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 to 25-36: 참부모

참부모
1969.09.21 (일), 한국 전본부교회

25-07
참부모
[기 도]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온 천지에 머무시옵소서.

한 많은 복귀의 역사를 엮어 오시는 아버지, 그간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반당하셨사오며, 그 거역하는 인류를 품으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어느 한때도 당신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이 없었사옵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한, 아버지의 진정한 자녀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이 없었음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스라엘을 세우시기 위해서 당신께서는 한 가정을 찾아 대표로 세우셨사옵고, 그 가정을 통하여서 당신의 종족과 민족을 세우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찾아오시는 당신을 이스라엘 민족이 수없이 배반하였던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게 엮어 나온 아버지의 슬픈 역사….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기쁨을 맞이하여 그것을 온 천지 앞에 나타내시어 송영의 한 자리를 추구하였지만, 번번이 인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슬픔을 품고 나오신 아버지! 이 시대에 아버지를 모시는 책임을 저희들이 지게 되었사옵니다.

지난날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로 세우셨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슬프셨던 아버지를 이제 기쁠 수 있는 아버지로 어떻게 모실 것이냐 하는 것이, 오늘날 이 한민족이 해야 할 책임이요 사명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있지만, 이 민족을 대표하여 먼저 부름받은 저희들은 하늘 앞에 없어서는 안 될 마지막 소망의 존재인 것을 절감하고 있사옵니다.

사방에 흩어진 수많은 민족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묶어서 당신의 마음을 닮게 하는 책임이 오늘날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 과정에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였고,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역사적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보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이오나, 이렇듯 역사의 한과 더불어 저희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9월 21일, 이달 들어 세 번째로 맞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남기신 복귀노정에 대한 도리를 다해야 할 것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싸움에서 패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승리의 왕자가 되어야 하는 엄청난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개인적인 승리의 자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가정을 찾아 세우기 위해 또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을 찾아 세운 후에는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복귀해야 할 고빗 길이 저희들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스스로가 이와 같은 고개를 넘기 위해서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한다 하더라도 넘기 어려운 고개요, 슬픔과 고통과 죽음이 뒤따르는 고개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하여금 이 길을 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께서는 6천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6천년 동안 싸워 오셨으며, 6천년 동안 참아 오셨습니다. 이렇게 길고 지루한 이 고빗길이 오늘날 저희 개인 개인 앞에 고스란히 맡겨졌더라면 그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으며, 그 누가 아버지의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는 것을 아시는 당신은 그래도 인류를 버릴 수 없는 심정에 지금까지 참아 나오셨습니다. 싸우는 슬픈 노정에 있어서나 거치른 고빗길에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오신 아버지! 당신의 그 거룩하심을 찬양할 줄 아는 저희의 모습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이제 당신의 존전에 부름받은 불초의 자식들이 당신의 명령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명령해 달라고 할 수 있는 저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실체의 제물로서 이 몸을 바치기 원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당신의 참다운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체로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뼛골이 연결되고, 아버지의 살이 엉키는 하나의 생명의 체휼감을 갖지 않고는 그 자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는 원리를 통해서 배웠사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아버님으로부터 접붙임을 받는 심정의 자식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원수의 혈족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저희들을 접붙여 주시기 위해서 지금까지 당신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진정한 의미에서 저희들이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고아입니다. 사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을 모아 손을 붙들고 사정할 수 있는 사람을 아직까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사옵니다. 그러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했던 저희들이었사오니, 이제 다만 당신을 향하여 옷깃을 여미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로서 아버지의 거룩함을 찬양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름뿐만이 아니라 실체적 사실을 중심삼아 당신을 그리워하고, 영원무궁토록 당신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저희의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아인 저희들에게 영광 가운데에서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들딸의 인연을 허락해 주신 은사에 진정 감사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저희들이 과거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저희들은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아무런 공적이 없사옵니다. 아버지와 인연맺을 수 있는 아무런 선의 실적도 없사옵니다. 하오니, 그것을 스스로 느끼는 자리에 설적마다 아버지 앞에 감사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 지상의 인류를 넘어, 수많은 민족을 넘어 수많은 국가를 넘어서 이 한민족을 찾아오신 아버지의 서글픈 사정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먹을 것 없고 헐벗은 불쌍한 이 민족 앞에 쫓기고 몰림 당한 저희를 끌어모아 놓으시고, 아들의 명분을 요구하시는 당신의 그 서글픈 입장을 저희들이 진정으로 위로해 드려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그와 같은 입장에 선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강한 힘과 강한 모습을 닮아 가지고 당신의 슬픈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렇게 해야 할 저희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한 입장에서 저희들 자신이 또다시 당신 앞에 힘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불쌍한 자리에 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인류 역사가 그러했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저희 자신이오니, 저희들은 다시 한번 동정해 주옵길 아버지 앞에 간절히 호소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의 생애에 있어서 모든 생활과 생명의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당신의 분부하신 뜻 앞에 일치화시키시옵소서. 영광의 자리에서 당신과 더불어 만민 앞에 찬양받을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며 저희들이 모든 어려움을 참고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의 문을 모두 열어 주시옵소서. 당신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게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저희를 부르실 때, 밤이나 낮이나 그 어느 때를 막론하고 대답하고 응할 수 있는 저희 자신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모세 앞에 들리게 될 때 홍해를 가르던 거와 마찬가지로, 당신 앞에 들린 막대기로서 방향을 분별하여 움직여 나갈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까지 뜻을 따라나온 저희들은 과거의 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변명이 많았사옵니다. 너무나 쟀고 너무나 비교가 많았던 것을 용납하여 주옵소서. 온전히 아버지의 품안에, 아버지의 긍휼 앞에, 아버지의 사랑 앞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앞에 일치가 되겠다고 몸부림치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이러한 자신이 되지 못한 과거를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옵소서.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에게 당신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당신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고, 당신을 위하여 경배할 수 있는 이 시간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통일의 자녀들이 당신 앞에 엎드렸사오니, 이들이 당신의 마음 깊이 기억되고, 당신의 섭리에 일치되는 자리에서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교회도 그런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거기에 모여 분향을 드리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이 당신의 뜻과 당신의 거룩한 이념을 상속받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승리의 한 터전이 되게 하여 주옵고, 소망의 기점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동안 인류를 대하여 얼마나 낙망하시고 얼마나 슬퍼하셨사옵니까?

