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07 to 26-237: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
1969.11.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26-207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
[기 도]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인간들이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절규하고 있는 참상을 바라보시며 눈물지으시는 아버지의 크나큰 아픔의 심정을, 느낄 수 있고 살필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숱한 세월 동안 외로움 가운데 눈물지으셨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참다운 심정의 인연을 붙들고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애달프신 그 사정을 지금까지 토로하시지 못한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저희들은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괴로와하는 이상 자기 생명의 귀함을 절규하였고, 자기 스스로 성공을 추구하였사오나 누구도 그 성사의 결과를 가지고 하늘땅 앞에 자랑한 모습이 없었사옵니다. 또한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갈 바에는 하늘만을 숭상하고 하늘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더욱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결의하고 산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아침 외로운 무리들이 당신의 존전에 모였습니다. 나 자신이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를 스스로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나는 누구로 인해서 이 시간 여기에 왔으며, 어떠한 인연을 맺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있는가를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세상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처해 있는 자리를 완전히 구명해 가지고 아버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결정지어 생애 노정에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야 되겠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이 맺은 인연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큰 것이요, 무엇보다도 귀한 것임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솟구치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스스로 하늘을 그리워하는 흠모의 심정, 이것이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원동력이요, 사망의 물결을 밝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의 방패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으로 몸으로 찬양하여 증거적인 실체로 살 수 있는 그런 인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참다운 사랑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저희 자신을 낱낱이 분석하는 데 있어서 내 얼굴은 누구를 위해서 갖추어져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내 눈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내 귀는 무엇을 향해 기울이고 있으며, 내 입과 내 코는 무엇을 맛보고 무슨 냄새를 맡기 위해 있으며, 또 내 손발은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봉사하기 위해서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진정 하늘과 일치될 수 있는 내 전체의 모습을 갖추어 아버님을 그리워하고 아버님을 모시며 충성하는 자신이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러움의 자리에서 아버지와 사정을 통하는 마음을 가진 한때가 저희에게 없었던 것을 탄식해야 할 자신인 것을 깊이깊이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땅 위에서 산다 한들 7, 80년 또는 100년 이내의 제한된 생활권내에서 살다가 흙에 묻히게 되는 모습들이옵니다. 땅 위에서의 모습이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 땅에서 실적만을 가지고 생활적인 환경을 닦아 나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태어나 살면서 나의 사지백체가 아버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실히 알고 하늘만 의지하며 나가는 모습,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지고 결사적인 자세로 천태만상의 어려움을 헤치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가고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가는 모습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슬플 때 아버지와의 인연을 생각할 줄 아는 저희 자신들이 되고, 기쁠 때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갖추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몰리고 몰린 이 역사를 대신해서 모든 어려움을 딛고 나오시는 살아 계신 아버지가 있다고, 지금 이 시간도 쉬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선의 기준을 찾고 있는 아버지가 계신다고 온 천지가 감동할 수 있도록 목놓아 호소하는 참다운 사람을 당신께서는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저희들은 이 땅의 인류와 더불어 실체로 당신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진정 그렇게 아버지를 모시고 있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못 됐다는 사실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선의 제물을 흠모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그 심정 앞에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빛을 보여 주고 아버지 앞에 사랑스런 자녀가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세가 얼마나 귀하다고 하는 것을 저희들은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감사하며 그런 가치 있는 모습을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아침을 맞이하여 광명한 햇빛을 바라볼 때, 아버지의 심정을 이어받기 위한 아들로서 사망의 무리들 가운데 생명의 나팔을 불고 생명의 뜻을 전해 아버지와 인연을 맺게 함으로써, 그들 앞에 구세주의 햇빛과 같은 광명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하늘을 위하여 가치 있는 생애를 보내며 아버지의 실체를 찾아갈 수 있는 자리, 아버지의 아픈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리를 저희들은 흠모해야 되겠습니다.

