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86 to 21-315: 새로운 자각

새로운 자각
1968.12.08 (일), 한국 전본부교회

21-286
새로운 자각
[기 도]

아버님, 이 아침은 안식일이옵니다. 자녀들과 더불어 아버지의 영광에 접할 수 있게 하시옵고, 높고 귀하신 당신의 인격에 접할 수 있게 하옵시며, 당신의 소원성사의 승리적 일념을 저희들이 체휼할 수 있는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여,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당신의 성업이 저희 인류의 시조로 말미암아 이렇듯 유린당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슬픈 일이 겹치면 겹칠수록 저희들은 당신 앞에 면목없는 자들이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의 책임을 아버지께서 홀로 지시고, 역사노정을 그렇게도 비참하게, 그렇게도 처량하게, 그렇게도 외롭게 걸어 나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사옵니다. 이제 이것을 안 저희들은 힘을 다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 찬양해야 되겠사옵고, 정성을 들여 아버지의 귀한 심정을 본받아 저희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되겠사옵고, 당신이 지금까지 개척해 나오신 개척자의 희생의 길을 저희들이 고스란히 상속받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어린 것들이옵니다. 저희들은 부족한 것들이옵니다. 저희들은 이 땅 위에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던 무리였사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거룩한 자리에 동참시켜 주신 아버지 앞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옷깃을 여미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적마다 당신의 모든 수고를 상속받을 수 있고, 깊은 심정의 흐름을 통하여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날들을 맞이할 적마다 아버지의 깊은 심정에 안겨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명령을 받기를 고대하는 어린 적자(嫡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이 많사오나, 저희들은 서자의 자리가 아닌 적자의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수천만세에 슬펐던 아버지의 한 맺힌 가슴을 헤쳐 놓고 저희들이 모든 사연을 털어 놓아 아버님의 슬펐던 한을 상속받아 가지고, 수천만세에 얽혀 있었던 원수에 대한 모든 원한을 완전히 해원성사해 드리는 당신의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자녀를 찾으시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셨나이까? 그 자녀를 찾으신 후에는 가정을 찾기 위해 수고하셔야 할 노정이 남아 있고 가정을 찾은 후에는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찾아야 할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외로와 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따라가야 할 자식들인 저희들은 아버님의 슬픈 표정을 바라보고 슬퍼할 줄 알아야 되겠사옵고, 아버님께서 처하신 입장이 얼마나 딱한 사정이라는 것을 체휼해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아버지를 위하여 태어난 아들딸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사오니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위하여 봉헌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봉사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맞고,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억울함을 당할 줄 아는 효자의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효녀의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기나긴 역사 과정을 거쳐오면서 당신이 찾아 나오신 가정이 어디에 있는 가를 찾아 나왔습니다. 당신이 찾아 나오신 본연의 민족 형태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나왔습니다. 당신께서 바라시는 하나의 국가 형태, 만우주의 상속권을 가지고, 아버지의 높으심을 찬양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나왔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일체의 소원이 이 불쌍한 민족을 통하여, 불쌍한 이 한국 땅을 통하여 아버님의 거룩하신 뜻이 돛을 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범하게 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배후의 모든 수고의 공적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을 진정 감사를 드리옵니다.

저희들이 편안한 마음을 갖고, 저희 생애의 모든 문제와 인생에 있어서 고민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추앙하는 마음을 가질 때마다,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그 배후에 아버지의 슬픈 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것을 일깨워 주시어서 저희 자신이 당신의 분부를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와 하나의 생명의 원천으로 삼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어린아이의 마음과 몸으로써 또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써 세상의 어떠한 사적인 것도 없이 피어나는 미소를 그냥 그대로 담뿍 담고서 아버지를 향하여 반겨드리지 못한 불충 불효의 모습이었던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앞에 나타나기에는 상처투성이의 모습이요, 아버지 보시기에 끔찍하고 아버지께 원한을 쌓이게 하는 원수의 후손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의 웃음은 도리어 당신 앞에 비소의 결과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저희들이 하늘을 대하여 움직이고 요구하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심정 가운데에 또다시 한의 조건을 남기지 않기를 원하지만, 먼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신이 되어 있다는 것을 무한히 슬퍼할 줄 아는 무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제의 역사에 아버지께서 슬퍼하셨음을 알았사옵고, 오늘의 사정이 이땅의 원수의 침노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하늘의 슬픔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버님께서도 어찌할 수 없고, 다만 저희 자신들이 여기에 생명을 걸어 놓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책임만이 남아 있는 것을 절감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저희들은 누구를 위한 것이옵니까? 저희들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까? 전부다 널려진 역사를 수습하고, 벌어진 세계를 수습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역사를 창건하는 자로서, 아버님을 대신한 대역자(代役者)로서 여기에 모였다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가 있는 것도 아버지를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는 것도 아버지를 위하여 사는 것이요, 저희가 생명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음도 오로지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임을 아는 당시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를 향하여 연약한 손길을 벌리고,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에 지칠 정도로 간절한 사모의 마음을 갖고, 그 마음속에 울리는 아버지의 심정 앞에 굴복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자녀들이 오늘 이 아침에 이곳을 향하여 경배를 드리고, 이곳을 향하여 당신의 은사를 고대하고, 참부모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면서 당신의 가깝고 귀하신 사랑을 찾고 있사오니, 그들의 마음 앞에 위로와 행복의 심정을 아버지, 갖다 주시옵소서. 하늘을 잃어버리고는 견딜 수 없어 몸부림을 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고, 자기의 모든 세포가 선을 대하여서는 하나의 마음에 화하고, 악을 대하여서는 슬픔의 표정을 짓고 거기에서 자동적으로 빠져 나올 줄 아는, 아버지, 당신의 선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은 선으로써 결속해야 되고, 악은 악으로써 처치하지 않으면 안 될 이 엄숙한 사명을 짊어지고, 삼천리 반도를 하나의 활동무대로 삼아 이 나라 이 민족의 생명을 구하는 구도자의 사명을 책임지고, 제2의 메시아적 사명을 완결하겠다고 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하여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개의치 않고 산제물로서 바칠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제 1968년도 다 기울어 가고 있사옵니다. 흘러간 과거의 역사를 반성할 적마다 슬픈 마음이 앞서는 것을 억제할 수 없음은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이제 아버님 앞에 책망받고 슬퍼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를 위하여 살고, 아버지의 뜻을 세우겠다고 몸부림치던 모습을 기억하시옵니까?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있사오니 실제 저희 자신이 그렇지 못함을 발견하게 될 때는, 하염없는 슬픔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오랜 역사의 날들, 역사의 노정들은 아버님의 슬픔과 더불어 흘러갔습니다. 앞으로 저희 앞에 다가올 역사적인 하나의 시간과 하나의 날과 하나의 해를, 기쁨의 시간, 기쁨의 날, 기쁨의 해로 맞이하여 아버님 앞에 돌려 드려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고, 또 이것을 분별시켜 승리한 가치의 날들로서 아버님 앞에 거두어 드려야 할 책임이 통일의 역군들에게 있다는 것을 진정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죄악된 세상에서 이미 손을 털고 가진 것 없이 나선 이 몸은 아버님 앞에 적신(赤身)으로써 봉헌하기를 자초했사오니, 당신 앞에 저희 자신을 끌어내리고 다시는 저희 자신을 중심삼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앞에 맡긴 몸이오니 분부하신 땅, 분부하신 곳, 분부하신 사명을 위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가겠다고 맹세 할 수 있는 당신의 거룩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숱한 슬픔의 역사는 흘러갔나이다. 한국땅 삼천리 반도에도 당신의 자녀인 통일가 역군들의 눈물 자국을 재촉하던 슬픈 날들도 많이 흘러갔나이다.