당신의 그 슬픈 마음에 바라던 소망의 일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저희 자신들이 알았사오니, 그런 자리에 계셨던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되겠다고 정성을 다하는 저희의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아버지 앞에 마음과 몸을 다하여 경배드리며 충성을 다짐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오니, 그 자리에 찾아가시어서 일률적인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고, 내일의 소망 앞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의 은사를 베풀어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한국을 조국이라고 그리워하면서 애달픈 마음을 갖고 책임을 다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당신이 그 자리에 꼭 같이하여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본부에 있는 저희들은 그들 앞에 빚지는 자들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사옵니다. 빚을 지고는 그 누구 앞에서도 체면을 세울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자신이 되지 않겠다고 충성을 다짐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외적으로는 모든 것이 부족하오나 당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특권적 권한을 가져서, 한국의 자랑이 되고 이 민족이 거쳐온 모든 수고의 한(恨) 가운데 피어나는 하나의 꽃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생명의 향수가 되게 하여 주옵고, 그 영광의 터전이 영원한 보금자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나라들 위에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고, 앞으로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찾아가는 어려운 길 앞에 탕감의 노정을 거두어 주시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환희의 자리에서 맞을 수 있는 그 한날을 그들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당신 앞에 맡기었사오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신이 권고하신 뜻 앞에 일취월장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달과 이 해를 당신이 원하시는 뜻 가운데서 승리의 달로서 승리의 해로서 온 민족 앞에 세울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 위에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5-12
말 씀
하나님의 복귀역사의 중심은 세계도 아니요, 어떠한 나라도 아니요, 어떠한 특정한 종족과 민족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할 수 있는, 즉 하나님이 세워 줄 수 있는 나라가 있기 전에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민족이 있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그 가정이 있기 위해서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모를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까지 개인 복귀 섭리역사를 해온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종결되는 귀결점이 어디냐 하면 부모라는 것입니다.

25-12
참부모는 복귀섭리의 기점
지금까지 흘러 온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 크고 작은 나라도 많았고 군소 민족도 많았습니다. 또한 종교인들의 가정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나라가 하나님이 찾고 있는 나라가 되지 못하였고, 그 민족이 하나님이 찾는 민족이 되지 못하였고, 그 가정이 하나님이 찾는 가정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가정과 민족과 나라는 전부다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가정, 그 가정을 통해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 수습해 나온 복귀섭리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습해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전체 대신으로 사랑할 수 있는 한 날을 찾아 나온 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해 나오신 역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나라를 세우고, 민족을 세우고, 종족을 세우고, 가정을 세웠다 하더라도 나라와 민족과 가정까지 수습해 나온 그 모든 수고를 잊어버리게 하는 하나의 기준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정도 아니요, 어떠한 형제도 아니요, 바로 부모입니다. 인류의 참된 조상의 기준이 여기에서 결정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실이 맺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오신 싸움을 종결짓고 최고의 승리도 다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바라신 소원의 기점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을 세우는 데 있어서 새로운 출발을 볼 수 있는 기점이 참부모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자리에 본래 누가 서야 되느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아담 개인 에게 혹은 해와 개인에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더 원하신 것은 그 둘을 중심삼고서 하나의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요,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위기대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아담 해와가 하나되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자라 나오던 아담 해와가 하나의 사랑으로 묶여져 가지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출발의 기점을 이루는 그 자리는 인류의 조상이 갖추어야 할 최초의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누구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체적인 사랑을 이루었더라면, 여기에서부터 인류의 참부모는 틀림없이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기준과 일치되지 못하고 어긋남으로 말미암아, 즉 우리 인류의 조상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이 길이 여지없이 파탄당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어떤 외부의 사정으로 인해 되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 즉 사랑을 중심 삼고 걸려 들었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역사에 없는 수고를 하여도 지극히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가 서로 등을 지고 갈라진 것을 묶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묶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꺼번에 전부 다 묶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종족, 그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 그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참남자와 참여자를 세워 외적으로 갈라졌던 것을 본래의 것으로 전부 다 묶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과 해와 대신 인류의 본래의 부모가 되는 기준을 대표할 수 있는 남자 여자 두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본래의 기준을 향해 거꾸로 묶어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사실임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25-14
탕감복귀 섭리역사의 어려움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역사입니다. 탕감복귀역사 가운데에는 수많은 가정이 동원되었고 수많은 종족이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나라가 동원되어 거쳐갔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어떤 가정이나 어떤 종족이나 어떤 민족이나 어떤 국가도 하늘의 뜻과 더불어 일치되었던 때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슬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세웠고 언제나 하나님이 낙망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가정과 종족,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대해 나오시던 하나님의 슬픔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슬픔 사연들을 어느 때에 해소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복귀도상에 있어서 지극히 난문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국가를 두고 볼 때,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찾고자 하시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일 것이냐? 또 그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이며, 그 민족을 편성할수 있는 종족은 어떤 종족일 것이며, 그 종족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어떤 가정일 것이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사탄과 일체가 되어 사탄과 헤어질래야 헤어질 수 없는 혈연관계를 맺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는 인연이요 끊어 놓아도 다시 맺어 버리게 되는 인연입니다. 