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92 to 23-211: 불변의 모습

불변의 모습
1969.05.25 (일), 한국 전본부교회

23-192
불변의 모습
에베소서 6:24

[기 도(Ⅰ)]

아버님,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본향의 나라가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가 본향이라고 찬양하며 살고 있지만, 자손만대에 영원한 행복과 안식의 터전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나라가 없사옵고, 아버님이 영원히 안식하실 수 있노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이 땅 위에 없사옵니다.

아버님, 수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저희의 생활을 통해서,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하여 여실히 느끼고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고대하시고 찾아오신 본연의 나라와 본연의 세계가 당신이 수고하신 터전으로 남아 있사온데, 그 터전 위에 당신의 수고의 대가로 세우시려 한 한 중심, 온 역사와 더불어, 온 시대와 더불어, 또는 미래와 더불어 자랑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너무도 부족한 수에 머물러 있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아옵나이다.

당신이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수천년 역사과정을 통하여 선지선열들의 입을 통하여 증거하였으나, 이스라엘 국가는 예수님에게 비운의 한 날을 맞게 함으로 말미암아 흔적을 잃은 채 수많은 국가와 민족 앞에 몰리고 쫓기었습니다. 이제 늦게나마 아버님의 축복의 인연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제단을 묶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다시 아버지 앞에 봉헌할 수 있도록 민족적인 해방은 받았사옵니다. 하오나 그 민족은 세계 앞에 아버지의 제단을 갖추어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사명은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현시대의 실정을 미루어 볼 때, 아버님의 섭리역사는 어떠한 자리, 어떠한 나라, 어떠한 사람들로 하여금 시작되며, 운행되고 종결지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이 땅 위의 수많은 민족을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가가 아닌 것을 당신의 심정의 역사를 통하여서 여실히 저희들은 알고 있나이다.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 비참한 역사 과정을 통하면서도 아버지를 향한 일편단심, 충성의 마음과 절개를 갖춘 민족, 당신을 위함에 있어서 불변의 모습을 갖춘 그런 민족, 시기와 환경은 변할지라도 아버지에 대한 충성만은 변하지 않는 그런 민족, 그런 나라가 아니고는 당신과 인류가 찾고 있는 이상의 민족과 나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아옵나이다.

제3이스라엘의 현현을 저희들은 말씀을 통하여 알았사옵고, 그 제3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역사적인 어떠한 위인보다도 시대적인 어떤 유명인보다도 귀한 자리에 머물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그와 같은 가치를 뼈살에 사무치도록 알고, 아버지 앞에 그와 같은 자리를 찾아 드리기 위해 온갖 정성과 희생을 다하고, 그 나라와 그 백성을 이루기 위하여 충성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 저희들 다시 한번 반성해야만 되겠습니다.

여기에 외로이 모인 통일의 무리가 있사옵니다. 통일의 무리는 통일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끌림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이끌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무리입니다. 그리고 주관받아야 할 무리들이 아니라, 주관하여야 할 무리라는 것을 저희가 이 말씀을 통하여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주관하는데 있어서는 원리 원칙을 떠나서는 절대 주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적인 어떠한 힘을 가지고 주관하거나 통일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되어진 결과를 보아서 알았습니다. 하옵기에 저희들은 아버지의 심정을 중심해야 되겠사옵고, 아버지의 마음이 동하면 저희의 마음이 동해야 되겠고, 아버지의 마음이 정하면 저희의 마음도 정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가 슬픔을 당하시게 될 때 저희가 먼저 십자가를 짊어지고 아버지 앞에 쓰러질 수 있어야 하겠사옵나이다. 이와 같은 각오와 신념이 없어 가지고는 이와 같은 사명을 다짐할 수 없고, 이와 같은 심정의 인연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국을 중심삼은 새로운 역사적인 인연을 오늘날 저희들을 통하여 증거하고, 저희들을 통하여 나타내고, 저희들을 통하여 성취하시고 싶은 아버지의 내적인 사연이 있다 할진대, 오늘날 저희 개체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입장인가를 알고, 스스로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이것을 알았을진대, 아버지의 뜻앞에 엎드려 최후의 명령을 기다릴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을 확실히 알게 하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이 이제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아버지 앞에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현재는 이러한 몸이라고 직고하고, 당신이 요구했던 뜻 앞에 불충하였던 사실을 비판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난 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죽는 그 자리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증거하고 사라지게 허락하여 주시오며, 생활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살 수 있는 진실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을 돌아보게 될 때, 아버지의 슬픔이 그 나라와 그 민족에게서 뗄래야 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보았습니다. 