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94 to 25-344: 복귀의 전선

복귀의 전선
1969.10.12 (일), 한국 전본부교회

25-294
복귀의 전선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0월을 맞이하여 두번째 맞는 안식일 이옵니다. 이 시간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거룩하심을 추앙하면서 남은 생애를 아버지와 더불어 정성을 다하며 지내는 자신들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바라옵니다.

민족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새시대의 개척자로서, 혹은 통일의 용사로서 막대한 책임을 자신들의 두 어깨의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해져서 스스로 자신들이 아니면 안된다는 결의와 자세를 아버지 앞에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 땅을 밟고 싶어하고, 한국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의 동기가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 결과도 아버지에게서 맺어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무지했던 인간들은 생의 과정에서 낙망하고, 아버지를 배반할 때가 많았사옵나이다. 하오나 저희들은 역사적인 슬픔을 자아냈던 선조들이 그 모든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아버지께서 특별히 보호해 주시고 지도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권내에서는 서로 상충하는 일이 많이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여기에 매개자가 되시옵고 충고자가 되시어서 저희들이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일체화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완전히 통일될 수 있는 형태가 갖추어지기를 얼마나 요구하셨고, 얼마나 고대하셨고, 얼마나 바라셨사옵니까? 이제 그것을 저희들을 통하여 이루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곳은 이름이 알려져 있는 청파동 본부교회이옵니다. 세계의 수많은 식구들이 이곳을 그리워하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이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섭리의 뜻을 펼치신다는 것과, 세계 각처에서 이곳을 향하여 마음과 몸을 다하여 정성을 들이고 눈물을 흘리며 사모하는 자녀들을 생각할 적마다, 이곳은 저희들 자신이 만국 백성이 바라보는 가운데 지성소를 대신하여 분향할 수 있는 성전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재차 생각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침마다 마음을 모아 이곳을 향해 분향하는 저희들 각자의 모습이 되게 하시옵고, 이 자리가 만민의 행복을 위하고 만민이 당할 수 있는 환난의 길을 막기 위하여 스스로 아버지 앞에 다짐하고, 내일의 소망과 오늘의 책임을 위하여 스스로 아버지 앞에 결의하여 아버지께 새로운 임명을 받고 명령을 받은 자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에 한해서만 미쳐질 것이 아니라 만국에 미쳐져 그들이 살수 있는 본연의 길과 본연의 자세를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전통을 바로 세우고 역사과정의 모든 슬펐던 사실을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현재 막혀진 모든 담을 헐고 미래를 향해 가야 할 먼 행로를 단축시킬 수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 살고 아버지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많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초초한 무리들이 모였사옵니다. 이들은 당신의 손길이 아니면 어떻게 살지도 모르는 자들이요, 당신의 은사가 아니면 자기가 서있는 자리도 모르는 자들이옵니다. 이렇듯 벌거숭이와 마찬가지요, 고아와 마찬가지요, 세상의 불쌍하고 처량한 무리들과 마찬가지이옵니다. 그러나 당신의 보호와 당신의 사랑권내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알았사옵고, 남이 느끼지 못하는 당신의 심정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이 잘나서가 아니요, 저희들에게 공적의 터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역사의 노정에 있었던 아버지의 수고와 슬픔으로 인한 것이오니 저희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저희를 맞이하는 만상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높고 귀하심을 찬양하고, 사람을 만나면서도 아버지의 소망의 날이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느껴 그것에 감사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싸움터를 바라볼 때 아직까지 아버지의 수고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저희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맹세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그 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를 격파시키어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든가 참되게 죽든가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들임을 알고 아버지 앞에 부복할 수 있는 자녀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있는 이들 각자각자가 스스로를 정리하여 그 전부를 아버지 앞에 내놓고, 자신이 내적으로는 어떠한 가치가 있으며 외적으로는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를 스스로 알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간은 이 땅에 왔다가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사온데, 자기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들이옵니다. 수많은 역대의 성현들과 선조들도 이 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고개를 넘기 위해 몸부림쳤사오나, 주어진 운명의 길을 피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한을 품고 사라져 갔사옵니다. 그러한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오늘날 아무 공로도 없는 저희들은 당신의 뜻을 몰랐다면 이 땅위에 왔다가 그저 초개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무리가 되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당신의 뜻을 알고 지금까지 걸어 나오신 당신의 길이 얼마나 수고로운 길이었사옵고, 현재 처해 있는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이며, 앞날을 개척하여야 할 당신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하오니 여기에 동반자가 되고, 조력자가 되고, 당신 앞에 충복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시간 저희들의 마음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신이 어디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저희 스스로는 알지 못하오나 천지의 권한 가운데 있어서나, 혹은 아버지의 영원무궁하신 기준 앞에 있어서는 스스로 자기 입장이 어떻다는 것이 확실히 나타날 줄알고 있사오니, 그 기준이 슬픔의 기준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동정과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여기에 임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가 저희 자신들만 머물러 있는 자리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무리들이 이날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축복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교회를 중심삼고 이 나라에 영향을 미쳐야 되겠사옵고, 이 나라를 중심삼고 이 세계에 영향을 미쳐야 되겠사옵니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독일 이 4개 국가를 중심삼고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사오니, 만국에 새로운 형을 갖추고 승리의 터전을 넓혀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그 나라가 어서 속히 나타나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자리를 그리워하면서도 참석하지 못한 뭇자녀들에게도 같은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5-297
말 씀
우리 인간은 일생을 사는 데에 있어서 경쟁이라든가 투쟁, 혹은 싸움의 환경을 거쳐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성공을 하기 위해 세운 목적이 크면 클수록 그는 거기에 비례되는 고생의 환경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을 스스로 지녀야 합니다.

25-297
목적 달성에 필요한 것
여기에 있는 한 대학생이면 그 대학생이 큰 목적을 가지고 성공의 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성공의 길에서 그는 목적에 비례하는 대가를 치르고야 목적 성사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가정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이면 그 가정이 민족과 나라를 중심삼은 가정의 실체를 갖추기 위해서는, 즉 가정 전체가 단합해서 가정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시간의 관계와 거리의 관계를 넘어야 되는 것이며,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거기에 대비되는 시련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한 나라를 중심삼고 보면 그 비례되는 대가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자체가 어떠한 크나큰 포부와 목적을 달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운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한 국가를 두고 볼 때, 못해도 백년이면 백년 단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민족이 단결해서 극복하지 않고는 세계에 드러날 수 있는 민족적인 성공을 가져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를 보게 된다면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도 지금부터 120년 전에는 초원지대요 사막지대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백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곳을 개척하기 위해서 많은 인적 자원과 물질적 자원을 투자해 왔습니다. 그것으로만 개척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 낼 수있는 끈기 있는 국민성이 뒷받침이 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대가를 계속해서 치른 결과 오늘의 샌프란시스코가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뿐만이 아니라 미국 자체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근 2백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오늘날 세계적인 문화권을 조성하기까지에는 말할 수 없는 인적인 대가와 물질적인 대가를 치렀습니다. 또 신앙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렇게 대가를 치른 결과가 현세에 와서야 나타났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 세계를 지도할 수있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은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섭리를 계속해 나오셨는데 그 결과는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가 될 것이고, 방계적인 입장에 있는 수많은 종교가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수고해 나온 그 결과인 오늘날의 종교가 세계 앞에 공헌을 못하고 세계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데 있어서 플러스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기나긴 세월을 싸워나온 모든 싸움의 공적은 여기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와 더불어 동반해야 하고, 시대와 시대를 거슬러 나가야 할 것인데 그것이 중단되어 그 섭리의 방향이 빗나간다면, 그만큼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며 다시 제2의 전술을 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다시 여기에 새로운 인적 자원을 투자해야 되고, 새로운 물질적 자원을 투입해야 되고, 새로운 정신적 자원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하나님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듯 복귀섭리를 중심삼은 중대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인인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25-299
가장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할 통일교회
세상에 있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가령 남자가 행복을 그릴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필연적으로 공식적인 환경이어야 합니다. 국가면 국가에 있어서 행복을 그리게 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적인 형태는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국가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은 개인이 바라는 행복의 기준보다도 범위가 넓고 크기 때문에 더 복잡할 뿐입니다. 때문에 복잡한 내용을 거쳐 가지고 여러가지 인연이 여기에 부합되고 혼합되어 하나의 목적을 지향시킬 수 있는 국민성을 갖지 않고는 그 나라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복귀섭리는 어떤 지역적인 한계권내에서 머물 것이 아닙니다. 지역적인 한계권을 넘어 국가권내로 넘어가야 하고, 국가권내에서 세계권으로 넘어가야 하고, 세계권내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천주, 이 광대하고도 엄청난 범위로까지 넓혀 가지고 이것을 성취시켜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물질적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이고,인적 자원도 투입해야 할 것이고, 정신적 자원도 투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귀전선에 있어서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어떠한 개인이면 그 개인, 종족이면 종족이 여기에 정신적인 면과 인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 이 3면을 얼마만큼 투입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 중 어떠한 종족이 그분야를 중심삼고 이 3면을 얼마만큼 투입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거기에는 같은 모양으로 투입했다 하더라도 정성을 두고 볼 때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게 됩니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의 모양이 모두 다르고 심성이 모두 다르니 그들이 들이는 정성의 기준도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10억 가까이 있는데, 그 기독교의 배후를 헤쳐 보게 될 때에 과연 우리 통일교회가 이복귀전선에 있어서 정신적인 면이라든가 물질적인 면이라든가 인적인 면을 투입하는 데 있어서 세계의 어떠한 종교든지 능가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있느냐 하면, 현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을 보게 되면 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으로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 내적인 입장에서는 그러냐? 만일 그렇다 할 수 있는 자신이 없고, 그렇다 할 수 있는 실적이 없다면 복귀섭리의 방향은 아직까지 정상적인 곳을 향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갑이면 갑, 더 나아가서는 30억 인류 각자가 자기의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양과 처해진 환경은 천태만상이지만 그 방향에 있어서는 모두 복귀전선에 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이 있고,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이 있고, 또 인적인 면에 있어서 선두에 선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각 국가면 국가가 그 국가 기준에 맞는 어떠한 분야에 임하고 있고 각 민족이면 민족이, 각 개인이면 개인이 그 기준에 의해 나름대로의 분야에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복귀전선이라는 것은 하나의 경주마당이라면 경주마당이요, 생사를 결정하는 담판장이라면 담판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귀의 전선은 우리들이 계획한 그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는 전신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비참한 투쟁을 거쳐 가지고도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인 대전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직까지 우리 환경 가운데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5-301
복귀의 전선을 돌파하려면
그러면 남아 있는 적군이 얼마만큼 강하냐? 원수의 배수진이 얼마만큼 강하냐? 우리를 공격해 오는 적군의 병력이 얼마나 집결되어 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거기에 임하는 통일의 용사들은 각자의 결의의 기준이 그들을 능가하지 않고는 이 전선을 무난히 돌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심적 자세와 생활적 자세, 혹은 결심의 정도에 있어서 적군의 기준을 어떤 면으로도 능가할 수 있어야만 그 전선에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온당한 주장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분야가 결여된 입장에서 승리를 꿈꾼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요,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강조하는 그 자체는 만용으로밖에 단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할 때 급으로 말하면 천만 급이 있겠지만 여러분 각자는 자기 나름대로의 급에 따른 복귀전선에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만이 그러냐?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도 지금까지 복귀전선에 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인의 인격이라는 하나의 표준을 정해 놓고 그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영계에 갔다 하더라도 그 인격 표준은 자동적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과 근본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사탄이 쳐놓은 철창을 부수고 쇠고랑을 끊어 그 인연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또 개인의 인격완성이라는 표준적인 규격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되는 극복이라든가 승리라든가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를 위한 투쟁과 혈투전이 틀림없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요, 가정도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고, 국가도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고, 세계도 그러한 울타리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적진의 울타리에 첩첩이 포위되어 있는 이 현상을 생각해 보게 될 때 내 자신은 오늘날 어떠한 입장에서 진군해야 하며, 어떠한 입장에서 이 울타리를 타개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없습니다.

