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6 to 24-145: 우리의 책임

우리의 책임
1969.07.20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126
우리의 책임
[기 도]

오늘은 1969년 7월 20일이옵니다. 이 아침에도 전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무릎을 끓고 이 나라와 세계와 천주를 위해서 축수하고 있을 줄 아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남아진 복귀노정을 다리를 놓아서라도 넘고 넘어 가야 할 사명이 저희 앞에 남다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해마다 하계와 동계에 40일간씩 연 2회에 걸쳐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또 이 세계를 위하여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사옵니다. 오늘부터 `하계 40일전도’를 출발하오니 여기에 동참한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이 땅위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복귀의 노정을 기필코 가야 되겠습니다. 그 누구에 의해서 자기가 맡은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오니 자기의 일은 자기가 홀로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엄숙한 노정 위에 각자가 책임을 다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에게는 땅 위에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주신 사명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받은 그 사명을 저희 당대에 완수하여 온 천주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갈 줄 아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도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해 마음 모아 기도하며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그 자녀들 위에 사랑의 은사를 내려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의 한 주일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 한 달을 친히 아버지께서 받아 주시옵소서. 이 시간이 새로운 우주시대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한 기점이 될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부터 되어지는 모든 것이 섭리의 노정에 기필코 플러스가 되고, 영광의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기쁘신 심정 앞에 저희들이 인연되어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옵소서.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4-127
말 씀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자기 생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태어난 목적은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이루어야 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24-127
본연의 인연을 다시 맺어 주기 위해 오시는 참부모
하나님께서 인류를 지으실 때는 책임을 중심삼고 인류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책임과 인간의 책임은 서로 상반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책임수행은 인간을 통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은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때에 인간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나 인간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반드시 책임 수행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목표를 정하여 놓고 일년간의 계획을 세워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하루 하루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일년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복귀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 복귀라는 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나오게 된 명사입니다. 타락이란 떨어진 것을 뜻합니다. 목적과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 목적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자리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타락이란 명사의 의미로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원래의 목적과 인연을 맺었다고는 더 이상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창조목적과 인연을 가져야만 복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그러면 그 목적을 누가 결정하느냐? 타락된 인간으로서는 그 목적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도 홀로는 그 인연을 완전히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해당하는 95퍼센트 책임만큼의 인연은 맺을 수 있지만 100퍼센트를 기준하고는 하나님 자신도 완전히 인연을 맺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인연을 누가 맺을 수 있느냐? 그 인연은 인류의 조상이 타락해서 끊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부모만이 다시 맺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으로 그러한 인연을 맺을 수 없는 우리인간을 하나님의 목적, 즉 창조의 목적과 결부시키기 위하여 인류의 부모가 다시 와 가지고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한 역사가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가정에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세례 요한, 예수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역대 선조가 해 나온 일이요, 이 시대에 있어서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우리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4-128
하나님과 참부모와 내가 일치되어야
하나님과 참부모와 나는 복귀를 완결시키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부모가 되어야 할 인간조상이 타락했으므로 타락의 동기를 넘기 위해서는 삼자가 일치점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참부모의 뜻과 우리들의 뜻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귀라는 것을 중심삼고 생각할 때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일치되는 자리에 도달해야 인류의 목적도 성취되는 것이며, 인류의 부모로 오시는 주님도 만민을 복귀시켰다는 기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와 자녀가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뜻인 본연의 동산을 이루어 그곳에서 부모와 자식이 영원히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가정의 인연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완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복귀섭리 역사 가운데서 수많은 의인들이 피를 흘리며 희생되는 수난의 길을 거쳐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그런 길을 걸었느냐 하면 복구의 인연을 연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부모가 가야 할 길을 한 방향으로 닦아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의 책임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러분이 뜻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 또 뜻 앞에 서느냐 못 서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은 여러분 자신만으로는 절대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부모님과 연결되지 않고는, 즉 삼자가 일치된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복귀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리적 견해로 볼 때 불가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책임 완수의 기준은 우리 개체에 제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은 개체를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민족,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주라는이 엄청난 분야까지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명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류의 부모로 오시는 주님은 어떤 입장에 서야 하느냐? 그분도 자기의 생활을 중심삼은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을 넘고 세계를 넘어 천주사적인 인연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부모 되시는 그분 역시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부모이신 하나님과 심정의 일치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치점이란 어떠한 점이냐? 그것은 타락한 자리를 넘어서는 점입니다. 타락을 넘어서는 자리는 우리 개체만을 넘은 자리가 아니요, 가정이라는 혹은 국가라는 한계권내에 머무는 자리도 아닙니다. 세계를 넘고 천주를 넘은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참부모와 인간이 심정적인 일치점을 갖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참부모의 자녀가 되어야 할 여러분이 머물러야 할 자리 역시 그러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곳과 참부모가 바라는 곳과 여러분이 바라라는 곳이 같다는 것입니다.

