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2 to 21-124: 우리의 인연

우리의 인연
1968.11.17 (일), 한국 전본부교회

21-92
우리의 인연
[기 도]

오늘은 아버지 앞에 만민이 마음을 모아 경배하고 무한하신 아버지의 사랑과 존귀와 영광을 찬양해야 할 날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천지창조의 이상을 중심삼고 이루려 하셨던 소원의 한 때가 아직까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실 때의 아버지의 기쁨은 컸사오나 인간을 중심삼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선의 가정을 그리워하시는 아버지의 그 심정을 아직까지 헤아린 자도 없었고, 체휼한 자도 이 땅 위에는 없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인간 시조가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여 아버지의 뜻 가운데 안기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분하고 원통한 것임을 저희들이 진정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저희들이 당신 앞에 부복하였나이다. 역사과정을 두고 자녀를 찾아오기에 그렇게도 수고하신 아버님, 상심이 크신 아버지인 것을 저희의 마음과 몸으로 체휼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진정 저희의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서 슬픔에 잠기신 채 역사과정을 홀로 책임지고 찾아오신 아버님 앞에 충과 효의 도리를 다하여 아버지라 부르며 선하신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어야겠습니다. 지난날 저희 자신의 기쁨이 영원히 당신의 마음 앞에 기억될 수 있는 한 때가 있었는가를 냉정히 비판해 볼 때, 그렇지 못한 자신들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 저희들과 만나서 사연을 나누고 싶어하는 곳은 저희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현실의 환경이 아니라, 차원이 높은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라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 세계는 타락으로 엉클어진 사연을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연을 넘고 넘어 진정한 본연의 인연을 중심삼고 느끼고 거동할 수 있는 그 한 시간을 그리워하고 계시는 아버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을 저희들이 진정 이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말로만 느낀다고 하지 말고 심정으로써 체득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얼굴을 들어 아버지의 높으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아버지의 고마우신 은사를 대하게 될 때 눈물없이는 대할 수 없사옵니다. 그 아버지의 높고 귀하신 사랑을 잊지 말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동맥에 피가 흐르는 것으로 아버지가 살아계신 것을 느낄 줄 알고, 호흡 소리에서도 아버지의 숨결을 느낄 줄 알고, 피부의 감촉에서도 무한하신 아버지의 자비의 손길을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깊고 높으신 당신의 자비로운 심정 가운데 흠뻑 잠기어 당신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천진한 어린이와 같은 심정을 지닐 수 있는 한 시간을 갖지 못한 저희들이 얼마나 슬픈 자들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타락의 한을 품고 역사를 되돌아가야 하는 복귀의 운명길을 가고 있사옵니다.

지금 이 땅 위에는 상처를 입은 불쌍한 사람들이 살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아버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먼 거리에 살고 있사옵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엉클어진 환경과 사정 속에 자기 자신을 이끌고 본성의 세계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공인을 받고 이 땅 위에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으로부터 저희가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의 깊으신 내적 심정의 인연 가운데 영원한 아들딸의 인연으로 다시 맺어져 거기서부터 새로운 분부와 약속 아래에서 재출발하여야 할 저희 자신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오라고 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저희는 아직까지 미천한 자리에서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에 가지 못하는 슬픔어린 불쌍한 자신이 될 때가 얼마나 많사옵니까? 이것을 확실히 깨닫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살고 있는 이 자리가 아버님과의 인연을 생각할 때, 본래 저희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고 느끼면 느낄수록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자리에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슬픈 역사를 책임지시느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배척을 받고 저버림을 받던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 찾아오셔서 저희로 말미암아 다시 슬픔을 당하실까 염려하여, 저희의 갈 길은 저희가 다 가겠으니 아버님은 기다려 달라고 외치고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효(孝)를 행하여 그 몸이 지치고, 충(忠)을 행하여 그 마음이 쓰러지더라도 아버지의 높고 귀한 뜻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의 흩어진 마음과 몸을 바로잡아 모심의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본연의 아버지 앞에까지 가기에는 먼 거리에 있는 자신임을 획실히 깨닫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먼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렀사옵고, 아버지와 관련맺을 수 없는 탕감의 내용을 앞에 놓고 아버지를 부를 때가 많았사오니 먼저 아버지를 부르기 전에 저희 각자에 주신 바의 탕감노정을 헤치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짊어진 십자가의 길을 헤쳐 나가야 되겠으니, 싸워야 할 싸움을 위하여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될 저희 자신들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높고 귀하신 그 이름과 거룩하심을 저희들이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에 숨어 있는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 각지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고 머리를 숙이고, 아버지 앞에 엎드려 아버지를 부르는 자들이 있사오면 사랑으로 품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깊고 높으신 그 사랑의 품에 안기겠다고 몸부림치며, 하늘의 충신 효자가 되겠다고 아버지 앞에 간곡한 사연을 갖고 외치는 자들이 있사오면, 아버지, 그 자리를 그냥 지나치지 마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그 자리에 발길을 멈추시어서 아버지의 깊고 높으신 자비의 심정으로 위로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이 때에 있어서 저희들에게 맡겨진 책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때는 언제나 저희들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람과 이 땅 위의 인연과 이 땅위의 모든 물질적인 요건은 저희 인생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할 수 있으나, 하늘의 뜻과 하늘의 섭리의 내용은 언제나 저희와 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한 때를 놓치게 되면 영원히 탄식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인간인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한 때를 맞기 위하여 충효의 도리를 다하고, 준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것을 흠모하면서 마음 다하여 아버지를 부르는 자들을 축복하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세계에 널려 당신의 뜻을 중심삼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무리들 위에도 당신의 위로와 권고가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최후의 싸움터에서 승리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저희들의 어깨에 짊어지워져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아버지 뜻을 향하여 직행해야 되겠습니다. 선봉에 서서 원수들을 물리치고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아버지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불길을 밝히어 어두운 세계에 등대의 사명을 다하고 소금의 사명을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통일교회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피어린 길이 있었는가를 그들이 체휼하게 하여 주옵소서. 눈물의 길, 슬픔의 길, 억울하고 분한 길 가운데서 참기 어려운 고통을 무릅쓰고 찾아 나온 이 길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여서, 민족과 세계의 모든 탕감의 내용을 붙안고 아버지께서 참아 나오신 보람있는 이 길을 저희들이 상속받아 책임을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아버지 품에 안겨 드릴 날을 위하여 저희들은 달려가겠사오니 능력을 같이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저희를 통하여 해원성사의 한 날을 바라고 있사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현재의 모든 전부를 아버지 뜻 앞에서 영광의 기점으로 삼아 길이길이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 드리고, 참된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21-96
말 씀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소망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21-96
역사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는 나
어떤 존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는 존재도 동기가 있어야 존재하며 그 동기 앞에 결과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더구나 인간의 시조가 타락한 이후 6천년이란 역사과정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자기 개인의 존재 이면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세계면 세계에도 그런 인연이 엉켜져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는 것이 인생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인생길을 가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자기만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처리되고, 자기만을 중심삼아 모든 행복의 여건이 해결될 수 있느냐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 문제의 새로운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에 엉켜진 사연을 해결지어야 되고, 시대의 사연을 중심삼아서 완전히 해결짓지 않으면 역사가 소망하는 자리, 혹은 시대가 소망한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정적인 위치에 있는 내 자신이 과거와 현재의 입장을 완전히 해결짓지 못하면 역사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요, 시대의 인연을 중심삼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역사는 지금까지 하나의 소망, 다시 말하면 어떤 목적을 향해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시대도 하나의 소망의 세계를 향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바라던 소망과 현재에 바라는 소망이 차이가 있다면 우리 인생에서 새로운 행복에의 출발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에 소망하는 목적의 기점을 `나’ 하나에서 어떻게 해결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1-97
동기와 목적을 잃어버린 현세대
그러면 역사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인류가 출발하던 과정에 어떤 동기가 있었느냐?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출발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동기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목적을 상실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그 목적을 향해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목적을 향해 나온 인류역사가 정상적인 길을 따라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대 시대에 따라서 돌고 도는 곡절의 노정을 거쳐나온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떠한 곡절로 인하여 그러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기도 잃어버렸고, 방향도 잃어버린 떠돌이 인생의 행로를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국가마다 바라는 목적이 전부다 달라진 것입니다. 갑이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목적과 을이라는 나라의 입장에서 추구하는 목적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한 개개인이 바라는 목적과 국가가 바라는 목적의 기준과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내 자신이 과연 한 목적을 향할 수 있는 정상적인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면 하나의 목적을 향할 수 있는 동기도 상실했고, 목적을 향하는 방향도 잃어버린 인간이 현재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또 목적의 출발을 볼 수 있는 그 동기, 목적의 방향을 갖출 수 있는 그 동기란 무엇이냐? 그 동기의 내용과 방향을 완전히 결정짓지 않고는 현재의 시점을 중심삼아서 전세계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출발의 동기가 있으면, 그 동기가 출발될 수 있는 방향은 오늘날 `나’를 중심삼아 추구하는 내용이 되어 있는 것을 확실히 해야 됩니다. 이 역사적인 동기를 갖지 않고, 이 방향을 일치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 할진대는, 우리가 아무리 이 땅 위에서 성공을 하고, 아무리 그 나라가 부(富)하고 발전하여 영광과 행복의 자리에 있어서 세계에 자랑할만 하더라도 그것들은 전부다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흘러가 버리면 그것은 역사적인 인연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21-98
타락 인간에 있어 제일 중요한 인연 ― 동기의 인연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의 인연’이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인연의 기점이 어디가 되어야 되고, 인연의 방향이 어떻게 나가야 하며, 인연을 통할 수 있는 목적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이 인생행로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동기가 무엇이며, 그 방향이 어떻게 가야 되며, 그 목적이 어디에 가서 귀결될 것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그 길에 들어서게 될 때, 비로소 이 인연을 중심삼고 보여지는 하나의 관(觀), 그것이 세계적이며, 전체적인 분야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그런 동기와 방향과 목적이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의 기점에 서서, 오늘날 세계적인 인연이 나와 더불어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결정된 자리에 서지 않고는 세상의 어떠한 행복이 찾아오더라도 그 찾아온 행복과 나와는 하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찬양하는 그 어떤 분이 온다 하더라도, 그분과 나와는 인연맺을래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우리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인연이 무엇이냐? 목적을 찾아가는 그 인연의 길도 중요하고 현재에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기가 될 수 있는 인연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심 동기란 무엇이고, 또 동기의 인연이란 무엇이냐? 이것을 해결하지 못한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치고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방향이 달라지게 되고, 그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목적하는 그 목적점도 다른 결과의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생 동안 자기가 갖고 싶은 것 갖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소원을 풀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본연의 소원,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오늘이 있기까지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자리에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연 중에 제일 중요한 인연은 동기의 인연인 것입니다.

