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36 to 22-305: 예수와 우리

예수와 우리
1969.05.04 (일), 한국 전본부교회

22-236
예수와 우리
[기 도]

아버님! 전국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시간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예배드리고 있는 곳곳마다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곳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께 경배드리는 곳곳마다 당신의 영광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따라 세계 순회의 긴 노정을 마치고 다시 이곳에 돌아왔사옵니다. 그간 아버지께서 많은 식구들의 정성어린 기도를 들으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그리던 마음들이 다시 이렇게 만났사오매 아버지의 사연을 말해야 하고, 이때의 우리의 사명을 놓고 책임 다할 것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오니, 이 시간 아버지께서 친히 주인 되시어서 저희들을 주관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누구도 이 시간, 이 자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시고 아버님께서 친히 이 자리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부터 바쳐 드리는 시간 전부가 아버지의 소원과 일치되어서 저희들이 뜻 앞에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드리는 주일예배를, 아버지, 거룩히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 친히 직접적으로 주관해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경륜하시는 뜻의 결과만이 이 자리에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전체를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리오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2-237
말 씀
여러분들이 정성들이고 기도해 주신 덕택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귀국 후 처음 맞는 주일이니 이 시간 여러분들 모두 허락하신 말씀권내에서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처음 오신 분들은 오늘은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 지루하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세계에서 되어진 모든 일의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들이 뜻을 대해 가지고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할 때이기 때문에 우리의 뜻을 중심삼은 전반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지만,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 위에 왔고, 어떠한 길을 가야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내용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최고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수와 우리’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22-237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
우리 식구들은 구원섭리란 곧 복귀섭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복귀라는 것은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에덴 동산에서 인류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기준을 능가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 식구들은 원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아담이 실수하여 잃어버린 모든 내용을 되찾아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님의 전반적인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되돌아가야 합니다. 되돌아가는 데는 그냥 아무런 내용도 없이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타락한 경로의 반대의 길을 통해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 4천년 만에 하나님이 선택해 놓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민족 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은 자기 한 개인의 어떠한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이 아닙니다. 전반적인 복귀섭리, 즉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의 내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생활 그 자체는 자기 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전반적인 역사를 대신해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출발한 생활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거치며 수고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말할 수 없이 비통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는 데,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 이것 또한 하나님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비통한 사실이 된 것입니다.

22-238
예수님이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다른 점
그러면 예수님은 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느냐? 이 내용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예수님의 내용과 우리의 내용도 확실해지지 않는 동시에,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확실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을 세운 후 그 가정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후에 요셉의 보호를 받아서 예수님을 탄생시켰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성신으로 잉태했다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타락한 세상에 예수님이 오시려면 원죄와 관계없는 입장에서 오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나신 예수님이 원죄와 관계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이것은 신학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왜? 마리아 자신도 타락한 조상의 후손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런 마리아의 피와 살을 받고 태어난 예수님이 어째서 원죄와 상관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원죄가 없는 분이라고 우리들이 말은 하지만 왜 예수님이 원죄가 없는 분인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 종교들의 교주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기의 뜻을 세워서 세계적인 종교로 키운 종교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의 지도자들과 예수님과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 즉 만민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니 누구나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는 문제가 지금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수많은 종교는 각각 자기들 나름대로의 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앞으로 세계가 하나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자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기독교와 그 외의 딴 종교가 다른 점은 무엇이냐?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원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볼 때 수많은 종교의 지도자들도 타락한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 입장에서 태어난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성신으로 잉태되었다고 하지만 타락의 후손인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태어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어떻게 해서 예수님에게 원죄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태어날 때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선한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생활하고 그 뜻을 받드는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타락한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기는 났으되 잘못 태어났으니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데는 옛날의 그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가 아닌 새로운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22-239
참부모를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완전 구원이 된다
그러면 새로운 부모는 어떠한 부모냐? 옛날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아담 해와는 타락한 부모이지만 앞으로 인류를 다시 낳아 주어야 할 그 부모는 타락하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본래의 부모인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고 뜻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품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선의 자녀를 번식할 수 있는, 그런 본래의 기준에 설 수 있는 부모인 것입니다. 그 부모는 타락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후손된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타락과 관계없는 부모의 혈육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의 근본 뿌리는 아담 해와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밟고 넘어서서, 즉 원죄와 인연이 없는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자격을 갖추지 않고는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타락한 인간이 요구하는 구주는 어떠한 구주냐? 타락한 부모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체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참된 부모의 자리에서 인류를 낳아 줄 구주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원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 올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타락권 이하에서는 아무리 구원하려 해봤자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 이상의 참된 부모를 이 땅 위에 다시 보내 가지고, 그 부모를 통해서 인류가 다시 해산되는 노정을 거치게 해서 사탄과 영원히 관계가 없게 하시고 사탄이 참소할래야 참소할 수 없게 하시어서, 하나님만이 주관하고 하나님만이 간섭하실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인류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원죄를 가진 인간이 원죄가 없는 자리에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 다른 종교가 구주의 내용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구주에 대한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을 보면 하나님 앞에 종의 사명을 가지고 온 종교도 있고, 하나님 앞에 양자의 사명을 갖고 온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인류를 다시 낳아 줄 수 있는 부모를 대신한 입장에서 이 땅 위에 보내심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종교 중의 최후의 종교요,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보낸 수많은 종교 가운데 마지막 종교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갖지 못한 종교는 세계의 수많은 인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기독교는 그러한 입장에 선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은 무엇이냐?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 자신은 타락한 부모의 자리가 아닌 타락하지 아니한 부모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예수님 자신이 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수많은 인류가 있지만 그 인류는 타락한 조상으로부터 번식된 인류이기 때문에 모두 원죄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것입니다. 원죄를 넘어서서 타락의 침해를 받지 않은 자리에 선 참된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22-241
거짓 부모에 의해 태어난 것을 얼마나 실감하느냐
사람이 병이 났으면 병을 고쳐야 합니다. 만일 약한 사람이 병이 났다면 병나기 전의 약한 상태만큼만 고쳐서는 안 됩니다. 그 상태 이상으로 건강하게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타락이란 인간이 고장이 난 것이요 악의 세계로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고장난 것을 고쳐야 하고 떨어지기 이전의 자리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곧 복귀입니다. 복귀를 하는 데는 옛날 타락하기 전의 그 기준이 아니라 그 기준을 넘어선 자리로까지 복귀해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원죄를 가진 거짓 부모를 통하여 태어난 인류는 원죄를 넘어선 참된 부모를 통하여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를 다시 낳아 줄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한 분이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시는 그분은 아담이 실수했던 그 기준 이하의 자리에 오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자리에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에 반드시 원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탕감의 과정을 거친 터전 위에서 참부모는 탄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 종교에는 없는, 기독교만이 지니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가인과 아벨에 관한 내용입니다. 가인 아벨은 한 사람씩 따로따로 나와 가지고 형제끼리 싸웠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동생이 형님을 지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타락론을 배워서 잘 알겠지만, 본래 우리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짓된 부모의 피를 받고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혈육을 받고 나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을 실감하느냐 실감하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원죄를 확실히 청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된 부모를 통해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비유된 말씀을 보면 예수님 자신은 참감람나무요 우리는 돌감람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가 무엇이 다르냐? 모양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접붙여야 됩니다. 그냥 그 뿌리에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모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다고 할지라도 그 결실은 참감람나무와 아무 관계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감람나무를 잘라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왜 접붙여야 하느냐? 그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돌감람나무가 된 것은 타락했기 때문이에요.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감람나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돌감람나무가 된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도 필요없고 종교도 필요없는 것입니다.

22-242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의 뜻
성경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서로 싸우는데 그것도 아담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서 인간은 하나님도 대할 수 있고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 입장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는 구원역사, 즉 복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타락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를 들어서 알겠지만 타락의 실상은 무엇이냐?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다는 성경의 말씀은 비사(比辭)입니다. 지금까지 그것을 그대로 믿고 나온 것이 참으로 용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라는 그런 맹목적인 신앙 기준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을 하고 20세기 문명을 창건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배후에서 많이 협조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확실치 못한 것이 결과가 어떻게 나오겠어요? 무지에서는 완성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악과가 무엇이냐? 선악과가 그냥 선악과입니까? 성경에는 알쏭달쏭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왜 하체를 가렸느냐는 것입니다. 왜 하필 하체를 가렸느냐는 것입니다. 부끄러우니까 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부끄러우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타락한 사회의 관습적인 관념을 가지고서 `부끄럽다고 생각하니까 부끄럽지’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부끄럽다면 왜 하체만 부끄럽느냐는 거예요. 부끄럽다면 눈은 부끄럽지 않고, 코는 부끄럽지 않고, 귀는 부끄럽지 않고, 머리는 부끄럽지 않고, 손발은 부끄럽지 않느냐 이거예요.

또, 성경에 보면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말은 잘못 태어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무엇을 통해서 태어나느냐? 선악과를 통해서 태어나느냐? 아닙니다.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의 조상은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기는 태어났는데 하나님이 사랑할수 있고 만 우주에 자랑하고 선포할 수 있는 기쁨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슬퍼하고, 사탄이 지극히 좋아하는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도 잘못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사랑을 통해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돌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지를 완전히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의 참된 사랑의 가지에 접을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수천년 자란 돌람감나무 가지를 완전히 잘라 버리고 정성을 들여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독교인들은 성신을 통해서 불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불세례가 무엇이길래 불세례를 받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느냐? 이런 것을 알아 보려고 하지도 않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에서 열, 열에서 백까지 전부가 얼렁뚱땅 덮어 놓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가 지금처럼 계속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찾아내는 발달한 과학문명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또 생활적인 면에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인연을 맺지 못하고 현세계에서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현재 비판받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22-244
혈통을 바꾸는 섭리를 해 오신 하나님
그러면 인간이 잘못 태어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잘못된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잘못되지 않은 사랑을 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잘 태어났을 것입니다. 타락은 무엇이냐? 잘못된 사랑을 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했었습니다. 그러면 할례가 무엇이냐? 왜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냐? 그것은 탕감법에 의해서 그런 것입니다. 고장이 나면 고장난 부분을 수리해야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역사를 보면 장자는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왜 장자는 축복을 못 받았느냐? `장자는 축복을 못 받게 되어 있으니까 못 받았지’ 이렇게 대답하면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차자는 왜 축복을 받았느냐? `차자는 축복을 받게 되어 있으니까 축복을 받았지’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태어난 이것을 전부다 뒤집어 엎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발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출발을 뒤집어 박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이 땅에서 다시 참된 출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출발은 잘못된 길을 되풀이하기 위해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는 잘못된 결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참된 결과는 가져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출발부터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 할례를 했던 것입니다. 할례 받게 되면 애들도 순수하고 좋다고 그러지 않아요? 여러분도 그런 말 들었을 거예요. 왜 그러냐?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모든 결과는 반드시 원인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인류의 조상은 처음에 심을 때 잘 심었느냐? 잘못 심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 심었느냐? 선악과 나무를 잘못 심은 것이 아닙니다. 무슨 열매가 열리는 나무의 씨를 잘못 심은 것이 아닙니다. 그릇된 사랑을 잘못 심었다는 것입니다. 그릇된 사랑을 잘못 심었으니 끝날에는 반드시 그릇된 사랑의 결실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어느 때 타락했느냐? 청소년 시기에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에 거짓된 사랑을 심었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사랑을 심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거짓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거두어져야 할 때가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가장 큰 사회문제가 청소년의 윤리문제입니다. 왜 이 젊은 녀석들이 자기들 멋대로 타락의 행동을 하느냐? 그것은 아담 해와가 그렇게 뿌려 놓은 씨가 열매를 맺어서 이제 거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렇게 심어 놓은 것이 인과법칙에 의해 그냥 그대로 결과를 맺어서 해결짓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사랑이 심어졌습니다. 거짓 사랑을 통해서 태어났기에 전부다 거짓 아들들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짓 아들들이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된 아들을 보내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아들을 보내시자마자 이 세상을 전부다 대번에 구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혈통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혈통을 받아서 번식되어 나왔기 때문에 그것을 끊고, 그것을 밟고,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새로이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역사 과정에서 그 혈통을 바꿔치는 일을 해 오신 것입니다. 혈통을 바꿔치는 일을…….