아버님, 한국도 그와 같은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슬픔의 새싹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쁨의 새싹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슬픈 내정을 살펴 보게 될 때, 아버지의 역사적인 슬픔의 모든 결과가 저희들로 말미암아 되어졌음을 알게 해주시옵고, 오늘날 저희들이 새로운 내정적인 인연을 폭발시킬 수 있는 한 동기를 이루어 놓아야 할 것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5월 들어 마지막 성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저희들이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지 못할진대 저희의 일생은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덧없이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흘러가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흘러가는 세월을 막고, 악한 모든 터전을 무찌르고, 선의 터전을 닦고, 악한 사람을 교화하여 선한 사람으로 복귀시켜야 할 천명을 받들었음을 절감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 450만이라는 이 서울 시민을 앞에 놓고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사옵고, 삼천만 민족을 앞에 놓고도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더욱이 앞으로 무엇을 중심삼고 갈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 민족 앞에, 하늘 앞에 어떻게 봉헌해 드릴 것인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 민족 앞에 저희들이 있는 충성과 노력을 다해서 아버지의 원하시는 소원의 일념을 남겨 주고 가겠다고 온갖 성심과 정성을 다 드리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을 생각하게 될 때, 그때에는 저희들이 말씀을 들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설 수 없었던 것을 그토록 분하게 느끼던 한 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심정의 인연이 이렇게 귀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린당한다고 아버지를 부여안고 통곡하던 시대가 있었사옵니다. 언제 마음 놓고 저희가 권위를 갖추어 아버지의 안타까웠던 사정을 당당하게 통고할 수 있는 한 때를 가져보았습니까? 그와 같은 시대에 처해 있는 저희들이온대, 아버지의 뜻 앞에서 진정 아버지가 원하시는 바를 이뤄 드리겠다는 갈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만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아들딸이 없는 이 비통한 사실을 절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여기에 몇 명이라도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중심하여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 경배드렸습니다. 새로운 체제를 갖추어 가지고 움직일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하늘이 맡겨 주신 책임을 맡았으면서도 저희들이 맡은 바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것을 회개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 앞에 다시 한번 흩어진 마음을 수습하고, 상처 입은 자리에 기름을 바르고, 헤어진 옷이나마 기워 입고 아버지 앞에 나와서 겸손하게 엎드려 회개하여 지난날을 청산짓는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새로운 소망의 뜻 앞에 당신의 마음과 하나 되기 위한 내적인 심정의 터전을 다시 묶어 바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끔 이 시간 역사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나 저희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자신들을 바라볼 때, 아버지가 저희들을 믿고 바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 앞에 자기 몸을 내세우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만으로 아버지 앞에 충과 효의 인연이 닦아지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고 싶사오나 그럴 수 있는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느끼옵니다. 무화과나무로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던 아담 이상으로 더럽혀진 후손된 자신임을 자탄하면서,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을 바라고 한 없는 눈물을 뿌리며 과거를 회개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마음 깊은 가운데서 아버지와 저희와의 인연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와 저희와의 인연이 저희 자신들의 생활을 통하여 맺어진다는 것을 알진대, 오늘의 이 현실이 얼마나 통탄할 현실인가를 다시 한번 자각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의 마음생활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심정적 절개를 갖지 못할 땐 복귀역사노정에 있어서 얼마나 큰 반역을 하는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에 있어서는 아버지 앞에 효도하는 효자 효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활에 있어서는 아버지 앞에 충성할 수 있는 충남 충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마음을 털어 놓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모습이 추하고 남루할지라도 아버지의 품을 향하여 달려가는 마음만은 변치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매를 맞는 자리라 할지라도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마음대로 하시라고 할 수 있고, 당신의 한이 풀리실 수 있을진대 고이 눈물로 감사하며 맞을 수 있는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매질하시던 그 자리에서 다시금 새로운 사랑으로 저희를 복돋워 주시고, 부모의 심정을 다시 한번 폭발시키게 할 수 있는 역사를 오늘 이 시간 내려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진정으로 아버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버님의 뜻을 위하여 진정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적인 것을 겸한 자리에서 행하였습니다.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아버지를 찾지 못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일할 수 없었던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심히 부끄러운 모습이었사오니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은 거룩한 무리들을 얼마나 찾아오셨습니까? 성별된 무리를 얼마나 고대하셨습니까? 