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 to 23-69: 가정

가정
1969.05.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23-07
가 정
마태복음 10:34-39

[기 도]

자비로우신 아버님, 이달 들어 두번째 맞는 안식일 위에 당신의 영광이 같이하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부족한 자신들을 봉헌하고자 하오니 전체를 받아 주옵시길 바라옵니다. 기나긴 역사노정에서 인간들이 그려 오던 모든 곡절과 환경을 온전히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고,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저희 한 개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아버지와 저희, 저희와 아버지의 관계를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부여하신 책임과 사명을 저희 각자가 이루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되, 아버지를 안다고 하는 사람도 있사오나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즉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알아 그 뜻을 받들려고 하고 그 뜻을 펴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버지의 뜻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를 몰라, 아는 입장에 섰지만 진정 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지극히 적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있사옵니다.

수많은 민족 가운데에서 불쌍한 이 한민족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 가운데서도 불쌍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자리에 모인 저희들은 수많은 곡절의 노정을 거쳐왔사옵니다. 슬픈 길, 싸움의 길을 개척해 나왔습니다. 그 누구를 위해서 이 길을 따라온 것이 아니오라, 아버지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따라서 이 자리에까지 나왔사옵니다.

이제 저희를 보내신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할 때가 왔사오니, 아버지의 그 소원과 저희 자신이 일치되어 저희들이 그 소원의 결과를 가지고 아버지 앞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여기에 어린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당신이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슬펐던 사정이 있거든 저희 개체 개체의 심중에 호소하여 주시옵소서. 원수와 대결하는 가운데에서 억울하고 분통한 사실이 있거든, 그 모든 것을 복수하여 탕감할 수 있는 일념을 저희들에게 옮겨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시작된 저희들이기에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아나기를 원하옵니다. 하오니 아버지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따라 나온 저희들 각자의 마음에 당신의 능력과 생명의 힘이 솟구치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민족의 어려움을 밟고 넘어가야 되겠사옵니다. 또한 저희들은 모든 혼란된 환경을 수습하고 가야 할 하늘의 명령을 받은 자로서의 책임이 지중한 것을 알았사오니, 이제 목적의식에 철두철미해야 되겠사옵니다. 원수가 이 목적을 가로막을 때는 그 원수를 밀고 나가야 되겠고, 환경이 응수할 때 그 환경을 제거하고 나가야겠사옵니다. 이러한 결의에 사무쳐 있는 한 개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저희들을 불러 모으실 때는 당신의 크신 뜻이 있었음을 저희가 아옵니다. 각별히 당신의 사명을 부여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명령하기 위한 뜻이 있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러하오니 저희 각자의 몸과 마음을 아버지 앞에 온전히 바쳐서 최후의 전선을 향하여 달음질치는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의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내적 장비와 외적 장비를 갖춤과 동시에 원수가 갖고 있는 모든 기량을 잘 파악해야 하겠사옵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가 금년에도 전면적 진격이라는 연두표어를 또다시 세우고 다짐하며 나가는 이 시점에서 하늘 용사의 모습을 갖추어 전진에 전진을 더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습니다. 저희가 처해 있는 어려운 환경과 외로운 입장을 박차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소원의 그곳, 아버지께 지향하시는 목적의 그곳을 향하여 달음질치기에 온갖 노력을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안식일이옵니다. 세계에 널려서 거룩하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 가운데에서도 외롭게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심정의 인연을 따라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통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한국에 있는 수많은 자녀들이 이 시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곳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본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그들 위에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신 사명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그들 위에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일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과 몸을 아버지 이외에는 그 무엇도 지배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만이 주관해야 되겠사옵니다. 본성의 인연은 당신과 영원히 생존하기를 고대하고, 본성의 심정은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영원히 봉사하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아버지로 말미암아 더욱더 깊이 관계맺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말씀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의 마음이 일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오로지, 아버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시작되고 아버지로 말미암음 결과를 가져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까지 당신이 친히 좌정하셔서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3-09
말 씀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다 가정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가정이 없이는 참다운 자녀를 키울수 없는 것이요, 참다운 사회의 형성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참다운 가정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사회, 국가,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23-10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교육이나, 수양이나, 종교는 개인을 위주로 하고 나왔습니다. 기나긴 역사과정을 거쳐왔지만 그 모든 목적을 달성하여 완전한 개인과 완전한 가정이 형성되었느냐고 할 때, 지금까지 인륜도덕을 세워서 강조해 나오던 모든 교양의 표준을 넘어서서 참다운 가정을 이룬 사람이 역사과정에 없었다고 우리는 단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도주들이나 성인 현철들도 그들이 바라는 이상의 세계가 있다면, 그것이 어떠한 공간에 자연히 실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그이상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반드시 그들 자신이 실천하여 전개시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먼저 행하여 그것을 가정에 옮겨야 되고, 종족에 옮겨야 되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세계에까지 옮겨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는 참다운 가정이 무엇이다 하는 정의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참다운 사람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그 한계점이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과정적인 현상에 처해 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간이 자기가 도달해야 할 목적의 표준, 수양의 기준, 인간 완성의 한계점을 규정하지 못한 채 역사를 거쳐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스스로 모든 역사와 미래에 통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의 기준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도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가정적인 기준이 형성될 리 만무한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수많은 인간들이 각자가 가야 할 인생행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더 큰 문제는 개인을 기반으로 하여 가정기준을 이루어야 하는 문제가 인류의 행로와 발전하는 인류역사 도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근본 궤도에 올라가 본연의 인류가 지향하는 본향으로 달려갈 수 있는 가정의 출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모든 인류가 고대하고 있는 이상향과 그들이 찾고 있는 목적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종교가 지향해야 할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물론 개인 구도의 목적을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나아가서 가정을 구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을 찾아 악주권에 속해 있는 인간을 죄악 가운데서 해방시켜야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하는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세계 인류들이 다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가정의 터전과 가정이 가야 할 정도(正道)의 기준을 확정해야 합니다. 그 가정의 제도가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이 지상에 평화의 세계를 창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것이 아무리 잘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내적인 가정에 들어와서는 파탄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3-11
행복의 근원과 하나님의 사랑이 실체로 현현할 수 있는 기점
인간생활에서 어떤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행복하다고 말합니까? 외적인 어떠한 능력·권세·권위를 가졌다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또한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또 세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결코 그것만으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이 행복의 터전은 가정이라고 일반적으로 느끼고 체험하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행복한 가정의 기준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부모 없는 자식을 고아라고 부르며, 그 고아는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는 동시에 부부의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는 것도 불쌍한 것이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이 없는 것도 불쌍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스럽게 지내던 부부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게 될 때는 더없이 비참하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가 자녀를 갖지 못하면 그것 역시 불행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회에 진출하여 성공하지 못하고 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권위와 자격을 갖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가정에서 참다운 부모, 참다운 부부, 참다운 자녀를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어 그 누구라도 그 가정을 본받고 싶어할 정도로 평화스럽게 산다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가정의 진정한 행복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또는 친척 씨족 부족 종족을 거쳐서 민족이나 국가 앞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있다면 민족이나 국가 전체가 흠모해야 할 가정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민족을 대표할 수 있고, 나아가 국가를 넘어 세계가 흠모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이 지구상에 현현한다면 온 세계 인류는 그 가정을 추앙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역사를 거쳐오면서 뭇 사람들이 성인 현철들을 추앙해 나왔지만 그들이 갖고자 하는 이상적인 가정, 그들이 사랑하고자 하는 가정, 그들이 사랑하고자 하는 효자, 그들이 사랑하고자 하는 부부를 중심한 가정의 평화가 되는 기점은 무엇이었던가? 이렇게 반문하면 아무런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찾아 나가는 최고의 행복의 터전은 무엇이냐? 그것은 심정입니다. 정서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인간의 실상을 두고 볼 때, 하나님과 종교와 영혼 문제를 입증시키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의 심정적인 터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말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어디에 나타나야 하느냐? 어디에 나타나야 하느냐? 모든 사람들은 자기에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한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그것이 개인에게서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에게만 나타난다면 그것은 일세기만 지나면 다 거두어져서 끝나 버립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그 사랑을 더 깊게 하지 못하고 옮겨 놓지 못하고 죽어 버리면 그것은 일대에 끝나는 사랑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원한 혈통적인 사랑의 기준을 세울 것이냐?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가정을 이루어 혈연관계를 맺는 자녀에게 그 사랑을 심어줄 수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영원한 사랑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무형의 하나님의 사랑이 실체로 현현할수 있는 기점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전체적인 기반이 무엇이냐 할 때 결국 가정이라는 곳에 귀결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3-13
인류 구원의 기점
현대사회에서 청소년 문제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된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그 동기의 80퍼센트 90퍼센트 100퍼센트 이상이 정서적인 문제에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형제를 잘 갖지 못한 데에서, 남녀관계에서 결여된 사정들이 원인이 되어 그런 결과를 자아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 모든 병폐를 시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 역시 가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의 역사 가운데는 혁명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 혁명의 결과로써 세계를 움직인 사실이 많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최후의 문제는 참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한 중심이 지구상에 현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세계의 창건, 새로운 역사적인 이상의 출발이 나타나야 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여러분 각자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올바른 가정의 기원을 갖지 못한 사람이 간다고 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갔더라도 안정된 목적점을 찾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시 가정으로 찾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생 행로인 것입니다.

