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44 to 24-281: 대신자가 되자

대신자가 되자
1969.08.24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244
대신자가 되자
[기 도]

오늘은 8월 24일, 안식일을 맞이하였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이 이곳을 사모하며 마음을 모야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사오니, 높고 귀하신 당신의 자비와 긍휼이 그 자리에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은 그 무엇을 찾고 그 무엇을 한다고 자기 나름대로 주장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행로를 걸어 갔사옵니다. 그러나 지난날 역사상의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뜻 앞에 보탬이 되지 못하였사옵니다. 도리어 당신이세워 나오시는 뜻을 깨뜨려버렸사옵니다. 아버지께서 이것을 다시 세워나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저희 개체 개체의 과거가 흘러가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당신이 남기신 필승의 사명을 해내야 할 것이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본연의 인간들의 생활이요 생애이온데, 하늘 앞에 남길 수 있는 실적을 갖지 못하여 역사적인 한을 남겼다는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저희 자체들도 한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있기에 아버님이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외롭다면 더없이 외로운 무리이옵니다. 아버지만을 의지하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사명을 이루어 나가야 할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진 무리이옵니다. 보잘것 없는 모습이옵고,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분석하여 볼 때 아버지께 그 무엇을 돌려드릴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저희들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이미 뗄래야 뗄 수 없는 자녀의 인연을 맺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는 저희들 자체를 보시고 슬픔과 기쁨의 분기점에서 저희들을 대하여 나오고 계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식이 부모를 사랑해야 할 것이 천륜의 도리요, 모든 인륜의 원칙이었사옵니다. 그런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기점을 생애를 통하여 남기고 가야 할 인간들이었사오나 인간들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생활 터전을 갖지 못하였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지니지 못하였기에 그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있사옵니다.

이렇듯 흘러간 슬픔의 역사노정을 저희들이 반성하고 오늘 저희들에게 남겨진 사명을 다할 것을 촉구하는 이 시간과이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 자신을 거룩한 아버지 존전에 내어 놓고 새로운 사명을 분부받고, 새로운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벌거숭이와 같은 모습이옵니다. 언제든지 사탄의 침범을 받을 수 있는 한계권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알고 죽어야겠사옵니다. 또 아버지를 알고 난 후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천적인 사명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체를 갖추어 아버지의 엄숙한 존전에 설 때 저희들이 과연 이 아버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며,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얼굴을 가졌으며, 또 아버지 앞에서 행동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지체를 가졌사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면모가 없음을 깨닫게 되옵니다. 이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렇듯 불쌍하고 제대로 설 수 없는 부족한 모습들을 대하시는 아버지의 입장이 슬픔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진정 알게 되옵니다.

