락을 방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지닌 제3아담의 출현이 있을 때, 이 땅 위에는 새시대 새역사 창조의 기원이 마련되고 그는 새로운 선조로서의 역사적인 출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비로소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이 세계에 재차 아담이 와 처음 아담은 가인이요, 나중 아담은 아벨 입장에 서 가지고 세계적으로 탕감시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도 가야 할 사명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계로 가야 할 이 민족 앞에 놓인 가인적인 담을 누가 헐어야 되겠는가? 누가 헐어요? 선생님이 헐어야 되겠어요? 가인이 아버지를 쳤어요, 동생을 쳤어요? 동생을 쳤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람들이 통일교회 여러분들을 쳤어요, 안 쳤어요? 쳤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복귀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2차 7년노정이 있게 된 것입니다.

1974년 말까지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북의 김일성이 아무리 큰소리해도 1974년도만 넘어서게 되면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그러면 이 기간을 어떻게 극복하고 넘어가느냐? 어떻게 넘어가느냐? 아시아를 중심삼은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섭리적인 터전 앞에 있어서 순탄한 대로로 갈 수 있는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 여러분을 두고 보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예상하고 지금 그 싸움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 문에 들어가기 위한 대비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아시아 대회, 세계적인 대회도 해야 되니 그런 준비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27-251
선생님의 장단에 춤을 추면 된다
그러면 가인을 통해서 막힌 담을 헐어야 할 책임이 아벨에게 있는데, 여러분이 이 책임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다시 말하면 여기에 벼가운데 피가 있는데 그 피를 뽑을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 그 피가 남아 있는 한 생존권을 다투는 싸움이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싸움이 계속되면 천국이 건설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이와 같은 지점에 여러분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가라 하면 여러분이 갈 것이냐, 안 갈 것이냐?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선생님 앞에는 누가 아벨적인 입장에 있다구요? 가정입니다. 가정 가운데는 누가 아벨적인 입장입니까? 가정 가운데 누구예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여자입니다. 재수 없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여자 때문에 내가 골탕먹었다구요.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여자란 종자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으로 하여금 욕을 먹게 했어요, 안 했어요? 「했습니다」 그러니 풀어 놓아야 됩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풀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자를 동원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여자를 가진 남자는 여자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 축복가정들, 여러분이 언제 아담 가정을 탕감복귀했습니까? 했어요, 안 했어요? 했다면 그때 여자를 중심삼고 그 앞에 순종하는 놀음을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은 관계를 맺어 가지고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아오던 가정에서 여자를 끌어내더라도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황부장! 알겠어요? 여자들을 끌어다 전도시켜야 되겠습니다. 축복 가정 사내 녀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고자가 되는 겁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따라갈 수 있습니까? 양도천 같은 목사는 사랑도 싫다고 스스로 불구가 되어 아들딸들도 낳을 수가 없지 않아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아들딸 많이 낳았지요? 그래서 이론 놀음을 시키는 것입니다. `언제는 축복해 주고 잘살라고 하더니 이제는 또 갈라 놓으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됩니까’ 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 장단에 춤을 추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대답해 봐요. 그럴래요, 안 그럴래요? 그럴 수 있는 남자들 손들어 봐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탕감해 주지 않고는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이 부인네들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이제는 부인들 앞에도 가인과 아벨이 생기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가인을 사랑할 거예요, 아벨을 사랑할 거예요? 자기가 낳은 아들딸은 아벨입니다. 이제 나가서 전도할 사람은 가인입니다. 해와가 결실한 것이 누구냐? 누구를 결실했습니까? 해와의 타락은 가인으로 말미암아 결실되었습니다. 해와의 열매를 누가 맺히게 했다구요? 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해와의 열매를 누가 탕감복귀해야 되느냐? 여자가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 앞에 가인을 굴복시키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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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이러한 여러분의 탕감 앞에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아들딸 다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 두고도 탕감할 수 있는 제2전법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보다 행복한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해와가 결실을 맺어 죄의 뿌리가 결정된 것은 가인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을 치는 자리에 서면 망하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나가서 전도한 아들딸이 아벨을 잘 섬길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아벨 앞에 경배할 수 있고 아벨이 시집 장가갈 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와서 만복을 축원할 수 있는 아들딸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정성을 들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까지 자기가 낳은 아들딸을 사랑한 것이 전부 다 걸리게 됩니다. 이것이 비법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가인을 사랑해야 되겠어요, 아벨을 사랑해야 되겠어요? 누구를 사랑해야 되겠어요? 남자들도 들어요. 누구를 사랑해야 되겠어요? 아벨이냐, 가인이냐? 「가인입니다」 가인을 자기 아들보다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서 가인을 억울한 자리에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심정을 갖고 가인을 먼저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반대하던 원수들을 내 아들딸 이상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새로이 입적하느냐 못 하느냐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제 가정으로 입적하는 거예요. 통일교회도 이제 축복을 끝내야 됩니다.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지어 완전히 탕감했다는 기준에서야 합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일 않고 살아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축복가정들, 그것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려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할 때에 여기에서 비로소 수확의 결실, 수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역사상에 가정으로 타락하여 심어진 그 열매가 한의 역사를 밟고 올라서서 주인의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천륜 앞에, 천지 앞에 참다운 부모로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종족의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종족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씨면 김씨의 씨족 앞에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과거에 왔다 간 숱한 선조들은 조상이 아닙니다. 그러한 조상들은 여러분에게 수천 만대의 손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가 개벽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할아버지가 손자가 되니 천지개벽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딸이 되고 딸이 어머니가 됩니다. 거꾸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새로운 역사 시대에 천지개벽의 개문이 다른 데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 원리의 관문을 통해서만이 벌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자, 이것이 신나는 일이예요, 신나지 않는 일이예요? 「신나는 일입니다」 `야! 이런 문제가 벌어지는구나’ 해야 합니다.

