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48 to 24-163: 복귀의 산정

복귀의 산정
1969.07.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148
복귀의 산정
[기 도]

오늘은 7월 27일, 이 달 들어서 네 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본향을 찾아가는 길이 곧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희가 아옵니다. 되돌아가야 할 운명길에 있어서 인간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 고개를 필시 거쳐가야 할 산정인 것을 저희가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지나간 역사과정에서 수고해 오신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나선 몸들이오니, 당신께서 자비와 권고로 친히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에 먼 발길에서도 이 본부를 향하여 마음을 모으고 당신의 뜻을 사모하고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있사오니, 그들에게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또 세계에 널리어서 이 자리를 그리워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많이 있사오니, 그들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계에는 아버지를 대신한 통일의 무리들이 많이 널려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역사적인 전통을 새로이 출발하는 아버지의 수고 앞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책임과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슬픔과 연민의 대상이 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불충한 몸들이옵니다. 하오나 아버님은 저희를 세우셨기에 저희는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사오니, 저희가 험한 길 가운데 있다면 당신이 그냥 버려두지 마시고 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시옵소서.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산정 앞에 패배자가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고,아버지 친히 저희들을 권고하시고 내세우시어, 자랑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길이길이 간직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은 하계 40일 전도기간을 맞이하여 일주일째 지나는 날이옵니다. 지방에 널려진 당신의 어린 자녀들, 모든 세파의 시달림 가운데서도 당신이 남기신 그 길을 더듬기에 여러가지 모양의 자리에 서 있는 아들딸도 있는 줄 아옵니다. 혹자는 어려운 자리에서 눈물짓고, 혹자는 굶주림에 허덕이고, 혹자는 거처가 없어 뜰에서 하루하루를 헤매는 아들딸도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사랑의 아버지시여, 그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위하여 충성하고 싶어 외로운 길을 가는 그들은 당신과 같은 사정에 처해 있사오니, 언제나 보호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이끌어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뜻을 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을 다가가, 아버지의 심정을 철저히 헤쳐 가지고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혹은 딸로서의 공의의 자체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최후의 그날을 위해서 오늘은 참고 내일을 극복해야 되겠사오며, 오늘의 싸움에서 쓰러져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원수의 총탄에 저희들이 쓰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정신을 가다듬어 최후의 전선을 돌파해 넘어 갈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나선 이 걸음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저희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선의 제물이 된 저희의 이 자리처럼 아버지도 이 한 갈림길과 운명길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외롭다 해도 그 이상 외로운 자리가 없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 자신이 가야 할 이 길을 앞에 놓고, 저희 자신이 해야 할 사정을 앞에 놓고, 저희 자신이 싸워야 할 전투를 앞에 두고, 저희들은 있는 정성을 다하여 승리의 터전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안식일, 아버지, 이날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만인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많은 아들딸들이 당신이 남기신 복귀의 터전을 높이고 찬양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여들 수 있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날 전체 위에도 당신의 사랑의 손길이 함께하기를 원하오며, 허락하신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24-150
말 씀
여기에 쓰여 있는 `복귀의 산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민족을 책임지고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빗길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운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책임진 분야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구해야 하는 것이니만큼, 거기에 해당하는 시련과 십자가의 고개가 반드시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개인이면 개인에게 그러한 시련기가 있는 것이요,가정이면 가정,혹은 교회면 교회,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가 어느 한때에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고개도 될 수 있고, 하나의 골짜기도 될 수 있는 하나의 관문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이러한 최후의 한 고개에 나를 노리는 원수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와 승패를 겨뤄가지고 원수 앞에 내가 망하느냐, 아니면 원수를 내가 물리치느냐 하는 판가리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24-150
몸과 마음의 싸움이 복귀의 첫 관문
그러면 `복귀의 산정’에서 이 복귀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느냐?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중심삼아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가는 길과 인간이 가는 길이 언제나 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섭리과정에 있어서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복귀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그 길이 최고의 산정이라 할 때,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길도 최고의 고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 때 그 고개를 다 넘었다고 생각될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을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 제시할 수 있는 한 날과 한 때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한 날을 갖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나의 깃발을 꽂고 거기에 승리라는 이름을 다짐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통일교회가 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과 시대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복귀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개인이면 개인이 가야 할 고개가 있고, 교회면 교회로서 가야 할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그 고개가 어디에 나타나느냐? 