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77 to 26-320: 자녀가 가야 할 길

자녀가 가야 할 길
1969.11.10 (월), 한국 전본부교회

26-277
자녀가 가야 할 길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아홉 돌을 맞는 자녀의 날이옵니다. 전국에 널려서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자녀들 위에 당신의 사랑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무리들을 보시고 당신을 슬프게 해드린 이 나라, 이 민족의 모든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들에게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분부하시사 새시대의 역군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당신이 직접 주관하실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을 기필코 이루어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을 기하여 만백성 위에 당신의 거룩한 사랑의 손길을 펴시어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에 있는 만인류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 혹은 뜻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부활하여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그들에게 남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오늘 통일교회의 활동을 중심삼고, 저희들의 움직임을 중심삼고 배후에서 그들이 인연맺어지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저희들과 일치가 되고 육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일치시키어서 당신이 원하시는 통일의 나라를 이룰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도 이날을 기념하고 있사오니 그들로 말미암아 그들이 처해 있는 그 나라 위에도 당신의 직접적이고 주도적인 역사를 일으키시사 부활의 권한을 세우시어서 만민을 당신의 품에 품을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세우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을 기하여서 당신이 원하시는 바의 뜻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횡적인 노선을 통하여 세계에 본격적으로 퍼져 나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날을 영광의 한 날로서, 자랑의 한 날로서, 기쁨의 한 날로서 세우시어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축복을 받고, 당신의 은사 가운데에 품길 수 있는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도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뜻을 위하여 희생했던 복귀 도상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 위에 친히 당신께서 해방의 역사를 일으키시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참부모님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다운 자녀가 되고,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다운 가정을 이루고, 참다운 가정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종족과 참다운 민족과 참다운 국가와 참다운 세계와 참다운 천주에로 당신을 중심삼고 전진해 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이해에 저희에게 남아진 탕감의 노정을 더욱 힘차게 달려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1970년대에는 저희들에게 맡겨진 중차대한 사명, 즉 민족적인 사명과 자녀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각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형통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당신의 뜻 가운데 세우시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첫시간이오니 끝시간까지 영광 가운데에서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간절히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6-279
말 씀
오늘은 자녀의 날로 여러분이 기념하고 있지만 자녀의 날은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마음들을 가지고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26-279
자녀의 날을 선포한 의의
오늘날 이 세상에는 어린이 날은 있지만 자녀의 날은 없습니다. 부모의 날이니 자녀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하나님의 날이니 하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에서만 정하여 발표한 날입니다. 이러한 날들은 그저 적당히 생각해서 정한 날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생각대로 적당히 `이러면 되겠다’해 가지고 정한 날도 아닙니다. 전부다 공식적인 복귀노정을 거쳐 가지고 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어서 그 순서에 의해서 복귀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를 두고 볼 때, 자녀가 있으려면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을 선포하고 나서 자녀의 날을 선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본연의 부모를 잃어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인간은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모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자녀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만물을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전부다 잃어버렸으므로 이것을 전부다 복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이 되어야 했고, 그런 다음에는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담 해와에게 온 만물이 주관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만물도 이런 영광의 한 날을 맞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만물 주관은 혼자 못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가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사위기대가 복귀된 기반 위에서 만물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혼자는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만물을 주관하고 이 세계를 주관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에게 축복을 해주신 것이지 아담에게만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부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부만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종적인 중심입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내적 외적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이성성상이 실체적인 이성성상으로 나타나서 개인적인 이성성상을 갖추어 가지고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하나의 남자가 되고, 하나의 여자가 된 것이 아담 해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되어야 비로소 평면적인 사위기대의 중심이 되어 중심기대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중심이로되 종적 기준을 대표한 횡적 세계의 중심입니다. 그러면서 주체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 있어야 되는데 그 대상이 자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위기대가 세워졌을 때, 비로소 하늘땅이 연결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입니다. 가정을 두고 보면, 부모는 하나님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26-280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류의 역사는 부모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부모의 말이 그 후손의 말이 되는 것이요, 그 부모가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그 후손들의 생활방식이 되는 것이요, 부모가 느꼈던 환경적인 요건들을 그 후손들이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부모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그 중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본래의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탄이 중심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탄이 중심주체가 되고 인간이 그 대상이 되어 거짓 사랑의 열매를 맺어 거짓 세계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해야 되는데 복귀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인류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6천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복귀해 나왔는데 그것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돌아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된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새로운 문화역사를 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이 생겨나는 것이요, 종족이 생겨나는 것이요, 민족 국가 세계가 전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역사가 출발하였다면 그들은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것의 기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되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삼고 되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보면, 모든 것이 불완전한 세계입니다. 하늘도 땅도 전부다 사탄세계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왔으니 다시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지 않으면 하나님도 인간을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는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고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과정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26-281
이상세계의 출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상하시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하시던 것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상은 언제 출발하느냐? 그것은 많은 날들을 거쳐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 하루 가운데도 똑딱하는 한 순간에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삼팔선을 두고 볼 때, 그 삼팔선은 분명히 있지만, 그 삼팔선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고자 할 때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삼팔선이 접하는 곳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이라는 것은 지극히 가늘어서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선이 두 나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날이 결정되는 것도 결정되는 그 순간은 하루 전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로 책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면도날과 같이 날카로운 순간, 똑딱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되는 경계선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데도 이와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있어서 결정한 시간이 있고, 결정한 시간이 있어서 결정한 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하는 날에 있어서도 그냥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똑딱하는 순간과 몇 시라는 시간권내에서, 며칠이라는 날 권내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되는 데에도 소생 장성 완성과 같은 개념이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념들 중에서 하나님의 날이 정해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의 도리, 즉 우리들에게 시간적인 단위로써 보편화된 개념이 하루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이라는 것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날이 어떤 날이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이루는 날이 하나님의 날인데, 이날은 하나님의 이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상도 이루는 날이요, 만물의 이상도 이루는 날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의 이상 가운데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이 성립되면 그와 동시에 부모의 날이 성립되고, 자녀의 날이 성립되고, 만물의 날이 성립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도 무엇부터 찾아야 되느냐 하면 맨 먼저 인간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날이 세워지지 않으면 자녀의 날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복귀역사는 탕감해 나가는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이 분열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올라가고 사탄은 내려오는 와중에서 선과 악이 서로 다투어서 올라 갔다가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싸움의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러느냐? 복귀를 위해서 그렇게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의 경계선은 어디냐? 본래 선과 악은 한 점에서 출발되었습니다. 한 점에서 출발되었는데, 한 점은 무엇이냐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을 혼자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의 방향이 악한 쪽으로 틀어져 나간 것이 악한 부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부모의 때를 맞기 위해 역사하시는데 어떻게 역사하시느냐? 이제까지 강력히 세워 나왔던 부모와 자식간의 인륜도덕을 때가 되면 모두 희미해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자식들이 자기 부모를 등한시할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선이 악한 세계의 한계권에서 떨어져 나와야 되기 때문에 하늘이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귀가 되어 가면 되어 갈수록 부모와 자식간의 윤리도덕은 더욱 희미해집니다. 그 대신에 다른 한쪽, 즉 하늘편에서는 누가 나오느냐 하면 재림주가 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참부모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서부터 참의 세계가 출발되고 새로운 주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26-283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을 해야 했던 예수
그러면 거기에서 중심은 어디냐? 악한 부모와 선한 부모가 각각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수많은 도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렀던 그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양자로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 앞에 양부모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이제까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양자의 입장에서 양부모를 부른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가 있고 나서 있는 것입니다. 양부모는 친부모보다 먼저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오면서 기독교가 불렀던 아버지는 오늘날 우리들이 추구하는 아버지와 그 입장이 다릅니다. 그들이 불렀던 아버지는 양부모권에 있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그것도 오늘날에 와서야 양부모와 양자의 입장이 된 것이지 그전에는 양부모와 양자의 관계도 못 되고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아들이 종의 자리에 있는 천사의 주관을 받고 타락했기 때문에 종의 종의 입장으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요, 그 가운데서도 야곱 이전까지는 종의 종의 시대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귀시대섭리시대는 종의 종의 시대입니다. 그 다음에 선민사상을 중심삼은 종의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으로는 아들딸로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들을 아들딸로 인연맺게 하기 위해서 그들 앞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한 단계 끌어올려 양자의 입장에 세워 놓게 된 것입니다.