그러하시기에 가정의 핍박과 나라의 핍박 속에서도 아버지께서는 깨끗한 자리에서 저희를 성별시키시어 당신의 영원한 자녀로 만들기 위하여 수고하셨던 역사적인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때는 그럴 수 있었던 저희들의 모습이 다시 더럽힐 대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당신이 성별시키던 때보다도 더 부끄러운 모습으로 다시 회생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사옵니다. 하오니, 아버지의 통탄하심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자인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는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이 많았사옵니다. 이 시간에도 당신을 아버지라고 절규하는 무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당신께서 `오냐, 내가 바로 너희가 찾던 아버지다’고 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얼마나 되옵니까? 그 자체가 아무리 추하고 비참하다 할지라도 당신이 아들딸이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이 있다 할진대는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할 때, 또다시 아버지는 영원히 슬플 수밖에 없는 역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수많은 원수들 앞에 조롱을 받으면서 선두에 서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목을 놓아 통곡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천주의 대주재자이신 아버지께서 그와 같은 자리에 머물러야만 되옵니까? 저희 스스로 자초한 한을 붙들고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당신의 옷자락을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자녀의 모습이라도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내가 이와 같은 사정과 이와 같은 입장에 있었던 것은 저희들을 찾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또 당신의 아들딸이 이 땅에 남아지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나오셨는가를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은 잘 배우고 알았습니다.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행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문제인 것을 우리들은 이미 알았습니다. 지금은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인 것을 배웠사오나 저희들은 마음 깊이 아버님을 모시지 못하였고, 생활 가운데에서도 아버님을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저희들의 말과 생활 전체가 사탄과 동반하기 일쑤였고, 아버님의 마음에 못박기 일쑤였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스스로 회개하고, 다시 한번 아버지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의 섭리노정을 가는 사람들은 시대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그러하고, 금년 한 해도 그리고, 앞으로의 10년도 그러하고, 전 생애를 바쳐도 그럴 수 있는 생활을 연결시켜 수십 수만의 후손까지 연결시켜야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당신의 참다운 아들딸, 당신의 뜻을 맡길 수 있고, 당신의 심정을 영원히 통고시킬 수 있으며, 당신의 뼛골 속에 남아질 수 있는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것을 책임하기 위하여, 아버지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책임지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기를 다시 한번 아버님 앞에 맹세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기간에 있어서 아버지, 이 나라의 입장과 앞으로의 세계 정세를 두고 볼 때,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삼천만 민중이 아버지 앞에 베옷을 입고 일대 회개하여야 할 시대가 당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이제 6월 초하루부터 9월 말일까지 아버지 앞에 기도의 제단을 쌓고, 당신이 원하시는 소원의 나라를 향하여 베옷을 입고 엎드려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긍휼의 눈물을 흘리시며 돌볼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민족 앞에 다시 마련해 주지 않으면 안될 것을 절절히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을 이 시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자녀들이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여 이 시간에도 외로운 제단을 붙들고 아버지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사오니 천배 만배 복을 빌어 주옵소서. 그 자리에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공고히 하시어서 그들로 하여금 횡적인 면에 있어서 거룩한 생명의 등대로 삼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두운 세상에 광명한 빛을 전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의 기준이 되고, 아버지의 영원한 승리의 방패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리어서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통일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이 시간 아버지와 더불어 저희들이 심정과 사연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니다. 아멘.

23-199
기 도(Ⅱ)
아버지, 저희의 마음 자체를 아버지 앞에 솔직히 헤쳐놓고 하나하나 문답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 하나를 세워 놓고 아버지께서는 진정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몰랐던 내 자신이거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진정 이 시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사랑받을 수 있는 내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천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사랑의 인연을 내 생명을 들어 찬양할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변치 않는 아버지의 사랑으로써 금후의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당신께서 영원히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아버지 앞에 사랑의 대가를 이것으로써 대신하겠다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사옵니까?

