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7 to 27-38: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언젠가는 가야 할 길
1969.11.15 (토), 한국 전본부교회

27-07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인간은 태어나서 장성하면 누구나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아들딸 낳고 살다가 그 아들딸이 성장하면 시집 장가를 보내고, 다음에는 늙어서 죽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보편적인 운명의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길을 잘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천태만상으로 다릅니다.

27-07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
인생길은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태어나서 장성하면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아 길러서 시집 장가 보내고, 늙어서 죽어간다는 점에서는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간단한 내용을 중심삼고 잘 가느냐 못가느냐 하는, 이 한계선을 중심으로 천태만상의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서 잘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 잘사는 한계선이 무엇이냐?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 옛날 원시시대로 말하자면 초막을 짓고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그 시대에 따라서 잘산다 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만 보더라도 오늘날 잘사는 사람은 옛날, 지금으로부터 천 여년 전, 아니 천년까지도 안 되는 몇백 년의 어느 나라 군왕보다도 더 잘사는 사회적인 제도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그 차이는 있을망정 인간이라면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좀더 잘살고 싶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 잘사는 기준은 어떤 것이냐? 인생길을 가는 데 어떤 길이 잘가는 길이냐? 한 여성으로서 가정을 이루어 애기들을 키우며 살다가 가는 사람을 평범한 보통 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 가정을 무대로 해서 살아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평범한 여성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잘 간다’ 할 때는 문제가 다른 것입니다. 보통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원치 않는 보통 이하도 보통과는 다르겠지만, 보통 이상의 다른 모양으로 인생길을 잘 가는 그 기준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이 거기에 개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기준을 넘어서 특별한 권내, 특별하다는 기준을 찾아가려면 특별한 내용이 개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27-08
특별한 길을 가려면
여성으로서 국가적인 기준을 중심삼은 길을 가려고 할 때에는 남자의 몇배 이상의 시련 과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타개하여야 할 관문이 많은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부딪쳐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을 피해서 쉽게 가려고 하는 사람은 가다가 반드시 좌절하기 마련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피해서 쉽게 가려 하지 않고 그것을 참고 책임지고 나가게 될 때에 오히려 그 어려움은 내게 의의를 가져다 주는 것이요, 참다운 가치를 결정지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특별한 길을 가려고 할 때, 그 특별한 내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재료나 요건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가기 어려운 고빗길이며 넘어야 할 장벽이 가로놓여 있고 원치 않는 많은 사연들이 앞을 막아서는 그런 길입니다. 그런데 가로막혔다고 해서 그 길을 돌아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목적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면 누구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천 사람이면 천 사람이 다 그 길을 갈 것입니다. 그런 길은 누구나 갈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만이 가는 길이 아닌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그 길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직행해서 최단거리를 뚫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배의 시련을 극복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실들을 개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타개하고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고는 그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자기 가정의 자녀교육이라든가 경제적인 문제 등을 중심삼고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을 위주로 활동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렇게 보통 남자로서의 가는 길은 쉬운 길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잘 가겠다는 마음을 품고 가는 사람에게는 천태만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에서 한 남자가 최고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삼천만 인구의 절반인 천 오백만의 남자를 대표한 자리에서 그 천 오백만 전체가 싫어하는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 오백 만을 대표할 수 있는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 오백 만을 대표해서 가겠다고 하는 남자는 천 오백만 전부가 가지 못하겠다고 후퇴하는 길을 책임지고 돌파해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남자로서 잘 갔다 할 수있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27-09
참된 출세의 기준
오늘날 많은 남성이 사회활동을 통해서 출세했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출세의 기준이 무엇이냐? 아무리 출세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정과 아들딸을 위해서 출세한 것은 국가적이라든가 삼천만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내용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예컨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면 대통령이 국가를 책임진 수반의 자리에서 그 가는 길이 자신의 가정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는 이 나라 삼천만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아야 됩니다. 자기 가정을 넘어서서 국가적인 기점을 중심삼아서 일하고, 국가적인 기점을 중심삼아서 움직이고, 국가적인 기점을 중심삼아서 투쟁해 나가지 않으면 그는 민족으로부터 지탄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가 기반을 중심삼아 삼천만 민족 모두가 `이렇게 나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기준을 중심해서 나가게 되면, 그는 민족이 신봉할 수 있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 기반이라는 것이 자기의 아들딸을 중심삼은 가정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한 여성이 특별한 길을 가겠다 할 때에도 보편적인 가정환경을 중심삼고 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초월해서 국가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전체적인 내용을 지니고 나가지 않는다 할진대 그는 특별한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과 국가, 두 기점을 중심삼고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려면 국가적인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 범위를 넓혀서 세계적이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30억 인류가 사는 세계이니 그들 모두를 대표해서 특별한 길을 가야 합니다. 어차피 생애를 걸고 가는 길에 있어서, 오늘의 30억 인류가 나오기까지의 수천년의 역사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그 모든 사람들을 총합한 대표자로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하나의 인물이 되겠다 할 때에는, 역사상에 왔다 간 사람들이 갔던 길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고, 희망할 수 있었고, 갈 수 있었던 길이라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제를 중심삼아 내가 참되이 가야 되겠다, 참되고 특별한 길을 가야 되겠다, 그 누구도 못 갔던 모범되는 길을 가야 되겠다 할 때에는, 지금까지의 역사상에 없었던, 지금의 30억 인류가 바라보는 그 이상의 자리에서 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는 데에는 역사상에 없었던 강한 성벽이 앞을 가로막을 것이요, 지금까지 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어려움들이 앞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 자리에서 후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10년 동안 쉬지 않고 달음질쳐 왔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을 성사하지 못할 때는 비판은 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칭찬받을 수 있는 기준은 남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가는 데에는 어디를 기점으로 해서 가야 되느냐? 대한민국 백성이 대한민국의 민족사상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서 나간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망언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간다고 할 때는 세계를 무대로 해서 가야 합니다. 세계를 기반으로 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세계를 위해서도 가고,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가고, 자기 가정을 위해서도 가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 개의 기반이 동시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7-11
우리가 필연코 가야 할 길
큰 것 가운데에는 작은 것이 포함되어지기 마련입니다. 즉, 개인, 가정, 민족, 국가는 세계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인의 중심은 뭐냐? 가정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국가요, 국가의 중심은 곧 세계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중심삼고 갈 수 없는데도 인간은 한꺼번에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한번만 먹고 죽게 되어 있다면, 개인이 보는 데서 먹고 죽는 것보다는 세계의 사람들이 보는 데서 먹고 죽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이라는 것은 한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한번 갔다가 싫다고 해서 다시 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는 필연코 가야 할 인생길이 있습니다.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중심삼고 들락날락하며 살다가 죽고 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역사상에 왔다가 낙엽처럼 떨어져 갔던 존재들과 마찬가지의 인생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정을 중심삼고 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중심은 가정이 아닙니다. 만일 통일교회가 가정만을 중심삼는다면 하나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향과는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통일교회는 세계에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잘났고 아무리 국가를 위해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세계의 중심적인 기준과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는 국가를 위하는 것도 낙엽처럼 떨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고로 위대한 사람이라든가 성현이라든가 또는 대통령 등의 역사적인 인물은 어떤 사람이냐?천운과 더불어 세계의 중심과 일치되는 자리에서 일생을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민족을 넘어서서, 수천년 후의 후손들이 추모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세계를 무대로 세계 만민을 위해서 살아간 사람들이 성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을 나라가 반대해도, 민족이 반대해도, 가정이 반대해도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의 주권자로부터 그 국민 전체가 반대를 하더라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서 가게 되면 결국은 누가 남아지느냐? 이런 사람이 출발하고 이런 사람이 들락날락하던 그 기반은 무엇에 중심한 것이냐? 그것은 세계를 중심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대에 따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는 다 사라지더라도 그런 관점에서 이상을 추구해 나오던 사람들은 반드시 역사를 움직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움직여서 무엇을 할 것이냐?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의 기점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젊은 청년들입니다. 앞으로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서 아들딸 낳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중심삼고 그렇게 해야 하느냐? 삼천만의 민족 중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가정을 중심삼고 새출발을 하겠느냐, 아니면 자기 가정을 이끌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새출발하겠느냐, 또는 국가를 넘어서 세계가 출발하는 기점을 기반으로 해서 출발하겠느냐 할 때에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입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싶어요? 대답해 보세요. 「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말은 쉽지요. 문제는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 그렇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못 되느냐? 출발 기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기점을 닦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내에서 자기가 세계를 위해서 가겠다고 아무리 큰소리친다고 해서 갈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새로운 주의와 사상,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념은 `이러한 것이다’ 하는 팻말을 내걸고 주장했을 때 선한 양심을 가진 세계인들이 그 모든 내용을 보고 `그렇소’ 하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반대하는 나라가 있더라도 박차고 나가야 됩니다. 목을 자른다 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나가는 길 앞에 환경상의 장애가 있더라도 그 장애 앞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밟고 넘어가겠다는 신념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비록 몸은 정복당하게 될지 몰라도 그 신념과 사상은 정복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정복했던 사람이 정복당했던 사람에게 반대로 정복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역사 하십니다. 결국은 어려운 자리에서 출발했던 그것은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젊은 우리들은 어차피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이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27-13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
그러면 가는 데는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떠한 것에 고착된 관념을 가지고 살겠느냐는 말입니다. 김아무개면 김아무개의 아들딸로 태어났으니 그 김아무개의 아들딸의 자리를 중심삼고 서러워하거나 즐거워하면서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서럽든 즐겁든 나라를 붙들고, 국민을 붙들고 같이 서러워하고 즐거워할 것이냐? 더 나아가 죽더라도 세계를 붙들고 죽고, 살더라도 세계를 붙들고 살겠느냐?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천태만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최고의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은 종적인 인물입니다. 종적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종적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세워 가야 할 기준이 바로 이것입니다. 종적이라는 것은 한곳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시집을 가는 데에도 나는 여자로 태어났으니 한 남자를 찾아간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시집을 가는 것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은 한 남자와 기쁨을 같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정을 위해서, 또는 한 여인의 행복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여인들을 대표해서,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시집을 가겠다고 한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 나라를 보면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영친왕의 부인이 된 마사꼬(方子)여사가 있는데, 그 여자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왔겠습니까? 한국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왔어요? 나라 때문에 왔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에 남는 것입니다. 한일합방 이후 배후의 어떤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정책적인 결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일본의 전 여성을 대표한 하나의 제물로서 그 나라의 역사에 남아질 것입니다.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러면 시집 장가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인데, 왜 그것만 역사에 남아지느냐?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온 천지간에 있어서 누가 제일 위대한 자리에서 시집 장가가려고 하였느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장가가기 위한 신랑으로서 신부를 맞으러 오실 때에 어떤 입장에서 오셨느냐? 세계를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세계 때문에 장가가기 위해 왔던 대표적 인물이 누구냐 할 때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여자들 중에는 나라를 위해서 시집 간 여자들은 있었지만 남자가 나라를 위해서 장가 간 적은 없었습니다. 남자가 장가를 가면 완전히 빼앗기게 되니까요. 그렇지요? (웃음)

