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72 to 25-241: 역사의 주역

역사의 주역
1969.10.04 (토), 한국 전본부교회

25-172
역사의 주역
하나님께서는 선의 세계를 이룰 것을 목표로 설정하시고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들을 중심으로 창조이상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가 중도에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노정에 있어서나 인류역사노정에 있어서 중대한 사건 중에 첫째 가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아니한 비운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적인 실체세계에도 비운의 역사가 출발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비운의 역사를 어떻게 청산하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께 있어서나 인간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5-172
슬픔으로 시작된 인류역사
인류의 역사는 기쁨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시작하였고, 소망과 희망 가운데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낙망과 절망 가운데서 출발하였습니다. 또한 광명한 새 아침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 아니라 황혼이 짙어가는 가운데 어둔 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청산지어야 되겠습니다. 이 어둠의 세계를 기필코 청산짓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광명한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이라는 명사를 들어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뭐냐? 한마디로 말하면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연의 상태로 복귀하는 데에도 기준이 있을 것인데, 그 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우리 인간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여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귀의 제1기준은 하나님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만이 아니고, 자녀의 자리를 거쳐 부부의 인연을 맺고 참된 부모가 되어서 새로운 혈족의 인연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창조목적이요, 인류역사의 새로운 출발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어떠한 민족이 문제가 아니며, 어떠한 종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어떠한 아들딸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류 앞에 필시 있어야 할 참부모, 하나님께서 실체로 현현하실 수 있는 참부모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인류의 최고의 문제이자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사위기대의 완성은 하나님의 소원 가운데에서 부모를 중심삼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전한 사위기대를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비통하고 비참한 역사를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차피 비참하고 비통한 이역사적인 인연을 가졌으니, 이제 이것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5-173
비운의 역사를 청산지으려면
이러한 역사의 운명은 개인을 지나고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까지 뻗어 나왔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 비운의 역사가 접속되어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그냥 놓아 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척결해야 합니다. 척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그 움직이는 힘보다도 강한 힘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어떠한 물체를 자기가 목적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물체의 힘 이상의 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이 그 목적을 위해서 달리고 있는 것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그 악의 힘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강한 선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갖추어지면 악은 자동적으로 멎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런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다 알고 계십니다.

복귀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비참한 인류역사를 타고 나온 현재의 우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아담 가정이 타락한 그때부터 복귀역사는 시작된 거예요. 그랬는데 모든 뜻이 본연의 소망대로 성취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2천년 역사를 거친 후 아브라함을 세워 가지고 결사적인 입장에서 소생 장성 완성의 원리의 기준을 세우려 했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서 이런 기준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정적 기준이지 전체를 복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반드시 전체 세계를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아브라함 가정이 중심가정으로 세워졌지만 전체를 굴복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는 못하였습니다. 굴복시키는 것도 전세계를 한꺼번에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나라면 나라의 대표, 세계면 세계의 대표를 중심삼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제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실수한 것이, 즉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나님과 사탄이 상반된 입장에서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사탄이 굴복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탄도 동참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기 때문에 양분된 그 형태가 이 지구상에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그 기준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국가가 못 되었습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재차 슬픔의 조건을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청산하는 데에 있어서 제일 기준은 뭐냐?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국가 기준은 가정 단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2천년 동안 수고해 나온 그 목적 또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승리의 기준을 중심삼고 민족 편성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덮치고 덮치는 역사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2천년 역사를 경과해 가지고 예수님 시대에 이르렀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국가적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참된 승리의 가정을 이루어서 그 가정을 기반으로 아브라함 가정에서 세우지 못한 승리의 기준을 결정짓고 사탄세계의 외적인 환경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책임을 다 못했기 때문에 섭리는 또다시 지연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소화시킬 때까지 점진적인 역사에 보조를 맞추면서 국가 형태의 기준까지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 기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입니다. 국가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일을 완수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를 형성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나라를 형성했다고 해도 복귀섭리가 나라 단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예수님이 완전히 하나되어 세계를 굴복시켜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의 모든 국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있는 기준까지 나아가야 비운의 역사가 청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5-175
하늘나라 형성과 혈통복귀
예수님도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를 세워야 됩니다. 사탄 나라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탄 나라의 대표자가 있으니 하나님 나라에도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탄 나라의 제반 조건 이상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형성된 나라가 어떻게 되었느냐? 사탄이 어떻게 나라를 형성했느냐? 사탄은 혈통적으로 나라를 형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혈통이 순수해야 하고, 하나님편이라는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혈통복귀가 되지 않으면 그외의 모든 복귀도 힘든 것입니다.

지금 타락한 인간은 혈통을 중심삼고 볼 때, 사탄이 아버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탄이 아버지로 되어 있는 권내에서 벗어날 것이냐? 사탄의 기준을 능가하는 기준으로 사탄에게 혈통적으로 말려 들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혈통을 어떻게 성립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두고 볼 때도 그가 타락한 혈통의 후예로 태어났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탄세계의 저끄러진 열매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는 하늘편에서 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역사상의 성현들, 예를 들면 예수나 석가나 공자같은 사람이 인류역사에 공헌을 했다고 다 똑같은 성현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을 놓고 보면 반드시 한 사람이 앞서든가 뒤떨어지든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앞서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지요. 그 가운데 앞서 있는 한 사람이 선택받도록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자가 없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 외에는 소망의 분기점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말을 할 수 있는 기준은 어떻게 결정되었느냐? 사탄세계와 혈통적으로 관계가 없는 부모를 거쳐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분신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가 사탄의 아들들의 권위보다도 안팎으로 나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출발의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 태어나기 위해서 4천년 역사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사탄과의 혈통적 관계를 넘어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터전 위에서 태어났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은 형이고 아벨은 동생입니다. 복귀역사는 바꿔치기 역사입니다. 바꿔친다면 무엇을 바꿔치는 것이냐? 옷을 바꾸어 입는 게 아닙니다. 집을 바꾸어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라를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바꾸는 데는 외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몸뚱이를 바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에서부터 바꿔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근본이라는 것이 뭐냐? 근본은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부터 바꿔친 후에 나를 바꿔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바꿔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부모를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있어서 어느 한때에도 이러한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출발을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지어 온 모든 죄를 전부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는 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광명하고, 희망에 벅찬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5-177
우리가 복귀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
오늘날 이 타락의 세계는 슬픔 가운데에 있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슬픔의 역사, 낙망의 역사, 죄의 역사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행로의 연속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나라가 문제입니다. 나라가 협조 안하면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를 중심삼은 나라가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보이는 자신이 어떻게 아버지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사탄세계에 있는 아버지와 신념으로 믿고 추구하는 아버지와 감정의 기준에서 어떤 것이 우위이겠습니까? 원칙적인 기준에서 어떤 것이 우위냐는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이것을 발견하고 찾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모든 기준을 설파해 가지고 하나님을 실체의 반석으로 모시는 것을 공법으로 하는 사회와 세계를 부모보다도 더 높이 알고 더 가까이 알고 더 깊이 인연맺을 수 있는 참된 남자가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역사가 아무리 발전하다라도 그러한 참된 남자가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관계를 엮지 못하므로 복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절대 불가침적인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시킬 수도 없습니다. 절대입니다. 또한 부정할 수도 없고 부정시킬 수도 없기 때문에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가 백번 천번 때려 부수더라도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하나된 그 세계는 어떠한 무엇으로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류가 하나님과 사랑의 인연을 온전하게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사회에 복잡한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 속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존재의 기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전체가 하나님 속에 있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자각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귀되는 데에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더 가깝습니까? 하나님이 더 가깝습니까? 「아버지가 더 가깝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십니다. 완전이라는 것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주체이신 하나님의 상대는 결과세계입니다. 결과의 존재란 주체를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결과적 존재는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인과 결과를 일치시키는 작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의 결과와 일치하게 되면 사랑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25-178
사랑의 주인공인 인간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하는 데에 있어서 왜 여자는 빼놓고 남자만 중심삼고 했겠습니까? 아직까지 여자의 입장을 나타낼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신랑되신 주님이 와야 여자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시집을 가서는 안 됩니다. 여자가 시집갈 수 없으므로 남자도 장가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일치될 때는 절대적이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인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사랑은 누가 먼저 주게 되어 있느냐? 아들은 사랑을 지고 다니고 부모는 사랑을 안고 다닙니다. 안고 다니는 것과 지고 다니는 것과 어느 것이 먼저이겠습니까? 애기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아들을 지고 가고, 하나님과 부모는 안고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되려면 지는 것보다 안는 것이 더 쉽습니다.

이것이 거꾸로 되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중심이겠습니까? 사람이 중심이겠습니까? 사랑이라는 간판을 들고는 누가 먼저이겠어요? 사랑에 있어서는 사람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앞세워서 사랑은 안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 사랑을 이루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보따리를 들고 가면 어디든지 통과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의 주권자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그 나라에서는 어디든지 통하지 못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볼 때, 사람이 우주의 중심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분립시킬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자체이겠습니까? 인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서 벌어지겠습니까? 「인간에게서 벌어집니다」 사랑을 번식시키는 것도 인간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짓기는 했지만 원칙적인 법도를 통하고 주기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창조의 이상을 전개시키셨던 것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실무적인 담당자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느 누구를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만 인류의 어버이이십니다. 성경에 보더라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지 `하나님이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누가 세상의 중심입니까? 세상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는 결론이 성립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처럼 사랑하는 인간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한 분입니까? 차라리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지어 놓고도 자식이라 못하니 얼마나 서글프시겠습니까? 부모가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으면 아이들에 대해서 관심이 덜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의 귀함도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부모가 그 아이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기를 낳아 가지고 사랑을 듬뿍 쏟으며 정성을 들여 키웠는데, 그 아이가 부모의 품에서 떨어져 나가 버리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하나님이 그런 부모의 입장에 계십니다.

처녀들도 시집을 가면 남편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집을 가기 전에는 `아이구! 짓궂은 이 남자야 내게 뭐가 필요하냐?’ 하다가도 일단 시집을 가서 사랑에 딱 걸려 놓으면 `아이구, 당신이 아니면 나는 닭이나 꿩이요’ 하며 남자에게 매달립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보다 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부인들은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도 남편의 행복을 원합니다. 그것이 자신과의 관계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태어나기를 남자를 맞이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또한 남자도 여자를 맞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인공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짖고 낳기는 하나님이 했지만 사랑은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이 상대적 세계의 사랑의 관계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된 하나님의 사랑은 결과인 인간에게서 열매는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25-180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절대적인 존재
여러분, 사랑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 사랑에 절대 필요한 요소는 인간입니다. 남자와 여자예요. 여자에게는 남자가 필요하고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필요하냐?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보다도,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보다도 더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없으면, 백년 이내에 인류는 전부 다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아무리 천하를 통일했다고 으시대더라도 여자가 없다면 백년 이내에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절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왼손을 좋아합니까, 오른손을 좋아합니까? 둘 다 좋아한다는 대답은 결과를 알고 하는 대답입니다. 어느 손이 더 유용한 이용가치를 갖고 있겠습니까? 배구를 하더라도 오른손이 나가지 왼손이 나간 적이 있어요? 글을 쓰더라도, 밥을 먹더라도 왼손을 놀고 먹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왼손은 필요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한 손으로는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습니다. 전혀 필요없는 것 같지만 귀히 쓰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필요한 이용 가치는 남자가 더 많이 갖고 있지만, 그래서 마치 여자는 필요없는 존재 같지만 여자 또한 절대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인간은 다 귀한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냐? 절대적입니다.

