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8 to 25-76: 선열들의 소원

선열들의 소원
1969.09.28 (일), 한국 전본부교회

25-38
선열들의 소원
[기 도]

아버지, 이 아침 저희들을 당신의 품에 품으시옵소서. 이 시간은 저희들이 고대하던 9월의 마지막 주일의 아침입니다.

이 성일에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뜻을 그리워하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남겨진 복귀의 뜻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그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남겨진 복귀의 노정을 따라 당신이 슬플 때 이들도 같이 슬퍼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외로울 때 이들도 같이 외로워해야 되겠사오며, 당신이 억울하면 이들도 같이 억울해 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싸움터에 나가면 이들도 같이 나가야 되겠사옵니다.

이들은 땅 위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천정을 좇아 오늘도 어려운 환경을 탈피하기 위해서 참고 싸우면서 남아진 무리이옵니다. 그간에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위해서 충성을 한다고 하면서 따라 나왔지만 그 가운데는 중도에 낙오자가 된 사람들도 있사옵고, 혹은 배반자가 된 사람들도 있사오며, 혹은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었사옵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당신이 남겨 놓으신 이들은 승리의 날을 맞이할 때까지 참고 견디어 고이 고이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들이 수고하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옵고, 자기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찾아오신 배달 민족…. 아버님께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수고하신 것을 이들이 먼저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 대한의 아들딸을 세우시어서 인류의 표상이 되고, 역사의 총대(總代)가 되고, 신앙의 원천이 되게 하시려는 당신의 엄숙한 축복의 은사를 고이 받지 못하는 이 민족의 우둔함을 저희들은 통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의 장래를 저희들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 민족의 일을 생각하면 뜻을 안 저희들은 당신의 심정 앞에 부름받은 자들로서…. 그래도 남아진 이 한스러운 환경을 어깨에 짊어지고 하늘 앞에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 세울 것을 마음에 표방하고, 하루의 생활의 표준으로 삼으면서 허덕여 나온 불쌍한 무리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렇듯 한스러운 복귀의 모습일지라도, 저희가 지나간 가지가지의 일들을 회상함으로써 이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이 그랬다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 길이 저희들에게 인연되었으니 이 고충을 더 이상은 지연시키지 않겠다고 몸부림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민족적인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당신의 뜻을 자기의 뜻이라고 부르짖으면서 몸부림쳐 나온 수많은 무리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의 몸으로 천국을 이루어야 된다’고 하셨사옵고 `네마음에 천국이 있다’고도 하셨사옵니다. 그 천국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생활이념으로써, 사랑하는 그 모습 가운데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스스로 자기의 생애에 있어서 기쁨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 자는 천국에 설 수 없는 것이요, 천국의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천국을 운운하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원수를 앞에 놓고 조금이라도 원수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천국을 소유할 승리의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자리는 능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 찬양할 수 있는 천국의 이념권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은 천국을 말하게 될 때 원수와 싸우는 격한 자리에서, 자기의 분노와 자기의 모든 혈기를 드러내어 원수와 겨루는 자리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원수의 칼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고요히 하늘을 그리워하며 참배하는 자리, 평화롭게 그 하늘의 품에 안기는 자리, 원수의 환경을 초월하는 자리에서 천국을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오늘날 이 죄악이 뒤끓고 있고 사탄의 무리가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현실에 있어서, 이 역사적인 원수가 저희를 노리는 이 마당에 있어서, 원수를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의 거룩함을 찬양하며 당신의 높고 귀하심에 취하여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면서 마음의 기쁨, 몸의 기쁨을 가지고 나가는 자 누가 있으며, 내가 가진 선민의 권한을 빼앗을 자 어디에 있느냐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무리만이 천국의 일원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십자가의 환난길에서 고독 단신으로 외로이 눈물지으신 처량한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선열들은 기근과 굶주림이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도, 자기의 일신이 비참한 구렁으로 몰리는 자리에서도 천지의 고난에 의해 꺾이지 않았던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참았고, 죽임을 당하고 채찍을 맞는 자리에서도 그 결의가 꺾이지 아니하였던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참고 남아져 승리의 방패를 들고 나서는 자만이 천국과 인연 맺을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진정 배워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원하는 참다운 나라는 이 땅 위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한민국도 저희가 바라는 나라가 아니오며, 이 땅 위에서 추앙받는 어떠한 선진 국가도 저희가 머무를 수 있는 나라가 아니옵니다. 그 나라 전체가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게 될 때는 그 나라가 아버지의 품에 품길 수 없기 때문에 저희들이 싸워서 아버지의 나라를 쟁취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 자신이 죽는다면 원한의 세계에 뼈를 묻고 가는 처량한 모습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는 길 앞에서의 어려움과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눈물짓는 것을 원수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탄이 `너의 선조들도 매일 시련 가운데서 괴로워 눈물을 흘렸다’고 하늘땅 앞에, 또는 후손들 앞에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을 남길까봐 염려할 줄 아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너희들은 그 누구를 위하여 태어났느냐고 할 때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누구를 위하여 살겠느냐고 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위하여 살겠다고 말할 수 있으며, 누구를 위하여 죽겠느냐고 할 때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죽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아무리 초조하고 아무리 처량하고 아무리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 저희들이라 할지라도 저희들보다 더 불쌍한 아버님이 계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앞에 저희가 제물이 되어 저희보다 더 불쌍하신 아버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아버님을 모시고 효의 도리를 추구함에 있어서, 아버지의 위신과 아버지의 입장과 아버지의 사연을 통고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을 가진 한분이 저희를 대해 효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죽음의 길을 가라는 것이요, 충신이 돼 달라고 하는 것은 찢기고 찢기는 형극의 길을 가라는 것임을 생각할 때, 부모의 자리에 계신 아버님께서 땅을 찾아 나온 걸음이 얼마나 처량한 모습이었던가를 저희들은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그러한 뜻을 품고 나오시면서도 그 뜻을 이루어 달라고 말 못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저희의 심정 깊숙히 갈래갈래 찢기는 아픔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 내심의 심정을 이어받아 아버지 앞에 합당한 모습이 되고 360도 어느 방향에 있어서도 참다운 한 분의 모습을 갖춘, 아버지만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자녀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시옵 소서. 그러한 모습을 붙들고 천년사의 기쁨을 누리는 대신 고마움의 눈물을 짓는 아버지이신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그 아버지를 모셔 놓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살고, 그 아버지의 이름으로 수고하고, 그 아버지와 더불어 죽음길에 부딪치게 되면 저희들은 죽을 줄 알았으나 죽지 않고 살아났던 것을 볼 때, 저희들은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통의 생활 가운데 뜻을 세우라 하신 것을 저희들이 귀히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정 때문에,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치 못한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쳐 쓰러지는 몸이 될지라도 당신 앞에서는 절개를 지킬 줄 알고, 몰리고 채찍을 맞아 객사하는 몸이 된다 할지라도, 이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이 생긴다 할지라도 당신이 맡겨주신 이념과 당신의 유업만은 남기고 죽을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저희들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맹세하였사옵니다. 맹세의 실체가 되어야 할 저희들이 자신의 슬픔만을 통탄한다면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님은 얼마나 슬플 것인가를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120일 기간을 정해 놓고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였사오나 네가 소원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게 될 때, 막연해지옵니다. 네가 소원한 것이 진정한 사실이냐고, 네 뼛골을 추리더라도 너의 심정으로부터 하늘의 마음을 받들 수 있는 자리에 있느냐고 묻게 될 때, 주저하게 되옵니다.

