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23 to 22-330: 짐을 지우는 자가 되지 말자

짐을 지우는 자가 되지 말자
1969.05.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22-323
짐을 지우는 자가 되지 말자
여러분들이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고, 혹은 연락을 해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22-323
편지는 좋은 것이나 잘 써야 한다
한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될 때 그 위기의 내용 전체를 국민한테 알리게 되면 그 국민의 사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 위기로 이 나라는 끝날 것이다’라고 생각해 가지고는 그 나라를 수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그 위기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책임을 진 사람은 누구보다도 고심을 해야 됩니다. 옆에서 구경하고 평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진 사람의 입장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위기, 위기’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했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새로운 움직임이 연결되어야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편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천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개인이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자기가 책임진 듯이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두려운 일입니다.

선생님이 일하는 데 있어서 환경적으로 부딪칠 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사방에서 바람을 맞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본부를 믿고 실낱 같은 본부의 소식, 본부가 잘되고 발전한다는 소식만 바라고 있는데 본부가 어떻고 어떻다고 평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목을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의 특명에 의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쓸데없는 편지들을 해서 있는 말 없는 말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전부다 정착하지 못한 떠돌이들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꾸 흉을 보게 되면, 이 철없는 본부패들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순회 가서 보면 제일 골치 아픈 것이 그것입니다. 난데없는 말들, 선생님은 생각지도 않은 말들, 사실과 맞지도 않는 말들을 전부다 편지로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편지를 누가 해주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무슨 책임자인 것처럼 해가지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구나 가까운 사람들을 가지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사람들은 어느 한 때가 오게 되면 전부다 청산지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한도내에서 전부 청산짓고 넘어 가야 됩니다. 앞으로 그런 역사적인 사건은 순회면 순회도상에서 크게 문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제2차 7년노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런 사건의 동기를 선생님이 만들어 주었습니까? 아니면 누가 만들어 주었습니까? 이것도 앞으로 역사를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청산지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책임지지 않은 사람들이 마치 책임진 사람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한 모순입니다.

개척시대에, 개척하는 자리는 시작부터 어려움이 있습니다.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싸움은 출발부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자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끌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담도 하지 않고 제3자의 입장에서 이러쿵 저러쿵 편지를 합니다. 왜 그런 편지를 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입니까? 소망을 주고 희망을 북돋워 주지는 못할망정 왜 상처를 주느냐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외국에 편지 보내는 것을 통제해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편지라는 것은 받는 사람을 격려해 주고 그 사람이 가는 길에 플러스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편지는 헛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뜻을 위해 충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왜 편지를 해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책임은 여러분이 지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책임질 수 있는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선생님이 편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지를 보내면 부담이 될까 봐서 자주 못하지요. 그렇다고 간부들이 하는 것도 아니고 통일교회의 떠돌이들이 편지를 해가지고 이렇게 형편없는 오해를 하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편지를 써도 좋은 내용을 써야 됩니다. 본부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따라가는 사람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잘 된다, 좋다 할 때, 책임진 사람들은 편안한 자리에서 거기까지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 그들은 내부에서 그 이상의 고생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이상의 고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사람이야 나쁘면 돌아갈 수도 있고 비켜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도하는 사람은 나쁘다고 비켜갈 수 없습니다. 나쁘더라도 그런 것을 소화하고 지나가야 됩니다. 내부에서 치열한 고통을 치르더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임지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곤란한 일이 많은 것입니다.

22-325
사적으로 교회에 짐이 되지 말라
일본이나 구라파와 미국에 가서 보더라도 중간적인 입장에 있는 식구들이 자기들끼리 왔다갔다하면서 뭐 어떻고 어떻다고 그럽니다. 이건 미국이나 어디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앙세계에 있기 때문에, 또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언제나 서로 보탬이 될 수 있는 말만 해야 합니다.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어디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고는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들 합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교회로부터 전부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떨어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폐단이 무엇이냐? 교회에 속한 모든 물건을 존중시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아버지 것이니 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어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발전하려면 자기가 수고한 공로를 자칭해서 표창해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일했으니 교회에서 나를 도와줘야지’ 하는 사람은 장사를 한 사람입니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걸어 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했으니 교회에서 나를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도와 달라고 해도 안 도와 줍니다. 배반자가 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교회가 지금보다 더 치열한 개척노정에 있었던 생각은 잊어버리고 자기의 짐보따리를 갖다 맡기려고 합니다. 교회가 가는 길 앞에 자기들이 지장을 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있어서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생각을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무리들도 이젠 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을 환영했지만 선생님을 만났으면 선생님에게 짐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짐을 절대로 교회에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공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짐을 지되 사적인 입장에서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적인 입장에서 응당히 짐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평이 많습니다.

