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45 to 25-277: 선악의 분기점

선악의 분기점
1969.10.05 (일), 한국 전본부교회

25-245
선악의 분기점
[기 도]

아버님이여, 승리의 제물이 되어 후대의 만민 앞에 남겨 줌과 동시에 역사적인 한을 기필코 풀어야 할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을 고이고이 이끌어 주시옵소서.

험한 행로에 있어서 당신을 배반하거나 당신을 보고서 돌아서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이들이 짊어진 짐이 너무 과중하여 지탱하고 싶으나 지탱할 수 없는 낙오자의 신세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처지와 입장에 비례하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는 길이기에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깊은 심정과 인연맺어, 하늘세계의 심정을 소화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969년 9월을 지내고 10월을 맞이하였습니다. 10월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우리 교회가 걸어온 과정에 있어서 환희할 수 있는 이달이었사옵고, 새로운 여명을 받아 기쁨과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린 이달이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님, 저희의 모든 걸음걸이가 당신의 뜻과 더불어 일체가 될 수 있는 이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성전에 모인 저희들이 비록 초초한 모습이더라도 당신의 마음을 모아 명령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님께서 깊은 심정에 파묻혔던 6천년 사연을 풀어 놓고 내가 이렇게 왔으니 이렇게 가야 되겠고, 내가 이렇게 가 가지고 원수를 굴복시켜 승리의 영광을 갖추지 않으면 안될 것이 나의 운명이니, 내가 나를 위하여 이러한 운명길을 가달라고 명령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님,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붙안고 인류역사의 모든 한을 다시 한번 회상하면서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의 뼈살에 사무친 인연을 두터이 맺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저희가 갖고 있는 것 전부는 아버님으로부터 인연맺은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창조의 인연을 통하여 지음받기는 했사오나 오늘날 저희가 존재하는 모든 환경이나 국가나 세계의 인연이라는 것은 아버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원수 사탄으로부터 시작된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느끼는 감정은 아버지의 인연을 통하여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그늘 아래에서 느껴지는 것이요, 원수가 기뻐할 수 있는 터전 위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생각할 때에 저희들은 오늘도 이 싸움에서 주저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내일도 이 감정을 굴복시키기 위해 싸워야 될 것을 저희들은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사옵니다.

나라를 굴복시키고 세계를 굴복시키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초초하고 보잘것없는 저희 개체의 감정을 굴복시켜서 천국의 기원이 될 수있으며, 당신의 심정이 깃들 수 있으며, 원수의 모든 근원을 제거할 수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죽기 전에 넘어야 되겠습니다. 새해의 아침이 오기 전에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를 모셔 놓고 그 품에 안기어 목을 끌어안고 아버지라 부르게 될 때에 부끄럼없는 모습이 될 날이 그리워합니다. 당신의 나의 아버지요, 나는 당신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무런 간격도 없고 어떤 제삼자도 깨일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님의 일에와 통할 수 있으며 아버님의 근원과 심정이 연결되어 아버지로 말미암은 자신이요, 아버지를 위한 자신인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역사의 한을 너로 말미암아 잊었노라고, 역사의 인연을 너로 말미암아 맺겠노라고, 역사의 새로운 기원을 너로 말미암아 세우겠노라고 할 수 있는 아들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를 중심삼고 소원성취의 한 날을 맞이하여 개체를 넘고 가정을 넘어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나가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승리할 수 있는 영광스런 대열을 흠모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만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멀고 먼 이 아시아의 한국 땅을 바라보며 무한히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이 땅에 올 날을 소망하고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하며 흠모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세계 각처에 널려 있사옵니다. 그들이 짊어진 십자가는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한 것이옵고, 그들이 가는 싸움터는 당신을 대신하여 가는 것이오니,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당신의 한 품에 안긴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한 집안식구의 인연을 벗어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거룩함을 알면 알수록 거룩한 반면에 그 배후에는 사연이 많고 슬픔의 무더기가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것들을 눈물로 녹여야 되겠고 피땀으로 녹여야 되겠습니다. 눈물에 눈물을 흘리고 피에 피를 흘리면서 새로운 면에 도전하여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역사적인 처참한 사연이 있지만 그 눈물의 길과 피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남기신 눈물의 십자가를 등에 지고 혹은 지름길을 가고, 혹은 돌아가는 길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여, 당신을 향한 절개와 충절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 당신이 원하는 아들딸의 절개와 충절을 남기는데 있어서 당신의 아들딸의 인연, 식구의 인연을 상실하지 말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수고하여 찾아오셨사오니 이들이 자녀의 명분을 갖추게끔 세워 주시고, 죽더라도 아버지의 위신을 실추시키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죽더라도 당신 체면과 권위를 떨어뜨리는 자들이 되기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국 식구들은 10월을 맞이하여 이곳 한국을 지극히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세계 40개 국에 택정해 준 각 성지를 중심삼고 정성을 들이고 있사옵고, 금년에 또 출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세계 각처로부터 전해지는 소식을 들을 적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뜻이 어느 한 날 이 한국 땅에 퍼진다는 소식을 얼마나 듣고 싶어하시고, 당신의 아들들이 적진을 향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바라보실 날을 얼마나 마음으로 고대하고 소원하시는지를 생각하옵니다. 하오니, 아버지, 그들의 가는 길을 지키시옵고, 그들이 힘차고 강하고 담대해 나가 최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승리의 등대를 세우게 하여 주시옵고, 원수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아버지의 승리의 토성을 쌓아서 만고불변의 당신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당신의 자녀들이 처처에 모여서 당신께 경배하고 있사오니, 그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앞으로 인연되어질 당신의 자녀들이 이 땅 위에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정성들이고 있는 그들에게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선조들을 동원하시어 하늘을 향해 무한히 갈급하고 방황하고 있는 그들을 통일의 무리로서 하늘의 민족과 하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봉헌하는, 없어서는 안 될 제물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젊은이들이 사방 각지에서 개척하는 그 노정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5-248
말 씀
`선악의 분기점’, (판서하심) 우리 인간이 이 선악의 분기점이라는 말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은 불쌍한 일입니다. 그런데 개인은 물론이요,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가야 할 길에 이 선악의 분기점에 있는데, 이 운명을 어떻게 해결짓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흘러온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입니다. 더욱이나 종교라는 이름 앞에 신앙길을 허덕여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이 분기점의 한계선을 넘지 못하고 싸움을 연속하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25-249
하나님 앞에도 남아 있는 분기점을 없애야 할 인간
여러분 개인을 보더라도 이와 같은 선악의 분기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이 이 분기의 한계점을 넘으면 가정이 넘어야 할 분기점이 있습니다. 가정이 이 분기점을 넘어섰다 하더라도 민족 국가가 또 그 기준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 국가가 그 기준을 넘었다 하더라도 세계가 또 그 기준을 넘어가야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아도 하나님 앞에도 아니 넘어갈래야 아니 넘어갈 수 없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생겨난 분기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류가 넘어가야 할 이 분기점은 타락된 인류로서 넘어야 할 필연적인 한계점이라 할 때 하나님께서도 이 분기점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인연도 관계도 없는, 있어서는 안 될 분기점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분기점을 어떻게 넘겠느냐?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즉 전지전능하시기에 문제가 아 되겠지만 그 분기점을 넘는 데있어서 홀로 넘을 수 없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문제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요,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이 분기점에 가로막혀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타락의 보응으로 이런 분기점에 처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 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는 행복의 곳, 이상의 곳을 생각할 때, 선악의 분기점이란 한계선이 오늘날 인류역사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을 것이냐? 이것이 어떤 개인에 한하여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또 어떤 국가의 한계선에서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전세계 앞에서 사라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가 선악의 분기점에 있어서는 안 될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까지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앞에 분기점이 남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복귀의 사명을 앞에 놓고 바라보게 될 때, 오른편은 선을 추구하고 왼편은 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선이 나를 끌고 있고 뒤에서는 악이 나를 끌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려 하시고 아래에서는 사탄이 나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악이 역사의 절반 이상을 지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절반뿐만이 아닙니다.

