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9 to 25-129: 하늘의 성화

하늘의 성화
1969.09.30 (화), 한국 전본부교회

25-79
하늘의 성화
젊은이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승리하려고 합니다. 패자가 되는 것은 절대 싫어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젊은이들이니만큼 앞으로 하늘편에 서서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사회 각 분야에 역사적인 업적을 남겨야 하고, 또 그 분야들을 갱신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할 입장에 여러분은 있습니다.

25-79
세상 젊은이들과 달라야 할 통일교회 젊은이들
여러분은 모두 청년들입니다. 지금 세상의 대부분의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자기 나라에서 어떻게 출세를 하느냐, 또는 자신의 행복한 삶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더 차원 높은 윤리관에 입각해 가지고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차원 높고 넓은 시야의 행복관을 가져야 하고 그 행복관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중심적인 사명의식을 가져야 함을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을 줄 압니다.

그러면 이 세계의 남성을 대표한 젊은이와 세계의 여성을 대표한 젊은이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지도자로서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젊은이들과 가는 방향은 같지만 경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반 대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 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을 꾸미게 됩니다. 그건 여러분도 물론이고, 통일교회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양은 비슷비슷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사회면 사회의 어떠한 도덕권내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혹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가는 방향은 다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로 나간 사람은 그 걸음이 사회에서 머물 것이고, 가정으로간 사람은 가정에서 머물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그들이 그 가정과 사회를 넘어 국가와 세계로 갈 수 있는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신념으로 하루하루 생을 개척해 나가지 못하고, 그 날들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능동적인 실체가 되지 못하면, 언제나 비관과 낙망 가운데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는 가는 방향은 같지만 경우가 다릅니다. 가정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 가정의 가장이 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중심삼은 개인적인 가정의 환경을 타파해서 종족에 연결될 수 있는 가정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민족을 통합할 수 있는 핵심적인 가정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개인의 가정을 넘어 세계의 가정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일반 청년들과 입장이나 생각하는 범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할 개체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개체로서 능동적인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실력을 갖춰야 됩니다. 그래서 힘의 모체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25-80
투쟁을 통해 극복하고 개척해야 할 환경
지금 우리의 사회는 몹시 혼란합니다. 세계의 정세 또한 좌우를 가릴 수 없는 혼란한 상황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환경에 포위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내 자신이 그 환경에 흡수되어 끌려가는, 주체의식이 없는 사람이 되면 나중에는 분명히 패자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혼란한 정세나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우리는 그 입장을 초월해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당당하게 현재의 난국을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그 환경을 수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가진 실체가 되지 않고는 스스로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없으며,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새로운 뜻에 보탬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지금까지 그러한 세파에 부딪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움직이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부가 하나님의 이념을 이어받아 가지고 철두철미한 심정적인 일체의 기준을 세우면 미래의 후손들이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그 찬양의 기준은 한 민족이나 국가권에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이 추구할 수 있는 심정의 기틀로 마련되어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가정은 어떤 어려운 환경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출발하는 가정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해야 할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그 자체에 있습니다. 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도 그러한 목적과 사명을 중심삼고 미래의 방향에 맞추어 가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끼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걸 실천할 수 있는 자체력(自體力)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자체력을 보유할 수 있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기필코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수 있는 사회제도가 되어 있느냐, 또 가정에 있어서도 환경이나 습관, 전통이 그렇게 되어 있느냐 할 때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회에 있어서도 가정에 있어서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다 투쟁하며 개척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정을 이루어 새로운 이념과 일치될 수 있는, 세계의 기준을 세우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불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모진 투쟁을 해야 합니다. 또 투쟁과 개척을 하는 데는 끊임없는 극복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명은 기필코 달성해야 하는데 그것은 누가 해야 되겠느냐? 그러한 사명을 하려고 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기필코 어느 한때에 망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선진국가로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지만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가려는 데 있어서, 그 국가가 끌려갈 수 있고 수많은 민족이 동행할 수 있는 방향을 갖추어 나가지 못한다면, 미국은 머지 않은 미래에 좋지 않은 날을 맞이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라의 기원인 가정에 있어서도 젊은 부부들이 소망의 본체가 되어 나라를 이끌고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희망찬 가정을 이루지 않으면 그 나라 역시 망하게 됩니다.

25-82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현대문명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미국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히피족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국가의 인륜 도덕관에 비춰 봐도 환영받을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퇴폐적인 현상을 벌여 놓고 있는 미국 젊은이들의 말로는 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과정의 기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그들이 동서남북 가운데 일방적인 입장에 서서 어떠한 하나의 기준도 갖지 못하고, 흘러가는 물결과 더불어 그때 그때의 만족만을 취하려는 퇴폐적이고도 용납할 수 없는 현실과 사회제도의 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이니 젊은이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있어서 문명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대 문명을 보더라도 현대 문명을 능가하는 것이 많습니다. 애급 문명이라든가 아라비아 문명, 혹은 인도 문명 등 여러가지 역사적인 뿌리가 되는 문명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명들이 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그 나라는 젊은 세대들에게 자기들의 한계를 개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타오르는 세계관이 상실되고 그 가슴은 페허가 되었으니 전진이 아닌 후퇴를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를 중심삼은 입장에 선 젊은이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그 어느 국가가 자국의 문화를 세계적인 문화로 세울 수 있다고 자랑한다 하더라도, 그 문화에 기대를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미국의 50개 주를 다 돌아봤지만, 그곳에 어떠한 미련도 남길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상이나 어떤 사조에 휩쓸려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장래를 두고 볼 때에는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퇴폐한 그 사회 환경을 박차고 나가서 미래의 성공에 대한 흠모의 마음에 사무쳐 정성을 들이고, 자기의 올바른 주관을 가지고 그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젊은이가 되면 그 사회나 가정, 혹은 다른 어떤 청년들이 거기에 흡수되면 흡수되었지 그를 터치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기원으로 가정의 기준이 갖춰지면 그 가정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시일이 문제이지 새로운 사회는 반드시 발전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25-83
성화대학생들이 가져야 할 기준
오늘날 통일교회가 지니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우리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느냐?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수고하는 무리가 아니요, 통일교회의 교단만을 위해 기도하는 무리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이 나라를 위해 있는 것이고, 이 나라는 세계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 또 세계는 하늘 땅을 위해 있어야 하고, 하늘땅은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천지의 대주재(大主宰)이십니다. 그분은 최고의 이상을 지니셨기에 목적의 기준도 되고 동기의 기준도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있게 된 동기도 하나님이요, 목적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와 목적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그 동기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가정이며 그 가정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이것은 어차피 젊은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기준이요, 모든 것을 한 점에 결부시킬 수 있는 사상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서 그 어떤 사상도 따라오지 못할 내용을 지니고 있는 이것이 바로 천주주의(天宙主義)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의 어떠한 사상도 능가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으로서, 이 사상의 특징은 집입니다. 집 주(宙)자 천주주의입니다. 결국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집, 나라가 살아갈 수 있는 집, 세계가 살아갈 수 있는 집, 하늘과 땅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젊은이들도 이 집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집, 나라의 집, 세계의 집, 하늘땅의 집을 향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집의 중심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개인의 집으로부터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집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계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꾸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세계형을 만들어 놓았지만 하나님은 아직 거기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개인의 집에서부터 사탄 종족의 집, 국가의 집, 세계의 집까지 지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중심삼은 대표적인 힘을 가지고서 사탄의 모든 집들을 부수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다시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귀문제를 말할 때는 개인복귀를 강조해야 합니다. 왜 개인복귀를 강조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면 먼저 개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락권내에서 축복받은 조건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개인복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개인복귀의 목적은 가정복귀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정복귀의 목적은 민족복귀를, 민족복귀의 목적은 국가복귀를, 국가복귀의 목적은 세계복귀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모두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복귀의 목적은 천주복귀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복귀는 곧 제물복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참된 개인이 성장하여 하나의 참된 짝을 찾음으로써 부부의 인연을 맺어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이루었을 때, 이 가정을 통해서 비로소 참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그 참된 가정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가정을 찾고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참된 하나의 종족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종족을 찾자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참된 민족을 희생시켜서 수많은 민족을 찾고, 하나의 참된 국가를 희생시켜서 수많은 국가를 찾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을 복귀하여 가정과 민족과 국가를 형성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를 형성하기 전에 세계 앞에 제물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세계적인 대표자가 되기 전에, 세계를 굴복시켜 세계를 지배하기 전에 세계를 위한 제물이 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내용을 연결시켜 나온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25-85
복귀섭리와 축복가정
여러분은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가정에 대해서 잘 모를 겁니다. 축복은 한 개인의 일대를 놓고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한 남자와 한여자가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한 개인으로서 가정적인 축복을 받는 것이 어떠한 섭리적인 내용이 있느냐? 축복가정은 자신들의 본심에 의해서 생활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을 중심삼아 타락한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복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이것이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러면 사탄에 의하여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좋아서 타락했겠습니까? 진작부터 마음에도 있었고 사탄의 말에 의해 해와가 행동할 때도 좋아서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거기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또한 부정적인 입장에 서게 될 때 양심의 가책과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타락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순리입니다. 그것은 이상적인 터전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축복가정은 오늘날 사회의 가정형태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축복가정은 제물적 기반입니다.

어느 한 개인을 중심삼고 이룬 가정은 종족을 위해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종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민족을 찾기 위한 것이요, 그 종족이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국가를 찾기 위한 것이요, 그 민족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세계를 찾기 위한 것이요, 그 국가가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하늘과 땅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이 찾아야 할 최후의 목적지는 천주입니다. 즉 온 천주를 주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물에는 보이는 땅 위의 삼라만상뿐만 아니라 영계까지 포함되니 그것까지 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주를 지배하려면 천주를 걸어놓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어떻게 이겨야 하느냐? 여기에는 하나님과 사탄이 있는데 사탄을 쳐서 굴복시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최고의 시험을 통과해야 됩니다.