이러한 운명 가운데 인류는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망권내에 있는 인류를 수습하여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가정 기준을 결정짓는다는 것이 어떠한 그 무엇보다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의 국가 기준을 만들었다 해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세울 수 있는 종족을, 종족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세울 수 있는 가정을, 가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대신할수 있는 인류의 참부모의 기준을 이 타락한 세계에서 찾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기독교의 이름을 갖고 기독교권내에 있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혹은 수많은 종족과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설정해 나오던 그런 가정과 나라가 이것이다’ 할 수 있는 기준과는 너무나 먼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습관화된 생활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축복받을 수 있는 권내에 섰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축복받을 나라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가 그러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한 국가를 표준하여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의 심정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높고 귀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한 창조위업과 악한 현실 적인 세계의 무대와는 그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먼 거리를 누가 메울 것인가? 이것을 누가 탕감해 낼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하나님편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고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냥 메워지지 않습니다. 여기는 반드시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대신해서 탕감의 제물을 제시하지 않고는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국가 민족이 이 탕감의 조건을 알아서 모든 것을 탕감시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 앞에 탕감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이 거리를 단축시켜 메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 나온 것이 6천년의 복귀 섭리 역사인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특정한 나라를 세웠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역사적인 탕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탕감 내용을 갖춘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세울 때의 그 기준과 그 나라가 가는 기간이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 혹은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언제나 하나되어 가지고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간들이 번번이 그랬듯이, 그 민족이면 그 민족 역시 하나님과 일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적인 거리를 메워 나오는 데 협조하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몇 해 몇 달 기간은 어떤 인연 가운데서 하나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수십년 동안 하나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운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기간을 같이 맞추어 나가지 못하면 그 나라는 완전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25-16
참부모를 찾으시려는 뜻
그러면 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의 운명을 지탱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 왔느냐? 하나의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아 그 국가의 거리를 메우게 했습니다. 또 그 민족이 메우지 못하면, 그 민족 중에서도 특정한 종족, 예를 들면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로 하여금 민족이 메우지 못한 그 거리를 메우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종족이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와 당시의 국가와의 거리를 메우는 데 있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종족 가운데서 특정한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메우지 못한 거리를 보충토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종족의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특정한 가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운 그 가정이 책임 못하게 될때는 그것을 연장시켜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그 남겨야 할 기준이 무엇이냐? 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최종적인 목적이 어디 있느냐? 참된 부모에 있습니다. 참된 부모를 요구하는 것은 참된 가정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 참된 가정을 요구하는 것은 참된 종족을 대표하기 위한 것이요, 참된 종족을 요구하는 것은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를 대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보면 세계를 대표해서는 국가가 제물 되어야 하고, 국가를 대표해서는 민족이 제물 되어야 하고, 민족을 대표해서는 어떤 특정한 종족이 제물 되어야 하고, 그 종족을 대표해서는 어떤 특정한 가정이 제물 되어야 하고, 그 가정을 중심삼고는 어떤 특정한 대표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어디에 귀결되느냐 하면, 부모에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부모는 역사의 동기가 될 수 있고, 모든 국가 형성의 출발 점이 될 수 있으며, 모든 민족 편성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기원이 될 수 있는 부모를 중심삼고 복귀섭리역사를 엮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나라와 민족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참된 부모의 기준을 중심삼은 가정이 완전한 터전 위에 서 있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를 새로이 편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전체를 잃어버렸다 해도 그런 내용을 재편성할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기준, 다시 말하면 인류가 바라고 나가는 소망의 한 기점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이냐 하면, 바로 참부모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점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본래 아담 해와는 영원히 변치 않는 가정의 부모가 되어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형성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찾아 내려와 새로운 각도에서 이것들을 편성하려는 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뜻 가운데서 이러한 사명을 종결짓기 위해서 오셨던 분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대표해서 오셨느냐? 탕감이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세계를 대표해서 오셨고, 국가를 대표해서 오셨고, 또한 민족과 종족을 대표하고 가정을 대표해서 오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전체를 대표하고 전체의 중심으로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그러한 분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어느누구 한 사람도 국가의 대표로 믿지 못했고, 민족의 대표로도, 종족의 대표로도, 더 나아가서는 한 가정의 대표로까지도 믿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전체의 대표로서 전체의 중심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못한 예수님의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5-18
예수님의 소원
예수님이 소원하신 것은 하나의 나라였고, 하나의 민족이었고, 하나의 종족과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참부모가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참부모를 결정하는 데에는 하나의 여성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성을 찾아 오는 데 있어서는 그냥 끌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한 남성이 한 여성을 맞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맞을 수 있지만, 예수 님이 한 여성을 맞는 데 있어서는 종적인 환경이나 횡적인 환경에서 자유롭게 맞이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성을 맞기 위해서는 예수가 국가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되고, 민족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되고, 종족적,가정적인 대표의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당시까지의 4천년 역사의 섭리의 내용과 일치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걸고, 이것을 완전히 탕감시켰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예수님이 하나의 신부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아서도 예수는 신랑으로 왔으니 그 예수 앞에는 신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는 평면적이며 횡적인 기준에서 그저 하나의 남성 앞에 하나의 여성으로서 등장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의 국가를 대표하고, 하나의 민족을 대표하고, 하나의 종족을 대표하고, 그 종족을 중심삼은 수많은 가정들을 대표하는 그런 기준 앞에 선 여성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대표적인 여성은 어떠해야 되느냐? 