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18: 고난의 전통을 이어받자

고난의 전통을 이어받자
1969.04.06 (일), 오스트리아 비엔나교회

22-218
고난의 전통을 이어받자
[말씀 요지]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스위스에 들렸을 때는 부활절 기간이었다. 4월은 예수님의 수난의 달이지만 한국에서도 이 기간은 수난의 기간이었다. 원리적으로도 그래야 한다.

1960년 4월에는 부모님의 성혼식이 있었고 3자녀의 성혼식이 있었으며 `심정부활의 날’ 선포가 있었다. 이러한 날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슬픔과 예수님의 슬픔을 기억해야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원수를 축복한 것은 땅에서 매인 것을 땅에서 풀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함으로 사탄보다 나은 기준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사탄과 다르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을 복귀하는 방법도 사탄과는 달리 선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도 이러한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고난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며, 선생님도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 조건을 세워야 한다. 누구든지 이러한 자리에 서 보지 않고는 선생님의 심정을 알 수 없다.

내일은 4월 7일이다. 이날이 바로 선생님이 공산치하에서 공판받던 날임을 기억해야 한다. 원래는 4월 3일로 정했었는데 4일이 연장되었다. 그 이유는 선생님이 기독교에 몰리는 입장에서 공판받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공산당원들에게 종교가 얼마나 악하고 아편적인 것인가 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 그 공판을 연기한 것이었다. 선생님에게는 그들의 핍박이 그리스도의 심정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공판일이 내일로서 만 20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 그들은 선생님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3년 기간은 하나님께서 공산당이 얼마나 악랄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기간으로 주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생님은 석방 후 남하하여서도 이 운동을 다시 시작하여 오직 한 길을 걸어 왔다. 그리하여 출감 후 18년이 지난 오늘에는 국가적으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세계적으로도 그러하게 되었다.

이제는 예수님이 죽었던 환경을 넘어서서 새로운 기대를 세울 수 있다. 여러분들과 선생님의 심정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고난이 교체되는 것이다.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나타날 때에는 예수님과 같은 입장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에 의한 종교의 자유는 우리의 외적인 길을 여는 것이 된다.

뜻을 위해 사선을 넘어 싸운 사람만이 오스트리아의 역사에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구에서는 우리에 대한 핍박이 적겠지만 아랍이나 공산진영에서는 핍박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아랍이나 공산진영에서 핍박을 받게 되면 민주세계의 기독교는 자연히 우리를 동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 정부도 못하던 일을 우리가 하게 됨으로 일본이 우리를 지지하게 되는 것만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 정부도 우리를 안 도울 수 없는 입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미국의 CIA가 우리를 없어서는 안 될 단체로 인정하고 돕게 되면 일은 빨리 진행될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런 선생님의 고난의 길에 동참한다는 전통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을 실체화해서 복귀섭리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일선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운동을 세계적으로 전개시켜야 한다. 우리의 운동에 청년들이 많이 들어와 활동하는 것은 천운을 맞추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천사가 해와를 지배한 것이 타락의 시초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