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6 to 23-78: 경계선

경계선
1969.06.29 (일), 한국 전본부교회

23-56
경계선
[기 도]

이 해의 절반을 보내는 마지막 안식일을 맞이했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아침에 무릎을 끓고 머리를 숙여 아버지 앞에 정성을 들이고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되고 그들이 가야 할 길이 당신이 가고자 하시는 방향과 일치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한국 땅인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이 땅을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며 기도하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수많은 자녀들 위에, 아버지, 축복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국가 세계가 한 기점을 통하여 아버지와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될 것을 알고 도의 길을 가는 자녀들에게,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 날의 승리를 위하여 준비한 당신의 거룩한 역사적인 터전이 이땅 위에 승리의 결과로 드러나게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땅 위에 찾아오시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복귀라는 이 서러운 노정을 거쳐 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저희들이 원리를 통해서 배웠사오니, 그것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친히 행하신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당신의 가슴속에 맺힌 원한의 터전을 저희들이 싸워 극복하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여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위하여 부족한 저희들이 시봉하고 충효의 도리를 다한다 하더라도 제한된 몸이기 때문에 어느 한계선을 넘지 못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언제나 저희들을 찾아오셔서 붙들어 주셨사옵고, 저희들이 가야 할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격려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쓰러져 아버지 앞에 염려를 끼친 때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럴 적마다 아버지에게 슬픔을 자아내게 하였고, 아버지에게 고통을 등에 짊어지게 하였던 사실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도 당신의 뜻을 위하여 몸부림치면서 한 날의 승리를 위하여 정성들인 가정이 있사올진대, 그 가정에 천 배 만 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 위에서 정성들이는 무리들이 천상세계의 무리와 일치되어 하늘과 땅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현현과, 아버지의 행사하심이 실제로 온 횡적세계에 벌어질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할 수 있는 통일의 운세가 이 땅 위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침에 저희들을 모으신 당신의 은사 앞에 감사드리옵니다. 넓으신 아버지 뜻 앞에 하나의 모습을 갖추어서, 거룩한 성소를 거치고 지성소를 거치어 아버지께서 임재하신 존전에 불리움을 받아 직접 당신의 명령을 받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사랑의 손길이 풍부하게 미쳐지옵시길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3-57
말 씀
신앙길에 있어서는 언제나 넘어가야 할 고개가 있다고 봅니다. 신앙길도 신앙길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생활에 있어서도 역시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그런 것입니다. 일생을 잘라서 말하면, 여러분 같은 청년시대와 장년시대도 있고 노년시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청년이면 청년, 장년이면 장년, 노년이면 노년도 그 기간이 있어서 경계선이 있습니다. 이렇듯, 넘어가야 할 경계선이 우리 일생에는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23-58
하나님과 함께 경계선을 넘으려면
이 경계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편이냐 저편이냐 하는 두 편 가운데 한편에 속해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요, 오늘의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경계선이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보시는 경계선이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가는 길 앞에는 넘어야 할 수다한 고개가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혹은 국가, 세계, 천주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수다한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 고개는 우연히 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계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 경계선을 넘을 적마다 자기 스스로 이것을 타개해 넘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 넘어가는 길을 예비하고, 자기 스스로 그 넘어가는 길을 열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정성을 들인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경계선을 하나님과 더불어 넘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소유권 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경계선을 하나님과 더불어 넘지 않게 되면, 사탄과 더불어 넘어가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탄과그 경계선을 넘게 되면 사탄은 우리 인생이 가는 그 본향길에 있어서, 우리의 일생행로의 목적점을 향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 협조해 주고 그 길에 일치될 수 있는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번번히 탈선시키고 그 길과 반대되는 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그러했고, 이 시대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이러한 경계선을 넘는 데는 어떠한 동역자와 더불어 갈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기를 중심삼고 협조받을 수 있는 가정이라든가, 국가라든가 하는 이런 환경적인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주체적인 인연을 갖추어가지고 스스로 동기를 일으키지 않고는 그 환경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23-59
개인적으로 넘는 것도 귀하나 국가와 더불어 넘을 수 있어야