25-250
끝없는 선악의 투쟁에 시달려 온 인류
오늘날 타락 역사의 대부분은 악으로 출발하여 악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의 생활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하루의 아침을 맞이하는 그 시간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우리 개체의 하루의 생활도, 선악의 투쟁 가운데서 내 한 몸을 어떻게 지탱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싸움으로 보내는것입니다.

하루의 생활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선에 속하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악에 속하여 지내 버리곤 하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악이 우리 자신에게 가까이 있고 오늘날 우리의 환경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 내 자신이 악한 환경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내가 갈 방향을 향해 방해를 받지 않고 갈 수 있는 선의 권한을 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바울도 고민하였던 것을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목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하며 자기 십자가를 중심삼고 탄식하면서 가는 길이 평탄치 않다는 것을 토로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바울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의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이와 같이 생활적인 무대에서 고통과 신음 가운데 곤고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시련과 환난을 극복하고 또 극복하여야 할 한계선은 역사시대를 거쳐온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행로에 너무도 지루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있습니다.

그런 지루한 길은 역사시대에만 가로막혔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져, 여러분이 존중시하는 자리, 혹은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인생행로에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눈을 뜨고서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 앞에 선보다는 악으로 남아져 전체분야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계선을 치울 수 있는 주체적인 권한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가 역사적인 고심사요, 시대적인 고심사요, 우리 현실생활 자체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고민거리인 것입니다.

이 고민의 한계선을 밟고 넘어서서 쌍수를 들고 환희하며 선을 찬양할 수있는 승리의 아침을 맞이하여 광명의 햇빛과 더불어 노래하고, 한 날의 기쁨을 찬양하다가 기쁜 모습으로 환희의 밤을 맞이하여 웃음과 더불어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자격자, 이렇게 하루의 생활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는 승리의 자격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5-251
자기 개체와 환경에서부터 악을 제거하겠다고 결심해야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길이라면 얼마든지 그길을 가겠지만, 비운의 역사의 총아로 태어난 우리들의 신세는 그렇지가 못하여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에서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칼을 힘차게 빼서 이러한 원한의 환경에 있는 악을 베어 버려야 할 책임을 언제 질 것이냐 하는 문제가 한계점을 앞에 놓고 있는 우리에게 촉구되는 문제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느 때 힘을 가중하여 이 환경에서 악을 제거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환경에서 악을 제거하는 한때를 갖지 않고서는, 인생행로에서 비참한 운명을 엮고 있는 좌우의 사망선을 우리를 감돌아 우리는 이 비운의 한계선을 넘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지백체의 요구를 부정하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변치 않는 빛나는 모습, 희망에 벅찬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한 시간을 가졌다 할진대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하루를 갖기 위해서는 역사과정에서 악에게 실패하여 초래된 슬픔과 크고 넓고 많았던 그 모든 원한의 요소, 악의 요소들을 기쁠 수 있는 선의 요소로 몽땅 바꿔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바꿔치는 데 명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어느 한 날도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있는 기점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그만이요 오늘도 그만이라는 생활 관념을 오늘 이 순간에 종결시키지 못하게되면, 아무리 훌륭한 씨를 가져다 하더라도 그 씨는 선한 열매로 거두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결심을 할 때는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결심하였던 전체를 탕감복귀시키고 그것과 비례하여 부딪치고 무엇인가 남기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신앙행로에 있어서, 선악의 분기점을 넘어가야 할 우리의 생활에서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5-252
하나님을 향한 첫마음을 잃어버리지 말라
내 마음이 선을 추구하고 참이라는 것을 알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잊고 한 목적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내 생활 전체를 그것들로부터 치리받겠다는 마음이 생기거든, 그 순간은 비로소 선이 나와 관계맺을 수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순간이 벌어지게 되면 그것을 사수하고 개척하기 위해서 온갖 희생을 결의하고 온갖 절개를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서러움을 마음속 깊이깊이 체휼하여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오늘날 이 환경을 가려 나가는 데있어서, 지루한 노정에 있어서 선의 기점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을 다음날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또 싸움을 거쳐야 되기 때문에 한번 관계맺은 선의 조건이 있으면 그 조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면, 그 첫마음! 첫마음! 첫마음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첫마음을 잃어버리고는 다시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무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흠모하면서 그 아들이 되겠다고 결의하고 다짐했다면 그때가 가장 귀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싸게 팔아먹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을 찾아 나오십니다. 열만한 참을 가지고 오셔서 약속하신 대로 열만한 참을 주셨으니, 열만한 참의 결과를 가져와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열만한 참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슬픈 걸음으로 돌아서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 한때가 있게 되면, 목숨을 버리고라도 사수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한때의 약속과 인연이 기필코 나를 찾아온 것이어늘, 그날을 맞기 위해 스스로 묵묵히 준비를 하여, 누구에게도 문의하지 않은채 자신을 중심삼고 본성의 터를 넓히고 그 한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인류의 행로 혹은 역사의 행로를 더듬어 보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승리에 승리를 추구하였지만 하늘땅이 승리라고 인정하고 우리의 본성이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승리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한 시간은 어느 때에 찾아오겠느냐? 어느 누가 어떤 싸움을 위해 준비하는 것보다도 더 간절히, 어떤 국가가 전쟁을 대비해서 준비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어떤 개인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비하고 고대하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그때를 기다리며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인연되는 것은 완전히 잡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자신의 소원이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 앞에 백퍼센트 접붙이고 그 일 앞에 백 퍼센트 굴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천번 만번 자기를 부정하더라도 그런 참된 기준, 참된 모습, 참된 것이 있거들랑 거기에 완전히 일치되어야 됩니다. 이런 생활태도가 오늘날 악의 한계선을 잎에 놓고 가는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느 한때를 가졌습니까? 없거들랑 여러분은 언젠가 그런 때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내 마음 깊은 데서 하나님을 향해 폭발하는 사모의 심정, 흠모의 심정을 가눌 수 없어서 몸부림치는 한 날이 있걸랑 이 땅위의 어떠한 만복보다 더 귀한 복이 거기에 심어지고 인연되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한 날을 찾기 위해서 역사는 뒤넘이쳐 나왔고, 역사의 고빗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피를 흘려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한날이 오거든 천년사를 대신한 정성을 모아 그 선조들이 한스러운 역사의 분기점을 스스로 도맡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복받쳐 오르는 하늘을 향한 동경과 더불어, 자기의 뼛골에 숨어 있는 역사적인 죄의 뿌리를 전부 다 녹여 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눈물지을 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이요, 하늘나라, 즉 천국이 같이 하는 것이요, 하늘의 사람들이 같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25-254
인류의 부끄러움을 대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인류의 가슴 가슴을 헤쳐 오면서 그런 자리를 찾아오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개인을, 그런 가정을 찾아오시는 것이요, 그런 종족 민족 국가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말뿐이 아닌 사실로 삼천만 민족이면 그 삼천만 민족 전체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나라가 이 땅위에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국민 모두가 하늘을 사모하는 심정을 가지고, `이곳이 선의 본국이오니 선의 본체로 오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나라로 어서 오시옵소서’할 수 있는 나라가 있기를 얼마나 고대하셨겠습니까? 우리는 지상에서 그러한 한 나라를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노고가 얼마나 크실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오는 것이요,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오는 것은 자연세계의 인과관계에 있어서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참을 추구하는 본연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본연의 실체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연의 마음과 비치되는 사람으로 태어난 자신을 붙들고 인생이라는 행로를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성이 심어진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이지러지고 찌그러진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천적인 인연을 따라 추구하고 살아야 할 인간 본연의 도리를 내 스스로 안다 할진대는 나는 본연의 자세와 인격을 갖춘 모습 앞에 모습을 나타낼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머리를 들고 행세하던 지난 역사시대의 수많은 인간들, 또한 지금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두고 볼 때, 그 부끄러움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인류를 바라보고 이것이 나의 부끄러움이라고 여기고 가리기에 스스로 고심하고, 그 흠을 대신 가려 주기 위해 고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세상에 소망이 있을 수있겠습니까?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역사 도상에서 그러한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인류는 벌거벗은 이상의 수치를 알지 못한 채 역사시대의 어떤 죄수보다 더 큰 최후의 심판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자기들의 수치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수치를 잊어버린 그 인류를 대신하여 인류의 수치를 자신의 수치로 여기고 가려 주어야 할 한 분이 이 땅 위에 있어야 되는데, 그분이 바로 인류의 어버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이 땅 위에서 무엇을 했느냐? 그는 인류의 가슴 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골수에 맺혀 있는 인류의 비참사를 추적하여 선의 근원을 발굴하고 악의 근원을 제거시키는 책임을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생각해 주고 아무리 감싸 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미쳐질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한계선을 세계적으로 헤쳐 놓지 않고서는 인간과 어버이로서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인연권내에서 살고 그런 인연권내에서 싸우다가 죽어간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살면서 이런 입장에 있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이 가운데에서 행복을 요구하고 이 가운데에서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있으니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얼마나 불쌍합니까? 선만을 생각하고 선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시작하고 결정지어야 할 주체적인 입장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죄악세계를 일시에 폭파시키고 싶은 때가 몇번이나 있었겠습니까? 천만번도 넘었을 것입니다.