당신이 고대하는 것은 너무도 크고, 당신이 바라보시는 소원의 기준은 너무도 높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작고 미급한 자신만으로는 이스라엘이 될 수 없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당신의 자비의 손길만이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없는 어린 애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고아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부모의 흐뭇한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어린애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어린애는 옷이 문제가 아니요, 밥이 문제가 아닌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자리는 소원성사할 수 있는 만사가 형통한 자리요, 마음의 평화와 안식의 터전이 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부모를 바라보는 그 어린애의 얼굴에는 웃음이 담길 것이요, 평화의 모습이 어릴 것이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저희는 벌거숭이일지라도 아버지의 품에 품기어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평화의 얼굴로 아버지를 반기게 해주시고, 밤이나 낮이나 하늘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생명 대신 의지하고, 생명 대신 바쳐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의 연결체, 심정의 연결체인 부모의 품에 안길 줄 아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20일 기간을 거의 다 지내고 사흘을 남겨 놓고 있사옵니다. 이 기간에 저희들 앞에 무엇을 요구하시옵니까? 요구하실진대 다시 통고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기도하는 그 환경과 처지에서 노력하고 있사오니, 이 아침 저희의 부족한 모습을 보시옵고 그저 꾹 참으시옵소서.

이 나라 이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의 해원성사를 위하여 태어난 아들딸로서 훗날에 천국백성이 되었다고 찬양할 그날을 위해 저희들은 호소하고 있는 것을 당신도 알고 계시옵니다.

기필코 이런 용자라면 말세에 있어서 외로운 종족이 될까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의지할 자 없는 고독 단신으로 안팎의 중대사를 처리해야 한다고 분부하심을 아옵니다. 나라가 그러하듯이 저희들이 가야 할 길도 그러하옵니다. 내적인 기준을 책임진 저희들이 앞으로 이 뜻을 책임져 나가 이 나라 앞에 지침이 되고 참된 인도자가 되어서 삼천만 민중의 가슴가슴마다 새롭게 불을 지를 수 있는 모습이 되겠다고 각자가 결심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 얼마나 거룩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진정 몰랐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는 그 이름의 의미를 저희들은 깊이 몰랐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도 감정이 둔한 자신을 중심삼고 몸부림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정의 도리와 천정의 인연을 갖추지 않고는 안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해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10월이옵니다. 저희들에게 있어서 10월은 해방의 달이옵니다. 온전히 1969년을 맞이할 수 있고 새로운 소망의 때를 예지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10월 11월,12월도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저희들이 또다시 정성을 들여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 민족의 해방과 세계 만민의 축복의 기반을 닦기 위해 영계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내 마음과 내 뜻과 내 정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내 자신이 아무리 초초하고 비참한 자리에 서더라도 그러한 내 일신을 잊어버리고 남아 있는 복귀 역사를 종결시키기 위하여 총대를 들고 나가 싸워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개선장군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저희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온전히 아버지를 대하여 충효의 도리를 세울 수 있는 이념과 사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당신이 분부하고자 하시는 바를 저희들의 마음에 옮겨 주시 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한국 땅덩어리를 중심삼고 금후에 어떤 세계도 갖지 못할 당신의 아들딸들이 여기 있나이다. 36가정이 있고, 72가정이 있고, 120가정이 있고, 430가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계속 넓혀가기 위해서 세계에 널려 있는 10개 민족을 중심삼은 40여 종족 위에 축복의 터전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러한 하늘나라의 복귀의 터전을 개척하느라고 남모르는 수고의 역로를 걸어 나왔습니다. 이는 오로지 하늘만이 수고하셨고 하늘만이 알았고 하늘만이 싸워서 남겨 놓은 터전이오니, 저희들은 참회하면서 이것을 이 민족 앞에 남겨 주기 위해, 세계 앞에 남기기 위하여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싸워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모이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몇몇 지구 식구들이 오늘은 야외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오니 거기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넓히고 뜻을 높이기 위하여,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움직이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의 갈 길을 친히 인도해 주시옵소서. 저희의 모든 사연을 친히 받아 주옵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5-44
말 씀
오늘은 9월 마지막 주일로서 6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120일 정성 기간의 사흘을 남기고 있는 날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개인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보다도 현재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뜻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어떠한 목적, 즉 소원의 성사를 중심 삼아 가지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25-45
하나의 세계로 귀일되어 가는 현시점에서 알아야 할 것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도하는 목적과 일반 기독교 신자나 일반 종교인들이 자기 나름의 종교를 통하여 기도하는 그 목적의 그 귀일점은 결국 하나입니다. 자기 교파를 중심삼은 기도보다도 반드시 상대적인 세계를 위하여 기도하고 소원하며 나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 기도하는 방향에 있어서는 틀릴지 모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대충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향이 내용과 일치되면 일치될수록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존재든지 합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 국민들의 생활 수준과 그 국민들이 가진 문화 수준, 또는 그 국민들의 소원이 딴 민족이나 나라와 일체될 때는, 그들의 문화적인 배경이라든가 역사의 배경이 서로 다르더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된다는 것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미루어 봐도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종교의 최후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국가를 넘어 하나의 세계권을 향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종교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형성되어 있는 수많은 국가들 역시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색해 나가는 방향이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감과 동시에 내용 또한 하나의 내용으로 귀일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온 것을 볼 때, 세상적으로 보나 종교적으로 보나 그야말로 마지막 때가 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두 하나의 세계를 모색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각자가 전면에 서 있느냐 후면에 서 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목적하는 기준은 같습니다. 이제까지 동과 서가 서로 맞서 가지고 존재했던, 그러한 과거 역사가 바라고 나왔던 소망이 오늘 현실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바라보며 소망하는 터전이 틀림없이 내 시야에서 실현될 수 있는 때가 목전에 다가옴을 느끼게 될 때, 지금까지의 수많은 나라,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해 나왔던 모든 내용을 한 점에 귀일시킬 수 있는 현시대가 역사적인 종말시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세계적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결정지어야 할 때인 것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이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활권내에서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막연한 추상적인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실질적인 생활무대를 중심삼고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을 잘못하면 잊어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많은 대가를 치렀고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오늘의 결과적 현상을 볼 때 지금이 끝날이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5-46
중심의 가치를 결정해야 할 현시점
끝날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역사의 결실, 현실의 새로운 중심, 미래에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원을 결정할 수 있는 때인 것입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오늘날 동서 사방에서 되어지는 정세를 통해서 혹은 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실정을 통해서 엿볼 수 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끝날의 현실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는 앞만을 바라보고 나가야 되겠느냐, 아니면 사방을 돌아보고 나가야 되겠느냐, 아니면 지난날을 돌아보고 나가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싸움은 과거를 현재에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요, 오늘의 우리 자신을 드높이 찬양하는 것은 미래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미래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요,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미래의 가치는 영원의 가치와 대등한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의 기준을 결정지어야 할 현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초월할 수 있는 중심적 가치를 결정해야 하고,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중심적 가치를 결정해야 하고,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중심적 가치를 결정해야 할 현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미래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끝날의 현시점에서 우리가 자리를 잡고 넘어가지 못하게 되면 그 미래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 미래는 또 미래를 추구하는 투쟁과정을 남겨 놓고 가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적을 추구해 나왔지만 그 목적을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래에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면을 위해 다시 방향을 갖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운명에 처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또 과거의 역사의 결실도 다시 미래의 방향에 맞추어 나가야 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미래의 초점을 책임지고 이것을 규합하고 이것을 종합하고 이것을 해결지을 수 있는 사명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 사명자가 있다면 그는 삼중의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다시 엮어야 할 입장에 있고, 현실을 다시 미래에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으며, 역사의 결실들을 수습하여 미래를 다시 개척하기 위해 재탕감해 나가야 할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인들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입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5-47
후손들에게 올바른 전통을 남겨 주려면
그러면 나는 어떠한 입장에서 살아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재의 나 가지고는 현재에 있어서 미래의 기반을 닦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과거에 살아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소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현실에서 살아야 됩니다. 과거에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즉 말하자면 지금까지 왔다 간 선지선열들이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면서 추구해 나오던 소원의 기점을 다 이룬 그 나라와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바라던 마음을 갖고, 그 사람들 가운데에 깃들어 있던 그 나라와 그 세계에는 우리들이 실천만 하면 도달할 수 있다는 기준이 각자의 마음에 세워져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고로 왔다 간 선지선열들이 고대하던 천국의 터전을 이 땅 위에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30억 인류는 과거 선조들의 후손들이기에 뜻을 아는 우리들이 그 선조들의 뜻을 모두 계승하기 위해서는 너와 나를 중심삼은 횡적인 관계를 맺는 입장에 설 것이 아니라 종적인 관계를 맺는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너와 나, 형님과 동생의 관계와 같은 대등한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주종관계의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세계 인류 앞에 누가 주된 입장에 설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역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주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승리로 결정짓지 못하고 오늘 안팎으로 요구되는 모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면 미래에는 또다시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래를 위하여 현실에서 올바른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이며, 새로운 미래의 터전을 현실에서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미래를 위해 살 것이냐, 현실을 위해 살 것이냐 하는 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때는 과거 현재 미래, 이 3시대의 모든 여건이 나 하나를 중심삼고 뒤넘이치는 현실임을 직시하고 이런 현실을 넘어 미래를 위해 살 것이냐, 현실을 위해 살 것이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현실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중심삼고 미래의 실체로서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미래를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거꾸로 미래가 몰려 와서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인 현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의 출발이 되어질 수 없고, 새로운 이념의 세계가 지상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5-49
3시대의 종합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때
그러면 우리의 후손들은 어떻게 돼야 되느냐?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남겨 놓은 미래의 터전을 현실에서 결정지어 놓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이 지난날의 산 역사를 돌아보며, `이것이 우리들의 생명의 터전이요, 소망의 터전이며 희망봉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을 현실에서 거치지 않고는 오늘의 역사는 미래를 향하여 그저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미래를 중심삼고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미래의 중심이 되어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볼 때, 과거의 역사는 한과 슬픔으로 미래를 향하여 추구해 나온 역사였습니다. 거기에는 탕감이라는 조건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현실에 부정이 되는 환경이 요구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서 있는 우리들은 과거와 더불어 미래 전체를 대표했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과거의 역사가 결실되어지는 것이요, 이 시대의 중심핵이 결정되는 것이요, 미래의 새로운 기원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3시대의 종합적인 기원을 마련할 수 있는 시점은 어느 때인가?