국가도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 것이요, 사회도 사회가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또 나 자신도 가야 할 고개가 있는 것입니다. 나와 사회와 국가가 가는 방향이 전부 다 일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경우나 그 입장이나 그 위치가 전부 다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이런 경계선을 넘는 것도 물론 귀하겠지만, 사회나 국가와도 인연을 맺어 가지고 경계선을 넘어가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입장의 동기를 누가 만들어야 되느냐? 이것을 움직일 수 있는 주체는 사회나 국가를 능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회나 국가의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람, 혹은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자기가 넘어가야 할 그 경계선, 사회가 넘어가야 할 경계선, 더 나아가서는 세계, 혹은 천운이 넘어가야 할 경계선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어떻게 이걸 일시에 넘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또 그런 사람일수록 세계사적인 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사적인 사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지향하며 넘어가야 할 경계선이라는 것은 역사에 없는 경계선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높고 길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가는 경계선이 최후의 경계선이요, 혹은 역사적 소망의 경계선이요, 하나님과 사탄이 여기서 판가리할 수 있는 경계선입니다. 또한 하늘과 땅이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을수 있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모든 것의 해결을 볼 수 있는 선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성사시킬수 있는 이 경계선이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3-60
경계선을 넘어가는 길은 하나
이 천주가 혹은 이 천운이 넘어가야 할 경계선이 오늘날 우리 앞에 남아진 것을 확실히 안다 할진대, 우리들은 그 고개를 넘고 그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 지금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홀로 그 고개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과정이 그러했습니다. 뜻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필코 넘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 길을 넘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그 경계선의 고개가 어떠한 고개이고, 어디로 가야 넘어갈 수 있다고 하는 그 방향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경계선을 넘는다 하더라도 잘못 넘으면 반드시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경계선을 넘어가는 데에는 어디로 가서, 어디를 넘어야 된다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 길은 많지 않습니다. 그 길은 단 하나입니다. 해방 직후 삼팔선 넘듯이 아무데나 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넘을 수 있는 그 길은 반드시 단 한 길입니다. 하나님도 그 길로 가야 되고, 역사적인 수많은 성인도 그 길로 가야 되고, 혹은 복귀노정을 가야 할 모든 사람들도 그 길로 거쳐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은 하나밖에 없는 최후의 경계선입니다. 그 최후의 경계선이 이 종말시대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경계선을 필시 넘어가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것을 넘기 위해 일상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훈련을 해야 되는가? 이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활태도나 모든 관념, 지향하는 목적을 전부 귀결시켜서 이 경계선을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생활 전체를 집중시켜서 이에 대한 해결점을 내놓지 않는 한, 여러분 자신이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 경계선은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그리고 천주사적 내용까지 종합한 경계선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나 홀로는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와 더불어 넘어야 할 경계선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역사과정에 있어서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해 싸워나오던 선의 기준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반드시 그 선한 기준에 닮아 가면서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는 못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23-61
이제까지의 모든 선의 기준을 한 곳으로 연결시켜야
그 기준은 이 시대 전체가 넘어가야 할 기준이기 때문에, 현재이 시대의 선한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기준을 다리삼아 그 기준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와 현재의 이 시대권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여기에 하나님의 귀중한 섭리의 손길이 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쌓아 나온 선의 기준을 이 터전 위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과거와 현재는 우리가 지금까지 거쳐 왔지만, 미래의 흥망은 반드시 이 경계선을 넘느냐 못 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인류가 이 땅 위에 태어나서 갖게 되는 필생의 소원이요 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과거에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무수한 사람들이 수고했어도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느 한계권까지는 선의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또한 이 시대가 그걸 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환경권내에까지는 선의 기반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연결시켜야 됩니다. 연결시키는 데는 내 자신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개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개를 우리로 하여금 넘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방향을 제시했고 역사과정에서 실적을 요구하며 그 흔적을 남기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일치화된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의 모든 선의 기준을 밟고 돌파하기 전에는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끝날은 어떠한 때냐? 이 경계선의 한계에 임한 때가 끝날입니다.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다리 놓아 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고개에서 저 고개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저 고개를 향해서 넘어설 수 있는 그 길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 두 경계선이 일치된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이 각기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는 길도 그렇고, 혹은 수많은 종교가 가는 길도 역시 그렇고, 천운이 가는 길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종합시켜서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한 분의 지도자가 오신다는 것입니다.이 사명을 하여야 할 분이 오시는 재림주인 것입니다.