가고 오는 인생 가운데 저희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녀시대를 자랑하기 위해 택함받은 모습들인 것을 이제야 알았사옵니다. 사탄과 인연을 끊고 자신을 내세워 하늘과 생명의 인연을 맺어 스스로 아버지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자리, 한많은 역사 가운데 당신의 한을 해원해 드릴 수 있는 자리에 동참하였다는 가치 있는 사실을 저희들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나,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진정 이 땅 위에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버님만이 걱정하시며 아버님만이 홀로 불쌍하게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 불쌍하신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하고 당신을 대신하여 뜻을 책임질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당신은 오늘의 역사시대에 통일제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슬픔과 고통의 자리에 계신 아버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입장을 체휼하지 못한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님의 은총을 받기를 원하고 아버지 안에서 은사의 삶을 살 수 있고, 신뢰 받기를 저희들은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러한 저희들은 당신의 인연을 필요로 하고 당신의 경륜을 필요로 하오니 부디 당신의 생명의 영광만이 저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 초초한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러 당신 앞에 감사하는 무리가 있습니까? 아버지여, 그 자리에 찾아가시어 지켜 주시옵고, 그 자리를 붙들어 주시옵고, 그 자리를 보호하시옵고, 그 자리를 사랑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의 소원 성취를 위하여 싸움터로 달려갈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기를 당신께 약속드리는 이들로 하여금 하늘의 정병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도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고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나이다. 아버지, 친히 여기에 같이하시어서 이들이 하늘을 위해 일하거든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 함께 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지금 저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저희는 어떠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습니까? 혹은 저희 자신, 아버지 앞에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여기에 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이 저희들을 바라볼 때, 아니면 역사적인 선조들이 저희들을 바라볼 때, 오늘 저희 자신의 모습이 진정 아버지를 흠모하는 심정을 갖고 있습니까? 그러한 심정을 지닌 효자효녀의 모습을 갖춰야겠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아버님만을 위하여 살겠다고 모든 어려움을 불사하는, 아버님께서 간섭하실 수 있는 모습이 되기를 그리워하는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를 보시사 대한민국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사망선 앞에서 소망의 터전을 뒤로 남기지 말아야 되겠고, 나아가 아버지의 심정 가운데 못을 박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아버님을 그리워해야 되겠고, 또 몸으로 아버지를 붙들고 충성하는 민족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저희와는 너무나 거리감이 있는 것을 느끼옵니다. 하늘이 이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생사를 결정하는 싸움의 행각을 벌어야 될 것을 생각해 볼 때, 아버님만이 홀로 서러워하고 계심을 느끼옵니다. 이러한 섭리노정을 아버님 한 분만 초초한 모습을 지니시고 가셔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패자로서 서러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라 하더라도 가야 할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저버리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나서는 그 걸음을 힘차게 시작하여 당신을 기쁘게 따라갈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지못해서 따라가는 저희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이 민족과 더불어 맺어진 그 인연을 하늘을 중심삼은 인연으로 세우기 위한 역사를 지금까지 해 오신 아버지시여, 부디 이 나라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을 기억하시어서 이 날도 깊은 심정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옵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이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당신의 소원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직접 저희를 암흑의 세계에서 불러 세워 명령하시며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했고, 나를 위하여 얼마나 바빴고, 나를 위하여 얼마나 마음 아파했느냐 할 때, 진정 저희 스스로 아버님을 모시지 못한 몸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처럼 모시는 자리에서 들어가서 아버지를 맞기 원하였던 나 자신이 아닌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부족함에 사로잡혀 눈물로써 아버지를 대할 줄 아는 마음을 갖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아들딸이라는 거룩한 자리에 들어가기를 고대했사오나,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한 과정적인 노정을 걷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고대하는 소원의 동산을 그리워했사오나 저희들은 억천만사의 사연을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가려 했습니다. 저희들이 당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서 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억울함을 당할 때에도 아버지 앞에서 당하고, 오직 아버님을 향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 아침에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이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방에 널려서 외롭고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무릎을 연하여 당신과의 인연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그 누구도 친구가 되지 않고, 식구의 인연조차 갖출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서 멀리 아시아의 한 땅인 한국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그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역사의 배경이 다르고 시대적 환경이 다를 지라도 하늘의 인연을 따라 눈물지어진 그곳에 기필코 당신이 임재하실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내가 어려울 때 당신이 분부하시고 보호하여 주셨듯이 그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그들에게 빚을 지시려는 분이 아님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의 수고를 천배 만배 갚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이 받들지 못하거든 천상세계에 있는 선조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조건으로 삼아 주시옵고, 땅을 아버지 품에 품을 수 있는 승리의 조건을 세우시어 한꺼번에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넓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을 스스로 감출 수밖에 없는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앞에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부끄럽고, 내 눈과 코와 귀와 입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부끄럽사옵니다. 이러한 내 전체를 감추지 않고는 당신을 바라볼 수 없고, 당신을 기억할 수 없는 모습이옵니다. 하오니 이 부끄러운 자신을 폭로하여 한없는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를 부르게 하여 주시옵고, 마음으로는 아버지의 사랑만이 같이해 주시길 간절히 원하고 몸으로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윽한 당신의 자비를 고대하는 아들딸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을 깊이깊이 명심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연약한 모습을 가누며 힘 없는 손을 들어 아버지의 뜻을 붙들려 할 때, 당신이 `오 내 아들아! 내 딸아!’ 할 수 있는 모습이라도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아들딸에게 응답해 주기를 원하는 데도 불구하고 대답하실 수 없는 아버지의 사연이 얼마나 딱하고 얼마나 안타깝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먼 곳에 계셔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의 생활 가운데 계셔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생활 가운데 뿐만 아니라 저희의 마음 가운데, 저희의 뼛골에 사무쳐서 세포의 한 부분 부분에 계셔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로 말미암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위한 나 자신이 되어 원수의 세계를 쳐부술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겠습니다. 나를 세워서 사망의 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 삼아 달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아버지 앞에 절규하며 나설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복빌어 주옵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1969년도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연두에 세운 `전면적 진격’이라는 그 표어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저희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남아진 이 두 달! 저희들이 앞으로 해야 할 중대한 일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제 통일의 무리가 가는 길 앞에 운명이 가려지는 중대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밤이면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고 낮이면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 빛과 광명을 보게 하는 것이 하늘의 마음이요, 하늘의 방향인 것을 느낄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 빛을 바라보며 깊고 놀라우신 아버지의 역사 그 자체를 찬양할 수 있고 흠모할 수 있는 동기를 삼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여지는 자연 만상이 저희들과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저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인연인 것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찬양하고 땅이 찬양하고 만민이 찬양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에 당신의 자비를 같이하여 주옵고, 통일가에 있어서 새로운 날을 찬양하고 새로운 달을 찬양할 수 있는 이날과 이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남아진 이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이 뜻하신 뜻대로 주관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당신이 원하시는 목적 앞에, 당신이 요구하는 그것을 위해서 고이 사라지고 고이 바쳐질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6-214
말 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책임을 지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생각해 볼 때, 부모는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으며 자녀는 자녀로서 그 부모 앞에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사회와 국가 앞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두고 보더라도 그 나라는 세계의 정세, 세계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보더라도 그 세계도 하나의 우주를 지향하는 섭리 노선 앞에 어떠한 단계적인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오늘날 이 땅을 대해 역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책임을 수행하기에 수고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게 됩니다.