이런 절대적인 존재를 이용해 먹는 사람을 세상에서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적인 것을 망치고 절대적인 것을 유린하고 이용해 먹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의 조상 중에 가장 위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때, 그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 이용하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되려고 했습니까? 서로 양보하려고 했습니까? 또 서로에게 더 보태 주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서로에게서 빼앗아 내고 떼어 내려고 했습니까? 여자는 남자에게 보태 주려고 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보태 주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대사회의 남자나 여자는 어떻습니까?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서로에게 더 보태려고 그럽니까? 뺏아 내려고 그럽니까? 도둑질 하려고 합니까? 갖다주려고 합니까? 솔직히 얘기해 보십시오. 세상의 남성들은 거의가 다 여자에게서 뺏으려고 하고 여자에게 마이너스 되게 하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인간에게서 뭘 빼내려고 했습니까, 인간에게 뭘 더 보태 주려고 했습니까? 빼내려고 했지요? 그래서 결국 빼낸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의 허락도 없는데 소식도 없이, 통고도 없이 몰래 빼내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도둑놈이 `나 아무 날 아침에 갈 것입니다. 기다리시오’라고 통고하고 뭘 가지러 갑니까? 문서장 써 놓고 `나 돈받으러 가요’ 하고 가지러 가냐는 말입니다. 통고없이 문이 잠겨 있으면 부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통고하고 가서 먹는데 그것을 막으면 막는 것이 비정상이지요? 그와 같이 에덴 동산의 사탄이 몰래 빼앗아 갔기에 타락된 역사가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보태 주려고 할 때 남자와 여자는 절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적이라면 그런 절대적인 남자와 절대적인 여자가 만나서 절대적으로 주고받는 사랑도 절대적인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사랑으로 묶어져 가지고 둘이 합하지 않고는 절대적인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횡적인 입장에서는 서로서로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남녀의 사랑은 그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는 누구를 먼저 불러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부르기 전에 여자들은 누구를 위해서 준비하고 치장합니까? 남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남자를 먼저 불렀습니까? 못 불렀지요. 사탄을 먼저 불렀어요. 그래서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여자는 누구를 먼저 불러야 하겠습니까? 남자를 먼저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신랑되신 주님이여, 오시옵소서’ 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 점을 여자들은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25-182
사랑의 힘
그러므로 신랑되시는 주님이 오셔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누구입니까? 또는 주님이 둘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수님과 성신이 있어 가지고 소생 장성 완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하나님 아버지보다도 `오 신랑되시는 주님이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무엇을 찾아야 한다구요? 대답을 하라구요. 싫으면 그만두고‥‥‥. 그렇다고 진짜 그만두면 곤란하지요. 복귀해야 할 우리들은 그렇게 신랑을 맞이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신랑을 맞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낳았습니다. 여기에는 사탄이 있었던 흔적조차 없어야 하며 하나님만을 위해서 시작하고, 하나님만을 위하여 이루어진 그 자체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한테 필요한 것이 신랑되는 남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자들의 역사는 시궁창에 빠진 입장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계에서도 지금까지 후회하며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잃어버린 아내가 편안할 리 있겠습니까? 인류역사를 보면 여자들은 사탄세계를 오고 가는 주객들이었습니다. 나그네들이었어요. 지금까지 여자의 역사는 비참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을 맞아야 하는데 주인이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요. 이럴 때는 누구든지 주인이라고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희망봉이 어디냐? 인생 행로에서 이것이 결정되는 날에는 여자의 세계에는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날은 여자가 자기의 주인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누구입니까? 주인은 바로 신랑입니다. 그 신랑은 주님의 대신자요, 하나님의 대신자입니다. 그 신랑은 사랑의 역사의 출발자입니다. 지금까지 타락한 역사에서 사랑의 역사의 출발자는 누구냐? 사탄과 여자입니다. 그러면 인류역사에 있어서 우리의 원수가 누구냐? 그 또한 사탄과 여자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상에 나타난 여자의 신세가 비참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 같은 나라는 비상시에 용사들이 국운을 책임지고 행군 나팔소리와 더불어 출발할 때, 그들이 가는 길에 여자가 있으면 쏴버립니다. 이때 여자가 애기를 업고 있으면 그 애기가 여자 아이면 둘 다 죽이지만, 그 애기가 남자 아기면 둘 다 살려 줍니다. 세계 곳곳에 그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왜 남자 아이이면 살려 주겠습니까? 천주의 소원이 여자 때문에 악으로 망쳐졌지만 그 가운데서 아들을 찾으려니 그러는 것입니다. 모자협조의 인연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근본을 알아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엮어져 나온 것입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사랑의 출발자는 사탄과 여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역사로부터 제거당해 왔습니다. 멸시천대를 당해 왔습니다. 그것은 탕감해야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남자들의 뜻을 잘 따라야 합니다. 여자들은 그 모양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라고 합니다. 대통령이 그 나라의 아버지를 대표한다면 부인은 그 나라의 어머니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러한 자리에 서려면 대학출신이어야 하고 학박사 학위를 여러 개 갖추어야 되지요? 또 레슬링 챔피온이라도 되어야 하지요? 그렇습니까? 「아니요」 눈이 안 보인다거나 눈과 코와 귀와 입이 잘못되었거나 또 몸이 어디가 불편하면 안 됩니까? 눈도 나쁘고 코도 비뚤어지고 입모양도 이렇게 생겼어도 거기다가 왼손잡이나 절뚝발이어도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남자가 제일 중요시하는 사랑을 점령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의 가치를 결정하고 `아! 그는 국모다. 그는 절대적이다’ 할 수 있는 권한을 천만년 이어가는 것입니다. 사랑만 점령하면 종적인 환경에서나 횡적인 환경에서나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인 남편의 사랑을 완전히 점령한 부인이 절뚝절뚝하고 말을 못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가슴속에 대통령의 사랑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점령한 후에는 영원히 붙들고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가 도망가더라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25-184
참부모로부터 중생받아야 복귀된다
사랑에는 무엇이든 완전히 포위할 수 있고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으면서 병균과 같이 한번만 점령하면 무엇이든지 왕창 걸려들고 맙니다. 세상에서 제일 지독한 병균이 바로 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의 길을 어떻게 찾아 들어가야 하느냐? 장가가기 전의 아버지의 뱃속에,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뱃속에, 또 그렇게 자꾸자꾸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뱃속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들어가지 못했으니 다시 들어가기 위해 가는 길이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 제일이 되라. 하나님을 점령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제일 가는 남자가 되라! 그러기 위해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듯 복귀의 길 앞에 말씀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해야 되겠습니까, 다하지 않아야 되겠습니까? 전부 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갈 때 복귀섭리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는 그런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세계 인류는 전부 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그 은사를 필요로 하므로 그들은 전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나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주마당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경주가 아닙니다. 하나의 장벽을 전부가 잡으려고 뛰어가는 경주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누가 일등을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일등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역사를 보더라도 예수보다도 먼저 태어나 살다 간 인물들이 많지만 먼저 태어났다고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자가 있었습니까? 기록이라는 것은 뒤에 나온 사람이 깨뜨리는 것이지, 앞서 나온 사람들이 깨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뒤에 나와 기록을 깨뜨리는 사람이 더 이름을 날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기록을 깰 수 있겠습니까? 「예」 그래요? 그러면 어디 구경 좀 합시다. (웃음) 이 일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누가 예수님 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 제일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자들은 세상 없이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한테 시집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자꾸 시집가라는 말을 하니까, 아마 속으로 `아직 밥도 안 먹었는데 아침부터 시집 장가 보내려고 하는구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웃음) 그래도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 아가씨들도 있지만 속으로는 좋아서 눈을 감고 예수 예수 하다가 조금 잘못 발음하면 `예스(yes)’ 하게 될 것입니다. (웃음)

가만히 보면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왔다는 말을 신랑이 왔다, 신랑이 왔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이 말 하나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신기하지요. 하나님이 없고는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이신 예수는 여자를 찾는 것입니다. 남자는 원치 않아요. 예수는 족보상으로 남자계열입니다. 그렇지만 여자들과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남자들 기분 나쁘죠?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글자를 한문으로 보게 되면 `여자’ 할 때, 여(女)자는 활을 두 개 갖다 붙인 모양입니다. 여자는 활을 쏠 때도 하나만 쏘지 않고 둘을 동시에 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남자’ 할 때, 남(男) 자를 보면 위에 밭 전(田) 자가 있는데 그 안의 열 십(十) 자는 동서사방을 말하는 것이고, 열 십(十) 자를 둘러싼입 구(口)자는 천하를 연결시킨다는 뜻입니다. 즉, 사방의 중심을 힘(力)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 남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자가 한문입니다.

남자는 자그마치 천주를 중심삼고 헤쳐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 화살을 가진 것이 여자라는 생각을 하세요. 그러면 이게 무슨 자예요? (간사 간(姦)자를 판서하심) 이런 사람 여기에 있어요, 없어요? 여자 셋이 모였습니다. 이게 무슨 자(字)입니까? 「간사 간요」 이 중에 하나는 해와요, 하나는 마리아요, 또 하나는 이 자리에 있는 여자인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망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천주교회 다니는 사람은 놀라 자빠질 지 모르겠습니다.

25-186
하나님의 참아들로 오신 예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남자가 수고해 나왔지만 앞으로는 남자만 중심삼고, `아! 남자가 제일이다’ 할 수 없습니다. 요즘 보면 여자 대통령도 나오고, 여자 국회의원도 나오고 하지요? 지금까지는 남자들끼리만 거들먹거렸지만 이제부터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여자들이 `옆을 봐라, 우리가 있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두고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탕감복귀의 한도가 이 세계에 점점 차 올라 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등한 것이 무엇입니까? 마라톤에서 챔피언이 되어서 일등을 했습니까? 아니면 밥 잘 먹기로 세계 제일이었습니까? 팔뚝 힘이 세계 제일이었습니까? 보이는 모양이야 절름발이이든, 애꾸눈이든, 무엇이든 국부(國父)의 사랑만 점령하면 국모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지리 못난 남자여, 뼈 위에 가죽만 씌워 놓은 남자라도 사랑만 점령하면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끊어질 때는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음대로 끊다가는 그 사람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한번 맺어진 부부끼리 이혼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가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한 남편, 한 아내에게 전적으로 매달려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데 있어서 일등이었습니다. 일등 중에서도 최고 일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일등이라는 기록은 내놓았는데 그것을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코스에서는 이렇게 하고, 저런 코스에서는 저렇게 해야 한다고 후대에 가르쳐 줄 수 있는 내용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에서 일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뼛골 속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남자라는 존재로 태어났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마음 전체와 인연맺는 사랑의 상대자로서 하나님의 가슴에 꽉 찰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완전한 사랑입니다. 두 사람을 놓고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다고 하는 것을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내게는 예수밖에 딴 사람은 없다’ 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들어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모든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가야 했어요.

25-187
복귀역사는 가인 아벨 복귀의 역사
아들딸이 태어나기 전, 부부의 사랑을 거쳐 가지고 뱃속에서부터 뗄래야 뗄 수 없고,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문서장을 지니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문서장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타락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출발되었으니 하나님을 모시고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바꿔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역사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4천년 역사 속에서 바꿔치기를 해왔고 지금까지 놀음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냥 놔둬야겠습니까? 지금까지 가인은 오른편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른편에 있는 가인을 왼편으로 보내고 왼편에 있는 아벨을 오른편으로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바꿔치는 놀음을 누가 하려고 한 것입니까? 사탄이 하려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부터 섭리의 주역이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을 바꿔치는데 가인은 사탄편이고 아벨은 하늘편입니다. 여기서 하늘편이 사탄편을 주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창조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어서 아담은 주인이고 사탄은 종이었습니다. 하늘편에 있는 아벨은 아담 대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대신 주인된 입장에 선 아벨이 사탄편의 가인을 지배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꿔쳐야 돼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 반대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주관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거꿀잡이로 바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이것을 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이것을 하는 데는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여자가 먼저 했기 때문에 탕감복귀하려면 여자는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남자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전부 다 거꾸로 점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형제끼리 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리를 좁혀 들어감으로써 복귀되어 가고 뜻을 이루는 데 점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으로 바꿔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소생 장성 완성의 세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바꿔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방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에서와 야곱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이 형제가 되어 싸우게 된 것입니다. 쌍동이로서 싸운 것입니다. 쌍태로서 복중에서부터 싸웠던 것입니다. 복중에 두 나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를 지배하려면 어렵지요? 복중에서부터 싸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싸웠지만 나기는 에서가 먼저 태어났으므로 에서는 가인편, 즉 사탄편이 된 것이고 야곱은 하늘편이 된 것입니다.

이 하늘편과 사탄의 싸움은 형제끼리의 싸움이 복중에 싸움으로까지 연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이기기 위해 복중에서 시작된 싸움은 태어나서도 계속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야곱이 팥죽을 가지고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몽땅 빼앗은 조건을 성립시켰던 것입니다. 이거 잘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에서 간교하게 형님을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그것은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에서가 조건에 걸려서 약속대로 한 것 뿐이지요. 형님인 에서가 조건에 딱 걸린 거잖아요? 거기서 야곱이 약속대로 한 것은 천지 공약을 수행한 것입니다. 원칙대로 한 거예요.에서가 조건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굶주린 가운데 팥죽과 떡에 장자권을 팔았던 에서는 가인이 아벨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이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21년 노정을 거치며 사명을 다 했던 것입니다. 결국은 쌍동이 형제의 싸움에서 야곱이 이긴 것입니다. 거기에서 비로소 가인과 아벨이 외적으로 바꿔지게 된 것입니다.

25-189
복중복귀와 다말의 공로
그러나 외적으로는 바꿔쳤는데 내적으로는 바꿔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외적으로 바꿔친 권내에 선 국민이 이스라엘 선민이요, 그 국가가 이스라엘 나라인 것입니다. 사탄은 내외 안팎으로 바꿔쳤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외적으로만 바꿔쳤으니 아직도 내적 기준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더 중요한 내적인 기준이 바꿔지지 않았기에 안팎으로 완전히 사탄을 막아 놓고 출발할 수 있는 완전한 이스라엘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 때에 외적인 이스라엘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애급 나라가 세운 것입니다.

애급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사실은 어느 때부터 가느냐?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를 알지요? 유다의 아들이 아내를 맞았는데 죽게 됩니다. 당시에는 어떤 남편이 아들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의 계대를 잇는 것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겠지만 옛날에는, 그 당시에는 그런 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역사의 섭리적 내용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담당하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 동생이 형의 계대를 이어야 했지만 그 동생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말이 가만히 보니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은 죽었고, 셋째 아들은 나이가 어려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말의 생각은 축복받은 이스라엘, 즉 야곱의 계대가 끊어져서야 되겠느냐는 데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의 어떠한 규범이나 윤리보다도 하나님의 혈통을 잇는다는 생각에 스스로 창녀의 옷차림을 하고 시아버지가 가는 길가에 서 있다가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어서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창녀의 자식과도 같은 이들이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섭리가 유다 지파로서 시작되었겠습니까? 다말의 공로 때문입니다. 거기서 사위기대를 회복할 수 있는 조건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오신 것입니다.

다말의 쌍태 베레스와 세라도 복중에서 싸웠습니다. 세라의 손이 먼저 잠깐 나왔으나 동생인 베레스가 세라를 밀치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세라의 손과 같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주의가 공산주의입니다. 오시는 주님이 공산주의를 밀치고 세계를 제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공산주의를 넘어뜨리기 위해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은 선생님이 갖다 붙인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뒤에 있는 아주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들이 믿지 못하겠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근원이 잘못되었으니, 즉 뿌리가 잘못 심어져 있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됩니다. 형님으로 태어나서 전부를 주관했어야 할 하늘편이 동생으로 태어나 처량한 운명이 되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것을 교체해야 됩니다. 교체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한다구요? 복중에서부터 싸워서 교체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말 이후에 어느 섭리요소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느 한 때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복중에서 굴복당한 사탄은 참소조건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복중에서부터 사탄은 참소조건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조건을 갖는 날에는 파탄됩니다.