그리고 `네가 역사적인 장본인이구나! 너를 만나기 위해 6천년 동안 기도했다. 6천년 동안 찾고 찾아서 만났으니 흠뻑 있는 정성을 다 들여 주마’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무엇을 위해? 인류를 위하여, 땀은 무엇을 위해? 땅을 위하여, 피는 무엇을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뿌려야 합니다. 누구를 상대로? 가인을 상대로 하여 그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해결지어 놓는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수확의 결실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필생의 사명으로 알고 추구하던 천적인 가치의 모든 내용을 무조건 상속받을 수 있는 승리의 왕자 왕녀가 될 것입니다.

자, 말로는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원수의 쇠고랑이 앞을 가로막고 원수의 총칼이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교차로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한 장면들을 대할 때에 여러분은 예수가 기도하던 것을 생각하십시오. 바로 여러분에게 형님이요, 오빠가 될 수 있는 예수도 그러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형님이 간 그 절개를 내가 지키고 가겠습니다. 오빠가 간 그 절개를 내가 지키고 가겠습니다’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교차로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소망의 천국을 나를 통하여 이루시옵소서. 오늘 나는 개인으로서 죽어가지만 이로 말미암아 세계 앞에 열매 맺으시옵소서. 내가 바라는 가정 앞에서 나는 희생되었지만 그 가정을 통해서 세계 앞에 열매 맺으시옵소서. 나는 종족의 추모의 대상으로 죽어가지마는 세계적인 추모의 결과를 가져 오게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세계를 넘을 수 있는 동기의 기원을 갖고 결과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죽어갔기 때문에 동기와 결과가 일치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심어진 참씨는 참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명실공히 예수님을 중심삼은 결과의 세계를 창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동기를 십자가에서, 죽음의 교차로에서 뿌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입장에서 죽음을 중심삼고 뿌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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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쏘아진 포탄과 같은 입장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도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그러한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어찌하여 저에게 이러한 고생을 시킵니까?’ 라는 기도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전통으로 본받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모진 매를 맞고 기절하여 쓰러지는, 생사의 경계선을 몇 번씩 오고 가는 자리에서도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당연하다. 쳐라! 죽음의 세력이 얼마나 크냐! 사도 바울을 잡아먹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멸망시킨 이 죽음, 그 원한의 근거지가 나를 찾아오도록 쳐라! 두들겨 패라. 나는 이 죽음이란 장벽 앞에서 후퇴할 사나이가 아니다’ 이러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나는 지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쳤어요, 안 지쳤어요? 지쳤어요, 안 지쳤어요? 안 지친 사람 손 들어 봐요. 그 길을 부활할 수 있는 길입니다. 손 내려요.