진정 저희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시간을 넘고 세월을 넘어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려는 마음이 간절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이 없어 가지고는 아버지와 아들딸의 인연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침이 되어 아침 밥상을 대하고, 또 점심 때도 그렇고, 저녁 때도 그렇듯이, 이렇게 하루에 삼시 세끼가 필요하듯이 아버지를 대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배고플 때 밥을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이 북받쳐 나오게 하여 주옵소서. 일생 동안 저희의 심장이 움직이지 않는 순간이 없듯이 아버지를 향하여 움직이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저희들이 느끼는 모든 촉감과 감각이 일생을 통하여 내 몸을 보호하고 내 행복의 여건을 위해 방향을 갖추어 움직이듯이 저희들도 아버지 앞에 행복의 여건을 갖추어 드릴 수 있는 하나의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물론이요,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뜻을 위하여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사모하는 그 마음 앞에 당신의 자비와 긍휼의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들을 당신의 깊은 심정에 인연지어 주시옵고, 당신이 찾아갈 수 있는, 영원히 쉴 수 있는 하나의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시어서 이 천주사적인 인연으로 역사의 거리를 초월하고, 민족적인 한계선을 넘어서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 승리의 원천이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나 무엇을 가지고 엎드렸사옵니까? 아버지 앞에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한 저희들이옵니다. 과거도 그러하였거니와 현재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지도 모르는 비통한 자체로서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옵니다. 언제나 아버지의 힘을 의지하고 아버지의 긍휼과 아버지의 자비의 손길을 바랄 수밖에 없는 모습들이오니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지를 대하는 자식의 모습인 것을 알게 해주시옵소서. 아무리 나이 많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 앞에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을 고대하는 것이 자식의 마음인 줄 아옵니다. 그 마음이 부모와 자식가운데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자식이 그 부모의 아들임에 틀림없고 딸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부모에 대해서 자비의 마음과 긍휼의 마음을 고대하는 그 자식 앞에 부모는 부모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오니 이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사오니 아버지로 말미암아 끝맺을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모든 요건이 저희의 요건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모든 소원이 저희의 소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희로애락 전체를 느낄 수 있는 아버지의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모이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온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 마음 위에 함께하시어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인연의 끈을 공고히 하여, 하늘 앞에 하나의 제단을 묶어 드릴 수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폭풍우와 노도를 헤쳐 나오면서도 남아진 이 통일의 무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는 이 항로 앞에 행복의 항구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옵니다. 환희와 기쁨의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가는 도상 위에 어찌 풍파가 없겠사오며 어찌 시련이 없겠사옵니까? 그러나 저희가 어떠한 시련과 고통을 당하더라도 목적과 목표를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방향을 투시하는 입장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칠흑과 같은 어두움 가운데 처해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향한 그 마음만은 잃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외적인 기준에서는 모든 방향을 잃었다 할지라도 내적인 기준에서는 그 방향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방향을 갖추지 않고는 남아질 수 없고 어려운 고해와 같은 이 사탄세계를 기필코 건너가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잠잘 때에도 쉬는 때에도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마음의 방향을 아버지와 일치될 수 있게 하시어서, 자체를 수습하고 이끌어 내어 아버지의 협조와 더불어 저희들이 일치되어서 같이 행동하여 그 결과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사랑받기를 얼마나 고대해 왔사옵니까? 당신의 은사를 얼마나 고대했사옵니까? 그러나 고대하는 만큼 아버지 앞에 보답할 수 있는 내용을 저희들이 갖지 못하였사옵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 나타날 적마다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를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조롱하는 사탄의 무리들 앞에서 그래도 자식을 품어야 할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과의 인연을 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의 체면과 위신을 망각하면서라도 저희의 모습을 품고 당신의 자녀라고 공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버지의 불쌍한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그 뜻을 몰라 번번히 실패하였사오나 이제는 알았사오니,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효자 효녀가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원수 앞에 강한 모습이 되어서 그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아버지의 권위와 권능을 갖춘 아들딸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저희들이 잘못된 역사의 흐름을 막고 하늘의 흐름을 연결시켜서,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할 중차대한 사명이 저희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태어났으니 오직 이 사명을 위하여 싸우고 이 사명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용병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최후의 승리를 아버지의 것으로 결정지어 바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날, 아들딸이라고 부르고 싶은 수많은 백성들 위에 당신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한국과 일본과 미국과 독일, 이 네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 40개 국의 120개성지가 연결되어 있사오니, 당신의 실질적인 모든 요구가 당신의 내적인 모든 요구와 일치될 수 있는 그 세계가 이루어지는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마음 모아 당신을 사모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기쁨의 날, 자랑의 날, 영광의 날이 어서 속히 올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24-249
말 씀
한 가정의 중심은 부모입니다. 그 부모를 중심하고 그 집안의 대를 이어 부모의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중심인물이 없게 되면 그 가정은 소망이 없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 그러하듯이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나라의 주권자를 중심한 이념과 사상이 있으면 그 투철한 사상을 계승하여 책임질 수 있는 대신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신자가 없게 될 때는 그 나라의 전망, 즉 그 나라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도 이 세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4-249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중심인물이 없어 불쌍하신 하나님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에 있어서나, 혹은 우리가 속하여 있는 이 나라에 있어서 여기에는 언제나 대신자가 있어서 역사와 더불어 계속 흘러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공고화되고 완전히 자리 잡힌 가정들을 중심삼은 국가가 있다면 그 국가는 세계적으로 공고한 기반 위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복귀섭리, 혹은 구원섭리 역사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가정이 있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종족이 있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민족 국가 세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섭리적인 내용을 통하여서 찾고 있는 그 가정과 혹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믿는 사람들이 기필코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하고, 혹은 민족과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세계에는 그러한 중심이 될 수 있는 하늘의 권이 결정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커녕 국가의 중심도 아직까지 결정짓지 못하였습니다. 국가의 중심을 결정짓지 못한 것도 물론이지만 먼저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완전한 하나의 가정적인 기준을 결정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의 중심을 결정지었느냐를 냉정히 생각해 볼 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의 일원인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내 한 개체가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바라는 하나의 중심으로 완전히 결정지을 수 있는 자체가 되었느냐 할 때 이것 역시 그렇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변합니다. 그러한 자신을 중심삼고 영원한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가정이라든가 국가라든가, 혹은 세계를 추구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도 그목적을 대하는 내 자체가 한 중심을 결정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일을 성사시켜야 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국의 주권자가 그 국가의 주권을 자기가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할 수 있는 기반이 없을 때 그는 지극히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백성들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책임진 장본인은 누구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시간을 넘어서서 찾아오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국가적인 고통도 당해야 하지만 그 환경에서 벌어지는 고통도 당해야 합니다. 그런 자체를 중심삼고서는 그 고통을 극복할래야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중심존재는 안팎의 고통을 지니고, 생명을 걸고 생사의 기로를 찾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알 수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이 계시냐? 그분이 계시다면 그분에게도 분명히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목적은 어떤 개인적인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목적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목적을 완전히 성취시켜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 할진대, 그분이 얼마나 비참한 입장에 계신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분이 능력이 많으시고 그분에게 전지전능하신 권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과 그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그분의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고충이 얼마나 클 것이야 하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정을 책임진 자가 가정을 책임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이는 그 가정의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며, 혹은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그 중심존재가 민족에 대한 책임을 못하게 될 때, 그는 그 민족의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의 국가를 보더라도 그 국가의 대표자가 자기의 본의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때는 국가의 누구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 우주사를 책임져야 할 하나님이 그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면 그분은 누구보다도 불쌍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만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24-251
하나님의 소원과 바른 신앙의 자세
그러면 그분이 오늘 이 시간을 넘고 순간을 넘어 가지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분은 중심을 결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본의에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의 기준을 결정짓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혹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삼고 그분이 요구하는 국가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그 중심이 결정되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무대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세계를 수습하기 위한 어떤 목적을 중심삼고 바라보며 나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하나의 중심적인 터전을 이루는 데 있어서 상대적인 입장이라도 되어 줄 수 있는 세계를 요구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의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과연 하늘 앞에 중심적인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존재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오늘날 이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라든가, 불교라든가, 유교라든가, 그밖에도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 단체 가운데서 어떠한 종교가 진짜이겠느냐? 진짜 종교는 외곽적인 그런 내용을 가진 종교가 아닙니다. 내적인 그 심정을 통하여 연결될 수 있는 기준에 서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중심한 자녀라 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모든 만민들을 형제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한 국가의 형성도 한 가정을 기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도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로 그 이념을 연결시켜 나갈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기독교가 과연 하늘이 바라는 모든 전체의 내용을 결정지어야 할 전반적인 책임을 시행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그 책임을 하고 있는 기독교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고 있느냐? 나타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하나님 자신이 내심적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역사상의 모든 수고가 컸던 데에 비례하여 큰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책임을 짊어지고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 할진대는 이 시대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각자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여기에 무엇하러 왔느냐?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규합되었느냐? 단 하나의 목적은 지금까지 슬프고 불쌍한 자리에 계셨던 그 하나님 앞에 내적인 심정의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안 되거든 외적인 하나의 발판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가는데 디딤돌이 되든가 다리가 되든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건너가는데 쓰이는 하나의 분자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슬픔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빚을 지기 위해서 왔느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왔느냐 할 때,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빚을 덜기 위해서 왔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빚을 더는 데 있어서는 내 개체에 대한 빚만이 아니라 가정에 대한 빚을 청산하고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여, 세계를 대신하여 빚을 덜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안 가면 그 누구라도 가야 할 길이요, 내가 이루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빚을 덜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내자신이 하늘 앞에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신념을 공고히 해야 하겠습니다.

24-253
대신자가 되려면
그러면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뜻을 이어나갈 대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뜻을 같이해야 합니다. 부모의 모든 뜻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대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아들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런 뜻을 중심삼고 이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가는구나’ 하고 부모의 뜻을 알고 그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즉, 가정의 미래를 생각하며 가정이 걸어가야 할 목적을 중심삼고 그 관념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뜻을 같이해서는 뭘 하느냐? 암만 그 뜻이 같으면 뭘 하느냐? 같이하는 것만으로는 그 부모의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뜻을 받들어서 그 뜻을 중심삼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뜻이 영원하면 내 안에 있는 모든 내정적인 심정도 영원하게 됩니다. 뜻이 영원하다면 행동의 목표도 영원해야 합니다. 그런 기점을 갖지 않으면 대신자의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대신자가 되려면 뜻이같아야 되고 그 다음에는 행동이 같아야 합니다.