과거에 왔다 간 선열들은 이러한 한 때를 위하여 정성을 들였으며, 이러한 한 때를 맞이하기 위해 그때를 결정지을 수 있는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소원이 이루어지를 고대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 땅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혹은 세계를 위하여 수고하다가 피를 흘리며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뜻을 위한 죽음길을 자기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고, 그 죽음길을 자기의 생명보다도 가치있게 여겨서 열매맺어 남기고 가려 했던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신앙심을 가지고 틀림없이 결정지을 수 있는 미래의 한날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의인들이 피를 흘려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때가 어느 때일 것인가?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피를 흘린 그날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시대를 거쳐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소원해 나온 그 한때는 언제냐는 것입니다. 이날을 소원해 나왔던 수많은 그 선지선열이 각각 다르듯이 그들의 소원도 달랐지만 그 지향하는 목적 기준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고대해 온,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점이 어느때냐?

그 한 때를 중심삼고 볼 때, 인류 시조가 타락의 역사를 엮어 놓은 그날부터 만민이 입을 열어 슬픔으로 한탄의 소리를 하였으니, 그런 원한의 소리를 들은 우리들이 오늘 부르짖는 그 인연은 그런 허망한 역사의 인연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요, 행복의 여건이 될 수 있는 역사의 인연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 기반 위에 서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고, 조상들이 그리워하던 그 천국이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역사를 재감정할 수 있고, 이 인연을 기뻐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인 동기가 되어 가지고 후대 사람들도 미래를 중심삼고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중심삼고 과거의 역사적인 소원을 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아무리 과거의 역사가 흔들렸다 하더라도 이 기원과 더불어 영원히 일치될 수 있습니다. 영원히 일치될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결정되지 않고는 영원히 하나의 나라는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각 분야마다 새로운 문화의 세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과학도 입체적인 세계관을 향하여 꾸준히 전전할 것입니다. 그 진전된 생활환경이나 사회제도로 인해 우리의 생활적인 인연과 인정, 사정이 달라질 것인데 달라진 그 인연 가운데서 내일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게 될 때 역사적인 모든 형태 역시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회제도나 모든 국가 형태도 판이하게 달라지고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통일국가 형성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의 세계는 한갓 꿈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이겁니다.

그걸 볼 때, 아무리 그 문화가 발전하고 아무리 생활환경이 달라져 초세계적인 현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는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느 때 심어진 희망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행복이 틀림없이 연결되었다고 하는 실감이 자기 생활의 어떠한 감정보다도, 육감을 통해 들어오는 어떠한 직감보다도 강하게 생활무대에서 느껴질 수 있는 기원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세계를 움직여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5-51
마련해야 할 참의 기원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때는 어느 때냐? 그때를 맞기 위해서 수많은 선열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날을 맞기 위해 수많은 선열들이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흑암에 지지부진 끌려가서 탕감복귀가 미래, 또 미래로 연장되어 나갔듯이 그러한 미래를 위하여 피를 흘린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역사의 기원을 마련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천년 만년 후대의 역사를 엮어 가더라도 그 역사가 딴 데도 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기준이 되어 가지고 생활의 모든 지침이 될 수 있고, 자기의 인생행로의 지침이 될 수 있으며, 심정세계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현실을 뛰어넘은 미래의 어떤 기준이 아니라 거꾸로 과거의 역사가 자기들의 현실보다도 더 높이 찬양받을 수 있고, 미래의 기준보다도 더 높이 찬양받을 수 있는 그 한 때를 지상에서 결정짓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짓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기원, 그것은 민족보다도 귀한 것이요, 나라보다도 귀한 것이요, 세계보다도 귀한 것이요, 지상에 남아질 미래의 어떠한 인류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그렇게 귀한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통일교회가 말하는 이런 내용입니다. 인간에게는 참된 부모가 있어야 하고, 참된 형제가 있어야 하며, 참된 가정, 참된 종족,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가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도 당신이 계셔야 할 본연의 입장에 서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런 입장에 서시지 못했느냐? 그렇습니다. 왜? 참의 권한을 가지고 치리하지 못하여 참의 결실을 맺을 수 없었으니 당신이 서셔야 할 본연의 입장에 서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된 결실은 참된 나무에서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권능이 많고 참되다 하더라도 참된 개인과 참된 가정과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와 같은 참된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연의 입장에 설래야 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참의 기원, 영원히 불변하는 참의 기원을 마련하여, 거기에 참의 하나님과 더불어 닻을 내리고, 그것을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터전으로 삼아 남편과 아내와 부모와 자식이 그 백성과 더불어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추구한 이유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놓고 보면 하나님 자신에게도 마음이 있을 것이고 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이 있을 곳이 어디냐? 몸이 있으면 그 몸이 횡적인 입장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손에 손을 잡고 얼굴에 얼굴을 서로 맞대고 동거할 수 있는 본거지가 어디일 것이냐?