24-130
복귀의 원칙을 두고 본 책임 완수
그러면 우리의 모든 정성과 정열을 어디에다 기울여야 되느냐? 책임을 완수하는 데 기울여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을 보면 자기 개인의 책임을 완수하는 데 한정되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복귀원칙을 두고 볼 때 이런 사람은 책임 완수를 통한 어떠한 목적을 완결지을 수 없습니다. 자기 개체를 중심삼은 책임을 완수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극히 작은 한 점(點)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 그 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線)을 이루어야 되고 그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면(面)을 이루어야 됩니다. 이것은 반드시 개인이 넘어야 할 고개인 것입니다.

남자면 여자와, 여자면 남자와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선한 가정이 되어 선한 종족을 이루고, 선한 종족은 선한 민족을, 선한 민족은 선한 국가를, 선한 국가는 선한 세계를 이루어 그 선한 세계가 천주를 이루면 그 천주는 선한 천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넘어야 할 고개가 첩첩이 쌓여 있는 복귀의 행로를 가야할 운명에 놓인 인생길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반드시 그 가는 길에서 삼자가 일치되는 기준을 연결시켜야지 그러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입니다.또 그 길을 갈 수 없는 환경에서는 승리의 기점도 마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 완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내적인 기준인 삼자의 일치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나는 영원히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상반되는 것은 어떠한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어떠한 주장을 내세워 가지고 `나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 하늘은 뿌리요, 참부모는 가지요, 우리 인간들은 잎사귀와 같기 때문에 해당되는 인간들이 가지를 끌고 갈 수 없는 것이요, 가지에 해당되는 참부모가 뿌리를 끌고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뿌리이신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지이신 참부모를 잎사귀인 여러분이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날 개체 개체를 두고 볼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개체가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전체를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개체는 반드시 원칙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심정을 가져야만 전체를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능력과 활동력이 있어야만 복귀의 행로에 있어서 그릇되지 않는 자리에 섰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과 참부모와 나, 이삼자가 하나될 수 있다는것입니다.

24-131
통일교회의 신앙관
그러면 지금까지의 복귀역사는 어떠했느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막연했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이고 원칙적인 길을 거쳐야 했으나 그 길에 필요한 다리를 놓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비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어라 무조건 믿어라!’ 한 것입니다. 모든 사리를 초월하고 의식을 초월하고 인식과정을 초월하여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일방적이고 막연한 견지에서 하나님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러한 신앙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우리는 우주사적인 중심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중심은 오시는 주님, 즉 참부모를 중심삼고 내가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신앙관은 지금까지의 신앙관과는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과 성경을 중심삼고, 즉 구주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막연하게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갖추어 가지고 자녀의 입장에서 믿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도 그렇고, 살면서도 그렇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를 떠나 가지고는 생활할 수 없고 활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사적인 중심인 그 부모는 부모 자신만의 인연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적인 인연을 갖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 부모가 일치된 자리에 연결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할 수 없고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님과 내가 언제든지 일치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탈된다면 번번이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탈되었을 때에는 뜻을 위한다고 했더라도 그 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역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역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잘한다고 한 것이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삼자의 일치점을 찾아야 합니다. 책임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 기점이라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과 내적으로 일치될 수 있는 기반은 심정입니다. 심정이 있어야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거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삼자가 일치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오늘날의 인간 생활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은 어디에서 형성되느냐? 가정에서 형성됩니다. 부자의 관계를 중심삼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참부모님과 나, 이삼자가 일치되지 않고는 복귀의 완성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도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생님이 어떠한 목적을 제시했을 때 거기에는 여러분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건 선생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을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가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 부모는 자녀들에 대해서 이러해야 된다는 기준이 서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앞에 내세우고 자기만의 이익과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부모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희생해야 됩니다. 여기에 불의한 것이 있을 때는 투쟁해야 합니다. 또 일대에 용서 받지 못할 일이 있을 때에는 수십 대를 거쳐서라도 그 일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어야 됩니다.