어떤 부모도 가정의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 자기의 대신자를 내세울 때는 자기보다도 못한 자를 대신자로 세우기를 원치 않습니다. 왜 그러냐? 자기자식이 부모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절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는 자기 이상의 대신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훌륭하고 자기보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후계자가 나오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변천을 초월하여 영원에 가까운 요구 조건입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은 가정의 요구입니다.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주권자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자기를 능가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번번이 목을 잘랐습니다. 그런 비참한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기반을 중심삼고 섭리의 역사를 진행하실 것이냐? 국가라는 터전을 중심삼아서 섭리의 출발을 하실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섭리의 출발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역사의 배후를 중심삼고 섭리의 터전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가정과 일치될 수 있는 국가, 그리고 그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책임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한 대신자를 요구해 나왔습니다.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세운 목적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책임자라 할지라도 자기를 거름삼아 자기보다 더욱 비약할 수 있는 책임자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와 국가가 서로 때리고 잡는 일을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뜻이 지향하는 방향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를 수습하기 위하여 환경의 터전을 넓혀 나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전통을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통은 무엇이냐? 세계를 위하여 충성하고 세계를 위하여 하나되고, 세계를 위하여 살고, 또 세계를 위하여 싸울 수 있는 무리를 가려 나온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역사의 배후에서 터를 닦아 나온 기독교가 이 전통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 자체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교파를 초월해야 됩니다. 자기 교파를 중심삼고 전부를 흡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권주의자들이 자기 교파의 틀에 얽매여서 종교를 고질화시킨 사실은 일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만히 두지 않고 치는 것입니다. 왜 치느냐? 하나님의 대신자를 그런 자리에서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통해 수고해 나오신 터전이 어디까지냐? 개인을 중심삼아 가정을 표준하고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24-255
먼저 된 자가 가져야 할 바른 태도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십억의 인류는 전부다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서로의 생각이 다르니 뜻이 다르고 목적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목적을 통합시키는 통합운동을 해야 합니다. 주류사상을 통하여 인연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좌와 우가 서로 자기 것이 옳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갈래의 길에서 자기 스스로 어느 한쪽을 결정해야 할 이런 시대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두개의 관(觀)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두 길을 다 간다 할 때는 언제나 고통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를 결정해 놓고 다음에 또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둘이 있다 할 때는 여기에는 반드시 순서가 결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먼저 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해야 하느냐? 혹은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리느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오늘의 세계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세계의 모든 정세를 움직여 나간다 할 때 어떤 것을 먼저 손대고 어떤 것을 다음에 손댈 것이냐? 그 다음에는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 것이냐? 이러한 문제를 결정지어야 합니다. 하나를 버리든가 혹은 옳은 것을 먼저 받아야 하고, 사랑도 먼저 받아야 하고, 모든 의논도 먼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대함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많이 받아서는 안 된다 하는 입장에 설 때는 망하게 됩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를 대표하여 미국이 하나님 앞에 먼저 대함을 받았다고 자기네가 받은것 이상의 사랑을 다른 나라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 망합니다. 다른 나라가 그 이상 사랑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세계가 더 빨리 수습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세계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국 이상으로 하늘 앞에 가깝고 미국 이상 하늘과 내용적으로 통할 수 있는 그런 국가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입장에서 금후의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미국은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못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책임자가 나와서 그 책임을 수습하게 될 때 그를 위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커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24-256
세계적인 중심이 되려면 세계적인 시련과 고통을 극복해야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무슨 대신자가 되어야 하느냐? 여러분 자체는 비록 잘 생기지도 못하고, 아무런 경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마음은 최고의 기준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대신자가 될 것이냐? 집안을 책임질 수 있는 대신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더 나아가서 나라의 대표자, 세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세계적인 기준을 가져야 됩니다.

이 세계적인 기준을 가지려면 절대적인 기준에 가까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가정의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중심을 거쳐 나갈 수 없습니다. 또한 민족의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중심을 거칠 수 없으며, 국가의 중심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의 중심으로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역사의 방향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고 싶어하고, 책임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먼저 가정의 문을 넘어야 되고, 종족의 문을 넘어야 되고, 민족의 고개를 넘어야 되고, 국가와 세계의 고개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적이라는 것은 일등이라는 것입니다. 일등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받는 데는 일등을 좋아하겠지만 그것에 반대되는 핍박과 시련과 고통을 받는데는 대개가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은 세계적인 가정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가정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모든 시련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의의 자리에서, 전부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스스로 일어서 가지고 모든 것을 극복하며 타개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그만치 세계적인 가정의 중심이 되려면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에는 그 국가 나름의 애국자가 있습니다. 애국자란 그 나라의 명승지나 찾아 다니며 풍류를 즐기며 유람행각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 애국자의 역정에는 피의 가름길을 거쳐온 내용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사의 기로에서 승리의 실적을 많이 거둔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대승리자이며, 그 나라의 전통을 세워 놓는 애국자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훌륭한 아들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위해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될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학교가 많은데 거기에서 교육하면 된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육은 일생 동안 해야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부모가 정성들여 키운 자식에게 가문을 맡길 때, 즉 그 대신자로 세울 때는 부모의 마음과 일치되게끔 하여 그 부모의 인연을 따라가게 하면서 대신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세계적인 이런 책임을 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섭리해 나오셨느냐?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을망정 이 인간들이 타락의 보응을 받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보응을 받아야 할 것을 대신하여 타락의 누(累)를 벗겨 주시려는 것입니다. 누를 벗기는 데는 그냥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책임질 수 없으니 하나님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온 역사를 수습하고 세계를 책임져야 할 하나님은 개인을 대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싸움의 무대는 개인적인 것이 이니라 세계사적인 것입니다. 그 싸움은 세계사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그런 싸움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사적인 개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개체는 미미한 존재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수고의 공적과 수고의 노정을 생각할 때 역사적인 결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258
하나님께 심정적인 짐을 지우고 있음을 기억하라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이 되지 못하고 슬퍼하시는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슬프고 비참한 고아의 입장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기쁠 수 있는 행복의 욕망을 가지게 하고 이들을 살려서 그 기준까지 나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서러움과 고충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기쁠 수 있는 자리에 태어나 그 길을 간다 해도 어려울 텐데 지극히 비통하고 슬픈 자리에 태어난 인간을 대하여 최고의 기쁨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 슬픔을 느끼면서 끌고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과연 여러분이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현재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런 입자에서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 하나를 위해 하나님이 짊어진 그 심정적인 부담은 무엇을 주고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빚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싶고 상관하고 싶지 않지만 사탄은 여기에 조건을 걸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사탄은 `아무개는 이러한 빚을 지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은 슬픈 자리에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이 그렇게 대드니 재차 시련과 고통을 받아야 되는 더욱 슬픈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대신자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니 얼마나 불쌍한 하나님입니까? 이러한 사람 가운데에서 대신자를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은 뜻을 이룰 수 없으니,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하나님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세계적으로 빨리 넘어가고 싶고, 그런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한이 없지만 그럴 수 없는 하나님의 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모된 죄밖에 없습니다.

이런 비참한 입장에 서서 하나님은 대신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그러했고, 노아 가정에서도 그러했고, 아브라함 가정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역사적인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도 하나의 승리의 민족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지만 승리의 민족은커녕 승리의 개인도 찾지 못한 하나님의 서러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4천년 역사의 수고의 터전 위에 그럴 수 있는 하나의 개인적인 대표자, 가정적인 대표자, 국가적인 대표자, 세계적인 대표자를 애쓰시며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고 세계의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한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을 잡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고한 아버지의 심정 앞에 역사적인 모든 것을 전부 범한 결과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죄악된 세계가 가정의 대표, 국가의 대표, 세계의 대표로 오신 분을 쳤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되고,가정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되고, 민족 국가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되고, 세계적인 죄의 대가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가 왔다 간 이스라엘, 섭리적인 입장에서 선민이라는 그 나라가 역사상 비참한 노정을 거치면서 고아가 되고 몰리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24-259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통일교인들
그러면 여러분은 여기에 무엇을 하러 왔는가? 여러분들은 그냥 지나가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에 와서는 기필코 무엇을 하나 결정지어 가지고, 사명적인 분야에서 대신자로 서기 위해서 생명을 걸어 놓고 판단지으려고 모인 무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을 찾고 있으니 개인도 그래야 되고, 가정도 그래야 되고, 가정을 통할 수 있는 종족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종족은 또 민족과 국가 앞에 전통적인 사상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민족과 국가뿐만 아니라 이 민족과 국가를 움직여 가지고 세계에 전통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국가의 이념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것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마음은 더욱 간절해야 됩니다.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거리를 끌어당겨 가지고 중심기준을 이 시점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 기준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통한 사실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통일신도는 먼 거리에서도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고서 하늘을 위로해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사명적 책임을 대신하기 전에 심정적 책임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상대적인 입장에 서지 말고,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대표한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역사가 흘러 나온 그 중심자리에서 한번 위를 올려다보고 앞을 내려다 보십시오. 과연 여러분이 처한 자리가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 자리입니까? 아닙니다. 그 자리는 영원히 비판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책임을 지겠다고 했으니 영원히 책임질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부활시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개인과 가정의 형태가 나오지 않고는 민족과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책임자가 나오더라도 또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고생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실적을 세워서 상대적인 입장에서 발판을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는 뒤넘이쳤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서 책임자가 아무리 책임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 앞에 일치화될 수 있는 환경적, 대상적인 실체가 결정되어 공고화되기 전에는 그 대신자가 불쌍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럴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나갈 때 통일교회의 식구면 식구 앞에 빚을 져서는 안 됩니다. 절대 빚져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가정이면 가정 앞에 절대 빚을 지지 않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이 철저해야 합니다. 종족이면 종족,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각자가 뜻을 대하는 자리에서 남에게 빚을 지우는 자리에 서야 하나님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족이 나와야 합니다.

