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 to 23-53: 선악과 흥망성쇠

선악과 흥망성쇠
1969.06.22 (일), 한국 전본부교회

24-07
선악과 흥망성쇠
마태복음 5:43-48

[기 도(Ⅰ)]

오늘은 1969년 6월 22일, 안식일이옵니다. 이날을 맞이하여 삼지사방에서 당신 의 자녀들이 성전에 모였사오니 당신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일주일 동안 세상만사와 싸우면서 얼마나 당신의 이름을 높였으며, 얼마나 당신을 가까이 모시고 즐겁게 해드렸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지나간 그 시간을 오늘 이 현실의 초점에 집약시켜서, ‘나’라는 개체를 다시 한번 비판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될 자신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기나긴 역사과정에서 참된 길을 찾아 나오다가, 참된 일을 위해 싸워 나오다가 쓰러져 간 자녀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참된 사람으로서 참된 승리를 다짐하고 이 땅에서 살다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서글픈 사실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와 같은 초점을 중심삼고 역사가 연결되어 나왔고, 현시점에서도 그와 같은 초점을 중심삼고 연결시켜야 하므로 최후의 운명을 결정지어야 할 자신임을 명시해 놓고, 아버지를 중심삼은 나,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은 개체를 세워 놓고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과거의 나와 현실의 나를 비교해 볼 때, 거기서 선한 의미의 차이를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면 저희의 앞날의 행로는 암담한 행로임에 틀림없이 것이옵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들이 조롱하고 농락하며 저희의 앞길을 망치려 하기에, 저희들은 마치 풍랑을 만난 배와 같은 운명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이 저희에게 남아질 운명인 것을 확실히 알고, 오늘 이 시점에서 자신을 다시 한번 명시하여 아버지와의 인연을 두터이 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의 마음과 몸에는 저희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악의 원뿌리가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신들이었사옵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일들을 거쳐 온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늘의 나를 다시 한번 혁명할 수 있는 자극적인 원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의 나를 제거시키고 내일의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는 자신을 다시 세우지 않는 한 자신은 선한 뜻과 선한 역사과정에 남아질 하등의 존재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물결과 더불어 자신들의 일생도 흘러가 버리게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지 말게 하락하여 주옵시고,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선의 목적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저희가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과정을 통하여 볼 때 하늘의 뜻은 역사와 더불어 제거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수습하고 역사를 솟구쳐 올라간 것을 잘 알고 있사옵고, 그러한 행로에서만이 하나님께서 저희와 동역동사하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이미 그것을 실천한 한 때를 가지고 있는 자신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내 자신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여 아버지의 통고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선한 것에 영원히 같이하시며 절대 악을 동참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이 완전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과 더불어 짝하시고 선과 더불어 동사하시면서 선과 더불어 성사할 수 있는 하나의 뜻을 바라면서 나오신 당신이기에, 비록 내 몸은 제거될지라도 마음만은 선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하는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아버지 앞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마음이 지향하고 명령하는 대로 몸을 굴복시키고 다스려서 영원한 아버지의 뜻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자아의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을 통할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염원하고,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을 다시 한번 수습하고,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의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짐하기 위하여 참석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금년 6월 초하루부터 저희들은 특별한 기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기간 저희들 개개인이 6천년의 한을 품고 나오신 아버지 앞에 진정한 아들의 심정을 갖추어야 되겠고, 딸의 심정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또한 가정적으로는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세계적인 이념을 토대로 완전한 승리의 터전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의 그 정성의 기대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120일 기간을 중심삼고 아버지 앞에 통고하는 저희들의 모든 사연을 저희들 개개인만이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옵고, 이 나라 이 민족만이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옵니다. 세계적인 운명의 한 노정을 개척하기 위함이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탕감노정의 크나큰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서기 위함이오니, 그러한 입장에서 저희들이 책임을 지고 특별한 정성을 들이는 이 기간이 되고, 자기를 잊고 아버지를 위주하며, 자기를 버리고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오늘은 일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땅의 무엇을 찾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가까워질 수 있는 인연을 흠모하면서 당신이 남기신 발자국 가운데에 숨겨진 눈물과 피땀의 인연을 좀더 뼛골에 사무치도록 느끼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옵니다. 저희들 이런 이들 앞에 무엇을 줄 것인가를 각자각자가 마음 깊이 생각해야겠사옵니다.

이제는 개체를 위할 수 있는 시대와 민족을 위할 수 있는 시대를 넘어서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시대권내로 접어든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시대에 아버지와 더불어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게 되었사옵고,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있고 그 반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사온데,그 공적인 책임이 얼마나 귀한가를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버님, 당신께서 허락하시는 사랑권내에서 당신을 찾아온 일본의 자녀들과 한국에 있는 저희들이 하난 되어 진정코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을 보내 놓고 일본 전국에 널려 있는 식구들은 이들과 동참하여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이 시간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그들이 기도하며 원하는 모든 전부에 함께하여 주시어서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바의 플러스의 결과를 남겨 놓을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모임을 통하여 아버지의 즐거움이 배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인연이 각자의 심령 심령에 새로이 싹트게 하여 주옵시고, 아직까지 신앙이 깊지 못한 당신의 아들딸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그 사실을 탄식하면서 아버지 뜻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이 시간, 당신의 허락권내에서 부족한 자신을 헌제하기를 원하오니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기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추고, 자기 스스로 아버지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자신임을 폭로해 놓고, 당신의 긍휼의 손길을 바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당신의 자녀들이 남한 각지에서, 또 전세계에서 이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 정성들이는 곳곳마다 영원한 당신의 사랑과 긍휼의 은사가 풍성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통일의 심정을 갖추어서 아버지 앞에 효자 효녀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은 시간을 당신이 허락하신 뜻만이 안에서 운행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4-11
기 도(Ⅱ)
아버님, 당신 앞에서는 어린 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되어 당신의 품에 안겨서 당신에게 사무쳐 있는 사랑의 은사 가운데 영원히 잠길 수 있는 인연이, 참을 중심삼고 당신의 자녀로서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저희들은 그 어린아이의 시대를 지나서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아버지 앞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참된 사랑의 마음으로 저희들을 품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그 한 때를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당신께서는 그렇게 하여 자란 저희들이 당신의 아들 딸로서 당신편에 서서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능력을 갖추어, 원수가 있으면 당신대신 맞서서 그들의 굴복시키는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승리의 영광을 가지고 `이 모든 영광은 당신 것이오니 당신이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승리의 영광의 실체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는 저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의 온전한 사랑과 일치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는 자리에서는 당신이 저희를 이 땅 위에 태어나게 한 보람을 찾을 수 없고, 저희 자신들 또한 생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남아진 시간을 당신 앞에 맡기오니 친히 함께하여 주옵시고, 그 누구도 이 단에 서서 자기를 자랑하는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길고 높으신 당신의 거룩함만이 여기에 임하시어서 당신이 경륜하시는 대로 당신의 사연이 엉클어져 저희 개체 개체의 심정과 더불어 그 한 몸들이 당신의 은사 앞에 화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은 주체가 되고 저희들은 객체가 되어 하나를 이룰 수 있는 영광의 은사가 이곳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저희들이 모인 것은 세상의 어떠한 학식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요, 세상의 어떤 물질적 요건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아니옵니다. 텅 비어있는 내적인 심정세계,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저희들의 심정을 윤택하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사랑과 더불어 화동의 터전을 맞이할 수 있는 봄날이 그리워 모인 것이옵니다. 개개인의 사정도 당신과 더불어, 깊은 사연도 당신과 더불어…. 당신이 아니고는 시작도 끝도 볼 수 없는 인연이 이 시간 여기에서 출발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이상 부모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이 나라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는 이상 나라를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을 잃은 저희 인간들이니 우주의 주인 되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사모하고 간절히 사랑하여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자기의 가정과 가계를 통하여 영원한 후대들까지 당신이 원하는 그 나라 그 세계를 위하여 충성하게 하는 조상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저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비록 그런 성과는 가져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한 내연의 감정을뿌려 놓을 수 있고 심어 놓을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아버님, 부디부디 찾아와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앞에 내놓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부끄러운 저희들이오며, 그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는 그 무엇도 갖지 못한 저희들이오니, 당신이 은사의 두루마기로써 저희들을 가리워 주시옵고, 굶주린 저희를 풍요로운 당신의 양식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내일의 소망을 잊고 있던 이들 앞에 그 소망의 한 뜻을 일러주시어 있는 힘을 가다듬어 다시 한번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는 폭발적인 계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깊은 심정의 동산에서 당신은 몇천만 번 불러 주셨사오나 저희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몇천만 번 오라고 손짓하셨사오나 저희들은 거기에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긍휼의 마음은 인류 역사 노정 위에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오니, 그 긍휼의 마음을 발휘하여 부족한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한번 불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오로지 당신의 뜻 가운데서 모든 것이 시작과 더불어 끝을 맺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한 이곳을 향하여 흠모하고 있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사랑의 손길을 펼쳐 주시어 같은 은사의 자리에 동참시켜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4-13
말 씀
오늘은 `선악과 흥망성쇠’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24-13
최후로 남아질 수 있는 선의 기준
우리 개인은 물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중에 선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방향도 선을 지향하여 나왔으며, 교육자들이나 신앙자들도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며 싸워 나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도 선을 위하여 태어나야 되겠고, 사는 것도 선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고, 죽는 것도 선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엮어 온 역사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선(善)은 막연한 의미의 선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 선이며, 선 중에서도 중심이 있는 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양심을 중심삼고 생활하는 데 내 생활에 선 아닌것이 어디 있겠느냐’ 라고 말하지 모르지만, 이렇게 자기의 양심을 중심삼고 산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은 자기의 양심에 따라 선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가 가는 선의 방향과 틀리다면 국가는 흥하더라도 자신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또 선을 위해 살아간다고 주장하는 어떤 국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국가의 방향이 세계의 양심에 따른 방향과 일치되지 못하게 될 때에는 세계가 남아지고 흥하더라도 그 국가는 망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혹자가 어떤 세계를 위하여 길을 간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가 주장하는 세계가 맨 마지막의 선의 세계가 아닐진대는, 또 다시 선을 중심삼고 주장할 수 있는 세계가 남아 있는 한 그는 그 세계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의 양심을 중심삼고 주장해 나가는 개인이나 그런 사회,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 선이 궁극적인 선이 아닐진대 그 선을 중심삼은 모든것은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 마지막까지 남아질 수 있는 선이라면 개인 가정 사회의 선의 중심기준이 되어야 되겠고, 국가와 세계의 선의 중심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그것들 역시 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흔히 `저 사람은 운이 좋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의 운이 강하더라도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의 운을 넘지 못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선조의 선의 인연을 통하여 태어난 한 분자이기 때문에 나무로 말하자면 많은 가지 중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종족 전체의 선을 대신해서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운보다 종족의 운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의 운보다 민족의 운이 크고, 민족의 운보다 국가의 운이 크고, 국가의 운보다 세계의 운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운보다 큰 것은 천운입니다.