외국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서양 사람은 자립정신이 강합니다. 벌써 18세만 되면 혼자 자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철저한 교육방침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양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것이 현재의 세계관을 만드는 분기점입니다. 자립정신이란 스스로 개척해 가지고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이 있습니다. 이때가 어떤 때이기 때문에 어떤 노력을 해야 된다는 기준이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준을 망각해 버리고 그 기준 앞에 염려될 수 있는 입장이 되면 좋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을 원수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공적인 길에서 개인이 이익을 보겠다고 하면 거기에서 모든 부패가 벌어집니다.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적인 일에는 보탬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일에서 개인의 이익을 보겠다고 하면 망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단체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국민이 많은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고 뭐고 위함이 없이 전부 자기들만 좋으면 된단 말이에요? 공적인 것에 신세를 지게 되면 그 나라나 그 개인은 빨리 망하는 것입니다. 신세를 지되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다 하늘땅 앞에 부끄럼이 없는 자리에서 져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신세를 지면 하늘이 다 갚아 주십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신세지는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세를 끼치는 자리에 서지요.

22-327
뜻길에서는 언제나 십자가를 지고 있어야
여러분들이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지만 언제나 한 면은 공적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생활과 움직이는 면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공적인 입장에서 앞장서서 일하겠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오래된 사람들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사람들을 한 20군데로 갈라놓으려고 합니다. 자꾸 갈라놓을 것입니다. 갈라놓아야 둘 다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삽목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를 보더라도 미류나무 같은 것들은 가지를 쳐 주어야 합니다. 그냥 두면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무자비하게라도 처음부터 순을 꺾어 삽목을 하면 나무도 살고 그 가지도 새로운 나무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썩은 가지로 인해 나무가 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언제나 하나의 십자가를 붙안고 나가야 합니다. 외로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 때문에, 그 일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고달프고 어느 때보다 마음 놓을 수 없지만 당당합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때가 반드시 옵니다. 오래된 식구가 간증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간증은 자신이 활동하던 그때 이상의 신념을 가지고 그때 이상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 사그라진 심정을 가지고 간증하는 것은 도리어 화가 됩니다. 왜 화가 되느냐? 그 간증을 듣고 대중도 그렇게 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자기식으로 만들어서 동정을 받으려 하면 오히려 큰 화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여러분들도 가야 한다. 내가 이렇게 고생했으니 이렇게 갚아야 한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난날을 간증하기 위해서는 오늘을 간증할 수 있는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날과 오늘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주고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간증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헛것이 됩니다. 즉, 과거에 아무리 잘했더라도 하루의 실수로 역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천번 만번 잘했더라도 한 번 법을 어기면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적인 자리는 외롭다면 지극히 외롭고 무섭다면 지극히 무서운 자리입니다. 언제나 마음놓고 잘 수 없고, 마음놓고 먹을 수 없고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생활의 비결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22-328
무엇으로 원리의 세계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자기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이끌어 주고 누구보다도 심정적으로 품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품에 끌려 안기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도 그런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딴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간을 더 연장시키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욱 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남이 자는 시간에 그를 위해 기도를 하고 그 사람을 위해 복을 빌면, 그것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렇게 기도해 준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그가 오기를 밤잠을 안 자고 고대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는 밤잠을 안 자고 오는 것입니다. 끌려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어디 가든지 그 경지까지 깊이 들어가게 되면 밤이 와도 졸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딴 세계의 자극, 즉 졸음보다도 더 강한 심정세계의 자극이 나와 더불어 주고받게 되면 졸음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피곤보다도 강한 자극을 주고받을 때 그 피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힘의 원리를 알고 있겠지만 그 마음이 없어서는 절대 전도 안 됩니다.

