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10 to 24-350: 참된 형제

참된 형제
1969.09.14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310
참된 형제
[기 도]

아버님! 오늘은 9월 14일, 이 달 들어 두 번째 맞이하는 성일이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자녀들을 참사랑의 형상으로서 빚어 주시옵소서. 저희 인간은 피조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실을 알았사옵고, 거룩하심과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는 아버지의 섭리가 인간과 더불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 인해 결실되어야 할 이 엄청난 사실을 이 시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때, 각 개체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이 미미한 존재에게 이렇게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한 가정의 일원이 되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봉사하면서 생애노정을 개척하다가, 그것으로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는 줄 알고 살아 나오던 저희였사옵나이다. 하오나 저희 자체가 역사적인 실체라는 이 엄청난 사실과 중대한 가치적 내용을 지닌 모습인 것을 말씀을 통해 알았사옵나이다.

아버님, 대한민국은 불쌍한 나라이옵니다. 이 민족은 아시아에서 유린당하고 쫓김받고 핍박받던 민족이었사옵니다. 어느 한 때, 하늘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권한을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없었던 불쌍한 민족이었사옵니다. 이 민족의 배후에 있는 역사적인 슬픔을 탕감해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래서 슬픔을 탕감하고 나면 아버님의 영원하신 축복의 인연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은 슬픔의 주인공임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만민의 축복과 복의 근원이 되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그래서 아버님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최후의 승리의 권한과 최후의 영광의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것도 알았사옵고, 높고 귀하신 중심이신 아버님으로 말미암아 천주의 만상과 대세가 좌우된다는 진정한 의미를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이러한 분을 아버지로 모셨사오니 아버지를 입으로만 불러서는 안 될 줄 알고 있사옵니다. 역사적인 슬픔을 홀로 짊어지고 나오시는 아버지의 사정과 심정을 알았사옵고, 아버지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는 분부하고 싶은 자녀를 찾기 위한 간곡한 소원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았사옵고, 무한한 심정의 인연 때문에 억제할 수 없는 비통한 자리에서도 아픈 가슴을 참고 찾아 나오신 아버지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도 갈망하시고 그리워하고 요구하였던 그 자체들이 오늘날 저희 자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렇게도 비참하고 불쌍한 자신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가냘픈 이 생명의 인연을 스스로방관하고 포기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무가치한 이 모습을 무한한 가치로 세우시려는 아버지를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심정의 골짜기를 파고 들어가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게 될 때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딱하셨는가를 알게 되옵니다.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저희 자신들은 이 모습으로 감히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부족한 자들이옵니다. 혈통적 인연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더불어는 아무 내용도 갖추지 못한 원수의 자식들임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저희를 당신은 크신 사랑을 통하여 순수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아버지의 내적인 심정이 얼마나 고충스러웠는가를 저희들이 진정으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 그 누구보다 저희들이 백배, 천배의 노력을 한다 해도 아버지의 마음 앞에 합당할 수 있는 내 자체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께 무엇으로 감사를 드려야겠사옵니까? 저희 자체를 찾기 위하여 험한 행로 가운데서도, 그 한 날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아버지께 저희들은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눈물 없이는 아버지를 대할 수 없는 자신임을 알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간은 흘러가는 역사과정에서 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륜의 인연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가치를 중심삼은, 하나님의 소원의 일념을 대신할 수 있는 결실체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누구에게 저희가 시험받고 부름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온 천지를 창조한 아버지 앞에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희는 가진 것이 없어도 아버지를 모시게 될 때에는 행복하옵니다.

어떠한 불행한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와 같이 있게 되면 불쌍한 자가 아니옵고, 외로운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외로운 자가 아님을 저희들은 확실히 아옵니다. 연약한 자리에서 저희 자체가 연약한 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원천 되시는 아버지와 하나될 수 있는 그 마음 가운데 처하게 될 때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기를,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희 자신들이 역사적인 실체인 것을 알게 될 때, 이제 저희의 말과 행동이 저희 개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가는 그 행로는 저희 자체의 일생을 그리는 행로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이 민족과 세게 인류 앞에 대표적인 역사적 기원을 마련해야 되는 이 엄청난 세계사적인 사명을 각자가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선을 위하여 새로운 깃발을 들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엄숙한 제단 앞에 스스로 제물 되기 위하여 부름받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소원을 이루시고자 저희들을 부르셨사오나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드릴 수 있는 예물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한 모습이오나, 순결한 마음. 정성스런 마음. 진정한 마음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께 접붙일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입으로만 아버지를 많이 불러왔사옵니다. 아버지의 사정과 심정이 어떠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아버지를 불러왔사옵니다.아버님께서는 언제나 애달픈 마음, 언제나 심각한 마음, 언제나 비통한 마음을 가지시고 저희를 부르셨사오나, 그런 아버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거기에 합당한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의 원한의 사연을 풀기 위하여 2천년 전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던 것을 아옵니다. 수많은 인류 가운데에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한 사람, 아들의 명분을 가지고 효를 다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그 깊은 심정에 맺혀진 사연을 풀기 위해서, 인류를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여 이 땅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것을 알았습니다.그는 요셉 가정에서 외로이 자랐습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연을 가지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천륜 앞에 있어서 하늘의 승리의 왕자가 될 수 있도록 매일 매일의 생활을 촉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환경에 부딪히면서 참고 나가야 하는 예수님의 사정을 알게 될 때, 그분은 불쌍하셨고 외로우셨고 억울하셨고 비참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 보다 가까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상속받아야 할 저희 자신인 것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에게는 예수님의 사명보다도 더 큰, 실체를 통하여 넘어야 할 탕감적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사명이 저희에게 있음을 알면서도 그 사명을 위해서 모든 정성을 다하지 못한 과거지사를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서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할복귀의 길 앞에 있어서 충성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삼지사방에 있던 몸들이 이렇게 모였습니다. 바쁜 걸음으로 여기까지 찾아오기에 수고한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여기에 모인 자녀 중에 아버지의 이름을 중심삼고 뜻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새벽을 그리워하며 찾아온 자녀가 있사옵니까? 그 자녀 위에 천 배 만 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또한 마지못하여 참석한 자녀가 있다면, 하늘 앞에 부끄러운 자신임을 발견하게 하시고, 회개의 마음으로 가일층 아버지심정 앞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 외로이 무릎을 끓고 당신 앞에 호소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바람이 부나,눈이 날리나, 때와 환경이 변하더라도 오직 당신만을 위하여 살기를 각오한 무리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가는 길 앞에는 억만 사탄이 가로막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부르고 나가는 그 길 앞에는 언제나 원수 사탄이 막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 원수들이 막아 나왔던 그 길을 저희들이 뚫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영계를 동원하여서라도 기필코 이것을 제거시켜야 할 사명과 책임과 의무가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온 영계가 수고하는 그들에게 협조하여 그들의 갈 길을 개척하여 주옵고 그들의 주위를 보호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이 마음놓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평화의 그날, 마음놓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찬송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새로 나온 당신의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들 위에 아버지를 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흠모하는 심정이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아버지만을 그리워하는 심정에 사무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고, 그러지 않고는 저희가 부활의 영광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거룩되게 받아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로운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아버지 앞에 몸부림치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깊은 심정으로 그들을 품어 주시옵고, 가꾸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에 되어지는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4-315
말 씀
이 시간에는 ‘참된 형제’ 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보다 가정을 위하고, 가정보다도 민족을, 민족보다 국가를, 국가보다 세계를 먼저 위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개인이 참되기 전에 가정이 참되어야 되고 나아가서는 국가, 세계가 참되어야 합니다.