여러분이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아하, 그것이었구나’ 하고 그것을 헤치고 나오면 거기에는 참된 세계가 잠들어 있는 것이요, 그것을 헤치고 나오면 거기에는 참된 국가도 잠들어 있는 것이요, 거기에 참된 종족, 참된 가정, 참된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개인뿐만이 아니라, 참된 부부가 있고 참된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세계를 돌아볼 때 그런 곳은 현실에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과거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미래의 세계에 이러한 원리만이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적 동기가 되는 것이요, 현실의 귀추가 되는 것이며, 미래의 기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역사적 사정을 중심삼고 주장하는 통일의 세계와 공산세계나 민주세계에서 말하는 통일의 세계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왜 통일이라 했느냐? 우리의 통일이란 역사적인 구원을 바라고 이 시대를 중심하고 미래의 기틀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이러한 내용은 지금까지 어느 곳에도 없었던, 3시대가 일치할 수 있는 한 때를 붙들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또한 부활된 참세계의 출발을 놓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25-53
이상세계의 기점은 가정
이러한 신념을 실질적인 감정으로 깊이 체휼하게 되면 여러분은 새로운 인생을 가질 것이요, 새로운 인생의 감정을 가지게 되면 거기에서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인류의 가슴 속에 길이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 것이냐? 과거에 있어서나 현실에 있어서, 혹은 미래에 있어서 이 한스러운 인류역사 가운데에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일 것이냐? 참된 하나님이 계시고, 그 참된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된 부모가 있다면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의 인연을 통해서 그 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냐? 참된 그 사랑을 중심삼아 형제를 찾고 그 형제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가 이루어져 그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은 참사랑만 가지고 나가면 그 국가의 남이나 북, 동이나 서 어디에서든지 환영을 받을 것이요, 어디든지 통하지 않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이런 입장에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연은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단지 이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통하여 보게 될 때, 개인의 마음이 가는 길도 이 길이요, 국가의 마음이 가는 길도 이 길이요, 세계의 마음이 가는 길도 이 길입니다. 세계의 마음이 딴 게 아닙니다. 세계 인류의 마음이 합하여지면 세계의 마음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36억 인류의 마음이 따라 오면 그게 세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마음도 딴 게 아닙니다. 역사상의 모든 인류의 소원이 이 기준 앞에 일치된 마음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행복의 요건이 어디 있느냐? 역사적, 세계적, 국가적 관념을 점점 끌어들여 축소시켜 보면, 행복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이란 하늘땅이 공인하고 온 우주만상이 시선을 집중해 가지고 소망하는 실체, 즉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그리워 할 수 있는 한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의 아들딸이 있는 그러한 가정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종족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민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국가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여기에 억만 마음을 갖다 합치면 이상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볼 때, 천년 만년 남아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 개인이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그렇게 개인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자 자체로 남아져서도 안 되며, 여자 자체로 남아져서도 안 됩니다. 남아질 바에는 둘 다 남아져야 된다는 겁니다. 반드시 둘이 남아져야 된다는 거예요. 둘이 남아지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개체의 심정적 기준과 상대적 기준이 동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상대적 존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부모 앞에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 그러한 부부, 그러한 가정으로서의 대표적인 실상이 깃들 수 있는 소망의 터전이 나타났다 할 때는 역사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죽은 역사인 줄 알았는데 그 역사가 다시 살아 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비참한 역사로, 서글픈 역사로 엮어진 성경 66권의 모든 미해결의 내용이 지나간 역사로 남아졌으나 소망의 터전으로 인해 그것을 바라보는 그 종족이 살아 나오는 것이며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살아 나오는 것입니다.

25-54
선열들의 소원은 참사람이 나타나는 것
어느 나라든 소망이 없었던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라 해도 이러한 내용에 연결만 되면 그 인연을 중심삼고 미래에 부활의 혜택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토대로 바라볼 때, 여기 한 분이 정상적으로 가는 길에는 국가도 살아 있을 것이요, 세계도 살아 있을 것이요, 하늘의 질서도 세워질 것이며, 하나님도 거기에 군림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기준만이 역사에 영원히 남아질 것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우리가 필요해서 이용하고 나면 끝나 버리는 것이지,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역사적 소원의 실체는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조직사회를 이루어서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한 국가나 세계의 형태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곳이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이상천국은 아닙니다.

외적인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세계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내적인 이면의 세계가 결정되어야 하고 그 결정된 것이 외적인 환경을 끌고 갈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서는 이상세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난날 선열들이 바라던 소원도 이것이요, 오늘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바라는 것도 이것입니다. 그러니 미래에 우리 후손들이 바라는 것 역시 이것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3시대의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생활 속에서 나를 희생시키며 실천을 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내가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생명의 모습을 갖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사는 곳이 지옥일지라도 그 사람은 지옥의 사람이 아닌, 천국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 곳은 알게 모르게 저절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를 지고 현시대에서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건설자요,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개척자이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은 어디나 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보통사람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이런 자리에 서게 되어야 비로소 하늘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 교인들의 마음을 싹 풀어 헤쳐 보면 그 가운데 뭐가 있느냐? 가지나 줄기나 잎은 나무 전체의 가치와 같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인도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같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양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게 되면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제한된 가치가 아니라 무한한 가치입니다. 통일교인 모두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역사상의 그 무엇보다도 귀하고 미래의 그 무엇보다도 귀한 가치입니다. 절대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여러분 개체의 마음 마음에 기쁨을 느끼며 공히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나서게 될 때에 여기서부터 새로운 자극이 생겨 새로운 역사가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거기서 절대로 몰러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가진 인생관이면 인생관, 생활관이면 생활관, 우주관이면 우주관이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과 여러분을 봐도 다른 게 뭐 있습니까?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다르겠지만 배우고 난 후에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 선생과 배우는 학생이 뭐가 다르냐면, 한쪽은 가르치는 분이요 한쪽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배우고 난 후에는 양쪽이 다 마찬가지가 되는 겁니다. 그럴 때 가르치는 그 스승의 소원이 뭐냐 하면, 그 제자가 미래에 자기와 같은 스승이 되어서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때 그는 기뻐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교훈해 나오는 것은 미래에 되어질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이 타락한 세계의 실체를 그냥 그대로 계승시킨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적인 실체를 추구해 나왔기 때문에 탕감복귀니 혁명과정이니 하는 것도 비정상적인 인물을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인물은 자기보다 나아야 됩니다. 타락한 역사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 수록, 과거보다도 현실, 현실보다도 미래에는 더 나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 더 나아져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승이 있어 가지고 가르쳐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가르쳐 줄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지어 나오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25-56
통일교회 원리는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의 길이 얼마나 고통의 길이겠습니까? 통일교회는 그야말로 통일교회인 것입니다. 통일교회 하게 되면 벌써 세계가 통일교회 권내에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일을 하려면 그 사람만이 가진 사연이 있어야 합니다. 즉, 아무개가 뭘 하는 사람이냐 할 때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사연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하면, 통일교회만이 가진 사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고서는 통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무슨 교니 하는 것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그 길에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가느냐, 전세계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원리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영원히 영원히 모시고 살아야 할 하나님과 부모는 어떤 관계이며, 나와 부모는 어떤 관계이며, 나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가르칩니다. 이 관계를 횡적으로 엮어 놓은 것이 천국인 것입니다.