이 가운데 저희가 잊을 수 없는 한 지역의 슬픔이 있었으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당신의 딱한 사정을 안고 몸부림쳤던 일들이 저희의 생활에 있어서 자극이 되고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가진 것이 저희들의 지난 날의 생애에 보람인 것을 알고 있기에 오늘 이 슬픈 길을 자초하고 나섰사오니, 저희들의 발걸음이 아버지를 향하여 반대되는 자리에 서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향하여 전면적으로 일보 일보 가일보 접근하여 아버지의 심정을 찾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와 상봉할 때, `아버님’하고 부르는 말과 더불어 잃어버린 전부를 다시 찾고 희생시킨 전부를 부활시킬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될 수 있는 한 날이 저희들 앞에 올 것을 바라며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 설 때 아버지께서 `야! 아무개야, 왜 이제 왔느냐’하고 불러줄 수 있는 그 한마디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안 될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저희 스스로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의 목전에 나타나게 될 때, 아버님께서 묵묵한 얼굴로 바라보시는 슬픈 자식들이 결코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나섰사오니,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를 향하여 일보 일보 가일보 전진하는 당시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역사를 창건해야 되겠사옵니다. 이 역사는 저희를 위한 역사가 아니옵고, 하늘땅을 위한 역사요 시대를 위한 역사요 후손을 위한 역사라는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흘러가는 모든 물줄기도 대양을 향하여 흘러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희 통일교회의 역군들의 심정의 방향도 아버님의 넓고 크신 대해(대해)와 같은 심정으로 그 방향을 취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움이 많고 부대끼는 곡절의 흐름 가운데 있어서 아버지의 인연을 따라 한곳으로 가는 마음만은 변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곳을 향하여 충성하고, 한곳을 향하여 결속시키고자 하는 그 마음만은 변치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의 모든 전체를 아버님께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다시 한번 축복하여 주시옵고, 세계에 널려 있으면서 만나기를 고대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이 아니면 그들과 저희들이 인연 맺을 수 없는 것이요, 한국과 수많은 세계 국가가 인연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한국은 외롭고 불쌍한 나라요 세계에서 낙후된 민족이옵고 낙후된 나라로서 끝날 것이었사오나, 아버지가 세우신 인연을 통하여서 세계가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 강토를 그리워하고 한국 사람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있는 스승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평화의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옵고, 그들이 그러한 겸허한 마음을 간직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높고 귀하신 당신의 거룩한 뜻을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사옵고, 아버지께서 세계의 국가 국가에 거룩한 터전을 마련하고 거룩한 승리의 발판을 확대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아버지 앞에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저희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도의 길에서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들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묶어 주시옵고, 앞으로 이 민족 앞에 다가올 모든 어려움을 제거시키옵고, 당신의 뜻에 일치되지 않는 모든 것을 제거시켜 주시어서 당신의 뜻 앞에 귀일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수많은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 아버님 앞에 전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간절히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21-292
말 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세상에 살고 있는 그 어떠한 사람과 다르고, 역사적인 그 어떠한 사람들과도 다르다는 새로운 자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성현들은 그들 자신 스스로가 자각하고 깨달아서 부모면 부모,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자기 나름대로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가정에서부터 종족 민족 국가 혹은 세계에까지 반영시켜서 발전시키고자 하였던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스스로 어떤 역사적인 선지선열들도 갖지 못한 느낌과 각오를 하고 새로이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21-293
새로운 이념의 나라와 세계
내 한 개체, 또는 우리의 한 단체를 두고 볼 때에 과거 현재 미래의 과정을 거쳐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종 민족 국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이 바라는 개인 가정 족족 민족 국가 세계를 볼 때에, 진정으로 그 이념을 중심삼은 개인, 그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 족족 민족 국가 더 나아가서 세계는 어떻게 형성될 것이냐? 아직 우리 통일교회 앞에는 그러한 부분의 분야가 실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의 한 백성으로서 살고 있지만, 이 나라, 이 세계가 우리가 지향하고 우리가 바라는 나라와 세계가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와 이 세계는 타락한 세계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하여 타락권내의 생활을 청산짓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계가 아닙니다. 이것을 넘어 가지고 새로운 이념의 나라와 세계를 향해서 나가야 됩니다. 그 나라와 그 세계가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이 바라는 나라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야 됩니다.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해야 할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라를 바라기 전에 민족을 이루어야 됩니다. 새로운 자각 가운데 있는 민족이 없으면 그러한 나라가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민족을 바라기 전에 새로운 자각 가운데 선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종족이 없으면 민족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종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념 위에 선 가정이 없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기 위해서도 역시 새로운 자각을 한 개인이 있어야 됩니다. 개인이 자각하지 않고는 새로운 개인이 될 수도 없고 새로운 가정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자각을 한 개인이 있어야 되겠고, 그 개인을 통해 하나의 가정이 형성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그 가정을 통하여 종족, 그 종족을 통하여 민족, 그 민족을 통하여 국가와 세계가 형성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고차적인 체계가 내 개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새로이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21-294
자각된 자들의 할일
역사적인 어떤 성인 현철과 비교해 볼 때, 혹은 한번 맞부딪쳐 보게 될때, 우리가 자각하고 결의하고 자각된 좌우의 확실한 결정이 날 수 있는 실체가 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를 창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자각한 입장과, 과거의 성인 현철들이 어떤 사상과 이념과 그 생활권을 중심삼고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의 만민을 사랑하겠다고 스스로 새로운 분야를 타개하고 어려운 환경을 밀고 나가야겠다고 자각한 애국지사들의 입장을 비교해 볼 때, 그와 같은 역사적인 인물 앞에 우리가 져서는 역사를 수습할 수 없고, 시대를 창건할 수 없고, 새로운 출발을 볼 수 없음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상의 자리에 서야 됩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습니다. 예수와 공자와 석가 같은 분들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부패상과 사회의 환경을 보고 그 반대되는 입장에서 홀로 그 사회를 밀어내고 청산 짓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가 갖고 있는 사회관, 자기가 갖고 있는 국가관, 자기가 갖고 있는 가정관과 인격관을 중심삼고 새로운 분야를 세우려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모험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거기에 비례한 새로운 자각을 갖고 나타났던 성현들 앞에는 모험이 개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 국가의 모험이 개재되어 있고, 민족 종족의 모험이 개재되어 있고, 개인적인 모험이 개재되어 맞부딪쳐 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모험 가운데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몰려오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몰려오는 그 환경을 넘을 수 있는 자각된 심정을 중심삼은 인격을 가져야 됩니다. 아무리 처참한 환경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그 인격이 변하지 않아야 그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자각적인 존재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성현들은 생명을 걸고 환경과 싸워 나왔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자각된 입장에서 그런 길을 가셨다면, 예수님 자신이 자각된 입장의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가졌느냐? 못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내심적인 소원의 국가와 세계는 가졌지만, 실체적인, 현실적인 국가 세계는 갖지 못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다시 와 가지고 내심적으로 바라던 소원의 나라와 세계를 현실적으로 실체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생활권내에 자랑할 수 있는 나라와 세계를 가지고 이 땅 위에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시 와 가지고 그 사명을 완결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자각된 우리는 어떤 입장에 있느냐? 예수님이 바라시던 소망의 세계를 상속받아 가지고 현실적인 사회 기반 밑에서 우리 생활권내에 이것을 성사시킬 수 있는 책임을 져야 하고, 예수님 이상 자각된 신념을 가지고 그 세계를 대하고, 국가를 대하고, 민족 종족 가정을 대하고, 개인을 대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예수님이 바라시는 소원의 천국을 이 땅 위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 통일교회 자체가 온 우주, 혹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이념을 가졌다 할 때, 그 이념 가운데 자각된 사람은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당당한 입장에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을 접합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21-296
자각된 실체의 가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때, 그 비교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지난날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아니라 오늘 현실적인 환경에서 싸우고 있는 처참한 우리 개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지금 어떤 입장에 있느냐? 현재의 자기 위치를 상실한 입장에 있습니다. 자각해야 할 현재의 입장이 얼마만큼 위대하고, 얼마만큼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찾아 나온 것이 뭐냐? 오늘날 현시점에 서 있는 통일교회의 무리입니다. 즉, 자각된 모습을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각했다는 입장을 고수(固守)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역사적 소원과는 대조되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왕왕 느끼게 됩니다.