24-315
참의 기원
인간은 자기 개체로서는 모든 복의 동기가 될 수 없는 복귀노정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는 무엇이냐? 참입니다. 인간이 참된 모습을 이루려면 모든 생사화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인간 개체내에서는 참된 모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참은 반드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수습하고 주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을 갖게 될 때 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갖지 못하면 `참’이라는 명사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참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나게 될 때 참도 떠나게 됩니다.거기에는 참이 아닌 악의 기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참이 있어야 참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니 선이니 하는 명사는 인간을 위주로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참은 인간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타락한 인간이 마음대로 관리하는 그런 자리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참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참을 세우고 거기에 순응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현실적인 생활이나 혹은 양심생활을 미루어 보더라도 참은 완전히 하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가치를 지닌 참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참된 사람이 있으면 참된 형제가 있어야 하고 참된 형제가 있으면 참된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 참된 부모와 형제와 자기가 합하여 참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가정이 있게 될 때, 거기에서 참된 종족이 나오고 그 종족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민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24-316
참의 결정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3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과연 하나님이 완전히 주관할 수 있고 자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동기의 내용을 지닌 참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할 때 참의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에 대한 정의조차 애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면, 사상을 중심삼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에 있어서 민주주의가 참인지 공산주의가 참인지 완전히 해명을 내릴 수 없습니다. 제창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에 대해 해명해 줄 수 있는, 결과를 가지고 ‘이것이다’ 하고 제시하는 사람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의나 사상은 아직 과정적인 입장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과정적인 그 자체를 가지고 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다시 말하면, 익어가는 열매는 완전한 열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익었을 때 참된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기원을 중심삼은 그 열매에서 새로운 나무가 소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참을 중심삼고 볼 때 참의 결과에 입각한 참은 아직까지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참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천륜이 바라고 우리의 인륜이가야 할 참된 사상이나 주의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수많은 성인현철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은 참을 그리워하다가 갔지, 결코 참된 사람이 되어서 살다 간 사람은 없습니다.그렇기에 성경에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도 없다는 이 말 가운데는 자기 자신도 부정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참은 독자적인 입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24-317
지금까지 참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 참된 사람을 어떻게 세우느냐? 즉, 타락한 후손인 수십억의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참된 역사의 기원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참된 하나님,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말을 막연히 습관에 의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참으로써 연결될 수 있는 기원은 인간들이 걸어온 역사의 배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초월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즉, 기원은 환경을 초월한 자리에서부터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종교는 사람을 중심삼고 믿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주를 중심삼고 신앙의 표준을 세워 놓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추월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개재시켜 참을 추구해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이것을 볼 때, 역사과정을 거쳐온 수많은 인간의 생활노정에 있어서나 현실사회에 있어서도 참의 기원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자체들로 연결된 자리에서는 참의 기원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참은 반드시 절대적 기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혹은 절대자, 신이라는 문제가 여기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지금까지 땅 위에 참사랑이 없었습니다. 없었기 때문에 참을 지향하면서 사는 사람자체로서는 참의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동기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종교나 인류 역사상에 있어서 최후의 중요한 분기점에 가서는 신이 등장합니다. 절대자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목표, 즉 진리를 통하여 최후의 목표를 두고 추구해나가거나 문제, 초월자, 절대자라는 명사가 개재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자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모든 학문이나 모든 존재의 가치의 기원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심각한 자리에서는 반드시 이 관계를 맺고 참을 통하여 해결 지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의 기원은 인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신이나 절대자, 혹은 하나님이 개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을 주장하는 종교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참을 주장하는 인륜 도덕도 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천(天)을 중심하고 한 말입니다. 반드시 하늘을 개재시켜야 합니다. 그 흥망성쇠의 기원이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늘이 동기가 될 수 있는 기원이 마련되지 않고는 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가운데 참된 사람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24-318
참이 머물 수 있는 곳
그러면 참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는 어디냐? 인간의 어디에 처해 있을 것이냐? 물론 하늘이 기원이 되어 참의 자리를 땅 위에 세우려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어디에 머무를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우리의 몸에 머무는 것도 아니요, 우리의 마음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참된 나라인 천국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는 깊디깊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을 분석해 보면 지정의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 지정의 중에 무엇이 근본일 것인가 할 때, 의(意)도 아니요, 지(知)도 아닌 정(情)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두고 싶습니까? 자기만이 아는 곳에 두고 싶을 것입니다. 거기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관여할 수 없는, 즉 자기만이 절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는 것입니다. 이곳이라면 안심하겠다 할 수 있는 곳에 두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흔히 귀중품을 넣어 두는 장롱 같은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자신의 마음의 깊은 자리입니다.

정은 혼자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상대적 관념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좋은 부부가 있다 하더라도 자식이 없으면 심심합니다. 젊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처끼리 다니면 허전하고 심심합니다. 그 앞에 아들이 있어서 그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가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자식은 소망입니다. 그 자식이 없으면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그 자체는 영원한 소망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소망이 아닌 영원한 소망으로 뻗어 나갑니다. 또 심정적인 것도, 영원한 소망과 함께 영원히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을 중심삼고 볼 때,아무리 잘난 여자나 남자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상대적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24-319
하나님을 중심삼은 형제가 참된 형제
그러면 상대적 관계에서 제일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개인적인 자체에 있어서 내적으로 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참이 결합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내 자체가 동기가 되고 기원이 되어 참된 내가 되고 참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이렇게 내적인 참의 인연을 중심삼은 개체가 아담 해와 둘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야 할 것은 형제의 관계였습니다. 완전한 형제애의 인연을 중심삼은 개체는 아담 해와 둘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야 할 것은 형제적 관계였습니다. 완전한 형제애의 인연 가운데 하나되어 완전한 형제의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대적 이념의 세계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형제지간의 관계를 거쳐야 상대적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역사를 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박애주의 사상을 선포하면서 만민은 형제라고 합니다. 그처럼 `만민은 형제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참된 형제의 자리에 나가야 합니다. 참된 형제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 만민을 위해서 평등을 주장하고 박애사상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의 기원을 기독교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를 중심삼고 형제라고 하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중심삼고 형제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떠나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형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그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는 형제의 관계를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망각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갖고 있는 참된 인생관이나 참된 우주관이 어떻게 되어있느냐 할 때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지않았습니다. 그분의 생활관, 인생관은 하나님을 중심한 생활관이고 인생관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분이 주창한 세계관 역시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관입니다. 그 어떤 성인보다도 나은 것입니다.이처럼 모든 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창하고 사랑으로 그 관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그 어떤 종교보다도 위대한 것입니다.

24-320
천국 건설과 참된 형제에로의 복귀
기독교는 형제와 신랑 신부와 부모를 논의하고 참을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는 어떤 종교도 갖지 못한 내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참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가 출발했습니다. 그러면 참을 추구해 나오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실 것이냐? 심정적 관계를 중심삼은 곳에 계십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삼은 심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기반을 중심삼은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형(型)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 부모의 입장에 서서 인생관과 우주관과 세계관을 제창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은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기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이므로 예수님 자체가 동기입니다. 오늘날 복귀노정을 볼 때도 심정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랑 신부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중심하고 볼 때 종말에는 신랑 신부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좌우가 결정됩니다. 또한 전후, 상하가 결정되고 여기에서 참된 사랑이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참된 사랑의 기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고 타락의 인류역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기필코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이 결정의 한 날을 추구해 나오셨습니다. 또한 인류역사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생명의 세계로, 참의 세계로, 희망의 세계로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참은 심정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심정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게 될 때,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서 모든 종교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으로 민주세계가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관계로 볼 때 복귀과정이란 참된 형제를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믿고 있는 최후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참된 형제를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최후의 목적은 천국입니다. 물론 참된 형제가 개인적으로는 상대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상대의 목적은 천국입니다. 그 천국을 가는 데 있어서 입문할 수 있는 기준, 즉 나는 천국백성이 됐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냐? 형제입니다.그것은 복귀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4-322
참자녀로 복귀되려면 참부모가 나와야
구약시대는 종의 시대이고 신약시대는 양자의 시대입니다. 우리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성약시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양자가 되어서 아들의 자리로 올라가야 부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약시대에는 양자가 아닌 직계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양자는 혈통이 다릅니다. 부모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즉 양부모로서의 아버지와 양자로서의 아들이 된다는 목적을 가지고 부자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이게 될 때, 양자로 들어오는 그 아들이 양아버지가 바라고 있는 목적과 일치되지 않으면 양자로 택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리 가는데,아들은 저쪽으로 가겠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느 땐가는 갈라집니다.