사람은 흔히 잘못했을 경우 그 즉석에서 용서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나가는 도상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께 와서 잘못한 것을 보고만하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일이 해결되는 데는 반드시 기간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기간 동안 탕감노정을 거쳐야 용서받을 수 있지 보고를 했다고 해서 그 당장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도가 아무리 잘 통했다 하더라도 얼마 동안의 탕감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4-133
책임 완수와 심정 일치
여러분에게는 삼자의 심정이 일치되는 가운데 하루면 하루의 생활을 어떻데 해 나가느냐, 또 한 달이면 한 달의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일년이면 일년을 어떻게 그런 기준으로 수습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이 확고하고 공고하게 일치되지 않으면 아무리 책임을 완수했다고 하더라도 복귀섭리노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내적으로 삼자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가는 길이 어떠해야 되냐. 자식들은 모든 존재의 가치를 부모를 통해 찾습니다.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는 누구를 닮느냐? 부모를 닮습니다. 그 자녀들이 누구를 따라가느냐? 부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책임을 추구하게 될 때, 그 책임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삼자의 일치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마련하지 않고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을 모셨다면 그때부터 그 관계는 맺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나님이 지향하는 목적 앞에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의 목적도 일치되었을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된 목적을 가진 아담 해와의 자녀들 역시 같은 목적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모든 가정과 종족과 나라 전체의 소망이 되었을 것이며 전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전부 다 달라졌습니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전부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다른 자리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추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목적이 하나의 기점에 연결되지 않고 전부 다 사방으로 분산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속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인간 조상 아담 해와가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분산된 것이기 때문에 부모를 중심삼고 결속시켜야 됩니다. 거기에는 민족적인 차이도 있을 것이요, 문화의 배경이라든가 지식의 배경, 혹은 소성(素性)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이 서로 상반되어 천태만상의 형태를 갖추고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속시켜야 됩니다. 출발점은 하나입니다. 뿌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봄 동산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은 잎으로 남아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줄기에 의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줄기와 잎이 존재 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지며 거기에서 비로소 꽃이 피는 것이요,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꽃을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잎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잎 자체가 꽃이 되고 그 잎 자체가 열매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24-134
뜻은 전체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
오늘날 사람들을 보면 갑이라는 사람이나 을이라는 사람 할 것 없이 삼천만 전부가 생각하는 것이 각기 다릅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고 저기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파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수난의 길을 걸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오늘날 이만큼 발전하는 동안에도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겉으로는 통일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 선생님을 이용하고 통일교회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 개인의 욕망을 중심삼고 움직이다 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망해 버렸습니다.