그렇지만 역사상에서 자그마치 세계를 걸고 장가를 간다 했던 대표자가 있었으니, 그가 누구라구요? 예수님,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가가는 내용에 있어서 그 자체가 별다르냐 하면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취하는 것도 같고,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고 사는 것도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다른 점이 없이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해서 시집 장가를 가겠다는 것, 이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 간 것은 국가를 위해 간 것 이상입니다. 세계를 위해 장가를 가서 세계적인 가정을 이루는 날에는 그 가정은 국가적인 가정 이상의 자리에 서는 것이요, 혹은 민족적인 가정을 대표한 그 이상의 자리에 서는 것이요, 모든 가정을 대표한 가정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27-15
참부모의 생활기점
그러면 가정 중에 최고로 승리한 가정을 소망하며 최고로 승리한 가정의 주인으로서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입니다. 장가를 가려면 멋지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발견을 잘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이름을 짓는다면 무슨 이름으로 지을 것이냐? 그분을 부를 수 있는 제일 적절한 이름이 무엇일 것이냐? 그 이름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참부모’라고 붙였습니다. 어때요? 잘 붙였어요? 이 말은 쉽고도 간단한 말이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위대한 말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생활기점은 어디냐? 가정을 중심삼은 곳이 아닙니다. 들락날락하는 기점은 천지를 중심삼은 곳입니다. 그분이 가는 곳은 천지가 아닌 곳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는 일은 역사적인 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의 모든 행적은 하나에서부터 천만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어떤 것보다 존귀한 가치로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분이 쓰던 종이조각 하나라도 역사적인 유산으로 남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은 종자가 달라서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일대에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하여 나가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기 1대에 못 가게 되면 2대, 3대, 10대를 거쳐서라도 가겠다 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천운은 사람을 통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지남철 옆에 크고 강한 쇳덩어리가 있으면 그 지남철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끌려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를 두고 볼 때, 대관절 선한 선조가 어떤 선조냐? 자기 자식들만 알고, 자기 마누라만 알고, 자기 남편만 알고, 자기 부모들만 알고 살다 갔던 선조가 선한 선조예요? 아닙니다. 선한 선조는 자기의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그 동네를 위하고, 그 동네를 중심삼고 면을 위하고, 그 면을 중심삼고 군을 위하고, 그 군을 중심삼고 민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말합니다. 어디 여기에 있는 아가씨들 대답해 봐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데 요즘 아가씨들은 사랑한다고 하며 장래를 약속했으면서 나를 버리고 간다고 울고 불고 별의별 야단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여자가 데데하게 `아이구 당신이 아니면 나는 죽소’ 하면서 매달리는데, 그까짓 것들 죽을 테면 죽지, 그런 사람들이 죽어 나가 자빠지더라도 나라는 망하지 않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자신이 죽으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나라가 망하고, 여러분의 가정이 망하면 삼천만 민족의 가정이 망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삼천만 민족이 다 죽더라도 여러분의 가정만은 남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삼천만 민족이 겪지 않았던 어려움을 당해서 승리의 실적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계적 기반을 중심삼고 출입할 수 있는 기반을 닦으려고 했기에 십자가의 운명이 눈앞에 다가왔어도 밤을 새워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 뜻은 나를 중심한 혈육과 가까웁고 이스라엘 민족과 가까우나 당신의 높고 넓으신 그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망하여야 할 이방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희생시키려는 당신의 마음이 내 뜻과는 다르지만, 내 뜻은 전부 다 뭉개 버리고 당신의 뜻에 순종하여 더 넓은 세계를 구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죽었기 때문에, 세계의 역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하고 남아지게 되었고, 또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 있느냐? 여러분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있는 동시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있다면,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그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 길을 가는 데는 남자도 죽어 자빠지고 여자도 죽어 자빠지는 일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한 나라가 살고 한 나라가 번성하는 그 배후에는 여러분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비참사가 꼬리를 연하여 물고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이북 땅에서, 혹은 일선이나 해외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나라의 운명은 누구로 말미암아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지탱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고 극복하여 천적인 기반을 닦으려는 그들의 공적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갈 길은 남아지는 것이요, 이 나라의 행복의 터전이 닦아지고 운명의 길이 개척되는 것입니다.