그렇지만 직계 자녀가 되면 목적이고 뭐고 필요없습니다. 양자는 목적을 중심삼고 결합되지만 직계 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는 이리 가고 아들은 저리 가더라도 아무것도 갈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이 나쁘다고 느끼면 둘이 같이 좋은 곳을 찾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양자와 다른 것입니다. 양자는 한때를 중심삼고 만나는 것이요, 직계 자녀는 부자의 관계 속에 영원을 두고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자는 혈통적 관계에 있어서도 핏줄이 다릅니다. 핏줄은 역사의 기원에서부터 역사의 끝까지 이어 내려갑니다.이것은 끊어 놓는다 해도 잘라지지 않습니다. 수천만 대가 흘러가더라도 수천만 대 전의 핏줄을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담의 혈육을 갖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 자체는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의 혈통적인 요소를 전부다 통합한 하나의 결실체입니다. 얼굴을 보면 눈이 이렇게 생긴 것이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역사과정에 왔다 간 선조들의 모든 특성을 총합한 기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나는 어떤 선조의 성품을 많이 닮았다 하는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핏줄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양자는 한때를 중심으로 때의 목적을 위해서 만난 것이고 직계 자녀는 영원을 중심삼은 것입니다. 그러면 섭리적으로 볼 때,양자 자체가 직계 자녀가 될 수 있느냐 할 때 될 수 없습니다.복귀역사에서 이것이 문제입니다. 원리에 보면 실체복귀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참된 형제라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어머니 아버지를 가졌다고 자랑하더라도 그들은 참된 형제가 아닙니다. 참된 형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날 때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삼고 태어났어요? 대답해 보세요. 김 아무개라는 아버지와 박아무개라는 어머니가 합해 가지고 자식이 생겨났지,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겨났겠습니까? 그 동기를 볼 때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역시 하나님이 기원이 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이라는 명사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개재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참된 부모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참된 자녀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직까지 땅 위에 참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를 인정하고 그 참부모를 발견해서 모시자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자는 것입니다.

24-323
참자녀가 되면 참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어
그 아들딸이 되면 무엇을 하느냐? 참부모가 갖고 있는 것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갖고 있는 상속권은 하늘땅 하나님까지입니다. 하나님까지도 상속받자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주인이 없다면, 그 하늘땅은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그 하늘땅의 가치를 백퍼센트 인정할 수 있고, 그 가치를 영원히 주장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또 그것을 공인해 줄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의 상속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상속권이 무엇이냐? 하늘땅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상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무엇이 좋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그 사랑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온 천지 만물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여기에 학생들도 있지만, 어린이들이 있으면 엄마 아빠는 그저 자식들이 예뻐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귀여워해 줍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모가 귀여워하면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전혀 안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돼지새끼예요. (웃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정이 평화스러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에 전부 매달려야 됩니다. 나라가 하나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으로 치리 하는 나라에서 주권자와 백성이 정으로 서로 엉켜 있으면 그 나라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도의 세계, 즉 종교는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나왔느냐? 역사적인 모든 국가의 흥망성쇠의 과정에서도 종교만은 왜 망하지 않고 남아져 나왔는가?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주와 믿는 신자들이 정으로 엉켜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가 남아져 나온 것입니다. 종교가 강하고 종교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상과 교주와 순종하는 신도가 역사시대를 넘어 얼마만큼 일치되는가에 있습니다. 이런 강한 내용을 지닌 종교일수록 세계적인 종교가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습니다.

24-324
하나님의 사랑
우리 인간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중심으로 예술가면 예술가대로,사업가는 사업가대로,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에 있으면 자기에게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야단을 합니다. 그것은 중심존재로 의지하여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던 것입니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을 통하게 되면 어떤 기분이냐? 봄날 향기 풍기는 봄동산에서 꽃이란 꽃은 전부다 보고 향기란 향기는 다 마셔서 취한기분과 같습니다. 또한 봄철 잔디에 앉아 있을 때 솜같은 뭉게구름에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그 무엇을 느끼는 기분과 같습니다. 거기에서는 세포가 춤을 춥니다. 세포도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력을 지닌 모든 존재의 힘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입니다. 희락이나 평화, 인생이 소망하는 것의 절대적인 요건이요, 신앙의 절대적 요소가 됩니다. 또, 영계에 가면 하나님의 사랑이 법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고 못 가고의 등급은 무엇으로 결정되느냐 하면,세상의 무슨 권력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화합할 수 있는 소성을 얼마만큼 지니고 왔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결정합니다.거기에 따라서 영계의 모든 등급이 결정됩니다. 사랑의 질서에 의해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거기에서 자기가 천리를 따랐는가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행로의 원천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가야 됩니다.

24-325
참부모에 의해 중생되어야 할 인간
여러분은 이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났습니까? 여기 있는 청년들은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님을 도와주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7,80년 살면 어머니 아버지는 흘러가지만 여러분은 남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아진 들러리가 합해져 오늘날 30억 인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30억 인류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임재할 수 있는 참의 기원을 만들기 위해 복귀행로를 거쳐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복귀행로를 따라 종의 자리를 거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 직계 자녀의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녀의 자리에 나아가려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영적부모를 중심삼고 영적인 형제 입장을 세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영적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성부성자 성신은 영적인 부모입니다. 성부는 하나님, 성자는 아버지, 성신은 어머니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가 나와서 참부모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상에 있어서 최고의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복된 소리입니다.세상의 복된 소리 가운데 무엇이 가장 복된 소리입니까? 동생이 자기 형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온 것도 복된 소리입니다. 그렇지요? 그것도 복된 소리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복된 소리는 무엇이냐?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복된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한 것이냐? 마태복음,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이 4복음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사후에 가서 하늘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복음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에서는 영적 부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는 영육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지 못하고 참부모의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부모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됩니다. 즉 참부모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거듭나야 합니다. 자기가 태어난 자체를 거부하고 다시 나야 합니다. 중생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체의 존재를 거부해야 합니다. 존재를 거부하지 않고는 재생의 동기를 마련할 수 없습니다.

24-327
자기 부정과 중생
참을 찾아 세우려면 진짜 부정이 있어야 됩니다. 종교는 긍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기반에서는 완전한 참을 세울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입장에서만 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리를 보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부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났으니 부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문제는 양자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자 입장에서 살았습니다. 지금까지 직계 자녀에 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참사람이 땅 위에 와야 됩니다. 땅 위에 와서 양자를 직계 자녀로 바꿔치기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자녀를 중심삼고 그에게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접붙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잘려져야 합니다. 돌감람나무는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잘라야 합니다. 몽땅 잘라야 합니다. 십년 백년 된 노송이라 하더라도 밑둥치까지 몽땅 잘라야 됩니다. 그 다음 접붙일 수 있는 씨가 무엇입니까? 눈입니다. 그 작은 눈 하나를 가져다 접붙이는 것입니다. 이 눈 하나 받기 위해 자기를 몽땅 자르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해야 됩니다.

접붙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눈 하나와 자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현재의 나 전체를 부정해 버리고 아들 될 수 있는 자신을 긍정적인 입장에 세워야 합니다. 그 긍정에 부정이 흡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참된 종교가 세워 나가는 길입니다.