이 기틀이 잘 세워져 있을 때에는, 다시 말하면 머리를 중심삼고 꼬리가 정상적으로 잘 달려 있을 때에는 역사의 방향은 영원히 일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길과, 부모가 가시는 길과, 인류가 가는 길이 일치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을 향해서 나갈 때 궤도가 틀어지지 않고 어긋나지 않고 세계로 출발되어지면 그것이 나라가 되는 것이요, 나아가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25-57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의 뜻
여러분이 아무리 큰일을 한다 하더라도, 또는 어떠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기준을 중심으로, 하나의 저울이라면 추가 되어 모든 것을 조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이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악에 해당하는 것이요, 일치되면 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계에 가 있는 선열들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땅 위에 하나님이 현현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참자녀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앞으로 후대의 역사과정에는 `이 과정을 밟고 넘어갈 수 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아무리 역사가 발전하고 아무리 비약하는 세계가 온다 하더라도 이 과정을 밟고 넘어가야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하나의 방안이 모색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통일의 방안인 것입니다. 역사가 어떠한 결과를 추구해 나온 모든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발전해 나온 세계의 모든 결과도 이것이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걸 생각할 때 여러분은 누굴 위해 살아야 됩니까? `나라는 존재는 누구를 위해 있느냐?’ 할 때, `하나님을 위해 있다’ 한다면 그 말은 하나님을 대신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플러스 시키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가 나를 중심삼고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주체이시며 나는 대상이라는 말이며, 대상인 나는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인연되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플러스시켜야 할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입장은 어떠하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플러스가 되면 거기에 더 플러스시켜 가지고, 우리를 한 단계 더 높은 대상의 입장으로 올려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도입니다. 간단한 것이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말하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이라든가, 삼단계 완성법칙이라든가, 하나님의 창조목적 등의 내용이 여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 플러스를 많이 시키면 뭐가 좋으냐? 내가 왜 좋으냐 또는, 하나님이 왜 좋으냐 하면, 주체 앞에 플러스시킨 만큼 합해져 가지고 내 앞에 중심이 되니, 플러스를 많이 시킬수록 나는 그와 하나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커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잃어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자꾸 플러스시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면 뭐가 좋으냐? 그 배운 만큼 자기 활동무대라든가 자기 역량권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역량권이 넓어지면 자기의 모든 욕망에 대한 실권이 커지는 것이며 자기의 행복의 터전 또한 점점 넓혀져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행복의 터전이 넓어지게 되면 나중에는 세계가 나와 더불어 발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마음속에 세계를 전부 다 점령하겠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욕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전 인류의 관심이 이 세계에 쏠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25-59
참된 역사를 출발시켜야 할 통일교인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기의 일보다도 세계의 일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어떤 민족이 자기 민족보다도 세계의 일에 더 관심을 가졌다 할때, 그런 사람들의 수가 다른 민족보다 더 많은 민족이라 할 때 그 민족은 결국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아무리 세계를 지배한다 해도 국민들이 전부 다 세계에 무관심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후퇴하여 3년뒤에는 아시아를 찾아올 것입니다. 현재는 세계를 쥐고 흔들지 모르지만 앞으로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세계에 관심이 없는 백성이 되면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자기가 관심을 갖고 생각하지 않은 일에 관계를 맺을 수가 있겠어요? 생각하지도 않은 일에 인연이 맺어질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자기의 생활과 자기의 현실 사회의 모든 환경을 넘어서 누구보다도 세계의 문제를, 인류의 문제를 내외적으로 염려하고 실감하면서 살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그 사람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세계의 주인입니다. 세계적으로 어떠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세계의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 사건에 대한 관심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야 할 길은 이 땅 위에 닻을 내리는 길입니다. 그러려면 지상의 모든 것들이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 본연의 자세를 갖추려면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참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 참부모가 현현할 때까지 인류는 비참한 역사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참부모가 와서 이 비참한 역사를 전부 다 바로잡아 하나의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참부모의 역사에 있어서 세워야 할 조건을 모두 세우게 되면, 여기서부터 바로 참된 부모의 역사, 참된 자녀의 역사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부모가 역사적인 조건을 넘어서기 전에는 참된 부모의 역사는 출발할 수 없는 것이요, 참된 부모의 역사가 출발할 수 없으면 참된 자녀의 역사도 출발될 수 없는 것이요, 아울러 참된 세계의 역사도 출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의 역사, 참된 자녀의 역사가 정상적으로 이어져 나가게 되면, 그것이 참된 국가의 역사가 되는 것이요, 참된 세계의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시킨 초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초점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과거를 현시점에서 갖다 붙이고 미래 또한 현시점에 갖다 붙여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그 결실이 무엇이냐면 조금 전에 말한 하나님과 참부모와 자녀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 세계는 간접적인 존재입니다. 간접적인 존재로 구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직접적인 존재는 무엇이냐? 하나님과 참부모와 나다 이겁니다. 그런데 세상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떼버리고 부모와 자식만을 말합니다. 이것은 결실을 맺는 과정이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행의 여건은 거기서부터 파급되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라든가 모든 사회문제들의 내용을 파헤쳐 보면 그 연유가 전부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긴 있는데, 부모의 마음이 아들딸의 마음 깊이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의 정이 자식들의 뼛골에 깊이 다져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부터 부모 자식간에 틈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뜯어 고쳐서 올바른 자리, 올바른 궤도에 올려 놓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부모의 관심사와 사회적, 역사적인 관념을 배제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역사가 추구하는 미래의 어느 기점에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 자체가 과거에서부터 바라며 나오던 역사적인 소원을 현실적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으로 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이 세계는 갈라지지 않는 하나의 통일세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25-61
하나님과 참부모의 뜻을 중심하고 한 길을 가자
그러면, 여러분이 아무리 싸움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참부모의 뜻’하게 될 때 거기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는 주권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렇고 부모의 뜻이 이렇지 않느냐’ 하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질서정연하게, 강제가 아닌 자연적인 체계와 논리적인 형태로 전개하여 말하게 될 때는 그 앞에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떠나서는 그 내용에 부합될 수 있는 아무런 가치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기준이 계속되는 한, 인류세계에 참부모를 중심삼은 영원한 평화의 기원과 통일의 기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열들은 이러한 부모를 중심삼고 소원해 나왔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여러분도 참부모를 중심삼고 소원하며 실천했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아브라함보다도 낫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아벨이 나 때문에 피를 흘렸구나’ 하는 것이 느껴질 것이요, `예수님이 그런 사정에 처해 있었던 것도, 역사과정에 솔로몬왕이니 다윗왕이니 하는 사람들이 왔다 간 것도 나 때문이었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결국은 나 때문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오늘날 승리의 권한은 우리가 갖고 있지 과거에 왔다간 그들이 갖고 있지 않다. 미래의 동기도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고, 내적인 세계의 동기 역시 우리가 갖고 있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역사도 통일교회를 위하여, 과거로부터 흘러 나온 역사도 통일교회를 위하여, 세계가 복잡한 가운데 발전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다 통일교회를 위한 것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하면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다른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하기 전인 몇십 년 전에 이미 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리 다 생각해 보고 이 길을 출발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여러분은 선생님이 거기에 대한 비판적인 조건을 제시해서 이미 다 검토해 본 내용을 갖고 `내가 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전날 뿔을 돋혀 가지고 꺼떡거리고 다니던 녀석들이 그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습다는 거예요.

결국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할 때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요, 참된 부모의 전통을 이어받기 위해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통을 실현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참부모의 전통이 무엇이냐? 그것은 가법(家法)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을 때 유언해 놓는 가법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소원, 즉 참부모의 소원인 것입니다. 참부모의 그 소원은 자기 집안을 위해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 곧 가정이 있는 것은 민족을 위해, 민족이 있는 것은 국가를 위해, 국가가 있는 것은 세계를 위해 있는 것이니, 그 최고의 목적기준을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 이루는 것입니다. 그 이상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여러분이 훌륭하다고 해봤자 아무집 아버지의 그 아들밖에 더 되겠어요? 사회에서 아무리 잘된다고 해봤자 어느 회사 사장밖에 더 되겠느냔 말이예요. 그보다 더 잘된다고 해도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 밖에 더 되겠어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기수는 되겠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휘어잡고 그 품에는 인류를 품고 돌아갈 정도가 되어야 잘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정도라야 잘된 것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내가 머무는 곳이 의도(義道)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이겁니다. 즉, 내 마음이 하늘 끝, 세상 끝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결과의 세계가 이 기원과 관계를 맺고 존재하는 이상, 이 존재의 세계는 내 것으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망상이 아닙니다.

25-63
확신을 갖고 가야 할 통일의 길
이런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하며 현세를 붙들고 힘차게 나서게 될 때 거기에 역사가 동원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까지 동원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세계의 마음은 하나의 기원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중을 통일교 문선생한테 맡기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움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를 따라 나오게 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사람의 몸은 추울 때 따뜻한 곳이 있으면 `아아, 좋구만’ 하면서 찾아 갑니다.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거기에 벽돌담이 가려 있어도 들이 깨고 간다 이말입니다.