22-246
사랑의 주체 앞에서는 주관받는 것이 원칙
아담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한 창조주로서 원리적으로 그를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 아담을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었느냐?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해서 끌고 가요? 못 끌고 갑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이 안 끌려갈래야 안 끌려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래 창조원칙을 두고 볼 때,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면 반드시 그 상대의 주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주관권내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동네에서 한 총각이 부잣집 맏딸과 사랑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면, 비록 그 총각이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는 더벅머리 총각이라 할지라도 그 부자집 맏딸은 그 총각에게 꼼짝없이 걸려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부정하고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총각이 한마디만 선포해 놓으면 아무리 부잣집 맏딸이라고 해도 꼼짝없이 주관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는 주관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창조의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중심삼고 사탄이 먼저 인간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공식적으로 사탄의 주관권내에 들어감으로써 사탄이 아담 해와는 내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리적인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은 창조한 주인의 입장으로서 아담 해와를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야 되겠는데, 사탄이 옆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아담 해와를 완전히 주관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서 하나님과 사탄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놓고 둘이 서로 자기가 가져야 된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면 반드시 주관받게 되어 있는 것이 원리인데, 이 원리를 세워 놓으신 하나님 자신이 원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비법적으로 개입이 되었다고 해서 사탄을 쳐서 없애버린다면 하나님 자신이 세우신 사랑의 원리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지요. 역사적인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부터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를 분립시켜 가지고 고장난 것을 고장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으로 수리해 나온 것이 구원섭리역사인 것입니다.

사랑을 먼저 한 사람이 상대를 주관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누가 먼저 했느냐? 천사장과 해와가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해와와 아담이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창조원리를 중심삼고 볼 때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만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탄이 주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2-247
아담 가정에서부터 분립섭리를 하신 목적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랑의 법도가 거꾸로 되었으니 이것을 원리원칙대로 회복해야 됩니다. 그러자면 아담을 하나님편과 사탄편으로 갈라 놓아야 되는데 아담을 직접 가르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아담의 아들들을 통해서 나누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들은 사랑의 열매이니만큼 하나님도 주관할 수 있고 사탄도 주관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을 각각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갈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번 사랑은 천사장과 해와의 사랑이기 때문에 장자인 가인을 그 사랑의 표시체로 사탄편에 세우고, 둘째번 사랑은 해와와 아담의 사랑이기 때문에 차자인 아벨을 그 사랑의 표시체로 하나님편에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의 승패는 하나님이나 사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은 사탄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타락한 장본인은 인간이므로 그 인간 자신에게 싸움의 승패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구원섭리가 이루어지느냐 못 이루어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구원섭리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원래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사장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아들 앞에 완전히 순종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인 천사장이 아들인 아담한테 주관을 받아야 할 것이 거꿀잡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주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주관성이 전도(顚倒)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편에 서 있었던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원리적인 주관권을 가지고 해와와 천사장을 주관하여 천리의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창조원리적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취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사랑을 중심삼고는 사탄이 아담을 취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늘편으로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관받아야 될 천사장이 거꾸로 아담을 주관했기 때문에 반대로 주관받는 자리에 들어가 원래의 기준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편에 세워진 가인이 하나님편에 세워진 아벨에게 역으로 굴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굴복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첫번째 섭리의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모르고서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의 제사가 왜 필요해요?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피의 제사가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타락하기 전으로 어떻게 돌아가느냐? 근본적으로 입장이 바꾸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가인은 아벨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고, 또한 천사장은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거꿀잡이가 된 그 기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로부터 주관을 받아야 했던 천사장이 거꾸로 아담 해와를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주관성이 전도되었던 것을 바로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난 장자는 사탄편에 세우고 나중에 난 차자는 하늘편에 세워서 잘못 난 것을 바로 고치기 위해 나중에 난 것을 먼저 난 것으로 바꿔치기 하는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과 예수님을 놓고 보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은 전부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니 결국 타락한 아담과 마찬가지 입장, 즉 가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둘째번 아담, 즉 후아담으로 태어난 아벨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가인과 아벨의 입장을 바꿔치기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먼저 장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주관의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에 동생도 자동적으로 주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빼앗아 나오는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로부터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는데, 그런 간사한 사기꾼 같은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3대 하나님의 거룩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본인이 되었느냐? 알고 보면 야곱은 사기꾼인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래야만이 탕감복귀가 되기 때문입니다. 형이 그르쳐 놓았으니 동생이 그렇게 해서 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22-249
사탄을 굴복시켰다는 권한을 갖지 않고는 천국 못 간다
성경 66권이 전부다 이러한 내용으로 얼크러져 있는 것도 모르고 `눈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덮어놓고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덮어놓고 믿어서 천국에 갈 것 같으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반대와 핍박을 받으면서 이런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못나서 이 놀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헤치고 또 헤치고, 깨치고 또 깨치고, 알아보고 또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그 내용과는 사고의 기원부터 다릅니다. 이것을 해명해 가지고 그 근본을 시정하지 않고는 인류 구원섭리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를 물리치고 차자가 장자의 권한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이것을 이루려고 했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아담을 침범한 내용을 다시 되풀이한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연장된 것입니다. 왜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구원섭리를 이루지 못해 가지고 인간들로부터 `하나님은 무력하다’ `하나님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가? 왜 꼼짝 못하는 입장에 서시게 되셨는 가? 그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냐 이거예요. 하나님도 딱 걸려드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 해도 법을 제정해서 국민들 앞에 공포해 놓은 다음에는 그 자신도 법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편인 가인이 하늘편인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본래는 아벨이 가인을 순종 굴복시켜서 사탄을 사람 앞에 굴복시킨 자리에 세워 놓아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탄편인 가인이 하나님편의 사람인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이 아담을 타락시킨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을 다시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뜻은 지금까지 연장되어 나온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다시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두 아들을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하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되풀이한 것이 이삭을 중심삼은 에서와 야곱입니다. 야곱이 처음에는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팥죽을 가지고 약속으로 빼앗고, 그 다음에는 실체로 빼앗아 온 것입니다. 하란에서의 21년간의 생활은 그것을 빼앗기 위한 싸움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동생 야곱을 형인 에서는 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환영을 받는 데는 그냥 환영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여 천사장을 굴복시킴으로써 인류의 조상 아담이 천사장에게 굴복당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천사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천국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천사와 싸워서 천사를 굴복시켰다는 기준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인간이 다시 하나님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탄을 굴복시켰다는 권한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못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뿐만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왜 무서우냐? 본래 사탄은 천사장이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니 천사는 우리의 종입니다. 그런데 종이 왜 무서우냐는 거예요. 그것은 원리원칙에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잣집의 아들이라 해도 죄를 짓고서 쫓겨나게 되면 종보다도 못한 입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사탄에게 굴복당했던 것을 탕감하여 어느 한 때에 다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런 내용이 성경에 없다면 성경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성경이 못 되는 것입니다.

22-251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로 태어난 이유
그러나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천사와 싸워 이기고 천사로부터 축복을 받음으로써 그러한 조건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왜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까? 하고많은 뼈 가운데에서 왜 하필이면 환도뼈를 쳤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환도뼈를 잘못 써서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을 잘못해서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떠한 맹세를 할 때는 환도뼈에 손을 얹고서 맹세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인류의 조상이 사랑을 잘못함으로써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던 것과 같은 입장에 다시는 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아담이 그릇된 사랑을 해서 타락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빨갱이니 좌익이니 하는데 좌익이란 왼쪽편으로 사탄편을 말합니다. 또,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직고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말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따로 태어나서 싸웠지만 야곱 때에 와서는 쌍동이로 태어나서 싸웠습니다. 싸움의 형태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가인 아벨 때에는 따로따로 태어난 형제들을 중심으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에서 야곱 때에는 쌍동이로 태어난 형제들을 중심으로 복귀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본래는 인간이 태어날 때 쌍동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태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쌍동이로 태어났느냐? 사탄편 아들이 하나님편 아들을 쓰러뜨렸는데 결국 먼저 태어난 장자의 자리를 차자가 빼앗기 위해서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은 형과 동생으로 따로 따로 태어났는데 서로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쌍동이는 단 몇분간의 차이밖에 안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과 동생의 거리를 그만큼 단축시킨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데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쌍동이를 통하여 역사하시느냐? 가인도 아담의 아들이요, 아벨도 아담의 아들인데 그들이 하늘편과 사탄편으로 갈라져 두 갈래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한 뱃속에 집어넣어 싸우게 하신 것입니다. 거기에서 동생이 승리하여 장자의 입장으로 이 땅에 나와서 전부 다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기려면 결국은 뱃속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단계씩 점점 내려가 뱃속까지 찾아 들어가서 거기에서 이겼다는 기준을 찾아 세우지 않고서는 장자 복귀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역사는 뱃속으로 몰아넣는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인 아벨 때보다 에서 야곱은 달라졌습니다. 그리하여 에서와 야곱은 쌍동이로 뱃속에서부터 싸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편인 형을 하늘편인 동생이 굴복시키면 자동적으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어라, 절대적으로 믿어라 하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사탄을 굴복시켜라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혈통적으로 보면 타락하여 사탄편이 된 아담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으니 타락한 아담에 속하는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자면 아담은 몇천년 묵은 고목이요, 여러분은 그 고목의 잎사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꺼떡대는 사람이라 해도 그런 패들이라는 것입니다. 섭섭해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부터 2천년 전에 오셨던 분이지만, 태어난 그 근본 입장을 놓고 보면 우리보다 나중에 태어난 동생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생 되는 그 예수님 앞에 굴복하고, 예수님을 형님으로 모시고, 만왕의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타락세계에 많은 왕이 있었지만 왕 중의 왕이요 만왕의 왕입니다. 또, 전인류의 아버지이셨습니다. 즉, 부모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22-253
야곱의 승리로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었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했을 때 만약 졌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형에게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천사를 영적으로 굴복시켰기 때문에 영적 세계의 수많은 선조들도 야곱편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승리한 터전 위에 선 야곱을 에서가 환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갈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에서가 야곱을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야곱이 에서의 장자의 기업을 복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 가인은 아벨을 때려 죽였지만 에서는 그런 원수와 같은 입장의 야곱을 때려 죽이지 않고 환영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역사가 되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형제끼리 싸움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근원이 연장되어 나오던 역사에 야곱과 에서가 화목하여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페이지가 장식되었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태어나서 자란 뒤에 싸웠고 야곱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태어나기 이전에 복중에서부터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다말의 역사가 나옵니다. 다말이 유다를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를 잉태했습니다. 여기서 다말이란 여인이 누군고 하면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가 지나가는 길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창부의 행세를 하여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잉태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역사에, 기독교 역사에 어찌하여 그러한 창녀가 어머니의 입장에서 역사를 전개시켜 나왔느지 압니까? 솔로몬왕의 탄생도 그렇습니다.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서 관계를 맺은 비법적인 것 같은 행동을 통해서 솔로몬왕이 태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그랬는지 모르지요? 이런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물어 보면, 목사나 신학박사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알 수 있느냐고 하면서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무지를 전부 다 잘라 버리고 뭉개 버려야 할 것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사명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네들이 정통이고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기가 막힙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귀가 썩을 만큼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기성교회 다니다가 우리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많은데 기성교회 믿다가 들어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주 이마에 핏발이 섭니다. 지금까지 자기 멋대로 믿다가 지쳐 가지고 머리를 휘젓다가 갈 데가 없으니 할 수 없이 들어온, 꼴사납고 꼴불견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갔다 왔다고 하니 구경삼아 가보자 해 가지고 떡 들어옵니다.

그래 와 보니 어때요? 이래 뵈도 여러분보다는 낫지요? 여러분은 배워야 되고 나는 가르치는 선생이니 선생이 제자보다 나을 수밖에요. 처음 온 사람들 섭섭할지 모르지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선생님을 핍박하고 욕해 왔습니까? 오늘 여기에 기성교회에서 새로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선생님한테 욕한 사람 많이 있지요? 욕했어요, 안 했어요?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했지’ 할 것입니다. (웃음)

22-254
베레스와 세라를 중심한 복중복귀섭리의 결과
그러면 다말이라는 여인은 왜 그렇게 해야만 되었는가? 그것은 혈통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음란의 씨가 뿌려졌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하나님의 손길을 거쳐서 새로운 씨를 찾아 새로운 출발을 하지 않으면 복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이렇게 4대 음녀가 나와 있습니다. 성경상으로 보면, 그들은 전부 다 음녀입니다. 왜 성경에, 그것도 마태복음의 맨 첫머리에 그런 사람들을 기록해 놓았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악한 사람도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하는데, 말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 그렇게 빠져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다말과 통한 유다의 지파를 통해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러한 유다지파를 통해서 태어나야 했느냐? 유다 지파의 조상이 누구냐하면 바로 유다입니다. 이 유다의 장손은 다말을 통해서 태어난 베레스인데 왜 예수님이 다말을 통해서 낳은 그 장손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긴 왜 그래, 하나님이 그렇게 태어나게 하셨으니 그렇게 태어났지’ 할는 지 모르지만 그런 대답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비법적인 입장에서 다말을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할 때에 그렇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나무 그늘에서 타락했지, 어느 벽돌 집안 무슨 침실에서 타락했어요?

그래서 베레스와 세라가 다말의 복중에서 서로 싸운 것입니다. 성경 말씀 창세기 38장을 한번 읽어 보세요. 거기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산모가 만삭이 되어서 산파가 와서 기다리는데 복중에서 형제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형이 먼저 나오는 것을 밀치고 동생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처럼 밀치고 나왔다고 해서 베레스란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이렇게 복중에서 형 세라를 밀치고 동생 베레스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거기서 하늘의 역사는 실체 복귀의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성경이 참 재미있게 되어 있는데, 통일교회 문선생이 말하기 좋으라고 그렇게 되어 있겠습니까? 사람이 태어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이 땅 위에 태어날 수 있는 기반이 거기에서 닦여진 것입니다.