본향을 추구해 가는 인간의 힘이 역사 전체와 모든 환경에 영향을 미칠수 있고 행복의 터전을 이루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인간의 힘의 기반이 되는 가정이 어디에 이루어질 것이냐? 오늘날 도라든가 종교는 사회에 공적인 이익을 주기 전에 가정에 공익이 되는 기틀을 먼저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리 그 종교가 사회에 공익이 되는 업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가정의 기틀이 틀어지게 될때는 사회의 터전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최초의 기점은 어디일 것이냐? 어떠한 문명을 자랑하는 특정한 국가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사회의 어떠한 조직이 이상적인 조직이라 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어떠한 개인을 중심으로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냐? 이 모든 것을 초월할수 있는 하나의 기점이 가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그러한 가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은 그런 가정의 문을 통과한 자격을 갖추어 승리자의 팻말을 들고 세계를 향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주의와 사상을 대할 수 있는 개체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찾는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오늘날 인간들이 `아! 지금까지 우리 가정은 행복하다’고 해도 그 가정의 행복을 미래에까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평화스러운 가정이라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음을 통고 받을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과 평화를 영원히 보장받을 수 있는 신념을 갖춘 그 가정을 이루어 어떤 슬픈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터전을 우리는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개체가 그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사람들이 이루는 가정도 그러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에서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죽는다 해도 그것이 불행의 요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가정을 찾기를 바라시고 수많은 종교도 그러한 가정을 찾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 불교의 비구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종교가 지향하는 목적이 틀렸다는 것인가. 틀렸다고 한다면 그런 종교가 지금까지 수고해 나온 터전, 그 종교의 배후에서 역사해 오신 하나님 자체도 다 거부당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느 한때에 참된 가정이 나와야 되기 때문에 그 가정을 맞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불교와 천주교에서는 독신을 강조하느냐? 그것이 전적으로 인간의 행복의 터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위의 어떠한 종교도 행복의 터전이 무엇이라고 제시해 주지도 않았고, 가정의 기틀을 중심삼은 계획도 없었거니와 그 가정 자체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런 가정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독신을 강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인간들이 순결하고 올바른 가정을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사람이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상적인 가정과 완전히 하나 되어야 할 가정을 추구해 왔는데, 그것이 성경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인가? 세상의 원수 가운데 누가 제일 큰 원수인가? 돈 몇십억원을 손해보게 만든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것은 손해 본 몇백 배의 돈이 생기면 그를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보다 더한 정도의 원수가 있다 해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원수 중의 원수는 무엇이냐? 심정의 적대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용서할 도리가 없습니다. 세상의 원수 가운데 원수는 무엇이냐? 사랑의 원수입니다. 즉 정적인 문제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 원수는 용서할 수도 없고, 이 원수를 용서하면 천도에 어긋납니다. 이것을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강조하는데 하나님에게 무슨 원수가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원수가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절대적인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상대가 이원적인 입장에 서게 될 때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서 상대성을 띠고 나타나게 되면 이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도저히 용납받을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국가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두고 볼 때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두 나라는 서로가 원수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동지적 입장으로 묶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이익을 중심삼고 원수가 되었다 하더라도 공동적인 사랑의 인연으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다수의 사람이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만일에 일본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찔러 죽였거나, 자기의 남편을 죽였다고 할 때는 아무리 국교가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에는 원수의 나라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개인도 그렇지만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유린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는 법을 세워서 평화의 기점을 마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평화의 기점은 절대적으로 단 하나입니다. 이것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기점이 둘이 되는 날에는 이상이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23-16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신 이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 원수가 있다면 그것은 선악과라는 물질적인 것으로 맺어진 원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사랑을 박탈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영원히 하나님과 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원수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에 반대되는 원수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인연을 파괴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들을 타락하던 당시에 용서해 주시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용서해 주시려 하는가? 그렇다면 모순된 하나님이 아닌가? 그것은 하나님이 절대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이 절대적인 기준의 자리에 도달하기 전에는 용서의 법도를 세우실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려 준다는, 용서라는 말이 기독교에 남아 있는 것이요, 말세라는 명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세라 할 수 있는 시대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무엇으로 원수를 청산할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이상을 중심삼고 원수를 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이 되면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있는 잘못된 사랑을 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지구상에 종말시대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부모의 사랑이 들이맞을 때가 왔고, 부부의 사랑도 들이맞을 때가 왔고, 자녀의 사랑도 들이맞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아내가 남편을 몰라보고, 남편이 아내를 몰라본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어디에 얽어맬래야 얽어맬 수 없는 때입니다. 인간이 행복의 요건이라고 주장해 오던 가정이 폭파돼 버리는 때입니다. 그러니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하나님이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는 때는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는 인간의 힘과 인간의 사랑으로는 수습할 수 없는 종말적인 상황에 도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새로운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은 저렇게 살려고 하는데, 아내는 이렇게 살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종말시대를 맞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된 것을 청산해 버리고 그릇되지 않은 본래의 기준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려니 옛것과 새것이 부딪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정을 개인들이 아무렇게나 세웠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가 죄에 대해 설파한 논법은 구체적인 것이요, 또한 그럴 수 있는 법을 근거로 했기에 타당한 설법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든 인간들이 바라고 이루어야 할 본래의 표본적인 가정, 즉 100점짜리 가정이 나와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10점짜리도 못 나왔다는 것입니다. 10점은 고사하고 차라리 가정을 이루지 않았던 것보다 못한 마이너스 100점짜리 가정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는 여러분도 기분 나쁘겠지만, 이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은 더 기분 나쁩니다. 마이너스 100점짜리 가정, 그 가정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해 보세요. 아무리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마이너스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태산준령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런 마이너스 기준이 되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23-18
표본이 되는 가정이 나와야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가정을 그냥 보고 앉아 있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방망이로 때려 부숴야 합니까?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오늘 저녁에 들어가서 여러분의 가정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웃음) 때려 부수기는 부숴야겠지만 부수는 데는 부수고 나서 건설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때려부수더라도 대안을 세워 놓고 때려 부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세계 가운데 어떤 가정을 표본 삼아 가지고 다른 가정들을 수습하려고 한다면 표본적인 가정을 세워 놓고 때려부술 것입니다. 이렇게 부수는 것은 악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악한 세계를 참다운 행복의 세계로 교체시키려는 교차로에서 부정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대안을 제시해 놓고 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눈동자를 보니까 다 찬성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직까지 뜻도 모르고 그런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뭘 알아야 찬성을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말씀을 듣고 나면 찬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기준이 되는 가정이 나오면 여러분은 따라가겠습니까, 안 따라가겠습니까? 만약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망해요, 망해. 망해도 싸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들어도 섭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눈을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튀어 나왔습니다. 전세계에서 눈이 제일 많이 튀어나온 민족입니다. 동양사람 가운데 한국사람이 유난히 많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눈이 나왔겠습니까? 여기에 선생님 같은 사람은 좀 예외이긴 합니다만…. 그런데 서양사람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눈이 들어갔습니다. 옛날에는 눈이 들어간 사람이 출세했습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때는 눈이 나와야 합니다. 끝날에는 눈을 감고는 못삽니다. (웃음)

이렇게 볼 때, 한국 사람들은 그럴싸하게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한 뼘 정도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이 눈, 코, 이로써 싸움을 하더라도 지지 않을 것입니다. (웃음) 서양사람들은 한쪽 눈으로 다른 쪽 눈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지만 동양 사람들은 오른쪽 눈으로 보게 되면 왼쪽 눈까지 보입니다. (웃음) 아주 잘 생겼습니다. (웃음)

동남 아시아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눈이 나온 사람을 보면 한국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조화의 능력이 아주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을 끝날에 잘 볼 수 있는 입장에 세우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좀 나쁘다가도 좋아집니다.

그러면 아까 말씀드린 꼴사나운 가정이 있다면 그것을 그냥 두어야겠습니까, 때려 부수어야겠습니까? 선생님의 이런 말을 좀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때려 부수지 말고 조금 두고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때려 부숴야 합니다. `때리자’ 하는 말보다 오히려 `때려 부수자’ 하는 말이 더 실감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무엇 하려 오셨습니까? 또한 이름하여 성인 현철들은 대관절 무엇 하러 오셨던가? 의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잘 이루어진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을 본받아서 그 가정과 같이 살아라 할 텐데 지금까지 가정이 있었지만 그러한 가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심각히 생각했느냐? 공자가 그랬느냐? 그 누가 그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습니까? 지금까지의 가정의 입장을 떠나서, 진정한 자리에서 참된 가정을 중심삼아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 힘의 기원은 반드시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심삼고 심각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도주가 있다면, 그는 훌륭한 종교의 지도자일 것입니다. 또한 이는 세계의 온인류를 한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구세주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그런데 불교사상에서 그랬습니까, 유교사상에서 그랬습니까? 유교사상은 하나님의 실체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교에서 경천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거기서 말하는 천(天)은 인격적인 분, 사랑을 가지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23-20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아는 것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는가? 예수님의 논법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라, 옳은 일 해야만 천국 간다는 말씀은 안 했습니다. 그 분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배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따라가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까? 어떤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아버지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까? 또 어머니도 그의 자녀에게 어머니한테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합니까? 또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로부터 신랑 신부는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운 바가 없지만 잘합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배우지 않았지만 잘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여러분이 매일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고 있지만, `야 이게 공기다’ 하며 살고 있습니까? 매일 호흡하면서 살고 있지만 공기를 생각지도 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태양 빛을 받고 살지만, 아침 저녁으로 햇빛의 고마움을 알고 인사해 본 적 있습니까? 인사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안 배웠어요?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안 배운 모양이군. (웃음)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로부터 물먹을 때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고 배웠습니까? 배웠어요, 안 배웠어요? 그것도 안 배웠지요. 제일 귀한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귀하다는 햇빛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만일 이 지구상에서 태양이 이틀만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또 공기도 그렇습니다. `지금 인간들이 큰소리치고 있는데 저들의 세력이 얼마나 큰가, 우리가 한 15분간만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하고 공기들이 동맹파업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날에는 세계통일을 간단히 이룰 수 있습니다.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합니다. 15분이 아니라 10분 이내에 세계통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기나 물을 먹는 방법을 배웠습니까? 그것은 배우지 않고도 자연적으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귀하다는 것은 전부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들보다 훨씬 귀하신 분일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마찬가지로 배우지 않고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에 대한 것도 배우지 않고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압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있기는 있습니다. 이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면 아마 이 세계를 백 개 천 개 집어넣고도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지구성(地球星) 같은 다이아몬드가 몇천 개 몇만 개 있는데 한 개만 주면 기분 나빠합니다. 이렇듯 마음은 상상도 못할 만큼 큽니다.

또 여러분의 마음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배우지 않고도 잘 압니다. 마음이 누구에게 `야 마음아, 누가 이러이러하게 하면 나쁜 것이니까 그때는 네가 파수병이 되어라’ 하는 것을 배웠습니까? 배우지는 않았지만 이 마음이란 것은 몸뚱이가 크고 큰 힘으로 대들더라도 문제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힘에 비례해서 즉각적으로 전기보다 더 빠르게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다른 마음을 먹게 되면 그 즉시 그만두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육받아야 그렇게 되겠습니까? 만약 사람이 교육을 시켜서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게 만든다면 이것은 대성공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교육자라도 이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것을 배워 보았어요, 못 배워 보았어요? 모두가 배우지 않고도 잘 알고 잘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왜 필요합니까?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지 않으니 필요한 것이지, 그렇게 되면 그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분명히 시집을 갔는데 자꾸 시집갔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세 번만 이야기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일 귀한 것을 따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나서 먹게 하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이라면 도적질을 가르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고 인간이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안 가르쳐 주어도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인간들은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 사고입니다. 그러면 그 사고의 동기가 어디에 있으며 누구로부터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악과’를 손으로 따먹었다는 것은 절대 죄가 아닙니다. 다른 문제를 제쳐 두고라도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 문제가 아니고는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목사님들은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이 타락하여 원죄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원죄가 뭡니까? 원죄가 뭐예요?