역사적인 위인들이 살던 그 시대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이 살던 그 당시에도 배후의 역사시대가 있었고, 그들이 살던 현실적인 시대가 있었고, 그들이 바라던 미래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결실체가 누구냐 하면 오늘날 이 시대의 우리 통일교회의 자각된 모습들입니다. 그들이 과거 현재를 청산짓고 소망했던 것은 미래의 자각된 하나의 실체세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 시대에 그들의 자각된 전체적인 가치와 역사가 소망해 나온 전체적 소원의 가치, 그 시대의 전체적 소망의 가치를 모두 합한다 해도 오늘날 우리들의 실체 가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전체 가치, 시대적인 전체 가치를 중심삼고 주체 입장에 선 자체까지 플러스시켜도, 오늘날 소망의 결실로 나타나야 할 통일교회의 자각된 모습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가 역사적인 위인을 일으키게 될 때에 그가 부활할 수 있고, 그의 소원을 이루게 될 때 그가 이 땅 위에 있는 우리와 더불어 결실될 수 있다는 엄청난 사회적인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망각해 버리는 무리가 많습니다.

사회에 어떤 훌륭한 가문이 있다고 합시다. 그 가문의 후손들에게 자기 선조들로부터 상속받은 유물이 있다면, 그 유물을 대할 때마다 옷깃을 여미고 역사적인 선조들의 가치를 추앙하면서 선조를 접하려는 것이 그 가문의 후손들이 취해야 할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이 자기들을 위하고 추모하는 후손들을 바라보고 `오! 너는 사랑하는 내 후손으로서 응당히 해야 할 책임을 다했으니 너는 나의 효자요, 내 후손임에 틀림없다’고 칭찬할 수 있는 입장에 우리들은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1-297
역사시대 앞에 부름 받은 우리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여러분이 선조를 추앙하는 반면에 그들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조들이 나라에 반향을 일으켰던 그 이상으로 세계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끝날에 있어서 자각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 자기가 추앙하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소망의 가치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그 선조를 추앙하는 것을 제일로 삼는다면 그 선조의 갈 길을 막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추앙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만을 추앙하는 입장에 서지 말고, 그가 바라던 역사적인 소망과 접할 수 있는 가치를 흠모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옷깃을 여미며 예수님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님 앞에 한의 조건만 남기게 됩니다. 예수님을 추앙한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심정과 사정을 알고 그것을 본으로 삼아 새롭게 자각하여 나가는 것을 예수님이 고대하시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뿐만 아니라 역사상의 어떤 도주면 도주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혹은 시대적인 어떤 지도자면 지도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들은 후손들이 자신들을 중심삼아 개인적인 가치만을 결정하는 것을 원치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재료로 삼아 가지고 더 높고 더 귀한 가치를 찾아서 예수님이나 도주나 지도자의 반영으로 말미암아 인연이 맺어지게 될 때, 그들이 역사과정에서 결실맺어 나왔던 사실을 인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이 역사와 시대의 결실로 맺어지는 동시에 결실시킨 그 자체도 현실에서 결실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입장에 서지 않고는 영계에 있는 선조들, 즉 성인 현철들이나 지도자들이 이 땅 위에서 부활적인 현실 과정을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원리 가운데 부활론에서 소개되는 내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처해 있는 우리의 자각된 입장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역사의 기준과 시대의 기준에 밀려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가 오늘의 시대 앞에 불리움을 받았으니, 불리움을 받은 내 자체도 당당히 역사와 시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 또 그래야 나를 믿어 줄 하나의 상대가 나타날 수 있는 당당한 동기가 생긴다’고 할 수 있는 자각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입장에 계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인 입장과 시대적인 입장과 미래적인 입장으로 계시지만, 주체성을 지닐 수 없는 입장에 계십니다. 즉, 역사적인 아버지로서의 주체성을 지닐 수 없는 입장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맺힌 복귀노정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자식들이 된 우리들을 구원하여 다시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어 할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승리의 권한을 가지고 아들딸을 세웠다는 주체적인 입장에 계실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시대적으로도 그렇고 미래에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중심도 결정하지 못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자각하게 하는 입장에 서시지 않고는 하나님도 우리와 더불어 결정적인 위치에 서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이런 입장에 있는 개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당당하고 엄숙하고 역사상의 모든 가치를 합하여도 바꿀 수 없고, 시대와 비교해도 바꿀 수 없는 우주적인 새로운 자각관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통일교회에 있는 여러분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런 자각된 입장에 서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회에 나가게 되면 거기에 동화될 수 있는 무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와 환경에 동화될 수 있는 무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21-299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악이 벌어져 누룩과 같이 되어 있는 이 세상에 동화되어 악의 누룩에 녹아나는 무리가 많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제아무리 악의 누룩이 있다 허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의미에서 새로운 것으로 융화시킬 수 있는 자각된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철두철미하게 자각된 입장에 선다 할진대, 어디를 가든지 자신을 중심삼고 나가면 어느 누구도 점령할 수 없는 주체성이 확립될 것입니다.

