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8: 하나님의 내정을 알자

하나님의 내정을 알자
1968.09.09 (월), 한국 전본부교회

21-68
하나님의 내정을 알자
[말씀 요지]

인간은 타락으로 하나님을 잃고 피조만물을 잃었다. 고로 인간을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부모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어떻게 찾을까? 부모를 어떻게 만날까? 자기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 되어서 만날까? 이것이 문제다.

그 동안 하늘과 동반한 무리들의 수고가 있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이 국가를 세움으로써 하나님과 상봉하여 역사적인 수고를 상속받아야한다.

단계를 넘어갈수록 내정적(內情的)인 심정에 그 역사성이 가해지기 때문에 점점 더 어렵다.

첫째 개인으로서 가정복귀할 때 가정적 탕감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뜻과 완전히 일치될 수 없다. 종족 민족 국가 세계로 넘어가는 데는 반드시 탕감이 있어야 하고 희생이 필요하다. 국가적인 경제건설에도 정신적인 희생과 육체적인 희생과 물질적인 희생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 역사 전체가 수고했다. 한 사람 찾는 데도 무한한 역사적인 수고가 있었는데 오늘날 통일교회를 세워 가정 종족을 세워 나가게 된 것은 이 이상 하나님이 기쁠 수 있는 일이 없다.

① 가정 ② 아들딸 ③ 친척 ④ 민족의 단계로 거쳐 나간다.

폭발적인 심정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 습관적인 생각 그대로는 안 된다.

아담 가정의 아벨과, 노아 가정의 함이 실수했기 때문에 역사가 저끄러졌다. 다시는 그 걸음을 안 걷고, 오히려 그 실수를 심판하고 효자 효녀의 기준을 세우겠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인 모든 실수를 내 실수로 받아들여 회개하고 회복하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내려온 내정적인 심정을 상속받을 수 없다.

일생 동안 회개해도 다할 수 없는 수고의 노정을 하나님은 걸어오셨다.

인간은 사특(邪慝)하다.

주체와 대상이 거꾸로 될 때는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 하나님을 주체로 모시고 내가 상대적인 위치에 서야 된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주체로 서서 하나님을 대상으로 대하려 한다.

그동안 들어왔다가 배반하고 나간 사람들의 것을 뒤에 들어온 사람들이 재탕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선생님의 그 동안의 내정적인 소원을 상속받아야 한다.

부모는 자기가 난 아들딸을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던 것처럼 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모양, 어떠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이러한 내정을 상속받지 않고는 전통이 상속되지 않는다.

하나님과 상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걸어온 과거의 역사를 알고, 현재의 사정을 알고, 미래의 소망의 기준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봉할 수 없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나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갈라져서 2중의 십자가를 지고 싸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종족도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흩어지고, 국가고 다른 국가 혹은 세계를 찾기 위해 다시 흩어졌다. 축복받은 부부도 단둘이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야 한다. 죽어도 가다가 죽고, 헤어져도 가다가 헤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얽혀 있어야 한다.

부자의 관계는 어떤 무엇으로도 깰 수 없다. 원자탄으로도 깰 수 없다. 절대로 깰 수 없고, 헤어질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관계다.

하나님을 맞이하고자 할 제, 그럴 수 있는 전체 통일교회 식구들이 되어 있는가? 그럴 수 있는 내 자신이 못 되어 있으면 중심자의 명령에 죽고 살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한다. 가정도 그 대표자의 명령에 죽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고, 종족도 그 대표자의 명령에 죽고 살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한다. 마음과 생활이 거기에 기준을 두고 일치점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표가 하나님의 내정과 일치된 길을 걸으면 전체가 그러한 것으로 대해주신다.

앞으로 통일교인이라면 선생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선생님과 상관이 없다. 절대 복종하게 되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자면 같이 산다는 공동적인 생활감정을 가져야 한다.

일체의 관심이 교회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같은 충격과 같은 아픔을 느껴야 한다. 자신은 자격이 안 되지만 대신자에 의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혜택을 받는다.

탕감조건에 순리적인 길은 없다.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뜻이 좋아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

`내가 이모양 이 꼴이 됐구만’ 하지 말라. 그런 인식은 화가 된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인정되고 보증 받을 수 있는 길이었느냐가 문제다. 고생과 곡절이 없는 순탄한 노정을 걸은 사람의 생활보다 복잡한 곡절의 노정을 걸은 사람의 생활이 더 깊고 넓은 맛이 있다.

선생님도 터전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언제 내가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라고 기쁘게 자신있게 대한 순간을 가져 보았느냐?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허둥지둥한 때를 가져 보았느냐? 하나님은 허둥지둥한 걸음을 많이 걸으셨다.

미친 사람같이 혼자 쑹얼쑹얼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부가 외아들을 낳다가 죽인 그 심정 그 이상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미친 사람과 같이 원수의 아들딸을 데려다가 친아들보다 더 사랑하기에 힘쓴 하나님의 내정을 알아야 한다.

체면과 위신, 먹고 배고픈 것을 느끼고 할 여지가 없어야 한다.

자기 자식이 앓는 데 신경쓰는 것보다 뜻의 움직임에 대해서 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안 되어 있거든 절대 복종이라도 해라.

선생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면 밤잠이 안 와서 한밤중에라도 뛰어와서 물어 보고 갈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모심으로 구원받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언제나 그렇게 산다. 촌분도 방심하지 못한다. 애기를 품을 때도 쉴 때도 그 마음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다 한국에 와 살려고 한다. 선생님의 소식을 빨리 알기 위해서.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 대한민국의 땅만 짚고 살아도 영광이라는 것이다.

내 몸을 치고 나서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탕감의 노정을 걸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