아담은 타락한 후 패자의 조상이 되었지만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승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복중에서 승리한 기반을 못 가진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이 아니라, 복중에서부터 형을 굴복시킨 역사가 벌어졌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야곱의 아들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가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과 그 아들들 2대를 중심삼고 복중복귀 역사를 해서 하늘편 아들이 먼저 장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다음에 태어난 동생은 그 형에게 절대 복종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복종하고 자동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터전이 닦여졌으므로, 거기서 하나님의 섭리는 비로소 이 땅에 발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핏줄, 즉 혈통을 바꿔치는 역사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학박사 아니라 목사 할아버지라 해도 부정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무슨 신학박사니 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아와도 아무도 만나 주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필요하기 전에는 안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도 신학박사니 목사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기에 만나 보았습니다. 머리털이 샛노랗고 눈이 시퍼렇고 코가 말처럼 생긴 녀석들이지요. 저기도 한 사람 와서 앉아 있구만요. 그런 사람들과 성경을 놓고 얘기하는데 선생님이 얘기하면 자기들도 모르게 자꾸 빨려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대 가면서 하나 둘 얘기를 하면 찡찡하는 바람에 어떻게 부정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엔 믿기지 않는 거짓말같이 생각되다가도 나중에는 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베레스가 세라를 복중에서 굴복시켜 가지고 태어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딸이 태어날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을 복중에까지 닦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혈통은 타락인간들과는 다릅니다.

22-256
원죄와 상관이 없으신 예수님
복중에서부터 승리한 터전 위에 선의 혈통을 중심삼고 선조들의 그러한 전통을 이어, 충성을 다한 이스라엘 민족의 여인들의 정성어린 계대를 이어, 2천년 후에 마리아에 이르렀습니다. 마리아가 다말을 중심삼고 복중복귀에 승리한 혈통적인 전통을 이어받아 비로소 예수님을 잉태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중에 애기가 잉태되면 벌써 사탄이 참소합니다. 그러면서 `이 자리는 나의 자리요, 여기에 잉태되는 사람은 모두 그릇된 사랑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전부 나의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다말의 복중에서 하늘편인 베레스가 승리한 혈통적인 기반 위에서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복중에 잉태되었을 적부터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반 종교의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그것입니다. 태어난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복중에서부터 사탄과 싸워 승리한 기반 위에서 사탄을 굴복시켜 장자의 기준을 세우고 예수님은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도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2천년 만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2천년 만에 예수님이 태어나셨는가? 복귀는 가인 아벨의 복귀, 즉 형제 복귀인데, 사탄세계의 국가들이 먼저 태어난 가인형의 나라들입니다. 이 가인형의 나라들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아벨 나라가 새로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아벨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2천년 동안 길러서 하나의 아벨적인 나라를 이루어 사탄세계의 수많은 가인적 국가들을 굴복시키려 하셨던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죽지 않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십자가에 죽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었다고들 말하지만, 그런 시시한 얘기는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지 않고는 구원을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을 놓고 볼 때, 그는 마리아의 복중에서 잉태되어 태어났지만, 역사적인 승리의 터전 위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내용을 전부 다 걷어 치운 입장에서 잉태되어 탄생했기 때문에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할 조건이 없다는 것은 원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것이 죄라고 하는데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게 죄라고요? 원수가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원리원칙에, 법도에 어긋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걸려드는 거예요. 예수님은 태어나기를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자리를 벗어난 입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분입니다. 사탄의 주관권내에서 사탄과 접하는 것이 원죄인데 예수님은 사탄의 참소 조건뿐만 아니라 모든 조건을 넘어 태어나신 분이기 때문에 원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바꿔치는 역사를 해왔던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 때 바꿔치고 또 야곱이 아들 베레스 때 바꿔치고 안팎으로 바꿔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했다는 뜻인데 무엇에서 이겼느냐 할 때, 이제 보니 단순히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지에 엉클어진 모든 사연을 풀기 위한 열쇠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태어나되 원죄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22-258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또,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하면 예수님의 아버지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한 10년 후나 20년 후에 모두 얘기해 주려고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으로부터 세계적으로까지 다 기반이 닦여진 다음에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다는 것을 전부 다 세밀히 설명해 주겠습니다. 이것을 얘기하기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것입니다. 성신으로 잉태했다고만 알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모르고 믿는 것도 퍽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세계를 빨리 복귀하지 못하면 선생님은 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영계에 갈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원리적으로 요렇게 조렇게 다 풀어 놓으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한 단계 더 올라가겠지만 아직은 때가 일러서 부작용이 벌어질까 봐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서 어떻게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까? 이웃 동네의 어느 부잣집에서 외동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있는데, 난데없이 그 동네의 어떤 종의 딸이 와서 `저 사람은 나의 남편이다. 나의 신랑이다’ 하고 떠든다고 해서 남편이 될 수 있습니까? 그의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좋아하는 것을 전부다 갖다가 장식해 놓고 그가 웃을 수 있는 내용과 그가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 놓고 간판을 척 걸어 놓으면 그는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와서 웃지 말라고 해도 웃게 되어 있고 신랑이 되지 말라고 해도 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준비를 해놓고 맞아들여야 내 남편, 내 신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부다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그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신랑 되신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겠지’ 하고 있습니다. 이건 멋대로 살다가 주일날이 되면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고 중얼중얼 몇마디 하고는 다시 나와서는 싸움질이나 하고, 또 교회에 가서 `아이고 하나님! 또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죄많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런 세상에 사는 인간이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라고 기도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어느 신랑이 그따위 신부를 취하려고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신랑이라면 그런 신부 취하고 싶겠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늘의 왕자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신부감이 없어서 값으로 친다면 몇푼밖에 안 되는 신부를 찾아가서 취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는 동네 이장 아들도 안 취해 갑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천국이 자기 입안에 들어 있고 배안에 들어 있는 줄 압니다. 모두 사기꾼들입니다. 사기꾼들이에요.

22-259
사상의 위력
이제는 기성교회를 공격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수십년 동안 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때려잡기 위해 반대했으니 이제 그만하면 됐지요. 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기성교회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끄떡 안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얘기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말로 해서 안 들으면 힘으로 대결해서라도 듣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통령을 해 먹으려고 무슨 결당운동을 한다느니, 정당을 조직한다느니 하면서 우리가 하는 반공운동에 대해서 별의별 소리를 다하지만 욕하려거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뭘 하려고 그러는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기독교를 굴복시키기 전에는 다른 일을 안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중요한 때에 이 자리에 찾아 들어오기를 잘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것 같습니까? 선생님 눈을 좀 보라구요. 절대로 누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웃음)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을 골탕 먹이는 데는 제일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질문을 하게 되면 선생님들이 꼼짝달싹을 못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예를 들어 아르키메데스 공식은 이러니까 물어보지 말고 믿어라 왜 못 믿느냐고 하는데 나는 물어보지 말라고 한 그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들은 심지어 내가 이 나라의 역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했는데, 되다 보니 역적은 못 되고 이렇게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미국놈들, 독일놈들, 불란서놈들, 영국놈들, 이태리놈들-전부다 놈들입니다-을 불러 놓고 `너희들,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시켜 주는 것이 좋겠어? 통일교회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는 것이 좋겠어? 어디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했더니 `아 선생님이 결혼시켜 주셔야지요’ 하며 전부 다 손을 드는 것이었습니다. 기분 나쁘게…. 하지만 손 든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렇죠? 기분 좋을 때까지 손 들어야지요.

지금까지 어느 동양 사람한테 서양 사람들이 그렇게 해본 적이 있습니까? 뭐 유명한 무슨 대학을 나오고 무슨 학사코스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일단 말씀을 듣고 원리에 딱 걸려들면 자기들 마음대로 결혼할 수 없으니 선생님을 모셔 놓고 축복을 받으려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곳에는 가나요? 아주 재미있는 일입니다.

아시아인, 동양 사람이 가 가지고 서양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놈들아!’ 해도 그들이 `예이!’ 할 수 있는 기반, 죽으라면 죽을 수 있고 나가라면 나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일생에 가장 귀한 결혼문제를 선생님한테 맡기고 따릅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 말은 안 들어도, 자기 나라 대통령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은 듣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금만 그어 놓으면 누구든지 잘 따라갑니다. 요전에도 선생님이 얘기했지만 또 한번 놀란 것이 무엇이냐? 사상이라는 것이 참 멋지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사람들을 사상으로 한번 돌려 놓으면 정말 멋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의 일각에서부터 서구 대륙에 이르기까지 모든 청년 남녀들을 불사를 수 있고 펌프질할 수 있는 것이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결혼도 많이 시켜 주고 왔습니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슨 탕감이니 뭐니 하는 놀음을 한다고 결혼을 시켜 주다 보니 결국 중매쟁이 왕이 되었습니다. 기분 나빠 죽겠어요. 세상에서도 가장 골탕먹는 것이 중매쟁이입니다. 결혼을 해서 잘살면 자기들이 잘나서 잘살고 못살면 중매쟁이 때문에 못산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잘살아도 중매쟁이 때문이고 못살아도 중매쟁이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조금 더 낮지 않느냐는 말이에요. (웃음)

그런 사람들은 쭈욱 모아 놓고 보니 사상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고 느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칼로 자를 수도 없고 불로 사를 수 없는 세계적인 그물을 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그물로 자꾸 떠서 일본도 건져 내고 미국도 건져 내고 동반구, 서반구를 다 건져야 합니다. 그래서 다 건져 낸 다음에는 조롱같이 끈으로 졸라매서 그것을 하나님의 어깨에 걸고 하나님을 끌어 내면 세계복귀는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웃음) 하나님 앞에 실례되는 말인지 모르지만 사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끌고 다니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끌리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럴 수 없어서 한이지요. 선생님이 지금 그 일을 해드리기 위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22-261
기성교인들이 반대하나 아무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이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코를 꿰이기 위해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정말 그래요? 「예」 얼굴들은 참 잘 생겼구만요. 무슨 할 일이 없어서 이 일을 합니까? 만약에 선생님이 무슨 공부를 해서 학박사 되기를 원했으면 박사학위 한 두개 따 가지고 만족할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3개 이상 따내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칼을 꽂고 맹세하고 나갈 사람입니다. 그랬더라면 지금쯤이면 세계적으로 크게 이름이 났을 것입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돈을 좀 모았지만, 돈을 모았다 해도 지금보다 더 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꿈도 안 꾸는 이 일을, 세계의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이 일을 선생님이 해낸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해 놓았으니 한국으로 보면 잘한 일이에요, 못한 일이에요? 만약 한국 사람으로서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민족의 반역자입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변소를 자랑할 것입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인 선생님이 서양의 청년 남녀들을 모아 놓고 짝을 지어 주어서 결혼을 하는 데도 그들은 자기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이 18세만 넘으면 모든 것이 자유이기 때문에 결혼 문제 같은 것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낳는데 부모가 필요하지 결혼하는 데는 부모가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을 할 때도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아주 개판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서 같으면 결혼식을 한번 하려면 아예 파수꾼을 세워 놓고 결혼식을 하는 데, 미국 사회 같은 데에서는 백주에 전국에다가 선전을 하면서도 자기들의 부모들한테는 몇월 몇일 몇시에 결혼을 하니 오고 싶으시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말라고 전보를 칩니다. 그렇게 해도 그 부모들은 또 비행기를 타고 결혼 장소까지 잘들 오더구만요.

미국은 땅이 넓어서 우리 나라처럼 기차를 타고 왕래 못 합니다. 비행기를 타야 돼요. 그래도 전보를 해서 오라고 하니까 자기 아들딸이 인생에 한번밖에 없는 거룩한 결혼식을 하니 그 자리에 참석해야겠다고 하면서 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요? 우리 한국에서 36가정이 합동결혼식을 할 때, 그 사위도 지금 이 자리에 있지만, 어떤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자기의 두 딸이 모두 통일교회에 걸려 들었다는 거예요. 자기는 어느 학교 교장 선생인데 좋은 사위감으로 어떠 어떠한 선생들을 골라 놓았다고 절대 합동결혼식을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반대를 하려면 하라. 당신네 딸들은 내가 시집을 보내 주마’ 했습니다.