25-191
훌륭한 마리아의 신앙심
여러분들에게는 참소조건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을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복귀되지 않습니다. 사탄 이하의 취급을 해야 복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정도까지 내모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벼랑길에 떨어뜨려려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죽을 각오를 해야 복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라 하더라도 역사상의 어느 여자보다도 강한 마음으로 벼랑길을 기어올라가야 됩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천번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어야 됩니다. 기어오르다가 나자빠지고 떨어져 죽더라도 `아! 나는 누굴 위해 죽습니다’ 하면서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지방으로 전도하러 보낼 때 먹을 것을 비롯하여 아무것도 갖지 않는 벌거숭이 상태로 내쫓는 것입니다. 이거 잘하는 것이겠습니까,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말이 씨족을 복귀하는 놀음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레스가 승리의 간판을 들고 이 땅 위에 탄생함으로 말미암아 혈통을 복귀하고 또 그럼으로써 그는 승리의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가 속한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권은 세계적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판도가 안 되었기 때문에 주님이 그 당시에 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천년이 지나 국가 형성을 위해 공고한 기반을 갖춘 후에 예수님이 강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마리아에게는 아무런 전통도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다 지파의 여성, 이스라엘 민족의 여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잉태할 것을 얘기할 때,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다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건 혁명입니다. 당시의 여자에게 있어서 새로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전부 반대할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마리아만은 거기에서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선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악의 후손이 번식된 이 땅 위에서 악의 모든 인륜도 덕을 저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자로서의 전부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위해 혁명의 깃발을 들고 나선 단 하나의 여성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 이래 하나님의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지상의 여성으로 마리아를 대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에게는 아버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습니다」 누가 예수의 아버지입니까? 예수의 아버지가 있어요, 없어요? 아버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못 찾았다면 예수가 영계에 가서 얼굴을 들겠습니까, 못 들겠습니까? 지금까지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의 아버지를 찾아 줘야 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아버지도 영계에 갔다면, 그래서 영계에 있다면 예수가 그 아버지에게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부모가 세상에서 볼 때, 좋다는 행동을 해서 예수를 낳았습니까, 나쁘다는 행동을 해서 낳았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결혼식을 한 후에 예수를 낳은 것입니까? 또 예수의 아버지는 총각이었나요, 부인이 있는 사람이었나요? 가정을 가진 남자였습니까, 독신이었습니까? 이런 것은 원리를 공부하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물어 보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예수의 아버지는 총각이어서는 안 됩니다. 다말의 계대를 복귀하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말이 어떻게 해서 베레스를 낳았습니까? 시아버지 품에 들어갔지요? 그거 잘한 일입니까, 잘못한 일입니까?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시아버지 품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이런 말을 한다고 진짜 이단 괴수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새겨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사랑의 역사 중에서 제일로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멋지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면에서 다말과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밀히 얘기하면 예수의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예수의 아버지를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 중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잘 믿고 몇 고비만 더 넘어가면 다 가르쳐 줄께요. 그것을 모르고 교회 다니면 천당에 가서도 예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역사를 모르고 영계에 가서는 예수님을 모시지 못해요. 모실 수 있는 인연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잘 알아야 됩니다. 어때요? 여러분,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것을 알 것 같아요, 모를 것 같아요? 얼굴을 보니 알 것 같아요, 모를 것 같아요? 정신만 차리면 알 수 있지요. 여러분도 알잖아요?

25-193
하늘편 왕자로 태어나신 예수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기독교가 알고 있는 것은 예수의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고,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예수의 아버지가 지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원리를 공부하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세시간 이내에 찾아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또 그것만 연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떠했습니까? 그녀는 수많은 여성 가운데 사랑의 혁명의 기지를 들고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하늘 뜻을 위해서 제물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거리에서 돌맹이로 맞아 죽는 처량한 운명이 되더라도 당당히 나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역사를 가로막고 나선 것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입장이 오더라도 하늘을 위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역사를 가로막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괜히 마리아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는 하늘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겠습니까? 그것은 공연히 식은 밥 먹고 더운 수작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자 이만큼 얘기했으면 많이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 위에 예수를 낳게 되었지요. 예수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혈통적인 죄를 청산한 기반 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했다구요? 시집간 아줌마 다말이 했습니다. 그러면 그 다말을 통해 복귀의 길이 완결지어졌습니까, 안 지어졌습니까?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녀인 마리아에 이르러 완결짓는 것입니다. 그중 다말은 타락한 해와의 상징이요, 마리아는 복귀한 해와의 상징입니다. 다말은 타락한 인류의 어머니의 상징이요, 마리아는 복귀해야 할 본연의 어머니의 상징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두고 안팎으로 딱 들어맞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천민이 못 되었습니다. 선민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를 통해 가지고 비로소 제일의 천민의 대표자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입니다. 4천년 만에 비로소 하나님편을 중심삼고 싸움의 역정을 거쳐 사탄이 안팎으로 참소할 수 없는 순수한 자리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천사가 동기가 되어 타락하였으니 반대로 하늘편 천사인 가브리엘 천사가 동기가 되고 천륜을 배반한 해와가 아니라 천륜을 세우는데 협조한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은 탄생한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 이 땅 위의 여자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삼은 하늘편 여자를 통해 낳은 남자가 예수님입니다. 모자협조라는 것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아들은 역사상에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혈통적인 면에서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복중에서부터 그랬다는 거예요. 마리아가 혈통적으로 계대를 이어 가지고 비로소 천주적인 심정을 대표하여 천륜 앞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기반을 결정짓고 예수를 낳았기 때문에 비로소 천지에 새로운 왕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갖다 붙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 성경에 있는 말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틀림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을 크게 보면 남자와 여자, 이 둘밖에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36억의 인간이 살고 있지만 결국은 남자와 여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가 두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몇 사람이 있었습니까? 두 사람이었지요? 그러므로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자가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아 타락했기 때문에 하늘편의 여자가 새로이 나와야 타락권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나왔어요, 안 나왔어요? 안 나오면 안 되는데 아직 안 나왔다는 것입니다.

25-195
남자는 여자를 복귀(재창조)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 다음에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마치 해와가 아담을 낳은 입장이 되어 있습니다. 거꿀잡이가 되어 있습니다. 해와가 아담을 낳을 수 있어요? 하나님이 낳아야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낳기는 했는데 몸뚱이는 해와로부터 타락의 요소를 받아서 해와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처럼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입니까? 「하나님요」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원리의 법도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거꿀잡이가 된 거예요.

창조법도상으로는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다음에 아담을 본 따서 해와를 지었잖아요? 그러니 아담이 해와를 낳아야지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꾸로 된 거예요. 성경에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해와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지만, 정말로 갈비뼈를 뺏다는 말이 아니고 남자를 본 따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진짜로 갈비뼈를 취하여 해와를 만들었다면, 남자는 여자보다 갈비뼈 하나가 부족해야 하는데 부족하지도 않을 뿐더러 남자의 갈비뼈는 더 굵고, 더 큽니다.

원래 여자가 남자로 말미암아 나온 것인데 지금은 남자가 여자로 말미암아 나온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거 바로 된 것입니까, 거꾸로 된 것입니까? 거꾸로 된 거지요. 그러니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타락한 어머니 해와 말고, 타락하지 않은 딸 해와가 있어야 됩니다. 야곱의 처 레아와 라헬은 바로 이들을 상징한 것입니다.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가 십보라를 두고 구스 여자를 얻었다고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했다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문둥병이 걸렸다는 것은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뜻을 이루고, 천리의 원칙을 바로잡으려니 불가피했습니다.

「그러면 아담보다 여자가 먼저 창조됐다는 것입니까?」 지금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복귀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담이 여자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천년 동안 해와를 찾아온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그럼 이 여자의 중심이 대번에 나오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6천년 역사의 사연을 겪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실패했던 것을 전부 다 탕감하고 이겼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해와가 나올 때까지의 내정적인 싸움입니다. 오시는 예수님 일대에 있어서 승리의 간판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복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에 이의 없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여자를 찾는 데는 마리아와 관계없는 여자를 찾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딸과 같이 키워준 여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마리아가 수고한 공적을 쏟고 마리아뿐만 아니라 요셉까지도 온갖 정성을 들여 모든 것을 상속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찾아 주려고 하는데 여기서는 또 어떠한 자리에서 찾아 줘야 되느냐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부잣집 딸 데려오면 되겠지 할지 모르지만 안 됩니다. 복귀역사노정의 원칙에 맞아야 됩니다.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횡적인 문제를 종적으로, 종적인 문제를 횡적으로 탕감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는 4천년 역사의 내정적 심정을 감아 쥐고 그것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가지고 사탄을 때려 눕혀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랑을 중심삼고 해와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아담이 승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담 앞에서 사탄이 `굴복하였나이다’ 하도록 사람으로부터 굴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사탄이 예수님 앞에 찾아진 해와를 대신하여 `천년 만년 살고 지고…. 새로운 나라에 주인이 되시옵고, 천국에서 새출발하시옵소서’ 하며 해와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하늘나라가 출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5-197
사탄으로부터 여자를 복귀해 오려면
그런데 그렇게 하자면 대단히 복잡합니다. 6천년의 역사를 통해 엮어져 온 사연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관계할 내용들이 아닙니다. 부모들이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태어나기 전에 벌어진 일이며 다만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남아진 문제이지, 역사에 남아져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역사에 타락이 없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선생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오(눅 12:49)”라고 했는데 그 말은 무슨 뜻입니다? 그 여자를 찾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터전에서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받들고 자연굴복할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귀가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30여 년 동안 이 일을 하려다가 수고만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신랑’이라는 명사를 남겨 국가적인 복귀의 기준에서 세계적인 복귀의 기준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또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에 기독교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 세계가 그 품에 들어갈 수 있는 권내에까지 온 것입니다.

세계를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이분한다면 하늘편이 우세합니다.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재차 해와를 찾는 일을 전개해서 복귀섭리를 끝마쳐야 됩니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이 마리아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에게는 마리아의 승리적 기반이 있기 때문에 그 조건을 대신할 여성을 세우면 됩니다. 그렇지만 마리아와 같은 여성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 여자는 오시는 주님보다 나이가 많으면 안 됩니다. 될 수 있으면 어려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재창조 역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세 이하의 연령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참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20세가 넘으면 안 돼요. 복귀섭리에는 이렇듯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어떤 사람이냐? 나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한이 없겠구만요. 벌써 아홉시가 되었으니…. 이제 그만 할까요? 「아닙니다. 더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분, 이런 엄청난 내용을 알기 위해서 선생님만큼 간절히 몸부림쳐 봤습니까? 「예」 대답하는 것 보니 기분이 나빠요. 진짜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 노릇 하게요? (웃음) 여러분들이 원리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목적에 점점 가까와지는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와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세밀한 얘기를 왜 해주는가 하면 성화대학생들의 머리들이 전부 알락달락해서 다르거든요. 그래서 세밀히 얘기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자세히 해부해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여러분을 믿고 있는데 과연 내가 믿는 만큼 보람이 나타날 것인가 테스트도 해보려는 것입니다. 테스트한다니까 기분 나쁘지요? 「아닙니다. 좋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테스트해도 거기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예」 정말이예요? 「예」 한번 두고 봅시다. 걸리나 안 걸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순식간에 타락했습니까? 아니면 몇 달을 두고 타락했습니까? 순식간에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도 순식간에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에라도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시집 장가를 가라고 하면 여러분은 가야 합니다. 시집 장가를 가서 복귀하게 된다면 당장에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손을 들고 축복해 주면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럴 수 있습니까? 「예」 어디 여자들에게 물어 보지요. 괜찮아요? 「예」 정말이요? 한번 해볼까요? 「예」 (웃음) 그것은 선생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암만 해도 안 돼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하늘의 공법에 의해 하늘에 떠억 입적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번 성화대학생 총회에서 그렇게만 되는 날에는 하늘을 향해 출발하는 기념 케이스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시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웃음)

25-199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된 이유
예수가 왜 죽었습니까? 아버지를 못 찾아서, 아버지를 모시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를 모셨다면 예수가 죽었겠어요? 자식이 죽는데 죽으라고 그냥 놔 둘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있겠어요? 「없습니다」 만일 부모가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 가르쳐 주었겠어요, 안 가르쳐 줬겠어요?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자식 대신이라면 욕을 먹고 죽는 자리라 해도, 그 자리에 나가 자식보다 먼저 죽으려고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아버지 어머니가 없어서, 그런 아버지 어머니를 못 찾아서 죽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나가 자빠질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인데 예수님이 피조물로 태어나서 그렇게 죽었다고 하면 하나님이 죽었느냐고 할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람 속에 들어와 있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이 악한 거예요? 그렇게 믿는 기독교인들은 전부 다 망해야 됩니다. 참이 왔으면 거짓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른 길을 갔는데 돌아올 줄 모르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밤이 낮이 될 줄 모르면 영원히 영원히 무저갱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의 운명은 통일교회를 붙들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꺼떡대는 사람들도 전부 선생님의 열손가락 안에 있습니다. 여기에 걸리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걸리면 못 올라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죽더라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진짜 선생님이 필요합니까? 「예」 진짜로 필요해요? 「예」 말들은 잘하지. 내용은 그렇지 않으면서…. 여러분은 안테나가 둘이잖아요. 하나예요? 「예」 제일 높은 안테나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낮은 안테나는 수없이 많을 수 있지만 제일 높은 안테나는 세계에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안테나입니다. 여러분은 아래에 있더라도 선생님이 꼭대기에 올라 있으면 여러분들도 제일 높은 안테나인 것입니다. 제일 높은 안테나는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버지가 있는데 그 아버지를 못 찾아서, 못 모셔서 죽었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했고, 그의 어머니가 어머니 노릇을 못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거 무슨 말이냐? 이런 말을 들은 사람 있어요? 「예」 이런 말은 선생님이 오늘 처음 하는데 언제 들었어요? 예수님의 아버지가 책임을 못해서 예수님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종과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25-200
예수님을 중심한 탕감복귀섭리
그러면 마리아 가정, 즉 요셉 가정을 복귀원칙에 의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통일교회의 원리는 문선생이 갖다 맞춘 것이 아닙니다. 통일원리 중에 타락론을 중심삼고 보면, 에덴 동산에는 아담 해와가 있었고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귀하는 데도 그중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셉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 될 수 있어요? 「없습니다」

마리아는 누구의 어머니예요? 예수의 어머니입니다. 예수는 아담의 대신이고요. 그러면 요셉은 뭡니까? 이는 예수님과도 마리아와도 관계가 없어야 할 사람입니다. 천사장 대신이지요. 천사장의 복귀형을 실체로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뭐냐? 해와의 대신입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해와를 먼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해와를 먼저 찾아야지요? 하나님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섭리를 하십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누가 여자를 빼앗아 갔습니까? 사탄이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자를 다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편에서 마리아를 찾는 것입니다.

