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08 to 22-320: 어떤 모양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어떤 모양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1969.05.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22-308
어떤 모양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기 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역사의 배후에서 홀로 만민을 수습하시며 지금까지 참아 나오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서도 당신의 뜻을 이어받아 생명을 걸어 놓고 당신을 위해 정성들이는 자녀들 위에 아버지의 놀라운 평안이 깃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수많은 나라 가운데 보잘것없는 한국을 택하셨고, 이 수많은 백성 가운데서 소수의 무리만이 오늘 아버지 앞에 부복하였습니다. 저희들은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받아 아버지가 원하시는 소원의 목표를 위하여 생애를 바쳐 달려가기로 이미 결심한 몸들이옵고, 이미 아버지 앞에 맹세한 몸들이옵니다. 하오니 일편단심만을 아버지 앞에 드릴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도 고대하고 그렇게도 사모하던, 외로운 무리를 수습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또한 소원의 실체인 복귀된 아들딸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대하시는가 하는 것도 저희들은 아옵니다. 옷깃을 여미고 합장하여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정성들이는 사람들은 많사오나 아버지의 내정을 살피어 이 땅 위에서 아버지 대신 원수가 거하는 적진을 점령하여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아들딸의 모습이 없는 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그 얼마나 외로우셨고, 그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우셨사옵니까? 그런 심정과 그런 가슴을 억제하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셔야 했던 아버지이심을 저희가 진정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지의 모든 권한을 당신의 장중에 쥐시옵고, 모든 생명의 운명이 당신께 귀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 만물이 아버지로 말미암기를 고대하고 있는 줄을 알기에 만물을 주도하고, 만물의 중심이 되는 인간은 온 전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한 날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슬픈 사실인가를 저희는 아옵니다.

여기에 모인 저희들은 세상 그 누구의 인연을 존중시하여 모인 것이 아닙니다. 뼛골을 통하여 흘러나온 죄악의 근원을 끊어 버리고 생명의 원천인 아버지와 인연을 맺기 위하여 나온 몸들이오니 묶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제거시킬 수 있는 자체의 힘을 허락하시옵고, 강하신 당신의 사랑의 힘으로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키고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으시어서 아버지와 직행할 수 있는, 천정에 사무친 마음과 당신의 마음 가운데 사로잡힐 수 있는 간곡한 흠모의 심정만을 이들이 갖게 하옵소서. 이들에게 자녀의 명분을 갖추시어 확고한 자리에 세워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부터 하루 전체를 아버지 맡으시옵소서. 그 누구도 흠모하지 말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말며 당신을 흠모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고, 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모습들이 이곳을 향하여 경배하고 있사오니 거기에 온전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슬픔 가운데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의 성상을 바라보면서 슬픔이 물러가기를 고대하는 자들까지도, 당신의 옷깃을 붙들고 같이 눈물짓는 자들까지도 당신이 품으시어서 이 한 날을 해원성사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 앞에 저희들은 온유겸손한 어린양이 되어 당신 앞에 전체가 흡수되어질 수 있는 하나의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아침부터 온 하루를 아버지 앞에 맡기고 저희들은 가겠습니다. 또 가야만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가는 도상에서 쓰러지는 것을 저희들은 보았습니다. 하늘 앞에 충효의 인연을 자랑하며 당신의 아들이요, 당신의 딸이라고 절규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 못 가서 하늘의 배반자, 패배자가 되어 하늘 앞에 역로의 길을 가는 것도 저희들은 보아 왔습니다. 쓰러져 아버지를 원망하는 자도 있었사옵고, 돌아서면서 아버지를 저주한 자도 많았사옵니다.

한결같이 참으셔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 누구 한 사람 위로한 자 있었사옵니까? 천년 만년, 천세 만세 아버지의 아들딸이요, 아버지의 소망이요,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내정적인 사정을 토로할 수 있는, 그 누구한테도 본이 될 수 있는 참된 아들을, 참된 딸을 아버지, 품으시옵소서. 지금까지 불신의 종족이었던 한을 풀고 당신께 향하지 않는 마음을 터놓고 당신의 기쁨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가 영원히 자랑하면서 안고 사랑하고, 안고 칭찬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당신의 이념을 따라 나선 수많은 자녀들이 뜻을 받들며 소원하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2-310
말 씀
우리의 일생은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어난 후 어머니의 품에서 키움을 받아 소년시대를 거치고 청년시대, 장년시대를 거쳐 노년시대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생애 가운데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살았는가, 자기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요 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있었는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됩니다.

