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85 to 24-301: 나(自我)

나(自我)
1969.08.31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285
나(自我)
[기 도]

땅 위에 있는 수많은 인간들을 복귀시키려는 아버지의 노고가 역사과정에서 슬픔과 더불어 연속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회상하올때, 역사노정의 어느 한 때도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게 복귀의 사명을 감당해 낸 사람들이 없었던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뜻을 중심삼고 나이 많은 사람에서부터 나이 어린사람에게까지 대상자들을 찾아 나오셨사옵니다. 그러나 당신으로부터 영원을 두고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당신께서 친히 영원을 두고 사랑하고 싶었던 아들딸이 없었던 것이 한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올 때, 그와 같은 슬픔을 남기게 항 선조들의 토대를 밟고 넘어가야 할 현실에 처하여 있는 수많은 인류들을, 아버지, 다시 한번 굽어살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역사과정에 있어서 슬프고 처참하였던 당신의 모든 사정을 대신하여, 젊은이로서 늙은이로서 혹은 소년으로서 아버지의 심정 앞에 소망의 중심이 되고 아버지의 사정을 승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되어,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과 딸이 모두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 당신은 당신의 슬픈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사옵니까? 딸의 모습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사옵니까? 그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참다운 아들과 딸을 찾아서 당신의 품에 품고 기뻐하시며 승리의 노래를 온 천지간의 만물과 더불어 공히 부르지 못함이 얼마나 한 맺히는 사연인가를 저희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 아버지와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으며,그 가정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의 실체가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하며 나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역사를 통하여 내려온 인류의 소원이요, 비참한 역사에 대한 해원성사의 시점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님이 인간에게 바라시는 그 하나의 기점이 오늘 현실적 자아의 한 개체를 중심삼은 가정이옵기에 저희들은 그 가정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엄숙한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그 과제 앞에 있어서 충효의 도를 갖추어 아버지의 본연의 뜻을 다시 한번 고이고이 인계받아 에덴의 한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당신은 지금까지 움직여 나왔습니다. 땅도 지금까지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움직이는 방향과 땅이 움직이는 방향이 서로 일치되지 못한 것이 서러움이 되었기에 이를 일치시켜야 되겠사옵니다.이것을 일치시켜야 할 존재는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이 중간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배반해 역사적인 역로의 터전을 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 비참한 싸움이 오늘날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연결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에서 저희들은 하늘의 원수보다도 땅의 원수보다도 더 무서운 원수가 사람인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슬픔과 한을 쌓아 오셨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엔 지금까지 처참한 피의 역사가 엮어져 왔습니다. 이 모두가 참다운 한 사람을 세우지 못한 연고였음을 알게 될 때, 저희들은 참을 세워 놓고 참된 사람을 찾아야 되겠사옵니다.찾아서는 그와 완전 일체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절대 순종하며 가야 하는 것이 복귀의 노정임을 알았사옵니다.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온 정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여기에 머리 숙일 수 있고 땅이 여기에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아버지와 일체가 되고 아버지를 모실 수 있으며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의 모습을 갖추어서 원수인 사탄에게 조롱받지 않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그리워하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속에 피끓는 정열이 있사올진대 이 정열이 어느 개인을 위한 정열로서 끝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 정열이 당신의 정열로서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청년들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거든 그도 역시 마찬가지이며, 장년, 노년에게도 그 정열의 심정이 있거든 그것이 당신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찾아야 할 그 자리를 오늘도 내일도 그리워하며 나가야 하는 운명길에 처해 있는 것이 타락인간의 후손인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아버지를 고이 모셔 드려야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존전에 몸 굽혀 과거의 역사적인 죄를 회개해야 되겠사옵고 용서를 간구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찾아와 주시옵소서.저희에게 긍휼의 마음을 펴시사 저희를 잊지 말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당신의 소원과 일치될 수 있는 참된 대상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당신을 흠모의 대상으로 삼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아버지, 하늘이 정할 수 있는 정열의 마음과 땅이 정할 수 있는 정열의 마음을 합하여 당신을 아버지라 칭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기준을 저희들이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그럴 수 있는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겸손한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은 8월의 마지막 안식일이옵니다. 이 안식일을 맞이하여 이 자리를 거쳐간 모든 원한의 조건들이 아버지의 심정 앞에 상처를 남기지 말게 하여주시옵소서.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 슬프던 아버지의 사정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이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이면 새달을 맞이하게 되옵니다. 이렇듯 9월을 맞는 귀한 경계의 자리에 서 있사오니, 저희들을 아버지의 뜻과 시봉하는 무리로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뜻에 일치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여기를 찾아온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삼천리반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서울을 향하여 심정을 다 기울여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는 그 호소가 아버지의 자랑이 되게 하여 주옵고, 그 음성이 아버지의 거룩함을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를 잊어버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한때의 처량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사옵니다. 기쁘게 출발해서 기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기에 있어서 저희들이 당신의 힘차고 강하고 자랑스러운 용자를 지녀서 만세의 군왕으로 천년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해외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24-288