그 시험이 무엇인가 하면, 가정에 대한 시험을 비롯하여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대한 시험입니다. 그런데 종족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세계의 시험은 가정이 없이는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있어 그 가정이 주춧돌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시험을 통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빼놓은 민족, 가정을 빼놓은 국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세계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으로 가야 합니다. 가정을 올바로 이끌어야 사회도 올바로 이끌 수 있고,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올바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관입니다. 이 사상은 어떠한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지닌 사상입니다. 그러니 이 길이야말로 마지막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심정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혹은 세계적인 모든 권위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심정적인 기쁨을 표시할 곳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거느리는 사람들이나 각료들, 혹은 추종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심정적인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느껴야 합니다. 가정에 돌아와 가지고 부부가 서로를 통하여 기쁨을 느끼고, 또 자녀를 통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은 제1차적인 기쁨이지 2차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계를 전부 복귀했다 하더라도 가정이 없는 하나님은 기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 이것은 만고불변의 기원이며 기틀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도 고칠수 없고, 형제도 고칠 수 없으며, 어느 나라의 어떠한 제도로도 고치지 못합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고치지 못하며, 하늘땅도, 하나님께서도 고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것에는 영원히 혁명이라는 명사가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사랑의 곳이기 때문에 혁명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는,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서로 사모하던 것이나 오늘날 현대의 젊은이들이 서로 사모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춘기 때 느끼는 것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을 이루는 기틀은 천태만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같은데 가정으로 자리잡는 그 형태는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망하게 됩니다.

혁명의 요소를 가할 수 없는 그런 기틀로 이루어진 가정은 어떠한 주의나 사상에도 흡수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의나 사상을 지배하고 능가합니다. 이런 기준이 세워진 가정은 십년, 백년, 천년이 가도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유지시키게 됩니다.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 하나님께서 서러워하신 것도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러한 서러운 입장에 계십니다. 지금도 악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회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 우리들이 악의 세력과 강력하게 투쟁하여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누가 하느냐? 가정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 사회를 거치고 민족과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사회에 나가서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25-88
어떻게 참된 사람이 될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
여러분은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졸업을 했다고 합시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여러분이 바로 어떠한 사회 기관의 기관장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도위원 정도밖에는 못 될 것입니다. 어떠한 회사면 그 회사에 속한 일원으로서 그 회사에 제반 규칙에 따라서 계속 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 여러분은 그렇게 제한을 받으며 거기에서 그냥 만족하고 살 것이냐? 아니면 그 제한이 자기 가정의 이념을 실천하기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하여 떨쳐 버릴 것이냐 하는 문제로 끊임없는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투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 이 투쟁의 해결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평상시에 교회를 통하여 철두철미한 사상을 정립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을 끌고 나가는 데 부딪치는 모든 악의 요건들을 제거시키고, 어떠한 어려움이 부딪쳐 와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통일적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1차적인, 혹은 2차적인, 나아가 3차, 4차로 계속 반복되는 사탄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는 것을 자기의 생활 철학으로 삼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싸움이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위한 싸움이 됩니다. 보다 고차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현시대에 부딪치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싸워 나간다면 그러한 신념이 나라를 구하게 되고 세계를 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마음을 중심하고 자신의 생애를 지낼 때 현실에 부딪치는 모든 외적인 환경을 제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체의식과 주인의식을 지녀서 책임을 지고 결의하고 맹세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실체가 되지 않고는 악의 세파를 타개해 나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자기 만족만을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을 꿈꾸며 사는 것이 생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 국가가 구성되려면 주권이 있어야 되고 국민과 국토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입니다. 그러면 주권은 무엇이냐? 그것은 국가의 정신적인 터전으로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국민은 주권을 가지고 국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권내에 여러분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에 정권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박이라는 사람이 주축이 되어 정권을 이루면 박정권이라 합니다. 그 정권이란 뭐냐? 정사, 즉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데는 올바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집권자가 되어야 하느냐? 아버지와 같은 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아버지는 자기의 자녀를 세계에서 최고로 사랑하는 아버지여야 합니다. 국민이 무입니까? 그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국토는 아들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나라의 기반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냐 하면 국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분이니 여러분이 참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참된 종족의 기반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참된 주권을 형성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새로운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변혁과 혁명의 과정을 통해 참된 주권의 시대로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주권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주의 사상이 필요하며, 새로운 주의 사상이 나오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나와야 합니다. 또한 세계적인 국민과 그 국민을 중심한 세계적인 국토가 나와야 합니다. 7억이라는 국민을 가진 중국이라는 나라도 세계적인 인물이 나오도록 중간에서 보조 역할을 하는 국가에 불과합니다. 현대의 과학을 통한 물질문명이나 문화라는 것도 모두가 부대조건에 해당됩니다. 이런 것들을 세계를 원활하게 체계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적인 조건에 불과합니다.

결국은 사람과 경제가 문제입니다. 대한민국도 제일의 문제가 경제입니다.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만 있으면 전도하는 것도 간단합니다. 그리고 돈 버는 것도 간단합니다. 우리가 계획하여 20일만 수고하면 우리의 목표액을 벌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관리하고 주관하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그 돈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도 있고 주관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민족성과 국민성을 지닌 나라는 오래 건재합니다.

25-90
국가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젊은이
이러한 기준에서 한국 국민을 볼 때, 그 국민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 그런 사람들이 구성원이 되어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단시일내에 어느 정도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 모두가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참된 사람, 참된 국민은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도 철두철미한 사상을 지녀야 하고, 그 어느 나라의 사상이라도 능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나라의 문화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이 지금 불쌍한 입장이라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거지라 해도 자식을 잘 낳으면 그의 다음 대에서는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여러분 자신이 나라의 어떤 대표적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할진대 그 나라의 기반은 거기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작전을 해 가지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냐? 지금 사회는 어떠한 사람으로서 나가야 하느냐? 참된 사람이 되어서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가지 못했던 그 길을 내가 능히 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망의 날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가를 완전히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천정이 감도는 천지촌을 만들어 거기서 천의의 승리의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기반만 갖추게 된다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그에 대한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생기면,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깁니다. 이것은 천리원칙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문제삼고 들고 나오겠지만, 그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솔선해서 무엇이든지 해야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정세에 이용당하고 소화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즉 타락한 세계의 국가나 국민에게 소화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의식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과 같이 사회구조가 제도화되어 있는 나라에서 어떠한 운동이 벌어졌을 때 인격적인 면에서 그것을 능동적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국을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어떤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인격적인 기준을 가지고 천명과 천의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승리의 기준을 공고화하고 그것을 하늘이 구원의 복지로 삼는다면 거기서부터 세계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사상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공부해서 알고 있듯이 한 국가나 민족이 망하게 되는 원인은 그 나라의 국민이 시대감정을 초월하지 못하고, 그 시대의 조류에 빨려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주의 사상이 아니면 반드시 그 시대의 조류에 빨려 들어가게 되고, 또 그러면 그 민족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위대합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통일교회 식구들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왜 교회를 사랑하느냐?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종교와 정치는 분립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종교를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그런 종교가 나라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나라를 이용하고 그 사회를 이용물로 취급하려는 종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있는 종교여야지 나라에 해를 끼치는 종교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좋은 의미에서 혁신하고 좋은 의미에서 새로운 이상의 환경을 향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상적인 형태를 갖춘 종교를 나라에서는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제시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대해서 선생님이 애통해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환경입니다. 전국의 모든 대학가를 볼 때, 유명하다는 교수들이 자기들이 논하고 있는 것에 대해 몇 퍼센트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그 학교가 주장하고 있는 기본 이념이 무엇이며, 그것이 학생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며, 어떠한 상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분야는 어떤 분야이며 현재 학생들이 탐구해 나가는 사조는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스스로가 혁신적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누룩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룩이라는 것은 어떠한 환경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밀가루를 아무리 크게 반죽해 놓았다 할지라도 작은 누룩 몇 입자만 묻혀 놓으면 시일이 문제지 그 밀가루 반죽을 전부 다 누룩화시킵니다. 환경을 누룩화시키는 데에는 연속적이고도 지속적인 무한한 투쟁이 요합니다. 이렇게 전체를 흡수하고도 남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 교회에서는 필요로 합니다.

25-92
민족사상의 중요성
이제 여러분 자신들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각자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부모의 은덕을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중국이 어떻게 해서 세계에 유례없는 7억이라는 국민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봐도 우리의 5천년 역사보다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국민이 7억의 국민을 가진 중국에 비해 엄청나게 적은 4천 5백만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어떻게 하여 7억의 국민을 갖게 되었을까?

선생님이 생각해 볼 때에 거기에는 유교사상이 지대한 공을 세웠을 것이라고 봅니다. 삼강오륜이라는 것이 하늘이 아닌, 부모를 모시는 사상입니다. 유교는 자기의 사상을 이어받을 수 있는 많은 수의 아들과 딸을 낳아야 복받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상을 중심으로 나왔기 때문에 7억의 국민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유교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님이 나와 가지고 시대를 거쳐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무시하고 역사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그런 류의 사상을 단지 체계화시키고 일반화시켰을 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사상을 이어받아 지니고 나온 국민입니다. 그 사상은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상이며, 하늘이 지향하는 사상으로서 천운이 함께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은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맨 밑바닥에서부터 그 터전을 닦아 온 나라였기 때문에 세계에서 제일 많은 국민을 가지게 되었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가서 그렇게 탄압을 받고 그렇게 혹독한 고역생활을 하면서도, 자꾸 번성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하늘이 사랑하는, 하늘의 축복을 받은 선민이라는 사상을 공고히 해 가지고 단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같은 운명체로서 상대방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하는, 서로 단결된 가정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형태를 이루었던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무한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5-93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를 반성하라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의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자기라는 한 자체는 가정을 대표한 개인으로서 그 가정을 복귀시키고 그 가정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룩으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한 국가를 형성하는 배달민족의 가정으로서 자기의 나라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적인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부터 천운이 함께하게 되는데 천운과 인연이 맺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국가까지 대번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개인과 가정을 통하고 종족과 민족의 형태를 거쳐 나온 후에 국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원리에 나온 복귀섭리의 노정입니다. 그러니 천운이 함께 하는 가정으로서 종족과 민족의 형태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단점이 무엇인가 하면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전부 다 뻗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처음에는 속도가 빠르게 잘도 봅니다. 무엇을 보면 척 벗겨 놓고 뭐가 어떻게 뭐가 어떻고 하며 평은 잘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잊고 있다는 겁니다. 평을 하려면 먼저 자기를 3배 이상 평하고 나서 그것의 3분 1만 평하라는 것입니다. 눈을 반대로 돌려 먼저 자신을 보라는 겁니다. 어떠한 교수가 강단에 서면 `통일교회에서는 무슨 말을 하겠고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다’ 하며 잘도 평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통일교회에서는 곤란합니다.