27-17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여러분, 예수님이 가려던 길과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려는 길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길이예요? 여러분들 한번 얘기해 봐요. 어느 것이 더 커요? 「통일교회요」 정말 커요? 「예」 뭐가 커요? 머리가 커요, 몸이 커요, 밥을 더 많이 먹어요?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크다는 것이냐? 생각이 크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크고 결심이 크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삼키려면 세계의 생각을 능가해야 됩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결심한 이상의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단결하게 되면 그 단결된 힘을 세계의 30억 인류가 단결한 것과 비교해 볼 때, 비록 소수의 무리라 할지라도 그 단결된 힘은 천년 만년이 가도 해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힘은 한 백년만 가면 다 해체되고 말 것입니다. 소수이지만 천년 만년이 가도 해체되지 않는 힘으로 단결하게 되면 그 힘은 세계를 삼켜 버리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 무슨 주의냐? 「천주주의입니다」 그러면 천주라는 말에서 주(宙)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집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집을 기반으로 해서 출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아들딸이 있고, 형제가 있고, 친척이 있는 그런 기반을 중심삼고 출입해야 됩니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가야 할 인생의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의 기반이 자기를 중심한 것이냐, 민족을 중심한 것이냐, 국가를 중심한 것이냐, 세계를 중심한 것이냐, 천주를 중심한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주의와 천주주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큽니까? 「천주주의입니다」 말들은 좋구만. 말은 좋아요. 지금 여러분은 천주주의에 입문할 수 있는 수속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구만. 그래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흥할 족속이 될 것입니다. 흥하는 데는 얼마만큼 흥할 것이냐? 대부분의 처녀들은 내가 서울에 올라올 때는 한폭 치마를 입었으나 성공해서 돌아갈 때는 열두폭 치마라도 두르고 가겠다고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의 한 처녀가 서울 간다 할 때 서울 가서 뭐 할 것이냐고 물으면 좋은 신랑감이 있으면 시집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 시집가는 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세계를 위해서 들락날락할 수 있는 남편을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그런 남편을 만났다 할 때는 열두폭 치마가 문제가 아니라 치마폭이 세계를 향해 부채질할 정도가 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번은 서울에 올라와서 그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엉뚱한 생각만 한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꿈을 꾸고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아무리 지금은 조밥을 먹고 보리밥을 먹고 살지라도 언제까지나 조밥 보리밥만 먹고 살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그 소원을 성취할 것이냐? 자기 나름대로의 결심을 해야 됩니다. 내가 어떤 남자를 신랑으로 삼아보겠다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을 세우고 길거리에서 지켜 서 있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내 신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사람의 눈에 들어야 됩니다. 눈에 들려면 그 사람의 눈보다 더 높아야 됩니다. 그런데 남자들도 자기보다 잘난 색시를 얻고 싶어합니다. 남자들 욕심이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불구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어떤 사람에게 물어봐도 그것은 백 퍼센트 같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어떤 남자든지 자신보다 잘난 여자를 얻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여자들, 자기보다 잘난 남자를 얻고 싶어요, 못난 남자를 얻고 싶어요? 어디 한번 솔직하게 얘기해 봐요. 여자들도 대답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제일 잘난 남자를 얻고 싶다고 할 거예요. 여자들 대답을 좀 해봐요. 그래, 좋은 남자를 얻고 싶어요. 못난 남자를 얻고 싶어요? 「…」 이렇다니까. 이게 틀렸다는 거예요. 이러니까 여자보다 남자가 조금 낫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마 마음속으로는 대답을 열 번도 더 했을 것이지만 대답하는 소리를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하거든. (웃음)

그렇지만 두고 보세요. 앞으로는 일등가는 절세의 미남자를 앞에 두고 `누가 이 사람한테 시집갈래?’ 했을 때, 결심을 단단히 하고 `내가 가겠다’고 먼저 손드는 사람이 그와 결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니 연습삼아 대답을 해보는 것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여러분 가끔 이런 때 있지요? 재수가 좋을지 나쁠지 동전 같은 것을 던져서 점 쳐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기분 좋게 가고 뒷면이 나오게 되면 기분이 나빠서 가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기분이 잡치거든요. 그러니 동전을 던질 때는 `앞면이 나와라, 앞면이 나와라, 제발 뒷면이 나오지 말고 앞면이 나와라’ 하고 마음으로 빌것입니다. 빌어요, 안 빌어요? 만일 여기에 자신의 생명이 죽고 사는 심각한 문제가 달려 있다면 눈이 똥그래질까요, 안 똥그래질까요? 손이 부들부들 떨릴까요, 안 떨릴까요?