그러므로 최후로 남아질 수 있는 선의 기준은 무엇보다 큰 천운과 함께 하느냐 안 하느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천운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길에서 개인을 혁명시켜 종족 앞에 굴복하도록 해야 되겠고, 종족을 혁명시켜 민족 앞에 굴복하도록 해야 되겠고, 민족을 혁명시켜 국가 앞에 극복하도록 해야 되겠고, 국가를 혁명시켜 세계 앞에 극복하도록 해야 되겠으며, 세계를 혁명시켜 천운에 기여토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인류가 양심을 중심삼고 지향해 나가야 할 최종의 목적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과 더불어 하나되면 흥하는 것이고, 악과 더불어 하나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체를 중심삼고 선악을 판가리하는 도상에 놓여 있고, 그런 흥망성쇠의 와중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 국가 세계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세계뿐만 아니라 천지가 그러한 운명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4-15
지혜로운 사람이란
오늘날 이 땅 위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느냐? 그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을 잘 가려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한된 시대권내에서의 지혜로운 사람에 불과합니다. 지혜로 와서 자기의 일대에 소원을 성취하고 그 권위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나라가 망하게 될 때 그는 망하는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두고 볼 때에도,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 지배하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천운을 받들 수 있는 개인이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도 역시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선악의 한계선을 긋는 데 있어서의 일반적인 기준은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것은 남아지고 사적인 것은 없어지게 되므로,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이 더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적인 기준은 어떠한 기준이냐? 하나의 가정을 놓고 볼 때, 그 가정의 식구가 자기보다도 가정을 위한다면 그는 공적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또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나서게 될 때는 안 됐지만 가정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족과 국가를 중심삼고 볼 때 그는 당당코 공적인 자리에 선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애국지사나 역사적인 위인들을 보더라도 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개인은 물론 가정까지 포기해 버리고 나섰습니다. 선을 위해, 공적인 일을 위해 개인적인 것을 다 포기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을 일대일로 보면 악(惡)처럼 보입니다. 마땅히 주위로부터 지탄 받아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 공적인 국가의 것으로 남아지게 될 때에는 지탄 받게 하던 모든 사연과 경, 또 거기에 엉클어진 모든 악조건은 공정한 공적 기준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모든 어려운 환경을 참고 극복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워 나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주위로부터 지탄 받아 어려웠던 그 모든 사실들이 그 사람을 구속하는 조건으로 절대 남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것이 해방의 조건이 되고 승리의 방패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인 실증을 통해서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과 세계 인류를 위하는 길,이렇게 두 길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길을 가야 할 것이냐?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세계적인 공적인 입장에는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충성을 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안에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안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지, 대한민국을 위해서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자기의 나라만을 위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그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해서 세계를 제패하려는 독재주의의 출현이라는 결과를 반드시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공인의 법도를 따라 우리 민족의 방향을 세계적인 대세에 결부시켜 현재 처할 수 있는 안일의 자리보다 십년백년, 혹은 수세기 이후에까지 이 민족이 머물 수 있는 안정된 자리를 위하여 책임지고 지도하는 지도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역사에 남을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지도자의 이념을 가진 민족이 있다 할진대 세계가 망하게 되더라도 그 국가를 통하여 세계는 치료 받을 것이며, 이것이 역사가 남길 최후의 결과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4-16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때, 자기 일생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의 가정, 민족, 국가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인생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천륜의 대도에 일치된 자리에서, 하늘땅과 세계 만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만이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선의 결과에 도달하는 기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어떠한 성현들도 성현이라는 이름을 갖고 나오기까지는 자기의 주장이나 자기의 민족, 국가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천운의 대세와 더불어 하늘을 업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업고 나오지 못하는 성현은 있을 수 없으며, 그러지 않고도 된다면 누구나 다 성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업고 나오는 국민, 하늘을 업고 나오는 국가, 하늘을 업고 나오는 세계, 하늘을 업고 나오는 천운이 지향하는 길은 선이 갈수 있는 길이며 그 길을 여러분 개인은 물론,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세계 인류가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양심은 어느 곳을 따라가고 싶습니까? 양심은 어디서 배우지도,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지만 더 선한 것을 찾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양심은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이 전부 다 안락하게 산다 하더라도 `이제 내 개인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니 안식하자’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기를 재촉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만이 아니라 35억 세계 인류의 안락을 위해서 할 수만 있으면 더 큰 일을 하자’ 하며 최고의 자리까지나 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최후에 안착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을 찾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해도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은 안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의 최후의 종착점은 어디냐?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만사가 허사입니다.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여기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중심이 되는 그분과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분과 만나는데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사는데 어떤 자리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과는 중심의 자리에서 만나고 중심의 자리에서 살자는 것인데 그 중심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천운을 따라가서 하나님과 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상의 성현들 중 무엇을 가르쳐 주는 성현이 위대한 성현이냐? 하나님과 천운에 나타난 그 방향을 똑똑히 가르쳐 주어 세계인류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며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천지간에 나타나는 날 세계는 자동적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24-18
흥망성쇠의 기원
이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지금까지 대체로 그런 체제를 모방해 나온 것은 어떤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희미하지만 이러한 것을 표준으로 바라보고 배경과 목적을 모방해온 것은 종교였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국가는 망하여 갔어도 종교는 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듯이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적인 문화의 기반이 되어 있는 것은 종교였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4백년간 지독한 박해와 학살을 당할 때도 그 국가의 주권은 망했어도 기독교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왜 그렇느냐? 천운이 거쳐가는 공리와 공법에 일치하는 것은 지배하려 하고 파탄시키려고 치면 칠수록 더욱 커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참된 종교란 어떤 것이냐? 선을 가르치되 그 선은 개체의 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해 온 선의 관념은 민족이나 국가의 법에 따라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각자가 사회에 따른 도의적인 길을 가는 것을 선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류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개인적인 생활 가운데 표본이 되고 양심이 지향하는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나 그런 자리에서 살다가 그런 자리에서 죽어간다면 그는 천국에 안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은 어떤 것이냐? 선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악이 결정되는 기준은 참된 선을 알아서 그 선에 반대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기준을 떠나면 반드시 그 방향을 선의 방향과 달리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떠한 부락이면 그 부락을 놓고 보편적으로 봐도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남을 끌어들이려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조그만 조건이 있어도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망하는 겁니다. 망할 운명권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잊어버리고 남을 위해주려 하고 죽도록 고생하는 사람은 모두다 좋아합니다.

그러면 개인운, 가정운, 민족운이 가는 방향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세계적인 어떤 일을 중심삼고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전체를 해결하겠다는 자는 기필코 망하게 됩니다. `네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것이고, 세계의 것이다. 내 것도 그렇다’ 라고 해야 합니다.