26-214
모든 책임의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책임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아닙니다. 개인이 태어나서 책임하는 것도 그 책임의 동기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나라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종적인 기준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져야 할 책임의 동기도 가정에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국가형성의 동기도 국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세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동기는 전부다 하나님께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기의 기원을 찾아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아니 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로 말미암아 천태만상으로 벌어져 우리들 앞에 부여된 그 책임도 하나님으로부터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책임과 일치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에게는 마음이 원하는 책임이 있고 몸이 원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원하는 책임은 무엇이냐? 이 모든 책임을 부여한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이러한 책임을 하라고 명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그 명령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성사하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어떻게 치리하느냐 하는 이런 과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살이인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개체의 마음과 몸은 매일같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과 몸이 원하는 것이 상반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사회 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혹은 자기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의 말 가운데서도 마음이 원하는 것, 몸이 원하는 것이 상극되고 상반되는 사실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에서도 그렇지만 일년을 중심삼은 자기의 계획도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년을 중심삼고 거쳐 가는 동안 마음이 원하는 목적을 수행하는 방향에 몸이 일치되지 못하고 상반되는 방향을 취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6-215
참된 사람이 되려면
그러한 개인을 합한 것이 가정이 되었고, 가정을 합한 것이 사회와 국가가 되었고, 국가를 합한 것이 세계가 되었다 할진대, 그 세계의 정세라든가 세계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귀결될 것이냐? 오늘날까지의 모든 역사적인 현상은 마음의 형상에 의해서 빚어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각자가 마음과 몸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모든 흐름과 역사도 수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 마음과 몸이 방향을 달리하여 싸우고 있는 형상을 그려 놓은 것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진정한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진정한 책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책임을 진 사람, 즉 책임을 부여해 주신 하나님과 더불어 역사과정을 거쳐 목적한 바 결과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양심을 중심삼고 일생에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참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은 역사적 동기와 더불어 그 목적은 이루는 과정에서, 동기와 목적을 일치시킬 수 있는 입장에서 온 천지 앞에 `나는 책임을 다했노라!’고 하며 자신 있게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는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있기 때문에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한 그 목적을 이룬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오늘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이냐? 또한 오늘 이 시대를 어디서부터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아 수습해야 될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의 동기가 되시는 하나님과 그 인연을 따라서 태어난 우리가 그분의 목적과 우리의 양심의 방향이 일치되어서 최고의 결과에 이르게 될 때, 오늘날의 사회나 우리가 바라는 목적은 거기에서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개체를 두고 미루어 볼 때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양심의 기원으로부터 양심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양심의 목적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흐름에 부딪치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위인들이 이 땅 위에 왔다 갔고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이 땅위에서 수고하고 갔다 하더라도, 그 지향한 목표가 천륜의 방향과 일치됐느냐, 즉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목적과 일치된 방향으로 갔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갔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이 역사적인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나’라는 한 개체는 아무리 작더라도 어떤 가정의 가장이면 그 가장의 한계권내에 머무는 개체가 아닙니다. 가정의 일원으로 태어났지만 아무개의 자식이라는 한계권내에 머무는 자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개체는 비록 한계권내에서 태어났지만 그 한계를 넘고, 역사적인 한계를 넘고, 세계사적인 한계를 넘어서 최후의 책임을 완수하는 목적의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양심의 방향을 여러분은 생활권내에서 잘 느낄 것입니다.

26-217
마음의 지향성과 인간의 가치
그러면 그 양심은 어찌하여 내 자체를 이렇게 재촉하는가? 그 양심은 그런 방향을 원함과 동시에 `나’를 향하여 악하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라’ `참되라’ 혹은 `모든 사람이 추앙할 수 있는 중심이 되라’고 매일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몸인 것입니다. 이 몸을 여기에 백방으로 상대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백방으로 반대가 됩니다.

이렇듯 마음이 돌아가는 방향이 오른편이라면 몸이 돌아가는 방향은 그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도는 방향이 오른편이고 몸이 도는 방향이 그 반대라 할 때, 마음과 몸이 상충되는 환경 속에서 어느 정도만큼 몸을 바른쪽으로 돌려 놓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이 태어나 일생 동안 살다가 운명하기 직전에 남겨 놓을 수 있는 인격이 되고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중심삼고 역사가 흐르는 방향 앞에 얼마만큼이라도 플러스되는 내용을 남겨 놓았다고 할 때에, 그것은 그 사람이 천법과 천도에 의해서 선한 기준을 이루어 놓았다는 결과가 되는 것이요, 책임을 수행했다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철이나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은 자기 민족만을 중심삼고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 민족만을 위하는 사람은 성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역사를 넘어서 천륜이 바라는 하나의 세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랜 역사시대를 두고 후대가 그 사상을 추앙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실질적인 생활을 통하여 계대를 이어 지상에 인연을 맺어 놓은 그런 사람이 될 때, 성현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1세기 혹은 수 세기, 혹은 수십 세기, 수천 년 역사가 그로 말미암아 인연되어진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는 역사적인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구상하고 주장하였던 거룩한 뜻이 현실사회나 온 세계적으로 얼마나 전개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내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 소원하던 것이 그 당대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역사시대에 얼마나 책임적인 가치로써 남아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 세계사를 중심삼은 그 사람의 책임을 타진해야 합니다. 그 타진의 결과는 그 사람의 인격의 비중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도 알다시피 예수는 민족에게 몰리고 쫓기다가 사라져 간 한 청년에 불과한 것입니다. 30세가 갓 지난 한 젊은이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의 생애는 비참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전부다 손가락질했습니다. 자기 부모마저도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달려가 품어 줄 수 없는 부끄러움의 자리에서 사라져 간 예수, 갈릴리 해변을 거닐던 그 예수가 오늘날의 세계적인 문화세계를 창건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 그 시대에는 꿈도 못 꾼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는 결과를 세계에 남겼느냐?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책임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예수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그 뜻, 하나님이 동조하시는 그 방향을 통하여 목적의 세계를 이루어 드리려는 마음에 사무쳐 살았습니다. 그 삶이 역사의 어떤 사람보다 훌륭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를 역사의 대표자로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희생과 순교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도 남아질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냐? 우리의 본심은 이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지남철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이것을 어떠한 외적인 힘으로 제지하게 될 때, 마음은 그 세력을 뚫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소망하는 역사의 인연이 남아졌기 때문에 그 길을 추구하는 인생들은 필시 마음이 원하는 길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재촉하는 본연의 작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작용을 지닌 인간을 어떤 힘으로 아무리 막는다 하더라도 그 순간은 막아질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그 어떠한 세력을 가지고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죽음의 고개를 밟고 넘어서 그 뜻을 이루어 나가며 발전한 것이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종교보다도 순교의 피를 많이 흘린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이러한 본심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왜? 인간의 마음이 선의 방향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본심이 천륜의 방향에 일치하고자 하는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한, 이것을 아무리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부정하는 그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이지 본심 그 자체는 부정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오늘날 수많은 사상계, 문화계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어떠한 문화든지 종교를 기원으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종교가 마음이 원하는 세계, 마음이 가고자 하는 목적의 세계로 향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그 길을 폭넓게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또 종교가 시대 시대에 있어서 마음을 수습하는 중심이 됐고, 역사시대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심이 됐기 때문에 종교를 중심삼고 문화가 창건되고 발전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미루어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개체를 두고 보면 개체는 지극히 작지만 어떠한 한계권내에 제한받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책임의 동기가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질 때까지, 온 세계가 한 가족의 인연 이상의 세계를 빚어낼 때까지 반드시 그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26-219
마음이 소망하는 최고의 기준
비록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창조본연의 목적이 사랑의 가정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잃어버린 인연을 재차 수습해 가지고 선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반드시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온 만민이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을 중심한 인연의 고개를 넘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참된 부모를 찾아야 됩니다. 참된 가정을 찾아야 됩니다. 참된 종족을 찾아야 됩니다. 참된 민족을 찾아야 됩니다. 참된 국가를 찾아야 됩니다. 참된 세계를 형성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인류들이 막연하나마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세계의 평등, 만민의 평등을 부르짖으며 공히 평화와 행복의 이상세계를 추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상적인 참된 기원, 이상적인 참된 개인, 이상적인 참된 가정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하는 것은 모르지만 일면적인 입장에서 막연하게 추구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연한 가운데서는 성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지에서는 성사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성사시키기 위한 참된 하나의 이상적인 기준이 무엇이냐? 그 기준은 몸만 가지고는 될 수 없습니다. `나’라는 관념권내에는 몸과 마음이 있지만 반드시 마음이 중심이 돼야 됩니다. 마음을 떠난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최고로 높일 수 있는 자리, 즉 마음이 소망하는 최고의 안식의 기준에서부터 참이 나오는 것이지 이것을 넘어선 참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는 무엇을 개척하기 위해 싸워 나왔느냐? 마음 기준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참된 마음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참된 인연을 가지고 태어나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보면 참의 기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된 결과의 세계를 가지기 위해 깊이 찾아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는 기필코 신(神)의 관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절대자를 중심삼게 됩니다.