여기서 일이 어떻게 벌어지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20대에 있기 때문에 시집을 생각지도 않고 있지만 한 50대가 넘은 노처녀가 돼 봐요. 영감한테라도 시집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어쨌든 다 좋은 남자 얻고자 하는 것이 틀림없지요? 「예」

그러면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마음대로 돼요, 안 돼요?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대감님 아들을 사모하면서, `저높은 담 너머에 그 아들이 아침에는 세수할 것이고, 밤에는 잠을 자겠지, 지금은 밥을 먹을 것이다. 또, 지금은 무엇을 할 것이다’ 하면서 하루종일 그를 생각하며 산다고 해서 그가 자기 신랑 될 수 있어요? 하루종일 마음으로 같이 산다 해서 자기 신랑 될 수 있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를 신랑으로 맞으려면 먼저 그 사람의 눈에 들어야 됩니다. 그의 눈에 들려면 그 사람이 가는 길에 동무가 되어 줄 수 있고, 그 사람이 잘못되어 갈 때 자극을 주어서 바로잡아 줄 수도 있고, 좋은 길로 이끌어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여자라 할 때는 가만히 집에 있더라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27-20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예수님은 자신을 내놓고 살지 못했습니다. 숨어서 살았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때도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생아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 쓸쓸하게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가지고도 잡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도망까지 다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한 3년을 지낸 후에는 갈릴리 해변에서 돌아다녔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으면서도 얼굴을 내놓고 다니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무엇인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 소문이 얼마만큼 났느냐? 세계적으로 났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신랑되신 주님으로 오셨다는 소문이 얼마만큼 났습니까? 기독교를 통해서 전세계적으로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전부 다 자기 신랑 삼겠다고 지금까지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 삼었어요, 못삼았어요? 「못 삼았습니다」

여러분, `내가 그분의 신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 한번 생각해 봤어요? 얼마나 좋겠어요? 배고플 때 불고기 백반을 실컷 먹고 난 만큼이나 좋겠어요? 시골 사는 사람들이 중국 요리집에 가 가지고 실컷 먹고 난 만큼이나 좋겠어요? 뭐 그런 불고기, 중국요리 같은 것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누가 찾아가야 합니까? 신랑이 찾아와야 합니까, 신부가 찾아가야 합니까? 신부가 찾아가야 합니다. 신랑이 못난 사나이어서 그래요? 잘난 사나이라서 그래요? 잘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잘났다는 소문을 듣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기 위해서 너도나도 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정성을 들이면서 만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위대한 분이기 때문에 시시해 가지고는 만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천주주의라는 엄청난 주의를 주장하는 하늘의 왕자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나는 대한민국의 여자이니 그분이 결혼식장에 올 때는 한복을 입지 않으면 안 됩니다’하는 심보를 가지고 기도하면 그 신랑이 나타나겠습니까? 그 신랑은 세계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 신랑을 맞을 수 있는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그 신랑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신부 될 여자가 예수님에게 `당신은 얼마만큼 나를 사랑해요, 나를 사랑하려면 이렇게 사랑해야지, 왜 그렇게 해요? 당신이 세계에 이름난 신랑이요? 또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해야지 그게 뭐요?’ 이렇게 말하게 된다면 신랑이 어떻겠어요?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신랑이 그럴 사람 신부로 맞고 싶겠어요? (웃음) 너무 웃지 말아요. 선생님이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밤 늦게까지 얘기할 때 여러분이 졸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뻣뻣한 얼굴에 웃음이라도 지어 주어야 말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 여자들은 대부분 무표정하고 대나무처럼 딱딱해서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볼 것이 없다는 거예요. 여자는 하루에 적어도 3시간 이상은 웃어야 됩니다. 시집가기 전에는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궁둥이 춤이라도 추면서 웃을 수 있어야 다 갖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을 핑계 삼아서 연습은 하지 말아요? 부모들이 그것을 보게 되면 미쳤다고 할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그런 신부가 있다 할 때 그가 예수님에게, `당신 뭐예요? 십자가의 길 뭐예요? 사나이답지 못하게 뭐 할 수만 있다면…. 내 뜻대로 말고 당신 뜻대로…. 시시하게 그게 뭐예요?’ 이렇게 말한다면 신랑 되시는, 소위 세계적인 낭군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남자들, 어떻겠어요? 「나쁩니다」 그러나 기분 나쁘고 화가 나는 반면에 `야! 정말 멋지다’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2천년 전에 네가 나의 제자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할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네가 여자지만 그 당시 너 같은 제자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가 제자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더 나아가서 내신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합니다」 그런데 뭐가 기분이 나빠요? (웃음) 왜 기분이 나쁘냐는 말이예요.

그런 여자가 있다면 하나님이 보시고 하늘의 왕자로서 수천년 동안을 공을 세운 기독교의 주인 되시는 그분 앞에 불평해서는 안 된다고 하실 수 있겠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당신이 한 일이 뭐냐고 항의할 수 있는 여자가 나와서, 예수님에게 `당신이 신랑이요? 사내로 태어나서 30세가 지나도록 장가도 못 가고 뭐 했어요?’라고 반박을 하면 예수님은 어떻겠어요? 겉으로는 기분이 나쁘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좋다고 춤을 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럴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때요? 춤추겠어요, 기분 나빠하겠어요? 겉으로는 기분이 나쁘겠지만 속으로는 희망에 벅차 오를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강제로 그렇게 말하게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예」 그래도 남자들은 가망성이 있긴 있군요. 생각해 보세요.

27-22
우리의 출발 기점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은 예수보다 못해선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수준이 높은 곳이니 예수보다도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예수님에게 반말도 합니다. `시시하게 졸장부들에게 죽긴 왜 죽어?’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예수님이 기분 나쁘겠어요? 죽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고 하게 되면, 예수님은 `나는 지금까지 그런 방법이 있는지 몰랐는데….’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했으면 안 죽고 뜻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그때서야 `아 그렇구나’ 하고 오히려 감사해 할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안 죽게 되어 있었거든요. 이런 것을 예수님에게 가르쳐 주면 예수님이 기분 나빠하면서, `네 녀석이 내 자리를 빼앗아 갔구나, 이 원수야’ 하고 칼부림을 하겠어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입니다. 기분만 나쁘겠어요. 가슴이 철렁할 거예요. 철렁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 내려앉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말이 더 실제적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무슨 주의라고요? 천주주의입니다. 천주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니까 하나님이 들어가겠어요, 못 들어가겠어요?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들어가면 이 세계가 들어가겠어요, 못들어가겠어요? 「들어갑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들어가겠어요, 못들어가겠어요? 백명도 들어가고 남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宙)는 집입니다. 이런 천주주의를 중심삼은 것이 우리의 출발기점입니다. 그러므로 밥 한 술을 먹고 나가는 데도 세계를 위하여 나가는 것이요, 보는 것도 그 세계를 위하여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거슬리면 모두가 부정입니다. 내 손이 아직까지 봄철을 맞이하지 못해서 그렇지, 봄철을 맞이하는 날에는 그런 것들은 전부 다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목을 자른다는 것은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그들과는 관이 달라야 합니다. 보는 눈이 다르고, 듣는 귀가 다르고, 냄새 맡는 것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한 세상에 같이 살지만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용사입니까? 통일의 용사입니다. 통일이란 기분 좋은 것이예요, 나쁜 것이예요? 「좋습니다」 정말 좋아요? 통일이란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납니다. 통일이라는 그 이름때문에 주름살이 더 생겼어요. 대한민국 사람들은 통일을 좋아해요? 남북한 통일은 좋아하지만 통일교회의 통일은 누가 좋아하겠나? 여기 와 있는 여러분이나 좋아하지. 여기 있는 여러분도 진짜 좋아하는지는 두고 봐야 알지 뭐. 체로 쳐 봐야 아는 거예요. 체로 치면 찌꺼기는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찌꺼기는 다 있는 거예요. 다이아몬드에도 찌꺼기가 있고 황금에도 찌꺼기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 가운데에도 찌꺼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에는 찌꺼기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통일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있다고 대답한 그 사람이 찌꺼기일지도 모르는 거라구요. (웃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대답없이 가만히 있는 사람은 중간이라도 간다는 것입니다.