22-310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남기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라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전체의 소원을 대신해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타락권내에 있는 자신들이 세속적인 욕망과 사정(私情)을 걸어 놓고 따라 나온 것이라는 것, 또 우리가 소년시절, 청년시절을 거치며 자라 나온 과정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슬퍼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우리가 대한 전체도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이었음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또한 오늘부터 내일을 향해 여생을 살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 `난 이렇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있을 것인가를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땅 위에 왔다 가게 될 때 반드시 귀한 것을 남기려 하고, 하나님이 의도하는 표적을 세우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 무엇을 남기려면, 여러분은 생애노정에 있어서 자기가 볼 때 이것은 어떠한 것이라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떠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보람된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의 한때를 갖지 못하면 하늘 앞에 가서 이 땅에 왔다 간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이렇게 했다’ 하는 조건을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보게 될 때도 어떠한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냐 하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무엇인가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남이 집을 가졌으면 자기도 집을 가지려 하고,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으려 하고, 그 자녀들이 보통 자녀들보다 특별한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나라에서 고대하는 자녀, 나라가 기억할 수 있는, 나라가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자녀를 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라면 나라에서 필요로 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상도 이러하거늘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갔을 때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모습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큰 문제입니다.

여기 부인들은 알 거예요. 시집을 가 봤으니까. 시집 간 아주머니들은 잘 알 거예요. 남편이 사는 동네로 시집을 가게 되면 아무 인연도 없었던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야 됩니다. 그럴 때 자기 스스로 갖춘 것이 없으면, 즉 외적인 물질적 조건이나 내적인 모든 조건, 즉 언행심사, 혹은 행동적인 모든 문제, 혹은 마음씨에 있어서 남편이 사는 부락 전체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물론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사람들 모두가 우선 외형적으로 대합니다. 생긴 모습이 어떤가, 학식이 어떤가, 교양이 어떤가 하는 것을 중심삼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데 외모도 갖추지 못했고, 가진 것도 없고 하면 그 부끄러움은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만일 전체가 바라보는 자리에 있어서 흠이 있다든가 혹은 불구자이든가 하면 시집가는 날이 좋기보다는 그날처럼 괴로운 날이 없고 그날처럼 서러운 날이 없을 거예요. 시집가 본 아주머니들은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시집가서 자기로 말미암아 좋아질 수 있는 어떠한 조건, 혹은 외적인 물질이나 다른 무엇을 가져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인연맺지 못하면 그것 역시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적인 문제, 즉 생활해 가는 데 있어서 그들 앞에 칭찬을 받고 그 가정 혹은 종족 앞에 보탬이 되어, 그로 말미암아 그 가정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게 된다면, 그리하여 모두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나가게 된다면 과거에 슬픔이 있었고 체면을 세울 수 없는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과거는 어떻든간에 그 내적인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기준을 세울 때까지는 고생을 해야 됩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세상에서 흔히 보는 일입니다.

22-312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탤 것인가
여러분이 살아가는 일생 동안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갑니다. 오늘도 통고 없이 오고 통고 없이 갑니다. 이렇게 무정히 흐르는 그 세월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 세워 뜻 있는 그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난 것입니다. 부모의 혈육을 받아서 한 가정에 태어난 내 자체가 간단해 보이고 내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뜻을 생각해 볼 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과 인연된 환경을 움직여 나가게 될 때는 국가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요, 세계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동기의 기원이 내 자신부터 싹트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가정이면 가정에 속한 자기 개체는 자기 하나에 국한된 자기가 아님을 여러분은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일원으로서 가정에 플러스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이며 장래에 어떠한 본을 이 가정에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가정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또 가정이 어떠한 위치에 처하게 될 때는 자기의 일신을 던져 하나의 방패가 되고, 방파제가 되고,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라도 그 가정을 구하는 것이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입니다.