그러면 절대자와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 국가를 형성하는 주권자와 국민과 같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높은 자리, 그보다 더 심각한 자리에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인연은 부자의 인연입니다. 부자의 인연밖에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처할 수 있는 최고 동기의 기원지가 어디냐? 어디서부터 동기의 목적, 동기의 기원을 삼아 가지고 어떤 결과를 목적하고 있느냐? 절대자와 나와의 상대적 관계로는 부자의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우리 인간은 아들딸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 무엇이 있겠어요? 사랑을 중심삼고 논의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이상을 중심삼고 논의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누구를 만나 같이 살고 싶은 이상의 자리를 추구하게 될 때 그 기점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아버지요 나는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우리 생명의 발원은 부자의 인연입니다. 아버지가 없어서는 내가 번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기원을 파헤쳐 보고 우리가 존속하는 가치의 내용을 파헤쳐 보게 될 때, 아버지, 아들, 딸 그것밖에 없습니다. 결국은 이런 관념에서 보니 종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럴 법한 원리에 입각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강조하고 그것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여서 우리의 생활감정과 육적인 생활 환경에서 부정할 수 없게 법도화시킬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종교가 나오게 될 때, 그 종교는 아무리 복잡한 세계권내에 있다 하더라도 천지창조의 기원에 입각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로 돌아가지 않고는 올바른 종교의 기원이 되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동기가 되어 그 인연을 따라서 역사과정을 거치고 시대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때를 맞게 될 때에 비로소 인생으로 태어난 본래의 사명과 책임을 완수한 그 결과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6-221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길
그러면 그 기원이 무엇이냐? 참된 하나님, 참된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럼 참된 목적은 무엇이냐? 이 세계에 참된 이상의 길, 모든 인간이 안식할 수 있는 본연의 그 길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의 아들딸이 참되게 살 수 있는 가정을 이루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아들딸의 자격을 갖추어 환희의, 광명의 그날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 온 천지간에 나타날 수 있는 사나이와 아낙네가 누구인고!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바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승리의 기준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러한 것에 대해 세부적이고, 분석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제시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후에 새로운 문화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하나의 동기를 지니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을 주장하고 나온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효자라는 칭호를 갖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주장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과정을 거쳐서 충과 효의 내용을 가진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선 자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없습니다. 그 심정에는 슬프고 기쁜 모든 사연, 즉 역사와 더불어 동반하였던 슬픈 사정이나 소원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심정을 알게 될 때는 인류의 역사적인 심정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고빗길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 인류가 알게 될 때 인류는 비로소 참된 인생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 인류는 무관심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의 모습을 갖추려면 역사를 주도하며 역사의 인연을 만들어 나왔던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원하는 책임자’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책임은 여러분 혼자 뚝 떨어져서는 도저히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배후에 울타리가 되고 터전이 되는 하나님의 심정과 역사의 인연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수습하고 책임진 하나의 중심의 가치를 들어내 가면서 싸워 나가는 데서만이 역사적인 책임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 일생에 하나님이 원하는 책임자로서의 소행이 있을 수 있지 그러지 않고는 있을 수 없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26-222
마음을 중심삼은 목적의 세계를 이루는 사람이 되라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양심을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마음이 바르다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냐? 대한민국의 어떤 예법을 중심삼고 바르다고 할 수 있느냐? 그 예법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풍습과 습관은 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바르다고 하더라도 역사시대의 어느 시점에서 부정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바르다는 말 자체는 절대적인 기원, 절대적인 것을 중심삼고 보면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동등한 입장이라든가 상대적인 입장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자기 독자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역사의 종착점까지 직선으로 흘러 나가는 길이 있다고 합시다. 인간은 일생을 두고 그 길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올라가서 죽으면 선한 사람이 되고 내려가서 죽으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몸과 마음이 싸움을 하는 가운데 부대끼는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대끼더라도 최후에 남아지는 문제는 몸과 마음의 싸움에서 어디가 승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올바른 양심의 기원과 목적에 얼마만큼 일치될 수 있는 것을 남기고 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싸워 나가야 됩니다. 그 가치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 오늘 우리의 일생 가운데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행락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제시할 때 악한 사회를 혁신하여 새로운 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동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런 목적을 두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눈이 올바르고 내 오관이 바르게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애노정의 모든 것을 그 목적에 조화시키고 일치시키기 위해 활동해야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그 가치와 목적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소망이 기필코 역사노정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내 생애의 종착점에 반드시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루겠다고 이것을 응시하면서 가는 사나이와 아낙네가 있다 할진대, 이러한 인생이 있다 할진대 이는 힘찬 인생인 것입니다. 이는 역사상의 어떠한 영웅보다도 어떠한 성현보다도 승리적인 입장에서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될 때 비로소 책임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요, 또한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짊어지고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서 세계를 향하여 주장하고 나설 때에 세계가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서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합니다. 개인도 좋고, 가정의 주부도 남편도 자식도 좋다는 것입니다. 다 좋다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과 일치된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26-224
기존의 주의나 사상으로는 행복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는 결국 무엇을 빚어 놓았느냐? 나라는 존재는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싸우고 있는 인간입니다. 이처럼 나와 같이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 상충되는 인간을 합해 놓은 것이 세계의 36억 인류입니다. 이 세계는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을 합해 놓은 결과의 세계이기 때문에 싸움이 안 벌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의 싸움이 이 세계의 싸움의 형태와 결과를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오랜 역사노정에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계가 거쳐온 역사요, 또한 오늘의 현실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세계를 수습하는 데는 어떤 주권국가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되느냐? 마음을 중심삼고 전부가 승리할 수 있는 참된 동기와 결과의 내용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는 날에는 세계의 모든 문제가 풀려 나갑니다.