결혼식을 하는데 오라면 연락도 안 하면 욕먹으니까 전보를 쳐서 오라고 연락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는 데는 조건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조건이냐면 흰 옷을 입고 오라는 것입니다. 여기는 거룩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곳이니까 흰옷을 입고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흰 옷을 안 입고 오는 사람은 정성을 안 들인 사람들이고 반대하는 패들이니 대문 안에 들여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들딸이 결혼을 하는 자리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흰 옷을 안 입고 양복 입은 채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복을 입고 와가지고 아무리 큰소리를 쳐봐야 문을 지키는 젊은 사람들이 일보도 양보를 안 하거든요. 그러니 나중에는 별 수 있어요? 결국 울고불고하면서 `제발 하얀 의복 좀 빌려주시오’ 했습니다. 결국 굴복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검은 양복 위에다가 그대로 하얀 옷을 입고 축복받는 자리에 들어와서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 들어왔는데 또 자기가 세상에서 그래도 무슨 간판이 붙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지몽매하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예식을 마치고 자기 딸들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총각을 데리고 나오는 데 별 수 있어요. 그때서야 판 깨기는 다 글렀지요. 선생님이 자기 딸들을 축복해 주려고 할 때는 욕을 들이 퍼부었지만 욕을 하려면 하라는 것입니다. 축복해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누가 욕을 하고 그러는 것이 선생님에게는 이웃 동네 개가 짖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생각하기를 지금은 그렇게 욕을 하지만 두고 보자. 3년 이내에 나한테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합동결혼식 시킨 것은 잘못했지만 우리 사위만은 잘 얻어 주었다고 하는지 안 하는지 두고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이 앞에 앉아 있었구만요. 그때 그러던 것이 생생한데, 지금은 그 사위를 자랑 못해서 안달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한 것 같이 보였지만 잘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여러 가지 비판도 받고 여러 가지 소문을 들어 가면서 일해 나왔지만, 그 모든 것은 한국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기성교회도 팔아먹고 국가도 팔아먹고 그럴 줄로 생각들을 해 왔지만, 이제 그들이 통일교회 신세를 많이 질 날이 올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우리 통일교회에 더 많은 돈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로 나가기 위해 아시아와 미대륙과 구라파를 연결시켜서 여기에서 잡아 당기면 세계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차차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서 6천년 동안 슬프고 외로왔던 하나님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 죽을 길, 살 길을 넘나들면서 생애를 바쳐 일해 나온 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이런 통일교회가 망할 것이냐?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해서 내가 몇 번 죽을 자리에 들어갔었는데 나는 죽지 않고 살았고 나를 죽이려 했던 사람은 죽어 갔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22-264
민족과 세계를 살리기 위해 활동해 온 통일교회
선생님은 아무리 원수라 해도 그에게 벼락이라도 맞으라고 저주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가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극적인 사실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백년, 수백년 후에 극으로 그려져서 나오게 되면 세계의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이 통곡할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멋진 일이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이제부터 얼마 안 가서 선생님이 세계적인 사건을 많이 일으킬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이번 순회 기간에 일본에 들렀을 때도 대단하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얘기하면 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딴에는 일본에서 간판을 붙이고 자랑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선생님이 한국으로 오기 위해 비행장으로 향할 때 선생님의 짐을 들고 비행장까지 따라 나오려고 자기 비서랑 부인이랑 다 데리고 나와서 야단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닌가 봐요.

선생님은 10년 전 비밀리에 일본에 선교사를 보낼 때 충청남도 갑사에서 여러 가지 지시를 하면서 십년 후에는 반드시 이 민족과 일본 앞에 플러스 될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것은 그때, 즉 자유당 시대에는 법적으로 일본에 입국하는 것이 제한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했던 것인데, 지금에 와서는 대한민국이 감사하고 일본 정부가 선생님에게 감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니, 선생님이 아시아에서 할 만한 일은 다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선생님 말씀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듣겠습니다」 여자들 잘 듣겠어요? 「예」 얼마만큼이나 듣겠어요? 아들의 말만큼 듣겠어요, 남편의 말만큼이나 듣겠어요? 다시 시집보낸다고 하면 다시 시집 가겠어요? (웃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치에 안 맞지요. 남편이 죽은 다음이라면 몰라요.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군요. 5분이면 결론지을 수 있었는데 벌써 1시간 20분이나 지났군요. 그래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귀한 말씀을 할테니까 졸고 싶은 사람은 뒷자리로 가서 계속 졸고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빨리 가십시오. 여러분도 덥겠지만 나도 덥습니다.

22-265
참부모가 되어야 했던 예수님
그건 그렇고, 예수님이 2천년 전에 태어났는데, 태어나는 데는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원죄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입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거짓 부모의 피를 받아서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인데, 원죄가 없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해야 했던 일은 무엇이었느냐? 참부모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 혼자서 부모가 될 수 있습니까? 신부가 있어야 되지요. 신부가 있어야 해요. 부모가 되려면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셨으니 신부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뭡니까? 아내지요. 그러면 아내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신부는 한 사람이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전부가 예수님의 신부 되겠다고 하니 어떻게 신부를 골라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골라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요런 조런 조건을 갖춘, 그래서 예수님께 백 퍼센트 딱 들어맞는 신부는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를 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좀 더워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이야기하다가 땀을 흘리는 거니까 여러분이 미안해 해야지요. 왼쪽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앞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또 뒤에도 사람이 있다면 뒤에서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니 코가 어떻게 생겼고, 눈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합니다. 말이 빠르다는 것은, 무엇을 하나 찾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성미라는 것입니다. 손을 대는 날에는 끝장을 봐야 합니다. 보기에 몸은 좀 뚱뚱하지만 신경이 예민합니다. 안테나가 대단히 높지요. 하지만 진짜로 나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와 일직선상에서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진짜 봤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있을 수 없어요.

22-266
일등 신부는 한 사람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과정에 별의별 제사장 목사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나왔지만, 신부 같은 사람들은 많았지만 진짜로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회에 각국의 대표선수로 출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일등을 하겠다고 하면서 나갑니다. 세계의 수십개 국에서 모이는 사람들이 전부다 일등을 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등이 어떻게 결정되느냐? 그냥 결정하려면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회고 뭐고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등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뛰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뛰게 되면 십리도 못가서 쓰러지는 사람, 절반 가서 포기하는 사람, 3분의 2쯤 가서 그만두는 사람, 결승점을 한 발짝 앞에 두고 넘어지는 사람 등등 가지가지의 사람이 나옵니다. 결승점을 한발짝 앞에 놓고 넘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등 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그때까지 아무리 잘 뛰었다고 하더라도 일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기성교회가 결승점까지 거의 다 와서 세계적인 골인지점을 뛰어넘으려고 하는데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성교회가 전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가자빠져 있습니까? 우선 통일교회가 일등을 한다고 그래 봅시다. 날씨도 더운데 기분이라도 좋게 그렇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웃음) 또 사실 우리 통일교회가 일등하지 별 수 있어요?

지금, 세계적으로 예수님의 신부가 되겠다고 하는 교파가 몇백 개입니까? 그 많은 교파들이 일시에 신부가 될 수 있습니까? 모두 일등할 수 있어요? 그럼 이 세계에 개인적으로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교회적으로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 것이며 그 교회는 어느 교회일 것이냐 할 때 여기 서 있는 이 사람과 통일교회가 둘째로 꼽힌다면 이런 노릇 안 하겠습니다. 절대로 안 한다 이겁니다. 요전에 미국에 갔을 때 신학박사들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실력 앞에는 그들도 별 수 있습니까? 실력 앞에는 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운동’ 하면 무슨 운동이든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무슨 시합을 해서 하다 못해 3등권내에라도 못 들어가게 되면 견디지 못하는 성미입니다. 선생님이 옛날에는 동네에서나 면에서 이름난 씨름꾼이었습니다. 동네의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해서 졌을 때면 우리 집 울타리 안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큰 둥치를 부둥켜 안고 밥도 안 먹고 밤새도록 `이놈아 너는 언젠가 나한테 진다’ 하면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과 다시 씨름을 해서 이기고 나서야 밥도 먹고 밤에 잠도 잤습니다.

22-267
좋은 신랑 신부란?
선생님은 어떤 것이든 손을 대는 날에는 끝장을 내고 맙니다. 미국의 포오드 회사도 말아 먹으려고 합니다. 좋습니까, 나쁩니까? 여기 미국 사람들이 있는데 기분 나쁠 것입니다. 틀림없이 말아먹을 것입니다. 그 이상 가는 자동차 회사도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에 들어왔으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돼요, 안 돼. 선생님이 몇 개월 만에 돌아와서 보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통일교회와 선생님을 직접 대하고 선생님에게 지도받는 통일교회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한가지 틀림없는 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의 신랑이 못 되면 여러분이 신랑을 만날 수 있게끔은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단단히 결심하고 따라 나가라는 것입니다. 더욱이나 젊은 사람들은 단단히 결심하고 세계를 위해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의 앞길은 더욱 크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통일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를 때려잡아 죽이겠다 하더라도 통일교회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만일 백주에 길거리에 쓰러져 죽더라도 선생님이 주장한 사상과 닦아 놓은 터전은 그 누구도 점령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이제 새로 들어 온 식구들은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고,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 신부의 입장에 서기 위해 여간한 훈련을 해 가지고는 안되겠습니다. 아시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김새도 잘 생겨야 됩니다. 못생긴 사람은 아예 신부 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웃음) 잘 생기는 데는 어디가 잘 생겨야 되느냐? 겉이 아니라 속이 잘 생겨야 합니다. 속이 잘 생기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또 허위대도 좋아야 됩니다. 마음씨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조그만 일을 가지고서도 싸움하기 일쑤고, 바늘 하나 가지고 사흘 나흘 가슴을 앓는 여자들, 그들이 신부는 무슨 신부입니까?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신부는 커녕 주님이 발에 신는 신발도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신부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선생님이 일본에 갔을 때에 일본 식구들에게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70내지 80년 후에 일본은 반드시 망한다’고 얘기했습니다. 또한 일본의 처녀 식구들에게 좋은 신랑 얻고 싶냐 나쁜 신랑 얻고 싶냐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얼마나 다정스럽고 따뜻하게 들었는지, 좋아서 눈물을 다 흘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여기 처녀들, 좋은 신랑 얻고 싶어요, 나쁜 신랑 얻고 싶어요? 또 남자들은 좋은 신부 얻고 싶어요, 나쁜 신부 얻고 싶어요? 도둑 같은 남자들에게는 물어볼 것도 없지요. (웃음)

그러면 어떤 신랑이 좋은 신랑이냐? 얼굴이 잘나고 허위대가 좋고, 일류 대학 출신, 일본으로 말하면 동경대학 출신 정도면 좋은 신랑이지요? 그래요? 어느 사람들은 `그렇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류 대학 출신 신랑감이라 하더라도 통일교회 믿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절대로 시집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통일교회를 안 믿는 일류 대학 출신의 신랑감을 만나고 싶어요, 한갓 농촌의 지게꾼이지만 죽을지 살지 모르고 통일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물어볼 것도 없이 통일교회에 충성하는 지게꾼을 만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처녀들한테, 제일 못난 사람이 통일교회에 제일 충성한다면 그에게 시집 가겠느냐고 했더니 대답할까 말까 망설이더구만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대답 안할 수 없지요. 결국 `제일 못난 사람한테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더라 이것입니다. 사람은 틀림이 없거든요.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그럼 일본에서 제일 잘 믿은 사람과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 믿는 흑인이 있는 데 아프리카 흑인이 못난이지만 그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십배 이상 통일교회를 잘 믿는다면 어디로 시집 가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했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아프리카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22-269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최고의 신부
일본, 섬나라에 현재 1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30년 후에는 1억 7천 내지 2억에 가까운 인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50년만 지나면 2억이 넘을 것이고, 7, 80년 후에는 4억이라는 인구가 일본 땅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같은 좁은 땅에서 4억이란 인구가 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태평양 바다에 땅을 만들어서 집을 짓고 살 것입니까, 공중에 땅을 만들어 가지고 파먹고 살 것입니까? 그때 가면 별수없이 일본 천황은 외국에 가서 머리 숙이고 `당신네 나라에 우리 일본 사람 몇 천 몇백 명만 받아 주십시오. 우리 좀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이민교섭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되는 날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일본의 백년 이내의 장래만 생각해도 통일교회의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상을 불어넣어 가지고 세계로 시집 장가 보내는 운동을 일본에서 벌이려고 합니다. 일본이 살 길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웃음)