요셉이라는 존재는 천사장 대신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면 예수에게 아버지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예수에게도 아버지가 있어야 했으나 예수는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요셉도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마리아만이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에게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가르쳐 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그 책임을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2의 아담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탄이 첫째 아담을 유인했기 때문에 사탄을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을 방지해야 합니다. 사탄이 사랑을 중심삼고 침범함으로 말미암아 사탄편의 아들이 나왔으니,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을 방어해야만 하나님편의 아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기에서 마리아와 예수가 협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형식적으로 부부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복귀하기 위해서 그러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순서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실체가 없으므로 사탄의 실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그렇게 해놓고 사실적으로는 누구하고 결혼한 거예요? 예수님의 아버지하고 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해와가 아담과 약혼해 놓고 사실적으로 천사장과 관계를 맺었지요? 그것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아버지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없어야 되겠습니까?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원리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버지 어머니는 무엇을 해야 했느냐?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사탄에게 침범받아 원수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예수의 아버지 어머니는 국가적 세계적 기준에서 사탄에 대한 울타리가 되어 예수를 보호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절대로 사탄의 침범을 받은 아담처럼 되게 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듯 완전히 하나되어 사탄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동생이 있었는데 예수에게 동생이 있어야 되겠는가, 없어야 되겠는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마리아와 예수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동생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동생들이 있었잖아요?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아버지를 통해 마리아와 하나되고, 요셉은 곁다리가 되어서 종살이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요셉과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곁다리인 요셉을 떼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사탄에 속여서 타락시켰기 때문에 탕감복귀도 속여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요셉과 형식적인 부부로 살짝 속여 놓고 내용적으로 예수와 그 아버지, 그리고 마리아가 짜서 사탄을 굴복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요셉이 걸려들지요. 원리가 딱 들어 맞지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위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탄과 하등의 상관의 없는 타락하기 전 에덴에서의 아담의 자리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 갖고 처녀 해와를 찾아야 했습니다. 처녀 해와만 찾았더라면 뜻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의 가정이 이루어졌더라면, 사탄 세계야 어찌되든 예수의 종족은 자꾸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25-202
축복받으려면 자기 마음대로 사랑해서는 안 된다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 아들딸 잘 낳지요? 자꾸 번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축복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통일교회 안에서 결혼을 할래요, 아니면 마음대로 결혼할래요? 합동결혼식 하는 것이 기분 나쁩니까? 「아닙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 정해 주는 대로 시집 장가 갈래요? 대답해 보십시오. 맘대로 갈래요, 선생님이 정해 주는 대로 갈래요? 「선생님이 정해 주는 대로 가겠습니다」

그러려면 마음대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눈길도 함부로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거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지금 대학가가 망해 가는 이유는 아담 해와가 10대, 즉 청소년기에 타락한 것처럼 타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때의 수확시기, 즉 가을절기와도 같은 때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전부 복귀하려는 것입니다. 천리법도에 따라서 수습하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남자들은 함부로 젊은 여자들의 손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젊은 여자의 손목을 잡는 날에는 이미 총각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원리의 말입니다. 복귀원리의 말입니다. 그래 여러분 남자들, 젊은 여자의 손을 잡을래요, 안 잡을래요? 「잡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는 전부 다 천사장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대로 색시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결혼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자들은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의 입장으로 주님편입니다. 세상 남자들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타락할 때 두 과정을 통해서 타락했으므로 복귀하는 데에도 두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사모해야 됩니다. 싫어도 그래야 합니다. 싫어도 선생님을 좋아해야 돼요. 통일교회의 여자들은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그래야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여러분을 시집 보내려면 보낼 수 있고, 전도를 보내려면 보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검둥이한테 시집 보낼 수도 있고, 안 보낼 수도 있습니다. 또 미국 사람한테 보낼 수도 있고 안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거 좋아요, 나빠요?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좋다고 하는 사람들만 나와 상관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할머니까지 선생님편에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녀들이 선생님편으로 오니 세상 남자들의 기분이 좋겠어요? 그래서 세상 남자들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몰아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그러는 일은 없습니다.

25-203
하늘편 천사장이 되어야
원리로 볼 때 세상의 남자들은 천사장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혼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본연의 부모가 결혼을 못 해봤는데 껄렁껄렁하고 시궁창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제멋대로 사랑을 해요? 그런 사랑은 비법입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가 독신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예」

그러면 남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도록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취급을 받아야 됩니다.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간부(姦夫)의 입장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족속들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의 종 노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어라’고 하면 `예이!’ 하고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복귀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제일 힘든 일을 남자들이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인 없는 여자들을 마음대로 유린했지만 앞으로 주님이 오시게 되면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면 복귀가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말인가요, 원리의 말인가요? 똑똑히 얘기해 보십시오.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여러분들, 이것이 공갈하기 위한 선생님의 말입니까, 원리의 말입니까? 「원리의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원리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니 남자들을 몰아야 돼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천대받아 왔습니다. 50여년 동안 싸워 나왔는데 아직도 선생님에게 화살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사탄편 천사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늘편 천사장이 되어 이놈의 사탄들을 때려잡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앞장세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탄세계의 공석에 나타납디까? 나타나는 것을 봤어요? 될 수 있으면 안 나타나고 여러분을 대신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늘을 배역(背逆)하고 천지의 법도를 그르쳤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을 지지하는 천사장의 입장에 서서 하늘 앞에 충신의 도리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복귀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앞장세우는 것입니다.

25-204
남자들은 종의 종의 입장에 서라
그런 시대가 오기 때문에 세계에 미스 코리아, 미스 아메리카, 미스 유니버스 등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남자는 땅에서 열매맺을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열매맺어야 됩니다. 땅은 여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땅에서 논위되는 것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미스 코리아니 미스 유니버스니 미스 뭐니 뭐니 하는 거예요. 남자는 하늘에서 논위(論謂)가 될 것입니다.내가 알기로는 그런 세상이 된다고 하기 때문에 신이 나는 것입니다.

세계적 미스터 챔피언은 누구냐? 오시는 주님입니다. 세계적 미스터 챔피언이기에 세계의 주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암탉이 울어야 할 때입니다. 여자들의 치마폭을 중심삼고 섭리해야 할 때예요. 통일교회 개척의 선봉자는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이었어요. 그 다음에 남자들이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지구장들이 선생님한테 와서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는데 남자들은 여자들보다도 더 나를 신봉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종의 족보에서 모면할 것입니까? 털어 보면 먼지만 많이 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학가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활개치던 사람들이 여기 통일교회에 와서 쫄딱 망했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웃음) 그러나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새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노릇을 시키는데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떤 사람들을 동원했느냐? 고등학생들을 동원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장성급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복귀역사를 담당해야 하는데, 고등학생들의 입장이 복귀역사의 중심이 돼야 할 장성기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대학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학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천명을 이루어야지요. 운명을 초월하고 운명을 주관하고 천명을 따라가야 합니다. 천명을 대표해서 미래를 개척하여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10대가 필요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그때에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도 20세 전후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일을 하기 위한 그때, 그 시대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천년 만년 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때 참석한 사람들이 그 환경에서 터전을 마련하여 한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여러분을 앞장세워야 되겠습니다. 대학을 만들어서라도 공부시키려고 하는 내가 대학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다는 것은 타락의 동기와 똑같으므로, 대학생들은 지금까지 의붓 자식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습니까? 「예」

그러므로 선생님한테 불평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은 원리원칙에 의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해야 할 책임을 완수하고 그때가 지났으므로 여러분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대해 책임을 다할 때에 대한민국은 복귀가 될 것이기에, 그 책임적인 기반을 닦기 위해 70년대로 넘어서려는 이 시점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학생에 대한 관심을 높여 10월달 이후로 원리연구회를 중심삼은 활동을 강화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해가 돼요? 「예」

25-206
성화대학생들의 갈 길
그럼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출발해야 하느냐? 종의 종의 탈을 벗고, 하늘을 배반하던 그 역사적인 종의 탈을 벗고 하늘 앞에 충신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나라에서 제일 소외되는 계층, 노동판이나 저 빈민굴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봉사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빈민굴의 밑창을 누가 만들었느냐? 사탄이 만들었습니다. 사탄이 인간을 억압하고 유린하여 만든 것이므로 하나님의 종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 천사장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살 길이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거기에서 구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원수에게서 갈라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민족의 맨 밑바닥에 서야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본부에서부터 맨 끝, 맨 밑바닥 농촌의 머슴살이라도 해야 됩니다. 제일 밑창의 자리에까지 가서 하늘을 위하여 심정을 연결시키면 반드시 승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고받으면 번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반대하는 국가의 환경을 터쳐 내면서 면(面)에서부터 군(郡)을 거쳐 서울까지 온 것입니다. 이 단계를 넘어설 때까지 대학가에 있는 여러분의 참여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앞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근본적으로 학교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금까지 수고한 지구장, 지역장들을 대학에 보내서 졸업하게 해야 됩니다. 그들을 학교도 안 보내고 고생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선생님이 책임져야 됩니다. 어떻게든지 급속한 시일내에 지금까지 수고한 고등학교 출신의 지구 지역장들에게 대학 졸업장을 받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각성하고 스스로 어느 대학이든 가서 졸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린 대학을 나왔으니 이제는 지금까지 수고한 선배들과 교대하여 우리가 이 조직의 선봉자가 되자’ 하며 수고한 그들을 부추겨 주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들은 아벨적인 입장이요, 학교를 다닌 여러분들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아벨의 입장에 서서 선배들을 모시고 공부시키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고 그들을 대학에 보내야 됩니다. 그러면서 남아진 십자가를 여러분이 담당하겠다고 하며 나서지 않고는 여러분은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금년에 이러한 조건을 세우고 이러한 표준을 세우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지금 선생님이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지금 성화대학생들에게는 학교를 졸업하면 갈 길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딴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 코, 손 등 몸과 마음을 전부 다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일생을 두고 이 나라를 구하는 데 선봉에 서고 이 세계에 횃불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는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이 문제입니다.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의 원리가 이렇게 멋지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좌우 안팎을 밝힐 수 있는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나이의 한은 종의 종의 신세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억울하지만 그 종의 신세를 모면하고 아들의 깃발을 들고 나서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우리 앞에 오고 있는 것입니다. 7년이라는 한계선을 중심삼고 그런 아들이 될 수 있다면 역사적인 혁명의 대왕자의 자격을 결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7천년에 걸려 역사하신 것을 7년에 완결지을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갖추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5-208
종의 탈을 벗으려면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여러분들은 종입니까, 아닙니까? 기분이 나쁘더라도 사람은 진리 앞에는, 사실 앞에는 솔직해야 됩니다. 틀림없이 종이지요? 「예」 이 말이 틀렸다는 사람은 손들고 얘기해 보십시오. 여러분들 대학에 다닌다고 꺼떡대는데,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얘기해 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종이 틀림없나 보군요.

그러면 여러분은 종으로 천년 만년 살고 싶어요? 아니면 인간의 무한한 가치와 천주적인 본연의 입장을 보장받을 수 있는 특권, 이 특권을 뒤로 돌린 채 종의 자식의 자리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말이예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이 땅에 인간들에게 독신생활을 하라고 하시는 등, 고생을 시켜 가지고 그것을 맞추어 뱅뱅 도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그렇게 공식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고생을 시켜 주기 바랍니까, 바라지 않습니까? 「바랍니다」 그런데 `나는 혼자 고생하겠다. 나 혼자 전도하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 하게 되면 사탄편의 꼬리를 그냥 달고 자기 혼자 한다는 말이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해야 됩니다. 사탄이 타락시켰으므로 그것을 해결짓지 못하고 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법도적 조건, 사탄세계에 공인을 시킨 그 법도적 조건에 의해 가야 합니다. 그런 명령을 할 수 있는 특권의 왕자가 바로 주님인 것입니다.

어떤 나라의 특사가 병신 같다고 해서 특사의 대접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병신 같다고 하더라도 특사는 특사입니다. 그런 특사에게 병신 같다고 특사 대접을 안하면 국가가 걸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물며 사탄세계에 하나님의 왕자, 하나님의 아들딸, 하늘의 사람이 하나님의 가라는 명령에 따라서 왔는데, 그가 병신 같다고 하늘의 사람 대우를 안해서 되겠습니까? 그러면 하늘의 공법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모가지가 걸려요. 그러므로 하늘의 공인을 받고 고생해야지 혼자 한다고 꺼떡꺼떡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예」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따라가기 힘드니 세상에 나가서 돈을 좀 벌어다가 돈을 갖다 바치면 나를 받아 주겠지’ 하지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의 탈을 벗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종의 탈을 벗으려면 이 종들은 어떻게 해야 탕감복귀가 되느냐? 이렇게 얘기하다보니 한정이 없구만요. 인간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으므로 복귀되려면 장성기 완성급까지 가야 됩니다.

타락은 원리권내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타락한 자리는 종의 종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종의 자리에서 특전을 받아 가지고 양자의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종의 자식이 양자가 되려면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요? 양자가 되려면 의붓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해 가지고 비로소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의붓아버지의 입장으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거예요. 성경에도 `복음이 세계에 전파되지 않고는 내가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붓아버지를 완전히 세계에 소개하지 않고는 참아버지가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어야 되겠어요, 안 믿어야 되겠어요? 「믿어야 됩니다」 종이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 믿으면 안 됩니다.