23-22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라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사랑의 문제 때문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출발되어야 할 사랑의 법도, 사랑의 인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수습해야 됩니다. 인간의 출발이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비법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에서부터 국가 세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던 가정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그런 가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종교의 지도자들 가운데 누가 이런 가정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심각히 생각했느냐?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신 것과 같이 따라오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교주라는 자리는 어려운 자리라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은 그저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따라가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죽음의 길도 결심하고 가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천국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렇듯 천국 가는 비결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했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이 친구의 아버지도 아니요, 나라의 통치자도 아니요, 세계적인 어떤 통치자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아들이 있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첫째 아들이자 외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나쁩니다. 아버지가 들어도 기분 나쁠 것입니다. 어떤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는 아버지의 독생자이온데, 사생자라 부르시면 안 됩니다’ 했다면 그 아버지가 얼마나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웃음) 예수님은 출발때부터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의 독생자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구입니까? 「나요」 나요? 그 정도면 됐어요, 됐어. (웃음) 그러면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대답 아주 잘 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정말 사랑했습니까?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이요?’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시겠는가? 여러분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거지 건달 같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면 틀린 하나님입니다. 사랑이 하나님이시라면 어떤 자리의 사람을 사랑하시려 하겠습니까? 그 자리가 어떤 자리겠느냐?

누가 결혼해서 자식을 갖고자 하는데 여러분은 딸을 먼저 낳는 것이 좋습니까? 아들을 먼저 낳는 것이 좋습니까?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한번 대답해 보세요? 첫아들 낳는 것이 좋소, 첫딸 낳는 것이 좋소? 「첫아들이 좋습니다」 첫아들이 좋다는 것은 또 어디서 배웠습니까? 누구한테 배우지는 않았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도둑놈 심보 가진 남자들에겐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웃음) 첫아들을 낳게 되면 말도 안 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합니다. 첫아들 낳은 사람을 들이쳐서 한턱 내게 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한국의 풍습도 좋습니다.

이렇듯 남자나 여자나 이왕에 낳을 바엔 첫아들을 낳기 원합니다. 맏아들이 아버지에게 `나는 막내아들이 되겠습니다’ 하는 아들이 좋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나는 맏아들이 되겠다’고 하는 아들이 좋습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도 역시 멱살을 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맏아들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야곱이 에서에게 장자의 자격을 빼앗은 것도 하나님은 찬성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시겠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어떤 자리에 있는 인간을 제일 사랑하실 것이냐? 그것은 바로 부자의 관계에 있는 인간을 제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욕심이 많았습니다. 아들이 되어도 맏아들이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맏아들을 떼였기 때문에 세계가 문제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맏아들이 되겠습니까? 뭣이 되고 싶습니까?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었으면 여러분은 못 됩니다. 기분 나빠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맏아들 자리 빼앗기 싸움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었어도 형님이 될 수 있는 조건만 들고 나오면 예수님도 굴복해야됩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종이 되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인 아무개에게 복을 빌어 주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이왕 기도하는 거 종의 종으로 기도하지 그래요. 나는 기분 나빠서 그런 기도는 안 합니다. 통일교인은 절대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밥 먹으러 집에 가서 아버지 앞에 `아버지, 여기 종 새끼가 왔습니다’ 하면 그 아버지는 기분이 좋겠습니까? (웃음) 기분 잡치는 것도 유만부동입니다. `아이고, 이놈의 집 될 대로 되라! 이런 탄식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인들은 절대로 종이라는 말을 하면서 기도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그렇다고 기성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지 마십시오. (웃음) 그래야 반대하는 사람들과 한번 더 의견을 교환해 보지요.

하나님이 사랑의 본체라면 인간과는 부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관계라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25
신부를 맞이하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신랑 신부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뭘 하긴 뭘 해요, 시집 장가 가는 것입니다. 결혼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해서는 뭘 하자는 것입니까? 가정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자는 것입니다. 아들딸을 못 낳으면 그 가정은 가정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웃음) 아들딸을 못 낳으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들딸을 낳아 놓고서야 가정이 확실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색시가 미워서 내친 걸음에 이혼하고 싶어도 아들만 낳아 놓으면 그 신랑도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꼼짝없이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을 이루는 데에는 자식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시고 우리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면, 신부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신랑 신부가 여보 신랑님, 여보 신부님 하면서 앞동산 뒷동산 바라보며 사는 것이 신랑 신부의 목적입니까? 진정한 내용은 생각하지도 않고 `신랑 되신 주님이시여 내가 이렇게 못생겼어도 찾아오셔서 주님의 일등 신부로 맞아 주소서’ 하고 바라고 있으니, 그것은 분수도 없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늘나라의 왕자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제일 왕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권을 상속받기에 합당한 인자의 인을 받고 태어난 아들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아들을 맞아서 하나님의 맏며느리가 되었어야 했던 유대 백성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기도하기를 `신랑 되신 주님!’ 하고 있지만, 예수님을 보면 신랑되는 예수님이 저렇게 초라할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 종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저 죽게 되어야 `신랑되신 주님이여, 내가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구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기가 막힐 일입니다. 자기들이 좋을 때에는 모르는 척하다가 자기들 괴롭고 슬플 때에 가서야 `주여!’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집안 망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제일 왕자이십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조금 낫다고 하는데, 여러분 중에 그 왕자님의 신부가 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 있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손들어도 걱정이지요? (웃음) 오늘날 기성교인들에게 신랑 신부가 되어서 무엇 하자는 거냐고 물어 보면 `뭘하긴 뭘해요 천국 가자는 것이지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또 천국에 가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하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합니다. 그렇게 믿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모든 문제를 파헤쳐 볼 때, 신랑 신부는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습니까? 그런 것이 싫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신랑 신부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늘의 왕자와 왕녀로서 인연 맺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천하를 소유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무리 세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런 가정기준을 이루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신랑으로 왔기 때문에 신부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 왕자로 왔기에 하늘 왕녀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며느리를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뻔한 이치 아닙니까? 처음 온 사람이라도 이런 내용을 알고 나면 정한 이치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믿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늘의 왕자가 와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쫓아 버렸기 때문에 천번 만번 사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공동으로 바라는 오시는 그분 앞에 신부를 준비하여 그분이 원하시는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온 것이 바로 신부의 종교인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것을 바란다면 모두 도둑놈입니다.

23-27
예수님이 오셔서 먼저 이루어야 했던 것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준비해 놓아야 할 것이 예수님이 바라던 제1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제1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제2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사업해서 성공하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는 천국에 못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1의 목적은 무엇이냐? 신부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신부를 맞아서 어린양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 잔치는 무엇이냐? 성경에도 그렇게 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제일 왕자님이 색시를 맞이하여 살림살이를 시작하는 잔치입니다.

그러면 그 잔치 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기독교인들은 구름 타고 공중으로 둥실둥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 머리가 좋아도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습니다. (웃음)

하나님의 제일 왕자가 신부를 데려다가 어린양 잔치를 한 다음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야 되겠습니까? 땅에서 살림살이를 해야 되겠습니까? 찾고자 하는 분을 찾았으면 그 자리에서 춤도 춰야지 구경이라도 한번 하지요. 왜오자 마자 잘 믿는 기독교인들은 전부다 데리고 올라가서 공중 잔치를 합니까? 공중 잔치는 무슨 공중 잔치예요. 올라가기는 어디를 올라간다는 것입니까? 요즘엔 인공위성을 타고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또 내려와야 합니다. 공중에서 돌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지 어디 가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 예수님의 목적은 신부를 얻어 가지고 가정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에 갔더니 문선생이라는 분이 예수님이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기분 나쁘더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자기들은 아마 일등 신부나 특등 신부가 되어서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줄 알았던 모양이지요? 그러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가정. 가정을 이루었다면 예수님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가부(家父)가 되어야 합니다. 가부가 되는 동시에 가장(家長)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이 되어 가종주(家宗主)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느 기준까지 갔었던가? 가정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시려던 그 가정은 오늘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은 올바른 가정이 아닙니다. 6천년 동안 잘못되어 내려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이루어야 할 그 가정은 하나님이 좋으셔서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하실 수 있는 가정입니다. 우리 민요 중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잘 노래했습니다. 한국 사람의 노래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부르고 싶은 노래일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이루어지면 그 가정이 된 가정입니까, 안 된 가정입니까? 그런 가정이 되지 못했으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을 이루어서 무엇을 해야 됩니까? 자녀를 낳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녀를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손자 손녀가 나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만 좋아하시는 분입니까? 어떤 사람이 자식을 10명 두었다고 해서 손자는 필요 없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아들만 갖기를 원합니까? 손자까지 보기를 원합니까? 손자도 원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겠습니까? 「하나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뿌리라면 그 하나님을 닮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뒤집어 박고 거꾸로 해도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손자가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필요합니다」