일본의 저명한 인사를 만나서 산아제한에 대해 얘기했는데 아무리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해도 국민들이 거기에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아들딸 하나만 놓고 만족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적게 낳더라도 아들 둘 딸 하나 정도는 낳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기들보다 수가 많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의 신부가 누가 될 것이냐? 구라파에 사는 어느 금발에 호수 같은 눈동자를 가진 백색미인이 될 것이냐? 아닙니다. 아까 말할 바와 같이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신부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신부가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 자리에는 결혼해서 살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어디 결혼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래 결혼생활이 재미있습니까? 재미 있어요? `입을 벌리고 하- 재미있기만 하겠소. 나를 좀 보시오’ 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신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신랑이신 예수님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되었다면, 얼마만큼이나 그 사이가 좋아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것 생각해 보았어요? 예수님과 신부는 깨가 쏟아지기 전에 날아갈 만큼이나 재미있게 살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상적 부부란 어떠한 부부? 최고의 예술을 실체로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입니다. 최고의 문학을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부인 것입니다. 최고의 이상, 세계 최고의 문화세계를 접하기 전에 최고의 사랑으로 부부가 주고 받는 달콤한 사랑이 세계 최고의 예술 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최고의 문학 작품이요, 그 자체가 문학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하늘의 왕자로 오는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신부는 최고 중의 최고 신부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부가 되려면 그 심정이 어떠해야 되느냐? 예수님은 2천년 동안 사랑해 오셨고 2천년 동안 일해 나오셨는데, 2천년 동안이나 그토록 수고해 나오신 예수님의 사연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떠한 조상을 통해서 태어났는가? 또한 예수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맛있어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좋아하는가, 또 누구를 만나면 좋아하시는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것들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것을 아느냐? 선생님이 이런 것을 모르고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신랑으로 오셨으니 신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부를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다. 그러면 신부를 찾아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로서 인류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신부를 맞이하여 부부를 이루어서 인류를 다시 낳아 주기 위해서입니다. 즉 참부모가 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2-271
참부모는 구주의 최고 기준
여러분은 참된 부모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서 쫓겨난 거짓된 부모의 핏줄을 받고 태어났으니, 이 핏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핏줄을 밟고 밟고 뽑아 버리고 뽑아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혈통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절대 개인적으로는 못 들어갑니다. 선생님이 알아보니 천국은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그런 망상적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천국은 가정 단위로 가게 되어 있는 곳입니다. 가정이 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이 같이 가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같이 살 수 있는 곳이 이상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옥 가고, 어머니는 천국 가고, 동생은 천국 가고, 누나는 지옥 가고, 그렇게 되면 자기가 천국 갔다고 해서 좋겠습니까? 천국은 가정으로서 가는 것입니다. 가정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의 시발은 어디에서부터 벌어질 것이냐? 참된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참부모와 거기서 태어난 아들딸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다가 그냥 그대로 이삿짐을 싸 가지고 옮겨가서 사는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타락한 가정은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받은 모든 인류는 천국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 있느냐? 이런 말을 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들 하지만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맞는가, 안 맞는가, 아니면 거짓말을 했는가 하는 것은 죽어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반대만 하지 말고 죽어 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죽어 보면 다시 살아 올 수 없으니까 안 되지요.

여러분, 예수님은 신부를 찾기 위해 이 땅 위에 다시 오십니다. 6천년 전에 참부모의 자리에 서야 했던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인류의 한이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한의 심정과 인류의 한의 심정을 해원시켜야 할 사명을 하나님께서 이 땅에 파송하신 구주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주, 구주, 구주는 누구냐? 구주가 오는 데는 아들딸까지 끌고 와서는 참된 구주가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격으로 오시는 구주를 모시고 싶습니까? 아무리 내가 죽은 자라고 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종의 자격으로 와서 구원해 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양자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로서도 완전히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부모가 있다면 부모가 구원해 주기를 바라지 아들이 구원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또는, 양자나 혹은 종이 와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겠느냐는 것입니다. 구주의 최고의 기준은 참된 부모입니다.

참된 부모로 온 구주가 인류가 소원하는 마지막 구주입니다. 아들 구주, 양자 구주, 종 구주로 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타락한 것이 부모이기 때문에 형제나 자매가 구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인류의 조상이기 때문에, 부모가 타락을 했기 때문에, 구주 또는 부모로 와서 부모가 타락한 것을 전부다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참된 부모의 사명을 가지고 와서 부모로서 이 땅의 인류를 구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풍기는 그 가슴에 흠뻑 묻혀서 해방과 자유와 부활을 맞이하는 한 날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예수믿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2-273
가정을 이루셔야 했던 예수님
그러면 신랑이신 예수 앞에 신부가 하나밖에 있을 수 없으니 그 신부가 누구냐? 예수는 아버지요, 그의 신부는 어머니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님과 그 신부 즉,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보내시느냐? 우리가 거짓된 부모의 인연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된 부모를 갖지 못한 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때에 참부모를 찾아서 참부모의 사랑을 받고 참부모가 인도하는 나라에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땅 위에 평화의 왕국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신랑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장가를 가야 되겠어요, 시집을 오게 해야 되겠어요? 장가를 가는 것도 좋고 시집을 오게 하는 것도 좋지요. 어쨌든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또 기성교인들은 `아이고 거룩한 우리 주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가를 안 가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장가가는 것을 반대하는 패들은 악당들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장가를 갔다고 합시다. 기성교회에서 이 자리에 처음 온 사람들, 예수님이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다면 예수님의 핏줄을 타고 난 그 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 안 하시겠습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의 아들은 뭡니까? 하나님의 손자지요. 그래 하나님이 손자가 있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없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물어볼 게 뭐 있어요. 영감들이 전부 다 손자들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손자를 원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정은 원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을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정을 이루면 그 가정이 누구의 가정입니까? 예수님의 가정인 동시에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뿐만이 아니라 그 친족도 원하시는 것이요, 그 예수님의 종족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이루고,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전부다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예수님이 장가를 가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보아서도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이단입니다. 오늘 통일교회에 갔더니 통일교회 선생님이 땀을 흘려가면서 예수님이 장가가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기분 나빠할는지 모르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려면 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그런 내용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또한 알고 나서 그것을 의심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보다 못해서 이 노릇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보다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무릎에 굳은 살이 박힐 때까지도 기도해 보았습니다. 영계에 대해서 보고 듣고 분석도 해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껄렁패들은 빈 깡통이어서 발로 차 보면 소리만 요란하게 크지, 내용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자기네들이 빈 깡통인지는 모르고 통일교회를 깡통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였느냐 하면, 예수님의 결혼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모인 무리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잔치를 한다면 얼마나 큰 잔치를 하겠습니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고 아직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은 어린아이까지도 구경하고 싶어서 뛰쳐 나오도록 크나큰 잔치를 하고 싶을 것입니다. 뱃속에서 팔삭동이가 뛰쳐 나와서 벌떡 일어나 가지고 예수님 혼인 잔치에 구경하러 가겠다고 하게 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준비를 하느라고 합동결혼식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은 왜 죽게 되었느냐? 예수님 자신의 가정을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자기의 부하로 만들기 전에, 그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를 자기의 수중에 넣기 전에, 유대교 앞에 제사장의 입장에 서기 전에 맨 먼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었느냐?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을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늘 앞에 먼저 가정을 찾아 세우지 않고서는 제사장이 된다 해도 헛된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된다 하더라도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22-275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
예수님이 천심만고하여 3년의 공생애노정을 거쳤지만, 이번에 순회하면서 예루살렘에 들렀을 때 선생님이 감람산에 올라가서 3천년 묵은 감람나무,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배드로·요한·야고보 세 제자를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3차 기도를 드릴 때, 베드로·요한·야고보 세 제자는 아마도 그 나무 밑에서 졸았는지 모릅니다. 그 자리가 예수님한테 책망을 받은 자리요, 예수님을 그의 제자 유다가 와서 팔아 넘겼던 장소니, 기가 막히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자리에 오는 사람들마다 우리 주님 죽기 위해 여기에 오셨다가 나를 위해서 죽어 가셨으니 잘 죽어 가셨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참 기가 막히는 자리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셨다면 뭣 하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택해 세워 가지고 4천년 동안이나 길러 왔겠느냐는 것입니다. 죽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려면 악질들, 강도들만이 사는 나라에 보내시지 않고 왜 4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시며 길러 오셨던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보내셨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정성을 다해 선민으로 길러나온 것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였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 동안이나 `너희 나라에 메시아가 온다. 만왕의 왕권을 가지고 와서 세계를 지배할 것이니 기대를 갖추고 정성을 들여라’ 하면서 길러 오셨는데 예수님이 오시면 죽이라고 그랬겠느냐는 말입니다.

악당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자원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악당들이 잡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기도한 것이 일이 잘되어서, 좋아서 그렇게 기도하신 것입니까? 나빠서 그렇게 기도하신 것입니까?

근본이 틀어진 기독교의 역사를 바로잡아서 세계적인 사명을 다하는 기독교를 만드는 것은 꿈 같은 일입니다. 끝날이 가까와질수록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사회적인 비판을 받고 사상적인 세계에 있어서 그늘 아래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런 자리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놓고 보니 예수가 죽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다해서 죽은 것입니까? 책임을 못 해서 죽은 것입니까? 「못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사연에 대해서 좀 얘기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잘하고 요셉이 책임을 다했다면 예수님이 죽었겠습니까?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해서 죽었는가 요셉 가정이 잘못해서 죽었는가, 이것부터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22-276
요셉의 고민
요즈음 젊은 녀석들은 무슨 연애니 뭐니 해 가지고 길거리에서 바람 피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지만, 교회 들어오기 전에는 그랬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남자를 사랑하던 여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 마음이 싹 돌아가 가지고 이제껏 사랑했던 사람한테 `굿 바이, 굿 바이’ 하고 돌아서 버리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나쁩니다」 얼마나 나쁘겠어요? 아마도 그 여자는 깨 버리고 싶고, 그 남자를 날려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남자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남편을 그렇게도 사랑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 여자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 만일 기분이 좋다는 사람은 차라리 죽어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 생각해 보세요. 남자의 체면에 여편네가 그러고 있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요? 칼침을 놓고 하더라도 여자가 자빠지는 것을 봐야 속이 시원할 것입니다.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는 남자는 남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춘 남자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할 수 있고, 눈이 올바로 박혀 있고, 사지백체가 멀쩡한 남자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의 사회는 간음한 여자는 율법에 의해서 돌로 쳐서 죽이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가 난데없이 애기를 배었을 때 요셉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나빴겠습니까? 피가 끓고 뼈가 저리도록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으니 고민하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꿈에는 진짜꿈도 있고, 개꿈도 있고, 시시한 꿈도 있으니 그냥 그런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에서 깨어 일어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개꿈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너무 고민을 하니 그러다가 죽을까 봐서 조상이 나타나서 위로하기 위해서 그런 꿈을 보여 준 것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별의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안 좋았을 것입니다. 결국 숱한 고민 끝에 마리아를 데려오긴 데려왔지만, 그래, 둘이서 재미있게 살았겠어요? 재미있게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가면 갈수록 마리아의 배가 불러오는 데 모두 용서해 주고 데리고 오긴 왔지만 마리아 뱃속에 있는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남자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궁금해서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하늘이 역사를 하고 하늘의 명령을 받아서 나갈 때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지만, 그것이 지나고 나서 보면 꿈을 꾼 것 같다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지나고 나서 갑자기 해가 나타난 것과 같은 기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해가 뜨고 보니 집이 무너지고 부서진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그것을 아느냐?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 보고 숨겨 있던 모든 비밀을 전부 들춰 보았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없는 이런 말을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영계에 가서 죄인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22-278
공식적인 복귀섭리에 대해 무지했던 요셉
그러면 요셉이 마리아에게 그런 일을 물어 보았겠어요, 안 물어 보았겠어요? 남자로서의 마음보를 가지고 있는 요셉이 그런 말을 안 물어 보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안 물어 보았다면 그 사람이 바보라는 거예요. 바보. 그런 사람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마리아에게 물어 보았는데 때에 따라 어떤 때는 다정하게도 혹은 성을 내가면서도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마리아는 `나는 모릅니다. 성령으로 잉태했을 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 말을 요셉이 믿었겠어요? 여러분이 만약 요셉의 입장이라면 믿겠어요? 믿을 남자 어디 한번 손들어 보세요. 믿는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엉터리입니다. 엉터리. 그러나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틀림없다고 그렇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다그쳐도 성령으로, 죽인다고 해도 마리아는 계속 성령만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었던 요셉이 그 당시에 있어서 마리아에게는 유일한 보호자였습니다. 요셉밖에는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모른다고 잡아떼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구약시대의 법에 의하면 음행한 여인은 모두 돌려 때려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있어서 요셉은 생명의 은인이요, 보호자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똑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해도 결론은 언제나 같은 것이었으나 요셉은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뭐 성령으로 잉태하는 것을 보았나요?

그래서 남이 모르는 사이에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말다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한 것은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알았더라도 그것은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내용을 써 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써 놓았다가는 오히려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끝날이 되어 밝혀야 할 때가 되었으니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그것을 전부다 밝혀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싸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싸움이.

그러면 탕감복귀역사에 있어서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마리아가 요셉에게 시집을 가서 요셉의 애기를 배었다면 요셉이 마리아에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공식적인 노정인 것입니다.