이와 같이 태어난 환경, 즉 가정을 두고 볼 때에도 우리 자체에게 요구하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도 그런 관계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면 너는 대한민국에 무엇을 보태기 위해 왔는가,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 왔는가, 어떻게 가기 위해 왔는가, 대한민국에서 자기의 일생의 노정을 보내게 될 때 거기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뒤따릅니다. 이러한 것을 자기의 생애를 잊어 버리고 자기의 생활을 잊어버리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싸워, 나라 앞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사람은 애국자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생각한 것도 자기 나라나 자기 가정이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일원으로서 운명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계 앞에 무엇을 보탤 것이냐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 앞에 보탬될 수 있는 내용을 남기고 갔을 때에 그는 세계가 추앙하는 성현이라는 이름을 남기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국가와 세계까지 나아가서는 하늘까지 천주까지 더 나아가서 하나님까지 계시는데 우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개인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어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태어나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살다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죽을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개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개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무엇을 보태어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학술적인 면이나 예술적인 면, 그밖에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민족이면 민족, 그 족속이면 족속, 그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 인류 앞에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은 이것이다’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남기기 위해 여러분은 언제나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2-314
하나님의 뜻에 대한 교회의 책임, 교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그 뜻 앞에 봉사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 위에 나타났습니다. 통일교회라는 간판이 나오기까지 오랜 역사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로서 탄생할 때까지의 그 자체를 진정한 의미에서 선생님이 잡았습니다. 교회 자체에도 복중시대와 같은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년시대를 거치고 청소년시대를 거쳐 장년시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떠한 입장일 것이냐? 지금까지 소년시대를 지나서 이제는 장년시대로 넘어설 수 있는 때에 있다고 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때가 언제냐? 소년시대가 아닙니다. 청년시대를 넘어서 장년시대로 가는, 즉 20살을 넘어서 40살에 이르는 그 사이가 제일 중요한 때입니다 사람은 20살부터 30살에 이르기까지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터를 닦고, 거기에 자기가 은거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또 앞으로 뚜렷한 목적을 중심삼고 갈 수 있는 기반을 환경적으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사람은 30살이 넘어서 40살을 향하게 될 때 무의미한 인간, 평범한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우리 교회의 일원입니다. 때문에 `나는 교회에 어떠한 자취를 남기고 갈 것이냐? ‘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교회에 있어서 식구면 식구라는 이름을 중심삼고 자신이 식구들 앞에 본이 되고 우리 교회가 가야 할 길에 플러스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됩니다. 또한 가정이나 국가, 세계가 가고 있는 길 앞에 필요한 인재로서 그 길 앞에 무엇인가 보탬이 되어 추진시킬 수 있고 거기서 기억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일생은 생활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활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어떻게 해도 시간권내를 넘을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에 있어서도 뛰어넘지 못하는 생활노정을 가고 있다면 기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어서 가는데 그것이 발전하고 있느냐, 내려가고 있느냐, 올라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돈이 있고 없음을 잘 압니다. 그것은 자기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의 생활을 어느 정도는 알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 생활에 있어서도 자기가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는가, 스스로의 목적과 출발점을 중심삼고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출발이 아무리 좋고 목적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일생을 두고 볼 때에 다 가지 못한 입장에 설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다가 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가는 길에 있어서 오르막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리막길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내려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하는 선에 머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자체를 두고 한탄할 것이요 교회를 탓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지금의 때가 청년시대에서 장년시대로 넘어가는 때라 할진대 이 때는 발전할 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의 심정적인 기준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소년시대에 있느냐, 노년시대에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때는 장년시대, 즉 책임을 완수해 가지고 그 가치를 만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소년시대에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때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때는 장년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만 노년시대에 서 있어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때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 그러지 않으면 교회 앞에 플러스되고 교회 앞에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세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일을 같이 시작했지만 그 가운데에서 일등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두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입장에 설 수는 없습니다. 그 한 사람이 좋아야 전부가 좋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일생을 두고 볼 때도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경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통일교인들이 전세계에 널려 있지만 그들도 전부다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발에서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그 노정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가다가 후퇴하는 사람, 후퇴하여 거꾸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결심하고 가는 사람, 그렇게 뒤넘이치기를 반복하면서 그들의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22-316
지상생활의 중요성
그러면 여러분의 걸음걸이는 어떠합니가? 여러분들은 생애에 어떠한 선을 그으면서 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더불어 계실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제시해 주신 길을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동정을 해주고 싶고, 가는 길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일생을 산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필요한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남아질 것이며, 영구히 모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떠한 모양으로 이 길을 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마이너스가 되고 있느냐 플러스가 되고 있느냐, 혹은 교회에 빚을 지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 앞에 빚을 지우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영광의 자리에 서느냐 불행한 자리에 서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가는 한 시간 한시간에도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이렇게 살았고, 내일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금년에는 이렇게 살았으니 내년에는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식으로 살아 반드시 무엇인가를 남기고 가야 됩니다. 반드시 남기고 가야 돼요.