과거에 각자가 지녔던 생활 환경과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무대에 있어서도, 이 자리에 참석한 마음의 바탕에서도 이것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명서요, 이것이 당신에 대한 사랑을 통고하는 통고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겠사옵니까? 만일 그것이 없다 할진대는 당신의 사랑을 유린한 자요, 당신의 사랑을 배신한 반역의 아들딸이요, 당신의 영원한 사랑을 사탄세계에 팔아먹는 역적인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내 손이 아버지께 사랑을 돌려 드린 적이 있었사옵니까? 내 발이 그럴 수 있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내 몸 자체가 그럴 수 있는 내용을 지니지 못하고 있고, 내 마음 자체가 그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의 터전이 되지 못한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자격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있기에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두려운 자신이 것을 다시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눈은 자기 이상을 중심으로 하여 아버지를 뵈오려고 하였고, 저희의 입은 저희의 지각과 저희의 지식의 기능과 지능의 기준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사연도 말하고 간구도 하였습니다. 아버지께 전부다 자기 이상을 추구하였사오나, 아버지께서는 우리 이상의 자리에 설 수 없는 아버지인 것을 생각할 때, 만약 그것을 몰랐으면 회개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위에 계신 줄 알고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는 마음을 갖고 찾아 왔사오나, 알고 보니 아버님은 저희의 발 밑에 계셨던 것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느끼며, 부끄러운 자체를 감출 길 없어 통탄하는 신앙을 뼛골에 체험한 자들이 되어야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인류의 앞에 서서 지도할 수 없는 불쌍한 아버지가 되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듯 낙오자의 처진 걸음을 걷고 계시는 아버지, 세상 그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는 절망 속에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모르고 철없이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불쌍하고 초조한 입장임을 잊어버리고 한 생명을 위하여 사경을 극복하면서 나오시는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저희의 세포와 감정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당신의 많은 사연이 이 역사 가운데 묻혀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 사연을 드러내지 못한 저희들은 천년 만년 한하여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불효의 자식들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내정을 이 민족을 통하여 마음 깊이 느낄 줄 알고, 묻혀 있는 수많은 역사의 비밀과 더불어 체휼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이와 같은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될 때에 그 사연을 대하기에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 앞에 이 몸 다 드리기를 고대할 수 있고, 부모를 잃고, 하늘을 잃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 이상의 슬픔을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의 복귀의 궤도에 저희들이 접어들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자에게 은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언제 변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저희가 십년 세월을 통일가의 문 안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외치며 나왔사오나 변하기 일쑤였습니다. 하루에도 몇십 번, 몇백 번 변하는 저희들이었습니다. 그렇게도 불신할 수밖에 없었던 저희 자신들이기에,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 앞에 동조자 되지 못했던 과거를 탄식하면서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다시 묶어 달라고 할 수 있고, 쓰러진 모습이나마 아버지를 향하여 일으킬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이 시간 당신의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기 전에 당신의 사정이 이렇다 하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현재 사정이 그렇다고 말하기 전에 그 이상 비참하였던 과거의 사정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모습을 바라볼 때 아버지 앞에 부끄러운 모습인 것을 알게 허락해 주시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할 내자신이 되어야 할 것을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에 이 서울 도성을 향하여, 또는 전국을 향하여 통일의 무리들이 새로운 역사적인 표어 아래 진군의 행보를 내놓는 이 한 시간을 가졌사오니, 오늘 그들 앞에 새로운 역사적인 심정의 인연을 두텁게 맺어 주시옵고, 가야 할 방향과 살아야 할 생활의 지침을 그들 마음 깊이 새로이 정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 나머지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3-202
말 씀
여러분들은 생활하면서 고향이 그리운 것을 많이 체험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고향 하게 되면 물론 자기 집이 연상될 것이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환경이 연상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연 가운데 묻혀 있는 집이면 집을 중심삼고 부모의 품에서 자라온 그 사연이 그 자연과 더불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23-202
외적인 고향과 내적인 고향
고향은 변해 간다 하더라도,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높은 산봉우리나 우뚝 솟은 바위와 같이 제일 높은 곳, 제일 깊은 곳, 제일 넓은 곳은 언제나 잊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상정인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인류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랑의 본향 땅을 세웠다 할진대는 이 본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왔다 가는 수많은 영인들도 저 나라에 가면 이 땅을 바라보며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여러분이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그리워할 때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향에 있는 친척, 혹은 친구라도 만나게 되면 밤을 새워 가면서 그 사연을 듣고 싶고 그 동정을 살피고 싶은 것과 같이, 만일에 오늘 이 세계가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이상적인 본향의 천국이 되었더라면, 이 땅을 거쳐가는 영인들에게는 이 곳이 본향의 땅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본향의 땅에서 자라던 그 환경의 인연과 그 땅에서 지내던 모든 친지라든가, 나아가서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 나라면 나라, 인류면 인류가 영인들에게 더없이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한번 