그러면 각각 각자가 이 복귀전선의 어느 방향을 중심삼아야 하느냐? 사방을 중심삼아야 합니다. 남극이면 남극 북극이면 북극의 어느 방향과 어느 거리에 있더라도 천태만상의 급이면 급, 단계면 단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한 개인이 1세기면 1세기를 걸어 놓고 투쟁하게 되면 패자냐 승자냐 하는 결과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여 타락한 인간, 즉 30억 인류는 현재의 평균적인 그인격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것이 가(可)면 가(可), 부(否)면 부(否), 정(正)이면 정(正)이라는 결론적인 입장을 반드시 판단받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 운명은 종적으로든 횡적으로든 반드시 있게 됩니다. 그것은 종적인 문제와 횡적인 문제를 타개해 가지고 승리의 한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그 날이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이 전선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인간으로서 목표하던 인격완성을 하여 사탄을 굴복시킨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나 그러했던 자들의 후손으로 태어난 현재의 세계 인류를 두고 볼 때, 이 싸움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지상태에 있지만 여러분의 생활 환경을 끊임없이 파고 들어와 여러분의 생애 노정까지 감아 넘기려는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복귀전선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 소강상태에 있느냐, 열전 상태에 있느냐? 열전이면 열전에 응할 수 있는 용사들이 있느냐? 열전이면 열전일수록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를 좌우할 정도로 긴박하다는 것입니다.

소강상태가 지나면 반드시 열전상태가 올 것이어늘, 여러분들은 스스로 거기에 응할 수 있는, 스스로 내적인 준비를 보강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하고, 스스로 병사로서 갖출 바의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라도 스스로 내적인 준비를 하여 국가적인 기반과 세계적인 기반을 갖추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미 이러한 복귀전선의 일원으로서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미 생사를 걸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엄청난 천주주의의 기치 밑에 서서 사탄이라는 큰 적을 정면에 마주보고 있는 여러분들은 용감한 용사로서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그 전선은 남자만이 싸우는 전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군대라 하면 남자들만이 가는 것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군인이 되어야 할 공동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자기 개체가 북쪽이면 북쪽, 남쪽이면 남쪽, 서쪽이면 서쪽, 동쪽이면 동쪽 중 어느 곳에 처해 있는지 그 환경을 파악하지 못하는 용사들이라면 패자의 서러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적을 향해 총을 겨누고 전면적인 진격을 해야 할때, 적진의 심장부를 향해 공격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위치와 방향을 알지 못해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행동을 한다면 그 전쟁에 있어서 승리를 거두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합니다.

25-303
우리는 복귀전선의 최일선 장병으로 부름받은 용사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적인 섭리노정에 있어서 통일전선,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섭리하는 데에 있어서 이 통일이라는 명사가 전체를 이끌 수 있다는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우리 일대에 끝날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만방에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우수한 문화 민족이 되어 가지고 세계를 통치할 수있는 권한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 싸움은 그 민족정신을 타고 계속될 것입니다. 그 사회의 방향과 그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면서 이 싸움은 계속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국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좌우가 부딪치는 현세계의 정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금후의 역사 시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될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참여한 병사들이 자기 나름대로 돌아가려 한다면 전과는 점점 불리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 싸움의 관문을 전부 지나가는 용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용사란 적을 앞에 두고 피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적을 향하여 자기의 희생을 각오하고 돌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적장을 대해서 그 누구보다 용감하게 투쟁하고, 난국이 정면적으로 부딪치게 될 때 비장한 자세로 그 난국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에 서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복귀전선은 어디에 있느냐? 아시아면 아시아, 구라파면 구라파, 오대양 육대주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전선을 언제나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역사의 배후에서 수고한 공적의 터전을 이루어 놓은 복귀전선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복귀전선을 펼 수있느냐? 이들은 이미 싸우다가 지친 낙오병이요, 패잔병에 가까운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들을 다시 수습하여 제2차의 명령을 할수 있겠느냐 하면 그럴 수없는 것입니다. 이들을 수습하기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부딪쳐 입은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이들보다도 새로운 무리들을 중심삼고 복귀전선을 펴지 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세계 무대를 중심삼고 6천년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승패를 결정지어야 할 복귀전선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복귀전선을 재편성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를 통하여 복귀전선을 재편성할 것이냐? 대한민국, 혹은 세계적인 기독교의 현상이나 종교계의 현상을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 무리들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가르쳐 주듯이 그 전선이 통일전선이 아닐 것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세우려 하시는 주권이 국가적인 입장과 세계적 입장을 대신해 가지고 강력한 체제 밑에서 강력하게 단결되어 있다면 그것을 끝날의 복귀전선에 투입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전면적인 전쟁을 하고 있는, 세계적인 정세를 앞에 놓은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겠느냐 하는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최일선 장병으로 모병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부름받은 병사이니 병사로서 갖추어야 할 장비를 완전히 갖추어야 합니다. 그 장비라는 것은 하늘에 있는 장비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장비를 말합니다. 문제는 하늘에 있는 영인들이나 지금까지 왔다 간 성인 열사들이 아니라 오늘날 그들의 후손으로 남아진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입장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 현철들이 역사적인 모든 패자의 서러움을 품고 수많은 한을 남겨 놓은 모든 싸움을 인계받아 그것을 정비해 가지고 승리의 결정을 내려야 할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입니까?

25-305
하늘의 승리를 위한 제물이 되라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복귀의 전선을 중심해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몸은 어디로 가야 되느냐? 복귀의 전선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갖춘 장비나 무기, 혹은 화력을 집중해 가지고 적을 격파해야 합니다. 하나의 목표를 중심삼고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방이 전부 하나의 심정으로 일심 단결하여 적을 격파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같은 귀로 듣고 같은 세포로 느끼면서 그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참석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을 중심한 승리의 권한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싸움을 그냥 구경하는 병사가 있다면 그 병사는 나라의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전선에서 자기의 생명을 안고 전선을 피하고자 하는 자는 낙오병입니다. 병사들의 사기를 좀먹고 병사들이 가는 길 앞에 방해꾼이라는 것입니다.

복귀의 전선을 향한 진격은 기필코 있어야 합니다. 기필코 있어야 될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이 세계를 엮어 나오는 복귀섭리의 배후를 두고볼 때 하나님은 시대시대마다 그러한 때를 집중시켜 왔다는 것을 알 수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하나님은 4천년 동안 복귀섭리의 전선을 하나에 집중시켜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 대열의 전반을 투입시키고 여기에 지도할 수 있는 총사령관으로 예수님을 세웠으니 그의 작전법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단결하여 적진을 향해 공격해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역사에 없었던 승리를 하여 그 승리의 팻말을 들고 전세계로 진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말할 수 없는 패자의 서러움을 당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하나 망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복귀 전선을 구축하려고 찾아 세운 그 한 나라가 망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에 치명적인 참패의 서러움을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그 대가를 치러도 치를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한 손해를 가져 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말없이, 이유없이 희생되어 가는 제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한 나라가 주권을 지탱할 수없습니다. 미국이면 미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최후의 전선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복귀섭리에 의한 피해자, 즉 세계적인 전선을 중심삼고 볼때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미국 위싱턴에 갔을 때 FBI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의 중요한 간부가 쭉설명하는 것을 보면, 미국이라는 번화한 사회도 현실적인 모든 형태가 지속되고 있고,그냥 그대로 보이고 전개되고 있지만, 그것이 그대로 계속적인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배후에 막강한 경제력이 투입되고 수많은 무명용사들이 말없이 제물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화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을 능가하고 미국의 주의나 사상에 대치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그 위치를 지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대결하여 국가의 운명이 계속되는 그날까지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전시(戰時) 이상의 결의와 비장한 각오를 하며 그것을 책임지기 위해 말없이, 이름도 없이 쓰러져 가고 제물되어 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나라의 주권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25-307
아시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의 승공운동
오늘날 이북이 남한을 대해서 첩보활동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은 언제나 피습받는 입장에 있습니다. 첩보전에서 패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전면적인 전쟁에 있어서도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내적인 모든 결의와 사상에 있어서 북한에 대응할 수 있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갖추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강한 사상을 가졌다 하더라도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극복하지 못할 행동이 적군에게 제시되었다 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갖지 않고는 반드시 적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어느 한 때에 그것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해도 패자인 것만은 부정할 수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 나오는 데 있어서도 배후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희생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 복귀의 전선에서 배후의 인연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의 주권이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를 좌우하면서도 배후에서 말없이 원수와 대결하여 그들에게 대가를 치른 후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전진적인 전법과 행동적인 조건을 제시하여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적의 포위권내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들과 대결해서 포위망을 터치고 그들을 밀어낼 수있는 행동으로 전세를 연결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서도 능동적으로 적을 타개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전선에서 승리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복귀전선에서의 승리는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전법은 게릴라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는 활동도 게릴라전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승공활동을 하고 있는데 공산주의가 50년 동안에 세계의 3분의 1에 가까운, 아니 절반에 가까운 나라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사회에까지 공산당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판도를 가진 공산당에 대해 승공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소수의 무리가 나선 것을 일면적으로 보고 어리석고 세상을 모르는 자들의 행동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건 잘못 봤다는 것입니다.