말 씀
인간이 존속하는데 있어서는 혼자서 살 수 없기에 태어날 때부터 혼자 스스로 태어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우리 개체는 사회와의 인연과 관계를 벗어나 자기 독자적인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24-288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개체는 태어날 때부터 일생을 마칠 때까지 자기만을 중심삼고 나가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될 때까지의 배후의 환경을 헤아려 보아도, 전체의 인연 가운데에서 내 개체의 인연을 수습하여 설 때에야 비로소 나의 자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하는 그 ‘나’ 가운데는 반드시 배후에 숨겨진 인연이 깔리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생활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그 자체가 내 자신을 지지하고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내가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 서게 된다면 세계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우리가 섭리의 뜻을 알고 보면, ‘나’라는 한 개체 가운데는 하늘과 땅이 모두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이념과 환경과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내가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혈육을 통해서 태어나고 자라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하늘의 상징이요, 어머니는 땅의 상징으로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를 중심삼은 형제가 있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전후관계와 좌우관계가 연결되어있습니다. 즉, 가정이나 친척이라는 환경 가운데에서 태어난 내 자신을 두고 볼 때에, 그 자리는 내 개인만이 처하여 있는 자리가 아니라 전체의 환경을 축소시킨 관계와 인연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나’가 아니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나’로서 주장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흔히 개인생활에서 잊어버리기 쉬우나 생활 가운데서 그 사실을 발견해야 됩니다.

이렇듯 ‘나’라는 존재는 가정을 대표하고 친척을 대표하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 세계, 하늘과 땅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면서부터 확실히 알았더라면 살아가면서 그것을 확실히 하고 살아갈 텐데,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이 희미했기에 오늘날 일생을 희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입장에 있는 나 한 개체가 타락을 하고 실수하게 될 때에는 그것은 나 혼자만의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요, 그 실수는 나 자신이 속한 환경과 전체의 문제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내가 한번 방향을 잘못 잡게 될 때는 나 하나로 말미암아 가정도, 국가도, 세계도 그 잘못된 내용이 인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 하나 잘함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이 새로운 의미에서 승리의 한 가정의 자리를 닦을 수 있는 것이요, 그 가정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사회가 승리의 자리를 닦을 수 있는 것이요, 사회가 그러하기에 국가가 승리할 수 있는 것이요, 국가가 그러하기 때문에 세계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나’에 관한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요, 내가 있기 때문에 욕망이나 희망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배후에 이런 관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간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내가 정의에 입각하고 참에 입각하여 내 나름대로 용맹을 가지고 어떤 국가적인 대표자라든가 세계적인 대표자가 되겠다고 소망하며 나간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삼은 절대적 위치에서 관계맺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위치에서 관계맺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듯 ‘나’라는 존재는 가정을 대표하고 있는 동시에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임을 언제나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교인이라는 입장에 섰을 때 여러분들은 ‘나’라고 하는 그 ‘나’ 한 자체는 통일교회를 대표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감정, 이런 관점, 이런 결의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그 나라나, 그 단체나, 혹은 그 가정에서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24-290
중심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은 누구나 존경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의 결과가 되고 싶어하고, 혹은 자신이 동기가 되어 상대적 세계에 결과를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심적인 입장에서 지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에서부터 결정되느냐? 나로부터 결정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내 욕망이 달성되고 내 희망이 성사되는 판가리의 길은 나로부터가 아니요, 오히려 나와 관계되어 있는 환경에 의하여 결정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성공했다면 그것은 나로 말미암은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것이 나로 말미암은 성공이라면 그 성공은 반드시 오래 못 갑니다. 즉, 나로 말미암은 주장은 일시의 주장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 주장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일시의 순응은 있을지 모르지만 생애를 통하여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래부터 인간은 관계된 환경의 터전을 중심삼고 존속하기 때문에 그 생활기반이나 활동기반을 떠나서는 자기의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제거됩니다. 