가면, 물론 영적으로는 다시 올 수 있지만 실체를 가지고는 영원히 이 땅 위에 다시 나타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볼 때, 살아 생전에 이 땅에서 느꼈던 모든 환경, 느꼈던 모든 생활적인 인연을 통하여 엮어진 모든 심정의 내용이라는 것은 그들의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찬양의 조건이 되고, 영원한 천국에 있는 모든 동료들 앞에 자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땅에서 타락이 벌어지지 않고 천국을 이루었다면 이 땅을 거쳐간 수많은 영인들이 자랑할 수 있는 곳은 우리 개인이 본향을 중심삼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곳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인들도 거기에 높은 곳이 있으면 그 높은 곳과 자기를 관련짓고 싶어하고, 명승지가 있으면 명승지와 더불어 자기를 관련짓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가 있으면 그곳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전부가 그리워하고 자랑할 수 있는 한 곳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외적인 자연 환경도 그렇지만 심정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이 땅 위에 왔다 갔다 수많은 영인들에게도 고향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들과 맺어진 여러가지 사연이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의 조건이 됩니다.

이 땅 위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사랑의 심정적인 사연을 가졌다면, 그 사연 역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사연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모도 잘나기를 바라고 내심으로도 누구보다도 깊은 심정의 소유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 하는데 있어서 가정을 중심삼고 부모나 혹은 형제들과 얼크러진 심정의 인연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람과 동시에 자기 고향에 특수한 곳이 있으면 그곳을 자랑하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 있어서도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는 애국자가 되고 싶어하고, 누구보다도 그 나라에 있어서 인기를 누리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욕망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23-204
부모의 심정은 지닌 불변의 모습이 되어야
우리는 앞으로 모두 영계에 가게 됩니다. 땅 위에 사는 것은 잠깐이지만 영계는 영원한 세계요, 불변의 세계입니다. 그러기에 그 불변하는 세계에 가게 되면 변하는 모습 가지고는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예측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어찌하여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아 인간의 전체의 내정을 생각하게 되었느냐, 부모의 심정을 교훈 삼아 주장하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보게 될 때, 형제지애나 동포지애 같은 것은 외적인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심정만이 변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부모의 심정이야말로 저나라 즉 영원한 세계에 가서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상대적 심정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그러한 심정을 통해서 사랑하던 자연 환경이 있으면 그 자연 환경도 역시 변하지 않는 심정의 상대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일생에 있어서 잊지 못할 것은 명승지 자체가 아니라 심정적으로 인연이 맺어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사연이 담긴 곳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곳을 일생을 통하여서 그리워하게 되고 일생을 통하여서 회상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변치 않는 진정한 사랑의 심정이 거기에 인연되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 역시 퇴보해서는 안 됩니다. 영원히 발전하고 영원히 흥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비운을 맞이하고,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을 지니고 자기의 온갖 충성과 온갖 정성을 다한 흔적이 있다 할진대 그 흔적은 자기 개인의 흔적일 뿐만 아니라, 그 흔적이 민족 앞에 공인 받을 수 있는 내용을 갖추게 될 때는 이 민족 전체의 마음 가운데 기억되는 흔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민족의 마음 가운데 영원히 남아지게 되고, 그 민족이 영원히 회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미루어 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상에 사는 동안 여러분들은 어차피 그런 대상의 인연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의 마음을 지니고 자식을 사랑한 것은 자랑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그 나라의 동량지재를 만들기 위하여 사랑했다면, 부부면 부부끼리에 있어서 남편보다도 사랑했고, 아내보다도 사랑했고, 어떤 친지보다도 사랑했고, 자기의 형제들보다도 사랑했다면,그것은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아니 할래야 아니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걸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자식을 위해 사랑한 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많은 세월과 정성이 투입되었으면 투입되었을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자식에 대해 기대하고, 그 심정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은 어느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그런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만일에 자식에게서 불효하고 변하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나타나게 된다면 그 부모가 지금까지 자식을 위했던 모든 마음이 일시에 폭발될 수 있는 자극이 되고 비탄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자식을 사랑했다고 해서 자식을 사랑한 그것으로써 그 부모가 하나님의 본향땅에 가서 살 수 있겠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났으면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형제를 사랑해야 되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가정을 사랑해야 되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민족을 사랑해야 되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세계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23-206
영원 불변의 기준인 부모의 사랑