25-256
선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개인은 개인대로 배반했고 가정은 가정대로 배반했고 민족은 민족대로 배반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오늘날 통일의 기치를 들고 나선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 이런 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역사시대에 하나님을 생각한 어느 성인 현철보다도 더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신경 세포의 종합적인 감각, 인식 관념을 중심삼고 느낄 수 있는 감각 전체를 기울여 생활환경에서 언제 어느 때든지, 한 순간도 양보함 없이 하늘을 지극히 사랑하고 하늘만을 위하고, 하늘에서 시작하여 하늘에서 살고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선에서 시작하여 선에서 살고 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버이의 입장에 서 가지고 자식을 향해 사랑의 자극을 느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만물을 지어 놓고 보기에 선하다고 하신 것을 보게 될 때,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는 장한 아들딸이라고 자랑하신 기원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준이 성립되지 않는 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질 수 있고 요구의 대상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마음을 중심삼고 인류를 찾아 나오시는 걸음보다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하게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모양이라도 갖추고, 형상적이로라도 하나님께서 찾아 나가시는 방향에 상대적인 형태를 갖춘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갓난 아기는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부모를 모릅니다. 하지만 석 달 정도 지나게 되면 반겨 주는 어머니의 얼굴을 대해서 미소를 지으며 호응하게 됩니다. 자기가 어머니인 줄로 모르고 어머니인 자기의 사랑도 모르지만 상대적인 입장에 호응해 주는 아기의 미소에 어머니는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기는 알지 못하지만 심정적 인연으로 연결된 줄을 통하여서 전체의 가치 이상의 사랑을 퍼붓는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했다 할 수 있는 체험의 기준을 가졌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했다 할 수 있는 체험의 기준을 못가졌습니다. 인연을 통하여서는 하나님 앞에 아들딸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인연 때문에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더라도 그런 관계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뼛골에 사무치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입장에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문이 닫혀져 있는 이런 인간들이 그러한 하나님 앞에 상대적 모양이라도 갖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마음 가운데 잠겨져 있는 사랑을 몽땅 퍼부으실 것입니다.

