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84 to 24-206: 추억과 회상

추억과 회상
1969.08.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184
추억과 회상
[기 도]

아버님! 지금까지 자기의 생명을 제물삼아 최후의 승리를 고대하면서 복귀의 길을 갔던 애혼들이 많은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하지 못한 것은 타락된 한의 근거인 원수의 피를 받은 연고였습니다.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쇠사슬에 얽매인 자기 자신인 고로, 원수의 참소와 원수의 계획 가운데서 아니 갈래야 하니 갈 수 없는 절망의 운명으로서 사라진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듯 역사의 슬픔이 남아 있는 사실들을 직시해 보게 될때, 그 슬픔의 한이 남아 있는 복귀의 길에 저희들이 들어선 것을 알게 되옵니다. 이러한 저희 자신을 중심삼고 하루 한 날을 신중하게 맞이하고 내일의 소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전후 좌우 상하에 있어서 조심스럽게 이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되옵니다. 지금까지 원수가 역사의 수많은 선지자들을 올가미 씌워 희생의 제물로 삼았던 사실이 오늘날 저희 주위에 재현되고 있사옵니다. 이런 환경을 넘어가야 할 책임이 저희들 각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오로지 아버님만을 의지하고 아버님이 남기신 길만을 지켜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땅 위에서 복귀의 노정을 가고 있는 사람은 지극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아버님, 오늘은 1969년 8월 10일이옵니다. 아버지의 역사적인 노정의 모든 슬픔을 제거시켜 버리고 재출발의 8수와 10수를 가동할 수 있는 이날을 맞이하게 될 때, 이날은 저희의 복귀노정에 있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날로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부터 만23년 전, 그 한때에 있어서 역사가 지닌 슬픔의 인연과 더불어 성도들과 저자신이 이 날을 하루빨리 맞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사옵니다.

아버님, 지난날을 회상하는 동시에 오늘의 현실을 다시 한번 비판하게 될 때, 아버님이 바라시는 절박한 심정과 오늘날 저희들이 따라가는 행로와는 너무나 차이가 많은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를 부르고,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의 아들된 가치를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이 바라시던 소망의 기준이 저희 한 개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고, 아버지께서 고대하시는 참된 가치의 모습을 진정 이해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흘러가는 세월을 저희들의 슬픔을 남겨두는 세월로서 보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슬픔이 엇갈리는 자리에서도 아버님을 위하여 전진할 수 있는 심정을 지니고 아버지의 뜻을 부둥켜 안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승리의 대상이 되든가, 기쁨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운명권에 들어섰습니다. 이 지루하고 한스러운 한탄의 행로에 들어선 것을 자각하여야 되겠습니다.

그 동안 이 길을 자신하고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낙망과 절망 가운데 빠져 당신을 배반하고 당신 앞에 역적이 되어 사탄에게 다시 접붙였던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 길을 나서면서 생명을 걸고 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아버지 앞에 자기 스스로 맹세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었습니까? 거듭되는 복귀 행로의 서글픔과 생명의 교차로에서의 적막한 슬픔, 그러한 슬픔의 자리에 설 적마다 자신을 중심삼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알고 있사오니, 이런 내용과 사정을 극복할 수 있는 저희 자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의 역사를 엮어 나온 그 슬픔의 행로를 다시 걸어가야 할 통일의 역군들과 대한민국의 슬픈 사정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고 가는데 있어서 길잡이가 되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소망의 기점이 될 수 있는 개인과 단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 자신이 거기에 중심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통일의 무리와 대한민국이 너무나 불쌍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천륜의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엎드린 몸이오니, 그 천륜의 인연을 따라 살고 그 천륜의 인연을 따라 죽기 위한 몸으로서 완전히 아버지 앞에 바쳐지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언제나 슬픈 마음을 억제하시면서 부족한 저희들의 낙망한 모습을 보고 항상 권고하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하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느껴야 되겠사옵고, 아버지 앞에 진정 필요한 저희 자신이 되어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행여 싸움의 행로에 있어서 저희 자신이 아버지 앞에 슬픔을 남기는 염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오늘날 저희들이 늠름하고 당당한 모습으로서 원수의 세계 앞에 하늘의 정병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될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저희 자신들을 놓고 개탄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저희들보다 아버지께서 그러한 자리에 있는 저희들을 보시고 더 슬퍼하신다는 사실이 더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한국과 이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마음 모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정성들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이 외로운 자리에 머물지 않게 당신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은 외로운 입장에서 서글픈 마음을 갖고 하늘을 위하고 염려하는 자리에 있사오니, 아버님께서 역사과정을 통하여 이런 자리에 동반하여 주셨듯이 그들에게도 항상 동반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에게 몰리고 몰리는 복귀의 길 앞에서도 당신이 찾으시던 그리움의 모습을 갖추어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하루를 아버지 앞에 전부 바치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훌륭한 자식이 모습을 갖추어 청산지어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은 40일노정을 출발하여 그 절반인 20일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남기신뜻에 일치할 수 있는 생활적 기반 위에서 내일의 소망 가운데 굳세게 살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과 같은 실체가 되기 위하여 전진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이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물론이요 전체의 자녀들이 마음 모아 기도하는 것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고, 그들 위에 운행하여 주옵시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기신 그날을 위하여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4-187