본래 종들에게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라고 했잖아요? 그런 자리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 하나님의 자녀의 인연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양자의 이름으로 아바 아버지를 부른 것입니다.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절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양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직계의 아버지를 부를 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똑바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기독교와 다릅니다. 기독교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짬봉이예요. 그렇지요? 양아버지와 참아버지의 과정을 거치려니 기독교역사를 인계받아 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서 직계 자녀의 권한을 부여 받고 넘어가야 합니다. 양자의 기준을 중심삼고 직계의 권한을 상속받지 않고는 장성기에서 완성기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완성기는 타락하지 않은 직계 자녀가 올라가는 곳입니다.

25-210
완전히 부정해라
그런데 직계 자녀인 아담 해와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담 해와 두사람이 잃어버렸으므로 두 사람이 사랑을 중심삼고 자녀를 낳으면서 복귀해야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의 축복은 이 자리에 두 사람을 세워 자녀를 번식하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완성기란 직계 자녀의 이름으로 올라가는 권(圈)입니다.

그곳에 올라가려면 7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러니 7년노정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가기 싫은 사람은 그만두어도 좋습니다.

예수님에게도 33세에서부터 40세까지 장성 단계를 넘어 완성기로 가야 할 7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가지 못한 이 7년이 남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7년 대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40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원리를 4수를 완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꾸민다 해도 이렇게 잘 꾸밀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벌어진 일이니 틀림없습니다. 이런 섭리를 알고 나면 하나님이 없다고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좀더 깊이 알게 되면 절대 그런 말을 못합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 선생님이 얘기하면 그 누구도 꼼짝 못합니다. 아무리 이론에 밝은 사람이라도 해도 선생님에게 걸려들면 굴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선생님이 이런 역사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한(恨)입니다. 이 세계가 전부 선의 세계가 되면 그때에는 밝히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품고가야 할 사연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성을 많이 들이면 영계에서 가르쳐 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종의 신세를 면해야 되겠어요, 면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면해야 됩니다」 육신의 이 피는 누구로부터 받은 것입니까? 이 육적 오관의 감정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모두 사탄으로부터 받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눈을 빼고, 코를 찢고, 귀를 터뜨리고, 혀를 자르고, 다리를 얽어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철저히 부정을 해야 돼요. 부정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완전히 부정당해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로부터 사회로부터 남자, 여자, 어린애, 할아버지, 자기 친척에게까지 사람이란 사람 모두에게 부정당해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부정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탕감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하는 것이 고마운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고마운 것입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반대했지만 그것은 결국 탕감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워 준 것이 되었기 때문에, 6천년 동안 사탄이 반대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일을 도와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거 알쏭달쏭해 하는 것을 보니 모르고 있구만요. 모르겠으면 모르라우요.

25-211
선배들의 수고의 터 위에 새로운 꽃을 피워라
선생님이 여러분을 종 취급하는 거 좋지요? 「예」 지금까지 대학가에 있는 사람들, 선생님에게 종 취급 당했지요? 「예」 그러나 종 취급 당한 것이 여러분한테는 복입니다. 종 취급을 당하면서도 동생들로 말미암아 살겠다고 붙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벨과 부모가 합하여 가인을 복귀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기준이 지금까지 남아 나오기 때문에 형으로서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안했지만 대학교에 안 다닌 사람들 앞에 여러분들이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이는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탕감조건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꺼떡대는 사람들은 못난 사람들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재봉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여러분의 위치입니다.

이제는 아벨을 중심삼고 목회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수고한 터전 위에 꽃을 피우는 사명을 성화대학생들이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원리적인 입장에서 본 견해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환영합니까? 환영하는 사람은 쌍수를 들어요. 내려요.

그러면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인가? 어제 저녁에도 성화대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와서 자기들의 진로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습니다. 첫째로는 지역장 대리로 지방에 파송해 주시고, 둘째로는 원리연구회 활동을 하는 데 학생지도위원을 대학가 출신으로 배치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대학가에 세계적인 문화운동을 펴기 위해 대학생신문을 만들어야 되겠으니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통일산업 기능 주임으로 고려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그러한 요청에 대한 답변이 오늘 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답변이 됐어요, 안 됐어요? 「됐습니다」

선생님도 여러분 못지 않게 희망이 태산 같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류를 종의 길로 내몰아야 되기 때문에 선생님 자신도 먼저 종의 몸을 썼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여러분에게 종살이를 시킬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종살이를 시키려면 내가 먼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는 충실한 종이 되어서 세 살 난 아기까지 아침 저녁으로 모신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아기를 하나님같이 모신 것입니다.

또 선생님은 이가 들끓는 빈민굴에서도 살아 보았고, 석탄 짐도 져 봤고, 소금 짐도 져 봤습니다.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빌어먹어도 봤고, 창녀 소굴에 들어가서 그들을 악의 소굴에서 빼 주기도 했습니다. 별의별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런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선생님이 염려해야 되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역사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가짜입니다. 사기꾼이요, 이단자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진정 그들을 위했습니다. 선생님에게 그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기점에서 그 한을 여러분이 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감정적, 혹은 심정적 결의의 기점을 어디서 잡느냐? 그런 기점을 잡는 자리에 여러분은 선생님 대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서부터 눈물 흘리고 핍박을 받으면 여러분의 혈관에서 선생님의 피가 뜁니다. 그자리에서 여러분은 사탄을 때려 눕혀 역사적인 한을 풀어야 합니다. 원수 악당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25-213
이제는 성화대학생들이 민족 앞에 나서서 활동해야 할 때
여러분은 스승을 대신한 자리에서 부분 부분을 책임지고 싸우되 거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 싸움을 횡적으로, 즉 전 국가적으로 벌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여기에서 하늘의 해원성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 가서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 서야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세상에서 어느 민족도 견디지 못하는, 가장 핍박이 심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곤궁한 자리에 놓이더라도 여러분은 이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곳에 떨어졌었습니다. 그런 곳에 나를 밟고 나를 불태우고 죽이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손을 붙들고 권고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선생님이 한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런 곳에 가서 그들과 더불어 동하고 그들을 눈물로 위로해 줌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맺혔던 이 민족의 한을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맺혀 있는 이 민족의 원한을 풀어 주어야 그때부터 민족 해방운동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눈을 감고 여러분들을 내몰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1차 40일 노정에서 20일을 중심삼고 나간 것입니다. 그때 과로로 늑막염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통행금지 따위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새벽 3시, 4시에도 자면서 달렸습니다.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었고, 옆구리가 터져서 들어눕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절박할 수 없는 심정으로, 사령관의 책임을 다해야 되겠다는 마음만으로 일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에게 심정적으로 조금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길가에서 사람들을 눈물로 만났다가 헤어질 때는 손을 잡고 하늘이 함께한 심정의 인연을 간직하라고 하면서, `내가 승리하여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에 나타날 때까지 죽지 말고 참고 나가라’고 했는데, 내가 그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지도하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길이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전도활동을 지도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코방귀를 뀌면서 `선생님이 고생하라고 하시는 것은 본질적으로 선생님의 태생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겠지’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누구보다 하늘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1차 7년노정을 걷던 60년대에는 일자무식자인 여자들과 소년 소녀들, 국민학교도 못 나온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위해서 눈물과 피땀을 흘리며 정성들였습니다. 그러나 이 2차 7년노정에서는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지식층의 젊은 대학생 남녀들이 하나되어 이 민족 앞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민족은 순식간에 복귀될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이러한 사명이 있는데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선조가 불행해집니다. 선조뿐만이 아니라 친척과 후손들까지도 불행해집니다. 그러니 결국 한국 민족이 불쌍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달 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혜택을 받았으므로 이 민족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면 할머니를 위하고, 할아버지면 할아버지를 위하고, 아주머니면 아주머니를 위하고, 젊은 사람이면 젊은 사람을 위해서 최대의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대학교에 다니는 여러분들도 전부 앞으로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원리적인 견해에 의해서 여러분이 가야 할 지표가 나왔습니다.이 길을 여러분은 옛날의 선생님의 형이나 동생의 입장에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청춘시대에 민족과 조국에 대해 품었던 사무친 한을 풀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외롭게 홀로 몰리고 쫓기나 봇짐을 싸던 그런 처량한 사정을 밟고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과의 싸움판에서 자리를 잡고 군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해원성사의 규칙인 것입니다.

반대를 하면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망하지 반대를 받는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만 믿고 나가면 여러분은 밀려나지 않습니다. 3년만 극복하십시오. 1960년에도 선생님은 3년 동안 징역살이 간 셈치고 거기서 종살이를 하라고 내보내었습니다. 생각나요? 지구장급들은 생각날 것입니다. 선생님도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탕감복귀해서 이겼다는 조건을 세워야 했었습니다. 선생님이 몰리고 도망 다니던 때가 있었으니 여러분도 지금 그런 몰림을 당하는 환경에 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적으로 탕감해야 할 것을 탕감하지 못하여서 남긴 역사적인 한을 여러분이 횡적인 길을 걸음으로써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길이라도 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감옥에라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는데는 혼자서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에 패자의 서러움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승리자의 권한을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에 있어서 몰아치던 모든 어려운 환경의 조건을 여러분이 인계받아 가지고 이 싸움에서 승리의 한 날을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일보 전진할 수 있는 특권적인 권한을 세우기 위하여 가는 것이지 퇴보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걷던 어려운 환경을 터전으로 해서 제단을 쌓아 올리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가야 할길이라는 것입니다.

25-215
인류와 공영을 도모하는 마음
여러분이 책임을 맡은 분야 그 자리가 죽을 자리라면 주저하지 않고 천번이라도 죽을 수 있다고 할 때 여러분은 복받는 것입니다. 한번 죽을 수 있는 자리와 천번 죽을 수 있는 자리와의 차이는 천양지차인 것입니다.

생활 가운데 어떠한 자리에서 하늘과 동행 할 것인가 하는 평가의 기준을 키워 나가는 생활이 통일교회의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저나라에 갔을 때 재산이 되는 것이요, 앞으로 새로운 세대에서 역사의 주인공이 되느냐 아니면 낙오자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경계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명심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종의 운명을 박차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내 몸뚱이에 6천년 전부터 있어 온 뿌리 깊은 사탄의 피와 세포를 응시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불살라 버릴까? 이것이 없어진다면 분신 자살을 천번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부정해야 합니다. 내 눈이 좋아하는 것은 전부 멀리하고, 싫어하는 것은 모두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전부 부정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반대를 받는 겁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자들은 전부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전체가 사탄의 반대를 받게 되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인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입니다.

끝날에는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다가 없는 자에게 주는 역사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하늘의 은혜도 복도 기성교회에 줬다가 전부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우리가 반대를 받고 고생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참을 친 사람들은 전부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선의 절대적인 기준을 놓고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 천지의 법도이므로 하나님도 선의 중심으로 완전히 결정하기 위해 우리를 반대적인 입장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종 노릇을 했습니다. 선생님도 종의 종살이를 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시골에 가서 목동을 보면 선생님에게도 목동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농부나 노동자를 보면 선생님에게도 농부나 노동자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식구’에 대해서는 선생님이 언젠가 직접 설명해 줘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부모나 형제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민족을 넘어 세계 인류와 더불어 공영(共榮)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있게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이 가라는 대로 갈 겁니까, 안 갈 겁니까? 「가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설교를 하는데, 왜 애들처럼 밀고 제치고 합니까? 선생님이 가만 놔두면 선생님 발까지 가져다 자기 발 만들겠구만! 선생님이 이만하니까 넘어지지 않고 버티지, 그렇지 않으면 넘어졌을 겁니다. (웃음) 이렇게 몸으로는 선생님과 닿기를 바라면서도 고생하라고 하면 싫다고 합니다. 또 하지 말라는 것은 잘도 하니 망종들입니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할래요? 안 하려거든 살겠다고 꺼덕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여러분은 거기에 가서 폭파되어야 합니다. 폭파될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지요? 「예」 여러분들은 이제 그곳에서 폭파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러니 농촌으로 가 농부가 되는 것도 참 멋진 일입니다. 상록수라는 소설에 나오는 채영신이라는 여자 주인공, 그 여자의 무엇이 빛나는 것입니까? 사랑이 빛나는 것입니다. 천하의 어떤 여자들보다도 사랑에서는 앞선 여자입니다.

25-217
탕감은 어려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더 훌륭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는 선생님의 훌륭하지 못한 점을 배웠다면 무엇입니까? 도망다니는 것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피난을 많이 다녔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도망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이 발판을 다 닦아 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도망다니지 말고 멋지게 맞상대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도망다니면서 게릴라 전쟁을 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는 전면전을 해야 합니다. 게릴라전은 김일성도 했지요? 여러분은 뭐예요? 「통일도당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들과 맞붙어서 전면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각 분야에서 결사적인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투쟁을 30대에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20년 연장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세월은 한의 세월이었습니다. 탄식의 역사요, 슬픔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벗겨 버리지 않고는 앞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이 살 길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선생님은 이것을 벗기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를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이 2천년 동안 나라없는 국민으로서 세계로부터 유린당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디에 가 있다가도 어려울 때는 달려와서 여러분과 같이 직접 어려움을 겪으며 여러분들이 책임을 했다는 조건을 세워 주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천만을 위하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대학을 나와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천운이 태풍같이 몰아치는 행로의 첨단에 설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동원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동원되겠습니다」 저기 방자 「방자역을 했던 학생」, 동원될 거예요, 안 될 거예요? 「동원되겠습니다」 방자라면 하늘의 방자 노릇을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하늘의 방자 노릇을 하려면 그만한 역사를 꾸며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그럼 하늘의 도령은 누구겠습니가? 오시는 주님입니다. (웃음)

방자를 하려면 오시는 주님의 방자는 해야지요. 여러분은 선생님을 대신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 권한을 아무렇게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서 `하나님, 아무 날 아무 시부터 저 혼자 7년노정을 출발하겠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오냐’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공적인 7년노정의 고난에 참석할 수 없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것 이상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7년노정에 참가하지 못하면 복귀고 뭐고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귀중한 공생애노정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여러분에게 부여하였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입니까? 오늘날 지상에 이 7년노정이 있다는 것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이 기간은 재창조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 7일 기간에 창조 완성을 못한 것이 한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7년은 누구나 가야 됩니다. 선생님은 21년을 거쳐 나왔습니다. 그래 여자들 7년노정 가겠습니까? 7년노정 다 끝마치지 않으면 축복 안 해줄 겁니다. 그래도 가겠어요? 「예」 남자들은? 「가겠습니다」

25-218
세계 복귀의 주역이 되라
대학생들은 어려운 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특히 머리 좋은 학생들을 제일 어려운 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머리 좋다고 으시댄 것을 탕감하려면 제일 어려운 곳으로 가야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일선에 있어야 하고 머리 둔한 사람들이 후방을 맡아야 됩니다. 이것이 성화 대학생총회라는 이름 밑에 여러분에게 하는 훈시의 제1조입니다. 훈시를 받은 기분 어때요? 「좋습니다」 만일에 선생님에게 이런 일이 있었으면 벌써 날아갔을 겁니다. 유도탄이 날 듯이 벌써 날아갔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것 하나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그래서 7년 동안에 전부 다 결판을 지었지요? 「예」 이때는 7천년 역사를 다 바쳐서 청산지어야 합니다. 원래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1차 7년노정 동안에 청산지어야 합니다.