흥망성쇠는 선악을 중심삼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선악의 판가리가 나느냐? 갈라지는 것이냐? 한계선이어디냐? 대한민국이 망하는 그날에가서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갈라지는 겁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고 살면서 숟가락을 든 그 가운데 두 세계가 갈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먹는 그 밥은 어디에서 났느냐? 즉, 공적인 기준에서 천지의 공법에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그 밥이 생겼느냐, 그렇지않으면 내 욕심을 통해서 생겼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내 관의 모든 감각을 통하여 느껴지는 모든 것은 바꾸어져야 합니다. 자기를 위주로 한 관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또 그런 자는 망하더라도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망하기를 원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대한민국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본인이나 세계 만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세계 만민이 다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망하느냐? 이것은 자기자신은 모르지만 자기의 생활방법과 처해 있는 위채가 선한 자리가 아니며 천운의 대도권내에 일치될 수 있는 국가의 운세권에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라가 망하면 자신도 망하는 것이니 나라를 밟고라도 세계를 위해 서야 합니다. 그렇게 세계 대운을 향하여 갈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만민이 가야 할 길을 밝혀 놓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자님이 `위선자(爲善者)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위불선자(爲不善者)는 하늘이 화를 내리느니라’ 했지만 선의 개념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 선의 중심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또, 하늘이 화를 준다니 그런 무인격적이고 관념적인 하늘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24-20
자기를 위주한 사상을 가지면 망한다
선악의 기준은 끝날의 심판대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은 여러분의 현재의 양심을 중심삼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심판의 시간과 같은 것입니다. 민족전체가 천운과 일치된 길을 가고 천운이 내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통한다면 그 민족은 선민이 됩니다. 역사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택함 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졌었는데 그것을 보게 될 때, 그들에게 하늘의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선민은 어떤 민족이냐? 개인의 생활권내에 최대의 천운이 통하고, 그가 정이 살 수 있는 권내에 천운이 거쳐가고, 그 민족이 살 수 있는 권내에 천운이 거쳐가고, 그 국가가 살 수 있는 권내에 천운이 거쳐가 백방으로 그 국가 전체를 거쳐갈 수 있을 때, 그 민족을 선민이라 합니다. 천운을 띤 목적내에서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주한 주의나 사상을 가진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인명을 해치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나라에 피해를 입혔다 할 때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에 이용당해야 하는 것이 국가권내에 있는 국민의 도리입니다. 또한 그것이 국민이 가야 할 방향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대세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민주주의면 민주주의가 그 개체의 운세에 하나님의 대운을 보태어 천운과 일치한 자리에 서서 그 방향을 가정과 일치시키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와 일치시켜 가지고 나가야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공산주의가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리 반대해도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곧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나는 세계의 인류를 위해서 산다’ 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졸장부와 같이 째째하게 살고 싶은 양심과 이념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여러분들 역시 자기를 중심삼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자기의 그 기준과 더불어 망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후손까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지 않고 공적인 입장에 서서 남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기준으로 살다 간 사람은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 남긴 것이 없다 하더라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그런 자가 죽게 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하늘도 축복을 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4-21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셔서 기도하신다면
본래 인간은 선의 목적지를 향할 수 있고 흥하는 세계에 갈 수 있었는데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정해야 할 입장에 서있으므로 더 도덕적이고 더 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이 세계는 비참과 멸망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 같은 분은 이 땅에 와서 메시아로서, 만민의 구세주로서 사명을 하기 위하여 공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었느냐? 예수는 땅위에 온 그날부터 세계적인 메시아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세계인류를 구원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세계를 천운에 일치시켜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길에서 십자가 도상을 바라보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결판적인 순간에 하던 그 최후의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내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속될 수 있는 인간성을 밟고 올라서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여 내 뜻이 아닌 천운의 대의를 따랐던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옵소서’는 내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만일 예수님에게 가정이 있었다면 그 가정을 버리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가정의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가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를 거느리는 입장에 섰다면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우리 감리교를 위해서, 우리 장로교를 위해서, 우리 천주교를 위해서…’ 이런 시시한 기도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시대에 살아서 세계를 걸고 기도한다 할 때 열두 제자에게 복을 주십사고 기도하겠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열두 제자를 세운 것을 세계를 위한 것이니 열두 제자를 세계를 위한 뜻 선상에 세워 주옵소서. 이스라엘 민족을 4천년 동안 준비한 것은 나 하나 보내시어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함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서 그들이 공헌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열두 제자가 민족을 대신해 싸우면서라도 죽음길을 걸어야겠습니다’라고 기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메시아요, 구세주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기도도 못 했습니다. 최후로 기도한 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의 뜻보다 우리 교회의 뜻을 중심삼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뜻과 일치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지 못한 예수님이 얼마나 원통했을 것인지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4천년동안 준비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세웠을 때 그 민족은 국가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서야 했습니다. 세계의 중심국가는 세계의 모든 국가를 무력으로 굴복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국가들을 자연 굴복시켜서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칼과 힘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월남전을 보더라도 미국은 월남에 비해 수십 배 이상의 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보아도 미국의 몇백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월남인 것입니다. 그런 월남의 힘으로는 자국을 지키지 못합니다. 또한 월맹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하루에 1억달러 가까운 돈을 쓰며 전쟁을 하고 있으니 경제력이나 정치력, 또 군사력을 가지고는 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맹이 그 사실을 알고 좌절하여 후퇴한 것입니다.

24-23
천운과 더불어 하나되자
앞으로 선의 세계는 무엇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냐? 온 인류가 천리에 대적하지 않고 천운에 따르며 처음과 같은 자리에 서서 죽어 가면서도 자기 민족보다 세계를 위하고, 세계보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을 거쳐, 종족, 민족 국가 세계에 보편화되어 인류의 양심이 가는 방향이 모두 같아 공통된 입장에 서야만 그때부터 이상적인 세계는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일을 하면 어떻습니까? 자신을 내세우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천지의 누가 뭐라 해도 무섭지 않은 것입니다. 그 나라 대통령이라 해도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세계보다 하늘땅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세계는 망하더라도 하늘땅은 망하지 않고 남아집니다. 세계의 제사장은 망하더라도 하늘땅은 남아집니다. 그러니 이것을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를 엮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죽음의 길을 무난히 극복해 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냐? 무엇이든 천륜의 대도와 일치되지 못할 때에는 모두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하는 자리에서 지탄을 받더라도, `지탄하기 위해 동원된 재력이나 권력, 국가의 세력 등은 하나님 앞에 선을 거둘 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는 될지언정 선을 파탄시킬수 있는 자극적인 요소는 못 된다.’는 신념을 지녔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역사시대권내에서 이러한 힘을 가지고 역사를 추진시켜 나왔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수련회 때 박사학위 받은 유명하다는 사람에게 식구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요?’ 하고 물으니, `그것은 쉽고도 어려운 문제이지’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쉽고도 어려운 문제라면 영영 뜻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동으로 가는 것입니까, 서로 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종교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종교관을 중심삼고 세계를 붙들고 나와 가지고는 절대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끝날이 되면 수많은 종교는 기필코 패망의 운명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의 운세와 자기 교파의 운세를 붙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운은 세계의 운세의 꼭대기를 밟아 가는 것입니다. 천운이 지상에 나타나는 시대가 되면 지금까지의 교파 교권주의는 와해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시대의 종교는 천운을 탈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이라는 말이 기성교회 앞에 기분 나쁜 말입니다. 통일교회도 기성교회를 대해 마찬가지입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곳이냐? 통일하자는 교회입니다. 무엇을 통일하자는 것이냐? 남자 여자를 통일하자는 것이냐? 아닙니다. 시시하게 남자 여자 통일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천운과 더불어 하나 되자’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운세권내에 있다 해도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천운을 붙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 나라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대외 활동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를 정화시키고 국가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종교가 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국가 앞에 소화되는 종교, 세계의 사정에 흡수되는 종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소화시키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만민의 양심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생활기준을 중심삼고 사회국가 세계의 형태를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민족이 다르고 전통이 다르더라도 다 초월하여 양심이 지향하는 공동의 일치점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국가권내에서가 아니라 세계를 넘어 천운이 통하고 하나님이 좌정하실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중심삼은 기점을 마련하자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기점을 결정짓고 그런 환경을 가진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만 나오면 세계는 문제없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24-25
천운이 통하는 길
오늘 우리에게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지금까지 기독교는 수많은 교파로 갈라졌고, 전부 다 자기들이 최고로 선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기성교회를 전부 통일시킬 수 있는 무엇이 통일교회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 내리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느냐 하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게 되면 통일교인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에게 매를 맞고 핍박받아 왔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왔습니다.

선은 어디를 통하여 가는 것이냐? 악인도 감동시킬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가는 길에 천운이 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싸움으로 사탄을 굴복시킨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길을 가면서도 인류를 구하기 위한 입장에 서서, 자신을 죽이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로마 병정들을 위해서 복을 빌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북한의 1천만 민족을 어떻게 해방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탄으로 때려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하고 충성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화합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괴수 김일성이 총칼로 위협하여 위장으로 단결시킨 것보다도 더 강하게 단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수 있는 기품을 가지고 책임을 다하는 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자연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싸워서 이기면 결국은 남을 위해서 싸움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선을 중심삼고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까지 세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가 이 땅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정성을 들여 자기집안만 복을 받겠다고 하는 종교라면 그 종교는 망합니다. 그러면 집안이 망하고, 집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그 나라가 망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망하는 것입니다.