말 씀
여러분 가운데서 아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금으로부터 만 23년전 선생님이 공산당에 의해 평양 대동보안서에 잡혀 들어 갔었습니다. 그 당시평양에서는 해방을 맞이하여 새로이 교회를 재건하면서 역사적인 사명을 하기 위하여 새로이 출발하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을 때 선생님이 평양에 가서 새로운 원리운동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24-187
복중교를 통한 섭리의 배경
당시 교계에서는 이 민족 앞에 찾아진 해방의 기쁨과 더불어 왜정시대에 압정을 받으면서 슬픈 신앙생활을 해왔던 모든 한을 걷어치우고, 새로운 소망과 희망에 벅차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새로운 혁신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즉 새로운 재건의 불길이 번지는 마당에서 우리통일교회가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선생님이 일을 하다 보니 기성교회의 중심되는 신도,혹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소속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선생님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평양에서 문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서문과 가까운 경창리(景昌里)에서 전도를 하며 통일교회의 출발의 터전을 세우던 때였습니다.

동기가 어떻게 되어서 이런 문제가 벌어지게 되었느냐? 여러분들 중에서도 복중교에 대해 들어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허호빈씨를 중심한 복중교는 그때의 복귀노정에서 하늘이 이 땅 위에 필히 준비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허호빈씨를 중심한 복중교가 출발하게 될 때까지 3대를 거쳐 나왔습니다. 여기의 1대가 정석온씨의 어머니 되시는 김성도씨입니다. 이분을 중심삼은 하늘의 역사를 거쳐 복중교의 허호빈씨에게 하늘이 직접적인 역사를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때 이 집단에서 무엇을 준비했느냐 하면, 이 땅 위에 주님이 오시면 맞이할 수 있는 전반적인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준비하는 데는 우리가 기쁜 자리에서 그를 맞을 수 있는 준비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하늘의 복귀섭리는 현재의 입장만 가지고 준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기에 과거의 승리의 터전 위에 설 수 있는 현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현재가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현재가 현재로서 그 위치와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과정에서 하늘이 침범받았던 모든 조건들을 전부 다 제거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실패했던 기준을 현재의 승리의 조건으로 세우지 않고는 현재의 승리의 터전 위에 준비할 수 없는 것이 하늘이 그러한 사명을 되풀이해서 준비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교는 오시는 주님을 위하여 내적으로 준비하는 집단이었습니다. 슬픔 가운데 돌아가신 주님이셨기 때문에, 그 가신 주님의 모든 슬픈 사정을 이 땅 위에서 해결짓지 않고는 소망과 기쁨을 가져오는 주님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사연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기에 하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연을 책임분담시켜 복귀섭리의 판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이면 한국을 중심삼고 중심적인 책임자를 세우기 전에 그 주위에서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역사를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 외적인 준비가 어느 정도의 기준에까지 도달함에 따라 내적 중심을 세워 가지고 준비해 나오는 것입니다. 내적 기준과 외적 기준에 있어서 외적 기준은 언제나 상대적인 입장에서 갖추어져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심은 어디까지나 옛날에 왔다 갔던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하고 있는 기독교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복귀섭리의 터전을 넓혀 나왔고 세계적인 외적 기준을 닦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외적 기준과 중심이 어느 한때 일치가 되느냐? 이것이 아직까지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와 성신을 중심삼고 역사해 나왔지만, 하늘의 내적인 복귀섭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내적 기준에 입각한 터전을 넓힌 것이 아니라 외적 기반을 닦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왔기 때문에,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본래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승리의 터전 위에 서지 못한 것입니다. 승리의 터전 위에 서기위해서는 내적인 기준을 새로이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오늘날 기독교가 엮어 나온 외적 역사를 반드시 상속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는 상속하는 순서로 볼 때, 반드시 부녀자들이 이일을 중심삼고 상속의 역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4-189
복중교의 사상과 그 사명