21-99
하나님의 뜻과 소원과 목적을 잃어버린 인간
오늘날 전세계에 살고 있는 30억 인류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타락된 인연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 인연은 어떤 인연이냐 하면 이탈하려는 인연입니다. 통일되고 규합하려는 인연이 아니라, 분립하려는 파괴적인 인연입니다.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인연이 아니라, 상실하는 인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리를 통해서 아는 거와 마찬가지로, 타락된 우리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뜻과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할 때에, 오늘날 우리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과 목적이 어떤 다른 세계와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아담 해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담 해와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가 아버지의 인연과 일체화될 때에, 거기에는 참다운 사람이 빚어 나오는 것이요, 참다운 가정이 빚어 나오는 것이요, 참다운 국가와 세계가 빚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태어났으며, 무엇을 중심삼고 가야 될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가야 될 것이냐? 이것은 하나님을 빼놓고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빼고는 동기 없는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동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거두어질 수 없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건물을 지을 때는 설계자가 설계한 설계도에 따라 건축을 하게 됩니다. 설계의 원본도 없이 지어진 건축물은 설계자가 목적한 건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개체를 두고 볼 때 본연의 인연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찾아 돌아가야 됩니다. 선의 방향을 찾아가야 됩니다. 선의 나라를 찾아 가야 되고, 선의 종족을 흠모하고, 선의 우주, 선의 세계를 동경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동경하는 세계를 어디 가서 찾을 것이냐? 그 세계는 개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가장 근본되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도 하나의 몸이 있을 것이요,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몸이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활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활권에서 부모와 자녀의 인연이 출발하였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사회 구성이 벌어질 것이고, 그 사회 구성을 중심삼아 종족 혹은 국가의 형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전체 목적을 중심으로 국가면 국가의 목적, 세계면 세계의 목적이 갈 수 있는 방향의 기준이 서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맨 처음의 기점이 어디냐 하면, 그 기점은 여러분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21-100
하나님을 중심삼고 삶의 동기와 목적을 정해야
그러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서 얼마나 몸부림쳐 나오신 하나님인가를 알아야 되겠고, 어떤 방향을 통해서 나오시고 있는 하나님인가를 알아야 되겠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 하시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것을 확실히 알지 못하면 아무리 수고를 한다고 해도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활동하는 대원들이 와 있지만, 그 활동도 역시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동기를 갖추지 못한 자리에서는 각도가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념과 목적, 다시 말하면 동기와 목적은 반드시 직행 과정을 통하여서 관계를 맺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긋나면 동기를 일치화시킬 수 없고 동기가 어긋나도 목적을 일치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서로 직행선상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가고자 하는 직행선이 있을 것이고, 몸이 가고자 하는 직행선과 생활이 가고자 하는 직행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신의 마음이 가야 하는 책임이 있을 것이고, 몸이 가야 하는 책임이 있을 것이고,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 자신이 생활을 통하여서 세계로 가는 직행선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정이 다르다고 해도 가는 그 목적점은 반드시 직행되어 세계적인 목적에 결부할 수 있는 초점에 일치화시켜야 되는 것이니,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전체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 본연의 인연을 중심삼고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 가운데 여러분 각자의 마음을 두고 보십시오. 여러분의 하루 생활 가운데 마음에서 어떤 불화가 벌어지면, 이 모든 것이 왜 그런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내 자신이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하나님이 가지신 소망을 갖고,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곳으로 향할 수 있는 생활적인 인연을 가졌느냐 하는 것을 매일 매일 반성해야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행동은 하늘적이냐 땅적이냐 둘 중의 하나로 결정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이 호흡하는 데에 요구되는 최고의 산소 호흡량이 있습니다. 그 양을 완전히 흡수하느냐, 덜 흡수하느냐에 따라 그런 환경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 몸이 건강해지느냐, 나빠지느냐 차이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이며, 자연적인 법칙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개체의 생활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과 몸과 생활의 방향이 언제나 일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자체가 그렇게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마음의 방향과, 몸의 방향과, 생활권의 방향이 일치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 그런 자신이 되어 있습니까? 이런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하는데, 오늘날 인간들은 돈이니 명예니 하며 지금까지 그릇된 입장에 처해 있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과 몸과 생활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길은 이미 제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본래 가야 할 길과는 상관도 없는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기필코 우리는 다시 그 자리로 복귀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인간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타락한 인간의 제일 폐단이 무엇이냐? 그것은 타락한 악주권을 중심삼은 이념을 중요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낳아준 부모와의 인연과 형제 친척 등 세상의 혈통을 중심삼은 인간적인 인연을 초월해야 합니다. 또한 환경과 인연 지어진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내가 설계한 대로 몸을 자유자재로 운전할 수 있는 자신이라고 자부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이 가시는 엄청난 그 동기와 방향과 목적의 세계에 들어가서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재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억제할 수도 있고 취하기도 할 수 있는 내 자신임을 스스로 자부하지 못한다 할 때는, 현재 입장에서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과 일치할 수 없습니다.