이러한 말을 기성교인들이 들으면 아이쿠, 예수님이 장가 가야 된다는 말도 끔찍한데 저런 말까지….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니까 이단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살만 찌는구만. 그들은 배가 아파서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해도 선생님은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이단이 나와야 그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공부 못하는 녀석들에게 자극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그저 공부 못한다는 소문을 내고 창피를 주어야 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간접적인 자극을 주는 데도 선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23-29
하나님을 붙드는 방법
예수님이 장가 가서 하나님의 손자를 낳아야 된다고 했는데 기분이 나쁩니까? 만약 기분 나쁜 사람이 있으면 죽으라우. (웃음) 그런 녀석들 죽은 데는 미친개도 안 돌아봅니다. (웃음) 하나님의 손자가 필요없다면 하나님이 망하는 것이며, 여러분도 망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섭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자를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자가 있다 하면 만나 보러 가겠습니까, 안 가겠습니까? 가겠어요? 만약 그분이 미국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돈 한 푼 없어서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걸어가겠습니까? 그렇다면 보따리 싸들고 `하나님, 제발 당신의 손을 좀 보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밤낮없이 정성이라도 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디로 오면 좋겠습니까? 미국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한국으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한(恨)이 많은 나라라서 한국입니다. 한국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미국으로 오면 좋겠습니까, 한국으로 오시면 좋겠습니까? 「한국입니다」 다들 욕심은 많군요. (웃음) 그런 욕심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다 있습니다. 선생님은 수십년 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하고 연구도 많이 했습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한국으로 오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오시면 주님의 다리라도 꽁꽁 묶어서 끌고 올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재간이 있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만약에 아들이 어디 갔다 와 보니 아버지가 한바탕 싸움 끝에 궁지에 몰려서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 없는 처지에 있다고 합시다. 이때 아버지를 구하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는 일단 속으로 `아버지 용서하세요’ 하고 나서 아버지의 뺨을 치고 난 다음 피하게 해서 살려냈다면 나중에 아버지가 그 아들을 야단치겠습니까? 그럴 때는 아버지고 뭐고 없는 것입니다. 일단 아버지를 구해 놓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밖에 없을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하겠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런 궁지에 몰린 입장에 계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라도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면 하나님도 좋아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6천년 동안 복귀섭리역사를 해나오시면서 얼마나 안달하셨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방법으로 구해 드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각하고 연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을 못 떠나시게 해야 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나한테 홀딱 반하게 하면 못 가지 별 수 있어요? (웃음) 내가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전부다 가지고 있으면 못떠나십니다. 설사 가셨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배짱이 두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한국으로 오시게 할 수도 있고 오신 주님을 다른 나라로 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주님과 하나님을 한국으로 모셔 오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23-31
누구나 다 이루어야 할 ‘축복가정’
하나님은 지금까지 모든 인간들의 표본적인 가정을 세우려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런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하셨겠습니까? 또한 타락으로 맺어진 인간들이 얼마나 그 가정을 그리워했습니까? 여러분들도 그 가정을 그리워해 보았습니까? 통일교인들 뿐만 아니라 지금 처음 듣는 사람들도 이런 가정을 얼마나 그리워해 보았습니까?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모든 인류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는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참다운 가정을 맞이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 가정의 전통을 넘겨 받고, 그 가정의 생활이념과 법도를 본받아서 그와 같은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모두 그런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세계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가정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하신 말씀이 맞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무엇을 하려 했습니까?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오셔서 뭘 할 것이냐?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에서 아들딸이 후대로 계속 번창하게 되면 종족이 이루어지고 민족이 이루어지고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수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한 가정의 혈족이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던 본연의 기준, 즉 본연의 가정을 중심삼은 복귀의 혈족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그러한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축복’이라는 것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가정을 `축복가정’이라고 합니다. 그 축복가정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적인 가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오시는 주님이 가져야 할 가정이요, 앞으로의 후대 사람들도 가져야 할 가정이며, 여기 있는 저 아주머니도 가져야 되는 가정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최후에 가져야 할 공동적인 목표요, 가야 할 공동적인 관문이 무엇이냐? 나라도 아니요, 세계도 아닙니다. 공산주의 세계도 아니요, 민주주의 세계도 아닙니다. 공산주의 세계가 있기 전에 본연의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세계가 있기 전에 참된 민주주의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본연의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여기에 대한 질서가 어디에 있었으며, 여기에 대한 교육이 어디 있었으며, 여기에 대한 목적 기준이 어디에 있었던가? 이런 결정적인 기준이 이 땅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타나기 전에는 평화의 왕국, 평화의 이상국가, 평화의 나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바라는 것은 이런 이상적 가정, 본연의 가정, 살아야 할 가정, 만나야 할 가정, 찾아야 할 가정이 이 지구상에 반드시 나타나 인류역사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 한때가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안식의 복지, 안식의 보금자리가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은 살아오면서 이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꿈도 안 꾸어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흘러가는 역사와 더불어 흘러가 버린 인생, 무가치하게 살아온 인생에 대한 한을 품고, 기쁨의 한 곳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바빠야 합니다. 그런데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서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천년 만년 행복의 복지라고 찬양할 수 있는 가정을 못 가진 불쌍한 인생 행로를 걸어가고 있는 처량한 신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란 사람이 국가와 세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만 선생님이 주장하는 이념은 앞으로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만민이 가슴을 점유할 것입니다.

아까 말한 가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을 자세히 말씀드리면 좋겠는데 그렇게 길게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남자거나 여자거나 모든 사람들이 그 가정에서 한번 살고 싶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가정에 살고 싶습니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저 시시하게 살고 싶습니까? 사는 데는 재미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라면, 때가 묻어 더럽고 헤어져 너덜거리는 옷을 입더라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니 다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가정이 됐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3-33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
지난번 세계순회노정 중에도 선생님이 미국과 일본과 독일에서 많은 사람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선생님은 그러한 가정에 대해서 많은 말씀하시는데, 통일교회의 축복 가정과 우리네 가정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하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축복 가정이나 다른 가정이나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르다는 것입니까? 또 한국에서 제일 가난한 자와 제일 부자를 서로 비교해 보면 무엇이 다릅니까? 똑같이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도 거지옷을 입혀 놓으면 거지나 다름없이 보입니다. 거지가 아니라도 거지 노릇하면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죽었다고 하지 거지가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겉으로 나타난 모양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다르다는 것도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많이 있군요. 그런데 여러분의 가정이 이전부터 이렇게 거룩한 가정입니까? 그것이 안 되었으면 바꿔 세워야 됩니다. 그런데 바꾸는 데도 법에 의해서 바꿔야 합니다. 그 법은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은 안 맞아도 되겠습니까? 「맞아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정에 대하여 말씀드렸는데, 여러분 중에서 통일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 가정은 망해야겠구나 하면서 `이제 내 아내는 쓸 데 없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통일교회에 물들었다고 야단할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 하려 오셨느냐? 가정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복귀역사입니다. 병이 났으니 병이 낫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무엇이냐?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잃어버린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이 가정을 찾아야 되느냐? 예수님은 어찌하여 가정을 찾으러 와야 되느냐? 이것은 본래의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병이 났으니 병을 고쳐야 됩니다. 즉 타락을 했으니 복귀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류 시조가 타락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며 그 시조가 타락할 때 혼자만 타락했으니까? 둘이 타락했습니까? 「둘이 다 타락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타락을 하더라도 혼자만 타락했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혼자만 타락했다면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23-34
인간이 타락했으니 인간이 복귀해야
그러면 무엇이 타락을 하게 했느냐? 만약에 인간 조상인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시집 장가 갔다면 부끄러움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타락하여 부끄러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타락했습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습니까?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했습니다. 그러니까 용서받는 것도 사랑을 중심삼고 용서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만일에 부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용서 받을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물질을 먹는 것 때문에 타락했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유린한 타락이라면 이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시조가 하나님의 사랑의 법도를 유린하는 타락을 했기 때문에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인 아담이 첫째 아담이요, 예수님은 둘째 아담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 얼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망해야 됩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되지 못하고 거짓 부모가 되었으니 예수님은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참부모로 오셔서 인류의 참조상이 되어야 할 분입니다. 아담이 거짓조상이 되었으니 다시 참조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들은 부부가 하나 되어서 예수님에게 접붙여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가정에서부터 복귀섭리하신다는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가정이 타락했으므로 그 가정을 구원하기 위하여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을 세워 놓고 구원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하여야 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천사장이 아담을 타락시켰으므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타락한 천사장이 아담 앞에 절대 굴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의 혈통을 이어받아 인연맺어진 인간이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려면 아담을 대신한 자리에 아벨을 세우고 천사장을 대신한 자리에 가인을 세워서 천사장을 굴복시켰다는 조건을 하늘앞에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아담이 천사장을 굴복시켰다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늘의 뜻을 그르칠 때에는 자식 대(代)에서 다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아담 가정에서부터 엮어져 나온 죄악의 역사가 6천년이나 이어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23-35
예수님 시대의 양상이 재현된 오늘의 상황
이리하여 아담 가정에서 가인적 가정과 아벨적 가정, 가인적 종족과 아벨적 종족, 가인적 민족과 아벨적 민족, 가인적 국가와 아벨적 국가, 가인적 세계인 공산세계와 아벨적인 세계인 민주세계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처음부터 그렇게 심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두 세계로 열매맺는 시대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 하러 오신 분인가? 아담 해와의 실수로 갈라진 그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아벨이 가인을 굴복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상에서 가인을 굴복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탕감복귀의 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상에서의 가인적인 존재는 누구냐? 왼편 강도입니다. 아벨적인 강도는 오른편 강도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의 싸움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상을 복귀하기 위해서 참부모로 오신 예수님도 죽는 자리에서까지 그와 같은 조건을 통해 탕감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시작이 그렇게 되었으니 복귀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상에서도 가인이 아벨을 쳤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세계가 심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익세계와 좌익세계의 시대를 거쳐서 결국은 기독교에 흡수되어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념을 중심삼은 실상의 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류의 부모가 다시 오셔서 이 죄악의 역사를 청산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십자가에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두 세계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가 서로 싸우던 것과 같은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 아벨을 복귀한다는 심정으로 십자가를 걸어 놓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오른편 강도가 그러한 심령 기준을 세우지 않았으면, 다시 말하면 아벨이 승리했다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탕감하지 않고는 본연의 자리까지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중심삼고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의 싸움에서 오른편 강도와 하나 되어 승리의 터전을 잡았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기에서 승리했기에 그 승리의 열쇠 꾸러미를 이어받은 오늘날의 기독교를 중심삼고 가인적인 세계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가인적인 세계란 왼편 강도형인 유물사관이며 아벨적인 세계관은 오른편 강도형인 유심사관입니다. 왼편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신이 없다고 부정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로 갈라져서 그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예수님이 사탄분립수인 40수, 즉 40세를 바라보시며 사탄 세계와 싸우셨기 때문에 1917년에 이루어진 공산세계가 40년이 지난 1957년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공과 소련 사이에 이념분쟁은 195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타락으로 심어진 전통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는 때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 간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한 세계적인 터전의 기준이 이 땅 위에 현현하여 민주세계가 창건되었으며, 이에 대항하여 공산세계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즉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세계적인 싸움의 무대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23-37
재림주님이 오셔야 할 현시대
그러면 이렇게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대항할 때에 누가 와야 되느냐? 인류의 참조상 되시는 재림주님이 와야 됩니다. 즉, 3차 아담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분은 이런 세계적인 기준 위에 인류의 조상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전까지 해결짓지 못한 싸움을 예수님이 오셔서 영적으로는 해결지었지만 육적으로는 해결짓지 못하였기에, 영육 아울러 세계적인 판도를 중심삼고 해결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으므로, 3차아담으로 참조상의 자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반드시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으로 오시는데, 두 세계, 즉 민주세계와 공산세계가 싸우는 때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유엔총회 석상에서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무례하게 구두를 벗어 가지고 연탁(演卓)을 치면서 연설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선생님은 `이놈들아! 지금까지는 너희들이 최고의 권위를 차지했지만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내려가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고난받으실 때 오른편 강도가 왼편 강도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변호한 것과 같이,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도 오른편 강도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왼편 강도와 같은 사람들을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줘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다. 하나님이 지금껏 수고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살고 있다’고 부르짖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런 운동을 통일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산당에 대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실재를 거부하는 그 사상을 틀렸다고 반박하며 그들을 대해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의 자리에 서서 세계를 대표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하여 예수님 당시에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써 낙원에 들어갔던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천국이 건설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적인 사실은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게 되어 있습니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입니다.