더욱이나 여러분이 하늘을 알고 하늘길을 출발하게 될 때는, 어린아이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은혜와 사랑을 몽땅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만이 제일이라고 느껴지게 해주십니다. `천상천하에 나만이 제일이야’ 할 수 있도록 추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올리려고 하시는 것이냐?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나만이 제일이다’는 관념을 중심삼고 `너는 네 민족을 위해서 대표적으로 택했다. 세계에서도 너 하나밖에 없다’라고 권고하시며 그 자리까지 올려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퍼뜩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러한 약속을 해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만에요. 그것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맺자 하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약속이 있으면 그 약속은 그냥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약속에 대비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전부 끌어다 선에 부합시켜 가지고, 그것을 일치화시킬 수 있는, 점령할 수 있는, 주관의 내용을 결정할 수있는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인연은 맺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인연은 맺지 못하고 약속자체만을 추구하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로부터 잘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해서 그 표준을 중심삼고 행동하고 행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잘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바라는 사랑의 마음에 접근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25-258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위대한 발견
우리의 심정세계에 있어서 선악의 분기점을 중심삼고 타락이란 것을 원리적으로 볼 때, 소생 장성 완성 삼단계 중에서 3분의 2인 소생과 장성이 타락권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3분의 1인 완성단계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소망의 기준으로 있느냐? 이것은 우리 인류역사과정에서 아직까지 체험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묻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본성 가운데 묻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에 따라서는 마음의 맨 밑창에서 요동하고 있으며 사무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천상세계의 기준을 넘어서 하나님과 연락될 수 있는 심정세계를 맺기는 지극히 어려운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나와 가지고 이 세상에 무엇을 제시했느냐? 여러분에게 돈을 준 것도 아니요, 여러분에게 사회적인 성공을 갖다 준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본성 가운데 깃들어 있는 선의 요건, 즉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있는 선의 중심이 계발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다른 것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자기 부모 외에는 알지 못하던 사람이 부모 이상 가는 분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내간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알 도리가 없던 사람이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남편과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위대한 발견이요, 위한 체험입니다. 자기 자식 외에는 모르던 사람이 세계인을 자기 아들같이 생각하고 또 그러한 행동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또한 위대한 발견입니다. 이 위대한 발견이 오늘날의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한계선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사랑의 인연은 타락 역사권내의 부부라든가 가정 사회 국가에서 그쳤습니다. 그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었지요? 부모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이 인류역사상에 맺어졌었다면 이런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의 인연은 맺어진 일이 없었습니다. 이 없었던 내용, 없었던 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자각된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민족관, 새로운 가정관, 새로운 생활관을 세울 때, 그것은 이 악한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한계선을 제시하는 기원이 될 것 아닙니까?

이 악한 세계를 청산지으려면 무슨 기원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것은 돈의 기원도 아니요, 어떤 권세의 기원도 아니요, 세상의 어떤 영광의 기원도 아닙니다. 그 기원은 상대적으로 추구하는 외적인 기원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있기 전부터 있었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어야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 것이냐? 그것이 왈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5-259
사랑만이 영생과 목적 성취의 본거지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기쁜 것은 뭐냐? 좋은 것입니다. 좋으려면 마음대로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대로 되는 최고의 것이 뭐냐? 그것의 정상을 찾아가면 사랑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왜 지으셨느냐? 기쁘기 위해서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기쁜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제일 기쁘게 하는 것이냐? 그것은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고아에게 있어서 제일 큰 기쁨은 부모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은 열녀에게 있어서 제일 기쁜 일은 그 남편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제일 기쁜 것은 죽었던 자식이 회생하는 것입니다. 왜냐? 죽음을 극복해서 세워지는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장벽을 헤치고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사랑의 인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에게 있어서는 그 고아의 입장을 모면할 수 있는 부모의 인연을 갖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것은 고아가 되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부모가 필요한 입장에서 사랑의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어떻게 하셨느냐? 천지 만물을 대하여 하나님께서 `여봐라 이렇게 이렇게 되어라’고 하시니까 만물들이 `예이!’ 하며 방자가 출동하듯이 말씀대로 된 줄 아십니까? 그 전에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을 품을 수 있고 그것을 존재시킬 수 있는 모든 기원으로부터 목적까지 관계맺을 수 있는 심정적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영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생할 수 있는 본질에 가장 가까운 자리가 어디냐? 사랑입니다. 사랑. 자기 혼자는 영생할 수 없습니다. 사랑만이 영생의 본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영생의 본거지가 되는 동시에 목적 성취의 본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천지 창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끝맺는 사랑으로 말미암은 영광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말미암은 영광이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으로 끝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기 부부 사이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 살던 처녀들 중에서 한처녀가 시집을 갔다가 처음으로 자기 친정에 찾아오면 동네 친구들이 대뜸 물어보는 것은 `너의 시어머니는 어떻든? 너의 시아버지는 어때? 무던하든?’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맨 처음에 물어보는 것은 `네남편이 예뻐하든? 사랑하든?’ 하는 것입니다. 친구 집에 척 가게 될 때, 자기를 싫어하면 인심이 달라지고 좋아하면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죽도록 좋아하면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활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하나님을 두고 죽기 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부활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죽기보다더 좋으면 되는 것입니다. 죽기보다 더 좋은 약속을 하고서 출발했는데, 그것이 죽음보다 못하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해서라도 죽기보다 더 좋은 사랑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기보다 더 좋은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25-261
선악의 분기점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통일교회는 무엇이냐? 통일교회 사람들을 어찌하여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그 어떤 민족보다도 어떤 무리보다도 위대하다고 하는 것인가? 위대하다고 해서 몸집이 남보다 천배만큼 뚱뚱하거나 키가 만길만큼 큰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사람이라도 해도 깜박깜박하는 눈을 가졌고 하나의 코를 가졌고 두 개의 귀를 가졌습니다. 뭐 별것 없어요. 가짓수로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위대하냐? 그것은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느냐, 나라를 사랑하느냐, 세계를 사랑하느냐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성현은 뭐냐? 몇천년 전부터 목표로 한 세계적인 이상세계를 사랑한 사람이 성현입니다.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 사랑이 하늘을 중심삼고 가지고 심어져서 땅에서 이루어질 때까지 이 교훈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언제까지 남아질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의 한계점은 어디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새로운 사랑의 심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내용을 우리 통일교회가 제시하기 때문에 이 사랑이 결실될 때까지 남아질 것입니다. 그 사랑의 목적은 만민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만민이 사랑으로 결실될 때까지 통일교회는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는 누구든지 믿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부모 아닌 부모를 모셔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지요? 「예」 그 부모는 바로 참부모입니다. 또한 세상 형제와 다른 형제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식구지요. 그리고 세상 가정과 다른 가정을 가져야 하고, 세상 민족과 다른 민족을 이루어야 하며, 세상 국가와 다른 국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과 전부 다릅니다.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은 언제 합할 것이냐?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합할 수 없습니다. 가면 갈수록 두 나라는 점점 갈라져 나갑니다. 안 그러겠어요? 언제 세상과 합할 것이냐? 합하지 않아요.