딸의 입장에서는 딸중의 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아내의 입장에서는 열녀 중의 열녀가 되어야 하고, 수많은 어머니 가운데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한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엮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그런 여성이 있었느냐 할 때, 그런 여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가 가신 길, 예수가 이 땅에서 30여 년의 생애를 거쳐간 그 길을 회상해 보게 될 때, 그 길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지닌, 예수와 더불어 인류의 죄를 탕감시킬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 그러한 여성은 어떤 여성이어야 되느냐? 반드시 역사적 배경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가는 여성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혹은 이스라엘 나라 앞에 없어서는 안 될 역사적인 배경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여성은 스스로가 나라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수많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고, 수많은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을 결정짓지 않고는 탕감복귀의 기준을 넘어설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의 중심이 되는 부모의 기준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기쁜 역사가 아니라 슬픈 역사입니다. 이 슬픈 역사 가운데는 수많은 국가들이 말려들고,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종족들이 말려들고, 수많은 이스라엘 가정들이 말려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슬픔으로 엮어져 온 역사의 결과로 남아진 세계의 수많은 국가와 민족, 수많은 종족과 가정이기 때문에 이 모두를 대표해 가지고 나설수 있는 그 여성은 그저 단조로운 여성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특정한 내용을 갖추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결의를 한 여성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 가운데에 수많은 나라를, 수많은 종족을, 수많은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특정한 내용을 갖춘 여성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성은 그러한 결의와 자신을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남성을 대표해 가지고 오시는 예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남성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국가면 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민족이면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종족이면 종족을 대표할 수 있고, 가정이면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으로 믿고 그와 하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지 않고는 복귀된 가정을 중심삼은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25-20
기독교의 사명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이 택한 12제자와 70문도가 내정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기반이 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동원해서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남성적인 울타리를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기반 위에 하나의 결실체로 자신을 연결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책임 못했던 많은 남성들을 재현시켜 그 시대에 평면적으로 벌여놓은 대표적인 형이 열두 제자와 70문도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12제자와 70문도가 완전히 하나되면 역사 과정에서 실패했던, 그 시대시대마다 탕감하지 못하였던 모든 남성들의 실수가 탕감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들과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실패를 수습할 수 있는 실체적인 권을 횡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완전하게 철옹성 같은 울타리를 만들어 가지고, 사탄이 공격할래야 공격할 수 없는 하나의 남성으로서의 승리적 기반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울타리의 사명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12제자요, 70문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 즉 이러한 배경 위에 공고히 서 가지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여성을 찾아 어머니의 기준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노정에서 싸워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대의 싸움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내적인 사정이 예수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그 시대의 12제자나 70문도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이러한 환경의 터전을 한번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상대도 찾지 못하고, 그런 내정을 통고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제자도 찾지 못하신 채. 30여년의 생애를 지내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기에 한이 있다면 그분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많은 한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 역사를 엮어 오시면서 수고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보내시어 한 때를 맞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모든 내용이 근본적으로 파탄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 남성의 역사로 엮어 왔던 4천년 역사에 하나의 승리적인 기반을 세우기 위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세우지 못하고 가야 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었으니 그 사정이 얼마나 딱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하나 죽는 것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하나 죽음으로 말미암아 4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남자를 통하여 역사해 나오던 하나님의 섭리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더 슬퍼하셨습니다. 자기가 죽는 그 설움보다도 하나님의 섭리가 실패로 돌아가는 설움을 더 크게 느껴 내정적으로 깊이 슬퍼하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는 죽더라도 역사적인 모든 터전을 다시 한번 수습하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각오 밑에서 십자가의 길을 당당코 돌파해 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영적으로 제자들을 다시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제2의 울타리를 만들어 오늘날 남성을 중심삼은 기독교 역사를 재편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리하여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2천년간 수많은 순교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발전시켜 나온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러면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막연한 국가의 이념권 내에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민족을 다시 세워 가지고 예수님 당시에 해결짓지 못하였던 모든 내적인 문제를 재현시켜 완전히 해결지어야 합니다. 그런 탕감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특정한 국가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특정한 국가는 어떤 국가이냐? 수많은 국가 가운데서 그 특정한 국가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통일교 교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한국 백성이 그 모든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에 있는 우리들이 그런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5-22