반공사상을 중심삼고 한국의 선두에 서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다는 것, 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 되지 않으면 세계가 수습될 수 없고, 새로운 세계, 즉 천국이 지상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만민들이 확실히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선한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피어린 투쟁을 하고, 피어린 박해를 받아 오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지금까지의 그러한 역사를 중심삼고 개척자의 행로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됩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국가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할 단계에 올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입장에 처한 여러분은 오른편 강도가 되겠습니까, 왼편 강도가 되겠습니까? 「오른편입니다」 여기에 여자분들은 어느 편이 되겠습니까? 「오른편입니다」 대답이 시원치 않습니다. 주먹에 힘을 주어 `오른편이요!’ 해야 됩니다. 다시 한번 물어 봅시다. 오른편이예요, 왼편이예요? 「오른편입니다」 가르쳐 주고야 누가 못합니까? 벙어리라도 다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남자분들 어디 한번 물어 봅시다. 오른편이예요, 왼편이예요? 「오른편입니다」 아랫배에 힘을 주어가며 결심은 잘했는데 조금 잘못한 것 같군요, 박자가 맞지 않은 것을 보니…. (웃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외치는 공산세계와 부딪치고 있는 마지막 끝날에 처해 있습니다. 이때는 십자가 도상에서 넘어서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2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전세계적으로 하나님이 죽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에게 `그래, 유대인의 왕이 되어 가지고 고작 이렇게 죽다니…’ 하면서 조롱하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온갖 핍박을 다 받아 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처량하게 사라져 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운명도 그렇게까지 되었지만 하나님은 거기에서 부활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23-39
공식에 따라 진행되는 인류역사
그러면 앞으로 섭리는 어떻게 되어 나갈 것이냐? 선생님이 결심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을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40년 후에는 분명히 다른 세계가 올 것입니다. 2천년 쯤 되거든 보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때까지 살아 가지고 이 공산당 원수놈들을 전부 다 말아먹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인류역사는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저 여러분이 잠자면서 하는 잠꼬대같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공식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류 앞에는 반드시 새로운 소망의 터전이 현현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은 섭리가 실패했고, 예수님을 중심삼은 섭리는 십자가의 길을 면치 못했지만 영적인 구원의 길은 열렸던 것입니다. 그 영적인 기반을 중심삼아 본연의 세계를 이룰 수있는 하나의 기원이 이 땅 위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은 역사적인 필연성에 의거한 결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리워하는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와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선생님이 알고 있기에 동양에서는 몰라도 서구사회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나 있습니다. 내가 어디를 간다 하면 벌써 알아 가지고는 가는 곳곳마다 찾아옵니다. 너무 귀찮게 찾아다니기에 내 할 일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문선생을 받들지 않으면 이 나라가 망신과 창피를 당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도 여기에 페이터 코흐씨가 와 있지만 외국인들이 선생님을 무턱대로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는데, 선생님에게는 그런 녀석들이 얼빠진 녀석, 미친 녀석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욕하는 기성교인들 중에는 `통일교회가 일을 잘하는데….’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들에게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큰 사건들이 자주 벌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한 달에 한번씩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대한민국에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통인들이 선생님을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그 누가 하나님이 실존을 부정하기 위한 연구를 했다 하더라도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전세계 사람들이 놀라 자빠질 수 있는 사건들이 많지만 말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어떤 잔칫집에 무엇 무엇을 준비해 두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게 되면 도둑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도 없는 잔치를 고이고이 준비해 왔는데, 소문부터 나면 도둑맞기 쉽다는 말입니다.

23-40
모든 인간이 영적으로 중생하려면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무엇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와 보고 `세계본부가 왜 이모양이야’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일하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여기에 와서 함께 생활해 보면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선생님이 세계 40여개국을 돌아보면서 별의별 내노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는데, 그들 모두가 큰 집 짓고 세계를 살리는 기준을 가진 기수가 되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누가 선생님 면전에서 `왜 통일교회가 이 모양인가’라는 말을 한다면 눈을 부릅뜨고 주먹뺨을 올려 붙일 것입니다.

이렇게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을 보고 `퓨마라는 맹수와 같이 생겼구만, 몸집도 저만하면 남자답고 말하는 것도 그럴싸하게 하는구만’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다 외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나왔지만 선생님의 진정한 모습은 모릅니다. 어떠한 분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 선생님이 세계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자꾸 커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쿠! 이러한 선생님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자랑이 아닙니다. 여기서 자랑을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웃음) 사실 지금까지는 자랑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 허리 부러져 낮잠만 자는 호랑이처럼 살아왔어요. (중략)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기 위해서는 오른편 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되겠지요? 「예」 그러려면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려야 되는데…. (웃음) 그때에는 십자가에 달리는 오른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그분을 모시고, 그분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그분이 가시는 곳곳마다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오른편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형편이 무인지경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참된 가정의 기원이 그릇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영육을 중심삼고 이 가정을 복귀하려고 했지만 다 이루지 못하고 영적 부모의 입장에서만 이 길을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이루어야 할 예수님은 신랑으로 와야 하고 성신은 신부로 와야 하는것입니다.

하늘은 남자를 상징하고 땅은 여자를 상징합니다. 그러면 남자를 상징하는 하늘에 올라갈 때 거기에 있던 성신이 왜 땅에 와야 되느냐? 타락은 남자와 여자가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를 대표한 예수님이 땅에 와서 죽음의 고갯길을 걸으면서 사탄인 천사장이 하늘을 배반했던 역사를 꺾어 돌려 영적으로 승리한 기반을 세웠지만 해와의 영, 어머니신이 될 수 있는 그 신은 이 사탄세계에 와서 사탄을 굴복시킨 터전을 지금까지 갖지 못했습니다. 즉, 사탄을 굴복시킨 승리자의 자격을 갖추어 남자를 상징하는 하늘로 올라가고 땅을 상징하는 어머니신, 즉 여자의 신인 성신은 이 땅에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늘을 남편으로 삼고, 땅을 아내삼아 가지고 이 부부가 평면상에서 마주보고 의논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갈라진 것입니다.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하늘과 땅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기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까지 기독교를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성신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성신은 무엇이냐? 바로 어머니신을 말합니다. 타락은 어머니가 먼저 했으니, 즉 죄를 어머니가 뿌렸으니 어머니가 수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신된 어머니가 이 땅에 와 가지고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릇된 자식들이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참된 영적인 아버지와 참된 영적인 어머니가 서로 사랑의 심정으로 상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수의 장벽을 헤쳐 사탄의 권한을 제거해 가지고 사랑의 진액을 받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만 모든 인간들은 영적으로 중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기독교의 부활과 중생이라는 것은 바로 영적인 부모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내용을 잘 몰랐기 때문에 성신에 대하여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3-43
오시는 주님의 할 일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적 부모를 중심삼은 영적 세계관, 영적 천국을 바라보면서 나온 종교인 것입니다. 본래의 천국은 아담 해와가 이 땅에서 잃어버린 이 세계를 다시 돌려놓아 가지고 영적으로 승리한 기준을 종적이 아닌 평면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어머니 참된 아버지가 평면적으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지상세계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그릇된 이 모든 것들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다시 오시는 주님은 육신을 쓰시고 이 지상에 오셔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무엇을 하셔야 되느냐? 아담 가정에 있어서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 예수님 때의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의 기준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를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가 민주세계를 먼저 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1차 대전, 2차 대전에서도 악편의 국가가 먼저 선편의 국가를 침범해 왔습니다. 또한 2차 대전 후인 지금에도 악편 국가가 선편 국가를 먼저 침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극의 상황에 처한 현시대에 사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악의 세계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공산세계가 민주세계에 굴복하게 될 때에 세계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들이 굴복하지 않을 때는 확신을 가지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이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혁명을 일으키려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해방 후에 이박사가 내 말만 들었으면 공산당은 이미 그때에 깡그리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섭리역사가 연장되어 나왔기 때문에 세계의 중심인 유엔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떨어져서 허덕이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어느 한때에 이 나라가 다시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통일교회에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나라, 이 민족은 여기에선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별의별 핍박을 가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나라 이 민족을 원수시하지 않습니다. 나 하나 망하고 나 하나 구원 못받고 나 하나 희생되어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슬픈 역사가 기쁨의 역사로 변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황무지에서 자라나 서럽고 불우하게 살아 온 이 민족이 나 하나 희생당하고 나 하나 핍박받음으로 말미암아 광명의 한 날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천번 만번 감내할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폭탄 하나 떨어지지 않았던 이 나라가 왜 이렇게 황폐하게 되었느뇨?