양자는 어떤 입장이냐 하며 가인의 입장입니다. 여기서 가인 아벨이라는 입장을 두고 볼 때, 아벨형은 하나님편 아들딸이요, 가인형은 사탄편 아들딸입니다. 이들은 서로 핏줄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양자권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직계의 아들로 왔는데 그 직계 아들의 입장을 결정짓지 않고는 양자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기독교가 나왔기에 양자라는 말도 나온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나오지 않았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종의 입장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아들의 사명과 더불어 부모의 사명까지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아담이 하나님 앞에는 아들이고 인류 앞에는 부모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입장을 거쳐서 하나님과 하나되어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두 사명을 짊어지고 오셨기 때문에 아들의 입장으로서 탕감해야 할 사명과 부모의 입장으로서 탕감해야 할 사명, 이 두 사명을 겸하여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 양자의 기준이 성립되려면 양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인한 양자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혼자서는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양자의 부모 입장에 영적으로 섰던 분들이 예수님과 성신입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종의 자식들을 모아서 영적인 조건을 세우고 다시 낳았든 입장에 세웠을 때 인간들은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자는 하나님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간접적인 입장에 있는 천사세계, 즉 영적인 세계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직계의 아들딸은 실체를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영적인 기준을 통해서 낳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체세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을 다 설명하자면 하루종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양자의 세계권을 만들었습니다. 양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양자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데, 영적으로 그러한 양부모의 사명을 해 나온 것이 기독교입니다.

영적인 세계란 어떤 세계냐 하면 천사형의 세계입니다. 원래는 이 영적 세계의 천사장인 사탄까지도 하나님 앞에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충신이 되어야 할 천사장의 입장을 대신해서 예수님과 성신이 영계에서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관계를 중심삼고 충신권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26-285
통일교회 출현의 배경
오늘날 선생님이 왔기 때문에 예수님도 하나님의 장자라고 인정을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하지만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은 맏아들의 도리를 다 못 한 것입니다. 실체적인 사랑의 결실을 이루어야 진정한 맏아들이 되지 영적인 사랑만 이루어 가지고는 진정한 맏아들이 못 되는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실체로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실체 사랑을 중심삼고 아들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참된 부모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으므로 그를 믿는 신도들은 직계의 아들딸이 못 되고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양부모를 받들어서 참된 부모의 역사에로 연결시키기 위해 전개해 나왔습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고 나온 것도 참부모를 맞기 위해서였습니다. 참부모는 곧 재림주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시는 재림주는 아버지요, 신랑 신부는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오시는 참부모는 영적인 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런 식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횡적인 기반을 지상에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는 축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으면 예수님과 성신에게서 부모의 권한을 상속받은 입장이 되기 때문에, 지상의 기독교인이나 영계의 영인들이 모두 지상에 오신 참부모와 축복가정들의 주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육계에서나 영계에서나 예수님의 주관을 받는 것보다도 참부모의 주관을 받는 것을 더 영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부모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으로 하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권한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재림주에게 상속해 주면서 기뻐하겠습니까, 슬퍼하겠습니까? 세상 같으면 아마도 야당과 여당이 싸우듯이 서로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쁜 마음으로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가인과 아벨이 가야 할 본연의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천지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여 아벨 앞에 가인이 굴복하는 기준을 결정짓고 나와야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속받는 데는 그냥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축복을 받게 되면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력 대결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당시에 복귀섭리의 책임자로 온 것을 알았는가 몰랐는가 하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실력대결입니다.

복귀역사를 해야 할 텐데 예수님이 그것을 알았다면 이 땅에 왔을 때, 왜 인간시조가 음란으로 타락했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만 남겼으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렇게 고생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리적 견해에 있어서의 문답을 해야 합니다. `알았는가, 몰랐는가’해 가지고 만일 모르고 있었다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런 실력대결을 해 가지고 그 터전 위에서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예수님의 통솔을 받고 있는데, 난데없이 지상에 한 존재가 나와서 예수님을 휘어잡겠다고 한다 해서 그럴 수 있겠습니까? 실력대결을 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실력대결을 하는 데는 천리의 원칙을 중심삼고 법을 따져 가면서, 이것은 이렇게 되었고 저것은 저렇게 된 것이 아니냐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네 말이 옳다’하고 인정하는 정당한 판결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런 절차를 거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엄청난 곳입니다.

부모의 역사를 중심삼고 보면, 오늘날 기독교는 양자의 입장입니다. 양자는 핏줄이 다르니 양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땐 직계 자녀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 다음이라야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정성들여 키워준 양아버지가 있어도 친아버지가 어디엔가 있다면 어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찾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26-287
재림주가 참부모의 자격을 갖추려면
그러므로 양부모가 참된 부모의 입장이 되려면 자기가 그 아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면서 정성을 다하여 길러 준 사연을 그 자식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식은 언젠가는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복귀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종의 자식이 나오려면 종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도를 통해서 나타난 선한 아들딸이 그러한 종의 부모인 것입니다. 또한 종교와 관계없는 애국지사니 뭐니 하는 사람들도 종의 부모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갔던 공자나 석가와 같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종의 부모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무슨 부모냐 하면, 양자의 부모입니다. 그러니 많은 부모들 가운데서 예수님이 다른 부모들보다 조금은 낫다는 것입니다.

종의 부모가 하늘나라에 가려면 양자의 부모를 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못 갑니다. 그러니 부모의 입장을 두고 보았을 때에 예수님은 공자나 석가 등 많은 다른 성인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나 석가나 예수님이 다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같아요, 달라요?

예수님 이외의 다른 성인들은 종의 부모요, 예수님은 양자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 오셔야 할 분은 누구겠습니까? 참부모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종교인들을 가만 보며 엉터리들입니다.

이것이 전부 얼크러져서 세계사를 이어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되풀이해 나온 역사였습니다. 모든 것이 되풀이되면서 점점 커져 가지고 하나의 형태를 구축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수습해야 할 책임을 누가 해야 하느냐? 부모가 타락함으로 인하여 이렇게 되었으니 부모가 전부다 책임지고 수습해야 합니다.

어떤 나라의 왕이 있다고 할 때, 그 왕이 태어나면서부터 왕권을 갖고 출발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왕권을 걸어 놓고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자가 출현하는 데는 어떤 조건을 중심삼고 출현하느냐 하면 그 국가의 비상시를 맞이하여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고는 나라의 주권자가 탄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싸움의 판결을 지어 최후의 승자가 결정지어지기 전까지는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오히려 횡적으로 보면 그보다 더 잘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싸움을 중심삼고 선도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지고 그 나라를 구해낸 사람이 그 나라의 주권자의 자리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대로 해서 태어난 왕자가 왕의 자격이 있는가, 또 왕이 될 만큼 잘 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왕자는 선조가 승리한 업적의 기반 위에서 승리자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왕조 역사의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그 승리의 권한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국가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한 후손은 그때까지 남겨 주는 것이 천법이기 때문에 그러한 기반 위에 태어난 왕자에게 그 나라를 지휘할 수 있는 왕의 권한을 주는 것이요, 그때의 권한은 천지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인 것입니다.