그러면 세계의 싸움을 누가 말릴 것이냐? 오늘날 세계의 어떤 주의나 사상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중심삼은 인본주의 사상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사람의 마음이 자기로부터 시작됐어요? 그렇다면 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됐다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본주의를 중심삼고 세계는 하나될 것입니다.

태초에 인류의 시조가 자기 마음이 동기가 되어 태어나야 되겠다고 해가지고 태어났습니까? 인간은 어디까지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주체적이라고 아무리 큰 소리치고 우겨도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본주의 사상의 종말은 부정적인 결과에 봉착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오늘날 선진국가의 문명이 전부 좋다고 주창해 나오던 것들을 부정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금 미국에서는 히피족들이 난리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선물입니다. 천륜을 어긴 악에 대한 보응입니다.

그러면 부정적 세계의 종착점을 바라보는 이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본주의 사상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질제일주의, 물질만능주의로도 안 됩니다. 양심이 인간을 존재하게 한 동기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질도 그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기원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3세기 말엽부터 시작된 문예부흥 당시의 사상이 인간을 신(神)의 이름권내에서 박탈하기 위해 공세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역사를 거쳐 오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신(神)은 죽었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살았느냐? 신이 죽었다면 인간은 망해야 합니다. 신이 죽었다면 인간은 살았느냐? 신이 죽기 전에 사람이 먼저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은 송장 떼거지들이 신은 죽었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제도에서는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즉, 인본주의 사상과 유물사상, 공산주의 체제로는 인간의 행복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인간의 이상과 해야 할 책임을 아무리 수행하여 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흘러갑니다. 부정당해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마음앞에 몸은 언제나 부정당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몸을 위주로 한 것은 부정당해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는 신(神)을 부정하고, 양심을 부정하고, 인격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유물론을 중심한 논리법도내에 사람을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논리나 이론을 지배하게 되어 있지 얽매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세계는 이론이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론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은 어떻고 어머니의 사랑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상적인 사랑이 이념에 흡수된다면 그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 이론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만들어 놓을 수 있어요?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목적 자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26-226
이상세계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이론을 능가하여 세계적인 정상에 올라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여기에서 비약해야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비약해야 되겠습니다. 어떻게 비약해야 되느냐? 수직으로 비약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의 역사로는 안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렇게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흘러가는 물결처럼 사라지는 곳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계가 요란하고 혼란되더라도 각자의 결의가 문제입니다. 절대적인 양심의 방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천년을 내려온 선조들의 양심의 방향이나, 몇 억천만 년 후의 후손의 양심이나 그 방향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혁명할 수 있어요? 그것을 혁명할 수 있는 주의 주장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양심은 혁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유물변증법이 모순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양심세계에 혁명이 있어요? 사랑의 세계에 혁명이 있어요? 남자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혁명할 수 있어요? 사랑을 투쟁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엉터리 사상이 오늘날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약하고 부족한 인간 자신을 반성하며 통회하는 일이 벌어져야 됩니다. 이러한 세계를 돌이켜 새로운 목적지, 새로운 이상의 본향을 향하여 힘차게 앞서서 출발할 수 있는 사상이 있다면 그 사상은 세계를 재패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무슨 책임을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책임을 해야 됩니다.

이상세계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참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이상세계에 거짓 사랑에 있으면 되겠어요? 이상세계에는 어떤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참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참된 사람, 즉 참된 아버지, 참된 어머니가 있어야 됩니다. 또 참된 형님, 누나, 참된 동생이 있어야 합니다. 참된 아버지와 참된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참된 아버지와 참된 어머니를 중심삼은 참된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이들이 없어서는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성경 66권의 난문제를 전부다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중심으로 하였느냐? 참된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때려 보세요. 안 망합니다.

참된 가정을 찾아가려면 그 참된 가정의 중심이신 참된 아버지를 섬겨야 합니다. 참된 아버지가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을 지으신 분이 참된 아버지시라면 그 참된 아버지를 모셔야 됩니다. 그런데 참된 사랑을 못 했습니다. 참된 사랑을 못 했으니 참된 생활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 마음의 동기가 되는 분입니다. 우리 인간의 제일 원천이 되는 분입니다. 우리 이상의 기원이 되는 분입니다. 이 기원을 빼고서는 결과가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빼놓고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참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기준은 어디냐? 부모를 잃은 고아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 이 땅 위의 인류입니다. 그런데 그 고아 앞에 잃어버렸던 부모를 찾아 주게 되면 그의 환희의 함성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세상을 정복하여 억만 거금을 손에 쥔 명장의 승리는 이 기쁨에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 어머니 앞에 가지 않고는 참된 자녀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이 사실적인 하나님이었느냐? 관념적인 하나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적인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생활을 위주한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 하나님이 못 됐습니다. 생활권 밖에서 하늘나라를 조성해 온 하나님은 됐지만, 심정세계에서 우러나 가지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하나님은 못 됐습니다. 이처럼 막연하게 하나님을 추구해 나왔기 때문에 현실적인 과학세계에서 종교가 추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의 말로는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새로운 분야를 제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다시 살 길이 어디 있느냐? 이것을 신앙노정에서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역사노정에서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절대성을 지닌 긍정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역사세계에 승리의 가치를 더할 수 있고, 승리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26-228
타락 인간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
그런 관점에서 참된 아버지가 가는 길 앞에 여러분은 어떤 참된 일을 일생 동안 그려 놓을 것이냐? 아버지의 일을 실천해야만 참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도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동작이라든가 움직이는 작용은 반드시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는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시작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과가 나빠지길 바라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시작이 되었으면 동기보다도 플러스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동기 없이 결과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목적이 이루어지면 동기와 결과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플러스되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세상에 있어서 여러분의 활동이나, 혹은 물질세계에 있어서 화학작용과 물리적인 현상 등 전부다 마이너스되기 위해서, 손해보기 위해서 운동하는 것은 없습니다. 가만히 두고 보십시오. 손해보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가.