나라도 그렇고 세계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륜도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륜도덕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개인의 감정과 사정을 통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치면서 이루어져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인륜도덕은 현실을 비난하고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인간의 표준이 되어서 인생행로의 적절한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자아의 가치를 수습하도록 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인륜도덕이 닦아나온 길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내가 존경을 받고 내가 어떤 욕망을 달성한 자리에 섰다 해도 그 배후에 더 큰 가치가 깃들어 있는 것을 볼 때, 자기가 처해있는 그 자리가 절대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다른 길로 가라 해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내가 한 발자국 걸으면 반드시 여기에는 자기 스스로의 그 가치보다도 더 큰 가치가 그 배후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한발자국 잘못 가게 될 때는 여러분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여기에 얽혀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면, 그 가운데에서 주장하는 자기는 가정의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이요, 사회의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이요, 국가적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이요, 세계적 대표가 되기에 당당한 것입니다.비록 그런 위치에서 그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간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의 터전이 마련되어 있으면 언젠가는 기필코 국가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요, 세계에 주체적인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땅 위에 왔다 간 성인 현철들은 모두 이 기반을 닦기 위해 살았던 분들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현실에 처해 있는 자기를 중심삼고 살지 않고,역사가 지녀온 과거에 더불어 살았습니다. 왜 그랬느냐? 환경의 인연과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위치가 그러했기 때문이고, 그런 환경에 존재하는 ‘나’이기에 그 나를 확실히 명시시키고 그 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영원한 발판을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관계를 벗어나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역사노정에서 남달리 이름을 남기고 간 성인현철들은 그 길에서 살고, 그 길에서 싸우고, 그 길에서 죽어 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24-292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
그들이 말한 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되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체를 위한 가운데에 자기를 세우려 했으며 환경을 위한 가운데 자기를 세우려 했지, 전체를 무시하고 환경을 무시하면서 자기를 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속된 인간들은 이것에 있어서 왕왕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통일교회 원리를 두고 볼 때도 자기라는 것을 무시하게 되면 전후·좌우·상하관계를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내용입니다. 때문에 어떤 중대한 문제를 걸어 놓고 자기가 해결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이 전체 문제가 환경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혹은 여기에 관계된 인연의 세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즉, 그것이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도 자기 자신의 잘잘못보다도 이 환경적 인연 앞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먼저 분석하고 비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분석적인 기준과 비판적 기준에 맞는 절대적인 자리에 설 수 없었기에 그런 자리에 서려고 싸웠던 성현들이 필요했고, 도의 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류가 성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도덕이 가는 최후의 목적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륜만이 아니라 천륜이 인간과 같이 있기 때문에 천륜의 길을 가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인륜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천륜을 기반으로 하여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 땅이 무엇이냐? 오늘날 하늘이니 땅이니 하는 막연한 관념적인 용어가 많이 생겨 났지만, 그것은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 인간이 이렇다 할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륜이 서기 전에 천륜이 먼저 서야 하기 때문에 하늘, 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땅, 하늘이라 하지않습니다. 상하를 말할 때도 상이 있어 가지고 하가 결정되는 것이지 하가 있어 가지고 상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천(天)이 있어야 지(地)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야 어머니가 결정되고, 형이 있어야 아우가 결정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류역사는 인륜만으로 엮어진 역사가 아닙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역사를 개척해 나왔으나 그 배후의 동기가 되고 내용을 갖추게 했던 천륜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고로 인륜만을 주장한 사람은 성현이 못 됩니다. 성현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성현은 천륜을 중심삼고 심정적인 문제를 다룬 사람이라야 천륜적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자나 석가, 또는 마호메트보다도 누가 천륜을 중심삼고 더 깊이 분석하고 거기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느냐?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천륜적 입장을 세울 수 있는 공고한 토대를 이루기 위해 천륜의 심정 기반과 더불어 살았던 분입니다. 인륜을 넘어서서 천륜의 심정 기반과 더불어 살고 그러한 환경의 터전을 닦아 세우려 했던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이 생각하고 그분이 가셨던 길은 세계적인 역사 종말과 더불어 남아질 수 있는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디며, 처해야 할 자리는 어디냐? 통일교회는 어떤 선생으로 말미암아 구성된 것이 아닙니다.통일교회는 여러 사람이 합해서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것이 그 누가 마음대로 설치할 수 있는 단체라 한다면 통일교회는 하나의 수양단체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어느 한 때에 반드시 수정당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인륜적인 토대 위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천륜의 내정을 어떻게 기반 닦아 나왔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를 세계의 어떠한 종교 단체보다도 세계의 그 누가 가지고 있는 심정보다도 높고 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에 세우는 동시에 세계인의 심정과 천륜의 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세우게 되면,세계인을 통합하는 것은 자동적인 결과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24-294