그러나 끝날이 되면 그들도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하지 못한 백성은 어떻게 되느냐? 그 백성 역시 그들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땅 위에 참부모가 참부모의 입장으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력전을 해야 됩니다. 참부모로서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승리해야 됩니다. 먼저 사탄을 굴복시키고 나서 그 다음에는 영계에 가서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소생 장성 완성으로 부모의 3대역사를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먼저 사탄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는 대도 천륜을 중심삼고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킨 다음에는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땅 위에 자녀의 입장으로 태어난 인간들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심정적 내용이라든가 살 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전반적인 조건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26-289
참부모와 인연을 맺으려면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부모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모에게는 죽은 자식을 살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부모가 못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은 3시대의 부모의 역사를 거쳐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최후에 남아질 부모는 육계나 영계나 사탄세계에 있어서 승리의 결정권을 가지고 나오는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그 승리라는 것은 천정을 넘어서 얻는 한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시대에는 많은 주권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들을 보면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공자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들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석가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지금까지 세상에 왔던 그 누구도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비참한 것입니다. 형편으로 보면 종의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 비교해 본다면 못하다는 거예요. 노아나 아브라함에 비하면 형편이 무인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태어나되 누구로 말미암아 태어났느냐 하면 부모의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있다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심판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참부모를 중심한다는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병신 자식이 되면 되겠습니까? 반벙어리가 되어서 심판대에 서면 되겠느냐 말입니다. 거기에서 선악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판결내게 될 때, 참부모의 정상적인 전통을 계승받아서 그것을 선의 세계나 악의 세계에서 모두 `옳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그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 권한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 교리문제, 인간에 대한 훈련문제, 심정문제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끝날에는 3대 심판을 거쳐야 합니다. 3대 심판은 진리심판과 인격심판과 심정심판입니다. 여기서 교리는 진리입니다. 이 3대 심판을 거쳐야 참부모와 인연을 맺는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리에 패스하지 못한 사람은 축복도 못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었다가 자기 멋대로 별의별 놀음을 다하고 다니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법을 모르는 사람을 재판관으로 세우면 자기 마음대로 판결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복귀의 법도가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 원리같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부모를 잃어버렸기에 그 부모를 찾아 들어가는 공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런데 원리를 몰라서 되겠느냐 말입니다. 또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알기만 하고 구경만 해야 되겠습니까? 실천을 해야 됩니다. 자기 스스로 익히고 실천해야 됩니다. 원리 말씀대로 실천하려면 원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원리말씀을 들어서 무엇 합니까? 부모가 몸소 그 원리를 중심삼고 실천했기 때문에 법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녀들도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실천을 해야 됩니다.

실천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의 부모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양자의 부모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라야만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한 아들딸이라면 영적인 양자의 부모까지도 지시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지, 지도를 받고, 지시를 받는 자리에서 참된 부모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의 아들딸의 자격을 갖추려면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의 아들딸의 입장과 양자의 부모가 되는 예수님과 성신의 입장을 서로 비교하면 어느 것이 높으냐 했을 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느 자리가 더 높겠어요?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자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성신의 위치보다 더 높습니다.

26-291
축복의 가치
현재 여러분을 보게 되면 형편이 무인지경이지만, 그래도 예수님과 성신의 위치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참부모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나는 하나된다. 말씀과 행동과 심정이 참부모와 하나된다’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가 복귀의 원칙인 원리말씀과 하나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된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원리에 입각해서 사탄을 굴복시켰습니까? 못 시켰습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이 참부모의 아들딸로 태어난 자리에서 참부모와 심정이 일치된 자리에 섰습니까? 못 섰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조건을 거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축복이 이렇게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어요? 이웃 동네의 누군가가 돈 백만원 가져다 주는 것 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말입니다. 또, 몇억 원의 돈을 갖다 주는 사람이 있으면 축복도 저버리고 그것을 따라 갔을지도 모릅니다. 축복이 몇십억 원의 돈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인 줄 알아요? 몇 나라의 땅을 주고도 못 갖는 것입니다. 나라를 주고도 가질 수 없어요. 그것도 모르고 이런 내용을 설명해 주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은 원리책에도 없는 말씀입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하나님이 새로운 말씀을 하실 것이니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성전에 들어와서 말씀을 받기에 합당한 자신이 되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조반금식이라도 하면서, 많은 정성을 들여서 하나님이 그 정성의 인연으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첫째로 꼽고 기억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나온 사람 있습니까? 이런 여러분들을 데리고 자녀의 날을 맞고 있다니 참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이 자리는 아무렇게나 해 가지고 참석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정과 변명이 많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런 뜻을 알겠습니까? 이날은 부모와 상봉하는 날입니다. 부모와 상봉하려면 다리를 놓아야 할 것 아녜요? 그러니 이런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또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하면, 참다운 자녀로부터 참다운 가정,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죽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참다운 세계로 가야 합니다. 이 세계를 두고 볼 때, 소련 중공 미국 할 것 없이 세계는 전부다 여기서 하나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가 얼마나 귀한 자리입니까?

기독교는 우리에게 흡수됩니다. 세계의 모든 기독교는 우리의 발판이 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앞으로 언젠가는 로마 교황청까지도 움직여 나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세계순회를 하는 도중 바티칸에 들러 궁전 맨 꼭대기에 올라가 있을 때, 마침 교황이 고위 성직자들을 데리고 광장에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교황 당신보다도 더 위에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들도 모두 우리에게 흡수될 것입니다.

현재 기독교인들의 수가 세계에 10억 가까이 되는데 이것을 발판으로 삼게 되면 오늘날 문화세계의 모든 내용을 중심삼고 새로운 세계를 쉽게 창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원이 다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기독교를 흡수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우리에게 흡수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 할 때 그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염려하는 것은 지어 놓은 밥을 누가 가서 집어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법도와 순서를 갖추어서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먹어야 할 것인데, 제사를 지내고 나서도 먹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알려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이 밥을 그냥 거리에 갖다 놓으면 서로 먹겠다고 달려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농후합니다. 안 그래요? 소질을 가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좋은 것을 갖다 놓으면 삵괭이같이 서로 덤벼들 것입니다. 그러니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26-293
뜻을 위해 자기를 버려야 할 때
어떤 사람은 왜 뜻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뜻은 이루어지지만, 역사를 대표하여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올바른 물건을 상속해 주었는데, 그것을 영원히 영원히 보관하여 맡긴 분이 훌륭하다고 칭찬할 수 있는 보관자가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뜻이 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뜻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가는 길도 민주주의가 가는 길도 이제 내리막 길로 들어섰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점점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넘어가는 길은 공산주의의 길도 민주주의의 길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세계를 못 넘어 가는 것입니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세상을 지배한 것은 사탄이었지만 사탄은 이 세계 이상은 못 올라갑니다. 사탄은 사탄을 중심삼고 완성한 국가 기준까지밖에 못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나 사상을 아무리 끌고 나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애국심을 밟고 넘어서서 세계적인 애국심을 못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세계를 찾아 나갈 때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소련도 지금까지는 세계 공산국가를 규합해 나왔지만 이제 세계를 넘는 경계선에서는 자기 국가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를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지금까지 국가의 형성 과정은 자기에게 끌어다 붙이는 놀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자기를 버려야 됩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나라의 주의나 사상은 세계를 규합하지 못합니다.