우리는 원수와 대결하여 싸우는 데 있어서 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전부다 하늘이 바라는 뜻과 소원과 상충된 길을 이 민족이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사명을 책임져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나라, 이민족이기 때문에 세계의 운세는 또다시 한국으로 몰려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23-44
통일교인은 전통적인 역사의 기반을 상속받기 위한 무리
지금의 월남 문제가 앞으로는 한국의 문제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는 6월부터 10월까지 공산당으로부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선생님이 세계 순회를 이렇게 빨리 마치고 돌아온 것은 이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월 초하루부터 이 나라, 이 민족을 붙안고 과거의 선조들이 잘못한 역사상의 모든 죄악을 그들을 대신하여 반성하고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세계적 운세를 업고 나가서 앞으로 소망하는 천운을 맞기 위해서는 이 나라와 이 세계를 위해서 베옷을 입고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가 천운을 다시 맞을 수 있는 기점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공산당 이상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교파가 어디 있었습니까? 하늘이 세운 뜻을 위하여 일선에 서서 죽음길을 개의치 않고 원수와 대결할 수 있는 교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세계의 각 교파는 망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 기독교가 선생님을 맞아 들였다면 세계는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지금의 이 연령이라면 세상 어느 누구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 선생님에 대한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선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를 어떻게 요리하느냐, 어떻게 해야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느냐를 염려하는 선생님입니다. 그런 가운데 `세계는 필시 이렇게 된다’는 확신을 갖고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선생님이 `공산당은 8대를 못 넘긴다’ 하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틀린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결과를 보아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세계의 움직임과 맞아 떨어지고 세계적인 모든 사건들이 우리의 움직임과 맞아 들어가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이 세계는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이 세계는 분명히 알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는 전부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을 때에 도망가던 제자들과 마찬가지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한 것이 뭐 있습니까? 십자가에서까지 왼편 강도의 조롱을 받던 예수님의 입장이 바로 오늘날의 통일교회의 입장입니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이루어진 기독교의 간판을 붙인 모든 교파는 다 무얼 하고 있었더뇨? 그들은 공산당을 대하여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하고 변명할 아무런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가고 난데없이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을 위해서 변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라는 하나의 교파가 나타나 기독교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또한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고 죽음길도 기꺼이 가겠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이런 운동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해 나온 모든 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공적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전통과 공적을 쌓아 오기까지 생애를 바쳐 투쟁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의 과거를 들추어 보면 한스러운 역사의 고빗길을 거치느라 아무리 목석 같은 사나이라도 통곡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사연이 많습니다. 이런 서글픈 역사를 지닌 채 승리를 다짐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슬픈 그늘에 몰려갈 때면 거기서 사라지는 사나이로서가 아니라 광명한 햇빛을 바라보며 천지를 항하여 내 소신을 피력할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보면서 싸워 나왔습니다. 반드시 그러한 한 날이 올 것입니다. 오지 않을 때는 내게 있는 힘으로라도 그날이 오게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이 자리에 왔습니까?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역사의 기반을 상속받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스승의 가는 길을 따르고, 그 스승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사상을 세계 앞에 넘겨 주기 위한 공동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서 모인 무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몰리고 쫓김 받는다고 쓰러지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죽이려고 하셔도 죽어서는 안 됩니다. 백 번 죽더라도 살아나서 그 한을 풀어야 합니다. 자기 후대에 대신자를 세워 놓고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의 무리들이 자기의 후손에게 굴복하는 것을 봐야 영계에 가서 안식한다는 신념을 갖고 가야 할 우리 통일교인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3-46
세계를 수습해야 할 우리들
지금껏 우리들이 역사의 한을 토로하고 역사상의 모든 조상들의 잘못을 원망해 왔습니다. 그런 우리 자신들이라면 오늘 이 시대의 역사적 과업을 책임지고 쟁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 스스로가 천명에 의해 가야 할 행동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생사도 개의치 않고 죽음길을 가시던 주님을 위해 오른편 강도의 입장에 서서 변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누가 반대하고 그 누가 원망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부 봄날에 녹아지는 눈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다짐할 수 있고, 내 몸이 생명의 씨가 되어 다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참되신 분이라는 것,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라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행복의 기원을 마련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오른편 강도가 천국문을 밀치고 나오게 할 수 있고, 이 흑암권세를 헤치고 예수님과 더불어 당당히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승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우리 통일교회는 세계의 공산당 앞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번에 일본에 갔을 때 느낀 것은 우리 통일교회의 청년식구와 원리연구회 회원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인원으로는 공산당에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은 이미 미련한 대중에게 침투하여 자기들의 계획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들어왔는데 그런 공산당을 대항해서 그런 소수의 무리에게 하나님을 붙안고 생명의 폭탄으로 저들을 막아내라 할 수밖에 없던 현실이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가야 됩니다. 죽음길을 오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가야 하고 쓰러지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쓰러져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쓰러져도 망하지 않는 부활의 권한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쓰러져 죽어도 부활의 은사와 부활의 권위와 부활의 환희를 체험할 수있으니, 타락한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일대의 소망의 기점이요, 일대의 희망의 기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번 세계순회 중에 일본에 들렀을 때 일본 식구들에게 `가라, 너희들이 원수의 도가니에 드러누워 죽게 되더라도, 하늘과 더불어 예수님을 위로해 주고 갈 수 있었던 오른편 강도와 같은 절개를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수습할 수 없는 세계 정세를 앞에 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우리가 가야 할 행로라는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각자의 가슴에 손을 얹으면, 누구든지 심장의 고동소리를 느낄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다짐해야 합니다. 심장의 고동이 그치는 날 나는 어디에 쓰러질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죽음이될 것이냐, 슬퍼하시는 죽음이 될 것이냐, 이 민족의 원한과 더불어 사라지는 인간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런 다짐이 한번 두번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민족에게 비운이 닥칠 적마다, 민족의 절망어린 한을 느낄 적마다, 골수 깊이 사무친 심정으로 천번 만번 다짐할 수 있는 그런 사나이와 아낙네가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년 사연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는데, 내 자신의 일년 사연이나 십년 사연이나 일생 사연에 이끌려 나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엄숙한 천명을 받은 한모습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의 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귀하고 오늘의 내가 져야 할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삼천리 반도를 붙들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북을 기필코 다시 찾아 팔도강산을 통일해야 할 민족의 과업이 오늘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3-48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
지금까지 이 민족은 우리를 비웃으며 별의별 탄압을 다 해왔습니다. 반공운동을 할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탄압을 할테면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일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죽을 때에 유언을 받을 자기 자손이 있거든 눈을 부릅뜨고, `이 유언을 따라 이 일을 계승하지 못하면 죽지 못하겠노라’는 유언을 할 수 있는 결의와 신념을 갖고 싸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는 하늘 앞에 면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 만민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이 나사렛의 뜰을 바라보며 하소연하던 그 사정과 심정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바라보시던 그 뜰과 산과 그 자연은 심정을 통했건만 그분의 친구가 되고 같이 뼈살이 녹일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죽음길도 같이 가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불쌍한 예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 기막힌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선생님을 따라 나왔는데, 무엇을 위해서 따라 나온 것입니까? 선생님의 얼굴이 그리워서 따라 나온 겁니까? 선생님이 돈 많은 부자라서 따라 나온 겁니까?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 천주의 한을 풀어 인류가 그렇게 고대하던 그 소원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공동으로 책임지고 죽어서도 그 길을 가야 할 운명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가 먼저 알고 죽어서라도 닦아 놓고 가야 할 사명을 절감했기 때문에 따라나온 것입니다. 앞으로 흑암의 물결이, 원수의 노도가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해도 헤치고 나가야 됩니다. 원수의 총칼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다 해도 쳐부수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슬펐던 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오른편 강도의 위안을 받으시면서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리라’ 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얼마나 원통하고 분한 말씀입니까? 4천년에 걸쳐 택함받아 나온 유대교인은 어디에 갔으며 3년 공생애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노정에서 처량한 신세로 몰려 한을 품은 예수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따르던 열 두 제자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몰리고 비판받는 비참한 자리에서도 예수와 동고동락하며 죽음길도 같이 가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그들 중에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자리에 있는 예수를 대하여 그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가 알았던고? 어찌하여 예수는 그렇게도 고독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에 그 오른편 강도마저 없었더라면 인류는 그 무엇으로도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고 하늘 앞에 설 면목도 없다는 것입니다. 살인강도인 오른편 강도가 그 길을 열어 주었기에 예수님은 낙원에라도 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는 길 앞에 동역자가 되어 위안의 말을 드렸기 때문에, 예수가 인간 세상에 부활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해야됩니다.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똑똑히 바라보십시오. 이 눈은 누구를 위해 보아야 하고 이 코는 누구 때문에 이렇게 생겼고, 또 이 입은 왜 생겼으며, 이얼굴은 누구 때문에 지어졌으며, 내 몸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컸느냐?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 이러한 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한갖 민족의 한이나 풀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한,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한까지 풀어드리기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자기도 억제할 수 없는 통곡의 생활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이 나라 이 민족을 바라보면서, 또한 무지하고 혼란된 세상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조이며 내일의 희망과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나를 종족이 찾고 있고, 민족이 찾고 있고, 국가, 세계가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23-50
선생님의 유업을 상속받아야 할 통일교인
세계의 곳곳을 다닐 적마다 외국사람들이 선생님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 기쁜 반면에 슬픈 심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가 떠난다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인연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6천년 전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죄의 전체를 책임지고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눈물을 쏟고 갔으니, 그때의 절망으로 갈라졌던 인류 역사가 환희의 소망 가운데 만날수 있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울음 바다가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탕감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고 동서양의 문화를 초월하여, 그분이 눈물의 교차로를 갈 때 나도 가고, 그분이 죽을 때 나도 죽겠다는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때문에 그렇겠습니까? 선생님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비판만 받아 왔고, 한국 민족 앞에 이단자의 명찰을 달고 있는, 아무것도 바라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단 하나 내세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서 통곡하지 못하는 인류 앞에 통곡할 수 있는 그 마음과, 매맞지 않으려는 자 앞에서 매맞을수 있는 마음,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갖춘 바의 재산이요, 또한 물려 주어야 할 위업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고, 남모르는 가운데 세계를 위해 고민할 수있는 마음밖에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넘겨 줄 위업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내가 몰리고 쫓김받는 그 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단자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 위해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전통을 부활시키기 위한 길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후퇴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의심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도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처자가 그리워도 가야 됩니다. 배반하더라도 가야 됩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칠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럴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불쌍한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나를 통하여 위로받으셔야만 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여러분은 알아야됩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나가 이 악한 세계가 뒤넘이칠 때까지 동기를 일으키고 사정을 일으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나와 세계가 하나되어야 승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배후에 연결되어야 할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내일의 사명을 다짐해야 됩니다. 이 세계가 그러한 나를 필요로 하고 또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다 망합니다. 사망하고 맙니다. 죽어서 오른편 강도가 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있다면 우리가 자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리가 가르치는 바의 기준은 죽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죽는 자리에 세움 받는 것이 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서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는 길은 그러한 슬픔의 길이 아닙니다. 그런 슬픔의 길은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서렸던 슬픔의 운명은 사라졌고, 어디 가나 반대의 깃발 앞에 처하던 그런 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상속받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벨에게는 그러한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일생에 못하거든 후손을 세워 몇대를 거쳐서라도 이것을 했다고 하는 조건을 세우고 가야 할 것이 여러분의 갈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3-52
세계 만민 앞에 길잡이 노릇을 하라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또 얼마나 보고 싶어했습니까?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고 진정으로 기도하고 진정으로 사모하였다면, 그것은 이 몸뚱이 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민족이 가야 할 내일의 모습이 어떤가를 염려하며 맺혔던 것을 풀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워하고 이렇게 다시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만난 여러분에게 안식하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왔으면 다시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지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 이상 못 가겠다고 낙망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 때는 너무나 촉박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잘것 없는 모습이지만 이러한 시점에서 때가 왔다고 소식이라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이 봤을 때, 앞서 가는 사람이 고생하지 않는다면 자기도 고생을 안 하려고 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합니다. 교통순경이 하는 일은 달리는 차들을 `오른편으로 가라, 왼편으로 가라’고 길잡이 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길 가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생사문제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목적의 달성여부가 거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일 하지 말고 교통순경이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소리치며 무슨 선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순경이 되어 `이 길로 가야 된다, 나를 따라가야 된다. 내가 하는 대로 하면 산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며 안내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회노정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여러분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선생님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을 무자비하게 내몰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선생님이 책임을 지고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책임져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여러분을 끌고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뒤에서 때려 몰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다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탕감할 수있는 책임을 다해야 할 상황에 들어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작전을 지방에서부터 전개하여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그 작전을 이제부터는 다시 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금년에 우리들은 또다시 전면적인 진격을 하고자 다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한스러운 고비를 청산지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도상에서의 죽음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서 후대에 남겨 줄 수 있는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은 죽음의 교차로에서 오른편 강도가 받은 부활의 은사가 아니라, 실체의 부활권을 가지고 이룰 수 있는 시대권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싸우면 백전백승할 수 있으므로 여러분은 또다시 이 세계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돌아오면서 국제승공연합을 재정비하고, 원리연구회도 재정비하는 등 모든 단체를 전부다 재정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운동을 세계적으로 펼쳐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다는 것입니다.

23-53
가야 할 길을 가는 무리
지금까지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부흥회를 한다는 말을 들어 봤습니까? 선생님에 대한 말만 들었지,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없는 사람 같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선생님이 표면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외국에서부터 시작해 국내로 들어올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것입니다. 또 국제부흥단도 모집해야 하는 등 이제부터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유엔은 가인적이기 때문에 이제 아벨적인 유엔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책임자들이 맡으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여기서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남들은 꿈도 못 꾸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선생님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는데, 미친 사람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것입니다. 승공연합을 결성할 때도 뭐 통일교회가 어떻다고 했지만,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 가야 할 길을 가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므로 우리는 오른편 강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분명히 드세요.