일본 방송에서 보도했듯이 일본에서는 지난 27일에 전국 승공국민대회를 동경의 하비야 공원(日比谷公園)에서 가졌는데, 여기에 한 5천여 명이 참석해서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공산당은 지금까지 일본이 자기들의 뜻대로 틀림없이 적화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활동하면서 적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앞에 우리 소수의 통일의 무리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사실은 일본의 공산당에도 문제가 되었고, 일본 정부에도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국민이 새로운 각도에서 스스로를 비판하고 앞날을 재검토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행동은 미미했지만 그런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볼 때, 이것은 일본에 하나의 파문을 일으킨 결과가 되었으며 이 파문은 아시아의 전역에 미쳐질 수 있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써 끝낼 것이냐? 공산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릴라 전법을 써야 되나 그 후에는 대병력을 투입하여 전면적인 싸움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모험을 해야 하느냐? 오늘날 세계의 어떠한 사상이나 단체도 공산당에 대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가 이런 운동을 전개함으로 말미암아 공산당과 대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은연중에 국민 대중에게 심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 승공이론과 국민의 신념이 하나만 된다면 공산당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진 자라면 소수인이 남는다 하더라도 공산당을 능가할수 있고, 공산당의 역사 기반 이상의 분야를 차지할 수 있어 결국은 그무리로 인해 공산당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희생과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때문에 지금 통일의 무리가 희생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구보끼 회장을 중심삼고 있는 일본의 통일교회 식구들에게 각오하라고 했습니다. 진지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담판짓고 넘어가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싸움에 임할 때에는 절대로 혼자서는 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싸움이 점점 격렬해지면 격렬해질수록 수많은 적군의 화살이 나를 겨누고 있고, 수많은 적군의 총칼이 나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이 엄숙하고 주체적인 권한에 의지하여 모든 면에서 그분의 지시를 받고 행동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어떠한 책임자도 큰 대회를할 때에 수많은 군중 앞에 서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악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되어 가지고 그 이상의 정성을 들이면 그 자리에는 사탄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격전이 벌어진다해도 생명을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5-309
승공운동은 말로만 안 돼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는 아시아에 있어서 이미 싸움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일본이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를 조종하여 그 배후에서 천적인 섭리를 파탄시키려는 원인자,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탄이 우리의 원수인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이 사탄이라는 말을 어린 아이들이 밥을 찾는 것과 같이 습관적인 단어로 생각하는데 이 사탄이 바로 6천년 동안 창조주, 즉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무한의 주체되시는 하나님, 무한의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무소부재하시는 그분을 지금까지 패자의 입장에서 쓴 잔을 마시게 해 놓은 주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인간은 사탄에게 걸려 있기 때문에 그 걸린 낚시를 빼기 전에는 사탄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빼느냐? 하나님은 못 뺀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빼야 된다는 것입니다. 낚시를 빼는 데 있어서는 동정을 가지면 안 됩니다.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꿔채야 됩니다. 한 부분이 병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꿔챌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힘이 누구에게 있느냐? 그 힘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슨 역사를 해 나오셨느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나꿔채 왔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당기는 힘보다도 하나님이 나꿔채는 힘이 더 강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무한한 힘으로 인간을 당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게 될 때에는 병신이 된다 이겁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승공이라는 것은 말로만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의 첩보망이 세계에 널려 공산당과 싸우고 있지만 공산당이 오히려 그런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소련의 첩보망이라는 것은 굉장합니다. 이러한 공산당을 대해 가지고 우리는 칼도 없이, 무기도 없이, 두 주먹만을 가지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혁명 대열에 참가했습니다. 혁명전선이라는 것은 천리 행군이나 만리 행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군은 생애를 걸고 몇 대를 거치며 계속될 것인데, 지금 행군하는 전선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전선이 더 치열할 것입니다. 그 치열한 것에 박자를 맞추어 다짐한 결의가 배가 되어야 할 텐데 그것이 감소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패배할 것이 당연합니다. 스스로 포위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판국에서 싸움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서 이미 뺀 칼을 다시 꽂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에서 승공활동을 한 것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적기)’에 게재되어 전세계 공산국가에 다 들어갔습니다. 이 신문은 모스크바는 물론이요 중공에도 다 보내집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 활동은 민주세계보다 공산세계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25-311
우리의 승공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시키자
우리는 새로운 각도에서 공산당들에게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공산당은 여당과 같은 입장이요 우리는 야당과 같은 입장인데, 공산당은 우리의 참소에 걸려 가지고 자기 스스로 해명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공산당 역사상에 없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지금까지 대중의 옹호를 받아서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당이 야당의 반박을 받아서 해명을 해야 하듯이 해명을 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섭리상에 있어서 처음 나타난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운동은 하나의 운동으로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대양을 건너 가지고 세계를 이끌어 갈 운동으로 전개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급진적인 성과를 어떻게 가져 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전선의 일선에 선 지도자, 혹은 책임자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책임자들은 앞으로 아시아 전선을 책임지는 데에 있어 정예대원들이 되어 선두에 서 가지고 대중을 지도해야 됩니다. 또 지도자로서 전략 전법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경험이 있어야 하니, 이런 것을 볼 때 지금까지 실전에 임했던 경험들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복귀의 전선은 이미 세계적인 전선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나의 여력만 가지고 유지될 것이냐? 이것은 어떠한 동네의 잔칫집에서 잔치 준비하는 데 심부름을 해주는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내 생명을 투입해야 합니다. 일대에 안 되면 그 사상을 주입시켜 수천만 대를 거쳐서라도, 항서를 받을 때까지 전진하겠다는 장엄한 결의를 해 가지고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홀로 그 한 길만을 직행하여 나왔습니다. 여러 길이 아니라 오직 한 길만을 지금까지 걸어 나왔습니다. 이제는 최후의 결단을 지어야 합니다.

나라가 망했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독립할 수 있는 때를 하나님은 반드시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원칙에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천지의 인연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아무리 실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배후에서 스스로 반성해 가지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실패했더라도 그 실패를 밟고 일어서게 될 때에는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실패해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요, 성공한 그자리에서도 다시 제2의 출발을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1차 7년노정에 있어서 각자가 실패했다고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7년노정에서 하늘 앞에 충성을 못 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써 끝날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안 되었으니 반대 방향으로 나가야 되겠다는 자기 나름의 새로운 결의가 있어야 합니다. 1차에 실패한 것을 제거할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되어 가지고 재차 수습할 수 있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내가 이렇게 나갔기 때문에 안 되었구나. 이제는 이렇게 나가야 되겠다. 과거에는 인간적인 견지에서 비판하다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실행하기 전의 결의가 필요합니다. 그런 후 올바른 방향을 취해 가지고 행동으로 밀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기력이 빠진 쓰러진 몸을 붙들고 새로운 방향의 길을 모색하여 보란듯이 제2의 목적을 향해 강력히 나서지 않고는 제2의 전선에 참전한 영웅으로 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우리 앞에 있는 것입니다.

25-312
하늘의 명령에 따라야 할 우리
자 여러분, `전면적 진격’이라는 이 표어는 몇 년 동안 계속될 거예요. 명년에도 표어가 같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삼팔선 이북에 첩보 요원으로 보낸다는 특명을 내렸다면, 이런 밀명을 자신이 받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것이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국가의 비운을 막아야 할 비상상태에 임하게 될 때에 그 국가의 제물의 자리에 세어 주신 것을 종족적인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세를 여러분들이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선두에 서서 삼천만이 숙망하던 하나의 제물적인 존재가 되어 가지고 엄숙히 책임을 수행하며 승리의 결정을 어떻게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서 하늘을 부여안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천운이 그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가는 길이 아무리 비참하다 하더라도 그 일개인이 비참한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의 국가는 새로운 광명의 길을 개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전면적인 진격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 길을 나서서 삼팔선을 넘을 때는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에게 끌려 갈 때는 최후의 결의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여기서 그런 각오를 안 가지면 안됩니다.

우리의 뜻은 어느 한 때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필요 적절한 어느 한 시기에 하늘은 `전면적인 진격’이라는 총진군의 명령을 내려 우리에게 따를 것을 요구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 명령 앞에 어떠한 자세를 갖추고,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과 방비를 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그 일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딸,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자기가 사랑하는 모든 가족을 제물로 바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것을 비참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 가까운 것을 제물로 바쳐드려야 할 것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비참하게 원수를 제물로 바쳐 드려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나의 제일 가까운 전부를 내어 주어서 제물로 삼아야 할 것이냐? 아니면 원수를 제물로 드려야 할것이냐?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원수가 남아 있는 한은 제물을 드려야 할 과정이 반드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두고 해 나왔습니다. 1년, 혹은 10년을 그런 희생의 제물을 바쳐 연결시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가까운 인연을 중심삼아 끊는 역사를 오랜 기간을 단위로 해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일에 있어서 무관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원수와 단판을 지어야 합니다. 만일에 단판을 짓지 못하게 될때에는 여러분이 원수의 칼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늘 앞에 있어서도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악한 세계의 역적으로 몰려서 하나님 앞에 슬픔의 조건을 남기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때가 오기 전에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되겠습니다.

25-314
자기를 중심삼은 사람은 끝까지 남아지지 못한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하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운명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의 수반은 심각한 때가 많습니다. 하나의 결정을 잘못하면 역사에 길이길이 비판을 받을 것이고 잘하게 되면 길이길이 찬양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를 중심삼고 각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애국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통일의 무리들을 비교해 보게 될 때, 이들은 서로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결심했느냐? 세계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결심을 했느냐, 아니면 민족적인 내용을 가지고 결심을 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통일의 무리들은 민족적인 운명을 뛰어넘어 세계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내용은 필시 세계사적입니다. 세계사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시하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내용을 갖춘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은 세계적인 운동이 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배척한다고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시아가 배척한다고 낙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언제, 어디서나 필요로 할 수 있는 하나의 자세를 갖고 남아지라는 것입니다. 역사의 끝까지 남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필요 적절한 환경이 국가적으로 몰려 오게 될 때, 국가는 그 남아진 무리들 앞에 머리 숙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쓰러져 갔지만, 예수님은 그 가운데에서 다시 솟아났습니다. 되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여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피를 흘리게 한 사람은 피를 흘린 사람에게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수가 많은 것을 원치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의 수가 많지 않다고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수가 역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이라는 것은 수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은 하나입니다.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중심은 자유자재입니다.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며, 있기는 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양면을 연결시킬 수 있는 모체는 하나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천태만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프로필을 가지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이러한 사람으로 왔다가 저런 사람으로 스쳐갈 것입니다. 혹은 갑이라는 사람은 자기의 욕망만을 가지고 자기의 이익을 찾기 위해 살다 갈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이 언제까지 남아지겠습니까? 자기를 위하는 자는 오래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뜻을 따라가는 과정에 전부다 쓰러지게 되어있습니다.