자기가 관계해 있는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입장에서 그런 작용을 하고 있으면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동반하실 수 있는 주체적인 기반이 자동적으로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기점을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적으로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평면적인 세계를 복귀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과거 현재 미래를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세워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각된 자체들이 이 천지 가운데에 얼마나 있느냐? 지금까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자각된 사람들을 발생시키고 그들의 입장을 결정지어 주어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교인들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입장을 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자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이것을 강요하고, 활동을 할 때도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살아가는 일체의 모든 언행 심사를 기울여 가지고 이것을 위해 움직이고 존재해야 합니다.

생활 가운데 분함과 억울함을 느끼게 되더라도 이것을 중심삼고 여기에 마이너스(-)가 되면 슬퍼하고 플러스(+)가 되면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는 그야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천운이 우리 인륜의 배후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륜 가운데서 그와 같은 마음과, 그와 같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천륜은 반드시 인륜을 접해야만 천지조화의 법도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만나 가지고 조화가 벌어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이 세계 전부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연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은 접하려고 지금까지 무한히 애써 나온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각된 새로운 사람을 우리들이 품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재평가해야 되겠습니다.

21-300
하나님은 개인복귀 완성을 고대해 오셨다
현실적인 생활무대에서 아무리 작은 분야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 토굴에 사는 사람이라도 그가 자각되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들어가는 토굴은 토굴이 아닙니다. 그곳은 세계를 하나로 형성하는 모의 장소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 모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가 활동하는 무대는 홀로 활동하는 곳이 아니요, 또한 그 홀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역사적인 모든 이상적 사람들과 접하는 것이요, 앞으로 올 시대적인 모든 이상적인 사람들과 접하는 것이요, 이상을 품고 나오시는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그 누구도 갖지 못하는 내적인 기반, 내적 가치의 심정을 체휼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할진대 그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을 누가 들이 치더라도 거기에는 반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큰 바람이라도 태산을 만나서 부딪치게 되면 그 바람은 후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새로운 조화를 일으키고 그 권내를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길을 가면서 어두운 흑암세계를 혼자 가더라도 그 흑암세계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밀려가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과거에 그 어떤 사람도 갖지 못했던 예민한 신경을 가지고 느껴야 합니다. 오늘 현실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과거의 그 어떤 성현도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껴야 됩니다. 미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간절한 소망의 세계로 진일보하겠다는 각오 가운데 기쁨을 느끼면서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이 자각된 개인으로 완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개인이 완성되지 못하면 새로이 자각된 가정이 형성될 수 없는 것이요, 새로운 가정이 나오지 않고는 새로운 민족과 새로운 국가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는 개인의 완성을 결의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복귀 완성을 그렇게도 고대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남성이면 남성 한 사람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6천년 역사가 걸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전반적인 목적을 시대를 초월해 가지고 하나의 남성 완성에 두시고 그것을 표준해 나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완성한 남성을 중심삼고 하나의 여성을 세워 가지고 하나의 가정 완성의 표본을 만들고자 하신 것인데, 그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이 메시아 사상을 중심삼고 신랑 신부를 세움으로써 복귀섭리의 귀결점을 지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전체 생활의 기반을 세우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분이 세워 놓은 생활관이나 그분이 지향하는 이념은 일체 후대의 만민이 본 받아야 할 표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각기 그 모습이 다르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치고 보면 같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생활관과 예수님의 우주관과 같아야 됩니다. 거기에는 차이가 없어야 됩니다. 우리들의 얼굴은 전부다 다르지만 핏빛은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양과 모든 생활방식과 역사적인 모든 문화의 배경은 다를지라도 그 가운데 생명의 원천으로 흘러 나가는 사상은 예수님과 일치되고 오시는 주님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생활의 일치를 할 수 없는 것이요, 국가 세계 또한 일치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이 자각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신을 공인하실 수 있으며, 과거와 현실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새로운 의미에서 여러분 자신을 자각된 모습으로 공인할 수 있는 입장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21-302
자기의 가치를 확실히 알아야
이런 내용을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은 엄청납니다. 과거의 교차로요, 현재의 교차로요, 미래의 교차로입니다. 과거에 완성을 바라고 나온 것도 교차되어야 합니다. 현재 어느 한 때에 서로 교차되어야 합니다. 미래에도 역시 이 교차로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타락했으니 바꿔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새로운 자각을 통해 뚫고 나가야 됩니다. 현재도 새로운 자각으로 뚫고 나가야 됩니다. 미래도 역시 뚫고 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되기 때문에 6천년이 걸린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과거의 기준, 현재의 기준, 미래의 기준, 이 3선을 모두 합해 가지고 총결산을 지어야 합니다.