인정과 천정의 최고봉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천정(天情)을 중심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천정을 논의하고 나오는 곳이지 인정을 가지고 나오는 곳이 아닙니다. 그러면 인정의 최고봉은 무엇이냐? 부모입니다. 인정의 최고의 꼭대기는 가정을 중심삼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입니다. 삼강오륜의 모든 핵심적인 내용도 여기에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간에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할 수 없고 나라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내와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륜의 최고의 중심인 부자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 모든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정의 최고봉은 어디냐? 이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이것 역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은 통일될 수 있습니다.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최고의 기점도 종점도 시발점도 가정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은 통일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언제 통일될 것인가, 인륜과 천륜이 연결될 때입니다. 어디서 연결될 것이냐? 바로 가정이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천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하나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집이 어떤 집이냐?사람끼리 사는 집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살 수 있는 집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집의 일원이 누구냐 하면 나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닙니다. 집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 것이 물론이지만 그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늘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참부모란 말이 멋진 말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란 무엇이냐? 하늘 부모를 말합니다. `참’이란 언제나 정의의 귀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긍정해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나 거기에 순응하고 화합하기 위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볼 때 ‘나’라는 입장이 엄청난 것이어서 내가 기분 나쁘면 대한민국 전체가 기분 나쁠 수 있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밥술이나 먹으니까 좋아하는, 남들이 다 배고파해도 응당 나 하나 배부른 것에 머무르고 마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동물입니다, 동물. 오늘 여기에 젊은 사람들 많이 왔는데, 어디 새로 들어온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들은 밥을 먹어야 할 때 밥을 먹었으면 황송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밥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보다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이 짙은 사람은 그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요,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갔던 사람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 나라의 장래와 호흡할 수 있고 세계의 역사와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것이요, 미래의 소망의 천국과 호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불의와 협력하지 못합니다.

이 땅 위에는 아직까지 하늘땅을 점령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계를 아직까지 점령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심정적 기반이 남이 있는 한 앞으로 다가오는 세계는 어떤 주권자에 점령되어 가지고 주권자의 권한에 좌우되어 움직여지는 세계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왔다 간 위인들은 한결같이 소망의 천국을 맞기 위해서 싸우다 간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나를 본받으라’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나를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미래에 볼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믿으라고 하신 말씀도 현재의 고생하고 쫓기고 핍박받는 입장에 있는 모습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길을 가면 반드시 해방의 세계, 해방의 천지, 즉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중에 큰소리 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현이나 위대한 인물을 비판하게 될 때는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자로 재어 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책의 처음 몇 장만 보더라도 그 책을 쓴 사람이 몇 점짜리 사람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 학교 선생님은 이런 분야에서는 몇 점이지만 저런 분야에서는 나보다 못하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륜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천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천륜은 무엇을 세우기 위한 것이냐? 천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원리를 몰라도 생각해 보면 자연히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원리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입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런 환경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는 어디서 하나 될 것인가? 하늘과 땅이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희로애락을 공감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어디인가? 바로 천정이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참부모가 있어야 되고 참자녀의 인연이 갖추어진 참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24-296
참의 기준이 결정될 수 있는 자리
오늘날 역사가 소망하는 기준이 어떠한 세계를 통일하는 것도 소망이겠지만 그것은 2차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먼저 기쁨의 동기를 갖추지않으면 소망하는 기쁨의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낙망적인 사람이 희망의 천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쁨의 소망이 여기에서도 격동하고 저기에서도 힘찬 원동력이 솟구쳐 나오게 될 때에야 거기에서부터 세계가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이지 슬픔에서부터 천국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우리 나라에 있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내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내 마음은 천정과 더불어 영원히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천정이 무엇이냐?예수는 그 말을 못했을망정 천정의 핵심을 간파하여 참부모와 참아들딸의 인연을 맺고자 하셨습니다. 그 인연은 참아들딸의 입장에서 참부모를 대표한 자리입니다.