참부모의 울타리가 되어야 할 축복가정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1960년부터 3년간에 축복받은 36가정, 72가정, 124가정들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가정들은 예수님이 살아생전 갖지 못했던 외적인 기준을 중심한 울타리의 사명을 완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외적으로 세계를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혹은 민족 종족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모든 탕감 내용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상대기준을 접속시킬 수 있는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울타리의 사명을 해야 할 것이 1960년부터 3년 동안 축복받은 가정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어서 가정들은 축복이라는 명사도 가져 보지 못했고 그 과정도 거쳐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기준을 거친 지금의 우리 가정들은 그 시대와는 달리 전체 가정이 외적인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한국에서는 통일교회의 이념을 중심으로 참부모와 인연을 맺은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이 800여 가정이나 되는데 이 가정들은 뭘 해야 되느냐? 그 가정에 있어서 남자는 오시는 주님 앞에 절대적인 남성을 대표할 수 있고 역사적인 한을 연결시킬 수 있는 상대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성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여성의 존재가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등장해 본때가 없었기 때문에, 횡적으로 평등한 자리에서 여성이 하나님의 섭리노정 앞에 등장해 보지 못한 그 역사적인 한을 푸는 대표자로 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등장할 수 있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게 된 것은 이들이 축복받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성 앞에 있어서 여성은 전체 여성을 대표하여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엮어 나온 모든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 시킬 수 있는 내적인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그것을 가정에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이 돌아 들어간다면 800여 가정 전체가 돌아 들어가야 하고, 그 가정이 돌아 나온다면 전체가 돌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중심삼아 가지고 돌아 들어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참부모 앞에 연결되어야 하고, 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돌아 나가더라도 그 가정 전체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기준에까지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완전한 탕감복귀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생님은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과정에 있어 온 전 남성을 대표하여 가지고 제물이 되되, 제물 가운데서도 최고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입장은 어떤 특정한 개인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어떠한 가정과 종족, 또한 민족만을 대표한 입장도 아닙니다. 세계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한 입장에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는 수많은 남성이 왔다 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벨로 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 예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남성을 중심삼고 역사해 왔지만, 선생님은 그들보다 내외적으로나 혹은 종적으로나 횡적으로 남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대할 때 부끄러운 입장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남성을 대표해서 세계적인 열매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않고는 탕감복귀를 완전히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통일교회는 뭘 하는 곳이냐? 통일교회는 통일교회 자체를 발전시켜야 하는 사명보다도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과 일체되어야 하는 사명이 큽니다. 각자의 책임보다도 선생님과 일체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책임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과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결정되지 않고는 자기를 중심삼은 책임은 완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면 남성인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데, 하나되는 데에는 자기의 사정이나 입장, 즉 가정이면 가정에서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모든 환경을 넘어서 가지고 완전히 하나된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된 그 자리에는 어떠한 간격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여기를 헤치고 나갈 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일치된 기준이어야 합니다. 이런 기준을 결정짓는 것은 여러분이 책임을 완수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이것은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또 여자면 여성인 어머니를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성은 여성 자체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그 터전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성 여러분들과 어머니는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성으로서 해야 되는 자기의 책임이 완수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반드시 어머니를 중심삼고 하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25-24
선생님의 책임
본래 역사는 남성과 여성을 중심삼고 접촉시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하나의 기점에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연결은 참부모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되어야 하며, 그 참부모는 역사의 기원으로 출발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가 출발되었더라면 영원한 결과의 세계까지 뻗어나갈 것인데, 이것이 틀어졌기 때문에 역사의 기원을 다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기원을 다시 만들기 위해 벌여 놓은 역사를 수습 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을 반드시 맺어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시대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가 현실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의 책임은 무엇이냐? 참부모의 인연을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중요한 사명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결정짓기 위해서 여자는 어떠한 여성이 되어야 하고, 남자는 어떠한 남성이 되어야 하느냐? 즉, 선생님 자신은 어떠한 아버지가 되어야 하며 어머니는 어떠한 어머니가 되어야 하느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나라의 문제도, 세계의 문제도, 하늘땅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완전한 승리의 결정을 짓지 않고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섭리는 다시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196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적인 싸움을 해 나오는 데에 있어 기준이 되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두 분이 하나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남성과 하나의 여성이 만나서 하나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모든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두 나라 사이에는 합할래야 합할 수 없는 수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즉,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사회의 모든 조직들이 다릅니다. 이 다른 환경이 그냥 그대로 하나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될 수 없는 사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탕감내용이 걸려 있는 문제, 바로 이 두 분이 하나되는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구렁텅이가 있다면 그 구렁텅이는 어떠한 구렁텅이보다도 더 깊은 구렁텅이일 것이요, 산이 있다면 그 산은 어떠한 산보다 더 높은 산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평면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심정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산정과 깊은 골짜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평지가 될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그 기준이 세워지는 때가 참부모가 이 땅에 인연을 갖추고 등장할 때이고, 그때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입니다. 인류사에 이러한 탕감노정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내정 가운데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이루려 하셨던 소원의 뜻을 아담 해와가 몰랐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 해와 타락 이후 슬픔의 역사를 4천년 동안 엮어 나왔지만, 그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인간들도 몰랐습니다. 4천년이 지난 후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을 대신하여 하나의 남성으로서 하나의 여성을 취해 가지고 역사적인 모든 해원성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품고 나아감에 있어서 당해야 했던 예수님의 내적인 고충을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몰랐으니, 예수님이 다른 누구에게 그 일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한 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모르고 나왔던 것입니다.