따라서 개인을 부정해 기지고 거기서 접붙임을 받아야 되고, 그러한 개인들이 합하여 참된 가정을 중심삼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또 참된 종족을 중심삼고 접붙임을 받아야 되고, 참된 민족을 중심삼고, 참된 국가,참된 세계를 중심삼고 접붙임을 받아야 됩니다.

개인만 접붙임을 받으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귀노정에 있어서 중심 기준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만 세워지게 되면, 그 다음은 간단합니다. 대한민국이 국가 기준까지 복귀되면 국가적 기준에서 세계를 복귀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중심삼고 참의 기원이 마련되면 그것이 가정이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기원이 되고, 종족이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중심만 결정되면 문제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할례를 제정하여 이방 사람들도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아들로 취급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권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4-328
사탄의 역할
그럼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접붙일려면 자기를 굴복시켜야 합니다.그렇다고 자기 자신이 자신을 끊을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만약 접붙인다고 자기 목을 자르면, 그것은 자살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부정시키는 그 누가 있어야 됩니다. 그럼 그는 누구냐? 사탄입니다. 하나님과 접붙이는데 있어서 사탄은 인륜적으로 부정시키는 책임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탄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지금까지 사탄을 가만 놔둔 것입니다. 필요없으면 뭣 때문에 두겠습니까? (웃음) 사랑의 하나님이 사탄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정시키기 위한 책임자는 사탄입니다. 하나님의 뜻길을 가려면 사탄은 반드시 막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는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죽음과 싸워 나온 것입니다. 죽음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죽지 않고는 안 됩니다.영원한 세계에 가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을 때 죽음을 극복해야 됩니다. 죽음을 극복하려면 자기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탄의 반대를 받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정성들여 기도하게 되면, 누가 와서 목을 누르고 타고 하는 별의별 일을 다 경험할 것입니다. 그래도 ‘천번 만번 날 죽여 잡수소.나는 독수리 밥이 되기를 결심했소’ 하면서 산골짜기, 평지 등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지 다니면서 다 극복해야 합니다. 살아서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영원한 세계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즉, 영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절대로 부정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체험합니다. 여기에 있는 오래된 사람들은 다 이것을 체험하고 통일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체험하지 않았다면 남들이 반대하고 핍박하는 통일교회를 누가 믿겠습니까? 선생님도 통일교회 안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체험을 하게 되니 안 믿으면 못 살게끔 영계에서 들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계가 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못합니다.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가서 영계가 있을 게 뭐야’ 하고 했다지만 그런 곳은 전부다 영인들이 관리하는 곳입니다. 이 세상은 영인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정의를 위해 죽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사람은 참 지혜롭습니다. 자기에게 손해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통일교회를 심각하게 가르쳐 주면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믿어 죽으면 천국 간다는 막연한 내용을 가지고도 밟히면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로마제국으로부터 4백년 동안 핍박받으면서도 지금의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는 역사적인 종교로서 세계의 예술이나 문명을 창건하는데 있어서 사상적, 정신적 밑바탕이 됐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도 우린 죽어야 되겠습니다.

죽는데 있어서 누가 죽게 하느냐? 사탄입니다. 그렇다고 기도할 때 ‘사탄아 어서 오너라’ 이렇게 기도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오라고 해도 못 오고, 사탄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가깝습니까? 사탄이 더 가깝습니다. 사탄이 우리와 더 가까우니 우리는 사탄의 아들딸임이 틀림없습니다. 나면서부터 사탄에게서 났고 사탄과 살았기 때문에 이 사탄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면 사탄세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 사탄세계를 어떻게 해탈하느냐? 이를 위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사탄으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3년 이상 종살이를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미국 대통령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도 해야 합니다. 그도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들어가서 3년 이상 종살이를 해야 됩니다. 우리 중·고등학교 학생들, 종살이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겠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님을 위해서 종살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보다도 이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24-330
사탄을 극복하는 자리
통일교회가 찾아 나가는 것은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세상나라를 사탄이 주관했습니다. 그러니 세상나라를 극복해야 됩니다. 가정이 아니라 나라를 극복해야 됩니다. 나라를 극복하려면 저 나라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다 극복해야 됩니다. 그래서 죽음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자원해서 갈 수 있습니까? 가기는 가되 어떻게 극복하며 갈 수 있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탄으로부터 완전히 해탈될 수 있느냐 할 때, 저 깊은 골짜기 굴속에 가서 기도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서 극복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우리 통일교인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리에 가야 하느냐? 그곳은 힘든 자리, 고난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힘든 자리, 고난의 자리에 간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24-330
배반하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누구를 찾아가셨습니까?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가시지 않고 왜 제자들을 찾아가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의 길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상대적 관계가 아니면 안 됩니다. 즉, 예수님이 아무리 극심한 시련과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혼자 짊어진 십자가입니다. 형제와 더불어 짊어진 십자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에 사탄이 무엇을 잡고 나타나느냐, 형제를 잡고 나타납니다. 자신은 됐다 하더라도 형제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반한 열 두 제자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아들로서 책임할 때이기 때문에, 열 두 제자와는 형제지간이었습니다. 이 형제 가운데 접해있는 사탄을 극복하지 않으면 예수님 자신이 해방 받을 수 없습니다. 즉, 양자를 접붙여 놓지 않으면 책임을 완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자를 접붙여서 자기와 같은 자리에서 감람나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녀를 만들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사시켜야 할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부정의 자리입니다. 제자가 선생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자기 자신이 배반 받는 자립니다. 형제에게 배반 받는 자리, 이 자리는 지극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역사시대는 언제나 이러한 과정을 겪었습니다.

아벨은 자녀 입장이고 가인은 양자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벨 앞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벨이 가인으로부터 배반당했습니다. 아벨은 가인을 다시 찾아가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도 부활하여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벨도 가인에게 죽음을 당하였지만 찾아가야 합니다. 배반한 가인의 후손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을 대신한 것이 노아 시대의 함과 셈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은 배반한 인간들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을 찾아오시게 하려면 부정의 인연을 완전히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주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시 찾아오시는 데는 무엇을 갖고 찾아오시느냐? 원수의 마음, 복수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 제물과 희생의 마음, 봉사의 마음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사탄세계에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사탄세계에는 이러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이 땅 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배척 받는 자리에 섰다고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배척 받고 억울한 자리에서도 원수를 사랑했다는 데에서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저들이 알지 못하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 것은, 메시아로서 담당해야 할 응분의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가 출발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마감입니다.