여기 문선생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뻗쳐 나가느냐? 국가를 중심삼고 뻗쳐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를 위해서 문선생이 나왔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문선생이 나왔다는 것은 세계가 문선생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중심하고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자기를 중심삼고 나가면 망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어떤 사회, 어떤 세력권을 만들면 전부 다 핍박당합니다. 힘들다고 손 들고 근처에도 안 가려고 할 것입니다. `문 아무개 좋다’고 해서 여러분이 동화되었습니까? 그가 국가를 위해서 나왔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동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닙니까? 그러니 비판을 할 때도 국가의 충신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모든 것을 결정한 후에 비판을 하라는 것입니다. 당당히 나서서 호소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당당히 나서서 그럴 수 있다 하게 되면 그는 세계를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그는 고생을 안 해도 새로운 세계에서 반드시 기억되는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인이 되어 가지고 `무슨 부장이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다’ 하는 말을 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부인할 수 있습니까? 청소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탕감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협회를 대표하는 입장에 서서, 협회의 중심적인 존재들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수고한 터전 위에 서서, 매일 쉬지 않고 싸워 나갔던 그들의 기준에 동화되어 그들의 동지적이며 동급적 입장에 서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활동을 권고하는 것은 협회 전체가 응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나고 못나고, 어떠한 사실을 잘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서 배우고 어디에서 알아 가지고 어디에서 동하고 정하며 열의를 다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의 전체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회는 내가 거쳐가야 할 사회요, 이 나라는 내가 거쳐가야 할 나라요, 이 세계는 내가 거쳐가야 할 세계요, 이 천주도 내가 거쳐가야 할 천주입니다. 이렇게 거쳐나가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가는 각자의 길은 다 자유로우니 여러분은 스스로가 국가의 이상을 가져야 합니다.

25-95
통일교회의 주류사상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대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선으로써 승리하겠다고 해서 단번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승리 못 합니다. 악을 대해 싸워서 이겨야만 선은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악권내에서 태어났고, 악권내에 먹고 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선에 접하려면 악을 제거하고 승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승리로부터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인 승리까지 해야 합니다. 최소한 국가적으로까지는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국가의 운명을 걸어 놓고 가는 길입니다. 국가를 위하는 것은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국가에서부터는 횡적인 문제가 벌어져 세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들은 지금 민족과 국가를 향해 넘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런 때에 처해 있으므로 여러분은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훈련을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미래의 세계를 책임질 수 있고, 현세계 전체를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주체적 권한과 주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그 역량을 자손 만대에 남겨 주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복을 받았다면 받은 복을 전부 소비하지 않고 남겨 놓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 일대에 고생을 하여 복을 받았다면 그 복을 이 세계에 남기겠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이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국가를 위해 가되 더 큰 목적은 세계를 위해 가는 것이요, 세계를 위해 가되 더 큰 목적은 천주를 위해 가자, 가는 데에는 현실에서 모든 일을 해결짓고 가자 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탕감을 할 때는, 개인적인 기준을 탕감하기 위해 제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정과 종족 전부를 합해 가지고 일시에 국가적인 기준을 탕감할 수 있을 때 제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물이 될 수 있는 기간이 7년노정인 것입니다.

탕감을 할 때에는 자기 혼자 해야 합니다. 탕감은 시험이 많으면 많을 수록 하기 어려워지는데, 그 시험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함정에 걸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눈으로 바라봐도 안 보이는 것이요, 귀로 들어봐도 안 들리는 것이요, 직접 가 봐도 모르는 것이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험의 최고의 탕감복귀를 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앞으로 하늘의 뜻을 펴 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악한 세계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완전한 선의 출발을 위해서는 악을 완전히 제거해야 됩니다. 개인의 기준에서 국가의 기준까지 나가는 데는 사탄을 들이쳐서 완전히 제거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현사회에 당당히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하는 어려움을 회피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25-96
선의 길은 직행길
선생님이 추석날 아침에 신자들과 간부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 있지요? 선을 행하는 데는 직행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데는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쉽게 행할 것입니다. 선의 길은 직행길입니다. 속력도 최고속입니다. 후다닥 해 버리는 것입니다. 십년, 천년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순식간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행해 오시는 그 길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6천년이나 걸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원리를 들었다고 해서 통일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등수에도 못 들어갑니다. 통일교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직행해야 됩니다. 원리 말씀을 듣고 직행해서 복귀해야 될 것을 전부 밟고 올라가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원리 말씀을 들으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활동을 해야 되고, 명령에 순응함과 동시에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해야 됩니다. 선생님의 가슴을 뚫고 직행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갈수 있는 직행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심정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법이 있어요? 지금 내가 너를 사랑하고 싶은데 3년 동안 기다렸다가 사랑하겠다 그럴 수 있어요? 어떠한 극난에 부딪치면 그 극난을 도리어 이겨내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극난에 비례되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농부의 아들, 혹은 노동자의 아들 등이 있을 것입니다. 각기 다른 부모로부터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효자가 되려면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얼굴을 잘 살펴서 부모의 얼굴에 슬픔이 있으면 그 슬픔을 지워 드릴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부모가 슬픔에 겨워 술을 마시고 계시면 안타까운 마음을 견딜수 없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또 부모님이 걱정거리가 있어 잠을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든지 위로하여 먼저 주무시게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아들딸이기를 바랍니다.

25-97
훌륭한 부모와 스승이 애국자를 키워낸다
부모는 자기의 아들딸을 위해서 일합니다. 자기가 먹기 위해 일을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이 많은 부모가 농촌에서 혹은 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할 때, 가난하지만 지게를 짊어지고 김을 매고 밭고랑, 혹은 논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은 천년 만년 자식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부모의 이마에서 흐르는 수고의 땀방울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땀의 결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엉키게 되면 거기에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밭에서 김을 매고 노동판에서 지게질을 해도 그의 발걸음에는 새로운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삼천만 민중이 살고 있지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도 그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10년, 20년 이상 지속되는 부모가 있다면 거기에는 효자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아들과 딸들은 그 부모의 얼굴만 봐도, 손만 봐도 자기들을 위해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뼛골이 우러나오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될 때, 거기에서 오랜 세월의 깊은 사연이 흘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식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공헌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부모는 국가적인 부모, 혹은 세계적인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부모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 되겠다는 심정에 사무쳐서 공부하게 될 때, 새로운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러한 감정과 느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공부를 한다 해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해 애쓰고, 너를 위해 수고하며 땀을 흘리는 것은 나를 생각하지 말고 이 나라를 더 사랑하라는 뜻에서이다’ 하는 애국지사의 심정을 가지고 교육하면, 그런 부모 밑에서 사랑의 교육을 받는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애국지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회상할 때마다 삼천만 민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을 위하는 입장에서 공부를 할 것이며, 자기의 민족이 비참함을 당할 때는 자기의 부모 이상으로 비참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에만 선다고 해서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서 이루어 놓은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국민이 천년 만년 흠모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 지나갑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합니다.

여러분의 학교에 어떻게 하든지간에 자기 제자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인계시키기 위해 애쓰는 스승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권고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순응하지 말고 나라에 대해 순응하라. 나를 위해 잘하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잘 하기를 바란다’ 하고 말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그 스승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 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승은 자기의 생애를 바쳐서 제자들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부모는 자신의 가치보다도 국가와 세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식을 위해 정성을 들이면 그 스승의 제자와 그 부모의 아들딸들은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될 것입니다.

25-99
하나님의 심정을 아셨던 예수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인류에 대해 `아이고,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너희들은 나의 서러움도 몰라주는구나’ 하는 원한의 마음을 갖고 나오셨다면 당신의 뜻인 평화의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참다운 곳에서 살아가고 싶은 당신의 뜻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만이 편안하기 위해 복귀역사를 해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자식이라 하더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구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 때문에 가는 세월을 안타깝게 느끼는 것입니다. 시간 가는 것이 그토록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인간을 구하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시간을 초월하고 환경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하고 어떠한 환경도 극복하면서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충성하겠다는 아들딸이 나오면 그는 어느 누구 못지 않는 권한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아들딸과 인연된 나라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갖지 못한 충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아들딸의 모든 사지백체는 하나님의 소원의 토대요, 사랑의 기본이요, 모든 한이 풀어진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인간 세계에서 풀어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나올 때, 그는 천하무적인 한 용사로서, 진정한 하늘의 대역자로서 당당하게 하늘의 뜻을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던 그 여력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대해 얼마나 정성들였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도수(度數)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배척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용서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수고해 나온 하나님의 사랑의 노력을 받들어서 그것을 주장하면서 나왔지만 그는 민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어려운 입장에 빠졌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도 그는 미래에 새로운 이념을 남기고 사랑의 보람을 남기겠다고 몸부림치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제2차적인 섭리로 부활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지금까지 뜻을 중심삼고 나왔을 것입니다.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내정적인 심정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자리를 잡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가야 되는 운명길이라면 당당히 가야 합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평범하게 세상의 어떤 아낙네와 결혼하여 그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아들딸을 낳고 산다거나, 어떤 직장에서 과장이라든가 부장이라든가 하는 감투를 쓰고 거기에 만족해서 산다면 그건 아주 시시한 것입니다. 시시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것 가지고 뭘 할 거예요? 교회 다니면 뭐가 다르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달라야 하느냐 하면 바라는 환경이 달라야 하고 보는 관점이 달아야 하고 강평의 기준이 달아야 합니다. 이렇듯 여러분은 행동거지가 달라야 합니다. 행보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25-100
여러분은 대학을 나와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지금 사망의 물결은 세계를 격동시키고 있습니다. 이 민족도 그런 처참한 환경에 휩싸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을 사방으로 타파해 버리고 격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련 노정에 있는 자기 자신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자기 생애의 목적으로 삼아 하나님의 용서로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신념이 여러분의 가슴에서 사라지게 되면 여러분은 통일의 용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에 가담할 것이냐? 여러분은 대학을 나와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우리나라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을 보면 무슨 학박사 감투나 쓰고 앉아서 어떻고 어떻고 떠들기만 합니다. 비율을 보면 학박사의 8할 이상이 무책임하게 그러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에 대해 생명을 걸고 책임감 있게, `내 목을 자르시오!’ 하면 자신 있게 외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죽기 싫어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미흡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떤 축에도 들어가지 못할 패들입니다.