25-315
알고 보면 복된 시련
여러분들은 이 아침에도 선생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10년 후에도 전부 남아질 것이냐, 혹은 20년 후에도 남아질 것이냐? 또는 초로와 같이 사라지는 절박한 운명에 임하게 될 때, 거기에 동참하여 남아질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와 상관 없었던 사람들, 혹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무리 가운데에 그러한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사람만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칼을 꽂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였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그럴 수 있는 환경권내에 있는 무리였습니다. 8할 이상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모실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사, 아버지라 부르는 명사까지도 전부 다 지배할 수 있는 그 주체자가 누구냐? 대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세 제자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어떠한 한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한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을 겪어야 됩니다. 나자신을 그렇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기준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그 시련의 무대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 시련을 이겨내게 하기 위해 열 만한 크기의 사람에게 백 만한 기준의 시련을 퍼부을 것입니다. 열 만한 자리에 백 만한 시련을 퍼붓는 것은 그것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백 만한 시련을 가해서 구십구 만한 실력을 갖게 하기 위한 작전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여기에 퍼부어 주는 시련은 탄식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운을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복된 조건인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며 자기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최후의 결정을 지어 뜻하신 대로 가겠다고 결정할 때까지는 막강한 시련의 무대가 우리의 뒤를 포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땅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하늘로 올라가느냐 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땅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땅에 들어가지 않고 도망갈 수도 있었으나, 그길보다는 하늘을 향하여 생명을 내놓고 죽는 것이 현명한 방법으로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큰 일을 하고 싶습니까? 하나의 위대한 조상이 되고 싶습니까? 생과 사의 갈림길을 왕래하는 경지를 거쳐가지 않으면 위대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훈련을 배가해야 합니다. 적의 포위가 강하면 강할수록 후퇴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밀어낼 수 있는 강한 주체적인 힘을 어떻게 집중시키느냐? 적이 천이고 우리가 천 백일 때 일대 일로 싸우고 나면 백밖에 남는 것이 없는데, 그 백 가지고 세계를 어떻게 지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위해 여러분들은 훈련을 배가해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천적인 운세를 좌우할 수 있는 주체적인 힘을 가진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운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천운적인 힘과 주체적인 권한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선진화하는 데에 지장이 되는 모든 여건과 환경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핵심적인 내용을 얼마나 전체화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대한민국의 부흥을 좌우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귀전선에 있는 우리도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영향력을 어떻게 보강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국가의 운명도 내가 좌로 갈 때에는 망하는 것이요, 우로 갈 때에는 흥하는 것입니다. 세계도 또한 마찬가지로 내가 좌로 가면 망하는 것이요, 우로 가면 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언행일체를 통하여 판가리 싸움을 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악과 선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행동 여하에 따라서 악이냐 선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탄편이냐 하늘편이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하나의 전선을 향하여 총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아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요원이 못 되는 것입니다.

25-317
지휘관의 책임과 병사가 취해야 할 바른 태도
이러한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하는 행동에 따라서 통일교회의 운명이 좌우되고, 선생님의 생사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생활철학이 되어야 하고, 신념에 사무쳐 이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망하면 하나님도 망하는 것이요, 후대도 망하는 것이며, 상하관계에서 보면 하늘땅이 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좌우관계에서는 민족이 망하는 것이요, 전후 관계에서는 내 친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비운의 와중에 몰아넣고 나를 포위하고 있는 사탄의 세력을 격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힘이 부족하니 천운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최후의 병력을 공급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 작전법이 어디에 있는가? 이 나라의 내일과 이 세계의 내일을 염려하는 데에 있어서 하늘을 부여안고 통사정할 수 있는 땅 위의 요원들이 얼마나 있는가? 하늘의 정병을 얼마만큼 적군 앞에 전진시킬 수 있으며, 또한 얼마만큼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것입니다.

하나의 큰 전쟁을 맞이해야 할 지휘관이 있다면, 그 지휘관은 적군이 막강하면 막강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안팎으로 틀림없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대비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첩보병을 보내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첨단에 서 있는 병사가 얼마만큼 강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일대일로 볼 때 우리 병사가 능히 십을 대할 수 있다고 하게 되면,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십배의 강력한 적이라 해도 장기전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한국에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보다도 하나님 앞에 정성을 많이 들였습니다. 심정적인 사람은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심정에서부터 가정적인 심정, 민족적인 심정, 세계적인 심정으로 발전하여 체휼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심정을 가지고 더욱더 정성들이는 사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붙들고는 하나님은 작전을 하지 못합니다. 천국 보위의 명령을 받은 입장에 서 가지고 자기의 위치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이끌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무엇보다도 큰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행동 하나를 잘못하게 되면 역사가 좌우되므로 후에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는 것이나 먹고 입는 일체의 생활을 신앙을 중심삼고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주력부대는 얼마나 되느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60만 대군이 있는데, 전부가 주력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주력부대를 리드할 수 있는 사령관은 누구냐? 이러한 관점에서 불 때, 사방천지의 전면적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각 분야에서 어떠한 전선을 맡고 있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 전쟁이 크면 클수록 전황이 여러 가지 분야에서 가중될 것이어늘, 그 가중되는 분야에 미치지 못하게 될 때는 급진적인 보강을 해야 하므로, 거기에 대비할 수있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막강한 군대가 되려면, 여러분 각자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사령관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기보다는 병사가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사들 자체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잘하면 이 나라 이 민족이 흥하는 것이요, 내가 못하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천운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로 커 갈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가는길 가운데 아무리 깊은 골짜기와 아무리 높은 고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무난히 극복하고 세계로 커 갈 것입니다. 세계의 정상으로 커 갈 것입니다.

25-319
전쟁터에서는 죽고자 하는 사람이 사는 법
여러분 각자가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지고 세계를 위해서 결정지을 수 있는 신념을 가졌다면, 세계적인 이상세계가 등장하게 될 때에 이 민족이 세계를 지도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에 적과의 싸움에 있어서 사령관이 전사를 당했다면 사단장이 그 사명을 대신해야 합니다. 또한 사단장이 전사하면 연대장이, 연대장이 전사하면 대대장이, 대대장이 전사하면 중대장이, 중대장이 전사하면 소대장이 이어서 해 나가야 됩니다. 이렇듯 여러분은 하나의 지도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면적 진격을 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있어서 불리한 전세를 맞게 될 때에 자기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무리보다 이 풍난을 견디고 나설 수 있는 무리가 얼마나 되느냐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죽고자 하는 무리가 사는 것입니다. 소수의 무리라도 이런 무리라 할진대, 다수의 적군을 능히 무찌르고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참다운 애국자는 `나는 삼천만을 위해서 죽을 것이다. 나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죽을 것이다’ 하고 나서는 자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이 복잡다단한 복귀섭리를 안팎으로 책임졌다 할진대 며칠이나 몸부림칠 것이냐….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세계적인 복귀섭리를 책임졌다고 한다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수많은 민족이 전부 자기 중심삼아 가지고 자기의 욕망이나 자기의 국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기도를 하는데, 누구의 기도를 들어 주어야 되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실전에 임하기 전에 어떤 기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승리의 심정적 기준을 세울 것이냐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입장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할 때 어떻게 해요? 자기를 중심삼고 기도하지요? 교회도 자기를 중심삼고 다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지은 창조원칙이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했을망정 그 기준은 언제나 불변하기 때문에 그 욕망의 발현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세계 각처에서 방송되는 라디오 소리와 같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리실 것이냐, 그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소리가 어떤 것이냐를 알아야 합니다. 이북 방송이 언제나 크게 김일성 수령이 어떻고 박정희 도당이 어떻고 하는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아무리 떠들어 봐야 낙엽처럼 먼저 땅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반공전선에 입각한 요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왔다갔다하다간 오히려 그들에게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계의 인류가 전부 다 기독교에 침식이 됐다 해도 하나님이 곤란하실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이 세계 인류를 빼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전쟁보다도 더한 운동을 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전쟁을 그만 두고 그보다 더한 운동을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전국 체육대회를 하려면 몇 개월 걸리지요? 전국 체육대회를 하려면 선수를 군에서 먼저 추리고, 군대표자들을 도에 보내서 도에서 추리고, 그다음에 도 대표가 중앙까지 나와 가지고 추리려면 몇 개월이 걸립니다. 인구가 삼천만 명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에서도 전국 체육대회를 한번 하려면 수많은 요원이 동원되어 가지고도 몇 개월 걸리는데, 하나님은 복귀섭리라는 판도를 세계적으로 떡 벌여 놓았다 이겁니다.

그 과정에 있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간 어떤 사람들은 더 올라가기 싫으니까 `아이구 나 더 이상 못 올라가겠으니 내려가겠소’ 하고 내려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입니다. `아이구 힘듭니다. 나 못가겠습니다’ 하면서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각기 금으로 표시한다면, 별의별 금을 다 그어도 모자랄 정도로 복잡할 것입니다.

25-321
복귀섭리의 예선대회
그러면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데 있어서 그 예선대회를 언제 할것이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아들딸을 선출하는 예선전을 언제 했었다는 말을 들어 보았어요? 그 예선대회장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불교면 불교, 유교면 유교, 기독교면 기독교 등이 전부 자기 나름대로의 대회를 치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나름대로 대회를 치러 나왔는데 워낙 그 판도가 크니 어떤 데는 10년 전에 대회가 끝났는가 하면 어떤 데는 10년 후에나 시작하게 되는 데가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 전에 출발한 종교가 있는데 10년 후에도 출발이 안 되어 있는 종교가 있으니, 그것을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마이크를 대고 호령할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그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고 기가 막히겠나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튼 예선대회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올림픽 대회는 어느 나라에서 하느냐? 특정한 나라에서 하는 것입니다. 대회를 개최하는 그 나라 사람은 혜택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경기를 치르는 데 있어서 외적인 구애라는 것이 그 주최국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경비도 들어야 하고, 풍토가 다르고, 기후가 다르고, 모든 여건이 다른 데에서 경기를 해야만 하니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그 나라 사람은 달리는 데도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 국민들의 응원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앞질러 가게 되면 수많은 군중들이 `야 이 자식아! 기다가 다리나 부러져라’ 하고 야유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마음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사탄의 사촌이 다 되는 것입니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번에 세계 챔피온 결정전 때, 김일 선수가 상대 선수의 밑에 들어가 가지고 바둥거리고 있는 것을 볼 때, 그저 꼭대기에 올라가서 발로 차 가지고 그냥…. 그런 생각이 울컥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쿠 이거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욕망의 방향도 역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떠나 가지고는 제2의 대상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예선대회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 그 나라도 해요, 안해요? 대회를 맞기 전에 본국에서도 예선을 치러야 합니다. 본국이라고 해서 구경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나라 역시 예선대회를 치러야 합니다. 예선이 끝나야 본 대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종교계에 있어서 예선대회를 언제 했느냐? 그 예선을 거쳐서 챔피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나라를 들이쳐야 합니다. 세계를 들이쳐야 합니다. 세계를 들이치는 데에는 몰아서 들이쳐야 됩니다. 한꺼번에 퍼부어야 됩니다.

전에는 통일교회 무리들이 몇 명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장로교 및 감리교 등 전체가 동원되었고, 이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패들도 우리보고 이단이라 했습니다. 삼천만 모두가 통일교회를 쳤습니다. 그 치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이만큼 예선대회가 지루한 것입니다. 왜 지루하냐? 비가 와서 장마가 지고 태풍이 부니까 가다가 말고 선수들이 다 지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놀음에 지쳐 있습니다. 예선이 끝나면 본 대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본대회를 어디에서 하느냐? 예수님도 본 대회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수많은 민족이 자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나와 가지고 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주장대로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잘났다고 하는 사람은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전부 해보라는 여기에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뛰다가 보니까 강이 있는데, 그 강에 썩은 다리가 있다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일등이 탐나거든 죽든 살든 썩은 다리를 건너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건너가기 전에 무너지느냐, 건너는 중에 무너지느냐, 아니면 건너가고 나서 무너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럴 때에는 무너지겠으면 무너져라고 하면서 무너지기 전에 쏜살같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면 안 무너지는 것입니다. (웃음)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 다른 길로 가게 되면 심판관한테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회를 다시 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때에는 후다닥 빨리 건너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통일교회식이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가만히 있다가 언제 할지 모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담과 같이 불쑥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예선대회에서는 그래도 남아났습니다. 이제는 세계대회에 나가야 합니다.