원리적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은 배척한 무리를 다시 찾고 계십니다. 그들이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죄를 할 때 구원의 닻이 이지상에 내려지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이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4-332
복귀섭리는 몰리고 핍박받는 외로운 자리에서부터
그러면 어느 때, 어느 시대에 복귀섭리는 뒤넘이치느냐? 복귀섭리의 승패가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이것은 양자인 가인과 자녀인 아벨에서 결정됩니다. 누가 부정해야 되느냐? 여기에서 반드시 아벨이 부정해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부정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그래서 아벨 한 사람이 만민을 대표해서 오게 됩니다. 그는 아무개네 집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계 인류를 대신한 사람입니다. 이 아벨적 기준에 선 사람은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느냐?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외로운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몰리게 하는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몰아넣는 것입니다.그는 그 나라의 거지, 빌어먹는 사람까지도 싫어하는 자리, 그런 최하의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까지 떨어져야 합니다. 즉, 제일 외로운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기반을 닦고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부터 뜻을 대하여 나왔던 사람들은 전부 다 희생당했습니다. 참과 선을 위하여 노력하던 의로운 사람들도 전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 선열들은 한 번 가고는 다시 오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예수님만은 돌아가시면서, ‘내 다시 오마’라고 당당코 약속했습니다. ‘다시 오겠다’ 이것은 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 다시 오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로서 다시 오셔서 이 지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기반을 세워야 합니다. 이와 같이 다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여러분들이 아벨적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국가나 민족 앞에 배척을 받아야 됩니다. 대한민국에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에는 국가적인 입장에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받았습니다. 배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해 마음대로 죽일 수도 없고 원한을 풀 수도 없는 최악의 궁지에 몰리는 것입니다.그러나 국가적으로 몰리는 이런 자리에서 뜻을 중심삼고 하나됐더라면 국가적인 십자가를 완전히 넘어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가 하나되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통일교회와 국가의 운명은 수난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식과 원칙은 현사회를 중심삼고 역사의 배후에 엄연히 전승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여러분들을 들이 몰아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이녀석…’이런 별의별 일을 다 겪어야 합니다. 통일교회 초창기에 자식이 교회에 나간다고 반대하는 부모가 많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칼을 들고 자식이 교회에 나가면 목을 찌르겠다고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형제들이 교회에 나간다고 때리기도 했고, 나가면 다리를 꺾어버리겠다고 위협도 했고, 머리를 빡빡 깎아버리기도 하면서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자기 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유대를 가진, 즉 자기로부터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가정을 부정해 버리지 않고는 하늘나라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내용, 즉 탕감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내용이 성경에만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시대상을 대표하여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핍박을 잘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잘 받았습니다. 핍박을 받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진맥진했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들, 기진맥진했습니까? 예수님의 3년노정과 마찬가지로 3년만 지나가게 되면 지칩니다. 우리는 3년 반이지요? 전 3년 6개월, 후 3년 6개월 해 가지고 7년노정입니다. 전 3년 6개월은 기뻐서 뛰는 기간이요, 후 3년6개월은 지쳐서 따라가는 기간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통일교회를 믿습니다.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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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걸어야 할 7년노정
그리고 나서 또 뛰는 것은 제2차 7년노정입니다. 2차 7년노정은 발전입니다. 이 권내에 들어간 사람은 사탄세계에서 지배하지 못합니다.그래서 2차 7년노정이 제일 중요한 기간입니다. 알겠습니까? 2차 7년노정도1차 7년노정과 마찬가지입니다. 3년 6개월은 쉬지 않고 올라갔다가 3년6개월은 내려가면서 탕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남아지는 것입니다.여기서부터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3년 6개월쯤 지나면 지치게 됩니다. 그렇게 7년쯤 와서 지쳤을 때 일어서려면 자기 마음대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사람은 지치게 되면 옛날같이 신나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하늘은 전부 때려부수는 것입니다. 환경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몸까지도 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7년노정을 가야 됩니다.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3년 6개월쯤 가서 중단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가야 합니다. 사탄이 어느 기간까지 지배할 수 있느냐? 7년간은 사탄이 다 지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7년간을 택한 것입니다. 그 기간은 사탄으로부터 단련 받는 기간입니다. 단련 받지 않고 극복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사탄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이 죽게 하고, 못 가게 해도 여러분은 목숨을 내걸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7년간은 그렇게 고생해야 됩니다. 해방 후에 신령한 역사를 하는 사람, 은혜 받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사람들은 7년 이상 가기 힘듭니다. 아무리 잘하는 부흥강사가 나와 큰소리 떵떵 친다 해도 7년 이상 못 갑니다.

통일교회는 7년간을 넘었습니다. 통일교회는 그들과 다릅니다. 보통 신령한 사람들은 7년정도 가다가는 내려갑니다. 거기에서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이 고비가 책임분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책임분담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유명한 말입니다. 이 책임분담을 하지 않고는 고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간을 중심삼고 책임해야 합니다.순식간에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생 장성 완성 각 7년씩 21년 기간이 필요합니다. 7년을 단위로 역사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 7년 기간은 사탄을 떼버리고 양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직계 자녀로 접붙이는 기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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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전도의 중요성
접붙이려면 방안에서 어머니 아버지 사랑 받고 접붙여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면 지방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서울에 대학교가 많으니 거기에서 젊은 청년들 전도하지, 돼지 똥 냄새 나는 시골 가서 농부들 전도해서 무엇하겠느냐 하겠지만, 그게 필요합니다. 거기서부터 복귀해 와야 합니다. 최하의 자리인 종살이를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양자의 인연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종의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상으로 아들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지방에 가서 전도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본부에 있다가 지방 순회를 가게 되면, 무슨 집회라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강한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있으면 안 됩니다. 떨어져 있어야 됩니다. 일본에서는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시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간격을 중심삼고 어려움이 많을수록 그 어려움을 극복하여 하나될 수 있는 힘의 모체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부교회에 나올 때는 체험하지 못 합니다. 선생님이 매일 말씀한다 해도 영계에서 안 가르쳐 줍니다. 그렇지만 일단 본부를 떠나게 되면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은 전부 떠나야 됩니다. 떠나가서 복귀노정의 7년간을 거쳐야 됩니다. 이 7년 기간을 통해서 사탄을 떼어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사탄을 굴복시키느냐? 심정을 중심삼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골가서 어떤 심정의 십자가를 졌다고 해도, 그 십자가는 자기 자신의 문제입니다. 또한 이 기간은 상대를 구원해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다시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누구를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시골 사람 중에서도 제일 미천한 사람을 중심으로 봉사를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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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가려면 사탄을 굴복시킨 증서를 받아야 한다
제일 낮은 곳에서 충성하면 제일 높은 데서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일 비참한 자리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일 영광스럽게 부활했습니다. 이 부활역사를 여러분 앞에 천적으로 부여하기위해, 선생님은 통일교회에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저 먼 지방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스스로 가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쫓김 당해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가게 되면 영계의 선한 영인들이 앞잡이를 하지만 누구의 말을 듣고 쫓김 받아 가게 되면 사탄이 앞잡이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전도 가고 싶어 밤잠을 못 자고, 세상에 어떠한 귀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다 제쳐 놓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으로서 뜻을 위한 한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차 타고 가면서도 ‘차야, 잘 간다. 오늘은 내 일생에 귀한 날로서 한 페이지를 기록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럴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제일 어렵고 힘든 자리에서도 ‘나는 일등 국민이다’라고 당당히 선포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여러분은 욕심쟁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에 가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원리 원리 하더니 원리 가르쳐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웃음) 그렇게 말할 것을 선생님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갔다 오면 또 그 일을 해야 합니다.그 복귀노정이 지금까지 6천년 걸렸습니다.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박장로 무리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통일교회에서 한 일이 잘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까? 통일교인들은 박장로의 전도관에서 개척하던 그 이상의 고생되는 자리에 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박장로 교단에서 믿던 신앙 가지고는 천국 못 갑니다. 영계에서 보면 책임 못한 것입니다. 기독교 목사들도, 장로들도 전부 책임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들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이들을 복귀시키기 위해서 가야 됩니다. 이것은 전쟁과 같습니다. 치열한 전쟁이니만큼, 이기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천국의 아들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아들딸이 서울 본부 마룻바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도 없고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곳에서 자기 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하나님 입회 하에 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체가 되어 한 것이니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사탄 이놈아! 너하고 짝하여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너를 굴복시키고 나는 돌아가겠다’고 해야 합니다.그래서 사탄을 굴복시킨 증서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3대 시험에서 승리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승리했다는 사탄의 사인을 받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려면 사탄의 증서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곳은 통일교회뿐입니다. 기성교회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 통일교회 문선명이란 사람은 사탄의 증서를 받아야 천국 간대, 그러니까 사탄이지 뭐야’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그들은 선전하기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선전에 떨어질 우리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사탄의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3대 시험을 받고 승리했을 때, 그 자리에서 사탄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와 나는 영원히 다르다’고 인정했습니다.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가는 자기의 모가지가 덜렁 떨어지는 것입니다.알겠습니까? 그걸 반대했다가는 목이 달아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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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을 복귀해야 할 통일교회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개인적인 십자가를 선생님이 지고 나오고있습니다. 가정적인 십자가의 길까지도 선생님이 지고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그 내용을 모릅니다. 이것을 알려면 원리를 자세히 알아야 하고 기도를 못 해도 십년 이상은 해야 합니다. 부모가 고생한 내용을 말하지않으면 자식은 모릅니다. 부모가 말할 수 없는 그런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런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종족이 되어, 이 땅 위의 모든 민족을 복귀해야 하는 사명을 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꾸 커 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통일교회 교리는 좋지만 통일교회 사람들은 싫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좋지만 통일교회 협회장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뭐 별의별 말을 다 들었습니다. 통일교회가 망하면 사탄도 좋아하겠지요? 그러나 사탄이 좋아하는 통일교인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불평할 수 있게끔 일을 만들어 놓고 날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참다운 아들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 같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그들을 좋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진리는 좋지만 통일교인들 봐서는 통일교회 별다른 것 없다 하면서 통일교인들 싫다고 안 나오는 무리들과 여기 나온 무리들 중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나오는 무리들이 낫습니다. 싫든 좋든 좋은 뜻을 위해 싸우고 있으니 나오는 무리가 낫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진격할 때 맨 꼴찌에서라도 따라와야 합니다. 따라만 와도 혜택이 있습니다. 만약에 큰 싸움에서 승리하여 참전한 사람 모두가 상을 받는다면, 이들이 제일 먼저 뛰어나갈 것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우리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볼 때 기성교회는 가인의 입장이고 우리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입니다. 또한 우리 통일교회 안에도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즉, 먼저 들어온 사람이 아벨입니다. 그러나 까딱 잘못하면 바꿔집니다. 먼저 난 아들딸이 책임 못하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대신자를 세워 역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안에서도 먼저 나온 사람이 잘못하게 되면 가인이 되고 나중에 나온 사람이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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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아벨을 만나고 아벨은 가인을 만나야 복귀될 수 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전반적 7년 시대 후반전 7년 시대로 되어 있습니다. 1960년부터 1967년내에 통일교회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전반적 7년 시대에 해당합니다. 이 기간에 잘하면 승리의 왕자가 되는 것이요, 못 하면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무엇입니까? 사탄편입니다. 이같이 통일교회 안에서도 사탄편과 아벨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해왔고, 7년이 끝난 지금도 나이 많은 사람들까지도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왜 쫓아내느냐? 그냥 두었다가는 여러분 자체가 죽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못 삽니다. 그러니 제 2차 전선에 나가서 책임을 지고 다시 싸워야 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3년 이상 된 사람들을 전부 내보내려고 합니다.그것은 제 2차 7년권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잘못하여 가인이 되면 자기가 설 발판도 수습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몸부림쳐 봐도 안 됩니다. 옛날 같은 은혜의 기도가 안 나옵니다. 옛날같이 그렇게 되려면 다시 돌아가야 됩니다. 돌아가려면 다시 개척해야 됩니다. 개척자의 길을 잃어버린 나를 복귀해야 합니다. 개인복귀시대, 가정복귀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처음보다 힘들지 모르지만 그 내용은 마찬가지입니다.