싸움할 때 포탄은 목적지에 가서 폭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쏘아진 포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직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포탄일수록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는 방향을 알리는 것입니다. 큰 포탄일수록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는 방향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포탄이 폭발할 때는 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폭발점을 향해서 통일교회는 지금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아시아의 복판에서 터지는 날에는 세계가 움직일 것입니다. 발사된 그 포탄이 모양은 단조롭지만 대단한 힘을 발산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포탄과 같은 입장에서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통일교회 앞에 죽음길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핍박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나는 죽음길도 각오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제 핍박도 없는데 이 길을 못 가겠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수작 하려면 선생님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두갈래 길로 갈라지는 겁니다. 갈 것이냐, 안 갈 것이냐? 다시 한번 천명합시다.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남자들은 여자를 따라가면 됩니다. 여자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복귀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복귀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선생님을 반대했으니 축복가정들이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성진 어머니가 그렇게 극성스럽게 반대했지요? 그것을 여러분이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중된 섭리적인 내용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볼 때, `1960년대야! 잘 가거라! 나는 여기에서 인공위성이 날 수 있는 기지가 될 것이다. 불을 붙여라! 불이 붙는 날에는 날 것이다’ 하며 희망에 벅차야 됩니다. 알겠어요? 내일의 세계를 향하여, 내일의 소원세계를 향하여 활보할 수있는 힘을 갖추어 세계 만민이 주목하는 초점하에서 걸어갈지어다! 「아멘」

거 암스트롱, 내가 맨 먼저 달나라에 갔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이 먼저 가버렸습니다. 기분 나쁘게. (웃음) 그렇지만 그가 아무리 그래 보았자 달나라밖에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달나라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적막강산이거든요. 나는 인간세계에서 사상계를 움직이고 우주세계에서 최고의 첨단에 승부를 건 사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을 갖는 것입니다. 무슨 박사고 대통령이고 전부 다 내 행차를 주목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나 안 오나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누가 망하는지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남아질 때가 기필코 올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7-257
역사창조의 주모자
당당하고 멋진 이야기 잘 하지요? (웃음)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에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저 미친 사람, (웃음) 척 앉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거룩한 데….’라고들 했습니다. 요즈음은 차도 타고 다니고, 이렇게 양복도 입고 나와서 이러고 있지만,그때는 뭐 잠바를 입고 바른발엔 감정 고무신, 왼발엔 흰 고무신을 신고 하나는 한국식 하나는 서양식으로 차리고 앉아 있었으니 그 주제가 참 거룩했지요. 수염은 자랄 때로 자랐고 머리 모양은 될 대로 된 채로 앉아 가지고 말은 근사하게 잘하는구만! 천주를 통일한다. 하나님이 제 옆으로 왔다갔다한다. 뭐 역사가 엎치락뒤치락한다고. (웃음) 그런데도 믿을 사람 있겠어요? 그때 정신들이 얼떨떨하게 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붙어 남은 사람이 더러 있지요. (웃음) 머리가 돌지 않았으면 남아지게 안 되어 있거든요. 지금까지는 그래서 무슨 말을 해고 거짓말 같았는데, 이제는 진짜 그럴 수 있는 때가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선생님의 움직임을 보게 되면 이제는 대해를 걸어갈 수 있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좋은 판국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다리를 고이고 하면 좋을 때가 옵니다. 여러분이 마음놓고 갈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습니까, 안 그렇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생각들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잠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다 했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해봤습니다. 하늘이 명한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나는 하늘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살이하는 길이 망하는 길이냐? 아닙니다. 주인의 아들딸의 자리를 상속받는 길인 것입니다. 상속받는 수속이 그렇게 오래 걸릴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개인을 상속받고, 하늘나라의 가정을 상속받고, 하늘나라의 씨족을 상속받고, 하늘나라의 민족을 상속받아 올라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의 한국 사회에서는 통일교회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이름과 더불어 선생님에 대한 역사가 남겠지요? 통일교회 문아무개의 전기가 남겠어요, 안 남겠어요? 「남습니다」 앞으로 일본의 역사가 없어지고 미국의 역사가 없어진다고 해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역사는 남아질 것입니다. 남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문선생님이라고 썼구만요. 잘 했어요.

그 역사책의 제1페이지에는 `통일교회 문서방은….’ 하고 시작될 것입니다. (웃음) 그 다음에 `부산 영도를 갔는데’ 하면서 유효원이라는, 절뚝절뚝하는 병신 협회장이 나올 거예요. (웃음) 그럴 거 아니예요? 그리고는 36가정이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결혼을 했는데 싸움판이 벌어졌다. 내 아버지 내어 달라고 야단을 했다 (웃음) 하는 것이 다 나올 것입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인물의 권한, 역사적 인물의 가치, 역사적 인물의 위신을 세워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역사를 창조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이요, 역사 창조의 주모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은 수요일 저녁, 주일 저녁에 다 모이라고 한 말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이 모든 것이 다 애기가 똥싼 것 치워 주는 놀음인 것입니다. 어떤 아이에게 명절날 입으라고 비싼 옷을 사 주었는데, 아이가 명절날을 알 게 뭡니까? 좋아라고 매일 입고 뛰어다니다 보니 전부 더럽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명절날 그냥 입힐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빨아서 입혀야지요. 다시 빨아서 입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다시 빨아서 입혀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70년도에는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이 소망하실 수 있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남자들, 큰소리하지 말라구요. 여자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이 여자들, 내가 탕감시키기 위해서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시켜야 되겠습니다. 이런다고 섭섭한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해명해 줄 테니. `선생님, 여자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것아닙니까? 여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요즘엔 남녀 평등사상이 대두되었는데 왜 그래요?’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꼼짝달짝 못 하게 설명해 줄 테니까. 여러분도 선생님이 이러는 내용을 잘 알고 있지요? 「예」 알고 있으니까 실천에 옮겨야지요.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벌받아도 하소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옥의 유황불에 들어가 `선생님! 선생님!’ 할 겁니까? 거기서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이예요? 깨깨 망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일러 주었는데도 안하면 벌을 받아도 싸지요.