이제는 세계복귀 시대입니다. 제2차 7년 노정의 3년기간인 70년까지는 세계의 모든 정세를 봐도 완전히 하나로 귀일되는 때입니다. 세계 정세가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러면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통일교회 원리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꿈같은 복귀의 배경을 말했는데 현실에서 그 근거가 제시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배경들을 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그 장본인이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말 듣고 기분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그들은 아마도 죽는 것만큼 기분이 나쁠 것이고, 여러분은? 「기분이 좋습니다」 죽는 것만큼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기분만 풀어 주면 가지고 있는 것 전부 다 빼앗아와도 눈만 껌벅껌벅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원리적 견해에서 볼 때 지금은 옛날에 선생님이 고생하고 쫓김받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여자들이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남편과 부모 앞에서 천대받던, 그런 말할 수 없이 슬픈 역사를 박차고 이제는 당당히 국가를 중심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분들의 슬픔을 해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사장으로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영화의 주연 배우와 같이 여러분들은 실제 세계의 주연배우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 주연배우란 역사의 최고의 첨단에서 행세하는 사람입니다. 그 주연배우가 가는 곳곳마다 하늘의 역사가 파동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러니 사나이라면 멋진 사나이답게 농촌에 가서 머슴살이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짐도 잘 지고, 밥도 잘 먹고, 맨발로도 잘 걸어 다니면 칭찬받는 것입니다. 이런 일도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왜정 때 머슴살이를 해봤습니다. 왜놈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많이 해봤어요. 그러나 머슴살이를 하더라도 멋진 머슴이 되라는 것입니다.

25-220
지금은 정면으로 진격해야 할 때
여러분도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는 없으니 이 길을 기쁜 마음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동지들도 많습니다. 이북에 가서 그곳을 교란시킬 패들도 있습니다. 나라하고 합동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멋진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세대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까? 족보도 없고, 혈족도 없고, 근거도 없고, 내용도 없이 나타난 것이 여러분 세대입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머슴살이하다가 떠날 때는,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눈물이 쑥 빠지게 해 놓고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면 여러분은 수수께끼의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해 놓은 일은 무언의 교육으로서 남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러한 일을 해봐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길을 걸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과 이념을 전통으로 하늘땅을 대신해서 여러분들에게 인계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길을 거쳐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손을 자르라면 손을 자를 수 있습니까? 「예」 발을 자르라면 발도 자를 수 있습니까? 「예」 그렇다면 잘라 버리십시오! 사지는 가인입니다. 그리하여 몸뚱이만 남아 빙빙 돌더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눈과 입과 코만 있더라도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배짱을 가지고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몇명입니까? 「96명입니다」 96명? 100명이 넘지 못하고 기분 나쁘게 96명이예요? 하나님이 사위기대를 채워 주니 100명이지요? 여러분은 정면으로 진군하라 이겁니다. 위기일 때는 정면 충돌을 하라는 겁니다. 살 길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간첩이나 첩보원들도 발각되었다고 해서 도망치면 죽는 겁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정면으로 사령관 앞에 나타나서 `이놈!’ 할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으니 그만합시다. 선생님도 지금 배가 고파 허기증이 느껴지는데 말씀 그만할까요, 더 할까요? 선생님은 독재자가 아니니 의논해 가면서 합시다. 말씀이 밥보다 더 맛있어요? 「예」 여러분은 밥 귀신이예요, 말씀 귀신이예요? 「말씀 귀신입니다」 밥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요? 「예」 그러나 말씀은 언제나 먹을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럼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것 먹을까요, 먹을 수 없는 것 먹을까요? 「언제나 먹을 수 없는 것요」 이럴 때 밥 타령하는 녀석들은 사탄입니다. (웃음)

25-221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나아야 한다
여러분은 이제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책임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알지요? 시집 장가 가 보지도 않은 처녀 총각들에게는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암만 사랑을 안다고 해도 사랑이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때가 되어 문을 열어야 진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알아봐야 복잡하기만 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좋아요, 안 가르쳐 주는 것이 좋아요? 솔직해야 돼요. 이것은 안 가르쳐 주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이때를 넘어가지요. 정 알고 싶거든 선생님이 했던 모든 길을 다 거치고 와서 `선생님, 이만 하면 알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라와 세계를 대표해서 장가가겠습니다’ 하면서 목을 붙들고 죽어도 후퇴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는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가르쳐 주기가 곤란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가다가 꺾어지는 날에는 예수님이 거꾸로 달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선생님 대신 간다는 말 들어 봤어요? 예수님의 형님이 될 자격이 없으면 하늘의 왕자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예수님보다 낫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옛날에는 칠십 이상이 돼 가지고 박사학위를 따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삼십대에서 박사학위를 많이 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미 해 놓은 밥을 떠먹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직접 농사지어 밥을 해 먹는것 하고, 해 놓은 밥을 먹기만 하는 것 하고 어떤 것이 더 쉽겠습니까? 요즈음 박사학위를 따는 사람들은 해 놓은 밥을 퍼먹기만 하니까 이십대, 삼십대에 박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2천년 전의 예수님보다 2천년 후의 우리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을 예수님보다 낫게 만들기 위해 가르쳐 준 것이 원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타락원리를 알았겠습니까? 설사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면 뭘 합니까?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원리를 알았다면 가만히 앉아 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찾아냈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찾아가서 `아버님 접니다’ 하고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처음에는 놀라다가 표정을 달리하며 시인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예수라면 충분히 아버지를 찾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를 찾지 못했으니 선생님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선생님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을 따라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여러분이 모실 만한 선생님이 됩니까? 돼요? 「예」

그러면, 그때 당시의 예수님하고 오늘날 이 시대의 선생님하고 누가 더 낫습니까? 말을 해도 내가 더 잘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비유와 상징으로 이야기한 것이 많습니다. 심문하면 걸릴 내용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가끔 딴 말은 하지만 엉뚱한 말은 안 합니다. 어떠한 말을 했다면 반드시 그 말에 대한 원인을 다 설명합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빨리 하더라도 걸려 넘어질 말은 안 합니다. 또 선생님이 예수님보다 못하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봤을 때, 선생님이 예수님보다 낫다면 예수님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선생님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또 예수님의 제자와 선생님의 제자인 여러분들 중 누구를 더 사랑하겠습니까? (웃음)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껄렁껄렁한 패하고 통일교회 진짜패하고 어느 쪽을 더 사랑하겠습니까? 「진짜패를 더 사랑합니다」 또 사도 바울보다 여러분이 나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부터가 다릅니다. 통일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합니다. 자,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창조목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대번에 대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전에 신학박사들이 모여 초교파운동을 하는 데에서, `하나님의 뜻이 뭣이요?’ 하고 물었더니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웃음) 질문을 했는데 쉽고도 어렵다니, 세상에 그런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우리가 그들보다 앞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이 세상 도서에 적혀 있어요? 그런 책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러니 도서관 중의 도서관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기가 황금과 다이아몬드보다 가치있는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꺼덕꺼덕하고 있으니 영계에서 조상들이 그걸 보고 그냥 놓아 두고 싶겠어요?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뜻을 위해 희생을 하겠다구요?

25-223
원수는 사랑하지 못해도 그 자녀는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됩니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은 시대를 분석할 줄 압니다. 시대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망하고 흥하는 길을 가릴 줄 압니다. 즉, 천운의 법도를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역사 중 제일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 어디냐?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심정의 역사를 들고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현시대를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한번 해볼 만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일을 하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사람 이하의 취급을 당하더라도, 양지에서 음지로 가게 되더라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에 벅찬 싸움을 오늘날까지 전개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원리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이 싸우게 되면 어디서부터 싸울 것인가? 자기 집에서부터 싸워야 합니다. 성경에도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의 가정을 먼저 복귀해야 합니다. 지금은 가정복귀 시대입니다. 선생님은 아직 가정복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선생님보다 낫습니다. 선생님은 전인류의 탕감복귀 해원성사를 하기 전에는 가정복귀를 못합니다. 그때까지는 집을 떠나서 벌판에서 싸워야 하는 겁니다. 그 싸움은 자기의 친척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자기의 혈족을 사랑하고, 내세우고, 품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제일 가까운 사람을 원수의 자리에 내세워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일 가까운 사람을 죽음의 자리에 내모는 것이 구원섭리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있어서도 집안 식구가 전부 원수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형님은 기도를 통해서 한국이 해방될 것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이 났지만 기도해 가지고 고쳤습니다. 그런 신령한 능력이 있는 형님입니다. 그 형님은 자신의 동생이 잘났는지 못났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역사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인 것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에 대해 그 한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절대적으로 복종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인복귀는 완성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역사에 이러한 근거를 남긴 형님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형님한테 원리말씀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문씨 종족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 형님, 동생, 사돈의 팔촌까지 문제까지 문제없이 복귀하는 것입니다. 동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두들겨 패는 겁니다. 내가 덩치가 이만하니 들고 패서라도 끌고 나오지 그냥 놓아 두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나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형제를 낳기는 열 셋을 낳았는데 팔 남매가 남았습니다. 아들은 둘뿐이고, 누이가 여섯인데 그 중에서도 어머니는 나를 제일 사랑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정성들인 손수건 한 장 사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늘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위하여 정성들이는 이상 세상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랑의 강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머니보다 세상을 더 사랑해야 되고, 처자보다 세상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화살을 들고 나온 원수는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그 원수의 아들딸들은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천사장은 사랑하지 못해도 천사장의 후손을 사랑하여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탄에게 속해 있는 아들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의 목사, 장로들의 아들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제자가 된다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5-225
요셉의 고민과 마리아의 고충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 시대에는 집안 식구들이 원수가 아닙니다. 종족적 메시아의 기대를 조성해야 하는 탕감원칙에 의해서 지금은 어머니 아버지를 전도할 수 있는 때입니다. 옛날에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환영하는 때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전부 이야기해야 되겠는데 점심 때가 됐습니다. 계속할까요? 선생님은 배고파도 괜찮은데, 여러분은 어때요? 「괜찮습니다」 오늘 헤어지면 언제 또 선생님과 만날지 모릅니다. 그렇지요? 「예」 선생님이 얼마만큼의 윤곽이라도 잡아 주게 되면 여러분이 나가서 싸우다가 도중에 죽더라도 멋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이야기해야 할 책임이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안 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함께 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함께 산것은 천사장과 해와가 또다시 합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천사장이 사탄편에 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사장이 예수의 편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약혼자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만 했는데 마리아의 배가 불러 오니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남자들 생각해 봐요. 자기는 여자에게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여자가 배가 불러 온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도 `오, 사랑하는 그대여, 어서 오소서’ 그럴 수 있겠어요? 솔직히 말해 봐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애인, 없으면 죽겠다고 했던 그 애인이 난데 없이 애기를 뱄는데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좋다는 사람은 미친 녀석입니다. 그렇잖아요? 약혼자 마리아가 어떻게 요술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애를 배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요셉은 마리아를 때려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고민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요셉이 못한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보통 남자는 못하는 일입니다.

요셉은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늘의 왕자가 태어나길 그리워하고 바랐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하늘의 뜻이 우리 가정내에서, 내 대(代)에서, 측근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요셉에게는 그런 것을 위해 언제나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도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의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낳아 놓고 같이 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천사한테 이야기는 들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꿈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 들어올 때 몽시로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눈 시퍼렇게 뜬 대낮에 천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꿈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꿈이야 맞는 꿈도 있고 개꿈도 있는데 그 꿈이 반드시 하늘이 가르쳐 준 꿈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요셉의 생각이 슬슬 바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자들, 아기 배면 무슨 증세가 생기나? 구역질을 하지요? 마리아가 헛구역질을 하고 밥도 못 먹을 때 요셉의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남자들, 잘 생각해 보라구요. 어서 더 맛있게 먹으라고 했겠어요? 그럴 적마다 자기가 이때까지 살아온 세상적인 관념이 앞서고, 습관이 앞서고, 전통이 앞서 굉장히 언짢았을 것입니다. 그런 표정을 마리아가 보면 그녀 또한 편했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수록 마리아와 요셉 사이는 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마리아는 숨을 죽이고 요셉의 눈치만 살피는데, 언짢아하는 요셉을 보니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요셉은 그 아이가 대관절 누구의 아이인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여러분들에게 약혼한 여자가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아이를 배고 있다면 상대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겠어요? 알아야 사생결단을 할 게 아니예요? 여러분은 여자에게 상대가 누구냐고 물어 보겠습니까, 안 물어 보겠습니까? 안 물어 볼 수 있다는 남자 손 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없구만. (웃음) 이것이 남자의 속성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셉도 물어 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대답을 강요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반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도 알고 싶은 것이 없겠어요? 그러니 알고 싶은 것은 알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다그치며 물어 봤을 것입니다. 몇 번이고 마리아가 대답할 때까지 물어 봤을 것입니다.