25-26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면 문선생 자신이 이러한 내정을 몰라 가지고는 탕감역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내정을 여러분에게 털어 놓고 의논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될 수 있는 사람만이 해결지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난문제로서 첩첩이 가로놓여 있지만 외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엇갈린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으니 여기에 깃들어 있는 모든 사연을 탕감하고 나와야 할 길이 참부모가 가야 할 길입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뜻을 펴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뜻을 펼 수 없는 실정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선고를 받게 될 때도 그것을 무난히 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환경에서는 뜻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를 죽임의 길로 내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깊은 곳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겉에 나타난 통일교회의 외적인 면을 보고 알 수도 있지만, 통일교회의 배후에는 나타나지 않은 역사적인 비참사가 내적으로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인들 중에 진정한 의미에서 이런 깊은 내용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일치를 이루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참부모의 문을 통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어차피 이 문은 통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씨족으로서, 새로운 생명체로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문을 통하는 데에는, 그 깊은 골짜기의 내정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저 나라에 있어서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 어느 정도 고개를 넘을 수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1970년도를 향하여 넘어가는 이 자리에 있어서 제2차 7년노정을 중심삼고 3년 기간에 이것을 완전히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9월부터 10월달까지가 이것을 넘어 가는 중심 기간이라고 봅니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참부모님이라 부르고 외국식구들도 선생님에 대해 참부모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깊은 골짜기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앞에서 들은 내용을 생각하며, 참부모가 모든 사람의 동경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수난의 결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에서 십자가 도상에 탕감의 제물로 올려질 것 가운데 최고의 제물로 등장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슬픈 사연을 지니고 그 슬픔의 고개를 넘어야만 부모의 자리를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축복가정은 어떠한 기준에 있느냐?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부모로 말미암아 복귀해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의 기원이 되는 곳은 장성기 완성급입니다. 여기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또 축복을 받은 다음 거기서 완성 단계의 기준에 서려면 7년이라는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은 선생님 자신도 거쳐야 되고 여러분들도 거쳐야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과정을 거쳐야 되는 공동 운명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복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밤이나 낮이나 어느 때든지 사선을 넘어서 자신이 완전히 아버지 앞에 순응할 수 있다고 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 길만 찾으면 다른 어떠한 길도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자기 남편도 막을 수 없고 자기 아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각자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25-28
누구나 가야 할 7년 노정
완성한 입장까지는 아담 해와가 각각 개인으로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길을 가는 데는 아내도 제재를 못 하는 것이요, 남편도 제재를 못 하는 것이요, 아들딸도 제재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에는 아들딸도 없고, 남편도 없고, 아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모두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도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이 깊은 무아의 자리에 들어가서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되면 반드시 분립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즉, 그런 사람이 어떤 남편의 아내가 되어 있으면 그 남편을 분립시키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런 사람이 남편이라면 그 아내를 분립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그런 사람이 부모의 자리에 있으면 자식까지도 분립시키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 길을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권내에서 가는 그 길은 가정이 간섭되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전부 다 버리고 가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가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종교에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도인들이 독신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한 때를 넘기 위해서 수천년 동안 도인들은 독신 생활을 강조해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를 다니다 보면 반드시 이런 문제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7년노정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1차 7년노정은 누가 가야 되느냐? 부모가 가야 됩니다.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부모가 그 길을 가야 되는데 누구를 중심삼고 가야 되느냐? 남자면 남자를, 여자면 여자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기에서 축복가정의 형태를 갖춘다 하여도 그 가정의 형태는 하나의 남성, 하나의 여성을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한 것이라야 합니다. 만일 뜻에 어긋나게 될 때는 서로가 아무리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 가까운 요소들을 제거시키고 넘어설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 길은 여성적 사연이나 남성적 사연을 서로가 제시해서 그것을 공정한 입장에서 통과시켜 가지고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완전히 하늘편에 치우쳐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남성이 주체가 되어 있으면 여성은 그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여기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중심삼고 가인과 아벨의 입장과 같은 내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남성이 아벨적 입장에 섰으면 가인적 입장인 여성은 그 앞에 절대 복종을 해야 됩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의가 있으면 그만큼 지장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를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거쳐온 7년노정도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실체적인 승리의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이 7년노정은 탕감조건을 중심삼고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선생님은 국가를 중심삼고 수많은 민족을 대하여 싸워 나왔습니다. 또한 수많은 교단을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승리의 조건을 결정지어 가지고, 그들을 굴복시킨 터전 위에 부모의 기준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날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날은 국가 민족을 복귀한 터전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통일교회에 세워진 하나님의 날은 통일교회 내의 하나님의 날입니다.