책임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의 책임은 결속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통일이라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되지 않고는 아무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조상의 핏줄과 심정을 이어받아야 했으나 그 인간 조상이 타락의 모체가 되었기에 전통적인 역사를 이어받아야 했으나 그 인간 조상이 타락의 모체가 되었기에 전통적인 역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기준이 저끄러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한의 씨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자기의 관념과 의식 전체를 초월하여 가지고 하나의 기준 앞에 수습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각자가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이켜 보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평을 하고 어떤 사람은 본부에 대해서 별의별 말을 다 하는데,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뜻은 어떤 개체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무를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이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보면 잎이 있기 전에 가지가 있었고, 가지가 있기 전에 줄기가 있었으며, 줄기가 있기 전에 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도 필요없고, 줄기도 필요없고, 가지도 필요없는 잎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 자체도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나무로 완성을 하려면 각각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일생을 거쳐 나오면서 어떠한 영광을 얻게 되면 그것을 선생님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4-136
하나님과 참부모와 심정적으로 하나되지 않으면
동기가 하늘이니 결과를 하늘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하루 생활에서 책임 완수라는 목적을 중심삼고 볼때에 반드시 결과를 동기에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동기와 결과를 일치하게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회 환경을 보면 이것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180도 다르니만큼 탕감을 위한 조건을세워 가지고 어떠한 기간 동안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도의 길에서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영적인 섭리 가운데서 자기 나름대로 무엇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영적으로 그런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인 것이기 때문에 근본이 되는 원인을 추구해야 됩니다. 그 원인을 추구하는 데는 자기를 중심삼고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그 계시는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고 인류의 참부모와 심정이 일치된 것이 모체가 되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원인은 알지도 못하고 결과만을 붙드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뭇가지와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결국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완수를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삼자 일치점을 찾아야 됩니다. 삼자가 완전히 일치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했다 하더라도 완수한 그 책임의 결과는 하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혹은 골고다 산정에서 죽음길을 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의 남자로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셨으니,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절대적인 심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심정으로 복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엄숙한 과제를 놓고 소망하면서 가기에 마음을 일치시켜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리적인 복귀노정에서 예수님이 희생되었기 대문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거칠 수 있는 섭리의 손길을 펴실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동기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고는 책임을 수행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부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있는 것이요, 부모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자녀의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떨어졌기 때문에 밑에서부터 소생·장성·완성의 단계를 거쳐 올라가야 됩니다. 여러분을 소생기로 본다면 부모는 장성기이며 하나님은 완성기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완성했다는 기준에 도달하려면 무엇을 통해야 되느냐? 심정, 즉 사랑을 통해야 됩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그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만들려면 부모와 아들과 손자가 심정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집안에 아무리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부모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혹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터전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복귀섭리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단편적인 개체의 생활관, 혹은 그런 환경을 벗어나 사방성을 가져야 합니다.

태양이 지구를 비치는 방향이 달라짐에 따라 지구에 춘하추동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소질에 따라서 방향을 갖추어야 됩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여러분들이 뜻 앞에 어긋난 것은 무엇인가? 가인과 아벨이 부모 앞에서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가정이 화를 입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도 삼자가 일치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이 하늘 앞에 규탄받을 내용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중심이 내세운 그 기준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세워진 자들이 하나되지 못해 책임을 못하면 내세운 중심이 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선생님이 협회장을 세웠으면 그가 사람이 되었건 안 되었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그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작전하는 데 있어서 그와 더불어 필요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24-138
하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책임 완수가 되려면
언젠가 여러분에게 얘기한 것처럼 선생님은 지금까지 36가정을 중심삼고 역사하여 최고의 축복기준을 닦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반을 세계적으로 닦을 때까지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여러분을 이끌고 나갈 것입니다. 출발했으면 마지막 한 고개를 넘을 때까지 가야 합니다. 반드시 그 기준까지 수습하여 끝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중심 앞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망해도 믿고 망하고, 흥해도 믿고 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러구 저러구하는 소리가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이러한 사람들을 중심삼고 일을 추진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축복의 기준이 안 서 있어 가지고는 아무리 큰 책임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수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탄이냐? `하나님, 제가 먹지 못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누구 못지 않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일을 통과시켜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하는 일을 통과시켜 주시면 아담 해와 이상으로 하나님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탄이요, 역적이라는 것입니다.