27-259
천국 가는 비결
여기에 박봉식 할머니 왔어요? 어디 있어요? 여기 처음 온 사람 없겠지요. 기탄없이 얘기 좀 해봅시다. 통일교회 문선생하고는 다 친구지요? 통일교회 문선생과 모두 가깝지요? 「예」 박봉식 할머니, 미혼남하고 함께 다닌다고 소문나지 않았어요? 사실 영감보다 가깝기야 더 가깝지만, 그렇지요? 할머니라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함께 살자고는 하지 마세요. (일동 웃음) 가깝기는 가까운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하고 신랑 가운데 누구와 더 가깝습니까? 신랑이 가까워요? 신랑이 더 가깝지만 신랑이 없을 때는 아버지 어머니와 제일 가깝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거 영감이 죽었는데 가끔 나타나지요? 통일교회에 들어 온 사람은 다 그런 거예요. 죽은 것이 아니라 영계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다시 만나 살림살이도 하며 함께 사는 것입니다. 꿈 같은 얘기인데 사실입니다. 박공서, 알겠어요? 「예」 알긴 뭘 알아요. 말로만 알지 사실은 모르지 않아. (웃음)

봉식 할머니 영감이 더러 오지요? 「예」 와서 뭘 하라고 해요? 뭐라고 그랬어요? 「사위기대 얘기를 했습니다」 그 영감이 알기는 알았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보니까 걸리게 되어 있거든요. 바쁘고 큰일났거든요. 갈 길을 못 가겠거든요. 그렇잖아요?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천국은 사위기대를 세워 탕감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것 때문에 40평생 고생했지요. 그거 가리기 위해 고생했습니다. 고생한 이유가 딴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위기대 복귀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도 그거 세우기 위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어디서부터 들어갈 수 있느냐?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잃어버린 곳이 어디예요?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렸으니 가정에서부터 복귀해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불륜의 사랑으로 타락했지요? 거기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가인 아벨 셋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아담 해와 대신 부모가 되어 가지고 이 세 아들을 세우지 않고는 사위기대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예수님도 지금까지 낙원에 있다고 하잖아요? 이 사위기대를 찾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못 들어가요. 예수님도 그래서 믿음의 아들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세웠습니다. 그들이 수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세번씩이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했지요. 세 번씩 탕감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베드로가 세 제자 가운데 맏아들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은 것은 한번은 베드로에게, 한번은 요한에게 또 한번은 야고보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형님인 베드로가 죽었으면 두 동생도 따라 죽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그런 베드로가 죽는 것을 제일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그랬지요?

잃어버린 가정이 거듭 내려오면 사망의 세계입니다. 사탄이 세 아들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하늘의 아들은 사탄세계에서 하늘의 부모를 위해서 빼앗아 와야 합니다. 그래서 노아가정을 중심삼고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를 다시 찾으려 한 것입니다. 노아시대에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심판했지요? 여덟 식구가 중요합니다. 세 아들과 자부, 그리면 여덟 식구 심판했지요? 여덟 식구가 중요합니다. 세 아들과 자부, 그리면 여덟 식구 맞지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에도 3가정 있지요? 3가정이 없어 가지고는 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목을 걸고 사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비결이 뭐냐? 사위기대 복귀하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이 여기에 다 걸려 있습니다. 6천년 역사의 소원이 여기에 다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해원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세밀히 얘기해 주면 좋은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사위기대가 절대적이예요, 아니예요,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지 못하면 큰일납니다. 천국에 못들어갑니다. 못 들어가요. 못 들어가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축복받은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천년 만년 탄식할 것입니다. 부모가 책임 못해서 그렇게 만들 것이냐? 그렇게 되면 완전복귀된 후손이 못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영계는 그렇습니다.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7-261
생명세계의 수확의 결실이 되라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 단계 앞서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대신 아들딸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닙니다. 이것을 탕감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3년 노정이 넘어서면 1970년도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을 완결짓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명년 6월까지 이것의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뜻으로 볼 때, 민족의 해원성사와 더불어 새로운 통일교회의 운세를 맞이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영통한 사람들은 `이제 하늘의 때가 다 되었다. 다 되었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를 중심삼고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거든요. 그러나 여러분은 알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이러한 거룩한 때에, 한번밖에 없는 역사적 시기를 놓치지 말고 부디 하늘을 중심삼고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여자들, 어머니들이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430가정을 비롯하여 지금 800여 가정이 있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족보에 기록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수확의 결실을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수확의 결실이지요? 사망세계의 수확의 결실이 아닌 생명세계의 수확의 결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에덴의 주인이 되고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잇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꼭 이루어야 됩니다. 세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는 열 두 사람 가운데서 빼내야 됩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빼 내는 것입니다. 3곱하기 4는 12아닙니까? 그래야 됩니다. 세 사람만 전도하면 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자! 여러분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다는 사람 두 손 들어요.