민주주의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은 자국 국비의 3분의 2를 다른 나라를 위하여 써야 됩니다. 국비의 3분의 2를 외국을 위하여 쓸 때 미국은 역사에 남아지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전체를 소생·장성·완성 3단계로 볼 때, 이 3분의 2라는 것은 소생·장성권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장성기에서 타락한 연고로 3분의 2권, 곧 장성권(長成圈)까지는 사탄이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분의 2권까지는 사탄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권내(圈內)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이 하늘편을 대신하여 국비의 3분 1을 자기 나라를 위하여 쓰고 3분의 2를 다른 나라를 위하여 쓰게 되면, 3분의 2권이 사탄권(圈)을 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미국은 소생 장성권을 벗어나 완성권 내에 있게 되므로 완성된 국가형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꾸로 자기 나라만을 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만을 위하여 나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의 경제 부흥만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고 착취해가는 나라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경제적으로 후원해 주고 거기에 덧붙여서 장사를 해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까지 원조를 해주고도 욕먹는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이 원조를 해준 것이 언제부터냐? 루즈벨트 대통령 때부터 시작해서 트루만,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까지 해 나왔습니다. 이것을 계대로 보면 4대입니다. 여기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일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이 닉슨 시대에는 세계를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되는 날에는 얻어맞습니다. 역사적인 오점을 남기는 거예요. 내가 교회 안에서나 하는 말이지만 세계에 대해서 방송을 한번 하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전세계에 소문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림주님의 나라가 오기까지 세계에 나라를 형성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통일의 나라를 세워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제 나라를 넘어 세계로 나갈 때는 그 나라를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못 하는 나라는 역사적 과정에서 공헌을 해도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26-295
새시대의 주인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란 나라를 넘어 세계로 갈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가진 세계적인 지도자라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럴 수 있으면 대한민국이 그런 주인의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나 여러분은 대한민국만 위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세계를 주도해야 할 대분수령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야 됩니다. 분수령 가운데서도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인과 아벨이 갈라져서 싸웠지만 이제는 합쳐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관념을 초월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또다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내 자신도 세계를 위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가정도 제물이 있어야 할 것이요, 통일교회는 하나의 종족인데 종족 전체도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이요, 삼천만의 한국 민족 전체도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영계 전체까지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세계 인류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 30억 인류 전체가 한꺼번에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대표자들을 세워서 그들이 희생되었다는 조건만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계도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계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만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이면 미국의 위정자나 그 국민이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세계를 더 사랑하고 세계를 더 좋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공산당들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모르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이 모든 것을 청산해 주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이 앞으로 세계 최고의 첩보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흥신소를 만들어서 세계적인 정보망을 조직하여 이런 것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모두 사탄세계이니 필요하면 팔아서라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사탄을 무찌르기 위하여 최고의 험한 골짜기라도 들어가서 사탄과 대결을 해서 승리할 부대를 파송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선생님이 이 시대를 대해서 싸워 나가자고 선동하는 것 같지만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아들딸을 교육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만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라고 가르치면 안 됩니다.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이다. 애국자다. 어머니로서의 애국자가 아니라 애국자로서의 어머니, 충신으로서의 아버지다’라고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효도를 가르치는 데도 부모가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영원한 이념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영원한 사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사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일치되지 못하면 그만큼 제재를 받는 것입니다. 제재를 받는 만큼 영계에서의 위치와 계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누구보다 훌륭하다고요? 석가나 공자보다도 훌륭하고 예수님보다도 훌륭하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요? 참부모의 아들딸이라고 하는 간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간판은 세도와 같은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사위만 되더라도 세도를 부리는데…. 그러나 사위가 될 수 있는 길은 있지만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 성(姓)을 따서 바꾼다 하더라도 그 성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입니다. 아들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상에 왔다 간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26-297
충효의 도리
여러분이 죽을 때에 누구를 붙들고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창조이상이 무엇입니까? 창조목적이 무엇이라고요? 인간을 중심삼고 말하면,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에는 죽는 법도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죽는 법도 있는데, 죽는 제1법도는 무엇이고 제2법도는 무엇이고 제3법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어요? 죽을 때 제일 가까이에서 지켜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죽을 때 제일 가까운 인연이 누구입니까? 죽을 때 옆에서 눈물 흘리며 울어 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자녀들입니다」 또 누가 있습니까? 「배우자입니다」 또 누가 있습니까?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흘리는 눈물 중에서 누가 흘리는 눈물의 도수가 제일 높겠습니까? 「부모가 흘리는 눈물입니다」 눈물은 상대적입니다. 여기에는 종횡의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눈물이 제일 꼭대기에서 떨어지느냐 하면 부모의 눈물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죽을 때 무엇을 중심삼고 죽겠습니까? 사랑을 모두 잊어버리고 죽겠습니까, 꼭 끌어안고 죽겠습니까? 「꼭 끌어안고 죽겠습니다」 사랑 중에서도 누구의 사랑을 붙들고 죽겠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먼저 붙들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부부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을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사위기대 원칙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에 제일 먼저 누구를 부릅니까? 하나님을 부릅니다. 최고 어려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최고 진실입니다. 죽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죽는 자에게는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죽음의 도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칙에 가까운 자리에서 그 원칙만 붙들고 죽게 되면 회생할 수 있는 길이 뚫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죽을 자리에 가서는 `아이고 하나님’ 하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훈 중에 진실한 교훈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그래도 옳은 말을 하고 죽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런 것을 볼 때,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잘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옳은 말 중의 옳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때에는 부모를 먼저 모셔 놓고 나서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찾아야 천도가 서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내나 남편을 부른 후에 자녀들을 불러 놓고 유언을 해야지, 자기 남편이나 아내는 못 오게 하고 자녀들만 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지금까지 아내보다 자식이 먼저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할 때, 해와가 실수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귀된 세계에서는 부모를 모셔 놓고 자기 배우자를 부른 후에 자식을 불러야 됩니다.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도 사위기대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갖추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죽음길도 올바로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난 후에도 영혼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원칙을 아는 여러분은 죽을 때 누구를 붙들고 죽겠습니까? 「하나님요」 그 다음에는 「참부모요」 태어날 때도 그분을 통해서 태어나고, 죽을 때도 그분을 통해서 죽어야 영계에서도 영원히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나서 그분을 통하여 결말짓는 것입니다. 전부다 이 원칙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 효의 도리요, 충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효와 충의 도리를 다한 사람이 인생행로에 있어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가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는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 가운데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부모를 먼저 생각합니다. 좋은 것을 보았는데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모에게 귀한 것을 먼저 사드리지 않고는 자기 아내에게 사 줄 수 없는 것입니다. 36가정 중에는 이런 말을 듣고 걸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자기 아내에게 옷을 해 입히려면 부모에게 먼저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자기 아내에게도 못 해입히는 것입니다. 그 아내도 자기 남편이 부모에게 못 해 주었는 데도 불구하고 무슨 양장이니 뭐니 하면서 `이것이 마음에 드는데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하나 해주소’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 알겠습니까?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옷을 해 입으려면 부모에게 먼저 해드리고 나서 해 입고, 아내에게도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부모를 모시고 먹어야 됩니다. 사탄세계의 부모가 돌아가시더라도 3년상을 모시는 것이 한국의 풍습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3년 이상 정성들여서 부모를 모셔 보지 않고는 천상세계에 가서 대한민국의 후손이라는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여러분들, 집에서 부모를 3년 이상 정성들여서 모십니까, 안 모십니까?

옛날에 효자들이 부모의 3년상을 모실 때에는 묘소에 움막을 짓고 거기서 기거하면서 효의 도리를 이행했던 것이 한국의 예법이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그 이상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하고 있습니까? 축복 가정 중에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전부 다 엉터리입니다. 엉터리 중에서도 이런 엉터리가 없는 거예요. 그런 여러분들이 하늘을 모시겠다고요?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이해됩니까, 안 됩니까? 죽을 먹고 살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부부끼리만 좋으면 축복가정입니까? 서로의 좋은 면을 갖추어 가지고 부모를 모시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6-299
수없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자신임을 깨달으라
부모를 모시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매일같이 기다리지만, 부모가 오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사랑하는 하늘의 형제들이라도, 하늘의 아들딸들이라도 자기 집에 오기를 고대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이 하늘의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옛날에 한국의 선비들 중에서는 지나가는 길손이 묵어 갈 수 있도록, 사랑방을 잘 꾸며서 손님을 접대하는 방으로 썼습니다. 이런 것은 한국만이 가졌던 내력입니다. 이 법도는 하늘의 법도를 미리 사탄세계의 역사과정에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집에 누가 올까봐 걱정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손님이 집에 오기를 원합니까, 오지 않기를 원합니까? 「오기를 원합니다」 오기를 원한다고요? 선생님이 한 석 달 동안만 매일같이 여러분들 집에 가면 어떻겠습니까? `아이구 지겨워’하면서 싫어할 것입니다. 안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손든 사람이 적은 것을 보니 그러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아닙니까? (웃음) 선생님이 이런 저런 할 얘기가 참 많아요. 그런 것을 다 알고 있는 선생님이 기가 막히겠습니까, 트이겠습니까? 기가 막힌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자기 위신도 모르고 처신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것을 교육시켜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권적인 권한,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사실입니까?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인 것입니다. 막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여러분의 생활감정으로서 여러분의 세포에도 느껴질 수 있는 시대권내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태어나는 것도 그렇게 태어나야 하고, 살기도 그렇게 살아야 되고, 죽는 것도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습니까? 그러지 못했지요. 그러니 죽을 때라도 어떻게 죽어야겠습니까? 태어날 때는 그렇게 못 태어났지만, 죽을 때라도 그렇게 죽어야 됩니다. 만약 태어날 때도 그렇게 태어나지 못하고, 죽을 때도 그렇게 못 죽으면 아주 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어서 갈 데를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생각해야 될 것은 앞으로 여러분의 자식에게 무슨 유언을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유언을 할 것입니까? 부모가 하지 않고 자식에게 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부모는 자식을 이용해 먹겠다는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실천하고 나서 죽기 전에 아들딸에게 `나는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게 살았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라’ 하고 유언을 하게 되면 그 유언은 하나님이 영원히 지켜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을 때에 후손들에게 그렇게 유언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류가 종의 종의 역사로부터 종의 역사와 양자의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 과정에는 수많은 제물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을 추구하던 수많은 개인들이 희생을 당했고, 그 선을 중심삼은 가정이 희생당했고, 그러한 종족, 민족, 혹은 수많은 국가들이 여기에 희생을 당했습니다. 이제는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희생당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전세계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서기 시작해서 다 망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제물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찾아온 것이 이 한 기준이라는 것입니다.그러니 지금까지 희생해 온 모든 대가를 치르고 찾아진 그 기준이 우리가 지금 배우고, 알고, 실행하고 있는 이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여러분을 수많은 종족과 민족 국가를 희생시킨 대가를 치르고 산 것입니다.