27-24
목적지의 선정 문제
아까도 말했지만, 여러분은 가야 할 길을 가야 됩니다. 가는 데는 어디를 기점으로 할 것이냐?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냐, 졸장부가 될 것이냐? 이것은 여러분이 선택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어디를 기원으로 해서 출발하고 그 생명의 종착점을 어디로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을 차지하느냐, 지옥을 차지하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어디를 차지하든 둘 다 용자는 용자입니다. 지옥을 차지하는 사람도 사탄세계에서는 용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차지하는 사람은 하늘세계의 용자입니다. 그러나 사탄세계의 용자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하늘세계의 용자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세계의 용자가 되려면 아까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비례되는 만큼의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극복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앞에는 꼬불꼬불한 길도 있고 매끈매끈한 길도 있을 것이며 평평한 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꼬불꼬불한 길을 갈래요, 평평한 길을 갈래요? 꼬불꼬불한 길도 평평한 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다시 말해서 좋은 길과 곧은 길이 있는데 여러분은 어떤 길이 좋습니까? 「곧은 길입니다」 곧은 길을 가려면 앞에 산이 있으면 그 산을 뚫고 나가야 되지만 좋은 길은 산을 돌아서 편안히 가는 길입니다. 곧은 길을 가려면 산을 뚫고 나가야 되는데, 그러면 그 길 자체가 스스로 뚫고 나가게 할 수 있어요?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길을 뚫을 만한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그래야 곧은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가는 길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입니다. 평평한 길도 있을 것이요, 좋은 길도 있을 것이요, 곧은 길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가 갈 길은 평평한 길도 아니요, 좋은 길도 아닙니다. 곧은 길입니다. 곧은 길.

그러면 그 길이 어디냐? 문제는 그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 길은 삼천만이 전부 다 해방받을 수 있고 삼천만 민중의 소원이 모두 성취되는 길이어야 합니다. 즉, 남북통일을 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제일의 길입니다. 경제부흥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전부 다 그 다음의 길입니다. 제일 곧은 길은 남북을 통일하는 것이니 그런 주장을 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제일 곧은 길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남북통일을 하려면 삼팔선을 넘어가야 되겠지요? 그들한테 넘어오라고 하면 좋지 않습니다. 그들이 넘어오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도 그들이 넘어올까 봐 걱정하고 있지요? 그러니 우리가 넘어가야 됩니다. 넘어가는 데는 우리가 행차하니 나와서 환영을 하라고 나팔을 불면서 깃발을 들고 갈 수 있어요? 맨 처음의 길잡이는 결사적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열 사람이 백리를 갔다가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면 안되는 거예요. 처음에 그들만 넘어가게 되면 뒷사람들은 십리길도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는 데에는 십리길이라도 그 길을 뚫고 갈 것이냐, 백리길로 돌아서 갈 것이냐? 여러분은 십리길로 갈 수 있는데 백리길로 돌아가겠어요? 십리길을 통해서 가면 돌아서 백리길을 가는 것보다 시간이 절반 밖에 안 걸린다 할 때는 그 십리길로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것입니다. 십리길로 가려면 옆걸음질을 쳐서 가야 된다고 해도, 또는 뒷걸음질을 쳐서 가야 된다고 해도 모두 그 길을 갈 것입니다. 혹은 돈을 내야만 갈 수 있다고 하면 돈을 내고서라도 그 길로 간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길을 통하여 가야 합니다. 장님도 길을 가는 데에는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지팡이로 더듬어서라도 그 길을 택할 것입니다. 장님도 갈 수 있는 쉬운 길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길로 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명부를 기록해 놓고 가라면 가겠어요, 안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그게 바로 통일입니다. 옛날 사람들도 그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사람도 그 길을 가려 하고 수천만대 후손들도 그 길을 가려고 할 것입니다. 이 길이 조금 불편하지만 지름길이다 할 때는 늙은 영감도 물론이고, 싱싱한 젊은이도 물론이고, 어린 애기들도 애기 어머니들도 가야 합니다. 결국 남녀노소가 전부 다 그 길을 가니, 그 길을 중심삼고 만민은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27-26
직행길을 가라
그러면 우리 인간이 바라던 본연의 소원을 이루려고 지금까지 나온 것이 얼마나 걸렸느냐? 자그마치 6천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한 6년에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갑니다」 6백년 걸린다면 가겠어요? 기분이 좀 나쁘지요? (웃음) 6천년이 걸린다면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6천년 걸려서도 못 갔는데 인간이 어떻게 가겠느냐고 하면서 다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을 가는데 6백년이 걸린다면 마음을 먹고 한번 가 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10대 이상은 걸려야 할 텐데, 여러분은 6백년이 걸려도 가자고 하면 가겠어요? 가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이 끄떡끄떡하는 녀석들, 말만 그렇게 하고 너나 나나 다 안간다구. (웃음)

그러면 60년이 걸린다면 가겠어요? 60년이 걸린다면 장가도 못 가볼텐데, 이 도깨비 같은 남자들이 갈 것 같아요? 잠자코 갈 것 같아?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자기 자신이 잘못된 판인지 잘된 판인지 생각해 봐요. 어디, 박공서! 한번 대답해 봐? 어떨 것 같아. 자신 없지? 「가야겠지요」 당연히 가야 되지. 그런데 가겠느냐고 묻는데 가야 되겠지요가 뭔가? 안 가겠다면 끌고라도 가야지.그런데 억지로 끌고 간다면 가나마나지요. 「어렵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쉽다면 물어볼 게 뭐가 있어요.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 닮은 사람이 있습니까? 영적으로만 사촌이지요? 그러면 언제 실제로 하나님의 사촌이 되겠어요? 닮기 위한 그 길을 천년, 만년이 되어도 못 닦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죽을 때까지 끝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안 되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고 늘어져야죠」 그래 그래, 대답이 아주 멋지구만. 마치 국민학교도 안 다니고 중학교로 그냥 건너뛴 격이로구만. 그런데 그 길을 가는 데 6개월이 걸린다면 자신 있어요? 생각해 봐요 6개월은 자신 있어요? 그 6개월 기간이면 갈 수 있다는 사람은 몇 푼짜리나 될까? 값으로 친다면 몇푼짜리나 되겠느냐 말입니다.