종교에는 가정을 위하는 종교도 있고 종족을 위한 종교도 있고 민족을 위한 종교, 국가를 위한 종교가 있습니다. 개인을 위하는데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범위가 넓을수록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지향하는 목적과 이념이 세계 만민을 넘어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 그 종교는 망하지 않고 역사적인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24-26
천운의 방향에 일치시키려면
예수님의 생애를 보게 되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그는 민족의 반역자로 몰렸습니다.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반동분자로 몰려 죽은 것입니다. 교파나 주권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어느 곳 하나 발디딜 곳이 없는, 그 사회에서조차 용납받을 수 없는 불신분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으로 가정을 중심삼고 살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그 가정만을 위해서 산 것도 아니요 나라만을 위해서 산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 망하는 운세권내에 들어갔지만 기독교는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아낸 유대인은 망했지만 망할 운세로 몰린 예수님을 중심삼은 기독교는 몰리면서도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은 동기는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이 천운이 함께할 수 있는 그 궤도 위에 기독교를 올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개인도 천운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고, 그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도 그럴 수 있고, 교파도 그럴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통일교인들을 보면, 활동시키지 않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전체를 위한 생각보다 자기를 위한 생각이 더 농후해져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자기를 위하여 먹으면 안 됩니다. 민족을 품고 밥을 먹어야 되며, 세계 인류를 품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활 전체가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았는데 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참소하라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자리에서 맞게 된다면 맞으면 맞을수록 그 사람의 일은 잘 성사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맞아 나왔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제 몇 해만 지나면 대한민국이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떻게 천운을 타느냐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운세가 어떻게 천운과 박자를 맞춰 나가느냐, 가정의 운세가 어떻게 천운과 박자를 맞추어 나가느냐, 교파의 방향을 천운의 방향에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맞지 않으면 전부 다 틀려집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벌거숭이라도 이 기준에서 어떻게 천운과 연결시켜 나가느냐 하는 데에 따라 문제가 틀려집니다.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발전을 해 나가느냐, 못 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여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운과는 어떻게 연결시켜 나가느냐? 일치는 간단한 것입니다. 선악을 중심사고 되어지는 것이며, 선악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이냐 전체를 중심삼은 것이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인들은 자기를 중심삼은 것을 없애 버려야겠습니다. 여기에 전부 다 찬동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선한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국가면 그 국가를 기반으로 해서 나아가야 됩니다. 오늘날 이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외적인 면을 일치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이지만, 내적인 천리가 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 민족이 모르면 그 누가 지도자가 되어 끌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밤을 낮과 같이 일하며 백성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자기의 육신을 제물삼아, 아침이나 저녁이나 하늘의 도리 앞에 일치되는 자기 자신이 되어 천부를 모실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24-28
반대 받더라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망하지 않아
뜻을 위해 지금까지 싸워 나온 나는 매장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갈 수 있는 그 길을 위하여, 천운이 깃들 수 있는 터전을 위해서라도 망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망하면 안 되겠기에 분한 마음이 솟구칠 때도 분함을 품지 아니했습니다. 망하지 않는 민족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분을 품지 못했습니다. 망하지 않는 나라를 갖기 위해서는 분을 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인데, 잘못하다간 자기가 사랑하는 민족이 망하는 것을 하나님도 보게 됩니다. 자기를 반대하는 무리가 망하기를 바라는데도, 까딱 잘못하면 그 무리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민족이 먼저 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책임을 지고 나오시는 하나님은 원수를 치기 전에, 자기를 따르던 백성, 가정, 개인이 잘못하면 이들을 먼저 치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악한 세계를 심판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나라를 살리는 것입니다. 불타는 심정을 가지고 천운과 일치하여 나갈 때는 세계의 나라와 민족이 전부 다 망하더라도 이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20세기 이후에, 오늘 우리 통일교인들이 부르짖고 주장하는 사상 관념이 천운의 중심과 일치하여 통했다 할진대는 반드시 우리의 주장을 중심삼고 세계는 정리되어야 합니다. 세계를 통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쇠고랑을 차는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국가에 대해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대해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민족 앞에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마음으로 참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망하더라도 그 무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활동을 얼마 동안 해야 할 것이냐? 우리는 여기에서 충성의 도리를 세워야 하는데 시간권을 초월해야 되고, 공간성을 초월해야 됩니다. 천년을 하루와 같이 생각하며 일편단심을 갖고,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같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천운을 따라가는 길을 모색하는 민족이라면 그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규명해야 합니다. 또 가정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도 확실히 규명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종족 민족 국가 세계는 어떻게 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까지 확실히 규명할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이 통일교회에서 시작 되었다면,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 모든 사연들이 통일교회에 불을 붙이고 바람을 일으키는 동기가 될지언정, 통일교회를 망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습니까? 사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사는 것입니까? 또한 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까? 선을 위해서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모두 선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패하여 없어질지언정, 내가 싸워 나온 것 중에서 절대적으로 남아지는 것은 선입니다. 그러므로 만민이 그선을 그리워할 수 있는 그와 같은 뜻을 품어야 합니다.

24-30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느냐
내가 수십 개 국을 순회하면서 수많은 민족 앞에 소망한 것이 무엇이냐?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우습게 알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을 더럽고 치사한 사람들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문이라는 사람이 무엇이 좋아서 그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여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문선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문선생을 사랑하려거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내가 책임자로서 한 가지 잃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가느냐, 빚을 지우고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 빚을 안 집니다. 너희들이 밤을 새우며 정성을 들였다면, 나도 밤을 새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이 오고 피곤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라를 거쳐온 수많은 애혼(哀魂)들이 나를 추앙하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 고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심정과 어떻게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절대 빚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오고 난 후에 그들에게 남아진 것은 탕감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고생하고 갔다’는 것, 즉 고생이라는 두 글자를 안고 가야 합니다. 거기엔 당장 성과가 없어도 좋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무엇을 박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민족이 다르고, 문화배경이 다르고 생활감정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그러겠습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120일간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는 죄인입니다. 죄인 중에도 큰 죄인입니다.’ 하는 마음 갖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빚지면 안 됩니다. 밥을 먹으나, 길을 가나, 어디에 있으나 그런 마음밖에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벌받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목적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모든 조건이 불리하게 됩니다.

그러니 영원히 남아지는 것은 무엇이냐? 선할 수 있는 기준을 남겨 놓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은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가 뒤따르게 됩니다. 피곤하여 낮잠을 자고 나거든 회개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잘못 갖고도 행복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나타나 있는 통일교회는 알고 있지만, 나타나지 않는 통일교회는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깊은 자리에 있는 내용은 아직내 자신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파헤쳐서 왈가왈부하게 되면, 여러분은 꺾여 나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꺾여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때가 되지 않으면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목적은 선입니다. 사는 것도 이것을 위하여, 죽는 것도 이것을 위해서라야 합니다.

24-31
수난의 길에서도 낙망하지 말라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어떤 때는 이런 운명을 가지고 미국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더 높게 빛나는 조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과정을 넘어서 하나의 종착점을 맞이하게 될 때, 그 과정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역사적인 부흥의 재료가 되고 심정을 발화시킬 수 있는 터전이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가 그 누구도 거쳐갈 수없는 수난의 길을 간다 해도 나는 낙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하여도 갈것입니다. 총탄이 한꺼번에 수 십 발씩 동서남북을 통해서 들어와도 나는 갈 것입니다. 나는 쓰러질 때도 뒤로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많이 망했습니다. 그러한 개인을 많이 보았습니다. 내가 분해 가지고 기도하면 얼마 가지 않아서 해결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기필코 이루어야 할 소원은 선입니다. 그런데 선에는 개인적인 선, 가정적인 선, 종족적인 선, 민족적인 선, 국가적인 선이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지방에 나가서 굶고, 자기 피를 팔아 가면서 일해 오고 개밥을 먹으면서 일했던 그런 비참한 일화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을 저주할 수 있고, 세계 인류를 저주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을 좋아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참아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를 대한민국이 공인하지 않아도 세계 여러 국가가 공인할 수 있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은 머리가 아주 좋고, 작전에 묘기가 있다고 합니다. 묘기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요. 원칙은 간단한 것입니다. 자기가 만일 어떤 결정을 잘못 내렸다면, `ㄱ’이다 `ㄴ’이다 하면서 밤을 새워 가면서라도 해결짓는 것을 하나님도 좋아합니다. 나는 `이 세계가 하나님 앞에 일치가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가시는 길고 일치되지 못한 자리에 있는 인간들에게 당신이 가시는 길과 일치되어 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명령을 내려놓고 배후를 수습하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잘 됐어요, 안 됐어요? 안 되었으면 내가 제시할 겁니다. 나는 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남보다 삼 배 십 배 더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24-32
뜻이 이루어져도 책임 못하면 나와 상관없게 돼
천국은 어떻게 가느냐? 선생님은 그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세계 그 누구보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 안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판결하는 데에도 자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일발의 촉박한 자리에 놓일 때마다 현재는 모순되고 환영 받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연코 하나님을 중심삼고 판별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성공하는 것입니다. 책임진 사람은 그런 관점에서 모든 것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어떤 근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까지 닦아놓은 모든 것이 자기들이 닦아 놓은 터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피의 대가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민족을 바라볼 때, 민족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없는 한 때, 민족 앞에 부끄러운 자리에 몰릴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이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비참함이 필요했습니다. 천운과 더불어 선을 위하여 태어났고, 천운과 더불어 선을 위하여 생활하고, 천운과 더불어 선을 위해 죽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도둑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의 요구대로 하나님이 좋다고 허락해 주는 하나님이면 이 세계의 하나님이 되시겠습니까? 뜻이 언제 이루어지겠느냐고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일에 책임을 다 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뜻을 이루는 데 있어 내가 책임을 못 하면 그 뜻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관점에서 똑바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전생애를 걸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기준이 찰떡 같은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길은 희생이 아닙니다. 그렇게 가는 길에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굴곡이 있을 수 있습니다.