그러면 참된 기준이 결정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 천정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도 바로 이 길입니다. 이 길은 개인도 가야 되고,가정도 가야 되고, 국가도 가야 됩니다. 이 길은 여러분 모두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세계를 이루어야 하고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나라와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정이 머무를 수 있는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그리하여 참부모를 모신 참아들딸로서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실체가 되어 천륜을 통하여 갈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천륜을 통하여 가게 되면 인륜은 반드시 분리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인간세상에 타락이 없게 되고 고통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냐? 천정에 어긋난 것입니다. 통일가에서는 이것을 사랑의 문제로 다룹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찾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종교는 사랑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사랑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늘 가운데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이 땅 위에 많은 종교의 형태가 갖추어져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단계적으로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수천년 동안 문화배경이 다른 이것을 수습하려니 그 방편으로 여러 가지 방법과 형태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놓아야 세계가 모두 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가 머무를 수 있는 자리에서 ‘나는 인륜을 대표한 사람이요, 천륜을 대표한 사람이요, 인륜과 천륜이 결합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다. 또한 나는 우주와 천지를 종합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실체인 동시에 하나의 중심존재다’하는 생각으로 자기 스스로의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개체가 되어야만 거기서부터 천지가 통일되고, 거기서부터 역사가 수습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기원이 시작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핵심적인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서 나오는 사상이 앞으로 이상사회의 사상이 될 것입니다. 그 사상을 책임진 사람이 누구냐하면 바로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그 재림주하고 나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분은 나를 빛내고, 나를 찾고, 나를 세우고, 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인간은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타락한 인간은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이 ‘그냥 이대로 가면 되지 뭐, 남달리 바쁘게 할 게 뭐 있나’ 하는 생각을 품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지 역사와 더불은 생각이 아닙니다.이 현실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된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와 동떨어져 있는 생각이요, 현재와 동떨어져 있는 생각이요, 그런 생각으로 아무리 선두에 서 보았자 결국은 여러분의 조상들이 역사과정에서 걸어 나왔던 그 모양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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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부모를 중심삼은 생활을 해야
예수님은 ‘네 생명을 잃고 온 천하를 얻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개인의 생각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륜과 천륜이 상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반드시 참부모를 중심삼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늘과 땅이, 인륜과 천륜이 상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부모란 말을 생각해 볼 때, 재미있는 것은 참부모 없이는 참자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면적으로 부모를 하늘이라 보면 자녀는 땅이요, 부모를 상으로 보면 자녀는 하요, 부모를 전으로 보면 자녀는 후가 되는 것이요, 부모를 우로 본다면 자녀는 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밥을 먹더라도 혼자 먹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런 관점에서 지내 왔습니다. 통일교회에서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더불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거 멋지지 않아요? 구경을 가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모시고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 관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그렇다’하고 실감하는 날에는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틀림없이 그렇다’하고 체험하고 실감하는 사람들은 어느 무엇에도 굴복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원칙을 벗어나서 굴복했다 할지라도 기필코 그 원칙에 또다시 귀결되기 때문에 결국은 굴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령 굴복했다 하더라도 그 원칙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그것에 완전히 굴복하고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하에 정복당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모심으로 인해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에서는 모심의 생활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신념을 가진 종교는 세계의 어느 곳이라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통일교회의 사상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소망을 걸고 감사해야 할 것이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이 바라왔던 소원이었습니다. 