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3: 귀향객

귀향객
1969.01.05 (일), 한국 전본부교회

22-33
귀향객
[말씀 요지]

이 땅의 사람들은 문(門)을 모르고 헤매다 도중에 쓰러져 간다. 이것들을 처치하는 곳이 지옥이다. 천당은 재생한 아기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고향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고향에 가면 `이 녀석아 왜왔어!’ 하는 경우와 `아이구 자네 잘 왔네!’ 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계에 갈 때에도 환영받는 사람은 본향으로 가는 것이고, 배척받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먼저 가르쳐 주지 않고 가게 하는 하나님이라면 그는 원수다. 하나님은 각자의 양심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가르쳐 주신다. 우리들은 그 양심을 얼마나 잘 모시고 있는가? 양심은 인간이 걸을 때마 먹을 때나 선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밥보다도 해보다도 물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공기다. 그런데 그것은 안 보인다. 그와 마찬가지로 양심도 안 보인다. 양심을 벗삼고, 주인으로 삼고 그 말을 들어야 한다.

양심은 깊은 땅 속에서도 작용한다. 하나님도 그렇게 작용하신다.

양심은 몸과 결연하지 못하고 고독 단신으로 살다가 간다. 양심이 소원 성취하여 춤을 추다가 가야겠는데, 엉엉 울다가 원귀가 되어 가는 것과 같다. 양심이 있는 것은 천지법도에 의한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부부를 이루어 자식을 낳아 가지고 가족과 함께 들어가는 곳이 천국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세계에서 제일 잘생긴 여자 혹은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목구비만 잘생겼다고 잘생긴 게 아니고, 마음과 몸이 완전히 둥글게 잘 화합된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백 퍼센트 하나 되어야 하는데, 이 둘이 몇천만 갈래로 갈라지려 하니 지옥인 것이다.

주인인 양심을 푸대접하지 말라. 대접을 잘하면 살이 찐다. 그러다가 환고향(還故鄕)하면 천지의 모든 것이 그 품에서 춤을 추려 할 것이다.

가치결정은 인간생활의 짧은 기간에 되어진다.

종교는 모든 것을 부정하라고 가르친다.

육신생활의 시간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우리는 가야 한다. 운명길을 돌파해야 한다. 돌파하려면 승리해야 한다. 한번 실패하고 가면 다시 올 수 없다. 승리한 자는 천하가 환영하지만 패한 자는 천하가 배척한다.

지옥은 패자의 서러움과 탄식으로 호소하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도 대해 주는 사람이 없다. 대해 주면 대해 주는 사람도 패한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이다.

1968년은 한번 왔다 갔으니 다시는 상봉할 수 없는 시간이다. 잘못 살았으면 하늘의 기대하심에 대하여 배반자가 된 것이다.

1969년도 또 가야 할 해다. 1968년도 내 마음에 남아 있어야 한다. 1969년 역시 내 마음에 남을 수 있게 살아야 한다. 한평생 내게 없어서는 안될 시간으로 남을 수 있게 살아야 한다.

통일교회는 악한 편의 재료를 제거해 버리고, 선한 편의 재료를 수습하는 곳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하고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양심에 가책받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왜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시집간 아내가 바람 피우는 것과 같다.

역사는 변경되어도 원칙은 변경되지 않는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였다.

몸뚱이의 뜻을 밟아치우고 마음의 뜻을 찾아 모셔야 한다. 여기에 죽음을 넘어 재봉춘(再逢春)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