높은 산정을 목표로 올라갔을 때, 그 산정만으로 끝나면 전부 다 얼어죽습니다. 거기에는 동물도 꽃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골짜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천지의 조화가 인연 맺게 됩니다. 거기에는 새도 맞이할 수 있고, 따뜻한 봄날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뜻길을 서둘러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눈이 꽉 차있는 산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로 꽃이 피는 골짜기가 깊으면 깊을수록 조화를 이루는 숲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높기만 바라는 민족은 망하는 것입니다. 미국도 망하게 되고, 공산당도 망하기 직전에 놓여 있습니다. 후르시초프가 유엔 총회 발언대에서 신발을 벗어들고 연탁을 쳤습니다. 그때부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미국도 내려가는 것입니다. 세계의 주도권을 양보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누가 계승하느냐? 공산당도 세계의 끝을 넘어가지 못했고, 민주세계를 지도하는 미국도 세계를 소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소화시켜야 하느냐? 이제 남은 제2의 주인이 누구일 것이냐? 제 2의 주인은 자동적으로 제 1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제1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것은 금후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가장 욕을 많이 먹고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나오는 무리, 바로 통일의 무리입니다.

24-34
천운을 중심삼고 어떻게 생활할 것이냐가 중요
본래 36억 인류가 전부 다 죽어서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하나만 죽겠사오니 세상에 복을 주소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하늘편이 없는데 별 수 있습니까. 자기 혼자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저를 사랑한다면 전부 다 죽이시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자기까지 죽게 됩니다. 또한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먼저 죽이시오 해도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죽을 바엔 너도죽고 나도 죽자고 할는지 모르지만, 다 죽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든 인사문제라든가 상속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부를 잘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자꾸 물이 들게 됩니다.

그러면 선은 어떠한 기준을 세워야 하느냐?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절대적 선의 기준을 세우지 못하여 절대적 판정 기준이 나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망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준도 세계를 심판할 수 있는 백퍼센트의 기준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선의 한계를 지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10퍼센트나 50퍼센트나 80퍼센트나 99퍼센트는 조금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이라는 것이 조금만 있더라도 모두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전부 다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문제를 심각히 다루고, 거기에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 내가 죽으니 다 벌 주소서’ 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분은 세계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세계를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에 몰리는 일각에서 남겨야 할말이 `이들을 다 죽이고 나를 살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악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같이하고,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환경에서 부활의 권한을 성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두고 용서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채찍으로 몰아, 제 2의 탕감을 세울 수 있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위해서 나선 것입니다. 이것만이 하늘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본이요, 본 뜻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제 제일 문제는 무엇이냐…. 여러분은 어떻게든 노력하여 중심과 통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천운과 함께할 수 있는 개인이 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그 천운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공무원이 직장에서 일할 때 `나는 월급이 적어 생활이 어렵다. 식구에 비례해서 10만원 들어갈 텐데, 지금의 8만원 가지고는 부족하다. 3배 들어가는데 그 3배 이상을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활하던 자기기준을 낮게 설정하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비례가 크면 클수록 자기가 녹아지는 것입니다.

24-35
통일사상으로 무장하고 강건한 정신을 가져라
통일을 위해서는 자기 생명까지 버리고 가야 합니다. 천도는 그런 역사적 배후에서 닦아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반할 수 있고, 거기에 동참할 수 있는 내용의 기준을 갖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천운을 중심삼고 개인의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망하고 싶어요? 망하고 싶지 않아요? 「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욕심입니다. 그러니 전부 다 망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얼굴이 못생겼으니 되고 싶은 대로 되라, 나야 뭐 어떻든 상관없다’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이 못생긴 사람이 거울은 더 많이 봅니다. 귀가 쑥 들어갔으니, 혹은 코가 쑥 들어갔으니 성형 수술이나 할까 하며 관심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웃는 걸 보니 관심은 있는 모양입니다.