이와 같이 복귀섭리역사는 안팎으로 여자들을 중심삼고 섭리의 출발을 했었지만, 여자들은 뜻이 어떻게 되며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전체의 모든 결정적 책임은 여자들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할 수 없느냐? 그것은 여자인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해와가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아담이 실패한 모든 내용을 다시 수습하고 새로운 중심을 결정지어야 할 입장에서 오시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안팎의 모든 내용을 수습하고 승리의 기준을 닦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정적인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 즉 제3차 아담격으로 오시는 주님만이 해결지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그 앞에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려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입장이었지 주체적 입장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인 중심은 여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세계적인 사명을 내적으로 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을 닦은 것이 바로 복중교입니다. 이 복중교가 나오기 전에 김성도씨를 중심삼고 평안북도 철산에서 주님을 맞기 위한 역사가 먼저 벌어졌던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탕감복귀의 노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기점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의 출발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원리적 견해요, 복귀섭리의 원칙적 기준입니다. 그런 기준을 세우려면 한국 강토면 한국강토의 제한된 한계권내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제단과 같은 입장에 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될 수 있는 탕감의 내용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책임지고 나온 시대적인 선각자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복중교를 지도하고 있던 허호빈씨입니다. 이 부인이 뜻을 인계받기까지의 내용과 역사는 상당히 길지만 생략하겠습니다.

허호빈씨가 계시를 받게 될 때는 언제나 몸에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외적인 자극을 통한 움직임이 있는 후 반드시 영계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 계시가 허호빈씨의 배를 통하여 전달됐기 때문에 그 집단을 복중교라고 한 것입니다. 복중교라는 이름은 자기 집단에서 지은 것이 아니라 그때에 소문으로 만들어진 명사입니다.

그들이 계시를 받고 그동안 무엇을 준비해 나왔느냐? 그들은 새로운 역사시대에 하나의 중심존재가 나타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때는 기쁜 때이기 때문에 기쁜 역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엮어나온 슬픈 역사를 어느 한때에 완전히 청산짓고 자기들이 승리했다는 날을 맞기 전에는 기쁜 출발을 못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어떠한 장군이 있다면, 그 장군이 기쁜 날을 맞기 위해서는 패했던 서글픈 과거를 모두 청산지을 수 있는 승리의 한 날을 맞아야 합니다. 승리의 한 날을 맞기 전에는 그 나라와 민족 앞에 기쁜 날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이기 때문에 오실 그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는 역사과정의 슬펐던 날을 전부 제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귀섭리를 담당한 선각자로서 그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중대한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예수님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모든 내용을 재현시켜 그 당대에 탕감시키는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24-191
재림주님을 위한 복중교의 정성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면서부터 30여년의 생애를 지내기까지 세상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슬픈 내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홀로 느끼신 고독함과 억울함과 비참함은,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도 모르고, 역사과정의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비참한 사연을 품고 가셨던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시켜 그 당대에 하지 못했던 것을 전부 탕감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섭리의 입장을 중심삼고 준비시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요셉 가정의 모든 슬픈 사연을 중심삼고 복중교인들에게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시는 주님이 한 살부터 30세까지 사흘에 한 번씩 갈아 입을 수 있는 옷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심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 앞에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사명을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복중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의 승리적 입장을 재생하여 그 일을 다시 추진시켰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정성들였던 그 정성의 정도를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정성들이는 데는 양식으로부터 한식까지 전반적인 의식을 중심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30여년 동안 뜻을 품고하지 못하였던 모든 한맺힌 내용을 그들이 전부다 해원성사해야 할 입장에서 탕감역사를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감옥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영계로부터 일본이 망할 날짜까지 받고서 `일본 천황은 망한다. 일본은 꼭 망한다’ 라고 외치며, 감옥의 쇠사슬에 매여 있으면서도 생명을 내걸고 싸우는 모습을 지녔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시대의 주권 앞에서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철창에 갇힌 영어의 몸이 되었다 할지라도, 시대의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일심으로 하나님이 남기신 복귀의 뜻만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들은 왜정 때부터 그런 싸움을 거듭하면서 준비해 나온 것입니다. 해방이 되자 그들은 이 땅 위에 자기들이 소망하던 주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고 김일성이 새로운 공산당 정권을 세우게 되자 그때부터 그들은 공산당 앞에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종교라는 미명을 내세워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수많은 대중을 착취했다는 죄목을 그들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입니다.