26-301
위신을 지켜야 할 축복가정
그러면 이 자리가 지닌, 그럴 수 있는 자격이 무엇입니까? 이 자리가 지닌 내적인 가치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세계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자리를 지금까지의 낡은 사상이라든가 그외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샀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주적인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통일신도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자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시시껄렁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만을 생각해 보더라도 지금까지의 반만년 역사 가운데에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애국자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 희생을 전부다 합해 가지고서도 그것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선을 추구해 나오던 사라들을 전부 합하고 나라를 전부 투입해서 산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이것만 남겨 두고 세계를 쓸어 버린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럴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으로서의 책임을 잘해야 합니다. 축복 받은 가정과 세상 가정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요? 천상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요? 여러분들이 축복가정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일을 했을 때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여러분 자신들의 경우를 놓고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 자신들을 사랑하지요?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잘못해서 역적이 되더라도 역적된 그 자체는 미워하겠지만, 자기 혈육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입니다. 선생님의 염려는 부모로 인해 그 자식들 조차도 역적이 될 것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만둘 수 있겠습니까? 나이 값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가만히 두고 보면 형편없습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모두들 반성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위신과 축복가정의 위신이 어떻게 될 줄 알아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축복가정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는 말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각자의 마음에 비상을 걸고 나가야 합니다. 알겠어요? 약속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이유가 없습니다. 자녀의 날에 이런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자녀의 날이기 때문에 자녀들의 나쁜 점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고 선생님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불러왔던 아버지나 어머니는 전부다 가짜입니다. 그렇지요? 그 가짜 세상을 부활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때려부숴야 되겠어요? 때려 부수는 게 아니라 밀어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아버지! 나는 대한민국을 향하여, 더 나아가 세계를 향하여 갑니다’ 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가는 도중에는 분명히 원수가 있을 것인데, 이 원수를 어떻게 해서 강제 굴복시킬 것이 아니라 자연 굴복을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여러분들은 때려부수는 것이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때려부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을 해 나오시기 때문에 이것으로 끝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을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26-302
다같이 살 수 있는 고생길
선생님이 어제 `가야 할 험한 길’이라는 말씀을 할 때, 고생한다는 것이 좋다고 얘기했습니까, 나쁘다고 얘기했습니까? 「좋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을 고생시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이 다같이 사는 길입니다. 내가 사는 길이요, 네가 사는 길이요, 대한민국이 사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 전체에 직접 부딪치려고 합니다. 3국을 동원하여 포위작전을 쓸 것입니다. 3국이 동원되는 날에는 대한민국이 포위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밥을 먹고 돌아서나, 혹은 자나깨나 어디를 가든지 삼천만 민족을 하나로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따라와야 할 길입니다. 세계인류도 따라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밥을 먹더라도 그것을 위해 먹고, 살더라도 그것을 위해 살고, 죽더라도 그것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전생애를 바쳐서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대하여 모심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명령이 있거든 그 명령을 향하여 직행해야 됩니다. 돌아갈 생각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생명이 엇갈리는 한 초점에 서서 가는 길이 효의 도리요, 충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것은 살아 있는 최대의 가치와 죽을 수 있는 최대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효의 도리를 세울 수 없고 충의 도리를 세울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길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다가 아무데서나 쓰러진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왕에 죽을 바에야 직행하다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돌아가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누구를 만나기 위해 하나의 수단 방법으로 교섭해 나가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바쁜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국의 누구를 만나려고 하는데 그가 한번만 거부하게 되면 전부다 걸립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는 길을 따라와야 됩니다.

만약 통일교인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나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 혼자밖에 안 남았는데 그것도 병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나 하나를 부르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셨구나. 나 하나를 위하여 하나님이 수고해 나오셨구나’ 하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자기 혼자 남았다고 해서 외로워 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대가를 치러 가지고 결국은 나 혼자 남았구나’하는 마음을 갖고, 나 하나에 대한 기대가 더 배가된다는 사실을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못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못났으면 못난 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하고 생명을 걸고 나서게 될 때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통일의 이념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못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 죽고 밀리고 쫓기고 찢기는 가운데서 자기 혼자 남았지만, 하나님이 자기 하나를 남기기 위해 희생을 해 나왔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는 비록 약하고 부족하지만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천만 배의 책임을 내 어깨에 짊어졌으니 `하늘이여,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깨끗이 빛을 내고 갑니다’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가 흐지부지하게 인연을 맺고 갔지만, 나는 일편단심으로 출발하겠다고 하면서 나가게 될 때는 망하지 않습니다. 죽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적인 역사의 슬픔을 현실에 재현시켜 가지고 횡적인 면에서 탕감하는 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령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밉다가도 고울 수 있겠지만, 남자 앞에 여자 얼굴이 미운 것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축복도 좋지만 얼굴도 고와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거기에 대해서는 설명을 안 합니다. 얼마나 무지무지하고 엄청난 역사가 말려 들어가는지…. 이러한 엄청난 뜻을 알게 되면 아무리 못난 여자를 만났더라도 그가 도망갈까 봐서 염려할 것입니다.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어째든 간에 그 여자가 없어지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26-305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만점
그런데 축복받아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해요? 내가 복수할 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은 하늘 것으로 남아질 것이고 사탄의 것은 사탄 것으로서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데로 시집가고 장가가서 자식을 낳게 되면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축복을 받은 사람이 다른 마음을 먹고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이것 때문에 선생님이 골머리를 앓습니다. 선생님이 최대의 노력을 해서라도 그 길을 막을 수 있다면 내가 다시 십자가를 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막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랑이 아닌 것을 알기에 그냥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배반자의 수치도 당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까지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선생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상에서는 배반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원수를 갚는 것이 하나의 도리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을 배반한 자에게 복수하는 역사를 전개시키어 사탄을 굴복시켜 나가셨는데, 용서해 주는 법도를 선생님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겠느냔 말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딱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몰라도 관계없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을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하면 앞으로 축복받은 세계가 전부다 참소받게 될 것입니다. 난데없는 결과가 빚어질 수 있는 원한의 터전이 남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을 죽음길에 보내어 몇 배의 어려움을 당하게 해서라도 탕감의 조건을 세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문제까지도 염려하고 있습니다.

기미꼬(君子)!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문화부장(유광렬)과 결혼하게 되어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했지? 좀더 멋진 남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했었지? 「예」 만일 문화부장이 여기에 없었다면 한국으로 시집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 봤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야만 만점이야.

얼굴이 못생겼어도 좋고, 집이 없더라도 좋고, 아무런 자격증이 없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구. 그런 것 알아? 남편 앞에 순종하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구. 기미꼬가 가장 모범이 되어 주지 않으면 일본 처녀들은 한국으로 시집올 수 없는 거야. 기미꼬만의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우. 기미꼬가 열심히 잘해 나가면 일본의 처녀들도 다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거라구.