동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제시한 동기에 순응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동기를 중심삼고 무슨 일을 하고서는 그 일의 결과에 하나님을 갖다 붙이려 합니다. 그러니 선악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악의 기준을 완전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선생님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영적세계를 통하는 비법이 어디서 나온것이냐? 그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결국 영적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 여러분은 하늘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조건을 제시해서 그것을 하나님 것으로 인정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정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인정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도 내가 담당하겠다는 입장에 서면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늘이 같이할 수 있는 원칙적인 삼자 일치점을 완전히 세워 놓지 않은 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 3년 이상 된 사람들은 지방에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또한 사위기대를 복귀해야 하느니만큼 자기가 사는 도면 도를 중심삼고 삼도(三道)를 거쳐야 됩니다. 못해도 삼도를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7년노정에 있어서 수많은 젊은 사람들을 사방으로 내몬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해와를 쫓아내신 것은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 역시 다시 하늘과 인연 맺어 복귀의 문전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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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은 책임분야는 다르나 서로 하나되어야
그러면 타락한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자기마음대로 통일교회에 찾아 들어오면 맺을 수 있느냐? 그것은 자기 개인이 인연 맺은 것이지 하나님이 맺어 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면 자기의 책임을 완수해야 됩니다.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아담이 쫓겨난 그 자리에서부터 아담이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찾아 가지고 들어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있는 곳에서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는 언제든지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의 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동은 왜 벌어졌느냐? 중심존재로 하여금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로 나가야 합니다. 야곱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으며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오늘날 선생님도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요셉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요셉도 뜻을 이루기 위해 집을 떠나 애급으로 갔었습니다. 원래 요셉은 거기에서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왔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모가 그를 찾아 내려간 것입니다.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가나안 복귀노정이 생긴 것입니다. 부모가 찾아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전에 자식이 다시 돌아왔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 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 역시 그런 운명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은 어떠한 자리에 있어야 되느냐? 가인의 자리는 내보내져야 할 자리입니다. 그리고 아벨은 어떤 자리냐? 아벨은 부모의 슬하에 있어야 할 아들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이 아벨적인 존재와 가인적인 존재를 서로 결부시켜야 되는데 결부시키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귀노정을 아벨이 먼저 가든가 가인이 먼저 가든가 해야 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사명과 아벨의 사명, 이 둘을 다해야 합니다. 즉 부모 앞에 효도도 하고 부모 대신 나가 싸우기도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을 세워서 한 아들로 하여금 효성의 도를 다하여 부모를 모시게 하고 한 아들로 하여금 밖에 나가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효성을 하는 것은 천리의 원칙이나 싸우는 것은 천리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가인은 아벨을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삼자 일치점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뭐 이렇고 저렇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적 기준에서 모든 일을 행해야 됩니다. 그 기준에 대해서 뭐 어떻게 어떻고 하는 것은 선생님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타난 선생님, 즉 결과로 나타나 있는 선생님은 알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거쳐온 하늘과 관계된 선생님의 내적인 심정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해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전부 다 사탄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다른 여건을 중심삼고 비판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 아무리 잘해도 하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삶의 행동을 받아 주거나 거기에 상대해 주거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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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인연맺을 수 있는 마음가짐