21-102
종교의 길―참된 인연을 되찾아 가는 길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타락한 세계의 인연을 그냥 그대로 뒤집어쓴 채 그 인연을 그냥 그대로 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그렇게 살아서는 하나님이 가시는 동기의 길, 하나님께서 가시는 목적의 길을 우리가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마음은 늘 슬픔을 느끼고, 내 자신은 가면 갈수록 내적으로 고독해지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지녀야 할 하나님의 인연을 망각해 버리고 현실적인 인연만을 대하며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과정에서 타파할 수 있는 한 때를 닦기 전에는 우리는 참된 인연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 터를 닦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합니다. 종교의 길은 자기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찾아지는 형제와 가정 종족 국가야말로 역사가 찾아오던 이상적 국가와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역사가 소원하던 소망의 실체들이 된다면 이 시대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중심적인 위치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악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악한 세상이 언제나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소원하는 중심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개인 가정 종족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뒤넘이치는 돌고빗길을 되풀이하면서 나왔던 이스라엘 역사노정을 대신 걷기 위하여 나온 것이 오늘의 수많은 종교 단체입니다. 그러니 이 종교 단체를 규합하여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추어 이를 끌고 나가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이와 같은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의 이념과 목적의 세계로 정착할 수 있도록 수수작용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는데 개인주의적이나 국가주의적인 욕망을 가지고는 세계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념을 세우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감행해서 세계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같은 입장에서 같은 목적과 같은 가치의 내용으로 같은 영광의 자리를 동경하고 모색해야 비로소 세계는 하나의 형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로 그런 자리가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연의 목적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들은 어디서 출발했느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출발했습니다. 6천년의 긴 역사를 중심삼고 출발한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과 국가가 한 기점을 중심삼아 가지고 노력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뜻 가운데서 만났다가 떨어지고 어떠한 국가는 지금 여기서 만났다가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든 어떤 국가든 다시 만나야 할 하나의 기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중심삼은 메시아 재림의 한 날입니다. 그날이 바로 국가 전체의 소원의 날이요, 수많은 종교의 소원의 날이요, 수많은 개인의 소망의 날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상봉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쩌다가 자기에게 시기가 오면 자기 마음대로 방향을 취해 가지고 만날 것이냐? 아닙니다. 이것을 만나려면 반드시 그 원줄기를 타고 가야 됩니다. 거기에 합류하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오랜 역사과정을 지켜보면 역사적 인연을 같이해 나온 민족은 흥했습니다. 설사 망했다 하더라도 섭리의 흐름을 탔기 때문에 밀려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왔습니다. 섭리의 방향을 잘 잡았기에 타락한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길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섭리가 땅에 밟혀 망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사를 보더라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했을 때는 망해가다가 다시 하나님이 지시하는 길에 일치될 때는 다시 흥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제아무리 훌륭한 국가라도 섭리에 일치될 수 있는 방향을 가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이러한 자리에 일치되고자 역사적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역사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을 두고 볼 때에, 예수를 중심삼은 그 인연은 우연한 인연이 아닌 역사적인 인연입니다. 그것은 또한 이 시대의 현실적인 생활방향에 일치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안 나와 가지고는 이세계를 구할 수 없습니다.