물론 이 교회 전체가 가야 할 세계노정 위에 나타나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내적인 싸움의 고개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이 산정을 넘을 수 있는 승리적 기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앞으로 다가올 시련과 고통이 겹겹이 달린 그 싸움의 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무난히 돌파해서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제일 근본된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체인 것입니다. 이렇듯 어떠한 개체적인 일들이나 혹은 역사적인 어떠한 큰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사건의 모든 출발의 기점은 개체입니다. 복귀섭리에서는 반드시 어느 한 사람이 지도적인 방향을 잡고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번에 아폴로 11호의 월세계 정복이라는 문제를 봐서도 알겠지만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수많은 공장이 가동되고 수십만명의 기술진이 동원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합심하여 결정해서 그 계획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되는 한 사람의 주장과 한 사람의 계획에 의해서 진행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최후의 기준은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서 여러가지의 논의도 있었을 것이고, 여러가지의 제안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제안된 모든 것을 소화시키고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넘어가야 할 고개가 있게 되는데 그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24-152
복귀의 산정을 넘는데 필요한 것
이렇게 볼 때에, 앞으로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우리는 복귀의 산정을 어떻게 넘어야 할 것이냐?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고개가 크면 클수록 우리 자신들에게는 그 만큼의 내적 준비와 내적 실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남산을 넘는다면, 남산이 아무리 높더라도 저 산을 넘겠다 하는 신념이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질 뿐만아니라 과거에 내가 산을 넘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 산은 문제없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출발하지 않으면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넘어갈 때는 개척의 기준을 가지고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길이 처음 가는 길일수록 거기에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심정과 여러가지의 안팎의 기준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해 가지고 그곳에 첫발을 디디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을 것입니다. 지구가 생긴 이래 수십억년 만에 이 역사적인 신비를 개방하는 순간, 그것을 책임진 사람의 그 한 발자국이 그의 생명과 좌우될 수 있는 걸음이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보았습니다. 혹은 라디오나 신문 등 여러 보도매체를 통해서 여러분들은 듣고 보았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맨 처음 개척하는 입장에서 그런 산정을 넘을 때에, 지금까지의 상식적인 기준을 가지고 나선다는 것은 무모한 짓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에 잘못되는 날에는 자기의 최후의 운명을 고하는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비참한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숱한 시련과 숱한 역경을 거치고, 혹은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쌓은 실적과 또한 안팎으로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재료를 갖추어서 넘어야 할 산정이라 할지라도 그 산정을 극복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갈지 말지 하는 그런 입장에 서 가지고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틀림없이 싫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런 길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6천년의 긴 세월을 수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길을 가기 위해 동원되었지만 전부 다 그 고개를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언제나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육적 세계에서만 어른거리다가 결국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복귀의 산정, 극복해 넘어가야 할 고개가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단체면 단체,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의 복귀노정에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크기에 비해 가지고 귀결되는 산정이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됩니다.

24-153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되어 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산정을 넘는 데 있어서는 그 누가 후원하고 그 누구 거기에 협력해 주어서 갈 수 있는 길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지도자가 있어 그가 지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좋을는지 모르지만, 따라가더라도 그 길이, 그 고개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가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입장에 서더라도 최후의 고개를 넘어야 되는 것이니만큼 지도자가 지시하는 사항 혹은 그 방향에 행동의 일치점을 갖추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복귀의 산정을 우리가 넘어야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민족을 앞에 놓고 세계의 복귀라는 고개를 넘는 그 순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외로이 피땀을 흘리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세 차례나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이 `아버지의 뜻과 내 뜻’이라는 것이 언제나 승패를 결정지었던 역사적인 분기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복귀의 산정을 넘어가는 데에는 내 뜻과 아버지의 뜻, 내가 가는 길과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 아버지의 관점과 내가 바라보는 관점, 아버지의 걸음걸이와 내가 걸어가는 행보의 모양이 언제나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사가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고개를 넘었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개를 넘어가는 데에는 혼자 넘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과 더불어 넘어 가야합니다.