25-323
예수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어느 때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예비심사를 했느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심정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 최고의 정력을 다하는 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만은 망하지 않고, 죽지 않고 이것만 넘었으면…’ 하고 가슴 졸인 사람이 있었느냐? 그렇다면 그분은 누구였겠는가? 그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니 죽지 않게 했어야 될 것인데, 죽였기에 소망하던 모든 것이 꺾여 나갔던 것입니다. 때문에 몇 천년이 가도 그분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떤 민족의 사람이 그런 재림주가 되어야 할 것이냐?

이것은 세계적인 과제입니다. 과거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그렇잖아요?

만일 한 남자가 세계 제일의 미인을 맞아 가지고 살아 보지 않고는 못죽는다고 천년 만년 버티는 사나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참으로 곤란할 것입니다. 또 여자로 말한다면 세계의 위대한 자를 맞아 가지고 그의 후계자를 낳지 않고는 못 죽는다고 몇 천년을 두고 버티는 여자가 있다면, 역시 하나님은 곤란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해 보았어요? 밤낮으로 수만년 버티게 된다면 하나님이 참 곤란할 것입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소원도 못 들어 주는데, 나라의 소원, 세계의 소원을 어떻게 들어 주시겠습니까?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이 본래 그런 것입니다. 인간에겐 본래 그런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필 수 있는 꽃이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런 종류의 사람보다 하나님의 무한한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받들 수 있는 남성이 되고, 여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못 하고서는 민족복귀의 출발을 못 하는 것입니다. 타고 앉아서 태평하게 있으면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예선대회를 하는데 심정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누가 제일이냐? 그런 심정을 대해 가지고 나가는 남자 앞에 대한민국에서 제일인 여자와 코가 비뚤어졌지만 심정이 맞는 여자가 나타났다 할 때, 그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할 때 누구를 택하겠습니까? 코가 비뚤어진 여자를 택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더 좋은 것이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더 좋은 최후에 남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덜 좋은 것은 정리해 버리고 더 좋은 것이 남아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천법입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섭리노정에서 이 대회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걸어 놓고 나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금후의 본선대회에 앞서 있을 예선대회에 예수보다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에게 예수님의 사명을 인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습니까?

맏아들을 낳았을 때는 그 아들만을 몽땅 사랑하지만, 만일 그 맏아들이 죽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난 아들이 얼굴도 비슷하고 무엇으로 보나 맏아들보다 월등한데도 그 죽은 맏아들만을 생각하고 `난 너를 모른다’ 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복귀섭리 가운데 있어서 선생님과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은 누구를 먼저 부르실 것이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안 되었지만 예수님을 먼저 부른다면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하나님 앞에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이 틀렸으면 어디 한번 말해 보세요.

예수님은 큰 일을 해야 하는데, 이적기사니 뭐니 하며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입니다. 무엇을 그렇게 바쁘게 했느냐 말입니다. 작전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의붓 아버지인 요셉 하나를 왜 구슬리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했더라면 밤에도 `아버지 계십니까?’ 하고 불렀을 것입니다. `왜 그러노?’ 하고 한 번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세 번 대답하도록 만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못 했습니다. 그것을 나는 작전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됩니다.

25-325
시련은 선발을 위한 것이므로 불평해서는 안 돼
복귀섭리의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러한 선발전을 해나오는데 여러분이 `이거 왜 싸움만 치르노?’ 하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도 그 이상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자리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쓴 잔을 면케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민이 환영하는 승리의 자리에서 하늘의 영광을 앞에 놓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를 내세우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나간 역사과정에서 예선대회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영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전 영계가 동원되어 가지고 `문아무개는 하늘의 역적이다’라는 레테르를 붙여 놓았었습니다. 난데없는 불순동이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돌배밭에 참배 하나가 태어났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게 전부가 들고 나섰습니다.

이렇듯 맞서는 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공산당이 잘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보따리를 둘러메고 `내 신세가 이렇소’ 하며 간판을 내렸을 것입니다.

미국이 자기만 제일이라는 독자적인 권한의 시대는 다 지나갔습니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에게 맡겨라. 우리는 가담했다가 후퇴한다’라고 하고 있으니, 그 상판대기에 `이 자식들아’ 하고 침을 뱉아도 미국이 할 수없다는 것입니다.하다가 그만 두려면 아예 손을 대지 말든지, 그게 뭐냔 말입니다. 이제 미국의 앞날을 두고 보십시오. 닉슨도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 생김생김은 그럴 듯한 사나이로 생겼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미국은 내려갈 것입니다. 걷잡을수 없이 내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닉슨 행정부의 책임도 있겠지만, 미국의 모든 여론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지금까지 공산당이 간접적인 지원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어떤 나라가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선발대로 입후보할 것이냐가 큰 문제입니다. 유엔총회에 있어서 총장의 권한이 모든 의결권에 대하여 중요한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심적인 존재가 처하는 나라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25-326
통일교회식 작전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은 한국의 통일교회로부터 되어지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에서는 기분이 나쁘겠지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겠으면 죽으라는 것입니다. 판결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영계가 덜 되었기 때문에 반대로 침을 놓아 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식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통일교회식입니다. 공산당식이라는 말도 있지요? 거기에 반대되는 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공산당식은 자기의 라이벌 있으면 상대방의 목을 자르고 밟고 올라서지만, 통일교회식은 내가 먼저 종의 입장이 되어 상대방의 머리를 숙이게 해서 굴복시키는 식입니다. 작전이 정말 멋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계라든가 지상을 중심삼은 복귀의 전선은 이미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의 책임자로서 무엇을 뚫고 나가야 할것인가 하는 것이 전면적인 진격을 수행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 나왔지만 언제든지 선생님이 하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습니다. 여기 정도술 관장들도 왔지만, 통일교인들 보리밥도 못 먹고 있는데 정도술은 무엇하러 가르쳐 주느냐고 쑤근쑤근 했습니다. 그거 무엇하러 가르치고 있느냐…. 내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가르치는지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두고 보십시오. 그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정도술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혹은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만의 정도술이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나 통일교회만의 정도술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대한민국만의 통일교회냐? 최소한 아시아의 통일교회가 되면 되었지 대한민국만의 통일교회는 아닙니다. 이것을 후원하는 데 있어서는 적어도 7,8년은 준비해야 됩니다. 3년 이상, 5년 이상, 7년 이상을 내다보고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과 박자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악당들이 암흑가를 만든다면, 선당의 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선당들이 주먹을 쓰면 그것은 공판정에서 어떤 선의의 판결을 하는 것보다도 뜻적인 판결에서 빠릅니다. 그렇지요? 때문에 그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주먹으로 나오는 데에는 말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주먹으로 대항하는 것이 직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아들딸도 이것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그래서 관장에게 `네가 갖고 있는 모든 비밀을 며칠 이내에 전부 다 털어 놓아라’ 하고 특명을 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엉큼하게 비밀을 전부 가지고만 있단 말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라를 망치고 우수한 민족이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원인인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타파해 버리고 국가와 민족의 정신적인 기능이라든가 예술적인 면을 모두 능동적으로 단시일 내에 접합시켜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모든 골수를 단시일 내에 뽑아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통일교회 원리라는 간판을 써 붙여 가지고 총괄적으로 수습하는 데 있어서 제일 빠른 경력을 가진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즈음 젊은 녀석들 중에 `선생님 한번 이렇게 합시다!’ 하는 기백 있는 녀석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렇게 따라가다가는 6천년을 가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모험을 해야 됩니다. 모험을….

요즈음은 일본 공산당이 아시아에 있어서 중공이나 소련보다도 이론적인 면에 있어서 전반적인 기준이 높게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 공산당을 대해 가지고 일본 통일교회의 젊은이들을 5백명쯤 모아서 반공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선생님 미쳤다고 자기들 나름대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자!’고 했습니다. 만일 일본에서 반공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통일교회의 위신은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에 할 때는 전국에 있는 지구장들을 모아다 놓고 6개월 이내에 반공활동을 해야겠으니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 방대한 공산당 이론을 6개월 이내에 준비해 가지고 강사가 되라고 하니 청천벽력이었을 것입니다. 6개월 이내에 전국적으로 반공활동을 하는 것을 책임을 지겠다는 배포를 가지게 하고, 녹음 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과 같이 외워 가지고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25-328
죽기를 각오하자
그러니 그것을 하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새로운 모습이 생겨나려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실전에 임해 가지고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것입니다. 대학교 나와 가지고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직접 실전에 임해 가지고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것입니다. 필요적절한 환경에 들어가게 되면 귀띔만 해줘도 다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박한 환경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이 어떻고 복귀의 심정이니 무엇이니 말하고 있지만, 그 복귀의 심정이 맛이 납니까? 노처녀에게는 젊은 시절에 시집가서 남편의 사랑받는 맛을 암만 이야기해 주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하고 여러분하고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하는 것과 여러분이 `아버지!’ 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똑같지만 내용은 천태만상입니다. 이렇게 얘기하자면 한정이 없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도를 하는 데도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만 하더라도 그렇고, 수많은 종교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을 떼어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품고 나오고 있으니, 하나님의 심정과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그런 자리에 한 시간도 있지 못 할 것입니다. 십분도 못 가서 전부 다 정신이 돌아 버리고 말것입니다.

기러기도 남아갈 때 하나의 선두가 있어 가지고 질서 있게 날아가지요? 먼 거리를 날수록 대열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할 때에도 맨처음에는 전부 다 한꺼번에 다투어 뛰느라고 복잡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리고 돌아올 때쯤 되면 순서가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한 백오십명이 마라톤을 할 때 순차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지어서 뛰게 됩니까? 그건 명령도 할 수 없거니와 명령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복귀섭리는 단기작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결과적으로 장기작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6천년이 짧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통일교회가 나와서 6천년의 역사를 짧은 시일내에 복귀하려고 하니 바쁜 것입니다. 6천년 역사에 비해 통일교회의 역사는 너무 짧습니다. 시련 과정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천년쯤을 대결해야 할 선수들인데 7년쯤 되어 가지고 `이제 조금은 왔겠구만’ 하다가는 망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실을 탓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십시오. 만인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일등을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노력하면 천리도 문제없고, 만리도 문제없습니다.

왜정 때, 우리 동네에 할아버지 한 분이 살았는데, 조금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 형사들이 와 가지고 3.1운동 때 만세 부를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그 일경들이 사람을 잡으러 올 때에는 저녁에 옵니다.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가 `아 이 사람들이 왜 저녁에 오는 거야. 대낮에 와서 잡지. 나를 잡아라 나를 잡아’ 했습니다. 하지만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전부 잡아다가 물어보니, 그 노인이 주동이라고 뒤집어 씌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노인이 주모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주모자로 몰린 그 할아버지가 바로 낮에 와서 나를 잡아가라고 하던그 노인이거든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붙잡혀 와 가지고 `죽어도 만세! 살아도 만세!’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노인을 공판정에 데리고 갔다간 창피만 당하겠으니 그냥 내쫓아 버렸습니다.