그분은 이러한 모든 기준들을 연결시켜 가지고, 이 경계선의 한계를 한꺼번에 넘어야 됩니다. 이 한계선을 접속시키는 데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다한 탕감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선의 기준과 시대적인 선의 기준과 천운의 기준을 연결시키는 데는 그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았으니까 `이제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됐다’고 한다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23-62
필연적인 탕감의 과정에서 승리해야
여기에는 반드시 탕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 탕감의 과정 가운데서 역사적인 선의 기준을 밟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면 국가, 시대면 시대, 세계면 세계, 하늘이면 하늘, 천운이면 천운이 지금까지 성사하지 못한 모든 내용을 탕감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경계선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복귀노정이라는 말을 잘 하고 있습니다. 개인복귀 가정복귀 종족복귀 민족복귀 국가복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복귀는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벌어집니다. 그것이 우연한 역사가 아니라 필연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공식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갑이나 을이나 혹은 동서남북 사방의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 과정을 반드시 공식적으로 거쳐가야 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후 관계가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경계선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고개를 넘게 될 때 마음을 다른 데 두고 넘으면 못 가는 것입니다. 모든 신경과 관념이 집중되고, 온 생명요소가 전부 다 집중되어야 합니다. 이래서 경계선을 넘는 그 순간, 그 찰나에 승리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승리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도 못 갑니다. 또 승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사람들은 역사적인 이념을 상속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 앞에 자기가 지금까지 갖추어 놓은 모든 것을 상속해 주게 될 때 자식들 중에서 누구를 찾습니까? 그 가정의 자손 중에 가정을 완전히 이끌고 갈 수 있는 자식을 찾는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자체 앞에 끌려가는 자식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끌고 갈 수 있는, 다시 말하면 가정에서의 승리를 확보한 자식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에 있어서도 대표자로서 그러한 사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그 국가를 인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생님은 오늘날 천주주의라는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은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입장을 생각하게 됩니다. 천주를 끌고 갈 수 있는 천주적 권한을 어떻게 해서 획득하느냐? 천주주의권을 획득하기 전에 먼저 경계선을 넘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탕감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러면 그 경계선이 험하면 험할수록 거기에 대비해 가지고 내가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자주적인 역량을 어떻게 보충하고, 그 자주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러한 고개를 넘고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사람들이 많아 왔다 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인류역사상에, 인류문화사에 공헌한 성인 현철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그들이 걸어갔던 선의 최고의 목표를 계승해서 넘어갈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현실의 이 사회라든가 온 세계를 두고 볼 때, 이 국가와 세계가 그러한 입장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선을 향해서 넘어갈 수 있다는 세계사적인 기준을 책임질 수 있는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그 경계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이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고 사는 우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고,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복귀섭리해 가시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일개 가정의 사명뿐만 아니라 이 엄청난 천주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은 이 경계선을 넘어가면서 `오늘 못 가면 내일 가지’ 하는 식으로 가면 안 됩니다. 여기에는 분 초의 시간도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지만, 미리 가서 기다리지 못하고 1분 1초라도 늦은 사람은 또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용서 없는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 길을 여러분이 걷고 있고, 여러분이 보고 있고, 여러분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3-64
경계선으로의 직행 방향을 제시하는 통일교회
그러면 그 경계선을 넘을 때가 언제냐?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체의 개성이 다르니만큼, 자기의 인생관을 중심삼고 가야 할 그 경계선이 어느 때에 여러분과 교차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아직은 그 경계선에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하고는 관계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통일교회전체가 한꺼번에 부딪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기의 영역에서 출발해서 가야 할 경계선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각 개인이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태어난 날이 다르고, 여러분의 개성이 다르고, 여러분이 지향하는 목적관이 다르고, 마음에 지닌 바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 목적관에 차이가 있고, 전부가 천태만상으로 이 경계선에 접근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일시에 넘을 수 있는 이 길도 까딱 잘못하는 날에는 10년, 20년 더 연장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를 소화시킬 수 있고 시대를 감정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는 어떻게 돼 있느냐. 이 시대는 역사를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경계선으로 직행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점은 무엇이냐? 통일교회 가정들이 여기에 모여 있지만,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전부 다 전후 좌우를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식구들의 생활을 빤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 자체는 들여다 볼 수 있지만, 배후의 인연은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선조로부터 연결되어 내려오는 그 모든 배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런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저런 방향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식구면 식구끼리 의논하고 협조하는 데 있어서 판단을 잘 해야 합니다. 내가 의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올라가는 길에 서있는지, 내려가는 길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릇되게 가는지, 바로 가는지를 잘 알고 의논해야 됩니다. 이것도 잘 가리지 못하면서 의논할 사람을 따라가면 그 사람은 신앙의 고개를 넘어가지만 자기는 못 넘어갑니다. 이런 결과가 벌어집니다.