1946년 6월, 공산당은 북한 전역에 있어서 새로운 종교 단체에 대한 탄압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에 유사한 단체가 있으면 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에 선생님은 경창리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왜 남한에 있다가 이북으로 갔느냐? 그 당시 한국의 신앙의 중심지가 평양이었고, 또 거기에서 그때까지 역사적인 신앙의 모든 투쟁이 엮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늘이 준비해 놓은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북에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전도활동을 하다가 8월 11일에 공산당에 의해 대동보안서에 잡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허호빈이라는 분은 일평생동안 모든 정성을 다 들여서 그 길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의 역사를 보게 되면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종교인을 원수와 같이 취급하는 공산당의 압제하에서 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기들의 신앙심을 지켜 나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 고문받은 내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그들이 모시 적삼을 입은 그 위에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그 옷에 온통 구멍이 뚫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절을 수십번이나 하고 그의 동생은 고문에 못견디어 죽어 갔습니다. 그 전체의 책임자들 40여명도 투옥되어 가지고 비참한 가운데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입장에서 같은 단체취급을 받아 가지고 투옥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그때 수사를 담당했던 흥이라는 사람과 그 일 전체를 책임지고 지도하던 박찬정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도 어느 한때가 되면 다 만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원한이 맺혀 있는 통일교회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초창기 핍박받던 당시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때부터의 통일교회는 알지만 들어오기 전의 내용은 모르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는 언제나 그렇게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들어오는 통일교인들은 과거의 통일교회를 모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적인 문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193
진정한 의미의 추억과 회상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자기들이 맞이하는 현실은 반드시 과거에 닦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닦아진 터전을 현실무대에서 어떻게 바꿔치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역사적인 어떠한 전체를 대신한 책임자나 현재에 개체의 행로를 걸어가는 현실의 책임자나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오늘부터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승리의 기쁨을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을 추억해 보고 회상하여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습니다.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그리고 모세와 예수시대를 거쳐 가지고 오늘까지 나온 기독교 역사에서 피를 흘린 수많은 순교열사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희생의 제물이 되었던가? 그들은 최후의 승리의 한날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승리의 한 날을 어떻게 거두어들이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요 사명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과거가 오늘날 우리 자체를 중심삼고 또는 미래 역사의 시점을 놓고 무엇을 요구할 것이야? 물론 승리를 요구할 것이며 승리를 추구할 것입니다.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기쁨의 한 날을 맞기 위한 것입니다.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희생되었던 순교열사들의 억울함을 완전히 제거시켜 버리고, 그 순교열사들이 책임져 나오면서 소망하였던 이상의 결과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원성취할 수있는 이 한 날을 맞아들이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가 기쁜 날로서 어는 한 날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슬픈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과거를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하늘의 슬픔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 되어진 사실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역사는 망각해버릴 수 있는 역사가 아닙니다.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그런 슬픈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픈 사실 가운데 눈물로 뿌려진 슬픈 사연들을 거두어야 됩니다. 어떻게 거두느냐? 슬픈 역사이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슬픈 사실을 재현시켜서 과거의 슬픔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의 한 날, 즉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추억과 회상은 막연한 추억이 아니요, 막연한 회상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추억과 회상을 현실에 재현시켜 가지고 그들이 바라던 이상의 승리를 오늘 내 일신에서부터 결정지어 놓아야 합니다. 밖으로는 몸에서부터, 내적으로는 마음으로부터 절감하면서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에서 승리를 결정지어 놓아야 할 것이 복귀의 운명길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이런 책임을 하늘로부터 분부받게 될 때, 적당한 시기에 벌어지는 그 환경을 내 것으로 인계받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싸움은 적당한 싸움이 아니라 결사적인 싸움입니다. 갖추어진 때를 상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내적인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에 갖추어 놓는 일을 해 나와야 됩니다. 그런고로 그들에 대한 추억과 회상은 현실적인 추억이요 회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적인 문제 또는 얽혀진 사정이 종족인 면에서 심정적인 문제와 일치되어야 하고, 횡적인 면에서는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가 하나 되지 못하여 역사적인 침범을 사탄에게 당하게 된 모든 슬픔의 내용을 다시 여기에 연결시켜 재현해야 됩니다.