뜻을 저 멀리 두고 생활하는 제 3자의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모가 바라는 아들딸은 부모가 눈물짓게 되면 그 눈치만 보고서도 가슴 아파하는 자식입니다. 환경적인 그 기준 앞에 있어서 부모의 걱정을 자기의 걱정으로 알게 될 때 부모가 슬퍼하는 입장에 있으면 자식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자관계에 있어서의 심정적인 인연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 하나님의 아들된 입장에 있는 우리가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고는 절대 대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자의 역사가 슬픈 역사가 되지 않고서는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261
뜻의 대신자로서 얼마나 충성했는가 반성하라
뜻을 대해 나가는 여러분 자신이나 선생님이나 심정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부모와 자식간은 직접 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부모가 아니며 자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효자라는 것은 부모 앞에서 이로운 일에만 살랑살랑하여 사랑이나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효자가 뭐냐? 효자나 부모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 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열만큼 일을 하는데 자식은 열 다섯만큼 노력하였다면 부모는 다섯에 해당하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를 어떻게 보충하여 부모를 위해 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효자인 것입니다.

교회에 있어서도 여러분은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을 자기집안의 어려움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의 아들딸이 죽었다고 하면 굉장히 놀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 때는 집안일같이 나서야 됩니다. 또한 나라에 있어서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책임자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입장에 처했을 때 자기 아들딸이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사람은 그 나라의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아직까지 그 한계선을 넘지 못해 신음하고 거기에서 결정을 못 짓고 가는 사람은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정에서 대표자가 되려면 그 가정의 모든 어려움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분담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전체의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도 역시 그런 역사적인 책임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세계 앞에 빨리 나타나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뜻을 안 지가 몇 년 혹은 10년 이상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날부터 과연 내 자신이 뜻을 위한 대신자로서 얼마나 충성을 하고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진정으로 심각한 생활을 하며 뜻을 따라가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4-262
책임자가 더 어려운 법
개인 기준을 넘기 전에는 가정 기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건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또한 가정 기준을 넘지 않고는 종족 기준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책임자가 되어 가지고 짜증낼 것 다 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자기 중심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가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러했다면 세계가 다 망했을 것입니다.

책임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합니다. 화를 내고 싶어도 함부로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화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적인 슬픔에서라든가 종족과 가정의 슬픔을 품은 입장에서 그러했다면 죄가 안 됩니다. 자기를 중심하고 `이놈의 나라가 망할려고 저러나!’라고 하면 스스로 자기의 목을 자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 국가를 두고 보더라도 잘못된 것을 시정하게 될 때 그 나라의 국법이 `이렇다` 하는 원칙으로 판결해야 합니다. 판결하는 사람이 그런 기준을 중심삼고 판정해야 그것이 정상적인 판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 판결을 받게 될 때는 받는 사람도 불평을 하지 않고 순응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불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자의 자리는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어떤 책임자가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을 부려먹으면서 자기는 편한 자리에 있다면 그 책임자는 엉터리입니다. 그런 사람은 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하늘이 요구하는 대신자의 입장을 여러분 자체에서 발견해 내야 됩니다. 그리하면 통일교회에 있어서 앞으로 대신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표준이 나올 것입니다. 또한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어떠한 가정이 되어야 하느냐 할 때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표준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의 대신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표준이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대신자가 세계에도 없었고, 나라에도 없었고, 민족에도, 종족에도, 가정에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세계가 지금까지 계속 남아져 나왔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하고 규합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24-263
새 시대의 전통을 세우는 실체가 되라
여러분도 통일교회에 대해 잘 모르지요. 들어온 지 며칠 됐는데 하면서 앉아 있기만 해서 알 수 있어요? 통일교회가 거쳐 나온 그 길을 내가 가야 되겠다 하는 사람이 진정한 통일교인인 것입니다.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애국자인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싸워 나온 길을 나도 걸어야 되겠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상속받지 않고는 시대적인 책임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신있게 이어받아서 적진을 향하여 총진격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미래에 전통을 세울 수 없습니다. 국가의 비상시에 대처하기 위해 환경을 타개하여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책임자가 되어야 새로운 미래의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과거의 역사를 짊어지고 현재를 책임지고 싸워서 승리를 결정지어야만 비상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전통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비상시국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대한민국을 위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미래에 어떤 전통을 세울 것이냐? 이러한 비상시대를 맞아서 우리는 나서서 싸워야 합니다. 어차피 남북이 부딪혀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어떤 세계적인 힘을 규합해서라도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상사태가 목전에 다가온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는 피해서 가야 되느냐? 천만에요. 피해서 가다가는 망합니다. 피해서 가다가는 지친 발걸음을 갖고서 또 해야 할 일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로서 받아들여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능력을 어떻게 배양하느냐? 원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현실에 당면한 이 고개를 넘어 평화의 시대에서 새로운 승리적인 전통을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누가 세워야 하느냐? 이것은 현재 대한민국을 책임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지금 현시점에서 우리 민족에게 사상적인 면에서 필요한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또 사상뿐만 아니라 여기에 적극적인 태세를 갖추어서 투쟁할 수 있는 패기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렇듯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은 새로운 역사시대에 전통을 세우는 실체로서 등장한 무리입니다.