세월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연령과 더불어 세월은 언제나 흘러가는 것입니다. 뜻의 시대도 흘러갑니다. 여러분의 연령도 흘러갑니다. 그러면 언제 흘러가는 천운과 흘러가는 이 세월의 운세와 흘러가는 우리 생애의 생활을 일치시킬 것이냐? 그리하여 하나님이 가시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을 일치시키고, 거기에 세계의 운세까지 일치시켜 그것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 내가 연결시키지 못하면 고임돌을 고여서라도 연결시킬 수 있는 한때를 마련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평범하게 생활하는 그런 일상 생활 가지고는 도저히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태어났으니 가야 되고 가는 데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남기고 가야 됩니다. 빚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우고 가야 합니다. 그 나라 앞에 빚을 지워야 됩니다. 빚을 지운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이 세계 앞에 무엇인가를 주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과거에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사람이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과거의 역사는 수습될 것이요, 현세도 그로 말미암아 수습될 것이며 미래 또한 그로 말미암아 수습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영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아무리 영원하시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려감이 있고 세상과 하늘땅 앞에 손해를 준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원하는 영원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류, 혹은 피조세계, 존재세계 앞에 있어서 필요적절하고 가치로운 내용을 언제나 보급해 주는 자리에서 영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과거에도 필요했고 현재에도 필요하고 미래에도 필요한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그러한 내용이 우리에게 없다 할진대 그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하나님을 추앙하고 그 하나님께 속하기를 원하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맺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찾아 나가고 영원한 생명을 갖겠다는 우리 자신은 과거에도 하나님이 그러셨듯이 우리도 그래야 되고, 현재에 하나님이 그러하시듯이 우리도 그래야 되고, 미래에도 하나님이 그러하실 것이니 우리도 그래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영원한 하나님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의 처지에 따라서 그 무엇인가를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수고하면 그 수고는 자식의 마음에 남아서 그 자식은 죽을 때까지 부모 앞에 감사합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무엇인가 남기고 간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그를 추모합니다.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마음을 다하여 세계 앞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간 성현이 있으면 세계 사람들은 그를 추모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활노정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심정세계를 그리워하시고 소망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활환경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외적이거나 내적이거나 무엇인가를 남겨 놓아야 됩니다. 내 특징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내 자신이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구나. 그렇지만 이것만은 내가 남겨야 되겠다’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필요한 것이요, 현재에도 필요한 것이요, 미래에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필시 영원하신 하나님께도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속성을 가지신 영원한 실존의 하나님과 영원히 동반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 여러분 각자가 노력해야 합니다.

22-318
어떤 것을 남긴다는 것은 자기의 재산을 만드는 것
여러분이 가는 길은 경쟁하며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길을 단장하며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한 때 하나님 앞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외로이 혼자 가야 할 최후의 운명길입니다. 그런 길을 갔는데 만일 하나님이 환영을 해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에 태어나게 될 때에 외로운 독자나 아무것도 없는 자의 아들딸, 그런 불쌍한 처지에 있는 아들딸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그러기는 싫을 거예요. 누구나 유복한 환경, 즉 유복한 가정, 유복한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할 것입니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그 나라가 자신을 환영하고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어떠한 나라에 태어날 것인가? 유복한 환경을 가진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가, 혹은 온 천지가, 하늘나라와 땅 전체가 환영할 수 있는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가 하는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이 짧은 생애 노정임을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제2차의 세계와 당면하게 됩니다. 그 세계는 어차피 가야 할 세계입니다. 새로이 탄생해서 그 세계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 고독한 독자의 신세로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유복한 환경, 즉 자기의 태어남을 환영할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러분이 가는 길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이 땅에서 이렇게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저 나라에서는 유복한 환경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내적 생활에서나 외적 생활에서나 다 그렇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그러한 동기를 교회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가졌느냐?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은 여기에 인연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커서, 여기에서 살다가 어느 때는 갈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 것인가를 알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2천년간 수고한 터 위에 인연되어 태어났고, 또 지금까지 교회에서 신세를 졌으니 여기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 무엇을 남긴다고 해서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밑천이 됩니다. 여러분의 밑천이예요. 어떤 사람이 좋은 가문에서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면 그 부모의 것이 모두 그의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다 여러분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저 나라에 가게 될 때 자신이 그런 환경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이 땅에 사는 이 생애노정에 있어서 어느 때 하나님과 인연을 맺을 것인가? 또한 어느 때 전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찬양해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 줄 수 있는 인연을 맺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언제나 생각하고 느끼며 생애 노정을 가야 됩니다.