제 2차적인 사명 기간에 있는 여러분은 기진맥진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기진맥진해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 전부 책임질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책임지고 가야 합니다.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길이니 자기가 책임지고가야 합니다. 지방에 나가면 본부교회 오고 싶어도 오기가 어렵습니다. 그곳에서 고생하면서 본부교회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한숨을 쉬면서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닦아 놓은 기준 위에 자기보다 나은 기준의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 그때부터 심정의 불이 붙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가인이 아벨을 만나지 않으면 복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래 어디서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의 기준을 완결짓기 위한 책임, 즉 사탄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접붙임을 받기 위한 일을 하려다가, 거기에서 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다시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접붙일 수가 없습니다. 즉, 여러분이 가인 아벨 기준을 세워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접붙이는 데는 어떻게 접붙이느냐? 눈접을 접붙일 수 있는 가인적인 줄기를 만나면 죽어요, 살아요?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원리원칙으로 보면 맏아들은 하나님의 장자 계대를 이을 사람입니다. 이것을 사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맏아들이 사탄세계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차자가 장자의 계대를 잇도록 취했지만, 사실은 맏아들이 계대를 이어야 합니다.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독자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동네에서 전도활동을 하면 제일 먼저 반대하는 사람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나올 때, 제일 먼저 할아버지들이 반대를 합니다. 이 할아버지들이 담뱃대를 물고, 흔히 양반들이 걷는 팔자걸음으로 와서는 ‘이놈들, 누가 와서 이렇게 설치나’ 하면서 반대합니다. 그 다음엔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반대합니다. 그 다음엔 형님 같은 사람들이 반대합니다. 그렇게 3대로부터 반대를 받아야 합니다. 반대 받지 안으면 안 됩니다. 타락의 역사를 보면, 할아버지는 아담형인데 사탄편의 아담형입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탄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 할아버지, 가인 아버지, 가인 형님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역사를 보면 옛날에는 어느 시대든 다 할아버지시대 였습니다. 모세도, 노아도 할아버지 입장입니다. 그것이 예수 시대에 와서 젊은 시대로 내려왔습니다. 기독교를 중심삼고 30대 40대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느 시대냐? 가인 아벨 시대, 시집장가가기 전의 젊은 시대입니다. 이렇게 종족으로 3시대형을 중심삼고 3대를 거쳐 나왔던 것이 이제는 횡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평면적으로 벌어져 할아버지로부터 가인인 형님에게까지 전부 공격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반대하는 할아버지가 있으면 ‘아, 할아버지가 나타났구나’ 하고 반가워 해야 합니다. 안 나타나면 일부러 나타나게 노력해야 됩니다. 이러한 할아버지가 세 사람만 나타나서 반대하면, 하나님은 한 사람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역사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극성맞게 반대하면 반드시 한 사람은 나도 모르게 찾아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위기대 법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위기대는 하늘입니다. 따라서 세 사람이 반대하게 되면, 한 사람은 찾을 수 있습니다. 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를 대개 누가 하느냐? 남자들이 합니다. 여자들은 반대를 잘 안 합니다. 할머니가 바들바들 떨면서 반대합니까? 도리어 불쌍하다고, 고생한다고 걱정해 줍니다. 또 아주머니들도 대개 자기의 아들딸을 생각하면서 걱정해 줍니다.

24-341
세 형의 가인을 부활시켜야 승리한 아벨이 될 수 있어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나가서 전도하는 데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했습니다. 즉, 통일교회 자체로 보면 3시대를 부활시키는 시대입니다. 원래는 시집장가를 간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집 장가를 간 누더기보따리를 수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됩니다. 처녀 총각들을 앞에 세워서 3시대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하늘은 어떤 기준에서 부활하기를 바라느냐? 시집 장가 가서 누더기보따리를 쓴 사람들은 순수한 부활체가 되기 힘듭니다. 순정을 품은 처녀총각의 부활을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부활을 바랄 것입니다.이러한 젊은이들이 나가서 전도할 때, 남자들은 반대를 더 합니다.왜냐하면 남자는 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세 사람을 중심삼고 해야 되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탄에게 3대시험을 받았던 것입니다. 3대시험을 통해서 처음에는 개인, 그 다음은 가정, 세계,이렇게 복귀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3시대를 대표한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이러한 대표형을 거쳐서 전부 복귀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어디에서 맞춰야 하느냐? 여러분의 안방에서 맞춰야 됩니까, 아니면 깊은 산골짝 사탄의 소굴에 들어가서 맞춰야 됩니까? 어디에 가야 됩니까? 「산골짜기입니다」 그래서 지방에 가라는 것입니다.그래서 선생님은 이제 제 2차 7년노정의 3년이 넘기 전에 본부에 있는 오래된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도 전부 전도하러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결정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수고에 대해 작년까지 갚아질 수 있는 최대한의 모든 노력을 해서 조건적인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이 길을 다시 수습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옛날을 회상하면서 재봉춘하는 봄날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겨울같이 마음이 얼어붙었으니, 봄날을 그리워하면서 소생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내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귀원칙을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지요?