신앙생활하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타격을 받고, 또는 어떤 사람 때문에 자기 갈 길을 못 가는 사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작용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대낮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한밤중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갈 길을 가리지 못하고 그저 다른 사람을 따라가다가는 타격 받습니다. 자기는 밤을 중심삼아 가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대낮을 중심삼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다가는 그 사람과 반드시 엇갈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른쪽으로 가는데, 어떤 사람은 왼쪽으로 갑니다. 그렇지만 원래는 같은 기준을 통해서 가야 됩니다. 이렇게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천태만상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계선을 넘어설 수 있는 주체는 누구냐? 내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개인 문제에서부터 가정 문제, 종족 문제, 민족 문제까지 거쳐 나가야 됩니다. 그 민족권까지는 자신이 개척해야 됩니다.

23-66
개인의 경계선은 다르나 국가의 경계선은 같다
여러분! 60만의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가려 할 때, 바로가 열번이나 모세를 속여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입니다. 애급에서부터 가나안까지 가는 것은 큰 모험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생활기반을 버리고 떠날 때는 전부다 때려부수고 떠나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모세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하는 통보만 하는 것입니다. 결정은 자기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정해서 가는 데는 단단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수난의 경계선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데, 이것을 몰랐습니다. 개인 문제만 해결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자기만 결정해서 나서면 될 줄 알았고, 자기 개인의 고개로 끝날 줄 알았는데, 민족적 수난의 경계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개인을 요구하는 것은 민족적 수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요, 민족을 요구하는 것은 국가적 수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요, 국가를 요구하는 것은 세계적 수난의 길을 탕감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개인이면 개인,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 전체가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엇갈려 있는 환경을 타개해야 할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필시 넘어야 할 이 경계선의 한계점을 어떻게 넘어 가느냐? 어떤 사람은 이 경계선을 넘어간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은 번번히 고생해야 하는 고생길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고생을 안 합니다.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지금까지 개척 역사를 이어 왔는데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 좀 좋은 자리에 보내 주었는데도 지지리 고생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생을 안 해서 고생시키려고 어려운 곳에 보냈더니 고생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 개인이 가야 할 경계선을 이미 자기 선조의 공적을 통해서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인이 가야 할 길이 천태만상이기 때문에, 백 명이면 백 명 각자가 가야 할 경계선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방향도 다르지만 위치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으로, 어떤 사람은 서로, 동으로, 북으로 전후 관계가 엇갈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엇갈려 있는 모든 것이 국가라는 그 영역 가운데서는 통합되는 것입니다. 또 국가를 중심삼은 수많은 민족들이 있으되, 국가라는 배경을 중심삼지 않은 개인은 전부 다 엇갈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해서는 모든 것이 통합돼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지금 엇갈려 있지만, 천주를 위해서 통일돼야 됩니다. 그러한 해결을 할 수 있는 기점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3-67
보다 큰 경계선을 찾아 넘으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오늘날 우리 인간으로서 필시 가야 할 경계선을 몇 고비를 넘겨야 되느냐?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하늘땅을 잃어버렸습니다. 세계를 잃어버렸고, 나라를 잃어버렸고, 민족을 잃어버렸고, 종족을 잃어버렸고, 가정을 잃어버렸고, 개인까지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개인은 개인이자 가정이요, 가정이자 종족이요, 종족이자 민족입니다. 그 통로만 거쳐 나가면 자동적으로 세계, 천주까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 개체가 전부다 이러한 고개를 해결지어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이러한 고개를 넘기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가‘민족을 위해서 싸우고 민족을 위해서 신앙하자, 국가를 위해서 신앙하자, 세계를 위해서 신앙하자, 하늘땅을 위해서 신앙하자’고 했습니까? 그런 종교가 어디 있었습니까?‘내가 천국 가자’는 종교는 있었지만, 그런 종교로는 하나님이 지향하며 찾아 나오고 세계 인류가 공감하고 공동적으로 가야 할 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무엇을 갖고 나왔느냐? 개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단계적으로 해결지으려는 사명을 갖고 나온 것이예요? 우리는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천주입니다. 우리의 경계선은 그것입니다.