24-264
종교 통일과 영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파를 통일해야 합니다. 교파를 통일하는데 있어서는 잘 되고 잘못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가지고는 통일할 수 없습니다. 무턱대고 통일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시킬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상을 통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통일하지 못하고서는 사상을 통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세계사적인 책임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일하는 데에 있어서는 영계가 협조해 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통일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입니다. 여러분 알아요, 몰라요? 영계가 통일교회를 협조하고 있는 것을 알아요, 몰라요? 영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영인들이 얼마나 우리 편이 돼 주겠어요? 한 32억 될까요? 여지껏 지상에 왔다가 간 모든 사람들은 영계에 걸려 있습니다. 거꾸로 걸리든 옆으로 걸려 있든, 어떻게 걸려 있든지 간에 모두 영계에 가 걸려 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다 통일교회를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협조하겠다고 하더라도 참여시키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영계에서는 야단입니다. 여러분 그런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영계에는 불교를 믿던 영인도 있고, 유교를 믿던 영인, 회회교를 믿던 영인 등 모든 종교를 믿던 영인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이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에 통일의 운세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지상에도 아무리 싫다고 해도 통일의 운세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게 되어 있는데 봄이 오면 안 되니 봄을 방어하자고 해서 오는 봄을 막을 수 있습니까? 겨울 동안에 방어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봄은 다른 데서부터 날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체 내에서는 해결 못 합니다. 해결을 짓자면 자체 내에서가 아니고 다른 데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하자고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 통일의 방안은 자체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딴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딴 데가 바로 영계입니다.

통일은 기필코 이루어야 합니다. 기독교를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통일이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됩니다」 여러분들 같아서 되겠어요?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가정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가정에 들어가서 전체의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적인 대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어느 누구든 나도 저런 가정을 가져야겠다고 할 수 있는 전통적인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추앙하는 세계 최고의 대표적인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의 축복이라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빨갱이들도 축복의 대열에 끌어들여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영계에서 통일해 준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하고 구경만 하면 되겠습니까? 떡도 잘못 먹었다가는 배탈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는 사회의 풍습에 따른 역사적인 미담이나 미신적인 내용을 지닌 말이 있는데 그런 말들은 근거가 없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굿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살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역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무당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굿을 하는데 거기서 구경을 하다가는 살맞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도망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들어붙는 것입니다. 즉, 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여기에 모였습니까? 구경꾼이 되려면 아예 참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경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아직까지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전통을 세우기 위해 지내 왔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혹은 세계면 세계를 거느릴 수 있는 실적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계를 지탱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을 어디서부터 세울 것이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이 세계를 지탱해 낼 수 있는 전통을 어떻게 세울 것이냐?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역사와 더불어 세워야 합니다.

24-266
통일의 대열에는 모두가 필요
통일교회가 앞장서서 교파 통일을 해야 됩니다. 한국에서 우리가 욕은 먹었지만, 통일교회를 다들 못된 곳이라고 하고 있지만 신문 기자들도 통일교회가 초교파 운동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영계가 배후에서 틀림없이 협조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의 역사를 누가 짊어지고 갈 것이냐, 통일교회 역사를 누가 엮어 갈 것이냐? 물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앞장서서 엮어 갈 것이지만 선생님 혼자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혼자서 다 이루셨습니까? 하나님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보기 싫은 여러분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어떤 때는 피가 푹푹 내릴 때가 있습니다. 뭐 여편네하고 라면 문닫고 살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엿이 간판을 붙이고 이마를 맞대고 살 것을 생각하니…. 또 거기다가 뭐 부자 관계라고 기가 막히지….

그러니 여러분을 통해 말해야 하는 선생님은 얼마나 어렵겠느냐?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 한 사람을 중심삼고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면 `과연 그렇다! 만민공동의 진리이다!’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도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국가를 버리고라도 세계를 향해 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게 되면 새로운 역사가 엮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관을 중심삼은 사상을 갖고 있다면 그런 사상을 버리고서라도 이러한 사상을 가지는 것이 행복하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기서부터 새로운 목적의 이동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목적의 이동과 더불어 개인적인 대신자로서 책임하던 사람이 가정적인 대신자의 책임분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동이 없이는 대신자의 영역을 큰 무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대신자의 분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거기에는 시련과 고통이 커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탕감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책임시대를 지나서 가정적인 책임시대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대신자가 되기 위하여는 이러한 탕감을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가정을 책임지고 교회의 책임을 지고 가는 데는 이중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버릴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개인적인 책임을 질 때는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되지만 교회의 책임자가 되었을 대는 사방성을 갖추어야 하는 책임자로서의 사명이 점점 가중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책임자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책임자를 빙자해 가지고 일신의 외적인, 육에 대한 행복의 터전을 넓혀 나온 타락한 인간들은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비참한 싸움을 청산짓고 대가를 치러야 할 입장에 있는 책임자는 지극히 비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나님이 이러한 책임을 진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신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그러한 길을 가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망해야 될 세상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을 짤라야 됩니다.

24-268
대신자가 될 수 있는 전통을 세우라
이제 이 세상과 부딪혀 가지고 밀고 나가서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렇듯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만의 전통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통일교회만의 전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래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기 위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뭐 복잡하고 야단스럽게 하느냐, 조용조용히 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할 것입니다. 조용조용히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목을 놓아 통곡을 해야 되고 온갖 충성을 다 바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은 가만가만히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오려고 결심하고 나면 반드시 시험이 따릅니다. 혹은 원리 말씀을 들으러 가겠다고 약속해 놓으면 반드시 집에 무슨 사고가 생긴다든가 번번히 어떤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특히 전도 책임자들은 잘 느꼈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공식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개인적인 환경에서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하면 사탄이 꼭대기에서 눌러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지어내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청산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새로운 역사적인 전통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내일의 전통을 세우기 위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조건, 즉 싸워서 승리했다는 기준을 갖지 않고는 내일의 승리의 터전을 이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러한 사명이 통일교회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반드시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가만 두고 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타락할 때도 그냥 두고 보기만 했지요? 사탄이 기원이 되어 타락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사탄을 이겨서 해결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의 뜻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예루살렘의 아들딸을 위하여 울라` 하셨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아들딸의 시련과 고통을 다 짊어지고 가면 너희들도 이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지 않으면 내일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 그러니 현재의 기준에서 나를 보고 울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내일의 대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일의 대신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 이 시간부터 전통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판가름할 수 있는 전통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 전통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당당히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요구하는 기준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 새로 온 사람들이 많군요. 새로 온 사람 손들어 봐요. 본부교회에 처음 온 사람도 손들어 봐요. 여러분들은 이러한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새로운 전통은 심각한 자리에서 세워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생명을 걸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 길 앞에 그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하늘길을 가는 데 있어서 방해의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적개심을 가지고 원수의 배후를 타파하는 재료를 만들어 줄 뿐 내가 가는 길 앞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주저하는 자리에는 설 수 없다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뜻을 전하여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이러한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따라 갈 수 있는 고개를 넘어왔으니까 이제는 이 선생님의 울타리가 되어서 가야 합니다.