충신 열녀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남 미녀가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추남 추녀입니다. 외모가 늘씬하게 생긴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병신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이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그렇게 보더라도 하늘세계에서는 그렇게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의 생각은 대학가에서 농뗑이 부리는 젊은 청년들 전부 데려다가 뜻 앞에 충성하는 일꾼으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몇 개 조로 편성을 해서 훈련시킨 후 나라에 충성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놀아나는 길, 그들이 좋다 하는 길을 가게 되면 망합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통일교회에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다’고 공박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면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각 종교에서는 자기들끼리 무슨 이단교니 사교니 해 가지고 파를 나눕니다. 그들은 전부 망파입니다. 그들에게 좋은 명사를 쓰기에는 기분 나쁜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망할 수 밖에 없는 패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서 그런 요소를 제거해야 됩니다. 그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선민의 입장에서 파워를 조성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요원이예요? 전부 데려다가 혼을 내서 정신을 못차리게 만들 겁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고 뜻을 사랑해요? 그렇다면 여러분들 전부 강원도 산골짜기에 몰아넣고 얼마 동안 지내게 해볼까요? 그 중에는 어렵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선생님을 두고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 길을 나선 사람입니다. 목적을 위해 칼날 같은 마음으로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품고 싶지만, 이길을 가기 위해서 부모를 저버리고, 처자까지도 저버린 사람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때가 급합니다.

25-102
하늘의 성화꾼
오늘날 통일교회 청년을 성화청년이라고 합니다. `성화’, 성화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성화(成和)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야단났을 때나 다급할 때는 뭐라고 합니까? 그것도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를 한글로 쓰면 똑같습니다. 발음도 같습니다. 그러나 의미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성화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네방네의 성화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전도할 때에도 편하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아이구 그까짓 공부가 문제냐? 내가 많은 친구들을 이끌고 가서 믿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런 사람 봤어요? 그저 `듣기만 해보라’고 사정을 해야 되지요. 안 되면 멱살이라도 한번 잡아 보라는 거예요. 나쁜 의미로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아이구’ 할 때까지 목을 끌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냉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비장한 각오로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죽음의 고비는 가까와지는데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노정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몰라서 그러는데 선생님 얼굴을 보게 되면 고생해야 할 팔자로 보여요? 또 선생님이 고생했다는 말만 들었지 고생하는 것을 봤어요? 그것을 못 봤으니 알 수가 없어요. 말만 듣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먹으면서 참 맛있다고 했을 때, 여러분이 먹여 보지도 않고 말만으로 그 맛을 알 수 있어요? 직접 여러분이 먹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또 아들딸을 낳아 보지도 않은 부부가 아들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성화를 좋아합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성화꾼입니다. 또 마을에 가면 마을의 성화꾼입니다. 사탄세계의 성화꾼인 동시에 하나님세계의 성화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점에서 출발해서 한 점에서 열매맺는다는 것입니다. 한국말의 의미는 참 묘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예수꾼, 절에 다니는 사람은 절꾼, 여러분은 무슨 꾼이예요? 성화꾼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성화꾼이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식에게 `공부 잘해라. 말 잘들어라.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는데 그것이 성화꾼입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이 녀석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열등생이 되니 공부 잘해라 잘해라’ 이것도 성화이긴 성화입니다. 또, 자식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부모가 사랑의 마음으로 알뜰히 무엇을 해준 것을 다 들고 나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불쌍하다고 나눠 줍니다. 이것도 성화입니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십 년이나 걸려서 무엇을 하나 정성들여 마련해서 주었는데, 이것도 두어 시간 채 못 돼 전부 다 다른 애들에게 나눠 줍니다. 그것도 성화지요?

성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망하는 것이요, 하나는 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복을 주는 것이요, 하나는 복을 펴내는 것입니다. 하나는 쌓아 올리는 것이요, 하나는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을 찾아 다니면서 농촌 계몽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 활동할 때는 그 마을 사람들의 성화가 대단했습니다. `누가 우리 마을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나. 영양가 있는 것 사 달라고 했나. 짚을 때서 콩이나 팥을 삶아 구수한 냄새 맡아 가면 사는데, 왜 우리 마을에 와서 손땀내를 피우느냐. 아, 누가 밥을 해 달래?’ 라고 성화를 했습니다. 반갑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핍박을 받더라도 우리는 이런 성화군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시에서나, 농촌, 아니 대한민국의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성화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각 도에서 한 사람씩 뽑아 문공부 장관상인 통일상을 수상하는 날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식구가 떡 상을 타 가지고 와서 선생님에게 부장이 4만원이고 뭐 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하였습니다. 그런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일국의 정세가 통일교회 빼 놓으면 절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미워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성화대학생입니다. 여러분은 성화꾼이 되어 대학가에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 통일교회에 다녀 보지 않겠는가? 이리와!’ 라고 하면서 그들의 허리를 쥐려고 하면 여러분들 중에 다리뼈가 부러졌다는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 대꾸를 하면 그들이 가만 안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생명력이 불타오르는 꽃봉오리, 또 거기에서 퍼지는 향기와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자! 그런 하나님을 알아보지 않겠는가?’ 하고 말한다면, 그들도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5-104
하나님 앞에는 숫것을 드려야
여러분은 총각들인데 장가들 때에 시집을 가 본 과부한테 들 거예요, 처녀한테 들 거예요? 대답해 보세요. 처녀한테 장가 들 거예요, 과부한테 장가 들 거예요? (웃음) 생명이 투입될 수 있는 것은 숫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숫것을 드리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아가씨들, 총각들 연애가 다 뭐예요.

생명은 숫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사람이 맨 처음 태어날 때 본래는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숫것으로 태어나지, 무슨 흠을 갖고 태어납니까?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 내 몸도 숫것으로 태어났고 내 마음도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사춘기를 통하여 흘러 나오는 봄절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청년의 가슴도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몸 마음이 다 숫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숫것이 될 수 있겠어요? 이런 것을 어디에다 갖자 바치려 하는 거예요? 그러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서 다른 곳에다 소비할 수 있겠어요? 탕감법칙에 의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친다고 한다면, 어느 때에 바칠 것인가? 생명은 하나뿐인데 어떤 때에 바치겠어요? 다들 신세 망친 다음에 바치겠어요? 요즘 전도하러 다니는 전도부인들 중에는 가방 하나씩을 들고 다니면서 `아이고 교회 다닌다고 남편한테 두들겨 맞았어요’ 하면서 뭐가 어떻고 어떤 놈이라고 하면서 자기 남편을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웃음) 그러면서 억지 춘향이 흉내를 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 쓰레기통들입니다. 그러한 인간 쓰레기통들만 모여 있으면, 그 기독교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그런 사람들을 원치 않아요. 그렇다고 그들이 정성을 들이며 다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여기에 정성까지 들여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정성을 들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살다가 지쳐 죽게 되니까 교회에 들어와 가지고는 `아이고,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했으니, 하나님 나 복 주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넉넉하여 걱정 하나 없고, 입을 것도 넉넉하여 세상만사 부러울 것이 없고,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거리낄 것이 없는 가운데서도 `인생이 무엇이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 아니냐?’ 하면서 하나님의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히 여기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정성들이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아버지 이 몸을 바칩니다’ 할 때 하나님은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아나니아 부부가 땅을 다 판 후에 얼마를 감춰 놓고는 베드로에게 다 가져 왔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벌을 받아 죽게 됩니다. 마땅히 벼락을 맞아야지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뜻을 중심삼은 성화입니다. 나쁜 의미로, 속된 말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탕감이 없는 그날까지 필요한 말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동네를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그 동네에는 하루 전날 사람이 죽든가, 싸움판이 벌어진다든가 하는 등 별의별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귀한 분이 오기 위해서 벌어지는 것이라든 등 별의별 소문도 다 들었습니다. 요전번에는 어떤 동네에 들어갔는데 `여보 당신이 우리 동네에 들어오기 때문에 사람이 죽었고, 내일 또 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니 나가 주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싸움판이 벌어지고 집안들이 싸우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니 사탄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그것은 사탄이 볼 때도 성화거리요, 하늘이 볼 때도 성화거리입니다. 또 인간 세계에서도 성화거리입니다. 그렇지만 성화거리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탕감원칙에 의해서 그런 죽음은 희생의 조건이 되어 복귀의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가는 것입니다. 안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25-106
멋지고 자신있게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민족복귀를 하려면 누구를 내세워야 됩니까? 젊은이들을 내세워야지요? 젊은이를 내세운다고 할 때, 여러분 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 손들어 봐요? 정말 가겠다고 결심했어요? 눈이 흐려서 잘 안 보이는데, 정말 그래요? 내려요.

생각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이 대한민국에서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태양빛을 받고 사는 사람들 중 이렇게 썩어빠진 녀석들만 모여 있으니 기분이 나쁩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였으니 이게 뭐예요? 상부상조? 「연분입니다」 연분은 또 무슨 연분이예요? (웃음)

오늘은 9월 마지막 날입니다. 청평에서 120일 정성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을 잘 마쳐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을 만나서 좋은 말을 못하고 가시돋친 말을 해야 하니,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이제는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따라가려면 아예 통일교회를 그만두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한 십 년 후에 나오세요. 시시하게 따라갈 겁니까? 멋지게 따라 갈 겁니까? 「멋지게 따라갈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멋진 것입니까? 「아버님같이 가는 것입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해도 남보다 빨리 가는 것이 멋진 것입니다. 질질 따라가는 것이 멋진 것이 아니예요. 십자가에 죽을 때, 제일 멋지게 죽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베드로지요? 죽을 때도 멋지게 죽어야 합니다. 거꾸로 빙글빙굴 돌면서 죽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멋지게 따라가는 길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으로 그렇게 다니면서 선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 오늘 성미(誠米) 사업한다고요? 성미(誠米)예요? 성미(性味)지요. (웃음) 선생님도 이렇게 목이 마르도록 여러분에게 성미를 부렸으니, 여러분도 개선장군처럼 나가서 외쳐야지요? 나가서 꾸물거리지 말고 대한민국이 떠나가도록 뇌성벽력 같은 소리로 외치는 거예요. 개미소리 같아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본래 그런 사람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도 맞춰 줄 알아야 됩니다. 이 길을 따라가려면 남의 기분 맞출 줄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데데하다든가 흐리멍텅해 가지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른다든가 하면 이 일을 할 수 있겠어요?