27-262
기 도
아버지여, 이 세계에 아버지의 원수가 있사옵니까? 용서하고 싶어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그 순간 `저들의 죄를 용납하시옵소서!’ 한 것도 복귀섭리 과정에서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 내용을 제시한 하늘의 사정이 얼마나 딱하였는가도 알게 되었나이다. 모를 때는 아버지를 모실 수 없고, 아버지께서 그렇게 먼 곳에 계신 것 같았으나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이 뼈 중의 뼈, 살 중에 살에 약동하고 계셨사옵니다. 저희들에게 아버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것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생활권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여기에 축복받은 가정들이 있사옵니다. 아버님, 통일교회 자체를 놓고도, 통일교회 문이란 사람을 놓고도 지금까지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수고한 결실을 거두어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그 결실로 거두어져야 할 열매들이 여기에 모인 축복받은 가정들이옵니다. 과연 하늘 가정으로 거두어질 수 있는 결실이 되었는가? 이 열매를 다시 새로운 동산, 새로운 옥토에 심게 될 때 천배 만배 수확할 수 있는 결실체가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모습을 아버님이 고대하시고 찾고 계시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모든 것이 본의대로 참된 결실로 심어진 그곳에는 아버님께서 기필코 백배의 영광을 보상하여 줄 것을 약속하셨사오니, 그곳을 향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내 일신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모든것 다 바쳐야 되겠습니다. 세상이 알아주나 몰라주나 저희들은 그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당신을 내세워 선전하며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도 입을 가졌어도 묵묵히 저희 자체를 감춰가며 지금까지 일해 왔사옵니다.

아버지, 이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도 평면적인 도상이 아니옵니다. 사방으로 문제를 파급시켜 가지고 세계가 주시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 저희 앞에 다가오고 있사오니, 이 시점에서 엄숙히 아버님을 모시고갈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 참다운 가정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지금까지약 800가정들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사옵니다. 이들이 모두 참다운 결실이 되어 가지고 참다운 주인의 입장을 대신하게 될 때, 하늘나라는 기필코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더욱 두려운 것은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들딸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러한 입장에 있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 역사적인 소생 장성 완성의 3시대를 대표해서 사탄을 대해 반기를 들고 변명할 수 있는 사탄세계의 하늘편적 인물, 즉 사탄세계에서 하늘편 아벨을 보호하고 옹호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역사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이요, 천륜의 비밀이라는 것, 또한 알았사옵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이것을 몰랐사옵니다. 그러나 성경 66권이 여기에서 해결되고 여기에서 결실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엄청나고 거룩한 열매를 대할 수 있는, 시대적 축복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총아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거룩한 행운아의 입장에서 탈락하여 원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겠사옵니다. 기필코 승리의 왕자, 승리의 왕녀가 되어 천상세계에서는 물론이요, 이 지상세계에 있어서 천추만대 길이길이 역사의 칭송받는 아들딸,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들고 만세의 주의 주관을 대신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 세계를 가야 할 저희들, 이제 막혀진 가인의 담을 헐고 저희 형제 형제가 손에 손을 잡고 아버지께 경배드릴 수 있는 복귀의 에덴의 이념을 그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그 부모의 이름과 자녀의 이름을 아버지 앞에 등록하여 영원한 축복의 터전을 삼고 결실의 주인, 수확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문제를 앞에 놓고 지금 출발하고자 하는 저희들, 아버지,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어서, 이번 기간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하늘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거룩한 계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