여러분의 골수는 통일교회 원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뜻을 알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교회에 가고 싶어합니다. 잠자리에서도 교회가 그립고 밥을 먹으면서도 교회가 궁금합니다. 이러한 모두가 선악의 분기점이란 명사를 쓸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선악의 분기점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선악은 하나의 사랑에서 벌어진다고 원리에서 배웠지요? 선악의 분기점은 하나의 사랑에서 벌어지는데 여기서 사랑은 누구의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왼쪽은 악이요 오른쪽은 선입니다. 선악의 분기점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니 이 분기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슨 문제부터 해결지어야 하느냐? 심정문제입니다. 부모와 부부와 자녀의 사랑을 근원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위기대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위대한 거예요. 여기서부터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부모의 출현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개체의 출현이 이루어져 새로운 핏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결혼식은 세상과 다르지요? 다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결혼식을 하고 첫날밤에 신부가 신랑 노릇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르지요? 그렇게 하여 부모가 되면 하나님을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다 알지요?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달라요. 달라야지 같아서야 되겠어요? 같아서야 되겠느냐 말입니다. 사람 자체는 같지만 가는 방향이 다릅니다. 무슨 방향이 다른가? 사랑을 바라보고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25-263
사탄의 본거지를 돌파해야 할 우리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가느냐? 대학교를 졸업한 대졸꾼들, 그들은 월급 많이 주는 회사나 은행에 취직하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그거예요. 그래서 밥바가지의 터를 닦은 다음에 멋진 여자나 만나서 아들딸을 낳고 살면 되지 합니다. 그렇게 살면 뭐가 되겠어요? 세계 인류니 뭐니 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말이야 그렇게들 하지만 지갑에 돈이 슬쩍 들어오면 나라고 뭣이고 전부 다 제껴 놓고 별일을 다 합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부패하는 것입니다. 부패가 무엇입니까? 썩었다는 것입니다. 병이 났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야 그것밖에 더 있어요? 그리고 외국이나 왔다갔다하면서 출세나 한번 해보겠다고 설 자리에서 발뺌이나 하고 중상모략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그런 거예요. 그래 그런 것이 근사합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악한 세계에서 선과 악의 분기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분기권을 몽땅 제거시킬 수 있는 한 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분기권은 사탄의 근거지입니다. 사탄이 거할 수 있는 본원지입니다. 여기가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의 목을 자라 뿌린 그 핏줄기가 뻗어 나가는 데 원천이 되고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가로막는 방해의 원천이 되고 본산지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본거지를 돌파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데 오늘날 인류는 그것을 망각한 채 살고 있습니다.

사탄이 아버지를 죽여 놓고 어머니를 빼앗아다가 겁탈하여 자식을 낳은 것이 타락 아닙니까? 뿌리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악당의 근거지를 불질러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절개를 가진 남자와 절개를 가진 여자가 필요합니다. 절개는 무엇을 중심삼고 성립되는 것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을 중심삼고 절개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사무친 마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전체를 주고도, 이 세상의 가치 있다는 것 천배 만배를 주고도 그것을 사기에는 부족하다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몽땅 한꺼번에 집어넣고 값을 치르더라도 살 수 없는 것, 30억 인류를 몽땅 합하여 이 지구성을 한꺼번에 주더라도 살 수 없는 것, 그런 것을 우리의 마음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통하여 폭발된 자리에서 그러한 부모로 말미암은 자녀, 그러한 부모로 말미암은 형제, 그러한 형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가정, 그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어진 종족 민족 국가, 그 국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심정동산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분기점의 해결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말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중심지가 있으면 잠을 잘 때도 자기도 모르게 그곳으로 머리를 향해서 자려고 합니다. 일을 하더라도 그곳을 중심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이 떠오를 때 모든 생물들은 그곳을 향합니다. 동물도 그렇고 나무의 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모든 생물은 그곳을 향합니다. 나무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습니다. 혼자 들어박혀 있다가도 태양빛이 밟아오면 퍼뜩 일어나 그곳에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러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칙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자동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재미있는 것입니다. 깊은 뼛골에 인연을 울려낼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인 것입니다.

25-264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부모는 어린애의 똥걸레를 빨면서 냄새가 나도 아기의 봉실봉실 웃는 모습을 생각하며 그저 좋아합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눈에 어른어른하거든요.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똥을 찍어 가지고 맛을 보는 어머니들이 많잖아요. 여러분도 그래 봤어요? 그래 보지 못했으면 어머니가 못된 것입니다. 똥 맛 봤어요, 못 봤어요? 우리 어머니가 아기들이 아프다면 똥을 찍어서 맛 보는 것을 여러 번 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머니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어머니 되는 사람들, 그렇게 해봤어요, 못 해봤어요? 못 해봤어요? 이제는 한번 그렇게 해보세요. 그래 보려고 해도 이제는 늙어서 아기를 낳을 수가 있어야지. (웃음)

자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에서 구린내가 나면 기분이 나빠요, 안 나빠요? 자기 혼자 사는 사람은 사흘 나흘 발을 닦지 않고 발구린내를 맡으며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기 발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싫긴 싫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는 그렇게 싫지는 않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이런 얘기 해서 안 됐지만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구요. 뭐가 거룩하다고 비단 보자기 싸 놓아요! 우리 팔자가 다 그런데 털어놓고 말합시다. 누가 방귀를 뽕 하고 뀌면 아이구 냄새야 하면서 야단하지요. 그래 본 적이 있어요, 없어요? 안 그래 봤다면 사람이 아니예요. 그러나 자기가 방귀를 뀌고 나서 이래 본 사람 있어요, 없어요? 그래 본 적 있는 사람 손 들어 봐요? 하나도 없는 모양이구만. 그건 왜 그래요? 나쁘긴 나쁜데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백 퍼센트 자기로부터 동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거 간접적 동기입니까, 직접적 동기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것이라면 안 좋은 것이 없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그것이 어려운 것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깊은 골짜기에 묻혀 있는 사랑의 줄이 울려 나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힘든 가운데에 일하다가도 아이를 척 끌어안고 젖이 아파서 멍할 정도로 젖을 먹이는 모습은 정말 멋지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그런 재미있는 맛을 알겠지만 나는 여자가 못 돼서 그런 맛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여자가 위대하니 그 면에 있어서는 나도 어머니 앞에 굴복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위대한 것은 그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아기가 좋다고 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기가 자기 살을 쏘욱쏘욱 빨아 가는데 어떻겠습니까? 아기가 젖을 빨 때 피가 몇 퍼센트씩 섞여 가지고 기름이 몇 퍼센트씩 섞여 나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먹이겠습니까? 여러분 모기가 윙 하고 날아와서 피를 빨아 먹을 때 기분 좋아요? 벼락 중에서도 날벼락이지요. 죽으면서도 좋아할 수 있는 길은 사랑의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25-266
선악의 분기점
선악의 분기점이 어디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분기점의 모체가 뭐냐?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악의 사랑이 무엇이고 선의 사랑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타락으로 생긴 혈통의 인연을 끊어 버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선의 인연으로 맺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국가적으로 해결하셔야 합니다.

