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6 to 23-102: 왜 종교가 필요한가

왜 종교가 필요한가
1969.05.14 (수), 한국 대전교회

23-96
왜 종교가 필요한가
그 동안 여러분들이 본국에서 정성을 모아 기도해 주신 덕택으로 무사히 세계순회를 마치고 돌아와, 이제 부산 순회를 마치고 오늘 이렇게 대전을 찾아온 것입니다. 갑자기 많은 말을 해서 목이 쉬었으니 듣기 거북하더라도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선생님을 처음 보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내리십시오. 대부분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이겠지만 아닌 분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23-96
다가오는 우리의 시대
그러면 이제부터 말씀을 시작하겠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어떤 대중적인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시겠지 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좋고 재미있는 일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나쁘고 슬픈 일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볼 때, 혹은 역사나 현재 이 세계의 현황을 두고 볼 때는 자연히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지 못하고 슬픈 이야기, 또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여러분의 시간이 아니라 말하는 이 사람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은 여러분과 나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할까 또 여러분은 무슨 말씀을 들을까 하고 있으니 이것은 싸움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그 눈만은 선생님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이지만 오늘만은 선생님에게 팔려 왔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 시간을 한번 가져 봅시다.

이번 세계 순회 노정에 있어서 간단하게나마 총괄적인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다. 1965년도에 40여개 국을 순방할 때와 이번에 21개 국을 순방하면서 세계적인 정세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 이제 하나님이 지향하는 뜻과 이 세계의 정세가 하나 될 때가 가까와 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1965년에 선생님이 미국에 갔을 때 미국인의 사회생활을 보고 느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미국이 민주주의의 선도국가로서 언제나 자기네 나라가 아니면 세계를 수습하지 못한다는 그런 자부심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들의 사회속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가서 느낀 것은 미국 자체의 힘 가지고는 미국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민주세계 전체의 문제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전국민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상황과 사회적 흐름을 전반적으로 헤아려 볼 때, 우리가 해야할 사명의 시기가 촉박해 오고 있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동남아와 기타 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구라파 일대의 모든 나라가 미국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때에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사명을 다해야 할 통일용사들의 세계적인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는 처음 온 사람들도 많고 선생님을 처음 본 사람들도 많을 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깊은 말씀을 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것입니다.

사실 이번 지방 순회노정에서는 가정을 위주로 한 말씀을 주고 하려고 생각했지만, 처음 듣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입장에 서서 잠깐 말씀드리고 그 다음에는 통일교회의 가정을 중심삼고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목을 붙인다면 `왜 종교가 필요한가’가 되겠습니다. 종교가 왜 필요하냐? 오늘날의 이 사회의 지성인들이나 자기 나름대로 어떤 주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각기 종교의 이념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쟁이나 뭐니 하며 `하나님’ 하게 되면 머리를 흔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가 필요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현재의 사회실정을 봐서는 대다수의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이 종교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인데 통일교회도 교회라는 명사가 붙었으니 종교라는 것입니다.

23-98
악한 사람·악한 세상
그러면 통일교회는 교회로서 주장하는 색다른 무엇이 있느냐? 여러분들은 색다른 무엇이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만 해도 기독교, 불교, 유교 등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또, 기독교만 하더라도 여러 형태의 교파가 있습니다.

그러면 종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이냐?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세상이 악한 세상이고 현재의 세상 사람들이 악한 사람이니,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람이 되어 참된 사회와 참된 국가와 참된 세계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찌하여 본래부터 참되지 못하고 참을 희구(希求)하고 참을 바라는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슬픈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래 인간이 참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된 사랑으로 출발해서 참된 가정을 이루고 참된 종족, 참된 국가, 참된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구태여 종교라는 명사를 빌어 가지고 참을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또한 종교의식에 구애받고 제재받으면서 생활해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이 참되지 못하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줄곧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결국 이 세상이 선한 세상인가 악한 세상인가 하는 문제가 남을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죄악된 놈의 세상 어떻게 한번 뒤집어야겠는데, 그러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무엇이 나타나야 되는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현세를 말세라고 하는데 그것은 이 시대를 밟고 넘어서기를 욕하는 입장에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오늘날 인간이 왜 이런 입장에 놓이게 되었는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지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할 때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안 계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입장에서 생각할 때 계시는 것이 맞겠습니까, 안 계시는 것이 맞겠습니까? 계시는 것 같다는 사람은 종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요, 안 계시는 것 같다는 사람은 종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이런 두 패가 흥청거리고 죽느니 사느니 야단법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만일에 세계를 하나로 주관할수 있는 주관자가 있다 할진대, 세계 사람들이 그 주권자와 하나되기란 매우 쉬운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여러 자식이 사는 어떠한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자기가 일하는 집 같은 부잣집 아들로 한번 태어났으면 하는 것일 것이요, 주인한테 누구보다도 신임받고 깊은 사랑의 인연을 맺어 자기가 말하는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가정에서 있어서도 하나의 중심 책임자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집안의 형제들은 자연히 어머니 아버지 있는 곳으로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형님을 조금 더 사랑하면 동생은 샐쭉해 가지고 `아이고 우리 엄마 아빠는 형님밖에 몰라’ 하며 질투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부모에게나 자식에게나 어떠한 중심적인 존재 앞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본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지상정입니다.

