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06 to 24-308: 우리 집에 가 살자

우리 집에 가 살자
1969.09.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306
우리 집에 가 살자
[말씀 요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진정한 의미의 우리 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그 집을 중심삼고 인연되어 질 것이다.

24-306
행복의 터전은 가정이다
사람은 행복이 나에게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면 우리 집엔 누가 있나? 부모, 형제, 친척, 우리의 마을 등 이러한 모든 요건을 갖출 때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부모 형제와 부부가 다 같이 기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기뻐질 수 있는 것이 집이다. 이것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고아와 같다.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을 고아라고 한다.

우리는 남의 집이 아니 우리의 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완전한 행복의 터전인 집을 떠나서는 나라도 세계도, 그리고 어떠한 목적도 성립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집을 중심삼은 부모 부부 형제들이 되어야 한다.

행복의 요인이나 원망의 요인도 집을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로 퍼져나간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출발점과 결착점은 집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이상(理想)하시는 집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목적에 가까워질수록 파멸과 불행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인 것을 알아야 한다.

최고의 행복의 터전인 집이 절망의 터전이 되고 불신의 터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하늘은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셨다. 이러한 가정적 불행은 아담과 가인 때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영원한 이상의 집을 찾아 세워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집이다. 하나님께서 이상하시는 집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남이 아니라고 하는 길을 가는 무리가 바로 통일의 무리다.

24-307
재창조는 하나님의 심정을 닮는 것
원리를 통해서 보면 오늘날 타락한 인간 조상의 후손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간부(姦夫)의 자식이다. 아무리 잘났다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공인받을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났다. 또한 천륜의 배도자(背道者), 역적의 피를 받고 난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대하여 한없이 부끄러운 자다.

소망을 가질 수 없는 무리가 가는 곳이 지옥이다. 그런 네 자체를 주장해서 얼마나 가느냐? 이런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도, 나라도 전부 불쌍하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혼자 가야 한다. 정비하는 데는 몸에서부터 감정과 육감의 세계까지 정비해야 한다.

스스로 만물의 티끌만도 못하다고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해야 한다. 하나님 책임분담 95퍼센트에 인간 책임분담 5퍼센트 합해서 새로 지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 가서 살자. 즉 하나님의 집에 가서 살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하나님을 완전히 닮은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견딜 수 없이 좋아하시며 ‘네가 몽땅 내 사랑이다’ 하실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은 기성시대를 자꾸만 부정한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해놓고 수습하지 못하면 안 된다.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다. 닮기를 싫어하는 세상 사람에게 우리는 닮기를 주장한다. 일체를 닮게 한다. 그 나라의 군왕을 닮아 가지고 충신도 닮아야 안팎으로 서로 통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하나님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 마음이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자는 자리에서도 마음은 늘 깨어 있다.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는 날에는 몸은 꼼짝 못한다.

상대이념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하나 되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는 관계다.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신랑을 찾아야만 천당에 갈 수 있다.

하나님의 심정(종적)을 닮고 하나님의 사정(횡적)을 알아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하나님을 현재의 하나님을 알고 미래의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가장 많이 닮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부자의 관계다. 그러기에 아버지도 있고, 아들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닮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은 세계에 심어져 있다. 그러므로 세계인을 사랑해야 한다. 거리 관계로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그 나라를 사랑하고, 종족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부모는 하나님, 부부는 아담해와, 자녀는 세계 인류를 대표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24-308
보다 나은 실체가 되자
싸워야 한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구애되지 말고 싸워야 한다. 따라서 전면적인 진격이 필요하다.

전쟁의 동기는 남, 여, 나, 너이다. 그리고 부모, 부부, 형제의 싸움이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엔 적이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다.

통일교회에 들어오면서 자녀가 되고, 신랑 신부가 되고, 부모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지금 가정보다 더 높은 가정, 더 나은 부모, 형제, 부부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개척해 나오시는 선생님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노정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은 더 비참하고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소망의 집을 찾은 나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느냐? 이 뜻을 알고 나면 자기 집에 가는 것보다 통일교회에 가는 것이 더 좋다. 그렇지 못하면 가짜요, 그렇지 않으면 또 이 길을 다시 가야 한다.

같은 남자끼리라고 하더라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신랑 신부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보고 싶어해야 한다.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러한 아내를 가질 수 없고,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아내를 사랑할 수 없다.

여자가 들어오면 아버지, 신랑, 오빠같이 되는데, 남자의 경우는 타락할 때의 사정을 탕감하기 위하여 상극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를 통해서 복귀해야 한다.

예수님은 형님, 선생님은 동생, 예수님은 영적 신랑, 선생님은 실체 신랑, 예수님은 영적 아버지, 선생님은 실체 아버지의 입장이기 때문에 이것을 상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