여기에 협회장이 있는데, 이 협회장은 선생님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책임을 하든 못 하든 끝가지 끌고 나갈 것입니다. 민족적인 탕감이라는 이 엄청난 일을 다할 때까지는 협회장을 앞에 내세워서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가 인격적인 면에서 결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함이 있다 해도 그것은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를 누가 세웠습니까? 선생님이 세웠습니다. 그러니 책임도 선생님이 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망하면 망했지 그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처리방법은 선생님이 알고 있습니다. 처리는 여름에 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일치된 기준에서 책임완수라는 명제를 걸어 놓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독자적으로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하면서 비판하면 안 됩니다. 지방에 나가 전도할 때도 내가 먼저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내가 잘해 가지고 선생님 앞에 칭찬 받고, 교회 가서 칭찬받아야겠다고하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칭찬받되 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해야 부모의 심정권내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심정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공고한 인연을 하나님과 맺을 수 있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내적인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 외적인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노력하고 활동한 것이 선생님 앞에 혹은 식구들 앞에 인정받기 위한 외적인 조건 때문이었다면 큰일입니다. `인정이야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 문제는 내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과 내적인 심정을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다’하는 마음을 갖고 수고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칭찬받으려고 한 행동에서 교회 앞에 플러스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한 사람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어려움을 당하는데 교회에서 몰라줘 섭섭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려운 생활을 해 왔습니다. 누차에 걸쳐 감옥에도 갔다 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항상 내가 해야 할 책임문제를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민족이 잘못해서 겪은 고통이라 해도 민족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한 점에서 좌우가 갈라집니다. 생사도 한 점에서 결정되며 선악도 한 점에서 갈라집니다. 한 행동을 중심삼고도 그것이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악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자기가 수고하여 얻은 결과를 교회 앞에 내세워 공인받으려고 하면안 됩니다. 교회에서야 인정하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 앞에 시달림 받고 피와 땀을 흘리며 투쟁을 하는 것이 내 자체에 엉클어진 역사적인 사연을 탕감하기 위해 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심정적인 유대를 맺을 수 없게 하는 담을 무너뜨려 가지고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고를 몇 년 동안 해야 하느냐? 일년 정도의 수고로는 안 됩니다. 6천년 역사를 거쳐오신 하나님의 역사노정 위에 내 자신이 연결되기 위해서는 7년여의 수난의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그 깊은 심정의 골짜기까지 파고 들어가 내 자신을 연결시키는 것이 무엇 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생명이 움트는 봄철에 땅을 갈고 씨를 심으면 반드시 싹이 나오는데 그것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보조를 맞추어야만 됩니다. 먼저 땅이 있어야 되고 거기에는 봄볕의 온기 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깊이 파고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풍파가 일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이것은 나를 파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인연을 공고화시키기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절대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됐으면 됐지 탄식의 조건이 되고 슬픔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교회에서 자기를 몰라준다는 생각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전부다 자기를 중심삼고 일을 했다는 결론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가는 날에는 여러분의 행동이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 자기가 판 구덩이에 스스로를 매장하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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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하고 나서도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해 기대를 갖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협조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라는 마음으로 선생님이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그 길 앞에 들여야 할 정성의 도수(度數)와 양이 적다고 탄식하면 했지, 여러분들에 대해서 기대를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들이 알아서 기준을 일치시켜야 됩니다. 이 기준이 틀리게 될 때는 천지의 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가 기성종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통일교회에서는 생활이념을 가르쳐 주고 도리를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도리를 가르쳐 준다는 것은 생활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도의 길을 찾아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도에 있어서 최고의 기준과 최후의 결론을 참부모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참부모가 일치되는 그 기준을 중심삼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자녀의 자리에 여러분 자신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하나님이 자유로울 수 있고, 참부모님이 자유로울 수 있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기쁜데 부모가 슬퍼하면 그 가정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가정은 천륜을 중심삼고 부모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기쁘고 자녀가 기뻐야 그 가정에서 천륜과 인륜이 통할 수 있는 것이지, 부모야 어찌되었든 관계없이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보좌하며 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보다도 한 단계 앞선 발걸음으로 여러분이 처한 환경을 책임지며 여러분의 갈 길을 닦아 주고 있는 곳입니다.