뜻을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엄청난 값어치를 기준삼고 볼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마도 6개월이라 해도 못 갈 것입니다. 6개월 동안 변함없이 순수하고 철석같은 마음으로 사기충천해서, 하늘에 해가 안보이면 안 보였지 내 마음에 구름이 낄 날은 없다고 자신하면서 갈 수 있겠어요? 6개월은 커녕 엿새도 자신있게 못 갈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분들을 믿어 주어야 하는 하나님이 불쌍해요, 안 불쌍해요? 하나님이 이런 여러분을 믿고 엄청난 일을 해야 되는 주체적인 입장인 것을 생각하면 불쌍해요, 안 불쌍해요? 「불쌍합니다」 형편없이 불쌍합니다. 형편없는 사람들을 대하니까 형편없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주주의라는 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길에는 역사적인 모든 사건들을 일시에 규합해서 우리들을 들이박으려는 사건들이 몇만 번도 몇억만 번도 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뚫고 직행해 나가서 이 자리에 남아질 것이냐 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됩니다. 복귀역사가 이렇게 분한 놀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천추만대에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그 모든 문제들을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월이 변하나 끊임없이 내 청춘이 다 가고 검은 머리가 희어져서 백발이 되더라도 내가는 길에 있어서 임 향한 일편단심, 그 마음만은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직행해 나가야 합니다. 설사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간다 해도 끝까지 갈지 말지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비어 있지요? 선생님이 6시부터 8시까지 말씀해 주실 것이라고 했다면서요? 그것도 사전에 인사도 안 하고 연락도 없이 그냥 강제적으로 저녁때 얘기해 주실 거라고 말했다드만…. 그래서 선생님이 오늘 할 수 없이 땜장이 선생님이 되었어요. 여러분, 땜장이 알지요? 구멍이 뚫어진 물건을 임시로 쓰기 위해 그 구멍만 살짝 메꾸는 사람 말예요. 그래 가지고 한 번 쓰고 나서는 집어던져 버리는…. 선생님이 지금 그런 땜장이 선생님이 되었다는 거예요. 세상에 그렇게 하는 법이 있어요? 세상엔 그런 법이 없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런 말 한다고 여러분들 기분 나쁘게 생각해도 할 수 없어요.

어쨌든 여러분은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가는 데에는 직행할래요, 돌아 갈래요? 「직행하겠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누구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런 길은 자면서도 갈 수 있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길입니다. 하지만 직행하는 길은 고빗길입니다. 직행하는 길은 기다려 줄 시간이 없습니다. 뒤에서 다른 사람들이 길을 따라오기 때문에 앞에서 누가 자빠져 죽더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길가에 치워 놓고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지체해서는 안 되는 길입니다. 그러면 그 길을 가는 데 무슨 주의에 의해서 갈 것이냐?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라는 말은 하기 쉽지만 생각해 보면 엄청난 내용이 깃든 말입니다.

27-28
창조의 출발은 기쁨으로부터
이제 여러분에게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표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발원은 어디서부터 출발되었느냐? 하나님의 기쁘신 마음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창조의 출발은 기쁨으로부터 출발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발원지가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디서 생기느냐? 목적의 성취라든가 소원성취로 인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 가지고는 기쁨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원을 두고 자극 받을 수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빛날 수 있고, 영원히 품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일 것이냐? 물질도, 사람도 아닌 사랑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한 세계이기 때문에, 기쁨을 목적으로 한 그 결과는 반드시 사랑으로 종결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와 창조의 발원은 사랑의 목적을 이루어서 펼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본마음의 바탕, 이것이 바로 심정입니다.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가치를 논하려면 이 사랑을 붙들고 논해야 됩니다.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 여건이 이루어진 가운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목적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인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이 보이는 인간의 심정에서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심정을 지닌 인간이 횡적으로 뻗어 나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라고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에게 생육하고 번식하라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천주주의는 번식해서 만물을 주관하는 그 바탕 위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여러분들은 그 내용을 중심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27-29
천주주의와 접붙여야 할 나
그런 자리에서 태어나서 자고, 먹고, 말하고, 보고, 듣고, 웃고, 느끼면서 장성한 후 시집 장가가서 아들딸 낳고, 그 아들딸을 교육시켜서 그들을 다시 시집 장가를 보내고, 그런 가운데서 살다가 그런 가운데서 죽어가야 합니다. 그 죽음은 다릅니다. 태어난 자리와 출발의 자리도, 죽음의 자리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태어난 자리와 죽음의 자리가 타락한 인간과 같으면 지옥 가지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본래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는 지옥과 상관없는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지옥과 상관이 있는 조건을 가지고는 천국에 못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정에서 출발했으니 하나님의 심정의 자리에 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탄의 참소조건을 남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에서 태어났으니 그 심정에서 살다가 죽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딸도, 하늘나라의 백성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껍데기를 전부 다 벗겨 버리고 마음의 보따리를 풀어 놓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천 가지 만 가지의 모든 것을 낱낱이 한번 보십시오. 전시해 놓고 보라는 거예요. 거룩한 것 같던 여러분의 마음이 해괴망측하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얼룩덜룩하다는 거예요. 얼룩덜룩한 것은 그래도 괜찮지요, 울긋불긋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보들을 가지고 살면서도 우리 아빠 엄마 형제를 사랑한다고…. 수작들은 잘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무엇을 기반으로 해서 살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가정을 기반으로 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나고, 거기에서 살고, 기뻐하는 것도 거기에서 기뻐하고, 울더라도 거기에서 울고, 죽더라도 거기에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심정이라는 것은 근본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심정을 중심삼은 그런 집이 있다면 하나님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집에 안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전부 다 그 집에 들어와 깃들어야 됩니다. 천주라는 그 집은 온 우주를 전부 다 품는 집입니다. 그것이 천주주의입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딸과 온 세계가 다 들어갈 수 있는 그 집, 결국은 한 집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언제 그렇게 될래요? 언제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가능성이 언제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영원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여러분을 접붙여 줄 수 있는 주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자체로서는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접붙이는 주인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돌감람나무는 잘라 버리고 거기에 참감람나무의 순을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것을 접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의 여러분들의 모습을 몽땅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되요, 안 그래야 되요? 「그래야 됩니다」 잘라 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안 잘라 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르지 않겠다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잘라 주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잘라 주어야 할 그 사람을 천리길을 쫓아가서라도 잘라 주어야 합니다. 쫓아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는 선생님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다 잊어버려도 여러분은 꽁무니에 와서 달라붙어야 됩니다. 밤에 쫓아내면 아침에 와서 달라붙어야 되고 아침에 쫓아내면 저녁에 와서 달라붙어야 됩니다. 선생님이 못살게 굴더라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못살게 굴어 봤어요? 지금까지 좋게 대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왜냐? 조금 더 길러야 접붙이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커 가지고 접붙이기에 충분하다 싶을 때 잘라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를 잘라야 합니까? 밑창을 잘라야 돼요. 꼭대기를 잘라야 돼요. 꼭대기를 자른다면 목을 잘라야 되겠구만. (웃음)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목이 잘리면 대신 새로운 목을 접붙이면 되는 것입니다.