통일교회는 아직까지 종족 편성을 하는 입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종족을 편성하고 민족을 편성해서 앞으로 국가 앞에 제물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 통일교회 내의 하나님의 날이 민족의 하나님의 날과 국가의 하나님의 날로 등장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싸움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7년노정을 거쳐 가는 여기에는 아담이 주체가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반드시 선생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선생님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자면 여자로서의 감정도 있을 것이요, 가정에 있어서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기는 많은 사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연은 제2차, 3차적인 문제이지 1차적인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데 있어서 1차적인 문제에는 여자의 정서적인 문제 등의 여러가지 복잡한 내용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선생님이 7년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교회를 위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이 고개를 넘어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민족을 위해서 외적으로 싸워 나오고 있지만, 그 배후의 뿌리를 조성하는 것은 이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결정짓지 않고서는 아무리 민족 적인 승리의 터전이나 국가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그 승리의 터전이 그대로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참부모의 터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자리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을 남기지 않고 완성기준을 넘어선 자리에 올라가야만 비로소 참부모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 견해로 본 참부모의 기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견해에 합당한 자리는 간단하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25-30
축복가정들의 책임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이러한 내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1968년 1월 1일을 기해서 하나님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물론 이 날이 있기 전에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조건을 다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인류의 출발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되느냐? 이것을 알려면 먼저 축복가정들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장성기 완성급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축복가정은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는 주체면 주체, 즉 남자면 남자가 절대적인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남자면 남자로서 완전히 하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와 완전히 하나되지 않고 부부끼리 하나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부부끼리 하나되려면 각자가 완전히 하나의 뿌리에 접붙인 다음에 하나 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하나된 그 자리에는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의 명령이라 할 때는 죽으라면 죽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생사의 경지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결정적 의식을 항상 자각하지 않고는 이 길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게 될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의식 관념이 확고히 서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거기에서는 사탄을 제거시킬 수 있습니다. 죽음을 붙들고 싸운다면 사탄이 맞는 것입니다. 사탄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가정을 가진 남성은, 선생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죄의 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되어 선생님의 분신으로 주체적인 입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때에 대상인 부인은 주체와 하나되어서 그 앞에 절대 순응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 가운데 자기의 생활을 중심삼고 볼 때, 하늘 앞에 남아질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가정이 몇 가정이나 되느냐 하면 한 가정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러한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길은 안 가면 안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가정을 중심삼고 부부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들 스스로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부부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또한 이 가정이 남아지려면 종족을 위해서 나가야 하고, 종족과 연결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인연을 가져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근본적인 인연을 갖기 위해서는 세 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종적인 기준 없이 가정이 하나되어 가지고는 횡적인 기준이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횡적인 기준이 연결 안 되면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적인 인연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내적 기준을 결정 하는 입장에 서려면 반드시 외적인 기준에서 자기 대신 싸워 줄 수 있는 사람을 보강해 놓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사탄세계와 하늘세계의 두 세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축복가정은 남아 있는 사탄세계를 흡수해야 됩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가인적인 입장에서 하늘편을 반대해 온 나였으니 이제는 하늘편을 지지하는 입장이 되어 하늘편을 반대하는 천사장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탕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싸워 나왔습니다.

25-32
참부모의 기준
참부모의 기준점은 특정한 하나의 남성입니다. 그 남성은 6천년의 복귀섭리역사 과정에서 모든 국가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과정에서 실수했던 수많은 남성을 대표하여 승리의 결정권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운 터 위에 하나의 상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해와가 사탄에게 끌려감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것을 전부 다 다시 찾는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해와가 빚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남성의 상대가 재차 빚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축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 기준을 넘는 데에 있어 7년노정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이 7년 고비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7년노정 동안에 확실한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원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 싸운 것은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4천년 역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예수님 때에 이것을 연결해 가지고 7년노정을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2천년이 연장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재현해 가지고 그 4천년 역사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탕감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복귀원리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내용과 성경 가운데의 미지의 사실을 전부 다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노정, 그리고 예수 시대까지 제일 깊은 곳을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펼치면 크지만 손에 쥐면 한줌에 쥘 수 있는 그물과 마찬가지로, 심정적 기준 앞에 한줌에 쥘 수 있는 내용을 가려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가려서 아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건으로 제시해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승리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세계에서 통일교회가 문제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수많은 영통인들에게도 선생님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은 4천년 역사 속의 많고 높은 고지를 전부 다 평지로 만들어 심정적 기준을 중심삼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승리적 관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선생님이 세워 아무런 지장이 없는 내적 결정을 지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사적인 탕감노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일에 결단을 내리면 그 결단은 세상뿐만 아니라 영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영통한 사람들에게 알아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외적 세계만이 아니라 영적 세계까지도 들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천년 역사 속의 모든 깊은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산정을 깎아 평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많은 우리 조상을 대해 슬퍼했습니다. 수많은 우리 조상한테 배반당하고 배척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모든 사연들의 깊은 골짜기보다 더 깊은 골짜기에 들어갔습니다. 조상들이 가지 못한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가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선생님의 한마디 위로가 6천년 동안 지상에 왔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대표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나왔던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사실들을 너무나 막연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원리는 그렇지만 실감이 안 난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멀다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 기준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하며, 영적 체험에 들어가려면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뿐만이 아니라 원수세계에 들어가서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기도만 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중심삼고 옳은 것을 찾아서 생명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를 볼 때,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믿고 있는 통일 교회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장막을 헤치고 들어간 깊은 골짜기가 있고, 여러분이 역사 과정에서 느끼지 못하는 깊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5-34