종족 기준이 일치되어야만 하늘이 여기에 임할 수 있고, 또한 왔다 간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베드로, 야고보 등 12사도들과 그때의 모든 교법사 제사장들이 책임하지 못하였던 그 현실적인 기준을 오늘날 하나의 책임자를 중심삼고 내적 기준의 결정과 더불어 외적 기준을 여기에 확보시켜 놓지 않고는 탕감역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과거의 슬펐던 자리로 기필코 끌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4-195
과거와 현재를 망각하고 미래를 꿈꾼다면
그것은 책임진 사람이 과거의 슬펐던 사실을 탕감시켜 가지고 승리하지 않고는 기쁜 순간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은 과거 이상의 비참한 자리로 몰아내는 것입니다.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서 하늘을 그리워하면서 승리의 한 순간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왔던 선각자들의 입장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난날 역사과정에 책임진 사람들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러한 문제가 재등장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도 통일교회의 현실적인 기준만을 중심삼고는 통일교회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 들어온 사람은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슬픔을 현실적인 무대에서 재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기쁨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선조들이 수고한 결과와 숭고한 기상을 찬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그 시대에 바라보고 수고한 희생의 대가로 오늘날과 같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아 선조들이 해원성사하기를 바란다면, 영적 세계의 인연을 연결시켜서 현실적 무대에 일치화시키는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 오늘날 여러분들이 개척해 나가는 복귀의 길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억은 회상적인 추억이 아니라 현실적인 추억이어야 합니다. 현실적인 추억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회상은 다각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회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섭리적인 모든 문제들을 현실적 감정으로 재현시켜 가지고 이것을 자기스스로 자가의 입장과 결부시키는 사람은, 오늘날 역사적인 전통으로 남겨진 세계적인 복귀의 기반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승리한 터전을 현재의 자가가 체휼해서 결정지을 수 있는 한 날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산 자로서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을 40일 전도니 무엇이니 하면서 개척자의 길로 내몰아치는 것은 이러한 문제에 당면해 봄으로써 일치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복귀역사의 종적 기준과 횡적 기준이 외로운 자리에서 실패로 끝난 것이 하나님의 원한이 되었기 때문에, 승리의 한 날을 맞기 위해서는 옛날 외롭고 비참하였던 그 이상의 기준까지 몰아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시대가 지나면 국가적 시대가 올 것이요, 국가적 시대가 지나면 세계적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처럼 발전해 나가는 더 큰 무대가 우리 앞에 다가옴에 따라 하늘은 거기에 상대될 수 있는 시련과 비참의 내용을 반드시 제시해 놓고 현실적인 문제를 탕감시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아무도 없는 외로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심정적으로 받들고 모셔 드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배척하는 자리에 들어가서 배척하는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천적인 사명을 탕감시켜 주어야 합니다. 선조들의 고독하고 처량하고 슬펐던 상연의 자리를 거치지 않고는 복귀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들어온 지 10년이 넘게 되고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면 될수록 어떻게 되느냐?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데는 반드시 과거를 중심삼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텐데, 과거를 망각해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국민성인 것입니다.