수많은 남자가 바라왔던 소원이요, 수많은 여자들이 바라왔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만일 이 땅위에서 이런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핵심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이 천정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고 나설 수 있는 그때가 바로 우리가 소망하던 천국이 출발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거기에서부터 하늘땅의 끝날이 오는 것이요, 인류가 바라던 목적과 희망의 한 정착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혼자 주장하는 시대는 다 지나가게 됩니다. `내가 제일이다’라고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때부터는 공동세계입니다. 즉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공생이다, 공영이다, 공의다 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는 인류가 바라왔던 이상천국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절대로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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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共義主義)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는 혼자만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나’ 하면 반드시 상대가 있는 것이고 또한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념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있어서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생활무대에 있어서 실제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천국의 세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왼 눈과 오른 눈의 보조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것은 공영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부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콧구멍도 둘이지만 한 콧구멍이 막히면 좋아요,나빠요? 마찬가지로 귀도 하나가 막히면 좋아요, 나빠요? 병신이 좋아요, 나빠요? 다리를 잘라 버리든지 팔을 잘라 보세요.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 관계를 갖춘 모든 존재물은 스스로 천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여기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이런 것은 서양사상에 없습니다.그러므로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는 동양사상이 서양사상보다 한 단계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터전에서부터 공생공영공의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을 떠나 가지고는 ‘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혼자서는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교회를 위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보다 더 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에서 대장 되겠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교회를 위하는 것은 내가 더 크기 위해서요, 나라를 위하는 것도 내가 더 크기위해서요, 세계를 위하는 것도 내가 더 크기 위해서요, 하늘땅을 위하는 것도 내가 더 크기 위한 것입니다. 얼마나 크기 위해서냐? 최고로 크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크다고 하는 것은 부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최고의 원만함과 원숙함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자리에서 통일교회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수준의 무대에서 만민과 더불어 살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야 할 나의 길이 남아있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길의 출발점은 통일교회가 잡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출발을 했으니 목적점에 가서 머무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 전도를 하라, 혹은 세계의 선교사가 되어라, 다음에는 하늘땅을 위하여 공상당이면 공산당하고 싸워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여러분 자체의 가치를 잘 알아서 오늘날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리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4-301
기 도
아버님, 저희는 지금까지 내 한 생명이 가련한 존재인 줄로 알았사옵나이다. 그러나 이제 내 한 생명이 역사와 더불어 빚어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신의 슬픔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을 풀어 놓고, 화를 낼 수 없는 내 개체인 것을 여기에서 발견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그렇게 인연되어 있는 내 자체를 저희가 얼마나 존중했사옵니까? 빛나는 역사가 상대적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개체의 역사의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승리의 영광이 어떠한 천주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더불어 승리의 선물이 머무를 수 있는 그 자리는 내 한 개체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하오니 아버지여, 온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나 하나가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결정 짓지 못하게 되면 그 세계는 지극히 좁아지는 것이요,지극히 작은 내 한 개체이지만 온 세계를 굽힐 수 있는 내적인 기반을 결정하였을진대 그 결과는 온 세계가 닮고도 남을 수 있는 내 개체인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에 예수는 ‘온 세상을 찾더라도 자기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결정적인 말을 하였고,석가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의 가치를 설파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 모든 것이 내 한 개체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그 모습이 천태만상일지라도 걸어가야 할 노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심정이 갈래갈래 찢겨졌더라도 하나의 심정으로 수습할 수 있는 표준적기준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사옵니다. 