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3: 하나님의 내면세계

하나님의 내면세계
1968.10.14 (월), 한국 종묘

21-73
하나님의 내면세계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선하고 거룩하며 높고 넓고 크고 한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의미의 하나님에 대한 관입니다.

타락한 세계를 책임지고 복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높고 귀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혹한 배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수고로운 사정을 오늘날까지의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에게도 호소해 본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렵고 슬픈 일을 무한히 당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신, 넓고 크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 이상 참은 사람이 없고, 역사노정에서 제아무리 고생한 사람도 하나님만큼 고생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추측도 할 수 없는 내적인 고통을 지니시고도 인간 앞에 그것을 표시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짐을 품고 신음하면서도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 극복해 나오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 고개를 넘고 넘어서 새로운 복귀의 섭리를 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슬픈 이면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알고있는 원리의 내면에 비추어진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은 극히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모시고 나가는 우리는 아직까지 고생이니 수고니 어려움이니 하는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더러 얘기를 하라고 하면 지금까지 고생한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협회장이 말한 것과 같이 영계에 간 인간들도 모르고 있고,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내적인 세계의 사실을 중심삼고는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고생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 고생은 하고 나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중심삼고 그것을 해결짓게 되면 그 일도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생은 자기 일대에 결과를 볼 수 있는 고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지만 그것을 해결 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통일교회가 탕감복귀를 해드린다고 하여도 내면적으로 충격받았던 그 근본 마음의 상태는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해야만 합니다. 자녀의 입장인 우리 인간들이 위로해 드린다고 해서 위안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는 자기의 자식이 위로하는 말에 위로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위로하는 것이 부모의 본심을 근본적으로 위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조건 삼아 위로 받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지금까지 그런 입장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생각하여 볼 때에 고생이니 어려움이니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생하기 전에 더 큰 고생을 하시고, 우리가 슬픔을 당하기 전에 더 큰 슬픔을 당하시며, 오늘의 이 슬픈 세상을 다시 구해야 될 책임을 지고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어려운 입장에 계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좋은 의미의 하나님보다도 그렇게 어려운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 그 높고 크고 깊은 내면을 알겠다고 노력하는 입장에 서서 나가면 모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으로 제시하고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그런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우리 자신들은 견뎌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의 갈 길을 마련해 주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중의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중의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자인하면서, 이것을 앞날의 갈 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는 하나의 동기로 삼아 주기를 부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