그렇게 되면 일본의 처녀들도 한국으로 시집오고 싶어할 것이며 일본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보다도 한국의 남자와 결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게 될 거라구. 알겠어? 「예」

여러분들이 축복의 가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하루종일 걸린 것인데, 여러분은 하루종일 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땀이 나서 죽겠는데…. 오늘도 한복을 입고 나왔더니 상당히 덥구만. 양복을 입고 있을 때보다 더 더워요.

그러면, 여기서 이 선을 넘어서야 되겠나, 안 넘어서야 되겠나? 넘는 데는 그냥 넘어갈 것 같아요? 이 선은 사탄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은 혼자서는 못 넘어갑니다.

타락할 때 혼자서 했습니까, 둘이서 했습니까? 타락할 때에 둘이서 타락했기 때문에 혼자서는 못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 선은 사탄을 앞세우고 출발했기 때문에 다시 넘어오려면 사랑을 중심삼고 넘어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복귀섭리가 얼마나 복잡한지 잘 모를 것입니다. 원리를 알고 나면 간단하지만, 이것을 전부 꿰매야 합니다. 인간들이 얼크러뜨린 것을 전부다 꿰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온 것이 오늘날 이만큼 나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우리가 갈 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머리를 쓴다는 사람은 알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뜻은 기필코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26-307
기필코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뜻
선생님의 일대에 이 엄청난 일을 수습해 가지고 나온 것은 기적적인 일입니다. 그러면 기적의 조상이 누구이겠습니까?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홍해를 건넜으면 무엇합니까? 예수님께서 행했던 여러가지 기적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귀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엄청난, 가장 세계적인 사상, 하나님이 6천년 동안에도 결정짓지 못한 것을 내 일생의 수십 년 생활노정 기간에 묶어 놓았다는 사실, 이것이 간단하였겠습니까, 복잡하였겠습니까?

선생님이 어떤 새로운 말씀을 하게 되면 그것은 그냥 하는 말 같지만 선생님은 이미 전부터 다 생각하고 알아보고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자녀의 날, 부모의 날을 선포할 때 여러분이 그것을 알았습니까? 선생님의 세 아들딸이 어떻게 되는 지 알았습니까? 모두다 해 놓고 나서 설명을 해 주니까 알았지. 그렇지요? 또 난데없는 심정부활의 날, 실체부활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이 무엇이냐? 어때요, 그것이 원칙에 틀렸습니까? 원칙과 순서가 맞게 짜여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기가 막히게 짜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짜여진 사실을 목표로 정해 놓고 지금까지 실행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때가 어느 때인지,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압니다. 선생님이 `10월 1일은 자녀의 날이다’ 하고 선포를 하게되면 그날이 하늘세계의 명절이 되는 것입니다. 조계사 신도회 회장인 윤청정심씨가 통일교회를 알게 뭡니까? 그 사람은 하늘과 직통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통일교회의 명절날이니 케이크를 사 보내야 한다면서 케익을 보내 왔어요. 선생님이 케이크를 사오라고 통보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데 케이크를 보내 왔더라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성들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오늘같은 명절날에 자기가 알아서 정성들이겠으니 그렇게 알아주소’ 라고도 합니다. 또`하나님의 날이 가까와 오니 오늘부터는 정성 못 들이고 내일부터 定성들일 테니 그렇게 알아 주소’ 하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밖의 사람들이 하나님 날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날에 대하여 압니까? 그 사람들이 아는 만큼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가치적인 면에서는 그 사람들만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날들을 결정짓는 데는 사탄을 입회시킨 삼각권내에서 결정짓기 때문에 그날이 역사를 지배하는 날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1960년대에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입니다. 또 1970년대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이고 1980년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이 20년간이 세계적으로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의 21년노정이 어떻게 된 것이냐? 선생님은 20년 후에는 `이렇게 된다’고 결론을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선을 넘어가는 데는 혼자서는 못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축복은 그 선을 넘는 열쇠입니다. 그러면 축복이 고마운 일입니까, 고맙지 않은 일입니까? 「고마운 일입니다」 축복가정을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않습니까? 「좋아합니다」 또 자기를 축복받기를 원합니까? 원하지 않습니까? 「원합니다」 자기가 축복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까? 축복가정을 더 좋아합니까? 「축복가정을 더 좋아합니다」 축복가정을 좋아해 보지 못한 사람은 축복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축복가정도 조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언제 축복받은 가정을 제일 좋아해야 하느냐? 1960년도의 성혼식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날을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날을 고대했어요, 안 했어요? 고대했다고 했지만 막상 그날이 왔을 때 떨어져 나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날이 왔다고 저주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주머니들은 알 것입니다. 얼마만큼이나 알아요, 거기에 장단 맞췄어요, 안 맞췄어요? 밑지는 장사도 이렇게 밑지는 장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밑졌느냐? 선생님에게 직접 원수라는 말은 안 했지만, 참부모라는 이름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인데, 지지리 못난 통일교인들한테 참부모라는 말을 가르쳐 준 것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골탕 먹으며 나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그러나 자를래야 자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르쳐 주긴 올바로 가르쳐 주었으나 그들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을 올바른 입장에 세워 주기 위해서는 자를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서러움입니다.

26-309
자녀의 날을 맞아 생각해야 할 것
축복을 받겠다고 하면서도 축복받은 가정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과거에 사랑하지 못하였으면 지금부터라도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축복받은 가정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축복받은 가정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찝찔하게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젊은 사람들, 축복가정을 존중시했어, 안 했어? 「안 했습니다」 그러면 축복받을 자격이 있나 없나? 이런 모든 원칙이 아직까지 질서가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우려면 내가 핏대를 올리면서 몽둥이로 후려갈겨서라도 세워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해서라도 여러분들, 해야 되겠어요, 안 해야 되겠어요? 아주 몽둥이로 두들겨 맞을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맥도 못추게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바로 세워 주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먼저 넘어야 하느냐, 재림주입니다. 즉 참부모가 먼저 넘어야 됩니다. 참부모가 넘어가면 그 문이 열리게 됩니다. 이 문을 통하여 한 사람만 넘어가면 다른 자녀들도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하여 하나의 문이 열 개의 문, 백개의 문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운세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녀의 날을 맞게 될 때에 뼛골에 사무치도록 감사해야할 것은, 여러분에게 참부모의 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부모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사무치게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찾아 나왔던 단 한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참된 부모의 날입니다. 자녀의 날보다도 참된 부모의 날이 이 땅 위에 탄생하기를 바라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나오지 않고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설령 아버지라 부르더라도 심판기준을 넘어서지 못할 입장에서의 아버지이지, 심판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서의 아버지가 아닌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심판기준을 넘어설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라 불렀지 넘어설 수 있는 자리에서는 아버지라 못 불렀습니다.