그러면 그 경계선을 확실히 아느냐? 국가가 가야 할 경계선은 이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 개체는 전부 다 다르지만, 국가가 가야 할 경계선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걸 중심삼아 가지고 일치 단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인 경계선, 가정적인 경계선, 종족적인 경계선, 민족적인 경계선, 국가적인 경계선을 일시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적인 경계선을 넘고, 가정적인 경계선을 넘고, 종족적인 경계선을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하나님을 믿으라. 네 죄를 전부 다 불태워 버리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최후의 경계선의 중심이 누가 되느냐?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돌파해 버리고 혹은 경계선을 다 헐어버리고 결투해야 할 이때에, 복귀노정을 거쳐 온 이때에 역사적인 전체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계적이고 천주적인 중심인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기독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천태만상의 경계선을 넘어야 됩니다. 그러면 천운이 따라갈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올 때까지는 무조건 신앙의 전통을 계승해 나가야 됩니다. 또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냐? 개인생활을 알뜰히 하여 개인적인 경계선을 넘고, 가정적인 경계선에서 생활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진정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가정적인 경계선을 넘어서 국가적인 경계선을 넘어서야 됩니다. 그런데 국가적인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강인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민족과 자기 종족을 버리는 때도 있어야 됩니다.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종족과 민족을 버릴 때도 있듯이,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버릴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23-69
경계선에 관한 내용을 알아야 하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우리들이 필시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 길에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이 경계선을 일시에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경계선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고, 경계선을 넘기 위해 제시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경계선을 넘을 때는 혼자 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붙안고, 우주를 붙안고 이 경계선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넘는 데는 내가 우주 앞에 붙들려 가지고 넘는 것이 아니고, 천운을 타고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심전력을 다해야 됩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을 했던 그 시대에는 이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경계선을 넘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 삼아서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모든 것들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자세히 헤쳐 보면 나라를 위해서는 정성들인 것이 있을 것입니다. 국가 혹은 세계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해서 정성을 들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실패하면 가정이 실패하고, 가정이 실패하면 민족이 실패하고, 민족이 실패하면 국가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연속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에 국가가 승리했더라면, 이 승리한 국가에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이 모두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국가의 승리 속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실패는 가정의 실패의 동기가 되고, 가정의 실패는 종족의 실패의 동기가 되고, 종족의 실패는 민족의 실패의 동기가 되고, 민족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의 동기가 되지만 국가가 승리를 한다면 실패한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이 모두 승리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결국은 아담 하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계 전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담은 세계사적 책임을 진 세계사적 중심존재입니다.그렇기에 그 중심존재 하나를 중심삼고 전부다 연결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중심존재가 목적을 완성하게 될 때에, 그와 연결된 범위내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해방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재림사상의 목적을 이 나라에서 성사시켜 뭘 할 것이냐? 한반도의 통일교회에 있어서도 개인이 넘어야 할 고개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이 넘어야 할 고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넘어야 할 고개를 선생님이 책임지게 되면 여러분은 개인의 고개를 넘어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교회 문 아무개 개인을 위해서 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의 선한 실적을 승리적 개인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문제입니다. 미래에 있어서 당당코 승리적 기준을 가지고 천상세계, 혹은 지상세계 앞에 이 책임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3-70
승리적 기준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이념이 필요
이러한 사명을 이루어 복귀할 수 있는 입장에 선 개인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필요로 하는 것이 이념인 것입니다. 이념, 즉 무슨 주의냐 하면, 사랑주의라는 것입니다. 사랑주의. 그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 개인은 역사와 미래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적인 절대적 터전을 만들어 사탄과 싸워 이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엔 가정이 그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족이면 종족이 절대적인 기준에서 민족이나 국가를 대신하여 과거의 역사시대나 현재나 미래를 상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다른 종족들을 심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믿고 천당 가겠다고 나온 무리들은 모두 자기중심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자기 중심이 아닙니다.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중심한 자리에까지 가고자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것이 무엇이냐? 먼저 세계를 찾아 세우기 위해 개인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세계를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란 특정한 종족을 찾은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것을 망각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가 자기 민족 앞에 극복할 수있는 입장에 서기를 바랐습니다. 