왜 그러냐? 우리가 에덴 동산을 복귀하여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나가지만 그 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인간만으로는 안 됩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천국은 인간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합류해야만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원칙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 고개를 넘더라도 혼자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고개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언제나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일치점을 가져야 합니다. 점점 그 산정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생사의 교차로에서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일치점을 마련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치점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냥 자동적으로 마련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거기에 보조를 맞추고 거기에 일치단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거기에 내 실체를 어떻게 주입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서 노력해야 됩니다. 이런 기점을 어차피 어느 한때에는 마련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자체에서도 어느 한때에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 복귀라는 이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우리는 지금까지 투쟁해 나왔지만, 오늘날 그것이 종반전에 들어섰느냐 하면 아직까지 못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도 어떠한 산정을 향하여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때에 반드시 그 최후의 기점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 시간을 우리 앞에 초조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대하는 우리 자신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 이상 절박하고 그 이상 초조한 입장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신념이 확고해야만 합니다. 그 확고한 신념을 중심삼아서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할 수 있고 거기에 심정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그 고개를 내가 능히 극복해 넘어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고개를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고개를 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24-155
사탄은 언제나 산정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원수인 사탄은 골짜기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산정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산정에서 사탄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중요한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실 때에는 산정을 중심삼았던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이라든가 감람산 등 종국에 있어선 언제나 산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산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사탄과 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복귀의 운명길이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길을 가야 할 우리 자신들이 여기에 대비할 수 있고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은 통일교회를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떠한 입장에 서 있는가? 평면적으로 평행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평면 기준에서 내려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평지에 솟은 험한 태산 준령의 산정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그 결론을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것이 왜 다르냐?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각자 각자가 과거의 선조로부터 거쳐온 그 선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선의 결과적인 존재이니만큼 그 결과의 모양은 천태만상인 것입니다. 갑이나 을이나 병,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양은 모두가 같지만,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으로서 말과 생활공간은 같다 하더라도, 그 배후에 지닌 바의 복귀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또는 그 선조들이 쌓은 선의 실적을 놓고 보게 된다면 그 내용이 천태만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어떤 사람은 현재에 있어서 골짜기를 거쳐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산길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7부능선 8부능선 9부능선을 지나 정상을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떤 사람은 제일 먼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뒤의 사람을 따라가고 있는 경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어떠한 산정이 있으면 그 산정을 향하여 골짜기를 거치고 지나가는 그 과정에 있어서 천태만상의 모습과 모양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은 누구를 따라가야 되느냐?

넘어가야 할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기의 생사를 결정하는, 최후의 운명을 결정하는 판가리 싸움의 순간이 있을 것이니, 여러분들은 그 고개를 넘는 데 있어서 스스로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아 있을 그 산정을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24-156
최고의 산정을 넘으려면
그러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넘고자 했지만 넘지 못했던 그 고개를 내가 정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만일 거기에 원수가 있다면 일격을 감함으로써 완전한 승리의 기반을 갖추어 가지고 최고의 승리를 하나님 앞에 돌리고 넘어가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산을 돌파하는 그 심정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가야 할 그 고개는 산 중턱이 아닙니다. 최고의 산정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그 산정을 오로지 목하고 모두가 후퇴했습니다. 이렇듯 그 최후의 산정에는 우리 전부를 매몰해 버리려 하는 사탄인 원수, 괴수가 잠복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대두되는 문제는, 여러분들이 여기에 대비해서 나갈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방향과 자기 스스로의 내적 준비와 자기 스스로의 방어 태세를 어떻게 갖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평상시에 신앙생활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기필코 전체가 통합되어 가지고 하나의 비상시기를 거쳐야 됩니다. 통일교회면 자체에 반드시 그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데에는 여러분 개체가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 혹은 가정이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 종족이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 민족, 국가, 세계가 거쳐가야 할 시련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자기의 생사문제와 거취문제를 염려하는 자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이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그 자리를 무난히 돌파해서 넘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를 최후에 남은 싸움을 위해 재료를 수습하는 자리요, 훈련하는 자리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여러분이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다가올 최후의 산정의 싸움터를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하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신 것을 좋은 기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기도드린 것에 대해서 그분을 존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이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그보다도 더 심각한 입장에 계실 하나님의 사연을 듣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입장에 처할 때 `아버지시여, 당신의 사연을 저에게 통보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당한 저의 시련보다도 더 큰 시련을 당하신 아버지 앞에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오니, 제가 거쳐야 할 시련도 시련이지만 당신이 거쳐야 할 시련이 있다 할진대 그것을 제 시련에 첨부시켜 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명령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하는 마음의 기도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딱한 입장을 제시해서 조건을 세우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의 어려운 조건을 제시해 놓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하여 당신이 가야 할 길과 세계를 위하여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저희들이 대신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복귀노정을 회고해 볼 때, 아담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6천년의 와중에 있었던 그 모든 역사는 실패한 역사였습니다. 