그때, 마리아는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답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대답했다가는 세계가 뒤집히는 것이니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요셉이 물어 올 때마다 대답할 수 있는 하나님이 가르쳐 준 비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신으로 잉태했다는 것입니다. 그 대답 잘했어요, 못 했어요? 「잘했습니다」

25-227
뜻과 멀어진 요셉과 마리아
성신이 무엇입니까? 성신으로 사람이 잉태되는 법이 있습니까? 성신으로 잉태했다는 말을 요셉이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 없지요. 그러니 싸움이 잦았을 것입니다. 이 말이 맞나 틀리나 생각해 보세요. 배는 점점 불러와 몸은 무거워지는데 요셉이 목수일을 하기 때문에 밥은 일찍해야지요? 그러니 요셉에게 마리아가 얼마나 몰라준다고 몸서리를 쳤겠습니까? 또 요셉은 요셉대로 마리아한테 못마땅한 점이 많았으니 서로 말다툼을 자주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몸이 무거워짐에 따라서 행동도 무거워지고 기분도 좋지 않은 날들을 지냈을 것이며 그럴수록 뜻은 멀고 인간적인 사정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여러분에게도 있었을 것입니다. 40일 전도는 나가라고 하는데, 학교 시험은 내일 모레이고 하는 사연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마리아의 근심은 커졌을 것인데 그때 요셉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때 이스라엘에서는 간음한 여자는 돌로 때려 죽이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법으로부터 내가 너를 옹호하지 않았으면 너는 돌에 맞아 죽어 벌써 무덤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어늘, 지금 나로 인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네가 네 부모보다도 가까운 자리에서 보호자 되어 있는 나를 배반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요셉은 누구 애냐고 물어보고 마리아는 성신으로 잉태했다고 대답했던 일이 한두 번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그러한 사실이 소문이 났을 텐데 요셉의 부모가 있었다면 그 눈치를 못 챘을까요? 또 친척들은 어땠겠어요? 아마도 모여서 수군수군했을 것입니다. 여자들, 그랬겠지요? `우리 요셉 가문에 저런 요물이 들어와서 임신을 했으니 망하게 됐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연 가운데서 하늘의 새로운 역사는 출발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몰랐습니다.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갈 때에는 이미 만삭이 되어 있을 때이니 갑자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관 방 하나 준비를 못했겠습니까? 먼 길을 가면서 어떻게 포대기 하나 준비하지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 마리아의 처지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이 아기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아는 마리아로서는 그 아기를 위해 준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이번 기간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하나님만 믿고 무사히 다녀오길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국 마굿간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님은 낳아 젖을 먹이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는 요셉은 갈수록 주위에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그의 친척들이 요셉에게 이 아이가 네 아들이냐고 물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때, 당당히 요셉은 `내 아들이다’라고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을 것입니다. 또 그런 소문은 집집마다 퍼졌을 것이니 아기 예수를 볼 때 집안에는 분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서글프게 태어나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젖을 먹는 시간에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일입니까? 만약 마리아가 젖이라도 안 나왔더라면 어떠했겠습니까? 지금은 우유라도 먹이면 되지만 그때는 미음 같은 것이라도 해 먹여야 할 텐데, 그러면 요셉이 좋아하겠습니까? `피땀 흘려서 벌면 뭘 해! 의붓자식이나 먹이는데’ 하며 나중에는 뜻이고 뭣이고 없는 것입니다.

25-229
외롭게 태어나 처량하게 자란 예수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요셉이 나타났다는 말, 성경에 있습니까? 있는지 없는 찾아 보라구요. 또 광야에 나갈 때도 부모 형제들이 찾아갔다는 구절이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아버지란 말이 나오던가요? 태어날 때부터 외롭게 태어난 예수는 처량게 컸다는 것입니다.

어린 예수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요셉에게 아빠라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요셉이 좋아했겠습니까? 아마도 가슴이 섬뜩 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요셉의 눈에는 사랑과 정 대신 질투와 분노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하지요? 「예」 그러니 예수는 요셉에게서 그런 것을 느끼면서 어머니 무릎에 앉으려고만 해도 요셉의 눈치를 봐야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 가슴을 헤치고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어머니가 먹여 주는 밥도 제대로 받아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요셉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가까이에 갈 수도, 아버지의 무릎에 가 앉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어린 시절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흘 만에 다시 찾는 대목이 있습니다(눅 2:4∼46). 요셉이나 마리아가 예수가 떨어진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루가 지난 다음에 예수를 찾으려 했겠습니까? 그 배후에는 예수 때문에 불쾌한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데리고 갔다가 떼어놓고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또 떼어놓고 왔다 하더라도 그 하루 동안 예수 생각을 안 했겠어요? 예루살렘에 갈 때는 졸졸 뒤따라 갔는데, 올 때 예수가 없어진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 마리아는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았지만 요셉 때문에 예수를 찾아 데리고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면서도 요셉이 가자고 했을 때 마리아는 예수를 데리고 가자고 부탁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고충을 안고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도 길을 가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냥 이대로 집에 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소문이 나 있는데 영락없이 이상한 소문과 함께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길 것 같거든요? 이러한 생각이 드니 안 되겠기에 다시 예수를 데리러 갔던 것입니다.

성전에 있던 예수가 그들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을 것입니까?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는 거기에 남아서 다른 부모들이 자식을 품고 왔다가 품고 돌아가고, 손에 손을 잡고 다녀가는 모습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모는 과거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렇게 나를 고아처럼 버리고 가는구나’ 하며 부모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흘을 지낸 뒤 요셉과 마리아가 와서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했을 때 예수는 어땠겠습니까? 성경에는 좋게 예수가 지식이 많아서 제사장, 서기관들과 성경토론을 했다고 써 놓았지만 예수가 좋아서 그거 하고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불쌍한 예수의 모습인 것입니다. 부모가 책임 못한 것입니다. 하룻길을 갔다가 돌아와서야 예수를 찾을 정도였으니 예수가 후에 홀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그때 반박의 표현을 했습니다. `내가 위대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말 처음 듣지요? 그거 근사한 말입니다. 책임 못한 부모에 대한 반박의 성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예수는 길을 떠나 갈릴리의 가나 잔치 집에서도 마리아를 모른 체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길을 떠난 것은 마리아와 요셉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잘 받들었더라면 예수님에게 공생애노정을 필요없는 것입니다. 요셉 가정에서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선전하고 전도해서 타락한 지상에 천국이 이루어졌습니까? 가정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되어 나가면 가만히 있어도 천국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예수가 길을 떠나 3년 공생애노정을 걸어야 했던 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책임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5-231
할 수 없이 집을 떠난 예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탄생하는 날부터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상을 받쳐 들고 귀히 모셔야 했습니다. 하늘의 왕자인데 그렇게 모셔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또 예수님에게 경배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의 왕자로서 그들과 관계를 맺어 하늘의 법도에 의해 한 가정에서부터 천국을 이루어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을 붙들고 그와 하늘이 섭리에 따라 맺어야 할 관계를 눈물을 흘리며 호소해서라도 맺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환경에서 예수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는 그렇게 되길 간절히 원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동으로 옮겨줄 만한 대상이 없었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못하고 어머니가 못했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누가 지원해 주겠습니까? 사랑의 울타리, 심정의 울타리가 다 넘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래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은 공생애 3년노정을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게 된 동기도 요셉과 마리아에게 있는 것인데, 지금 천주교회에서는 이런 마리아를 성모 마리아라고 해 가지고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전도할 때, 제자들이 `선생님이여, 모친과 동생들이 선생님이 찾나이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 모친과 내 동생이 어디 있느냐.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아버지 뜻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때 예수님의 마음에는 `나를 이렇게 망쳐 놓고 이제 와서 왜 찾아 다니느냐’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이런 사연과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심각한 장면에 처해 있을 때, 요셉이 나타난 기록이 있습니까? 마리아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 몰랐습니다. 따르던 여인들만이 눈물을 흘리자 `여인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너희와 너희 자식들을 위하여 울라’고 했습니다. 이때에도 요셉에 대한 말이 있습니까? 요셉은 쑥 들어갔지요? 그것은 요셉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야곱의 후손으로서 요셉이 하늘의 뜻을 받드는 수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요셉은 천사장의 입장이므로 하늘 뜻을 받들어 천법을 세우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천사장의 입장이 요셉은 예수를 복중에서부터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사탄의 씨가 복중에 심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천사장의 입장에 선자가 하나님의 아들을 복중에서부터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한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부모를 갖지 못했고, 형제를 갖지 못했고, 자기의 상대를 갖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 형제와 친척들은 4천년 역사의 결과인 요셉 가정을 중심으로 12사도, 70문도, 120문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전부 예수님의 기대를 저버려 배신한 입장에 서 버렸으므로 예수님은 혈혈단신으로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여 닦아온 역사의 기반을 다시 닦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반을 닦는 과정에서 몰리고 쫓기다 죽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위해 닦아 놓은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나라는 영적으로만 남아지게 되었고, 실체적인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세계적으로 배척받고 핍박받고 천대받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했다는 것은 이제 재봉춘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가정적 국가적으로 몰렸던 때와 같기 때문에 이 환경에서, 즉 아랍권내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입장에서 싸워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었던 기반이 있었지만 이제는 싸워 가지고 승리해야 합니다. 이런 운명에 처해 있는 현재의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이런 처지에서도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아랍권을 제압하고 나가는 것은 하늘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한국과 하나되어 나가게 되면 문제없이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차대전 때에 히틀러가 이스라엘 사람 6백만명을 살육하는 피의 제단을 꾸밈으로써 그들은 예수님 당시의 책임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고 비로소 새로운 역사의 해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이 땅 위에 오지 않으면 해원성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성립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25-233
탕감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다 알겠지만, 역사가 이렇게 기독교를 중심삼고 엮여져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역사는 어디에서 열매맺을 것이냐? 한국에서 열매맺을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은 한국의 누구를 중심삼고 해야 하느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탕감하려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내용을 모르면 탕감할 수 없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또 12사도의 사정을 전부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의사가 병을 모르고 수술할 수 없듯이 모든 것을 파헤쳐 가지고 오늘날의 새로운 지식과 원리원칙에 의해 확실하게 체계를 갖추어 탕감해야 합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원리는 무슨 망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천적인 체계를 갖춘 것입니다. 선생님이 사탄세계와 싸워서 결정한 것들입니다. 영계에서는 통일교회가 최고의 자리에 서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결정한 것입니다.

영계는 천사세계와 맞먹습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오늘날의 세상은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영계는 아담 해와를 짓기 전에 지었고, 재림주님은 아담의 대신이기 때문에 그전에 있던 영계는 천사 세계와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가 생겼기 때문에 영계가 하나님의 뜻을 환영해야만 그 세계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또 영계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지상세계에 주님이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영계를 굴복시켜 나온 것이니 영계는 통일교회를 협조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영통인들에게 물어 보면 대번에 증거할 것입니다. 그런거 알아봤어요? 알아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건 사건중에도 세계적인 사건, 아니 천주적인 사건입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그런 것을 상식적으로 듣고 보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놀랄 만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원리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되면 다 거짓말입니다.

타락은 여자들이 영적으로 먼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역사를 보면 그것은 대개 여자들을 통해 영적인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천사장과 함께 했으므로 이걸 복귀하려면 영적으로 예수가 와야 합니다. 결국 영적으로 타락했으니 복귀도 영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선생님이 영적으로 반지를 끼워 주어 결혼식을 하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코스를 가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요.

해와가 먼저 영적으로 타락한 후 아담을 중심으로 육적인 관계를 맺어 자녀를 번식했으므로 현재의 여러분은 여러분까지 직접 부부관계를 맺어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코스를 거쳐 나가야 하느냐? 그것이 전부 원리에 있습니다. 원리에 나와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 원리를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타락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저지른 잘못된 사랑입니다. 그러면 완성기 완성급의 사랑은 얼마나 강하냐?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지금까지 같이 살던 세상의 남편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강력한 영력을 느낍니다.

이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은 선생님을 세상의 그 어떤 여자보다도 사모해야 됩니다. 그래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세번 이상 대성통곡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선생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남자들이 선생님이 하고 보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차표를 사러 가는 일이 벌어지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자들, 그런가? 「그렇습니다」 뭐가 그래.

타락은 잘못된 사랑을 중심삼고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 예수님의 말은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전부 다 풀리는 것입니다.

25-235
3차 7년노정과 우리의 책임
지금 통일교회는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세계인 이 사탄세계와도 싸워서 승리해야 됩니다. 그러면 누가 싸워야 되겠습니까? 사탄이 생겨난 것은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부모가 싸워야 됩니다. 부모가 세계적인 사탄을 굴복시키고, 그 다음 사탄의 자식들은 여러분이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1960년부터 1967년까지의 제1차 7년노정에서는 부모가 세계적인 기준에서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2차 7년노정은 여러분의 시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여러분이 횡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2차 7년노정은 장성시대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둘째를 중심삼고 판가리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2차 7년노정에는 한국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2차 7년노정이 끝나는 1974년도까지는 한국이 통일교회 뜻을 협조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지 않고 뜻을 가로막고, 이 원칙에 부합하지 않게 될 때는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터전을 중심삼고, 우리는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2차 7년노정이 끝날 때는 국가 기준을 넘어서야 하고 3차 7년노정을 넘어설 때는 세계 기준을 넘어서야 됩니다. 3차 7년노정이 끝나는 때는 1980년대입니다. 70년대라는 1970년부터 1979년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니 1981년에 끝나도 역사에는 80년대로 남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세계적인 기준을 넘어서야 됩니다.