선생님은 팔자가 사나와서 그런지 쉴 새가 없습니다. 세계를 순회하고 돌아와서도 잠 한번 실컷 자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아예 이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두 시에 자더라도 다섯 시가 되면 눈이 떠집니다. 늦게 자더라도 그 다음날 새벽이면 습관이 되어서 일어나게 됩니다. 낮에 졸음이 오긴 하지만 어디에 가서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선생님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사람인 이상 그런 것을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웃음) 좋은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고 나쁜 소리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욕을 먹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예민합니다. 선생님의 감정을 분석해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략)

23-54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내가 지금 교회를 안 짓는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교회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가정, 즉 신랑 신부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보기 위해서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애기가 잠에서 깨어 처음 눈을 뜨면서 부르는 것이 `엄마’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부르는 것 이상으로 남편은 아내를 불러야 합니다.

이렇게 불러보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또 부인도 남편 이상 그렇게 불러야 됩니다. 알겠어요? 서로가 그럴 수 있는 부부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실지락의 부부로서 서로를 그렇게 부르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년만년 산다면 늙어도 청춘이 부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축복가정 부부가 80노인이 되면 선생님이 세계일주를 시켜 줄 것입니다.

앞으로는 무엇이 자랑이겠습니까? 어떤 나라와 싸워서 이긴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공산당들을 물리쳤다고 해서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 망하면 국가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이 통일교회 문선생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내가 알아냈으니 그 일의 권위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바라거든 나한테 와서 배워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나이가 50,60세 된 사람도 전부 다 선생님한테 와서 축복을 받겠다고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옛날 일본의 순사의 기억이 나서 기분이 안 좋아 `뭐, 축복을 받어? 축복이 무엇인지 알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 하고 말하면, 그들은 자기 아버지 어머니 보다도 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따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사실이 믿어집니까? 그럼 여러분들도 그렇습니까? 「예」 지금 대답한 사람의 아버지 어머니가 이 자리에 왔으면 기분 나빠하겠군요. (웃음)

일본 사람들도 통일교회의 축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가정들은 앞으로 공식적인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해야 할 텐데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여기에 축복받을 여자들 있지요? 인간 조상인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도 여자 때문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그럴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꾀임에 넘어갈 수 있는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무슨 말에도 솔깃해 가지고 달콤하면 그저 좋다고 헤헤거립니다. (웃음)

23-56
인간의 진정한 멋
통일교회 여자들, 임지에 갔을 때 얼굴에 바르는 크림이 없다느니 그런 타령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바탕이 잘 생겨야 돼요. 잘 생기지 못했으면 남편한테 미안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미인은 박명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인이라고 하더라도 애기 서넛만 낳고 나면 얼굴이 쪼글쪼글해지고 볼장을 다 보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얼굴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굴이 잘 생기고 못생기고간에 우러나오는 감정이 풍부하면 세계의 일등 가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결혼하게 되면 여자는 남자의 일등가는 유원지가 되어야 하며, 일등 가는 명승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방긋 웃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남편이 웃지 않을 수 없고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꼬리까지 감을 만큼 안아 주면 천년 만년 동안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에서 말하는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세계의 어떤 가정보다 몇백만 배, 몇천만 배, 몇억만 배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지 안 그런지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통일교인들에게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돈입니다. 그렇지만 물만 떠다 놓고 산다고 남이 흉보더라도 자기들만 재미있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결혼을 많이 시켜 주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일이 되었지만 그것 가지고는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눈에는 남편이 최고이며 제일로 보여야 합니다. 남편의 눈에는 아내가 그렇게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이 최고의 인연입니다. 남이야 무슨 소리를 하든지 최고입니다. 이런 것을 몇 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자기가 영원히 가질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모든 사람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잘 따르고 잘 받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와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서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역사와 최고의 문화가 엎질러졌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런 세계를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살기 위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23-57
복귀섭리는 가정적인 기준에서부터
남자가 여자 한 사람을 못 다루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자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내 사랑은 이렇다’는 것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간을 두루두루 연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성별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가정복귀가 안 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한 선생님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깊고 깊은 자리를 파고 헤쳐서 천년 만년 살고 지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희가 여기서 재미있게 살고 있으니 여기에 같이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여러분 가정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삼은 터전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자극이 필요합니다. 행복은 자극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먹는 밥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파야 맛이 새로운 것처럼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인과 남편이 서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고 온종일 함께 있고 싶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리워했던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이 떠나신 그 가정을 본연의 가정으로 복귀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좋아하시면서 그들이 소생, 장성, 완성의 성장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직접주관권내에서 가정을 이루기를 고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그러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가정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하나님이 바라시는 이러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을 이루려면 남자는 장가를 가야 하고 여자는 시집을 가야 됩니다. 그렇지요? 「예」 그리고 그런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복귀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가정의 복귀섭리는 어떠한가?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중심삼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셋의 후손인 노아를 찾아 세웠습니다. 그러면 노아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담 해와가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복귀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데에 있어서는 노아 혼자 복귀해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복귀해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아들과 그들의 아내, 이렇게 여덟 식구를 세워 사탄세계를 치는 역사를 해나오신 것입니다.

23-58
가정을 세우신 못한 예수님
그러면 사탄은 어디서부터 들어왔느냐? 사탄이 들어온 역사의 배후를 보면 처음에 해와를 통하고 아담을 거친 후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과정을 통하여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 사탄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노아는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사탄 세계에서 120년 동안 터를 닦은 것입니다. 그런데 함이 실수했습니다. 가인적인 함이 아버지와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 되려면 가인을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함을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함이 실수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여 아버지를 외면한 것입니다.

노아가 그렇게 한 것은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부모의 자리를 결정짓지 못하고 종적으로 연장되어 아브라함에게까지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동시에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첫째 아들 대신 아브라함, 둘째 아들 대신 이삭, 셋째 아들 대신 야곱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셋을 중심삼고 복귀하려고 했던 그 소원이 어느 때에 와서 이루어 졌느냐? 노아 때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노아를 중심한 조상의 인연을 계대해서 비로소 아브라함 때에 와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노아와 세아들은 하나 되지 못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3대가 하나 되었기 때문에 야곱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에서를 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에서는 아담 가정에서 아벨이 굴복시키지 못했던 가인의 입장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사탄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승리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3대의 하나님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승리의 기반을 닦지 않고는 복귀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세 시대를 거쳐 가지고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이렇게 역사가 반복되어 나왔습니다. 다윗 왕을 거쳐 솔로몬 왕 시대가 끝나며 그 자식들로부터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두 나라로 반씩 나누어서 복귀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까지 왔습니다. 예수님도 결국은 이런 노정을 걸어야 합니다. 야곱은 가정적인 섭리의 기반을 닦는 시대의 중심인물이요, 모세는 민족적인 섭리의 기반을 닦는 시대의 중심인물이며, 예수는 세계적인 섭리의 기반까지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기준에서부터 복귀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세 아들, 노아의 세 아들이 있었던 것과 같이 세계적인 섭리노정에 있어서도 같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을 중심삼은 예수님도 가정을 복귀해 나가야 하는 이 원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가정을 이루어서 세계적인 조건을 걸어 놓고 승리하지 않고는 세계적 승리의 터전을 닦을 수 없습니다. 그 가정의 기준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대해 역사해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 땅에 와서 12지파를 편성하기 전에 먼저 가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지파를 편성하여 그것을 중심삼은 이스라엘 민족이 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민족 가운데 예수님이 오셔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메시아가 오면 받들어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왔을 때는 그 민족이 반대하였습니다. 본래는 메시아가 와서 지파를 편성함과 더불어 교회를 지도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로마제국을 굴복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천국이 출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3-60
12제자의 입장과 책임
이렇게 몰림 받음으로 12지파 대신 12제자를 중심하여 12제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는 부모가 되고 유대교는 가인이 되며, 예수님의 새로운 복음은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이 되고, 세계 국가가 가인이 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집안이 원수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교회나 한 집안에서 형제끼리 싸움으로 맞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먼저 나온 것이 가인의 입장인 유대교이며, 또 예수를 중심삼은 새로운 복음운동이 아벨적 입장인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니 역사의 흐름이 뿌린 대로 거두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척받고 몰리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이 죽임을 당한 것과 같이 예수님이 죽음을 당해서는 안 되고 기독교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임받고 지금까지 기독교가 죽임받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이렇듯 아벨의 역사를 두고 볼 때 가인의 공격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여기서 재차 편성한 이스라엘 역사를 대표한 12제자는 새로운 이스라엘 족속으로서 가인적인 자녀의 입장과 아벨적인 이스라엘 종족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지파들보다도 훌륭해야 합니다. 그들이 갖춘 안팎의 모든 내용이 훌륭해야 되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기준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 중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사람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였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토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을 대하여서 천년 만년 같이하자고 할 때 얼마나 처량하고 기가 막혔겠습니까?

예수님은 죽지 않고 살아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탕감복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쫓김 받고 몰림 받아 죽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것입니다.

이렇게 몰리게 된 상황에서 12제자와 지파장들이 반대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지파를 편성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하는데 가정이 없으면 지탱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는 가정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지파장을 중심삼고 세계의 터전과 연결시켜 뻗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이 실수한 것을 복귀할 입장이요, 노아 가정에 있어서 세 아들을 대신하여 복귀할 입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이런 입장에서 책임을 하기 위해서 대표적인 중심인물로 글자 한자 모르는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세웠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들이 없으면 가정의 기반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죽는 자리까지라도 따라가야 하고 죽더라도 같이 죽어야 합니다. 한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면 그 자식들은 전부다 역적의 자식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죽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3-62
축복가정은 종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라
아담이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야 할 것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가 아버지 입장에서 이 세 제자를 중심하고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를 찾아 세운 것은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세 아들을 복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가인적인 아들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 가정, 노아 가정의 식구를 중심하여 타락해 내려왔기 때문에 여덟 식구를 중심삼고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세 제자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세 제자를 찾았으니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가정과 이스라엘 민족을 찾으려 했던 것과 같이 씨족, 종족을 찾아야 합니다. 통일 종족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1960년 7월 동안 수고하여 종족 편성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기간에 먼저 12사람을 찾아 세웠습니다. 이 조건을 중심삼고 이 종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12제자를 찾아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야곱 가정까지 3시대를 대신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36가정을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연결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듯 선생님은 어느 것 하나라도 적당히 해 나온 것이 없습니다.