이 세상에 그런 길이 있다는 데도 갈까말까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은 아직까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념을 터전으로 이러한 원칙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거예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이 공갈을 친다고 해서 후퇴하고, 이 세계가 자기 모가지를 자른다고 해서 후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길은 죽어도 가야 되고 살아도 가야 됩니다. 이 길은 내가 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가야 하는 영원한 길이기 때문에, 더 높은 가치로서 세우기 위하여 현실적인 가치를 초월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한한 내용의 동기가 우리가 가는 길 앞에 깃들어 있는 것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가만히 보면 전부 다 싸구려꾼입니다. 싸구려꾼, 싸구려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돈을 가지고 있을 때, 선생님이 `몇천 원만 이리 내 놓지’ 하게 되면 `선생님이 자기 자식들을 위해 그러는구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남이 모르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까짓 돈 몇 푼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지구덩이도 문제가 아닙니다.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미국이 아폴로 우주선을 하늘로 보내기 위해서도 2백 5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썼는데, 그래, 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 아폴로 우주선 하나만도 못 해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을 아폴로 우주선과 바꾸겠어요, 안 바꾸겠어요? 이제는 선생님의 신세가 옛날하고 완전히 달라요. 그런 우주선 열 개 아니라 백 개를 준다해도 선생님과는 못 바꾼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내용은 그래요. 내 자신, 문 아무개라는 자체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그 내용은 복잡하다는 겁니다. 우주선을 천 대 만 대 재물로 가지고 온다 해도 내가 받고 싶으면 받고, 말고 싶으면 말 것입니다. 이런 말을 그들이 들으면 통일교회가 지금 허리 부러진 호랑이 새끼처럼 방안에서만 큰소리 치고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그 호랑이란 놈이 봄을 맞아서 허리가 나아 가지고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어슬렁 어슬렁 나서는 날에는 천하가 곤란하단 말입니다.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일본이면 일본, 어디 가든지 통일교회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허리가 부러졌더라도 여러분은 세계의 문제가 될 사건을 일으키는 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멋진 사람들이 되어야 할텐데, 선생님이 여러분을 가만히 보면 그냥 내버려 두면 선생님을 따를 것 같지 않아요. 어때요, 맞아요? 그저 시시껄렁한 사람들이 어디서 들어와 가지고, 이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처량하다는 것입니다. 참 처량하구먼! 여러분이 생각해 봐도 자신이 처량하지요? 그런 모습들을 해 가지고 `우리가 참부모님을 따라 살지 않으면 위선행위를 하는 것이니 할 수 있습니까’ 하며 능청을 떤다는 말입니다. 거기엔 아마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실 거예요. (웃음)

이걸 보면 감투 중에서 최고의 감투는 참부모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헤쳐 나오는 데는 감옥도 여러 번 들락날락했고, 매도 많이 맞았고, 서글픈 일도 많이 당해 나왔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대한민국의 애국자 중 어떠한 애국자보다도 더한 애국자입니다. 눈물을 흘렸다면 그들보다 몇십 배 더 많이 흘린 사람입니다.

25-65
참의 기준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서 하는 애국은 하늘이 공인하는 애국인 것입니다. 이 나라의 역사 가운데 있었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애국자도 선생님을 만나면 눈물 흘리며 찬양할 수밖에 없는 애국정신을 가지고 나온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대한민국이 좋은 선조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복받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애국자들이 가는 길이요, 진리의 길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충신 가운데에는 역적으로 몰리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충신이 되려는 길에서 역적으로 몰려 보지 않은 사람은 진자 충신이 못된 사람이라는 거예요.

효자도 효자가 아니라는 입장으로 반대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를 자연적으로 굴복시켜서 그 반대하는 환경을 침묵시킬 수 있는 권한을 들고 나올 때 그 사람이 참된 효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니라고 부정하는 자리에서 모두들 그렇다고 공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충신 중의 충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통일교회도 남들이 `아니다 아니다’ 하는 부정의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탄의 괴수로도 낙인이 찍혔었고, 민족 반역의 선봉자라는 낙인도 받았었으며, 국제 공산당의 간첩이니 하는 등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잼대가 틀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잼대가 틀리다고 하는 것이 밝혀질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잼대로 재기에는 통일교회 선생님이 너무 크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참이냐? 참된 잼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중심삼고 미국놈이 진짜냐, 영국놈이 진짜냐, 소련놈이 진짜냐? 전부 다 진짜가 아닙니다. 그럼 진짜가 누구냐? 통일의 패입니다. 통일패들이 진짜라고 하니 좋아하는데, 그럼 여러분들이 진짜입니까? 이런 통일의 패들을 믿을 수 없다, 또 그 패들 가운데 문선생, 그 문선생도 믿을 수 없다 한다면 그 가운데 믿을 수 있는 진짜가 과연 누구냐?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은 진짜다 이거예요. 진짜를 가리키는 저울의 추와 저울의 눈금과 같은 것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 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어디냐? 하나님의 몸뚱이도 아니요, 하나님의 손가락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집입니다, 마음집. 그 마음집에 살고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근본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마음집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근본이 뭐냐? 그것은 심정의 뿌리다 이겁니다. 심정의 뿌리, 그 심정의 뿌리는 어디에 나타나느냐? 골수에 나타납니다. 골수를 통해서 몸 전체에 연결되어 혈통을 타고 자녀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말하는 자녀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에서 `기분 나쁘게 통일교회 문선생이 제일 좋은 건 미리 다 얘기해 버렸구만’ 하고 이야기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 털고 보면 이것만이 영원히 남아져서 여러분의 생활의 표준이 되는 것이요, 생사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별 수 있어요? 사람이 죽게 되면 누굴 찾겠습니까? 누굴 찾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누굴 찾겠어요? 죽을 땐 누구나 하나님을 찾습니다. 또 죽음길에서 누굴 따라가고 싶습니까? 안내자가 누구였으면 좋겠어요? 이웃 동네 사는 삼촌이면 좋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면 좋겠어요? 죽음길을 혼자 가는데 그때에 누가 나타나면 좋을까요? 어머니 아버지가 나타나길 바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자기 색시이겠습니까? 그래요? 색시가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가 제일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강오륜이 동양사상을 지배할 수 있는 축이 된 것이며, 역사 또한 거기서부터 출발하였지만 뒤틀려 가지고 결국 돌아 나오게 되었는데, 이걸 바로 돌려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돌려 놓는 열쇠를 통일교회가 가졌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가졌는데 그것도 한국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문선생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빼앗기 위해 도둑질 잘하는 녀석들이 지금 이 자리에 와서 고개를 쳐들고 앉아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이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에 처음 온 사람도 선생님에게 욕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5-67
하나님의 효자가 되려면
우리의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거기에는 남아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모시자는 것입니다. 모시는 데는 역사적인 하나님을 모시자는 거예요. 역사적인 심정을 지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역사적인 심정을 가지고 모시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슬픈 역사적인 심정을 가진 하나님 앞에 기쁨을 돌려드리는 효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현시대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현시대를 중심삼고 나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시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서 효자된 도리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현시대적인 하나님인 동시에 미래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심정이 있을 것이어늘, 그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효자도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효자를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이겠습니까? 그 자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눈물 지으며 `아버지, 당신은 이렇게 살아오셨습니까!’ 하며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부모가 과거의 피어린 투쟁과 많은 수고를 통하여 갖게 된 재산을 상속받는 아들이 있다 할진대, 그가 많은 아들들 가운데서 부모와 하나될 수 있는 아들 중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을 위해 이만한 재산과 이러한 유업을 마련하려고 오늘날까지 먹을 것 제대로 먹지 못하시고 입을 것 제대로 입지 못하시고 잠 잘 것 제대로 자지 못하시며 지금까지 슬프고 비참한 역사를 극복해 오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오늘날 저희들에게 행복의 기원을 마련해 주시기 위함이 아니옵니까?’ 하면서 부모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눈물은 옛날에 슬펐던 부모의 심정을 점령하게 되니 아들은 그 눈물을 통해서 지난날의 어려웠던 부모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에 위로받지 못한 그 부모의 눈물겨웠던 마음을 현시점에서 부활시켜 가지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그날은 승리의 날로서 기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지난날에 슬펐던 어버이가 오늘 승리를 찬양받을 수 있는 어버이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에는 그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에서 현재 상속되는 재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몇 천만원, 몇 백만원, 또는 몇 수십억 원 어치의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때 이러한 재산은 현재 상태에서 응당 그 아들에게 주어야 하겠으나 그렇게 주고 나서는 기쁨의 마음에 앞서 걱정이 벌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부모의 마음에 적합한 심정이 아닌 내용을 방지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아들에게 부모는 `지난날 찾고자 했던 너를 만났고 오늘날에 찾던 너를 만났으니, 과거의 것들도 현재의 것들도 모두다 너에게 준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은, 부모가 제물을 물려주기 전 이미 과거의 부모의 심정을 받아줄 수 있는 아들이요, 현재의 부모의 심정을 받아줄 수 있는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모든 재산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이냐? 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어떤 것이냐 하면, 슬픔으로 엮어 온 과거의 비참하였던 심정,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알고 그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심정을 통하여 현실적으로 모든 소유권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게 받고 나서도 현실적으로 슬픔의 조건을 제시하는 아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현재의 부모의 심정과 세계를 대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그 심정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것을 알았고 아버지께서 왜 내게 이것을 상속시켰는지를 알았으니, 아버지의 그 심정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하는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되었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이 세계를 주고도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 말입니다.