결국 이것은 망하자는 것입니까? 흥하자는 것입니까? 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을 그렇게 한다고 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야 기와골에 올린 호박처럼 생겼을 망정 마음만은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을 갖자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니 그저그런데 마음을 보니 딴판이라고 하는, 얼굴은 못생겼더라도 마음이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과 마음을 비교하여 마음이 배 이상 되게 될 때는 총각은 홀딱반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얼굴 못났다고 탄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굴이 못났어도 자기 나름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면서부터 호박처럼, 무골충 같이, 찌그러진 무우같이 생겨서 천번 만번 넘어뜨릴 수 있으되 한 가지 깔보지 못할 것이 있다면 여자들이 마음에 들어 할 것입니다. 남자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큰소리하는 사람 몇 십년이나 가나 보면 3대 이상 못 갑니다. 박대통령이 지금 제 2경제부흥을 이루겠다고 하는데, 이 제 2경제부흥은 사상으로 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을 소화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이 싸움에 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노르웨이 같은 나라를 보면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율이 점점 늘어가고 있느냐? 내적인 마음의 흉년을 외적인 경제적인 풍년으로 막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수만 있었으면 석가모니가 왕궁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뜻을 품은 사람들이 그러한 과정을 수없이 거쳐왔습니다. 개인이 그러했고 민족 국가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이 민족에게 문제되는 것은 무엇이냐? 돈이나 권력이나 지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삼천만 민족이 한 점으로 화합할 수 있는 사상통일, 사상무장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최고의 민족이 될 것을 통일교회는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를 끌고 가되 나라에 머물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끌고 가야 되고, 세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천운을 따라가야 합니다. 또한 천운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하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이념입니다. 선생님은 수십 평생을 걸고 이 일을 해왔습니다. 선생님은 앞으로도 빚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50살이 가까워졌지만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나이 많은 축에 들어가니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지만 늙은 축에는 안 들어갑니다. 선생님은 나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은 학생들입니다.그러나 학생들이 너무 기분 좋아하면 곤란합니다. 청년을 좋아하지만 내용이 없습니다. 또 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지만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 늙은 사람도 늙은 자체를 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늙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원도 산돼지 사냥하러 가지고 할 때, 따라가지 못하는 무리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가 아파 못 가더라도 흐느적거리며 강원도까지 따라갈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올라가야 할 텐데 다리가 조금 이상하니 어떻게 하지?’ 그런 사람은 강원도 산에는 갈 수 있지만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분들은 그런 마음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은 손자가 스물 몇 살이 되어서 `손자 며느리까지 얻었으니 나는 구 시대 할아버지다’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젊음이라는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37
모든 것을 소화시킬 수 있어야
정부측에 있는 사람들이나 일반 사회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가 자꾸 커지니 야단났다고 말을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통령 출마를 하려고 한다면 별의별 소리를 다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서 대통령하려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며, 세계를 위한 길을 닦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선생님은 일본에서도 다루지 않는 승공문제와 반공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살리기 위해서 아시아인을 누가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며 그 누구도 아닙니다. 오직 통일교회뿐입니다. 그러므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실적 앞에는 그 누구도 머리를 들지 못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일본 전부가 걸려들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조금만 내 의도에 맞춰 후원하게 되면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내 계획에 맞게 후원해 주겠습니까? 「예」 정말이요? 「예」 돈이 없게 되면 돈을 보내 주고,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도 지원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예」 대답만 하면 됩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을 굳게 해야 하는 겁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소화당하는 무리가 아니고 소화시키는 무리입니다. 그러면 금덩이 쇳덩이를 집어 넣어도 소화시키겠습니까? 「예」 배가 터진대도 소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독초라도 먹어 삼켜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삼키든 그것이 배 안에 남아 있는 한 전부 다 썩고 녹아져서 소화된 후에야 쓰러진다고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공산당을 날것으로 삼키고도 소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악한 편에서 제일 미워하는 무리는 누구냐? 그것은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편에서 제일 좋은 무리가 누구냐? 통일교회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기분 나쁘면 죽으시오. 가만 있어도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똑바로 가야 합니다. 종교를 가져서 무엇합니까? 통일교회 간판을 떼어 버리더라도 대한민국을 살려야 됩니다. 대한민국보다 세계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세계가 살 수 있으면 통일교회 간판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통일교회 간판을 떼어서 불살라 버리려고 합니다. 통일교회 간판은 불쌍합니다. 욕을 많이 먹은 수난의 간판입니다. 세계 간판의 역사 가운데 제일 수난을 받는 것이 통일교회 간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만족하면서 생애를 걸어 놓고 천운을 확실히 따라 갈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천운과 더불어 기착할 수있는 최고의 자리를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겠고, 민족이 되어야겠고, 국가가 되어야겠고, 세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때가 되면 하나님은 세계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이 세계에서 모시고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세계 인류를 자녀와 같이 품고 사랑 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민이 존재하기 전부터 목적하고 바라셨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라는 단어의 통자의 의미는 거느린다는 말입니다. 지도 받는다는 통자가 아닙니다. 돈이나 권력으로 지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 지배하자는 것입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효성,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 세계 만민을 사랑하는 박애주의를 가지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자리까지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내 개인의 몸보다 하나님을 중심한 마음을 앞세우고, 가정에 있어서는 내가 주체가 되어 나로 말미암아 전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 선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족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선의 가정, 민족 앞에 영향을 미치는 선의 종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39
세계통일은 하나님의 소원이자 인류의 소원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의 통일종족으로 이 지구상에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일본 미국 독일 등 어떤 나라에서도 통일교회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통일족속은 세계의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고,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평면적인 세계 도상에 하나의 이념과 하나의 심정을 중심삼고 그누구도 끊을 수 없는 하나의 새로운 종족 편성운동이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묵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노력하는 만큼 세계가 공인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세계의 개인들이 본을 받을 수 있는 개인, 세계의 가정들이 본을 받을 수 있는 가정, 세계의 종족이 본을 받을 수 있는 종족, 세계의 민족이 본을 받을 수 있는 민족, 세계의 국가가 본을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되어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될 때, 그나라는 세계의 조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임재하실 것이냐? 세계적인 조국복의 새로운 깃발이 휘날리는 곳, 하나님은 그 자리에 안식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위해서 싸워야 하며 이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문화를 품고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활동 목표는 `전면적인 진격’입니다. 상대가 누구입니까? 원수를 대하여 투쟁하는 것이 아닐, 이것을 초월하여 자기의 종족 민족을 찾아갈 수 있는 기원을 만들고, 세계의 통일국가형을 마련하자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바라는 소원이요, 인류가 하나님께 바라는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목적을 중심삼고 이 길을 나선 무리들이니, 여자들은 비록 치마를 입은 여자로 태어났어도 남자를 능가할 수 있는 여자가 되겠다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 인민군과 대결하여 싸우더라도 통일교회 여자들은 인민군 남자들을 물리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자신 있어, 없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인민군이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의 눈 앞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중국놈 소련놈 미국놈들이 있습니다. 미국놈도 놈은 놈인데 조금 가까운 놈입니다. 그러면 말은 놈 놈 하는데 실제로 놈 놈 하며 살아 봤습니까?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에게 언제 되놈이라고 불러 보았습니까? 그들이 대국이란 간판을 붙이고 나오더라도 우리는 되놈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함부로 남을 무시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천운을 품고 분노를 터뜨리면 천지가 망하기 때문에, 내가 분해도 그냥 앉아 있습니다. 내가 화를 내면 세상 천지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는 참습니다’ 해야겠고, 하나님께서 `됐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무리를 공산당이 데려다가 공산당원으로 만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됩니다. 고문을 몇 백 번 하고 세뇌공작을 암만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됩니다」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되지 않게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내가 부산에 피난 갔을 때는 부두에서 목도질도 했습니다. 노동을 하면 무엇이든 잘합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잘 어울립니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와 친구가 되고, 거지판에 가면 상거지 노릇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거기서 밥 얻어먹는 내기를 한다 해도 선생님이 일등할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전부 다 친구로 만들어 얻어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디를 가든 내가 좋겠다 하면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24-41
누가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나가므로 망하지 않는다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몇 달 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통일교회 문아무개라고 불렀습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형무소에 들어가 보면 전부 다 왕자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잘났다는 거예요. 그러나 난 나보고 무엇이라고 불러도 아무 대답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들어가는 날부터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달도 있을 수 있고 두 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두 주일쯤 지나게 되자 그들이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소변보러 가면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먹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그들 중 제일 골칫거리인 사람, 모두가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몇 마디 같이 얘기하며 잘 타일렀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골칫거리인 사람이었는데, 문이라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그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너달 지나자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감방의 사람들이 전부 다 문아무개 말을 잘 듣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형무소 소장까지 만났고, 그에게 따끔한 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올 무렵 통일교회에 찾아온 간수들이 많았습니다.

말이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선생님도 그들을 위한 입장에 서서 대한민국을 대신해서 대통령도 가지지 못하는 심정을 가지고 현재의 한국의 운명과 미래의 한국의 운명, 그리고 이 민족이 가야 할 국민사상을 중심삼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심정의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책임자 앞에는 머리 숙여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배척받고, 민족 반역자로 몰리고, 국제 공산당이란 말까지 듣지 않나 별의별 간판을 다 덮어썼습니다. 또한 사교의 괴수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선생님은 이 감투를 벗을 자신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쓰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선생님은 썼더라도 벗을 길을 가기 때문에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요즈음도 기성교회에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친여당파라고 합니다. 통일교회가 어째서 여당파입니까? 30여년 간 얼마나 핍박을 받았습니까? 여당이 협조해 준다고 친여당파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협조해 달라고 했어요? 협조해 주든 안 해주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입니다. 누구를 믿고 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 현재의 위정자들을 믿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을 믿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선의 기준에서 출발했지만 선의 열매가 아직 맺히지 않았습니다. 봄을 맞이해서 싹이 트고, 여름을 맞아 줄기와 가지가 뻗어진 곳에 잎이 무성하게 되어 꽃필 수 있는 때가 오고, 꽃이 필 때가 찾아오면 나비와 벌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동서남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벌 나비처럼 날아들 때가 되었습니다.

미국인도 오고, 일본인도 오고, 모두가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못한 것이 뭐가 있어요? 10년 전에 생각하기를 대한민국의 운명 앞에 이런 날들이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내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쇠고랑을 벗고 나온 다음 바로 한 식구를 밀선에 태워 일본을 공격케 했습니다. 그것이 그 나라 국법에 위반되는 것이지만,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민족 앞에 몰리더라도 앞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제 2국이 필요하고 제 3국이 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기반을 닦기 위해서 빚을 내어 가지고라도 계획한 일을 시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10년만 지내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종교가 움직이는 일에 통일교회 유지들과 통일교회 청년들이 아니면 안 되고, 아시아의 반공정책에서도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깃발을 날리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여러분들과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한국대사관의 그 누구도 통일교회에 와서 인사할 때가 올 거예요.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기분 좋아요? 「좋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려고 할 때, 미국 국무성에서는 `요주의 인물 미스터 문’이라고 하면서 오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일년만에 전부 다 복구했습니다. 또 일본 외무성에서 한국 주재 대사관에게 미스터 문을 일본에 보내지 말라고 3개월 전에 통첩을 보냈는데, 선생님은 그들을 제치고 일본에 들어갔습니다.

못난 녀석은 집에서 왕노릇하고, 잘난 녀석은 밖에서 큰소리 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졸장부와 같은 선생님이지만 외국에 나가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통일교회가 잘나서 그런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모르는 일을 선생님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내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4-43
우리의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힘차게 전진하라
이제 우리의 때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상속권을 좌우시킬 운명의 판가름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선을 주체로 삼아서 선의 권한을 가지고 선의 실적을 세움으로써, 당당코 선은 이렇고 악은 이렇다는 선악의 판가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예수의 사명을 위해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망하면 문선생은 왕지옥에 가야 합니다. 이 나라의 민족 문화가 침식을 다해 말살되고 초죽음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민족의 경천사상이 주입되어서 수십세기 후에도 그 사상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진리를 가졌다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통일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 한 사람이 남아도 세계의 국가와 민족은 재편성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천이 있다 할진대는 현실의 슬픔만 갖고 살 것이 아니라, 미래에 찾아올 복을 그리워하고 낭만적인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심적인 사나이가 가는 길이 통일교회의 길입니다.

이것이 멋지다는 것입니다. 넥타이를 매고 쇠고랑을 찼더라도 멋진 건 멋진 것입니다.

몇 년 전 김창룡 사건때, 허대령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자기가 전체를 책임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통일교회 이념을 가진 사람은 그 이상의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통일교회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상이 되어 있습니까? 「예」

여기 일본 사람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까? 「예」 정말 믿어도 됩니까? 「예」 그렇다면 그만큼의 심정을 갖고 있습니까? 「갖고 있습니다.」 1억 인구를 굴복시킬 수 있는 그 이상의 힘을 갖고 있는가, 아시아 11억 인구를 굴복시킬 힘을 갖고 있는가 말입니다.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입니다.