노아 가정의 여덟 식구가 중심가정으로 찾아지기는 했지만 이것은 사탄세계에서 떨어져 내려온 가정입니다. 그래서 직계의 아들딸이 없습니다. 그 직계 아들딸은 세 가정을 중심삼고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 세워진 세 가정은 아담 가정, 노아 가정, 예수님 가정을 대신하는 자리에 있지만 세계와 연결되는 가정입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첫째 가정은 아담, 둘째 가정은 예수, 셋째 가정은 재림주로서 시대를 대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가정에서부터 세계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으로 세운 것입니다.

이 조건은 가정에서부터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예수의 시대를 중심삼고 찾아 나온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세 아들은 천사세계와 같은 것입니다. 천사중의 누시엘 천사가 아담에게 굴복하지 못했던 것을 영원히 모실 수 있는 기준으로 탕감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아담, 예수, 재림주의 3시대를 탕감해야 합니다. 즉, 가인이 반대하던 아담 시대, 가인적인 입장의 유대교가 반대하던 예수 시대, 기독교가 반대하는 재림시대를 모두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인 세계가 실체를 지닌 조건, 즉 영육을 아울러 굴복시키는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렇게 복귀를 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타락한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 내용에 불과한 것이지 직계 자녀의 입장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1960년부터 3년기간에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서 찾지 못했던 가정을 안팎으로 이루어 사위기대의 기반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가정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축복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이 이루어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종족적인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교회는 족장을 중심삼고 이루어집니다. 축복받은 사람들은 전부 족장들입니다. 알겠지요?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설교 형식이 아니라 보고 형식으로 해야 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그 가정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 전체가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한 가정을 보고는 본을 받고 못한 가정을 보고는 잘 되게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천국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정 천국을 먼저 이루지 못하면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3-63
믿음의 세 자녀는 필히 세워야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의 죽을 자리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세웠던 것과 같이, 여러분들도 그런 기반을 닦지 않고는 아들딸을 낳아서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리에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담이 창조될 때부터 섬기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 자녀를 내가 축복받아 애기가 복중에 있을 때부터 태어나 축복받을 때까지 섬겨야 합니다. 이것은 천사장이 아담 해와가 결혼할 때까지 보호 육성하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완전히 복귀해야 여러분의 혈족권내에서 사탄을 추방할 수있는 기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가정을 위주로 전도활동을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제2차 7년노정에서 왜 세계를 순회하면서 축복을 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2차 아담으로 와서 세계적인 사명을 하지 못한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대표하여 43가정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때까지 4천년 기준과 같은 입장으로 40수를 맞춘 것이고, 21개국을 순회함으로써 21수를 맞추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탕감조건을 세우고 돌아온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적인 성지인 한국, 일본, 미국, 독일 이 4개국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탄편이었는데, 이것이 어찌하여 하늘편으로써 축복받은 민족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 후에 세계적인 부흥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 나라들이 축복을 받게 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반대받고, 한국에서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을 때 그들 나라에서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를 환영했더라면 오늘날 한국의 부흥은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10억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원리사상이 들어가게 되어 그 길을 타고 나가면 세계의 부(富)는 한국으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 한 사람을 반대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문제까지 걸려 있습니다. 민주세계를 축소한 것이 한국이며, 공산세계를 축소한 것도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국에서 세계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3-65
해와 국가의 위치를 빼앗긴 영국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 전체와 유대교 전체가 반대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서기관 몇 사람이 반대하여서 예수를 심판해 버린 것입니다. 지방의 유대교는 예수님이 왔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짧은 기간내에 이루어진 사건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늘편 국가의 민족을 대표한 책임자들이 잘못하여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그 나라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운명이 비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2천년 동안 탕감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본래는 영국이 해와 국가가 되고, 미국이 아담 국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민주세계를 이끌 수 있는 기준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지금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이 좋아하는 통일교회라면, 또 선생님이 대한민국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왜 핍박을 받겠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과 상관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하나님과 새로운 문제를 중심하여 기반을 닦아 나오는것입니다.

원래는 영국이 해와 국가입니다. 1960년부터는 일본과 영국에서 왕자와 공주가 평민과 결혼하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적인 사건 전부가 원리적으로 맞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해와 국가의 위치를 일본에 빼앗긴 것은 기독교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기독교에 쫓겨서 이북에 갔습니다. 거기에서부터 기반을 닦아 온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방종교와 같은 입장입니다. 이 통일교회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독교를 중심삼고 나가야 할 텐데 어째서 그러냐? 기독교는 가인적인 유대교가 만든 것이니 아벨적인 기독교가 나와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아벨적인 기독교는 반드시 이방, 즉 원수의 세계에서 나와야 됩니다.

약속을 이루려면 원수세계에 갔다 와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도 축복을 받아 가지고 하란 땅에 갔다 오고, 이스라엘 민족도 역시 애급을 갔다 와야 했습니다. 애급에서부터 다시 한번 가나안으로 복귀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에 들어갔던 것은 그런 이동이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역사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북에 들어갔다 옴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는 이방의 종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의 기반을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방을 축복해 주고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도 그런 입장에 섰고, 가정도 그런 입장에 섰고, 국가도 그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민주세계권내에서 원수였던 일본과 미국이 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미국은 천사장 입장이 된것입니다. 천사장은 아담 해와가 축복받을 때까지 키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입장인 미국이 지금까지 일본과 독일의 부흥을 도와준 것입니다. 미국이 사탄편인 소련 공산당과 대치하여 그의 책임을 탕감복귀하였고, 그로 인하여 2차 대전후 20년 동안 일본과 독일로 하여금 세계적인 부흥을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23-66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의 전통을 세워야 할 때
이제부터는 일본과 독일이 미국을 능가하는 문화세계로 돌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본과 독일을 축복해 주신 것은 단지 그들만 잘 먹고 잘 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반공전선에서 공산당을 쳐부수는 데 앞장서도록 하기 위해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 천사장이 삼위일체가 되어서 세계의 공산당을 때려부수는 데 공동의 책임을 해야합니다.

그 책임을 하지 못하니 그것을 한국이 가르쳐 주어 이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일본과 독일, 미국이 세계인들과 함께 공산주의 전복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야 할 싸움을 지금부터 하는 것입니다.

미국 일본과 더 나아가 독일에까지 어떻게 연결시켜 해결 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아담 국가인 한국도 그렇고 사탄편 국가 입장에선 독일도 공산당과 대립해 있습니다. 이렇게 공산당과 대결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과 독일이 앞으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반공 운동을 전개하여 세계를 하나로 묶는 날에는, 공산당은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고 세계는 평화의 왕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에서 볼 때 이 세계는 외적으로는 이미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구라파면 구라파의 문화권을 중심삼고 통합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연합운동이 벌어져 가는 곳에 내적인 운동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고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중심삼고 복귀의 전통을 세워야 할 여러분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번에 선생님의 계획은 지금까지 전국이 9개 지구로 되어 있는 것을 한개 지구를 셋으로 늘려서 편성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3배로 증가시켜 30개 지구로 편성하려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것을 그냥 두면 여러분이 다 말라 죽게 됩니다.

오늘이 5월 11일이니까 작년 4월 1일부터 전도를 시작하여 만 일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의 통계를 보면 본부의 식구들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은 잘한 일입니까, 못한 일입니까? 「잘한 일입니다」 잘했으면 그대로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애기도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가 떠날 때 못 견딜 만큼 아쉬워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밤 12시가 지나고 2시가 되더라도 가겠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하여 좀 더 있다가 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의 부흥은 틀림없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원칙을 중심삼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살펴보면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식구들이 모였다가 밤 12시가 넘고 2시, 3시가 되어서 가려고 해도 좀 더 있다가 가라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부모의 마음이 동하는 것입니다.

자식하고 같이 방에서 자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이런 부모의 마음을 여러분은 상속받아야 합니다. 누가 옷을 허름하게 입었으면 그것을 보고 부끄럽게 느껴야 됩니다. 누나나 형제가 보아도 안 됐는데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들이 먹지 못하여 핼쑥한 얼굴을 보면 부모는 자기가 먹지 못하면서도 무엇이든 간직했다가 그냥 그대로 주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23-68
위하여 살자
그리고 또 교회가 발전하려면 노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젊은이도 사랑해야 하지만 먼저 노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아무리 옷이 어떻더라도 남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럼 마음으로 `내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사는 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목표로 해야 할 단 한 가지는 어느 누가 찾아오더라도 세상에 죽었던 아들이 찾아온다 하는 기분을 느껴야 됩니다. 그래서 밤 12시가 문제가 아니고 밤을 세우는 것도 문제가 아니어야 됩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그 사람을 오라고 기도하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담을 타고 넘어서라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개척 초기에는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요술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서 상처를 입고도 위안을 받을 수 없었기에, 부모 이상의 참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을 찾아들려고 하는 것인 정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벽에 뛰어오는 사람도 있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올 때 들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외국에 갈 때면 그 마음을 가지고 갑니다. 그것이 절대 공식입니다. 열두 시가 지나고 두시, 세시가 되어도 내가 졸음이 안 오는데 자면 천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찾아 이 길까지 올 때는 6천년의 기간을 거치고 수많은 죽을 고비를 거쳐 이곳까지 방문해 온 것입니다. 그를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탕자의 비유에서와 같은 어버이의 심정을 가지고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하면 원리강의를 하지 않아도 전도가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엎드려 기도하게 되면 `아버지!’ 하고 외치는 그 한마디가 뼛골에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만 가졌다면 누구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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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지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축복받아 아들딸을 낳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부모의 심정을 지녀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는 표어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지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은 무슨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교회 개척시대의 사람들은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이런 마음을 갖겠다고 다짐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 대한민국이 잘되려면 대한민국에 붙어 뜯어 먹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대한민국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교회에 빚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교회에 플러스되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나라에 신세를 지려고 하는 사람은 기생충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교회나 그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교회에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에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지닌 국민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1차 7년노정에서부터 들어와 고생한 사람들 앞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내가 책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앞으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내몰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언제나 그런 선생님으로 알면 안됩니다. 선생님이 넘어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교회와 선생님에게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신세진 것을 다 갚지 못할 바에는 안팎으로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적인 모든 문제를 중심삼고는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선생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왜 50평생을 고생했겠습니까? 나도 범인(凡人)의 한 사람이요, 여러분도 범인(凡人)의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같은 배를 탄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에게는 여러분의 가정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생님이 가는 길에 장애물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을 부흥시켜 가지고 교회를 돕고 선생님의 뒤를 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앞에 신세를 지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장은 여러분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신세를 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공은 공이요, 사는 사, 공과 사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될 때에는 여러분 형제끼리 도와야 합니다. 선생님에게 절대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끼리 협조하는 입장에 서야 가인 아벨을 탕감복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를 끌어들여 부모에게 기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제복귀운동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관계를 맺어 나라에 신세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길을 가게 하려니 할 수 없이 여러분들을 고생시켜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식구들은 전부다 이를 악물어야 합니다. 재미있게 살려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가정은 어느 한 날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어려운 길을 통하는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가정도 그래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가정의 책임입니다. (이후의 말씀은 녹음되지 않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