심판의 기준을 넘어서서 부를 수 있는 아버지는 영원한 해방의 아버지입니다. 해방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지의 출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사탄세계에 포위되었을망정 그것은 어디까지나 퍼져 나갈 것입니다. 또 퍼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자녀의 날을 맞기 위해서는 6천년 역사를 중심삼고 가름길을 결정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참부모로부터 인연을 부여받아 참부모의 축복을 받아야만 비로소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는 데에는 탕감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지 그냥은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자녀의 날을 맞이하기 전에는 여러분은 참부모와 하등의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뼛골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6-310
참자녀로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
여러분들이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는 탕감법을 통하여, 부모의 뼛골을 통하여서 나왔다는 원리적인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아들딸의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을 세우는 기간 이 1960년도를 중심으로 1961년, 1962년의 3년간에 걸친 40일 전도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그랬지요? 왜 보리밥을 먹어야 되었느냐면, 그 3년 동안이 탕감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은 선생님의 직계의 자녀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복귀해 넘어가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부모를 중심삼은 가인 아벨의 관계를 세워서 가인 아벨을 일치화시켜 나가는 기간이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일치화시켜야 되느냐 하면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일치화시키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 전단계로써, 1960년 이전에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될 때였습니다. 그때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생님을 참 좋아했습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상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경우는 있겠지만, 남자가 남자를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남자끼리 그리워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랑을 중심삼고 보고 싶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안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을 때는 자기의 부모, 형제, 아내, 자식을 다 버리고서라도 달려가고 싶을 만큼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아담 해와가 태어나기 전에는 누구의 몸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해와의 몸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아담의 몸 속에 자라고 있었습니까? 아담의 뼛골 속에 아들딸의 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지만 거기서 자녀의 씨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일치되어 가지고 어머니를 통해서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로부터 자식이 태어나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과 마찬가지 입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여자들,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안 했어요? 너무 좋아해서 소문이 많이 났지. 할머니든, 처녀든, 남자로 말하면 할아버지든, 젊은 남자든 전부다 선생님만 좋아서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심정적 일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의 첫사랑을 중심삼고 새로이 부모의 배를 통해서 탄생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생명의 인연이 시작되지 않으며, 원칙적인 복귀를 하지 않고는 완전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선생님을 사랑하고, 선생님의 감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모든 감정이 선생님과 일치되고자 하는 심정적 방향이 알게 모르게 움직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참부모의 뼛골 속에서부터 심정적으로 접붙임으로써 참어머니의 복중을 통해서 본연의 아담 해와 입장에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어머니를 중심삼고 복귀되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아들딸이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에 그 애기를 중심삼고 여러분은 가인 아벨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6-312
장자 복귀섭리
기독교 역사를 두고 보면, 아담 가정에 있어서 형제인 가인 아벨이 싸웠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복중까지 끌고 들어가야 됩니다. 즉, 복중에서 생명이 출발했기 때문에 이미 태어났지만 다시 복중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켜서 동생이 형의 입장에 서고 형이 동생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가까운 입장에서 싸우는 것이 쌍동이 형제가 싸우는 것인데, 이것이 야곱과 에서의 싸움입니다. 형제의 사이가 조금 더 가까와졌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베레스와 세라는 어디에서부터 사웠어요? 복중에서부터 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장자와 차자의 입장을 바꿔쳐야 하는 것입니다. 장자가 차자되고, 차자가 장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레스와 세라를 두고 볼 때, 본래는 세라가 형입니다. 그런데 서로 먼저 나오려고 싸우다가 베레스가 세라를 밀치고 먼저 태어나 형님의 자리를 빼앗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유다의 후손을 통하여 예수님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원이 벌어진 것입니다.

복중에서 형과 동생이 싸우는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꾸로 된 세계이기 때문에 사탄세계가 형님으로 남아 있는 한, 형이 동생을 주관하기 전에 먼저 동생의 주관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바꿔쳐야 됩니다. 그래서 비로소 복중에서 형과 동생의 입장을 바꿔치기한 것이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이런 일이 역사시대에 유다의 아들을 중심삼고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내용을 잘 알지요? 복중에서부터 먼저 나오는 세라의 손에다가 산파가 홍사로 표시했지요? 그것이 오늘날 공산당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라가 먼저 나왔다는 것을 알기 위해 홍사로 표시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이 형을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라고 불렀습니다. 베레스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동생으로 태어날 아벨의 입장인 베레스가 가인의 입장인 형으로 태어난 세라와 싸워서 복중에서 장자권을 탕감복귀한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하여서 하나님이 앞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시대에 있어서 싸우면 하늘이 앞서는 것입니다. 싸우면 하늘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소란하면 소란할수록 끝날이 가까이 온 줄 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하늘은 이기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베레스가 복중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역사적인 승리의 기반을 세웠기 때문에, 예수님이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되었을 때에는 싸울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반 위에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서 장자의 입장으로 태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모의 역사가 출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를 중심삼은 복귀원칙에 있어서 내적인 복중세계에서는 이겼지만, 외적인 세계에 나와 보니 아직까지 사탄세계가 남아 있으므로 다시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국가를 중심삼고 빼앗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개인을 중심삼고는 승리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기준이 세워졌지만, 국가를 중심삼고는 아직 그런 기준이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다시 국가를 중심삼고 빼앗는 싸움을 해서 사탄세계를 굴복시키게 되면, 여기서 가정적인 기준과 국가적인 기준이 결정되는 것이요, 동시에 세계적인 기준이 결정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26-314
통일교회의 3년노정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은 예수님만이 거쳤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으로부터 이것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상속받지 않고는 역사적인 기원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므로 영적으로 이것을 상속받아서 다시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이렇게 재탕감역사가 복잡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선 근본을 완전히 복귀해야 합니다. 탕감조건복귀로는 양자의 기준으로밖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복귀를 하는데 있어서 그 아들딸 앞에 누가 굴복해야 되느냐? 천사장이 굴복해야 합니다. 천사장이 직접 굴복해야 된다는 거예요. 천사장이 실체로 눈물을 흘리면서 굴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실체로 굴복한 형상을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평면적인 입장에서 세워야 합니다.

이렇듯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면, 천사장이 사탄의 입장이 아닌 충신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에게 순종굴복하여 탕감복귀하는 입장에서 양자에 대하여 계대를 이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입장을 취해 나오던 사탄편을 차자의 입장에 세우고 하나님의 축복받은 본래의 직계 아들딸을 장자의 입장에 세우기 위한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3년노정의 역사입니다. 3년노정의 역사가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선생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 하나된 조직을 세워야 합니다.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 빼앗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걸고 이 싸움을 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3년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도 보리밥을 먹는 동시에 여러분도 보리밥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애기도 보리밥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심정적으로 일치된 내용을 중심삼고 복중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 국가를 걸어 놓고 싸워 근본복귀의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비로소 평면적인 가정의 인연과 종적인 인연이 탄생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복잡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참부모가 나왔다 하면 그 참부모 앞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여기에는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 셋의 세 아들의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세 아들을 중심으로 여덟 식구가 지옥에 떨어졌으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노아의 여덟 식구가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 기준을 넘기 위해서는 여덟 식구를 갖추지 않고는 못 넘어갑니다. 선생님도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세 아들과 같은 입장을 중심삼고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타락한 사탄세계의 인류를 수습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중심삼고 심정부활의 조건을 세워서 심정부활의 날을 선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볼 때, 아벨적인 심정의 인연을 가졌다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적인 심정적 기준을 통해서 복귀역사를 해 나왔지만 그것으로써 아벨적인 심정적 기준을 그대로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에 심정부활이라는 조건을 세워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이 심정부활을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아들딸과 연결되어 가인적 형의 입장에서 심정적으로 하나되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시 탄생하는 실체부활의 조건을 세워야만 축복받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은사권내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그렇게 되면 도저히 깨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는 심정부활의 날을 지극히 거룩한 명절로서 기념해야 합니다. 실체부활의 날을 기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부활절을 중심삼고 선포했습니다. 부모의 날과 심정부활의 날을 합하여 사흘 동안을 명절로 지내게 한 것을 알아요? 왜 그렇게 했는지 알아요? 복중세계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을 결정지어 놓자는 것입니다.