만일 이러한 기준이 자기의 혈육을 중심삼고 인연되어진 심정의 터전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 할 때는 그 마음을 중심삼고 어디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세계의 어디든지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세계의 인연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통일교회는 어찌하여 부모의 심정을 제일로 들고 나왔느냐? 우리는 인간 조상의 타락은 불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되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의 심정세계에는 하나님 앞에 속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남아진 불변의 기준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러한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인류역사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단 하나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하는 순간까지 사랑해 나오던 본성의 심정의 인연이 우리의 본심과 육을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인연으로 남아져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만이 타락권에 있는 우리 개체에 연결되어 남아질 수 있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앞으로 영원한 기준으로 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상세계 즉, 지상천국이 이 땅 위에 벌어지려면 그 기준은 무엇이 될 것이냐, 지상천국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냐 할 때, 그것은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떠나서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23-207
기쁨을 맞이할 수 없는 타락 인간
이렇게 보게 될 때, 변치 않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내 마음을 어떻게 회생시키느냐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 진정한 개체로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와 같이 역사적 기반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 세계를 만들어야 할 분이요, 그것이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까지 연결될 수 있는 영원한 세계를 만드시려는 소망을 갖고 계시는 분이라 할진대는, 이 길을 개척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분이라 할진대는,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가정이라든가 종족이라든가 민족을 사랑해야 하고, 민족을 넘어 세계까지 끌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분명한 사실로 체험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식구지간에 만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 하는 식의 얘기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서울 교회는 어떻고 지방 교회는 어떻고 하며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한 말을 무엇을 근거로 해서 말하느냐?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서, 즉 부모의 심정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아니면 현재의 자기 입장을 중심삼고 말하느냐? 자기 입장을 중심삼고 말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부끄러운 사실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기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정세계의 복귀를 위하여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배경 삼고, 그 터전을 희망으로 해야 하는 오늘날 신앙자들에게 있어서 매일같이 변하는 자기의 모습과 불의한 자기의 생활환경을 중심삼고 좌지우지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신앙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를 중심삼고 말하게 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좋으면 좋아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슬프면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가 우주의 공법을 통하여서 맺어질 수 있는 위치이냐, 즉 선의 결과적 존재이냐? 다시 말해 우주의 공법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주체라든가 대상의 입장에 섰느냐고 할 때, 타락한 인간은 그런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그냥 그대로 대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자신을 메우기 위해서는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제시하는 탕감복귀의 노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는 기쁨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과는 반대인 딴 곳에서 기쁨을 맞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23-208
선의 기준은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세워진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찾아나오셨느냐? 오늘날 인류가 찾아나가는 방향으로 찾아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선의 목적은 인류가 나가는 방향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어디에서부터 선을 맞이해야 하느냐? 반대의 자리에서부터 선을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우리 인류가 바라는 이상의 기준에 계시는 분이 아니고, 그 자리로 찾아 오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의 뒤에서 인류의 비참사를 책임지고 나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타락인간의 방향을 따라 전진하며 선의 목적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자리에서 선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맞기 위해서는 반대의 자리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 역사과정에 있어서 비참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찌하여 우리의 소망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의 세계에 현현하지 아니하시고, 지나간 역사과정과 더불어 비참한 환경에서 터전을 닦아 놓으셔야만 하느냐! 이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타락한 역사의 운명의 와중에서는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고 했습니다. 이것은 절대 불능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부자가 바라는 그 기준의 자리에는 하나님이 절대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낙오자요, 세상의 패망자요, 세상의 핍박을 받는 입장에 있어야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십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갖출 수 없고, 자기 스스로를 가꿀 수 없는 완전히 상실한 그 자리에서부터 선의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비참한 운명에서 싸우다가 이러한 비참한 운영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살고 있는 생활환경이 정상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짓밟혀져야 합니다. 