과거에 공들인 모든 수고가 현재에서 거두어져야 됩니다. 현재에서 공들인 모든 수고가 미래에서 거두어져야 됩니다. 또 미래에 바라는 모든 전부가 거기에서 거두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3수의 결실체로서 이 실체 세계를 중심삼고 자각 된 자체를 세웠다고 할 수 있고, 우주 앞에 그런 내용을 결정지었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과거 현재 미래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사적인 교차로를 통과하기 위해서 시대를 거쳐 나오면서 소망하던 것이 현실에서 결정지어져야 됩니다. 과거는 현실에서 열매맺는 것이요, 미래도 현실에서 출발의 기점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실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역사시대의 어느 한 때에 역사과정의 이 3점이 우리의 인격을 중심삼고 교차되어야 합니다. 그런 결정적인 권한을 여러분이 갖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활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됩니다. 그러니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부딪치는 환경에서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뚫고 나가야 됩니다.

새로이 자각된 모습으로서 신념을 가지고 사회를 혁신시키고 악의 세계를 결속시키면서 새로운 분야에 전환의 기준을 성립시키고 나가야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새로이 자각된 그 입장을 결정지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나, 새로운 가정,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가 자각되어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역사는 수천년 동안 뜻을 알지 못하고 걸어온 역사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역사는 비록 짧더라도 장담코 우리 교회를 대해 수천년 역사, 또는 그 어떤 인물도 심판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자각성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갖고 있는 역사의 가치를 망각해 버리고 예수님만을 믿는 교회의 사람들처럼 과거 이스라엘 역사의 내용을 더 중요시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는 흔히 자기의 가치를 망각하여 버리고, 타인에게서 자기의 가치를 보충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발전할 내심적인 욕망이 있게 되면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자기가 지닌 가치를 확실히 알아 가지고 플러스(+)시켜야 됩니다. 이것을 몰라 가지고는 플러스될 수 없으며 역사의 주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역사에 끌려 나가고 환경에 끌려 나가는 사람이 지성을 가지고 그것을 소화시켜 상응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역사는 짧지만 세상에 없는 역사, 그 어느 역사 과정에도 없었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시대의 가치를 찬양할 수 있는 역사적인 후손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국보면 국보라든가,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찬양하는 것보다도 새로운 역사과정에 남아질 수 있는 실체를 찬양해야 됩니다. 우리가 걸어나온 100여 년간의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역사과정을 지내면서 남겨 놓은 것을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남겨 놓은 어떤 것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그것을 감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을 망각해 버리고 잃어버리는 사람은 현재 자기의 자각된 자체를 팔아먹는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신문에 났지요. 한국의 귀중한 그림 수백 점이 일본의 천리교에 의해 팔려갔습니다. 그림이 자기의 본고향이 아닌 외국 땅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국가의 손실입니다.

21-304
통일교회의 가치
이것을 보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복귀의 사명을 짊어지고 6천년 역사의 내적인 사명을 완결 짓기 위해서 지금까지 걸어나온 역사적인 가치라는 것은 무한한 가치에 해당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망각해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 있어서 국보로 하고 있는, 혹은 세계의 어떤 국가에서 국보로 할 수 있는 귀중한 국보보다도 오늘날 통일교회의 짧은 역사 가운데 천세만세 만민이 수용할 수 있는 국보적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새로운 역사시대를 창건할 수 있는 자각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역사가 과거 역사보다도 빛날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고 자각해야 되겠고, 현재 우리의 입장이 이 시대의 어떤 사회, 어떤 생활권의 가치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자각된 입장을 현재의 기준과 비교할 때, 자각된 입장이 모든 면에서 더 나으냐? 낫지 않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는 현재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느냐? 외적으로 보아서는 그 가치를 모릅니다. 보기에는 처량하고, 보기에는 안됐고, 보기에는 서글프고 비참한 자체가 되어 있지만 현재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여러분들이 거리 거리에서 방황하고, 혹은 그 누구보다도 못사는 어려운 입장에서 혹은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현재 여러분이 지닌 자각적인 가치는 역사시대 그 어떤 사람이 지닌 가치보다도 나은 것으로서 천대 만대에 빛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공인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현재의 가치를 팔아먹는 사람이 됩니다. 자기 나라의 국보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팔아먹는, 즉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일본이면 일본 등 자기 나라의 귀중품을 모두 팔아먹는 후손과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역사적인 지탄을 받아야 됩니다.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무한한 가치로 지녀 가지고, 이 가치를 만우주 앞에 천대 만대 빛내야 됩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어떤 가치보다도 더 훌륭하게 적응시키겠다는 자신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그 자리가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처량하더라도 그 가치는 우주사적인 것입니다. 그가 객사했다 하더라도 객사한 그의 몸뚱이는 하나의 사람으로 객사한 몸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인 가치를 남길 수 있는 입장에서 객사한 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생활권내에 응고되어 있는 모든 사실들이 오늘 이세계에 호화찬란한 행복이 깃들 만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새로운 시대를 창건해 나가는 자각된 환경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눈물이 흐르고 여기에 어려움이 교차되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과 눈물은 시대를 정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적인 체험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없이는 새로운 세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즉 그것이 없이는 이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전환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21-305
현재의 가치를 느껴야
그런 입장에서 외적인 기준이 동떨어진다고 거기에서 낙망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한 낙후된 입장에 서서도 절대 안 됩니다. 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재의 자각된 가치가 세계의 어떤 현실적인 가치보다 귀하다는 것을 아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뒷마루까지도 어느 고층 건물의 호화찬란한 자리, 모든 사람들이 전부다 거룩히 볼 수 있는 그 자리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먼지 하나, 공기 하나도 세계의 무엇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렇습니까? 본부교회 들어서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이구 답답해 아이구 답답해’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와 가지고 좋은 방도 모두 불편하다고 그저 재간을 피워 가지고 나가서 자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 가치를 알게 되면 나가서 자라고 해도 안 갈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생활권내의 감촉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한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가치를 무한히 느낄 줄 아는 사람은 앞으로 미래의 세계를 창건하고 미래의 권한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미래 세계의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래는 현재를 통과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가치를 무한히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무한한 미래의 가치를 상속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현재 가치는 뜻을 중심삼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중심삼고 이 시간 이후 미래를 향하여 출발해야 됩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면 그 말씀은 이미 미래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모든 것은 미래의 역사가 수습하는 것입니다. 즉, 현재의 것을 현재가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가 수습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에 있었던 전부를 미래의 역사가 수습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이제부터 하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두 사람이 말을 하고 나면 그것이 벌써 상대적으로 주고받는 관계를 맺어 가지고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