21-104
선조들의 공적을 상속받으려면
그럼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어떤 길을 걸어 왔느냐? 통일교회가 나오기까지에는 수많은 개인의 길, 가정의 길, 종족의 길, 민족의 길, 국가의 길을 거쳐 나왔습니다. 통일교회의 섭리적인 출발이 나타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통일교회가 나타날 날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역사를 끌고나온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당대에 자기가 잘해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역사적인 선조들의 상속의 인연을 통해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우리 조상들이 역사의 방향을 잡아 하나님이 올라가면 올라가고 내려가면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충신이라면 나라가 흥할 때에도 충의 도리를 해야 되지만, 망하는 자리에서도 충의 도리를 다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에 따라 변하면 충신이 될 수 없고 효자도 될 수 없습니다. 충효의 원칙이라는 것은 불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세워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인연됐다는 사실은 여러분의 일생 중 몇 년 혹은 몇 개월을 중심삼아 가지고 인연된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역사적인 자리요, 소망의 자리입니다. 실제로 내가 살아갈 기점이 될 수 있는 역사적인 인연을 거친 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일생에서 그 역사를 보지도 못했고 그 인연을 갖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역사적 인연에 연결될 수 있느냐? 그리고 또 어떻게 역사적인 인연을 가지고 통일교회와 연결될 수 있느냐? 그것은 작으나 크나 여러분의 마음의 방향에 조상들의 마음의 방향이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같이 방향을 맞추려고 노력한 그 기준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즉 얼마만큼 가깝게 같이하려고 노력하였느냐에 따라 통일교회에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러분이 처해 있는 이 시점은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라는 어느 개체에 의해 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인연을 통해서 되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내 자신은 잘못되어 있고 또 될 대로 되어 있지만, 그 역사적인 인연 가운데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역사의 목적을 향하여 충성을 다하던 그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공로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공로의 인연으로 오늘날 여러분이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위치에 있는 여러분은 역사적인 인연을 받은 내 자신으로서 오늘의 자신이 생활 가운데 역사적인 인연을 빛낼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그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역사를 움직인다고 했으니 그것을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통일교회 교인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를 따라가는 사람들 전부다 하나의 형태만은 아닙니다. 이 다음에 세계의 많은 나라를 수습하려면 천태만상의 형태를 갖추어야 합니다. 직업을 놓고 보더라도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각 사람의 기점은 천태만상입니다. 이처럼 그런 차이에 해당할 수 있는 그 분야에 충성하던 역사적인 선조를 가졌으면, 그 선조의 인연을 상속받아서 역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통일교회는 하늘의 운세권내에 들어가게 되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받아 가지고 여러분이 새로운 터전을 조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선조들이 지금까지 수고한 그 터전을 상속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처해 있는 여러분 개체를 두고 볼 때, 그 개체는 열 몇 살이라든가 혹은 스무 살이라는 한계내에 있는 개체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 시대권내에 한계선을 제정해 가지고 이루어진 개체가 아닙니다. 반드시 역사성을 통해서 이루어진 개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지나가는 이곳은 일생을 길이 빛낼 수 있고,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귀중한 초점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하게 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지만 잘못하는 날에는 이것을 완전히 빼앗겨 버린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인연 가운데에서 복귀노정을 통하기 위해 나온 것이고, 선조들 또한 공을 들여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접선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그 접선할 수 있는 때가 왔는데, 그 방향을 내 앞에서 바로 잡아야지 남을 따라가서 접선을 하려고 하다가 기준이 안 맞게 되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또한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기까지 수고한 영계의 선조들이 얼마나 간절하고 손에 땀을 쥐는 것 같은 초조한 자리에서 바라보겠습니까?

21-106
역사의 부름 앞에 선 사람의 사명
이 역사적인 부름과 사명 앞에 서게 된 여러분은 그저 흘러가는 인간들과 같은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 개인은 수천년 역사를 거쳐 나와 이제는 하나님과 상봉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가 완전히 하나 되어 이 길에 남아서 싸우며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날을 고대했던 것이 역사적인 소원입니다. 그 초점에 연결될 수 있는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얼마나 부모를 괴롭혔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자칫 잘못하여 실수하게 되면 전부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회에 출전한 마라톤 선수를 보면, 그 선수는 일등을 하기 위해 골인 지점을 향하여 민족의 위신을 걸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골인하는 그 순간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즉 승리의 결실은 훈련의 고통과 힘의 안배와 인내, 그리고 지금까지 겪었던 슬픔이라든가 기쁨의 온갖 정성이 투입된 종합된 결과로써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 순간에는 딴 생각은 없습니다. 거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뛰는 발걸음에는 국가의 새로운 명성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삼천만이면 삼천만의 환희의 깃발이 펴나오는 것입니다. 골인하는 순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승패의 결정이 벌어지고, 그 순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기는 국민은 더더욱 단결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가 확실히 이 시점을 완전히 장악하고 압도할 수 있으려면 여러분과 같이 아무 힘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래 그저 그렇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정성들여 가지고 쟁취한 우승품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온갖 충성을 다 들여서 얻은 그 보물이라는 것은 생명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여러분이 역사과정을 거쳐나온 인연의 결실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의 중심체, 새로운 세계를 출발시킬 수 있는 창건의 기사가 될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느냐? `나’라는 자체를 생각해 볼 때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나’라는 자기 자신을 부정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과 모든 원한의 가지를 제거시켜 버리고, 새로운 가지와 새순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한 환경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리에 선 사람들은 본연의 인연을 갖추어야 됩니다.

21-108
선을 중심삼고는 망하는 자리가 곧 흥하는 자리
선은 이 땅 위에서 밟혔지만 설움의 때가 뒤집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선은 언제나 밟히고 언제나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만, 그러한 환경에서 악의 조건이 아무리 크더라도 끝내는 그것을 이기고 영광의 자리에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죄악된 세상을 바라볼 때, 이 악한 세상을 당장에 휙 들이밀어 버릴 힘이 없으면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이 생겨나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외적으로 보면 그저 먹고 자고 오고 가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사람은 별다르냐 하면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인데 뭣이 다르냐? 역사적인 인연의 동기와 사랑의 근원에서 형성된 인격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종교의 차이, 민족의 차이, 국가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요즘 판매대원들을 선생님이 보면 영 마음이 침체된 것 같습니다. 아침에 나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들어오면 힘이 안 나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팔기 위해서는 어떤 무엇이라도 붙들고 끝장을 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일이 많다 보면 정신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다가 밤까지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생각과 선생님의 생각은 얼마나 다르냐? 시작과 끝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현지에 나가서 지시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앞으로 없애야 합니다. 그것을 선생님이 가만 놔두면 영계에서 징계할 것입니다. 동기와 방향이 일치되지 않으면 목적이 왔다갔다 합니다. 목적의 중심점이 보이지 않을 때는 끝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목적하는 기준에 있어서 단지 방향이라는 것은 인연을 통해서 나를 유도해 갑니다. 가는데 있어서 그 동기가 따르게 되고 방향이 제시되어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향을 잡으려면 `내가 방향을 잡으러 하니 그 동기를 일으켜 주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모순과 고충이 벌어집니다. 사회가 그렇게 될 때는 사회의 고충이요, 국가가 그렇게 되면 국가의 고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미국이 세계를 호령한다고 해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고립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통일교회가 하는 일이 천리(天理)라고 자랑하더라도 통일교회의 원칙적인 노선에 부합되고 일치되지 못하면 고립되는 것입니다. 그 고립된 자리에서 자기를 수정하지 못하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게 될 때는 친구도 부모도 전부다 떠나는 것입니다. 본래 망하는 자리는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망할 때 하나님도 안 계셨습니다.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참부모도 잃어버리고, 참된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결국 내 생명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흥하는 자리는 다 찾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악을 놓고 보면, 악은 망하는 자리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자리이므로 가지 말아야 하며, 선은 잃은 것을 다 찾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에 나쁜 행동을 할 때에는 뒤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양심이 나를 떠나는 것입니다. 양심이 가책을 받으면 `야 이놈아, 나 떠난다. 떠난 다음에 너는 나하고 상관없다’라고 하며 양심이 떠납니다. 이와 같이 양심을 잃어버리는 자리에 서면 망합니다.