선생님은 `그 노인 참 명이 길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세를 부르려면 그렇게 죽어도 불러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 만세 부르다간 오히려 다 죽는 것입니다.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으니 하나님 좋을 대로 하십시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반을 쌓아야 됩니다.

25-330
생명을 바쳐 충성하는 사람이 충신
하나님께서 복귀전선의 최일선에 누구를 믿고 내보내시겠느냐 죽을 일이 있으면 먼저 죽겠다고 덤비는 낯선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참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선조의 공적이 있는 사람을 중심삼아 보내고 싶은데 난데없이 아무 공적도 없는, 세상적으로 보면 백정과 같은 상것이 자식이 나타나 가지고 하늘을 위하여 죽는 길의 선두에 서겠다고 하니 이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하나님은 응당 그런 사람을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할 때는 역적의 자식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써야 되는 것입니다. 비상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런 배포를 가진 사라면 역적의 자식이라도 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박한 입장에서 누구를 믿겠습니까? 역적의 자식이라도 죽음길의 선두에 서겠다는데 `너의 아버지가 역적이니까 넌 안 돼’ 할 수 있겠습니까? 역적 집안, 역적의 아들 중에서도 충신이 나오는 거예요.

이러한 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에 죄를 져서 사형언도를 받은 사형수라도 적진에 들어가서 공훈을 세우고 돌아오게 되면 살려 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생명을 걸고 나서는 데 있어서 충신과 역적은 일시에 뒤넘이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복귀섭리의 원칙이 그러니까 할 수 없는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협회장 이상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협회장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협회장이 죽든가 병석에 눕는 불상사가 벌어질 경우 벌써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 앞으로 복귀전선에 나갈 믿음의 용사가 나타나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슨 간판을 들고 나서야 되느냐? 일병이면 일병, 병장이면 병장등 무엇이든 붙이고 나서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러면 무엇을 붙이고 결전에 임할 것이냐? 생명의 용사라는 간판을 붙이고 임해야 합니다. 생명의 용사는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생명의 용사는 그 행동의 목적이 사선을 넘어 적진을 격파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용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선민적인 터전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우리 통일교회를 반대해 왔는데, 우리는 여기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포탄도 쏘지 않고, 총칼도 쓰지 않고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기성교회가 지금 아랫도리를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몰려들 것입니다. 내가 걸어 낚아채면 순식간에 몰려올 것입니다. 이제 한순간의 작전 계획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것을 위하여 전진하고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대열에 있어서 참된 용사가 되어야 하겠으니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라가 비상사태에 임했을 때,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는 그 전선이 전체 국민의 애국사상과 얼마만큼 깊이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크면 클수록 그 국민의 승리는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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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도상에 있는 우리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가는 입장에서도 여러분의 하루하루 생활 전체를 얼마만큼 그 시간권내에서 실감있게 전체화해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깊이, 혹은 높이를 기독교가 출발하던 그때와 비교해 볼 때 우리가 많게 되면 우리는 급진적인 발전, 급진적인 승리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아야 합니다.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수치를 느껴 보아야 하고, 망신도 당해 보아야 합니다. 선생님에게도 그러한 때가 있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가기 전 법정에 섰을 때, 과거에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이 “이북에서도 감옥살이를 하더니 여기 와서도 감옥살이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그 버릇을 못 버렸구만”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내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일생 동안 감옥을 드나들면 투쟁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때가 올 것입니다. 이 모든 원한을 모아 가지고 가다 보면 그 원한을 전부 다 풀고도 남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칠래야 지칠 수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술을 부르트고 몸뚱이가 불편해도 양양해 하는 원수의 등을 내가 양발로 딛고 넘어설 때까지 나는 갈 것입니다. 사탄을 대해 끝까지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라구요, 깊이.

여러분, 또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참이나, 아니냐 하는 문제입니다. 함부로 믿지 마십시오. 이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혹은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그 동기가 인간의 생각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바로 하늘이 동기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계에 문의해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온 식구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함부로 믿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만난 사람을 친구라고 잡아 끌어 가지고 뚝배기 막걸리나 마시면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원수를 갚을 칼을 품고 최후의 길을 재면서 가는 도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 잘못하다가는 원수들 앞에 끌려갑니다. 잘못하다가는 큰일이 벌어집니다. 양자택일입니다. 이런 길을 우리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왜정시대에 별의별 고문을 받았지만 `패라. 쳐라 모든 정치의 조직을 통해 쳐라. 나는 죽음의 한계선을 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의 고개를 여러 번 넘어선 사람입니다. 7,8시간까지 고문을 당하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족이 피를 흘릴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말한마디만 하면 내 혐의는 풀릴 수 있었지만 안했던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민족이 피를 흘리고 동지들이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갖은 시련을 극복하고 남아진 이 고빗길에 와서 내가 양보할 수 있느냐며 버틴 것입니다. `쳐라. 또 쳐라’ 하며 버텼어요. 나는 그러한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일본 천황에게도 원한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복수한다고 해 가지고 일본 천황의 궁전에 들어가서 천황을 한 칼로 쳐서 과거의 전체의 원한을 전부 다 갚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패자인 것입니다. 하늘은 망한 자를 또 치지는 않습니다. 망한 자 가운데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사죄하는 자에 대해서는 긍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이 있기 때문에 패자에게 또 칼을 들어 치게 되면 친 자의 후손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친구 이상 가까운 자리에서 정성을 들이고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대해서도 그래야합니다.

25-333
아직은 지칠 수 없다
잊혀지지 않는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그 형무소의 구치과정이 한 이야기를 나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한울 풀 때까지 이를 악물고 기다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삼천만의 반대를 받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배척을 받으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더라도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발전합니다. 앞으로 가면서 모험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나는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아시아를 중심삼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중심삼고 모험을 하려고 합니다. 미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제일 큰 문제점을 제시하는 통일교회의 미스터 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아직은 지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에 죽는 날에는 이 땅 위에 다시 와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와서 일을 할 때에는 몇 배의 수고가 들어가느냐? 지금의 몇배나 많이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러니 한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한시간이 바쁜 사람이예요. 선생님의 생활이 그렇습니다. 수면시간이 평균 4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피곤하기는 계속적으로 피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이 연구한 운동법이 있습니다. 피곤할 때, 그 운동을 해서 등골에 땀을 쭉 빼고 나면 피로가 풀립니다. 이러한 운동법은 앞으로 통일교회 식구 전체에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 식구들은 뜻을 위해 남보다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됩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등이 구부러지고 무릎에 굳은 살이 박힐 정도로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무릎에는 옛날에 기도하면서 생긴 굳은 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기도는 마루바닥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도 흘려야 됩니다. 선생님은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는 고비를 몇번이나 넘긴 사람입니다. 흘러가는 사나이처럼 거리에서 여인들이나 만나 가지고 박자에 맞춰 춤추는 사내가 아닙니다.

이렇게 펴 나온 복귀의 전선에 여러분이 생명의 용사로 참전하였으면 국가의 정기라든가 천적인 운세 앞에 정상적인 보조를 맞춰 나가야 됩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죽음의 길도 각오하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든 그러한 일을 해야 됩니다. 어느때에 가면 누구를 시켜 가지고 훑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뜻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된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앞으로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일을 감쪽같이 시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흥남감옥에서 비료가마를 묶어 내면서 그곳이 최후의 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포로병이 되어도 나는 이러한 비운의 역사에 대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북이 이북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총궐기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북의 45만 병사니 120만 병사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삼천만에 우리 사상을 집어넣어 가지고 몰아치면 아시아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가 선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포위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몇해만 두고 보십시오. 반드시 그 작전을 할 것입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조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습니다. 공석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나타나 버릇하면 갈 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한 번 만나면 두 번 만나 줘야 되고, 점심식사를 같이 했으면 저녁식사도 같이 해야 되고, 그러다 보면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하고 동료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친구가 된다고 해도 나의 친구관과 그들의 친구관에는 천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만나게 되면 어차피 몇 번 이내에 결별이 되어질 것이고 합할 수 없는 요건이 많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먼저 갖다가 나누어 주는 일은 합니다.

일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전역에 우리의 작전 그물을 쳐가지고 젊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에서는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일본의 모모한 인사들이 청파동에 찾아와 가지고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하고, 신문보도를 하지 말라고 해도 신문보도를 하려고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집안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모를 것입니다. 집안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훌륭한지 잘 모르지요? 대통령의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보고 아빠라고 부르지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밥 먹는 아빠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별다르게 혹이 난 것도 아니고 얼굴도 옛날 모양 그대로이고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아빠가 대통령이라는 간판을 들고 삼천만 민중을 대표해서 외국에 나가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품에 안길 때는 그냥 아빠니까 좋아서 안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을 그저 아버지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25-336
섣불리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말라
오늘도 말씀을 시작한지 벌서 몇 시간이나 지나 버렸군요. 내가 자꾸 이러니까 이러는 것이 습관인 줄 알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야기를 요령 있게 참 잘 합니다. 요점만 이야기한다면 3시간 이야기할 것을 15분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말 저말 다 하는 것은 여러분의 얼굴을 보게 되면 사정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살아온 세계가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기준에서도 한마디 하고 저사람 기준에서도 한마디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떡을 나눠 주는 데 있어서 사람이 적으면 금방 나눠 주는데 사람이 많으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선생님에 대하여 다시 연구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정하다면 아주 무정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눈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눈을 통해 가지고 마음까지 꿰뚫어 봅니다. 또 귀를 보십시오. 얼마나 잘 붙었나? 절대 누구 말 안 듣습니다. 한편으로는 잘 듣는 것 같지만 나는 내 계획대로 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살아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더라도, 소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을 대해도 당신은 선생님이지만 나보다 몇년 먼저 배웠다 뿐이지 인격적으로는 나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은 못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사를 하더라도 절대로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렇게 했어요.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씨름을 해도 나이가 나보다 몇살 더 많은 사람과 해도 반드시 이겨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학교에 가도 무슨 꼬투리를 잡아 가지고 질문을 해서 혼내 주고 내가 뭐라고 하면 다 들을 수 있게끔 해놓고 나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또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을 절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냥은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내 자신이 해보고 내가 했다는 기준을 세워 놓고 나서야 믿는 것입니다. 문학서적도 마찬가지로 좋은 말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절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할 말을 먼저 했구만. 내승락없이 왜 했어?’ 이렇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동네에서 싸움을 해도 어린아이들과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3,4학년 위인 아이들과 싸우고 또 어떻게 해서든지 골탕을 먹였습니다. 무엇이든지 결판이 날 때까지 싸웠습니다. 상대방이 집으로 도망가면 하루고 이틀이고 끝까지 달라붙습니다. 상대방이 집으로 도망가면 하루고 이틀이고 끝까지 달라붙습니다. 상대방의 부모가 말려도 안 됩니다. 결국은 자식 싸움에서 그 어머니 아버지가 항복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에게까지 항복을 받은 역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를 섣불리 반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려면 통일교회 문선생의 목을 잘라다 놓고 반대를 하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무리 반대해도 이상이 없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허투루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하고 같이 말하면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심정세계를 대하며 살아 온 사람이예요. 눈만 한번 깜박하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압니다. 그런데 `당신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구요’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빨리 잡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몇 번만해 놓으면 작전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작전을 해나왔습니다.