한 나라에 있어서 국가 기준을 중심삼고 그 나라의 의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예법이나 전통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즉 생활적인 기반이 된 역사적인 내용을 어떻게 상속받느냐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남겨진 모든 전통을 상속받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승리의 모든 조건들을 세워야 합니다. 그 승리의 조건을 스스로 먼저 행하여야 사회에서 출세도 할 수 있고 그 사회의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어떠한 단체의 책임자면 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망각해 버리고 미래를 꿈꾼다면 그것은 망상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망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24-197
하늘이 통일교회를 세운 목적
오늘날 산중의 절에서 수도를 하고 혹은 교회에서 정성을 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도의 세계가 올 것이고, 도의목적이 이루어질 때가 올 것이라고 정성을 들이고 있지만, 그렇게 앉아서 정성만 들여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종적인 내적 기반은 세울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횡적 기반은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안팎으로 엇갈린 문제를 오늘날 우리 일신에서 수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거, 즉 통일교회에 들어오기 전의 과거는 통일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과거의 여러분과 통일교회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 과거는 어떠한 과거냐 하면 자기 역대의 선조들로부터 죄를 이어 나오던 원한의 모든 인연을 내포한 과거였습니다.승리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고 영광의 자리에서 찬양받을 수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참부모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선조들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복귀섭리역사를 중심삼고 보아도 그런데, 여러분 개인이 겪어 온 역사적인 모든 섭리는 어떻겠어요?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어떠냐? 통일교회에 인연되기 전까지는 슬픔의 한이 남겨진 역사과정에 설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쁜 자리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온 그 순간에서부터 은혜를 받아 좋아합니다.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 그것은 과거를 청산짓기 위해서요, 미래를 상속시키기 위해서요, 또 과거를 상속시키기 위한 입장에서 그것을 받아 가지고 주관하고 또 그것을 움직여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연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기쁨으로 끝나가지고 이것이 자기를 중심삼은 기쁨으로 열매 맺을 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그것입니다. 그 기쁨은 과거로부터 엮어온 한때의 기쁨이요, 현실적인 세계를 대표해 책임할 수 있는 기준에 세우기 위한 하나의 기쁨이요, 미래의 출발을 가져오기 위한 하나의 기쁨입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개별적으로 나타난 기쁨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분야가 첨부된 사연을 품고 있는 기쁨인 것입니다. 후퇴한 사람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기뻐했기에 전부 떨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기쁨을 찾아 나갈 현실로부터 내일을 흠모하다가 전부 다 떨어져 나갔으니 과거를 회생시키는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이것은 나 개인이 그러해야 되고, 오늘의 가정이 그러해야 되고, 통일교단이 그러해야 되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이 있으니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그러한 책임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대한민국 자체가 시련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시련을 겪게 되고, 대한민국의 교회가 시련을 겪게 되고, 대한민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시련을 겪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시련과정의 절박한 생사의 교차로권내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래로는 백성들로부터 위로는 위정자와 국가를 지도하는 최고 책임자까지 일심동체가 되어 과거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를 상속하려면 반드시 과거의 슬픔을 완전히 청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슬픔이 있었다는 것은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이 승리는 과거에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무대에 연결시켜야 하는 승리입니다.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여기에는 혁신적인 새로운 운동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미래의 새로운 소망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재현될 수 있는 지점은 과거의 부활이요, 현실의 출발이요, 미래의 기원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입각한 여러분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 민족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통일교회를 세우고 계획하시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4-199
여러분이 책임져야 할 것
오늘날 여러분들은 왜 우리가 3시대의 책임을 느끼고 과거를 회상해 가지고 승리의 결정을 다짐해야 되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이 지상생활에서 전부 다 승리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아직까지 목적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반드시 지상에 재림해서 승리하지 못한 한의 조건을 탕감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풀어 주어야 하느냐? 여러분들이 풀어주어야 합니다. 오늘 통일교회의 원리적 견해로 보면 그들은 가인적인 입장입니다. 이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영인들이 아벨적인 입장에 있는 통일교인에게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굴복하기 위해서는 상속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인보다 더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선조들이 지나왔던 그 기준보다 나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느냐? 첫째는 영계를 책임져야 되고, 둘째는 세계를 책임져야 하고, 셋째는 후손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복귀의 길이요, 통일교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얼마나 영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느냐? 여러분은 영계의 애혼들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도 없이 죽었습니다. 친척과 가정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고독한 혈혈단신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자리에 있어서 남편이 가면 아내가 반대했고, 아들이 가면 아버지가 반대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가면 아들이 반대했습니다. 