선을 중심삼고는 망하는 자리가 곧 흥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누가 반대하면 무한한 힘이 찾아옵니다. 나라가 흥하는 자리라면 아무리 내가 죽게 될지라도 가야 됩니다. 천지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흥하는 것이요, 전부다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으면 천지가 찾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21-109
역사의 주류에 접하라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선생님이 지도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위해서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느냐? 그것은 바로 `역사의 주류에 접하라’는 것입니다. 이 인연이 세계를 창건하는 것이지, 여러분이 그 세계를 창건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궤도에 따라 돌고 있습니다. 천만 바퀴를 돌고 돌아도 거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궤도에 있기 때문에 태양도 돌며 지구도 돌게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의 인연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인연은 큰 것입니다. 여기 우리들은 6천년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본연의 고향을 찾아가고자 하는 목적이 일치하여 모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원리는 무엇을 알려주는 것이냐? 본연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는 어떤 인연을 가졌느냐? 동기의 인연과 출발의 인연이 같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는 도중에 사람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신 것은 사랑하는 아들딸인 인간을 위해 지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의 이념에서 볼 때 주체적인 입장에 있습니다. 생각을 중심삼고도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것을 선언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목적적인 실체로 지었습니다. 목적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모든 만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물같이 결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만우주가 결속된 자체와 하나님이 완전히 결속되어야 했던 것이 인간과 하나님의 근본 인연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과 일체적인 인연 가운데 서지 못하고 타락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21-110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셨느냐? 모든 출발의 동기 자체가 사람으로 되어 있고, 그 창조목적 자체도 사람에 귀결되어 있는데 그런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어떻게 되었느냐? 타락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다가 실수하면 그 실수한 것을 누가 책임지느냐? 말한 사람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일하다 실수를 했다면 그것도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생각한 사람이 책임지고, 실행한 사람이 있으면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창조 이상을 중심삼고 사람을 창조했고, 그것이 하나님이 이상했던 창조물이라 할 때 하나님이 이상했던 창조물이 안됐다고 해서 그 실수를 창조물이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조물이 변화가 되어 원하던 것이 안 됐다고 해서 그 물건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책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책임져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원하셨던 하나님은 슬픔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슬픔의 하나님이 되셨으니, 하나님의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되겠습니다. 슬픔을 중심삼고 하나 되지 않으면 기쁨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과 나와는 반드시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기쁨이 어디서 나오느냐? 내가 앞서서 나올진대 기쁨의 동기가 될 수 있느냐?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야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슬픔의 관문을 통과해야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슬픔의 기점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출발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이 가는 길은 역사적인 슬픔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타락한 인생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기쁨은 선의 목적인 창조이상 실현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그 기쁨의 요건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슬픔의 요건을 뚫고 나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연결되어 인류가 비운을 당하였던 이 슬픔의 요건을 파고 들어가서 해체해야 됩니다. 그래서 비통할 때는 `하나님의 슬픔이 이랬구나’하고 느껴야 됩니다.

이 슬픔은 하나님 자체로는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슬픔의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스스로는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만약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역사를 해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야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슬픔이 시작됐기 때문에 인간이 선두에서 이 슬픔의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고는 하나님은 슬픔에서 벗어나실 수 없는 것입니다.

21-112
통일교회 원리의 위대성
그러면 이 땅 위에서 도의 길을 책임져 왔던 도인들과, 앞으로 끝날에 오시는 주님이 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 그들도 땅 위에서 기쁨으로 출발 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만민에게 주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과 일치된 가운데 역사과정의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던 슬픔, 즉 하나님을 슬프게 했던 그 슬픔의 동기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폭발적인 동기를 찾아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슬프게 한 것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중심삼아 역사를 붙들고 새롭게 출발하는 세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슬픔을 제거하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된 힘은 그 어떤 악의 세력들이 합하는 힘보다 강한 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새로운 폭발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이니 여기에 태풍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이러한 길을 따라 나가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소망의 기점은 소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의 고개를 통해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입장에 서 계시기 때문에 그 슬픔의 길을 우리도 가야 됩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잘먹고 잘살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은 우리와 근본이 다르고 내용이 다릅니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서부터 싹트느냐? 어떤 국가가 흥할 수 있는 동기는 어디서부터 생기는가 보십시오. 문예부흥이 어떻게 해서 출발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새로운 이념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류사관을 세우는 데 있어서 모체가 될 수 있는 동기에 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동기에 접했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문화적인 간격을 메우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그때 부정하는 그 기준이 부정된 외적인 환경보다도 더 강하게 될 때는, 그 외적인 환경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문예부흥이 출발한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슬픔을 풀지 아니하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이 타락한 이래 지금까지 슬픈 역사를 엮어 나왔기 때문에, 슬픈 역사의 모든 인연을 직접 찾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로부터 6천년 역사에서 그 인연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의 하나님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의 원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슬픔이 있으면 다 싫다고 도망갑니다. 그 어떠한 슬픈 내용의 사연보다도 더 처참한 하나님의 슬픔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 원리입니다. 세상 같으면 슬픈 일이 있으면 전부다 회피하고 도망가지만, 통일교회의 원리는 이 슬픈 곳을 지나가고자 하는 것이 모체입니다. 세상에서는 슬픈 일이 있으면 전부 피해 가려고 하는데 원래 인간은 그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슬픔을 알면 알수록 실제에 있어서의 통일교회는 강력한 힘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비참한 내용을 알면 알수록 그것을 풀려고 하는 힘의 원천은 무한히 폭발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동기가 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가 지닌 위대한 힘입니다.

21-113
복귀의 길은 슬픔의 길임을 망각하지 말자
그러니 우리는 먼저 슬픈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습니다. 역사의 어느누구보다도 더 슬프신 하나님, 슬픔의 대왕이 되신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 그 슬픔을 밟고 올라설 때 내 마음에 강한 기쁨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그때에 새로이 맞이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쓴것만을 먹다가 단것을 조금만 먹어도 굉장히 달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 대해서 무엇을 원하실 것이냐? 여러분이 하나님의 고통을 먼저 느껴 가지고 아들의 위치에 서서 복귀노정을 걸어 나간다면, 그 본향의 폭발적인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은 부끄러움 없는 한 날을 중심으로 사랑의 역사를 베푸실 수 있는 것입니다. 본연의 순수한 입장에서 슬픈 고빗길을 밟고 올라가 하나님을 부르는 것보다, 태산이 흔들리고 뼈와 살과 세포가 약동할 수 있는 자리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기준이 있습니다. 동기를 들고 나온 그 자리는 사탄이 절대적으로 침범할 수 없는 완전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완전한 복귀의 기운이 우러나는 기점과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해 나가는 것입니다.