25-107
성화(成化)가 아니라 성화(成和)가 되자
여러분은 소생 장성 완성의 단계를 알고 있습니다. 장성을 이루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학의 `화(化)’자 하고 성화의 `화(和)’자 하고 뭐가 다릅니까? 화학의 `화(化)’자는 자기의 본질적인 성격과 형태까지도 변해 버리는 것이고 성화의 `화(和)’자는 주체적인 관이 뚜렷한 절대적 주체로서 상대적 여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형식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래야 상징하는 것이고 한 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사면 회사에 가서도 일년만 한결같이 수고하면, 그 회사의 사장이 모를 수 없습니다. 또 회사에 들어가면 시간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여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 하는 데에 자신의 성장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정성을 들이면 역량이나 기능, 실력이 같은 기준에 있더라도 정성을 쌓은 사람이 먼저 발전하는 것입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벌써 퇴근 시간이 되었나?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군’ 하는 사람과 `아이고, 시간 안 간다. 아직도 30분이나 남았구만. 요놈의 시간아 빨리빨리 가라’ 하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마음은 콩 밭에 가있고, 자기 여편네가 어떻고, 아침 먹은 게 어떻다 하면 퇴근하기 한시간 전부터 시간을 팔아먹는 사람은 회사를 팔아먹는 사람입니다. 회사를 이용하고, 회사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퇴근 시간이 다 될 때까지는 전부 다 자기의 사적인 생각은 없애 버리고 오직 회사의 일에만 시간을 백 퍼센트 활용하며 정성들이는 사람, 또 시간이 다 됐더라도 부장이 퇴근하고, 과장이나 자기의 상관들이 다 퇴근한 후에 모든 것을 한번 더 돌아보고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학을 나와 어디를 가더라도 자기가 소속된 곳의 어려운 문제를 수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 과정을 거치면 그 사람의 태도가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진실성으로 나타납니다. 이 진실성이 무엇이냐 하면 곧 시간 엄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보면, 대학생이어서 그런지 예배시간에 언제든지 꼴찌로 옵니다. 그런데다가 찬송가 부르는 것도 힘이 없습니다. 미안하지도 않아요? 선생님이 어려서 교회 다닐 때는 예배시간에 늦으면 얼굴을 못 들고 다녔습니다. 며칠 동안을 회개하지 않고는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늦은 시간에 가면 많은 사람이 예배 드리는데 실례가 되지나 않을까 했으며, 언제나 예배 시간 전에 먼저 가서 보탬이 되도록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사회에서든지 보탬이 되지 못하고 손해만 끼치는 그런 사람은 제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화(成和)라는 것은 무엇이 다르냐? 화학의 화(化)는 본질까지도 변하지만 성화의 화(和)는 다릅니다. 절대적인 상대성과 하나님의 본질로서의 성화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성화(成和)로써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중심삼은 세계관과 생활관, 그리고 자기를 중심삼은 천적인 심정을 공고화시켜야 됩니다. 그리하여 완전한 씨알로써 결실이 되어 껍질이 갈아져야 됩니다. 그래야 알곡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모습은 훌륭한데 제자들의 모습은 그러지가 못해’ 이런 소리 들으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25-109
바른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라
성화라는 글자에 대학생을 붙인다면 그 대자는 큰 대(大) 자지요? 대가 어떻게 해서 큰 대(大)자예요. 이것은 하늘땅을 위해 축복하기 위한 중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원리연구회 학생으로서 혁신을 하기 위한 주체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대학생으로서 대학교를 탕감해야 됩니다. 대학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래 가지고는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하기만 하면 다 됩니까? 축복도 때가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학(學)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식을 말하지요? 뭘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냐? 요즘 대학생들은 매우 노골적입니다. 여자들에게 무엇 때문에 대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으면 `시집 잘 가기 위해서요. 혹은 장관집 맏며느리 되고 싶어서요’라고 말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전부 망해야 됩니다. 공부는 누구 때문에 하느냐? 그 누구와도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일등을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했고, 시집을 간 것도 자기를 위하여 갔는데도 불구하고 기분 나쁠 때면 `남자가 왜 이래’ 하는 식으로 남편한테 눈을 흘기면서 절대로 싸움에 안 지려고 합니다. 남편이 한마디 하면, 입술을 발발 떨면서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어요. 남자라고 다 아는 거예요? 내가 힘이 약한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 못지 않게 잘 한다’고 하면서 야단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밖에 안됩니다.

공부하는 것도 참된 남성을 만나 참된 어머니가 되기 위해 한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위해서 공부해야 하며 남편을 참된 남편으로 모셔 참된 남편을 모시는 참된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가 되지 못하면 참된 남편을 모실 수 없고, 참된 아들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여자는 참된 아내가 되어 한 가정의 주부로서 남편과 백년해로해야 하는 겁니다. 시집 잘 가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대학 출신들은 전부다 부부가 백년해로해야 되지요? 그런데 백년해로 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혼하는 사람이 많아요? 알아보나마나입니다. 일자 무식자들이 더 오래 잘산다는 거예요.

이런 의미에서 성화라는 것은 큰 이름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게 되기까지 섭리가 상당히 급했습니다. 선생님이 일전에 학생들에게 물어 봤습니다. 선생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아느냐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알아보라구요. `나는 통일교회 교인이고 통일교회의 성화학생이니, 문제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대학생들과 인연을 맺어 어느 지방에 가더라도 무슨 사건을 일으켜 가지고 그 동네가 밤잠을 못 자게 해야 하는 겁니다. 무슨 노래를 부르고 해서 말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 그들 잠을 못 자게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대한민국은 선생님이 이렇게 하는 것을 전부 다 반대합니다. 그것은 섭리적으로 맞지 않기에 선생님이 대한민국에서는 가만히 있지만 일본에는 싸움을 붙인 것입니다. 또한 미국도 싸움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는 가만히 있으면서 왜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그렇게 하느냐?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세계적인 모든 사정을 볼 때에 통일교회가 이렇게 망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한계권내에서 활동하고 대학가에 간판을 걸고 활동한다고 해서 한계권내에서 놀아나는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한계권내에서만 놀아난다는 것은 결국 절름발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한계권내에서만 놀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뒤에는 역사적인 이념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중심삼은 사회입니다. 여러분이 가야 할 운명길에 반드시 부딪치는 것이 바로 가정 문제요, 사회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사회는 그냥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가 가정을 위할 수 있는 심정기준이 서지 않으면, 가정에서도 사회의 문제를 환영할 수 있는 조건이 서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부정적인 사람, 이런 사람을 내세우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누가 뭐 어떻고 어떻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다 자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삽목(揷木)된 가지와 마찬가지입니다. 뻣뻣한 가지를 뚝 꺾어 가지고 흙 속에 그냥 꽂아 놓으면 열흘도 안 되어서 살아나는 버드나무 잎마냥 그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꽂는데는 아무렇게나 꽂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잘 살아나는 나무라 해도 아무렇게나 꽂으면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단숨에 심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지를 딴딴한 땅에다 꽂되 가지가 같은 여러분은 그 환경을 극복하고 소화해서 거기에서 꽃을 피울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까지 남아질 수 있는 자체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 힘이 없어 가지고는 생명체로서의 기반을 닦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25-111
내가 누구보다 많이 정성들였으므로 우리는 발전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자체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영계를 못 갔지만 선생님은 영계에 훤합니다. 그건 왜 그러냐? 여러분은 기도를 안 드리거든요. 그러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기도를 드리며 정성을 들이는 데에 있어서 세계의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활철학이었습니다.

공장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선생님이 시간만 있으면 가 봤습니다. 안 가본 날이 없습니다. 공장을 갔다오는 데는 세시간 이상이 소요되지만 이 일을 매일 계속했습니다. 그건 왜 그러느냐? 거기에 온 사람들은 선생님을 바라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다 버리고 왔습니다. 단지 선생님만을 의지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본연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선생님에게도 그들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선생님은 그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10여년을 한결같이 공장에서 지내면서 충성을 다했느냐? 충성을 못하고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지구장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공장에 왔다가 돌아간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들을 떨어지게 한 장본인이냐? 아닙니다. 그들 자신이 잘못해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반대를 해도 욕하는 그들이 망했지, 욕을 먹는 선생님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천명(天命)과 천법(天法)을 따라나온 것입니다.

공장에는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도 그 공장을 위하는 사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온갖 혈투전을 벌여 끊임없이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개척하면서 공장을 위해 정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또 자기의 직원들 중에서도 공장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정성들인 것에 결코 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장은 앞으로 세계적인 발전을 할 것입니다. 안 되면 안 되는 환경을 개척해서라도 기어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하늘에 완전히 바치면 반드시 하늘은 받아들입니다.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사회의 사업가들과는 관점이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그 일은 하면서도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가능하도록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정성들이지 않고 비열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은 도둑놈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성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정성들이는 데는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합니다. 역사 이래 어떤 사업가가 정성들인 것 이상의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 정성의 기준은 이 나라, 이 민족을 넘어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 하나 잘 살고 자기의 아들딸 잘 먹이기 위해 부를 쌓아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런 기도는 안 합니다.