하나님을 중심삼은 국가의 형성
우리는 민족복귀, 국가복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국가에서 민족을, 민족에서 종족을, 종족에서 가정을, 가정에서 부모를 세우기 위해서 거꾸로 수습해 나왔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2천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 일을 해나왔습니다. 이제 때가 됨에 따라 기독교를 중심삼은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 국가 가운데서 하나의 종족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뭉치는 역사는 120년 기간을 중심삼고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세계적인 발전은 120년간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 기간 중에서도 40년 기간이 문제가 되며 이 40년 기간을 중심삼고 나올 때는 7년 기간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외적으로 엮어 가지고 6천년 동안 벌여 나오던 것을, 즉 종적으로 벌여 나오던 것을 이제는 횡적으로 전부 수습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하려면 하나의 특정한 국가와, 특정한 민족과, 특정한 종족과, 특정한 가정을 세워 가지고, 세계사적인 대표로 개인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편에 종적 역사를 횡적으로 세워서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6천년 동안 세계 기독교국가권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때가 되어 옴에 따라 이 국가권에서는 역사상에 있었던 모든 실수를 재현시켜 가지고 천사장의 입장에서 탕감해야 됩니다. 이것이 국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의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역사를 엮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오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참부모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가정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언제나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 가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밖에 없습니다. 또한 선생님 가정 가운데서도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있고 자녀들도 있지만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가정은 가정들의 대표가 되어야 하고, 종족 민족 세계의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이것을 하기 위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아담 가정, 노아 가정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가족적인 차원을 세계노정 가운데에 연결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선생님의 가정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성공했다고 하여도 그 성공이 자기 혼자만의 성공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성공으로는 그 어떠한 것도 수습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영광을 드리겠다 하여도 자기가 동기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내가 뜻 앞에 충성을 다하여 앞으로 모든 것을 하늘 것으로 바쳐 드려야 하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원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동기가 누가 되어 있느냐 입니다. 내가 누구로 말미암은 나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도를 나갈 때도 전도 나가는 동기가 누가 되어 있느냐 했을 때, 동기가 여러분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늘이 동기가 되어 출발한 것의 결과가 자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을 세번 이상 반복하는 사람은 앞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길이 막혀서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 절대로 길을 다시 찾지 못합니다. 새로운 동기의 조건을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25-36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때와 장소
하나님은 때가 되기 전에 반드시 준비를 시키십니다. 군대가 위험한 때를 대비해서 연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국가가 국민을 총동원해서 긴급사태에 대비한 연습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결정적인 큰때가 오기 전에 반드시 연습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습은 하나님이 앞장서서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은 완전히 떠납니다. 왜냐하면, 타락의 결정을 아담 해와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같이하시고 언제 동정하시느냐? 완전히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입니다. 둘이 아니고 혼자 남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한테도 형언할 수 없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빠져 나갈 구멍도 없는 그런 입장에까지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고개를 넘을 적마다 반드시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가 가야 할 길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정의 십자가를 지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이것이 참부모가 가야 할 운명의 길입니다.

또한 이 길은 하나님이 협조해서 넘는 길이 아니라 홀로 넘어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넘을 때 하나님이 협조하여 같이 넘었다면 탕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입장에서 홀로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홀로 넘어야 할 길이 이렇게 힘들고 지루한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책임진 사람이 가야 할 운명길이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모릅니다.

어머니도 모르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삼각 권내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삼각권내에 들어가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 후퇴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책임완수하기가 어렵다고 자포자기하여 후퇴한다면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후퇴하게 되면 반드시 사탄이 접근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막막한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려면 이러한 작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여기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기간도 여러 분이 알지 못하는 중요한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국가의 운명과 세계의 운세가 한 초점을 향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국내외 정세들이 전부 7,8,9월을 기하여 기독교를 중심삼고 집중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운을 대표한 결정권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간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 같으면 벌써 몇천년 전에 다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것을 올바로 결정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이 3선 문제를 중심삼고 내심적인 결의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6천년 복귀역사가 좌우되고 선생님의 생애가 좌우되는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싸우는 기간임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7년노정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갔지만 여러분들은 아무도 이러한 문제를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여러분이 모르는 내적인 싸움을 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중차대한 과정을 거쳐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도 넘어가야 할 대단히 큰 고개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늘이 9월 21일이니까 우리가 작정한 9월 30일까지는 멀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10월 14일까지 정성들이고 나가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기간에 모든 역사적인 사연을 거쳐가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열심히 일해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