선악은 어디에서 탄생하고, 선악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현재와 미래의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1-307
현재에서 밀려나는 존재는 미래에서도 수습될 수 없다
여기에서 현재와 미래의 선의 양이 과거와 현재의 선의 양보다 크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각된 세계의 존재로 남아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와 미래를 갈라 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체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큰 미래의 세계를 찾아 나가야 됨으로, 오늘날 우리자체에 뒤넘이치는 환경에서도 현실 과정에서 더 큰 미래의 가치를 심어 놓지 못하면 미래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도 그만, 내일도 그만 하면서 오히려 현실의 가치보다도 내일의 가치에 치중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중심삼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이 기준을 자각해 가지고, 여기에 현재보다도 더 강하고 더 소망적이고 더 철두철미한 의분심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는 폭발적인 원동력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래야 미래의 세계가 우리들 앞에 접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가 어떻다고 하면서 낙망한 사람들을 미래는 원치 않습니다. 현재에서 밀려가는 존재는 현재 청산되어야지 미래에 수습되고 출발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밀어내고 수고를 감당하고 나가면서 현재를 전부다 청산지을 수 있어야만 미래의 출발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게 되면 오늘이 온다고 합니다. 오늘이 온다는 것, 아니 오늘이란 것은 지난날과 지금 이 시간에 연결된 과거의 권내와는 다릅니다. 오늘이 옴으로 말미암아 곧바로 내일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내 개인의 입장이 내일의 가정의 입장을 추구하는 것이요, 오늘의 가정의 입장이 내일의 종족의 입장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의 종족의 입장이 내일의 민족의 입장을 추구하고, 오늘의 민족의 입장이 내일의 국가의 입장을 추구하고, 오늘의 국가의 입장이 내일의 세계의 입장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큰 분야를 추구하고, 그것을 안고 위해주기 위해서는 더 강하고 강력하게 플러스(+)될 수 있는 자극적인 모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데는 일심(一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1년, 2년, 혹은 처음 한 3년쯤은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하다가는 그만 멈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나 돼지와 마찬가지입니다. 개나 돼지는 봄철이 되면 좋다고 뛰고 야단입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아이구’ 하거든요.

우리는 쉬되 때가 없이 쉬어서는 안 됩니다. 잠을 자되 때가 없이 자서는 안 됩니다. 더 크기 위해서, 더 굵어지기 위해서 쉬고 자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심판받을 세계가 통일교회에서 출발한 여러분의 과거를 끌어가려 해도 끌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통일교회의 입장은 어느 현실 세게도 끌어갈래야 끌어갈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통일교회 교인들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또 지금까지의 세계가 바라던 소망의 길이 이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됩니다.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역사보다 찬란했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국사를 중심삼고 볼 때 우리 국사면 대한민국 역사는 이래서 망했고, 미국이면 미국의 선조들은 이래서 흥했다 하는 것은 앞으로 역사를 교육하는 하나의 표준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시대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표준으로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21-308
복귀역사의 주연 배우가 되라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며 살아 나왔습니다. 뜻을 위하겠다고 발버둥치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남들은 모두 안 하는데 왜 나 혼자 해야 돼. 그저 적당히 따라 가지’ 하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닦아 놓은 터전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국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개인이 팔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과거의 움직임은 자기 한 개인에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사에 길이 빛날 수 있는 국가와 세계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팔아먹는 악당 분자들이 많습니다. 그와 같은 것을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국가의 것이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요, 보화 중의 보화를 자기 혼자 쓱싹 팔아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보면 선생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말씀은 설교로 해야 되지만 지금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활동하고 와서 지금 그냥 끄덕거리고 졸고 있는데, 말씀의 내용이 절대로 졸아서는 안 될 내용입니다. 조는 것은 영계에서 볼 때 말씀을 팔아먹는 것이 되므로 어느 단체에 가서 졸리면 얼른 나와야 됩니다. 왜 그 단체에 마이너스(-)가 됩니까? 차라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없이 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말하는 사람의 속을 썩혀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도 고단하겠지만 선생님도 고단합니다. 선생님은 새벽 두시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합니까? 여러분들이 지치면 자신의 보물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몇 해 동인 뜻을 위해서 굶고 다녔다고 할 것입니다. 어디 굶어 본 사람 손들어 보시오. 많이 있을 것입니다. 좌우지간 손들어 봐요.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세입니다. 선생님도 밥을 많이 얻어먹어 봤습니다. 우리는 무대에 선 주연배우들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눈물이 흘러 나오면 그 가정의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가슴이 메어 통곡을 해야 됩니다. 감격을 느끼며 움직이는 사람은 주연배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복귀역사의 주연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밥을 달라고 해서 얻어먹는 것도 얼마나 멋집니까? `야, 이런 역사적인 시점에 새로운 의인이 나타났구나’ 할 것입니다. 그런 가치를 가지게 되면 아주머니들도 잘해 줍니다. 그렇지만 `밥! 밥을 얻어먹어? 아이구, 창피해라. 사내 신세에 밥을 얻어먹다니, 우리 할아버지께서 아무리 못해도 밥 얻어먹는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하시고 우리 아버지께서도 그러셨는데, 통일교회 들어와서 밥을 얻어먹고 다니다니!’ 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며 멍하게 있는 사람은 망합니다.

그런 사람은 오래 못 갑니다. 3년, 7년도 못 갑니다. 간다고는 하면서 뒤에서 보따리를 싸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생이 많지요. 하지만 그 고생이 얼마나 멋집니까? 얼마나 멋지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생하는 곳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역사가 세계의 역사보다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1-310
뜻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 보화
통일교회 역사를 창건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움직였던 그 모든 시간을 자기가 상속받아 그것을 자기의 보화로 가슴에 품고 자기 집안의 보화로 남기겠다고 애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나는 지금까지 움직여 나오는 데 있어서 작업화나 운동화가 뚜껑만 있고 바닥은 없을 때까지 신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는 입장인데 신발을 신을 수 있겠어요? 발가락에 흙이 끼이지만 신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뜻을 위해서 언제 그렇게 해보겠습니까? 내가 걸어 오면서 신었던 그 신발이 천년 만년 대웅변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그 한때를 수습하는 현재의 때가 없으면, 우리의 이념은 그 가치를 이 세상 존재 앞에 진동할 수 없습니다. 향기가 진동하려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포근한 바람이 불지 않는 봄동산에 향기가 진동할 수 없습니다. 봄바람이 사방으로 흩어져야 향기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얘기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흥남 감옥에서 한 3년간 있을 때, 암모니아 비료 공장에서 입던 옷들, 입을 수 없게 된, 더욱이 내복 같은 것을 전부다 올을 빼 가지고 누더기 보따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덮고 잡니다. 그럼 사람들이 우르르 모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봤으면 `저 친구, 나중에 누더기 보따리 장사할 거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3년 동안 입던 옷들을 전부다 고스란히 보관했어요. 그래 가지고 그 누더기 보따리를 가지고 나왔지요. 지금 통일교회에 그것이 남아 있으면 세계적 보화일 것입니다. 보기에는 한푼의 가치도 안 되지만, 그것이 있으면 억천만세 영원히 말없는 웅변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와 같은 보화를 캐낼 수 있는 현실의 가치가 얼마나 귀합니까? 내가 역사적인 사명을 지닌 가치를 스스로 자각할 때, 내가 걸어가는 길은 앞으로 역사의 후대에 후손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기준으로 남아지게 됩니다.