선진국가에서는 지금 부모의 권위가 다 파탄됐습니다. 추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미국 같은 나라는 가정이 거의 파탄상태에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권위를 다 잃어 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부부의 위치도 파멸되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이혼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보장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헤쳐 버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묶어 나가는 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선택된 사랑을 다 잃어버리고 자기까지 잃어버렸기 때문에 거지나 히피족 등, 별의별 무리들이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 자기를 찾을 것이냐?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미국에서 자리만 잡는 날에는 순식간에 그럴 수 있는 길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에 숨어 있던 내용을 헤쳐 가지고 선이 폭발되는 사랑의 인연을 맺어야합니다.

이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혈육의 부모 이상 천주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참된 부모, 참된 형제의 인연만은 빼앗겨서는 안 되겠다, 이것만은 영원히 내 가슴의 보물로, 생명의 원천으로 지니고 가겠다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것, 하나님도 빼앗아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것을 지닐 수 있는 특권이 우리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 중에 제일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인류를 사랑하고 애국심을 주장하던 사람들 이상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 인류를 대신하여 죽었다고 하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박애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기원이 되기 위해서는 뿌리가 그들과 달라야 합니다. 뿌리가 같으면 어렵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역사시대에 없었던 다른 것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원리의 모든 내용도 전부 다 그런 것입니다. 참부모를 제시하는 거예요. 참부모.

우리 성가 `하늘의 용사’ 라는 노래의 4절에 “동방에 밝아오는 찬란한 문화/온누리 그 빛 속에 형제가 되어/ 바라신 선의 부모 길이 받들어/정녕코 이루리라 하나의 세계”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참부모는 밑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에게서부터, 하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날 인류를 무엇으로 시작했나요? 기원은 둘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입니다. 이것이 둘이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원은 둘도 아니요, 셋도 아닌 하나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그 절대적인 하나는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있어야 참자녀가 있고, 그 참자녀를 통해서 참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참자녀를 거쳐 나가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 새로운 선의 세계의 형상이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25-267
승리의 기준은 어디서 결정되느냐
그러면 승리의 결정적 기준이 어디며, 그 기준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심정이 사무치는 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사무치는 그 마음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나님의 비밀창고에 고이 간직되고 간직된 보물단지가 있다면 그것이 뭐냐? 총도 아니요,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참부모입니다. 참부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부부의 사랑, 참자녀의 사랑, 참형제의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식구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연결된 힘이 세상의 인연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만의 선의 분기점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되겠습니다.

그 분기점은 근거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 어떤 군이나 면에 갔다가 돌아와야 됩니다. 삼천만 민족 앞에 갔다가 돌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일본, 나아가 세계 각국에 갔다가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식구의 사랑이 있는 곳은 갔다 다시 올 수 있는 본거지가 되고, 또한 그 본거지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로 태어난 자식의 마음은 그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부 다 집중됩니다. 세계는 이런 심정적 선의 분기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인연되고 여기에서 느껴지고 여기에서 기쁨으로 결실될 수 있는 그 결실점을 고이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고이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 사흘 꽁꽁 싸매야 됩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옛날 모습과는 다를 것입니다. 여기에서 잎이 나오고 가지가 나올 것이어늘, 느껴지는 감정이 사무치고 심정의 요건이 사무치거든 당장에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40일 전도기간에 전도하게 되면 두 패로 갈라집니다. 마음이 가라고해서 가는 행동파와 마음은 가라고 하는데 몸이 가지 못하는 패로 갈라집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마음이 원할 때 행동을 같이 못하게 되면 얼굴을 못 들지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느껴 봤어요, 못 느껴 봤어요?

시간관념이 강한 사람들은 예배 시간과 같은 시간을 공적 시간으로 세워 놓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공적인 사람들이 존중시하는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공적 시간을 지킨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지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지킨 사람이 삼천 명 혹은 삼만 명이면 그만큼, 수가 많을수록 그만큼 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느낌을 받아 보았습니까? 하늘을 찾아가는 기준은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 더욱이 대학가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선악의 분기점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엇인가 바꿔 가져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은 스튜던트 파우어니 뭣이니 해 가지고 야단하며 대학가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고, 대학을 이상한 소굴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자기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좋고, 자기 형제보다 더 좋고, 그 나라보다 더 좋은 것을 갖다 줘 보십시오. 어떤지.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 같이 춤을 추겠어요, 안 추겠어요?

이제부터는 금을 그어야 됩니다. 금을 그어야 돼요. 여러분은 이 선악의 분기점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 와서 며칠 동안 있을 때는 좀나을 것입니다. 이 정도에 있을 거예요. (판서하심)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지내게 되면 `아이구! 뭐 연약한 사람들이나 종교고 뭐고 믿지 하나님이 뭐 보이나? 죽어 봐야 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죽어 보세요. 한번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겠으니 들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둔 사람이 나가면 망하고 벼락을 맞습니다. 가만히 두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녀석들은 전부 다 누더기 보따리를 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가다가 길이 막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이구 길이 잘못 되었구나 하면서, 다리를 절룩절룩하면서 물어물어 통일교회를 찾아오게 됩니다. `여기가 통일교회요?’ 하고 들어와요. 그때 보따리를 풀어 보면 국수 나부랑이라도 사먹을 점심값도 없습니다. 옷도 전부 누더기를 걸친 신세들입니다. 그래 가지고 전부 다 나한테 신세를 지는 거예요. 내가 신세를 진 경우는 한번도 없습니다.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사정으로나 전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5-269
선편에 서서 생활하라
사람은 다 밥을 먹지요? 이 세상에 밥맛을 탓하는 사람 나와라 할 때나올 수 있습니까? 나올 수 있나 대답을 해보시라요! 한 사람도 대답 못하는구만요. `어떤 게 참 밥맛입니까?’ 하면 글쎄 내가 생각하는 참밥맛은…’ 합니다. 자신이 없거든요. 그렇지요? 자신 있어요, 없어요? 70,80년을 살아 공동묘지에 청원서를 내 놓은 사람들도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밥을 그렇게 먹고 다 소화시켰지만 그 밥맛에 대해서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 있어요? `밥맛이 이것이다. 하나님이 맛을 보거나 천지의 만민 그 누가 먹어 보더라도 밥맛은 이것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밥을 먹어 보았어요? 이것 참 맛있구만 하고 밥을 먹을 때 어떻게 먹어야 되겠어요? 소리를 내면서 먹는 사람도 있더구만요. 그런 거룩한 본질을 가진 밥은 어떻게 먹어 주길 바랄 것이냐? 밥 먹을 때에도 이런 것을 생각하면, 밥을 먹는 데도 천하가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요즘 술 많이 먹기 대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밥을 제일 맛있게 먹는 대회, 어때요? 그러면 몇번이나 씹을 것이냐를 생각할 때, 열번 씹는 사람하고 백번을 씹는 것이 더 맛있을 거예요. 백번보다 만번, 만번보다 오만번, 백만번 씹으면 어떨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는데 삼개월 걸릴 수도 있겠죠. (웃음) 그렇게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자신은 다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사람들은 모두다 자기 나름대로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아담이 걷는 방법, 가장 표본적인 스타일이 어떤 형일 것인가? 거 있을 것 아니예요? 어떤 사람은 쿵쿵 걷고 어떤 여자는 아장아장 걷기도 하는데 표본이 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표본 말예요. 사람들은 그것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선악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왔다 그냥 가면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가지 않으면 눈알이 뒤집히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냥 가면 눈알을 빼버리는 것입니다. 눈알을 빼버리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눈을 빼는 것을 원해요? 「예」 원해요? 원한다고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눈을 빼게 될 일은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또 코를 훌쩍거리고 돌아다니면 코를 막아 버립니다. 감기가 걸리면 코가 막히는데 그때 기분 좋아요? 나쁘지요. 숨까지 막히는데요. 그러니 코를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지 말라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열시만 지나면 청소년들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라디오에서 방송을 하지요? 「예」 대학생이라면 대학생으로서 그 나라의 미래의 중추적인 책임을 지고 이끌고 나가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이렇게 (판서하심) 벗어나면 악한 편입니까? 선한 편입니까? 탕감노정에서 배웠지요? 이것은 악보따리입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탄은 `사서 타니까’ 사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감나는 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누가 사느냐? 자기들이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산 자들인데 머리를 끌고 올라서겠다니 그게 무엇입니까?