25-337
내 안중에는 승리밖에 없다
적당주의나 관습주의로는 안 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야 합니다. 여기 젊은 사람들은 `오늘 교회에 한번 나가 보자’ 하고왔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까?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장사를 하기 위해서 왔습니까? 얻어먹으러 왔습니까?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겠다, 나는 이렇게 되고야 말겠다 하는 배포가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배포를 중심삼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것도 없이 그냥 따러오다 보니 조금만 달려도 지치고 맙니다. 지금은 총동원해야 되는데 발길로 차기만 해서 되겠나요? 차면 좋겠어요?

내 안중에는 승리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나이가 많은 사람 젊은 사람 따질 사이가 있습니까? 이럴 때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장애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젊은 사람들을 중심삼고, 죽이지는 못하겠으니 멍이 들더라도 때려서 알아달라는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뼈가 꺾어져도 좋아합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작전상 일반 사람을 불러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일의 전사들입니다. 전사라 할 때 `사’ 자는 무슨 `사’ 자입니까? 죽을 `사(死)’자입니까? 선비 `사(士)’자입니까? 선비 `사’자가 죽을 `사’자보다 낫지요? 그러면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선비입니까? 하늘땅을 뒤집어 놓는 사람이 선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독일사람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너희들, 잘 만났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찾아 오셔서 너희들을 만나기까지 이렇게 힘이 들었구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에 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 하네다 공항에 내리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천황이 행차했다가 돌아올 때 모든 관리들이 환영하는 입장에서 돌아왔습니까?

선생님은 어떠한 나라보다도 우리 나라의 사람을 중심삼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행을 할 때에도 `선생님이 오신다 오신다’ 해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기다리다가 내가 가면 꿈이라고 생각하지요. 선생님은 세계를 다녀도 훌훌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차를 타고 다니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박자를 맞추려니 힘이 듭니다. 선생님이 제2차 세계 순회노정에서도 제일 먼저 그것을 봤습니다. 외국 식구들은 충성하는 데 챔피언들입니다. 충성하는 데 세계의 기준에 있는 그들 앞에 어떻게 내가 그렇게 쉽사리 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밑바닥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끝까지 해야지 지치면 안됩니다. 끝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외국에 나가서 이야기하려면 통역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통역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통역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통역은 해야겠으니 어떻게 합니까? 말도 내가 하고 통역도 내가 해야 되겠으니 어떻게 해요? 그러니 일본에 가야지요. 내가 21년만에 일본 강단에 서서 일본말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일본말을 하면 옛날 일본 사람보다 배나 빨리 합니다. 어느 한 때 써먹을 때가 올 것이다 하면서 미리 배워뒀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말을 천천히 하지만 빨리 하다 보면 혓바닥이 아픕니다. 내가 처음에는 말을 아주 느리게 했었어요. 그런데 남이 한마디 할 때 열 마디를 해도 질 판국인데 남이 한마디 할 때 반마디도 못해 가지고 다른 세계 사람들을 이길 수 있겠어요? 처음에 이 평안도 사람이 서울 땅에 와보니 말들을 얼마나 빠른지 내가 암만 빨리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나도 말을 빨리 해야 했어요. 하숙집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 키는 작달막해 가지고 말이 얼마나 빠른지 일찍도 일어나서 나불나불거리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요. 듣다 보면 아침부터 기분 나빠요.

이거 내가 밥 좀 주세요 하는 시간에 벌써 그 아주머니는 밥을 다 먹고 소화까지 시키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아주 기분 나빴어요. 그래서 6개월 동안 골방에 들어가서 기역 니은부터, 가 갸부터 전부 발음 연습을 다시 했어요. 발음을 전부 파악할 때까지 훈련을 했어요. 그래서 말이 빨라진 것입니다. 말투도 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25-339
통일용사의 사명
선생님은 방대한 말씀을 제한된 시간 내에 전해야 되기 때문에 어떠한 위엄을 갖추어 가지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할 말을 다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은 다른 사람이 다섯 시간 동안 이야기한 것과 같습니다. 바쁠 때에는 다그치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라 이겁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귀의 전선이 망하지 않고 나왔지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망하지 않고 복귀섭리를 끌고 나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반대하고 세계가 전부 다 반대해도 선생님한테는 다 걸려서 넘어갔습니다. 영계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반대했으니 세계 기준까지 반대한 모든 것을 복귀하는 싸움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 있는 식구들도 전부 다 규합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이런 저런 과정을 다 거쳐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을 그저 허스름한 통일교회 선생님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때를 저울질하는 사람입니다. 강태공이 양자강 푸른 물에서 낚시질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놀음을 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비장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러니 아시아 전역을 편답하기 위해 보따리 하나 들고서 몽고 대륙도 시베리아 대륙도 갈 수있는 배포를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은 나면서부터 그러한 작전을 해나왔습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심각한 전투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복귀의 전선의 어느 분야에서 사명을 해야 되느냐? 통신병이 되든가 포병이 되든가 보병이 되든가 해야 합니다. 섭리전선의 어느 분야에선가 역사의 요원으로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통일용사들의 필연적인 사명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을 볼 때 한편으로는 서러운 때가 참많습니다. 만약에 통일교회가 반대받지 않았으면 얼마나 비약을 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반대 안 받고 몇몇 사람만 선생님의 말을 잘 들었으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을 것이고, 하늘의 운명도 통일교회 운명과 더불어 비약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국가 민족 앞에 선두의 책임을 해야 됩니다. 생활에 있어서 애국 애족하는 데에도 선두에 서야 되겠습니다. 내적인 사명의 책임자로서, 아벨적인 사명의 책임자로서 국가 앞에 전체적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여러분인 것을 알아야되겠습니다.

25-340
우리가 닦고 있는 기반들
우리 통일교회가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나는 지금까지 무수한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그러한 고개를 넘어오면서 여러분을 만났느냐? 언덕배기에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내가 언덕배기에 오기까지 어떠한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 개인 개인을 수습하기 위하여 어떠한 지시를 내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러한 말은 여러분에게 참고로 해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아시아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나라에 그 나라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왕래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 바쁜 판국에 언제 비자를 내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비자 없이도 일이 벌어질 때는 비행기를 타고 달려갈 수 있고 하루밤에라도 갔다 올 수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까지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은 아시아를 중심삼고 세계를 향하여 나가기 위하여, 이러한 모든 사업분야의 기반을 만들기 위하여 정보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준비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소련의 군대 상황이라든가 세계에 대한 그들의 모든 정보를 우리 통일교회가 보고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선교사가 체코가 들어가 있습니다. 중공에도 들어가 있고, 소련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닦지 못하는 기반을 우리가 닦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 이 세계의 장래를 위해서 말없는 가운데에서 소련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위 작전을 하고 있어요.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독일 사람이면 독일 사람, 불란서 사람이면 불란서 사람, 영국 사람이면 영국 사람, 체코 사람이면 체코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돈 주고 될 것 같습니까? 여기서 명령만 하면 생사를 초월해서라도 보고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 공산당의 총부리는 대한민국의 통일교회 문선생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관지의 일면 전부에 대서 특필한 것이 한 번뿐이 아니예요. 일본 공산당 기관지로서는 최고 기관지에 그런 적이 있는데 그것이 130만에서 150만부 정도 발행되었습니다. 그들이 문제시해 가지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전선에서 원수를 밀고 나갈 선생님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 것이냐? 물론 형편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그냥 그대로 계승하여 나갈 사람은 누구일 것이냐? 문제가 심각합니다. 선생님은 이 땅을 중심삼은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제물들이구요. 그러니 여러분은 앞으로 선생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경제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세계적인 조직을 만들어서 초국가적인 기준에서 이 운동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국제 결혼을 많이 시키려고 합니다. 일본과 제일교포 경제요원들은 우리 통일교회에서 한국인과 묶어 줄 것입니다. 이것은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아 그들에게는 없는, 이상세계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고차적인 민족사상을 고취시킬 수 있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민족 결성대회를 해 나오지만 내적 문제라는 것은 어떠한 민족을 중심삼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는 만들 수 없습니다. 권위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정치 가지고도 안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무슨 존슨 대통령도 닉슨 대통령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데 주체적인 권한을 가져야 하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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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필요로 하는 통일교회
일본에 우리 통일교인들이 얼마나 안 되지만 전국적인 활동을 개시하면 일본 공산당에게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모체는 대한민국이고, 그 중에서도 통일교회 청파동 본부교회입니다. 앞으로 이 마루바다에서 하룻밤 자는 데 천불씩 내라고 해도 싸우면 자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사진도 찍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한 번 가보고 싶으냐’하면 ‘죽기 전에 한 번 가 보는 게 소원이요’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회회교인들이 그들의 성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게 해야 되겠어요.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 성지를 생각하는 이상으로 한국을 생각하게 해야 되겠어요. 한국에는 예루살렘에 비해서 자랑할 점이 많습니다. 자연 자원이 아주 좋습니다.

내가 평양에 가서 역사할 때 하늘은 얼마나 준비했느냐? 나를 만나기 20년 전에 그 집에서 이런 분을 만나서 말씀을 들을 것을 전부 다 알게 하실 정도였습니다. 선생님이 27세에 이북에 갔으니까 선생님이 일곱살 때부터 하늘이 역사한 것입니다. 그때에는 선생님도 몰랐지요. 그것을 세상이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몇십년 전부터 선생님을 주시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땅 위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선생님의 앞 길에 있어서 천사장의 입장에서 증거적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창조를 계획하실 당시부터 천사는 인간을 받들어야 되지요?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데 하루 걸렸겠어요, 몇백 년 몇천 년 걸렸겠어요? 이런 것 생각해 봤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 나와라’하시는 말씀 한마디에 나온 게 사람이겠어요? 몇백 년 몇천 년 걸렸다는 거예요. 그때까지 천사는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복귀섭리 원칙을 중심사고 볼 때, 그리고 원리적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이 나오기 전에 선생님이 이상의 도를 닦아야 됩니다. 그래서 몇세기 전부터 선생님을 모실 영인들이 실체시대에 이 땅을 협조해야 지상의 사탄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닦이는 것입니다. 그런 영이 몇백 년 전부터 선생님을 모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무엇이냐? 최후의 목적은 체(體)를 쓰는 것입니다. 실체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하나님으로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만민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체를 쓰고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을 가지고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주체와 대상으로 서기 위해서는 체를 입어야 됩니다.