26-316
자녀의 날을 맞이하는 바른 자세
이렇게 볼 때 이것이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큰 명절입니까? 자기 생일과 같은 날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생각하는 잔칫날 정도의 날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천적인 인연을 가진 명절날을 소홀히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면목없는 자신들인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그저 지나가는 한날로서 기념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러기에 세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부모의 날을 선포하고, 자녀의 날을 선포하니 그날을 중심삼고 하늘땅이 걸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해 놓고 다음에 세계적인 만물의 날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진짜 명절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들을 세계에로 연결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세계 40개국을 순회하면서 120개 성지를 택정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놀기 위해 다닌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국에 있는 8개 도의 성지들을 중심삼고도 한국을 세계와 연결시켜 나가야 합니다. 세계 각국의 성지가 한국의 돌과 흙을 중심삼고 하나의 핵심적인 축복의 기점이 되어야만 그것이 중심으로 해서 세계가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놓은 기반 위에서 1968년 초하루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의 날을 선포했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터 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한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뼈살을 자극하면서 온갖 정성을 모아 가지고 피어린 투쟁을 했는지 여러분들은 모를 것입니다. 들어보니 그렇게 되는 구나 할 뿐이지, 그 깊은 내용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위하여 일생 동안 정성을 다하고 천년 만년 정성을 다하더라도 그 은혜에 보답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국가 전체가 합해서 이 뜻을 중심삼고 충성해도 선생님의 은혜를 갚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날에는 세계는 자동적으로 통일되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을 세워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곡절을 거쳤겠는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날을 맞기 위한 여러분의 자세는 어떠해야 되는가? 이날을 대대손손, 천추만대에까지 귀한 날 중의 제일 귀한 날로서 찬양하고 모시며 지키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자녀의 날인데도 자녀들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전부다 엉터리 자녀라는 것입니다. 교회면 교회, 부모면 부모에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중에 축복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앞으로 여러분들은 이런 날을 중심삼고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또 앞으로 세계가 이날들을 영원히 기념할 수 있는 날로서 선포해야 합니다. 이날에는 소를 한 50마리 정도 잡아서 잔치를 벌여 놓고 오가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서 접대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들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통일교회 자녀의 날이 다시 오기를 고대할 것입니다. 이처럼 앞으로 전세계의 인류가 그날이 오기를 고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미리 한 달 전부터 준비하여 잔칫상을 잘 차려서 배고픈 사람, 먹고 싶은 사람은 전부다 와서 먹어라 하게 되면 상당히 많이 모일 것입니다. 떡봉지를 한 10만 개 만들어 놓고 준다고 하게 되면, 이것을 받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설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다가 별의별 것을 다해놓고 준다고 했을 때, 교통이 단절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요, 그렇게 되면 여기에 모여들 사람들의 행렬을 수습하기 위해서 경찰이나 시경 경비과 직원들이 모두 동원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날이 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날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못 만들것 같아요? 「만드실 것 같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서, 세계 인류가 통일교회에서 자녀의 날이라고 하면서 잔치가 크게 벌어졌는데, 그날이 대관절 무슨 날이냐? 하게 될 때 `역사가 기념하는 날이다’할 수 있는 그런 날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인류를 자동적으로 조화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나서서 이런 준비를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꿈만 가지고 있습니다.

26-318
자녀의 날을 맞이한 자의 할 일
선생님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나라에 가서 자랑할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옥 가려 해도 갈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이제까지는 모든 일을 선생님이 지시해 가지고 해 나왔지만, 선생님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시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스스로 이렇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싫지만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자녀의 날을 맞이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맨 먼저 여러분 아들딸의 집에 가서 잔치를 하고, 다음에는 자기집에 모여서 잔치를 하고 그 다음에는 교회에 나와서 잔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생 장성 완성의 3시대 형으로 잔치를 해야 합니다. 상징복귀, 형상복귀, 실체복귀의 입장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징적인 아들딸들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게 되면, 천상에 한이 맺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러니 우리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세계를 복귀해야 하고, 나를 중심삼고 낙원에 가 있는 모든 선영인들을 복귀해야 하며, 교회를 중심삼고 하늘땅의 도리를 찾아 나와야 합니다. 이런 3단계 원칙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은 가정적인 환경에서부터 이날을 기념해야 됩니다. 자녀들이 그날이 오기를 고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이들이 명절을 기다리듯이, 때때옷 입고 맛있는 것 먹을 수 있는 그날이 언제 오나 하면서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자녀의 날이 온다고 좋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그저 건달들같이 그러니 그런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그러면서도 여러분들이 `나는 통일교회 교인이다’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은 그렇게 시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 날로 세워 가지고 세계적인 탕감의 기준을 넘음으로써 국가를 거쳐 세계로 향할 수 있는 하늘의 자유의 천국이 우리 목전에 다가온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무엇으로 보답하고 무엇으로 감사할 것입니까? 이것을 위해서는 쓰러지는 것도 시련을 당하는 것도 영광으로 알고, 갖은 수욕을 당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정에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기뻐하면서 가야 할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피해서 갈 수 없습니다. 만약 그 길을 피해갈 수 있다면 선생님이 왜 고생을 했겠어요? 피해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26-319
가정에서부터 전통을 세우라
이런 점을 중심삼고 결론을 내리자면, 자녀의 날이 역사적인 수난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대한민국에 기점을 잡을 때까지 선생님이 걸어온 노정은 수난의 노정입니다. 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수난이요, 횡적으로는 선생님 일대의 수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필생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세워 놓은 자녀의 날입니다. 이날을 여러분이 맞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대한민국의 남북통일 定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와 공산이 서로 손을 잡아서 전세계를 하나의 평화의 왕국으로 건설했을 때 환영하는 그런 정도의 입장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시정받아야 할 모순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날을 맞이한 것을 놓고 그 이상 감사한 마음과 그 이상 기쁜 마음을 가져 가지고 이날을 대하며 내 자신을 놓고 자랑할 수 있고 이날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자녀의 날을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제 그러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1970년도부터는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970년도에는 여러분의 3년노정이 있게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여러분의 일입니다. 그저 적당히 눈 껌벅껌벅하다가 죽으면 다 될 줄 알아요? 아닙니다. 죽기 전에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날을 세계의 만민들 중에서 우리만이 가진 것을 생각할 때, 여기에서 정성들이는 그 정성 계보에 있어서 누가 제일의 아들의 입장으로, 누가 제일 권세 있는 입장에서 하늘의 명부에 남아질 것이냐?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것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은 결혼한 날이나 혹은 자녀가 태어난 그런 날에도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기념하고 있지요? 그러나 자녀의 날은 여러분이 결혼한 날이나 자녀가 태어난 날, 그런 날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든 사실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모심으로 구원받는다는 입장에서 이런 날들을 존중시하고 그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심적 태도가 365일을 얽어매는 그 기준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런 날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심적 자세를 공고히 하여 가지고 여러분 가정에서 그와 같은 전통의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26-320
기 도
아버님, 얼마나 얼마나 당신이 수고하셨습니까? 이 길을 찾아오시기에 많은 노고를 해 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시여!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역사를 오늘 이 한 시간권 내에 저희들은 듣고 이해할 수 있었나이다. 이러한 때에 저희들은 태어난 것을 아버지 앞에 무한히 감사를 드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제 저희들은 아버님의 아들과 딸의 입장에서, 하늘가(家)의 전통을 상실시키고 아버님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사람들이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몸부림쳐야 되겠사옵니다.

아담 해와가 천륜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원수 조상이 된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이 시대의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천적인 심정을 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완성된 심정의 기반을 세우지 못하고 오점을 남겨 역사상의 모든 조상들과 후손들 앞에 참소받는 불쌍한 무리가 되어선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이 이 모든 것을 매듭짓고 이 모든 것을 해결지어야 할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축복이라는 엄청난 명사를 앞에 놓고 나가는 데 있어서 더욱 아버지 앞에 가까와지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람으로 가꾸어져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지금부터 만 8년 전에 이 날을 허락하여 주셨사옵고, 올해는 저희들이 9회로 이날을 맞이할 수 있음을, 아버님 앞에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당신의 자녀들 또한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고, 얼마나 외로운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자녀들도 필시 그래야 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줄 아옵니다. 하오니 이런 것을 알고, 저희들 앞에 아무리 눈물 흘리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길에 있어서 승리하여 당신을 해방시켜 비로소 안식하는 자리에 모셔 드려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모든 영광을 되찾으시어 아버지의 권한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주관하실 수 있는 그런 본연의 아버지의 자리를 저희들이 마련하는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저희들이 나아가는 길 앞에 새로운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소망에 벅찬 힘찬 가슴을 안고 모든 백성을 대신하여 아버님이 기뻐하시는 개척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달려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을 다시 맞이할 때까지의 기간을 아버님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내년에 이날을 다시 맞이할 때는 저희들이 기쁨과 영광 가운데에서 전국적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께서 축복하신 이날들은 온 세계 만민 앞에 자랑하여 그들이 우러러보는 날들로 세울 때까지, 저희들의 온갖 것을 희생해서라도 세계를 향해 나아가 싸워 승리를 거두어 아버지 앞에 바칠 것을 맹세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후 모든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영계에 있는 선조들과 땅위에 살고 있는 인류와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들까지 오늘의 이 축복의 은사에 다 같이 동참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