기도드리는 데에 있어서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공장장이 뭐 어떻고 어떻게 정성을 들였다 하더라도 선생님에게는 못 당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성들이는 것을 항상 부족하게 생각하면서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할 사명감을 느끼면 느꼈지 불평이라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불평불만을 해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반대를 하고 불평불만을 하며 나가더라도 공장은 발전하는 길만이 있지 망하는 길은 없습니다. 만약에 망하더라도 하늘은 순식간에 그 이상의 대가를 책임져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25-113
하나님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자
선생님은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는 일이나 혹은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도 적당히 생각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전부다 직접 실천해 보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저 앞세워서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다 해보고 틀림없는 근거를 가지고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볼 때 그곳이 죽을 구덩이 같지만 파놓고 보면 황금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될 것 같은 일이지만 선생님은 그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일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역사는 비참한 역사였습니다. 거기에는 눈물 어린 핏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선생님이 여러분을 앞세워 이용해요? 그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에 어떤 거부가 들어와서 백만원을 헌금한다 해서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헌금보다도 그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선생님이 얼마만큼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을 얼마만큼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믿고 따라 나갈 수 있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을 보면 전도 나갔다 하면 신세를 지고 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빚졌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바보 천치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방향을 몰라 자립할 수도 없으며 자기의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빚을 졌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하늘땅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겠으며 어떻게 누굴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겠어요? 또한 누구의 사명을 대신 맡아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빚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든 빚지지 말고, 내 자신을 온전히 갖춰 가지고 사는 동안 남에게 빚을 지워 보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우고 살자 이겁니다. 빚을 지우고 살면 아무리 고독단신이 되어도, 혹은 영어의 몸이 되어 쇠고랑을 차고 있어도 항상 주위에는 친구가 있게 됩니다.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절대로 굶어 죽지 않습니다. 먹을 것은 여러분의 친구가 전부 간수를 통해서라도 갖다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편에 서서 하늘을 믿고 하늘을 위하여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국가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면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대한민국 역사 이래 누구도 들이지 못한 정성을 들여 가지고 하늘에 충성하는 사람이 어느 동네에 가서 전도를 하게 되면 그 동네의 신도들은 전부 걸려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동네와 관계된 영계에 있는 충신들이 그와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굶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그가 굶는다면 그 동네 신도들이 전부가 걸려 들어가게 됩니다. 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자신이 처하더라도 집단적으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다이나마이트처럼 폭파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 동네를 들고 쳐야 하는 겁니다. 거기에 도화선이 되어 폭파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서 막고 있는 담벼락을 뚫으면 전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환경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망의 담벽을 폭파시켜 버리는 사명을 누가 해야 되느냐? 이것은 통일교회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심정을 폭파시킬 수 있는 화약이 되고 도화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방법입니다. 이 사명은 통일교회교인 누구를 막론하고 당연히 해야 하되, 직접작전으로 하느냐, 간접작전으로 하느냐 하는 작전법 여하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심정의 폭탄을 폭파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내용이 되고, 또 실적으로서 뜻 앞에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역사적인 인간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고,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지금 여러분의 능력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25-115
3시대를 결속시킬 수 있는 주체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의 기준 역시 미래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래 가지고는 우리의 소망인 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은 역사적인 열매요, 미래의 기원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도 미래의 소망도 모두 현실을 중심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이루게 되어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자는 몇십 년, 몇백 년 후의 미래에 소망을 둔 인격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권내에서 지탱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년 후에도 천년 후의 사람들이 그로부터 만년 후의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천년 전의 그 뿌리를 현실에 통합하여 미래의 기원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원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하나의 통일된 세계는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의 역사는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민족, 나아가 국가, 세계, 천주에 이르기까지 보다 큰 세계로 발전할 수 있는 미래의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 나왔지만, 그래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6천년이 되었는데, 만약 인류가 6천년 후의 세계에다 소망을 두는 세계관이 아니라 6천년 전 그날을 되돌아보면서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세계관을 가졌더라면, 이 세계는 벌써 통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미래에 소망을 두고 찾아 나가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는 지연되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은 미래의 소망을 그리워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내일에 대해 부정하는 관을 가질 것이 아니라, 내일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소망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개인,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고 역사를 넘고 시대를 넘어서 통일의 심정권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주체적인 관이라는 것입니다.

주체는 상대편을 중심삼고 모든 관계와 인연을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주체와 더불어 상대편이 관계를 맺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인 환경이 아무리 넓더라도 상대편은 주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세계를 중심삼고 운동을 전개시키는 데에 있어서도 역사가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흠모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미래에만 소망을 두고 현시점을 망각하고 나간다면 통일의 이념은 미래의 세계에서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3시대의 주체로 나가자는 겁니다.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 정성은 역사에 없었던 것이며 미래에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현시대, 어떠한 국가 어떠한 사람도 해볼 수 없는, 절대에 가까운 정성, 그런 정성을 들이라는 겁니다. 그 정성이 본심에 입각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역사와 시대를 주관하고 그 권내에서 미래에도 소망의 주체가 될 때에 우리는 6천년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은 현시대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인류가 미래에 소망을 두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여러분을 세워 뒤로 돌아서 가지고 사랑하고, 미래에도 그리워 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3시대의 중심권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미래에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기원은 오늘이 현실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25-116
심정의 본질
그러면 3시대를 결속시킬 수 있는 역사적인 중심이 무엇이냐? 핵심적인 것은 심정입니다.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3사랑의 사위기대를 완성시킬 수 있는 그 심정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무엇이냐? 사위기대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부모의 심정을 통한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는 것입니다. 개인의 탕감노정도 가정을 통해 가는 것이요, 종족적 탕감노정도 종족을 대표한 가정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 세계 역시 세계의 권위를 가진 절대적 위치에 선 가정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아버지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 천지를 대표해서 세워지게 될 때 그것이 후손에게 있어서는 본향의 심적인 기준으로서 영원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통일의 이념세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역사가 비로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세계의 기준이 되는 것이며, 또 그런 사람이 되어서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국가에 영향을 미칠 때,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자체내에 그런 내성적인 심정을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 있습니다. 그러나 없다고 할 때는 보따리 싸 가지고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에게는 변하는 자연환경에도 변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심정적인 내정을 갖고 있느냐?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선생님에게는 관이 없습니다. 심정의 세계는 혁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관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관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관’ 이런 말 들어 봤어요? 그러면 부부도 사랑관에 의해서 살아야 되고 자녀 또한 사랑관에 의해 키워야 됩니다. 그래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 자체에 의해 지배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관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못된 것으로서 특이한 상대적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관’ 하면, 하나님 가라사대 하고, 또`예수관’ 하면 예수님 가라사대 합니까? 그것은 말로 할 수 있는 어떤 관이 아닙니다. 주체적인 입장에도 설 수 없습니다. 사랑에는 관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발전도 없고 혁명도 없는 것입니다.

25-117
부모의 심정을 대신할 맏아들이 되라
여자가 필요없다는 총각들의 말은 어거지입니다. 봄이 되면 꽃은 피게 되어 있습니다. 안 피겠다 한다고 꽃이 안 피어납니까? 그러기에, 총각들이 여자가 필요없다 해도 나이 80이 되어서 죽을 때가 가까와지면 `아이구,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색시는 없어도 되지만 아들은 필요하구나’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은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머무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소중히 여긴다면, 그 가정은 하나님의 심정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머무실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주를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은 맏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절대로 둘째 아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맏아들, 맏것이 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둘째 아들들은 외국 사람들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아들 되라고? 「맏아들입니다」 그러면 맏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역사적인 동반자가 되어야 됩니다. 왜냐? 맏아들은 둘째보다 아버지와 함께 있더라도 한 시간이라도 더 있었고 밥을 먹더라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었고 좋아하는 것을 보더라도 한번이라도 더 보았거든요. 그렇지요? 그런 것은 아버지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맏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선생님과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폭과 거리가 짧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에라도 맏아들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잔칫날이 되어서 외국 사람들은 다 왔는데, 정작 와야 할 여러분이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맏아들의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도 40일전도 나가면 자기의 피와 살을 뿌려 가면서 전도를 해 나오는데, 한국의 성화인 여러분이 전도를 하는데, `40일 전도를 하자니 죽을 지경이구나. 애써 뭐 그렇게 할 것 있어? 적당히 눈치 봐 가면서 하자’ 이래서 되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거 눈치 못 챌 것 같아요? 이 눈을 보라구요. 무엇이든 잘 보게 되어 있어요. 영계도 넘어선 사람이예요. 선생님이 뭘 못 보겠나? 다 봅니다. 냄새를 맡아도 셰퍼드만큼 맡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거예요. 세상의 누구보다도 빨라요. 척 보면 그 사람이 장사꾼인지 뭔지 다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명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맏아들 정도 되려면, 그 아버지의 낯을 세워줄 줄도 알고, 그 아버지가 유언을 남기기도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니 움직이겠어요, 안움직이겠어요? 「움직이겠습니다」 정말이예요? 「예」 이 7년노정 중에는 대학생 여러분이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알아요? 그거 알아 둬요. 그렇게 되면 이 세계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붓자식 취급밖엔 받지 못하는 거예요. 그거 알아요? 「예」 알긴 아는군요.

그러면 의붓자식을 구원하기 위한 본 자식으로 다시 해 보겠어요? 그걸 원해요? 「예」 침을 놓더라도 심장 한복판에다 놓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예」 포탄을 안고 뛰어들라고 해도 괜찮아요? 「예」 그렇다면 선두에 내세울까 합니다. 여러분은 취직할 때도 선생님의 승낙을 받고 취직해야 합니다. 그것도 괜찮아요? 「예」 지금까지 자기 마음대로 취직했지요? 그 녀석들을 전부 다 데려다가 꼬리를 달아 가지고 지방 개척전도를 나가게 할 겁니다. 저 강원도 산골짜기에 보내서 망치 들고 굴이나 뚫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선생님하고 굿바이입니다.

25-119
개척활동은 대학원리연구회 회원이 앞장서야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개척전도를 누가 먼저 했습니까? 대학생들이 먼저 했습니까?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했습니까? 누가 먼저 개척했어요?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개척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했으니, 그 다음에는 누가 해야 돼요? 「대학생요」 대학생이지요? 그래서 1969년도는 대학원리연구회를 중심삼고 10월 25일부터 활동을 해야 되겠다고 못박아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기분 좋아요? 「예」 가두에서 동냥도 하고 다 하라는 거예요. 창피해요? 창피가 무엇인지 알아요? 「모릅니다」 안 해봤으니까 모르지요. (웃음) 창피를 당해 봤어야 알지요. 창피당하는 것도 경험해 봐야 됩니다.