미국에 가보면 머리가 큰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코가 한 뼘 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눈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빨려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맨 처음에 볼 때에는 기분이 나쁘지만, 다 같은 사람들이라서 정이 들면 다 마찬가지입니다. 정들면 인종 구별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어서 놀란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도 어지간히 싸워 나왔지만, 나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을 두번째로 본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길로 갈 것이냐고 물어보면, 공식화된 대답을 합니다. 죽어도 이 길을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바라던 이상의 대답을 할 만큼 훌륭합니다.

선생님은 지금 세계를 몰아넣을 그물을 뜨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수많은 국가를 놓고 그물을 떠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도 미국도 일본도 그물을 뜨는 데는 똑같은 그물을 떠야 합니다. 하나는 명태 그물을 뜨고 하나는 고래 그물을 뜨면 뜨나마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다 같아야 합니다. 미국도 독일도 일본도 가 나라가 전부 다 똑같은 그물을 치게 되면 악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됩니다」안 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어디 가게 되면, 작년에 탔던 차는 안 되고 새차를 타셔야 한다고 합니다. 집도 새집이 있어야 된다고 하고, 선생님이 어디를 가더라도 일류호텔에 가야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좋은 사상입니까? 나쁜 사상입니까?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좋은 사상입니다. 내가 순회하지 않고, 여러분이 내대신 가서 본부에서 왔다고 하면 전부 다 높아집니다. 아버지가 잘 나면 자식도 잘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근원이 되어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여러 사람 앞에 가면 내가 통일교회 선생님이라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갈 길을 자기를 낮추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보면 굉장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 할테니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 할테니까 이야기 안 하겠어요.

24-45
선은 흥하고 악은 망하는 것
우리의 이념은 참 멋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통일교인으로서 세계 36억 인류 앞에 개인으로 나왔지만, 가정을 중심삼고 완전한 가정을 이루고,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중심한 하나의 종족을 이룸으로써, 세계적인 새로운 나라를 중심삼아 하나님께서 천상세계에서 인간세계로 찾아오는 데 있어서 다리를 놓아야 되겠습니다. 이 다리 끝과 저 다리끝을 연결해 놓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길을 찾아오고, 인간은 이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어떤 중심이 있을 때, 이 길을 모색해서 연결시켜야 합니다. 이 기준을 어느 때 연결시키느냐? 연결시킬 수 있는 동기를 만들려면, 세계적인 종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판국에서 우리는 힘차게 선을 지향해 가야 합니다.

선은 흥하는 것이요, 악은 망하는 것입니다. 악은 추방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후손들 앞에 전통을 심어줄 수 있는 기준을 현재의 여러분이 세워야 합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우리가 일차적으로 이세계를 감당해 가면서 제일 정성을 들여, 공산당도 능가할 수 있는 실천적인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국가 문제를 중심삼고 세계를 어떻게 연결시켜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금후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엄숙한 과제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불리워졌으니, 그 책임과 사명을 짊어진 자신이 스스로 택하고 스스로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시켜야 되겠습니다. 실제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는 세계의 식구들과 더불어 세계에 널려 있는 승리의 무리와 더불어 살아야 되겠으며, 내일의 만민이 바라는 표준적인 이상세계를 향하여 사는 이것이 확실한 것이라고, 세계 인류 앞에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 통일교회 여러분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전세계가 한국을 중심삼고 일치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닦느냐? 하나의 길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사방성을 가진 길을 지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통일교회는 국가를 위해 남이 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이 무용단을 창설할 때에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춘다고 하더니 정말 춤을 추는구만’ 하면서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문화예술을 세계에 자랑하고, 대한민국을 소개하는 좋은 기반을 닦았습니다. 또 우리가 승공연합을 만들 때도 지방에서는 코웃음을 치며 `통일교회가 국가 종교인가? 반공을 주도할 승공, 그까짓 걸 해서 뭘 하느냐’ 등 별별 소리를 다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3년을 넘기면서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95% 이상 정부의 강의를 책임지고 방첩과 승공사상을 강의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으로도 확산이 되었고, 이제는 모든 국가에서도 다 알고 있으므로 무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승공운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무엇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먼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있어야 하고, 가정이 있어야 하고,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국가 세계 천주로 나가는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는 일본과 중공을 하나되게 하면 아시아 일대는 간단하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구라파를 하나로 묶고, 세계 유엔 총회와 같은 아벨적인 기관을 만들어 소련을 제압하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그 일까지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찬성합니까? 「찬성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공부는 물론 불어 공부도 하고 무엇이든지 다 해야 합니다. 실력을 쌓지 않고서는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가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다」 30년 동안 지지리 고생하고, 지지리 욕을 먹고, 지지리 몰렸던 통일교인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선을 위해 태어났고, 선을 위해 살고, 선을 위해서 죽는 패가 통일교도들입니다. 그런 패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쯤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과 한 패가 되어서 욕을 먹었어도 그때가 좋았지요? 「그렇습니다」 그때가 통일패 시절이었습니다. 통일패라고 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통일패가 되어 가지고 통일의 무리가 되고, 그런 다음 세계의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까지도 요리할 수 있는 통일가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24-47
선을 위해 태어나 선을 위해 살다 선을 위해 죽어야 할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은 선을 위해 태어나고, 선을 위해 살고, 선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내 개인이 여기에 가담하여 내 가정을 여기에 가담 시키고, 내 종족을 여기에 가담 시키고, 내 민족과 국가를 여기에 가담시키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공활동을 할 때, 사회에서는 `통일교회가 자기들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 방법이지 무슨 재간으로 반공을 하겠느냐’ 하며 말도 많았습니다. 전도는 나중 문제입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 전도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렇게 우리 통일교회가 손을 대는 데에는 죽든가 살든가, 망하든가 흥하든가 둘 중의 하나인데 단연코 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당면 문제는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목사나 장로를 믿으라는 말은 없습니다. 장로교 감리교라는 교파를 믿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누구같이 믿어야 되느냐? 예수님같이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아야 합니다.

대한 민국을 볼 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왕래하신 깊이 있을 것입니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고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는 이 나라 이 민족에게 길이 있을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시아에서 쥐뿔만도 못한 나라가 5천년 역사의 문화 민족의 긍지를 지니고 이어 왔다는 사실을 볼 때, 이 민족이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죽지 않은 씨로 남아져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끝날 올바른 농부를 만나 옥토에 심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 익는 날에는 세계가 이 종자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이 같이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나라는 망합니다. 하나님과 심정의 끈으로 연결돼 있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에는 그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통일교회가 필요하겠어요, 필요없겠어요? 「필요합니다」 통일교회가 아닌 그 어떤 교파라도 그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따리 싸 들고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민족의 역사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이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친 애혼들 앞에 부끄럼 없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주체의식을 갖추어 민족 앞에 서야겠습니다. 안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자진해서 해야 합니다.

24-48
세계통일에 앞서 하나님과 심정통일을 이루어야
오늘날 창설된지 단 50년 내에 세계 10억 인구를 농락하고 있는 공산당이 칼을 들고 나서는 그 앞에,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도 `나를 쳐봐라’ 하고 나설 수 있는 자신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는 통일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종족적으로, 민족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엇을 중심삼고 나갈 것이냐?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하여 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일 문제는 심정입니다. 그 다음은 사상, 그리고 행동입니다.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심정통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기적 민족감정이라든가 종족감정을 없애야 합니다. 세계인류를 위해 내 감정을 완전히 폭발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통일교회는 천정과 더불어 일치할 수 있는 심정통일의 기준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시작과 더불어 이행하고, 실천을 중심삼고 생활하고, 그 생활을 통하여 생애노정을 연결시키자는 것입니다. 생활과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망의 세계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책임분담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을 개의치 말고 타파하여 정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안 나면 심고 또 심어 백 번에 한번 나더라도 기어이 하나의 싹을 보아 이것을 고이 기른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천번 만번 풍파가 몰려오고 시련이 오더라도 사랑의 종자가 되는 선한 나무는 꺾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악한 쪽으로 후퇴하면 망합니다.