전도가 한참 시작될 때에는 영적으로 선생님을 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치지 마십시오. 통일교회는 여러분이 지쳐 쓰러지면 쓰러질수록 걸음을 더 빨리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외국으로 빨리빨리 내보내려고 합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책임을 못하기 쉽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허덕이다가 죽지 않고 남아지면 그 공적으로 수 많은 도인들 앞에 추앙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지만 우물우물하다가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게 되면 일했다는 녀석들, 전부 다 선생님 뜯어먹고 선생님 등쳐 먹고 삽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 앞에 갈 수 있어요? 여러분, 통일교회는 지금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필요없습니다. 이러한 실적을 중심삼고 통일전선이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천사장의 입장인 만큼 하늘을 받들고 정성을 들이며 올바로 모시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 되어 그러한 터전을 닦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청평의 신선봉이라는 높은 곳엘 올라가는 것도 무슨 사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늘의 군사가 되기 위해 연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이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곳에 올라가는 게 아니예요. 그런 전반적인 문제까지에도 정견을 가질 수 있고 안목을 넓혀 줄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통일교회의 운동팀을 만들려고 합니다. 만들었을 때 그 팀원들은 누구에게나 지고 들어와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고 오게 되면 대성통곡하십시오. 역사상의 누구보다도 패자의 서러움을 뼈아프게 느끼면서 대성통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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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금후에 삼천만의 이 민족과 이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알았사옵니다.

오늘날까지 역사과정에서 수 많은 선지선열들이 비참한 운명길에서 죽어간 것을 잘 알고 있사옵고, 오늘날까지 패자의 쓴잔을 마신 자는 섭리의 도상에서 사라져 간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은 과거의 실수를 거울 삼아서 또 다시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그 실수의 기원을 밟고 올라서서 남아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날까지 통일의 제단이 외로운 길을 걸어 나왔지만 그래도 저희들은 외롭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얼마나 외로우셨겠습니까?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이 엄청나고 방대한 과업에 참가시켜야만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처량하시옵니까? 저희를 붙들어 놓고 이 엄청난 경륜을 논의하여야 할 아버지께서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침 햇빛, 그 찬란한 광명의 빛을 바라볼 때에는 아버지 앞에 환희의 빛이 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고 싶사옵니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사랑의 세계에는 강한 심정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불효막심했던 선조들이 저버린 모든 죄를 닦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땅 위에 인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아버님의 상한 가슴을 부여안고서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이 어디에 있사오며 하나의 딸이 어디에 있사옵나이까? 당신을 모셔 놓고 천년사의 해원성사를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천천만대의 후손이 잘 되라는 유언을 한 사람은 있었어도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권고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사옵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죽음길에서 그 민족은 축복하는 유언들이 많이 남겼지만 그 모두가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는 유언이었던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통일의 무리들은 그런 무리가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인류는 사라져 갈지라도 그 유언만은 남아져야만 위신이 세워질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러한 길이 인류가 거쳐가야 할 길이기에 지금까지 우리에게 그러한 길을 가야 할 마음을 심어 주신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통일교회의 문아무개는 아버지의 뜻 앞에 있어서 제물이 되겠사옵니다. 옆문이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어떠한 난시에만 필요로 돌파구가 되어서도 안되겠사옵니다. 평상시 생활무대에서 출입할 수 있는 가장 필요로 하는 정문이 되어야 하겠사옵나이다.

아버님께서 저희들을 붙들고 모든 심정적인 사연을 통고 시킬 수 있는 인연을 저희가 갖추어야 되겠사옵나이다. 목적을 향한 아버지의 사정 앞에 최후의 승리를 각오하고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으로 그 길을 통과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사옵나이다.

아버님, 이러한 은혜 가운데, 며칠 동안이나마 이러한 생활 가운데 취해서 살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만 배의 빚을 진무리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슬픔의 눈물이 교차하는 길에 있어서 아버지의 옷깃을 붙들고, 아버지의 사정을 붙들고 통곡하고, 남은 수난의 길을 나에게 부탁하라고 고집하는 모습이 되지 못한 저희들, 옷깃을 여밀 수 없는 부족한 모습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정성을 다하였더라도 당신 앞에 너무나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자신이요, 너무나 부족한 자신임을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매를 맺고 상처를 입어 선혈이 낭자한 비참한 모습이 되더라도 핏자국을 감추어야 할 수치스러운 몸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몸이 찢기어 거리에서 객사하더라도 그 몸으로 인해 당신의 눈물이 가해질까봐 가리고 싶은 마음에 거적대기라도 덮고 죽지 않으면 안 될, 수천만년 이어온 죄인의 후손인 것을 저희들은 자인해야 되겠습니다.

선을 취해 절규하다가 목이 터지고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저희들은 응당히 그것을 감당하고 그 길을 가야 하겠사옵니다. 그래도 생명을 바쳐 하늘의 곡적을 풀어드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모습들이옵니다. 이런 자신들을 수습하여 끝까지 남아지는 무리에 동참하기 위해 생명을 다하는 열의를 가지고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을 맞이하여 이와같은 시간을 대할 수 있게 하여 주신 망극한 은사를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해가 지고 세월이 가서 춘하추동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정성의 예물로 하늘 앞에 무엇을 바칠까 가슴 태우며 몸부림치고,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자신을 피할 수 없어 고민하고, 정성 못 들인 모습이나마 아버지를 모시는 주동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몸부림치는 자신이 못 됐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앞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무한한 눈물을 흘려야 되겠사옵니다.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당신은 거룩한 분이옵니다. 불쌍해서는 안 될 분이옵니다. 당신은 창조주로서 권위와 영원한 영광의 상징이시온대 어찌하여 이토록 불쌍하게 되셨사옵니까? 당신께 어찌하여 패자의 쓴 잔을 홀로 마셔야 되는 억울한 사정이 남아졌사옵니까? 인류 시조의 경거망동한 행동이 이렇듯 억천만세의 역사를 그르쳐 버렸사옵고 원한의 근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것은 단지 아담 해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인 저희들도 대대로 선조의 피를 이어온 타락의 후예로서 같은 타락된 후계자의 몸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생각할 때 치가 떨리는 분함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하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복귀의 노정에 보잘것없는 이 통일의 무리를 모으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사옵니까? 아버지의 그러한 수고의 공적이 무의미하게 헛수고가 되고, 석양이 모든 빛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정체를 어둠 가운데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무리들이 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칠흑 같은 흑암 속에서도 촛불이나 반딧불 같은 빛이라도 발하여 흑암을 밀어내고 하나의 방향을 분별하는 기점이라도 될 수 있는 빛의 모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통일 역군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등대가 되고 하늘의 광명한 태양 빛을 대신할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천년사의 한을 품고 그 빛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다리를 놓는 고임돌이 될지라도 그것을 행복으로 알고 나가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10월 12일이옵니다. 지금으로부터 만 19년 전의 이날을 생각하옵니다. 그 옛날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의 운명을 염려하던 때를 생각하옵니다. 오늘 12일에 맞는 일요일, 12수를 중심삼고 120일에 해당할 수 있는 제2의 안식일인 이날, 남한 각지에 널린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나를 생각하고 나를 진정으로 느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불쌍한 입장에 계시는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자식을 잘못두고 후손을 잘못 둔 조상의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기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도피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저희도 당신의 표준에 합당치 못하거든 기필코 후대를 깨우쳐서 다시 영광의 제단을 지킬 아들딸을 보내 주셔야만 되겠사옵니다.

오늘날에는 몰리는 자기에 있지만 훗날에는 이 천지 운세가 환영하는 자리에서 하늘 땅이 함께 기쁜 날이라고 찬양하고 세계가 찬양할 수 있는 날이 기필코 와야만 되겠사옵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의 제물로서 핏자국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눈물이 땀이 되고, 땀이 피로 화할 수 있는 길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부르며 정성들이는 것보다도, 해산하는 여인의 최후의 순간을 넘기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숨가쁜 시간, 긴박한 시간을 갖는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사정하여 하늘의 인연을 끌어들여야 할 운명에 높여 잇는 저희 자신들임을 생각할 때에 너무나도 불충한 모습임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회개의 제단을 찾고 계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저희 자체를 보고 복을 주시기를 원치 않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무리 많은 회개의 눈물을 흘려도 아버지 앞에 나타낼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부끄러운 자신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고 어떻게 아버지의 권속이라고 할 수 있사오며 어떻게 하늘나라의 백서이라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이 몸을 감추고 싶고 이 몸이 혹사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혹사하고 싶사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희의 걸음걸이와 행동을 당신께서 대신 책임져 주신 것을 알게 될 때에 감히 가까이 모시고 가까이 찾아 볼 수 없는 아버지이신 것을 통일의 자녀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머물러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대한의 아들딸을 찾아오셨사옵니다. 수 많은 선조들이 배척받으면서 처량한 역사를 엮어온 이 민족, 아무 결실도 맺을 수 없는 황무지와 같은 이 땅 위에 아버지께서는 찾아오셨사옵니다.

오늘날 민족적인 해원성사를 하여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수확기에 있어서 열매로 거두어져야 할 저희들, 이 민족 앞에 창피한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걸어가신 발자국을 더듬어서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이 길을 가야만 되겠사옵니다. 몸부림치고 생애를 다 바쳐서도 아버지의 옷깃을 못 잡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가는 길에서 쓰러질지라도 이 길을 응당히 가야 할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찾아 온 아버지의 뜻 앞에 택함을 받은 저희들의 책임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나이다.

뜻을 위하여 저희의 팔이 부러지고 저희의 다리가 부러져 병신이 되지 못하고 저희의 몸이 상처를 입지 못한 것을 무한히 탄식하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미래의 민족 중흥의 역사를 창건하기 위한 하늘 용사의 모습들로서 대열을 갖추어 끝없는 행렬을 계속하여 할 것인데도 그러지 못 할까봐 두렵사옵니다. 하늘의 판가름을 가해야 할 입장인 것을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부르시던 아버지, 불쌍한 입장을 위로해 주신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직고하옵니다. 역경의 노정에서 슬픈 한 날 한 날을 거쳐 나오시면서 이것들이 후퇴하고 쓰러질까봐 마음 졸이신 아버지께서 얼마나 처량했던가 하는 것을 때가 지나 철이 들어 깨닫게 되니 그 때의 내가 한없이 원망스럽사옵니다. 하오니 이제는 그러한 입자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를 진정한 아버지로 모시고 또 그러한 입장에서 아버지께 기도드릴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모든 안팎의 일을 책임지고 아들의 자격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신을 갖고 나서야 할 무리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청파동을 비롯하여 만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동녘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물지으며 최후의 한 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강산의 삼천리 반도에 널리어 외롭고 배척받는 행각의 노정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슬픔 속에 몸부림치면서 아버지를 부르는 자식이 있다면 그는 하늘이 친구가 될 것이며 하늘이 가까이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그런 자리를 감사히 맞고 그런 생활을 기쁨으로 알 수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복귀의 전선에서 아버지가 찾는 아들이 무엇이며, 가정이 무엇이며,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무엇이며,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승리를 자랑할 일이 있거든 아버님을 내세우고, 수치를 당하는 일에 내가 나서겠다고 스스로 다짐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하루의 모든 전체를 아버지께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제차 준비하여 1970년을 맞이해야 되겠사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나머지 3개월도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도 남한 각지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곳곳마다 은은한 가운데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