행위의 사실이 여기서부터 좌우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가 결정될 수 있는 영적인 한 기준이 나타나게 될 때,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천국이 창건되어나가고 새로운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지닌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인정만을 위하다가 끝냈던 과거의 역사를 비웃고 천정과 더불은 인정을 천 배 만 배의 가치적인 자리로 끌어올려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나는 온 세계 만민이 심정의 세계에서 소망하고 이상하는 그 무엇을 갖고 나선 사람이다’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통일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처럼 엄숙하고 가치 있는 내용이 천만년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혹은 우주 전체의 존재와 더불어 이 자리를 알게 된 것을 진정으로 감사하지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이 자리가 이때까지 찾아 나온 수고의 역로를 넘어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 책임을 다 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제 그럴 수 있는 마음과 아버지께서 바라고 계시는 기쁨과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찬양의 기준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 자리가 저희의 몸과 마음을 몽땅 퍼부어 취할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자녀들은 이 길을 알고 난 후에는 자기의 모든 환경을 잊어버리고 교회를 중심하여 이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마음깊이 스스로 느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몸이 마음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그것은 어떠한 요술도 아니요, 어떠한 새로운 조화도 아니요 오로지 천륜의 원칙에 따라 움직여지는 하나의 자연적인 법도인 것을 저희가 깨닫게 되옵니다. 하오니 순응의 도리에 따라 절대 승리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은 그 누구를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옵니다. 그것은 저희 자신을 위한 길인 동시에 세계 국가를 위한 길임을 알게 하여 주옵고,어떤 개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태어날 때 `나’라는 존재가 김 아무개면 김아무개만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님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아무개는 이 길을 가기 위해 태어났노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그것이 내 생활의 천륜인 것을 밝혀 갈 줄 아는 모습이 되고 그 가치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문제를 명시시키고 해결지어서 그 가치를 더욱 가치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핵심적인 실체를 찾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교인이 된 목적임을 알게 하여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이 길을 가는 것이 절실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누구를 위해 모였느냐 할 때,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위해 모인 것도 아니요, 통일교회의 그 무엇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옵니다. 나를 위해서 가려 하니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이요, 또한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와 세계가 있기에 믿고 따르고 있사옵고, 또 거기에 가까운 길이 이 길이기에 이 길을 따라 나왔던 것이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여, 통일교회를 통해서 나라로, 통일교회를 통해서 세계로,통일교회를 통해서 천주로 나아가고자 하는 불변의 심정이 상심되지 말게하여 주시옵고, 그 심정이 고이고이 뻗어 흘러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동맥의 고동소리와 천정의 심장을 통하여 울려나오는 동맥의 고동소리가 저희의 몸과 일치되어 생활감정을 움직이고 돌아가게 하는 정맥의 역할을 저희 자체가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그리하여 그 정맥의 맥박이 역사와 더불어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수 있고,생활에 있어서 만민의 동지가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아니겠느냐고 아버지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묻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귀한 `나`를 길이길이 찬양해야 되겠습니다. 찾아 세워야 할 그 ‘나’를 위해서는 저희는 모든 타락한 후손의 피를 흘려서라도 투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투쟁은 내일의 나를 빛내기 위한 것이거늘, 그 빛남과 더불어 천지의 인연이 빛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오늘의 한 시간 한 때를 존중시할 줄 아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전국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과 이곳을 그리워하며 정성들인 무리들에게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과 아버지의 귀하신 심정이 더하여 주시옵기를, 사랑의 아버님, 부디부디 부탁드리옵니다.

이제 저희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사옵니까? 저희의 몸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사옵니까? 과거의 사된 마음의 자리에 머물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과거에 망할 수 있는 자체에 몸을 숨기고 벌받을 수 있는 자리에 머무르는 자신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마음을 짊어지고 땅 위의 인류의 마음에 싹틀 수 있는 자리에 몸과 마음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다짐하며, 천만사에 빛이 될 수 있는 그 ‘나’를 그리면서 아버지의 왕자와 왕녀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흠모의 정열이 싹틀 수 있는 그 나의 자리, 혹은 사모의 정열에 빛날 수 있는 그 나의 자리가 고이고이 자랄 수 있는 내 자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빛나는 내일을 소망삼고 저희들은 궐기해야 되겠습니다. 빛나는 내일의`나’를 소망삼고 저희들은 궐기해야 되겠습니다. 빛나는 새로운 천국을 위해서 저희들은 궐기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들은 거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겠습니다. 빛날 수 있는 저희의 모습을 안팎으로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천정의 인연 앞에 고이 잠들고, 고이 깨어 아버지의 아들딸이 되어야겠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부를 수 있는 참자녀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하오니 그 사랑 가운데서 하루의 생활을 노래하고 그 사연 가운데서 하루의 일을 거룩히 찬양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의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영광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자리가 나를 찬양하는 데 있어서 참의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