25-69
우주적인 상속자
그런데, 현재의 모든 것을 상속하여 주었는데 미래에 다른 길로 돌아가게 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미래에도 틀림없이 소망의 세계에 일치된 방향과 일치된 목적으로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행동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가르침으로 보나 거기에 일치될 수 있다 하게 될 때, 그로 인하여 과거와 현재의 모든 가치있는 위업이 미래에 빛날 것을 부모가 알게 되므로 행복한 자리에서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모는 상속해 주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나를 찾으시려던 그 오랜 소원을 이루어 무한히 기뻐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한 아들을 갖지 못한 가문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을 맞는 기쁨이라는 것은…. 상속해 주는 그 자리에서는 재산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 아들의 가치는 하늘의 가치와 같으니 그것을 찬양하며 함께 생각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자기 소원 성취를 자랑하면서 아들 앞에 상속해 주는 그런 자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않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도 뜻을 엮어 온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을 것을 생각하고, 현시점에서 그 3시대를 거쳐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나서는 아들딸이 있을진대,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하를 몽땅 주시는 것입니다. 천지를 몽땅 준다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을 우주적인 상속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우주적인 상속자! `그는 하늘도 내 것이요, 땅도 내 것이요, 모두가 나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 부자일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신이면 무엇으로 일신이냐? 외적인 모든 것들은 다 곁가지입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내면의 뿌리와 같은 심정, 그 심정으로 일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심정을 중심삼고 통일세계를 모색해 나오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심정을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25-70
영원한 안식처가 되는 심정의 자리
그러한 심정의 자리에 안식하는 것이 선열들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그 심정의 자리에 안식하여, 평화를 느끼며 자기의 행복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아들에게 `야 잘했다’ 하실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아들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을 맞이하여 만천하가 그에게 속할 수 있는 그 한 날을 맞이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대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이날을 결정지어야 할 사명을 주어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이날이 결정되는 날은 메시아가 와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날입니다. 이것 외에는 없어요. 다른 것은 할 게 없어요.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행복이고 뭐고 나 배 고플 때 밥먹는 것이 제일 행복이지’ 하는데 그렇습니까? 그래요? `아이고, 나 배고플 때를 생각하면 실컷 먹다가 배나 터져 죽었으면 제일 행복하겠다’ 그럴 사람 있어요? 그렇다면 그렇게 먹고는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죽을 때에도 민족의 심정을 감아쥐고, 나아가 국가 세계 천주의 심정까지 감아쥐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죽게 될 때 밥 먹다 죽자는 거예요? 이런 사랑을 중심삼고는 심정이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너와 나, 둘 사이의 관계만을 가지고 죽을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이 하늘과 땅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허리띠를 붙들고, 하나님의 사랑의 노랫가락에 맞춰 가지고 춤추는 가운데서 죽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게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행복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세계도 왔다갔다할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모든 것을 파헤쳐 가지고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이 되는 날에는 천지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선열들이 바라 나오던 소원의 자리요, 안식처입니다.

안식처가 뭐예요? 피곤할 때 누울 수 있는 좋은 침대가 안식처인가요? 그런 곳이 안식처예요?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돼요. 이 자리는 영원한 자리이어야 합니다. 이 자리가 결정되는 날에는 또 다른 미래가 있지 않습니다. 미래의 소원의 기준도 여기에 되돌아 올 것입니다. 세월이 영원히 영원히 흘러가더라도 우리의 소원은 그날인 것입니다.

25-71
인류의 소원의 한 때를 결정지을 수 있는 통일원리
지금부터 세계가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타락한 세계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들이 미래의 세계를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반대되면 때려 눕히고라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한 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준만 결정되면 과거의 동기 자체가 미래의 소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 소원은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모두가 하나님을 모시려는 그런 자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역사가 벌어지는 자리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기 가정을 중심으로 재현되어 가지고 벌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응결되어 과거의 그 누구도 뗄 수 없고, 현세계의 어떤이도 뗄 수 없으며 미래의 후손조차도 뗄 수 없을, 그런 자각된 입장에 서게 될 때에 여러분은 천국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천국 못 가도록 수백 겹의 벽돌담을 쌓아 놓더라도 문제없이 직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시대를 중심삼은 고뇌의 심정 앞에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사람들은 부활된 예수님의 주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난날의 아브라함 같은 선지자들을 대해서도 `이 녀석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요? 선생님이 그들에게 `이 녀석아, 뭘 했어? 뭘 찾아 지금까지 허덕였어?’라고 물으면, 그들은 그것을 찾기 위해서 허덕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 찾았어, 못 찾았어?’ 하면 못 찾았다고 할 것입니다.지금은 찾았다고 할 것인데, `그래 누구 때문에 찾았어?’ 하고 물으면 `선생님 때문에 찾았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선생님 때문에 그것을 찾았으니 그들이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야지 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영계에 간 선지자들은 모두 통일교회 문선생의 제자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 좋습니까? 여러분은 기분 안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기분이 좋습니다. (웃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 믿은 사람들이 우리 통일교회 들어오면 놀라 자빠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예수님을 대해서 예수 오빠라고 부른다 이것입니다. 그럼 예수가 오빠지 오빠 아니면 뭐냐 이거예요. 그런데 그 오빠는 뜻을 못 이루고 죽었기 때문에 동정이나 받게 된 오빠라는 것입니다. 오빠도 높여서 불러 주는 거지요. 기대받는 오빠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도 오빠는 오빠지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은 6천년 역사의 열매입니다. 즉, 영계와 육계의 무한한 가치를 짊어진 역사적인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 앞에 여러분들이 역사적인 존재가 되었습니까? 그래 여러분이 역사적인 존재예요?

여러분은 시대적인 중심입니다. 30억 인류를 대표한 현시대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대적인 중심으로서 뭘 했습니까? 무엇을 해놓았느냐는 거예요. 모두들 보따리 장사라도 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를 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이 맞아요? 틀려요? 지금 통일교회가 싸워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중심삼고 이런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리는 위대한 것입니다. 만국의 만민을 치리할 수 있는 원리이기 때문에, 이것은 타락한 인간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의 천지조화탕이다 이겁니다. 천지조화탕! (웃음) 정말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올 때 좋아서 입이 벌어져 들어왔지요? 슬퍼서 울면서 들어왔어요? 어떻게든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가슴은 벌렁벌렁하고, 바람 부는 데 풍구를 대놓은 것처럼 괜히 길을 가다가도 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거 가만히 보니 뭔가 훌륭한 것이 있다는 거예요. 교회 건물이야 까짓거 판자집이라도 괜찮고 무슨 굴속이라 해도 괜찮다 이거예요. 선생님만 있으면 다 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5-73
‘나는 역사적인 결실입니다’ 할 수 있어야
이제 우리는 시대적인 중심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온 인류의 조상이요, 역사의 기원입니다. 또한 미래 인류의 조상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 자리에 딱 달라붙은 앉은뱅이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애꾸눈 사촌 같은 부족한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일을 하면서,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은 `너희들 문선생 미치지 않았어?’ 하고 묻기에 딱 알맞다는 거예요. 그들이 여러분들의 꼬락서니를 보니 해괴망측하다는 거예요. 그러니 지금은 이렇게 죄 짓고 망명 온 거지 왕자처럼 누더기를 둘러 쓰고 앉아 있지만, 언젠가 봄을 맞아 활기를 띠고 날개를 펼 때는 천하를 그 품 안에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팔자가 시간 문제라고 하지만 시간 문제가 아니고 초 문제라는 거예요.