지방에 나가 있는 우리 통일교인들을 보면, 자기가 일했으면 일한 데 대한 수고를 알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을 하자마자 수고를 알아 달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만일 대한민국 백성이 일을 하고서 대통령에게 전부 다 자기를 알아 달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알아주기 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부터 해야 됩니다.

알아줄 때는 개체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알아주는 것입니다. 개인만을 알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인정한다면 개인을 인정 안 해줄 수 없습니다. 전체가 알아주지 않으면 개체를 알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무시하고 자기 주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상부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그런 무책임한 조직이 어디 있습니까?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들과 손잡고 일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없애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는 선생님의 뜻은 모르면서 가만히 보면 별의별 소리를 다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유명해지는 것이 중요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이끌고 나왔어요? 뜻이 구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나라는 사나이가 한 번 일어섰으니 끝을 볼 때까지 할 것입니다. 그 인연을 하늘이 끊기 전까지 끈질기게 할 것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목적을 중심삼고 실패냐 성공이냐를 결정해 놓고 나서 다시 다른 일을 시작하든가 해야지,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청산지어 놓지도 않고 다른 일을 한다고 야단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인들만은 이런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타락한 핏줄을 받고 태어나 여러분인데 처참한 복귀노정을 걷지 않고 복귀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들은 자녀의 입장으로 하나님과 참부모의 심정에 일치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나서도 하늘이 자기를 대해 주면 그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됩니다. 몰라준다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을 접대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타락한 여러분들은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어디서나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해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그 조건을 세울 때 하나님이 기쁨 가운데 찾아와서 도와주시면 고마운 것이고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도와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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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책임을 감당하며 가는 길이 복귀의 길
선생님은 지금 대한민국의 행정요원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들을 만나 가지고 그들에게 `통일교회에 협조해 주십시오’ 라는 말은 죽어도 안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그런 부탁을 할 수 있겠지만 선생님은 입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누구를 만나 교섭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교섭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왜 안 하느냐?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만하면 다 협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2층만 있는 세계에 3층을 지어 놓으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그럴 수 있는 실적을 쌓아야 됩니다. 설명보다도 실적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구구하게 누구를 비판하겠습니까? 선생님은 누구를 비판하면서 내가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해 왔습니다. 내 갈 길이 바쁩니다. 갈 길이 바쁘니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라는 것입니다. 두고 보자는 겁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데 있어 여러분은 정성을 들이며 가야 합니다.

주님께 접붙인 나무는 자라서 뭘 해야 합니까? 세계, 혹은 천주를 위해야 됩니다. 그러니 지금 새파랗게 자라는 새싹을 보고 평한 것을 가지고 섭섭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수십년 동안 한 것을 3년 동안 해내야 됩니다. 온갖 노력을 자기 발전을 취해 투여하는 게 목적이지 다른 게 목적이 아닙니다. 책임 수행의 과정에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잔칫집에 가서 떡을 줄지 안 줄지도 모르는데 먼저 김칫국 좀 달라 하면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밥을 줄지 안 줄지 모르는데 숟가락부터 꺼내서야 되겠습니까?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 7월 20일이 세계적으로 40일 전도를 출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어떠한 일을 대해 실패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수고해 가지고 칭찬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해도 무슨 좋은 결과를 얻어 가지고 칭찬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받들어야 합니다. 칭찬받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 일에 대해 수고한 결과가 크기보다는 하나되어 나타나는 결과가 커야 합니다.

결과가 크면 클수록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적인 결과를 얻었으면 그것이 종족적인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종족적인 결과를 얻었으면 그걸 자랑하기 전에 민족적인 결과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민족적인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을 국가적인 결과로, 국가적인 결과를 얻었으면 그것이 세계적인 결과가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더 큰 책임을 감당하며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대한민국의 제일 악한 가정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간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선의 권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악의 위치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이 끌어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가지고 나가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알고 보면 참 무서운 사람입니다. 도인들이 선생님을 찾아오게 될 때 몇 마디 이야기해 보면 벌써 그 사람의 수준을 압니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 자신은 못 먹으면서 먹여 주고, 선생님 자신은 못 입으면서 옷을 사 입힙니다. 그 사람의 부모 이상으로 잘해줍니다. 그렇게 하면 좋다고 합니다. 천지가 자기 세상인 것처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선생님의 말을 믿게 돼 있는 것입니다.

도의 세계에서 수십년을 바쳐온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사랑하는 부모를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들어온 도인들에게 그가 해야 할 도리를 가르칩니다. 어떠한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의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선생님의 그들의 공적을 거두어 가지고 통일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종교가 자기의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 나가다가는 망합니다. 세계만민을 위하고 세계의 발전을 위해서 나가야 역사적인 결과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놓고 볼 때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가지고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용납받을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해 살았다면 지금까지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녹음이 여기서 중단되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