성경상에 나타난 그 모든 역사가 우리의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최고의 승리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실패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꼬리를 좇고 머리를 들면서 이 길을 따라갔고, 몰리니까 할 수 없이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길을 갔던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 걸었던 복귀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복귀의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복귀의 산정을 넘어서는데 있어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지난날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눈물을 가지고 넘어설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래에 어떠한 산정에서 최후의 결판을 짓기 위해 사탄과 겨루어 기필코 승리하여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원수를 갚겠노라고 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원한을 다 풀어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영광의 한 날을 기필코 찾아드리겠다는 여러분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여러분이 생활하고 있는 그 터전에 있어서 무엇을 가지고 복귀의 산정을 넘어갈 수 있겠느냐? 언제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24-158
승패의 기점은 순간에 결정된다
이제는 앞으로 여름이면 여름, 겨울이면 겨울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한 40일 전도기간이 역사적인 활동기간이 될 것입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그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고개를 넘어가야 되겠고 그 누구도 갈수 없는 길도 가야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의 산정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길은 기필코 가야 될 길입니다. 살아생전에 가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은 말로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하늘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주위의 모든 환경이 아무리 즐비하게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다짐하고 넘어가야 할 고개에 있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지 않고는, 혹은 그 산정보다 낮은 기준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패배자의 행로를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진 사람들은 언제나 심각합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식구의 일원으로서 따라가기에 쉬울는지 모르지만, 책임진 사람들은 전체를 걸어 놓고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 책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승패의 결과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복귀역사를 해 나가십니다. 더욱이 요 며칠 전에 여러분은 보았을 것입니다. 달세계를 정복하는 순간, 전세계를 사람들이 아폴로 우주선에 탄 우주인들이 움직이는 그 하나의 표적을 향하여 한마음 한뜻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때는 역사상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상에 그런 예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시대를 개방시켜 준 그 시간은 불과 2시간 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세계인이 함께 그 자리에 참석했던 그 순간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240억 불이라는 방대한 돈, 우리 돈으로 따지면 6조원 이상이 막대한 돈, 일본 정부가 자국의 3년 예산을 투입해야만 되는 자금, 그 돈 전부는 그 2시간을 위해서 투자된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승패의 기점은 똑딱하는 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 역사상 달세계를 탐험하는 데 있어서 가일층 박차를 가하여 실천을 가해 온다 해도 수백년간 개척해 온 역사를 수십년간에 탄식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한 순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순간을 중심으로 해서 모두가 단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20세기 근대문명의 총아는 꼭대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패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가 언제 진짜통일교회 노릇을 해봤느냐 하면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여러분 자신이 통일된 어떤 일을 한번 했던 때가 있었어요? 통일교회는 개인적인 통일교회, 가정적인 통일교회, 혹은 국가적, 세계적 더 나아가서는 우주적인 통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가 언제일 것이냐?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싸움에 가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를 걸어 놓은 싸움에서는 절대로 남에게 뒤지지 않고 선두에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선봉에 서 가지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입장에서 싸워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천만을 능가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수십억 사람들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비례할 수 있는 자기 스스로의 준비와 자기 스스로의 연단, 자기 스스로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어떠한 국가적인 경기가 거행될 때 운동 경기장에 가 보게 되면,서로서로 대항하여 싸우고들 있습니다. 거기에는 두 패로 갈리어 승부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두 나라의 국민들의 큰 소리가 어디에 집약되느냐 하면 농구 경기만 그 공 하나에 집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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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자가 되지 말고 동참자가 되라
그러면 최후의 전체의 승리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는 심각한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구경삼아 관전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날에 있어서 제일 심각한 사람은 그 경기에 뛰는 사람들이겠지만, 구경하는 사람들도 운동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의 심정을 갖고 선수 중 한 사람이 경기 중에 넘어지면 전체가 넘어진 것처럼 아파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야말로 일심동체가 되면, 그런 입장에서 싸워 승리한 그 승리는 전체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전 청중의 몸과 마음이 일체화 된다면 비록 최후의 승리의 자리를 향하여 그들과 함께 직접 뛰지는 않았지만, 응원하는 데 있어서 한마음이 된다면, 여기에서 직접 뛴 사람들 이상의 보람과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자가 있을 것이고, 심판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뛰는 무리도 있을 것이고, 혹은 구경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구경하고 있다면 우리는 경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심판부의 규칙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규범을 중심삼아 가지고 정당하게 자기의 연단된 실력으로 승리의 일로로 달려간다면 갈 때까지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전반전에는 승리를 했지만, 후반전에 지게 되면 그것은 말짱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전반전에 80퍼센트나 90퍼센트 정도를 승리해 나오다가 후반전 맨 나중 이후에 들어가서 지게 되면 기가 막힐 노릇일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심판부의 규범에 해당하는 모든 규범을 스스로 체득하여 그 규범을 어기는 어떠한 조건도 남기지 말고 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싸움의 노정이 우리가 가야 할 복귀의 길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운동 경기를 한 예로 들었지만 이것은 너무나 한계적입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전체의 분야에서 수습해 가야 합니다. 가는 데 있어서는 그 산정이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고개가 있을 것이고, 아시아면 아시아의 고개가 있을 것이고, 세계면 세계의 고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국가가 넘어가야 할 고개를 돌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시아를 거쳐야 할 일선을 어떻게 넘어갈 것이냐? 무엇을 중심해야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길을 닦으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직행으로 가는 데는 많은 모험이 따릅니다.