곡절과 사연 많은 인연의 동산, 그 사연의 엉클어진 지역에서는 영원토록 세계를 향하여 방송을 할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빛난 가치를 남길 수 있는 한 곳, 그 한때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못 먹고 어렵게 고생하면서 처량한 죽음의 교차로에서 하늘땅을 구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1-311
무한한 가치를 심을 수 있는 고생
여러분들도 앞으로 조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지금 당대에 있어서, 현재의 어려운 생활권내에서 여러분의 후손들이 천추만세 여러분의 정신을 길이길이 받들고 선조인 여러분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보물을 찾아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할 것이 현재 여러분의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외적으로 벌어지는 환경이 편하면 편할수록 그 가치는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이 외로울 수밖에 없고, 슬플 수밖에 없으며, 억울함과 분함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그 자리에서 여러분이 당하는 그 고충이 세계적인 고충으로 남아지게 된다면, 그 한 사건으로 세계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세계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는 동기와 세계를 완전히 점령할 수 있는 재물과 보화가 발굴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순간을 내가 거쳐 나간다고 생각하니 내 뒤에 채찍이 온다 해도, 내 가슴에 창끝이 온다 해도 탄식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고생이 무한한 가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배신을 하고 낙망을 하려고 해도 지난날의 산 역사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엉클어진 인연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이끌고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시일이 다가올수록 세계가 나와 연결되어 흘러가는 것을 생각할 때,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딴 생각을 할래야 할 수 없으며, 지칠래야 지칠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나의 사명과 위치는 돈과도 바꿀 수 없고, 세계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무한한 가치를 여기에서 심을 수 있고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나고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모르고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꺼떡거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현실에 나타나는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은 나타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생명의 원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타납니까? 여러분들의 생명의 원천을 아십니까? 생명의 원천이 어디에 있습니까? 심장에 있습니까? 심장이 아닙니다. 생명의 원천은 잘 모르는 것입니다.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보화의 가치에 인연되는 것은 대중이 `야!’ 하며 손을 붙들고 몰려드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가 모르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와’하는 데서 위대함이 빚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와’ 할 때는 이미 껍데기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위대함이란 때를 알 수 없는 몇십년 전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두고 볼 때, 나무의 가치는 어디에 있느냐? 나무를 잘라다 쓰는 데, 혹은 집짓는 데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죽은 나무 자체를 인간이 사용하는 데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무 자체의 생명의 가치는 나타나지 않는 뿌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 잎이 아무리 무성하고 많다 하여도 그것은 모두다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가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잘라 버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뿌리는 잘라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가야 할 길 앞에 있어서 새로운 자각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출발한 것이 얼마나 무한한 가치를 지녔는지 모르고 자기의 보화를 전부다 팔아먹으면 `아이쿠 저것이 세계에 둘도 없는 보화였구나’ 할 날이 기필코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있지만, 그 가치를 알아서 그 가치를 빼앗기 위해 살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값을 주고 그것을 사려고 할 때, 여러분들이 그 가치를 모르면 한푼에도 팔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입장에 있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선생님이 보면 대개 그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이 오늘 `공적인 일을 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아이구 공적인 일을 해도 뭐 생기는 것이 있나, 우리 아들딸이 굶게 되었는데 아무리 일해 봤자 남는 것은 국물도 없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야, 내가 돈 만원 줄께’하면 `야, 선생님에게 오늘 나 무슨 일 있다고 해라’하고는 `얼씨구’하고 그리고 갑니다. 여기에도 그런 껄렁패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불순주의자요, 역사를 팔아먹고 나라를 팔아먹는 반역자와 같은 무리가 많다 이겁니다. 만일 통일교회 선생님이 그랬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통일교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무한한 가치로 싹틀 수 있게 심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내가 심은 나무는 천세 만세 고이 잘 자라라고 하면서 심어야 되겠습니다. 가장 순수한 것을 심어야 되겠습니다. 선별하고 선별해서 참된 것을 심어야 되겠습니다. 한번 심으면 나지 않을 수 없는 참된 씨를 거룩한 곳에 심어야 되겠습니다. 피땀을 흘리고 정성을 다 해서 심어야 되겠습니다.