슬픔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슬픔의 장벽을 헤치고 올라가야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그 슬픔을 자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면 영계에 가서 슬픔의 경계선권내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되면 기쁨과는 영원히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인연의 주체인 하나님의 슬픔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슬픔을 품은 아들딸로, 슬픔의 역사를 엮어 나온 우리들은 지금까지 슬픈 길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개인적으로 맺힌 장벽, 국가적, 세계적으로 맺힌 장벽을 타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것을 망각하고, 개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날에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종족의 담을 헐어 종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책임을 못 하게 될 때 망하는 것이요, 종족은 민족에 대한 모든 슬픔의 요건을 제거시키기 위한 그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국가 세계 천주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 할 때, 오늘날 통일교회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노정에는 슬픔의 길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21-114
우리가 참아 나온 이유
지금까지 우리들이 싸워 나온 전쟁은 나라에 대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나라에 대한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온 것입니다. 나라에 대해 싸우면서도 번번히 몰리고 졌습니다. 지는 것을 꾹 참고 극복해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더 큰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어라, 밟혀도 가만히 있어라’ 한 것입니다. 이렇게 못난 짓을 해 나온 것은 사랑을 중심한 싸움을 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참았던 것이며, 마지막 결판의 마당에 책임질 수 있는 때를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보하면 양보할수록 그런 내적인 모든 힘을 투입시켜 가지고 어느 한 기회에 한꺼번에 터뜨려 버릴 수 있는 길을 다짐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몰리고 쫓긴 것은 그 이후에 올 수 있는 하나의 국가적인 조건, 혹은 더 넓은 분야의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즘에 통일교인들은 `예전에 그랬었지. 예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싫다’ 하면서 전부 주저앉아 있습니다. 때가 와서 실제로 세계적인 싸움을 해야 할 판인데 불구하고, 옛날 동네 싸움하던 것만 생각하고 `아이구 그때가 좋았지’ 이러고 있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해요. 그러한 여러분들 뒤에는 국가도 있지 않고, 세계도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슬픔의 모든 장벽을 헐어 버려야 됩니다. 개인의 슬픔보다 가정의 슬픔을 제거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하고,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종족을 세워서 민족을 구해야 하고, 민족을 희생시켜서라도 국가를 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삼천만이 전부 희생되더라도 세계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을 요구하느냐? 개인적인 승리를 요구합니다. 개인적인 승리를 요구하는 것은 가정적인 승리를 원하기 때문이고, 가정적인 승리를 바라는 것은 종족적인 승리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종족과 민족과 국가의 승리를 바라는 것은 세계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하늘의 섭리가 바쁜 것입니다.

21-115
세계 복귀를 위해서는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한없이 슬픈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을 가르쳐 주어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으로 함께 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으로 출발한 역사를 짊어지고 복귀를 향하여 개인적인 슬픔, 가정적인 슬픔, 종족적인 슬픔, 민족적인 슬픔, 국가적인 슬픔, 세계적인 슬픔, 천주적인 슬픔을 지고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가 외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려면, 온 세계에 벌어져 있는 슬픔의 요소를 전부 없애야 하는데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 그 책임을 미국이 못 지면 한국이 져야 되겠습니다.

오늘날의 월남전쟁을 비롯한 세계의 심각한 사건을 중심삼고 미국 국민의 여론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한다고 해서 주권자가 후퇴하면 망합니다. 세계는 어디로 가느냐? 인류 역사가 후퇴한 뒤에 어떤 방향으로 수습될 것이냐? 이것을 갖추지 못하면 그때는 정말 망합니다. 소련 공산당도 그렇지 못하면 망합니다.

그러면 흥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가시는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고 일치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세계적인 모든 슬픔을 품고 세계를 대신해 자기들이 상처를 받고, 세계적인 슬픔을 책임지고 죽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개의치 않고 나설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민족이 설 땅이 없어 세계에 흩어지게 되더라도 그 민족이 남긴 사상이 남아 있는 한 그 사상으로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천운이 열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민족 문화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에 세계적인 기독교 국가라고 권위를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슬픔의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민족이 못 되면, 이 민족의 주권과 소망은 상실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이 아무리 국가의 주권을 갖지 못하는 처참한 자리에 있더라도, 거기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세계의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국민성을 지니고 있으면 그 민족은 승리의 세계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한 승리의 세계를 개인이 고대하는 것이고, 가정이 고대하는 것이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외로운 목자의 생활을 하더라도, 혹은 방랑하는 종족이 되어 몰림을 받으면서 슬프고 한스런 생활을 하더라도 앞으로의 슬픔의 세계를 책임지겠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민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천년 만년 축복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민족은 결국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 문화도 포기하고 민족의 주권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잃어버려도 좋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서 편협적인 것과는 절연해야 합니다. 그런 관(觀)을 가진 무리가 있다 할진대, 그 무리는 기필코 어느 한 날에 결정적인 때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아이고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죽게 되었다. 제자들이 배반해서 죽게 되었다’ 혹은 `온 인류를 대표한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 못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늘 땅이 책임을 못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임은 하늘과 땅의 책임이요, 한 시대만의 책임이 아니라 역사적인 책임입니다. 하늘 땅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생애는 외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책임을 다 저버리고 다시 닦으셨으니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땅이 짊어진 책임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마26:39)’ 할 때의 이 기도의 뜻은 주어진 한계내의 행복을 고대한 것이 아니라, 한 생애권내에서 누구보다도 세계 복귀를 바라는 마음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와 우주를 위해서 고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뜻’과 `하나님의 뜻’을 보면 예수님의 뜻은 어떠한 한계권내에서 고대하고 싶어하는 뜻이지만 하나님은 그 한계선을 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세계를 염려하시는 아버지를 보게 될 때, 그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 세계로 가야 할 고난의 심정을 품었음을 알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예수님은 절실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냐? 세계적인 복귀입니다. 세계를 살리려 했는데 죽음이 가로놓여 못 가게 되었기에 ‘내가 못 가더라도 후대 사람이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인연을 맺어 주겠다’고 하는 선포식이며 선언식을 한 곳이 바로 십자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일면 패자의 입장에 섰지만, 하나님의 심정의 주체가 되어 고난과 슬픔을 점령하는 제일인자가 됐습니다. 그러면 슬픔을 점령할 수 있었던 기준이 무엇이냐? 새로운 희망의 세계로 출발할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통일교회는 동기의 인연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슬픔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냐? 하나의 방향, 해방과 통일의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기 때문에 목적이 둘이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이 추구하는 그 길은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확실히 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의 기점을 같이해야지 이것을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것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는 것도 그런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과 여러분은 어쩌면 갈라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서 그 기준이 맞지 않고는 함께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21-118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드려야 할 통일교인
모든 것은 원리대로 되어 있으니, 원리를 중심삼고 보면 시작과 중간과 끝 이 3점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섭리는 동기와 목적이 직선상에 있습니다. 직선의 한 중심을 현재로 보면 왼쪽은 과거요, 오른쪽은 미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가 과거를 움직일 수 있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고, 이 두 세계의 힘을 통합할 수 있어야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여러분한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기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동기가 슬픔이었기에 기쁜 역사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픈 역사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출발이 슬펐다 해도 언젠가는 이 슬픔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알겠어요? 이 슬픔이 끝나려면 여러분의 신앙이나 생활하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나아야 됩니다. 이 슬픈 세계의 멍에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지만 이것이 풀려지는 날에는 해방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각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은 지금 하나님이 6천년 동안 품어오신 원한과 슬픔의 심정을 중심삼고 출발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정을 통감할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6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슬픔을 여러분 일신에 가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6천년 동안이나 이어 나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부자의 인연, 즉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슬픔은 아들의 슬픔이 되는 것이요, 아들의 슬픔은 아버지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의 기쁨은 아들의 기쁨이요, 아들의 기쁨은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슬픈 아버지가 가는 길에 앞서서 우리가 슬픈 길을 수습해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민족을 해방해야 되는 것이고, 아시아를 해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뜻 앞에 해방시키고 미국을 해방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외의 것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제일 먼저 피맺힌 하나님의 슬픔을 풀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현재 시점에 있는 우리는 지금 어떠냐? 통일교인들은 동기와 목적을 가진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안 가는 것은 왜 그럽니까? 거꾸로 되길 바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동기를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원인을 찾고 인연을 찾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슬펐던 인연을 찾고 슬픈 인연을 찾아가는 목적을 이루어야겠습니다. 그것을 우리 통일교인들이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러분은 불쌍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타락한 세상에서 선을 찾아가는 길은 슬픈 길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여기 그렇지 않은 선이 있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통일교회내에 자리잡고 앉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가짜’입니다. 자기 생활을 중심삼아 가지고 `뜻이구 뭣이고 적당히 삽시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가짜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을 가만히 살펴보면 가짜가 많습니다. 요전에 판매대원에게 돈을 준다고 하니까, 그 돈을 중심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짜입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움직이면 그만한 사람밖에 못 됩니다. `이것은 내가 활동하는데 있어서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활동한 것의 몇 곱절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공적인 신뢰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것을 알고 이런 생각으로 활동을 해야지, `요거 하면 얼마나 돈을 버느냐’하는 생각은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활동이 힘이 들어서 그런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병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까는 두 사람만 남겨 놓고 전부다 약을 먹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인연맺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는 길은 슬픔의 길입니다. 또한 그 길은 어렵고 위험한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넘게 될 때는 지난 일이 얼마나 생각나겠습니까? 언제나 생각날 것입니다.