혈통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가정의 형태라든가 상대적 인연을 가지고 이 뜻길을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이 이 한 시대를 기준삼고 그러한 애혼들의 한을 지상에서 대신 풀어 줘야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현실적인 시야에 보여진 어려운 무대에서 자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의 해원성사라는 관점에서 여러분의 행동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이 행동을 잘못하게 되면 천추에 한을 남기게 되고, 몇 배 가중된 탕감의 내용을 지상에 남겨 놓고 가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핍박과 시련과 고통의 길이 하늘의 복귀섭리 가운데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가인은 반드시 아벨을 통하여야 합니다. 가인은 형이요 아벨은 동생이지만, 가인은 동생인 아벨을 통해서 탕감하여야 됩니다.그러면 어디에서 탕감해야 되느냐? 현재에서 탕감해야 됩니다. 그 탕감은 미래 보다는 과거를 위해서 탕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3시대의 운명길 앞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자리를 심정적으로 체휼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복귀의 행로를 갈 수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걸어온 역사를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현재로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서 남아지기 때문에, 현재의 자기가 여기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통일교회의 심정적 인연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과거의 내용을 중심삼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나오게 되었느냐?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이스라엘 국가 때문에 그렇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낼 때까지 4천년 동안 무엇 때문에 싸워 나오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싸우신 것입니다. 국가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원한에 맺혀 있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를 어떻게 복귀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현실적인 무대에서 과거의 탕감의 내용을 짊어지고 출발한 것이 통일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24-201
추억과 회상이 필요한 이유
여러분 자신들이 예수시대까지 4천년 동안 종적으로 내려왔던 수많은 선조들의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이 나라, 이 민족을 통해서 통합시켜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통합하여 거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출발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10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그러한 출발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도를 닦고, 정성을 많이 들였다 하더라도 이러한 원칙에 맞추어서 가야 됩니다. 여기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력으로는 이 길을 갈래야 갈 수 없습니다. 간다 해도 중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협조해 주지 않고는 이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추억과 회상이라는 명사가 왜 필요하냐? 이것은 현시점에서 생활적인 감정을 중심삼고 과거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 자기자신이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결코 그러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탕감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차피 이런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다간 역사적인 중심인물들이 감옥에도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런 쇠사슬에 매이는 길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새로운 뜻을 중심삼고 생명을 걸고 가는 길입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그러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길을 가는데 대한민국 전체가 반대했고 수많은 교단이 반대했으며 잡도(雜道)까지 모두들 반대했습니다. 그들이 전부 반대한 것이 이제는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승리해서 그들을 굴복시키느냐? 총칼로써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복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계를 완전히 굴복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현실적 과정에서 개인과 관계를 맺고, 가정과 관계를 맺고, 종족과 민족의 기준에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횡적 기반이 닦아지게 될 때, 국가적인 승리의 기대는 자동적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의 나는 3시대를 거쳐야 됩니다. 그렇게 볼 때, 과거는 아담형이요, 현재는 예수형이요, 미래는 재림주형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역사도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고 재림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1차 아담, 2차아담, 3차 아담입니다. 그런데 1차에서 실패하고 2차에서 실패했으니 3차는 성공해야 합니다. 첫번째, 두번째에 안 되었으면 세번째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왜 그런 과거 현재 미래가 나오느냐? 어느때 어디에서부터 나오느냐? 야곱이나 혹은 모세같은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과거 현재 미래가 안 나옵니다. 그런 과거가 생겨나게 된 것은 부모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미래도 부모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행복의 터전을 그때 못 가졌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라는 내용을 중심삼고 과거 현재 미래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라는 말은 어디서부터 생겨났느냐? 그 말이 생겨난 것은 부모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현재라는 명사도 부모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현재와 미래는 참부모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24-203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내용과 여러분의 책임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제시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통일교회는 가정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부모를 중심한 새로운 가정입니다. 새로운 가정제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아들딸들은 과거를 청산짓고 나서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 각자의 혈통적 내용이 다르고 배후가 다를지라도 부모와 닮기 위해서는 접붙이는 역사를 해야 합니다. 뒤넘이쳐서 접붙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접붙이려면 여러분 자체에 남아진 탕감노정을 다 청산지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부모를 통해서 청산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에게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부모를 찾아나오시는 것입니다. 재림시대에 신랑 신부니, 어린양 잔치니 하는 것도 모두 부모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역사를 해 나오느냐? 