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2: 생애에 있어서 귀중한 청년기

생애에 있어서 귀중한 청년기
1968.10.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21-82
생애에 있어서 귀중한 청소년기
[말씀 요지]

청소년기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시대이다. 목적을 세울 결심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이 시대이다. 그러므로 청소년기는 생애의 분기점이다. 그래서 18세기를 전후해서 인생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시대는 인생에 있어서 교차로와 같은 시대이다. 이 교차로에서 확실히 깨닫고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일관해서 무난히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일관해서 무난히 갈 수 있는 사람은 개척하는 사람이다.

인생에는 자기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 여러분들은 복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을 복귀의 길을 추구하고, 복귀의 사연을 탐구해야 한다. 복귀의 길을 잘 가면 우주와 내가 관련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역사의 한을 새로운 영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최고의 노력을 해서 인생의 교차로를 만나야 한다. 그 교차로는 각자의 서러움을 청산하는 길이며 나아가 역사적인 서러움을 청산하는 길이다.

우리가 출발한 이 길은 반드시 목적점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출발시의 속도보다 지금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

이 길을 잘 가기 위해서는 순간밖에 안 되는 짧은 인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조급한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이 변치 말아야 한다. 이 길을 목적지까지 도착하여 승리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출발한 사람도 지금까지 없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

한국은 모든 것의 전통을 세워 그 전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은 제1차 7년노정으로 인하여 탕감의 한 노정을 세웠다. 그러므로 이제는 땅 위의 한 기간을 넘어설 수 있는 시기에 도달했다.

나는 어떠한 나라, 종족, 부모의 자식이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에겐 그동안 소망의 세계, 나라, 부모, 형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소망의 세계, 나라, 종족, 가정, 부모, 형제를 가지게 되었다.

성(成)은 창조 이상의 완성을 의미한다. 즉, 우주 전체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래 완성의 기준을 세우는 시기는 인간 시조가 타락했던 연령인 17, 18세 때이다. 그래서 성화 20대를 중심삼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다. 미래의 완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년 시기의 사람이다.

선생님은 청소년기에 소원의 표준과 생애의 목표를 세우고 결심하였다. 선생님은 어느덧 청년기와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슬픈 것은 청소년 시대에 완성하여 아버지를 부르지 못한 것이다. 즉,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와 같은 시절에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이 슬프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정통을 인계받은 자로서 직행해야 한다.

제1차 7년노정은 장년과 청소년을 위해 간 길이다. 제2차 7년노정은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가 행진하던 것과 같은 노정이다. 그러니 씩씩하게 나아가야 한다.

뜻을 모르는 학생들과 스승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나를 생각해야 한다.

옳지 못한 것은 굴복시켜야 한다. 힘에 대항하여 힘 아닌 것으로 굴복시키려면 몇천 배의 수고를 해야 한다. 어떠한 환경도 수습하여 정복할 수 있는 충효의 절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출발하고 확고부동한 행보(行步)로써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원리는 교통 순경이요, 원리의 목표는 선생님의 생애다. 성심성의껏 목표를 향해 가면 표시등은 나타난다. 여러분 각자는 자기의 처해진 환경에서 역사적인 출발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의 씨를 뿌리고 가꿔야 한다.

서양의 선진국 사람들은 복귀를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은 역사와 처지로 인해 복귀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갖추어서 출발했기 때문에 신앙의 본향이 되고 조국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직행하지 못하면 본향의 젊은이, 조국의 형님들이라고 할 수 없다.

나 자신이 외로우면 주변의 학생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학교를 함락하고 `나는 승리했다’고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거울 앞에서 자기의 얼굴을 바라 볼 때마다 `아무개야, 너는 뜻 앞에 출발한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있느냐’고 물어 봐야 한다.

`성화’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여러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고, 버틸 수 없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 도와주소서’ 해야 자주성 있는 사람이 된다.

통일교단에서 의분심을 품은 참된 아담 해와가 되라. 그렇게 되면 세계의 복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은 교단이 된다.

여러분들이 다 같이 결심해도 기준이 각각 다르다. 본성의 물음을 듣고 본성의 부름을 받아 역사적인 출발을 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30년이면 30년 기간동안 변치 않고 꾸준히 나가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여 나간 사람이 승리한다. 그러려면 일편단심, 전심일력, 일심통일해야 한다.

선생님은 하나를 붙들면 죽기내기로 해낸다.

선생님 16세 때, 13명의 식구가 있었는데 여덟 식구만 남고 일년 동안 다섯 식구가 죽었다. 역사과정에서 이런 탕감을 해 나왔다.

한번 결심했으면 죽을 때까지 변치 말고 나가야한다. 필사의 각오를 갖지 않는 사람은 승리할 수 없다. 죽음을 두려워해서 결코 승리의 영광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원수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를 위해 복을 빌어 주면 거기에서 남아지는 것이 있다. 예수님의 결심은 비통한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었기에 하나님과 더불어 행복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맞으면서도 성공하는 길이다. 기독교가 순교의 종교가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악한 곳에서도 반드시 참고될 만한 것이 나온다. 망하는 자리에서도 반드시 무엇인가 나온다. 사탄에게서도 반드시 무엇인가 나온다. 여기에서 무엇인가 나오기만 하면 자신이 틀림없이 잡아 쓰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상대적 위치는 왔다갔다할 수 있지만 중심 위치는 변하거나 왔다갔다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나무의 종대가 그렇다.

비료(거름)가 그러하듯이 모든 것은 간접적인 의미에서 다 좋은 것이다. 선생님은 모두를 제물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바치자는 것이다.

해방후 선생님은 단 일 분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사탄의 흑암이 밀려오는 것을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선생님이 기도하지 않아도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은 환경에 끌려가지 말고 환경을 끌고 가야 한다. 출발을 했으니 끝까지 힘차게 가라.

실력은 한 면만을 비추지만 정성은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면을 비출 수 있다.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세우려면 최저의 자리에 뿌리박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교차로를 다 타파하고 직행길을 달리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