이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되느냐? 반대로 와 가지고 요만큼 남은 것이 누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뻐하면 반드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높아졌으면 낮아지고 올라갔으면 떨어져야 하는 것이 자연현상입니다. 여러분은 될 수 있으면 이 선을 넘어서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플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그만큼 높아지고 악은 그만큼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높아질 때마다 탕감해야 합니다.

25-271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비결
그러면 여기서 여러분의 방향을 잘 잡아 줄 수 있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 사람이지요? 밥 먹는 것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구. 그래요? 선생님은 1960년도가 지날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었습니다. 너무 바쁘거든요. 여러분도 이러한 입장에서 분기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선을 중심삼고 생애 노정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일편단심의 그 심정을 뿌리로 삼고 기준으로 하여 폭을 넓혀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평화로운 가정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과 화하고 하늘과 주고받을 수 있으면 그곳에서 국경을 넘어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기점을 분기선으로 화하고 분기선을 일시에 분기면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비결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경상도, 그 다음에 충청남도, 그 다음에 경기도, 그 다음에 서울로 선이 이어지지요. 이것이 리(里)에서 면(面)까지 이어져 사방으로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분기점에서 분기선으로 분기면까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심정의 기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뜻을 중심삼고 나갈 때 `뜻!’ 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아담을 생각하는데, 아담을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요?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아담 해와의 타락을 말하려면 감정이 복받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돼요. 또 고의적으로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아담!’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냐? 예수입니다. `예수!’ 하게 되면 기분이 조금 좋습니다. 그렇지만 또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놈의 이스라엘 민족! 개인이 원수라고 생각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집단적으로, 국가적으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에서 `선생님!’ 하면 기분 좋아요? 「예」 그 반대이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3대 국가의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아시아적이요, 세계적인 국가의 핍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동아권을 주장하고 나온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공산당과 민주주의 세계 앞에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3대 주권, 즉 자유당, 민주당, 혁명정부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미운지 꼬리를 물고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이런 것을 알아요? 삼천만 민족은 환영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선생님은 그런 과정에서 `누가 참인가, 누가 큰가, 누가 멋진가, 누구를 만민이 요구하는가, 민족이 누구의 말을 듣나, 두고 보자!’ 하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멋진 것입니다. 용기가 크니만큼 내가 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간절하여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세계를 연결시키면 그것은 누구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압축시키면 하나요 연결시키면 천리만리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들락날락하면서 지금까지 세계인을 소화시키고 훈련시켜 나온 것입니다.

악의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넘겨치는 싸움을 해온 것입니다. 씨름해서 이기면 참 재미있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 자신이 쓰러지지 말고 섭리의 분기점을 지나 끝까지 가는 날에는 머물러야 할 나라에 도달할 것입니다. 어분이 머무를 곳은 그러한 가정, 그러한 사회, 그러한 국가, 그러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세계가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인 줄을 알고 분기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지요? 「예」

25-273
평형의 원리
참부모와 참부부와 참자녀와 참형제 자매의 전통을 체계화시켜야 됩니다. 세계적인 남편을 대표한 남성을 세계에 널려 놓고, 세계적인 아내를 대표한 여성을 세계에 널려 놓고, 세계 곳곳마다 그러한 형제 자매를 널려 놓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참부모와 참부부와 참자녀와 참형제를 모체로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놓으면 그곳이 천국사회인 것입니다. 그 나라가 또한 지상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좀 달라졌습니까? 어디 성화대학생들, 좀 달라졌어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안달복달해 나온 것은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이 달라지기를 원해서였습니다. 이 선을 중심삼고 원리에 어긋난 일은 절대 안한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사탄이 몰고 들이칩니다. 사탄에게 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것만 완전히 붙들고 있으면 천국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씨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서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기준만 넘어서면 가만두어도 자동적으로 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봅시다. 부모, 부부, 자녀를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누가 가르쳐 주어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없더라도 심정적 기준에 사무칠 줄 아는 자리에 있으니 남자로서 사무친 힘이 있으면, 즉 천지에 플러스가 생겨나면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이 천리원칙입니다. 완전한 주체가 생겨나면 완전한 대상이 자동적으로 창조되고,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기면 자동적으로 완전한 플러스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 한 사람 생겼으니 이번에는 여자를 한 사람 만들자’ 이렇게 장부를 꾸며 가지고 대조하듯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까? 그것은 원리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되면 아들딸을 낳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아들만 들입다 낳고 어떤 집은 딸만 들입다 낳습니다. 또 어떤 집은 하나도 못낳습니다. 이와 같이 동서에 울쑥불쑥 태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합하여 보면 그 비율이 비슷비슷합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한때는 여자가 많은 시대가 오고 한때는 남자가 많은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세와 열세입니다. 그런 기준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볼 때, 여자가 하나밖에 없는데 남자가 열 명이나 태어나면 그중 아홉은 죽어야 되겠다고 합니까? 그런 걱정을 해요? 여자가 빽하고 울며 태어나면 남자가 어디 있나 하고 찾습니까? 남자가 태어나면 처녀가 어디 있는지 찾습니까? 그러지 않아요? 짝은 어디엔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걱정하느라고 아들딸을 못 낳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그 때문에 산아제한을 해야겠다고 연구하는 사람 있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남자가 전도 나가게 되면 심중에 그리던 남자라고 그 동네의 여자들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핍박을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런 원칙에서 여자를 전도하러 보내는 작전을 해 왔습니다. 그것은 괜찮습니다. 한 명의 여자 앞에 말 같은 남자들이 20명 정도 달려들어 가지고 큰일났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 앞에 여러 명의 여자들이 달려들면 큰일났다고 합니다. 통일교회가 핍박을 받는 것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혼자인데 많은 여자들이 전부 다 선생님을 따르고 야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에 있어서 세상의 모든 현상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이성성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끊어지면 천지만물들은 자동적으로 인간에게 주관받겠다고 하겠습니까, 안 받겠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연결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만물은 자연히 인간의 주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생명체가 자동적으로 흡수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그렇지요?