여러분! 250미터 정도 되는 남산이라든가, 조그마한 산을 오르더라도 직행해 올라가는 데에는 사실 고충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넘지 못한 복귀의 길을 넘는 데는 에베레스트산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산을 넘어가는 데에 있어서는 밧줄을 걸고 45도 혹은 90도를 넘어가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혹은 100도가 넘는 고개도 있을 것이고,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복귀의 고개를 넘어가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복귀의 산정을 넘어가야만 우리는 개척자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살아서 그 산정을 넘어가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넘어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죽으면 그만인데 편하게 살지, 그거 어떻게 살겠나?’ 하고 생각하지만 죽는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길은 자기의 짧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영원을 걸어 놓고 가야 할 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최후의 승리의 기점을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두고 볼 때, 못났다고 해서 못난 자리에 두고 싶어하시지 않습니다. 자식은 못났지만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더 높은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어서는 친구라든가 혹은 스승이 제자를 보게 될 때, 못났으면 못난 것으로써 걸맞는 자리에 세우고 싶어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다 높은 입장에, 귀한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십니다. 못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대해 염려를 적게 해 주신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못난 사람에 대해서 더 큰 염려를 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력도 없고, 또 안팎으로 봤을 때도 뜻 앞에 보탬이 못 된다고 자신을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하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부족한 자리를 거쳐 가지고 복귀의 산정을 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여러분들을 데려다 놓고 95퍼센트의 책임을 지시기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겠습니까?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내일에 남겨진 복귀의 사명이 더 첨부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보다 쉬지 말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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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고개를 넘어야 할 때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가 최후에 넘어가야 할 복귀의 산정을 국가면 국가 앞에 제시해야 할 한 때가 있을 것입니다. 혹은 아시아면 아시아에 있어서 복귀의 조건을 제시할 때가 있을 것이고, 세계면 세계 앞에 복귀의 조건을 제시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제시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라 해서 가정 자체에만 하나의 목적을 두어선 안됩니다. 가정은 전부 국가의 목적이 기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에 속해 있는 개인이 자기만을 위해 사회에서 출세하겠다고 해선 안 됩니다.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출세하겠다고 하며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평면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런 사회의 모든 단계를 밟고 올라서서 하나님을 모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가 제일 문제시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가정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천국의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전체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넘어가야 할 통합적인 고개가 틀림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야 할 이 길 앞에 있어서 언제라도 따라가는 입장에 서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자극이 되고 힘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심판대 앞에서도 여러분이 머리 숙이지 않는 입장에 서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에 내 실력을 보일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바라던 기준을 어느 한때에 종결짓기 위해서 몇 해 전부터 준비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준비가 끝나지 않았기에 쉴 사이 없이 바쁜 것입니다. 낮이 지나고 밤이 지나거나, 세월이 가나 언제나 그 일념은 하나님 앞에 일치된 마음으로서 그것을 개척해 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왔으니, 여러분 각자 각자도 선생님과 같은 길을 따라가야겠습니다. 그러기에 그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에,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여러가지의 훈련기관과 교육기관을 많이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단계적인 복귀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몇개월이면 몇개월, 7년이면 7년 단계를 거쳐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입장이 되지 못하고 막연하게 갑이나 을을 아무렇게나 활동시켜 뒤범벅해 놓았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직적인 단계를 거쳐서 가야 하는 것이 여러분이 운명길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면 국가의 최후의 고개를 넘어서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예수님의 해원성사를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전체가 가지고 있는 한의 고개입니다. 