지금까지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구원하는 역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전부 개인구원을 중심삼고 나왔기때문에 가정 구원은 말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역사과정에서 구원의 도리도 개인이 구원을 얻어야 된다고 했지, 부부가 구원을 얻어야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이 구원을 얻어야 된다는 말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부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통일교회는 이런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전통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탕감시키는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밖으로 나가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하는 데는 밖으로 나가서 탕감해 들어와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도기간입니다. 예수님도 집을 나가서 제자들을 중심삼고 3년 공생애노정을 걸으며 민족 복귀를 위한 역사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3년 동안은 집을 나가서 탕감해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나가서 천대를 받더라도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돈을 가지고 가서도 안 되고, 옷을 가지고 가서도 안 됩니다. 오직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그리하여 나의 과거가 산 과거가 되고 현재가 하나님과 일치되어서 미래에 통일교회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아들딸들을 세워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내용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한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탕감복귀과정에 있어서는 자기 마음대로 자유로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덥다고 해도 함부로 옷을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을 모시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영계에 있는 영인들이 전후 좌우 상하에서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부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에 왔다간 역대의 수많은 선조들이 제 2차의 책임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결국 자기의 조상이 누구냐 하면 아담이요, 또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재림형인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볼 때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셋이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재림형은 아담 해와가 실패한 것을 복귀해야 하고, 예수가 실패한 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이것을 복귀하지 않고는 재림역사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대에서도 여러분의 조상은 아담 해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고 참부모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 2차적인 조상, 즉 아벨적인 조상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재림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를 중심삼고 탕감해야 되느냐? 지금까지의 기독교역사가 세워 놓은 전통의 기준을 중심삼고 일치화시켜서 승리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재림주를 맞이할 수 있는 승리의 한 사람을 세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런 3시대에서 있습니다.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가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가 앞으로 기울어져도 안 되고 자빠져도 안 됩니다. 반드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중심삼고 일치된 자리에서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사연을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기에서 자기의 새로운 활동무대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24-205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보면 `나는 교회에 들어온지 10년됐다’ 하면서 자기의 연륜을 자랑하곤 하는데, 하늘의 섭리역사가 10년 만에 끝나는 것입니까?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각해지지 않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는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발전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적용 안 될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원칙과 법도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공고화시켜서 과거의 역사를 거쳐간 선배들이 남긴 전통을 상속받는 사람들은, 그때의 역사를 거쳐 남아진 사람 앞에 추대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솔직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이 어차피 복귀의 길을 가야 하기때문에, 어떠한 환경을 제쳐 놓고라도 이 길을 가야 하는 공식적인 내용에 있어서 여러분이 실체화될 수 있는 생활적인 감정을 현실 무대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여러분이 짊어졌기 때문에 그 책임을 수행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 전체의 지대한 문제가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걸어온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처해 있는 현장을 여러분의 현장으로, 선생님이 바라는 미래를 여러분의 미래로 대치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시기 바랍니다.

24-206
기 도
아버지, 오늘날 하늘의 운세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상황이 하나에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전후 좌우 상하의 관계가 오늘 나에게 있어서 엉클어져야 할 섭리의 인연인 것을 알고, 남아진 복귀의 길 앞에 어떠한 어려운 곳이냐 혹은 기쁜 자리에서도 스스로 걸어온 기점을 망각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 각처에서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이곳을 바라보며 흠모하는 무리들이 있사오니, 그들이 아버지와 생명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과거의 추억을 회상해 보게 될 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길에 저희들을 내몰아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던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과거를 짊어지고 현재와 미래를 뒤넘이쳐 나오는 입장에 서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늘진 과거를 청산짓고 현실에서 새로운 기쁨을 맞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 광명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시점을 알고, 아버지의 사정을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당신의 이름을 가지고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손길이 항상 같이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일본에서 왔던 당신의 세 아들딸이 오늘 돌아가겠사오니, 이들이 가는 길 위에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제 이들이 일본에 돌아가 남아진 싸움터에서 역사가 엮어온 모든 슬픔의 문제를 책임지고 현실과 미래에 이것을 남겨주기 위하여 온갖 싸움의 행로를 개척해야 할 입장에 섰사오니,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당신이 전체를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과 남아진 그 세계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아버지 앞에 나타내어 자기로 말미암아 더욱더 민족의 수치를 드러내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민족과 세계의 복귀섭리가 저희들로 말미암아 줄어들고, 나아가 저희가 아버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남겨진 복귀의 길을 다시 갈 것을 저희들이 다짐하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