여러분! 여기 통일교회에 무엇을 하러 왔어요? 대답해 보세요. 손해 보기 위해서 왔어요?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 활동하는 것이나, 혹은 일은 없지만 아침에 일찍 밥을 먹고 명동거리에 나간다 했을 때 손해보기 위해 그럽니까? 여러분 자신이 오늘 나가면 손해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암만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갑니다. 마음이라도 플러스되어야 나가는 것입니다. 전부다 그렇습니다. 손해본다 하는 마음이 있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손해보는 곳은 목적과는 너무나 다른 곳입니다. 그 말이 뭐냐? 손해보는 것은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려면 반드시 작용을 하면서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손해보게 되면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종교적인 논리로 보면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왜냐? 종교는 이 세상을 위해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손해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나에게 별의별 욕을 많이 합니다. 문선생이 빨리 망하라고 저주합니다. 그러나 삼천만이 죽었으면 죽었지 문선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기는 내가 왜 망해! 인류 역사는 새로운 것을 들고 나오면 그런 무리를 깔고 뭉개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돈의 8촌까지 모두가 반대하여 원수가 된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탄압해 보십시오. 일본이 들고 나올 것이요, 미국이 들고 나올 것입니다. 많이 탄압하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그들을 칠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천륜이 여기에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것 이상은 없습니다. 이길을 가기 위해서 과정을 통하고 있는 사람들, 인생의 귀일점을 향해 가며 이 길을 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벌을 준다면 하나님은 망합니다.

예수도 그런 관점에서 죽어갔습니다. 아무리 쳐도 치는 사람이 결국은 말 없이 정복당하게 됩니다. 아무리 큰소리 치더라도 걸려 들어가게 됩니다.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면서 그만한 이익을 봤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알지 못해 그러니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만큼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남들은 전부다 손들고 말았지만 예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역사시대에 나타날 큰 부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벗고 거지새끼 되고 후손이 자기 이상의 비참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심정으로 동정할 수 있었고 나눠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세상과 전부다 격리되어 있습니다. 종교, 즉 신앙생활에 들어가면 물질과 격리돼야 됩니다.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요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완전히 부정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부정은 이익이에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모순이 있는 것 같지요. 그렇지만 그 반면에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종교는 이것을 찾아야 됩니다. 이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외적이 면을 완전히 청산짓자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식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 가정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숭배하고 있는 그 나라의 어떤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그 무엇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과 권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참을 중심삼고 또한 가치 문제를 중심삼고 미래에 제일 가치 있는 것, 제일 위대한 것을 먼저 추구해야 하는 것이 타락인간이 가야 할 정상적인 길인 것입니다.

26-230
종교의 길은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 길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을 도의 길이라고 합니다. 도(道)의 길은 사람을 중심삼고 가는 길입니다. 도에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가 있습니다. 천도와 인도를 합한 것이 도입니다. 천도의 길이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인도를 버리고 천도를 따라가지 않고는 인도도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인간이 천도를 버리고 타락함으로 인하여 인도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본연의 천도로 돌아가야 됩니다. 천도로 돌아간 다음 인도를 합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의 인도를 종교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에서는 자기를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앞으로 이것을 통일교회 신도들로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네가 네 아내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네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 네 소유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2천년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유대교를 믿으며 선민권을 자랑하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독재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천리에 입각한 말입니다. 공언(公言)을 한 것입니다. 그 공적인 말이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말을 중심삼고 세계를 복귀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은 확신해야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교의 능력이 있습니다. 손해보는 길은 안 가는 것입니다.