여러분은 그 한의 고개를 돌파하는 데에 있어서 예수님이 가지셨던 신념을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책임을 맡아가지고 사탄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고는, 복귀의 산정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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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지, 지방에서 싸우던 당신의 자녀들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을 찾아왔사옵니다. 아버지, 이들이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하는가를 알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이 자리를 찾아 나왔사옵니까? 저희 한 개체의 싸움에서 승리의 기반을 통해 하나의 생명으로 발돋움했지만, 먼저는 천국건설이라는 엄숙한 과제를 택해 놓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를 냉철하게 반성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사옵니다. 주위의 환경이문제가 아니라 책임진 자의 자세가 문제인 것을 아옵니다. 하옵기에 예수님도 3년노정을 거치고 최후의 운명의 순간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3차기도와 더불어 아버님과 일치된 사정 가운데 맞이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는 이 서울 도성을 아버지 앞에 복귀시켜 드려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사옵니다. 이와 같은 심각한 때에 아버님의 심정을 천만분의 일만큼도 생각하지 못하는 저희를 바라보시고 이끌어야 할 당신이 얼마나 불쌍하신가를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신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이러한 자신의 개체의식을 분석하여 전체와 관계된 자신의 입장에 어떻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부족한 자신임을 깨달아야 되겠사오며, 주위 형제들이 자신보다 낫기를 바라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숨은 실적을 쌓기를 바라는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전체의 뜻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제 서울을 복귀시켜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그 동안하나의 뜻을 중심해서 서울을 복귀하려 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여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었던 기간이 있었사온데, 저희들에게는 그 담벽이 너무나 높았사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모진 시련의 폭풍에 시달리는 처량한 자리에서 하루살이의 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소모에만 급급해 왔었사옵니다.

하오나 저희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공세의 때는 왔사옵니다. 아버님이 수고해 오신 행로로 말미암아 이제는 공세를 취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하오니 그 최후의 싸움을 수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찬양할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을 갖지 못하는 무리가 되어선 안 되겠사옵니다. 싸움의 마당에서도 그렇고 또한 승리하고 나서는 백배 혈기 왕성해 가지고 아버지께서 보시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하실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중심삼아서 최후의 승리를 향해 주력하는 그 모든 활동 체계가 당신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고, 당신의 행보와 일치될 수 있어, 최후의 싸움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서울을 위주하여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자녀들, 혹은 세계에 널려있는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가야 할 최후의 운명길을 스스로 재촉하면서 가는 불쌍한 저희들의 모습에, 아버지, 당신은 언제나 긍휼과 동정의 마음을 아낌없이 퍼부어 주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가 외로울 때에 같이 외로워하시는 아버지가 계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가 어려울 때에 저희의 어려움에 같이 마음졸이며 염려하시는 아버님이 계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자신의 비참함이 저희 자신의 비참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비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절감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저희들은 이 3시대를 해원성사해야 할 엄숙한 과제를 책임진 것을 망각할 때가 많사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선지선열들이 영계에서 저희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이 시대의 인간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고, 또한 앞으로의 저희의 후손들이 저희들을 고대하고 있사오니, 이러한 3시대의 운명길을 찾아가야 할 엄숙한 책임을 짊어진 역사적인 저희들은 경기장에선 마라톤 선수와 같은 자신들인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기에서 부딪히는 모든 시련과 고통을 저희들은 극복해야 되겠사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라도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최후의 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 고개의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가는 걸음걸이에 시련과 고통이 가중될지라도 그 가중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넘어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래야만 그 승리가 세계적으로 빛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옵길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앞으로 산정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끌고 넘어가야 할 책임진 자들이 얼마나 하나되고, 얼마나 단결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이 보실 때, 명령하시기에 주저하시지 않고 이끌기에 염려되지 않는 무리가 되어, 높고 높은 산정을 서슴지 않고 넘을 수 있고, 원수의 최후의 십자가를 물리치고 최후의 산정을 돌파할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그날을 위해 저희들은 염려하면서 쉬임없이 스스로의 장비를 갖추어서 하루하루에, 한번 맞이한 한 날에 온갖 정력을 다바쳐 천번이라도 싸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이 날 위에도 아버지께서 함께하여 주옵길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잠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