오히려 세계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찾아온 예수님에게 한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계를 해방시켜 가지고 영광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가 해방되어야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해방되어야 개인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해방되지 않으면 모두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될 때까지 천년사의 한을 품고 억천만년이라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종횡 관계의 식구를 갖지 못하고는 이런 반열에 설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두고 보더라도 전체적인 경계선을 넘어서야 바라는 바가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국가적인 한계선을 중심삼고 우리 민족을 볼 때, 삼팔선이 문제입니다. 삼팔선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선입니다. 이것을 무난히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북과 이남을 수습하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남북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 한 사람으로는 안 되기에 그러한 사람을 확보해야 합니다. 양적으로 수를 늘려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환경권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만들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앞으로 세계를 위하여 싸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싸우는 것은 대한민국만 하나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제 1기반을 이루는 것은 세계를 위한 제 2기반을 개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이 길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빨리 결말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이 싸움이 길고 길어서 지쳐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제 2의 세계전선을 향하여 출동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여러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서 지쳐서는 안 됩니다. 벼락 같이 단시일 내에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모든 지혜와 역량을 총집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모든 시련을 이겨 나가야 목적을 이루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23-72
우리에게 남아진 최대의 과제
대한민국에서 선생님이 바라는 목적이 무엇이냐?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로 갈 수 있는 터전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인류에게 하나님의 뜻을 상속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세상적인 관념을 가지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이 일심동체가 되어서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어디를 가든지 환경의 한계를 초월해야 됩니다. 우리는 같이 먹고 같이 살고 싶은 심정적 기준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전부 다 하나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세포같이 돼야 합니다.

일체를 이루어 모든 경계선을 극복해 넘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아진 최대의 과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그것을 위해, 자는 것도 그것을 위해, 오고 가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이런 신명으로 일체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나아갈 탕감의 기준에 따른 대가로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서슴지않고 치러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누가 희생될지 모릅니다. 내가 거기에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응당히 당해야 할 자신으로서 제물로 바쳐지겠다면 기꺼이 나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책임을 맡아가지고 경계선을 돌파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일본 식구들도 와 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만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개인이 없어 가지고는 그러한 나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이 없었고, 그러한 종족이 없었고, 그러한 민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국가는 그러한 민족이 없어 가지고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도 뜻적인 입장에서 볼 때, 하늘의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개체 개체의 인연으로 조성된 터전, 하나님을 중심한 종족적인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하나님을 중심한 민족적인 터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터전이 없어 가지고는 일본이 존속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감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말한 경계선을 아직까지 못 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가 있다면 모두가 하나되어 선의 세계를 향하여 최후의 전선을 돌파해 넘어가야 할 입장에서, 세계적인 운세를 대할 수있는 자격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넘어가야 할 최후의 경계선을 두고 볼 때, 대한민국만으로는 민주세계의 구원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세계에는 서로서로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 수 없는 경계선이 많습니다. 그 여러 경계선을 무너뜨려 세계를 하나의 공동적인 생활무대로 만들어 만민이 복지국가에서 살 수 있는 그때까지 계속 싸워 나가야 됩니다. 어떠한 장애가 있더라도 격파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힘이 부족한 것이 한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아가씨들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는데, 얼굴이야 어떻게 생겼든간에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23-73
우리 모두 단결하고 일심통일해서 이 뜻길을 가자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고 세계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가야 할 종족적인 과정과 민족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거기에 국가, 세계를 향해서 가야 합니다. 세계와 국가의 거리는 멀겠지만, 그 차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에 와서 뭘 했느냐 하면 이스라엘 나라를 짊어지려고 했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몰린 적이 많았습니다. 통일교회가 현재의 사회에 있어서도 문제를 제시하고 있지만,앞으로는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인류를 대신해서 우리의 기반을 완전히 갖추어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통일교회만이 삼천만을 구원할 수 있고, 공산당이나 어떠한 사상도 통일할 수 있다고 하는 기준을 제시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국가를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개인보다도, 국가보다도, 세계를 위하는 길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것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운동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볼 때, 이 나라가 세계 인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개인 가정 종족 국가 기준까지 한꺼번에 넘어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앞날을 살펴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어느 때에 경계선을 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확실히 모르면 지도자가 못 됩니다. 