통일교회 후손들은 선인들의 조건을 세우기 위해 때가 오면 참된 것을 일시에 복귀하겠다는 신념과, 지쳐서는 안 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거쳐 나가면 이상세계가 오게 되는데, 그 이상세계는 싸움이 없는 세계입니다. 동서남북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동방은 서방, 서방은 동방, 남방은 북방, 북방은 남방과 서로 합해서 하나의 중심 앞에 연결되니 이 지구상에서의 공산주의는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동서로 분리되어 있는데 한 중심을 중심삼고 서로가 사랑하지 않고서는 세계가 하나댈 수 없습니다. 자기 자체의 나라보다 상대방이 진실로 더 귀하고 중하다고 하는,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선의 기반이 지상에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계적인 창조이상시대는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통과한 후에 영계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오늘날 통일사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종교라는 과정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양심과 더불어, 마음과 더불어, 몸과 더불어 행동함으로써 천륜의 법도에 일치하고 이념화 될 수 있는 먼 장래의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내 가정과 종족을 거쳐 민족을 넘고 국경을 넘어 자유로운 환경, 세계의 평면도상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고 사랑할 수 있는 선의 왕국을 이뤄야 합니다. 이러한 선의 왕국이 도래한 것을 찬양하고 세계만민이 그 나라의 국민이 된 것을 천주 앞에 영원 세세토록 찬양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인류가 바라는 행복의 이상세계를 영위하는 것이며, 통일교회가 모색해 나가는 종착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하며 심정을 통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교리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운행하고 계신가 하는 것을 알아서 행동을 해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수습하여 복귀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생활무대를 모색하고 계신가를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선에서 지휘관의 명령 여하에 따라 적진을 향하여 직행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고, 이웃 사람들과도 인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세계가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그것이 모두의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활철학을 중심으로 통일교회의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하여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말로만 무성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심판받는 무리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4-50
참는 자의 지혜
지금까지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명령하고 가르쳐 준 것들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이 실천하지 않고서 가르쳐 준 것은 없습니다. 선생님이 실천하지 않고 생활하지 않은 것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이 무어라 하더라도 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본이요, 절대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가르침이 행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민족을 위해 싸워 나왔습니다. 또 인류를 위해서 싸워 나왔습니다. 역사적인 심정을 품고 나오신 하나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현재의 `막판에서 이 길을 책해 가지고 나왔으니 내가 가는 길이 감옥인들 막을소냐, 죽임인들 막을소냐! 한번 태어났다 죽는 것이 자연의 이법이요, 진리 아니냐!’ 하며 선생님은 오직 이 길만을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 말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 길이 우리의 길이요, 이렇게 행동하여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으로 알고 싸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말없이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무언의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동정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악한 세계에 대해 변명하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변명은 악한 세계가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내 심정을 남기고, 내 때를 맞아 쌍수를 들어 하나님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그 심정과 일치하겠노라고 맹세하고 나설 수 있는 우리들이어야 합니다. 또한 수천년 역사를 참아 나오신 아버지의 인내성을 본받아야 하며, 무언과 인내로 역사를 꾸려 오신 아버지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억울하게 돌아가는 기로에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고 말했습니다. 천지를 품고 왔지만 가야 하는 마당에 있어서 자신의 후계자 한 사람을 남기지 못하고, 천년 만년의 한을 품고, 그 심정을 토론하지 못한 채 묵묵히 걸었던 십자가의 고통길이 얼마나 서러운 것이었던가를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제 1차 7년노정에서 갖은 수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감옥길도 죽음길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길가에서 잠을 자야 하는 신세도 되어야 했습니다. 모진 핍박을 받아 왔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고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한번 입을 열어 말을 하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할 말이 있지만, 우리는 무언의 가슴으로 참아야 합니다. 큰 일을 책임졌기 때문에 경거망동하면 천리의 대법도를 파괴하게 되는 것입니다. 10년이 가나, 20년이 가나, 30년이 가나, 40년이 가나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원이요, 우리의 실천방안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4-52
기필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신념으로 하루 하루를 살라
이제 제 2차 7년노정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입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이 세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면 선생님은 도리어 그러한 사람을 모시고 싶을 것입니다.

나 하나 잘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만민이 역사를 두고 생명을 바쳐 갚아도 그 빚을 못 갚고, 수천만 후손을 두고 빚을 갚아 달라고 유언을 하여 갚아도 못 갚을 내용을 남기자는 것입니다. 남겨진 이 전통적 사상이 있으면, 그 사상은 세계를 요리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이 길이길이 거할 수 있는 터전이 선이 갈 수 있는 길이요. 선만이 길이길이 승리하여 영원한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중심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그런 취지와 인식을 가지고 가담하여 나가야 되겠습니다.

한 개체를 중심삼고 존중하는 관, 혹은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세상의 그런 이기적인 관을 몰아내야 합니다. 선과 악이 대결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악이 선의 길을 막고 있으니, 악은 제거시키고 선은 붙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선과 악이 싸우는 도상에서 반드시 한쪽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역사적으로 고찰된 전통적인 이론이 확고히 서 있습니다 이것을 끌고 나서려면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물면서 하나님을 더 위하지 않고는 나설 수 없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내가 걷는 길은 조용히 가는 길입니다. 나를 찾고 나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수난보다 더 어려운 수난의 길을 거치고 극복해야 됩니다. 그래야 가정을 이끌고, 종족을 이끌고, 민족을 이끌고, 수난의 고빗길을 넘고 넘어 내일의 소원의 일념을 이루고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소원을 향해서 싸워야 하며, 출발에서부터 영원히 변할래야 변하지 않는 이념과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절대 철학을 가지고 나감으로써 일직선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결의와 신조를 남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선에 나서 선에다 살다가 선에 죽어야 하며, 심정통일 생활통일 이념통일을 이루어 가는 것이 천운에 동참하는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임을 알고, 말없이 참고 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안 하면 아들딸들이 후손이 여기에 걸려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루를 지날 적마다, 또 여러분의 방에 있는 시계소리가 들릴 적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 천추만대의 후손들의 운명이 갈라진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기필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선의 결과만 세우고, 모두가 선의 조국에 일치될 수 있는 천운을 상속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4-53
기 도
아버지,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당신이 가셔야 할 길에 이 천지간의 숙명적인 인연을 따라 태어난 통일의 무리들이옵니다. 비록 저희의 모습은 초라하고 정성은 부족할지라도 눈동자는 올바로 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침 점심 저녁을 드는 숟가락이 비록 초식 소찬이지만 아버지의 눈물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그래도 이것이 아버지를 영광되게 할 수 있는 생활의 터전으로 연결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어느 한 날 당신의 애절함을 알고 난 그날부터 수십여 생애노정을 거쳐오면서 보아 왔지만, 가면 갈수록 아버님이 불쌍하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가슴이 메이고 분하고 원통하며 아무리 통탄하고 탄식해도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인 원한의 터전이 남아 있기에, 이 구렁텅이를 메워야 할 탕감복귀의 대가가 오늘날 통일무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나 이들도 인간이기에 그 기력에 한계가 있어 가다가 지친 것을 많이 보았나이다. 그럴 때마다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아버지의 불쌍하심을 먼저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는 죽어도 아버지편에서 죽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이것을 위하여 민족앞에 몰렸고, 세계 앞에 버림받던 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망하고 쓰러지면 아버지의 위신과 처지가 위로할 수 없는 불쌍한 자리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아버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는 몇 천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가이 죽을 줄 아는 충신이 되고, 충효열을 표방해 나가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세월과 같이 흘러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더라도 아버지의 뜻은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놓고는 흘러가는 세월도 역류해야 되겠습니다. 하오나 저희들의 힘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싸우는 그 시간부터 십년을 지탱하기까지는 소모전이기 때문에 아버지만이 여기에 같이하고 아버지만이 저희와 내정을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들이 아버지의 사명을 잘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선악과 흥망성쇠의 결과가 아버님을 중심삼고 천운이 가는 길을 통해서 해결된다는 것을 오늘 들었사옵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가는 길을 마련하였으면 아버지 앞에 본이 되고, 민족 국가 세계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통일의 발자취를 남기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한 날의 영광을 위하여 스스로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를 모시고 전열을 정비해서, 남겨진 천명을 저희들에게 명령해 달라고 부탁하며 겸손한 산 제물이 되겠다고 각오한 몸이오니, 당신이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명령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죽음이 필요하거든 죽음의 대가를 치러 만민이 살 수 있는 그 길을 기꺼이 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열 두 시가 지났습니다. 전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이날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이 시간을 위해 모든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아버지, 받아 주실 줄 믿사옵니다.

천지를 우리가 다스려야 하오니 자신을 여서 전체 앞에 화동의 중심 되는 당신의 아들딸로 영원히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작은 자체를 큰 자아로 바꾸어 당신 앞에 드릴 수 있는, 그 길을 위해서 가는 당신의 참된 자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시간도 허락하신 뜻 가운데 일체를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금후 승공문제를 중심삼고 나감에 있어서, 그들은 나라가 있더라도 그 나라 누구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한국 본부에 와서 스승을 통해 배우고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들의 애절한 입장을 보게 될 때, 목이 메이고 통탄할 일입니다. 아버님의 아들딸이 어찌하여 이런 불쌍한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까?

아버지, 그러나 그들은 외로운 자들이 아니옵니다.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는 자리에서 아버지의 심정이 심어지고 민족의 혼이 심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하여 이 길을 자처하여 가는 그들 앞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대표하여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여 와 있습니다. 오늘 그들을 환영하는 이 시간이 기쁨의 시간이 되게 하시옵고, 영광의 심정적 유대를 공고히 할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깊은 심정으로 품으시옵고, 사랑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의 모든 것을 당신 앞에 맡기오니, 뜻하신 승리의 이념과 승리의 결과가 당신으로부터 시작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