여러분 각자의 몸을 닦아 가지고 그 기간에 자기의 마음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자기의 몸을 이끌어 그 환경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려울 때에 같이 동고동락하고, 같이 바라면서 같이 협조해야겠다는 생각들 해봤어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 식구들보다 선생님이 먼저 앞장섰습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갔다 온다 하면서도 못 가고 한 4개월이 지났는데 그것은 연기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래요. 선생님이 가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못 가는 것인데, 지방에 떡 앉아 가지고 `선생님이 왜 안 오시나. 이 고장을 위해서 한번 오셔야 할 텐데’ 이런 소리들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아이구, 선생님이 계신 청파동 교회 마룻바닥에서 심정적 기도라도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라도 해봅니까? 그래요, 안그래요?

이런 심정적인 내용의 뜻을 여러분이 전통으로 삼아 가지고 몸 담고 있는 대학가에서 활동하고 그 대학을 책임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중요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세를 갖춘 대학생들이 대학교에 몇 명이나 있으며, 젊은 청년들이 이 사회에 몇 명이나 있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하늘을 바라보고 통일교회 교인이 될 수 있는가 솔직하게 비판해 가지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은 그런 입장에서 처하게 되면 하늘은 여러분을 지지합니다. 여러분이 뜻을 따라가면서 보고 느끼고 섬기는 그 심정에서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렇게 살아나온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24살 때부터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다가 코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고 목이 부러지는 자리에서도 철석같은 신념 가지고 그 나라를 상대로 해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던 사나이입니다. `아무리 몽둥이로 쳐 봐라. 내몸이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몽둥이가 부러질 것이다. 손가락을 끊어 봐라. 어떤 독한 고문을 해도 굴복하지 않는다’ 하고 버틴 사나이입니다. 심정의 골수에 맺힐 수 있는 사연,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사연의 자리에서 눈물어린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도 남이 모르는 깊은 골짜기에서 뒤넘이쳐야 할 고빗길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숙하고도 어려운 것입니다.

25-120
다가올 통일교회 시대
오늘날 세계를 중심삼고 탕감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여러분은 각자가 탕감해야 됩니다. 그 누구의 협조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 협조를 받아서는 안 되느냐? 아담은 아버지입니다. 부모입니다. 타락은 부모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될 수 있는 그 입장을 먼저 결정해야 됩니다. 아담이 아들딸을 낳고 나서 타락했어요. 타락한 다음에 아들딸을 낳았어요? 「타락한 다음에 아들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복귀되기 전에 아들딸이 있을 수 있어요? 없지요? 그러기에 아들딸이 없는 입장에서 협조받을 수 있어요? 절대로 협조받을 수 없습니다. 혈혈단신으로 탕감해야합니다.

선생님의 탕감복귀의 노정에 있어서는 아무리 협회장이 있고 부장들이 있더라도 조금도 플러스가 되지 못합니다. 도리어 짐이 될때가 많습니다. 이와 같은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단계적인 조건을 세워 놓고 간접적으로 명령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개인복귀, 가정복귀, 민족복귀의 십자가를 넘어서 세계를 복귀해야 합니다. 타락된 역사는 반드시 탕감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하지 않으면 영원한 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래가 그렇습니다.

가정적인 축복권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를 중심삼고 넘어가야 됩니다. 3기점인 3개 국가에게 몰리고 쫓기고 찢김당하면서도 거기에서 죽지 않고 남아져 해원성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천명(天命)에 임한 그때가 바로 1960년인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만이 아는 것입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엮어 나오는 일들을 보면,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다 짜고 짜서 계획한 것들을 중심삼고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든 내용이 전부 다 원칙대로 풀려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처음 듣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선생님이 무식하고 교양 없이 내뱉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반드시 내용이 있고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과정을 누가 아느냐? 그것을 여러분은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과 선생님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어떠한 때가 온다 하게 되면 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와 손잡을 시대가 온다 하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세계가 싸우는 시대를 거치면 이제 통일교회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민주세계도 후퇴하고 공산세계도 후퇴하는 것입니다. 남아지는 것은 통일교회뿐입니다. 통일교회는 전진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밤을 새워 분석한다 해도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 없는 때가 옵니다. 그러면 멋진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사는 그 권내에서 해결지을 수 있는 통일교회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25-122
신념과 목표를 잃지 말고 뜻을 따르자
대통령 아들이나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잘 모릅니다. 똑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효자의 자식이 자기 아버지가 효자인 줄을 모르고, 충신의 자식이 자기 아버지가 충신인 줄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충신이나 효자가 되려면 불평하지 말고 따라오라는 겁니다. 누가 사정해서 따라가기 전에 먼저 따라올 수 있는 아들딸만 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 여러분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따라가는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가라 하면 지방에 가고, 고향에 가라 하면 고향에 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일본에 있을 때에는 선생님을 사모하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들이 나에게 편지를 하곤 했는데 기분이 아주 나빴습니다. 나는 그여자들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하는 편지 한 장 써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다 시시하고 껄렁껄렁하다는 것입니다. 여자로 하여금 남자를 따라오게 해야지, 남자가 따라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여러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예요. 지금도 세상에서는 통일교인 중에 문선생을 따라다니다가 아들 낳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텐데 그래도 따라올 거예요? 선생님 따라 올 자신있어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기의 신념이라든가 자기가 목표한 바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감정문제라든가 모든 문제를 뜻을 중심삼고 자기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선생님이 다 여러분에게 설명하고 가르쳐 줬는데도 불구하고 복귀원리를 들으면 `복귀원리가 뭐냐? 복귀원리는 복귀원리고 나는 나야’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게 아닙니다. 복귀원리가 여러분 자체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앞으로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외국에 가게 되면 그곳 통일교인들이 한국에서 활동한 자랑 좀 해보라고 합니다. 요전에도 로스앤젤레스에서 편지가 왔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한국에서도 지금 젊은 사람들이 뜻을 위해 충성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충성했어요? 안 했지요? 그러다가는 창피를 당합니다. 편지를 쓴 사람도 자기 딴에는 한국에서 무슨 부장도 하고 간부도 했는데 거기에 가서 보니 젊은 사람들이 밤이나 낮이나 전부 다 뜻을 위해 일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걸 보니까 한국 사람들이 창피당하게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왔다고 그들이 본부 소식을 물을 때는 창피해서 혼났다는 거예요. 그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까지의 모든 실적을 비교해 보면 여러분에게 맡겨야 될 일인데도 불구하고 안 맡기는 것입니다. 그 일을, 뜻을 먼저 알았다고 해서 여러분에게만 맡긴다면 되겠어요? 그런데 지각없는 사람들이 이 뜻이 여러분과 더불어 망하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 뜻은 안 망합니다. 결국에는 선생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969년은 중요한 해입니다. 그러니만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젊은이의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월부터는 원리연구회 조직을 재편성하여 각 대학별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여러분이 선두에 서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여러분과 같이 선두에 서 가지고 여러분에게 일 시키고 가끔씩 들를 것입니다.

선생님은 학생때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생님의 동지가 되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들과는 친구로서 상대가 되질 않았어요? 선생님은 그들과 말을 잘 하진 않았지만 일단 말했다 하면 그들은 선생님 말에 따르게 됩니다. 형무소에 있을 때도 사람들이 선생님을 보기만 하면 조심스럽게 대했습니다.

선생님은 소학교에 다닐 때부터 교장 선생님의 행동을 보고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훈련을 끊이지 않고 했습니다. 지금도 기도할 때는 그런 것을 중심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스승을 모시려니 여러분이 앞으로 힘이 들 것입니다. 십자가도 선생님보다 여러분이 먼저 지고 그래야겠지요? 그래 가지고 무슨 일을 하지요?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효자는 철이 들었으니까 아는 자로서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그렇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앞으로는 배워서라도 그래야 됩니다.

자기의 가정만을 위해 애쓰지 말고 나라를 위해 애쓰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지내니 여러분은 선생님을 통일교회의 선생님으로만 알고 있지만, 통일교회 선생님만이 아닙니다.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10년만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한창 좋을 때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기분 나빠서 여러분들을 간섭 안 하려고 합니다. 나는 대학생만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이예요. 대학생들을 규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잘 주려는 생각에서 주는데 잘 받는 사람이 없어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예배시간 전에는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로서는 빵점입니다.

25-124
죽기를 각오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지금까지는 예배시간에 누구 한 사람만 안 와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예배시간을 절대 엄수해야 됩니다. 산꼭대기에 총을 들고 있더라도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누구보다도 그리워해야 됩니다. 그래야 됩니다. 하나님이 집이 될 수 있는 아들로서의 정성어린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천리길 험한 산정을 가더라도 돌아올 때는 순식간에 돌아오게 됩니다. 자기 자리를 누구에게 맡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12시에 기도를 하라고 했으면 12시에 시간 맞춰서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으면 나라를 위해 기도드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기쁨만을 위해서 일한다면 그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라의 피해를 제거시키고 그 나라를 붙안고 축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여러분이 가는 길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죽음길을 가더라도 거기에서 승리를 결정할 수 있는 쓰라린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방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현재로는 그들이 뜻 앞에 부족할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대학을 나와 학박사가 되는 사람들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아들딸들과 믿음의 아들딸의 3대를 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고생을 시키는 것도 천적인 복을 준비해 놓고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건 여러분이 잘나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 또한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빼앗을 수 있는 자격자를 중심으로 해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빼앗으려는 사람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비참하게 됩니다. 승리의 결정권을 쥐고서 사탄의 항서를 받아 천년 만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사랑의 기원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고통을 당해도 절대 표내지 않고 콧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원수에게 복을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원수를 갖고 있는 자리에서는 천국이 결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천국은 원수를 초월해야 결정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아량을 갖지 않으면 천국의 주인이 못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자리에서도, 사탄의 화살 끝에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한 그 한마디로 말미암아 천국을 이룰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이 심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기준에서 훈련시켜 주면 좋겠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그러면 지금이 몇 시예요? 「한시입니다」 한 다섯시까지 안 재우고 얘기해도 되겠어요? 선생님은 하루에 30분만 자고 말씀한 적이 많아요.