25-275
천주의 공법에 합격하라
자녀들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으면 눈물이 나오나요, 안 나오나요? 부처끼리 살다 둘 중의 한 사람이 죽으면 왜 우나요? 자식이 있는데 왜 울어요? 눈물이 어디에 쌓여 있다 나오는 것입니까? 죽으면 죽었지 왜 우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일들이 있으면 왜 슬프냐? 또는 왜 좋으냐?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권내에서는 좋은 것이고,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은 권내에서는 슬픈 것입니다.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기에게 마이너스 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자기에게 플러스 되면 좋아합니다. 어디 마이너스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반대로 플러스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거야 다 들지요. 뭐, 뱃속의 애기까지 손 들려고 할 것입니다. 다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플러스 중에 최고의 플러스가 뭣입니까? 부모입니다. 부부입니다.

자녀입니다. 부모가 최고의 플러스 기준이요, 부부가 또한 최고의 플러스 기준이요, 자녀 또한 최고의 플러스 기준입니다. 이것이 국가 형성에 있어서 최고의 기준이요, 세계 형성에 있어서 최고의 기준인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의 발전에 있어서 기틀이기 때문에 이것이 일치화되지 않고는 완전한 이상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힘의 원칙이 이러한 기준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 딱 맞아야 합격품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결여되어도 불합격품이 됩니다. 불량품은 우주의 힘에 의해 자동적으로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하나되면 자동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스런 우리, 이런 사이가 됩니다.

사랑이 왜 좋으냐? 최고의 선의 근본과 연락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선의 뿌리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못하면 왜 불행해 지느냐? 천지의 공법이 보호할 수 있는 천지의 운세가 사랑을 중심삼고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에 불합격되면 구멍이 뚫린 만큼 거기에 비례하는 우주의 힘이 반발하여 여러분의 가슴에서 밀려 나가기 때문에 그것이 슬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을 한 만큼 비례적으로 완성하여 평면적인 하나의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기준에 해당하는 우주의 힘이 자동적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우주를 유지시키기 위해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압니까, 모릅니까? 작용하고 있어요, 작용하고 있지 않아요? 중력이 우리를 당기고 있어요, 없어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마음이 그 힘의 작용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 기뻐하고 슬퍼하느냐? 우주의 공법에 합격하면 기쁘고 불합격하면 슬픈것입니다.

자기의 현재 기준에 있어서 기쁨이 찾아오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전체의 기준에 부합될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성을 띨 수 있는 남편이나 아내가 없어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완전한 존재로서, 완성된 합격품으로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어도 마찬가지요, 자식이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만 있거나 딸만 있어도 안 됩니다. 아들 형제만 있는 사람은 왜 딸을 낳고 싶어합니까? 협회장, 딸 낳고 싶지? 아들만 낳은 사람은 딸을 달라고 딸, 딸 합니다. 그거 왜 그래요? 상대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되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되고, 아내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되고 남편의 사랑도 받아 봐야 됩니다. 아들을 사랑해 보기도 하고 딸을 사랑해 보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천주의 공법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몰랐지요? 이것이 우주를 구성하는 이상적이고 근본적인 표준이기 때문에 이것에 완전히 부합될 때, 이 내용과 완전히 일치될 때 기쁜 것입니다. 이 원칙에 부합되지 못할 때 불행이 깃드는 것이요, 이 원칙에 완전히 부합될 때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에 플러스 시키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요, 악에 플러스 시키는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다. 선에 마이너스시키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예요. 이러한 것들은 심정적 내용을 중심삼고서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5-277
기 도
아버지시여, 역사적인 귀추를 바라보게 될 때, 진리의 목적 기준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인간이 무한한 가치를 갖고 있으되 어떤 상대적인 여건에서 그 가치가 찾아지는 줄을 알았지만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는 자체에게 심어진 것을 몰랐습니다. 세계의 인연이 상대적인 세계에서 어떤 과정을 통하고 거쳐야 할 줄로만 알고 저희의 본성 가운데 그것이 깊이 잠겨져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참된 가정을 중심삼고 참된 부부와 참된 자녀의 인연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사랑의 인연을 보편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공식이 전체 앞에 보편화될 때, 그 공식은 비로소 완전한 것으로 성립되듯이 가정이 세계 창건에 절대적인 요건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공식이 되어 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고, 동서 사방으로 그 막힌 길이 없이 통할 수있으며, 세계 창건의 결정적인 기초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것이 저 멀리, 저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희 마음 가운데 묻혀 있고 저희의 환경 가운데에 묻혀 있으므로, 당신께서는 지금까지 저희들 속에 계셨고 저희의 생활을 주관하셨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악의 분기점이 생사의 기로이기에 영원한 불멸이라는 기준이 여기서 생겨졌다는 사실, 참과 거짓이 여기서 생겨나왔다는 사실, 희망과 낙망 또한 여기서 생겨났다는 사실, 혹은 행과 불행의 모든 여건이 여기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 전체를 구성하는 주체적인 모든 요건이 무엇이냐 할 때, 남자와 여자라는 결론이 나오는 기원은 어디이옵니까? 이성성상의 모체가 아버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남자와 여자의 존엄한 가치를 찬양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귀한 가치를 더 더욱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여기서 느껴지는 감동이 이 세상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이 세상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또한 그와 같이 강한 자극을 주는 마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저희를 자극시킬 수 있는 원동력의 모체가 저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았사옵니다.

십여년 기간 성경을 목표로 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에게 십년을 열흘같이 느낄 수 있도록 자극시키고 충격시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힘의 보급이 필요한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그 힘은 인간만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무궁한 천운의 기반이시고 힘의 모체이신 아버지를 중심삼고 연락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권내에서 살고 생활하는 사람은 영원히 힘차게 승리의 권한을 갖출 수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중심삼고 새로운 자아를 갖추어 이제부터 새로운 행보로 힘차게 출발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원하옵니다.

이제 젊은 가슴에 새로운 불길을 안고 자기의 형제들이 살고 있는 삼천리 반도 고향 산천에 돌아가 가지고 이 뜻을 심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오니 이날을 사모하는 자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소망의 곳을 추구하는 자들의 갈 길을 열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 남아진 생애노정의 생활권내에 당신께서 같이하시어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