사람 가운데에는 두 종류, 즉 기쁜 처지에 태어나 기쁘게 살다 가는 사람이 있고 슬픈 처지에 태어나 슬프게 살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엇바뀌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아무리 기쁜 환경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슬픈 면을 거쳐가는 것이요 슬픈 처지에 태어난 사람도 기쁜 면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결과적으로 어떻게 갈 것이냐? 생활에서 어떤 때에 그런 것을 찾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현시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그러한 한 때를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그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22-320
기 도
오늘은 1969년 5월 11일, 이달 들어 두번째 맞는 주일이옵니다. 내 실체를 존재세계에 전개시킨 그날부터 공간과 시간권을 이어 가면서 싸움은 벌어져 나왔고, 지금도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아버님 존전에 모였습니다. `나는 여기에 왔나이다. 이렇게 싸워 왔고 앞으로 이렇게 가겠나이다. 과거의 모습은 이랬으며 오늘의 모습은 이렇고 내일의 모습은 이럴 것입니다’ 하면서 당신과 접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당신이 싸우시는 싸움터로 따라가고, 당신이 가시는 행로를 따라 이 치열한 투쟁의 세계를 거쳐 가야 할 저희들이옵니다.

초라한 저희들은 연약하고 가냘픈 자체들이옵니다. 황량한 광야에 홀로 서서 맹수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외로운 자리에 서 있사오니, 야곱이 하란을 향하여 가던 광야에서 그 외로운 심정을 다 모아 아버지와 동하던 자리를 생각하며 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위에 아무도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아버님이 거하실 수 있는 자리가 된다면 거기에 생명의 동기가 있는 것이요, 영원한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당신을 즐거이 불러 보겠사옵니까? 아버지란 그 말 가운데 피가 맺히고, 심장의 모든 동맥이 동하여 맥박이 최고로 박동하는 그런 자리에서 저희가 아버지를 불러 본 적이 있사옵니까? 어떠한 자리에서 아버님을 불러 보았는가 스스로 반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자리에서도 아버지를 위해 일할 것이고, 어떠한 자리에서도 이 몸을 다 드리고 이 생활을 다 드리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고 그렇게 살다가 자취없이 무의미하게 떠나는 자는 하늘 앞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의 인간세상에도 그런 사람은 필요치 않습니다. 가정에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사는 평범한 모습이 아니라 가정을 이끌고 나라를 이끌고 세계를 이끌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전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정한 이치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교회를 위하여, 아버님을 뜻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늘 대신 그 길을 열흘 일년 혹은 일생을 되풀이하여 가면 하늘 대신 찬양받는 영광의 한 날을 맞을 것이며, 인류를 위하여 그렇게 가면 인류 대신 높임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며칠을 이 땅 위의 인류 앞에 남기고 갈 것인가, 몇 해를 이 땅의 인류가 추모할 수 있는 날로 남기고 갈 것인가,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위하여 몸부림을 치면서 아버지의 모든 애달픈 심정을 홀로 체휼하고 당신을 증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를 비웃는 사람도 있는 것을 저희들은 보아 왔습니다. 아버지! 기쁜 얼굴을 하고 쌍수를 들어 환성을 지르며 아버지를 찾아와 감사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저희들은 보았습니다. 기쁨의 얼굴이 원수의 얼굴, 증오의 얼굴로 변하여 아버지를 저주하는 모습을 저희들은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럴 적마다 마음에 기억되는 아픈 심정은 세계의 그 어떤 이의 심정보다 고독하고 처량하고 비참하였사옵니다. 그런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이보다 더한 어려움을 당했던 사실을 생각하옵니다.

가야 할 운명의 길을 개척해야 할 저희들, 새로이 결심하는 내용은 이런 원수들을 아버지 앞에 회개시키겠다는 것이옵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촉구하여 재출발의 원천으로 삼지 않으면 저희들도 그와 같은 운명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무엇을 남겼는가를 생각하면서 하늘의 슬픔을 가로막고 `하늘이여! 나를 믿어 주시옵소서’ 하며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을 홀로 책임지는 동시에 그 전체 앞에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대하고 얼마나 찾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향해 가는 데 있어서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비웃고, 비판하는 이들은 아버지 앞에 자연적으로 멀어지고 다 떨어지고 다 흘러가 버리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먼 거리를 가면 갈수록 거기에서 새로이 결심하고 싸움의 행로를 가서 실적을 남기게 하옵소서. 아버지를 위해 몸부림친 그 내막의 실적을 남긴 자들로 말미암아 거룩한 새로운 세계의 창건의 기원이 생긴다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부터 온 하루를 맡아 주시옵소서. 세계에 널려 있는 외로운 아들딸들! 이 시간도 스승을 그리워하면서 정성들이는 모습 위에 천번 만번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자녀들 위에 영광의 은사를 베푸시어 현재의 싸움에서 낙오자가 되지 말게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하늘 앞에 맡겨진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