23-99
종교의 당위성과 신의 존재성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한민국의 중심적 존재인 대통령을 가까이하려고 할 것입니다.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만일 세계의 대통령이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과 어떻게 하든지 가까이 하여 하나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이 잃어버린 본심을 통해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미 몇천 년 전에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세상이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나간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인류는 하나님을 대신할수 있는 자기 나름대로의 중심을 세워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하나님이 계신다고 대답하겠지만, 하나님을 봤습니까 할 때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이 계신다고 가정해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절대적이면서도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생각도 절대적이며 지향하는 목적도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그 절대적인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도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둘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한 분이신 하나님이 두 목적을 가지고 오늘은 여기 갔다 내일은 저기 갔다 하게 되면 그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변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인격자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인격자란 일생을 통해서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고, 의(義)의 수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무엇이 결정된 후에는 이렇구 저렇구 변명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우주의 법칙이 변할지언정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도 그러해야 하거니와 절대자이신 하나님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도 절대자이셔야 하고 하나님의 목적도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가는 길도 둘일 수 없는 것입니다. 단 하나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눈이 둘 있는데 이것은 왔다갔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이렇게 가면 다른 하나도 이렇게 갑니다. 만약 하나가 저쪽으로 가면 다른 한쪽도 저쪽으로 갑니다. 이것은 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개의 귀가 있지만 이것도 둘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를 듣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23-101
종교의 목적
그러면 우리의 생활을 놓고 볼 때 어떠한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인가? 어떤 절대적인 가치 앞에 상대적인 가치를 찾아 세우는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절대적인 인격자를 중심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향하는 절대적인 목적과 하나 되는 자리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가치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목적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이 그렇게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이 안계시든가, 하나님이 잘 못 만들었든가, 아니면 인간이 고장났든가, 이 세가지 중에 하나라는 결과에 부딪치게 됩니다.

어느 한 이쁘장한 아가씨가 있을 때 `이만 하면 이 다음에 훌륭한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 틀림없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가씨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곱고 아름답지만 그 마음이 복잡해서 하루 아침에도 몇 번씩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기에 아주머니들이 계시지만 여자들은 본래가 그런 소질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섭섭해하지는 마십시오. `선생님이 처음에는 말씀한다고 하시더니 여자들 흉이나 보는구나’ 하지 마십시오. 원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들의 말을 빌리면 남자들은 도둑놈입니다. 도둑놈이란 남의 물건을 슬쩍해 가지고 눈깜짝할 사이에 가져 가 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부모가 하라는 대로 죽도록 했어’ 그러는 사람 있어요? 머리가 좀 컸다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다고 엄마가 뭐 어떻구 아빠가 뭐 어떻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자신이 김 아무개다 박 아무개다 하는 입장에서 가만히 생각하게 될 때에 이 박이라면 박씨, 김이라면 김씨끼리 완전히 하나되어 있느냐? 완전히 하나가 됐어요, 안 됐어요?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디 우리 아가씨들, 하나 됐어요? 안 됐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 가운데 아무리 허울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을 분석해 보면,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로서 안팎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속사람과 겉사람이 대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그래요?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는 언제나 선의 마음과 악의 몸뚱이가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문제입니다. 이 싸움의 출처가 어디냐? 기원이 어디냐? 이싸움은 인간이 태어난 그날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싸움은 수만년 후까지 계속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오늘 이 세계가 말세에 처해 있는 것을 볼 때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종교의 목적이 무엇이냐? 만민이 선한 사람이 되어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평화의 여건은 어떠한 국제적인 정치가들의 손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정책이나 주의에 의해 가지고 세계에 평화가 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더구나 군사력으로 인해 세계의 통일과 평화가 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평화의 기점을 발견할 수 있는 그 근거지는 어디냐? 행복의 기점을 발견할 수 있는 그 근거지는 어디냐? 그곳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인 것입니다.

23-102
마음과 몸의 싸움을 해결해야 세계평화가 실현된다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 속에 두 싸움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아무개 하면 김 아무개의 안팎이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싸움패가 보기엔 하나 같은데 결과는 두 패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사람이 싸우면 몇 패가 됩니까? 네 패가 됩니다. 다섯 사람이 싸우면 열패의 싸움꾼이, 36억 인구 전체가 싸우면 72억의 싸움패가 생기고, 그전부가 분쟁할 수 있는 권(圈)을 갖추고 있으니 어떻게 세계의 평화통일이 이루어 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평화의 기점을 두고 볼 때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가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다루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해결방안은 맹목적이고 주먹구구식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믿으면 천당 가겠지’ 하며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만 부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알고 있지만 그렇게 해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도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종교는 본연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방황하고 있는 36억 인류 앞에 본연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공식을 제시하여, 너나할것없이 온만민이 그 공식을 통해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된다는 원칙이 세계에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수학이란 명사가 있는 한 언제나 적용되는 것처럼 종교도 그 공식을 세계에 그렇게 적용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인류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오늘날 일본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천주복귀는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말은 참 좋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장본인을 볼 때, 그 자신의 몸과 마음이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자신을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들어섰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도 절대적이 되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하시고 행복의 원천이시며 본체되시는 그 절대자께서 왜 인간을 두 속성을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 빚어 놓으셨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두 속성의 싸움은 태초의 우리 조상때부터 시작되어 왔습니다. 수천년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어 인간들 속에서 깨지기도 하고 일어서서 우물대기도 하면서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 세계 인류도 그러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우리는 이 싸움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하나의 목적을 향한 전진 명령을 내려서 싸움이 근본을 청산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모험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평화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다음의 말씀은 게재된 것이 없이 부득이 중단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