21-313
새롭게 자각하자
정성을 들이면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찾아오실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역사적인 모든 가치와 내가 그 길에서 다져 놓은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거두어 드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각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역사적인 과거는 흘러갔고, 지금 현재 시대도 남아진 것이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많은 현재들이 과거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에는 박물관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수의 무리들은 완전히 불살라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통일교회는 역사의 인연을 중심삼고 남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동산 가운데,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나라의 중앙에 간직할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는 귀한 보물들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현실 환경에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현실에서 새로운 자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의 과거는 그 어느 역사시대의 과거보다 무한한 가치를 지녔고, 우리의 현실은 그 어떤 시대의 현실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으며, 우리의 미래는 그 어떤 사람들의 미래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에 반영되는 인격이요, 무한한 가정이요, 무한한 종족이요, 무한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보람을 느끼며 여기에서 살고 여기에서 싸우고 여기에서 무한한 세계의 공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이상 보람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가치를 알았으니, 세상이야 욕을 하든 세상이야 뭐라 하든 깨달은 그 가치를 찾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다이아몬드 광(鑛)이 있다고 합시다. 지가만 아는 그런 곳에 있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남이 모르게 허가를 낼까요, 안 낼까요?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의 가정도 팔아야 될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자기의 부인을 팔아서 그 나라의 수많은 아들딸을 구한다면 그것 또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팔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광산이 우리 나라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이요, 세계 만방의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길이라 할 때는 그 허가를 내기 위해서 부인과 자식을 팔았다고 해서 역사의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부인이나 자식을 파는 것은 안 될 것 같지만 거기에는 오히려 세계가 찬양할 수 있는 보화의 근원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지금 현재 우리가 가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마지막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보람을 무한히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새로운 자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역사적인 입장에서 심판 받을 일을 날마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자각이 필요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21-315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이 맨손을 들고 있더라도 저희들은 무한히 가진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세상에 탄생하기까지 수고로운 길을 걸어오신 아버님 앞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통일교회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재산을 모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옵나이다. 벌거숭이 몸뚱이와 눈물의 흔적과 처참한 상처의 흔적을 남기고 이 길을 걸어왔사옵니다. 그러나 아버님께서 이 모임과 이 단체를 남기시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한번 아버님 앞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아버님, 저희들은 맨손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자리에 서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옵고, 권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옵고, 세상의 어떠한 문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것보다도 더욱 필요하고 굶주리면서도 저희가 갈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부모의 사랑이요, 부부의 사랑이요, 자녀의 사랑이옵나이다. 그리운 하늘땅이 기뻐할 수 있는 본향 땅에서 하늘 아버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저희들은 추구하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그러한 가정 이상 가치있는 것이 세상이 또 있겠사옵니까? 금은 보화가 태산같이 많다 하여도 부모의 사랑을 중심삼은 그 가정의 인연, 부모를 중심삼은 형제의 인연, 그 이상의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이것을 아버님께서 찾아 나오신 것을 알았기에, 저희들이 여기에서 무한한 가치를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서 즐기고 여기에서 다짐하며 역사를 창건할수 있는 동기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장본인이 되기 위해서 통일의 역군이 된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기나긴 역사과정에 있어서 슬픈 눈물을 흘려왔사옵니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는 환경마다 슬픈 사연이 스쳐가고 역사의 고빗길에서는 하늘의 탄식을 자아 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날 저희들은 남성과 여성들이 하나된 가정을 이루어서 아버님의 한을 풀고, 원수를 방위할 수 있는 철석 같은 교두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런 입장에서 저희 자체를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아서 새로이 자각된 세계로 저희들은 달려가야 되겠사옵나이다.

오늘도 쉴 새 없이 가야 할 자신인 것을 알게 될 때, 잠자리에서도 내일의 나를 개척할 줄 알게 하시옵고, 오늘의 한스러운 수고의 역로 가운데 내일의 갈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의 피곤함을 잊어버리고 내일을 생각하면서 희망에 넘쳐 하늘과 땅을 중심삼고 나가게 하시옵소서. 자기 힘이 연약하거든 하늘의 힘으로 부축받고, 자기 자체가 부족하거든 땅의 힘을 빌면서 나갈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오늘은 안식일이옵니다. 이 땅 위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을 따라오는 수많은 사람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들었지만, 당신을 모시기 위한 자기의 사명을 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사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젊은 자녀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오늘 거룩한 날이지만 거룩한 날로 지키지 못하고 이 시간에 참석하지 못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갈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곳이 이 민족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자리요, 아버님 앞에 경배드리는 자리인 것을 더더욱 느끼게 하시옵고,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이날 아침 다시 한번 저희들의 활동무대를 서울 이 도성으로 연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걷는 모습이 처량하고 초라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하늘의 용자의 모습으로서, 아버님의 명령을 따라 원수를 공격하고 돌격할 수 있는 충정의 모습으로서 행군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슬픔이 넘쳐 뼈와 살에 사무칠 때, 그 마음에 아버지를 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눈물이 교차되는 자리에서 자기를 위하고 자기 족속과 자기 나라와 자기 이념을 중심삼고 눈물짓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 종족, 민족, 인류를 위해 눈물지을 수 있는, 새로이 자각된 모습이 되어서 하늘의 새로운 역사를 편찬할 수 있는 새로운 역군들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들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의미에서 아버지 앞에 경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부터 남은 기간, 저희들이 어떤 길을 가든지 아버님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고, 일편단심 아버님을 사랑하고, 뜻 발전을 위해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을 해원성사시키고 세계 만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해방의 용사들로서 당신이 세워 주신 그 위치를 상실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남은 역사의 모든 사실들이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사옵고,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국가 권들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발에 상처가 나더라도 그 발을 이끌고 가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곳을 향하여 가겠다고 몸부림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두운 밤에도 가야 되겠고, 꿈속에서도 가야 되겠고, 눈을 뜨고 살아생전에 기필코 가야 되겠사오니,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길 앞에 아버님께서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나이다.

저희들이 아버지와 같은 사정을 갖고 있고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그 길이 아버지의 눈물이 따르는 자리요, 아버지의 탄식이 같이 접할 수 있는 자리요, 아버지의 곤경과 외로움이 같이 깃들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아옵니다. 또 그 길이 아버지 앞에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아버님께서 찾아오시고 위로해 주실 수 있는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천번 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위로의 음성과 더불어 죽고 싶어하는 마음이 저희에게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분부하시는 명령을 받고 아버지께서 위로해 주시는 자리에서 가고 싶사옵나이다. 채찍을 맞는 자리라도 죽음의 교차로라도 그것이 저희들의 소원이 아니겠사옵니까? 그것이 아들 된 자의 본분이요, 아들딸이 가야할 의무가 아니겠사옵니까? 그럴 수 있는 각오를 가진 당신의 아들딸이오니, 이들이 가는 길에서 당신을 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자리, 외로이 한숨지을 수 있는 자리에 설 때 아버지의 눈물을 먼저 생각하고 아버지의 한숨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를 중심삼은 일체의 감정을 가지고 살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세계 만방에 편입되어 들어오는 모든 사연들이 저희의 뜻과 접근되어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저희들은 쉴래야 쉴 수 없는 촉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쌍수 합장하여 아버지의 거룩한 지성소 앞에 엎드려 거룩히 밤을 새워 가면서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고, 아버지의 일을 염려하고, 그것을 책임져야 할 사명을 가지고 복귀의 사명을 염려할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나라에서 충신 열녀의 이름을 받기에 또한 효자 효녀의 이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들이 한국에 많으면 한국이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전통이 부르고 전통이 찾는, 한국의 얼을 지닌 아버님의 아들딸로서 이 민족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 있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가 되어 과거의 세계가 주목하고, 현재의 세계가 주목하고, 미래의 세계가 주목할수 있는 고귀한 존재들이 여기에서 살면서 여기에서 터를 닦아 나가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의 가치를 찬양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리겠다고 다짐하며 머리를 숙여 기도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