22-279
실체의 하나님이 되어야 했던 아담 해와
그러면 사탄이 무엇을 했느냐? 해와와 사랑 관계를 맺어 가지고 나아가서는 아담까지 타락시켰던 것입니다. 즉 해와가 아담을 주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것을 탕감시키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유린당해 왔던 것입니다. 여자들이 섭섭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 밝히 얘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아담과 예수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요전에 누군가 예수는 창조주인데, 창조주인 예수하고 아담을 통일교회에서는 혼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모르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시정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와 아담과는 무엇이 다르냐?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필요없습니다. 따라서 구주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도 나지 않았는데 의사가 필요합니까? 설사가 났으면 설사약을 먹어야지, 감기 걸린 데 먹는 아스피린을 먹어서 돼요?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구주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선생님이 일생 동안 피땀을 흘려서 찾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도, 여러분들은 `아, 그게 사실일까? ‘ 하니 선생님이 기분 나빠서 얘기해 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얘기할까요, 말까요? 진짜 듣고 싶어요? 듣기 싫은 사람이나 반대하고 싶은 사람은 미리 귀를 막으세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아담과 해와를 만들었느뇨? 차라리 안 만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무엇하려고 만들었느뇨? 성경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3:1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뚱이가 타락해서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들도 몸뚱이를 뭐라고 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합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여 구원역사를 거쳐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이 된다 하더라도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과 그 사람들과는 누가 더 나아요?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겠습니까? 물어볼 것도 없이 백년이고 천년이고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대관절 무엇이냐?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주관하는 데 있어서 아담 해와가 아무것도 모르는 멍텅구리라면 주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천지를 창조한 기술자와 같은 실력이 없어서는 주관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주관의 능력을 주실 것이냐?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아담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서 아담을 콘트롤해야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담이 하나님의 실체를 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때요. 기분이 좋아요?

이렇게 볼 때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으로 만든 아담이 인간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실체의 세계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실체의 몸뚱이가 있어야만 보고 듣고 하겠기에 하나님의 실체의 몸뚱이로 지은 이가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면 해와는 누구냐? 해와는 아담의 아내입니다. 무슨 아내냐? 실체의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실체를 쓴 하나님이라면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아내를 얻는다니 기가 막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뚱이요, 해와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아내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과 해와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내재적인 성품을 그대로 닮아서 한몸을 이루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딸이 아담 해와의 아들딸이자 누구의 아들딸이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통해서 아담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궤도 위에서 사랑의 인연을 세우지 못한 것이 억천만대의 한의 역사요, 오늘날의 이 비참한 타락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22-281
에덴 동산에서 정상적인 사랑의 인연을 못 세운 것이 한이었다.
사랑이 무엇이냐?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가 성숙하여 자연법칙에 의해 가지고 서로가 하나되는 것을 말합니다. 동물들도 성숙하게 되면 수컷은 암컷을 찾아가고 암컷은 수컷을 찾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21세가 넘게 되면 자동적으로 서로가 그리워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의 인간들은 사춘기를 거침으로써 서로가 정적(情的)으로 합할 수 있는 최고 기점의 때를 맞아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종교에서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고 사람은 제일 더러운 것으로 말하고 있는 데, 이것을 연결시키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전부다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상대적인 기준이 없이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도 독자적으로 성립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지 아니한 아담 해와는 어떤 존재냐? 하나님의 실체와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내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되고 외적으로는 아담과 해와가 하나되어 이룬 가정은 무슨 가정이냐? 바로 하나님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서 태어난 아들딸은 누구의 아들딸이 되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해와를 겁탈해 가지고 아담까지 타락시켰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16세의 틴에이저와 같은 철모르는 때에, 사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 사탄이 침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법적인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하나님이 임재하셔야 할 자리에 사탄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의 아버지가 누가 되는 것이냐?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타락한 인간을 대하여 예수님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했고, 또 말하기를 `독사의 새끼’라고 했으며 세례 요한도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뱀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인간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탄은 원수지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아무리 사탄이 원수라 할지라도 용서해 주면 평화의 왕국이 쉽게 이루어질 텐데 왜 하나님이 사탄을 용서 못합니까? 인간들에 대해서도 죄 지은 자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시면서 왜 하나님은 사탄을 용서하지 못하느냐 이겁니다.

22-282
뽑아 버려야 할 거짓 혈통
여러분, 사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간부입니다. 간부. 간부라 해서 무슨 회사의 간부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사랑의 원수인 간부(姦夫)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용서해 주면 천리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탄세계의 인간들은 백번, 천번 용서를 할 수 있어도 사탄만큼은 절대적으로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대심판은 누구를 심판하느냐 하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주인인 양 임재해 있는 사탄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해요, 아버지라고 해요? 아버지라고 하지요. 본래 여러분들은 태어나기를 전부다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의 핏줄을 타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영생할 수 있게끔 태어나야 할 것인데, 해와가 원수 사탄에게 겁탈을 당함으로 인하여 거짓된 혈통을 받아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탄이 본래의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머니를 빼앗아 태어나게 한 자식들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의 인간들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기분이 나빠해도 이것을 어쩔 수가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피와 살에는 전부 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서 없애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에서는 몸을 때려잡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때려잡는 운동으로 `몸을 쳐라! 희생하라! 금식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세계의 30억에 가까운 인류는 전부다 사탄의 종자들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해와가 만약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기준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삼위일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서 난 자녀들은 전부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으면 기도가 왜 필요하고 종교가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즉, 신앙이라는 명사는 인간에게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믿어요? 아버지를 구주라고 구원해 달라고 빌긴 뭘 빌어요? 그냥 아버지의 품속에 덥썩 뛰어들어 가지고 아버지를 타고 앉아서 수염을 뽑아도 되는데 믿기는 무얼 믿는다는 것입니까?

22-283
예수님과 마리아의 입장
이것들에 대해 확실히 밝혀 주지 못하고 흐지부지하여 이 땅에 떨어진 것이 오늘날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일체가 깨졌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대신으로 세워진 존재가 예수님입니다. 아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실패한 삼위일체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도 모르고 예수님이 뭐 하나님이라구요?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합니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래 하나님이 두 분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실 때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닙니까? 이런 엉터리의 모순 투성이를 믿고 신앙한다고 하고 있으니 현재 지성인들에게 몰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누가 아버지 된다구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아버지가 되어 있습니까? 사탄입니다. 타락함으로 인하여 사탄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부다 하나님의 자식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중심삼고 전개되어 가는 이 세상은 전부다 하나님의 뜻과는 일치되지 않는 원수의 세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전부 다 뒤집어엎어 본연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을 중심삼아 본연의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어서야 되겠어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어떻게 탕감복귀해야 하는가? 탕감복귀원칙에서 살펴보면 처음에 사탄이 해와를 끌어들였고 그 다음엔 아담을 끌어들였습니다.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대로 복귀해야 합니다. 해와를 빼앗겼으니 빼앗긴 해와를 도로 찾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지창조의 원칙에 의해 아담의 본을 따서 해와를 지었기 때문에 탕감복귀를 하려면 아담 창조와 같은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분이 4천년 동안 준비한 기반 위에 보낸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복귀하기 위해 재창조된, 타락하지 않은 제2차 아담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제1차 아담은 산 영이 되었지만 제2차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2차 아담은 뭐냐? 타락하지 않은 부모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리아는 해와를 대신한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와가 아담을 죽였기 때문에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해와의 입장에 선 마리아가 아담 대신자인 예수님을 다시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무슨 입장입니까?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천사장의 입장. 에덴 동산에 있어서 천사장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를 모시고 섬겨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천사장의 입장에 선 요셉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탕감복귀의 원칙에 따라 예수와 마리아를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와 요셉이 같이 살아야 하겠어요, 안 살아야 되겠어요? 안 살아야 됩니다. 원래는 살지 않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2-285
요셉의 입장
인류의 조상이 될 예수를 낳아서 인류의 어머니의 입장에 있는 마리아를 요셉은 천사장의 입장에서 받들고 모셔야 했습니다. 요셉은 종의 입장이기 때문에 사탄의 해와를 유혹하여 불륜한 사랑을 맺었던 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마리아와 요셉이 절대로 하나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적으로 볼 때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마리아에게 누구의 아들을 낳았든간에 물어볼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다가 살면서 이것이 누구의 아들이냐는 등 항상 툭탁거리며 싸우니 요셉의 친척들이나 주의의 사람들이 그것을 몰랐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애기 가진 처녀를 데려다가 사는데 숱한 싸움을 하니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위의 동네 사람들의 말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친척들도 요셉에게 `야! 이 멍청이 자식아. 얼마나 못났으면 마리아 뱃속에 있는 자식이 네 자식인지 아닌지도 모르냐’고 조롱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아마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런 사실을 부모까지도 다 알고 그 친척 전부가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꾸며낸 이야기 같아도, 인간 남자의 생리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요? 이제 이것을 선생님이 성경을 중심삼고 여러분에게 밝히 알려 주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에다가 세 가지를 더 첨가하고 넘어가야겠지만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대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찾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타락하지 아니한 해와를 찾는 것입니다. 깨끗한 혈통으로 태어난 해와와 같은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사장에게 침범받지 않은 부모의 기준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지만,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을 못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어머니 아버지가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기 전부터 동네에서나 주위의 친척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몰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철이 들면서 요셉과 마리아의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을 알고 그 눈치만 보면서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주위에 있는 친척들도 전부다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래는 요셉 가정에 있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늘의 왕자이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합심해 가지고 장래 이 땅 위에 메시아로 등장하도록 새로운 가정을 건설할 수 있는 전면적인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을 두고 이스라엘 민족을 길러서 준비한 축복의 터전 위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 되어서 예수님을 철옹성처럼 보호하고 그를 위하여 생명을 걸어놓고 싸웠던들 예수님이 비참하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들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이라는 것은 필요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예수님의 신부는 자기의 친척 가운데에서 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본래는 사랑하는 12제자도 지지리 못난 천한 무리들을 택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직업이 어부라고 하면 전부 다 사람 대접을 받기가 힘든데 그 당시는 어떠했겠습니까? 선생님이 갈릴리 바다에도 가 보았지만 지금도 형편없습니다. 베드로가 살았다는 집도 형편없는 토굴이었습니다. 그처럼 아무 보잘것없는 베드로를 수제자로 택해 이 세계에 복음 역사를 일으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 가정이 책임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4천년 동안 준비해 온 터전을 전부 다 잃어버리고 재차 출발해야 하셨던 예수님의 사정이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 요셉과 마리아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을 중심삼고 그 집안에서부터 하늘의 법도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님께 정성을 들여 가지고 매일 아침 진지상을 올리고 아침 저녁으로 경배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사이가 좋지 않은데 그렇게 할 수 있었겠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유대땅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은 그저 좋은 일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분하고 원통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간 준비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메시아가 마굿간에서 태어나다니,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사실입니가? 선생님이 가서 보았더니 그 말구유가 돌로 판구덩이에요, 구덩이!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22-287
예수님에 대해 책임 다하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을 향해 가면서도 마리아 자신은 어느 때에 예수님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만삭이 되어 해산 날짜가 내일 모레로 임박했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갔으니 마리아가 책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또 그 뒤에는 모른 척하고 따라갔던 요셉이 책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마리아는 사이가 나쁜 요셉을 보고 무슨 준비를 하자고 말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는 약 20리 되는 거리입니다. 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은 집 한 칸 없고 입힐 옷 한 벌 없고 기저귀 하나 준비하지 못한 가운데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왜냐? 가정의 불화로 인해 마리아가 요셉에게 말할래야 말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고,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이 하늘의 왕자로서 죄많고 비천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마굿간에서 태어났다고들 하니, 그런 수작들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의 왕자를 사탄세계로 보내는 것도 분하고 원통한데 사탄세계의 자식들이 쓰다가 버린 걸레 조각을 하늘의 왕자가 쓰게 되었으니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으셨겠어요? 아무리 단장된 피복이 있다 하더라도 기분 나쁘실 것입니다. 그런데 4천년 역사를 두고 사탄 족속들이 쓰던 포대기와 기저귀 조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 했으니 기분 좋으셨겠어요? 그것을 이스라엘 민족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죽인 죄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유리하면서 피값을 갚아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기 위해서 왔어요? 할 수 없으니 그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 두 살 때 일입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4백리 길이 됩니다. 걸어서 3, 4일 이상 한5, 6일 걸리는 먼 곳입니다. 걸어서 가는 그 길을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데리고 갔는데 가서는 어떻게 되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흘간이나 예수를 잃어 버렸어요. 그것도 요셉과 마리아가 하룻길을 간 후에야, `아이쿠! 예수가 없구만!’ 했으니 그게 얼마나 엉터리같은 수작들입니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이 없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돌아서면서부터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남편인 요셉에게 예수가 없어졌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기분나쁜 존재였기에 빤히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보지 아니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룻길이나 돌아온 후에야 안 되겠으니까 할 수 없이 예수를 찾으러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던 것입니다. 되돌아와서는 성전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고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 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반박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어머니 아버지인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2-288
예수님의 한과 통일교회의 사명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해야 될 것인데 그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친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의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의 왕자가 이 땅 위에 오셔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었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환경에 몰리고, 친척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오해와 몰림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뜻을 감추어 가면서 하루하루 생활했을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요셉의 가정에 있어서 자기가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고 친척을 사랑할 수 없고 동생을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선 예수, 그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요? 교회를 사랑할 수 있어요?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자식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친척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친척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민족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민족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의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이런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껄렁한 무리들이 통일교회를 보고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이단인가 아닌가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기독교인들에게 몰리고 몰려서 감옥에 들어가 별의별 악형을 당하고 고문을 당했지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과 우리’라는 제목을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냐?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 형제와 친척을 사랑할 수가 없었고 또한 종족과 민족, 교회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처량한 신세를 알고 난 우리들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네방네, 심지어는 사돈의 팔촌에게까지 사생아라고 비웃음을 받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이종 사촌인 세례 요한도 그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노정이 여기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내용은 모두 모르고 그저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받는 줄 알고 있는 것은 옛날 로마의 가톨릭 신부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새롭게 혁신시켜 하나님의 천륜의 법도를 거쳐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적인 인연을 이 땅 위에 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하며, 친척을 사랑하지 못하고 민족, 국가를 사랑하지 못한 예수님의 원을 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한의 역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밝히 알려야 할 통일교회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22-290
예수님이 공생애 노정을 출발하게 된 이유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아버지 어머니를 갖지 못한 사람이요, 진정한 형제를 갖지 못한 사람이요, 자기 민족과 자기 나라를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외적으로는 모두 갖추었지만 진정으로 뜻을 같이하는 부모, 형제 친척, 나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곡절의 비운의 역사가 예수님의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단 소리를 듣고 별의별 수욕을 당하면서도 이런 숨겨진 곡절을 다 밝히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두고 보십시오. 진리는 역사를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념은 일시적으로 지배할는지 모르지만 진리는 영원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억천만세에 누적되었던 하나님의 한의 심정을 이 땅 위에서 풀어드리기 위해 사랑의 가정을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증거하던 동방 박사들은 다 어디 갔으며 또한 선지자 안나와 세례 요한은 다 어디로 사라졌던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모시는 것이 그들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섬겼다면 예수님이 몰림을 받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슬픈 사정을 품으시고 사랑의 기원을 이루기 위하여 천신만고하시며 4천년을 준비한 터전 위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이 땅 위에 전파하고 역사적인 한의 구렁텅이를 메우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지만, 그 예수의 신세가 그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는 바람이 불 적마다 그 바람을 친구로 삼으려 했고,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자기 생활의 한을 읊었고, 철새가 찾아오면 그 철새를 친구삼아 자기의 사연을 얘기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사연을 숨기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래야 말할 수 없는 환경에 몰렸던 불쌍한 예수님의 생애를 여러분들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30년 생애는 무골충의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묵묵히 요셉의 가정에서 목수의 조수로서 일해 왔던 것입니다. 친구 하나 없고 알아 주는 형제와 친척 하나도 없었던 예수, 알아줄 교회도 없었고 나라조차도 없었던 예수님의 그 심정을 하나님만이 알아주었지, 예수님의 이런 사정을 낱낱이 파헤쳐서 가슴속에 맺힌 한의 심정을 알아주고 위로해 줄 동지가 어디 있었겠느냐 말입니다. 부모 형제와 그 친척, 그리고 교회와 나라에게도 배척받는 입장에 선 불쌍한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머니인 마리아를 붙들고 통사정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하늘의 왕자로 천국 건설을 이루려고 왔으니 천국 가정의 건설을 이 요셉 가정에서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즉, 마리아 당신을 통해서만이 하늘가정의 법도를 세울 수가 있다’고 예수님은 간곡히 말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 자신도 요셉에게 눈치보며 붙어서 사는 신세요, 환경에 몰려 자기 처신하기도 어려운 신세였으니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하는 아들의 사정을 알았지만, 예수님의 말대로 따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딱한 마리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하늘의 가정을 중심삼은 법도를 세워야 할 사명을 가진 예수이기에, 30살이 되기 전까지 마리아에게 간곡히 권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되도록 그런 하늘가정의 터전을 세우기 위해 고대하고 그리워하며 참고 나왔으나, 요셉 가정에서는 그것을 찾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보따리를 싸 가지고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4천년간 준비한 근본 가정의 터전이 다 깨어져 나가고 예수님이 집을 나서게 될 때, 사탄은 `야! 잘됐구나, 예수야!’ 이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할 수 없이 사탄에게 끌려가 시험을 받을 때 예수님은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22-292
비운의 3년 공생애 노정
그러면 어찌하여 사탄에게 끌려갔느냐? 사탄이 말하기를, `예수, 네가 찾고 있는 하나님의 4천년 역사의 가문을 내가 차지했으니, 이것을 다시 네가 찾으려면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조건으로 삼아 복음이란 조건을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셔야 했으나, 이것을 실체적으로 이루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구원밖에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에수님에게 말할 때, 그때 말하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집을 나와 뜻길을 걸어가는 노정에 있어서 나를 만나서 하는 부탁이 겨우 그것이냐고 질책하셨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부탁하는 간곡한 사정은 몰라 주고 어머니는 이런 인간사적인 부탁을 나에게 하는가 하는 반박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 풍습으로는 세상에 이런 불효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 그럴 수 없는 것이, 어머니 마리아가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이러한 고생의 길을 나서게 됐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예수였기에 이런 선포의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는 말은 상관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나를 요모양 요꼴로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당신이다’라는 질책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흩어진 가정의 기반과 흩어진 민족의 기반, 흩어진 이스라엘의 기반을 다시 수습하기 위해 걸었던 비운의 노정이 바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돼요. 똑똑히.