그때는 모든 정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나깨나 오나가나 모두 일체가 된 생활 전체를 동원해 가지고 승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일시에, 기도하면서 해야 합니다.그래서 생명까지 전부 내거는 그런 판단을 해야 합니다. 부활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하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즉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같이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런지 알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 이 아들딸의 자리가 천국으로 연결되고 하나님이 넘나드는 우주사적인 실체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은 가야 할 경계선을 넘어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다니다가 나간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거기에 누구 보기 싫어서 못 가겠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좋은데 아무개는 꿈속에서 봐도 재수없다’는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또 `누구 누구가 먹는 것은 안 먹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될 말입니까? 우선 내가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악한 사람이 먹는 것이라고 해서 안 먹겠습니까? 악한 사람이 마시고 사는 공기라고 안 마시겠어요? 그거 마시지 않겠다고 하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함께 먹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선생님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항상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것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자기자유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뜻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뜻 때문에 살지 세계적인 문제가 벌어지는 것 때문에 삽니까? 그 뜻길이 뭐냐면 온 세계 인류가 넘어갈 수 있는 고개, 즉 경계선을 넘어 가지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때문에 만민에게 필요한 길인 것입니다. 그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 제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제창한 시초가 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단결하고 일심통일해서 이 길을 가야겠습니다.

23-75
영계도 이 길을 가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향해서 잘 나아갑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복귀노정을 가려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가르쳐 준 것이 절대 아닙니다. 10년 뒤에, 20년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형편없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10년 20년 뒤에 천운이 어떻게 돌아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길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 앞에 가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보게 되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내가 창조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통일교회에서 새로운 말을 많이 했지만 여러분의 말을 들어 보게 되며, 뜻길에 오래 된 사람일수록 선생님의 말 그대로 되어 나간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얘기한 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난데없이 `그런 일을 해 가지고 장래에 무슨이익이 있고, 또 그 일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묻는 것입니다. 정말 절실한 입장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경계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가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필연적인 운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다 공동적인 목표를 향해서 공동적으로 가야 할 행로인 것입니다.

영계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영계에서 지상의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협조해야 합니다. 가는 데는 영계가 앞서 있으니, 통일교회가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민족을 동원하여 도처에서 우리를 공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기에 외국 식구들이 많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보면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 있는데, 여러분들이 그들을 대해 `일본 사람이 옛날에 어쩌구 저쩌구…’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일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별의별 헛소문을 다 내고 다니지만 내가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본에다 선교사를 보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시아를 통과해야 합니다. 아시아를 사랑할 때 일본을 빼놓고 사랑할 수 있나요? 또 대한민국을 사랑할 때 죄인들을 빼놓고 사랑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채찍을 맞고 사경을 헤매는 운명에서도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돌보는 사람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서 자기 편에 서는 사람만 사랑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미워하면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별의별 비난과 비방을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에게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도는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한국을 사랑한다는 말은 원수의 뼈가 묻혀 있는 그 땅을 사랑하고, 그 민족을 사랑하고, 원수의 뼈까지도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비가 오면 비를 맞게 하고, 아침 햇살이 비치면 그 햇살이 비치면 그 햇살을 볼 수 있도록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곳은 복된 곳이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최후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적인 감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3-77