이런 것이 다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느냐? 선생님이 원리의 궤도를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횡적으로 지나간 역사를 재현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년을 중심삼고 이것이 세계적인 운세로써 넘어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지금 시대는 여러분의 시대, 즉 아들 시대입니다. 그 다음 3차 때는 손자시대입니다. 그렇지요? 아담은 할아버지고, 예수는 아버지, 우리는 아들, 이렇게 3대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는 횡적 역사를 중심삼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 역사를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은 아담형이고 여러분은 예수형입니다. 여기에 3단계가 서기 위해서는 손자시대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7년노정을 중심한 21년 동안 그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가 책임을 다한다면 80년대를 넘어설 때까지의 세계 정세는 섭리에 맞게 되어갈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보면 사회도 원리에 맞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선생님하고 여러분이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나서 여기 이렇게 온 것이 아닙니다. 얼굴을 보면 전부 못났습니다. 어제 운동하는 것을 가만히 봤더니 다들 키도 작고 얼굴도 못났습니다. 잘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 자신들은 잘났다고 생각하겠지요? 하기야, 너무 잘나면 제물로 바칠 때에 아쉬움이 있으니 안 됩니다. 아예 미련없이 바칠려면 못생긴 것이 더 좋아요. 그래서 `이녀석들, 제물삼기어 안성마춤이군’ 하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70년대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먼저 내적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외적 복귀를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서 내적인 일을 하고 있고 정부에서 경제복귀를 하고 있는 이것은 참 잘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운이 한국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정부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통일교회가 필요하니 우리를 반대는 안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인 아벨이 박자를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런 일을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은 역사를 죽 얘기해 줘야 할 텐데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그만 하겠습니다. 이 다음에 여러분이 일을 잘하면 해주고 못하면 안 해줄 겁니다. 알겠어요? 「예」 언제 한번 모이게 해 가지고 이 이야기를 해주면 이 뜻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그것은 원리책에도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가끔 선생님이 일편씩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을 여러분이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25-237
비운의 역사를 통한 탕감복귀
이번에 임명받은 지구장들은 작년 지구장들보다 떨어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전도도, 경제복귀도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진격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이구, 이것 가지고 어떻게 움직이라구’ 하며 불평하면 안 됩니다.

일을 하는 데는 돈을 중심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희망은 저버리고 돈이 없어서 일 못하겠다 하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입 밖에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자기가 투자한 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안 해주면 여러분에게는 발전이 없고 오히려 침체만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하나님의 비밀을 중심삼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실생활에서 이루어져 나가는 여러 가지 사실을 맨 밑에서부터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사실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인간의 타락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것이 인류역사에서 제일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을 복귀해야 할 예수님이 때에도 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예수의 역사는 비운의 역사입니다. 둘째번은 예수의 가정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아담의 실수와 예수님 때의 실패의 전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그럴 수 있는 단계에 왔습니다. 민족 앞에 쫓김을 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대한민국이 통일교회를 없애지 못합니다. 벌써 세계에 자리잡고 있는데 없앨 수 있습니까? 그렇지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축복받은 기반 위에서 사위기대를 이루어 자녀들이 번식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죽더라도 뜻은 이루어집니다.

이제는 다 끝난 싸움을 처리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빨리 그것을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싸움은 다 끝났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슬픔의 역사가 기쁨의 역사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미 영계에서는 다 이루었습니다.

제2차 7년노정의 2차년도인 금년 9월이 제일 지독한 고비였습니다. 2차년도는 예수님적 해인데 선생님 아들을 중심삼고 보면 희진이가 해당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자 희진이가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원래는 희진이가 전도하러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금년에는 전면적인 동원을 해야 하는데, 식구들이 동원을 안 하니 선생님 위신이 서지 않는다고 자신이라도 가야 되겠다고 해서 허락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지도해 나왔습니다. 그 대신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탄을 넘어섰기 때문에 사탄은 아들딸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가정에 있어서 희진이가 걸려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기간에 심각하게 기도한 내용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는 30대에 있어서 영적 구원의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희진이의 희생으로 청소년권내의 아이들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는 영적 구원의 기반을 넓혔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중심삼고 재림부활 할 수 있는 평면적인 혜택권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공적인 입장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흘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희진이는 제물로 깨끗이 바쳐진 것입니다.

희진이는 일본에서 태어났습니다. 외적인 세계에서 태어나 외적인 세계로 깨끗이 갔습니다. 예수가 외국에 갔다 왔지요? 「예」 그러니 희진이도 외국에 갔다 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서 이런 역사를 엮어 가지고 복귀의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한 고충과 슬픔과 비운의 역사가 들어 있는지를 모를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선생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되어 공동적인 운명으로서 한 구덩이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결의를 하고 틀림없이 나는 여기에서 살고, 여기에서 죽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 데 세밀한 이야기를 해줄 것입니다.

어떤 영통인들은 희진이의 죽음을 두고 제2 조상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이 잘못하여 통일교회에 있어서 제2조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25-239
새로운 부활의 시대를 맞을 통일교회
이제 10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통일교회에 부활의 역사와 같은 새로운 시대가 옵니다. 예수님의 영적인 부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가 전개될 것입니다. 또 10월 4일 오늘은 선생님의 출옥 기념일입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나온 날입니다. 그리고 열흘만 지나면 선생님이 21년 고개를 넘게 됩니다. 흥남 감옥 출감일을 중심삼고 21년 고개를 넘게 됩니다. 이런 것도 영통인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10월 14일은 외적인 고개를 넘어가는 날이라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알기나 합니까? 그러니 이제라도 이런 시대와 이런 시점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일치단결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역사는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알고 싶어요? 「예」 이런 역사를 알고 가야 선생님 앞에 얼굴을 들고 나설 수 있습니다.

이걸 알려면 싸우고 와야 됩니다. 싸우러 갈 사람 손들어 봐요. 잘 싸워야 합니다. 싸우는 데는 왕자의 권위를 가지고 싸워야 됩니다. 졸장부로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복지를 향하여 갈 때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싸우고 선생님 대신 싸워 이긴다는 신념을 가지고 하늘의 대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1차 7년노정 출발 첫해의 표어가 `생애 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인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로서 어머니를 찾자는 것입니다. 그 다음 2차년도 표어는 `아버님의 대신자가 되자’입니다. 비로소 어머니를 찾았기 때문에 복귀된 천국을 향해 아버지 대신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의 일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번째는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입니다.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들딸입니다. 지금은 성진군과 희진군이 자라는 때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복귀노정을 중심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표어는 여러분의 표어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7년노정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생애 최고의 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남성으로 잃어버린 여성을 찾는 최고의 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고 보여주고 자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승리적 주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완전히 복귀하였으니, 승리권을 주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때려 부숴야 합니다.

1960년에 선생님이 `이번 7년노정이 지나면 내가 필요로 하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완전한 기반이 닦아질 것이다’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 보면 그때 말한 대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1974년까지의 2차 7년노정에는 대한민국의 복귀와 천국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만드느냐? 복귀는 영육을 중심삼아서 해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적으로는 말씀을 중심삼고 영적으로, 세계적으로는 사상을 중심하고 육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가 하지 못하는 반공사상을 우리가 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출애급할 때 그들을 인도해 주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중심삼고 밖으로는 세계 공산권을 굴복시키고 안으로는 가정의 법도를 세워 이것이 세계무대로 연결되어 나가게 되면 지상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듣고 보니 이제 섭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윤곽이 잡히지요? 「예」 그것을 위해 이번 기간에도 선생님이 주동이 되어 여러분을 이끌고 싸워 나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러분에게 돈이 있다면 여러분을 위하여 쓸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교회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도 나라를 위해 정성을 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라가 터전이 되면 그 나라를 총동원해서 세계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나라를 세계의 인류는 찾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25-241
기 도
한 많은 복귀의 고개들을 그렇게도 넘기 힘든 줄은 아무도 몰랐나이다. 그 길을 지금까지 아버지는 얼마나 왕래하셨습니까? 오실 때는 소망의 아들을 찾겠다는 희망을 갖고 오셨다가 돌아가실 때는 낙심 천만하여 가시는 당신의 모습, 그 무엇으로 형용하고 그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사오리까?

아버지, 저희는 당신이 이 불쌍한 한국 백성을 긍휼히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이제까지는 아무도 몰랐사오나 지금 저희들은 비참한 역사과정을 통해 눈물과 피의 역사를 엮어 나온 배달민족의 배후에 아버님이 계셨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역사를 회고하면서 이 민족의 비참한 역사는 아버지의 비참함을 상징한 것이요, 이 민족이 세계의 강국들에 싸여 침략을 받았던 것은 아버지의 외로운 처지와 닮았음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께서 그것을 통탄하시어 찾으시던 한 나라가 있사오매, 그것은 그 나라에 인연된 한분을 축복하시려는 것임을 저희들은 압니다. 저희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인연맺어진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삼고 돌격할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이 불행인 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들은 그것이 천만다행인 것을 알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은 해방 이후에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였사옵니다. 이 민족을 대표한 기독교가 책임을 하지 못하여, 이 민족은 아직까지도 UN에 가담하지 못한 이름없는 나라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이 나라의 고난을 끝나게 하여 주소서.

저희들은 아버지의 자녀이기도 하고, 세상의 나라들이 이 나라에 대해 머리 숙일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엄숙한 하늘의 밀명을 받은 당신의 밀사들이기도 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저는 50평생을 통하여 죽어도 이 민족을 버릴 수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배척받는 길에서도,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자리에서도 도리어 아버님을 붙들고 위로하였사옵니다. 저에게 그럴 수 있는 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리옵니다.

만일 제가 아버지의 심정을 몰랐더라면 역사적으로 남겨지는 주체로 설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또 있어 온 역사의 슬픔은 지나갔을 망정, 그 가운데에 아버님과 더불어 인연되어진 심정만은 남아, 저의 재산이 되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조건이 됐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 모두가 아버지가 저를 망치기 위한 간교한 계획이 아니었사옵고, 저를 위한 사랑의 후대(厚待)였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저는 금후의 생애의 노정에서도 저의 평안을 꿈꾸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행복의 콧노래를 부르며 향락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꿈에도 없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안다는 그 자리에 서지 못했사오니, 천하를 거느려 아버지의 본연의 심정에 닿을 수 있는 본성의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인연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아들로서 세계와 천주를 대표하여 대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 용장으로서의 모습을 변치 않겠다고 저는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제가 위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저를 내세워 사랑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그런 당신의 마음 앞에 행여 반대되는 조건을 남길까 몸부림치는 저를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어느 한 날 그 책임을 이룰 것인가, 자나 깨나 오고 가나, 모든 생활, 모든 생각 일체가 당신을 위하는 일념만으로 채워지옵니다. 이것은 아버지 앞에 공로의 실적이요 재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와 같이 거룩한 승리의 심정을 모두가 인계받아야 되겠습니다.

한의 역사를 엮는 데에 부채질하고, 아버님 앞에 슬픔의 장벽을 쌓는 데에 선동이 되던 자들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저희들이오나, 여기 모인 젊은이들은 아버님의 서글픈 사정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쌓아 둔 담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넘어가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경계선이 되는 강이 있다 하더라도, 밧줄을 연결시켜서 다리를 놓고라도 건너야 할 운명이 남아 있음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엄숙히 분부하시는 하늘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이 부족함을 정리하여 아버지 앞에 바치려 해도 연한이 허락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부족한 자신이나마 당신 앞에 몽땅 바칠 수 있는 그 한날을 찾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꿈속에서도 노력하고, 죽음길도 마다 않고 몰입하는 그런 무리가 하늘 앞에 가깝게 서 있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역사가 그렇게 움직여 나왔사오니 여기 모인 젊은 청년남녀들은 이 현실에서 그럴 수 있는 젊은이들이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에 맺혔던 심각한 말씀을 이들 앞에 통고하기 위해 한 때에 서글펐고, 한 때에 억울했고, 한 때에 불행했고, 한 때에 고통스러웠던 분은 아버지였사옵고, 이 길을 개척한 아들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하오니 이 역사적인 일을 성숙시킬 수 있는 과제가 남아 있는 현실에 있어서, 엄숙히 자기 스스로를 넘어 이 업적을 찬양하며 인계받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여기에 한 사람이라도 수를 더하게 하시어서, 당신이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팔도에서 몰려온 대학가의 젊은 당신의 자녀들이옵니다. 이들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이옵니까? 금후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대학가가 혼란 상태에 있사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 돌격전을 제시하여 승리의 팻말을 꽂아야 할 시대이오니, 이러한 시대에 저희들은 사명을 해야 할 아버님의 밀명을 받은 자로서 책임 다할 수 있는 하늘의 왕자 왕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올 때는 한갓 흘러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으로, 뜻 없는 걸음으로 왔지만 이제 돌아가는 가슴에는 그 누구도 옮길 수 없는 짐을 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슬픔의 검은 구름을 안고 가야겠습니다.

민족의 한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제물로 피의 제단을 거치지 않고는 통합의 인연을 맺기가 어렵다는 것을 저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또 저희들은 오늘날 저희 시대에 그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배웠습니다. 하오니 시시각각으로 그 사명이 촉구되는 이 시대에 여기 모인 젊은이들이 그들의 피와 살을 이 민족 앞에, 이 나라 방방곡곡에 닻으로써 내려야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아버지께 순응하며 봉화를 들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용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의 형제들은 저희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책임 못하면, 그들이 대신 책임지겠다고 아우성칠 것이나 그들에게 어려운 십자가의 바톤을 갖추어 아버지께서 기뻐할 수 있는 제단의 터전을 넓힐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런 후 그들이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이고 감사의 눈물로 경배 찬양할 수 있도록 당신의 젊은이들의 가슴 가슴에 그런 심정을 남겨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있어서 넘지 않으면 안 될, 이것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사명인 것을 확실히 알고, 이 책임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먹을 불끈 쥐고 새로운 광명을 아침을 건설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고 불쌍한 이 민족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배움의 환경에서도 그 책임을 하겠다고 온갖 정성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내일의 소망 앞에 졸장부가 되지 말게 하시고,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세계 앞에 승리를 남기고, 또 승리를 인계해 주고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결심한 마음들을 강하고 담대하게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반석에 부딪치면 반석이 깨지고, 철강에 부딪치면 철강이 끊어질 수 있는 마음으로 전생애를 아버지 앞에 바치겠다고 맹세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 신념을 굳게 하여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내일의 천국에서 아버님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고, 당신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