하나님은 주의 깊게 많은 준비 기간을 거쳐서 요셉 가정을 찾아 세웠습니다. 요셉 가정을 방패로 삼아 예수님이 뜻을 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즉, 이종 사촌되는 세례 요한을 이스라엘 선지자로 보내어 유대교 전체가 그를 받들어 모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 모셨던들 예수님은 비참하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22-293
세례 요한의 불신
그러나 세례 요한, 이 멍청이 같은 녀석이 예수님을 증거하기만 했지 믿고 따르지 못했습니다. 삼시 세끼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고 수도한 것은 무엇 때문에 한 것입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만나서 증거했으면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끝까지 따라다니며 모셔야 하는데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돌아다니고, 세례 요한은 세례 요한대로 세례 주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시시한 헤롯왕의 연애 사건에 걸려서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야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님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 우리가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오리까…….’ 성경 마태복음 11장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결국은 이것을 물어 보라고 시킨 세례 요한이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에 같이 있었던 그의 제자들, 즉 물어 보러 온 그 제자들이나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세례 요한이 여인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말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메시아를 맞기 위해 준비하고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어떤 사람보다 해야 할 책임이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수많은 선지자들은 몇백년, 몇천년 후대를 걸어 놓고 예언했지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메시아로 증거할 수 있었기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세례 요한이 제일 큰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그것은 이제까지 죽어 간 수많은 영인들, 즉 죽어 간 강도패들도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알고 모시고 싶어 하는데 세례 요한이는 예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제일 꼴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겨우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아니 그게 무슨 수작입니까? 증거할 때는 언제고 또 의심하는 것은 무슨 수작입니까?

마태복음 11장 12절 이하에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믿고 모시기만 했다면 베드로의 수제자 자리도 세례 요한의 차지로 될 것이요, 또 그 친족 중에서 열 두 제자와 70문도, 120문도까지 다 세울 수 있었는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책임을 다했으면, 그 당시의 유대 민족이 모두 세례 요한을 믿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 유대 민족이나 교회가 몽땅 예수님에게로 넘어왔을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의 12사도는 어부와 같은 천한 무리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친족 집안에 의해서 소리없이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족복귀, 민족복귀를 전부다 이루어 놓고 난 다음에 교회와 연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와 연결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할 이가 세례 요한의 무리들인데, 이 준비한 기대가 다 무너져 나갔으니 예수님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교회에서 몰렸고, 나라에게 몰렸으며, 친척에게서, 세례 요한에게서, 또한 형제에게서 몰리게 되었고, 요셉 가정의 어머니 아버지에게까지 몰렸던 것입니다. 이러니 예수님이 갈 데가 있어요? 이렇게 판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렇게 죽어 갔는데 그래, 잘 죽었어요? 성경을 찾아 보라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말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보라는 거예요. 이런 근본 문제를 알지 못하고 뭐 얼렁뚱땅해 가지고 천국에 가겠다고요?

예수님은 요셉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탕감복귀하고, 거기에서 신부를 찾아 세웠어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중심삼아 사도들이 일치단결하여 생사를 같이하는 입장이 되었어야 하며, 세례 요한의 무리들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전부 하나로 일치시켰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 당시 예수를 중심삼고 유대교와 유대 민족이 단결하여 하나되었더라면 로마제국은 40년 이내에 점령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죽은 예수가 4백년 걸려서 로마를 점령했으니 산 예수는 40년 이내에 점령한다는 것입니다.

22-295
우리가 서로 ‘식구’라고 부르는 뜻
그 당시 지중해 문화권을 중심삼고 로마제국이 세계적인 판도를 가지고 호령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된 것은 사탄세계의 가인형 대표 국가로서 로마제국을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아벨형 국가로 세워 가인인 로마제국을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국가와 세계를 탕감복귀하고, 바라던 천국을 이루시려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2천년간 되풀이되어 오늘날 미국이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죽은 것이 잘 죽은 거예요?

오늘날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믿고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데 그래, 마리아 믿고 천국갈 수 있어요? 베드로를 믿고 천국갈 수 있어요? 기가 막힌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적인 내용도 모르면서 신부가 되겠다는 엉터리 패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가만히 보십시오, 어떻게 되어 있나. 복귀역사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가 죽은 것이 잘 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왜 식구라고 부르며 또 그 명사는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 특히 젊은 사람들이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동생이 있었지만 동생을 사랑하지 못했고, 부모가 있었지만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고, 친척이 있었지만 친척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있고 나라와 민족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은 젊은 청년들을 대할 때 부모처럼 사랑하여 요셉과 마리아가 부모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완전히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 서서 부모의 심정으로 친아들딸을 사랑하는 그 이상으로 청년 식구들을 아껴 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들은 예수님처럼 이 나라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왕자의 입장에 서서 생명을 내걸고 움직여야 하며, 형님과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은 친형 이상으로 사랑하여, 예수님이 형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그 한을 풀어 드려 형님의 자리를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동생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동생들이 비난했던 입장을 떠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동생을 갖지 못했던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 누구라도, 혹은 친척, 교회, 나라를 예수님 대신 사랑하고, 예수님 대신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을 재현하여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의 기준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사랑의 기준을 잃어버림으로 해서 남아진 한의 심정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식구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의 식구란 말이 얼마나 귀한 말인지 여러분들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핏줄이 다른 형제 아닌 형제가 되어 친형제 이상으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안 되면 여러분들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통일교 문선생에게서 빨리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손자 같은 젊은 사람을 붙들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셔야 했던 것처럼, 식구들을 위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여기에 깃들어 있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22-296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려면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중심삼고 예수의 한을 해원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남자든 여자든 다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사랑한다는 사람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내리세요. 세상의 어떠한 단체, 어떠한 가정에서도 맛볼 수 없는 사랑의 인연을 맺지 않고는 예수에게 맺혀 있는 한을 절대로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풀지 않으면 복귀역사를 이룰 수 없으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가 이 땅 위에 나온 이유입니다. 만약에 통일교회에 이런 큰 뜻이 없다면 아예 통일교회를 갈아치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선두에 서서 선생님 대신 죽음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이 예수님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스승을 배반하였던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죽음의 자리에 있더라도 선생님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가슴을 내놓고 총탄을 막겠다고 하며 쓰러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럴 자신이 있어요?

베드로가 맹세를 몇 번이나 했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변해도 자신만은 결코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베드로도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진짜로 선생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겠어요? 「예」 그럼 당장에 죽어 봐요? (웃음)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명령했던 것은 선생님이 전부다 알고 보고 먼저 실천해 본 다음에야 시켰던 것입니다. 원리를 남 모르게 알아 가지고 남 모르게 실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의 교주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합니다. 통일교회를 어느 누가 지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문선생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이 죽기 전에 세계적인 역사의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사명감에 불타서 오늘도 내일도 한 시가 바쁘게 움직이고, 자기의 갈 길이 바쁜 것을 알고 내일의 일이 오늘 저녁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통일의 길임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좁기 때문에 옆으로도 못 들어가고 혼자서도 못 들어갑니다. 가는 데에는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태어나야 하느냐? 머리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꿀잡이로 뒤집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탕감의 길은 거꿀잡이로 가야 하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려운 좁은 길입니다.