세계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여자들을 보게 되면 `아이고, 난 한국 사람에게 시집 갈래’ 하는데 이런 관념을 초월하라는 것입니다. 또, 남자들도 한국 사람 아니면 결혼 안 한다고 합니다. 그 따위 시시한 생각 하지 마십시오. 서양 사람이면 어떻고 검둥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만 사랑하면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로 세계적인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나의 동반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최고의 선의 이상형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큰 것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통령을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합니다. 잘 먹고 잘 돌아다니고 자동차나 굴리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해서 뭘 하겠습니까? 대한민국 대통령도 세계를 위한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과제와 책임이 각자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일생에 한번은 죽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무서운 폭풍우가 치더라도 최후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잘 나가다가 경계선 앞에서 쓰러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경계선에 서 가지고 뭘 하느냐? 여러분 통일교회에 들어오기는 다 잘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각자가 자기마음대로 생겼지만 잘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려 뛰어가도 끝까지 갈지 모르는데 허둥지둥하다가는 가다가 마는 것입니다. 최후의 결승점까지 경계선을 돌파하지 않으면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천주복귀라는 엄청난 사명을 앞에 두고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은 싸움이 벌어졌으니, 세계적인 싸움터로 직행하자는 것입니다. `가자’ 이겁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해볼 만한 일입니다. 뒤에서 반대하고 핍박하더라도 내갈 길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반대하는 것을 관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 발 한 발이라도 어서가서 이 운명의 길을 거쳐 나가야겠다는 사람이 최후의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가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기구를 개편했으니 새롭게 움직여야겠습니다. 이렇게 움직이는 모든 것은 민족 또는 국가를 중심삼은 복귀라든가, 세계를 위한 터전을 넓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여러분은 순응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고 저렇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앞으로 개인을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남은 최후의 경계선을 돌파하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성원해 주고 기원해 주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23-78
기 도
남아진 복귀의 길 앞에 저희들은 충성하기를 다짐하였나이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선의 결과를 찾아 나오신 아버지의 행로가 그렇게도 비참하였고 슬펐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를 대할 때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당당코 아들의 모습을 갖추고 딸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사옵니다. 하지만 의붓자식만도 못한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른 사람이 많았사옵니다. 저희들만은 뼛골에 통하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대해 `오냐, 내 아들아 딸아’ 하시며 직접 화답할 수 있는 자리에 저희들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부모의 인연과 자녀의 인연을 가지고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은 가운데 아버지를 시봉할 수 있는 거룩한 통일교회 식구가 된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심정을 깊이 파고 들어가 아버님을 위하여 존재해 있고, 아버님을 위하여 태어난 몸이기에 아버님의 목적을 위하여 사라질 자체인 것을 스스로 자인하면서 아버님만을 위하여 가겠다고 노력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탄식하는 무리가 역사과정에 많았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렸사옵니다. 그러나 역사를 붙들고 세계를 붙들고 탄식하던 예수나 혹은 역사적인 성인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흘러갔지만 인류의 마음 가운데 신앙의 양식이 남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옵니다. 그들이 가정을 위하고 자기 개체를 위한 자리에서 탄식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위하고 더 나아가 후대를 위하는 자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을 시봉하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저희들은 아버지 뜻 앞에 불리운 몸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개개인을 놓고 볼 때, 몸은 별 차이가 없는 몸이오나 내정적인 심정이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왔고, 어디로 가야 하느냐에 대한 입장에서 인격적 가치가 결정되고, 그 차이가 보통 사람보다 크면 클수록 역사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통일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모여 있으나 절대로 저희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옵니다. 자기의 무엇을 자랑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 결코 아니옵니다. 벌거숭이 몸일지라도, 아무리 누추하고 남루한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더 높이 사랑하고 아버님이 찾는 민족과 나라와 세계와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누구보다도 먼저 결의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마음을 갖고 아버지 앞에 부복한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 이 가운데 아버지의 심정이 연결되고, 이 가운데 아버지의 사랑이 싹틀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자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아버지, 나는 갑니다. 나는 가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하고 결의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수의 장벽을 헤쳐 낼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아가 저희들이 원수의 장벽을 헤쳐버리고 승리의 깃발을 아버지 이름과 더불어 기필코 세우고 말겠다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수많은 민족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억천만 성도들이 오늘날 저희들 앞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자기 한 개체의 행로가 얼마나 지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옵니다. 오로지 당신을 위해 태어났고, 당신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살 것이며, 당신을 위해 살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사오니, 세계적인 승리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신념을 가진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 있어도 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아옵니다. 많은 무리의 수를 자랑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정예가 되어 당신의 마음을 감아 쥐고 당신의 심정을 훔쳐 낼 수 있는, 당신의 마음과 더불어 일치된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아버님을 위로하여 세계적인 경계선까지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불쌍한 대한민국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이처럼 남아질 수 있는 통일의 무리가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감사를 드리옵니다. 이렇게 감사를 드린 저희들이오니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아 천년 만년 아버지 앞에 슬픔을 남기는 불쌍한 무리들이 되어선 안 되겠사옵니다.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