24-270
하나님이 통일교회에 시련을 주신 뜻
통일교회는 무얼 하자는 것이냐? 대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 민족에 있어서 혹은 종교면 종교에 있어서 모든 것을 책임질 대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 대신 수단과 방법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적인 핵심에 있어서는 진지한 입장에서 하고 외적인 면에 있어서는 춘하추동 4계절이 돌아가듯 그렇게 순리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책임자의 입장에 선 사람은 절대로 수단과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쓰면 쓸수록 그 교회의 책임자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에 그 책임자 이상 교회를 위해서 책임을 지면 어떠한 작전을 펴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때는 그 사람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탄도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성교회에 대해서 기도해 나왔습니다. 통일교회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기도를 해 온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 가지고 수단과 방법을 쓸 때는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수단 방법을 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이라는 것은 계시에 의한 것이라야 합니다. 계시라 하더라도 진실이 아닌 것은 전통으로 남아지지 않습니다. 전통으로 남아지지 않는 것은 역사와 더불어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책임자가 되어 지방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가지고 국가적 기준에서 종족을 대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책임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족이 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어떠한 입장에서든 아무리 버리게 하더라도 그 국가의 책임자는 그것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과 같은 사람이 저렇게 하더라도 하나님이 가만 두고 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항소할 수 있는 기준이 대한민국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국가의 기준을 만들지 않고는 들이칠 수 없습니다. 그럴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될 때는 아무리 사탄이 포악하더라도 하나님이 처리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와 세계의 종교가 통일이 안 되고 흐지부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통일교회에 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에서부터 전부를 협조해 가지고 이 나라만이라도 절대시할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작전은 많은 사람보다도 몇 사람 안 되더라도 이들을 중심삼고 제 2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먼저 제 2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통일을 하기 위해서 통일신도들은 어떠한 길이라도 가야 합니다. 세계의 기독교를 통일할 수 있는, 미래에 세워질 전통의 바탕을 여러분이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의 주인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습니까?

기독교가 순교의 역사를 엮어 나왔으니 그 이상의 새로운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독교 역사에 못지 않은 일을 전부 해 왔습니다. 선생님은 3시대를 거치며 싸워 나왔습니다. 3시대를 거치면서 국가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습니다. 여러분 앞에 당당코 명령할 수 있는 실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실적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의 욕망을 위해서였다면 벌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미래의 전통을 위해서 강력히 추진하고 싸워 나왔기 때문에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결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미래의 세계는 더욱 탄탄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통일교회에 대한 시련을 더욱 강화시켜야 하는 하늘의 뜻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을 새로운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복을 받을 수 있는 민족적인 대신자의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민족 앞에 있어서 대표자로서 하나님이 바라는 민족적인 책임을 다해야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자들도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는 교파를 통일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혼란시대에 있어서 종교를 통일해야 합니다. 간판이 근사하지 않습니까? 간판은 근사한데 내용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으면 안 됩니다. 간판을 내걸기 전에 먼저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 내용을 전파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뭐 내 자랑하고 여편네 자랑하려고 사람들 모이라고 합니까? 내가 나 혼자 자랑한다고 되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자랑해야 됩니까? 부모는 무엇을 자랑해야 되겠습니까? 뭘 자랑해야 돼요? 자녀를 자랑할 수 없는 부모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신 아들딸이 와서 엄마 아빠를 부른다고 할 때 부모는 그 아들딸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남이 볼세라 끌어 안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러한 사정 속에서 지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24-272
전통은 주류에 상속된다
거기에 하나님은 `당신 아들딸 잘 낳았더군요’ 하는 사탄의 조롱을 받으며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신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유린해 나온 그것을 깔고뭉갤 수 있고 덮어 버릴 수 있는 싸움이 우리 통일의 무리에게 닥쳐올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을 잘 포착해서 반갑게 나서서 내 손으로 처치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격전에 대비해 나가야 할 통일신도들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1950년대나 1960년대에 이렇게 했지…’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그에게 `그래 그때는 좋아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어떻소?’ 하고 물을 때, `글쎄요…’ 하게 되면 기분 좋겠어요?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을 고스란히 상속받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온 식구들이 잘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들어왔다고 해서 발전할 수 있는 무대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들어올수록 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 본연의 전통과 주류사상을 받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주류라는 말과 비주류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무에 비유를 하자면 나무에는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줄기가 되려면 곁가지가 되어야 합니까, 종대가 되어야 합니까? 종대는 뿌리로부터 언제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대가 가지처럼 자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나무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숙청해야 합니다.

사탄을 바로 이 중심(종대)이 못 자라게 하기 위해서 몰아댔고, 하늘은 자라게 하기 위해서 사탄과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싸움의 결판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그것은 주류라는 이 바톤을 인계받을 때 벌어집니다. 그 싸움의 결정을 짓지 않고는 진전이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무리 싸움을 하더라도 승리의 결정을 짓지 않으면 그 싸움에서 진전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돌아가야 됩니다. 싸워서도 끝이 안 나니 다시 180도로 돌아가야 합니다. 중심은 둘이 될 수 없으며 영원히 하나이기 때문에 전통은 그 주류에게 상속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애국자는 누구냐? 애국자는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있고 또 누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진짜 애국자는 누구일 것이냐? 그건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류사상이 없으면 갈 곳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싸움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 나라에 애국정신을 고취시켜 줄 수 있는 진정한 애국자가 있느냐 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요, 주류가 못 되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이면 미국도 주류가 못 됩니다. 혹은 세계 국가 중의 어떤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모두 주류가 못 됩니다.

24-273
하나님의 사랑이 주류사상의 근원지
주류사상을 못 가진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도 못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걸 가지고 있느냐? 선생님 말고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원리가 여기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의 유교사상이라든가 플라톤의 사상, 그리고 기독교사상도 모두 그것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힘의 패권주의가 아니라 문화권을 중심삼아 통일사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절대적인 그 주류사상이 무엇일 것이냐? 통일의 중심이 주류사상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온 것입니다.

최초의 전통적인 주류사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국가나 세계가 바라는 이상세계는 모두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상적인 원칙을 횡적으로 벌여 놓았기 때문에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그러면 부모의 주류사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에서부터 시작되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밤에도 좋고, 낮에도 좋고, 자면서도 좋고, 꿈에도 좋고, 도망가다가도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곧 행복의 열쇠입니다. 세계 만민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좋아할 수 있는 것, 거기에 대해 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통적인 주류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혁명할 수 있습니까?