오늘날 변해야 할 입장이 변하지 않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영원한 해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인간들이 지상에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그 생활 자체가 습관화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가 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고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없고, 새로운 뜻, 새로운 선의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간들을 찾아 나오신 기준입니다. 그러면 그 변하지 않는 기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애쓰는 것과 같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역사과정을 따라 나오고 계시기 때문에, 그 기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하나님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서 비로소 선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과 복귀의 원칙을 두고 볼 때, 이념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표방하는 변치 않는 것은 이 땅 위에 하나밖에 없으니 바로 과거 역사에 비추어 봐도 변치 않았고 지금도 변치 않으며, 시작도 변치 아니하고 끝도 변치 않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생명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랑이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이요,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역사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23-210
통일교회의 중심 사상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내세운 신조의 중심 골자가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땀을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종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수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해 수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하나님의 효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피의 제단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거쳐가지 않을래야 거쳐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건을 제시하고 출발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랑의 기준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땀은 땅을 위하여, 피는 하나님을 위하여 뿌리자는 것입니다.

지난날 역사과정에서 복귀섭리의 인연을 맺어 나왔고, 남아져 나온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느냐? 하나님을 위하여 순교의 길을 갔던 선열들의 피의 공로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2천년이라는 역사 속에서도 지금까지 남아져 왔던 것입니다. 만일 무수한 핍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이것을 지켜 나오지 않았던들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지 이미 오래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배후에서 변치 않는 심정의 인연을 가지고 나오시는 것을 인류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움직여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내정을 일편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서 하나님의 사정이 통과되는 그 순간에 있어서는 죽음의 길도 당당하게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듯이 그러한 심정을 체휼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찾아 줄 수 있는 가정을 위해, 하나님이 찾아 줄 수 있는 교회를 위해 꿋꿋하게 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정적인 터전이 역사의 배후에서 연결돼 나왔기에 기독교가 존속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수천년간 피의 대가를 치르고 남아진 제단이 기독교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수천년 동안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지킨 종교의 진리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도 그런 내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을 갖추지 않고 그것을 상속받으려고 하면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공을 들이지 않고 남의 물건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강도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불변의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 앞에 상대자의 입장에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땅 위에 실적의 조건을 남겨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나를 넘어서 하나님이 동행할 수 있는 기준에서 하나님이 움직였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한 위업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3-211
부모의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러한 나를 넘어설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눈물짓는 자리,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자기 일신을 망각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만이 하나님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만이 주체되시는 하나님 앞에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그 마당에 있어서 다른 부모와 달랐던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형제를 위하고 가정을 사랑하는 심정은 몰론이요,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위하는 심정과, 이스라엘 나라는 물론이요, 로마와 세계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수의 창끝을 넘고, 원수라는 그 울타리를 넘어가서 복을 빌어 주었기 때문에 사망의 세계, 원수의 세계, 형벌의 세계를 넘어서 소원성취의 사랑의 씨를 뿌릴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악한 죄악의 세계를 넘어서 심정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기원이 여기에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는 그런 자리에서도 천도를 따라서 원수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던 것과 같이 우리 민족이 처하여야 할 방향을 가려내야 합니다. 그래서 현세에 처할 수 있는 안일의 자리보다도 십년 백년 수세기, 혹은 수천년 이후에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자리를 위하여 책임지고 지도하는 지도자가 있다 할진대, 그 지도자는 세계에 남을 수 있는 역사적인 인물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런 지도자의 이념을 가진 민족이 있다면 이 세계가 망한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를 다시 찾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이 역사에 남겨질 최후의 민족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녹음이 여기서 중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