백만 원을 벌 수 있다면 난데없이 처음 만난 사람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해도 믿고 줘야 됩니다. 그렇잖으면 계속해서 백만 원을 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확실성이 80퍼센트 있다 하면 다 줘야 합니다. 일생 동안 천신만고 끝에 모아 둔 돈이라 할지라도 한꺼번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이상 하나님의 뜻 앞에 가까운 내용을 제시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가 오늘의 20세기 종말기에 있어서 최고의 문화세계를 움직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앞에 기독교가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기독교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영계에 가서 혼자서 전부다 합니까?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러한 길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심성을 넓히고 인격을 높은 자리로 끌어 올려야 되겠습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세계적인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세계로 전개시키기 위해 죽음의 고개도 개의치 않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보람 있는 생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는 그 길에는 폭풍우도 몰아칠 것이요, 태풍도 불어올 것입니다. 원수들의 화살도 날아올 것입니다. 맞아 죽는 데는 정면으로 맞아 죽어야지 비겁한 자리에서 헛되이 맞아 죽지는 말아야 됩니다. 죽더라도 제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역사를 움직일 수 있고 역사에 빛날 그런 죽음길을 가야 됩니다. 이런 모습이 지혜 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어제 어떤 아주머니와 얘기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이 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그 영감이 뜻을 알고 나서는 죽을 날을 미리 알고 그날을 맞을 준비를 해 왔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이 고행을 안 한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 한 모금씩만 마시며 자기의 몸뚱이의 살을 빼고 꺼풀만 남게 해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세상사람 같으면 죽음을 앞두고 얼마나 허둥대겠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참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고개를 앞두고 착착 환경을 정리하며 뜻깊이 엄숙히 처리하는 그 모습, 내일의 터전을 준비하며 맞을 수 있는 그 자세는 존귀한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6-232
어디에서든지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가 되라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힘차고 진지하고 멋지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백만장자가 되어서 벤츠 같은 차를 타고 다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옷을 입고 명동거리에 바람피우며 다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초췌한 모습이라 해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만국에 최고의 결과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의논하고, 그 세계를 이루기 위한 동지가 되고 그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참다운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연결시키고, 국가에 연결시키고, 세계에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여러분의 사명 분야는 천태만상입니다. 사명이 작으냐, 크냐? 사명이 크다고 해서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결국은 하나님입니다. 한 집안에 아들이 아무리 소용이 있다 없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 집의 아들입니다. 아들이 성공하면 성공한 것이 누구냐? 결국 남이 아니고 자기 가족입니다. 형님이 성공하는 데 나빠할 동생이 있습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있어도 형제가 땅을 사는 데 배 아프다는 말은 없습니다. 가인적인 형제가 되기 때문에 사촌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 아벨의 형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촌이 되는 것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는데 배가 아프다는 말은 있지만 형제가 논을 사는데 배가 아프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높아져도 내 형이요, 잘 되도 내 동생입니다. 동생이 잘되면 형님은 뒤따라 잘되는 것입니다. 모두다 한집안 식구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품에서 나눠 받으며 그 부모의 슬하에서 행복한 가정을 어떻게 이루느냐, 어떻게 효도하며 잘 사느냐가 문제이지, 논밭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 앞에 효도하며 그 심정적 인연을 어떻게 지니고 사느냐가 문제이지 세상에서 출세하여 대통령이 되고 뭐가 되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 앞에 자녀의 심정을 갖추고 사는 것이 복입니다. 심정 세계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위해야 되고,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을 위해 주어야 됩니다. 또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더욱 위해 주어야 됩니다. 결국은 자기를 대신해 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형님이고 나는 동생입니다. 내 대신 남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그를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범위는 다르겠지만 개인으로서 하나님이 제시한 결과의 세계를 이루는 과정에 있어서 절대 마이너스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마이너스시킬 때는 어디로 가요? 지옥 갑니다. 하나님의 뜻앞에 하나님이 가는 길 앞에 하나님도 이익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시킬 때는 떨어져 나갑니다.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플러스시킬 때는 천당 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것은 공갈입니다. 있기는 있는데 선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협박입니다. 불신하는 악당들에게는 공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무엇을 하나 연구해 내야 되겠습니다. 이 지상에 제일 무서운 공갈이 무엇일까? (웃음) 공갈을 쳐서라도 올바른 길을 가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망하게 하면 천벌을 받지만 흥하게 하면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농담이고 여러분들은 하늘이 원하는 책임자가 되어야 됩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면 아버지로서 책임자가 되어야 하고, 자식은 자식으로서 책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에서 책임자가 되어야 되고, 교회면 교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26-233
죽기를 각오하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 고생하라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가정은 사회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계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공식화되어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의 운을 타야 됩니다. 가정은 사회의 운을 타야 되고, 사회는 국가의 운을 타야 되고, 국가는 세계의 운세를 타야 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근대화되고,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세계의 운세 앞에 처진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전역을 거의 다 점령했을 때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웬걸, 일본은 천운을 타지 못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는 세계 운세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운세를 중삼삼고 국가를 움직여야 합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미국이 주장하는 정책이념도 세계 운세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의 운세가 치고 갑니다. 두고 보라구요. 이제 한3, 4년만 두고 보십시오. 아시아 정책에 실패했다는 역사의 공정한 심판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닉슨 대통령이 지금 책임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통일교회의 이 문선생과 의논한다면 좋을 텐데, 책임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을 위주로 한 세계가 될 것 같아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태평양을 끼고 있다고? 앞으로 멕시코 주변이 공산국가가 되어서 미국의 멱살을 잡게 되면 미국에서 월남전의 재판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내에 됩니다. 10년은 무슨 10년, 한 5년만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공산주의 지도자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5년이 아니라 당장에 내년부터라도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번에 내가 미국에 가서 많은 저명인사를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당신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느냐고 정곡을 찌르니 그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지금도 쿠바한테 골탕먹지 않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지금 동서가 작전을 해서 미국의 모가지를 딱 매서 당기고 있습니다. 월남 전쟁에서 후퇴한 미국은 죽은 시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렇게 큰소리만 치다 어떡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속이 썩어 있기 때문에 도려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사회의 내부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몇 해 후에는 미국에 가서 싸워야 될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일교인들은 세계를 살리기 위한 책임을 하여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한국을 중심해서 아시아와 서구 문명권까지도 밟고 넘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지배한 어떤 문화적인 배경을 못 가졌다고 탄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및 그 이후의 세계에 절대로 필요한 사상적인 이념을 가진 종족이 있다면 그 종족은 세계를 주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그런 종족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지금 시련을 당한다고 해서 탄식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천대받는 다고 낙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시련 고통을 빛낼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맞이하게 될 때, 즉 새로운 시대에 찬란한 문화의 기원이 나타나게 될 때, 그 시련 고통은 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적인 방패가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하더라도, 그 반대가 통일교회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혹독한 반대는 몇 십년 후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말 없는 양심의 폭탄이 되어 던져질 것입니다. 원자탄이 되어 던져질 것입니다. 한번 듣게 되면 가슴이 터질 듯이 악에 대한 적개심을 가질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시대는 물론 현실을 넘어 미래에까지 남아질 수 있는 좋은 생명의 원천이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야 남아진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책임을 해야 하느냐? 여러분이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목적하는 방향을 달리하지 말아야 됩니다. 가정의 주부면 주부로서, 혹은 사회의 직장인이면 직장인으로서, 한 나라의 위정자면 위정자의 입장에서 천적인 방향에 일치하여 공리에 따라 책임을 수행해야 됩니다. 한 나라의 위정자가 그러한 입장에 설 때 그 나라는 남아지는 것입니다. 한국이 그럴 때는 미국이 물러가고 공산당이 물러갑니다. 다 물러가는 것입니다.

미국도 후퇴하고 민주세계도 후퇴합니다. 앞으로 민주세계가 그냥 안 남아집니다. 두고 보라구요. 야당들이 민주주의를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남아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남미를 보면 전부다 새롭게 군사정권을 중심삼고 민족 위주한 정책수행을 하는데, 그것은 일국의 발판밖에 안 됩니다. 미국을 반대하고 나서려 하나,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전부다 민족 위주의 이념권에 휘몰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의에 대한 참뜻을 알고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공산주의도 안 됩니다. 그러니 결국 자기 민족주의적 관념을 몰아내야 합니다. 세계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세계주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민족주의 관념을 중심한 세계주의는 존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버리고 세계와 살아갈 수 있고, 민족보다 세계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내정적인 인연을 촉구할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삼천만 민족을 대한민국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서 세계를 살리겠다고 나서도록 만들 수 있는 주의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 사상과 주의가 나오면 그 사상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각오하고 세계를 위해 봉사하다 보면 결국 세계를 구하게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통일교회 식구들, 특히 청년들은 고생해야 됩니다.