만일에 남자가 훌륭하다고 해서 여자들을 없애고 남자들만 살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망해요, 안 망해요? 100년을 못 갑니다. 또한 한집에 여자만 살게 하면 망해요, 안 망해요? 여기 여자들, 여자의 행복은 어디서부터입니까? 몰라요? 그럼 남자들, 남자의 행복은 어디서부터입니까? 「가정입니다」 가정요? 여자로부터입니다. 남자는 여자로부터입니다. 여기 있는 여자들 이런 말 하면 남자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 사람은 남자를 잘못 만나서 그런 겁니다. (웃음) 그래서 세상에서 혼자 살다가 죽은 귀신을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몽달귀신이 잘 된 거예요, 못 된 거예요? 똘똘 뭉쳐서 몽달귀신인가요? 혼자가 되었으니 몽달귀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었느냐? 얼굴을 보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사랑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 선인 것입니다. 사랑의 참된 줄을 중심삼고 연결된 것이 참된 가정이요, 참된 국가이며, 참된 세계입니다.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무슨 권세의 기반을 닦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의 교리는 성경 66권을 풀어 가지고 가정이라는 것에 결론을 지었습니다. 인류가 남아지는 한 통일교회의 사상을 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존재가 내세운 사상보다도 어떠한 내용보다도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사실적인 근거의 터전 하에 역사적인 실증을 기반으로 해서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이 사상은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10대 청소년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부모의 사랑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부터 뱃속에서부터 뒤집혔는데 세상은 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이 청소년 문제를 중심삼고 누가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냐? 통일교회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청소년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자면 얼마나 주어야 되겠어요? 대학을 다니는데 수십만 원 이상의 돈이 들게 됩니다. 선생님이 만일 대학교 이상 가는 그런 교육을 시킨 대가로 돈을 받는다면 통일교회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돈을 주고 자기의 생명을 얻은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독교인이나 불교인들은 이러한 사상을 생명을 주고도 받지 못했지만 통일교인들은 그러한 은덕을 받았으니 여러분은 그 은덕에 보답해야 합니다. 또한 은덕을 받으려면 보자기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집을 가는데 누더기 옷을 입고 시집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보물단지를 지금 상속받아야 할 텐데 거적대기나 부대자루 같은 치마를 입고 가서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실례가 됩니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24-275
통일주의(통일교회의 주류사상)는 곧 심정주의
모양은 비록 그렇지만 반드시 때가 옵니다. 그때에 가서 자신이 정성들인 물건을 뭇 사람에게 내주고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준비를 해 가야 합니다. 이러한 사상이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이것만 해 놓으면 종교가 통일되지 말라고 해도 통일이 됩니다. 또 종교만 통일되면 국가도 통일될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사상을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의 사조가 혼란되어 가지고 공산주의가 옳으니, 민주주의가 옳으니 하면서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여자를 남자라고 해도 남자라고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남자다운 남자를 모르는 사람은 여자 남자를 잘 구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남자를 아니까 남자를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남자는 이렇게 생긴 것이 남자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도 이러했기 때문에 남자이며, 또한 앞으로는 이렇게 될 것이기 대문에 남자다 하는, 즉 남자라는 것은 역사성을 초월한 입장에서 결정지어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과거와 오늘이 다르고 미래가 다를 수 있는 것은 결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통일교회의 진리는 ‘좌는 이렇고 우는 저렇다, 너는 남자고 나는 여자다’ 하는 것을 정확히 가릴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하늘을 대표한 종교로서 이 세계를 대표한 사상을 가지고 흐트러진 사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주의입니다.

선생님은 이 ‘주의’ 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주의’라는 것은 지팡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리를 건너가려면 지팡이가 필요합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둘이 가다가는 그 다리가 무너진다고 하면 둘이 먼저 건너려고 싸울 것입니다. 의논해서 건너가자고 할 때 누가 먼저 건너갈 것이냐를 두고 또 싸울 것입니다. 다리를 먼저 건너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수가 생긴다면 필시 이런 싸움을 할 것입니다. 이 다리를 잘 건너가게 하기 위해 역사를 하는 것이 바로 통일교회가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아들주의라는 말 들어 봤습니까? 부모는 아들주의 입장에 서야 하고 아들은 아들주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그런 말이 있습니까? 그 주의는 가정주의 권내에 있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가정주의라는 것은 가정을 합해서 국가 형성을 하려니 필요한 것입니다. 국가주의 앞에는 이 가정주의가 흡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주의는 세계주의 앞에 흡수되는 것이고, 세계주의는 천주주의 앞에 흡수되는 것이며, 또한 천주주의는 심정주의 앞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슨 주의입니까? 무슨 주의예요? 「심정주의입니다」 통일교회의 주의는 심정주의입니다.

‘천주주의’ 할 때 천주의 ‘주’자는 무슨 ‘주’자입니까? 천주주의라는 말에 하필이면 집 주(宙)자를 쓰느냐는 것입니다. 천대주의(天大主義), 혹은 천왕주의(天王主義)라고 하든지, 천주주의(天主主義)라고 하든지 할 것이지 왜 이 천주라는 말에 집 주(宙)자를 썼겠습니까? 이것은 집, 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슨 주 자라고요? 「’집 주’자입니다」 왜 집 주 자를 씁니까? 그것은 하늘의 집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축복 받은 가정들이 이 기준에서 떨어지는 날에는 지옥,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24-277
축복과 전통 확립
통일교회 축복을 받고서 헤어지려면 무엇 때문에 축복 받았습니까? 축복을 받은 후 잘못 되었을 때 앞으로 그들이 당하게 되는 비참함을 그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계약을 할 때 그 내용을 모르고 했더라도 그 계약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들의 전후 좌우를 가려서 서로가 문답을 하게 한 후 축복을 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꼼짝달싹 못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잘못하면 자기의 70대 이상의 조상까지도 걸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나고 무서운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어디서부터? 천주주의로부터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어이구 그 이상상대라는 것이 마음이 맞아야 이상상대지! 솔직히 난 저런 상대가 싫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럴 수 있어요?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축복가정에는 지극히 근사한 가정이 있고, 지극히 안 된 가정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함정에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부다 똑똑한 사람들만 장가가고 시집가면 밑창의 못난이하고는 누가 결혼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모두 죽어야 됩니까? 애꾸눈 여자시집 못 간다는 말이 있습니까? 팔 병신 남자는 장가 못 간다는 법이 있습니까? 그런 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들과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숭배해야 됩니다.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바로 그런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불구자와 사는 부인에 대해서나 그런 남편에 대해서 그 나라의 전통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환경적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그것이 안 되었지만 앞으로는 필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일생의 소원은 세계에서 제일 못난 추남과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녀를 결혼시켜서 그 가정이 만민의 대표가 되는 가정으로 숭배 받고 높임 받는 것을 한번 보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찬양하기 전에 깊은 골짜기를 찬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할 게 아닙니까? 선생님이 아무렇게나 여러분들을 짝 지어 주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여기 협회장도 잘 모르지만 선생님은 다 그런 원칙적인 내용을 다 알고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남들은 저렇게 해주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해줄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두고 보아야 합니다. 쉽게 되는 가정이 있고 어렵게 되는 가정이 있습니다.