따라서 사람이 오자마자 그 사람 보고 `저 사람 왜 왔지? 보기 싫은데 또 왔구나’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를 만나더라도 원수를 대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거리감 없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원수의 세계도 점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들까지도 싸우지 않고 말없이 점령해 가지고 자기편을 만들 수 있는 동기를 가진 사람을 도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뜻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뜻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어정어정하거나 같이 다녀서는 안 됩니다. 반갑지 않은 사람하고 같이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인연을 떠나 분립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모아지면 사고를 칩니다. 사고쳐요. 전도도 그렇습니다. 서로 만나면 반가와하고 밤새워 가며 얘기하고, 헤어져 있으면 서로 그리워야 합니다. 같이 사는 사람끼리 그리워하지 못하면 그들은 같이 살 가치가 없습니다.

이제는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원수가 없으니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겼다는 조건을 세워 놓고 때가 되면 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본부에서는 책임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선생님 가까이 있는 사람은 원리원칙대로 책임을 다한 사람 아니면 안 됩니다. 원리원칙대로 책임한 사람 아니면 부장이나 지구장, 지역장이 보직을 절대 못 줍니다. 그러므로 원리원칙대로 공식적 노정을 거친 사람이 아니면 본부나 선생님 가까운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36가정들, 다른 가정들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원리원칙대로 하지 못한 사람은 선생님 가까이 있지 못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원리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데 원리원칙이 아니면 무엇으로 그 세계를 만들겠습니까? 본부도 그렇습니다. 책임을 완수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가정을 이루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임을 완수해야 본부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본부에 대한 인사는 책임을 완수했다는 조건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결정하겠습니다. 책임도 다하지 못하고서, 부장이니 뭐니 하는 사람은 앞으로 고생을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부장들도 책임 못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내보낼 것입니다. 전부다 내보내서 책임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갈 길을 못 닦으면 선생님이 앞으로 저나라에 가서 책임추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못한 사람들은 보따리 싸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지구장들까지도 인사이동 시켜서 지방으로 개척전도 보내어 자기 갈 길 닦게 할 것입니다. 자기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본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부에 있는 데 무슨 책임이 있어요? ‘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본부에서 무슨 책임을 지고도 원리적인 믿음의 자녀 셋을 두고 12명 전도를 못했다고?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전도란 편지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조언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지는 읽어 보면 되는 것이잖아요?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 안 갈 수 있어요? 남자로 태어나서 장가 안 가도 됩니까? 안 갈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없는 사람은 사회의 일원도 그 나라의 국민도 못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믿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전체 원리가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가정입니다. 복귀는 개인복귀가 아니라 가정복귀입니다.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안팎의 조건이 `나’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여기에 대한 확실한 사상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녹음 상태 불량으로 일부분 중략)

22-330
죽고 사는 문제에 걸려 있는데 편안히 잠잘 수 있느냐
피곤할 때 반작용을 일으키게 하면 그 피곤이 풀립니다. 갑자기 팍 누르면 정신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갑자기 더 피곤하게끔 단단히 결심하면 거기에서 반발이 온다는 것입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참 이상합니다. 몇 시간은 자야 됩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렸는데 몇 시간 자고 나서 하자고 합니다. 죽을 때에 `아 몇 시간 자고 죽겠소’ 하면 그것이 통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이북에서 피난 나올 때 삼팔선 근처에서 접경선을 넘어야 하는데, 당시의 때가 아주 긴박하다는 것을 예감했습니다. 접경지대가 위태하다는 걸 알아 가지고 접경선을 넘으려 하는데 경비대원들이 쫓지 않아요. 쫓으면 쫓는 만큼 밀려나갔다가는 경비대원들이 앞으로 가면 또 그들 꽁무니를 따라서 그만큼 나가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이 불리하다는 것을 벌써 확실히 알거든요. 그래 가지고 경비대원들이 전부다 꽁무니빼는 것을 현장에서 봤어요. 그날 밤에는 졸리기는 한데 잠은 안오고 예감이 이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비대원들이 보따리를 싸서 내빼는 겁니다. 그럴 때는 다르게 가는 길이 없어요. 그 사람들을 따라가는 수밖에요. 일선 경비대니까 그 사람들이 제일 빠른 길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가만 따라가니까 배를 타고 용매도로 가요. 해주에서 청단까지가 80리 길인데 그때가 새벽 2시였어요. 경비대와 같이 퇴각 안 하면 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긴박한 와중에서 선생님은 걱정이 되어 숨이 막힐 지경인데 이 녀석은 걸으면서 졸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서 갔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걸으면서 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녹음이 중단되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