여러분은 그렇게 안 자면 하루종일 졸려서 일도 못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네 시간만 자면 잠을 푹 잤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남과 같이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어 가지고 이름이 날 것 같아요? 선생님은 지금도 기도를 무지하게 많이 합니다. 큰일을 위해서는 그 누구도 텃치할 수 없는, 돌고비가 터져 내려가는, 눈물을 금할 수 없는 사명감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일을 못 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밥을 굶고 고생하는 것은 통일교회의 정상적인 코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옛날의 추억 속에 묻혔습니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껍데기를 벗고 멋지게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25-126
교회에 충성을 다하라
여러분은 사회에 충성해야 되고, 교회에 충성해야 되고, 가정에 충성해야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인격을 형성하고 인격을 기르는 곳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을 복귀하는 데는 그냥 그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나와서 무슨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격이 복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의 인연을 찾아서 새로운 자식이 되어 가지고 가정부터 새롭게 수습해 나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는 데에 있어서 발판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교회입니다. 교회를 발판으로 하지 않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도 교회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고, 새로운 사회도 교회를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어디에 충성해야 되느냐? 가정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해야 됩니다. 사회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해야 됩니다. 교회가 주체요 가정과 사회는 대상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에 서느냐? 대상의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대상은 동서남북 사방에 있어서 360도 회전이 되어야 하지만 주체는 중심에 딱 한 곳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어떠한 역내의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둘이 아닙니다. 중심이 둘이 될 수있어요? 이것이 왔다갔다하면 망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사람이 바르다고 할 때에 무엇을 두고 바르다는 말이냐? 천신과 인심이 한 기점에 뿌리를 두게 될 때 바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서 인심이 중심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의 모든 성심성의를 다해야 합니다. 가정보다도, 학교보다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보다도 정성을 더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되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주일 새벽에는 사랑하고 주일 저녁에는 사랑 안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새벽보다도 저녁에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새벽에는 누구든지 다 인사하지만 저녁에는 인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25-127
간곡한 심정으로 정성들이는 곳에 찾아오시는 아버지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공적인 시간을 많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공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과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언제나 발전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서게 되면 가정적, 사회적 기준이 안 되어 있더라도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주체는 상대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한 모습이 되어 그 마음이 국가적인 시대에 있게 되면, 가정적인 시대, 종족적인 시대, 민족적인 시대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그 앞에 상대적으로 가정적 사회적인 모든 기반이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날에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과의 심정에서 출발을 못했으니 역사시대를 넘어서 하나님의 복귀노정을 갈 수 있도록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교회 생활에 더 충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생활도 그렇습니다. 먹으나 굶으나 자나 깨나 생활 전부가 뜻을 위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끔 청평에 가서 낚시질을 하는데 그것은 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온갖 잡념을 없애는 것입니다. 스님도 염불할 때 목탁을 두드리잖아요?

여러분도 기도할 때는 대상을 두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도 어떠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이 되어 가지고 수수작용법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잖아요?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는 자리에서 뭐 한다구요? 「수수작용을 합니다」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하고 정성들여야 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천년사의 심정을 넘어서 간곡히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천년사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부르는 그 자리는 거룩한 자리요, 멋진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부르는 `아버지’라는 한마디의 말에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그런 기도를 해 보았습니까?

시집가는 아가씨가 첫날밤에 신랑 앞에서 신랑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생각하듯, 여러분도 사랑하는 그분 앞에 일생을 바치는 첫순간에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남편에게 순종하겠다고 하는 아가씨는 시집가서 반드시 남편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라고 절실하게 부르면 그 아버지는 천번 만번 인간의 말을 들어 주시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그만큼 평화스럽다면 평화스럽고 기쁘다면 기쁘고 만족스럽다면 만족스러움을 주시는 아버지를 간곡히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러한 간곡한 심정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국가적인 새로운 기반을 세우기 위해 뼛골이 우러나는 자리에서 `아버지, 내가 이 나라를 책임졌습니다. 오늘도 치열한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겠사오며 10년 동안이라도 그런 싸움을 할 것입니다’ 하는 기도를 합니다. 이런 놀음을 하는데 실패할 수 있겠어요?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면 할수록 사연이 쌓이고, 하면 할수록 내용이 진해집니다. 만약 선생님에게 KBS의 마이크를 준다면 대한민국 삼천만 민중에게 맨 처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것까지 생각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내정적인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할 복귀의 도상에 있어서 미래에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고 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노력하고 있어요?

사회를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 앞에 강해야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하늘 앞에 강해질 수 없습니다. 남은 학창시절이 가야할 길에 있어서 주체가 될 수 있고 충신이 될 수 있는 기간임을 알고, 심정적인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가정을 거치고 사회를 거쳐 세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25-129
기 도
아버지, 1969년 한해의 고비였던 9월을 보내고 10월을 맞이한 시점이옵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복귀의 도상에 남기신 처량한 사연들을 전부 다 청산하고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기쁨의 조건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1969년 6월 1일부터 12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아버지 앞에 호소하였사옵니다. 정성을 들여야 할 저희들이 정성이 부족한 것을, 아버님,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이 기간을 통하여 스승의 길을 따르겠다고 몸부림치면서 복귀의 한을 풀겠다고 하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그들에게 천 배 만 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을 저희의 아버님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세상의 인연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버님의 인연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아버님이 여기에 개재되어 있지 않으면 저희들은 서로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리이옵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오늘 나와 인연된 이 인연은 어떤 스승으로 말미암아 맺어진 인연이 아니라 아버지를 통하여 맺어진 인연이라는 것을 아옵니다. 하늘의 역사를 거쳐온 복귀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아버지의 피눈물나는 공생애의 터전 위에 맺어진 인연임을 아옵니다. 이것은 불쌍하다면 불쌍한 자리요, 기쁘다면 기쁜 자리인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젊은 시절의 한 생명은 반드시 시대와 더불어 흘러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흘러가듯 저희들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흘러가는 역사에 역행하고 흘러가는 사회환경에 역행하더라도 아버지의 심정을 받들어서 아버지의 마음에 기쁨의 심정을 고이게 하는 비료가 되고 고임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자신들이 되기를 이 시간 맹세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각처에 널려 있던 성화의 젊은이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당신이 이들과 인연맺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사옵니까? 당신께서는 항상 저희들과 더불어 천정의 인연 가운데서 맥박이 같이 통할 수 있고, 그곳에 같이 임할 수 있기를 고대하시는 마음이 큰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 한계의 기준을 넘어 당신의 심정에 어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옵니다.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것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과연 아버지 앞에 합당한지를 되돌아봐야 되겠습니다. 보잘것없고 불초한 모습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 앞에 한없이 눈물지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초초하고 가련한 모습이지만 아버지의 이념을 영원히 저희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이 아버지 앞에 체면을 세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한없는 눈물을 흘리다 실신하여 몸을 주체하지 못하게 될 때, 아버지께서 붙안고 `내 아들아, 네 사정을 내가 안다’고 하시면서 머리를 맞대고 해명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가질 명분이 없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상 부모와도 갖지 못했던 그 인연, 진정 그 누구와도 갖지 못했던 그 애달픈 인연을 아버지와 더불어 다시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인연을 자랑할 수 있는 자녀들이 몇 명이나 되옵니까? 그런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아들딸이 되어 있지 못하거들랑 이 시간 그 마음에 가책을 받게 하시고, 영광의 한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스스로 각성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정의 깊은 손길로 저희를 붙잡아 주신 아버지, 당신의 떨리는 입술을 통하여 명령하셔도 그 명령을 받을 수 있는 통일의 역군이 되지 못한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역사과정에서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사옵니까? 보고 싶은 그리움을 풀어 놓고 싶으신 때가 몇천 번 몇만 번이었사옵니까? 그렇게 그리워하시던 당신의 얼굴에 저희들은 배반의 화살을 얼마나 던졌사옵고, 당신의 심정에 슬픈 한의 못을 얼마나 박았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렇게 거듭되는 역사의 한을 청산하지 못하신 아버지의 그 사정은 무슨 연유이옵니까? 그것은 저희들을 통일의 기치 아래 모이게 하여 부자의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한 뜻이었던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당신의 뜻 앞에 나타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자신들임을 통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삼천만 민중은 이 시간, 잠들어 있사오나, 내일의 행복을 꿈꾸지도 못하고 싸움에 신음하며 탄식하다가 잠든 사람이 많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기 일생만을 가꾸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은 많사오나 국가와 민족과 세계와 아버지의 이념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는 적사옵니다. 오늘 이 밤, 저희들이 하늘편이 되어 하늘편의 사정을 나눌 수 있고, 하늘편의 발판이 될 수 있으며, 하늘의 대를 상속받을 수 있는 거룩한 모습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 저희 자신들을 기억하시사 은총으로 불러 주신 때가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저희의 손길을 붙잡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하늘 앞에 다가가라고 고함치신 때가 또 얼마나 많았사옵니까? 그럴 적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저희 자신들을 위해 몸부림치신 아버지께서 어쩔 수 없이 돌아서시게 될 때에, 사탄 보기가 얼마나 민망스러우셨사옵니까?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외치시던 아버지이오나, 저희들이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모습을 갖추지 못하여 돌아선 당신의 발걸음에는 역사의 서러움이 맺혀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사옵니다.

아버님, 통일의 역군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당신이 이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서 위로하시던 그 음성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이 시간부터라도 저희들이 재출발하기를 바라는 당신의 애달픈 심정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한을 풀 수 있는 깊은 심정의 선조의 인연을 두터이 가진 후손이 있거든 그들에게 몽시를 통해서라도 당신의 입장을 알려 주시옵소서. 오늘날 부족한 저희들을 일깨워 주시사, 그들 대신 세계를 탕감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날 당신의 소원을 해원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나타나 당신이 품고 자랑하실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이러한 기간을 통해서 저희들이 남기고 가야 할 것은 무엇이오며, 저희들이 품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통일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이들 앞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며, 스스로는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이냐 하는 중대한 문제 앞에 저희들이 섰습니다. 빛 될 수 있는, 원수의 가슴에 생명의 인연이 폭발될 수 있는 그러한 붉은 마음을 저희가 품고 가야 되겠습니다. 삼천만 민족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하나님의 자식들로서 부부의 심정의 사랑을 나눠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의 모든 것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10월을 맞이하였사오니, 이달부터 한의 모든 고개를 넘고 환희의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기대하던 모든 해원성사의 한 고비를 넘길 수 있는 이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당신이 분부하신 명령에 저희들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 앞에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가 저희를 내세워서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아들이다 딸이다 칭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러한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아버지의 그러한 아들딸이 되기를 마음에 새기며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날까지 일체를 당신의 품에서 보호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 가지고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