아무리 학박사라 하더라도 공식적인 원리의 길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전부다 여기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통일교회는 무섭다면 지극히 무섭고 강하다면 지극히 강한 교회입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통일교회의 원리는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한을 풀어 드려야 할 제2 예수님의 부활체로서 해원성사해 드려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식구들이 지닌 사명인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22-298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그러면 아담 대신 오신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뭘 해야 되느냐? 아담이 부모로서 책임 못한 것을 탕감해야 합니다. 즉, 인류가 아담의 가정에서부터 타락하여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귀역사입니다. 아담 해와가 실패한 것을 가인 아벨을 중심삼아 복귀하려 했으나 복귀하지 못하고, 셋까지 본래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떨어졌으니 그것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 가정의 여덟 사람을 어떻게 택했느냐? 기독교에서는 노아 할아버지가 믿음이 좋기 때문에 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이야 번지르하지. 그러나 왜 여덟 식구가 아니면 안 되느냐? 왜 40일간 홍수 심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학자이십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전부다 공식 법도를 통하여 그 결과를 타진할 수 있게끔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최고의 과학자요, 지혜의 왕이십니다. 때문에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섭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을 대신한 입장으로 오신 예수님은 누구를 찾아야 되느냐? 신부(해와)를 찾아야 합니다. 역사를 걸어 놓고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를 찾은 다음에는 세 아들(가인, 아벨, 셋)을 찾아야 하는 것이니, 그들이 바로 세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영계에 있는 베드로에게 기합을 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뭐냐고 야단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선생님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선생님한테 배례해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배가 아프겠지만……. 배가 아프면 아프라 하십시오.

인류 역사는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인간이 이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하나님나라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2천년 역사가 들어가고 6천년 역사가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풀려니 지금까지 죽을 고생을 겪어 왔던 것입니다. 세 나라 이상의 핍박을 받아야 했고, 세 주권 이상의 핍박을 받아야 했으며, 세 종파 이상의 핍박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120만 이상의 세배인 360만 이상이 선생님을 반대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님이 복귀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담이 책임하지 못한 것을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아담의 입장)이 신부(해와)를 찾아 부부를 이루고, 또한 이 부부를 중심삼은 가정을 이루고, 종족을 이루고, 민족 국가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직선상의 대표자 한 사람씩만 연결시키면서 세계 정복은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즉, 아담의 입장인 예수님 앞에 해와의 입장인 신부 그리고 가정을 대표한 요셉, 종족을 대표한 세례 요한, 민족을 대표한 제사장, 유대국왕, 로마 황제, 이 일곱 사람만 찾아 놓았다면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세계 정복은 저절로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힘들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책임 다한 한 사람이 있었어요? 가정에서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종족의 대표자였던 세례 요한이 어떻게 했습니까? 전부다 꼭대기에서부터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틀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것을 몽땅 집어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형제들이 반대했던 모든 내용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세례요한이 반대했던 것을 복귀해야 하고, 또한 유대 민족 앞에 새로이 기독교를 만들어서 유대교를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때 기독교가 하나의 아벨의 입장에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유대교를 굴복시켜 복귀시켰다면 이 세계는 그때 완전히 복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2-300
나라를 찾지 못해 순교 당한 기독교인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주님이 오시면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믿고 있지요? 그래, 주님이 구름 타고 와요? 뭐 탈 것이 없어서 시시하게 구름 타고 오시겠습니까? 구름이 뭐예요? 인류 조상이 이 땅에서 잃어버린 것을 구름 속에서 찾아야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해서 복귀될 수가 있겠어요? 땅에서 잃어버린 것은 땅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주님은 땅으로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온다고 아무리 믿어 보십시오. 억만년이 지나도 안 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선생님의 말이 틀리면 내 목을 치십시오. 하기야 영계에 가서는 선생님을 만나려 해도 만날 수가 없을 거예요. 이단의 괴수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지옥 밑창에 가 있을 줄 알지만 너무 높은 데 있어서 만날래야 만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웃음) 그런 신앙 하려면 선생님이 이런 일을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당장에 무엇을 해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핍박받고 욕먹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뭐 하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줄 아십니까?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것을 탕감복귀하려니 할 수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노정에 유대교를 중심삼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려 했으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영육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하나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발판의 나라로 세워진 이스라엘이 전부다 깨어져 나갔습니다. 즉 4천년 동안 섭리하여 준비한 이스라엘의 발판이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영적으로 나라의 터전만을 가지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백성이 되고, 유리방황하는 신세가 되어 사탄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된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영육 아우른 기독교의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4천년간을 준비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었던 하나님의 섭리를 이스라엘 민족이 몰라 불신하여 잃어버린 것을 다시 복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나라를 찾으려 오셨습니다. 하나의 나라를 찾으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나라를 영육 아울러 찾지 못하시고 다만 영적으로만 찾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이 땅 위에 실체의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내 나라요, 내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까지 하나님 나라의 터전이 이 땅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더라면, 아들인 예수를 중심한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복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을 중심삼고 영육을 아울러 연결시키려던 터전이 예수님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즉 실체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만 복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나라 없고 주권이 없는 백성과 같은 입장이기에 어디를 가나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순교의 피를 흘림으로써 발전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그렇게 심은 기독교이니 그렇게 순교의 피를 흘리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피를 흘리며 박해받던 시기가 끝났으나 그것이 그대로 죽어 없어지지 않고, 기독교의 영적 기반을 중심삼아 잃어버린 실체의 나라를 세계적으로 찾아 이루기 위해 그 나라를 흠모하고 주님을 고대하며 나온 것이 바로 재림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한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적인 탕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중심삼고 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이 그 가정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의 종족을 이루어 하나님이 그 종족을 내 종족이요, 그 종족을 중심삼고 이룬 민족을 내 민족이요, 그 민족을 중심삼고 이룬 그 나라 역시 내 니라라고 사탄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역사임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22-302
통일교회의 사명
오늘날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통일교회는 대통령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를 살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동안 정보부에서 우리를 얼마나 못살게 굴었습니까? 승공연합을 만든 이유가 뭐 통일교회를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등, 별의별 오해를 다 받았습니다. 그러나 때리려면 때리고 치려면 쳐 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먼저 맞는 사람은 망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온 세계에서 높다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꺾어져 나가고 낮은 자리에서 밟히고 놀림받고 저주에 싸여서 망할 줄 알았던 통일교회가 세계적인 국가를 이루어 세계의 승리의 깃발을 드높이 흔들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통일교회에 가지 말라 가지 말라고 하면서 반대했던 사람들이, 남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오니까 할 수 없이 통일교회에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의 목과 통일교회의 식구들의 목을 자르든지, 아니면 전부다 통일교를 믿든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싫으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가야 합니다.

앞으로는 이북의 공산당들도 모두 굴복시켜야 합니다. 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은 삼천만 민족이 전부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잘될 수 있다면 선생님이 천년 만년 고생길을 간다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할 여러분은 무얼 해야 되느냐? 다른 것보다도 예수님의 한을 풀어 주는 운동을 세계적으로 벌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못 넘은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 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서 몰리고 저기서 몰려 종족을 중심삼은 70문도와 120문도를 전부다 잃어버렸습니다. 본래 예수님은 이 12제자 중 세 제자를 세워서 가정을 이루게 하여 아담 가정에 있어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를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살아 생전 신부를 맞아 가지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가 예수님께 축복을 받았으면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를 복귀한 기준이 되었을 것인데, 이것이 전부다 깨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선생도 여기에 걸려서 지금까지 생애를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이것 때문에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으며, 예수님도 여기에 걸려 수고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여기에 걸려 있으니 최소한 가족 기준에서 아담 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하늘나라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축복해 준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일대에 이루어야 했지만 그 책임 못한 것을 선생님이 전부 다 복귀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거리에서 객사하는 일이 있더라도 통일교회의 사상은 세계를 지배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 앞에는 핍박의 길이 무너졌고, 여러분을 가로막던 사탄세계의 모든 담장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환경에서 자발적으로 선생님이 닦아 놓은 공식적인 법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닦아 놓은 공식적인 법도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국가와 싸우고 세계와 싸우고 수많은 원수와 싸워 그들을 격퇴시켜 터를 닦아 놓았으니, 여러분들은 그 외적인 모든 원수가 없어진 가운데서 그저 공식적인 궤도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나 여러분들에게는 자신의 가정을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이 자유롭게 열려져 있으니 여러분 자신이 그 조건을 맞추어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이렇듯 아담이 실패했던 가정적인 여덟 식구를 세우지 않고서는 복귀의 길을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찾아 세움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었던 본의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니, 승리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이 여기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모두가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남자든 여자든 세 사람 이상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열 두 사람 가운데에서 세 제자를 택하여 그들을 중심하여 가정의 기대를 이루려던 예수님과 같이, 여러분도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아 남의 자식이지만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는 것보다 3배 이상의 정성을 들여서, 그들을 축복시키고 그들이 낳은 아들딸에게까지 복을 빌어 줄 수 있게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하신 것이 무엇을 찾기 위한 것이냐? 한 나라를 찾기 전에, 혹은 민족과 교회를 찾기 전에 뭘 찾아야 했느냐? 가정입니다. 가정. 즉, 자기의 상대를 찾고 가정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가정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체의 근본이 뭐냐 하면 가정입니다.

22-304
필히 찾아 세워야 할 믿음의 세 자녀
예수님도 4천년 역사의 기반 위에 가정을 이루어야 할 터인데, 가정의 근본되는 해와, 즉 신부를 찾지 못했습니다. 또한 믿음의 아들딸인 세 제자를 세웠어도 그들이 가인적인 입장에서 예수님의 직계 아들딸을 모시지 못했고 소생, 장성, 완성과 아담 시대, 예수 시대, 재림 시대, 이 3시대를 대표하여 가인이 반대한 것을 가정적인 기준에서 탕감복귀할 수 있는 기준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생활권내에 사탄을 분립하고 추방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침범해 들어왔던 그 기준을 넘어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생활에서 이 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이 길 같을지 모르지만 똑바로 그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낙원에 계시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못 이루었기 때문에 낙원에 계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낙원은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신부를 찾고 아들딸을 찾아 세워, 아담이 실수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해야 천국에 들어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러한 내용을 중심삼아서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서 세계적인 터전을 닦아 나가는 것이 바로 통일교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이 예수님이 핍박받으며 가셨던 길을 재차 되풀이하는 역사노정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실패의 자리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입장에서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예수님이 찾지 못했지만 하늘가정을 우리는 이 땅위에서 찾아 세우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팻말을 지상에 꽂아 놓고 그대로 직행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서 원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서 종교와 구주라는 명사를 통하지 않고서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려면 이러한 아들딸을 낳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아들딸을 낳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 단계의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러한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가? 그것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에게 배워야 됩니다. 그러기에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증거하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하지 못한 사명을 이루어서 예수님을 위로하고 예수님의 길잡이 노릇을 대신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을 여러분이 감당해 내야만 예수와 우리의 사명이 완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22-305
기 도
아버님, 사람들은 한국의 한 모퉁이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이 일이 몰리고 쫓겨 흘러가는 물처럼 사라져 없어질 줄 알았지만, 이제는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 일본과 미국과 독일, 전세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세계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오라 사탄세계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인류를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오라 사탄 자체를 이 땅 위에서 추방하기 위한 역사적인 사건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런 엄청난 복귀의 사명을 짊어진 하늘의 용사들이오니 부디부디 강하고 담대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배후에는 언제나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이 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저희들에게는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이오니 이 나라를 위해 가야 되겠사옵고, 이 세계를 위해 가야 되겠사옵니다. 온 천주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해방시켜야 할 엄청난 사명이 오늘날 우리의 복귀노정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사오니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여 주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처음 참석한 사람이 있거든 예수님의 한을 풀어 드리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것이 수리적이고 실증적이라는 것을 생활에서 체험하고, 예수님의 서러움을 실제로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십자가의 절정에 이르면서도 오히려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겠다고 몸부림치던 예수님의 심령의 경지를 더듬어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죽음에 얽힌 한과 어둠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더럽히는 인간을 바라보시며 안타까와하시던 당신의 마음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도리어 그 마음을 격려삼아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고, 하늘의 왕자와 왕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처럼 엄청난 역사의 새로운 정도는 이 땅 위에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조직이 이 땅 위에서 파급되기 시작하였사오니, 온 세계를 감동의 와중에 몰아넣고 승리의 깃발을 들어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는 세계가 어서 속히 와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은 생명과 모든 것을 투입하고 그것을 위해 결의한 몸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분부하고 명령하여 주시옵소서. 대양도 서슴지 않고 건너갈 것이오며 대륙도 횡단할 것이옵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에 당신의 평화의 손길을 같이해 주시옵소서. 승리의 방패가 저희의 주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의 실증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지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수많은 나라를 방문하게 될 때마다 저희의 사명이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촉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오니, 저희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더더욱 충성해야 되겠사옵니다.

이제 이 민족을 위하여 살 때는 지나갔사옵니다. 세계를 위하고 천주를 위해 살아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하오니 저희의 개인적인 생활환경을 넘어서서 생명의 원천이요, 사랑의 원천이요, 이상의 원천이신 아버지를 중심삼고 생활권내에서 저희의 전체가 아버지와 접하여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옵기만을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참석했던 자녀들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시간 위에도 당신께서 친히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