그러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접붙이는 것입니다. 접붙여야 됩니다. 그것은 형제의 부활입니다. 아벨이 아벨로서 가인에 대해 승리했다 하는 것은 형제를 부활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타락의 한이 형제를 죽인 것입니다. 그것을 복귀하려면 형제를 부활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부활시키지 못하면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들어와서 아벨 입장에 있다고 해서 나중에 들어온 가인 입장인 사람들에게 ‘나를 섬기라’ 할 수 없습니다. 먼저 들어왔다 하더라도 교회를 중심삼은 아벨적인 가인입니다. 여러분은 가인적인 사람들을 백 사람, 천 사람 이상 계속 전도해서 그들과 연결을 맺어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앞으로 자신이 머물 수 있는 탄탄한 발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명령하니 마지 못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중심삼고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아침 햇빛을 보고 좋았으면 이 햇빛을 ‘엄마 아빠에게 보이면 좋겠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 좋구나!’ 할 때, 어머니 아버지도 웃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즉 내가 웃는 것을 동기로 해서 어머니 아버지를 웃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끝나야 됩니다. 죽음의 길도 기쁨으로 가야 됩니다. 그래야 기쁨으로 부활합니다.

24-343
생사를 결정하는 자리에는 둘이 갈 수 없는 것이 원칙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아이고, 하나님! 30여 평생을 더벅머리 총각으로 지내다 장가도 못 가고 그냥 죽으면 억울해서 어떡합니까’ 하면서 그때의 그 사람들에게 굴복했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결전장에 나가서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3차에 걸쳐 인간으로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다 해봤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불충으로 십자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이 울면서 따라오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후손을 위해서 울라(눅 23:28)’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예수님도 그만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죽을 수 있는 곳에 가게 되면 ‘아이구, 나 좀 도와주소. 전도는 왜 나 혼자 보내나. 둘을 보내지’ 할 것입니다. 십대 소년 소녀인데, 어디 동네방네 전도 갔다가 말같은 남자들이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마치 이리 가운데 양새끼들을 보내는 것처럼 힘도 없는 처녀들을 혼자 보낸다고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무지몽매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고 여러분의 엄마 아빠한테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둘이 갈 수 없습니다. 생사의 기원을 둘이 협력해서 출발합니까? 아이를 낳을 때 한꺼번에 둘을 낳습니까? 쌍둥이라 해도 낳을 때 한꺼번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 나오고, 다음에 또 하나 나오는 것입니다.생사가 결정되는 자리에서는 오직 홀로입니다. 태어날 때도 혼자 태어나고, 죽을 때도 혼자 죽습니다. 그 누구도 동참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같이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고 엄마아빠, 같이 죽어요’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죽더라도 부디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대신해 달라고 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생사지경에는 같이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는 혼자 나가야 됩니까, 둘이 나가야 됩니까? 혼자 가야 됩니다. 왜 가야 되느냐?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인 원수에게 달려가 그를 아벨인 나에게 접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내 대신 살아난 것을 보고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하늘의 기본 원칙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24-344
통일원리로 본 천지개벽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지개벽이란 말이 무슨 말입니까? 나라가 뒤집히고 세계가 뒤집히는 것이 천지개벽입니까? 천만에요. 어머니가 딸이 되고, 딸이 어머니 되는 것이 천지개벽입니다. (웃음) 그 이상으로 천지가 개벽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천지개벽인 것입니다. 꼴찌가 일등 되고, 일등이 꼴찌 되는 것. 전진할 때는 꼴찌였지만, ‘뒤로 돌아!’ 하면 일등이 꼴찌됩니까? (웃음) 이것이 복귀, 즉 천지개벽입니다. 천지개벽은 한번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무엇이 됩니까? 손자가 되고 증조할아버지는 증손자가 됩니다. 통일원리로 보면, 역사상 제일 마지막 손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아담입니다. 후대에 태어나는 것은 마지막 손자가 아닙니다. 조상입니다. 즉, 후대는 손자가 아니라 조상이라는 것입니다.알겠어요? 이것이 천지개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는 뭘 하는 무리냐? 천지개벽운동을 하는 무리입니다.그러니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가 반대 안 하겠어요? 사탄세계에서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봤을 때 우리는 불한당입니다. 그들은 모르지만 통일원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세계에 있는 위신이나 체면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배짱을 가지고 나가는 무리가 바로 통일교회 무리입니다. 정말 근사하지요? 그러나 사탄세계는 근사한 것이 아니고 작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하러 갈 때도 혼자 가야 되고 접붙임을 받을 때도 혼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사탄이 반대하는 싸움에서도 혼자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 언제나 혼자 했습니다. 혼자 힘을 다했습니다. 선생님은 친구도 없습니다. 여기 협회장 누구누구 뭐 많지만 아직까지 형제가 아닙니다.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선생님에게 누가 권고하는 말 상당히 기분이 안 좋습니다. 권고를 들어가지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권고하는 말 들어가지고는 절대 탕감복귀할 수 없습니다.

24-345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 하늘이 역사해 주신다
여러분은 자고 편히 쉬어도 통일교회 문선생은 밤에도 쉬지 않고 자지 않고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쉬지 않는 한, 통일교회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따리를 싸 들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때려죽이자고 선동하여 데모한다 하더라도 선생님이 수고한 것이 있기 때문에 세계는 선생님을 반대하지 않고 환영하게 되어 있습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반대를 하고 기성교회가 수십년 동안 별의별 반대를 계속한다 해도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잎은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뿌리는 자꾸 깊게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한꺼번에 잎이 피는 것입니다. 큰 나무는 자랄대로 다 자라면 죽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뿌리가 깊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뽑아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선생님 자신도 뽑아 내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도 빼내지 못합니다. 가인편 사람들이 빼내려고 우리를 당기고 있지만, 저런 녀석들이 빼낼 수 있습니까? 무한대로 뻗어있는 뿌리 속을 들추어보면 아담 해와를 넘어서 하나님의 심정권까지 뻗어있어서 하나님까지도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뿌리가 제일 깊은 곳은 통일교회입니다. 원리를 듣게 되면 뿌리가 깊은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질긴 것은 어느 것이냐 할 때, 질긴 것도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50살이 다 되어 가지만 젊은 여러분에게 어떠한 내기를 해도 지지 않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여러분은 전도를 해야 됩니다. 여기 있는 유협회장이 ‘자, 여러분 전도 하시오’ 하면 ‘아이고, 기분 나쁘다. 자기가 무슨 간부라고 되게 그런다’ 하면서 기분 나빠합니다. 협회장의 말을 듣고 왜 기분이 나쁩니까? 그건 기분 나쁘게 생각하니까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왜 전도 안 하고 있소?’ 하면 `내가 동기가 되어서 해야지, 왜 협회장님 신세집니까?’ 이럴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지금 40일노정이라고 하시는데 전도 나가야지요. 제가 생각해보니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식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웃음) 그렇다고 해서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출발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7년노정을 절대적으로 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3년노정을 가다가 실패했습니다. 이 3년노정을 걷고 7년노정을 넘어갔으면, 40대로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3년노정을 걸음으로써 제 1차 7년노정이 33세까지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것을 못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즉, 제 1차 7년노정을 못 넘었다는 것입니다. 제 1차 7년노정을 출발하여3년노정에 걸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가정복귀를 못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회는 3년노정에 전부 가정복귀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복귀역사를 해야 합니다. 이런 통일교회에 들어온 여러분은 고귀한 자부심을 가져야 됩니다. 천하를 대하고 서게 될 때 마음대로 호령할 수 있고, 일사천리로 생활할 수 있는 통일교회입니다. 어때요? 통일교회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러나 좋은 때를 맞이할 때까지는 고개가 있습니다. 탕감복귀를 하지 않고는 그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명령하면 절대적으로 믿고 심정 일체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역사하게 됩니다. 틀림없이 역사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복귀의 노정을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24-347
탕감복귀하려면 참된 형제를 찾아 세워야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싸우고 야단이지만, 잘 싸워라 이겁니다. 우리는 지금 포위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을 포위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삼천만 민족이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든가, 못 믿겠으면 죽든가, 아니면 도망가든가 해야 할 것입니다. (웃음) 사실입니다. 반대하던 우리를 믿든가, 믿기 싫으면 죽든가, 도망가든가 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손금을 들여다 보아도, 관상을 보아도 팔자는 어쩔 수 없습니다. 팔자가 이렇게 생겼으니 탕감복귀 해원성사를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이 일을 홀로 개척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사탄세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려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하늘의 환희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된 형제가 필요합니다. 참된 형제를 찾지 않고는 부모를 모실 수 없습니다. 실체기대를 세워 놓아야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기대가 조성되는 것입니다. 즉, 재림주님을 모시기 위한 실체기대인 참된 형제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제 1 차 의문입니다.