접을 붙여서 오관의 모든 감각이 동화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본래 인간은 하나님이 기쁘시고자 하는 심정에서 그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심정을 터로 해서 태어나서 심정 속에서 자라다가 심정적인 가정을 이루면 그것이 횡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래 인간은 심정에서 살다가 심정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노래한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위대한 발견이라는 것입니다.

27-31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종착점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은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부활의 역사가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 봐야만 이제껏 없는 줄 알았던 아빠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엉엉 우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다는 거예요. 갓 태어났을 적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줌도 싸고 똥도 싸고 형편없지만 조금 자라게 되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애기들도 태어나 가지고 한 일년쯤 되니까 `아빠 나 곱지’ 하면서 뽀뽀해 달라고 그럽디다. 또 음식을 먹을 때도 `다른 사람이 떠주는 것은 싫어, 싫어. 엄마나 아빠가 떠 줘야지’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이 문선생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좋아할 것 같아서 이런 말 하는 거예요. 어때요? 혼내 줘도 기분 좋아요? 「예」 자기 아버지 어머니는 곱추라 해도 절름발이라 해도 좋은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할 수 있는 부모를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어 놓고 좋아할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를 가져 봤어요? 「세상에서는 못 가져 봤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가져 봤어요? 「예」 죽도록 좋아할수 있는 부모를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에서 태어나 살다가 하나님의 심정 속에서 죽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천국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고 통일교회는 팽창해야 됩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자신을 중심삼고 나가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추풍낙엽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태어난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먼저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다음엔 가지의 입장인 형제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친척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를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근본은 부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그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모든 생사의 기원점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요건입니다. 그러한 요건을 갖추어 가지고 세계를 생각하고 자신의 일생을 살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천주주의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비록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천주주의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천주주의 주권이 서 가지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천주주의 세계에 속하게 될 때, 그 주권이 서기까지 핍박받았던 그 사람들은 하늘땅이 환영하는 가운데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상을 받은 사람들은 새로운 지상의 천국에서 살다가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그 후손은 지상에서 영원히 남아지는 하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가 비로소 우리가 가야 할 종착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 기준을 찾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내일이면 학교에 갈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는 뭣 할 것이냐? 공부하는 것도 이 길을 빛내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올 소망의 천국시대에 전국민이 편안히 잘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침에 태양을 바라보며 어제의 그 빛과 다르고 봄날을 맞이해도 작년에 맞이했던 봄날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봄빛을 내가 가는 길을 반가이 맞아줄 수 있는 봄볕으로 바라보며 즐거워할 수 있고, 이런 길을 가는 나를 반겨 줄 수 있는 햇빛으로 바라보며 가는 사나이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죽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할 것입니까? 선택을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아무리 판사와 검사가 좋다지만 검사 잘못 했다가는 영계에 가서 거꾸로 매달려서 영영 걸어서 못 다니고 기어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부패한 바람에 걸려들었다가는 큰일 나는 것입니다. 천법의 기준으로 보면, 오늘날 불의의 공판도 많고 불의한 검사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 거기 판사라는 사람, 통일교회의 길을 한번 가 보겠나? 「예」 사람이 순수하긴 하겠는데 끈기가 없겠군. 사람이 사형장에 끌려가더라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돼요. 통일교회의 가는 길이 힘든 길인데 그래도 가 볼래? 「예」 선생님이 기합을 준다고 해도 가 볼래? 「예」 통일교회 문선생이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런 일을 잘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언제 걸어 넘어갈지 모르는 거예요. 가다 보면 선생님의 작전에다 말려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겠어요? 「예」 선생님이 필시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안 가겠다는 사람은 뭉둥이로 후려갈기고 목을 매서라도 끌고 가야 되겠어요. 독재를 해서라도 데려가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어차피 가야할 길이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27-33
공산당과 싸워야 할 선생님과 여러분
장가 갈 나이가 다 되었는데도 장가 안 가겠다는 사람을 선생님이 붙들고 `너 장가 가야 돼’ 하고 강제로 끌어다가 결혼식을 시켜 놓으면, 그때 가서는 `독신주의가 더 좋은 줄 알았는데, 아이구 고맙습니다’ 하게 됩니다. 안 가겠다고 하는 것을 달래 가지고 장가 가게 해주니 고맙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그것은 최고의 선물이요,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제일 빠른 직행길입니다. 희망이 앞서 가는 그 이상 빠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나를 믿으면 직행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나를 믿어 보겠어요? 「예」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북에 첩자로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가겠습니다」 선생님도 이북에 갔다 온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어올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내가 계획하는 것을 다 이루기 위해서는 불원한 장래에 다시 넘어올 것이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넘어가지만 어떤 수난의 길이 있더라도 죽지 않고 기필코 다시 넘어올 것이다. 그때는 김일성이 내 손에 망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아가씨들, 내가 공산당을 해치우라고 명령을 하면 사탄세계에 가서 그들을 해치울 자신 있어요?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왔다’ 하고 나가면 문제없이 될 것 같아요? 이건 미친 놀음이 아니예요. 선생님은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의 목숨은 이미 전부 다 쇠사슬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공산당이 세계의 3분의 1정도를 삼켜 버렸고 민주주의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인 미국의 CIA,FBI의 간부들도 대부분이 소련의 정보망에 말려들어 있는 판국입니다.