이런 걸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나는 역사적인 결실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역사적인 결실은 하나님이 될 것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과 일치되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적인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선생님이 이만하면 남자로서도 3분의 2이상의 수준은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생긴 것으로 봐도 만만치는 않을 거예요. 내가 얼굴이 누구보다 못생겼어요? 이렇게 한번씩 자랑해 보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라 이겁니다. 내가 말을 하게 되면 아무리 미인도 내 말 듣고서 다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겁니다.

내가 누구만 못해서 왜정 때부터 쇠고랑 차고 콧노래 부르면서 형무소 문을 들락날락 했겠어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그 곳은 내 조상이 피흘리고 간 한탄의 고개였지만 나는 무사통과라는 것입니다. `때릴 테면 얼마든지 때려라’ 하는 뱃심을 가지고 악당들이 내려치는 채찍도 많이 맞았고 고문도 많이 당했던 것입니다. 칠 테면 쳐라 이겁니다. 이마가 불거져도 까딱없거든…. 그래서 나중에는 내게는 절대 고문을 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왜 해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도 안 되게 될 때는 그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그 악당들의 모든 수법을 그냥 그대로 탕감시켰던 것입니다. 종족을 위해서 그랬고, 친척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즉, 반대의 법을 지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개인별로 친 사람들은 나중에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앙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몇천 만, 몇백 만, 몇 억의 생명을 내 손에 쥐고 있는데, 그 중에 3분 1을 모가지 잘라 버려도 나는 천법에 걸리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게 믿어집니까? 무슨 말인지 믿어져요?

이것이 선생님의 배포라는 거예요. 그런 무엇을 갖고 있느냐 말이예요. 내가 한번 승부를 걸게 되면 덤빌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갈 협박이 아닙니다. 오늘이 기도하는 마지막 주일이니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못 믿겠으면 기도해 보라는 거예요. 선생님이 공갈 협박을 했나 사기를 쳤나….

25-74
실천하지 않고는 말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아직 선생님에 대해서 확실히 모릅니다. 단지 선생님의 눈은 저렇게 생겼고, 귀는 저렇게 생겼고, 코는 저렇게 생겼구나 하는 것이나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오게 되면 매일같이 볼 수 있고 얘기도 같이 나눌 수 있는, 평범한 환경에서 보여지는 사람으로만 알지, 진정으로 선생님을 잘 모른다 이겁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러분을 이끌고 나오면서 자꾸만 새로운 말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렇지요? 다한 것 같은데도 새로운 말이 자꾸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한 뒤에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몸소 실천하지 않고서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길은 인간으로서 절대적으로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실천한 후에 몽둥이로 여러분을 후려갈기면서라도 이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욕을 하고 여러분의 뺨을 때리더라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른길로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후려갈기더라도 여러분은 선생님에게 참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은 통일교인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처음 온 사람들은 오해할 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늙은이들한테도 눈하나 까딱 안 하고 어찌나 욕을 들이퍼붓는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이놈들! 쌍것들!’ 하고 욕을 하게 되면, 처음 온 사람들은 선생님을 심판하기 딱 좋다는 것입니다. 누가 꺼드럭거리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한마디 하면, 그는 눈이 뒤집혀 가지고 `어! 무슨 사람이 저래?’ 하는 것입니다. 그래 눈이 뒤집어질 테면 뒤집어지라는 것입니다. 한방 맞아 가지고 나가 자빠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놀음을 가끔 잘합니다.

여기 있는 협회장 지구장들이 아마도 지금 가슴을 태우고 있을 것입니다. `오래간만에 한 사람을 전도해서 오늘 처음 데려왔는데 선생님이 저런 말해 가지고 나가 자빠지면 어떡하나. 아이고, 하나님 맙소사’ 그럴 것입니다. (웃음) 선생님이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옛날에 내가 그랬습니다. 협회장이 말 한마디를 잘못하기에 `이봐 협회장, 동생 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야. 별의별 사람이 다 와 있어’ 하고 그렇게 얘기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르쳐 주던 선생님이 오늘날 왜 이렇게 말을 하느냐?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은 왜 그러느냐? 우리 통일교회가 옛날보다 배포도 커지고, 그럴 시기도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도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시기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삼척동자도 모시고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시의의 법도를 따라 흰옷을 갈아입고 경배하며 정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모시는데 있어서는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까지 경배하고 모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할머니들을 대해서는 내가 얼마나 모셨겠습니까? 80이 넘은 할머니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딸들임에 틀림없으니 밤을 새워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최고의 하늘 대변자가 되어 상대해 주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지방에 순회를 갔을 때 할머니들 수십 명이 마루바닥에 둘러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저분이 도대체 누구냐’ 하고 전부 다 선생님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어요. 나가 자빠져도 시원찮을 그런 할머니들을 데리고 밤새도록 쏙닥쏙닥 얘기를 해주느라고 병이 났습니다. 그런 놀음도 곧잘 했습니다. 사람을 모시는 데 있어서 선생님은 술집에 있는 접대부까지도 모신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선생님을 모시라고 명령 안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을 잘 모셔야 되는지 어째야 되는지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호령을 해서 모시라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모시라는 것이지.

선생님이 어떤 때는 귀찮을 때가 있어요. 선생님이 한참 바쁜데 `선생님 저 왔습니다. 저 왔어요, 저 왔습니다’ 하고 따라다닌다 말입니다. (웃음) `왜 이래?’ 그러면 `아이고, 오늘 새벽에 하나님이 선생님 앞에 가서 반갑게 인사하라고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럴 땐`아! 그러냐’고 그렇게 대답을 하지만 뭐가 그리 반갑다고 매일 꼬리를 저으며 자꾸 선생님 앞에 가로막고 인사를 하는지…. 선생님이 언제 인사 받겠다고 했어요? 인사를 하고 나면 여러분 마음이 편하지요. 그런데 인사를 안 해보세요. 왜 그런지 마음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거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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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명령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여러분이 마음 세계를 지배하고 점령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을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인심은 천심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천정(天情)이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연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영원한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갈 길을 알고 지도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명령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통일교인들은 자신들이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적인 기원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도리요, 인륜의 도리요, 천륜의 도리입니다. 여기에 부합될 수 있는 하나의 기쁨은 이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이것만이 이 세계의 모든 악한 것을 눌러서 화합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고, 내용이 될 수 있고, 절대적인 권한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룩의 모체가 되기 때문에 이것으로 말미암아 만국은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조들이 바라던 소원의 터전인 것을 알고, 우리는 그들의 힘찬 소망의 기준 앞에 그 소망의 실적을 가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배고픔을 당하더라도 선열들이 가던 그 길에 동반할 수 있는 하루를 맞았다고 콧노래를 불러가며 찬양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선열들의 슬펐던 사정을 위로해 주고, 그들을 위해 하늘 앞에 기도해 줄 수 있는 사정이 되게 될 때에 우리들은 그들의 역사적인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슬픔을 당하고 죽음길을 가더라도 그것이 역사와 더불어 남아질 것이요, 현시대에 갈라진 모든 것을 전부 무너뜨리고 평화의 대도를 장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서게 될 때, 우리의 가는 길 앞에 무슨 탄식이 있을 것이며, 무슨 낙망이 있겠느냐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전도하러 나가 한 3년만 지나게 되면 모두 사팔뜨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지요? 웃는 것을 보니, 모두들 실감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처음엔 곧은 눈이었는데 얼마쯤 지나면 사팔뜨기가 되어 가지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내가 참 별꼴 다 보고 사누만요. 내가 어이타가 이 놀음을 하는 사나이가 됐는지…. 그러나 이것은 내가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 그러는 것입니다. 왜 할 수 없느냐? 전 생애를 하나님 뜻 앞에 맡겼으니 이 일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안 하면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잠을 자도 피곤하고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게 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길을 택하겠느냐 말입니다. 이 길을 가야 심신이 제일 편하기 때문에 이 길을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반드시 이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