그러면 형제가 몇 사람이 필요하냐 하면 3형제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세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면 그 하나된 기준 위에서 나는 부모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축복은 이 부모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세 자녀가 없으면 축복을 못 받습니다. 이들이 천국을 들어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알고 예수님이 부활하여 배척했던 베드로와 요한을 기쁨으로 찾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을 배척하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완전히 굴복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반대하고 기성교회가 반대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그러면 기성교회를 어떻게 포위하여 굴복시키느냐? 선생님은 지지않습니다. 교단적인 위신과 국가적인 위신을 중심삼고 그들을 찾아갈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각자가 이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탕감은 법도를 중심으로 어느 기간과 환경에 적용시켜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 자신이 참된 형제의 자리를 세워야 됩니다. 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또한 여러분이 지금 지쳐서 세우지 못하면 그것은 언제까지라도 이어집니다. 즉, 7년노정을 못 가면 또 7년, 21년 이렇게 자꾸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장되더라도 여러분은 반드시 이것을 넘어서야 됩니다.

세 사람 이상의 형제를 접붙여 그들 앞에 자신이 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인적인 입장에서 그들을 아벨로서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루겠다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 자리를 통해서 사탄을 굴복시켜서 형제들을 하늘 앞에 복귀시켜야 합니다.그것은 하나님편에 가인, 아벨, 셋을 세워 놓은 입장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승리한 장자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위업을 받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 앞에 그들의 대표로 나서서 축복의 혜택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심정적인 터전을 밟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참된 형제입니다」

24-348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 통일교인들 끼리끼리 형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벨의 입장인 동시에 가인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가인의 입장인 동시에 아벨입니다. 그런데 서로가 먼저 장자가 되려고 옥신각신하면서 싸우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좋겠어요? 그런 것은 경쟁도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또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높고 높은 산등성이와 깊은 산골짜기 같은 두 무리들이 서로 웅성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통일교인들 정 줄 곳도 없고 정 둘 데도 없습니다. 전부가 부딪히면서 그런 싸움에 자신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상은 하나 뿐이고 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 상을 타기 위해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상을 탈 날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경쟁을 하느냐? 심정을 가지고 합니다. 즉, 심정적으로 경쟁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할 때 ‘제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니 하나님도 저를 가장 사랑해 주시오’ 하면 망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하나님이 받으셔서 만민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할 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나는 사랑하는데, 사랑 안 해 주나요’ 하면 제거당합니다. (웃음) 선생님은 이러한 원칙을 중심으로 해서 식구들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영계에서 경쟁의 상대를 보여주는데, 굉장합니다. 상은 하나인데 받을 사람이 둘이면, 반드시 거기에서 가인과 아벨이 나누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통일교회 교인들이 좋긴 좋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서로가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참된 형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접붙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접을 많이 붙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접붙인 것을 일일이 다니며 전부 문질러 버리고 떼버리는 것은 사탄입니다. 다시 말하면 ‘접붙이는 기둥이다’ 하는 것은 아벨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고, 접붙여 놓은 것을 떼내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사탄의 표본인 것입니다. 그런데 식구들 중에,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하면서 평을 하는 사람이 있지요?그것은 하나님과 접붙이는 데에 있어서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관계하는 연극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서로서로 화평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의 교리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형제로부터 부활의 역사가 이어질 때 통일의 전통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형제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사탄이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완전히 넘어서야 됩니다.여러분들이 횡적인 관계에서 하나되기 위해 얼마만큼 인연 맺은 입장에 서있느냐, 안 서 있느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하늘나라에 가서 자신이 하늘 앞에 가까이 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형제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4-350
기 도
아버님이시여! 이 땅 위의 불쌍한 인간들이 지금까지 원한의 터전 위에서 한의 역사를 이끌며 요동해 온 실상을 바라보게 될 때,여기에 아버님의 긍휼의 손길이 가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깊이 느꼈사옵니다.

아버님, 저희는 참된 형제가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이 행로에 있어서 가인 아벨의 싸움이 전후관계는 물론이요, 상하 좌우관계를 뒤넘이쳐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배척 받으면서도 말없이, 국가 민족에게 배척받으면서도 말없이, 세계 만민 앞에 쫓김 받는 그 자리에서도 말없이 단 하나 하늘 뜻을 대하여 아벨적인 책임을 완수하기위해 싸웠습니다. 사탄을 여기에서 분립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서 생명을 주창하면서 싸웠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로를 회상할 수 있도록 이 시간 허락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역사적으로 최후의 운명의 고빗길에서 전후 상하를 분립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또한 하늘 것은 하늘 것으로, 땅의 것은 땅의 것으로 영원히 분립시켜야 하는, 이 중요한 책임을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알았습니다.

참된 사람이 필요함과 동시에 저희는 참된 개체가 되어 참된 형제의 인연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참된 가인 아벨의 인연을 저희의 생활권내에서 분석하여 놓고, 자기 자신을 통하여 아버님 앞에 선의 번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그리하여 이것을 일생의 생활철학으로 삼아 아버님을 시봉하는 노정을 거룩히 갈 수 있는 자녀로 삼아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멀리 외국에서 이곳을 흠모하고 스승을 생각하며 심정을 가하여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그들에게, 제가 빚지기를 원하지 않사오니, 저에 대한 그들의 은혜를 당신이 갚아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여 충성하고 정성들이는 자들에게 천 배 만 배 축복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았사오니, 저도 그러한 마음으로 그들의 권고와 그들의 축복의 길을 당신 앞에 간구하오니, 용납하여 주옵시길 이 시간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운과 더불어 천운은 반드시 교차되어, 천운의 때를 전폭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점점 다가오는 것을 아오니, 세계적인 교차 시점인 이 시기에 있어서 낙오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마음을 졸이며 아버지 앞에 가까이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제단을 붙드시어 당신의 은사권 내에 있게 하시고, 특별히 승리의 영광을 갖출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 앞에 칭찬 받을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그날을 위하여 매일 새롭게 결심을 하고 아버지 앞에 승리한 용사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내적 외적으로 준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전체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구하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