21-120
복귀의 길에는 모두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잠잘 집이 있고 먹을 것이 많으면 그것을 가지고 우쭐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것이 대부분 작전상 필요한 것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총애 받는 길입니다.

그리하여 개인 가정 사회를 수습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수습해 가지고 세계로 넓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가야만 더 큰 실천의 터전이 생기는 것이요, 불쾌한 마음이 생기게 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그런 마음을 갖고 일하면 낙망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예」

그리고 우리의 인연이라고 했으니, 우리끼리는 특히 느끼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아내도 필요한 것이요, 남편도 필요한 것입니다. 또 젊은이들도 필요한 것이요, 늙은이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만민의 여론이야 어쨌든 공통적인 꼴을 갖추는 일을 해 나왔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필요없다고 했다가는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이 많은 사람을 전부 다 외면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나라의 국민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이 많은 사람을 싫다고 하는 사람이 되면 그 민족의 전통성을 중심삼고 볼 때, 민족성을 팔아먹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정합니다. 인륜도덕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인륜을 부정할 때는 끝날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런 현재의 사조에 장단을 맞춰 춤춰서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진실로 영원히 긍정할 수 있는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스승은 스승대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뜻에는 나이 많은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 많은 사람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을 중심해서 그런 일을 해 나갈 것입니다. 선생님이 얘기해 준 것이 사실이라면 하여간 죽지 말아야 합니다. 오래오래 남아지는 날에는 우리 식구들 전부 다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나이 많은 사람들도 전부 필요하단 말입니다. 젊은 사람들 방에 들어가 보면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이 선생님의 이맛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래에 정신이 해이해진 것 같아서 선생님이 가끔 아는 것도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알아요? 나이가 많아 기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그 민족 정신이 흐려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21-121
사랑하는 방법
우리가 모인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는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계도 `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전체가 `나’를 중심삼고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움직이려면 누구를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는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데는 애기도 필요하고, 어른도 필요하고, 아들도 딸도 다 필요합니다. 하나의 종족을 중심삼고 다 필요합니다.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즉 감옥에 있는 죄인도 필요한 것이고 죽어가는 사람도 그 세계에서는 다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나서 나를 사랑하자’ 이것이 하늘 가는 길입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나서 자기 가정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이 교육받을 전통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념으로 살아야 합니다. 밥을 먹더라도 동네에 밥을 굶는 사람이 있는 지 없는지 알아보고, 굶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고 난 연후에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의 마음입니다.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여러분이 보따리에 여러 가지를 넣어서 가져오면 선생님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공의의 뜻을 중심삼고 생활했습니다.