그런데 백수건달과 같은, 마치 발가벗은 여인의 몸뚱이와 같은 통일 교인들 몇사람을 데리고 공산당을 막아내겠다고 하고 있으니 이것이 잘됐어요, 못 됐어요? 공산당의 칼침을 맞더라도 핏자국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고, 눈을 뜨고 다니지만 바로 보지 못하는 사팔뜨기와 같은 그런 여러분을 데리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잘 됐어요? 「예」 그런 일을 선생님이 이미 벌여 놓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모든 공산주의 세계에 다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의 적기, 즉 `아까하다(赤旗)’라는 신문에서 날마다 선생님에 대하여 대서특필 하였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고 하면 공산당도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생님에 대한 기사가 난 기관지가 세계 각국의 공산당들에게 일시에 뿌려진 것입니다. 그것이 일주일 이내에 전부 다 들어갔으니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민주세계에서는 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공산세계에서는 다 안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국입니다. 그러니 사태가 험악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역사상에 없었던 험악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생님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것을 수습하는 길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 소위 젊은이라고 하는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어떻게 할 것이냐? 선생님은 그 방면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는 여러분들밖에 없으니 누구를 먼저 불러야 되겠어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불러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라고 하면 가겠어요? 「예」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일본 협회의 아베상에게는 선생님이 어디로 가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라고 명령을 하곤 합니다. 젊은이들은 그런 것들을 잘 모를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것을 명령할때는 거기에 대한 책임을 선생님이 집니다. 그러기에 전화를 해서라도 명령하는 것입니다.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은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선생님을 믿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누구를 믿고 해야 되겠어요? 여러분을 믿을까요? 나는 누구를 믿고 해야 돼요? 「하나님요」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이 총을 쏘고 칼을 들고 싸우라고 할 수 있어요? 책임분담이라는 것이 있는 거예요, 책임분담. 그러니 나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돼요? 「저희들을 믿고 살지요」 하나님보다 더 존귀한 인간이로군. (웃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이불을 덮고 잠잘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차디찬 냉방도 과분하다는 것입니다. 삼팔선이 갈라지던 그 이상의 수난을 당하면서도 최일선에서 삼천만 민족을 이끌고 첨단을 밟고 나설 수 있는 훈련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갈지 말지 하는 이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런 명령을 해야 할 위기가 왔습니다. 비상시기가 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입니다. 지금도 가까운 사람을 중심으로 여러분이 모르는 지시를 내리고 있습니다.

옛날 자유당 때에 내가 형무소를 들락날락하면서도 선교사를 밀선에 태워 일본에도 보냈고, 미국에도 보냈습니다. 자유당 시대에 선생님을 죽이려 하는 것을 조건 삼아서 외국 선교의 길을 개척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형무소에 있을 때에도 사람을 불러서 선교의 사명을 주어서 보냈습니다.

전부 다 이렇게 개척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어떻게 갈 거예요? 멋지게 갈 거예요, 쫓기면서 갈 거예요? 「멋지게 갈 것입니다」

여자들은 태어나서 천주세계에로 시집가는 것이 가장 위대한 소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들, 자신있어요? 또 남자들은? 남자들이야 뭐 도깨비 같은 녀석들이니…. (웃음) 만일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밀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이념을 알려 주자는 것입니다. 미국의 상원의원 부인들을 중심삼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미국 사람들이 들으면 기분 나빠 하겠구만. 미국 CIA에 이것을 보고하려면 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고 보고하라는 거예요.

27-36
하나님을 위해 생명길도 죽음길도 가라
여러분들은 이런 모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생명길도 가고 죽음길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아까 예수님이 하늘 신랑이 되었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했지요?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시집가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영계에 가면 수많은 영인들이 선생님에게 경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요? 그러니 잘못하게 되면 수많은 민족들이 왜 우리 민족은 사랑하지 않느냐고 선생님한테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세계를 중심삼은 선생님이지, 대한민국만의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만을 위한 선생님이라고 하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선생님은 수많은 민족을 대표한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한국의 남자들과 아가씨들을 세계 각국에 장가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는 것입니다. 이 길이 세계를 사랑하는 제일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의 핏줄이 자기 민족에게 연결되어지는 것이 영계에 있는 그 민족 선조들의 최고 희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이 땅에 있는 동안 그들이 바라는 그 이상의 일을 해 놓지 못하면 저 나라에 가서 얼굴을 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본래는 12지파가 퍼져서 세계 만민이 되었으니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12지파를 심정적인 인연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복귀의 해원성사가 안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민족을 대표한 해원성사의 기준이 안 세워지기 때문에 영계에서도 해원성사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외국으로 시집 장가를 보내는 젊은이들도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후보감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겠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그 나라에 가게 되면 국제축복을 받은 가정을 찾아갈 것입니다. 동양의 한국 사람이 서양 사람들과 결혼을 하게 되면 한국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왜 결혼 문제에 결부시키느냐? 여러분이 가야 할 길 중에서 최고의 길이 바로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젊은이라면 누구나 다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가는 데는 어디를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이 길을 동기로 하여 그것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들딸을 어디에 낳아 놓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런 것을 알고 낙엽처럼 떨어질 그런 환경의 기반을 중심삼고 출발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정의 기반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나서 거기에서 죽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가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수련이 끝나면 이런 길을 자원해서 가기에 온갖 정성을 다 바쳐서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27-38
기 도
아버지여, 남기신 복귀의 노정 앞에 초초한 저희의 모습들이 벌거벗은 자세로 아버지를 향하여 울며 절규하는 소리를 들어 주시옵소서. 그 부르짖음은 저희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함이 아니고 아버지와 세계 혹은 인류를 위한 것이라 할진대, 당신께서 그 음성을 들으셨을 때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겠사옵니까? `잠깐만 기다려라’ `잠깐만 참아라’ 하시면서 저희들은 찾아오시기에 얼마나 고달프셨사옵니까?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은 지금까지의 일생에 많은 날과 달과 해를 지내 왔지만, 어느 한 때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내 아버지여, 이제 만났사오니 영원히 영원히 가지 마시옵소서’ 하고 사정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이 한이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저희들의 생활 가운데 반드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날과 더불어 봄절기와 같은 절기를 가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세상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천주의 인연을 높이 평가하여 당신의 깊으신 사랑의 품속에서 모든 행복과 희열을 느끼는 모습이 되어서 당신의 높고 고귀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관을 통하여 이러한 지각을 갖고 자극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그럴 수 있는 한 계절을 가져야 되겠고, 그럴 수 있는 한날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그런 한 해를 맞이하여 그것을 영원으로 이어가고 스스로 기뻐서 아버지 앞에 달려가는 그런 생애를 맞이해야 할 것이 아버님의 아들딸이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런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아버님께서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가정과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 혹은 이 세계의 원한을 묻은 채 지금까지 나오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해방의 한날을 촉구해 나온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이 아니면 저들이 해원성사를 할 수 없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중심이 되어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밤이나 낮이나 쉴 새 없이 노력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며칠 동안 여기에서 말씀을 배우면서 새로운 자극을 느끼고 새로운 결의를 하였사옵니다. 이런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여생을 아버지의 깊으신 뜻 앞에 온전히 바쳐서 직행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오나 직행하는 그 길에는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은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길이요, 그 누구도 남기 싫어하는 길이오나 저희들만은 남아서 아버지의 사정을 깨닫고, 아버지의 품속에서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고, 아버지의 감정을 체휼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자리는 아버지와 저희 자신들만이 만날 수 있는 자리이오니, 아버지 앞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민족을 위하여 노정을 거쳐서 세계를 위한 노정까지 가야 하는 그 노정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동행하여 아버지의 마음에 잊혀질 수 없는 아들딸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의 장래를 아버지께 맡기옵니다. 하오니 새로운 결의와 더불어 인생에 있어서 필연코 가야 할 기점을 중심삼고 하늘의 정병들이 되어서 만유존재의 능력을 지니고 갈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가야 할 생의 노정을 조정해서 소망의 천국문에 이르기까지 사고 없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친히 아버지께서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