24-278
통일교회가 발견해 낸 사위기대 원리의 위대성
천주주의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면 심정에서부터 옵니다. 통일교회는 통일을 좋아하지요? 그러면 왼쪽 눈, 바른쪽 눈이 통일이 되어야 하겠어요, 안 되어야 하겠어요? 「되어야 합니다」 통일되자면 한쪽 눈을 떼어다가 갖다 붙여야지요? (웃음) 그게 아니라 3점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위기대라는 것인데 통일교회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런 사위기대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면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른쪽 눈과, 왼쪽 눈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사위기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인이 나타나고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인 결과가 이루어지면 사방은 전부 다 이 사위기대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입니까? 사위기대가 안 이루어진 것을 죄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지요? 사위기대가 이루어졌어요, 안 이루어졌어요? 「안 이루어졌습니다」 원리를 모든 것에 대입해서 풀어 보면 꼼짝달싹 못하고 원리대로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도 꼼짝달싹 못하고 걸려 있습니다. 걸려 가지고 망하느냐? 아닙니다. 걸려서 뺑뺑 그냥 돌아가게 되면 돌면 돌수록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탑을 쌓는 데 있어서 점점 높이 쌓을수록 더 크게 쌓는 사람은 없습니다.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맨 꼭대기에는 하나만 남습니다. 그 하나 위에 더 쌓을 수 있습니까? 더 이상 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더 쌓아 올라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부다 망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올라갔다가는 내려와야 합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함께 사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꽉 붙들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를 붙들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들딸 이렇게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듯 천지의 법도가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도 천도를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죄가 뭐라고요?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잘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께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게 됩니다. 부모의 모든 것은 몽땅 아들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애국자입니다. 그 일대에 충성을 다하면 그 전통을 받는 후대는 기필코 나라의 귀감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세계를 중심삼은 사위기대 전통을 이어받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부부라면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아들딸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축복 받은 사람이 선생님의 기준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은 전통적인 사상을 받아서 딴 종자가 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을 보면 부모의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24-280
책임을 다하자
종교는 종적이요, 사상은 횡적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행동적인 면에 있어서 이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종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며 산 하나님을 모시자는 것입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사상으로도 산 하나님을 모시자는 것입니다. 생활적인 면에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하나님, 그리고 참된 부모의 자리에서 자녀를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중심 삼고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는 이 땅 위에서 대신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가정을 두고 볼 때도 그렇게 해야 되겠고, 종족을 두고 볼 때도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종족이 무지하면 우리가 그 대신자이니만큼 그 종족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나라가 무지하거든 또한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나라가 남아지는 날까지, 전통이 계승되는 날까지 이 사명과 책임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도 주춤거리지 않고 강력히 밀고 나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피눈물을 짜내어서라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폭군입니까? 이런 말을 들으니까 기가 막힙니까? 아니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섭리적인 역사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이 지구상에 36억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데, 일년에 3천 6백만의 인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구만큼 죽어가고 있습니다. 10년이면 3억 6천명이 죽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 인구의 거의 두 배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하늘나라의 손해가 얼마나 크냐는 것입니다. 10년이면 3억 6천만, 즉 미국 인구의 2배가되는 인간들이 죽기 때문에 복귀섭리를 단축시키고 싶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섭리해 오시면서 내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여러분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책임자의 입장에서는 강력해야 합니다. 세계 제일의 폭군과 같은 입장에서 무자비하게 내몰지 않을 수 없는 하늘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을 고생시키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10대 후손까지 고생시킬 것이냐, 여러분 일대를 고생시킬 것이냐? 여러분을 고생시킴으로써 일대에 탕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음길도 개의치 않고 무자비하게 내몰아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독교가 순교의 길을 걸어 나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명령을 받는 것을 응당히 가야 할 도리로 알고, 가법으로 알고, 미래의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사상으로 알고, 엄숙히 책임을 다하는 통일사상을 지닌 여러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떠한 한계선을 넘어서라도 온갖 정성을 다해 나갈 때 세계는 우리의 편이 되지 말라고 해도 불원한 장래에 우리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선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 가정, 종족, 민족,국가, 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종사하는 분야에 세계적인 사상을 투입하여 제한된 환경 속에서 생애를 바쳐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는 이 일이 세계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갖 정성을 퍼부어야 합니다. 피땀 흘려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생애 최고의 활동 장소요, 생의 핵심을 결정지을 장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일어나고 거기에서 일하고 거기에서 죽어 가는 것을 최대의 기쁨으로 알고 싸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통일사상을 지닌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면모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 책임을 감당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배후를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24-281
기 도
아버지, 아버지께서 수많은 민족들이 피흘려 싸워서 남겨놓은 역사를 가려 오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 오셨는가를 저희들은 막연하게나마 마음에 그릴 수 있사옵니다.

과연 아버지는 불쌍한 아버지였사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는 아들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들이 책임을 못 하였다 할지라도 딸이라도 내심적인 입장에서 미래의 한날을 맞을 수 있는 자극이라도 가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들을 내세워서 복귀의 터전을 닦아 나온 역사과정이 비참했던 것을 생각할 때마다 딸이라도 아버지의 심정 앞에 설 수 있어야 했지만 그럴래야 그럴 수 없는 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얼마나 외롭게 지내셨사옵니까?

이제 끝날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을 세워서 딸을 찾을 수 있는 때가 된 줄 아옵니다. 아들과 딸이 서로 아버지의 사정과 내정적인 심정을 헤아려서 처참한 형상의 한 부모를 말없이 위로해 드리지 않으면 효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앞에 역사상의 인류와 더불어 눈물을 흘릴 수 있고, 현시대의 인류와 더불어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미래의 새로운 사명을 절감하면서 효성을 다하는 모습이 되겠다고 아버지의 옷깃을 부여잡고 통곡하며 사정하는 아들딸이 되어야 할 저희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엮어 온 역사의 배후는 지극히 처참했사옵니다. 그 누구도 동정하는 사람이 없었사옵니다. 아버님이 동정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들도 동정 받기를 원치 않았사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아버지께서 동정하기에 마음을 졸였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미래의 소망을 이뤄 드리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믿고 나아가는 통일의 무리는 아버지의 소망의 실체가 되어야 되겠고, 소망의 산 기반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이 뜻을 중심삼고 이 나라 이 민족이 산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 하겠고, 또한 이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 인류가 산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반대적인 입장에 섰기 때문에 벌거숭이로 몸부림치는 통일교회무리에게 채찍을 가하여 민족과 세계 앞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비참하고 비참한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될 때 뭐라고 아버지 앞에 호소할 수 없는 입장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약자가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여기에서 주저하고 머물러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최후의 결전장을 향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몸이오니 주저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최후의 싸움의 기지를 향하여 달려가야 되겠사옵니다. 전면적 진격을 하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전통을 연결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의 참소의 조건, 처참한 모든 저주의 조건들이 오늘날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연결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저희들은 아버지를 상심시킨 그 뿌리를 뽑아서 순수한 마음으로 내일의 소망 앞에서야 하나 그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저희들은 다시 소망을 가지고 늠름한 자세를 갖추어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로 말미암아 미래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습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많게 하여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사람의 말을 듣고 따라온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저희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따라오지 않았사옵니다. 인간 사이에서 맺어질 수 있는 어떠한 인정에 끌리어 따라온 것도 아니었사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의 인연을 가지고 따라 나온 걸음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중심삼고 결판지어야 할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 각자의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충효의 도리와 인연을 맺고 책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각자 앞에 맡겨진 영원한 세계사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하늘이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8월 24일이옵니다. 이달은 저희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시련의 달이었고 눈물 자국을 메워 나가는 달이었사옵니다. 오늘 24일을 해방 24돌과 더불어 넘기게 하락하여 주시옵소서. 넘기고 나서 탄식이 그늘에서 신음하는 민족이 되지 말게 하락하여 주시옵고,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환희의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해방 25주년을 맞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통일의 깃발을 드높이 들고 아버지의 자비를 자랑하고 아버지의 권한을 찬양하는 새로운 한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늘이 칠 것을 알고 있사오니,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하늘을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할 줄 아는 하늘 사람,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은 아버님의 대신자가 되라는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았사옵니다. 말할 수 없이 슬픈 역사 과정에서 개인을 대하고 가정을 대하고 민족과 세계를 대해야 했던 아버지 앞에 대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일신을 잊어버리고,환경을 잊어버리고, 그 국가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전통적인 내정을 상속 받아야 하겠사오니, 그것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외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고, 주류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세계의 사상을 수습하는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한 각지에서 이날을 기념하는 자녀들을 특히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어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서 이곳을 사모하며 눈물짓는 자들의 눈물이 헛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호소하는 호소가 민족에만 그치지 말게 하시옵소서. 그 제단이 세계를 찾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복지의 제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아진 날들이 저희를 부르고, 또한 모든 인류가 저희를 부르고 절규하는 그 음성을 듣고 자기 자신을 망각하면서 목적지를 향하여 달음질 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오늘의 모든 전부를 주관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