26-236
하나님주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 현실에서 그 책임을 다하라
민주주의는 세계를 향해 넘어갈 장벽 앞에서 국가주의로 빠져 못 넘어 갔으니 졸장부들의 말로가 됐습니다. 공산주의도 그렇습니다. 국제 공산주의를 부정하고 이제 국가적 공산주의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씨족, 종족적 공산주의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교조주의란 말이 자꾸 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세계적인 이념의 장벽을 헐어 버리고 세계를 위해 자기 민족을 희생하고 밑거름을 삼을 수 있는 주의가 나타나면 그 주의가 바로 하나님주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계를 위해 제일 가까운 아들딸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지금까지 기독교가 피의 제단을 쌓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일 가까운 사람을 희생시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기원을 갖추어 놨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주의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해서 대한민국의 어떤 정책에 수반되고 거기에 포함된 사나이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권 혹은 공산주의권내에서 사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이러한 주의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에 종말이 오더라도 세계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심정을 지니고 세계를 중심삼은 민족이나 국가의 입장에서 살아갈 수 있는 뜻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에 남아지는 무리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오늘 통일교회가 해야 할 책임이 얼마나 방대하고 중요한 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역사를 수습해야 할 책임을 현실에서부터 실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이념을 중심삼고 더더욱 현실적인 어려운 장벽을 밟고 넘어가서 하나되어야겠습니다. 몸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마음을 중심삼고, 마음은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하늘과 마음과 몸이 일치된 그 사람에게는 평화와 행복과 이상이 정착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기원이 되기 때문에 그 종족도 필시 선의 결과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내적인 동기가 선의 결과로 나타나서 하나의 형태를 갖출 수 있는 때를 형성하여야 이상세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 그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을 알아서 개체면 개체, 가정이면 가정, 교회면 교회에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일치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26-237
기 도
아버님! 한없이 부족한 저희들이오나 당신의 무한한 심정을 헤치고 들어가 영원히 안식하고 싶사옵니다. 아버지, 내정의 세계에서 발버둥치다가 피곤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잠이 들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를 저희들은 흠모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남의 아버지를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가운데는 의붓아버지도 있고, 남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런 명사는 우리가 원치 아니하는 명사입니다. 참아버지, 뼈에 사무치고 살로 느낄 수 있는 그 아버지를 부르고 싶습니다.

당신이 슬플 때 저희도 슬픈 마음을 가진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를 부를 때, 대답하는 아버지를 모셔야 되겠습니다. 또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명령하실 때, 그 명령을 따라 생명의 교차로를 지나서라도 갈 수 있는 아들로서의 고귀한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그 자리까지 저희들을 수습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오늘날 이 모든 사악된 환경에 있어서, 혹은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문제의 나라라는 것을 저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그런 날이 기필코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당신께 버림받아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늘땅 앞에 새로운 운동을 벌였던 곳이 통일교단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눈물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말 그대로 비참한 내용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저희들이 외로울 때마다 언제나 먼저 찾아 주셨고, 슬플 때마다 먼저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연을 붙들고 있는 아들과 딸이 있기 때문인 줄 아옵니다.

당신의 그 은사는 세상의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영어의 몸이 될지라도, 매를 맞아 피를 토하여 쓰러질망정 당신을 염려시킬까봐 자기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탄식하며 몸부림쳤사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보다 더 가슴이 메어지시면서도 그 아픔을 참으며 나는 괴롭지 않다고 오히려 저희를 권고하셨사옵니다. 당신의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외적인 행복을 찾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과정에 패자의 낙인을 찍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남아진 저희들, 저희들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사연을 품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입장에 세워진 것을 무한한 가치로 알고 있었사옵니다. 또한 지난날 역사에 슬픈 사실을 한탄하지 않는 무리가 된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옵니다. 도리어 그것을 감수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버지의 슬픈 역사노정에 심정적인 동반자가 되었고, 내정적인 깊은 인연을 나눌 수 있는 영원한 인연을 가지게 되었고, 사연을 나눌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옵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통일의 역군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이요, 힘이요, 행동이요, 가치입니다. 아버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이 무한한 가치를 역사에 길이 빛낼 수 있는 모습을 고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가 들인 모든 정성이 아직까지 부족하옵니다. 저희가 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부족하옵니다. 싸움터에서 극복하여야 할 사연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희들은 죽음에 또 죽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성의 끝을 찾아내고 충성하려는 도리의 근본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스스로 안식하겠다고 찾아오실 수 있는 행복의 자리, 충효의 자리를 마련해야겠습니다. 그런 자리를 당신은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옵나이까?

그 자리까지 저희들은 가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도 그 세계를 염원하고 내일도 그 세계를 염원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전진하는 힘찬 모습, 힘차게 행군하는 늠름한 모습을 삼천리 반도의 삼천만 민족 앞에, 보이고 세계만방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이 기필코 와야만 되겠습니다. 원수와 인연되어진 세계를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그날을 기필코 하늘과 더불어 이루어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사명이 저희에게 있음을 작자가 명심하게 하여 주옵소서.

죽어서는 안 될 자신의 가치를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살아 남아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살지 않으면 안되고, 내일의 희망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 나가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자신을 스스로 다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많았던 역사의 슬픔을 밟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막고 있는 것을 쳐부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격파하기 위해서 정면으로 충돌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참다운 효의 모습, 충의 모습을 지닌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1월을 맞이했사옵니다. 이제 맞이한 이달이 저희들로 말미암아 슬픔을 자아내는 달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달이 아버지께 슬픔의 결과를 돌리는 달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달로 말미암아 올해를 자랑할 수 있는 해로 장식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의 그 세계는 저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초췌하고 보잘것없는 저희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향하여 무한한 기대를 하고 있사옵니다. 그 기대하는 함성을 듣고, 성원하는 역사적인 선조들의 함성을 들으면서 내일의 승자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가냘픈 저희 모습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모습들이 힘이 없거든 힘을 가해 주시옵고, 낙망하였거든 격려해 주시고 내일의 소망을 북돋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자리를 흠모하고 있는 남한 각지의 식구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통일의 역군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소원성취의 한날이 기필코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지 않으면 오게 해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결의에 찬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아들딸로서 자신을 가진 무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날의 영광과 미래의 영광, 이 세대와 후세의 모든 영광이 당신으로부터 시작하여 당신께 귀결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