그 이상 험한 자리에서 학문을 추구하고, 죽음의 자리에서도 자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하늘이 살려 주는 것입니다. 또 몸부림치면서 `선의 주인공이여, 선의 본향이여, 선의 그날이여 어서 와서 나를 해방시켜 주소서’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르짖는 그 마음에 하늘이 함께하십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선생님을 자기 중심삼고 대하게 되면, 세계 인류가 선생님을 사모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사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받는 천지간에도 서로 맞지 않고는 사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민족을 저버리고 한국에 와서 한국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그들 역시 대견하게도 하나님의 뜻을 품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자꾸 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가면 갈수록 사랑의 보따리는 자기 뒤에 태산같이 끌려옵니다.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가 서로 뜻이 통할 때 서로 사랑하겠다고 하는 그 심정은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으니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만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이렇게 몸부림치는 심정에 사무쳐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 그 뒤에는 위대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일시켜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선생님이 생각하지 않아도 세계 사람들이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경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다져온 이 터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기도에 공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고, 또 기도하는 사람들을 앞으로 붙들어 줄 수 있는 개인적인 발판이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획기적으로 이룬 일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이 우리의 인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1-123
하나님을 중심한 인연의 세계를 창건해야 할 우리
여러분들은 사랑이 식어졌다면 누가 재교육을 시켜야 하느냐?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슬픔을 망각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아들입니다. 영원히 같이할 수 있는 부자의 인연이나 지금 우리는 그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이 실감이 나요, 안 나요? 아버지가 수고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왜 수고 하시는지를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아버지가 가는 길은 개인이 가는 길이 아니고 가정을 지나서 민족 국가 세계를 복귀하기 위한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을 품기 전에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품기 전에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고는 민족을 품을 수 없습니다. 또 민족을 사랑하지 못하고는 자기 가정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노정을 가는 데에 있어 우리들은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놓고 볼 때 통일교회 교인들은 개인이지만 통일교회 하면 전체를 말합니다. 이러한 전체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이 오랫동안 수많은 전쟁과 역사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들 사이의 역사적인 담을 헐어 가지고 상봉한 인연이 통일교회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심판을 받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막힌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탄과 싸워서 남아진 입장입니다. 이제 이 남아진 무리들이 제2차 작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작전이 뭐냐? 그 작전은 나라와 세계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준비하고 훈련해야 할 도상에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하고 식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인연을 규명한 우리의 인연이 순수한 인연임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확실히 알고 나면 죽을 새가 있겠어요? 돈은 아무리 많더라도 싫지 않을 것입니다. 돈을 벌려면 통일교회가 세계에서 일등이 되도록 벌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길이 생겼으니 두 다리로 버티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이 싫어하는 일이 있더라도 과감히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벌어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위하고 국가를 위해 쓸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하여 실적을 거두어야겠습니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여러분의 고달픔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 고난을 이겨내면 하늘의 영광과 자기와의 인연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의 세계를 창건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인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사람의 눈은 보게 되어 있고, 코는 호흡하게 되어 있고, 입은 먹게 되어 있습니다. 다 그렇게 인연 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인연의 세계를 찾아 세워야겠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중심한 인연의 세계를 창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21-124
기 도
아버님, 슬프디 슬픈 당신의 심정을 중심으로 이 천지간에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으로 서로 상봉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얼마나 고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에는 너무나 천박한 모습들이옵니다. 거룩하고 놀라운 당신의 이름을 무분별하게 `아버지! 아버지!’ 불렀던 자신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를 알지 못하던 시절에 목이 메어 아버지를 부를 때와 마찬가지의 자리로 인정하여 용서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장성한 자는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높고, 귀하고, 거룩한 불멸의 꽃으로 피어오를 수 있는 그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이름 가운데에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당신의 실체가 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자식을 사랑하고 싶고, 자식을 품고 싶은 마음으로 슬픈 마음을 달래시며 영계를 배후로 하여 눈물지어 나오신 아버지시라는 것을 알아, 그 모습을 그리워하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정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거룩한 자리, 역사의 한의 고개를 넘어오기에 수고한 아들을 상봉하는 자리에서 그 아들을 대하여 `아무개야’ 부르는 아버님의 그 음성이 얼마나 자비롭고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벅찬 말씀인가를 알게 하시옵소서. 그 자리에서 저희와 아버지는 부자의 인연으로 상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통일이라는 이 두 글자가 얼마나 거룩하고 이상이 높은 글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처럼 높고 거룩한 통일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곳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오늘 그 통일이 어디서부터 벌어진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의 마음속 심정의 깊은 골짜기에 속속들이 젖어 있는 슬픔의 갈피를 외면하지 않고 서로 나눌 수 있으며, 아버지의 그 마음 전체가 내 마음으로부터 위로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통일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의 고비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해결한다는 소망에 벅찬 마음이 그 슬픈 마음보다도 커야만 그 자리에서 통일의 인연이 싹트고 인연은 맺어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지금껏 몰랐나이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의 마음에 새로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시옵소서. 또한 통일을 위한 하늘의 수고도 비참하였지만, 통일교회가 남길 수 있는 인연의 터전도 비참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십여 성상의 역사의 인연을 남긴 통일교회이지만 그 비참한 역사의 배후에는 수천년 역사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교회의 지금까지 나타난 역사를 더듬는 사람보다 그 배후에 깊이깊이 숨어 있는 역사를 느끼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통일교인이라는 것을 저희들이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현실에 합류해서 통일교회의 이름만으로 움직이는 그런 통일교인이 아니라,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참고 나온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서 통일교회의 소망을 지니고 통일교회와 인연을 가진 교인들이 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인들보다도 앞서 가야 할 것이 현재의 시점인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서 알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겠사오니, 그 앎이 끝날에 나를 심판한다는 것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상 이 인연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영계에서 통일교회의 가치를 알고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온갖 충성을 다하여 보호하고 협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상 사람들의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지상의 사람들은 너무나 미약하고 부족한 철부지들이옵니다. 그들이 바라 나온 소망의 실체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도리어 그들 앞에 슬픔의 조건을 넘겨씌우는 두려운 자리에 서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본연의 권위와 본연의 자세를 갖춘 당신의 아들딸들이 된다면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은사가 언제나 저희 가운데 임할 것이요, 아버지의 자비와 아버지의 권위 그리고 아버지의 거룩한 음성이 저희 생활 가운데 넘칠 것이로되, 그러지 못하는 저희들의 움직임을 당신이 긍휼히 보아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슬픔을 상속받아 기쁨의 인연을 폭발시킬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을 바라볼 때, 이 민족에게 슬픈 사연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삼천리 반도에 슬픔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내외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내적인 면에 있어서는 정신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아버님의 슬픔과 접하고, 외적인 문제는 거짓된 물질 세계의 슬픔과 접하여, 내외의 모든 슬픔을 일소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충신 열녀가 어디 있으며 효자 효녀가 어디 있습니까? 내적인 입장에 있는 슬픔의 아버지를 위로하고 우리 앞에서 슬픈 곡절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죽음 길을 책임진 자들이 충신이요 열녀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님의 내적인 슬픔과 세상의 외적인 슬픔 그 가운데 서서 아버지를 위로하고 땅을 부정할 수 있는 충신 열녀 효자 효녀가 되게 하소서. 현재의 슬픈 세계를 부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당신의 참다운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는 인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은 개인의 십자가, 가정의 십자가,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십자가를 전부 짊어졌기 때문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서로 위로하고 서로 나누어야 할 우리들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님을 모시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이 거룩한 책임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 위에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용사인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오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놀라운 이 천적인 인연을 완전히 상속받고 앞으로 다가올 희망의 모든 권한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 당신의 제단에 모아 주시옵소서. 아버님을 흠모하고 기도하는 정성된 모든 마음 앞에 천배 만배 갚아 주시옵고, 공의의 목적을 따라서 죽음의 길, 희생의 길을 다짐한 자들이 있사오니, 아버지여! 그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언제나 그들 편에 서시어서 민족의 정기와 교회의 전통적인 내용을 남기는 데 있어서 하늘이 기억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높고 귀하심이 저희 생활과 저희 전체에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부탁하올 때,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